통합대장경

016_0809_a_01L보리자량론(菩提資粮論) 제1권
016_0809_a_01L菩提資糧論卷第一
용수(龍樹) 본송
자재(自在) 해석
달마급다(達磨笈多) 한역
박상수 번역
016_0809_a_02L聖者龍樹本 比丘自在 釋大隋南印度三藏達磨笈多 譯
이제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합장하여 머리 숙여 공경하오니
나는 마땅히 가르침대로
불보리(佛菩提)의 자량(資粮)을 말할 것이다.
016_0809_a_04L今於諸佛所
合掌而頂敬
我當如敎說
佛菩提資糧
‘부처님[佛]’이란 일체의 알아야 할 것 중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알기 때문이며, 또한 지혜가 없는 잠(睡眠) 속에서 깨닫기 때문이다. ‘깨달음[覺]’이란 깨어나는[覺寤] 것을 그 의미로 삼으니 지혜 없는 잠을 여의기 때문이다. 또 모든 석범(釋梵)1)들은 이 깨달음을 깨닫지 못했다. 오직 그 명성(名聲)이 삼계(三界)에 널리 퍼졌다 함은 능히 깨달은 바이기 때문이니,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라야 이 깨달음을 깨닫는다.
016_0809_a_06L佛者於一切所應知中得覺此爲佛如所應知而知故又於無智睡眠中覺故覺者覺寤爲義以離無智睡故又諸釋梵等不覺此覺唯是名聲普遍三界者所能覺故一切諸佛乃覺此覺
일체종편지(一切種遍智)는 오직 부처님만이 알 뿐 모든 성문(聲聞)ㆍ독각(獨覺)ㆍ보살이 아는 바가 아니니 함께할 수 없는 법[不共法]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모든[諸]’이란 빠짐이 없는 것으로 과거ㆍ미래ㆍ현재 등을 말한다. ‘머리 숙이다[頂]’라는 것은 윗부분[上分]이다. ‘합장(合掌)’이라함은 손을 모으는 것이다. ‘공경[敬]’이라 함은 향하여 예배하는 것이다. ‘나는 말할 것이다[我說]’는 스스로 분별하는 것이다. ‘가르침대로[如敎]’라 함은 저 각각의 경전에서 갖가지로 이미 말한 것이니, 지금도 또한 그 가르침대로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佛]’이란 지혜가 없음을 여읜 것이며, ‘보리(菩提)’란 일체지지(一切智智)이다. ‘자량(資粮)’이란 능히 보리를 충만시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세간의 병이 가득 참[甁盈]과 가마솥이 가득 참[釜盈] 등과 같으니, 가득 참은 충만하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보리를 충만시키는 법으로써 보리의 자량으로 삼는다.
016_0809_a_12L以一切種遍智唯佛所知非諸聲聞獨覺菩薩以不共法具足故無闕故謂過去未來現在等頂者上分故合掌者攝手故敬者向禮故我……說者自分別故如敎者彼彼經中種種已說今亦如彼敎說故佛者無智故菩提者一切智智故資糧者能滿菩提法故譬如世閒甁盈釜盈盈是滿義如是以滿菩提法爲菩提資糧
016_0809_b_02L또 가지는 것[持]으로써 그 의미를 삼는다. 비유하면 세간에서 함께 운행되는 해[日]는 열기를 포섭하고 달[月]은 냉기를 포섭하는 것과 같다. 포섭한다는 것은 가진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보리를 갖는 법으로 보리의 자량을 삼는다. 자량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가진다는 의미이다.
016_0809_a_21L又以持爲義譬如世閒共行日攝於熱月攝於冷攝是持義如是以持菩提法爲菩提資糧言資糧者卽是持義
또 장양(長養)으로 그 의미를 삼는다. 비유하면 세간에서 능히 천(千)이나 백(百), 십(十)을 충만케 하기도 하고, 혹은 오직 스스로만 충만케 하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충만케 하기 어렵기도 한 것과 같다. 보리의 자량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보리를 장양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삼는다. 또 원인[因]으로 의미를 삼으니, 마치 집[舍]ㆍ성(城)ㆍ수레[車] 등의 원인 중에서 집의 자량ㆍ성의 자량ㆍ수레의 자량을 말하는 것과 같다.
016_0809_b_03L又以長養爲義譬如世閒有能滿千或百或十或唯自滿或難自滿菩提資糧亦復如是以長養菩提爲義又以因爲義如舍車等因中說言舍資糧城資糧車資糧
이와 같이 인연법 속에서 보리를 낳는 것을 보리의 자량이라고 이름한다. 또 여러 부분[衆分]을 구족하는 것으로 의미를 삼는다. 비유하면 제사(祭祀)의 부분 중에서 구기[杓]2)ㆍ불[火] 등을 구족하는 것을 제사라고 이름하지 구족하지 않은 것은 제사가 아닌 것과 같으며, 또한 신체의 부분인 머리ㆍ손ㆍ발 등을 구족하는 것을 신체라고 이름하지 구족하지 않은 것은 신체가 아닌 것과 같으며, 보시의 부분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보시하는 자[施者]ㆍ보시하는 물건[施物]ㆍ받는 자[受者]ㆍ회향(廻向) 등을 구족하는 것을 보시의 자량이라고 이름하지 구족하지 않은 것은 보시가 아니다. 계(戒) 등의 자량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러 부분을 구족하는 의미가 자량의 의미이다. 이와 같이 나는 보리의 자량을 말하였다. 이 능히 충만시키는 것ㆍ가지는 것ㆍ장양하는 것ㆍ보리의 원인인 것ㆍ보리의 부분을 구족하는 것이 모두 그 의미이다.
016_0809_b_07L如是於生菩提因緣法中說名菩提資糧又以衆分具足爲義譬如祭祀分中杓火等具足名爲祭祀非不具足如身分足等具足得名爲身不具足施分亦如是施者施物受者迴向此等具足名施資糧非不具足戒等資糧亦如是是故衆分具足義是資糧義如是我說菩提資糧是能滿者持者長養者菩提因者菩提分具足者皆其義也
어떤 능력으로 보리의 모든 자량을
빠짐없이 설명할 수 있는지라
유독 모든 부처님만이
따로 가없는 깨달음[無邊覺]을 얻는다.
016_0809_b_17L何能說無闕
菩提諸資糧
唯獨有諸佛
別得無邊覺
016_0809_c_02L‘어떤 능력으로[何能]’란 어떤 힘이다. 성문이나 보살은 적은 부분의 각지(覺知)라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보리의 자량을 빠짐없고 남김없이 말하고 싶다면 오직 모든 부처님뿐이다. ‘따로 가없는 깨달음을 얻는다[別得無邊覺]’에서, ‘가없는 깨달음’이란 소위 적은 분량의 깨달음이 아닌 것이다. 부처님ㆍ세존은 가없는 응지(應知)의 의미 중에서 각지(覺知)가 걸림이 없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을 가없는 각자(覺者)라고 이름한다. 또 욕락(欲樂) 및 자기의 피로와 괴로움, 단절[斷]과 항상함[常], 있음[有]과 없음[無] 등의 변견(邊見) 속에서 깨달아 집착하지 않고 깨달은 바가 가없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을 가없는 각자라고 이름한다.
【문】어찌하여 자량은 오직 부처님만이 설할 수 있고 그 밖의 사람은 설할 수 없는가?
016_0809_b_19L何能者何力也若聲聞若菩薩少分覺知無力能故若欲說諸菩提資糧無闕無餘唯是諸佛別得無邊覺者言無邊覺謂非少分覺故以佛世尊於無邊應知義中覺知無碍是故佛名無邊覺者又於欲樂及自疲苦常有無等邊見中覺而不著以所覺無邊是故佛名無邊覺者何故資糧唯佛能說餘人不能
【답】불체(佛體)의 가없는 덕(德)은
깨달음의 자량을 근본으로 삼으니,
이 때문에 깨달음의 자량도
또한 한계가 있지 않다.
