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 익힘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여섯 가지의 바라밀의 차별에 각자 여섯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기 성품이요, 둘째는 인(因)이요, 셋째는 과(果)요, 넷째는 업이요, 다섯째는 서로 응함이요, 여섯째는 품류(品類)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그에게 보시함과 함께 생각함과 두 가지가 이루어짐과 또한 두 가지를 포섭함과 함께 인색하지 않음에 머물기 때문과 법의 보시와 재산 보시와 두려움 없음의 셋이다.
016_0900_b_09L施彼及共思, 二成亦二攝, 具住不慳故,
法財無畏三。
016_0900_c_02L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에게 보시한다’고 함은 이는 보시의 자기 성품이니 자기의 물건으로써 모든 받는 이에게 베풀기 때문이다. ‘함께 생각한다’고 함은 보시의 인이니 탐함이 없는 선근으로 말미암아 생각과 더불어 함께 나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이루어진다’고 함은 보시의 과보이니 재물이 성취되고 몸이 성취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몸이 성취된다고 말한 것은 갖추어 목숨 등의 다섯 가지의 일을 섭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일은 경에서 설한 먹을 것을 베푸는 등의 다섯 가지의 일로서, 첫째는 목숨을 얻고, 둘째는 모습을 얻고, 셋째는 힘을 얻고, 넷째는 즐거움을 얻고, 다섯째는 변재(辯才)를 얻는다고 함이 그것이다. ‘두 가지를 포섭한다’고 함은 보시의 업이니 자기와 남이라는 두 가지를 섭수함이 만족하고 큰 보리가 만족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함께 인색하지 않음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함은 보시의 서로 응함이니 구족하게 인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머물기 때문이다. ‘법과 재물과 무외(無畏)의 세 가지’라 함은 보시의 품류이며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시(法施)요, 둘째는 재시(財施)요, 셋째는 무외시(無畏施)이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뜻을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익힐 줄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여섯 가지의 지(支)와 유(有)의 변(邊)을 멸함과 착한 길과 가짐 등과 복의 무더기가 구족하기 때문과 두 가지의 득이 두 가지가 된다.
016_0900_c_03L六支滅有邊, 善道及持等, 福聚具足故,
二得爲二種。
【釋】이 게송은 계 바라밀의 여섯 가지 뜻을 밝힌 것이다. ‘여섯 가지의 지(支)’라고 함은 계의 자기 성품이니, 구족계(具足戒)에 머묾으로써 학(學)을 받아서 여러 학이 구족하기 때문이다. ‘유(有)의 변(邊)을 멸한다’고 함은 계(戒)의 인(因)이다. 멸한다고 함은 곧 열반이니, 열반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유의 변을 건너서 계의 행함을 받기 때문이다. ‘착한 길’이라고 함은 계의 과보이니, 착한 길과 뉘우치지 않음 등의 차례의 다섯 가지 심주(心住)를 계로 인하여 얻기 때문이다. ‘가짐 등’이라 함은 계의 업이며 계에는 세 가지의 능함이 있다. 첫째는 능지(能持)이니 능히 일체 공덕을 마음대로 가짐으로 말미암아 대지(大地)와 같기 때문이요, 둘째는 능정(能頂)이니 능히 모든 번뇌의 불을 그치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셋째는 무외(無畏)이니 능히 일체 두렵고 미움 등의 모든 죄의 연기(緣起)를 일으키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온갖 죄를 일으킴을 두려워하겠는가? ‘복의 무더기가 구족하기 때문’이라 함은 계와 서로 응하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다 착한 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득(得)이 두 가지가 된다’고 함은 계의 품류이다. 두 가지의 득이라 함은 이른바 수득(受得)과 법득(法得)이다. 수득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보호에 포섭되고, 법득은 선(禪)의 보호와 무류(無流)의 보호에 포섭된다. 게송으로 말한다.
갚지 아니함과 참음과 지(智)의 성품과 큰 자비와 법에 의지함과 다섯 가지의 덕과 두 가지의 이익과 구족하고 뛰어남과 그 세 가지이다.
016_0900_c_20L不報耐智性, 大悲及法依, 五德幷二利,
具勝彼三種。
016_0901_a_02L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갚지 아니함과 참음과 지의 성품’이라고 함은 인욕의 자기 성품이니, 첫째는 갚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참음이요, 셋째는 지이다. 이 셋은 순서대로 세 가지 인욕의 자기 성품이다. 갚지 않는다고 함은 남의 헐뜯음을 참는 자기 성품이다. 참음이라 함은 괴로움을 편히 여기는 데 참는 자기 성품이다. 지(智)라 함은 법을 관찰하는 데 참는 자기 성품이다. ‘큰 자비와 법에 의지한다’고 함은 참는 인이니, 첫째는 큰 자비로 인을 삼고, 둘째는 법을 의지함으로 인을 삼는다. 법을 의지한다고 함은, 이른바 계를 받고 보고 들음이 많은 것이다. ‘다섯 가지의 덕’이라고 함은 참음의 과이니, 경에서 말하기를 참으면 다섯 가지의 과를 얻는다고 하였다. 첫째는 미워하고 질투함이 적음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남의 뜻을 무너뜨리지 않음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기뻐하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임종할 때에 뉘우치지 않음을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몸이 죽으면 하늘에 태어남을 얻는 것이다. ‘두 가지의 이익’이라 함은 참음의 업이니, 세 가지의 참음으로 말미암기에 능히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두 가지의 업을 짓는다. 경의 게송에서 말하기를 ‘그 두 가지의 뜻인 자기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함을 짓는다’고 하였다.
만일 남이 성냄을 알면 그에게 대해 스스로 쉬는 것이다. ‘구족하고 뛰어나다’고 함은 참음의 서로 응함이다. 행하기 어려운 것을 참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고 이르며, 가장 뛰어남을 구족한 것을 서로 응한다고 이른다. 경에서 말하기를 참음은 행하기 어려운 최상의 것이라 하였다. ‘그 세 가지’라 함은 참음의 품류이며 사람에게 세 가지의 품류가 있으니, 첫째는 남이 헐뜯는 것을 참음이요, 둘째는 괴로운 것을 편히 여기는 참음이요, 셋째는 법을 관하는 참음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착함에서와 바른 용맹에서와 믿음이 있고 욕망이 있기 때문과 염(念)이 더함과 대치함과 덕을 갖춤의 일곱 가지이다.
