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데에는 오직 부처님 말씀이 있을 뿐이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설법을 들어야 한다.
016_0993_b_04L復次,治身心病唯有佛語,是故應勤聽於說法。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지왕(漢地王)의 아들이 눈 안에 백태가 생겨서 온 눈을 다 덮어 마침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갖가지로 치료해 보았으나 고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축차시라국(竺叉尸羅國)에서 어떤 장사꾼들이 한(漢) 땅에 왔으므로, 한 나라의 왕이 장사꾼에게 물었다. “내 아들이 눈병이 났는데 그대들은 먼 곳에서 왔으니 혹시 치료할 수 있지 않겠소?” 장사꾼이 대답하였다. “다른 나라에 구사(瞿沙)라는 비구가 있는데, 그가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왕이 이 말을 들은 즉시 행장을 매우 장엄하게 차려서 아들을 축차시라국으로 보내니, 아들은 그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곧 존자(尊者) 구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먼 곳에서 일부러 눈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왔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눈을 치료하여 주십시오.” 그때에 존자 구사가 눈을 치료해 줄 것을 허락하고, 많은 구리잔[銅盞]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설법을 듣고 눈물이 나는 사람은 이 잔에 받아 두라.” 그리고서 곧 『십이연경(十二緣經)』을 설하니, 모여 있던 대중들이 듣고서 소리내어 울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을 잔으로 받아 모았다. 그리고는 무리들의 눈물을 모은 것을 가지고 왕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존자 구사가 곧 그 눈물을 취해 오른 손바닥에 두고서 게를 설하였다.
무명의 어둠을 제거할 수 있는 깊고 깊은 『십이연경』을 나 이제 이미 선설하였으니 듣는 이들이 모두 눈물 흘렸다네.
016_0993_b_21L我今已宣說, 甚深十二緣, 能除無明闇,
聞者皆流淚。
016_0993_c_02L 이 말이 만약 진실하다면 뭇 사람들의 눈물을 모은 이 물은
하늘과 사람, 야차 가운데 그 어떤 물로써도 미치지 못하리라.
016_0993_c_02L此語若實者, 當集衆人淚,
人天夜叉中, 諸水所不及。
이것으로 왕자의 눈을 씻음은 장애를 여의고서 밝음을 얻으려는 것이니 바로 이 눈물로 씻음에 따라 가리고 있던 백태 꺼풀이 제거될 것이네.
016_0993_c_03L以洗王子眼,
離障得明淨, 尋卽以淚洗, 膚翳得消除。
그때 존자 구사가 눈물로 왕자의 눈을 씻어 밝고 깨끗함을 얻게 하고 나서 대중들의 신심을 더욱 자라게 하기 위해 게를 설하였다.
016_0993_c_04L爾時,尊者瞿沙以淚洗王子眼得明淨已,爲欲增長大衆信心,而說偈言:
불법은 지극히 진실하여 빠르게 장애를 다 제거할 수 있으므로 이 눈물로 또한 눈병을 제거함이 마치 해가 얼음과 눈을 녹이는 것과 같네.
016_0993_c_06L佛法極眞實, 能速除翳障, 此淚亦能除,
如日消冰雪。
여러 대중들이 이 일을 보고는 합장 공경하며 배로 신심을 내었고, 전에 없던 일이었으므로 몸의 털이 쭈뼛해질 만큼 놀란 나머지 곧 게를 설하였다.
016_0993_c_08L是諸大衆見是事已,合掌恭敬倍生信心,得未曾有身毛驚豎,卽說偈言:
당신이 하는 일은 희유하기가 마치 신족(神足)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의사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눈물로 씻어 병을 제거하네.
016_0993_c_10L汝所作希有, 猶如現神足, 醫藥所不療,
淚洗能除患。
그때 여러 비구들이 설법을 듣고 감정이 북받쳐 슬피 울어서 눈물이 비같이 쏟아지니, 존자 구사가 모여 있던 여러 대중들에게 고하였다. “비록 이런 일을 했지만 이것은 어렵다 할 것이 못 되네. 여래께서는 옛날에 억천 겁에 걸쳐 고행을 수행하시어 이 공덕으로 열두 가지 인연의 법약(法藥)을 모아서 듣는 이로 하여금 슬퍼서 눈물을 흘리게 하셨네. 바수(婆須)용왕이 큰 악독(惡毒)을 토하고, 야차와 악귀들이 온 집안에 가득하며, 길비저다라(吉毗坻陀羅)가 근본적으로 도를 싫어했지만, 이 눈물로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멸하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어려운 것이라네. 하물며 이 눈병의 장애쯤이야 모기 날개를 제거해 버리는 것과 같거늘 뭐 그다지 어렵다 하리요. 설령 거대한 구름 안개가 캄캄하고 어두우며 사나운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이 눈물로 또한 소멸시킬 수 있으니, 이 때에는 미쳐 날뛰던 코끼리 군대[象軍]와 투구와 몽둥이로 스스로를 장엄한 보병(步兵)들도 눈물을 뿌리면서 물러나 군대를 해산할 것이네. 일체종지(一切種智)께서 닦아 모으신 법을 들은 이로서 그 누가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눈물로 모든 재앙과 환란을 다 제거할 수 있지만 전생의 악업만은 할 수 없다네.”