016_0809_c_05L佛體無邊德
覺資糧爲根
是故覺資糧
亦無有邊際
‘불체(佛體)’란 곧 부처님의 신체[佛身]이다. 그 불체에 가없는 공덕을 구족하였으므로 ‘불체의 가없는 덕’이라고 말한다. ‘공덕(功德)’이란 이른바 칭찬할 만하다는 뜻이니, 칭찬할 만한 것을 곧 공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자주자주[數數]라고 한 뜻은 비유하자면 경서(經書)를 자주자주 염송하고 익히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공덕을 짓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또 뇌고(牢固:견고함)의 의미이니, 비유하면 노끈을 만드는데 둘을 합하여 공(功)으로 삼기도 하고 셋을 합하여 공으로 삼기도 하는 것과 같다.
016_0809_c_07L佛體者卽佛身也以彼佛體具足無邊功德故說佛體無邊德功德者可稱讚義若可稱讚則名功德又是數數作義譬如數數誦習經書彼則說名作功德者又是牢固義譬如作或合二爲功或合三爲功
또 증장(增長)의 의미이니, 비유하면 식리(息利:이자, 이익, 배당금)에 대하여 둘을 증가시키는 것을 공으로 삼기도 하고 셋을 증가시키는 것을 공으로 삼기도 하는 것과 같다. 또 의지(依止)의 의미이니, 비유하면 모든 사물이 각각 의지로 공을 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불체는 계(戒)ㆍ정(定) 등 가없는 차별의 공덕을 의지하기 때문에 ‘불체에는 가없는 공덕이 있다’라고 말한다.
016_0809_c_13L又是增長義譬如息利或增二爲功或增三爲功又是依止義譬如諸物各以依止爲功如是佛體爲戒定等無邊差別功德依止故說佛體有無邊功德
‘깨달음의 자량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저 보리의 자량이 불체(佛體)의 가없는 공덕과 더불어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근본[根]’이란 건립(建立)의 의미이다. 보리란 지혜이며 근본은 곧 자량이다. 저 자량이 일체지지(一切智智)를 능히 건립하므로 자량을 불체의 근본으로 삼는다. 진실로 불체에 가없는 공덕이 있음을 말미암아서 모름지기 가없는 공덕으로서 불체를 이루는 것이니, 이 때문에 자량 또한 무한한 것이다.
016_0809_c_17L覺資糧爲根者彼菩提資糧與佛體無邊功德爲根本故根者建立義提者智也根卽資糧以彼資糧能建立一切智智是故資糧爲佛體根本良由佛體有無邊功德須以無邊功德成彼佛體是故資糧亦無邊際
비록 적은 분량이라 해도
응당 부처님과 보살에게 경례해야 한다고 설하나니,
이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016_0809_c_23L當說彼少分
敬禮佛菩薩
是諸菩薩等
次佛應供養
016_0810_a_02L저 모든 자량은 한계가 없지만 지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저 자량은 능히 빠짐이 없지 않다고 설하니, 이 때문에 ‘비록 적은 분량이라 해도 응당 부처님과 보살에게 경례해야 한다고 설하나니’라고 하는 것이다.
016_0810_a_02L彼諸資糧無邊而智有邊是以說彼資糧不能無闕故言當說彼少分敬禮佛菩薩
【문】부처님께 예배해야 하는 것은 일체의 중생 중에서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떠한 의미에서 이 가운데 또한 보살을 예배해야 하는가?
016_0810_a_05L應禮佛以一切衆生中最勝故何義此中亦禮菩薩
【답】이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마땅히 공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발심(初發心) 보살부터 깨달음의 도량[覺場]에 이른 보살까지 모든 보살들을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보살에는 일곱 종류가 있다. 첫째는 초발심한 보살이며, 둘째는 바르게 수행하는 보살이며, 셋째는 무생인(無生忍)을 획득한 보살이며, 넷째는 관정(灌頂)3)한 보살이며, 다섯째는 일생소계(一生所繫) 보살이며, 여섯째는 최후 생애의 보살이며, 일곱째는 깨달음의 도량에 나아가는 보살이다. 이들 보살을 모든 부처님 다음으로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몸[身]ㆍ입[口]ㆍ뜻[意] 및 외적인 물건 등으로 그들을 공양해야 한다.
016_0810_a_06L是諸菩薩等次佛應供養故諸菩薩等從初發心乃至覺場皆應供養菩薩有七種初發心正修行得無生灌頂一生所繫最後生詣覺場此等菩薩於諸佛後次應供以身意及外物等而供養之
초발심이란 아직 지(地)를 얻지 못한 것이고,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란 7지(七地)까지이고, 무생인을 얻는다는 것은 제8지(第八地)에 머무는 것이며, 관정이란 제10지(第十地)4)에 머무는 것이다. 일생소계란 바야흐로 도솔타(兜率陀)5)에 들어가는 것이며, 최후의 생애란 도솔타 처소에 머무는 것이다. 깨달음의 도량에 나아가는 것이란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곱 종류의 보살 중에서 초발심 보살에게도 일체 중생은 모두 예경해야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이들이랴. 왜냐하면 깊은 마음이 너그럽고 크기 때문이며 여래의 교량(敎量)이기 때문이다.
016_0810_a_12L發心者未得地正修行者乃至七地得無生忍者住第八地灌頂者住第十地一生所繫者方入兜率陁最後生者兜率陁處住詣覺場者欲受用一切智智於七種菩薩中初發心菩薩一切衆生皆應禮敬何況餘者以故深心寬大故如來敎量故
초발심하는 보살은 보리심을 발할 때 시방의 부분에서 감소하는 바가 없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감소하는 바가 없고, 모든 중생에게서 감소하는 바가 없어서 보편적이고 원만한 자비로써 보리심을 발한다. 아직 제도되지 않은 중생은 내가 마땅히 그를 제도해야 하며, 아직 해탈하지 못한 자는 내가 마땅히 해탈시켜야 하며, 아직 소식(蘇息:蘇生)하지 않은 자는 내가 마땅히 소식시켜야 하며, 아직 적멸(寂滅)되지 않은 자는 내가 마땅히 적멸시켜야 하며,
016_0810_a_19L初發心菩薩發菩提心時於十方分無減諸佛土無減諸衆生無減以慈遍滿發菩提心若未度衆生我當度之解脫者我當解脫未蘇息者我當蘇未寂滅者我當寂滅
016_0810_b_02L성문에 상응하는 자는 내가 마땅히 성문승(聲聞乘)6) 중에 들어가게 해야 하며, 독각에 상응하는 자는 내가 마땅히 독각승(獨覺乘) 중에 들어가게 해야 하며, 대승에 상응하는 자는 내가 마땅히 대승(大乘) 중에 들어가게 해야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전부 적멸을 얻게 하고자 할 뿐이지 적은 부분의 중생을 적멸시키고자 하지 않으니, 이 깊은 마음이 너그럽고 크므로 일체의 중생은 모두 마땅히 예경해야 한다.
016_0810_a_24L應聲聞者我當令入聲聞乘中應獨覺者我當令入獨覺乘中應大乘者我當令入大乘之中欲令衆生悉得寂滅非爲寂滅少分衆生以是深心寬大故一切衆生皆應禮敬
어떠한 것이 여래의 교량(敎量)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가섭(迦葉)이여, 비유하면 신월(新月)엔 문득 예배를 해야 하지만 만월(滿月)에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가섭이여, 나를 믿는 자는 반드시 모든 보살들에게 예배하여 공경하여야 하지 여래에게만 예배하고 공경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로부터 여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 성문승 중에서도 또한 말한다.
016_0810_b_06L何者爲如來敎量世尊說迦葉譬如新月便應作禮爲滿月如是迦葉若信我者應當禮敬諸菩薩等非爲如來何以故從於菩薩出如來故又聲聞乘中亦說
그 법을 아는 자라면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응당 공양하고 공경하기를
범지(梵志)¹가 불[火]을 섬기듯이 하여야 한다.
