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이 정의에는 열한 장(章)이 있다. 첫 번째는 인과위(因果位)이며, 두 번째는 6수(數)를 세움이며, 세 번째는 상(相)이며, 네 번째는 차제(次第)이며, 다섯 번째는 입명(立名)이며, 여섯 번째는 수습(修習)이며, 일곱 번째는 차별(差別)이며, 여덟 번째는 섭지함[攝]이며, 아홉 번째는 대하여 다스림[對治]이며, 열 번째는 공덕(功德)이며, 열한 번째는 서로 드러냄[互顯]이다.
【論】이와 같이 입응지승상(入應知勝相)을 이미 설하였다. 입인과승상(入因果勝相)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釋】앞에서 밝혀진 4위(位)로 유식관에 들어감을 총체적으로 거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 방편도ㆍ견도ㆍ수도ㆍ구경도인 네 가지 위계 가운데서 입응지승상을 이미 설명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승상에 들어가는 인(因)과 뒤에 얻어지는 것에 들어가는 과(果)를 자세히 설명하여 그것을 펼쳐 보여 쉽게 볼 수 있게 하는가?
【論】다나(陀那)1)ㆍ시라(尸羅)2)ㆍ찬제(羼提)3)ㆍ비리야(毘梨耶)4)ㆍ지가나(持訶那)5)ㆍ반라야(般羅若)바라밀6)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釋】이것은 물음에 답한 것이다. 인과승상을 밝힘으로써 6바라밀이 인과의 체가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먼저 6바라밀이 인이 되고 나중에 6바라밀이 과가 된다.
016_1181_b_02L【論】어찌하여 6바라밀로 말미암아서 유식에 들어갈 수 있고 다시 어찌하여 6바라밀이 유식의 과에 들어감을 이루는가? 【釋】이전에 비록 6바라밀이 인과의 체가 되는 것을 설명하였지만 그 의의(意義)를 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뜻으로 6바라밀이 인이 된다고 설하였고, 또한 어떤 의미로 6바라밀이 과가 된다고 설하였는지 다시 묻고 있다. 이 6바라밀은 여섯 가지의 유식에 들어가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6바라밀이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첫 번째의 장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탐욕하는 대상이다. 부유함과 재물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받는 가운데서 수승한 공덕을 본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보시는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보시는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두 번째 장애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계율은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계율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세 번째의 장애는 업신여김과 헐뜯어 모욕하는 것과 춥고 더움 등의 고통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인욕은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인욕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네 번째 장애는 수행하지 않음을 즐거움으로 삼아 지내는 것이다. 얻으려고 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얻는다고 하더라도 공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정진은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정진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다섯 번째 장애는 즐거움이 서로 섞여서 머무는 것이다. 세간의 보기 드문 일과 어지러운 인연에도 공덕이 있음을 본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선정이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여섯 번째 장애는 보고 듣고 지각하는 것에서 계교하여 사실과 같다고 여기며, 세간의 희론7)에서 애를 써서 학문을 닦으며, 불료의경(不了義經)8)에서 글귀와 같이 의미를 판별한다.9)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지혜는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는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다.
016_1181_c_02L【論】이러한 정법 내에 있는 모든 보살은 【釋】오직 정법 내의 수행에 의해서만이 유식에 들어가는 인을 세울 수 있다. 만약 정법 밖의 2승(乘)과 외도인 세간의 가르침에 의해서는 이러한 인의 의미를 세울 수 없다. 따라서 먼저 정법 내에서 밝히는 것이 인을 세우는 것이 된다. 인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2승 등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무슨 법을 행하여 유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論】6바라밀에 근거함으로 해서 보살은 이미 유식지(唯識地)에 들어가서, 다음에 청정한 신락(信樂)의 뜻에 의해 섭지함으로 6바라밀을 얻는다. 【釋】만약 보살이 6바라밀에 의거함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장애를 제거한다면 이미 유식에 들어갔으며, 이때 보살은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에 섭지되는 6바라밀을 얻는다. 6바라밀의 바른 가르침 가운데서 마음은 결코 의심이 없기 때문에 신(信)이라 하고, 믿는 법과 같이 수행을 원하고 찾기 때문에 낙(樂)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락의 의미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일컫는다.
첫째는 집착하지 않는 청정(淸淨)이며, 바라밀과 더불어 서로 다른 법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자세히 보지 않는 청정이며, 자신과 바라밀의 과보의 보은 가운데서 마음이 항상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상실하지 않는 청정이며, 바라밀과 더불어 서로 얽혀 있는 더러움에 물든 법을 떠나고 방편이 아닌 행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분별이 없는 청정이며, 말을 따라서 바라밀의 상을 집착하는 것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회향하는 청정이며, 6바라밀이 이미 생장하였거나 아직 생장하지 않은 가운데서 항상 큰 보리(菩提)를 찾아 얻는 것을 말한다.
016_1182_a_02L하나하나의 바라밀이 이러한 다섯 가지의 청정한 신락(信樂)이 두루 섭지하는 것을 모두 갖추었다.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이 있는 것을 이미 원락지를 지나 견지(見地) 등에 들어가서 성인의 신락을 얻었다고 말한다. 지(地)에 이르기 전의 신락과는 다르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일컫는다.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이 있는 것을 사마타비발사나로 말미암아 진여의 관(觀)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무분별지와 무분별후지가 섭지하는 신락의 뜻을 얻으므로 청정이라고 일컫는다.
【論】이러한 정법 내에 있는 보살은 부유하고 즐거운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계율에서 과실을 범하는 마음이 없고 고통에서 무너지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수행에서 게으른 마음이 없고 이러한 산란한 인 가운데에서 머물러 살지 않기 때문에 항상 한마음으로 이치에 맞게 간택한 모든 법을 행하여 유식관에 들어갈 수 있다. 6바라밀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이미 유식지(唯識地)에 들어간다. 다음에 청정한 신락의 뜻이 두루 섭지하는 6바라밀을 얻는다. 이렇기 때문에 이 사이에 설령 6바라밀의 가행공용(加行功用)을 떠난다 하더라도 【釋】이미 유식관에 들었기 때문에 이런 연유로 견위로부터 구경위에 이르기까지가 중간에 거짓 설정된다. 이 사람은 그 사이에서 공용을 짓지 않고서도 6바라밀을 수행하여 6바라밀이 자연히 가득하여 충분하여진다. 왜냐 하면
016_1182_b_02L【論】바른 설법을 신락(信樂)하여 소중히 사랑하며, 기쁘게 따르며, 얻기를 바라며 사유함으로 해서 【釋】여래의 바른 설법은 6바라밀과 함께 상응하므로 비록 뜻이 깊고 깊어 풀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역시 신락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락으로 말미암아 6바라밀을 행함에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어서 다함 없는 공덕을 보며, 마음은 소중한 사랑을 일으킨다. 이러한 소중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신락의 의미를 누가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모든 부처님과 여래만이 이미 궁극의 바라밀의 위계에 이르러서 이러한 의미를 얻을 수 있으며, 수승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수승한 사람의 깊은 마음에서 기뻐하며 칭송하기 때문에 기쁘게 따른다고 말한다. 이렇듯 기쁘게 따름으로 해서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중생과 내가 평등하게 이러한 청정한 신락을 얻기 바라기 때문에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얻기 바라는 것으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부처님께서 세우신 대승의 법문과 같이 보시 등의 6바라밀과 12부 아함에 의거하여 문혜와 사혜와 수혜로 말미암아 거듭거듭 사유한다. 문혜로 말미암아 과보가 얻는 원만함을 사유하고, 사혜로 말미암아 들은 법을 사유하여 마음이 이치에 들어갈 수 있다. 수혜로 말미암아 사유하여 스스로의 일을 이룰 수 있다. 지(地)에 들어가고 지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사유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論】항상 쉼이 없이 행하기 때문에 6바라밀을 수행하여 궁극에는 원만하여진다. 【釋】이러한 세 가지 사유로 말미암아 보살은 항상 방일함이 없다. 방일함이 없기 때문에 인에 있어서 6바라밀을 수행하여 궁극에 과의 원만함에 도달한다. 이 위계에서는 6바라밀을 두루 섭지할 수 있어서 다섯 가지 청정을 모두 충분히 갖추기 때문에 청정한 뜻의 위계[淸淨意位]라고 일컫는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이러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음의 긴 게송 뒤에 다시 세 구의 게송을 설한다.
