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6_1181_a_01L섭대승론석 제9권
016_1181_a_01L攝大乘論釋卷第九


세친 해석
진제 한역
변상섭 번역
016_1181_a_02L世親菩薩 釋
陳天竺三藏 眞諦 譯


4. 석입인과승상(釋入因果勝相)
016_1181_a_04L釋入因果勝相第四

1) 인과위장(因果位章)
因果位章第一
【釋】이 정의에는 열한 장(章)이 있다. 첫 번째는 인과위(因果位)이며, 두 번째는 6수(數)를 세움이며, 세 번째는 상(相)이며, 네 번째는 차제(次第)이며, 다섯 번째는 입명(立名)이며, 여섯 번째는 수습(修習)이며, 일곱 번째는 차별(差別)이며, 여덟 번째는 섭지함[攝]이며, 아홉 번째는 대하여 다스림[對治]이며, 열 번째는 공덕(功德)이며, 열한 번째는 서로 드러냄[互顯]이다.
016_1181_a_05L釋曰此義有十一章一因果位二成立六數三相四次第五立名六修習七差別八攝九對治十功德十一互顯
【論】이와 같이 입응지승상(入應知勝相)을 이미 설하였다. 입인과승상(入因果勝相)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釋】앞에서 밝혀진 4위(位)로 유식관에 들어감을 총체적으로 거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 방편도ㆍ견도ㆍ수도ㆍ구경도인 네 가지 위계 가운데서 입응지승상을 이미 설명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승상에 들어가는 인(因)과 뒤에 얻어지는 것에 들어가는 과(果)를 자세히 설명하여 그것을 펼쳐 보여 쉽게 볼 수 있게 하는가?
016_1181_a_08L論曰如此已說入應知勝相云何應知入因果勝相釋曰摠擧前所明四位入唯識觀故云如此前已說於方便道見道修道究竟道四位中應知勝相云何廣說入此勝相因入後所得果令其開顯易見
【論】다나(陀那)1)ㆍ시라(尸羅)2)ㆍ찬제(羼提)3)ㆍ비리야(毘梨耶)4)ㆍ지가나(持訶那)5)ㆍ반라야(般羅若)바라밀6)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釋】이것은 물음에 답한 것이다. 인과승상을 밝힘으로써 6바라밀이 인과의 체가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먼저 6바라밀이 인이 되고 나중에 6바라밀이 과가 된다.
016_1181_a_14L論曰由六波羅蜜謂陁那尸羅羼提毘梨持訶那般羅若波羅蜜釋曰答向問明因果勝相易可得見六度爲因果體先以六度爲因後以六度爲果
016_1181_b_02L【論】어찌하여 6바라밀로 말미암아서 유식에 들어갈 수 있고 다시 어찌하여 6바라밀이 유식의 과에 들어감을 이루는가?
【釋】이전에 비록 6바라밀이 인과의 체가 되는 것을 설명하였지만 그 의의(意義)를 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뜻으로 6바라밀이 인이 된다고 설하였고, 또한 어떤 의미로 6바라밀이 과가 된다고 설하였는지 다시 묻고 있다. 이 6바라밀은 여섯 가지의 유식에 들어가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6바라밀이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첫 번째의 장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탐욕하는 대상이다. 부유함과 재물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받는 가운데서 수승한 공덕을 본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보시는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보시는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016_1181_a_19L論曰云何由六波羅蜜得入唯識復云何六波羅蜜成入唯識果釋曰向雖說六度爲因果體未釋義意故更問以何義故說六度爲因以何義說六度爲果此六度能除六種入唯識障故六度爲入唯識因一障者喜樂欲塵於富財物自身受樂中見勝功德由此障故不得入唯施能除此障故施是入唯識因
두 번째 장애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계율은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계율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세 번째의 장애는 업신여김과 헐뜯어 모욕하는 것과 춥고 더움 등의 고통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인욕은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인욕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네 번째 장애는 수행하지 않음을 즐거움으로 삼아 지내는 것이다. 얻으려고 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얻는다고 하더라도 공덕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정진은 이러한 장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정진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016_1181_b_06L二障者縱心起身口意業由此障故不得入唯識戒能除此障故戒是入唯識因第三障者不能安受輕慢毀辱寒熱等苦由此障故不得入唯識忍能除此障故忍是入唯識因第四障者執不修行爲樂未得計得於得不見功德由此障故不得入唯識進能除此障故精進是入唯識因
다섯 번째 장애는 즐거움이 서로 섞여서 머무는 것이다. 세간의 보기 드문 일과 어지러운 인연에도 공덕이 있음을 본다.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선정이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은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 된다.
여섯 번째 장애는 보고 듣고 지각하는 것에서 계교하여 사실과 같다고 여기며, 세간의 희론7)에서 애를 써서 학문을 닦으며, 불료의경(不了義經)8)에서 글귀와 같이 의미를 판별한다.9) 이러한 장애로 말미암아 유식에 들어갈 수 없다. 지혜는 이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는 유식에 들어가는 인이다.
016_1181_b_14L五障者樂相雜住於世閒希有事及散亂因緣見有功德由此障故不得入唯識定能除此障故定是入唯識第六障者於見聞覺知計爲如實於世閒戲論懃心修學於不了義經如文判義由此障故不得入唯識慧能除此障故智慧是入唯識因
016_1181_c_02L【論】이러한 정법 내에 있는 모든 보살은
【釋】오직 정법 내의 수행에 의해서만이 유식에 들어가는 인을 세울 수 있다. 만약 정법 밖의 2승(乘)과 외도인 세간의 가르침에 의해서는 이러한 인의 의미를 세울 수 없다. 따라서 먼저 정법 내에서 밝히는 것이 인을 세우는 것이 된다. 인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2승 등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무슨 법을 행하여 유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016_1181_b_21L論曰此正法內有諸菩薩釋曰依正法內修行能成立入唯識因依正法外二乘教及外道世閒教有得立此因義故先明正法內爲立因之所能立因人非二乘等所能言菩薩菩薩行何法能入唯識
【論】부유함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내지는 이치에 맞게 간택한 모든 교법에 의거하여 유식관에 들어갈 수 있다.
【釋】이는 보시의 장애를 떠나는 것 내지 지혜의 장애를 떠나는 것을 밝히고 있다. 모두 앞에서와 같이 해석하기 때문에 6바라밀은 들어가는 인이 된다.
016_1181_c_04L論曰不著富樂心乃至云如理簡擇諸法得入唯識觀釋曰此明離布施障乃至離智慧障具如前釋故以六度爲入因
【論】6바라밀에 근거함으로 해서 보살은 이미 유식지(唯識地)에 들어가서, 다음에 청정한 신락(信樂)의 뜻에 의해 섭지함으로 6바라밀을 얻는다.
【釋】만약 보살이 6바라밀에 의거함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장애를 제거한다면 이미 유식에 들어갔으며, 이때 보살은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에 섭지되는 6바라밀을 얻는다. 6바라밀의 바른 가르침 가운데서 마음은 결코 의심이 없기 때문에 신(信)이라 하고, 믿는 법과 같이 수행을 원하고 찾기 때문에 낙(樂)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락의 의미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일컫는다.