016_0901_a_16L於善於正勇, 有信有欲故, 念增及對治,
具德彼七種。
016_0901_b_02L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착함에서와 바른 용맹’이라고 함은 정진의 자기 성품이다. 다른 업 가운데의 용맹을 막기 때문에 착함이라고 말하고, 외도들의 해탈 가운데의 용맹을 제거하기에 바르다고 말한다. ‘믿음이 있고 욕망이 있다’고 함은 정진의 인이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하여서 정진이 일어남을 얻기 때문이다. ‘염이 더한다’고 함은 정진의 과이니 염(念)과 정(定)들의 공덕이 다시 정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치한다’고 함은 정진의 업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정진을 일으키는 자는 능히 즐겁게 머묾을 얻어서 온갖 악인 착하지 못한 법에 섞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덕을 갖춘다’고 함은 정진과 서로 응하는 것이니 탐함이 없는 등의 공덕을 갖춤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 가지’라 함은 정진의 품류이며 사람에게는 7품(品)의 정진이 있으니, 첫째는 계를 배우는 정진이요, 둘째는 선정을 배우는 정진이요, 셋째는 지혜를 배우는 정진이요, 넷째는 몸의 정진이요, 다섯째는 마음의 정진이요, 여섯째는 끊어짐이 없는 정진이요, 일곱째는 존중의 정진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마음이 머물고, 염이 나아가고 즐거움이 생겨나고, 또한 신통과 머묾 모든 법의 상수(上首) 그 종류가 세 가지요, 다시 세 가지이다.
016_0901_b_08L心住及念進, 樂生亦通住, 諸法之上首,
彼種三復三。
【釋】이 게송은 참선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마음이 머문다’고 함은 선정의 자기 성품이니 마음이 안에 머묾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염(念)이 나아간다’고 함은 선정의 인이니 염이 있기 때문에 인연이 있어서 잊지 아니하고 나아감에 의지한다. 그러기에 선정에서 일어남을 얻는다. ‘즐거움이 난다’고 함은 선정의 과이니 번뇌에서 떠나고 물러서는 방편이어서 떠나는 과가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통과 머문다’고 함은 선정의 업이니 신통이라 함은 다섯 가지의 신통을 이르고, 머문다고 함은 세 가지의 머묾을 이른다. 즉 성인에 머물고 하늘에 머물고 범행(梵行)에 머무는 것이니 선정이 능히 다섯 가지의 신통과 세 가지의 머무는 데 다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상수’라 함은 선정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삼마제(三摩提)는 모든 법의 상수라고 하였다. ‘종류가 세 가지요, 다시 세 가지’라고 함은 선정의 품류이며,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세 가지 품이 있으니, 하나는 깨달음이 있고 관이 있는 것과 깨달음은 없고 관이 있는 것과 깨달음도 없고 관도 없는 것의 세 가지 품이요, 또 하나는 기쁨을 함께 하고 즐거움을 함께 하고 버림을 함께 하는 세 가지 품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바로 선택함과 더불어 선정으로 가지는 것과 잘 해탈함과 혜명(慧命)을 말함 모든 법의 상수와 그에게 또한 세 가지가 있다.
016_0901_b_22L正擇與定持, 善脫及命說, 諸法之上首,
彼亦有三種。
016_0901_c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의 여섯 가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바로 선택한다’고 함은 지혜의 자기 성품이다. 삿된 업과 세간의 아는 것의 업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출세간의 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선정으로 가진다’고 함은 지혜의 인이니 선정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가지고 실답게 법을 알기 때문이다. ‘잘 해탈한다’고 함은 지혜의 과이니 이른바 염오된 데서 해탈을 잘 얻는다. 왜냐하면 세간과 세간을 벗어남과 크게 세간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바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혜명을 말한다’고 함은 지혜의 업이니 지혜의 목숨과 잘 말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지혜의 목숨이라고 함은 위없는 바른 선택으로써 생명을 삼기 때문이다. 잘 말한다고 함은 바른 법을 바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상수’라 함은 지혜와 서로 응함이니 경 가운데서 말하기를 반야라는 것은 일체 법 가운데의 최상이라 한 것이다. ‘또한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지혜의 품류이니 사람에게는 세간과 세간을 벗어남과 크게 세간을 벗어나는 세 가지 품이 있어서 바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섭행(攝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c_13L已說六波羅蜜差別。次說六波羅蜜攝行。偈曰:
일체의 희고 청정한 법은 어지러움과 정(定)과 함께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섯 가지의 바라밀은 종합하여 세 쌍(雙)이니 이 품류가 다 포섭한다.
016_0901_c_14L一切白淨法, 應知亂定俱, 六度摠三雙,
是類皆悉攝。
【釋】‘일체의 희고 청정한 법’이라 함은 이른바 보시 등의 여러 행법(行法)이니 그 행법이 총섭(摠攝)해서 세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어지러움이요, 둘째는 선정이요, 셋째는 어지러움과 선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어지러운 것이라 함은 앞에 있는 두 바라밀을 섭수한 것이니 보시 바라밀과 지계 바라밀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정(定)이라 함은 뒤의 두 바라밀을 섭수한 것이니 그것은 선정 바라밀과 지혜 바라밀은 정하여 있기 때문이요, 어지러움과 정함이 함께 한다고 함은 중간의 두 바라밀을 섭한 것이니 그것은 인욕 바라밀과 정진 바라밀은 정하기도 하고 정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섭행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치장(治障)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1_c_22L已說六波羅蜜攝行。次說六波羅蜜治障。偈曰:
보시 바라밀은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났으니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일곱 가지로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의 바라밀도 장애를 다스림은 일곱 가지가 다 그러하다.