원만하고 새하얀 법10)을 닦고 익혀서 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을 수 있으니 보살은 스스로의 승(乘)의 깊고 넓고 큰 가르침에 있어서
016_1182_b_16L修習圓白法, 能得利疾忍, 菩薩於自乘,
甚深廣大說。
016_1182_c_02L 【論】원만하고 새하얀 법을 닦고 익혀서 【釋】먼저 원행위(願行位) 가운데서 도의 자량을 바르게 낳아 키운다.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첫 구절을 설한다. 닦여진 행이 이미 마흔 개의 마음의 위계를 지나왔기 때문에 원만하다고 일컫는다. 보시와 지계로 세 가지 성품의 청정한 법을 닦았으므로 새하얗다고 이른다. 다시 새하얀 법이 있으니 신근(信根)ㆍ지근(智根)ㆍ정진근(精進根)ㆍ정근(定根)을 말한다. 이 네 가지 근이 곧 네 위계[四位]이다. 염근(念根)은 네 위계에 모두 통하며 일천제, 외도, 성문, 독각의 네 가지 검은 장애를 없앨 수 있고,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의 네 가지 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새하얀 법이라고 이름짓는다. 만약 자량이 원만하다면 다시 무엇을 얻게 되는가?
【論】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을 수 있으니 【釋】기꺼이 받아 행할 수 있음이 인(忍)의 의미이다. 넓고 크고 깊고 깊은 법을 받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지만 받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예리하다고 말한다. 거듭 일으켜서 쉬지 않기 때문에 빠르다고 이른다. 이 구절은 인(忍)이 상상품(上上品)임을 드러낸다. 만약 보살이 이 인위(忍位)에 있다면 이러한 경계로 말미암아 보살은 반드시 청정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論】보살은 자신의 승(乘)의 깊고 넓고 큰 가르침에서 【釋】대승은 오직 보살의 경계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승이라고 말한다. 대승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승 가운데는 다른 경계가 있으니, 첫째는 법이 자성이 없는 것으로 깊고 깊다고 일컬으며, 둘째는 허공기(虛空器) 등의 선정으로 넓고 크다고 일컫는 것이다. 앞의 것은 지혜의 경계이고, 뒤의 것은 선정의 경계이다. 이 두 경계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로 말미암아 보살은 청정을 얻는다.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두 번째의 게송을 읊는다.
【論】오직 분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얽매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므로 낙신(樂信)의 청정이며, 청정의지(淸淨意地)라고 일컫는다.
016_1182_c_16L論曰。
覺唯分別故, 得無著智故, 是樂信淸淨,
名淸淨意地。
【論】오직 분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釋】보살은 대승의 모든 법 내지 깊고 넓고 큼[甚深廣大]이 모두 분별이 지어낸 것임을 깨달아 마친다. 이와 같이 깨달아 마치는 것을 사유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사유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보살의 청정은 무엇을 얻게 되는가?
016_1183_a_02L【論】얽매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므로 【釋】보살은 모든 법이 항상 분별이며 다시 바깥 경계가 없음을 본다. 바깥 경계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분별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안과 밖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곧 얽매이는 것이 없다. 이것이 곧 무분별지이다. 이 지혜가 곧 청정이다. 이러한 청정의 체성은 어떠한가?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세 번째의 게송을 읊는다.
【論】낙신의 청정이며 【釋】낙신이 곧 무분별지의 체이다. 일곱 가지의 개별적 대상을 애착하지 않기 때문에 낙(樂)이라고 한다. 세 가지 불성에 대해 마음이 결코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신(信)이라고 한다. 일곱 가지의 애착을 떠나므로 낙청정이며 허망함을 떠나므로 신청정이다.
【論】청정한 뜻의 지(地)라고 일컫는다. 【釋】낙신청정으로 말미암아 이 위계가 청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한 이 위계는 보살의 견위(見位)로서 무분별지의 경계가 청정한 곳이다. 이 지혜는 낙신으로 체를 삼기 때문에 이 위계를 청정한 뜻의 지(地)라고 일컫는다. 청정락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論】보살은 인식현상의 흐름에 있어서 앞에서나 뒤에서나 모든 부처님을 본다. 이미 보리(菩提)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아 어려움 없이 쉽게 얻기 때문이다.
016_1183_a_13L 論曰。
菩薩在法流, 前後見諸佛, 已知菩提近,
無難易得故。
【論】보살은 법의 흐름에 있어서 앞에서나 뒤에서나 모든 부처님을 본다. 【釋】청정의 낙신에는 두 가지 모양이 있다. 첫째는 항상 적정(寂靜)에 있음이 상이 되고, 둘째는 항상 밝게 부처님을 보는 것이 상이 된다. 낙으로 말미암아서 일곱 가지 애착을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관에 들어서 도를 닦기 때문에 항상 법의 흐름에 있다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법의 흐름에 있다면 무엇을 보게 되는가? 신(信)의 세 가지 불성으로 말미암아 먼저 법신을 사유하고, 뒤에 법신을 증득한다. 먼저 비량(比量)의 지혜로써 법신을 보고, 뒤에 증량(證量)의 지혜로써 법신을 본다. 이러한 낙신은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016_1183_b_02L【論】이미 보리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아 어려움 없이 쉽게 얻기 때문에 【釋】만약 사람이 청정의 낙신 위에 있다면 위없는 보리가 이미 가까이에 있음을 밝게 깨달아 보게 된다. 이미 신은 사십의 마음[四十心]을 지나왔다. 이렇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바른 방편에 들어간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세 구의 게송이 성취하는 자량의 인경계(忍境界)로 말미암아 사유하는 체성의 상모가 모두 현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論】어째서 바라밀은 여섯 개만이 있다고 안립하는가? 【釋】이것은 바라밀이 어째서 여섯 개로 정립되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가?
016_1183_b_06L論曰。何故波羅蜜唯有六數。釋曰。此問波羅蜜何故定立六數不增不減。
【論】안립하여 여섯 가지 혹장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의 교법이 생하여 일어나는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며, 그리고 뒤좇아 따라서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하는 의지를 위해서이다. 【釋】바라밀에는 여섯이 있는데 모두 이 세 가지 뜻을 위해서이다. 첫째는 혹(惑)을 제거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불법을 생하여 일으키기 위함이며, 셋째는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혹을 제거하는 것은 현재 스스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불법을 생하여 일으키고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미래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만약 혹이 영원히 없어진다면 곧 현재에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 수 있다. 왜냐 하면 마땅히 다시 공용(功用)을 일으키지 않아도 이 혹을 없애게 되고 이 혹을 막게 되어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현재에 스스로 이익을 얻는다. 미혹의 장애가 이미 없어지면 미래의 시간에 반드시 스스로 부처님의 법을 충분히 갖출 것이며, 또한 중생을 성숙케 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論】수행할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다스리기 위하여 보시와 지계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수행할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란 재물과 가족을 거느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다. 【釋】재물에 탐을 내고 집착하는 것은 보시를 가로막으며, 가족에 탐착하는 것은 지계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탐착 때문에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없다.
016_1183_c_02L【論】이미 수행할 마음을 일으켰다면 물러서려는 약한 마음의 원인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인욕과 정진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釋】이미 보시와 지계를 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고통스러운 일을 참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보시와 지계의 마음이 물러나 약해진다. 비록 고통을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만약 모든 선을 애써서 닦아 모든 악을 끊지 않는다면 곧 보시와 지계와 인욕의 마음이 모두 물러나 약해지기 때문에 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이 두 바라밀을 세워야 한다.