016_0810_b_10L於彼知法者
若老若年少
應供養恭敬
如梵志事火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을 마땅히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해야 한다.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016_0810_b_12L以是故諸菩薩等次於佛後皆應供如偈說
부처님의 종자를 이어서 지닌 자는
적은 부분의 행이 수승하니
그러므로 모든 보살을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14L紹持佛種者
勝餘少分行
是故諸菩薩
次佛後供養
자애는 허공과 동등하여
널리 모든 중생에게 두루하니,
그러므로 최승자(最勝子)를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16L慈與虛空等
普遍諸衆生
是故最勝子
次佛後供養
모든 중생의 부류에 대하여
마치 자식 대하듯 크게 자비롭게 하니,
그러므로 이 불자(佛子)를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17L於諸衆生類
大悲猶如子
是故此佛子
次佛後供養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둘이 없음이 허공과 비슷하니,
그러므로 두려움이 없는 자를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18L悲心利衆生
無二似虛空
是故無畏者
次佛後供養
일체의 시기에 아버지처럼
모든 중생을 증장시키니,
그러므로 모든 보살을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20L一切時如父
增長諸衆生
是故諸菩薩
次佛後供養
마치 땅ㆍ물ㆍ불처럼
중생을 항상 수용하니,
그러므로 즐거움을 베푸는 자[施樂者]를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21L猶如地水火
衆生常受用
是故施樂者
次佛後供養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즐거움의 요인을 버리니,
그러므로 저 일체를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22L唯爲利衆生
捨離自樂因
是故彼一切
次佛後供養
부처님과 부처님의 후예가
모두 초심(初心)으로부터 나오나니,
그러므로 모든 보살을
부처님 다음 차례로 공양하라.
016_0810_b_24L佛及佛之餘
皆從初心出
是故諸菩薩
次佛後供養
016_0810_c_02L【문】존자(尊者)는 이미 자량의 가르침에 대한 연기(緣起)를 바르게 설명하였다. 이제 마땅히 자량의 체(體)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016_0810_c_02L尊者已正說資糧敎緣起今應說資糧體
【답】이미 보살의 어머니라면
또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나니,
반야바라밀은
깨달음의 첫 자량이다.
016_0810_c_04L旣爲菩薩母
亦爲諸佛母
般若波羅蜜
是覺初資糧
반야바라밀은 모든 보살의 어머니이므로, 보리의 첫 자량이다. 왜냐하면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모든 신체의 감각기관 중에서 안근(眼根)이 가장 수승하고, 모든 신체의 부분에서 머리가 가장 수승한 것처럼, 모든 바라밀(波羅蜜)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가장 수승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니, 반야바라밀이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첫 자량이 되는 것은 앞선 행[前行]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 중에서 믿음을 앞선 행으로 삼는 것처럼, 모든 바라밀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앞선 행인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016_0810_c_06L以般若波羅蜜是諸菩薩母故爲菩提初資糧何以故以最勝故如諸身根中眼根最勝諸身分中頭爲最勝諸波羅蜜中般若波羅蜜最勝亦如以般若波羅蜜最勝故爲初資糧又前行故如諸法中信爲前行諸波羅蜜中般若波羅蜜前行亦如是
저 다나(陀那:布施)를 가지고 보리에 회향하지 않으면 곧 다나바라밀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시라(尸羅:持戒) 등을 보리에 회향하지 않으면 또한 시라바라밀 등이 아니다. 보리에 회향하는 것은 곧 반야(般若:智慧)이다. 반야의 앞선 행을 말미암기 때문에 회향할 수 있다. 이렇게 앞선 행이므로 모든 바라밀 중에서 반야바라밀을 보리의 첫 자량으로 삼는다. 또 이 모든 바라밀은 3륜(三輪)의 청정한 인체(因體)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모든 바라밀의 3륜의 청정한 인체(因體)로 삼는다.
016_0810_c_13L彼陁那若不迴向菩提則非陁那波羅蜜如是尸羅等不迴向菩提亦非尸羅等波羅蜜迴向菩提卽是般若由般若前行故能迴向以是前行故諸波羅蜜中般若波羅蜜爲菩提初資糧又是諸波羅蜜三輪淨因體故以般若波羅蜜爲諸波羅蜜三輪淨因體
016_0811_a_02L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보리의 첫 자량으로 삼는다. 3륜이 청정하다는 것은 보살이 반야바라밀 중에서 보시를 행할 때에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취하는 것을 여의기 때문에 받는 자의 차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체의 처소에서 분별을 단절하기 때문에 보시의 과보를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법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모습이므로 이와 같이 보살은 3륜의 청정한 보시를 획득한다. 청정한 보시처럼 청정한 계(戒) 등도 또한 마찬가지다. 이 반야바라밀은 그 모든 바라밀의 3륜의 청정한 인체(因體)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리의 첫 자량으로 삼는다.
또 큰 과보[大果]이므로 반야바라밀의 큰 과보는 모든 바라밀보다 수승하니, 경전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016_0810_c_21L是故般若波羅蜜爲菩提初資三輪淨者菩薩於般若波羅蜜中行布施時不念自身以離取自身故不念受者差別以斷一切處分別故不念施果以諸法不來不出相故是菩薩得三輪淨施如淨施淨戒等亦如是以此般若波羅蜜是彼諸波羅蜜三輪淨因體故般若波羅蜜爲菩提初資糧又大果故般若波羅蜜大果勝諸波羅蜜如經說
보리심의 복덕과
섭수하는 법[攝受法]으로써
공(空)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면
가치의 수승함이 16분(分)이 된다.
016_0811_a_07L菩提心福德
及以攝受法
於空若信解
價勝十六分
비마라경(鞞摩羅經:維摩經) 가운데 큰 과보의 인연을 이 중에서 마땅히 설명하나니, 이것이 큰 과보이므로 반야바라밀을 보리의 첫 자량으로 삼는다.
016_0811_a_09L『鞞羅摩經』中大果因緣此中應說是大果故般若波羅蜜爲菩提初資糧
【문】어찌하여 반야바라밀이 보살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016_0811_a_11L何故般若波羅蜜得爲菩薩母
【답】능히 생하게 하기 때문이다. 방편에 포섭되는 반야는 모든 보살을 낳아서 위없는 보리를 추구하게 하지 성문과 독각을 추구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을 출생하는 인체(因體)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살의 어머니로 삼는다.
또 다섯 바라밀 중에 안치하기 때문이니, 명발라이파저(冥鉢囉膩波低)7)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명(冥)은 성품[性]이 되고 발라이파저는 읽음[誦]이 되니, 바로 이 성상(性相)이 마다(摩多)가 된다[마다는 번역하면 어머니가 된다. 자성론(字聲論) 중에서 마다의 글자는 명발라이파저의 언어 속에 나온다. 명은 마다의 자체 성품[體性]이고, 발라이파저는 마다의 뜻을 읽는 것이다. 발라이파저는 바르게 번역하면 안치하다가 된다. 그러므로 안치하다는 것으로써 어머니의 의미로 삼는다.]
016_0811_a_12L以能生故方便所攝般若生諸菩令求無上菩提不求聲聞獨覺是生佛體因故般若波羅蜜爲菩薩又置於五波羅蜜中故如言冥鉢囉膩波低冥爲性鉢囉膩波低爲卽此性相是爲摩多摩多翻爲母於字聲論中摩多字從冥鉢囉膩波低語中出冥是摩多體性鉢囉膩波低是誦摩多義鉢囉膩波低正翻爲置故以置爲母義
비유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낳으면 때로 상부(床敷)에 안치하기도 하고 혹은 지상(地上)에 안치하기도 하듯이, 반야바라밀도 또한 마찬가지다. 저 보리를 구하는 보살을 출생할 때 보시 등의 다섯 바라밀 중에 안치하나니, 보리를 구하는 보살을 안치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살의 어머니로 삼는다고 말한다.
016_0811_a_20L譬如母生子時或置牀敷置地上般若波羅蜜亦如是生彼求菩提菩薩時置於施等五波羅蜜中以能置求菩提菩薩故說般若波羅蜜爲菩薩母
016_0811_b_02L또 헤아리기[量] 때문이니, 망마니(茫摩泥)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망(茫)8)은 성품[性]이 되고 마니(摩泥)는 읽음[誦]이 된다. 바로 이 성상(性相), 이것이 마다(摩多)가 된다[자성론(字聲論) 중에서 마다의 글자는 또 망마니의 언어 속에서 나온다. 망(茫)은 또한 자체 성품이고, 마니는 그 의미를 읽는 것이다. 마니는 바르게 번역하면 헤아림이 되니, 이 때문에 헤아림으로써 어머니의 의미로 삼는다.] 비유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출생하고 나서 때에 따라 내 자식은 이것을 먹음으로써 몸이 증대하고 이것을 먹음으로써 몸이 감소한다고 주량(籌量; 헤아림)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다. 반야바라밀로써 스스로 그 몸을 헤아리면서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하고,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스스로 헤아리는 인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살의 어머니로 삼는다고 말한다.