016_0901_c_23L檀離七著故, 不著說七種, 應知餘五度,
障治七皆然。
016_0902_a_02L
【釋】‘보시 바라밀은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났으니 집착하지 않은 것도 일곱 가지로 말한다’고 함은 보시 바라밀에 집착하는 것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재(資財)에 집착하는 것이고, 둘째는 만완(慢緩)에 집착하는 것이고, 셋째는 편집(偏執)에 집착하는 것이고, 넷째는 보은(報恩)에 집착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과보(果報)에 집착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장애(障碍)에 집착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산란(散亂)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장애에 집착한다고 함은, 이른바 보시 바라밀에서 대치하는 탐욕과 수면(隨眠)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산란에 집착한다고 할 때 산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의(下意) 산란이니 소승을 구하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분별(分別) 산란이니 3륜(輪)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보시 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이 일곱 가지의 집착을 멀리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곱 가지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머지 다섯 가지의 바라밀도 장애를 다스리는 데 일곱 가지가 다 그러하다고 함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함은 계를 가짐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에 또한 각각 일곱 가지의 집착이 있으며, 일곱 가지의 집착을 벗어나기에 또한 각각 일곱 가지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차별이 있는 것은 보시 바라밀을 번복시켜서 자재에 집착함을 벗어나게 하고 계를 가짐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이 첫 번째의 집착을 벗어나게 한다. 이른바 계를 지킴으로써 계를 파괴하는 집착에서 벗어나고 참음으로써 성내는 집착에서 벗어나며, 정진으로써 게으름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선정으로써 산란(散亂)한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며, 지혜로써 어리석음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는 계를 가짐 등으로써 장애의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장애와 수면(隨眠)을 다 끊어 없애기 때문이요, 또는 계를 가짐 등으로써 분별의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그 3륜을 따라서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여섯 가지 바라밀의 치장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의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이 가운데서 먼저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a_19L已說六波羅蜜治障。次說六波羅蜜功德。此中,先說利他功德。偈曰:
항상 몸과 목숨을 버려서 구하기를 떠나고 남을 애민(哀憫)하기 때문이니 보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고 지혜는 보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a_21L恒時捨身命, 離求愍他故, 因施建菩提,
智攝施無盡。
016_0902_b_02L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몸과 목숨을 버린다’고 함은 이른바 모든 보살이 온갖 경우에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베풀어서 모든 구하는 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구함을 떠나고 남을 애민하기 때문’이라 함은 은혜에 보답함과 과보를 좋아함을 구하지 아니하고 큰 자비를 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보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운다’고 함은 이 보시로 인하여서 일체의 중생들을 3승(乘)의 보리로 건립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보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고 함은 이 보시가 분별이 없는 지혜를 섭수함이 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며 그 복이 다함없고 다함없게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항시 금계(禁戒)와 부지런함을 수호하여 계와 좋은 곳에 남을 여의며 계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계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b_09L恒時守禁勤, 離戒及善趣, 因戒建菩提,
智攝戒無盡。
【釋】이 게송은 계율을 지키는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금계와 부지런함을 수호한다’고 함은 보살에게 세 무더기의 청정한 계가 있으니, 첫째는 섭율의계(攝律儀戒)요,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요, 셋째는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다. 처음의 계는 금지함으로 체를 삼고, 뒤의 두 계는 부지런하고 용기가 있음으로 체를 삼는다. 여러 보살이 모든 경우에 항상 수호하기 때문이다. ‘계와 좋은 곳에 남을 여읜다’고 함은 이른바 계를 얻는 데 집착하지 아니하고 과보를 사랑함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남의 헐뜯음을 참으면서 구함과 두려움과 무능(無能)을 벗어난다. 인욕으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인욕을 포섭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b_17L恒時耐他毀, 離求畏無能, 因忍建菩提,
智攝忍無盡。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남의 헐뜯음을 참는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모든 경우에 만일 일체의 중생들이 온갖 극히 괴로운 일을 가지고 와서 보살을 헐뜯어도 보살은 다 능히 참고 받기 때문이다. ‘구함과 두려움과 무능을 벗어난다’고 함은 은혜에 보답함을 구하지 아니하고 선취(善趣)에 태어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포외(怖畏)를 위해서 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음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2_c_02L
항상 맹세코 부지런히 지어서 도적을 죽이는 것을 위없게 여기며 정진으로 인해서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정진을 포섭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02L恒時誓勤作, 殺賊爲無上, 因進建菩提,
智攝進無盡。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맹세코 부지런히 짓는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비교할 수 없이 정진을 닦는 것이다. 정진에는 두 가지의 자기 성품이 있으니, 하나는 큰 서원(誓願)으로 자기 성품을 삼는 것이요, 또 하나는 부지런한 방편으로 자기 성품을 삼는 것이다. ‘도적을 죽이는 것을 위없게 여긴다’고 함은 보살이 정진을 닦는 것은 다만 자기와 남의 번뇌의 도적을 죽여서 위없는 보리를 얻기 위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여러 선정을 익혀서 선정을 버리고 하처(下處)에 난다. 선정으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지혜가 선정을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10L恒時習諸定, 捨禪下處生, 因定建菩提,
智攝定無盡。
【釋】이 게송은 선정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여러 선정을 익힌다’고 함은 모든 보살이 끝없는 삼마제(三摩提)를 섭수하여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선정을 버리고 하처에 난다’고 함은 위없는 선정에 즐겁게 머묾을 버리고 와서 하열(下劣)한 곳에 태어남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자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참다움과 그 밖의 경계를 요달하여서 부처님께서 끊으시어 오히려 집착하지 않도록 하였다. 지혜로 인하여 보리를 세우니 자비가 지혜를 섭수하여 다함이 없다.
016_0902_c_17L恒了眞餘境, 佛斷尚不著, 因智建菩提,
悲攝智無盡。
016_0903_a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항상 참다움과 그 밖의 경계를 요달한다’고 함에서 참을 요달하는 것은 이른바 제일의제의 평등한 모양으로서 인(人)과 법의 두 가지 무아(無我)의 지혜를 이른 것이다. 그 밖의 경계라는 것은 이른바 끝없는 이름과 모양의 차별을 이른 것이다. ‘부처님께서 끊으시어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께서 끊으셨음은 이른바 열반이니, 여러 보살들이 지혜를 닦을 때에 오히려 부처님의 열반도 집착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생사를 구함이겠는가?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은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포섭하였으며, 무여열반의 공덕과 다함없는 지혜 바라문은 큰 자비로써 포섭하였기 때문이다. 항상 중생들을 버리지 않아 공덕이 다함없는 것이다.