【論】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의 원인이란 생사중생(生死衆生)이 어기고 거스르는 고통스런 일을 말하며 【釋】이치를 얻지 못한 사람을 생사중생이라고 한다. 보살의 가르침을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 어기는 것이 되고, 보살의 신(身)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것이 거스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두 가지가 고통스런 일이다. 만약 이러한 고통스런 일을 참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곧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 성내는 것이 곧 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의 원인이다.
【論】오랜 시간 바른 법을 도와주는 가행(加行)에서 오는 피곤함과 나태함을 말한다. 【釋】오랜 시간 동안 정진을 행하고 온갖 선을 닦는다. 만약 중생에 대해서 자비로운 마음이 없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수행한 것에 수승한 공덕이 있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 가운데서 피곤하고 나태한 마음을 낸다. 이런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정진할 수 없다. 곧 이것이 싫어함과 게으름이다. 싫어함과 게으름이 곧 물러나 약해진 마음의 원인이다.
【論】만약 이미 행하고 물러나 약해지지 않는 마음을 내어 일으켰다면 무너져 잃어버리는 마음의 원인을 다스리기 위하여 선정과 지혜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무너져 잃어버리는 마음의 원인이란 산란하고 삿된 지혜이다. 【釋】산란하기 때문에 고요한 마음을 무너뜨린다. 삿된 지혜로 말미암아 바른 견해를 잃어버린다.
016_1184_a_02L【論】앞의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는 원인이다. 【釋】네 장애가 있어서 산란의 원인이 된다. 첫째는 버려야 하는 장애이고, 둘째는 멀리 떠나야 할 장애이며, 셋째는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장애이며, 넷째는 거듭 다스려야 하는 장애이다. 탐내고 집착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고 탐(貪)ㆍ진(瞋)ㆍ치(癡)가 열 가지 악을 생하기 때문에 멀리 떠날 수 없다. 성내기 때문에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로 말미암기 때문에 거듭 다스릴 수 없다. 이러한 네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마음이 산란하다. 앞의 네 바라밀이 이 네 장애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원인이다. 또한 다시 다섯 가지 덮임[蓋]11)이 선정의 장애가 된다.
네 가지 덮임은 선정의 원인을 가로막고 하나의 덮임은 바른 선정과 선정에서 생겨나는 지혜를 가로막는다. 탐욕ㆍ도회(掉悔)ㆍ성냄ㆍ수면(睡眠)12)의 네 가지 덮개가 산란의 원인이며, 앞의 네 바라밀을 가로막는다. 네 바라밀은 이 네 가지 덮임을 다스리기 때문에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원인이 된다. 의심은 경계를 연하여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다. 선정에 든 마음은 결정하여13) 하나의 경계를 지키므로 의심은 바른 선정을 가로막는다. 의심은 이치를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선정이 일으키는 지혜를 가로막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로써 의심을 다스린다.
【論】다시 하나의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체이다. 이러한 산란하지 않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진리를 실답게 깨우쳐 마칠 수 있어서 모든 여래의 바른 법이 다 일어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불법이 일어나는 의지처가 되므로 바라밀을 세워 여섯이 되는 것이다. 뒤좇아 따라서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하는 의지를 위해서라는 것은 보시바라밀로 말미암아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지계바라밀로 말미암아 중생을 괴롭히지 않게 하며, 인욕바라밀로 말미암아 그들을 헐뜯고 욕되게 하는 것을 편안히 받아들여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며, 정진바라밀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선근을 생하게 하고 그들의 악근(惡根)을 없에게 하며, 이러한 이익된 원인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을 다스려 굴복시키게 한다.
016_1184_b_02L다시 그들의 마음이 아직 고요함을 얻지 못하였다면 고요하게 하고, 이미 고요함을 얻었다면 해탈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을 세운다. 이 6바라밀로 말미암아 보살은 중생을 바르게 가르친다. 【釋】바르게 가르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치에 맞게 설해 주므로 가르친다고 하고, 둘째는 항상 설해 주므로 바른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論】이 6바라밀의 상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釋】어찌하여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가? 세간과 2승과 보살에 모두 보시 등의 6행이 있다. 만약 보살이 행하는 바라밀의 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것이 바라밀이고, 이것은 바라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따라서 반드시 바라밀의 상을 물어야 한다.
【論】여섯 가지의 가장 수승함으로 말미암아 6바라밀의 공통된 상이 여섯 가지 있다. 첫째는 의지로 말미암아 비길 데가 없음이니,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여 일어남을 일컫는다. 【釋】이것은 의지하는 것에 다름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세간과 2승의 보시 등의 행은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일어난다. 오직 보살의 보시 등의 행만이 반드시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가 비길 데 없음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016_1184_c_02L【論】둘째는 품류로 말미암아 비길 데가 없음이니, 하나하나의 바라밀을 간단히 설명하면 모두 세 가지 품류가 있는데 보살은 모두 갖추어 수행한다. 【釋】이것은 연하는 일에 다름이 있으므로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세간과 2승은 보시 등을 모두 갖춘 품류, 말하자면 외내(外內)와 내외(內外)를 행할 수 없다. 만약 보살이 보시 등을 행한다면 반드시 모든 행이 품류를 다 갖추기 때문에 품류가 비길 데 없음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論】셋째는 행하는 일이 비길 데 없음이니, 모든 중생을 안락하고 이익되게 하는 일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은 다 이 두 가지 일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釋】이것은 행하는 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먼저 중생에게 현재와 미래의 세간의 즐거움을 생하게 되고, 뒤에 근성을 따라 중생에게 3승의 도의 과보를 생하게 된다. 세간과 2승의 보시 등의 행은 단지 자신을 안락하게 하고 이익되게 하지만 오히려 성취되지 않는다. 하물며 어찌 중생을 안락하고 이익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행하는 일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論】넷째는 방편으로 말미암아 견줄 수 없음이니, 무분별지를 일컫는다. 보살이 행하는 바라밀은 모두가 무분별지가 섭지하는 것이다. 【釋】이것은 방편에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3륜14)에 있어서 청정함을 보살의 방편이라고 한다. 3륜에 있어서의 청정은 곧 무분별지이다. 보살은 이 지혜로 말미암아 보시하는 것과 보시를 받는 것 그리고 보시한 재물을 분별하지 않는다. 세간과 2승은 3륜의 분별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하기 때문에 아애(我愛)를 일으키고 재물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에게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방편은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계의 3륜(輪)이란 중생의 일을 할 때 분별을 떠나는 것이고, 인의 3륜이란 나와 남의 과실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는 것이고, 정진의 3륜이란 중생의 신분이 높고 낮음을 사용하는 분별을 떠나는 것이며, 정의 3륜이란 경계에 대한 중생의 혹분별(惑分別)을 떠나고, 반야의 3륜이란 경계에 대한 지혜[境智]에서 중생의 분별을 떠난 것이다. 다섯은 회향으로 말미암아 비길 데 없음이며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은 결정코 모든 지혜의 과를 바꾸어 향하기 때문이다.
