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여의어 3유(有)1)를 뛰어넘으신 최승존(最勝尊)께 먼저 예배드리고 일체지(一切智)와 단 이슬[甘露] 같은 미묘한 법(法)에도 또한 예경하며
016_0947_b_04L前禮最勝尊, 離欲邁三有, 亦敬一切智,
甘露微妙法,
아울러 8배(輩)2) 성중(聖衆)으로서 때 없이 깨끗한 스님이신 부나협(富那脇) 비구와 미직(彌織) 등 여러 논사(論師)와
016_0947_b_06L幷及八輩衆, 無垢淸淨僧,
富那脅比丘, 彌織諸論師,
살바(薩婆)ㆍ실바(室婆) 대중과 우왕정도자(牛王正道者) 등 이러한 여러 논사들에게도 저희들 모두 예경하여 따릅니다.
016_0947_b_07L薩婆室婆衆,
牛王正道者, 是等諸論師, 我等皆敬順。
내가 이제 이 장엄론을 차례차례 해설하여 나타내리니, 듣는 이가 만족하여 이로부터 뭇 선(善)이 자라나며
016_0947_b_08L我今當次說, 顯示莊嚴論, 聞者得滿足,
衆善從是生。
귀의할 만하고 귀의하지 않아야 하며 공경할 만하고 공경하지 않아야 하는 그 가운데 선한 상(相), 악한 상을 마땅히 분별하여 설하리라.
016_0947_b_10L可歸不可歸, 可供不可供,
於中善惡相, 宜應分別說。
1
설(說)하여 말하겠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건타라국(乾陁羅國)의 어떤 장사꾼이 마돌라국(摩突羅國)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의 복판에 불탑(佛塔)이 하나 있었다. 장사꾼 무리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3)가 날마다 그 탑에 가서 공경히 예배를 드렸는데, 탑을 향해 가는 길의 여러 바라문(婆羅門)4)들이 이 우바새가 불탑에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모두 함께 비웃었다. 날씨가 매우 무덥던 어느 날 그 바라문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유롭게 밖으로 나와서 혹은 길 가운데 있거나 혹은 문 옆에 서 있으며, 씻는 사람도 있고 향을 바르는 사람도 있으며, 포행[行]을 하거나 앉아[坐] 있기도 했다.
016_0947_c_02L그때 마침 불탑에 예배드리고 돌아오는 우바새를 바라문들이 보고서 불러 자리에 앉히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저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과 비뉴천(毘紐天) 등에게 극진히 예경할 줄 모르고, 불탑에 예배하여 번뇌가 없기를 구하는가?”그때 우바새가 곧 답하여 말했다. “내가 세존의 공덕(功德)을 조금이나마 알기 때문에 불탑을 우러러 공경하고 예배할 뿐이오. 그대들의 천신은 어떤 도덕(道德)이 있길래, 나더러 저들에게 예배하라고 하는 것이오?”
삿된 소견 이미 자라나서 악을 찬탄해 선이라 여기니 이 악업으로 말미암아 큰 고보(苦報)를 받게 되리라.
016_0947_c_22L邪見旣增長, 歎惡以爲善, 以是惡業故,
後獲大苦報。
016_0948_a_02L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뜨고 손을 치켜들어 사납게 소매를 걷으며 화가 나서 싸울 듯이 달려들면서 말하였다. “이 어리석은 자야말로 불길하기 짝이 없구나. 우리의 천신을 공경하지 않고 그 누구를 공경한단 말인가?” 그때 우바새는 아주 여유 있는 태도로 말하였다. “나는 비록 혼자이지만 끝까지 도리(道理)로 대할 것이며, 그대들처럼 힘으로 다투어 설하지 않겠다.”
그때에 여러 바라문들이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어 말하되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에게 굴복하리라.
016_0948_b_16L時諸婆羅門, 撫掌大笑言: 是故汝癡人,
定墮於負處。
그때 우바새가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상하게 여겨 비웃지 말아라. 그대들이 ‘여래는 큰 공덕이 없고, 또한 큰 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망령된 말이니, 여래는 사실 여래로서 큰 공덕과 큰 힘이 있기 때문에 모든 주술을 아주 끊고 끝내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으시네.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해설하겠으니 자세히 들으시게.”
그때 바라문들이 이 게를 듣고는 성난 마음이 풀리어 우바새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제 묻고 싶은 것이 조금 있으니 화내지 마시오. 우바새여, 부처님께서 만약 나쁜 주술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으며,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또한 이익되게 할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큰 선인이라 하겠는가?” 우바새가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매우 자비로우셔서 끝내 악한 주술로써 중생들을 손감(損減)시키는 일이 없고 자기의 이익을 위하는 일도 없으시며, 다만 중생을 요익케 하기 위해 공양을 받으실 뿐이오.”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듣고는 곧 머리를 숙여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이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 우리도 신심을 내고 싶으니, 건타라여 좋은 점[勝處]을 잘 분별해 주시오. 그대가 이미 굳은 신심을 낸 것이 매우 드문[希有] 일이기 때문에 이제 그대를 찬탄하오. ‘건타라’라는 이름을 헛되이 세운 것이 아니리니, ‘건타’라는 말은 가짐[持]을 뜻하는 것인 바, 선을 가지고 악을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명호를 얻었을 것이오.”