016_1181_c_08L論曰由依止六波羅菩薩已入唯識地次得淸淨信樂意所攝六波羅蜜釋曰若菩薩由依六度除六障已入唯識是時菩薩更得淸淨信樂意所攝六波羅蜜六度正教中心決無疑故名爲信所信法求欲修行故名爲樂此信樂意有五因緣故稱淸淨
첫째는 집착하지 않는 청정(淸淨)이며, 바라밀과 더불어 서로 다른 법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자세히 보지 않는 청정이며, 자신과 바라밀의 과보의 보은 가운데서 마음이 항상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상실하지 않는 청정이며, 바라밀과 더불어 서로 얽혀 있는 더러움에 물든 법을 떠나고 방편이 아닌 행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분별이 없는 청정이며, 말을 따라서 바라밀의 상을 집착하는 것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회향하는 청정이며, 6바라밀이 이미 생장하였거나 아직 생장하지 않은 가운데서 항상 큰 보리(菩提)를 찾아 얻는 것을 말한다.
016_1181_c_15L一無著淸淨謂不起與波羅蜜相違法二不觀淸謂於自身及波羅蜜果報報恩中心常不觀三無失淸淨謂離與波羅蜜相雜染污法及離非方便行四無分別淸淨謂離如言執波羅蜜相迴向淸淨謂於六度已生長及未生長中常求得大菩提
016_1182_a_02L하나하나의 바라밀이 이러한 다섯 가지의 청정한 신락(信樂)이 두루 섭지하는 것을 모두 갖추었다.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이 있는 것을 이미 원락지를 지나 견지(見地) 등에 들어가서 성인의 신락을 얻었다고 말한다. 지(地)에 이르기 전의 신락과는 다르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일컫는다.
다시 청정한 신락의 뜻이 있는 것을 사마타비발사나로 말미암아 진여의 관(觀)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무분별지와 무분별후지가 섭지하는 신락의 뜻을 얻으므로 청정이라고 일컫는다.
016_1181_c_22L一一波羅蜜具此五種淸淨信樂所攝復有淸淨信樂意謂已過願樂地入見地等聖人信樂異地前信樂故名淸淨有淸淨信樂意謂由奢摩他毘鉢舍那入眞如觀得無分別智及無分別後智所攝信樂意故名淸淨
【論】이러한 정법 내에 있는 보살은 부유하고 즐거운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계율에서 과실을 범하는 마음이 없고 고통에서 무너지는 마음이 없으며, 바른 수행에서 게으른 마음이 없고 이러한 산란한 인 가운데에서 머물러 살지 않기 때문에 항상 한마음으로 이치에 맞게 간택한 모든 법을 행하여 유식관에 들어갈 수 있다. 6바라밀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이미 유식지(唯識地)에 들어간다. 다음에 청정한 신락의 뜻이 두루 섭지하는 6바라밀을 얻는다. 이렇기 때문에 이 사이에 설령 6바라밀의 가행공용(加行功用)을 떠난다 하더라도
【釋】이미 유식관에 들었기 때문에 이런 연유로 견위로부터 구경위에 이르기까지가 중간에 거짓 설정된다. 이 사람은 그 사이에서 공용을 짓지 않고서도 6바라밀을 수행하여 6바라밀이 자연히 가득하여 충분하여진다. 왜냐 하면
016_1182_a_05L論曰此正法內有諸菩薩不著富樂心戒無犯過心於苦無壞心於善修無懶墯心於此散亂因中不住著故行一心如理簡擇諸法得入唯識觀由依止六波羅蜜菩薩已入唯識地得淸淨信樂意所攝六波羅蜜是故於此中閒設離六波羅蜜加行功用釋曰已入唯識觀故言是故從見位乃至究竟位爲中閒假設此人於其中閒不作功用修行六度六度自然滿足何以故
016_1182_b_02L【論】바른 설법을 신락(信樂)하여 소중히 사랑하며, 기쁘게 따르며, 얻기를 바라며 사유함으로 해서
【釋】여래의 바른 설법은 6바라밀과 함께 상응하므로 비록 뜻이 깊고 깊어 풀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역시 신락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락으로 말미암아 6바라밀을 행함에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어서 다함 없는 공덕을 보며, 마음은 소중한 사랑을 일으킨다. 이러한 소중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신락의 의미를 누가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모든 부처님과 여래만이 이미 궁극의 바라밀의 위계에 이르러서 이러한 의미를 얻을 수 있으며, 수승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수승한 사람의 깊은 마음에서 기뻐하며 칭송하기 때문에 기쁘게 따른다고 말한다.
이렇듯 기쁘게 따름으로 해서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중생과 내가 평등하게 이러한 청정한 신락을 얻기 바라기 때문에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016_1182_a_16L論曰由信樂正說重隨喜願得思惟故釋曰如來正說與六度相應雖甚深難解此人亦信樂無疑由此信樂無不行義於六度行中見無窮功德心生愛重由此愛重無不行義如此信樂意何人能唯諸佛如來已至究竟波羅蜜位能得此意知是勝人所得成於勝人深心欣讚故名隨喜
이렇듯 얻기 바라는 것으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부처님께서 세우신 대승의 법문과 같이 보시 등의 6바라밀과 12부 아함에 의거하여 문혜와 사혜와 수혜로 말미암아 거듭거듭 사유한다. 문혜로 말미암아 과보가 얻는 원만함을 사유하고, 사혜로 말미암아 들은 법을 사유하여 마음이 이치에 들어갈 수 있다. 수혜로 말미암아 사유하여 스스로의 일을 이룰 수 있다. 지(地)에 들어가고 지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사유로 말미암아 올바름을 행하지 않음이 없다.
016_1182_a_24L由此隨喜無不行義願衆生及我平等得此淸淨信樂意故名願得由此願得無不行義如佛所立大乘法門依施等六度及十二部阿含由聞思修慧數數思惟由聞慧思惟果得圓滿由思慧思惟於所聞法心得入理由修慧思惟自事得成以能入地及治地故由此四種思惟無不行義
【論】항상 쉼이 없이 행하기 때문에 6바라밀을 수행하여 궁극에는 원만하여진다.
【釋】이러한 세 가지 사유로 말미암아 보살은 항상 방일함이 없다. 방일함이 없기 때문에 인에 있어서 6바라밀을 수행하여 궁극에 과의 원만함에 도달한다. 이 위계에서는 6바라밀을 두루 섭지할 수 있어서 다섯 가지 청정을 모두 충분히 갖추기 때문에 청정한 뜻의 위계[淸淨意位]라고 일컫는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이러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음의 긴 게송 뒤에 다시 세 구의 게송을 설한다.
016_1182_b_09L論曰恒無休息行故修習六波羅蜜究竟圓滿釋曰由此四思惟菩薩恒無放逸放逸故修習六度在因究竟至果圓滿此位能攝六度令悉具足五種淸故名淸淨意位其相云何爲顯此相故次長行後更說三偈
【論】이 가운데 게송을 읊는다.