016_1185_a_02L【論】다섯째는 회향(廻向)으로 말미암아 견줄 수 없음이니,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에 의해 행하여지는 모든 바라밀은 결정코 일체지(一切智)인 과(果)로 바꾸어 향하기 때문이다. 【釋】보살이 만약 보시 등을 행한다면 그 마음을 먼저 일으킨다. 내가 이 물건으로 모든 6도(道)의 중생에게 베풀어 주었다면 이것은 중생의 재물이며, 나는 그들에게 보시를 행함이 되고 그들 모두가 위없는 보리를 얻도록 기원한다. 이 보시는 회향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시의 행은 영원히 다함이 없다. 만약 나머지 다른 바라밀을 행한다면 역시 모두 회향한다. 세간과 2승은 회향하지 않기 때문에 회향은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論】여섯째는 청정으로 말미암아 비길 데 없음이니, 혹장과 지장이 영원히 사라져 남음이 없음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의 부분부분이 혹장과 지장을 제거하여 마침내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釋】이 가운데서 두 가지 청정을 드러낸다. 첫째는 청정의 인을 드러내고, 둘째는 청정의 위계를 드러낸다. 청정의 인이란 원인이 되어 혹장과 지장을 멸하기 때문에 보시 등의 일이 청정하다. 청정의 위계란 먼저 지(地) 전에 혹장을 점차 제거하여 뒤에 초지(初地)에 올라 점차 지장을 제거한다. 이 두 곳을 부분부분이 청정하다고 말하며 이것이 곧 인의 위계이다. 만약 부처님의 과에 이르러 6바라밀이 원만하여지면 모든 부분이 청정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과의 위계이다.
【論】어찌하여 6바라밀을 이와 같은 순서로 설명하는가? 【釋】이것은 혹은 의심스러워서 묻기도 하고, 혹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기도 한다. 의심스러워서 묻는다는 것은 모든 행위는 반드시 먼저 지혜로 말미암아 원인과 결과를 알고 나서 바야흐로 바르게 노력하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서 그 원하는 것을 좇아서 곧 모두를 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심이 있음으로 해서 순서가 바뀌고 순서가 없게 된다. 이렇다면 반드시 질문하여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는다는 것은 사람이 많은 행을 닦고 싶지만 얕고 깊음과 행하기 쉽고 행하기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얕은 것은 행하기 쉽고 깊은 것은 행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쉬운 것을 먼저 배우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하여야 한다.
016_1185_c_02L【論】앞에 있는 바라밀이 차례대로 뒤에 있는 바라밀을 생하기 때문이며, 【釋】보살은 중생의 가난하고 궁색한 것과 어렵고 힘든 것을 참고 볼 수 없어서, 재물을 희사하는 것을 거듭 익혀 능히 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생을 괴롭히는 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곧 가산을 희사하고 계율을 지키기 때문에 보시로 인하여 지계를 생한다. 보살은 주어진 계율을 아끼고 지켜서, 중생을 성나게 하고 원통하게 하는 일로써 청정한 계율을 훼손하고 깨뜨리게 하지 않는다. 곧 인욕을 행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계율로 인하여 인욕을 생한다.
번뇌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이루기도 하고, 혹은 이루지 못하기도 하기에 보살은 이러한 인욕을 아끼고 지키기 위해서 곧 정진을 행한다. 따라서 인욕으로 인하여 정진이 생한다. 만약 사람이 항상 정진을 행한다면 곧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이러한 정진으로 말미암아 만약 마음이 사로잡혀 빠지더라도 곧 빼내어 일으킨다. 만약 마음이 흔들려 움직이면 곧 억눌러 일어나지 않게 한다. 만약 마음이 평등하면 곧 지켜서 항상 이어지게 한다. 마음이 조화(調和)로운 까닭에 선정을 얻는다. 따라서 정진으로 인하여 선정을 생한다. 만약 마음이 선정을 얻었다면 곧 진여를 통달할 수 있다. 따라서 정(定)으로 인하여 지혜를 생한다. 이것이 곧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論】또한 앞의 바라밀들이 뒤의 바라밀들로 말미암아 청정하여지기 때문이다. 【釋】보시는 지계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사람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청정하지 않다. 의지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행하여지는 보시도 역시 청정하지 않다. 계율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의지가 청정하기 때문에 보시가 청정할 수 있다. 지계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사람이 참을 수 있다면 신업ㆍ구업ㆍ의업이 모두 청정함을 얻는다. 인욕은 정진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정진은 선을 생하고 악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은 선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정진하여 수위(修位)에 있지 않다면 곧 혹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선정은 지혜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진여를 요별하지 못한다면 비록 다시 선정을 얻더라도 유류(有流)이기 때문에 곧 생사법이다. 만약 진여를 본다면 얻어지는 선정이 곧 무류(無流)를 이루기 때문에 열반도(涅槃道)가 된다. 이것이 곧 뒤의 것이 앞의 것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로 말미암아 순서가 있다.
016_1186_a_02L【論】무슨 뜻으로 6바라밀의 의미를 세웠는가? 이 의미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釋】세간에서 이름을 짓는 데는 스스로 많은 원인이 있다. 원인이 있으므로 부류를 생하고 이름을 세운다. 원인이 되는 상(相)이 있으므로 이름을 짓고, 원인이 있으므로 거짓으로 이름을 세우고, 원인이 있으므로 가볍고 천박하게 이름을 짓고, 원인이 있으므로 공경하고 존중하여 이름을 세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인 가운데 6바라밀은 어떠한 뜻을 따라 이름을 세웠는가? 두 가지 원인으로부터 이름을 지었다. 종자의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부류를 이루는 것으로부터 이름을 지었고, 공덕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경하고 존중함으로부터 이름을 지었다. 지어진 이름에 스스로 공통성과 개별성이 있다. 여섯 가지 모두를 바라밀이라고 일컫는 것은 공통된 이름이고, 보시와 지계 등 다름이 있는 것이 개별적인 이름이다. 어찌하여 바라밀이라고 공통되게 부르는가?
【論】모든 세간과 성문승과 독각승의 보시 등의 선근 가운데 가장 수승하여 비길 데가 없기 때문에, 【釋】여섯 가지와 세 가지의 수승함과 비길 데 없음이 있다. 여섯 가지는 앞에서의 여섯 가지 상을 설명한 것과 같다. 세 가지란 첫째는 시각[時]이 비길 데 없음이고, 둘째는 가행이 비길 데 없음이며, 셋째는 과가 비길 데 없음이다. 하나 하나의 바라밀이 모두 3아승기겁을 닦았기 때문에 시각이 비길 데 없음이다. 가행이 비길 데가 없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와 다섯 가지가 있고, 다시 다섯 가지가 있고 여섯 가지가 있다. 네 가지는 곧 앞에서 밝힌 4수(修)이며, 다섯 가지는 곧 앞에서 밝힌 다섯 가지의 청정이다.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은 곧 5수(修)이며, 다시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곧 6의(意)이다. 5수와 6의는 뒤의 글에서 스스로 과보를 설명한다. 비길 데 없다는 것은 세 가지 신(身)이 드러내는 위없는 보리를 말한다.
016_1186_b_02L【論】그리고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바라밀이라고 널리 불린다. 【釋】피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수행하는 것을 좇아 궁극에는 남음이 없는 것이 피안에 이르는 것이 된다. 세간과 2승에도 역시 수행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닦아도 다하여지지 않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않는다. 둘째는 여러 강물이 바다로 돌아감으로써 끝이 되는 것과 같다. 보시 등도 역시 이와 같다.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이 된다. 곧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세간과 2승도 비록 보시 등을 닦지만 진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셋째는 마땅히 비길 데 없는 과보를 얻는 것이 피안에 이르름이 된다. 다시 이러한 과보보다 수승한 다른 과보는 없다. 모든 과보 가운데 높은 것이 되기 때문에 피안이라고 한다. 세간과 2승도 비록 보시 등을 수행하지만 이러한 과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보살이 닦는 피안이라는 것은 모두 이러한 세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바라밀이라고 통칭(通稱)된다. 어째서 달리 타나(陀那) 등의 이름을 짓는가?
【論】아까워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과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고통을 깨뜨려 없앨 수 있기 때문에 타(陀)라고 하며, 【釋】아까워하는 마음은 많은 재물의 장애이며, 질투하는 마음은 존귀함의 장애이다. 인의 시기에 아까워하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으면 과의 시기에는 많은 재물을 얻어서 가난한 고통을 떠난다. 인의 시기에 질투하는 장애를 없앨 수 있으면 과의 시기에는 존귀함을 얻어서 신분이 낮은 고통을 떠난다. 왜냐 하면 만약 사람이 아직 아까워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깨뜨리지 못하면 곧 베풂[施]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를 깨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만약 사람이 베풀어서 이러한 장애를 깨뜨릴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이 뒤에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고통을 받는다는 이러한 처(處)16)는 없다.