016_0949_a_02L 이 신심의 바탕을 가진 이를 바로 훌륭한 장부라 이름하나니, 훌륭한 장부 중에도 뛰어난 이가
진실로 이 건타라이네.
016_0948_c_24L能持此地者, 是名善丈夫, 善丈夫中勝,
實是健陁羅。
그때 우바새는 생각하기를 ‘이 바라문들도 이제 신심을 내려고 하니 모두 그릇[器]을 이룰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제 다시 부처님의 공덕을 분별해서 설해야겠다’ 하고는, 즐거운 얼굴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부처님을 믿는 것을 보니 내가 매우 즐겁소. 그대들이 이제 조금이나마 나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공덕과 죄과를 마땅히 관찰하게 될 것이오.”
부처님의 공덕을 관찰하면 한 번만 보아도 다 만족하나니 계율ㆍ선정ㆍ지혜 그 모든 것이 부처님과 같을 이 없기 때문이라.
016_0949_a_09L觀察佛功德, 一見皆滿足, 戒聞及定慧,
無與佛等者。
산 중에는 수미산이 가장 높고 물로는 바다가 제일인 것처럼, 세간(世間)과 천인(天人) 가운데 부처님 따를 이 아무도 없네.
016_0949_a_11L諸山須彌最, 衆流海第一,
世閒天人中, 無有及佛者。
언제나 이 중생들을 위해서 일체의 고(苦)를 갖춰 받으시어 끝내 버려 두는 일 없이 반드시 해탈하게 하시네.
016_0949_a_12L能爲諸衆生,
具受一切苦, 必令得解脫, 終不放捨離。
그 누가 부처님께 귀의하고서 이익을 얻지 못한 이가 있으며 그 누가 부처님께 귀의하고서 해탈하지 못한 이가 있으며
016_0949_a_13L誰有歸依佛, 不得利益者, 誰有歸依佛,
而不解脫者。
그 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서 번뇌를 끊지 못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신통한 힘으로 모든 외도를 항복시키니
016_0949_a_15L誰隨佛教旨, 而不斷煩惱。
佛以神足力, 降伏諸外道,
이름이 두루하고 멀리 들리어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하고 부처님만이 사자 같은 소리로 모든 행에 나 없음[諸行無我]을 설하시네.
016_0949_a_16L名稱普遠聞,
遍滿十方剎, 唯佛師子吼, 說諸行無我。
설한 것이 항상 중도[中]에 처하여 양극단[二邊]에 집착하지 않으시니 천상과 인간에게 모두 이러한 말씀하셨건만
016_0949_a_17L所說恒處中, 不著於二邊, 天上及人中,
皆作如是說,
잘 분별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업보를 지을 뿐이라.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모든 나라에 탑묘(塔廟)를 세우네.
016_0949_a_19L不能善分別, 結使諸業報。
如來涅槃後, 諸國造塔廟。
이 세간에 장엄한 것이 허공의 별과 같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부처님이야말로 최승존(最勝尊)이시라.
016_0949_a_20L莊嚴於世閒,
猶虛空星宿, 以是故當知, 佛爲最勝尊。
여러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듣고는 신심을 내는 이도 있고, 출가하는 이도 있으며, 도를 얻은 이도 있었다.
016_0949_a_21L諸婆羅門聞是語已,有生信心者,有出家者,得道者。
016_0949_b_02L
2
다음으로 논(論)을 분별하겠다. 이른바 논이란 것은 곧 법(法)이다. 법에 대하여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하니, 잘 생각한다면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016_0949_a_23L復次,應分別論。所謂論者卽是法也。夫於法所宜善思惟,若能思惟則解其義。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교시가(憍尸迦)라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는 승가론(僧佉論)ㆍ위세사론(衛世師論)ㆍ야제쇄마론(若提碎摩論)6) 등 이러한 경론을 잘 분별해 알고 있었다. 그 바라문이 살고 있는 곳은 화씨성(華氏城) 안이고, 그 성 밖의 한 마을에 그의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 마을의 친구 집에 가니 때마침 친구는 볼일이 있어 나가고 없었다.
016_0949_c_02L처음에 한 번 읽을 때엔 미처 그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두 번째 읽고는 곧 나 없음[無我]과 저 외도들의 법이 아견(我見)과 변견(邊見)의 두 가지 소견에 집착해 있음을 깨달았고, 일체의 법에 대하여 나고 죽음[生滅]의 덧없음[無常]을 깊이 알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 말하길 ‘일체 외도의 논리는 죄다 생사(生死)의 법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오직 이 경전에만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의 법이 있구나’ 하였다.