그 미묘하고 세밀한 법의 이치를 근기에 따라 다 깨닫게 하시매 이 변지(邊地)의 사람까지도 마음이 트이어 깨닫게 되었네.
016_0994_a_13L意根法微細, 作意當解了, 乃至邊地人,
亦能得開悟。
46
다음으로 만약 4불괴정[不壞淨]1)을 얻은 이라면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눈앞에 있는 생물을 해치지 않나니, 그러므로 네 가지 파괴할 수 없는 정계를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016_0994_a_15L復次,若得四不壞淨,寧捨身命終不毀害前物,是故應勤修四不壞淨。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죄인이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 한 전다라(旃陁羅)가 형을 집행할 차례가 되었는데, 그 전다라는 불법을 배운 우바새(優婆塞)로 진리의 도를 얻었는지라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형륙(刑戮)을 맡은 자가 매우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네가 이제 국왕의 헌법을 어기려고 하느냐?” 우바새가 형륙을 맡은 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이야말로 지혜가 없구료. 국왕이 이제 하필이면 나를 괴롭혀서 사람을 죽이게 하겠는가. 비록 육신은 왕에게 매여 전다라가 되었지만 성종(聖種)으로 따지자면 바로 법신(法身)이어서 왕에게 매인 것이 아닌 만큼, 당신이 제재할 바가 아니오.”
016_0994_b_02L
석가모니 세존께선 일체종지를 구족하사 인시(因時)에 교화하시므로 모든 허물을 다 제거할 수 있지만
016_0994_b_02L釋迦牟尼尊, 具一切種智, 因時能教化,
滅除一切過。
염라왕의 법은 과시(果時)에 비로소 교화하여 고(苦)에 다다라 고(苦)를 설하므로 쉽게 무너지고 어길 수도 있다네.
016_0994_b_04L閻羅王之法, 果時始教化,
臨苦爲說苦, 易壞亦可違。
그때 형륙을 맡은 자가 이 사람이 왕의 금법(禁法)을 어겼다 해서 곧 왕에게 데리고 가 말하였다. “이 전다라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는 어째서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느냐?” 전다라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이제 대왕께서도 신심을 내고 환희심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금계를 받아 간직했으므로 모기와 개미 새끼에게조차도 함부로 해칠 마음을 내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의 생명이겠습니까?
016_0994_b_11L 持於禁戒, 乃至蚊蟻子,
猶不起害心, 何況於人耶?
그때 왕이 말하였다. “네가 만약 죽이지 않겠다면 네 목숨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 우바새는 진리를 본 그 힘이 있었기에 왕 앞에서도 대항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몸은 왕에게 딸렸으므로 왕께서는 저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거니와 저의 마음에 대해서는 비록 제석천왕일지라도 저로 하여금 따르게 할 수 없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크게 화가 나서 명령을 내려 죽이려 했지만, 저 전다라의 아버지와 형제 일곱 명이 모두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왕이 마침내 저들을 죽이기 시작하여 두 사람만이 남아 있을 때 여섯째에게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역시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왕이 또 죽였다. 일곱째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므로 왕이 또 죽이려고 하였는데, 늙은 어머니가 왕에게 아뢰었다. “이 일곱째 작은 아이만은 저를 위해 용서하여 주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이제 이 아이가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모두 저의 자식들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앞의 여섯은 그대의 자식이 아니었는가?”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역시 다 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째서 유독 일곱째만을 위해 그런 말을 하는가?”
부디 자재로우신 인간의 왕이시여 오직 바라건대 이 자식을 살려 주소서. 죽음에 닥쳐서 두려움 때문에 혹시 악업을 저지를까 염려되옵니다.
016_0994_c_06L王得自在,
唯願活此子, 臨終時恐怖, 或能造諸惡。
범부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현재의 몸만 보고 후세의 일은 보지 못하나니 후세의 과보를 관찰할 수 있다면 그는 범부의 경계가 아니옵니다.
016_0994_c_07L凡夫臨死時, 但睹其現身, 不見於後事,
能觀後世報, 非凡夫境界。
그때 대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외도에게선 아직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제 인과(因果)에 대한 이런 말을 들으니, 마치 밝은 등불처럼 분명해졌도다. 전다라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진대 내가 왕으로서 결정된 뜻을 내어 그들의 마을을 현성촌(賢聖村)이라 이름하리라. 이들은 전다라가 아니니, 이름은 비록 전다라지만 실제로는 고행을 닦은 자들이라 자기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거늘 하물며 친속(親屬)임에랴. 계율을 지키는 것이 재보를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의 생명과 권속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계율을 지키는구나.”