016_1182_b_15L論曰此中說偈

원만하고 새하얀 법10)을 닦고 익혀서
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을 수 있으니
보살은 스스로의 승(乘)의 깊고
넓고 큰 가르침에 있어서
016_1182_b_16L修習圓白法
能得利疾忍
菩薩於自乘
甚深廣大說
016_1182_c_02L
【論】원만하고 새하얀 법을 닦고 익혀서
【釋】먼저 원행위(願行位) 가운데서 도의 자량을 바르게 낳아 키운다.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첫 구절을 설한다. 닦여진 행이 이미 마흔 개의 마음의 위계를 지나왔기 때문에 원만하다고 일컫는다. 보시와 지계로 세 가지 성품의 청정한 법을 닦았으므로 새하얗다고 이른다. 다시 새하얀 법이 있으니 신근(信根)ㆍ지근(智根)ㆍ정진근(精進根)ㆍ정근(定根)을 말한다. 이 네 가지 근이 곧 네 위계[四位]이다. 염근(念根)은 네 위계에 모두 통하며 일천제, 외도, 성문, 독각의 네 가지 검은 장애를 없앨 수 있고,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의 네 가지 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새하얀 법이라고 이름짓는다. 만약 자량이 원만하다면 다시 무엇을 얻게 되는가?
016_1182_b_18L論曰修習圓白法釋曰先於願行位中善生長道資糧爲顯此義故說初句所修之行已過四十心位故名施戒修三品淸淨法名白復有白謂信根智根精進根定根此四根卽是四位念根通四位能除一闡提外道聲聞獨覺四種黑障能得淨我樂常四德故名白法若資糧圓滿更何所得
【論】예리하고 빠른 인(忍)을 얻을 수 있으니
【釋】기꺼이 받아 행할 수 있음이 인(忍)의 의미이다. 넓고 크고 깊고 깊은 법을 받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지만 받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예리하다고 말한다. 거듭 일으켜서 쉬지 않기 때문에 빠르다고 이른다. 이 구절은 인(忍)이 상상품(上上品)임을 드러낸다. 만약 보살이 이 인위(忍位)에 있다면 이러한 경계로 말미암아 보살은 반드시 청정을 얻게 된다. 이러한 경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016_1182_c_04L論曰能得利疾忍釋曰能樂受行是忍義於廣大甚深難受難行而能受行故名利數起不息故名疾此句顯忍是上上品菩薩在此忍位由此境界必得淸淨爲顯此境界故
【論】보살은 자신의 승(乘)의 깊고 넓고 큰 가르침에서
【釋】대승은 오직 보살의 경계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승이라고 말한다. 대승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승 가운데는 다른 경계가 있으니, 첫째는 법이 자성이 없는 것으로 깊고 깊다고 일컬으며, 둘째는 허공기(虛空器) 등의 선정으로 넓고 크다고 일컫는 것이다. 앞의 것은 지혜의 경계이고, 뒤의 것은 선정의 경계이다. 이 두 경계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로 말미암아 보살은 청정을 얻는다.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두 번째의 게송을 읊는다.
016_1182_c_09L論曰菩薩於自乘甚深廣大說釋曰大乘唯是菩薩境界故名自乘大乘能令菩薩淸淨於此乘中有別境界一法無我名甚虛空器等定名廣大前是智境是定境此二境能令菩薩淸淨由此思惟菩薩得淸淨爲顯此義故說第二偈

【論】오직 분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얽매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므로
낙신(樂信)의 청정이며,
청정의지(淸淨意地)라고 일컫는다.
016_1182_c_16L論曰
覺唯分別故
得無著智故
是樂信淸淨
名淸淨意地

【論】오직 분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釋】보살은 대승의 모든 법 내지 깊고 넓고 큼[甚深廣大]이 모두 분별이 지어낸 것임을 깨달아 마친다. 이와 같이 깨달아 마치는 것을 사유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사유가 보살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보살의 청정은 무엇을 얻게 되는가?
016_1182_c_18L論曰覺唯分別故釋曰菩薩覺了大乘一切法乃至甚深廣大皆是分別所作如此覺了名爲思惟此思惟能令菩薩淸淨菩薩淸淨爲何所得
016_1183_a_02L【論】얽매임이 없는 지혜를 얻으므로
【釋】보살은 모든 법이 항상 분별이며 다시 바깥 경계가 없음을 본다. 바깥 경계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분별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안과 밖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본다면 곧 얽매이는 것이 없다. 이것이 곧 무분별지이다. 이 지혜가 곧 청정이다. 이러한 청정의 체성은 어떠한가?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세 번째의 게송을 읊는다.
016_1182_c_22L論曰得無著智故釋曰菩薩見一切法但是分別無復外境外境不成故分別亦不成若菩薩見內外無所有則無所著卽是無分別智此智卽是淸淨此淸淨體性云何爲顯此義故說第三句偈
【論】낙신의 청정이며
【釋】낙신이 곧 무분별지의 체이다. 일곱 가지의 개별적 대상을 애착하지 않기 때문에 낙(樂)이라고 한다. 세 가지 불성에 대해 마음이 결코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신(信)이라고 한다. 일곱 가지의 애착을 떠나므로 낙청정이며 허망함을 떠나므로 신청정이다.
016_1183_a_05L論曰是樂信淸淨釋曰樂信卽是無分別智體不愛七有故名樂於三種佛性心決無疑故名信離七愛故樂淸淨離虛妄故信淸淨
【論】청정한 뜻의 지(地)라고 일컫는다.
【釋】낙신청정으로 말미암아 이 위계가 청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또한 이 위계는 보살의 견위(見位)로서 무분별지의 경계가 청정한 곳이다. 이 지혜는 낙신으로 체를 삼기 때문에 이 위계를 청정한 뜻의 지(地)라고 일컫는다. 청정락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016_1183_a_09L論曰名淸淨意地釋曰由樂信淸淨故此位得淸淨名又此位是菩薩見位無分別智境淸淨處此智以樂信爲體故說此位名淸淨意地淸淨樂信其相云何

【論】보살은 인식현상의 흐름에 있어서
앞에서나 뒤에서나 모든 부처님을 본다.
이미 보리(菩提)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아
어려움 없이 쉽게 얻기 때문이다.
016_1183_a_13L 論曰
菩薩在法流
前後見諸佛
已知菩提近
無難易得故

【論】보살은 법의 흐름에 있어서 앞에서나 뒤에서나 모든 부처님을 본다.
【釋】청정의 낙신에는 두 가지 모양이 있다. 첫째는 항상 적정(寂靜)에 있음이 상이 되고, 둘째는 항상 밝게 부처님을 보는 것이 상이 된다. 낙으로 말미암아서 일곱 가지 애착을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항상 관에 들어서 도를 닦기 때문에 항상 법의 흐름에 있다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법의 흐름에 있다면 무엇을 보게 되는가? 신(信)의 세 가지 불성으로 말미암아 먼저 법신을 사유하고, 뒤에 법신을 증득한다. 먼저 비량(比量)의 지혜로써 법신을 보고, 뒤에 증량(證量)의 지혜로써 법신을 본다. 이러한 낙신은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016_1183_a_15L論曰菩薩在法流前後見諸佛釋曰淸淨樂信有二種相一恒在寂靜爲相二恒明了見佛爲相由樂捨七愛故恒入觀修道故說恒在法流若菩薩在法流爲何所見由信三種佛性故先思惟法身後證法身先以比智見法身後以證智見法身此樂信有何功德
016_1183_b_02L【論】이미 보리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아 어려움 없이 쉽게 얻기 때문에
【釋】만약 사람이 청정의 낙신 위에 있다면 위없는 보리가 이미 가까이에 있음을 밝게 깨달아 보게 된다. 이미 신은 사십의 마음[四十心]을 지나왔다. 이렇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바른 방편에 들어간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세 구의 게송이 성취하는 자량의 인경계(忍境界)로 말미암아 사유하는 체성의 상모가 모두 현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016_1183_a_23L論曰已知菩提近無難易得故釋曰若人在淸淨樂信位中明了見無上菩提已近己身過四十心是故無難入正方便所以易由此三偈成就資糧忍境界思惟體性相貌皆得顯現

2) 성립육수장(成立六數章)
016_1183_b_05L成立六數章第二
【論】어째서 바라밀은 여섯 개만이 있다고 안립하는가?