016_0811_a_24L又以量故如言茫摩泥茫爲性摩泥爲誦卽此性相是爲摩多於字聲論中摩多字又從茫摩泥語中出茫亦是體性摩泥是誦其義泥正翻爲量故以量爲母義譬如母生子已隨時籌如是我子以此食故身增以此故損減菩薩亦如是以般若波羅蜜自量其身我應如是布施我應如是持戒等以是自量因緣故說般若波羅蜜爲菩薩母
또 짐량(斟量)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물건을 측량할 때 발라살타(鉢邏薩他:突嚧拏의 16분의 1)가 있고, 아택가(阿宅迦:돌로나의 4분의 1)가 있고, 돌로나(突嚧拏:1斛)가 있고, 거리저(佉梨底:돌로나의 16배) 등[이곳의 합(合)ㆍ승(升)ㆍ두(斗)ㆍ곡(斛)이라는 부류와 같다.]이 있어서 분량을 짐작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다. 즉 이것은 초발심이고, 이것은 수행이고, 이것은 득인(得忍)이라는 등의 짐량하는 인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살의 어머니로 삼는다고 말한다.
또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염송[誦]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러 경전에서 모체로 짓는 것을 염송이라 이름한다. 그들 경전 중에 모든 불국토에 두루 퍼진 보살의 명칭이 있는데 비마라길리제(毘摩羅吉利帝)9)라고 이름하는데[예전에 유마힐(維摩詰)이라고 한 것은 바르지 않다], 가타(伽陀:偈頌)를 설하여 말한다.
016_0811_b_09L又以斟量故譬如量物有鉢邏薩他有阿宅迦有突嚧挐佉梨底等如此閒合斗斛之類斟量諸菩薩亦如是此初發心此修行此得忍等斟量因緣故說般若波羅蜜爲菩薩又以修多羅中誦故所謂於諸經中作母名誦彼等經中有名稱遍諸佛國菩薩名毘摩羅吉利帝說伽他舊云維摩詰者不正
반야바라밀은
보살 인자(仁者)의 어머니이다.
훌륭한 방편을 아버지로 삼고
자비를 여식으로 삼는다.
016_0811_b_17L般若波羅蜜
菩薩仁者母
善方便爲父
慈悲以爲女
다시 그 밖의 경전에서도 이와 같이 염송한다. 수다라로써 헤아리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보살의 어머니로 삼는다고 말한다.
016_0811_b_19L復有餘經亦如是誦以修多羅量故說般若波羅蜜爲菩薩母
【문】어찌하여 반야바라밀은 또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인가?
016_0811_b_21L何故般若波羅蜜亦爲諸佛母
016_0811_c_02L【답】장애가 없는 지혜를 출생하고 현시(顯示)하기 때문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이라는 아함(阿含)을 말미암기 때문에 번뇌를 이미 다했고 마땅히 다할 것이며 지금 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출생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로 삼는다. 장애가 없는 지혜를 현시한다는 것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장애가 없는 지혜를 현시하는 것이며, 이렇게 장애가 없는 지혜를 현시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어머니로 삼는다. 여기에 수로가(輸盧迦:偈頌)가 있다.
016_0811_b_22L以出生及顯示無障碍智故過去未來現在諸佛由般若波羅蜜阿含煩惱已盡當盡今盡以是出生故般若波羅蜜爲諸佛母顯示無障碍智者以過去未來現在諸佛世尊顯示無障碍智皆般若波羅蜜中顯是顯示無障碍智故諸佛亦以般若波羅蜜爲母此中有輸盧迦
큰 자비에 상응하는
반야바라밀을 말미암아서
무위(無爲)의 험난한 언덕을
불자(佛子)는 능히 넘을 수 있어서
016_0811_c_07L由大悲相應
般若波羅蜜
於無爲險岸
佛子能超過
무등(無等)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포섭하고
지도(智度)10)를 어머니로 삼기 때문에
대인(大人)은 능히 이와 같으며
016_0811_c_09L得到無等覺
利攝諸衆生
智度爲母故
大人能如是
지도(智度)의 획득을 말미암기 때문에
비로소 부처님의 본체[佛體]를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수승한 선인[勝仙: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016_0811_c_10L由得智度故
乃得成佛體
故爲諸佛母
勝仙之所說
어찌하여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가? 성문이나 독각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위[上]를 더 알아야 할 바가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이 지혜가 일체의 저 언덕[彼岸]에 도달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이 반야바라밀 외에 수승한 것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삼세(三世)에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며, 허공이 가없이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수승한 인연은 반야바라밀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으며,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016_0811_c_11L何故此名般若波羅蜜以不與聲聞獨覺共故名般若波羅蜜於上更無所應知故名般若波羅蜜此智到一切彼岸故名般若波羅蜜此般若波羅蜜餘無能勝故名般若波羅蜜世平等故名般若波羅蜜虛空無邊平等故名般若波羅蜜如是等勝因如『般若波羅蜜經』中說故名般若波羅蜜
【문】이미 보리의 첫 자량을 대략 설명했으니, 두 번째의 자량을 이제 마땅히 설명해야 한다.
016_0811_c_20L已略說菩提初資糧第二資糧今應說
【답】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이 다섯 가지 외에는
모두 지도(智度)를 말미암기 때문에
바라밀에 포섭된다.
016_0811_c_22L施戒忍進定
及此五之餘
皆由智度故
波羅蜜所攝
016_0812_a_02L이 중에서 다나바라밀(陀那波羅蜜)이 두 번째 보리의 자량이 되니, 반야의 앞선 행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보리를 이루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니, 이 때문에 보시를 두 번째 자량으로 삼는다. 그 중에서 타인의 몸과 마음에 즐거움을 생기게 하므로 이름하여 보시라고 하지 괴로움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이다.
016_0811_c_24L此中陁那波羅蜜爲第二菩提資糧以般若前行故菩薩爲菩提而行布是故施爲第二資糧於中生他身意樂因名布施非爲作苦彼有二種謂財施法施
재시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공식(共識)과 불공식(不共識)이다. 공식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안[內]과 밖[外]이다. 자신의 지절(支節; 사지)을 보시하거나 몸 전체를 보시하는 것, 이것은 내시(內施)가 된다. 남자와 여자, 아내와 첩, 두 다리[二足], 네 다리[四足] 등을 보시하는 것, 이것은 외시(外施)가 된다. 불공식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가식(可食)과 불가식(不可食)이다. 이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몸 안에 수용하는 반식(飯食) 등의 물건을 보시하는 것, 이것은 먹을 수 있는 것[可食]이 된다.
016_0812_a_06L財施亦有二種謂共識不共識共識亦有二種謂內及外施自身支節若全身施是爲內施施男女妻妾及二足四足等是爲外不共識亦有二種謂可食不可食此有多種若施身內受用飮食等物是爲可食
몸 밖에 수용하는 향과 만[香鬘]에 포섭되는 금ㆍ은ㆍ진귀한 보배ㆍ의복ㆍ땅과 전답ㆍ재물ㆍ동산과 연못ㆍ유원지 등을 보시하는 것, 이것은 먹을 수 없는 것[不可食]이 된다. 그러나 수용할 수는 있다.
법시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다. 법시로 인하여 유전(流轉)[예전에 나고 죽음이라고 말한 것은 바른 번역의 명칭이 아니라서 이제 유전이라고 고친다. 이후에 모든 유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 의미이다] 중에서 애호할 만한 신근(身根)의 경계를 낳는 것, 이것은 세간이 된다. 법시로 인한 과보가 유전을 초월해 벗어나는 것, 이것은 출세간이 된다.