여섯 가지의 게송은 따로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말한 것이다. 다음에는 한 게송으로써 통틀어 앞의 뜻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a_05L六偈別說利他功德已。次以一偈,摠說前義。偈曰:
넓고 크고 구함이 없음과 가장 뛰어남과 다함없는 하나하나의 바라밀에 네 가지의 덕이 다 동일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6_0903_a_06L廣大及無求, 最勝與無盡, 當知一一度,
四德悉皆同。
【釋】‘네 가지의 공덕’이라 함은 첫째는 넓고 큰 공덕이요, 둘째는 구함이 없는 공덕이요, 셋째는 가장 뛰어난 공덕이요, 넷째는 다함없는 공덕이다. 앞의 여섯 게송에서 첫 번째 글귀는 넓고 큰 공덕을 나타내었으니, 그것은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 글귀는 구함이 없는 공덕을 나타내었으며, 세 번째의 글귀는 가장 뛰어난 공덕을 나타내었으며, 네 번째의 글귀는 다함없는 공덕을 나타내었다. 또는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 다시 청정한 공덕이 있다. 게송으로 말한다.
얻어 봄과 원을 성취함과 구함과 아울러 세 가지의 기쁨이다. 보살의 기쁨은 서로 번복하니 그 물러섬은 자비가 극함이다.
016_0903_a_14L得見及遂願, 幷求合三喜, 菩薩喜相翻,
彼退悲極故。
【釋】이 게송은 보시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빌어 구하는 자가 보살에게는 세 가지의 기쁨을 내니, 첫째는 얻어 볼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소원을 성취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셋째는 보기를 구하고 수성을 구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보지 못하고 수성하지 못할 때에는 기쁨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온갖 경우에 빌어 구하는 자이기에 그 세 가지의 기쁨을 번복시켜서 또한 세 가지의 기쁨을 내니, 첫째는 얻어 볼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원을 수성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고, 셋째는 보기를 구하고 수성할 때에 기쁨을 내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마땅히 알 것은 구하는 자의 세 가지 기쁨이 보살의 세 가지 기쁨만 같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큰 자비를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3_b_02L
자기의 몸과 재물과 권속을 자비롭기 때문에 항상 기쁘게 보시한다. 그 세 가지 멀리 여의는 행을 어느 인(因)인들 금해 지키지 않으리오.
016_0903_b_02L自身財眷屬, 由悲恒喜施, 彼三遠離行,
何因不禁守。
【釋】이하는 계율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 게송은 몸의 세 가지 악한 행동을 밝힌 것이다. 보살이 자기의 몸과 재물과 권속 가운데서 큰 자비 때문에 항상 기쁘게 남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거든 하물며 남의 몸과 남의 재물과 남의 권속의 세 가지 멀리 떠나는 행에서 금하여 지키지 않겠느냐? 게송으로 말한다.
돌아보지 아니함과 평등과 두려움 없음과 또한 널리 베풂에 자비가 극하니 무슨 인연이 있어 남을 괴롭히고 허망하게 말하겠는가?
016_0903_b_09L不顧及平等, 無畏亦普施, 悲極有何因,
惱他而妄語。
【釋】이 게송은 망어(妄語)의 악한 행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무릇 망어를 일으키는 데 네 가지의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몸과 목숨에 연연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이익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두려움 때문에 임금의 법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재물을 구하는 것이니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살은 그러하지 않다. 첫째는 돌아보지 아니함이니 몸과 목숨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평등함이니 남의 몸과 자기의 얻음이 평등한 마음이기 때문이요, 셋째는 두려움이 없음이니 다섯 가지의 무서움을 벗어났기 때문이요, 넷째는 널리 베풂이니 일체의 물건으로 일체에 베풀기 때문이다. 보살은 자비와 애민(哀愍)이 항상 깊으니 다시 무슨 인이 있어서 망어를 일으키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평등하게 이익을 지으려고 큰 자비로 남의 괴로움을 두려워한다. 또한 부지런히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에 세 가지 말의 허물을 극히 멀리한다.
016_0903_b_19L平等利益作, 大悲懼他苦, 亦勤成熟生,
極遠三語過。
016_0903_c_02L 【釋】이 게송은 나머지 세 가지 말의 악한 행동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항상 평등하게 이익됨을 짓는다. 그러니 어찌 남의 권속을 무너뜨리고자 하여 거짓말을 하겠는가? 보살은 큰 자비로 항상 일체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려 하여서 남의 괴로움 가운데서 극히 두려움을 내거늘, 어찌 남을 괴롭히기 위하여 악구(惡口)를 짓겠는가? 보살은 항상 정근을 행하여 일체 중생들을 성숙시키고자 하거늘, 어찌 남을 성숙시키지 않게 하려 기어(綺語)를 짓겠는가? 그러기에 보살은 이 세 가지 말의 허물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널리 베풂과 자비가 있음과 극히 착한 연기(緣起)의 법이니 무엇으로 인하여 뜻의 땅에 세 가지의 번뇌를 능히 참지 못하겠는가?
016_0903_c_06L普施及有悲, 極善緣起法, 何因不能耐,
意地三煩惱。
【釋】이 게송은 뜻의 세 가지의 악한 행동을 멀리 여읨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일체의 물건을 널리 베풂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탐욕의 번뇌를 벗어나게 되고, 큰 자비로 말미암아 성내는 번뇌를 여의게 되고, 극히 착한 연기(緣起)의 법으로 말미암아 삿된 견해의 번뇌를 벗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의 파계(破戒)를 대치하는 차별이니, 이는 보살의 계가 청정한 공덕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손해 있는 자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을 얻고 괴로운 일에 기쁜 생각을 내서 보살이 이미 이와 같이 하거니 참는 이는 누구이며 무엇을 참지 못하리오.
016_0903_c_13L損者得益想, 苦事喜想生, 菩薩旣如是,
忍誰何所忍。
【釋】이 게송은 인욕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손해 있는 자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을 얻는다’고 함은 보살이 요익하지 못한 자에게 요익되겠다는 생각을 얻어서 마땅히 인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욕의 인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괴로운 일에 기쁜 생각을 낸다고 함은, 보살이 괴로움을 받는 일 가운데서도 다시 기쁘다고 생각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이롭게 하는 인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보살에게는 이미 요익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킬 것과 괴롭다는 생각을 일으킬 곳이 없다. 그러니 누구 쪽에서 참음을 일으키며, 무슨 일에서 참음을 일으키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에게는 남이라는 생각이 끊어져서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함보다 더한다. 남에 있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도 정진을 하면 곧 어려움이 없다.
