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6_0900_b_01L대승장엄경론 제8권
016_0900_b_01L大乘莊嚴經論卷第八


무착보살 지음
016_0900_b_02L無著菩薩造
바라파밀다라 한역
이영무 번역
016_0900_b_03L大唐天竺三藏波羅頗蜜多羅譯


17. 도섭품 ②
016_0900_b_04L度攝品第十七之二

【釋】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 익힘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여섯 가지의 바라밀의 차별에 각자 여섯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기 성품이요, 둘째는 인(因)이요, 셋째는 과(果)요, 넷째는 업이요, 다섯째는 서로 응함이요, 여섯째는 품류(品類)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0_b_05L釋曰已說修習六波羅蜜次說六波羅蜜差別六波羅蜜差別各有六義一者自性二者三者四者相應六者品類偈曰

그에게 보시함과 함께 생각함과
두 가지가 이루어짐과 또한 두 가지를 포섭함과
함께 인색하지 않음에 머물기 때문과
법의 보시와 재산 보시와 두려움 없음의 셋이다.
016_0900_b_09L施彼及共思
二成亦二攝
具住不慳故
法財無畏三
016_0900_c_02L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에게 보시한다’고 함은 이는 보시의 자기 성품이니 자기의 물건으로써 모든 받는 이에게 베풀기 때문이다.
‘함께 생각한다’고 함은 보시의 인이니 탐함이 없는 선근으로 말미암아 생각과 더불어 함께 나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이루어진다’고 함은 보시의 과보이니 재물이 성취되고 몸이 성취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몸이 성취된다고 말한 것은 갖추어 목숨 등의 다섯 가지의 일을 섭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일은 경에서 설한 먹을 것을 베푸는 등의 다섯 가지의 일로서, 첫째는 목숨을 얻고, 둘째는 모습을 얻고, 셋째는 힘을 얻고, 넷째는 즐거움을 얻고, 다섯째는 변재(辯才)를 얻는다고 함이 그것이다.
‘두 가지를 포섭한다’고 함은 보시의 업이니 자기와 남이라는 두 가지를 섭수함이 만족하고 큰 보리가 만족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함께 인색하지 않음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함은 보시의 서로 응함이니 구족하게 인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머물기 때문이다.
‘법과 재물과 무외(無畏)의 세 가지’라 함은 보시의 품류이며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시(法施)요, 둘째는 재시(財施)요, 셋째는 무외시(無畏施)이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뜻을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익힐 줄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0_b_11L釋曰此偈明檀波羅蜜六義施彼者是施自性由以己物施諸受者故思者是施因由無貪善根與思俱生成者是施果由財成就及身成就故言身成就者具攝命等五事五事經中說施食得五事一者得命二者得色三者得力四者得樂五者得辯二攝者是施業由自他二攝滿及大菩提滿足故具住不慳故者是施相應由具足住不慳人心中故無畏三者是施品類品類有三一者法施二者財施三者無畏施故如是六義智者應知應習偈曰

여섯 가지의 지(支)와 유(有)의 변(邊)을 멸함과
착한 길과 가짐 등과
복의 무더기가 구족하기 때문과
두 가지의 득이 두 가지가 된다.
016_0900_c_03L六支滅有邊
善道及持等
福聚具足故
二得爲二種

【釋】이 게송은 계 바라밀의 여섯 가지 뜻을 밝힌 것이다.
‘여섯 가지의 지(支)’라고 함은 계의 자기 성품이니, 구족계(具足戒)에 머묾으로써 학(學)을 받아서 여러 학이 구족하기 때문이다.
‘유(有)의 변(邊)을 멸한다’고 함은 계(戒)의 인(因)이다. 멸한다고 함은 곧 열반이니, 열반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유의 변을 건너서 계의 행함을 받기 때문이다.
‘착한 길’이라고 함은 계의 과보이니, 착한 길과 뉘우치지 않음 등의 차례의 다섯 가지 심주(心住)를 계로 인하여 얻기 때문이다.
‘가짐 등’이라 함은 계의 업이며 계에는 세 가지의 능함이 있다. 첫째는 능지(能持)이니 능히 일체 공덕을 마음대로 가짐으로 말미암아 대지(大地)와 같기 때문이요, 둘째는 능정(能頂)이니 능히 모든 번뇌의 불을 그치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셋째는 무외(無畏)이니 능히 일체 두렵고 미움 등의 모든 죄의 연기(緣起)를 일으키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온갖 죄를 일으킴을 두려워하겠는가?
‘복의 무더기가 구족하기 때문’이라 함은 계와 서로 응하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다 착한 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득(得)이 두 가지가 된다’고 함은 계의 품류이다. 두 가지의 득이라 함은 이른바 수득(受得)과 법득(法得)이다. 수득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보호에 포섭되고, 법득은 선(禪)의 보호와 무류(無流)의 보호에 포섭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0_c_05L釋曰此偈明尸波羅蜜六義六支者是戒自性由住具戒乃至受學諸學足故滅有邊者是戒因滅是涅槃求涅槃度諸有邊受行戒故善道者是戒果善道及不悔等次第五心因戒得故持等者是戒業戒有三能一者能持由能任持一切功德如大地故二者能靜由能止息一切煩惱火熱故三者無畏由能不起一切怖憎等諸罪緣起豈畏起諸罪故福聚具足故者是戒相應由一切時身口業皆行善行故二得爲二種者戒品類二得謂受得及法得受得者攝波羅提木叉護法得者攝禪護及無流護故偈曰

갚지 아니함과 참음과 지(智)의 성품과
큰 자비와 법에 의지함과
다섯 가지의 덕과 두 가지의 이익과
구족하고 뛰어남과 그 세 가지이다.
016_0900_c_20L不報耐智性
大悲及法依
五德幷二利
具勝彼三種
016_0901_a_02L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갚지 아니함과 참음과 지의 성품’이라고 함은 인욕의 자기 성품이니, 첫째는 갚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참음이요, 셋째는 지이다. 이 셋은 순서대로 세 가지 인욕의 자기 성품이다.
갚지 않는다고 함은 남의 헐뜯음을 참는 자기 성품이다.
참음이라 함은 괴로움을 편히 여기는 데 참는 자기 성품이다.
지(智)라 함은 법을 관찰하는 데 참는 자기 성품이다.
‘큰 자비와 법에 의지한다’고 함은 참는 인이니, 첫째는 큰 자비로 인을 삼고, 둘째는 법을 의지함으로 인을 삼는다. 법을 의지한다고 함은, 이른바 계를 받고 보고 들음이 많은 것이다.
‘다섯 가지의 덕’이라고 함은 참음의 과이니, 경에서 말하기를 참으면 다섯 가지의 과를 얻는다고 하였다. 첫째는 미워하고 질투함이 적음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남의 뜻을 무너뜨리지 않음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기뻐하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임종할 때에 뉘우치지 않음을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몸이 죽으면 하늘에 태어남을 얻는 것이다.
‘두 가지의 이익’이라 함은 참음의 업이니, 세 가지의 참음으로 말미암기에 능히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두 가지의 업을 짓는다. 경의 게송에서 말하기를 ‘그 두 가지의 뜻인 자기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함을 짓는다’고 하였다.
016_0900_c_22L釋曰此偈明羼提波羅蜜六義不報性者是忍自性不報此三次第是三忍自性不報者是他毀忍自性耐者是安苦忍自性是觀法忍自性大悲及法依者忍因大悲爲因法依爲因法依謂受戒及多聞故五德者是忍果如經中說忍得五種果得少憎嫉得不壞他意得喜樂得臨終不悔得身壞生天二利者是忍業由三忍故能作自利利他二種業經偈說作彼二義自利利他
만일 남이 성냄을 알면 그에게 대해 스스로 쉬는 것이다.
‘구족하고 뛰어나다’고 함은 참음의 서로 응함이다. 행하기 어려운 것을 참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고 이르며, 가장 뛰어남을 구족한 것을 서로 응한다고 이른다. 경에서 말하기를 참음은 행하기 어려운 최상의 것이라 하였다.
‘그 세 가지’라 함은 참음의 품류이며 사람에게 세 가지의 품류가 있으니, 첫째는 남이 헐뜯는 것을 참음이요, 둘째는 괴로운 것을 편히 여기는 참음이요, 셋째는 법을 관하는 참음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a_11L若知他於彼自息具勝者是忍相應忍難行故名最勝具足最勝名相應如經說忍最上難行故彼三種者是忍品類彼人有三品他毀忍安苦觀法忍故偈曰