환희심이 나서 갑자기 두 손을 쳐들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야 비로소 진실한 논리를 얻었구나, 진실한 논리를 얻었어.”그리하여 단정히 앉아 생각하며 그 이치를 깊이 깨달으니, 얼굴에 기쁜 빛이 나타나 마치 활짝 핀 꽃과 같았다.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야 비로소 생사에 얽매여 있음을 알았고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깨달았으며, 외도들이 말하는 모든 논설이 생사를 여의지 못한 매우 허황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탄식하여 말하였다. “불법은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실다워서 인(因)이 사라지면 곧 과(果)가 사라진다는 인과가 있음을 말하였으나, 외도의 법은 매우 허망(虛妄)해서 과는 있으나 인은 없다고 말하니, 끝내 인과를 깨닫지 못하고 해탈도 알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옛날을 돌아보건대 이상하고 우습기 짝이 없구나. 어떻게 외도의 법 속에서 생사의 바다를 건너려 하였고, 외도의 법으로부터 생사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려 했던가. 이는 마치 항하(恒河) 강물 속에 빠진 사람이 그 몸과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해서 닥치는 대로 휘어잡아도 결국 물에 빠진 그대로 죽고마는 것과 같다. 나도 또한 저 외도를 만나 생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 법 속에서는 도무지 해탈하는 출세간의 법이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생사의 강물에 빠진 그대로 이 좋은 몸과 목숨을 잃고서 3악도(惡道)에 떨어질 뻔하였다.
이제 이 논을 보고서야 생사를 벗어나는 길에 수순(隨順)하게 되니, 외도의 경론은 어리석고 미치광이 같은 말[語]로 96종(種) 모두가 허망할 뿐이고, 오직 부처님의 도법만이 지극히 참되고 바른 것이다. 6사(師)7)의 무리와 그 밖의 슬기롭다는 자들이 모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라 자칭하지만 그 역시 망령된 말이고, 오직 불세존만이 일체지를 구족한 이로서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을 뿐이다.”
외도들이 하는 일은 허망할 뿐 진실하지 않아, 마치 아이들이 장난으로 흙을 모아 쌓은 성을
016_0949_c_23L外道所爲作, 虛妄不眞實, 猶如小兒戲,
聚土作城郭。
016_0950_a_02L 사나운 코끼리가 한번 밟아버리면 여지없이 다 무너지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외도들을 깨뜨리는 것도 또한 그와 같네.
016_0950_a_02L醉象踐蹈之, 散壞無遺餘,
佛破諸外論, 其事亦如是。
그때 교시가 바라문은 불법에 대해 깊이 믿고 경외하는 마음을 내어 외도의 법을 버리고 삿된 소견을 제거하고서 밤낮으로 쉼없이 『십이연경』을 읽고 있었다. 그때서야 앞서 찾아갔던 친구가 다른 여러 바라문과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와 그 부인에게 물었다. “친구 교시가가 우리집에 왔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소.” 부인이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 바라문이 지난번에 경서를 빌려 달라기에 내가 무슨 경인지도 모르고 가져다 주었는데, 그가 책을 받아 앞에서부터 보고 뒤로부터도 보고, 손가락을 튀기며 찬탄했는가 하면, 기뻐하는 얼굴빛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는 곧 그곳으로 갔다. 교시가가 단정히 앉아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그대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016_0950_a_10L夫聞其言卽往其所。見憍尸迦端坐思惟,卽問之言:“汝於今者何所思惟?”
그때 교시가가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016_0950_a_12L時,憍尸迦說偈答曰: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3유(有)를 돌아다니는 것이 저 옹기전의 물레가 끝없이 돌고 도는 것과 같으니
016_0950_a_13L愚癡無智慧, 周迴三有中, 如彼陶家輪,
輪轉無窮已,
나는 12연(緣)과 해탈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네.
我思十二緣, 解脫之方所。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경에 대해 깊이 희유(希有)하다는 생각을 내지만, 나는 석종(釋種)으로부터 이 경을 얻었기 때문에 장차 그 글자를 물로 씻어 버리고 저 『비세사경(毘世師經)』을 베껴 쓰려 하네.” 교시가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친구를 꾸짖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어쩌자고 이 경을 물로 씻어 버리려 하는가. 이러한 묘법은 진금(眞金)으로 베껴 써서 보배함에 담아 갖가지로 공양해야 하네.”
설령 나에게 재보(財寶)가 있어 진금으로 탑을 만들고 칠보로 그 주위를 장식하며 보배 책상이랑 미묘한 책갑[巾帙]이랑
016_0950_a_22L設我有財寶, 以眞金造塔, 七珍用廁塡,
寶案妙巾帙,
모든 수승 장엄함을 다 갖추어 정성껏 이 경전을 공양하여 비록 이와 같은 불사를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나의 뜻에 만족하지 않으리.
016_0950_a_24L莊嚴極殊妙, 而用以供養,
雖作如是事, 尚不稱我意。
016_0950_b_02L
그 친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매우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경 안에 무슨 전에 없던 깊고 묘한 것이 있기에 그대가 하필이면 저 『비세사경』을 누르고 이 경을 진금과 갖가지 값진 보물로 공양하려 하는가?”교시가가 이 말을 듣고 나서 못마땅한 얼굴빛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그대는 지금 왜 불경을 이렇게까지 경멸하는가? 저 『비세사론』은 지극히 잘못이 많은데, 어떻게 부처님 말씀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비세사론』 따위는 법상(法相)을 모르고 인과(因果)에 착란을 일으켜서 병(甁)의 인과에 대한 가장 천근(淺近)한 법도 분별할 만한 지혜가 없거늘, 하물며 사람의 몸과 몸의 감관[身根]을 이해하고 인과의 의미를 깨달아 알겠는가?”