【釋】이것은 바라밀이 어째서 여섯 개로 정립되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가?
016_1183_b_06L論曰何故波羅蜜唯有六數釋曰此問波羅蜜何故定立六數不增不減
【論】안립하여 여섯 가지 혹장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의 교법이 생하여 일어나는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며, 그리고 뒤좇아 따라서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하는 의지를 위해서이다.
【釋】바라밀에는 여섯이 있는데 모두 이 세 가지 뜻을 위해서이다. 첫째는 혹(惑)을 제거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불법을 생하여 일으키기 위함이며, 셋째는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혹을 제거하는 것은 현재 스스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불법을 생하여 일으키고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미래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이다. 만약 혹이 영원히 없어진다면 곧 현재에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 수 있다. 왜냐 하면 마땅히 다시 공용(功用)을 일으키지 않아도 이 혹을 없애게 되고 이 혹을 막게 되어 다시 생겨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현재에 스스로 이익을 얻는다. 미혹의 장애가 이미 없어지면 미래의 시간에 반드시 스스로 부처님의 법을 충분히 갖출 것이며, 또한 중생을 성숙케 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016_1183_b_08L論曰爲安立能對治六種惑障故一切佛法生起依處故爲隨順成熟一切衆生依止故釋曰立波羅蜜其數有六凡爲此三義一爲除惑爲生起佛法三爲成熟衆生除惑在自得利益生起佛法成熟衆生來得自他利益若惑已永滅則於現在得安樂住何以故不須更起功用爲滅此惑及遮此惑令不復生故現在得自利益惑障旣滅於未來世必自具足佛法又能成熟衆生故自他利益
【論】수행할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다스리기 위하여 보시와 지계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수행할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란 재물과 가족을 거느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다.
【釋】재물에 탐을 내고 집착하는 것은 보시를 가로막으며, 가족에 탐착하는 것은 지계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탐착 때문에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없다.
016_1183_b_20L論曰爲對治不發行心因故立施戒二波羅蜜不發行心因貪著財物及以室家釋曰貪著財物障施貪著室家障戒因此貪著不能發修行心
016_1183_c_02L【論】이미 수행할 마음을 일으켰다면 물러서려는 약한 마음의 원인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인욕과 정진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釋】이미 보시와 지계를 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고통스러운 일을 참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보시와 지계의 마음이 물러나 약해진다. 비록 고통을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만약 모든 선을 애써서 닦아 모든 악을 끊지 않는다면 곧 보시와 지계와 인욕의 마음이 모두 물러나 약해지기 때문에 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이 두 바라밀을 세워야 한다.
016_1183_b_24L論曰若已發修行爲對治退弱心因故立忍精進二波羅蜜釋曰雖已能行施戒若不忍受苦事則施戒心退弱雖能忍苦若不勤修諸善息一切惡則施戒忍心皆退弱故爲對治退弱心須立此二度
【論】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의 원인이란 생사중생(生死衆生)이 어기고 거스르는 고통스런 일을 말하며
【釋】이치를 얻지 못한 사람을 생사중생이라고 한다. 보살의 가르침을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 어기는 것이 되고, 보살의 신(身)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것이 거스르는 것이 된다. 이러한 두 가지가 고통스런 일이다. 만약 이러한 고통스런 일을 참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곧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 성내는 것이 곧 물러나 약해지는 마음의 원인이다.
016_1183_c_07L論曰退弱心因者謂生死衆生違逆苦事釋曰不得理者名生死衆生乖反菩薩教爲違侵毀菩薩身爲逆此竝是苦事若不能忍受此苦事則生瞋心瞋卽是退弱心因
【論】오랜 시간 바른 법을 도와주는 가행(加行)에서 오는 피곤함과 나태함을 말한다.
【釋】오랜 시간 동안 정진을 행하고 온갖 선을 닦는다. 만약 중생에 대해서 자비로운 마음이 없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수행한 것에 수승한 공덕이 있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 가운데서 피곤하고 나태한 마음을 낸다. 이런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정진할 수 없다. 곧 이것이 싫어함과 게으름이다. 싫어함과 게으름이 곧 물러나 약해진 마음의 원인이다.
016_1183_c_11L論曰長時助善法加行疲怠釋曰精進行於久遠時中修一切善若於衆生無慈悲心愛惜自身不見所修行有勝功德故於所修行中生疲怠由有此心不能精進卽是懶墯墯卽是退弱心因
【論】만약 이미 행하고 물러나 약해지지 않는 마음을 내어 일으켰다면 무너져 잃어버리는 마음의 원인을 다스리기 위하여 선정과 지혜의 두 바라밀을 세운다. 무너져 잃어버리는 마음의 원인이란 산란하고 삿된 지혜이다.
【釋】산란하기 때문에 고요한 마음을 무너뜨린다. 삿된 지혜로 말미암아 바른 견해를 잃어버린다.
016_1183_c_17L論曰若已起發行及不退弱心爲對治壞失心因故立定慧二波羅蜜壞失心因謂散亂邪智釋曰由散亂故壞靜心由邪智故失正解
【論】이렇기 때문에 여섯 가지 혹의 장애를 다스리기 위해서 바라밀을 세우니 여섯 가지이다. 모든 부처님의 교법이 생겨나 일어나는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釋】6바라밀은 부처님법이 생겨나 자라는 인이다.
016_1183_c_21L論曰是故爲對治六種惑障立波羅蜜有六數爲一切佛法生起依處故者釋曰六度是生長佛法因
016_1184_a_02L【論】앞의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는 원인이다.
【釋】네 장애가 있어서 산란의 원인이 된다. 첫째는 버려야 하는 장애이고, 둘째는 멀리 떠나야 할 장애이며, 셋째는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장애이며, 넷째는 거듭 다스려야 하는 장애이다. 탐내고 집착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고 탐(貪)ㆍ진(瞋)ㆍ치(癡)가 열 가지 악을 생하기 때문에 멀리 떠날 수 없다. 성내기 때문에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로 말미암기 때문에 거듭 다스릴 수 없다. 이러한 네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마음이 산란하다. 앞의 네 바라밀이 이 네 장애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원인이다. 또한 다시 다섯 가지 덮임[蓋]11)이 선정의 장애가 된다.