016_0903_c_22L菩薩他想斷, 愛他過自愛, 於他難行事,
精進卽無難。
016_0904_a_02L 【釋】이 게송은 정진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이 남을 위하는 어려운 행에서 정진을 하면 어려움이 없음을 얻는다. 왜냐하면 남이라는 생각이 끊어졌으며, 항상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함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남을 위하여 정진하니, 어찌 다시 어려운 행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정진이 청정하다고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즐거움이 적음과 2승의 스스로 즐거움과 집착하고 물러서고 다하고 어리석으니 이를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이라 말하나 보살의 선정은 그를 뒤집는다.
016_0904_a_06L少樂二自樂, 著退盡癡故, 是說三人禪,
菩薩禪翻彼。
【釋】이 게송은 선정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즐거움이 적다’고 함은 이른바 세간의 선정이다. ‘2승의 스스로 즐겁다’고 함은 이른바 성문의 선정과 연각의 선정이다. ‘집착한다’고 함은 만일 세간의 선정이면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고 만일 2승의 선정이면 열반에 집착한다. ‘물러선다’고 함은 이른바 세간의 선정이다. ‘다한다’고 함은 이른바 2승의 선정이니 무여열반에 들어간 때에 다하기 때문이다. ‘어리석다’고 함은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은 응하는 대로 물든 어리석음이 있기도 하고 물든 어리석음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선정은 그를 뒤집는다’고 함은 이른바 세 가지 사람의 선정을 뒤집는 것이다. 즐거움이 많고 스스로 즐기고 남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요, 집착하지 아니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다함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이니, 이를 선정의 청정한 공덕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어둠 속에 부딪치고 두 등불이니 이와 같은 것은 세 가지 사람의 지혜이지만 비유하면 햇빛이 비치듯이 보살의 지혜는 견줄 데 없다.
016_0904_a_17L暗觸及二燈, 如是三人智, 譬如日光照,
菩薩智無比。
016_0904_b_02L 【釋】이 게송은 지혜 바라밀의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비유하면 어둠 가운데서 손으로써 물건을 부딪치듯이 범부들의 지혜는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얻은 경계를 적기 때문이요, 명료(明了)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항상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두 등불이 방 안의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성문의 지혜와 연각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얻은 경계를 적었기 때문이요, 점차 명료하기 때문이요, 극히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햇빛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보살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변만(遍滿)함을 얻기 때문이요, 명료하기 때문이요, 극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견줄 데가 없는 것을 보살의 지혜의 청정한 공덕이라고 이른다.
의(依)와 유(類)와 연(緣)과 회향과 인(因)과 지(智)와 전(田)과 의지(依止)이니 이와 같은 여덟 가지의 뛰어남은 더 위가 없는 뜻임을 마땅히 알아라.
016_0904_b_06L依類緣迴向, 因智田依止, 如是八種勝,
無上義應知。
【釋】‘여덟 가지의 위없다’고 함의 첫째는 의(依)요, 둘째는 유(類)요, 셋째는 연(緣)이요, 넷째는 회향이요, 다섯째는 인(因)이요, 여섯째는 지(智)요, 일곱째는 전(田)이요, 여덟째는 의지(依止)이다. 【문】이 여덟 가지가 여섯 가지의 바라밀에서 무엇을 일러 위없음을 얻는다고 합니까? 【답】보시의 의(依)라 함은 보살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유(類)라 함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건으로 보시함이니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요, 둘째는 두려움 없는 보시이니 악도의 생사의 두려움을 구제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법의 보시이니 대승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연(緣)이라 함은 큰 자비로써 연기를 삼기 때문이다. 보시의 회향이라 함은 큰 보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보시의 인(因)이라 함은 먼저 세상의 보시의 업이 종자를 훈습(薰習)함으로 인을 삼기 때문이다. 보시의 지(智)라 함은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3륜(輪)을 관찰해서 보시하는 자와 보시를 받는 자와 보시하는 물건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시의 전(田)이라 함에서 전에는 다섯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구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괴로운 사람이요, 셋째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요, 넷째는 악한 행을 하는 사람이요, 다섯째는 덕을 갖춘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는 덕을 갖춘 뛰어난 사람으로 위없음을 삼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시의 의지(依止)라 함은 세 가지의 의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향(信向)을 의지함이요, 둘째는 사유를 의지함이요, 셋째는 삼매를 의지함이다. 신향을 의지한다는 것은 분별의 닦음 가운데 신사유(信思惟)에서 말한 것이다. 사유를 의지한다는 것은 분별의 닦음 가운데 미사유(味思惟)와 수희사유(隨喜思惟)와 희망사유(希望思惟)에서 말한 것과 같다.
016_0904_c_02L삼매를 의지한다고 함은 이른바 금강장(金剛藏) 등의 정(定)에 의지하는 것이니, 세력의지(勢力依止)의 닦음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의지들은 다 같이 위없다. 그러기에 보시가 위없음을 얻는다. 보시의 여덟 가지 위없음과 같이 계 등의 다섯 가지 바라밀의 여덟 가지 위없음도 마땅히 그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계의 품류의 위없음은 이른바 보살계요, 인욕의 품류가 위없다는 것은 이른바 보살을 죽이려 온 자가 비하(卑下)하고 열약(劣弱)한 것이다. 정진의 품류가 위없다는 것은 이른바 여러 바라밀을 닦을 때에 대치하여 끊기 때문이요, 선정의 품류가 위없음은 이른바 보살의 삼마제요, 지혜의 품류가 더 위가 없다는 것은 여여(如如)의 경계를 반연하는 것이다. 계 등이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전(田)의 더 위가 없다는 것은 이른바 대승의 법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 바라밀의 위없음은 보시 바라밀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또는 보시 바라밀과 정진 바라밀에 다시 함께 하지 않는 차별의 공덕이 있다. 보시 바라밀의 차별은 어떠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하나에게 보시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고 많은 겁에 자기가 괴로움을 받는다. 버림을 숭상함은 사랑이 깊기 때문이니 어찌 하물며 이익으로 자신을 번복함이리오.