교시가가 말하였다. “『비세사론』에 그런 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도리에 맞지 않으니, 그대가 이제 생각해 보라. 가령 맨 처음에 실[縷]로 인하여 날[經]과 씨[緯]를 삼은 연후에 옷감을 짤 수 있는 것처럼, 병이나 항아리도 또한 그러하네. 먼저 병이 있기 때문에 그런 뒤에 병 조각이 있는 것이니, 만약 먼저 병이 없다면 어떻게 병 조각이 있겠는가. 또한 병 조각은 쓸모가 없지만 병이나 항아리는 쓸모가 있으니, 그러므로 병 조각은 인(因)이 될 수 없는 것이네. 현재 도공[陶師]이 진흙을 가지고 병을 만들지, 병 조각으로 병을 만들지 않는 것을 보시게. 또한 병이 파괴되어야만 병 조각이 있는 것을 보시게. 만약 병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병 조각이 있겠는가?”
016_0950_c_02L친구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처럼 이 『비세사론』이 전혀 도리(道理)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한갓 헛되이 힘을 써서 스스로 고통을 겪었을 뿐이란 말인가?” 친구와 함께 온 여러 바라문들도 이 말을 듣고서 마음에 근심이 생겨서 말하였다. “과연 그러하다면 『비세사론』을 오늘부터라도 믿지 말아야 하는가?”
교시가가 말하였다. “『비세사론』은 비단 지금에 와서 취하여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도 잘 관찰하는 이라면 으레 믿지 않았네. 왜냐 하면 옛날에 부처님의 10력(力)이 이 세간에 출현하지 않았을 때에는 일체 중생이 다 무명에 덮이고 가리어서 소경처럼 눈이 없었기 때문에 『비세사론』 따위를 그래도 광명이라 생각했지만, 부처님의 해[佛日]가 이미 출현하여 지혜의 광명이 널리 비추는 데야, 아무런 이치도 없는 『비세사론』은 당연히 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비유하자면 마치 부엉이가 밤이면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힘을 쓰지만 낮에는 구멍에 숨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비세사론』도 이와 같아서 부처님 해가 이미 출현한 이상 저 논은 쓸모가 없다네.”
교시가가 말하였다. “『승가경』은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한 것이 논의(論義)의 전부이니, 첫째는 다짐[誓]이요, 둘째는 원인[因]이며, 셋째는 비유[喩]요, 넷째는 같음[等同]이며, 다섯째는 결정(決定)이다. 그대여, 그러나 『승가경』 중에는 무엇 하나 분명하게 비유한 것이 없다네. 봉우(犎牛)8) 따위의 비유도 분명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법상(法相)을 어찌 명료하게 변론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승가경』에서 말하기를 ‘발라타나(鉢羅陁那)는 생겨나는 것이 아니면서도 항상 있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고 또 곳곳마다 갈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승가경』에서 말한 것처럼 발라타나가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면서도 그 본체가 항상 일체를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고 곳곳마다 갈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바로 많은 과오를 범하는 것이네. 왜냐 하면 3유(有) 가운데 어느 한 법(法)도 다만 물(物)을 생겨나게만 하고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 것은 없으니, 그 때문에 과오가 있는 것이네.
016_0951_a_02L다음으로 ‘모든 곳에 두루하고 곳곳마다 갈 수 있다’고 말한 것에도 과오가 있으니, 왜냐 하면 만약 먼저 두루하다면 어느 곳으로 갈 것이며, 또 갈 곳이 있다면 두루하다는 것이 곧 두루함이 아닌 것이니, 두 이론이 서로 어긋나서 그 뜻이 스스로 모순에 빠지네. 만약 이와 같다면 이는 곧 무상(無常)한 것이요, 그 경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면서 물을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고 곳곳마다 갈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네.”
친구인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 나서 교시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석종(釋種)과 한편[朋黨]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러나 불경 중에도 또한 큰 잘못이 있으니 ‘생사는 근본[本際]이 없다’라고 하고는, 또다시 ‘일체의 법 중에는 모두 나[我]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 교시가가 친구에게 말하였다. “내가 불법에는 생사의 근본이 없고 일체에 나가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 독실히 공경하여 믿는 것이네. 만약 어떤 사람이 나[我]가 있다고 계교한다면 끝내 해탈의 길을 얻을 수 없고, 나가 없음을 안다면 곧 탐욕이 없으리니 탐욕이 없기 때문에 바로 해탈할 수 있는 것이네. 만약 나가 있다고 계교한다면 곧 탐애(貪愛)가 있게 되고, 탐애가 있기 때문에 생사에 헤매게 되니, 어떻게 해탈의 길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만약 생사에 처음[初]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최초의 몸은 선악을 좇아서 이 몸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선악에 관계없이 자연히 태어난 것일까? 만약에 선악을 좇아서 얻은 몸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몸이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선악에 관계없이 이 몸을 얻었다고 한다면 이 선악의 법은 어떻게 있게 되었을까? 이와 같은 것들을 그대의 법에서라면 ‘절반은 인(因)으로부터 태어나고 절반은 인으로부터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할 것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네. 우리 불법에서는 ‘처음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에 잘못이 없네.”