착함에서와 바른 용맹에서와
믿음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과
염(念)이 더함과 대치함과
덕을 갖춤의 일곱 가지이다.
016_0901_a_16L於善於正勇
有信有欲故
念增及對治
具德彼七種
016_0901_b_02L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착함에서와 바른 용맹’이라고 함은 정진의 자기 성품이다. 다른 업 가운데의 용맹을 막기 때문에 착함이라고 말하고, 외도들의 해탈 가운데의 용맹을 제거하기에 바르다고 말한다.
‘믿음이 있고 욕망이 있다’고 함은 정진의 인이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하여서 정진이 일어남을 얻기 때문이다.
‘염이 더한다’고 함은 정진의 과이니 염(念)과 정(定)들의 공덕이 다시 정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치한다’고 함은 정진의 업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정진을 일으키는 자는 능히 즐겁게 머묾을 얻어서 온갖 악인 착하지 못한 법에 섞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덕을 갖춘다’고 함은 정진과 서로 응하는 것이니 탐함이 없는 등의 공덕을 갖춤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 가지’라 함은 정진의 품류이며 사람에게는 7품(品)의 정진이 있으니, 첫째는 계를 배우는 정진이요, 둘째는 선정을 배우는 정진이요, 셋째는 지혜를 배우는 정진이요, 넷째는 몸의 정진이요, 다섯째는 마음의 정진이요, 여섯째는 끊어짐이 없는 정진이요, 일곱째는 존중의 정진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a_18L釋曰此偈明毘梨耶波羅蜜六義於正勇者是精進自性遮餘業中勇猛故言善除外道解脫中勇猛故言正有信有欲故者是精進因由信及求精進得起故念增者是精進果念定等功德復由精進起故對治者是精進業如經中說起精進者能得樂住不雜諸惡不善法故具德者精進相應由具無貪等功德故彼七種者是精進品類彼人有七品精進一學戒精進學定精進學慧精身精進心精進無閒精進尊重精進偈曰

마음이 머물고, 염이 나아가고
즐거움이 생겨나고, 또한 신통과 머묾
모든 법의 상수(上首)
그 종류가 세 가지요, 다시 세 가지이다.
016_0901_b_08L心住及念進
樂生亦通住
諸法之上首
彼種三復三

【釋】이 게송은 참선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마음이 머문다’고 함은 선정의 자기 성품이니 마음이 안에 머묾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염(念)이 나아간다’고 함은 선정의 인이니 염이 있기 때문에 인연이 있어서 잊지 아니하고 나아감에 의지한다. 그러기에 선정에서 일어남을 얻는다.
‘즐거움이 난다’고 함은 선정의 과이니 번뇌에서 떠나고 물러서는 방편이어서 떠나는 과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통과 머문다’고 함은 선정의 업이니 신통이라 함은 다섯 가지의 신통을 이르고, 머문다고 함은 세 가지의 머묾을 이른다. 즉 성인에 머물고 하늘에 머물고 범행(梵行)에 머무는 것이니 선정이 능히 다섯 가지의 신통과 세 가지의 머무는 데 다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상수’라 함은 선정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삼마제(三摩提)는 모든 법의 상수라고 하였다.
‘종류가 세 가지요, 다시 세 가지’라고 함은 선정의 품류이며,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세 가지 품이 있으니, 하나는 깨달음이 있고 관이 있는 것과 깨달음은 없고 관이 있는 것과 깨달음도 없고 관도 없는 것의 세 가지 품이요, 또 하나는 기쁨을 함께 하고 즐거움을 함께 하고 버림을 함께 하는 세 가지 품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b_10L釋曰此偈明禪波羅蜜六義心住者是定自性由心住內故念進者是定有念故於緣不忘依進故禪定得樂生者是定果離退方便離果不虛故通住者是定業通謂五通住謂三住聖住天住梵住禪定能令五通及三住皆得自在住故諸法之上首是定相應如經中說三摩提者諸法上首故彼種三復三者是定品類彼人有二種三品一者有覺有觀覺有觀無覺無觀三品故二者喜俱樂俱捨俱三品故偈曰

바로 선택함과 더불어 선정으로 가지는 것과
잘 해탈함과 혜명(慧命)을 말함
모든 법의 상수와
그에게 또한 세 가지가 있다.
016_0901_b_22L正擇與定持
善脫及命說
諸法之上首
彼亦有三種
016_0901_c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바로 선택한다’고 함은 지혜의 자기 성품이다. 삿된 업과 세간의 아는 것의 업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출세간의 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선정으로 가진다’고 함은 지혜의 인이니 선정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가지고 실답게 법을 알기 때문이다.
‘잘 해탈한다’고 함은 지혜의 과이니 이른바 염오된 데서 해탈을 잘 얻는다. 왜냐하면 세간과 세간을 벗어남과 크게 세간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혜명을 말한다’고 함은 지혜의 업이니 지혜의 목숨과 잘 말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지혜의 목숨이라고 함은 위없는 바른 선택으로써 생명을 삼기 때문이다. 잘 말한다고 함은 바른 법을 바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상수’라 함은 지혜와 서로 응함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반야라는 것은 일체 법 가운데의 최상이라 한 것이다.
‘또한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지혜의 품류이니 사람에게는 세간과 세간을 벗어남과 크게 세간을 벗어나는 세 가지 품이 있어서 바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016_0901_b_24L釋曰此偈明般若波羅蜜六義正擇是慧自性由離邪業及世閒所識正擇出世閒法故定持者是慧因由定持慧如實解法故善脫者是慧謂於染污得善解脫何以故由世出世閒大出世閒正擇故說者是慧業由慧命及善說慧命者以彼無上正擇爲命故善說者正說正法諸法之上首者是慧相應如經中般若者一切法中上故彼亦有三種者是慧品類彼人有世閒出世閒大出世閒三品正擇故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섭행(攝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c_13L已說六波羅蜜差別次說六波羅蜜攝行偈曰

일체의 희고 청정한 법은
어지러움과 정(定)과 함께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섯 가지의 바라밀은 종합하여 세 쌍(雙)이니
이 품류가 다 포섭한다.
016_0901_c_14L一切白淨法
應知亂定俱
六度摠三雙
是類皆悉攝

【釋】‘일체의 희고 청정한 법’이라 함은 이른바 보시 등의 여러 행법(行法)이니 그 행법이 총섭(摠攝)해서 세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어지러움이요, 둘째는 선정이요, 셋째는 어지러움과 선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어지러운 것이라 함은 앞에 있는 두 바라밀을 섭수한 것이니 보시 바라밀과 지계 바라밀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정(定)이라 함은 뒤의 두 바라밀을 섭수한 것이니 그것은 선정 바라밀과 지혜 바라밀은 정하여 있기 때문이요, 어지러움과 정함이 함께 한다고 함은 중간의 두 바라밀을 섭한 것이니 그것은 인욕 바라밀과 정진 바라밀은 정하기도 하고 정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016_0901_c_16L釋曰一切白淨法者謂檀等諸行法應知彼行法摠攝有三種一者三者彼亂者以前二波羅蜜戒不定故定者以後二波羅蜜及實慧定故俱者以中二波羅蜜攝及精進定不定故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섭행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치장(治障)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c_22L已說六波羅蜜攝行次說六波羅蜜治障偈曰