016_1183_c_24L論曰前四波羅蜜是不散亂因釋曰有四障爲散亂因一棄捨障二遠離障三安受四數治障由貪著故不能棄捨貪瞋癡生十惡故不能遠離由瞋恚故不能安受由貪瞋癡等煩惱故不能數治由此四障故心散亂前四度能對治此四障故四度是不散亂因復次以五蓋爲定障
네 가지 덮임은 선정의 원인을 가로막고 하나의 덮임은 바른 선정과 선정에서 생겨나는 지혜를 가로막는다. 탐욕ㆍ도회(掉悔)ㆍ성냄ㆍ수면(睡眠)12)의 네 가지 덮개가 산란의 원인이며, 앞의 네 바라밀을 가로막는다. 네 바라밀은 이 네 가지 덮임을 다스리기 때문에 네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원인이 된다. 의심은 경계를 연하여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다. 선정에 든 마음은 결정하여13) 하나의 경계를 지키므로 의심은 바른 선정을 가로막는다. 의심은 이치를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선정이 일으키는 지혜를 가로막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로써 의심을 다스린다.
016_1184_a_09L四蓋障定因蓋障正定及定所發慧貪掉悔瞋睡眠四蓋是散亂因障前四度四度對治此四蓋故四度是不散亂因疑緣境不決故心散亂定心決守一境故疑障正定由疑不見理故障定所發慧故以定慧對治於疑
【論】다시 하나의 바라밀은 산란하지 않음의 체이다. 이러한 산란하지 않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진리를 실답게 깨우쳐 마칠 수 있어서 모든 여래의 바른 법이 다 일어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불법이 일어나는 의지처가 되므로 바라밀을 세워 여섯이 되는 것이다.
뒤좇아 따라서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하는 의지를 위해서라는 것은 보시바라밀로 말미암아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지계바라밀로 말미암아 중생을 괴롭히지 않게 하며, 인욕바라밀로 말미암아 그들을 헐뜯고 욕되게 하는 것을 편안히 받아들여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며, 정진바라밀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선근을 생하게 하고 그들의 악근(惡根)을 없에게 하며, 이러한 이익된 원인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을 다스려 굴복시키게 한다.
016_1184_a_15L論曰次一波羅蜜是不散亂體由依止此不散亂故能如實覺了諸法眞理一切如來正法皆得生起是故爲一切佛法生起依處立波羅蜜有六數爲隨順成熟一切衆生依止故者由施波羅蜜利益衆生由戒波羅蜜不損惱衆由忍波羅蜜能安受彼毀辱不起報怨心由精進波羅蜜生彼善根彼惡根由此利益因一切衆生皆得調伏
016_1184_b_02L다시 그들의 마음이 아직 고요함을 얻지 못하였다면 고요하게 하고, 이미 고요함을 얻었다면 해탈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선정과 지혜의 바라밀을 세운다. 이 6바라밀로 말미암아 보살은 중생을 바르게 가르친다.
【釋】바르게 가르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치에 맞게 설해 주므로 가르친다고 하고, 둘째는 항상 설해 주므로 바른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016_1184_b_02L次彼心未得寂靜爲令寂靜得寂靜爲令解脫故立定慧二波羅由此六度菩薩善教衆生釋曰善教有二義一如理爲說故名教恒爲說故言善教
【論】그리하여 성숙시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뒤좇아 따라서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하는 의지를 위해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여섯 가지의 바라밀을 세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016_1184_b_06L論曰故得成熟是故爲隨順成熟一切衆生依止波羅蜜有六數由如此義是故應知成立波羅蜜有六數

3) 상장(相章)
016_1184_b_09L相章第三
【論】이 6바라밀의 상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釋】어찌하여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가? 세간과 2승과 보살에 모두 보시 등의 6행이 있다. 만약 보살이 행하는 바라밀의 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것이 바라밀이고, 이것은 바라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따라서 반드시 바라밀의 상을 물어야 한다.
016_1184_b_10L論曰此六波羅蜜相云何可見釋曰何故作如此問世間二乘菩薩皆有施等六行若不明菩薩所行六波羅蜜相云何得知此是波羅蜜非波羅蜜是故須問波羅蜜相
【論】여섯 가지의 가장 수승함으로 말미암아 6바라밀의 공통된 상이 여섯 가지 있다. 첫째는 의지로 말미암아 비길 데가 없음이니,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여 일어남을 일컫는다.
【釋】이것은 의지하는 것에 다름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세간과 2승의 보시 등의 행은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일어난다. 오직 보살의 보시 등의 행만이 반드시 위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가 비길 데 없음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016_1184_b_15L論曰由六種最勝六波羅蜜通相有一由依止無等謂依止無上菩提心起釋曰此明所依止有異世閒及二乘行施等不依止無上菩提心唯菩薩行施等必依止無上菩提心起故以依止無等爲菩薩所行六度相
016_1184_c_02L【論】둘째는 품류로 말미암아 비길 데가 없음이니, 하나하나의 바라밀을 간단히 설명하면 모두 세 가지 품류가 있는데 보살은 모두 갖추어 수행한다.
【釋】이것은 연하는 일에 다름이 있으므로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세간과 2승은 보시 등을 모두 갖춘 품류, 말하자면 외내(外內)와 내외(內外)를 행할 수 없다. 만약 보살이 보시 등을 행한다면 반드시 모든 행이 품류를 다 갖추기 때문에 품류가 비길 데 없음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016_1184_b_22L論曰二由品類無等謂一一波羅蜜略說皆有三品菩薩皆具修行釋曰此明所緣事有異不等世間及二乘無有能行施等具足品類謂外內及內外若菩薩行施等必皆具足品類故以品類無等爲菩薩所行六度相
【論】셋째는 행하는 일이 비길 데 없음이니, 모든 중생을 안락하고 이익되게 하는 일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은 다 이 두 가지 일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釋】이것은 행하는 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먼저 중생에게 현재와 미래의 세간의 즐거움을 생하게 되고, 뒤에 근성을 따라 중생에게 3승의 도의 과보를 생하게 된다. 세간과 2승의 보시 등의 행은 단지 자신을 안락하게 하고 이익되게 하지만 오히려 성취되지 않는다. 하물며 어찌 중생을 안락하고 이익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행하는 일이,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016_1184_c_05L論曰三由行事無等謂安樂利益一切衆生事菩薩所行諸度爲成此二事故釋曰此明行事有菩薩行六度有何能先爲生衆生現在未來世閒樂後隨根性生衆生三乘道果世閒及二乘行施等但爲安樂利益自身尚不成就何況能安樂利益衆生故以行事爲菩薩所行六度相
【論】넷째는 방편으로 말미암아 견줄 수 없음이니, 무분별지를 일컫는다. 보살이 행하는 바라밀은 모두가 무분별지가 섭지하는 것이다.
【釋】이것은 방편에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3륜14)에 있어서 청정함을 보살의 방편이라고 한다. 3륜에 있어서의 청정은 곧 무분별지이다. 보살은 이 지혜로 말미암아 보시하는 것과 보시를 받는 것 그리고 보시한 재물을 분별하지 않는다. 세간과 2승은 3륜의 분별을 버릴 수 없다. 이러하기 때문에 아애(我愛)를 일으키고 재물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에게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방편은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계의 3륜(輪)이란 중생의 일을 할 때 분별을 떠나는 것이고, 인의 3륜이란 나와 남의 과실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는 것이고, 정진의 3륜이란 중생의 신분이 높고 낮음을 사용하는 분별을 떠나는 것이며, 정의 3륜이란 경계에 대한 중생의 혹분별(惑分別)을 떠나고, 반야의 3륜이란 경계에 대한 지혜[境智]에서 중생의 분별을 떠난 것이다. 다섯은 회향으로 말미암아 비길 데 없음이며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은 결정코 모든 지혜의 과를 바꾸어 향하기 때문이다.