여러 바라문들이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나가 없다면 누가 뒷세상[後世]의 몸을 받는 것인가?”
016_0951_b_05L諸婆羅門復作是言:“若無我者,誰至後世?”
그러자 교시가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전생[過去]에 지은 번뇌의 업을 따라 현재의 몸과 그 몸의 모든 감관[根]을 얻고, 현재에 지은 모든 업을 따라 이 인연으로 미래의 몸과 그 몸의 모든 감관을 얻는 것이오. 내가 이제 비유를 들어 이 이치를 분명히 말하겠소. 예컨대 곡식의 종자가 뭇 인연의 화합으로 싹을 틔우지만 사실은 이 종자가 그대로 있으면서 싹이 튼 것이 아니고 종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싹이 돋아났으니, 종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언제나 있는 것[常]이 아니오. 싹이 돋아나기 때문에 아주 없어지는 것[斷]도 아닌 것처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몸을 받는 이치도 그러하여 비록 나라는 것은 없어도 그 업보만은 잃어 버리지 않는 것이오.”
교시가가 대답하였다. “생각[念]과 느낌[覺]이 마음[心]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에 삼세(三世)9)의 일을 다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네.”
016_0951_b_17L答曰:“以有念覺與心相應,便能憶念三世之事而不忘失。”
또 물었다. “만약 ‘나가 없다’고 한다면,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현재의 마음은 생겨나서 나고[生] 사라짐[滅]이 이미 다른데, 어떻게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가?”
016_0951_b_19L又問:“若無我者,過去已滅現在心生,生滅旣異,云何而得憶念不忘?”
016_0951_c_02L교시가가 대답하였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식(識)이 씨앗[種子]이 되어서 모태(母胎)라는 밭에 들어가고, 사랑의 물[愛水]이 적셔 주어서 한 몸의 나무가 자라나 태어나는 것이니, 마치 호도(胡桃) 씨가 유(類)를 따라 생기는 것과 같네. 이 음(陰)이 업(業)을 지어 뒤의 음[後陰]을 얻지만, 그러나 이 앞의 음[前陰]이 뒤의 음을 직접 내는 것은 아니고, 업의 인연 때문에 뒤의 음을 받는 것이니, 나고[生] 없어짐[滅]이 비록 다르지만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것이네. 마치 어린아이가 병이 나서 약을 유모에게 먹이면 아이의 병이 낫는 것은, 유모가 비록 어린아이는 아닐지라도 약의 힘이 아이에게까지 미쳐서 그런 것처럼, 음(陰)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업력(業力)이 있으므로 곧 뒤의 음을 받아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네.”
여러 바라문들이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읽은 경에서는 다만 ‘무아법’만 말했을 뿐인데, 어쩌면 그대는 이제 그 이치까지 깨달아서 환희심을 내는가?”
016_0951_c_05L諸婆羅門復作是言:“汝所讀經中但說無我法,今汝解悟生歡喜耶?”
그때 교시가가 곧 그들을 위해 『십이연경』을 외우면서 말해 주었다. “무명(無明)은 행(行)을 반연하고, 행은 식(識)을 반연하며, 내지 태어남[生]은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을 반연하나니,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내지 늙고 죽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다 사라지는 것이네. 이것은 다 뭇 인연을 따를 뿐 아무런 주재(主宰)가 없으니, 곧 그 가운데서 ‘나 없음’을 깨달은 것이지 비단 경의 문장에서 ‘나 없음’을 설한 것만은 아니네. 다시 말하면 몸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있고, 몸과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감관의 작용이 있어서 인식하기도 하고 분별하기도 하는 것이니, 내가 이러한 일을 통달해 알았기에 곧 ‘나 없음’을 깨달은 것이라네.”
또 물었다. “만약 그대의 말처럼 나고 죽어 몸을 받음이 서로 계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면 설령 몸에 대한 고집[身見]이 있다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016_0951_c_14L又問:“若如汝言,生死受身相續不斷,設有身見有何過咎?”
대답하였다. “몸에 대한 고집 때문에 모든 업을 지어서 5취(趣)10) 가운데 선악의 몸을 받으니, 나쁜 형상으로 태어나는 그때에 모든 고뇌를 받는 것이네. 만약 몸에 대한 고집을 끊으면 모든 업을 일으키지 않으니, 모든 업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몸을 받지 않으며, 몸을 받지 않기 때문에 뭇 근심[患]이 아주 없어져 열반을 얻을 수 있는데, 어떻게 ‘몸에 대한 고집이 허물이 아니다’라고 말하겠는가? 다시 말하면, 만약에 ‘몸에 대한 고집이 허물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나고 죽음도 없어서 3유(有)에서 나고 죽는 고뇌도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허물이 있는 것이네.”
그때 바라문들이 12연(緣)의 뜻을 거꾸로[逆], 바로[順] 관찰하고는 깊이 신심을 내어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품고 간략히 불법을 찬탄하여 게를 설하였다.