016_0812_a_12L若施身外受用香鬘所攝金銀珍寶衣服土田財物園池遊戲處等是爲不可食然可受用法施有二種謂世閒出世閒若因法施流轉中舊云生死者非正翻名今改爲流轉也已後諸云流轉者皆是此義生可愛身根境界是爲世閒
그 재시와 법시에는 각각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유착(有着)과 무착(無着)이다. 자신을 위하거나 자생(資生)을 위하거나 수승한 과보를 위해서 상속을 희망하여 재물이나 법을 보시하면, 이것은 집착이 있는 것[有着]이 된다. 혹은 일체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하거나 혹은 장애가 없는 지혜를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집착이 없는 것[無着]이 된다. 그밖에 다시 두려움이 없는 보시[無畏施] 등은 또한 재시 속에 수순해 들어간다. 저 두 가지 보시의 과보 및 여분의 기[餘氣][진액(津液)11)을 말한다.]는 자세하게 대승 경전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여기에서는 마땅히 요약하여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12_a_17L若因法施果報越度流轉是爲出世閒彼財法施各有二種謂有著無著若爲自身若爲資生若爲勝果悕望相續以財法施是爲有著若爲利益安樂一切衆生若爲無障碍智是爲無著其餘更有無畏施等亦隨順入財施彼二種施果及餘氣謂津液也具如大乘經說此中當略說偈
016_0812_b_02L반식(飯食)과 피복(被服)은
필요에 따라서 모두 보시하며
또한 화만(花鬘)ㆍ등(燈)과
말향(末香)ㆍ음악(音樂)을 보시한다.
016_0812_b_02L飮食及被服
隨須皆布施
亦施花鬘燈
末香與音樂
혹은 모든 맛있는 것과
약물(藥物) 및 의침(猗枕)과
질병을 요양하는 데 필요한 것과
아울러 의료인과 급시(給侍; 시중)를 보시한다.
016_0812_b_04L或施諸美味
藥物及猗枕
養病之所須
幷醫人給侍
남녀와 아내와 첩
노비 및 창고와
장식한 모든 채녀(婇女)를
필요에 따라서 보두 보시한다.
016_0812_b_05L男女與妻妾
奴婢及倉庫
莊飾諸婇女
隨須皆布施
소유한 모든 보물과
갖가지 장엄구(莊嚴具)와
코끼리ㆍ말ㆍ수레와 타는 것 등과
미묘한 물건을 남김없이 보시한다.
016_0812_b_06L所有諸寶物
種種莊嚴具
象馬車乘等
妙物盡施之
원림(園林)12)의 수도하는 처소와
연못과 우물ㆍ집회당(集會堂)과
토전(土田)과 아울러 잡다한 물건과
객사(客舍) 등을 모두 보시한다.
016_0812_b_08L園林修道處
池井集會堂
土田幷雜物
客舍等皆施
혹은 두 다리[二足]와 네 다리[四足]
혹은 다시 하나의 주저(洲渚; 모래톱)와
촌락과 국도(國都)와
그리고 왕의 영역을 전부 보시한다.
016_0812_b_09L若二足四足
若復一洲渚
村落與國都
及王境悉施
완호(玩好)13)한 물건을 보시하여
희망하는 자를 이롭고 즐겁게 하며
모든 중생의 의지가 되어서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두려움 없음을 보시한다.
016_0812_b_10L施所玩好物
利樂悕須者
爲諸衆生依
怖者施無畏
그 버리기 어려운
손ㆍ발ㆍ눈ㆍ귀ㆍ코를 보시하고
또한 심장과 머리를 보시하며
온몸을 다 능히 버린다.
016_0812_b_12L施其所難捨
手足眼耳鼻
亦施心與頭
擧身悉能捨
보시를 수행할 때에는
항상 받는 자의 입장에서
마땅히 복전(福田)의 생각을 내고
또한 친한 권속처럼 대하여야 한다.
016_0812_b_13L修行布施時
常於受者所
應生福田想
亦如善眷屬
보시하는 모든 과보에
선한 취집(聚集)을 구족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회향하여
부처와 정토를 성취한다.
016_0812_b_14L布施諸果報
具足善聚集
迴向爲自他
成佛及淨土
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올바로 불체(佛體)에 회향하니
이 보살의 다나(陀那)를
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016_0812_b_16L菩薩所行施
正迴向佛體
此菩薩陁那
得名波羅蜜
이 언덕이든 저 언덕이든
능히 설하는 자가 없지만
보시의 과보가 피안에 도달하면
보시의 저 언덕[施彼岸]이라고 말한다.
016_0812_b_17L若彼若此岸
亦無能說者
施果到於彼
說爲施彼岸
이제 시주(施主)의 차별을 말한다.
016_0812_b_18L今說施主差別
애욕의 과보를 탐내지 않고
자비롭기 때문에 삼륜(三輪)이 청정하니,
정각(正覺)은 저 보시를 말하여
이것이 보리를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016_0812_b_19L不貪於愛果
悲故三輪淨
正覺說彼施
是爲求菩提
나는 이미 이 일을 지었다고 하고
바르게 짓고 마땅히 짓겠다고 하면서
이와 같이 베풀었다고 한다면
용임(傭賃:품삯)이지 보시가 아니다.
016_0812_b_21L我已作此事
正作當亦作
若作如是捨
傭賃非布施
보시의 과보가 증대되기를 탐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즉각 능히 희사하는 것을
식리인(息利人:이자나 배당금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니,
지혜로운 자는 시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016_0812_b_22L貪增施果故
隨須卽能捨
說爲息利人
智念非施主
증익되는 과보를 탐내지 않고
오직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것을 진정한 시주라고 하며
나머지는 모두 상업적[商販]이다.
016_0812_b_23L不貪增益果
唯以悲心施
此名眞施主
餘皆是商販
016_0812_c_02L큰 구름이 두루 비를 뿌리는 것처럼
모든 곳에서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것을 큰 시주라고 이름하며
나머지는 모두 적은 부분일 뿐이다.
016_0812_c_02L如大雲遍雨
諸處等心施
此名大施主
餘皆是少分
보시 및 보시의 과보는
연민으로 필요한 자에게 주나니,
시주는 뭇 사람에게
마치 그 부모와 같다.
016_0812_c_03L施及施果報
哀愍與須者
施主於衆人
猶如其父母
보시하는 물건과 받는 자
및 보시하는 자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항상 기쁘게 보시하는,
이것을 이름하여 시주라고 한다.
016_0812_c_04L不念所施物
受者及施者
而常樂布施
此名爲施主
만약 부처님과
보리와 보살을 분별하지 않고서
보리를 이루기 위하여 보시하면
그는 마땅히 속히 성불할 것이다.
016_0812_c_06L若不分別佛
菩提與菩薩
而爲菩提施
彼當速成佛
【문】이미 다나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이제는 마땅히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을 설명해야 한다.
016_0812_c_07L已解釋陁那波羅蜜今應說尸羅波羅蜜
【답】바라밀의 의미는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시라(尸羅)의 의미를 이제 설명해야겠다. 시라이기 때문에 시라라고 말한다. 시라라고 말하는 것은 익혀서 가까이하는 것[習近]을 이르는데, 이것이 체상(體相)이다. 또 본성(本性)의 의미이니, 마치 세간에 즐거운 계[樂戒]나 괴로운 계[苦戒] 등이 있는 것과 같다. 또 청량(淸凉)한 의미이니, 후회하지 않는 인(因)이 되어서 마음의 뜨거운 걱정과 고뇌를 여의기 때문이다. 또 안은(安隱)의 의미이니, 능히 다른 세상에서 즐거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안정(安靜)의 의미이니, 지관(止觀)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또 적멸한 의미이니, 열반의 즐거운 원인을 얻기 때문이다. 또 단엄(端嚴)의 의미이니, 장식하기 때문이다. 또 정결(淨潔)의 의미이니, 나쁜 계[惡戒]의 더러움을 씻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두수(頭首)의 의미이니, 무리 속에 들어가서도 겁약(怯弱)이 없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찬탄(讚歎)의 의미이니, 명칭을 능히 낳기 때문이다.