016_0904_c_14L施一令得樂, 多劫自受苦, 尚捨爲愛深,
何況利翻彼。
【釋】만일 모든 보살이 한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그가 즐거움을 얻게 하고 자기의 몸은 많은 겁 동안 가난하고 궁한 고통을 받더라도 오히려 보시하여 바람이 없다. 그것은 사랑이 깊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다고 함은 이른바 자비의 차별이다. 어찌 하물며 한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그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 자기의 몸이 많은 겁에 큰 복과 이익을 얻음이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비는 자에게 그가 바라는 대로 보살이 일체를 희사한다. 구함은 자기 몸을 위함이지만 자신을 이롭게 하여 백 가지로 보시한다.
016_0904_c_21L乞者隨所欲, 菩薩一切捨, 彼求爲身故,
利彼百種施。
016_0905_a_02L 【釋】이 게송의 위의 두 구절은 통틀어 말한 것이니, 그의 구함을 따라 보살이 다 희사하는 것이다. 아래의 두 구절은 해석한 것이니, 이른바 자신이 비는 것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일체를 얻고자 하지만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려고 하기에 백 가지를 다 희사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몸을 버려도 오히려 괴롭지 아니하거니와 어찌 하물며 나머지의 재물이겠는가? 출세간을 기쁘게 얻으니 괴로움을 일으킴, 이것이 위없다.
016_0905_a_04L捨身尚不苦, 何況餘財物, 出世喜得故,
起苦是無上。
【釋】보살은 몸을 버릴 때에도 괴로움을 내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은 보살이 세간을 벗어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왜냐하면 환희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이 기쁨은 어디로부터 얻는 것입니까? 【답】괴로움이 일어남을 따라서 얻는 것이다. 그러기에 괴로움을 일으키니, 이를 보살의 위없다고 이른다. 그러기에 보살은 세간을 벗어난 위에 있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비는 자는 일체를 얻어서 재물이 있지만 부자임을 보지 못하나 보살은 일체를 버려서 재물이 없지만 큰 부자임을 본다.
016_0905_a_17L乞者一切得, 有財非見富, 菩薩一切捨,
無財見大富。
【釋】이 게송은 보살의 재물이 다함없는 차별임을 나타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19L釋曰。此偈顯菩薩財無盡差別。偈曰:
비는 자는 일체를 얻지만 크게 요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보살은 일체를 버리지만 크게 요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016_0905_a_20L乞者一切得, 非大饒益想, 菩薩一切捨,
得大饒益想。
【釋】이는 보살의 큰 자비의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a_22L釋曰。此顯菩薩大悲差別。偈曰:
비는 자가 자재하게 취하는 것이 마치 길가의 과일을 취함과 같고 보살은 능히 크게 버리니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이 없다.
016_0905_a_23L乞者自在取, 如取路傍果, 菩薩能大捨,
餘人無是事。
016_0905_b_02L
【釋】이는 보살의 집착이 없는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016_0905_b_02L釋曰。此顯菩薩無著差別。
【문】보시의 함께 하지 못하는 공덕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정진의 함께 하지 못하는 공덕의 차별은 다시 일러줌이 어떠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5_b_03L問,說檀不共功德差別已。精進不共功德差別,復云何。偈曰:
뛰어남ㆍ인(因)ㆍ의지ㆍ업ㆍ종류 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뜻으로 정진에도 차별이 있다.
016_0905_b_05L勝因依業種, 對治等異故, 如是六種義,
精進有差別。
【釋】정진에 여섯 가지의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뛰어남의 차별이요, 둘째는 인의 차별이요, 셋째는 의지의 차별이요, 넷째는 업의 차별이요, 다섯째는 종(種)의 차별이요, 여섯째는 대치의 차별이다. 이 게송은 종합하여 든 것이요, 나머지의 게송은 따로 해석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백법(白法)은 정진이 우두머리가 되고 정진이 또한 뛰어난 인이다. 온갖 착한 법을 얻음에 미치어 정진이 의지가 된다.
016_0905_b_11L白法進爲上, 進亦是勝因, 及得諸善法,
進則爲依止。
【釋】이 게송은 정진의 뛰어난 차별과 인의 차별과 의지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백법은 정진이 우두머리가 된다’고 함은 가장 뛰어난 차별을 말한 것이니, 일체의 착한 법 가운데서 정진이 가장 뛰어남을 말한 것이다. ‘정진이 또한 뛰어난 인’이라 함은 인의 차별을 말한 것이니 정진이 위없는 인임을 말한 것이다. ‘온갖 착한 법을 얻는 데 미치어 정진이 의지가 된다’고 함은 의지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정진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착한 법을 얻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현재의 즐거움과 세간의 법과 세간을 뛰어넘은 법과 자재와 움직이고 고요함과 해탈과 보리 등 일곱 가지가 업이 된다.
016_0905_b_20L現樂與世法, 出世及資財, 動靜及解脫,
菩提七爲業。
016_0905_c_02L 【釋】이 게송은 정진의 업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이 업의 차별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법(現法)의 즐겁게 머묾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세간의 법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출세간의 법을 얻는 것이고, 넷째는 자재를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움직이고 고요함을 얻는 것이니, 움직이고 고요하다는 것은 이 세간이 구경에 이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여섯째는 해탈을 얻는 것이니, 해탈이라는 것은 신견(身見)을 끊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보리를 얻는 것이니, 보리라는 것은 큰 보리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더하고 덜함과 증상과 장애를 버림과 또한 참에 들어감과 전의(轉依)와 큰 이익의 여섯 가지는 정진의 종류라고 말한다.