016_0951_c_22L時,婆羅門逆順觀察十二緣義,深生信解,心懷慶幸,略讚佛法,而說偈言:
016_0952_a_02L 여래께서 세간에 계실 때 법을 설하여 모든 의론 부수고, 부처님 해가 세간을 비출 때
삿된 무리들 다 숨어 버리네.
016_0951_c_24L如來在世時, 說法摧諸論, 佛日照世閒,
群邪皆隱蔽。
우리들 이제 그 남기신 법을 만나 세존 앞에 있는 듯하니 석종(釋種) 중에도 가장 뛰어난 이로서 모든 법상(法相)을 깊이 깨달으셨네.
016_0952_a_03L我今遇遺法, 如在世尊前,
釋種中勝妙, 深達諸法相。
이른바 여래라 함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으니 거꾸로 바로 모든 법을 관하신 그 명성 두루하고도 가득하다.
016_0952_a_04L所言如來者,
眞實而不虛, 逆順觀諸法, 名聞普遍滿。
부처님 열반하신 곳을 향해 공경히 합장 예배하면서 진실로 대비심을 가지신 불ㆍ세존께 찬탄을 올리며
016_0952_a_05L向佛涅槃方, 恭敬合掌禮, 歎言佛世尊,
實有大悲心。
모든 선인 중에 가장 뛰어나사 세간에 다시 짝할 이 없으신 견줄 것 없는 계율ㆍ선정ㆍ지혜 앞에 저희들은 귀의합니다.
016_0952_a_07L諸仙中最勝, 世閒無倫疋,
我今歸依彼, 無等戒定慧。
교시가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제 어쩌면 그렇게도 부처님의 공덕을 깊이 깨달았는가?”
016_0952_a_08L憍尸迦言:“汝今云何乃爾深解佛之功德?”
친구가 대답하였다. “우리도 이제 이 법을 들었기에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알았네. 마치 칠흑같이 검으면서 윤기가 반드르르한 침수향(沈水香)을 사르면 깊은 향내가 멀고 가까운 곳에 다 풍기는 것처럼, 우리가 여래의 선정과 지혜와 몸만 보아도 곧 세존께 큰 공덕이 있음을 아는 것이네. 우리가 지금 비록 부처님을 직접 뵙지는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성스러운 자취를 본다면 곧 가장 훌륭하신 분임을 알 수 있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꽃못[花池] 가에서 코끼리의 발자국을 보고는 얼마나 큰지를 아는 것과 같네. 비록 부처님을 뵙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인연론을 보고서 부처님의 성스러운 자취와 공덕을 알았네.”
친구가 깊은 믿음과 깨달음을 낸 것을 보고는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칭찬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예전부터 외도의 경전을 읽어 외운 것이 매우 많았을 텐데, 이제 불경을 잠깐 동안 듣고서 그 깊은 이치를 깨달아 외도의 경전을 죄다 버린다는 것은 지극히 드믄 일이네.”
삿된 소견의 논을 제거하고 바르고도 참된 법을 믿고 깨달은 이런 사람 얻기 어려우니 그러므로 드문 일이라고 칭탄하네.
016_0952_a_21L除去邪見論, 信解正眞法, 如是人難得,
是故歎希有。
다만 그대를 칭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외도의 여러 논들도 칭탄하니 그 이치가 비루하고 얕음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모두 떠나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네.
016_0952_a_23L不但歎於汝, 亦歎外諸論,
因其理鄙淺, 我等悉捨離。
016_0952_b_02L “저 외도들의 논은 다 잘못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로 하여금 싫어서 떠나도록 하고 불경을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게 하였으니, 부처님이야말로 견줄 이 없는 대인이시라, 그 명칭이 널리 시방 불찰에 두루하지만 외도의 삿된 논은 앞뒤로 잘못이 있어서 오히려 아첨하는 말 같은데 무슨 변론할 것이 있겠나. 그러나 그 잘못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로 하여금 외도를 버리고 불법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마치 봄여름에는 사람들이 더운 것을 싫어하여 여의고 싶어하다가도 겨울이 되면 다시 생각하는 것처럼, 외도의 여러 논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여름날의 태양처럼 진실로 응당 버리고 여의어야 하지만 이 논으로 말미암아 불법을 믿는 마음을 내게 되었으니 또한 겨울날에 저 태양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네.”
교시가가 말하였다. “이제 일체의 삿된 논을 버리고 불법을 따라 출가하여 도를 배워야 할 것이네. 왜냐 하면 캄캄한 밤중에 큰 횃불을 켜면 일체의 비둘기[鴿鳥]들이 죄다 떨어지는 것처럼, 부처님 지혜의 등불이 이미 세상에 나왔으니 일체의 외도들은 모두 굴러 떨어져야 마땅하네. 그러므로 이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하네.”
이에 교시가는 친구의 집을 나와서 곧 승방(僧坊)11)을 찾아가 출가하길 구하였고, 출가한 뒤에는 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얻었으니, 무슨 인연으로 이 일을 설한 것인가? 모든 외도들은 항상 삿된 의론에 홀리고 현혹되어 있기 때문에 『십이연경』을 설해서 그들의 주장을 논하여 꺾어 부순 것이다.