보시 바라밀은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났으니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일곱 가지로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의 바라밀도
장애를 다스림은 일곱 가지가 다 그러하다.
016_0901_c_23L檀離七著故
不著說七種
應知餘五度
障治七皆然
016_0902_a_02L
【釋】‘보시 바라밀은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났으니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일곱 가지로 말한다’고 함은 보시 바라밀에 집착하는 것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재(資財)에 집착하는 것이고, 둘째는 만완(慢緩)에 집착하는 것이고, 셋째는 편집(偏執)에 집착하는 것이고, 넷째는 보은(報恩)에 집착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과보(果報)에 집착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장애(障碍)에 집착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산란(散亂)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장애에 집착한다고 함은, 이른바 보시 바라밀에서 대치하는 탐욕과 수면(隨眠)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산란에 집착한다고 할 때 산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의(下意) 산란이니 소승을 구하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분별(分別) 산란이니 3륜(輪)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보시 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이 일곱 가지의 집착을 멀리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곱 가지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의 바라밀도 장애를 다스리는 데 일곱 가지가 다 그러하다고 함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함은 계를 가짐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에 또한 각각 일곱 가지의 집착이 있으며,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나기에 또한 각각 일곱 가지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차별이 있는 것은 보시 바라밀을 번복시켜서 자재에 집착함을 벗어나게 하고 계를 가짐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이 첫 번째의 집착을 벗어나게 한다.
이른바 계를 지킴으로써 계를 파괴하는 집착에서 벗어나고 참음으로써 성내는 집착에서 벗어나며, 정진으로써 게으름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선정으로써 산란(散亂)한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며, 지혜로써 어리석음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는 계를 가짐 등으로써 장애의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장애와 수면(隨眠)을 다 끊어 없애기 때문이요, 또는 계를 가짐 등으로써 분별의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그 3륜을 따라서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016_0902_a_02L釋曰檀離七著故不著說七種者檀著有七種資財著慢緩著偏執著報恩著果報著障礙散亂著此中障礙著者謂檀所對治貪隨眠不斷故散亂著者散亂有二種一下意散亂求小乘故別散亂分別三輪故由菩薩行檀時遠離此七著故說七不著應知餘五度障治七皆然者應知戒等五波羅蜜亦各有七著離七著故亦各說七不著此中有差別者翻檀波羅蜜離資財著卽是戒等五波羅蜜離第一所謂戒離破戒著忍離瞋恚著進離懈怠著禪定離亂心著智慧離愚癡著戒等離障礙著者彼障隨眠皆斷除故戒等離分別著者隨其三不分別故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치장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이 가운데서 먼저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a_19L已說六波羅蜜治障說六波羅蜜功德此中先說利他功偈曰

항상 몸과 목숨을 버려서
구하기를 떠나고 남을 애민(哀憫)하기 때문이니
보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고
지혜는 보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a_21L恒時捨身命
離求愍他故
因施建菩提
智攝施無盡
016_0902_b_02L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몸과 목숨을 버린다’고 함은 이른바 모든 보살이 온갖 경우에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베풀어서 모든 구하는 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구함을 떠나고 남을 애민하기 때문’이라 함은 은혜에 보답함과 과보를 좋아함을 구하지 아니하고 큰 자비를 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보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운다’고 함은 이 보시로 인하여서 일체의 중생들을 3승(乘)의 보리로 건립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보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고 함은 이 보시가 분별이 없는 지혜를 섭수함이 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며 그 복이 다함없고 다함없게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a_23L釋曰此偈顯示檀波羅蜜利他功德恒時捨身命者謂諸菩薩一切時自身命與一切求者故離求愍他故不求報恩及以愛果由大悲爲因因施建菩提者因是施已建立一切衆生於三乘菩提故智攝施無盡者此施由無分別智所攝乃至無餘涅其福無盡無窮利益一切衆生故偈曰

항시 금계(禁戒)와 부지런함을 수호하여
계와 좋은 곳에 남을 여의며
계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계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b_09L恒時守禁勤
離戒及善趣
因戒建菩提
智攝戒無盡

【釋】이 게송은 계율을 지키는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금계와 부지런함을 수호한다’고 함은 보살에게 세 무더기의 청정한 계가 있으니, 첫째는 섭율의계(攝律儀戒)요,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요, 셋째는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다. 처음의 계는 금지함으로 체를 삼고, 뒤의 두 계는 부지런하고 용기가 있음으로 체를 삼는다. 여러 보살이 모든 경우에 항상 수호하기 때문이다.
‘계와 좋은 곳에 남을 여읜다’고 함은 이른바 계를 얻는 데 집착하지 아니하고 과보를 사랑함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b_11L釋曰此偈顯示尸波羅蜜利他功德恒時守禁勤者菩薩有三聚戒儀戒攝善法戒攝衆生戒初戒以禁防爲體後二戒以勤勇爲體諸菩薩一切時恒守護故離戒及善趣者謂不著得戒及不求愛果故偈曰

항상 남의 헐뜯음을 참으면서
구함과 두려움과 무능(無能)을 벗어난다.
인욕으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인욕을 포섭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b_17L恒時耐他毀
離求畏無能
因忍建菩提
智攝忍無盡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남의 헐뜯음을 참는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모든 경우에 만일 일체의 중생들이 온갖 극히 괴로운 일을 가지고 와서 보살을 헐뜯어도 보살은 다 능히 참고 받기 때문이다.
‘구함과 두려움과 무능을 벗어난다’고 함은 은혜에 보답함을 구하지 아니하고 선취(善趣)에 태어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포외(怖畏)를 위해서 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음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b_19L釋曰此偈顯示羼提波羅蜜利他功恒時耐他毀者諸菩薩於一切時若一切衆生以一切極惱事來毀菩菩薩悉能忍受故離求無能者不求報恩不求善趣不爲怖畏不爲無能故偈曰
016_0902_c_02L
항상 맹세코 부지런히 지어서
도적을 죽이는 것을 위없게 여기며
정진으로 인해서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정진을 포섭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02L恒時誓勤作
殺賊爲無上
因進建菩提
智攝進無盡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맹세코 부지런히 짓는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비교할 수 없이 정진을 닦는 것이다. 정진에는 두 가지의 자기 성품이 있으니, 하나는 큰 서원(誓願)으로 자기 성품을 삼는 것이요, 또 하나는 부지런한 방편으로 자기 성품을 삼는 것이다.
‘도적을 죽이는 것을 위없게 여긴다’고 함은 보살이 정진을 닦는 것은 다만 자기와 남의 번뇌의 도적을 죽여서 위없는 보리를 얻기 위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c_04L釋曰此偈顯示毘梨耶波羅蜜利他功德恒時誓勤作者諸菩薩無比修精進有二自性弘誓爲自性方便爲自性殺賊爲無上者菩薩修精進但爲殺自他煩惱賊爲得無上菩提故偈曰

항상 여러 선정을 익혀서
선정을 버리고 하처(下處)에 난다.
선정으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선정을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10L恒時習諸定
捨禪下處生
因定建菩提
智攝定無盡

【釋】이 게송은 선정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여러 선정을 익힌다’고 함은 모든 보살이 끝없는 삼마제(三摩提)를 섭수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선정을 버리고 하처에 난다’고 함은 위없는 선정에 즐겁게 머묾을 버리고 와서 하열(下劣)한 곳에 태어남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자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c_12L釋曰此偈顯示禪波羅蜜利他功德恒時習諸定者諸菩薩攝無邊三摩而修習故捨禪下處生者棄捨無上禪樂住來就下劣處受生何以故由大悲故偈曰

항상 참다움과 그 밖의 경계를 요달하여서
부처님께서 끊으시어 오히려 집착하지 않도록 하였다.
지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자비가 지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17L恒了眞餘境
佛斷尚不著
因智建菩提
悲攝智無盡
016_0903_a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참다움과 그 밖의 경계를 요달한다’고 함에서 참을 요달하는 것은 이른바 제일의제의 평등한 모양으로서 인(人)과 법의 두 가지 무아(無我)의 지혜를 이른 것이다. 그 밖의 경계라는 것은 이른바 끝없는 이름과 모양의 차별을 이른 것이다.
‘부처님께서 끊으시어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께서 끊으셨음은 이른바 열반이니, 여러 보살들이 지혜를 닦을 때에 오히려 부처님의 열반도 집착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생사를 구함이겠는가?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은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포섭하였으며, 무여열반의 공덕과 다함없는 지혜 바라문은 큰 자비로써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항상 중생들을 버리지 않아 공덕이 다함없는 것이다.
016_0902_c_19L釋曰此偈顯示般若波羅蜜利他功恒了眞餘境者了眞謂第一義諦平等相人法二無我智故餘境謂無邊名相等差別故佛斷尚不著者謂涅槃諸菩薩修般若尚不著佛涅槃何況求生死此中前五波羅蜜以無分別智攝故乃至無餘涅槃功德無盡般若波羅蜜以大悲攝故不捨衆生功德無盡
여섯 가지의 게송은 따로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말한 것이다. 다음에는 한 게송으로써 통틀어 앞의 뜻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a_05L六偈別說利他功德已次以一偈摠說前義偈曰