어리석음에 눈먼 자들은 탐욕의 때로 더러워지고 내 것[我所]과 모든 감관에 집착되어서 흔들리어 안정되지 못하므로
016_0995_a_11L愚癡之所盲, 貪欲之垢污, 著我所諸根,
掉動而不定,
악업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현재의 즐거움만을 취하여 번뇌의 때에 더렵혀지거니와 지혜로운 이는 항상 관찰하되
016_0995_a_13L不計於惡業, 但取現在樂,
結使垢塗污, 智者常觀察,
몸과 재물을 강 언덕의 나무처럼 위태롭고도 약한 것이라 생각하여 끝내 악업을 짓지 않고 지혜의 물로 마음의 때를 씻는다.
016_0995_a_14L身財危脆想,
亦如河岸樹, 終不造惡業, 智水洗心垢。
그때 대왕은 법을 공경하였기 때문에 전다라의 몸에 가까이 가서 시체를 세 번 돌고는 오래도록 꿇어앉아 합장하고 게를 설하였다.
016_0995_a_15L爾時,大王近旃陁羅身,敬尚法故繞屍三帀,長跪合掌,而說偈言:
법에 귀명하여 잘 관찰한 이는 짧은 목숨은 버릴지언정 영원한 법은 버리지 않으리니
016_0995_a_17L南無歸命法, 善能觀察者, 捨於短促命,
而不捨於法,
설령 불난 숲 속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진리를 본 이가 계를 범하는 일은 끝내 그럴 이치가 없을 것이라 이것이 바로 분명한 증거네.
016_0995_a_19L假設入火林, 見諦毀禁戒,
終無有是處, 此卽是明證。
이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간직하여 끝내 두 가지 생각 하지 않았네. 진흙에 피범벅이 되어 눕게 된 것은 부처님의 계율을 지켰기 때문이니
016_0995_a_20L此人持佛語,
終無有二志, 臥於泥血中, 以護佛戒故,
이 시신을 불에 사른다면 곧 변하여 회토(灰土)가 되겠지만 계율을 지킨 훌륭한 법명(法名)은 이 세계가 다하도록 함께할 것이네.
016_0995_a_21L此屍以火焚, 卽變爲灰土, 持戒善法名,
同於世界盡。
016_0995_b_02L 무슨 인연으로 이 일을 설하는가 하면, 증득한 도의 변함 없음을 보이고자 함이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길, “진리를 본 자는 끝내 파계함이 없다”고 하셨으니, 4대(大)2)는 깨뜨릴 수 있지만 4불괴정(不壞淨)은 끝내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마음에 교만이 있으면 짓지 않는 악업이 없을 것이다. 교만이란 비록 스스로를 높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비하(卑下)시키는 것이니, 그러므로 교만을 끊어야만 한다.
016_0995_b_03L復次,心有憍慢無惡不造,慢雖自高名自卑下,是故應當斷於憍慢。
예전에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의 형제와 권속 천 사람을 제도하셨는데, 번뇌가 이미 끊어져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졌다. 세존을 따라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3)으로 갔는데,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열두단왕(閱頭檀王)4)은 교화를 받아 따르게[調順] 되었으나 여러 석가 종족들은 그들의 족성(族姓)을 믿고서 교만한 마음을 내었다. 부처님 바가바(婆伽婆)께선 그 신체가 풍부하고도 원만하시어 비대하지도 수척하지도 않으시므로 보는 이들이 싫증냄이 없었지만, 바라문들은 오랫동안 고행한 나머지 몸이 파리하여 안으론 비록 도를 품었으나 외모가 아주 추악해서 부처님을 따라다닐 때 너무나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에 부왕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석가 종족을 출가시켜서 부처님을 따르게 한다면 서로 잘 어울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끝에 북을 치면서 외쳤다. “석가 종족의 집안은 출가시킬 사람을 한 명씩 보내기 바라노라.” 그러자 즉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집집마다 한 사람씩을 보내어 출가하게 하였다. 그때 우바리(優波離)가 여러 석가 종족들을 위해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즐거워하지 않으니, 석가 종족들이 이것을 보고 물었다. “왜 우느냐?” 우바리가 대답하였다. “이제 당신들 석가 종족의 아들들이 다 출가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016_0995_c_02L그때 여러 석가 종족의 아들들이 우바리의 이 말을 듣고 나서 출가할 모든 석가 종족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의복과 영락, 몸을 장엄하는 도구 등을 모두 풀어서 하나의 보배 덩어리를 만들어 다 우바리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 여러 가지 물건들로 그대는 평생 동안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네.” 우바리가 이 말을 듣고는 곧 싫증내어 여의려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이제 귀한 보배와 몸을 장엄하는 도구들을 다 싫증내어 나에게 버리는데, 내가 어찌 이것들을 갖겠습니까?”
이때 우바리가 다시 생각하며 말하였다. “나도 지금 결정코 반드시 출가하길 다만 부지런히 구해야 마땅하리라. 천 명의 바라문은 먼저 부처님 처소에서 이미 출가하였고, 석가 종족인 찰리(刹利) 종성도 5백 명씩이나 역시 출가했으니 말이다. 바라문과 찰리 두 종성은 모두 귀한 종성이지만 나는 수타(首陁) 종성이라 비천하고 낮은 신분일 뿐더러, 또 내가 천한 일[役]을 하고 있으니, 저 수승한 종족들 가운데 출가하기를 구한들 그 어찌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내가 지금 무슨 세력이 있어서 이들 가운데 출가할 수 있으랴.”