016_1184_c_13L論曰四由方便無等謂無分別智菩薩所行諸度皆是無分別智所攝故釋曰此明方便有異三輪淸淨名菩薩方便於三輪淸淨卽是無分別智菩薩由此智不分別能施受施及所施財物世閒及二乘不能捨三輪分別是故起我愛及著財物於他不能平等故以方便爲菩薩所行六度相戒三輪者離衆生事時分別忍三輪者離自他過失分別精進三輪者離衆生高下事用分別定三輪者離境衆生惑分別般若三輪者離境智衆生分別
016_1185_a_02L【論】다섯째는 회향(廻向)으로 말미암아 견줄 수 없음이니,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에 의해 행하여지는 모든 바라밀은 결정코 일체지(一切智)인 과(果)로 바꾸어 향하기 때문이다.
【釋】보살이 만약 보시 등을 행한다면 그 마음을 먼저 일으킨다. 내가 이 물건으로 모든 6도(道)의 중생에게 베풀어 주었다면 이것은 중생의 재물이며, 나는 그들에게 보시를 행함이 되고 그들 모두가 위없는 보리를 얻도록 기원한다. 이 보시는 회향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에게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시의 행은 영원히 다함이 없다. 만약 나머지 다른 바라밀을 행한다면 역시 모두 회향한다. 세간과 2승은 회향하지 않기 때문에 회향은 보살이 행하는 6바라밀의 상이 된다.
016_1185_a_02L論曰五由迴向無等謂迴向無上菩提菩薩所行諸度決定轉趣一切智果故釋曰菩薩若行施等先作是心我以此物施與一切六道衆生此是衆生財物我爲彼行施願彼皆得無上菩此施由迴向令他得無上菩提故此施行永無有盡若行餘度亦皆迴世閒及二乘無迴向故以迴向爲菩薩所行六度相
【論】여섯째는 청정으로 말미암아 비길 데 없음이니, 혹장과 지장이 영원히 사라져 남음이 없음을 말한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바라밀의 부분부분이 혹장과 지장을 제거하여 마침내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釋】이 가운데서 두 가지 청정을 드러낸다. 첫째는 청정의 인을 드러내고, 둘째는 청정의 위계를 드러낸다. 청정의 인이란 원인이 되어 혹장과 지장을 멸하기 때문에 보시 등의 일이 청정하다. 청정의 위계란 먼저 지(地) 전에 혹장을 점차 제거하여 뒤에 초지(初地)에 올라 점차 지장을 제거한다. 이 두 곳을 부분부분이 청정하다고 말하며 이것이 곧 인의 위계이다. 만약 부처님의 과에 이르러 6바라밀이 원만하여지면 모든 부분이 청정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과의 위계이다.
016_1185_a_11L論曰六由淸淨無等謂惑智二障永滅無餘菩薩所行諸度分分除二障乃至皆盡故釋曰此中顯二種淸淨一顯淸淨因二顯淸淨位淸淨因者因滅惑智二障故施等事淸淨淸淨位者先於地前漸除惑障後登初地漸除智障兩處名分分淸淨卽是因位若至佛果六度圓滿名具分淸淨卽是果位
【論】보시가 바라밀인가? 바라밀이 보시인가?
【釋】이러한 질문은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가? 참다운 바라밀의 모습과 바라밀이 아닌 것의 모습을 구분하고자 함이다.
016_1185_a_19L論曰施卽是波羅蜜波羅蜜卽是施耶釋曰此問欲何所顯欲簡別是波羅蜜及非波羅蜜相
【論】보시이면서 바라밀이 아닌 것이 있고,
【釋】무등등(無等等)한 6상(相)15)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보시는 6바라밀이 섭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보시일 뿐 바라밀이 아니다.
016_1185_a_22L論曰有是施非波羅蜜釋曰謂離依止無等等六相行施此施非六度所攝故是施非波羅蜜
016_1185_b_02L【論】바라밀이면서 보시가 아닌 것이 있으며,
【釋】무등등한 6상을 모두 의지하여 계 등의 다른 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016_1185_b_02L論曰有是波羅蜜非施釋曰謂具依止無等等六相戒等餘度
【論】보시이면서 바라밀인 것이 있고,
【釋】무등등한 6상을 모두 의지하여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016_1185_b_04L論曰有是施是波羅蜜釋曰謂具依止無等等六相行施
【論】보시도 아니면서 바라밀도 아닌 것이 있다.
【釋】앞의 세 구절을 벗어나서 달리 무기(無記)와 불선(不善)을 행하는 모든 것이 이 네 번째 구절에 속한다.
016_1185_b_05L論曰有非施非波羅蜜釋曰謂離前三句別行無記及不善等皆是第四句攝
【論】보시 가운데의 네 구절과 같이 나머지 바라밀도 역시 네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보시에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한 것처럼 나머지 바라밀에서도 이와 같이 구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6_1185_b_08L論曰如施中四句應知餘度亦有四句釋曰如施簡別是非餘度亦應如此簡別

4) 차제장(次第章)
016_1185_b_10L次第章第四
【論】어찌하여 6바라밀을 이와 같은 순서로 설명하는가?
【釋】이것은 혹은 의심스러워서 묻기도 하고, 혹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기도 한다. 의심스러워서 묻는다는 것은 모든 행위는 반드시 먼저 지혜로 말미암아 원인과 결과를 알고 나서 바야흐로 바르게 노력하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서 그 원하는 것을 좇아서 곧 모두를 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심이 있음으로 해서 순서가 바뀌고 순서가 없게 된다. 이렇다면 반드시 질문하여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묻는다는 것은 사람이 많은 행을 닦고 싶지만 얕고 깊음과 행하기 쉽고 행하기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얕은 것은 행하기 쉽고 깊은 것은 행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쉬운 것을 먼저 배우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하여야 한다.
016_1185_b_11L論曰云何說六波羅蜜如此次第釋曰此或由疑故問或由不解故問疑故問者一切所行必先由智知因果已方起正懃由此二因隨其所欲則皆能行是故應倒次第及無次第由有此疑是故須問由不解故問者若人欲修衆行未知淺深難行易行淺則易行深則難行易應先學難應後學爲知此義是故須問
016_1185_c_02L【論】앞에 있는 바라밀이 차례대로 뒤에 있는 바라밀을 생하기 때문이며,
【釋】보살은 중생의 가난하고 궁색한 것과 어렵고 힘든 것을 참고 볼 수 없어서, 재물을 희사하는 것을 거듭 익혀 능히 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생을 괴롭히는 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곧 가산을 희사하고 계율을 지키기 때문에 보시로 인하여 지계를 생한다. 보살은 주어진 계율을 아끼고 지켜서, 중생을 성나게 하고 원통하게 하는 일로써 청정한 계율을 훼손하고 깨뜨리게 하지 않는다. 곧 인욕을 행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계율로 인하여 인욕을 생한다.