다음으로 복밭[福田]을 취하는 것이니, 그 덕을 취할 뿐 늙고 젊음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016_0952_b_20L復次,夫取福田當取其德,不應簡擇少壯老弊。
016_0952_c_02L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단월(檀越)12)이 알고 지내던 도인(道人)13)을 승가람(僧伽藍)14)에 보내어 뭇 스님들을 초청하는데 늙은이만을 청하고 젊은이들은 제외하게 하니, 뒤에 그 도인이 뭇 스님들을 청함에 사미(沙彌)의 차례에 이르러서는 시주의 말대로 제외하였다. 사미가 말하였다. “어째서 우리들 사미는 초청하지 않습니까?” 답하였다. “시주가 청하지 않은 것이지 내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016_0953_a_02L 그때에 사미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야차(夜叉)16)도 아니고 나찰(羅刹)17)도 아니오. 먼젓번에 시주께서 늙은이만을 선택하여, 복밭이신 스님들에게 높고 낮음이 있다는 생각을 내서 그대의 선근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았기에 이런 모습을 변화로 지어 그대로 하여금 뉘우쳐 고치게 하려는 것이오.”
마치 저 모기가 큰 바닷물을 다 마시려는 것처럼, 세간의 그 누구도 스님들의 공덕을 측량할 이 없고
016_0953_a_04L譬如蚊子嘴, 欲盡大海底, 世閒無能測,
衆僧功德者,
그 밖의 일체 중생도 스님들의 공덕을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대가 혼자 몸으로 저 공덕을 측량하려 하는가.
016_0953_a_06L一切皆無能, 籌量僧功德,
況汝獨一己, 而欲測量彼?
사미가 다시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뭇 스님들의 늙고 젊은 형상을 비교해 헤아리지 말아야 하오. 모름지기 법을 구하는 이는 형상을 볼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지혜를 보아야 할 것이니, 몸은 비록 어리더라도 모든 번뇌를 끊고 거룩한 도(道)를 얻은 이가 있는 반면, 아무리 늙어도 방일(放逸)하면 이를 어리다 하오. 그대가 한 일은 매우 옳지 못하니, 만약에 손톱으로 온 바닷물을 찍어내려고 한다면 그럴 수가 없는 것처럼, 그대의 지혜로 복밭을 측량해서 높고 낮음을 알려고 하는 것도 역시 그럴 수가 없는 것이오.
그대는 여래께서 ‘왕자와 뱀과 불과 사미 등 이 네 가지는 그 어느 것도 얕볼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이오. 또 세존께서 암라과(菴羅果)18)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길 ‘안이 생 것이라도 밖은 익었거나 밖이 생 것이라도 안은 익은 것처럼, 앞사람의 장단점을 헤아려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한 생각 중에 도를 얻을 수도 있노라’라고 하셨으니, 이런 것에 비추어 볼 때 이제 그대의 한 일은 매우 큰 잘못이 있소. 그대가 만약 의심이 있거든 지금 다 물을 것이고, 오늘 이후로는 복밭이신 스님들에 대해 다시는 차별된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오.”
그대들은 큰 지혜가 있어 모든 의심의 그물을 끊었으니 내가 만약 자문(諮問)하지 않는다면 지혜 있는 이라 할 수 없으리.
016_0953_b_17L汝有大智慧, 以斷諸疑網, 我若不諮問,
則非有智者。
그때에 사미가 곧 답하여 말하였다. “마음대로 물으시오. 모든 것을 말해 주겠소.” 시주가 물었다. “대덕(大德)이시여, 부처님과 스님 중에 누구를 공경하고 믿는 것이 더 수승(殊勝)합니까?” 사미가 답했다. “그대는 삼보(三寶)가 있음을 모르오?” 시주가 말하였다. “저도 이제 삼보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러나 삼보 중에 어찌 가장 좋은 하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사미가 답했다. “우리는 부처님과 스님에 대하여 더하고 덜함을 따지지 않소.”
016_0953_c_02L
대성(大姓)의 바라문인 돌라사(突羅闍)가 그 어떤 비방이나 칭찬에도 다름이 없으신 부처님께 독약 섞은 음식을 보시했으나,
016_0953_c_02L大姓婆羅門, 厥名突羅闍, 毀譽佛不異,
以食施如來。
삼계(三界)의 그 누구도 소화시킬 수 없는 그 음식을 여래는 받지 않으시고 그대로 물 속에 던져 두시니, 연기와 불꽃이 동시에 일어났네.
016_0953_c_04L如來旣不受, 三界無能消,
擲置於水中, 煙炎同時起。
구담미(瞿曇彌)가 옷을 받들어 보시했으나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에게 보시하라고 분부하셨으니 이러한 인연을 보더라도 삼보는 동등하여 다름이 없다네.
016_0953_c_05L瞿曇彌奉衣,
佛勅施衆僧, 以是因緣故, 三寶等無異。
그때에 시주가 이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에 부처님과 스님이 동등하여 다름이 없다면, 어째서 음식을 물 속에 던져 두고 스님들에게는 주지 않으셨습니까?” 사미가 답하였다. “여래께서는 음식에 대해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여러 스님들에게 덕력(德力)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을 뿐이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이 음식은 삼계 중에 그 누구도 소화시킬 수 있는 이가 없음을 관(觀)하시고 물 속에 던져 두자 곧 그 물에서 불꽃이 일어났기 때문이오. 그러나 구담미가 옷을 받들어 부처님께 드리자, 부처님은 도리어 스님들에게 주셨는데, 스님들이 받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하오. 스님에게 큰 덕이 있고 큰 명칭을 얻었다면, 부처님과 스님은 다름이 없는 것이오.”