016_0812_c_09L波羅蜜義如前解釋尸羅義今當說以尸羅故說爲尸羅言尸羅者謂習近也此是體相又本性義如世閒有樂戒苦戒等又淸涼義不悔因離心熱憂惱故又安隱義爲他世樂因故又安靜義能建立止觀故又寂滅義得涅槃樂因故又端嚴義以能莊飾故又淨潔義能洗惡戒垢故又頭首義能爲入衆無怯弱因故又讚歎義能生名稱故
016_0813_a_02L이 계(戒)는 몸ㆍ입ㆍ마음의 선한 행위가 굴러서 생겨난 것이다. 그 가운데 생명을 살해하는 것ㆍ주지 않는데 취하는 것[不與取]ㆍ음욕의 삿된 행위[欲邪行] 등을 멀리 여읜 것, 이 세 가지는 신계(身戒)이다. 망령된 말[妄語]ㆍ파괴하는 말[破壞語]ㆍ추악한 말[麤惡語]ㆍ잡되게 희롱하는 말[雜戱語] 등을 멀리 여읜 것, 이 네 가지는 구계(口戒)이다. 탐욕[貪]ㆍ성냄[瞋]ㆍ삿된 견해[邪見] 등을 멀리 여읜 것, 이 세 가지는 의계(意戒)이다. 몸ㆍ입ㆍ마음의 선한 행위가 굴러서 생겨난 이와 같은 열 가지 계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서 생겨난 열 가지 나쁜 행위에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그 열 가지의 악한 행위를 하(下)ㆍ중(中)ㆍ상(上)으로 항상 가까이하여 습득하기 때문에 지옥ㆍ축생ㆍ염마(閻摩)14)의 세계 등으로 떨어진다. 앞에서 헤아린 열 가지의 선한 행위에 대한 계는 깨달음의 분수[覺分]와 상응하지 않는다면 하ㆍ중ㆍ상으로 항상 가까이하여 익히기 때문에 복(福)의 상상(上上)의 차별에 따라 마땅히 하늘나라와 인간의 차별을 얻을 것이다. 깨달음의 분수와 상응하는 열 가지 선한 행위의 계는 상상(上上)으로 항상 익히고 가까이해서 자주 행하므로 마땅히 성문지(聲聞地) 및 보살지(菩薩地) 중에 굴러서 수승한 차별을 얻을 것이다.
016_0812_c_18L此戒是意善行所轉生於中遠離殺生不與取欲邪行等是三種身戒遠離妄語破壞語麤惡語雜戲語等是四種口戒遠離貪邪見等是三種意如是等身意善行所轉生十種與貪癡所生十種惡行爲對治彼十種惡行上常習近故墮於地獄畜生閻摩世等如前數十種善行戒若不與覺分相應上常習近故隨福上上差別當得天人差別若與覺分相應十種善行戒上上常習近多作故當得聲聞地及菩薩地中轉勝差別
또 이 보살계(菩薩戒)의 모임에는 다함이 없는 예순여섯 종류가 있는데, 무진의경(無盡意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요약하여 말하면 두 가지의 계가 있으니, 이른바 평등종시계(平等種蒔戒)와 불평등종시계(不平等種蒔戒)이다. 평등종시계란 이 선한 몸ㆍ입ㆍ마음의 행위를 쌓아 모음으로써 세세생생 혹은 영역[界], 혹은 부유함과 즐거움, 혹은 성문과 독각, 혹은 상보(相報), 혹은 정토, 혹은 성숙한 중생, 혹은 정변각(正遍覺) 등의 종자를 이식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두 말하여 평등하게 종자를 이식하는 계[平等種蒔戒]라고 한다. 이것과 서로 위배되는 것을 평등하게 종자를 이식하지 않는 계[不平等種蒔戒]라고 한다.
016_0813_a_08L又此菩薩戒聚有六十五種無盡如『無盡意經』中說當知略說有二種戒謂平等種蒔戒不平等種蒔戒平等種蒔戒者以此善身意積聚故於生生中種蒔若界富樂若聲聞獨覺若相報若淨土成熟衆生若正遍覺等彼皆說名平等種蒔戒與此相違名不平等種蒔
다시 두 가지의 계가 있으니, 이른바 유작계(有作戒)와 무작계(無作戒)이다. 작위 하는 가운데 작위 하는 바가 있는 것을 작위가 있는 계[有作戒]라고 하며, 이것과 서로 어긋나는 것을 작위가 없는 계[無作戒]라고 한다.
016_0813_a_16L復有二種戒謂有作戒無作戒於有作中有所作者名有作戒與此相違名無作戒
016_0813_b_02L다시 아홉 가지의 계가 있으니, 범부계(凡夫戒)ㆍ외도오통계(外道五通戒)ㆍ인계(人戒)ㆍ욕계천자계(欲界天子戒)ㆍ색계(色界)천자계ㆍ무색계(無色界)천자계ㆍ모든 학(學)과 무학(無學)15)의 성문계(聲聞戒)ㆍ독각계(獨覺戒)ㆍ보살계(菩薩戒)이다. 범부계는 태어나는 처소에 들어가므로 다한다. 외도오통계는 신통이 물러나므로 다한다. 인계는 열 가지 선한 업도[十善業道]를 다하므로 다한다. 욕계천자계는 복이 다하므로 다한다. 색계천자계는 선나(禪那)가 다하므로 다한다. 무색계천자계는 삼마발제(三摩鉢帝)16)가 다하므로 다한다. 모든 학과 무학의 성문계는 구경(究竟) 열반하므로 다하고, 독각계는 큰 자비를 결여하므로 다한다. 그러나 보살계는 다함이 있지 않으니, 이 계가 능히 모든 계를 드러내서 밝히기 때문이며, 종자가 상속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이 상속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여래의 계[如來戒]가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보살계를 다함이 없다[無盡]고 말한다. 모든 보살계는 보리에 회향하기 때문에 계바라밀(戒波羅蜜)이라고 말하는데, 이 가운데 수로가(輸盧迦)가 있다.
016_0813_a_18L復有九種戒謂凡夫外道五通戒人戒欲界天子戒界天子戒無色界天子戒諸學無學聲聞戒獨覺戒菩薩戒凡夫戒者生處故盡外道五通戒者神通退故人戒者十善業道盡故盡欲界天子戒者福盡故盡色界天子戒者那盡故盡無色界天子戒者三摩鉢帝盡故盡諸學無學聲聞戒者究竟涅槃故盡獨覺戒者闕大悲故盡薩戒者則無有盡以此戒能顯明諸戒故種子相續無盡故菩薩相續無盡故如來戒無盡故以此因緣菩薩戒者說名無盡諸菩薩戒迴向菩提說名戒波羅蜜此中有輸盧迦
마치 아버지가 공력(功力)이 있는 아들을 애호하듯이
또한 스스로의 몸이 수명을 애호하듯이,
출리(出離)를 애호하는 계도 마찬가지이니
큰마음이 굳건한 자[大心健者]가 애호하는 바이다.
016_0813_b_09L猶如父愛功力子
亦如自身愛壽命
出離有愛戒亦爾
大心健者之所愛
이 계는 모니(牟尼)가 익혀서 가까이 한 후에
욕망을 해탈하고 애욕을 여의었으니
까마귀와 비슷한 범부는 버리지만
지혜로운 자는 항상 이 계를 애호해야 한다.
016_0813_b_11L此戒牟尼習近已
解脫於欲離有愛
似烏凡人所棄捨
智者常當愛此戒
이 계는 자신과 타인을 이익 되게 하고
몸을 단정히 장엄해 근심과 결핍을 여의게 해서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수승한 장엄이니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이 계를 애호해야 한다.
016_0813_b_13L此戒利益於自他
令身端嚴離憂乏
此世他世勝莊嚴
是戒智者當所愛
이 계는 타인의 힘을 말미암지 않고
얻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구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 자신의 힘으로 인하여 그것을 얻기에
그러므로 상인(上人)은 이 계를 애호한다.
016_0813_b_15L此戒不由於他力
非不可得非乞求
皆因自力而得之
是故上人愛此戒
재물과 국경(國境), 아울러 토지와
자신의 살갗과 살 및 머리를
모두 능히 버려도 계를 버리지 않으니
저 수승한 보리를 청정케 하기 위함이다.