넓고 크고 구함이 없음과
가장 뛰어남과 다함없는
하나하나의 바라밀에
네 가지의 덕이 다 동일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6_0903_a_06L廣大及無求
最勝與無盡
當知一一度
四德悉皆同

【釋】‘네 가지의 공덕’이라 함은 첫째는 넓고 큰 공덕이요, 둘째는 구함이 없는 공덕이요, 셋째는 가장 뛰어난 공덕이요, 넷째는 다함없는 공덕이다.
앞의 여섯 게송에서 첫 번째 글귀는 넓고 큰 공덕을 나타내었으니, 그것은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 글귀는 구함이 없는 공덕을 나타내었으며, 세 번째의 글귀는 가장 뛰어난 공덕을 나타내었으며, 네 번째의 글귀는 다함없는 공덕을 나타내었다.
또는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다시 청정한 공덕이 있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a_08L釋曰四功德者廣大功德無求功德最勝功德無盡功德前六偈第一句顯廣大功德利多衆生故第二句顯無求功德第三句顯最勝功德第四句顯無盡功德復次六波羅蜜復有淸淨功德偈曰

얻어 봄과 원을 성취함과
구함과 아울러 세 가지의 기쁨이다.
보살의 기쁨은 서로 번복하니
그 물러섬은 자비가 극함이다.
016_0903_a_14L得見及遂願
幷求合三喜
菩薩喜相翻
彼退悲極故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빌어 구하는 자가 보살에게는 세 가지의 기쁨을 내니, 첫째는 얻어 볼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소원을 성취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셋째는 보기를 구하고 수성을 구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보지 못하고 수성하지 못할 때에는 기쁨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온갖 경우에 빌어 구하는 자이기에 그 세 가지의 기쁨을 번복시켜서 또한 세 가지의 기쁨을 내니, 첫째는 얻어 볼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원을 수성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셋째는 보기를 구하고 수성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마땅히 알 것은 구하는 자의 세 가지 기쁨이 보살의 세 가지 기쁨만 같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큰 자비를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a_16L釋曰此偈顯示檀波羅蜜淸淨功德彼乞求者於菩薩生三喜得見時生喜遂願時生喜求見求遂時生喜由不見不遂時不生喜故菩薩一切時於乞求者翻彼三喜亦生三得見彼時生喜遂彼願時生求見求遂彼時生喜此中應知彼求者三喜不如菩薩三喜何以故菩薩大悲具足故偈曰
016_0903_b_02L
자기의 몸과 재물과 권속을
자비롭기 때문에 항상 기쁘게 보시한다.
그 세 가지 멀리 여의는 행을
어느 인(因)인들 금해 지키지 않으리오.
016_0903_b_02L自身財眷屬
由悲恒喜施
彼三遠離行
何因不禁守

【釋】이하는 계율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게송은 몸의 세 가지 악한 행동을 밝힌 것이다.
보살이 자기의 몸과 재물과 권속 가운데서 큰 자비 때문에 항상 기쁘게 남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거든 하물며 남의 몸과 남의 재물과 남의 권속의 세 가지 멀리 떠나는 행에서 금하여 지키지 않겠느냐?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b_04L釋曰此下顯示尸波羅蜜淸淨功德此偈明遠離身三惡行菩薩於自身自財自眷屬中由大悲故尚恒歡喜好施於他況於他身他財他眷屬中三種遠離行而不禁守耶偈曰

돌아보지 아니함과 평등과
두려움 없음과 또한 널리 베풂에
자비가 극하니 무슨 인연이 있어
남을 괴롭히고 허망하게 말하겠는가?
016_0903_b_09L不顧及平等
無畏亦普施
悲極有何因
惱他而妄語

【釋】이 게송은 망어(妄語)의 악한 행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무릇 망어를 일으키는 데 네 가지의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몸과 목숨에 연연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이익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두려움 때문에 임금의 법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재물을 구하는 것이니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살은 그러하지 않다. 첫째는 돌아보지 아니함이니 몸과 목숨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평등함이니 남의 몸과 자기의 얻음이 평등한 마음이기 때문이요, 셋째는 두려움이 없음이니 다섯 가지의 무서움을 벗어났기 때문이요, 넷째는 널리 베풂이니 일체의 물건으로 일체에 베풀기 때문이다.
보살은 자비와 애민(哀愍)이 항상 깊으니 다시 무슨 인이 있어서 망어를 일으키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b_11L釋曰此偈明遠離妄語惡行凡起妄有四因緣爲自利戀身命故爲利他利所愛故爲怖畏懼王法爲求財有所須故菩薩則不爾一者不顧不戀身命故二者平等身與自得等心故三者無畏離五怖四者普施以一切物施一切故菩薩悲愍恒深復有何因而起妄語偈曰

평등하게 이익을 지으려고
큰 자비로 남의 괴로움을 두려워한다.
또한 부지런히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에
세 가지 말의 허물을 극히 멀리한다.
016_0903_b_19L平等利益作
大悲懼他苦
亦勤成熟生
極遠三語過
016_0903_c_02L
【釋】이 게송은 나머지 세 가지 말의 악한 행동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항상 평등하게 이익됨을 짓는다. 그러니 어찌 남의 권속을 무너뜨리고자 하여 거짓말을 하겠는가?
보살은 큰 자비로 항상 일체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려 하여서 남의 괴로움 가운데서 극히 두려움을 내거늘, 어찌 남을 괴롭히기 위하여 악구(惡口)를 짓겠는가?
보살은 항상 정근을 행하여 일체 중생들을 성숙시키고자 하거늘, 어찌 남을 성숙시키지 않게 하려 기어(綺語)를 짓겠는가? 그러기에 보살은 이 세 가지 말의 허물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b_21L釋曰此偈明遠離餘三語惡行菩薩於一切衆生恒作平等利益豈欲壞他眷屬而作兩舌菩薩大悲恒欲拔除一切衆生之苦於他苦中極生怖豈欲爲苦於他而作惡口菩薩恒行正勤恒欲成熟一切衆生豈欲不成熟他而作綺語是故菩薩能極遠離此三語過偈曰

널리 베풂과 자비가 있음과
극히 착한 연기(緣起)의 법이니
무엇으로 인하여 뜻의 땅에 세 가지의
번뇌를 능히 참지 못하겠는가?
016_0903_c_06L普施及有悲
極善緣起法
何因不能耐
意地三煩惱

【釋】이 게송은 뜻의 세 가지의 악한 행동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일체의 물건을 널리 베풂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탐욕의 번뇌를 벗어나게 되고, 큰 자비로 말미암아 성내는 번뇌를 여의게 되고, 극히 착한 연기(緣起)의 법으로 말미암아 삿된 견해의 번뇌를 벗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의 파계(破戒)를 대치하는 차별이니, 이는 보살의 계가 청정한 공덕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c_08L釋曰此偈明遠離意三惡行菩薩由普施一切物離貪煩惱由大悲故離瞋煩惱由極善緣起法故離邪見煩惱如是等破戒對治差別是菩薩戒淸淨功德偈曰

손해 있는 자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을 얻고
괴로운 일에 기쁜 생각을 내서
보살이 이미 이와 같이 하거니
참는 이는 누구이며 무엇을 참지 못하리오.
016_0903_c_13L損者得益想
苦事喜想生
菩薩旣如是
忍誰何所忍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손해 있는 자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을 얻는다’고 함은 보살이 요익하지 못한 자에게 요익되겠다는 생각을 얻어서 마땅히 인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욕의 인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괴로운 일에 기쁜 생각을 낸다고 함은, 보살이 괴로움을 받는 일 가운데서도 다시 기쁘다고 생각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이롭게 하는 인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보살에게는 이미 요익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킬 것과 괴롭다는 생각을 일으킬 곳이 없다. 그러니 누구 쪽에서 참음을 일으키며, 무슨 일에서 참음을 일으키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c_15L釋曰此偈顯示羼提波羅蜜淸淨功損者得益想者菩薩於彼不饒益得饒益想應須忍辱何以故爲成忍辱因故苦事喜想生者菩薩於受苦事中更生喜想何以故成就利他因故菩薩旣無不饒益想起處及苦想起處於誰邊起忍於何事起忍偈曰