【論】다시 큰 재산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복과 덕의 자량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에 나(那)라고 한다. 【釋】베풀 수 있고 쓸 수 있으므로 큰 재산의 주인이라고 일컬으며, 이러한 주인으로 말미암아 복과 덕의 자량을 끌어당길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타나(陀那)라고 일컫는다.
016_1186_c_02L【論】삿된 계율과 악도(惡道)를 적정(寂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시(尸)라고 하며, 【釋】인의 시기에는 삿된 계율을 깨뜨릴 수 있어서 과의 시기에는 악도를 떠날 수 있다. 사람이 악업을 버리지 않고서 계율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처는 없다. 따라서 먼저 삿된 계율을 깨뜨려야 한다. 만약 사람이 삿된 계율을 깨뜨리고 바른 계율을 지켰는데도 4취(趣)에 떨어진다면, 이러한 처는 없다. 따라서 과의 시기에는 악도를 떠날 수 있다.
【論】다시 선도(善道)와 삼마제(三摩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라(羅)라고 한다. 【釋】먼저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뒤에 인(人)과 천(天)의 선도의 과보를 받아 혹은 인 가운데 있고 혹은 과 가운데 있다. 계율을 지키므로 신업과 구업이 청정하다. 청정하기 때문에 후회가 없고 후회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므로 기쁨[喜]17)을 얻고 기쁘기 때문에 의각지(猗覺支)18)를 얻는다. 아름답기[猗] 때문에 즐거움[樂]을 얻고 즐겁기 때문에 정(定)을 얻는다. 정 때문에 여실하게 보고, 참답게 보기 때문에 싫어서 떠남[厭離]을 얻고, 싫어서 떠나므로 해탈을 얻는다. 따라서 계율을 지킴으로 인하여 삼마제를 얻는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시라라고 일컫는다.
【論】성내는 마음과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찬(羼)이라고 하며, 【釋】인의 시기에는 다섯 가지 의미를 자세히 봄으로써 성내는 마음과 성냄으로써 생겨나는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제거한다. 다섯 가지 의미란 첫째는 모든 중생은 시작함이 없는 예전부터 나에게 베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중생이 항상 생각생각에 사라진다는 것을 관하니 누가 손해를 입히고 누가 손해를 입겠는가? 셋째는 오직 법만이 있고 중생은 없음을 관하니 누가 손해를 입히고 누가 손해를 입는 것이 있겠는가? 넷째는 모든 중생이 모두 스스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여기에 고통을 더하고 싶겠는가? 다섯째는 모든 중생이 다 나의 자식이라고 관하니, 어찌 이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싶겠는가? 이러한 다섯 가지 관으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을 없앨 수 있다. 성내는 것이 이미 없으니 분하고 원통함을 제거할 수 있다.
016_1187_a_02L【論】다시 나와 남에게 평화로운 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제(提)라고 일컫는다. 【釋】이러한 일은 인과를 통달한다. 이러한 인욕[忍]이 자신을 성내는 과실로 물들지 않게 하여 곧 스스로에 있어서 평화로우니 이미 분하고 원통하지 않으며, 남에게 고통을 끼치지 않아서 곧 타인에 있어서도 평화롭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덕이 있으니, 첫째는 분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질책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넷째는 좋은 명성을 듣는 것이며, 다섯째는 선도(善道)를 일으킴이다. 곧 이러한 다섯 가지 덕을 평화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찬제(羼提)라고 일컫는다.
【論】나태함과 모든 나쁜 법을 제거하여 없애므로 비(毘)라고 하며, 【釋】나쁜 곳[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태함이라고 일컬으며, 또한 나쁜 행동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태함이라고 말한다. 나태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바른 행동을 멀리하고 모든 나쁜 법을 일으킨다.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항상 잘못을 일으키므로 나쁜 법이라고 일컫는다. 나태함을 없애버림으로 해서 나태함이 일으키는 모든 해악을 없앨 수 있다. 이것을 검은 법[黑法]을 없애는 정진이라고 일컫는다.
【論】다시 수행하여 멋대로 지내지[放逸] 않고, 헤아릴 수 없는 바른 법을 일으켜 늘리므로 이야(梨耶)라고 한다. 【釋】이것은 인과를 믿고 즐거워함을 간추림으로써 정진을 밝힌다. 인을 믿으므로 행할 수 있고 과를 즐거워하므로 얻을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항상 공손하고 정중한 행위를 행함으로 멋대로 지내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손하고 정중함을 행함으로써 아직 생하지 않은 선은 생하게 할 수 있고, 이미 생겨난 선은 늘리고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법을 일으켜 얻는 정진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비리야(毘梨耶)라고 일컫는다.
【論】산란을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에 지가(持訶)라고 하며, 【釋】산란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성(自性)산란으로 5식(識)을 말하며, 둘째는 외(外)산란으로 의식이 바깥의 대상을 치달아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셋째는 내(內)산란으로 마음의 높고 낮음과 싱거운 맛[噉味] 등을 말하며, 넷째는 추중(麤重)산란으로 나[我]와 나의 것[我所] 등을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다섯째는 사유(思惟)산란으로 하열한 마음이며 보살이 대승을 버리고 소승을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論】모든 인식현상을 알기 때문에 야(若)라고 일컫는다. 【釋】진여의 상(相)과 품류를 모든 법이라고 말한다. 여리지는 반야라 하고, 여량지는 반야의 과보이므로 역시 반야라고 말한다. 이러한 두 가지 지혜는 세 가지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첫째는 대하여 다스림이니 곧 두 가지 장애이고, 둘째는 경계이니 곧 참다운 상이며, 셋째는 과보이니 곧 여량지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반라야(般羅若)라고 일컫는다.
016_1187_c_02L【論】간략하게 설명하니, 닦아 익힘에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자세히 설명한다면 닦음에는 열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시수(顯示修)이고, 두 번째는 감손수(減損修)이고, 세 번째는 치성수(治成修)이며, 네 번째는 후행수(後行修)이며, 다섯 번째는 상응수(相應修)이며, 여섯 번째는 승수(勝修)이며, 일곱 번째는 상상수(上上修)이며, 여덟 번째는 초제수(初際修)이며, 아홉 번째는 중제수(中際修)이며, 열 번째는 후제수(後際修)이며, 열한 번째는 유상수(有上修)이며, 열두 번째는 무상수(無上修)이다. 현시수는 4념처를 닦는 것을 말하니, 4제(諦)를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감수란 4정근을 말하니, 모든 나쁜 법을 점차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성수는 4여의족(如意足)을 말하니, 선정을 다스려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잃음[五失]을 제거하고 8멸(滅)의 자량을 지키기 때문이다. 후행수는 5근(根)을 닦는 것을 말하니,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을 갖추기 때문이다. 상응수란 5력(力)을 닦는 것을 말하니, 마땅히 견도를 이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승수란 7각분(覺分)을 말하니 4제관(諦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상수란 8분성도(分聖道)를 말하니, 수승한 견도이기 때문이다. 초제수란 범부의 위계를 말하니, 전도를 좇아 따르기 때문에 계율을 닦고 부정관(不淨觀)과 수식관(數息觀)을 닦기 때문이다. 중제수란 유학위(有學位)를 말하니, 이 가운데에는 전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후제수란 무학위(無學位)를 말하니, 이 가운데는 전도가 없고 전도되는 전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상수란 성문승과 독각승의 닦음을 말하니, 그들의 위계와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수란 보살의 10지(地) 등을 말하니,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016_1188_a_02L【論】다섯째는 남에게 이익되는 일을 닦음[利益他事修]이다. 이 가운데 앞의 네 가지 닦음은 앞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익타사수(利益他事修)란 부처님의 공용이 없는 마음을 말하며, 여래의 일을 버리지 않는다. 【釋】대승의 가르침 가운데서 설명한 것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록 이미 열반에 드셨지만 오히려 다시 마음을 일으키신다. 반열반(般涅槃)은 곧 법신이다. 다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응신(應身)과 화신(化身)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미 법신에 머무셨다. 본원력(本願力)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업을 떠나서도 중생에 이익되는 일을 좇아서 자연히 응신과 화신을 나투신다. 항상 여래의 정법을 버리지 않고 모든 바라밀을 행한다. 이런 이유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힘이 있다.