그때 세존께서 우바리의 마음이 조순하게 되고 선근이 무르익어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음을 아시고 곧 장엄한 상호(相好)의 오른손을 들어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도 출가할 것을 허락하노라. 외도들은 비밀법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지 않지만 여래는 그렇지 않아서 대비의 평등한 마음으로 치우침 없이 동등하게 법을 설하여 그 수승한 도를 보여 구제하되, 마치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 귀천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불법도 또한 그러하여 빈부와 종성을 가리지 않느니라.”
마치 세 가지 약으로 풍(風)ㆍ냉(冷)ㆍ열(熱)을 다스리는데 약은 종성을 가리지 않고 귀하거나 천하거나 모두 치료하는 것처럼
016_0996_a_22L譬如三種藥,
對治風冷熱, 藥不擇種姓, 貴賤皆能治,
법의 약도 또한 이와 같아서 탐욕[貪]ㆍ성냄[恚]ㆍ우치[癡]를 다스리되 네 종성의 것을 모두 다 제거하여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으며
016_0996_a_23L法藥亦如是, 能治貪恚癡, 四姓悉皆除,
高下無差別,
016_0996_b_02L 또 불이 물건을 사를 때에 땔감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듯이
독충도 또한 불과 같아서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으며
016_0996_b_02L又如火燒物, 不擇好惡薪,
毒螫亦如火, 不擇貴與賤,
물로 몸을 씻으면 네 종성 모두 때가 없어지는 것처럼 괴로움의 변제(邊際)를 다하게 되면 모든 종성을 널리 다 떠날 수 있네.
016_0996_b_03L猶如水洗浴,
四姓皆除垢, 盡苦之邊際, 諸種普得離。
그때 세존께선 마치 맑게 갠 하늘에 구름 한 점도 가리움이 없는 것 같으시어 깊고도 먼 음성을 내시되, 우레 소리 같기도 하고 큰 용왕이나 우왕(牛王) 소리 같기도 하며 가릉빈가(迦陵頻伽)5) 소리 같기도 하고, 봉왕(蜂王)ㆍ인왕(人王) 소리 같기도 하며, 천상의 악기 소리 같기도 한 범음성(梵音聲)을 내시어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출가하기를 바라느냐?” 우바리가 이 음성을 듣고서 환희심을 내어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출가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바리야, 어서 오너라. 비구여, 너는 이제 이곳에서 범행을 잘 닦아야 한다.” 이 말을 듣고 나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니, 위의가 가지런하고 모든 감관이 고요해 마치 오래 된 비구 같았다.
한편 5백 명의 석가 종족들은 모두 네 차례의 갈마(羯磨)6)를 아뢰면서 구족계를 받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이제 방편을 써서 여러 석가 종족들의 교만한 마음을 제거해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세존께서 여러 석가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지금 여러 오래 된 비구 상좌인 교진여(憍陳如)ㆍ아비마사(阿毘馬師) 비구들에게 차례대로 예경해야 한다.” 비구들 중에서는 우바리가 가장 아랫자리에 있었고, 석가 종족들 중에서는 석현왕(釋賢王)이 선두[導首]가 되었다.
016_0996_c_02L그때 여러 석가 종족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차례로 상좌 비구들의 발에 예배하다가 우바리에 이르러서 그 발이 이상하게 생긴 것을 보고는 곧바로 우바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여러 석가 종족들이 매우 놀랍고도 괴이쩍어하며 마치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언덕에 부딪쳤다 돌아치는 물결처럼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태양의 종족인 찰리 종성으로 세간의 존중을 받거늘, 어찌 이제 자기의 노복이었던 비천한 성바지[姓] 출신의 머리나 깎는 종성에게 예경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은 지금 세존께 가서 이러한 사실을 자세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우바리에게도 예경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석가 종족들에게 타이르셨다. “지금 우리들 종성에게는 이 법이 바로 교만을 끊는 것이니라.” 그때 여러 석가 종족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는 수타라 종성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가 무상(無常)하니만큼 종성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상이 한맛[一味]인 것처럼 종성도 또한 그러하거늘 무슨 차별됨이 있겠느냐?” 여러 석가 종족들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머리털이나 깎는 종성이고, 저희들은 태양 성바지[日姓] 중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께서 석가 종족들에게 타이르셨다. “일체의 세간이 꿈 같기도 하고 눈속임 같기도 하거늘 종성 가운데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여러 석가 종족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노복이었고, 저희들은 주인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일체 세간이 다 은애(恩愛) 때문에 노복이 되었느니라.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는 귀천의 다름이 없으니, 너희들의 교만을 버려야 한다.”