보살에게는 남이라는 생각이 끊어져서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함보다 더한다.
남에 있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도
정진을 하면 곧 어려움이 없다.
016_0903_c_22L菩薩他想斷
愛他過自愛
於他難行事
精進卽無難
016_0904_a_02L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이 남을 위하는 어려운 행에서 정진을 하면 어려움이 없음을 얻는다. 왜냐하면 남이라는 생각이 끊어졌으며, 항상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함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남을 위하여 정진하니, 어찌 다시 어려운 행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정진이 청정하다고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c_24L釋曰此偈顯示毘梨耶波羅蜜淸淨功德菩薩爲他難行精進而得不難何以故他想斷故及一切時生於他過自愛故菩薩如是爲他精進復難行是故精進淸淨偈曰

즐거움이 적음과 2승의 스스로 즐거움과
집착하고 물러서고 다하고 어리석으니
이를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이라 말하나
보살의 선정은 그를 뒤집는다.
016_0904_a_06L少樂二自樂
著退盡癡故
是說三人禪
菩薩禪翻彼

【釋】이 게송은 선정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즐거움이 적다’고 함은 이른바 세간의 선정이다.
‘2승의 스스로 즐겁다’고 함은 이른바 성문의 선정과 연각의 선정이다.
‘집착한다’고 함은 만일 세간의 선정이면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고 만일 2승의 선정이면 열반에 집착한다.
‘물러선다’고 함은 이른바 세간의 선정이다.
‘다한다’고 함은 이른바 2승의 선정이니 무여열반에 들어간 때에 다하기 때문이다.
‘어리석다’고 함은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은 응하는 대로 물든 어리석음이 있기도 하고 물든 어리석음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선정은 그를 뒤집는다’고 함은 이른바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을 뒤집는 것이다. 즐거움이 많고 스스로 즐기고 남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요, 집착하지 아니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다함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이니, 이를 선정의 청정한 공덕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4_a_08L釋曰此偈顯示禪波羅蜜淸淨功德少樂者謂世閒禪二自樂者謂聲聞及緣覺禪著者若世閒禪著自見若二乘禪著涅槃退者謂世閒禪謂二乘禪無餘涅槃時盡故癡者彼三人禪如其所應有染癡無染癡菩薩禪翻彼者謂翻彼三人禪以故多樂自樂他樂故不著不退無癡故是謂禪定淸淨功德偈曰

어둠 속에 부딪치고 두 등불이니
이와 같은 것은 세 가지 사람의 지혜이지만
비유하면 햇빛이 비치듯이
보살의 지혜는 견줄 데 없다.
016_0904_a_17L暗觸及二燈
如是三人智
譬如日光照
菩薩智無比
016_0904_b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비유하면 어둠 가운데서 손으로써 물건을 부딪치듯이 범부들의 지혜는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얻은 경계를 적기 때문이요, 명료(明了)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항상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두 등불이 방 안의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성문의 지혜와 연각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얻은 경계를 적었기 때문이요, 점차 명료하기 때문이요, 극히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햇빛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보살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변만(遍滿)함을 얻기 때문이요, 명료하기 때문이요, 극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견줄 데가 없는 것을 보살의 지혜의 청정한 공덕이라고 이른다.
016_0904_a_19L釋曰此偈顯示般若波羅蜜淸淨功譬如暗中以手觸物凡夫人智亦如是何以故得少境故不明了故恒定故譬如二燈室中照物聲聞人及緣覺智亦如是何以故得少境漸明了故未極淨故譬如日光照菩薩智亦如是何以故得遍滿故以明了故極淸淨故如是無比是謂菩薩般若淸淨功德
또는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다시 여덟 가지의 위없는 공덕이 있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4_b_05L復次六波羅蜜有八種無上功德偈曰

의(依)와 유(類)와 연(緣)과 회향과
인(因)과 지(智)와 전(田)과 의지(依止)이니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뛰어남은
더 위가 없는 뜻임을 마땅히 알아라.
016_0904_b_06L依類緣迴向
因智田依止
如是八種勝
無上義應知

【釋】‘여덟 가지의 위없다’고 함의 첫째는 의(依)요, 둘째는 유(類)요, 셋째는 연(緣)이요, 넷째는 회향이요, 다섯째는 인(因)이요, 여섯째는 지(智)요, 일곱째는 전(田)이요, 여덟째는 의지(依止)이다.
【문】이 여덟 가지가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서 무엇을 일러 위없음을 얻는다고 합니까?
【답】보시의 의(依)라 함은 보살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유(類)라 함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건으로 보시함이니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요, 둘째는 두려움 없는 보시이니 악도의 생사의 두려움을 구제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법의 보시이니 대승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연(緣)이라 함은 큰 자비로써 연기를 삼기 때문이다.
보시의 회향이라 함은 큰 보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인(因)이라 함은 먼저 세상의 보시의 업이 종자를 훈습(薰習)함으로 인을 삼기 때문이다.
보시의 지(智)라 함은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3륜(輪)을 관찰해서 보시하는 자와 보시를 받는 자와 보시하는 물건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시의 전(田)이라 함에서 전에는 다섯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구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괴로운 사람이요, 셋째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요, 넷째는 악한 행을 하는 사람이요, 다섯째는 덕을 갖춘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는 덕을 갖춘 뛰어난 사람으로 위없음을 삼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시의 의지(依止)라 함은 세 가지의 의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향(信向)을 의지함이요, 둘째는 사유를 의지함이요, 셋째는 삼매를 의지함이다.
신향을 의지한다는 것은 분별의 닦음 가운데 신사유(信思惟)에서 말한 것이다. 사유를 의지한다는 것은 분별의 닦음 가운데 미사유(味思惟)와 수희사유(隨喜思惟)와 희망사유(希望思惟)에서 말한 것과 같다.
016_0904_b_08L釋曰八無上者依二類因六依止此八於六云何得無上檀依者以依菩薩檀類者此有三種物施以捨自身命故無畏施以救濟惡道生死畏故法施以說大乘法故檀緣者以大悲爲緣起故檀迴向者以求大菩提故檀因者以先世施業熏習種子爲因故檀智者以無分別智觀察三輪不分別施者受者財物故檀田田有五人求人苦人無依惡行人具德人應知此中具德勝人爲無上檀依止者由三種依止故依止信向依止思惟依止三昧依止信向者如分別修中信思惟所說依止思惟者如分別修味思惟隨喜思惟悕望思惟
016_0904_c_02L삼매를 의지한다고 함은 이른바 금강장(金剛藏) 등의 정(定)에 의지하는 것이니, 세력의지(勢力依止)의 닦음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의지들은 다 같이 위없다. 그러기에 보시가 위없음을 얻는다.
보시의 여덟 가지 위없음과 같이 계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의 여덟 가지 위없음도 마땅히 그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계의 품류의 위없음은 이른바 보살계요, 인욕의 품류가 위없다는 것은 이른바 보살을 죽이려 온 자가 비하(卑下)하고 열약(劣弱)한 것이다. 정진의 품류가 위없다는 것은 이른바 여러 바라밀을 닦을 때에 대치하여 끊기 때문이요, 선정의 품류가 위없음은 이른바 보살의 삼마제요, 지혜의 품류가 더 위가 없다는 것은 여여(如如)의 경계를 반연하는 것이다. 계 등이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전(田)의 더 위가 없다는 것은 이른바 대승의 법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 바라밀의 위없음은 보시 바라밀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또는 보시 바라밀과 정진 바라밀에 다시 함께 하지 않는 차별의 공덕이 있다.
보시 바라밀의 차별은 어떠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4_c_02L所說依止三昧者謂依金剛藏等定如勢力依止修中所說如是依等無上故得無上如檀八無上戒等五波羅蜜八無上應知亦爾此中戒品類無上謂菩薩戒忍品類無上者謂來殺菩薩者卑下劣弱精進品類無上者謂修諸波羅蜜所對治斷禪品類無上者謂菩薩三摩提智品類無上者謂緣如如境戒等由勝田無上者大乘法餘六無上如檀中說復次及精進復有不共差別功德檀差別云何偈曰