016_0905_c_05L增減及增上, 捨障亦入眞, 轉依與大利,
六說精進種。
【釋】이 게송은 정진의 종류의 차별에 대해 말한 것이다. 종류의 차별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더하고 덜 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네 가지의 정근(正勤)과 두 가지의 악한 법은 감(減)하고 두 가지의 착한 법은 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증상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의 근(根)이 해탈의 법으로 말미암아 증상하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장애를 버리는 정진이니, 이른바 다섯 가지의 역(力)은 장애가 능히 걸리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넷째는 참에 들어가는 정진이니, 이른바 일곱 가지의 각분(覺分)이 견도(見道)로 말미암아 건립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전의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여덟 가지의 성도분(聖道分)이 수도(修道)로 말미암아 구경에 전의하는 인이 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크게 이익되는 정진이니, 이른바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종류에는 다시 다섯 가지의 다름이 있으니 큰 서원(誓願)과 장차 발행(發行)함과 아래가 없음과 움직이지 아니함과 다섯째의 말이 싫음이 없는 것이다.
016_0905_c_16L種復有五異, 弘誓將發行, 無下及不動,
第五說無厭。
016_0906_a_02L 【釋】‘다섯 가지의 다름’이라 함은 첫째는 큰 서원의 정진이니 이른바 새로이 일어나고자 하여 행을 일으킴이요, 둘째는 행을 발하는 정진이니 이른바 현재 여러 착함을 행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아래가 없는 정진이니 이른바 큰 과를 얻어서 아래의 체가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움직이지 않는 정진이니 이른바 춥고 더움 등의 괴로움에 능히 움직이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싫음이 없는 정진이니 이른바 적게 얻는 것으로써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는 경 가운데 말한 것에 큰 서원의 정진이 있고, 현재 일어나는 정진이 있으며, 용맹의 정진이 있고 견고한 정진이 있으며, 부처님의 도를 버리지 않는 정진이 있다. 모든 착한 법 가운데 그 순서와 같이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세 가지인 하와 중과 상은 3승으로 말미암아 그러하다. 또한 두 가지 하와 상의 깨달음이 있으니 이롭게 하는 데 소승과 대승이 있기 때문이다.
016_0906_a_04L三種下中上, 由依三乘爾, 亦二下上覺,
利有小大故。
【釋】정진은 사람을 의지하여 차별한다. 또는 세 가지와 두 가지를 말하니 세 가지라 함은 3승(乘)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하여 차별하는 것이니 그 순서대로 하(下)와 중(中)과 상(上)의 정진이 있다. 【문】무엇으로 인하여 다시 두 가지를 말합니까? 【답】하와 상의 깨달음이니, 하의 깨달음은 2승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하고, 상의 깨달음은 대승의 행하는 사람을 의지한다. 그 순서대로 소승의 이익과 대승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니, 자기를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며 남을 이익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재물에 집착하고 번뇌에 집착하고 싫어함에 집착하고 만족할 줄 아는 데 집착하니 네 가지의 집착이 물러설 수 없기에 대치하는 데 네 가지로 나눈다.
016_0906_a_13L財著煩惱著, 厭著知足著, 四著不能退,
對治分四種。
【釋】이 게송은 정진의 대치하는 차별에 대해 말한 것이다. 네 가지의 집착을 대치함으로 말미암기에 네 가지의 물러서지 아니함이 있다. 그래서 네 가지의 대치하는 차별을 말한 것이다. 【문】이것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보시 바라밀 등의 여러 행이 네 가지의 집착 때문에 장애가 되어서 행함을 얻지 못한다. 네 가지의 장애라고 함은, 첫째는 재물에 집착하는 것이니 재물에 있어서 극히 인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번뇌에 집착함이니 재물에 있어서 물듦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셋째는 싫어함에 집착함이니 보시 등의 행에 있어서 후퇴하여 굴복함이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만족할 줄 아는데 집착함이니 보시 등의 바라밀에 있어서 조금 베풀고도 기뻐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정진을 행하는 자가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집착을 대치하여야 능히 물러서지 않음을 얻는다. 그러기에 네 가지의 대치하는 차별을 말한 것이다.
이미 육바라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육바라밀의 서로 나타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a_23L已說六波羅蜜功德。次說六波羅蜜互顯。偈曰:
016_0906_b_02L
서로 섭수함과 차별과 법을 의지함과 또한 인이 되어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서로서로 이루어져서 일체의 종(種)을 분별한다.
016_0906_b_02L相攝及差別, 依法亦爲因, 六度互相成,
一切種分別。
【釋】육바라밀이 서로 이루는 데 스스로 네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서로 섭수함이요, 둘째는 차별이요, 셋째는 법을 의지함이요, 넷째는 인이 되는 것이다. ‘서로 섭수한다’고 함은 두려움이 없는 보시에 섭수함이니 계를 가짐과 인욕을 하는 두 가지의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려움 없음을 주기 때문이다. 법의 보시는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 바라밀을 포섭한다. 이 두 가지의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법을 주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음과 법의 두 가지 보시는 정진의 한 바라밀을 섭수한다. 이 한 바라밀로 말미암아 능히 두 가지의 보시를 행하기 때문이다. 【문】계율을 가짐은 몇 가지의 바라밀을 섭수합니까? 【답】섭선법(攝善法)의 계는 일체의 보시들을 다 섭수한다. 이와 같아서 인욕 바라밀 등이 서로 섭수하는 것의 그 응하는 대로 짓는 것과 같다. 차별이란 보시 등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곧 여섯 가지의 보시가 되니, 이른바 보시의 보시와 계율의 보시로부터 지혜의 보시에 이르기까지이다. 다른 이에게 계속하여 보시 등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법을 의지한다고 함은, 여러 경이 보시 등에 여러 뜻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며, 보시 등의 여러 뜻은 있는바 여러 경에서 나타내 보이면서 곳곳에서 서로 섭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인이 된다고 함은, 이른바 보시가 계율을 가지는 등의 인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산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능히 계율 등을 행하기 때문이요, 계율을 가짐이 또한 보시 등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비구가 계율을 받아 지닌다면 그는 능히 모든 존재하는 것을 받지 않고 버리기 때문이요, 계에 머무는 자는 능히 인욕 등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또는 섭선법의 계를 받는 것은 보시들을 위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아서 인욕 등이 서로 인이 되어서 그의 응함을 따라 짓는다.
이와 같이 육바라밀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네 가지의 섭행(攝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b_21L如是說六波羅蜜義已。次說四攝行。偈曰:
보시와 애어(愛語)와 이행(利行)과 동리(同利)이다. 보시가 평등함과 그의 말과 건립(建立)과 또한 자행(自行)이다.