【論】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혀서 원만위(圓滿位) 가운데 이르러 다시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 【釋】부처님과 보살은 이 원만위 가운데서 부분부분 원만하기도 하고, 모든 부분에서 원만하기도 하다. 만약 모든 바라밀을 닦았다면 스스로의 일은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중생이 이러한 수행으로 말미암아 4취(趣)를 떠나 3승의 도과(道果)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곧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다.
【論】또한 다시 사유수습(思惟修習)이란 애중(愛重)ㆍ수희(隨喜)ㆍ원득(願得)의 사유이며, 여섯 가지 뜻[六意]에 포섭되어 닦여진다. 【釋】이 장에서 수습의 의미를 꿰뚫어 밝혔다. 앞에서 다섯 가지 수행을 밝혔으나, 수행의 위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어떻게 원행위의 수행이 청정위의 수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만약 6의가 세 가지 사유를 섭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면 청정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행위 가운데는 이러한 의미가 없다. 세 가지 사유가 수행의 근본이어서 여섯 가지 뜻으로써 이 세 가지를 장엄하게 섭지한다.
016_1188_b_02L【論】여섯 가지 뜻이란 첫째는 넓고 큰 뜻이고, 둘째는 오랜 시간의 의지이며, 셋째는 환희의 뜻이며, 넷째는 은덕이 있는 뜻이며, 다섯째는 큰 의지의 뜻이며, 여섯째는 착하고 우호적인 뜻이다. 넓고 큰 뜻이란 만약 보살이 약간의 아승기겁에서 위없는 보리를 얻을 수 있다면 【釋】겁의 수를 통틀어 거론한다면 많고 적음이 무한하기 때문에 약간이라고 말한다. 대소승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겁의 수가 같지 않기 때문에 겁의 수가 많고 적음을 정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소승에서는 3아승기겁에 성불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고, 대승에서는 혹은 3 혹은 7 혹은 33아승기겁에 성불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論】이러한 시간이 한 찰나찰나가 되는데, 【釋】혹은 3아승기겁을 합하여 한 찰나가 되고 혹은 33아승기겁을 합하여 한 찰나가 되기 때문에 다시 찰나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이 한 찰나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찰나까지가 하루, 한 달 내지는 1아승기겁이 된다. 1아승기부터 33아승기까지 성불할 수 있다. 보살의 뜻이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이 긴 시간을 설한다.
【論】보살은 이 시간 가운데서 찰나찰나에 항상 신명(身命)을 버린다. 【釋】이 시간은 통틀어 긴 시간을 거론한 것이다. 찰나는 세간에서 말하는 찰나를 밝힌다. 앞에서 설명한 긴 시간 가운데 세간에서 설명하는 찰나와 같이 한 찰나 가운데서 항상 신명과 그 밖의 재물을 버려 성불할 때까지 싫어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없다.
016_1188_c_02L【論】그리고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의 세계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물을 베풀어 마음을 처음 냈을 때부터 궁극의 청량한 보리에 들어가 머물 때까지 여래를 봉양한다. 【釋】번뇌의 더러움을 떠나기 때문에 유여열반(有餘涅槃)을 청(淸)이라고 하며, 많은 고통과 뜨거운 번뇌를 떠나기 때문에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양(凉)이라고 일컫는다. 또한 보리는 깨끗함과 즐거움이 체가 되므로 깨끗한 덕을 드러내기 위하여 청이라고 하고, 즐거움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양이라고 말한다.
【論】그래도 보살의 베풀려는 의지는 오히려 만족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많은 시간의 찰나찰나가 삼천대천세계의 맹렬한 불로 가득하여도 보살은 그 가운데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4위의(威儀)가 된다. 모든 생활의 도구가 없어도 【釋】이 밑으로는 보살이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닦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 긴 시간에서 한 찰나찰나 가운데 보살은 극히 고통스럽고 힘든 곳에 있다. 몸을 자양할 도구가 항상 족하게 공급되지 않아서 보살은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아도 이러한 시간 속에서도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여 싫어함도 만족함도 맛보지 않는다.
【論】지계ㆍ인욕ㆍ정진ㆍ삼마제ㆍ반야심을 보살은 항상 눈앞에 드러내 닦아서 궁극의 청량한 보리에 들어가 머물 때까지 보살의 지계와 인욕의 의지는 역시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는 마음이며 보살의 넓고 큰 의지이다. 만약 보살이 처음 발심할 때부터 성불할 때까지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긴 시간의 뜻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로 말미암아 짓는,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은 항상 비길 데 없는 환희를 일으켜서 중생은 그 마음에 어느 것도 이를 수 없는 환희를 더할 수 있으면, 이것을 보살 환희의 뜻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여 이미 중생을 이익되게 했다면 중생이 그에게 커다란 은덕이 있음을 보지만 자신이 중생에게 은혜가 있음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은덕이 있는 뜻이라고 한다.
016_1189_a_02L만약 보살이 6바라밀로부터 생하여진 공덕선근을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주었다면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써 회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랑할 수 있고 소중한 과보를 얻게 한다면, 이것을 보살의 큰 의지의 뜻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행한 6바라밀의 공덕선근을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얻게 하여 그들이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게 된다면 이것을 보살의 착하고 우호적인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뜻으로 섭지하는 애중사유(愛重思惟)로 말미암아 보살은 닦아 익힌다. 【釋】마음을 구하여 얻으면 큰 공덕이 있음을 본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것을 얻고자 한다.
【論】보살의 수희(隨喜)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 보살은 6의가 생하는 공덕과 선근을 닦아 가행한다. 이것이 보살의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수희사유(隨喜思惟)라고 일컫는다. 【釋】의심이 없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미 수희하는 뛰어난 사람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코 의심이 없다.
【論】만약 보살이 모든 중생이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6바라밀을 수행하기를 원하고, 자신도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6바라밀을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가행을 닦아 익혀서 이에 성불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보살의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원득(願得)의 사유이다. 【釋】크게 가련히 여겨 혼자서 구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세 가지 사유는 곧 세 가지 마음을 없앤다. 첫째는 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없애고, 둘째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마음을 없애며, 셋째는 치우쳐 나아가는 마음을 없앤다.
【論】만약 사람이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보살의 사유를 듣고 닦아 익힐 수 있다면 한 생각에 믿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람은 곧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복덕의 덩어리를 얻어서 모든 악업의 장애를 무너뜨려 없애어 남음이 없을 것이다. 【釋】업의 장애를 없애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업을 무너뜨려 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업이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선력(善力)한 힘이 크기 때문에 악도의 과보를 막을 수 있어서 영원히 업을 받지 않게 한다. 역시 무너뜨려 없앤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사람이 단지 듣기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끝없는 복덕을 얻는다고 한다면 하물며 어찌 보살이 능력을 다하여 수행하겠는가?
【論】각기 세 가지 품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차별을 안다. 【釋】이것은 수량을 총체적으로 나타내어 답함으로써 묻는다.