016_1185_b_20L論曰前波羅蜜隨順次生後後波羅蜜故釋曰菩薩不能忍見衆生貧窮困苦數習捨財以串能捨故不欲作損惱衆生事卽捨家持戒故因施生戒薩爲愛護所受戒不欲以忿恨衆生毀破淨戒卽習行忍故因戒生忍
번뇌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이루기도 하고, 혹은 이루지 못하기도 하기에 보살은 이러한 인욕을 아끼고 지키기 위해서 곧 정진을 행한다. 따라서 인욕으로 인하여 정진이 생한다. 만약 사람이 항상 정진을 행한다면 곧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이러한 정진으로 말미암아 만약 마음이 사로잡혀 빠지더라도 곧 빼내어 일으킨다. 만약 마음이 흔들려 움직이면 곧 억눌러 일어나지 않게 한다. 만약 마음이 평등하면 곧 지켜서 항상 이어지게 한다. 마음이 조화(調和)로운 까닭에 선정을 얻는다. 따라서 정진으로 인하여 선정을 생한다. 만약 마음이 선정을 얻었다면 곧 진여를 통달할 수 있다. 따라서 정(定)으로 인하여 지혜를 생한다. 이것이 곧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016_1185_c_03L由煩惱不盡或成不成菩薩爲愛護此忍卽行精進故因忍生精進若人恒行精進則能治心由此精進若心沈沒則拔令起若心掉動則抑令不若心平等則持令相續由心調和所以得定故因精進生定若心得定則能通達眞如故因定生慧此卽前能生後
【論】또한 앞의 바라밀들이 뒤의 바라밀들로 말미암아 청정하여지기 때문이다.
【釋】보시는 지계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사람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청정하지 않다. 의지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행하여지는 보시도 역시 청정하지 않다. 계율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의지가 청정하기 때문에 보시가 청정할 수 있다. 지계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사람이 참을 수 있다면 신업ㆍ구업ㆍ의업이 모두 청정함을 얻는다. 인욕은 정진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정진은 선을 생하고 악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은 선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정진하여 수위(修位)에 있지 않다면 곧 혹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선정은 지혜로 말미암아 청정하다. 만약 진여를 요별하지 못한다면 비록 다시 선정을 얻더라도 유류(有流)이기 때문에 곧 생사법이다. 만약 진여를 본다면 얻어지는 선정이 곧 무류(無流)를 이루기 때문에 열반도(涅槃道)가 된다. 이것이 곧 뒤의 것이 앞의 것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로 말미암아 순서가 있다.
016_1185_c_11L論曰復次前前波羅蜜後後波羅蜜所淸淨故釋曰施由戒故淸淨若人不持戒身口意業則不淸淨所行之施亦不淸淨以依止不淸淨故由能持戒依止淸淨故得淸淨戒由忍故淸淨若人能忍口意業皆得淸淨忍由精進故淸淨以精進能生善滅惡故精進由定故淸淨若精進不在修位則不能除惑定由智慧故淸淨若不了別眞如雖復得定以有流故卽生死法若見眞如所得之定則成無流爲涅槃道此卽後能淸淨前由此二義故有次第

5) 입명장(立名章)
016_1185_c_23L立名章第五
016_1186_a_02L【論】무슨 뜻으로 6바라밀의 의미를 세웠는가? 이 의미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釋】세간에서 이름을 짓는 데는 스스로 많은 원인이 있다. 원인이 있으므로 부류를 생하고 이름을 세운다. 원인이 되는 상(相)이 있으므로 이름을 짓고, 원인이 있으므로 거짓으로 이름을 세우고, 원인이 있으므로 가볍고 천박하게 이름을 짓고, 원인이 있으므로 공경하고 존중하여 이름을 세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인 가운데 6바라밀은 어떠한 뜻을 따라 이름을 세웠는가? 두 가지 원인으로부터 이름을 지었다. 종자의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부류를 이루는 것으로부터 이름을 지었고, 공덕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경하고 존중함으로부터 이름을 지었다. 지어진 이름에 스스로 공통성과 개별성이 있다. 여섯 가지 모두를 바라밀이라고 일컫는 것은 공통된 이름이고, 보시와 지계 등 다름이 있는 것이 개별적인 이름이다. 어찌하여 바라밀이라고 공통되게 부르는가?
016_1185_c_24L論曰依何義立六度名此義云何可見釋曰世閒立名自有多因有因生類立名有因相立名有因假立名有因輕賤立名有因敬重立名於此五因六度從何義立名從二因立名性異故從生類立名功德多故從敬重立名所立之名自有通別六種皆稱波羅蜜是通名施戒等有異是別何故通名波羅蜜
【論】모든 세간과 성문승과 독각승의 보시 등의 선근 가운데 가장 수승하여 비길 데가 없기 때문에,
【釋】여섯 가지와 세 가지의 수승함과 비길 데 없음이 있다. 여섯 가지는 앞에서의 여섯 가지 상을 설명한 것과 같다. 세 가지란 첫째는 시각[時]이 비길 데 없음이고, 둘째는 가행이 비길 데 없음이며, 셋째는 과가 비길 데 없음이다. 하나 하나의 바라밀이 모두 3아승기겁을 닦았기 때문에 시각이 비길 데 없음이다.
가행이 비길 데가 없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와 다섯 가지가 있고, 다시 다섯 가지가 있고 여섯 가지가 있다. 네 가지는 곧 앞에서 밝힌 4수(修)이며, 다섯 가지는 곧 앞에서 밝힌 다섯 가지의 청정이다.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은 곧 5수(修)이며, 다시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곧 6의(意)이다.
5수와 6의는 뒤의 글에서 스스로 과보를 설명한다. 비길 데 없다는 것은 세 가지 신(身)이 드러내는 위없는 보리를 말한다.
016_1186_a_10L論曰於一切世閒聲聞獨覺施等善根中最勝無等故釋曰有六種及三種最勝無六種如前六相中釋三種者一時無等二加行無等三果無等一一度皆三阿僧祇劫修行故時無等加行無等者有四種五種復有五種復有六種四種卽前所明四修五種卽前所明五種淸淨復有五種卽五修有六種卽六意五修六意後文自說果無等者謂三身所顯無上菩提
016_1186_b_02L【論】그리고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바라밀이라고 널리 불린다.
【釋】피안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수행하는 것을 좇아 궁극에는 남음이 없는 것이 피안에 이르는 것이 된다. 세간과 2승에도 역시 수행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닦아도 다하여지지 않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않는다. 둘째는 여러 강물이 바다로 돌아감으로써 끝이 되는 것과 같다. 보시 등도 역시 이와 같다.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이 된다. 곧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세간과 2승도 비록 보시 등을 닦지만 진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셋째는 마땅히 비길 데 없는 과보를 얻는 것이 피안에 이르름이 된다. 다시 이러한 과보보다 수승한 다른 과보는 없다. 모든 과보 가운데 높은 것이 되기 때문에 피안이라고 한다. 세간과 2승도 비록 보시 등을 수행하지만 이러한 과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보살이 닦는 피안이라는 것은 모두 이러한 세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바라밀이라고 통칭(通稱)된다. 어째서 달리 타나(陀那) 등의 이름을 짓는가?