016_0906_b_22L布施將愛語, 利行幷同利, 施平及彼說,
建立亦自行。
016_0906_c_02L 【釋】‘네 가지의 섭행’이라 함은 첫째는 보시의 섭행이요, 둘째는 애어의 섭행이요, 셋째는 이행의 섭행이요, 넷째는 동리의 섭행이다. ‘보시가 평등하다’고 함은 곧 보시의 섭행이다. ‘그의 말’이라 함은 이른바 애어의 섭행이니 바라밀의 뜻을 설하기 때문이다. ‘건립’이라 함은 곧 이행의 섭행이니 중생들을 바라밀의 가운데 건립하기 때문이다. ‘자행(自行)’이라 함은 이른바 동리의 섭행이니 남을 건립하고서는 자기도 또한 이와 같이 행하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 네 가지의 섭행의 체를 말합니까? 【답】여기서는 남을 섭수하는 여러 방편을 말한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6_c_07L問,何故說此四攝體。答,此說攝他諸方便。偈曰:
남을 섭수하는 네 가지의 방편은 이것이 곧 네 가지 섭행의 성품이다. 섭수함을 따라 또한 섭취(攝取)하니 바로 전(轉)함과 따라 전함이다.
016_0906_c_08L攝他四方便, 卽是四攝性, 隨攝亦攝取,
正轉及隨轉。
【釋】‘보시의 섭행’이라고 함은 따라 섭하는 방편이니, 재물의 보시로 말미암아 남의 몸을 따라 섭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섭취하는 방편이니,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의혹하던 자가 뜻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이행(利行)의 섭행’이라 함은 바로 전(轉)하는 방편이니, 이 행으로 말미암아 여러 착한 데로 전하기 때문이다. ‘동리(同利)의 섭행’이라 함은 따라 전하는 방편이니, 보살이 자기가 말한 것과 같이 행하여서 중생이 알고서는 먼저 착함을 행하지 않던 이가 또한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문】네 가지 섭수행의 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그릇을 이루게 하고 믿게 하고 행하게 하고 또한 알게 한다.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일을 짓는 것은 순서대로 네 가지 섭행의 업이다.
016_0906_c_17L令器及令信, 令行亦令解, 如是作四事,
次第四攝業。
016_0907_a_02L 【釋】보시의 섭행은 능히 법에 있어서 그릇을 이루게 하니, 재물에서 수순하면 법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애어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믿음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의 뜻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행의 섭행이라고 함은 능히 법에 있어서 행을 일으키니, 그것은 법과 같이 의지하여 행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동리의 섭행이라 함은 능히 자신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니, 그것은 행이 청정해짐으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요익을 얻게 된다. 이를 네 가지 섭수하는 업이라고 이른다. 【문】세존께서 또한 두 가지의 섭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것을 이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네 가지의 체를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재물로 섭수하고 법으로 섭수함이다. 재물로 섭수함은 한 가지이고 법으로 섭수함은 세 가지이니 순서대로 네 가지 섭에 섭수한다.
016_0907_a_03L四體說二攝, 財攝及法攝, 財一法有三,
次第攝四攝。
【釋】이 네 가지의 섭의 체를 세존께서 다른 곳에서는 두 가지의 섭으로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재물로 섭수함과 법으로 섭수함이다. 이 두 가지의 섭으로써 네 가지의 섭을 섭수하였으니, 재물의 섭행은 처음의 한 가지 섭을 섭수하였고, 법의 섭행은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다. 【문】무엇을 일러 뒤의 세 가지를 섭하였다고 합니까? 【답】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하는 것의 법이요, 둘째는 행하는 것의 법이요, 셋째는 청정한 것의 법이다. 그의 순서대로 뒤의 세 가지 섭을 섭수하였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하(下)와 중(中)과 상(上)의 차별은 이와 같이 네 가지 섭수하는 종류이다. 배로 이익이 없음과 배로 이익이 있음과 또한 순수한 것을 합쳐서 세 가지 이익이라 한다.
016_0907_a_11L下中上差別, 如是四攝種, 倍無及倍有,
亦純合三益。
【釋】네 가지 섭행의 종류의 차별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하와 중과 상이다. 여러 보살이 3승 사람들의 차별을 섭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아 순서대로 다시 세 가지의 이익이 있으니, 첫째는 배로 이익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배로 이익이 있는 것이요, 셋째는 순수하게 이익이 있는 것이다. ‘배로 이익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10해(解)와 10행(行)의 지위에 있는 보살을 섭한다. 배로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큰 지(地)에 들어간 보살을 섭수한다. 순수하게 이익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8지(地) 이상의 보살을 섭수한다. 결정적으로 능히 중생들을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보살이 중생들을 섭수하고자 하면 이 네 가지의 방편을 의지해야 한다. 크게 이롭고 쉽게 이루며 찬양을 얻는 세 가지의 이익 때문이다.
016_0907_a_20L菩薩欲攝衆, 依此四方便, 大利及易成,
得讚三益故。
016_0907_b_02L 【釋】만일 모든 보살이 대중을 섭수하고자 하면 일체를 다 이 네 가지의 섭행을 의지해서 방편을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큰 이익이 성취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이 즐겁고 쉬운 방편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칭양(稱揚)하심을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육바라밀과 네 가지의 섭행을 따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한 게송으로써 앞의 뜻을 총결(摠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07_b_08L別說六度四攝已。次以一偈,摠結前義。偈曰:
집착하지 아니함과 적정과 능히 참음과 뜻이 용맹함과 움직이지 아니함과 모양을 벗어남과 또한 섭함으로 중생들을 섭한다.
016_0907_b_09L不著及寂靜, 能耐將意勇, 不動幷離相,
亦攝攝衆生。
【釋】이 게송에서 위의 세 구절은 육바라밀의 뜻을 맺었으며, 아래의 한 구절은 네 가지 섭의 뜻을 맺었다. 게송의 뜻은 앞의 해석과 같다. 보살이 이 여섯 가지의 행으로써 이 네 가지의 섭을 행함은, 육바라밀의 성취로 자기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가지 섭의 성취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 순서대로 먼저 육바라밀을 말하고, 뒤에 네 가지의 섭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