016_1189_b_06L論曰。由各有三品。知其差別。釋曰。此摠標數以答問。
【論】보시(布施)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교법의 보시이고, 둘째는 재물의 보시이며, 셋째는 무외(無畏)의 보시이다. 【釋】법의 보시는 남의 마음을 이익되게 한다. 법의 보시로 말미암아서 다른 사람이 지혜 등의 선근을 듣고서 덕을 일으킨다. 재물의 보시는 다른 사람의 몸을 이익되게 하며, 무외의 보시는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이익되게 한다. 또한 다시 재물의 보시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을 이끌어서 선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무외의 보시로 말미암아 그들을 두루 포섭하여 권속을 이루게 한다. 법의 보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선근과 해탈을 이루는 것을 일으킨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보시에 세 가지 품성이 있다고 설한다.
【論】지계(持戒)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계율을 지키어 보호함이고, 둘째는 선법의 계율을 섭지함이며, 셋째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율을 섭지하는 것이다. 【釋】계율을 지키어 보호하는 것이 나머지 두 가지 계율의 근거이다. 만약 사람이 악을 떠나지 않고 선을 섭지하여 남을 이익되게 하지 않는다면 곧 계율을 얻을 수 없다. 만약 사람이 계율을 지키어 보호하고 있다면 선법의 계율을 이끌어 섭지할 수 있어서 불법(佛法)과 보리가 생하여 일어나는 근거가 된다. 만약 앞의 두 가지 계율에 머무른다면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계율을 이끌어 섭지할 수 있어서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의지가 된다.
016_1189_c_02L또한 계율을 지키어 보호하는 것은 악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후회하고 번뇌하는 마음이 없어서 현세에 안락하게 머무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안락하게 머무는 것으로 말미암아 선법의 계율을 닦아 섭지할 수 있어서 불법을 성숙시키게 된다. 만약 사람이 앞의 두 가지 계율에 머문다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율을 닦아 섭지할 수 있어서 남을 성숙시키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품성의 계율은 곧 네 가지 무외의 인이 된다. 왜냐 하면 첫째의 계율은 끊음의 덕이고, 둘째의 계율은 지혜의 덕이며, 셋째의 계율은 은혜의 덕이다. 네 가지 무외는 이러한 세 가지 덕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곧 네 가지 무외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지계에 세 가지 성품이 있다고 설한다.
【論】인욕(忍辱)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남이 헐뜯고 욕함을 참는 것이고, 둘째는 고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인욕이고, 셋째는 인식현상을 자세히 보아 살피는 인욕이다. 【釋】헐뜯고 욕함을 참는 것으로 말미암아 남이 일으키는 과실을 참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보살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행하게 됨으로써 발심하여 수행한다. 비록 남이 헐뜯고 욕하게 되더라도 그 과실에 얽매여서 본래의 수행하는 마음을 돌이켜 물러서지 않는다. 고통을 편안하게 받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비록 다시 생사가 있는 모든 고난 가운데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수행하려는 마음을 그만두지 않는다. 인식현상을 자세히 보아 살피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모든 인식현상의 진리에 들어간다. 이러한 인욕은 인식 주관[人]과 인식현상[法], 이 두 가지 집착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곧 앞의 두 가지 인욕의 의지처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인욕에 세 가지 성품이 있다고 설한다.
016_1190_a_02L【論】정진(精進)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용맹하게 애써 힘쓰는 정진이고, 둘째는 가행하는 정진이며, 셋째는 하락하지 않고 무너지기 어려우며 만족하지 않는 정진이다. 【釋】어떻게 정진에 이러한 세 가지 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불세존께서 경 가운데 말씀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경에서 “이 사람은 정실(貞實)함이 있고 수승한 능력이 있으며, 용맹함이 있고 강제력이 있으며,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 가지 체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러한 다섯 구절을 설하셨다. 용맹하게 애써 힘쓰는 정진을 드러내기 위하여 정실함이 있다고 설하셨고, 가행하는 정진을 드러내기 위하여 수승한 능력이 있다고 설하셨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가행할 때에 수승한 능력이 있어서 앞에서와 같이 바라는 것을 모두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락하지 않고 무너지기 어려우며 만족하지 않는 정진을 설명하기 위하여 차례로 용맹함이 있고 강제력이 있으며,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는 세 구절을 설하셨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위없는 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정실함이 있는 가행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수승한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되어도 구하고자 하는 과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이 중간에 하열한 마음이 생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대하여 다스리기 위해서 하락하지 않는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용맹을 설한다. 사람이 비록 다시 용맹심을 내어 물러나 약해지지 않더라도 만약 생사의 고난을 만나면, 그 마음을 그만두고 무너져 곧 보리를 구하는 바람을 그만둔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너지기 어려운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강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한다. 강제력이 있으므로 생사의 고난에서 물러나게끔 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비록 다시 고난을 만나 물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그마한 소득에도 다시 만족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만족을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최상의 보리를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만족하지 않는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고 설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정진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論】선정(禪定)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안락하게 머무는 선정이고, 둘째는 신통을 이끄는 선정이며, 셋째는 남을 이익되게 함을 좇는 선정이다. 【釋】선정이 있으므로 현세에 안락하게 머물 수 있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더러움에 물든 법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정에 의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생하게 된다. 3명(明) 때문에 6신통을 이끌어 이룰 수 있다. 신통을 이끄는 선정으로 인하여 남을 이익되게 함을 좇는 선정을 생한다.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은 곧 3륜(輪)이다.
016_1190_b_02L첫째는 신통륜(神通輪)이며, 신통(身通)과 천안통 그리고 천이통을 말한다. 이 윤(輪)은 삿된 자를 이끌어 구하여 그를 올바름으로 돌아가게 한다. 둘째는 기심륜(記心輪)이며, 타심통과 천안통 그리고 천이통을 말한다. 이 윤은 이끌어서 이미 올바름으로 돌아온 사람이 만약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교륜이며, 숙주통(宿住通)과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숙주통으로 말미암아 그 근성을 인식하고, 누진통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얻은 것과 같이 바른 가르침을 설하게 되어 하열한 종류의 것이 성숙하여 해탈을 얻게 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선정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論】반야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분별이 없는 가행반야이고, 둘째는 분별이 없는 반야이며, 셋째는 분별이 없는 뒤에 얻는 반야이다. 【釋】상이 없는 대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부터 문(聞)ㆍ사(思)ㆍ수혜(修慧)를 얻어 분별의 생각이 비어 있음에 들어간다. 통틀어 무분별가행반야(無分別加行般若)라고 일컫는다. 이미 3무성에 들어갔으므로 곧 무분별지이며 무분별반야라고 일컫는다. 무분별지를 얻은 뒤에 관에서 나와 앞에서 증득한 것과 같이 혹은 스스로 사유하고 혹은 남을 위하여 설하는 것을 무분별후득반야(無分別後得般若)라고 일컫는다. 반야에 다시 세 가지 품류가 있으니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이며, 출세간의 일을 생하고 머무르고 쓰기 위함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반야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016_1190_c_02L【論】그것들은 6바라밀에 의해 펼쳐지는 과보이기 때문이며, 【釋】그것들은 곧 6신통,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내지 불공법(不共法) 등의 모든 불법(佛法)이며, 모두 6바라밀에 의해 펼쳐지는 과보이다. 바라밀과 더불어 같은 성질이기 때문이다.
【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의 공덕을 알아야 하는가? 【釋】세간의 보시 등의 행위를 행하는 것도 역시 공덕이 있다. 보살의 바라밀 공덕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보살의 바라밀 공덕은 세간의 것과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같은 점에 여섯 가지가 있고, 다른 점에 네 가지가 있다. 같은 점 여섯 가지란?