016_0813_b_17L財物國境幷土地
自身肌肉及以頭
皆能捨之不捨戒
爲欲淨彼勝菩提
가령 하늘나라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설령 지상에서 하늘로 승천하여도
더러움을 여의고 물듦이 없는 경지를 채우기 위하여
응당 결정해서 이동하지 말 것이다.
016_0813_b_19L假使從天墜於地
設令自地昇於天
爲滿離垢無染地
應當決定不移動
이미 계의 방편을 만족하면
이때 바로 제2지(第二地:離垢地)를 얻으며
이미 더러움을 여읜 청정지[離垢淸淨地]를 얻으면
이때에 마음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016_0813_b_21L若已滿足戒方便
此時卽得第二地
旣得離垢淸淨地
是時成就心所欲
다시 하늘나라ㆍ인간 세계ㆍ아수라의 세계와
축생 중에서 교화해야 할 자는
교화하는 방편을 잘 알고 나서
생각에 따라 그에게 가서 이롭게 한다.
016_0813_b_23L若復天人修羅世
及畜生中可化者
善知敎化方便已
隨念往彼利益之
016_0813_c_02L혹은 보시로써 중생을 거두고
혹은 애어(愛語)로 그의 마음에 들어가며
혹은 다시 그에게 안온한 이로움을 주고
혹은 일을 함께하며 그 힘을 돕는다.
016_0813_c_02L或以布施攝衆生
或以愛語入其意
或復與其安隱利
或與同事助其力
혹은 사람 속에 있으면서 그 주인이 되고
혹은 하늘나라 무리에 기거하면서 자재하며
각각의 방편으로 그를 인도하여
전부 마땅히 백법(白法:선한 법, 바른 법)에 안치시키네.
016_0813_c_04L或在人中爲其主
或居天衆而自在
彼彼方便引導之
悉當安置於白法
참다운 계의 신통을 구족하므로
문득 큰 바다를 마르게 하고
세간이 다할 때 불길이 더욱 치성하여도
찰나에 전부 소멸시킬 수 있네.
016_0813_c_06L具足實戒神通故
便能乾竭於大海
世閒盡時火增盛
於剎那頃悉能滅
세간의 갖가지 고뇌를 관찰하건대
고뇌로 병이 생기는 것은 친한 이를 여읜 탓이니
지혜로운 자에게는 계에 통달한 방편이 있어
세간의 친한 의지가 되어 수승한 도를 보여준다.
016_0813_c_08L觀於世閒種種惱
惱而生病由離親
智者有戒通方便
爲世親依示勝道
【문】이미 시라바라밀을 해설하였다. 이제는 마땅히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설명해야 한다.
016_0813_c_10L已解釋尸羅波羅蜜今應說羼提波羅蜜
【답】이 가운데 찬제(羼提:忍辱)란 몸이나 마음으로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하여도 그 의지로 인내하여 감당함으로서 교만하지도 않고 하열하지도 않아 마음에 물듦과 혼탁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요약하여 찬제를 설명한다고 한다. 만약 자유롭게 설명한다면 세 가지로 시설할 수 있으니, 이른바 신주지(身住持)ㆍ심주지(心住持)ㆍ법주지(法住持)이다. 그 가운데 신주지의 인욕[身住持忍]이란 이른바 몸으로 조우하는 괴로움이다. 가령 외적으로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의 애호하지 않는 감촉이 낳은 몸의 괴로움을 인내하고 감당하며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신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016_0813_c_12L此中羼提者若身若心受諸苦樂其志堪忍不高不下心無染此名略說羼提若自在說則施設爲三謂身住持心住持法住持於中身住持忍者謂身所遭苦若外有心無心不愛之觸所生身苦堪忍不計此名身住持忍
외적으로 낳은 것이란 이른바 음식[食]의 인연으로 인해 공포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고, 또 모기[蚊]ㆍ등에[虻]ㆍ뱀[蛇]ㆍ호랑이ㆍ사자 등의 두 다리[二足]ㆍ네 다리[四足]ㆍ여러 다리[多足]가 있는 모든 마음이 있는 생물[有心物]이 한량없는 인연으로 몸을 핍박하여 고뇌하게 하거나 혹은 다시 찾아와서 손ㆍ발ㆍ귀ㆍ코ㆍ머리ㆍ눈ㆍ지절(支節)17)을 구걸하면서 그걸 절단하는 것이다. 이 끔찍한 일에 대하여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또한 요동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을 신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016_0813_c_18L外所生者謂以食因緣故起怖及蚊蝱師子等二足四足多足諸有心物無量因緣逼惱於身或復來乞手支節而割截之於此惡事心無悶亂亦無動異此名身住持忍
016_0814_a_02L또 폭풍ㆍ치성한 태양ㆍ춥고 더움ㆍ비와 우박이 공격하여 접촉하는 인연으로 모든 마음이 없는 사물[無心物]이 찾아와서 핍박하여 고뇌하게 할 때 몸 전체가 괴로움으로 절실한데도 능히 안온하게 감수하는 것 또한 인욕이라고 한다. 또 몸 안에서 일어나는 영역[界]이 요동하는 인연으로 중풍[風]ㆍ황달[黃]ㆍ가래끓음[痰]ㆍ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생기는 사백네 가지 질병이 극심해서 몸을 괴롭히거나 핍박하여 고뇌하게 할 때 인내하여 헤아리지 않는 것도 또한 신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016_0813_c_23L又暴風盛日寒熱雨雹擊觸因緣諸無心物來逼惱時遍身苦切而能安受此亦名忍又內身所起界動因緣故風黃痰癊及起所生四百四病極爲身苦於逼惱時能忍不計亦名身住持忍
이 가운데 심주지의 인욕[心住持忍]이란 욕하고 꾸짖음[罵詈]ㆍ성내고 혐오함[瞋嫌]ㆍ책망함[呵責]ㆍ훼방함[毁謗]ㆍ기세를 꺾어 욕보임[挫辱]ㆍ기만[欺誑] 등 애호하지 않는 말이 와서 핍박하여 고뇌하게 할 때 그 마음이 요동치지 않아서 혼탁하여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심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또 세간의 법에 접촉되는 여덟 가지, 이른바 이익을 얻음ㆍ이익을 잃음ㆍ좋은 명예ㆍ나쁜 명예ㆍ기만ㆍ칭찬ㆍ괴로움ㆍ즐거움 속에서 마음이 교만하거나 비굴함이 없이 동요하지 않음이 산(山)과 같은 것을 심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또 수면[眠]에 따르는 성냄을 단절하기 때문에 살해하는 마음이 없고, 한 맺히는 마음이 없고, 투쟁하는 마음이 없고, 소송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을 보호하며 타인을 보호하고, 중생 속에서 자비로운 마음이 상응하고, 자비와 함께 행하여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항상 베푸는 마음을 갖는 것들도 또한 심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016_0814_a_05L於中心住持忍者若有罵詈瞋嫌毀謗挫辱欺誑等不愛語道來逼惱時其心不動亦無濁亂此名心住持忍又八種世法所觸謂得利失利好名惡名樂中心無高下動如山是名心住持忍又斷順眠瞋無殺害心無結恨心無鬪諍心訴訟心自護護他於衆生中慈心相與悲共行起歡喜意恒作捨心等亦名心住持忍
이 가운데 법주지의 인욕[法住持忍]이란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밖[外]이란 이른바 꾸짖어 욕함[罵詈]ㆍ살해(殺害) 등이다. 꾸짖어 욕함은 소리[聲]와 글자[字]가 화합해서 동시에 흩어지지 않으니, 찰나이기 때문이며, 글자가 공(空)하기 때문이며, 소리가 메아리 같기 때문이라서 차례로 상응하는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중에는 꾸짖어 욕하는 일이 있지 않으며, 다만 모든 그 밖의 범부가 허망하게 분별하여 성내고 분노하는 것이다. 만약 글자와 소리의 자성(自性)의 뜻 속에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면, 마음이 곧 수순하여 서로 위배되지 않고 평등하게 인욕하며 감수한다. 이것을 법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또 살해하는 자[殺害者]의 경우에 대해서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016_0814_a_15L於中法住持忍者於內於外如實觀察故外者謂罵詈殺害等罵詈者聲字和合同時不散以剎那故字空故聲如響故不可說次第相應義此中無有罵詈但諸餘凡夫虛妄分別而生瞋怒若字與聲自性義中知不可得心則隨順不相違背平等忍受此名法住持忍又於殺害者所當作是念
016_0814_b_02L‘몸은 해치는 자가 아니다. 몸에 만약 마음이 없으면 곧 초목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 등과 같기 때문이다. 마음도 또한 해치는 자가 아니니, 마음은 색(色)이 아니라서 접촉하여 장애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일의(第一義) 중에서는 살해하는 자가 없다.’