그때 여러 석가 종족들은 마치 피어나는 꽃과 같이 단정하고 위엄이 있으며 빼어나게 특별한 모습으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의심을 품은 채 주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반드시 저희들을 우바리의 발에 예배시키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가 종족들을 타이르셨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출가시키는 법이 다 이와 같으니라.” 그때 여러 석가 종족들은 부처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 출가법을 듣고 나서 마치 바람 자는 나무처럼 엄연히 서 있는가 하면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모두 한소리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길 수 있겠는가? 마땅히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하리라. 먼저 출가한 지혜로운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우바리를 먼저 제도하신 까닭은 모든 석가 종족들의 교만한 마음을 꺾어 부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네.”
016_0997_a_02L이에 석가 종족들은 교만을 버리고 출가법을 따랐고, 또한 미래에 출가할 귀족들이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발타석(拔陁釋) 등과 같이 오랫동안 교만에 젖어 있던 이들도 이제 그 교만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우바리의 발에 예배하였다. 예배를 올릴 때에 온 땅의 성곽과 산림과 강과 바다가 모두 다 진동하였고, 여러 하늘들이 외쳐 말하였다. “석가 종족들이 오늘에야 교만의 산을 무너뜨렸구나.”
그때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일찍 일어나 옷을 입고서 발우를 잡고 수라 장자의 집을 향하여 보시를 찬탄하니, 때에 저 장자는 기쁘지 않았기 때문에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으므로 가섭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초청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걸식하고자 해서인가?” 가섭이 대답하였다. “나는 항상 걸식을 하오.” 장자가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걸식하는 거라면 식사 때를 맞추어 와야 하지 않겠소.” 가섭이 곧 가 버렸다. 이와 같이 사리불과 목건련 등 여러 큰 제자들이 차례로 그 집에 갔으나 아무도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그 집으로 가시어 수라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다섯 가지 큰 보시를 닦아야 하리라.” 수라 장자가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크게 근심스럽고 괴로워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아직 작은 보시도 닦지 못했는데 어째서 나에게 다섯 가지 큰 보시를 닦으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여래의 법 중에 어찌 다른 법이 없을까마는 여러 제자들이 나에게 보시를 권했고, 이제 세존께서도 보시를 가르치시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잘것없는 작은 보시도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섯 가지 큰 보시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살생하지 않는 것이 큰 보시며 도둑질하지 않고 사음(邪婬)하지 않으며 망령된 말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이러한 것들을 다섯 가지 큰 보시라고 하느니라.”
장자가 이 말씀을 듣고는 큰 환희심이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다섯 가지 일을 털끝만큼도 손상하지 않는다 해서 큰 보시라는 명칭을 얻는다면, 어찌 이것을 하지 않으리요.’ 이렇게 생각하고는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깊은 환희심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바로 조어장부(調御丈夫)라는 이 말은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지만 스스로 세존이 아니고서야 뉘라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말씀을 뉘라서 공경하여 따르지 않고 감히 어기는 자가 있으리요.”
이 게를 설하고는 깊이 부처님께 환희심을 내어 곧 창고로 들어가 담요 두 장을 갖고 나와서 부처님께 보시하려 했으나, 또 스스로 생각하기를,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하고 한 장만 보시하려다가, 또다시 생각하기를, ‘너무 적기 때문에 도로 두 장 다 드려야겠다’고 하였는데, 부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곧 게를 설하셨다.
그때 수라 장자는 이 게를 듣고서 ‘여래 세존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아시는구나’ 하고 기뻐 뛰며 그 간탐하는 마음을 깨 버리고는 담요를 받들어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수라가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줄 아시고 그에 맞게 법을 설하시어 수라의 20억 아견(我見)의 뿌리를 다 깨뜨려 수다원(須陀洹)을 얻게 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 머무시는 처소로 돌아가려 하시니, 수라가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전송하고서 집으로 돌아와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몸이 청정한 금산(金山) 같아서 둥그런 광명이 밝게 타오르며 자유로이 변화를 나타내되 한가로운 걸음걸이 코끼리 왕 같구나.
016_0997_c_20L身如淨金山, 圓光極熾盛, 自在化變現,
庠步如象王。
수라 장자의 문으로 들어오니 마치 태양이 흰 구름 속으로 들어오는 듯 보는 이들 싫증냄이 없어 밝기가 백천의 태양 같네.
016_0997_c_22L來入首羅門, 如日入白雲,
睹者無厭足, 明如百千日。
그때 광명이 수라의 집을 비추니, 수라는 놀랍고 의심스러워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016_0997_c_23L爾時光照首羅家,首羅驚疑爲是何人?卽說偈言:
016_0998_a_02L
이글거리는 진금(眞金) 덩어리 같은 광명이 내 집안 가득 충만하니 마치 해가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그 빛이 배나 더 밝네.