【論】큰 권속과 무리 대중에 포함되며, 【釋】친척을 권속이라 하고, 포함되어 다스려지는 사람을 무리 대중이라고 한다. 권속과 무리 대중에도 역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 가지 수승함이 있다. 앞에서 설한 것과 같기 때문에 큼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모두 서로 사이가 좋고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항상 함께 기쁘게 모이고 항상 어긋나 떨어지지 않는다. 보살과 범부가 생하는 인욕이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論】크게 생계를 꾸려가는 사업을 성취함에 포함되며, 【釋】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식물을 심는 것이고, 둘째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며, 셋째는 장사하는 것이며, 넷째는 사왕(事王)이다. 같이 화합하고 어그러져 다투기도 하는 것을 일이라고 일컫는다. 바라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성취한다라고 일컫는다. 보살과 범부가 행하는 정진은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b_02L【論】질병과 고뇌가 없고 욕심이 적음 등에 포함되며, 【釋】4무량심(無量心)이 섭지하는 선정, 이러한 선정이 얻는 과보로 몸에 모든 병이 없고 마음이 많은 고뇌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항상 기쁘다. 그 외의 모든 선정으로 얻어지는 과보는 비록 다시 재가(在家)이더라도 번뇌가 적기 때문에 이욕선인(離欲仙人)과 다르지 않다는 것 등은 좋은 형상을 얻고 장수하는 것 등을 말한다. 보살과 범부가 닦는 선정은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論】모든 공예와 학문에 대한 총명한 지혜에 포함된다. 【釋】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공예와 학문들이 필요하다. 곧 18명처(明處)19)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해탈법을 세울 수 있다. 이 가운데 세워서 깨뜨려야 할 두 가지 이치가 있다. 만약 총명한 지혜가 있다면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다. 보살과 범부가 만약 반야를 닦는다면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차이점에는 네 가지가 있다.
【論】여의(如意)20)이며 【釋】보살이 보시 등을 행하여 부유함과 즐거움 등의 과보를 얻어도 그 가운데 항상 과실이 없다. 왜냐 하면 더러움에 물듦이 없어서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으나 이러한 일이 없다. 이것이 첫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論】부유함과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釋】보살이 보시 등을 행하여 부유함과 즐거움 등의 과보를 얻는다. 이러한 가운데 여의하다. 왜냐 하면 스스로 쓰기도 하고 남을 위하여 쓰기도 하여 항상 세 가지 환희를 생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더라도 이와 같지는 않다. 이것이 두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論】중생을 이익되게 함으로써 바른 일을 삼기 때문이며, 【釋】보살이 행하는 보시 등에서 생하는 공덕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세간과 출세간의 이익된 일을 일으킨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지 않다. 이것이 세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016_1191_c_02L【論】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의 공덕 내지는 궁극에 들어가 머무는 청량한 보리는 항상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釋】보살이 행하는 보시 등이 생하는 공덕은 초발심으로부터 궁극의 과보에 이르기까지 본래와 같이 항상 남을 이익되게 하여 다르지 않다. 이것이 곧 항상 머무는 공덕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어도 이와 같지 않다. 이것이 네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論】세존께서는 혹은 보시라는 이름으로 모든 바라밀을 설하셨고, 혹은 지계라는 이름으로, 혹은 인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정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선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반야라는 이름으로 모든 바라밀을 설하셨다. 【釋】다섯 바라밀은 하나의 바라밀에 들어가 포섭된다. 하나의 바라밀 가운데는 곧 여섯이 갖추어져 있다. 단지 보시 등의 하나의 이름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016_1192_a_02L【論】여래께서는 무슨 뜻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는가?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는 방편 가운데 모든 나머지 바라밀이 모두 모여서 보조하여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여래께서 설하신 의도이다. 【釋】만약 보살이 하나 하나의 바라밀 가운데서 가행(加行)을 닦는다면 나머지 바라밀 모두가 이 하나를 보조하여 이룬다. 모든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몸과 입을 지켜서 7지악(支惡)을 떠난다. 곧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의 계율을 지킨다. 이러한 계율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지계가 곧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보시를 받는 사람의 서로 어긋나는 말과 서로 어긋나는 위의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내지는 보시를 행할 때의 고통스런 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인욕으로 말미암아 보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인욕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보시를 행하려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탐욕과 애착을 없앨 수 있고, 크게 슬퍼하는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성내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몸을 낮추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교만함을 없앨 수 있고, 받는 사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려고 할 때 아까워함과 질투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으며, 보시에 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무명과 삿된 견해를 없앨 수 있다. 정진이 이와 같은 선(善)을 생할 수 있어서 이와 같은 악을 대하여 다스린다. 정진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정진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한마음이 계속 이어진다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일을 연(緣)한다. 이러한 선정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인과를 요별함으로 해서 3륜(輪)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반야가 보시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을 나머지 바라밀이 하나의 바라밀을 보조하여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6바라밀을 합해 설하여 통틀어 보시라 이름하고 보시와 같이 지계 등도 역시 이와 같다. 하나의 바라밀이 여섯을 갖추었기 때문에 서른여섯 구절을 이룬다.
위계[位]ㆍ수(數)ㆍ상(相)ㆍ순서와 이름ㆍ닦음ㆍ차별ㆍ포섭함과 대하여 다스림ㆍ공덕, 그리고 서로를 드러냄이 모든 바라밀의 정의이다.
016_1192_a_17L位數相次第, 名修差別攝, 對治及功德,
互顯諸度義。
016_1192_b_02L제9장 15행에서 “의뢰하고 게으른 것이 바로 마음을 퇴약시키는 인(因)이다.”라고 한 다음에 정(定)과 혜(慧)의 두 바라밀에 관한 문장이 있어야 하는데 삼국(三國)의 본(本)에 모두 빠져 있다. 게다가 다음에 나오는 문장인 “심인(心因)은 산란과 사지(邪智)이다.”라고 한 것과, 결문(結文)인 “여섯 종류의 혹장(惑障)을 대치하기 위해서 6바라밀을 수립했다.”라고 한 것은 모두 유래된 곳이 없다. 지금 본론인 『섭대승론』의 중권(中卷)에서, “이미 발심해서 수행하고 마음을 퇴약시키지도 않는 사람이 심인을 괴실시키는 것을 대치하기 위해서 정과 혜 두 바라밀을 수립한다.” 등의 25자가 있는데, 지금 본론에 의거해서 보충해서 넣는다.
7)희론(戱論)이란 자전의 의미대로 ‘말장난’의 의미로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훨씬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촌원(中村元) 박사는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정립하여 그것을 객체화하는 것이다”라고 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이 견해가 옳다고 본다. 중론에서도 “희론이란 억념(憶念)이 상을 취하여 차피(此彼)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中論』, 靑目疏, 대정장 30권, p. 31 a)”라고 설명하고 있다.
8)부처님의 밀의(密意)가 설하여진 경전. 『해심밀경』 「무자성품(無自性品)」 5, 대정장 16권, p. 695 b 참조.
9)불료의경의 구절과 문구를 사전상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7권의 34번 주석 참조.
10)인식현상의 성질을 색깔에 비유하여, 선(善)한 인식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11)욕계의 번뇌이다. 탐욕ㆍ도회(掉悔)ㆍ진(瞋)ㆍ수면(睡眠)ㆍ의심을 말한다.
12)stīna-middha. 수면(隨眠)과 구분하여야 한다. 식(食:질료)을 덮어버린다고 한다. 즉 지각하여 인식에 있어서 질료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니, 지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상태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구사석론』, 대정장 p.264 a 참조).
13)1권의 3번 주석 참조.
14)신통륜과 기심륜과 설법륜을 말한다. 6권 42번과 43번과 44번 주석 참조.
15)6바라밀의 상을 말한다.
16)12처 대상과 인식이 맞닿아 인식을 일으키는 장(場).
17)37도품(道品) 가운데 7각지(覺支)의 하나. 7각지는 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경안(輕安:猗)ㆍ사(捨)ㆍ정(定)ㆍ염(念) 각지를 말한다.
18)7각지의 하나. 신역에서는 경안(輕安)이라고 번역한다.
19)18대경이라고도 한다. 바라문교의 성전으로 4베다, 6론, 8론을 말한다.
20)무분별지의 별칭이다.
21)udāna의 음사(音寫). 섭송(攝頌)이라고 한역한다. 경ㆍ논ㆍ율을 설한 뒤에 그 의취에 맞게 게송을 읊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