하나에게 보시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고
많은 겁에 자기가 괴로움을 받는다.
버림을 숭상함은 사랑이 깊기 때문이니
어찌 하물며 이익으로 자신을 번복함이리오.
016_0904_c_14L施一令得樂
多劫自受苦
尚捨爲愛深
何況利翻彼

【釋】만일 모든 보살이 한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그가 즐거움을 얻게 하고 자기의 몸은 많은 겁 동안 가난하고 궁한 고통을 받더라도 오히려 보시하여 바람이 없다. 그것은 사랑이 깊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다고 함은 이른바 자비의 차별이다. 어찌 하물며 한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그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 자기의 몸이 많은 겁에 큰 복과 이익을 얻음이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4_c_16L釋曰若諸菩薩施一衆生令其得樂自身多劫受貧窮苦尚施無悋由愛深故愛深者謂悲差別何況施一衆令其得樂自身多劫獲大福利也偈曰

비는 자에게 그가 바라는 대로
보살이 일체를 희사한다.
구함은 자기 몸을 위함이지만
자신을 이롭게 하여 백 가지로 보시한다.
016_0904_c_21L乞者隨所欲
菩薩一切捨
彼求爲身故
利彼百種施
016_0905_a_02L
【釋】이 게송의 위의 두 구절은 통틀어 말한 것이니, 그의 구함을 따라 보살이 다 희사하는 것이다.
아래의 두 구절은 해석한 것이니, 이른바 자신이 비는 것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일체를 얻고자 하지만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려고 하기에 백 가지를 다 희사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4_c_23L釋曰此偈上半摠說謂隨彼所求薩悉捨下半解釋謂彼乞者爲自利一切欲得菩薩爲利他故百種悉偈曰

몸을 버려도 오히려 괴롭지 아니하거니와
어찌 하물며 나머지의 재물이겠는가?
출세간을 기쁘게 얻으니
괴로움을 일으킴, 이것이 위없다.
016_0905_a_04L捨身尚不苦
何況餘財物
出世喜得故
起苦是無上

【釋】보살은 몸을 버릴 때에도 괴로움을 내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은 보살이 세간을 벗어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왜냐하면 환희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이 기쁨은 어디로부터 얻는 것입니까?
【답】괴로움이 일어남을 따라서 얻는 것이다. 그러기에 괴로움을 일으키니, 이를 보살의 위없다고 이른다. 그러기에 보살은 세간을 벗어난 위에 있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06L釋曰菩薩捨身時由心故不生苦心顯示菩薩出世閒何以故得歡喜問此喜從何得從起苦得是故起苦是菩薩無上是故菩薩在出世閒上偈曰

비는 자가 일체를 얻어서
기쁨을 얻으나 큰 기쁨이 아니다.
보살은 일체를 버려서
얻는 기쁨을 기뻐함이 크기 때문이다.
016_0905_a_11L乞者一切得
得喜非大喜
菩薩一切捨
喜彼喜大故

【釋】비는 자가 바라던 것을 보살이 다 베푸니 비는 자가 기쁨을 얻지만 이 기쁨은 큰 기쁨이 아니다.
【문】무엇 때문입니까?
【답】보살이 일체를 다 버려서 자신의 공덕[財]을 얻는 것을 기뻐하니 이 기쁨이 커서 그 기쁨을 빼앗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13L釋曰乞者所須菩薩皆施乞者得喜此喜非是大喜何故由菩薩一切皆捨喜彼得財此喜爲大奪彼喜偈曰

비는 자는 일체를 얻어서
재물이 있지만 부자임을 보지 못하나
보살은 일체를 버려서
재물이 없지만 큰 부자임을 본다.
016_0905_a_17L乞者一切得
有財非見富
菩薩一切捨
無財見大富

【釋】이 게송은 보살의 재물이 다함없는 차별임을 나타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19L釋曰此偈顯菩薩財無盡差別偈曰

비는 자는 일체를 얻지만
크게 요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보살은 일체를 버리지만
크게 요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016_0905_a_20L乞者一切得
非大饒益想
菩薩一切捨
得大饒益想

【釋】이는 보살의 큰 자비의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22L釋曰此顯菩薩大悲差別偈曰

비는 자가 자재하게 취하는 것이
마치 길가의 과일을 취함과 같고
보살은 능히 크게 버리니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이 없다.
016_0905_a_23L乞者自在取
如取路傍果
菩薩能大捨
餘人無是事
016_0905_b_02L
【釋】이는 보살의 집착이 없는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016_0905_b_02L釋曰此顯菩薩無著差別
【문】보시의 함께 하지 못하는 공덕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정진의 함께 하지 못하는 공덕의 차별은 다시 일러줌이 어떠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b_03L說檀不共功德差別已精進不共功德差別復云何偈曰

뛰어남ㆍ인(因)ㆍ의지ㆍ업ㆍ종류
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뜻으로
정진에도 차별이 있다.
016_0905_b_05L勝因依業種
對治等異故
如是六種義
精進有差別

【釋】정진에 여섯 가지의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뛰어남의 차별이요, 둘째는 인의 차별이요, 셋째는 의지의 차별이요, 넷째는 업의 차별이요, 다섯째는 종(種)의 차별이요, 여섯째는 대치의 차별이다. 이 게송은 종합하여 든 것이요, 나머지의 게송은 따로 해석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b_07L釋曰精進有六種差別勝差別因差別依止差別業差別差別對治差別此偈摠擧餘偈別偈曰

백법(白法)은 정진이 우두머리가 되고
정진이 또한 뛰어난 인이다.
온갖 착한 법을 얻음에 미치어
정진이 의지가 된다.
016_0905_b_11L白法進爲上
進亦是勝因
及得諸善法
進則爲依止

【釋】이 게송은 정진의 뛰어난 차별과 인의 차별과 의지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백법은 정진이 우두머리가 된다’고 함은 가장 뛰어난 차별을 말한 것이니, 일체의 착한 법 가운데서 정진이 가장 뛰어남을 말한 것이다.
‘정진이 또한 뛰어난 인’이라 함은 인의 차별을 말한 것이니 정진이 위없는 인임을 말한 것이다.
‘온갖 착한 법을 얻는 데 미치어 정진이 의지가 된다’고 함은 의지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정진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착한 법을 얻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b_13L釋曰此偈說精進勝差別因差別止差別白法進爲上者說最勝差別由於一切善法中說精進爲最勝故進亦是勝因者說因差別由說精進是無上因故及得諸善法進則爲依止者說依止差別由依止精進得一切善法故偈曰

현재의 즐거움과 세간의 법과
세간을 뛰어넘은 법과 자재와
움직이고 고요함과 해탈과
보리 등 일곱 가지가 업이 된다.
016_0905_b_20L現樂與世法
出世及資財
動靜及解脫
菩提七爲業
016_0905_c_02L
【釋】이 게송은 정진의 업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이 업의 차별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법(現法)의 즐겁게 머묾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세간의 법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출세간의 법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자재를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움직이고 고요함을 얻는 것이니, 움직이고 고요하다는 것은 이 세간이 구경에 이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여섯째는 해탈을 얻는 것이니, 해탈이라는 것은 신견(身見)을 끊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보리를 얻는 것이니, 보리라는 것은 큰 보리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b_22L釋曰此偈說精進業差別此業差別有七種得現法樂住得世閒法得出世閒法四得資財得動靜動靜者由是世閒不究竟故得解解脫者由斷身見故得菩提提者由大菩提故偈曰

더하고 덜함과 증상과
장애를 버림과 또한 참에 들어감과
전의(轉依)와 큰 이익의
여섯 가지는 정진의 종류라고 말한다.
016_0905_c_05L增減及增上
捨障亦入眞
轉依與大利
六說精進種