016_0998_a_02L如融眞金聚, 充滿我家中, 猶日從地出,
其光倍常明。
이 게를 설하고는 마치 저 감로수를 그 몸에다 뿌린 듯이 지극한 환희심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큰 복이 있어 여래께서 지금 다시 우리 집에 오시는구나. 그렇지만 두 번째 오셨다고 해서 희유한 일이라 할 것은 없으니, 왜냐 하면 여래 세존께선 항상 자비로 제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머리는 마타과(摩陁果)7) 같고 피부는 청정한 진금 같으며 눈썹 사이 흰 터럭의 모습과 눈은 깨끗하고 길고도 넓네.
016_0998_a_09L頭如摩陁果, 膚如淨眞金, 眉閒白毫相,
其目淨修廣。
피어나는 푸른 연꽃처럼 고요하게 잘 조복되었으며 두려움 없는 조용한 걸음걸이 용모 또한 빼어나고 미묘하도다.
016_0998_a_11L如開敷靑蓮, 寂定上調伏,
無畏徐庠步, 容貌殊特妙。
둥근 광명은 한 길[尋] 가득하고 밝은 달처럼 자신을 장엄하고서 용맹하게 스스로 외치기를 내가 이제 진짜 부처라 하네.
016_0998_a_12L圓光滿一尋,
如用自莊嚴, 勇猛自唱言, 我今眞是佛。
그때 마왕은 자기를 극진하게 장엄하고서 수라 장자 앞에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지난번에 말하기를 ‘5음(陰)의 괴로움은 습(習)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8정도를 닦아서 그 5음을 멸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삿된 말이네.” 그때 저 수라 장자는 이 말을 듣고서 매우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얼굴 모습은 부처님 같은데 말하는 것이 영 아니구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뒤바뀌어 있는 것인가. 그 말을 들어 보건대 탐욕과 질투가 심한 자이니, 어떤 나쁜 사람이 부처님 형상으로 변화한 걸까? 마치 꽃무더기 속에 검은 독사가 있는 것 같구나. 내가 지금 살펴보건대 이는 틀림없는 마군이니, 침(針)을 파는 사람이 침쟁이 집에 와서 침을 팔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격이로다. 네가 이제 마왕 파순(波旬)일진댄 부처님 제자인 나의 말을 들어 보아라.”
사자 왕이 머무는 곳에 코끼리가 왔다가는 이내 달아나듯이 파순도 또한 그와 같았나니 진리를 본 자가 머무는 곳엔 어떤 마군도 감히 덤빌 수 없다네.
016_0998_b_16L師子王住處, 象到尋突走; 波旬亦如是,
見諦所住處, 諸魔不敢停。
49
다음으로 선정(禪定)을 얻지 못하면 목숨이 끝날 때에 안정을 얻을 수 없다.
016_0998_b_18L復次,不得禪定,於命終時不得決定。
016_0998_c_02L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바수왕(婆須王) 때에 다시나가(多翅那迦)라는 시인(侍人)이 있었다. 왕이 그를 매우 친애하였으나 헐뜯음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다시 더 참훼(讒毁)하는 자가 있으므로 왕이 크게 분노하여 사람을 보내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 여러 권속들이 모두 다 와서 그를 에워싸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의 총명한 지견(知見)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거늘 지금 어째서 그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는가? 이제 죽을 때가 다가오니 어떤 일이 가장 괴로운가?” 나가가 대답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공포심 때문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네.”
지혜로운 이는 애써 마음을 붙잡기에 죽음에 이르러 생각이 흩어지지 않고 경계에 닥쳐서 마음이 전일하지만 마음을 오로지 닦지 못한 사람은 임종할 때에 반드시 흩어져 어지러우리니
016_0999_a_03L智者勤捉心, 臨終意不散, 專精於境界,
不習心專至, 臨終必散亂,
마음이 만약 산란하다면 마치 말을 길들여 연자매에 쓰다가 전투할 때가 되어서 쓰면 빙빙 돌기만 하고 곧바로 가지 못하는 것과 같네.
016_0999_a_05L心若散亂者,
如調馬用磑, 若其鬪戰時, 迴旋不直行。
“미리 잘 관찰하지 못한 자는 다섯 가지 감관을 다스려 거둘 수 없으므로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우니, 마치 창고 안의 투구와 갑옷이 썩었기 때문에 적군과 싸울 때 그 무기들이 다 파괴되는 것처럼, 마음을 닦아두지 않으면 목숨이 끝날 때에도 또한 그러하리라.”
다음으로 진실한 공덕이 있는 이는 마땅히 공양할지니, 지혜로운 이라면 덕 있는 사람을 항상 공경할 것이다.
016_0999_a_09L復次,有實功德應當供養,智者宜應恭敬有德。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아월제국(阿越提國)에 인제발마(因提拔摩)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수리발마(須利拔摩)라는 아우가 있었다. 이들 형제 두 사람이 나라를 두고 서로 싸웠으니, 수리발마가 올가미 끈을 던져 인제발마의 머리를 걸어서 급히 잡아당기자 인제발마가 매우 두렵고 겁이 나서 이렇게 염원하였다. ‘지금 만약 이 올가미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불법에 따라 반차우슬회(般遮于瑟會)10)를 베풀리라.’ 이렇게 염원하자 과연 올가미 끈이 곧 끊어졌고, 이에 왕은 불ㆍ법ㆍ승에 대해 깊은 믿음과 공경심을 내어 대신(大臣) 부자연밀다(浮者延蜜多)에게 명하여 반차우슬회를 준비하게 하였다.