이렇게 관찰할 때 살해를 보지 못하는지라 능히 그것을 감당하여 인욕할 수 있다. 이것을 법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안[內]이란 안의 법[內法]을 관찰할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016_0814_a_23L身非害者身若無心則如草壁影等故心亦非害以心非色無所觸碍故於第一義中無殺害者作是觀時不見殺害能忍之此名法住持忍內者謂觀內法時作如是念
‘색(色)은 포말의 모임[聚沫]처럼 인연 따라 일어나니, 동작이 없기 때문이고, 스스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고, 공하기 때문이고, 나와 내 것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수(受)는 거품[泡] 같고, 상(想)은 아지랑이[陽焰] 같고, 행(行)은 파초(芭蕉) 같고, 식(識)은 환상[幻]과 같아서18) 인연 따라 일어나니, 동작이 없기 때문이고, 스스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고, 찰나에 생겼다가 소멸하기 때문이고, 공하기 때문이고, 나와 내 것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색은 ‘나’가 아니고, 색은 내 것이 아니다. 이처럼 수ㆍ상ㆍ행ㆍ식도 마찬가지이니, 식은 ‘나’가 아니고 식은 내 것이 아니다. 이들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겨나고, 인연으로부터 생겨나면 자성의 생함이 없으니, 자성의 생함이 없으면 능히 해치는 자가 없다.’
016_0814_b_05L色如聚沫從緣而起無動作故不自生故空故離我我所受如泡想如陽焰行如芭蕉識如從緣而起無動作故不自生故那生滅故空故離我我所故於中色非我色非我所如是受識非我識非我所此等諸法從緣而生從緣生則自性無生若自性無生則無能害者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모든 법의 자성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을 법주지의 인욕이라고 한다.
몸[身]과 마음[心]과 법[法] 중에서 자성을 관찰할 때 곧 무생인(無生忍)을 수순하니, 이것을 요약하여 찬제바라밀을 설명한다고 한다.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자세히 말하는 바와 같으니, 이 가운데 성자(聖者)의 게송이 있다.
016_0814_b_13L如是觀時若內若外諸法自性皆不可得此名法住持忍若於心法中作自性觀時卽是順無生此名略說羼提波羅蜜如修多羅中具說此中有聖者頌
원수진 자[怨]와 친한 이[親]와 중간의 사람[中人]을
자비로운 생각으로 항상 평등해서
성내는 요인이 오히려 있지 않으니
어떻게 중생을 성나게 하랴.
016_0814_b_17L怨親及中人
悲念常平等
瞋因尚無有
何得瞋衆生
선함을 배우고 익혀 항상 자애롭고
중생을 자기 자체와 동일시하여
평등하여 둘이 있지 않으니
어떻게 중생을 분노하게 하랴.
016_0814_b_19L善修習常慈
衆生同己體
平等無有二
云何怒衆生
마음은 항상 성냄을 버려서 여의고
사랑과 기쁨을 많이 생하여
굳건한 자는 이미 장애가 없으니
어떻게 세상과 어긋나리.
016_0814_b_20L心常捨離瞋
多生於愛喜
健者旣無碍
云何與世違
모든 중생의 처소에서
항상 이롭게 하고 돕기를 구하니
어떻게 성냄을 일으켜
중생에게 해악을 가할 수 있으랴.
016_0814_b_21L於諸衆生所
常求作利祐
云何無瞋恚
得加衆生惡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접촉하여도
그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비유하면 입으로 산을 불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응당 그는 인(忍)을 얻었음을 알아야 한다.
016_0814_b_23L世閒八法觸
其心不動搖
譬如口吹山
應知彼得忍
깊은 마음으로 모든 더러움을 여의어
장애되는 일도 능히 오염시키지 못하는 것이
진흙으로 허공을 칠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그는 인을 얻었음을 알아야 한다.
016_0814_b_24L深心離諸垢
碍事不能污
如泥泥虛空
應知彼得忍
016_0814_c_02L몸에 애착하는 바가 없고
목숨에 대해서도 또한 탐내지 않으며
온갖 원한도 모두
그 상속하는 의지를 움직일 수 없다.
016_0814_c_02L於身無所愛
於命亦不貪
諸怨悉不能
動其相續志
사랑스럽지 않은 소리에 대해서도
마음이 안온한 것이 메아리 같고
모든 언어도 또한 환상과 같다면
인욕하는 마음이 문득 손[手]에 있으리.
016_0814_c_04L於非可愛聲
安心猶如響
諸言亦如化
忍心便在手
다섯 무리[五衆] 속에서
자아[我] 및 목숨의 모습을 취하지 않고
몸도 또한 내 것이 아니니,
마땅히 그는 인(忍)을 얻었음을 알아야 한다.
016_0814_c_05L不於五衆中
取我及命相
身亦非我所
應知彼得忍
만약 나와 내 것의
자성(自性)을 보지 않는다면
곧 무생인(無生忍)을 얻어서
불자(佛子)는 가장 안온하리라.
016_0814_c_06L若不見於我
及我所自性
便得無生忍
佛子最安隱
菩提資糧論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석(釋)은 제석천(帝釋天:s´akra), 범(梵)은 우리 만물을 창조한 브라흐만(brahman) 신(神)을 말한다. 둘 다 외도의 신이었으나, 나중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2. 2)술 같은 것을 뜨는 국자와 비슷하게 생긴 도구.
  3. 3)국왕이 즉위할 때 관정(灌頂:abhisseka)을 행하는 것처럼, 보살이 수행을 구족하여 부처님 지위에 오르는 단계를 말한다. 여기서는 보살의 수행이 원만한 것을 의미한다.
  4. 4)bmi의 역어. 보살이 수도하여 실천하는 단계로서, 여기서는 십지경(十地經)에서 말하는 화엄십지(華嚴十地)를 의미한다.
  5. 5)도솔천(tusita)을 말한다. 욕계의 여섯 종류의 하늘 가운데 네 번째의 하늘. 장래 성불하는 보살은 이 하늘에 올라간다고 전해진다.
  6. 6)브라흐만 신을 추종하는 바라문 교도.
  7. 7)Menpranidhne. 명(冥, me)은 안치하다[置, pranidhna]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것은 다음의 망마니(茫摩泥)와 함께 어머니[母, mt]의 의미를 해석해 내고자 하는 것으로, mt의 어원을 me 또는 m로 하고, 문법의 해석으로부터 ‘안치하다’ 또는 ‘헤아리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8. 8)Mmne. 망(茫, m)은 ‘헤아리다(量, mne)’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9. 9)Vimarakrti. 재가 보살이었던 유마힐(維摩詰) 거사를 말한다.
  10. 10)완전한 지혜. 지혜에 의하여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
  11. 11)피, 침, 눈물, 땀 등 인체 내 체액을 총칭한 것.
  12. 12)집터에 딸린 수풀.
  13. 13)진귀한 노리개, 장난감.
  14. 14)Yama의 음사. 지옥세계의 심판자. 염라대왕을 말한다.
  15. 15)학(學)은 네 가지 사문(沙門)의 과보 중 앞의 세 가지인 예류(預流)ㆍ일래(一來)ㆍ불환(不還)을 가리키고, 무학(無學)은 네 번째의 아라한(阿羅漢)을 가리킨다.
  16. 16)sampatti의 음사. 앞의 선나(禪那)와 함께 선정[定]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로 두 낱말을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17. 17)두 팔, 두 다리와 온몸의 뼈마디.
  18. 18)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온(蘊)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