【釋】이 게송은 정진의 종류의 차별에 대해 말한 것이다.
종류의 차별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더하고 덜 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네 가지의 정근(正勤)과 두 가지의 악한 법은 감(減)하고 두 가지의 착한 법은 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증상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의 근(根)이 해탈의 법으로 말미암아 증상하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장애를 버리는 정진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의 역(力)은 장애가 능히 걸리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넷째는 참에 들어가는 정진이니, 이른바 일곱 가지의 각분(覺分)이 견도(見道)로 말미암아 건립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전의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여덟 가지의 성도분(聖道分)이 수도(修道)로 말미암아 구경에 전의하는 인이 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크게 이익되는 정진이니, 이른바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c_07L釋曰此偈說精進種差別種差別六種增減精進謂四正勤惡法二善法增故增上精進謂五根由於解脫法爲增上義故捨障精謂五力由彼障礙不能㝵故眞精進謂七覺分由見道建立故轉依精進謂八聖道分由修道是究竟轉依因故大利精進謂六波羅由自利利他故偈曰

종류에는 다시 다섯 가지의 다름이 있으니
큰 서원(誓願)과 장차 발행(發行)함과
아래가 없음과 움직이지 아니함과
다섯째의 말이 싫음이 없는 것이다.
016_0905_c_16L種復有五異
弘誓將發行
無下及不動
第五說無厭
016_0906_a_02L
【釋】‘다섯 가지의 다름’이라 함은 첫째는 큰 서원의 정진이니 이른바 새로이 일어나고자 하여 행을 일으킴이요, 둘째는 행을 발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현재 여러 착함을 행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아래가 없는 정진이니 이른바 큰 과를 얻어서 아래의 체가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움직이지 않는 정진이니 이른바 춥고 더움 등의 괴로움에 능히 움직이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싫음이 없는 정진이니 이른바 적게 얻는 것으로써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는 경 가운데 말한 것에 큰 서원의 정진이 있고, 현재 일어나는 정진이 있으며, 용맹의 정진이 있고 견고한 정진이 있으며, 부처님의 도를 버리지 않는 정진이 있다. 모든 착한 법 가운데 그 순서와 같이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c_18L釋曰五異者弘誓精進謂欲發起行故發行精進謂現行諸善故無下精進謂得大果下體無故動精進謂寒熱等苦不能動故厭精進謂不以少得爲足故此五種如經中所說有弘誓精進有現起精有勇猛精進有堅固精進有不捨佛道精進於諸善法中如其次第偈曰

세 가지인 하와 중과 상은
3승으로 말미암아 그러하다.
또한 두 가지 하와 상의 깨달음이 있으니
이롭게 하는 데 소승과 대승이 있기 때문이다.
016_0906_a_04L三種下中上
由依三乘爾
亦二下上覺
利有小大故

【釋】정진은 사람을 의지하여 차별한다. 또는 세 가지와 두 가지를 말하니 세 가지라 함은 3승(乘)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하여 차별하는 것이니 그 순서대로 하(下)와 중(中)과 상(上)의 정진이 있다.
【문】무엇으로 인하여 다시 두 가지를 말합니까?
【답】하와 상의 깨달음이니, 하의 깨달음은 2승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하고, 상의 깨달음은 대승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한다. 그 순서대로 소승의 이익과 대승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니, 자기를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며 남을 이익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a_06L釋曰彼精進依人差別復說三種二種三種者依三乘行人差別如其次第下中上精進故何因復二種下上覺故下覺者依二乘行人覺者依大乘行人如其次第說於小利及大利故何以故爲自利故爲他利故偈曰

재물에 집착하고 번뇌에 집착하고
싫어함에 집착하고 만족할 줄 아는 데 집착하니
네 가지의 집착이 물러설 수 없기에
대치하는 데 네 가지로 나눈다.
016_0906_a_13L財著煩惱著
厭著知足著
四著不能退
對治分四種

【釋】이 게송은 정진의 대치하는 차별에 대해 말한 것이다.
네 가지의 집착을 대치함으로 말미암기에 네 가지의 물러서지 아니함이 있다. 그래서 네 가지의 대치하는 차별을 말한 것이다.
【문】이것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보시 바라밀 등의 여러 행이 네 가지의 집착 때문에 장애가 되어서 행함을 얻지 못한다. 네 가지의 장애라고 함은, 첫째는 재물에 집착하는 것이니 재물에 있어서 극히 인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번뇌에 집착함이니 재물에 있어서 물듦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셋째는 싫어함에 집착함이니 보시 등의 행에 있어서 후퇴하여 굴복함이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만족할 줄 아는데 집착함이니 보시 등의 바라밀에 있어서 조금 베풀고도 기뻐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정진을 행하는 자가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집착을 대치하여야 능히 물러서지 않음을 얻는다. 그러기에 네 가지의 대치하는 차별을 말한 것이다.
016_0906_a_15L釋曰此偈說精進對治差別由對治四著有四不退說四種對治差別此云何檀等諸行由四著爲礙故而不得行一者財著於財極悋故煩惱著於財起染故三者厭著於檀等行有退屈故四者知足著於少施喜滿足故行精進者對治如此四能得不退故說四種對治差別
이미 육바라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육바라밀의 서로 나타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a_23L說六波羅蜜功德次說六波羅蜜互偈曰
016_0906_b_02L
서로 섭수함과 차별과
법을 의지함과 또한 인이 되어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서로서로 이루어져서
일체의 종(種)을 분별한다.
016_0906_b_02L相攝及差別
依法亦爲因
六度互相成
一切種分別

【釋】육바라밀이 서로 이루는 데 스스로 네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서로 섭수함이요, 둘째는 차별이요, 셋째는 법을 의지함이요, 넷째는 인이 되는 것이다.
‘서로 섭수한다’고 함은 두려움이 없는 보시에 섭수함이니 계를 가짐과 인욕을 하는 두 가지의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려움 없음을 주기 때문이다. 법의 보시는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법을 주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음과 법의 두 가지 보시는 정진의 한 바라밀을 섭수한다. 이 한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 가지의 보시를 행하기 때문이다.
【문】계율을 가짐은 몇 가지의 바라밀을 섭수합니까?
【답】섭선법(攝善法)의 계는 일체의 보시들을 다 섭수한다.
이와 같아서 인욕 바라밀 등이 서로 섭수하는 것의 그 응하는 대로 짓는 것과 같다. 차별이란 보시 등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곧 여섯 가지의 보시가 되니, 이른바 보시의 보시와 계율의 보시로부터 지혜의 보시에 이르기까지이다. 다른 이에게 계속하여 보시 등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법을 의지한다고 함은, 여러 경이 보시 등에 여러 뜻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며, 보시 등의 여러 뜻은 있는바 여러 경에서 나타내 보이면서 곳곳에서 서로 섭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인이 된다고 함은, 이른바 보시가 계율을 가지는 등의 인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산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능히 계율 등을 행하기 때문이요, 계율을 가짐이 또한 보시 등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비구가 계율을 받아 지닌다면 그는 능히 모든 존재하는 것을 받지 않고 버리기 때문이요, 계에 머무는 자는 능히 인욕 등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또는 섭선법의 계를 받는 것은 보시들을 위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아서 인욕 등이 서로 인이 되어서 그의 응함을 따라 짓는다.
016_0906_b_04L釋曰六波羅蜜相成自有四義差別依法爲因相攝者畏施攝戒忍二度由此二度能與無畏故法施攝定智二度由此二度與法故俱施攝精進一度由此一度能行二施故戒攝幾種攝善法戒一切檀等皆攝如是忍等互攝其所應作差別者檀等六種卽爲六謂施施戒施乃至般若施於他相建立檀等故依法者所有諸經所有檀等諸義顯示所有檀等諸義所有諸經顯示處處相攝應知爲因者謂檀爲戒等因何以故不顧財者行戒等故戒亦施等因何以故比丘受護者能捨一切所有受故住戒者能具足忍等故又受攝善法戒爲檀等故如是忍等互爲因如其所應作
이와 같이 육바라밀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네 가지의 섭행(攝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b_21L如是說六波羅蜜義已次說四攝行偈曰