그때 대신은 곧 왕의 명령을 받들어 반차우슬회를 열었고, 사람들에게 두루 음식을 돌리도록 하였다. 저 대신이 상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을 보니, 어떤 비구가 음식을 반쯤 남겨 두었다가 주원(呪願)을 마친 뒤에 이 남겨 둔 음식을 발우에 담아 자리에서 일어나 가기를 이와 같이 두세 번 되풀이하였다. 대신이 이것을 보고는 불신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런 비구는 반드시 청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끝에 이 일을 갖추어서 왕에게 아뢰었다.
016_0999_b_02L왕이 대신에게 물었다. “경(卿)은 지극한 신심을 얻었는가?” 대신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신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한 상좌 비구가 음식을 반쯤 남겨 두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가니, 분명 이 음식을 다른 부녀에게 주려는 것이 틀림없으므로, 제가 이것을 보고 의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대신에게 타일러 말하였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그대는 이제 망령되게 남을 저울질해 헤아리지 말아라. 그대는 지혜의 힘도 없으면서 어떻게 앞사람을 분별할 수 있단 말인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길, ‘만약 망령되게 중생들을 저울질해 헤아린다면 이는 반드시 자신을 상해(傷害)하는 것이 되리라’라고 하셨으니, 그대는 이 뒤바뀐 삿된 소견을 짓지 말게나.”
그때 대왕이 몸소 스님들 가운데 나아가 손수 음식을 받들어 대중 스님들을 공양하였는데, 때에 상좌 비구가 여전히 음식을 남겨 두었다가 주원(呪願)이 끝난 뒤에 곧 가지고 가니, 왕이 바로 상좌 비구의 뒤를 따르면서 말하였다. “상좌께선 나이가 많으시니 발우를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상좌 비구는 어렵게 여겨 발우를 주지 않았으며, 왕이 굳이 뒤따라가면서 발우를 받으려 하였으나 전다라(旃陀羅) 마을에 이르기까지 발우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왕들은 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교만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온갖 악업을 함부로 저질러서 허다하게 타락하고 실수하기 마련인데
016_0999_c_10L諸王得自在, 憍慢盲其目, 用造諸惡業,
顚墜多缺失,
이제 대왕만은 용감한 지혜의 힘이 있어 재물의 보시를 잘 하실 뿐더러 몸을 아지랑이같이 관(觀)하여 견실한 법을 취할 줄 아는지라
016_0999_c_12L勇捍有智力, 善解用財施,
觀身如幻炎, 知取堅實法。
요약하여 말하자면 일체를 모두 더욱 자라게 해서 그대처럼 스스로 조순(調順)하는 것이 교화 가운데 최상이므로 대왕의 뛰어난 행도(行道)를 모든 중생들이 따라 행할 것이로다.
016_0999_c_13L略說而言之,
一切皆增長, 如汝自調順, 教化中最上。
“내가 지금 이미 왕의 공양을 받았는데도 왕께서 마음을 낮추고 나를 따라와 발우를 들어 주겠다고 하니, 공양에 이미 만족했으므로 발우까지 들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저 왕이 다시 은근히 따라가면서 거듭 발우를 청하자, 비구가 생각하기를, ‘지금 대왕이 무엇 때문에 굳이 나의 발우를 얻으려 하는 것일까?’ 하고는, 곧 선정에 들어 관찰하여 왕이 대신을 조복시키기 위해서 발우를 청하는 것임을 알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016_0999_c_14L賢勝所行道, 共衆隨順行。
어리석고 어두운 저 범부가 수미산을 움직이려고 하니 나 이제 발우를 주어 그의 마음과 뜻을 보호하리라.
아무리 헐뜯고 칭찬하려 해도 나의 마음은 도무지 다름이 없으니 나에게 불신하는 마음을 내는 자는 허다한 사람들에게까지 손해를 끼칠 것이네.
016_0999_c_20L凡夫愚闇人, 欲動須彌山, 我今當與鉢,
以護其心意。
016_1000_a_02L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발우를 왕에게 주니, 왕은 마치 푸른 연꽃을 잡은 코끼리처럼 발우를 붙잡고서 비구를 따라 전다라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때 저 비구가 왕을 청하여 그 집으로 인도했으나 왕은 들어가려 하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이미 아나함(阿那含)의 과위를 얻은 비구의 노모(老母)가 천안(天眼)을 구족하여 남의 마음을 잘 알고, 또 다른 사람의 선근 인연을 알기 때문에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겁약(怯弱)하게 굴지 마시고 우리 집에 들어오십시오.”