016_0954_a_02L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시주여, 그대는 경전에 있는 아니로두(阿尼盧頭)ㆍ난제(難提)ㆍ금비라(黔毘羅) 이 세 족성자(族姓子)를 듣지 못하였는가? 귀신의 대장인 가부(伽扶)가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일체 세계의 하늘이건 사람이건 마군이건 범천이건 간에 이 세 족성자를 지극한 마음으로 염(念)하는 이는 모두 이익과 안락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스님 가운데 세 사람만 염하여도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대중들이겠소.”
2)소승들이 수행하여 과(果)를 증득하는 네 가지 계위(階位)인 4향(向)과 4과(果)의 성자(聖者)를 말한다.
3)7중(衆) 가운데 하나로, 속가에 있으면서 부처님을 믿는 남자를 말한다. 착한 일을 하고, 선사(善士)를 섬기며, 3귀계(歸戒)를 받고 5계를 지니는 사람이다.
4)인도의 4성(姓) 가운데 최고 지위에 있는 종족으로, 승려 계급을 말한다. 임금보다 윗자리에 있으며, 신(神)의 후예라 자칭하여 신의 대표자로서 권위를 떨치는데, 만일 이것을 침해하는 이는 신을 침해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5)수미산의 남쪽에 있으며 7금산과 대철위산의 중간, 짠물 바다에 있는 대주(大洲)의 이름. 염부 나무가 번성한 나라라는 뜻이다.
6)모두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외도(外道)들이다.
7)육사외도(六師外道)로 석존 당시에 가장 세력이 크던 6인의 철학자를 말하며, 다음과 같다. ① 부란나가섭:선악 행위와 그 보응(報應)을 부정함. ② 말가리구사리자:운명론자로 불교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라 한다. ③ 산사야비라지자:궤변론(詭辯論), 회의설(懷疑說). ④ 아기다시사흠바라:유물론, 쾌락설. ⑤ 가라구타가전연:유물론적인 주장. ⑥ 니건타야뎨자:자이나교.
8)들소의 한 종류로 등 위의 살이 솟아올라 낙타의 육봉(肉峯)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9)과거ㆍ현재ㆍ미래, 또는 전세(前世)ㆍ중세(中世)ㆍ내세(來世), 또는 전제(前際)ㆍ중제(中際)ㆍ후제(後際)를 말한다. 세(世)는 격별(隔別)ㆍ천류(遷流)의 뜻이다. 현상계의 사물은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생기면 반드시 멸하니, 사물의 천류하는 위에 삼세를 거짓[假]으로 세운 것이다.
10)5악취(惡趣)ㆍ5도(道)ㆍ5유(有) 라고도 한다. 취(趣)는 중생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나아가는 곳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다섯 가지가 있다.
11)스님들이 거주하는 사암(寺庵).
12)보시(布施)를 행하는 사람.
13)여기서는 불도(佛道)에 들어간 사람으로, 곧 출가한 수행자를 말한다.
14)본래는 승가람마(僧伽藍摩)이며 줄여서 가람(伽藍)이라고도 하니, 중국말로는 중원(衆園)이라 번역한다. 스님들이 있는 원정(園庭)으로, 사원의 통칭이다.
15)오래도록 쌓은 덕망, 혹은 전생에 쌓은 복덕(福德).
16)8부중(部衆) 가운데 하나로 약차(藥叉), 열차(閱叉)로도 음역하며, 중국말로는 위덕(威德)ㆍ포악(暴惡)ㆍ용건(勇健)ㆍ귀인(貴人)ㆍ첩질귀(捷疾鬼)ㆍ사제귀(祠祭鬼)라 번역한다. 나찰과 함께 비문사천왕의 권속으로 북방을 수호한다.
17)라찰사(羅刹娑)ㆍ라차사(囉叉娑)로도 음역하며, 중국말로는 가외(可畏)ㆍ호자(護者)ㆍ속질귀(速疾鬼)ㆍ식인귀(食人鬼)라 번역한다. 악귀(惡鬼)의 이름으로 야차와 함께 비문사천의 권속이라 하며, 혹은 지옥에 있는 귀신이라고도 한다.
18)망고 나무의 열매.
19)부처님께만 있는 열 가지 심력(心力)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는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둘째는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셋째는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넷째는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다섯째는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여섯째는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일곱째는 변취행지력(邊趣行智力), 여덟째는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아홉째는 사생지력(死生智力), 열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
20)인도의 서북부를 흐르는 큰 강으로 지금의 인더스강을 말한다.
21)승보는 교법(敎法)을 수학하는 부처님 제자들의 집단(集團)을 가리키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22)성문(聲聞) 4과(果)의 하나로 무루도(無漏道)에 처음 참례하여 들어간 지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