보시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리(同利)이다.
보시가 평등함과 그의 말과
건립(建立)과 또한 자행(自行)이다.
016_0906_b_22L布施將愛語
利行幷同利
施平及彼說
建立亦自行
016_0906_c_02L
【釋】‘네 가지의 섭행’이라 함은 첫째는 보시의 섭행이요, 둘째는 애어의 섭행이요, 셋째는 이행의 섭행이요, 넷째는 동리의 섭행이다.
‘보시가 평등하다’고 함은 곧 보시의 섭행이다.
‘그의 말’이라 함은 이른바 애어의 섭행이니 바라밀의 뜻을 설하기 때문이다.
‘건립’이라 함은 곧 이행의 섭행이니 중생들을 바라밀의 가운데 건립하기 때문이다.
‘자행(自行)’이라 함은 이른바 동리의 섭행이니 남을 건립하고서는 자기도 또한 이와 같이 행하기 때문이다.
016_0906_b_24L釋曰四攝者布施攝愛語攝利行攝同利攝施平者卽布施攝彼說者謂愛語攝說彼波羅蜜義故建立者謂利行攝建立衆生於波羅蜜中故自行者謂同利攝建立他已自亦如是行故
【문】무엇 때문에 이 네 가지의 섭행의 체를 말합니까?
【답】여기서는 남을 섭수하는 여러 방편을 말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c_07L何故說此四攝體此說攝他諸方便偈曰

남을 섭수하는 네 가지의 방편은
이것이 곧 네 가지 섭행의 성품이다.
섭수함을 따라 또한 섭취(攝取)하니
바로 전(轉)함과 따라 전함이다.
016_0906_c_08L攝他四方便
卽是四攝性
隨攝亦攝取
正轉及隨轉

【釋】‘보시의 섭행’이라고 함은 따라 섭하는 방편이니, 재물의 보시로 말미암아 남의 몸을 따라 섭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섭취하는 방편이니,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의혹하던 자가 뜻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이행(利行)의 섭행’이라 함은 바로 전(轉)하는 방편이니, 이 행으로 말미암아 여러 착한 데로 전하기 때문이다.
‘동리(同利)의 섭행’이라 함은 따라 전하는 방편이니, 보살이 자기가 말한 것과 같이 행하여서 중생이 알고서는 먼저 착함을 행하지 않던 이가 또한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문】네 가지 섭수행의 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c_10L釋曰布施者是隨攝方便由財施隨他身起攝故愛語者是攝取方便無知疑惑者令受義故利行者是正轉方便由此行諸善轉故同利者隨轉方便菩薩自如說行衆生知已先未行善亦隨行故四攝業云何偈曰

그릇을 이루게 하고 믿게 하고
행하게 하고 또한 알게 한다.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일을 짓는 것은
순서대로 네 가지 섭행의 업이다.
016_0906_c_17L令器及令信
令行亦令解
如是作四事
次第四攝業
016_0907_a_02L
【釋】보시의 섭행은 능히 법에 있어서 그릇을 이루게 하니, 재물에서 수순하면 법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믿음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의 뜻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행의 섭행이라고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행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과 같이 의지하여 행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동리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자신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니, 그것은 행이 청정해짐으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요익을 얻게 된다. 이를 네 가지 섭수하는 업이라고 이른다.
【문】세존께서 또한 두 가지의 섭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것을 이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c_19L釋曰布施者能令於法成器由隨順於財則堪受法故愛語者能令於法起信由教法義彼疑斷故利行者令於法起行由如法依行故同利者能令彼得解脫由行淨長時得饒益是爲四攝業世尊亦說二攝云何偈曰

네 가지의 체를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재물로 섭수하고 법으로 섭수함이다.
재물로 섭수함은 한 가지이고 법으로 섭수함은 세 가지이니
순서대로 네 가지 섭에 섭수한다.
016_0907_a_03L四體說二攝
財攝及法攝
財一法有三
次第攝四攝

【釋】이 네 가지의 섭의 체를 세존께서 다른 곳에서는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재물로 섭수함과 법으로 섭수함이다. 이 두 가지의 섭으로써 네 가지의 섭을 섭수하였으니, 재물의 섭행은 처음의 한 가지 섭을 섭수하였고, 법의 섭행은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다.
【문】무엇을 일러 뒤의 세 가지를 섭하였다고 합니까?
【답】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하는 것의 법이요, 둘째는 행하는 것의 법이요, 셋째는 청정한 것의 법이다. 그의 순서대로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7_a_05L釋曰此四攝體世尊餘處說爲二攝謂財攝法攝卽以二攝攝於四攝攝攝初一攝法攝攝後三攝云何攝後三法有三種所緣法行法所淨法如其次第攝後三攝應知偈曰

하(下)와 중(中)과 상(上)의 차별은
이와 같이 네 가지 섭수하는 종류이다.
배로 이익이 없음과 배로 이익이 있음과
또한 순수한 것을 합쳐서 세 가지 이익이라 한다.
016_0907_a_11L下中上差別
如是四攝種
倍無及倍有
亦純合三益

【釋】네 가지 섭행의 종류의 차별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하와 중과 상이다. 여러 보살이 3승 사람들의 차별을 섭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아 순서대로 다시 세 가지의 이익이 있으니, 첫째는 배로 이익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배로 이익이 있는 것이요, 셋째는 순수하게 이익이 있는 것이다.
‘배로 이익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10해(解)와 10행(行)의 지위에 있는 보살을 섭한다. 배로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큰 지(地)에 들어간 보살을 섭수한다. 순수하게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8지(地) 이상의 보살을 섭수한다. 결정적으로 능히 중생들을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7_a_13L釋曰四攝種差別有三謂下諸菩薩攝三乘人差別故由此三種差別次第復有三益倍無益有益純有益倍無益者謂解行地菩薩攝倍有益者謂入大地菩薩攝純有益者謂八地已上菩薩攝由彼決定能令衆生成就故偈曰

보살이 중생들을 섭수하고자 하면
이 네 가지의 방편을 의지해야 한다.
크게 이롭고 쉽게 이루며
찬양을 얻는 세 가지의 이익 때문이다.
016_0907_a_20L菩薩欲攝衆
依此四方便
大利及易成
得讚三益故
016_0907_b_02L
【釋】만일 모든 보살이 대중을 섭수하고자 하면 일체를 다 이 네 가지의 섭행을 의지해서 방편을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큰 이익이 성취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이 즐겁고 쉬운 방편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칭양(稱揚)하심을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7_a_22L釋曰若諸菩薩欲攝徒衆者一切皆須依此四攝以爲方便何以故由一切大利得成就故由是樂易方便故由得諸佛稱揚故偈曰

네 가지의 섭이 삼세에 있어서
항상 중생들을 섭한다.
중생들을 성취하는 길은
다름이 아니고 오직 네 가지의 섭이다.
016_0907_b_03L四攝於三世
恒時攝衆生
成就衆生道
非餘唯四攝

【釋】이 네 가지의 섭은 삼세에 있어서 이미 섭수하였고 마땅히 섭수할 것이며 현재에 일체의 중생들을 섭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네 가지의 섭은 이것이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길이어서 다른 여러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체가 없기 때문이다.
016_0907_b_05L釋曰此四攝於三世中已攝當攝現攝一切衆生是故此四攝是成熟衆生道非餘諸道餘道無體故
육바라밀과 네 가지의 섭행을 따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한 게송으로써 앞의 뜻을 총결(摠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7_b_08L別說六度四攝已次以一偈摠結前義偈曰

집착하지 아니함과 적정과
능히 참음과 뜻이 용맹함과
움직이지 아니함과 모양을 벗어남과
또한 섭함으로 중생들을 섭한다.
016_0907_b_09L不著及寂靜
能耐將意勇
不動幷離相
亦攝攝衆生

【釋】이 게송에서 위의 세 구절은 육바라밀의 뜻을 맺었으며, 아래의 한 구절은 네 가지 섭의 뜻을 맺었다. 게송의 뜻은 앞의 해석과 같다.
보살이 이 여섯 가지의 행으로써 이 네 가지의 섭을 행함은, 육바라밀의 성취로 자기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가지 섭의 성취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 순서대로 먼저 육바라밀을 말하고, 뒤에 네 가지의 섭을 말한 것이다.
016_0907_b_11L釋曰此偈上三句結六度義下一句結四攝義偈義如前解菩薩以此六行此四攝顯示六波羅蜜成就自利利他四攝成就亦爾是故如其次先說六度後說四攝
「도섭품」을 마친다.
016_0907_b_16L度攝品究竟
大乘莊嚴經論卷第八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