그대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는 수다원(首陁洹)들이 모여 있는 집이지 전다라의 집이 아닙니다. 맏아들은 아라한을 얻었고
016_1000_a_07L汝不應生疑, 此首陁會舍, 非旃陁羅家,
首子得羅漢,
셋째는 수다원을 얻었으며 나는 바로 일체지(一切智)이신 부처님의 우바이(優婆夷)로서 이미 아나함(阿那含)을 얻었습니다.
016_1000_a_09L第三須陁洹, 我是一切智,
佛之優婆夷, 住於阿那含。
그대는 다만 계행을 관찰할 뿐 출생한 곳은 묻지 말아야 하고 다만 우리의 도덕을 취할 뿐 집안의 권속들은 보지 말 것이니
016_1000_a_10L汝但觀戒行,
莫問出生處, 但取我道德, 莫觀家眷屬,
마지막으로 이 집에 태어났으나 공덕에 수승함이 있다면 마치 모래와 돌 사이에서 좋은 진금이 나오는 것과 같도다.
016_1000_a_11L最後生此家, 功德有殊勝, 如似沙石閒,
能出好眞金。
이란(伊蘭)13)도 불을 낼 수 있고 진흙 속에서 연꽃이 자라나니 사람을 관찰한다면 도덕을 취할 것이지 어찌 반드시 그 종성을 따지리요.
016_1000_a_13L伊蘭能出火, 淤泥生蓮花,
觀人取道德, 何必其族姓。
이란이건 전단(旃檀)이건 불을 붙이면 모두 날 것을 익힐 수 있으니 둘 다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것처럼 공덕도 평등하여 다름이 없도다.
016_1000_a_14L伊蘭與旃檀,
然火皆熟物, 二俱有所成, 功德等無異。
왕이 노모가 설하는 이 게를 듣고는, ‘아, 이 노모야말로 법 가운데 대인(大人)이로다. 부처님께서는 대자비하셔서 전다라들로 하여금 죽지 않을 곳을 얻게 하기 위하여 종성을 가리지 않으시고 부처님 법을 설하셨기에 이 전다라 중에서도 사자후를 외치는 자가 있구나’ 하고는, 왕은 또 생각하기를, ‘만약에 종족을 공양한다면 공덕을 잃을 것이고, 공덕을 공양한다면 전다라를 분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다라가 사슴을 죽이면 왕은 그 고기를 먹고 그가 만든 화살을 가져다가 왕은 다시 쏘는 데 사용하니
016_1000_b_05L旃陁羅殺鹿,
王者食其肉, 彼之所造箭, 亦復取用射,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는 마땅히 수순하여 행하리니 공덕이 있는 전다라라면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요.
016_1000_b_06L以是因緣故, 我應隨順行, 旃陁有德者,
云何不採取?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왕은 그 집에 들어가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노모에게 먼저 예를 올려야 할까, 부처님께 먼저 해야 할까. 여래 세존께서 전다라들에게 이런 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또 일체 중생들에게도 안온(安隱)한 바른 길을 보여 주셨으니만큼 부처님께 먼저 예배해야 할 것이다.’
1)4증정(證淨)ㆍ4불괴신(不壞信)이라고도 하며, 불증정(佛證淨)ㆍ법증정(法證淨)ㆍ승증정(僧證淨)ㆍ성계증정(聖戒證淨)을 말한다. 여기서 증정이라는 것은 무루(無漏)의 지혜로 4성제의 이치를 여실히 깨달아 이로 말미암아 불신(不信)과 계를 깨뜨리는 허물에서 벗어나 청정함을 얻는다는 뜻이다.
2)물질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을 말한다.
3)석존의 탄생지로, 지금 네팔의 타라이 지방이다. 부처님께서 생존하시던 그 말년에 멸망하였다.
4)석가모니의 아버지이다.
5)소리가 곱기로 유명한 새[鳥]로, 정토만다라 등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으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6)계를 받거나 참회할 때의 작법으로 소작(所作)ㆍ판사(辦事)ㆍ작사(作事)라 번역한다.
7)마타는 마니(摩尼)와 같으니, 보주(寶珠) 혹은 여의주(如意珠)를 말한다.
8)사(使)는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9)흙에 묻혀 있는 보물 창고. 가난한 이의 집에 복장이 있었으나 알지 못하여 늘 가난에 쪼들려 살았으나 지나가던 눈 밝은 이가 일러 주어 파내는 것처럼, 일체 중생이 불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삼계를 유랑하다가 불법을 만나 깨닫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10)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왕이 시주가 되어 범부와 현성(賢聖), 도속(道俗),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재물과 법(法)을 베푸는 법회이다. 의역하여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 한다.
11)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名號) 가운데 하나. 부처님께서는 여실히 저 언덕에 가서 다시 생사의 바다에 빠지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12)사과와 비슷하게 생긴 과일로 4개가 한 자리에 붙어 있으며 6월에 황적색으로 익는다.
13)아프리카에서 산출하여 인도에 퍼진 식물로 싯나무와 비슷하게 생겼고, 종자에는 독이 있으며, 옛부터 나쁜 냄새가 나는 독초로 유명하다. 냄새가 40리에 이른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전단향과 상대되는 비유로 많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