016_1186_a_20L論曰以能到彼岸故是故通稱波羅蜜釋曰到彼岸自有三種一隨所修行究竟無餘爲到彼岸世閒及二乘亦有應所修行修之不盡故非到彼岸二如衆流以歸海爲極施等亦爾入眞如爲究竟卽以入眞如爲到彼世閒及二乘雖修施等不能入眞如故非到彼岸三以應得無等果爲到彼岸更無別果勝於此果爲諸果中上故名彼岸世閒及二乘雖修施不求此果故非到彼岸菩薩所修彼岸皆具此三義故通稱波羅蜜故別名陁那等
【論】아까워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과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고통을 깨뜨려 없앨 수 있기 때문에 타(陀)라고 하며,
【釋】아까워하는 마음은 많은 재물의 장애이며, 질투하는 마음은 존귀함의 장애이다. 인의 시기에 아까워하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으면 과의 시기에는 많은 재물을 얻어서 가난한 고통을 떠난다. 인의 시기에 질투하는 장애를 없앨 수 있으면 과의 시기에는 존귀함을 얻어서 신분이 낮은 고통을 떠난다. 왜냐 하면 만약 사람이 아직 아까워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깨뜨리지 못하면 곧 베풂[施]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를 깨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만약 사람이 베풀어서 이러한 장애를 깨뜨릴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이 뒤에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고통을 받는다는 이러한 처(處)16)는 없다.
016_1186_b_10L論曰能破滅悋惜嫉妒及貧窮下賤苦故稱陁釋曰悋惜是多財障嫉妒是尊貴障因時能滅悋惜障果時得多財故離貧窮苦因時能滅嫉妒障果時得尊貴故離下賤苦何以故若人未破悋惜嫉妒心則不能行施故說能破此障若人行施能破此障此人後受貧窮下賤苦無有是處
【論】다시 큰 재산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복과 덕의 자량을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에 나(那)라고 한다.
【釋】베풀 수 있고 쓸 수 있으므로 큰 재산의 주인이라고 일컬으며, 이러한 주인으로 말미암아 복과 덕의 자량을 끌어당길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타나(陀那)라고 일컫는다.
016_1186_b_18L論曰復得爲大富主及能引福德資糧故稱那釋曰能施能用名大富主由是主故能引福德資糧由具此義故稱陁那
016_1186_c_02L【論】삿된 계율과 악도(惡道)를 적정(寂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시(尸)라고 하며,
【釋】인의 시기에는 삿된 계율을 깨뜨릴 수 있어서 과의 시기에는 악도를 떠날 수 있다. 사람이 악업을 버리지 않고서 계율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처는 없다. 따라서 먼저 삿된 계율을 깨뜨려야 한다. 만약 사람이 삿된 계율을 깨뜨리고 바른 계율을 지켰는데도 4취(趣)에 떨어진다면, 이러한 처는 없다. 따라서 과의 시기에는 악도를 떠날 수 있다.
016_1186_b_21L論曰能寂靜邪戒及惡道故名尸釋曰因時能破邪戒果時能離惡道若人不捨惡業而能持戒無有是處故先破邪戒若人破邪戒持正戒墮四趣者無有是處故果時能離惡道
【論】다시 선도(善道)와 삼마제(三摩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라(羅)라고 한다.
【釋】먼저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뒤에 인(人)과 천(天)의 선도의 과보를 받아 혹은 인 가운데 있고 혹은 과 가운데 있다. 계율을 지키므로 신업과 구업이 청정하다. 청정하기 때문에 후회가 없고 후회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므로 기쁨[喜]17)을 얻고 기쁘기 때문에 의각지(猗覺支)18)를 얻는다. 아름답기[猗] 때문에 즐거움[樂]을 얻고 즐겁기 때문에 정(定)을 얻는다. 정 때문에 여실하게 보고, 참답게 보기 때문에 싫어서 떠남[厭離]을 얻고, 싫어서 떠나므로 해탈을 얻는다. 따라서 계율을 지킴으로 인하여 삼마제를 얻는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시라라고 일컫는다.
016_1186_c_03L論曰復能得善道及三摩提故稱羅釋曰由先持戒後受人天善道果在因中或在果中由持戒故身口淸淸淨故無悔無悔故心安心安故得喜喜故得猗猗故得樂樂故得定定故見如實見如實故得厭離厭離故得解脫故因持戒得三摩提由具此義故稱尸羅
【論】성내는 마음과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찬(羼)이라고 하며,
【釋】인의 시기에는 다섯 가지 의미를 자세히 봄으로써 성내는 마음과 성냄으로써 생겨나는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제거한다. 다섯 가지 의미란 첫째는 모든 중생은 시작함이 없는 예전부터 나에게 베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중생이 항상 생각생각에 사라진다는 것을 관하니 누가 손해를 입히고 누가 손해를 입겠는가? 셋째는 오직 법만이 있고 중생은 없음을 관하니 누가 손해를 입히고 누가 손해를 입는 것이 있겠는가? 넷째는 모든 중생이 모두 스스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관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여기에 고통을 더하고 싶겠는가? 다섯째는 모든 중생이 다 나의 자식이라고 관하니, 어찌 이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싶겠는가? 이러한 다섯 가지 관으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을 없앨 수 있다. 성내는 것이 이미 없으니 분하고 원통함을 제거할 수 있다.
016_1186_c_11L論曰能滅除瞋恚及忿恨心故名羼釋曰因時由觀五義故滅除瞋恚及瞋恚所生忿恨五義者一觀一切衆生無始以來於我有恩二觀一切衆生恒念念滅何人能損何人被損三觀唯法無衆有何能損及所損四觀一切衆生皆自受苦云何復欲加之以苦五觀一切衆生皆是我子云何於中欲生損害由此五觀故能滅瞋恚瞋恚旣滅故能除忿恨
016_1187_a_02L【論】다시 나와 남에게 평화로운 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제(提)라고 일컫는다.
【釋】이러한 일은 인과를 통달한다. 이러한 인욕[忍]이 자신을 성내는 과실로 물들지 않게 하여 곧 스스로에 있어서 평화로우니 이미 분하고 원통하지 않으며, 남에게 고통을 끼치지 않아서 곧 타인에 있어서도 평화롭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덕이 있으니, 첫째는 분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질책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넷째는 좋은 명성을 듣는 것이며, 다섯째는 선도(善道)를 일으킴이다. 곧 이러한 다섯 가지 덕을 평화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찬제(羼提)라고 일컫는다.
016_1186_c_21L論曰復能生自他平和事故稱提釋曰此事通達因此忍能令自身不爲瞋恚過失所卽是於自平和旣不忿恨不生他卽是於他平和如經言若行忍者則有五德一無恨二無訶三衆人所四有好名聞五生善道卽此五德名平和事由具此義故稱羼提
【論】나태함과 모든 나쁜 법을 제거하여 없애므로 비(毘)라고 하며,
【釋】나쁜 곳[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태함이라고 일컬으며, 또한 나쁜 행동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태함이라고 말한다. 나태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바른 행동을 멀리하고 모든 나쁜 법을 일으킨다.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항상 잘못을 일으키므로 나쁜 법이라고 일컫는다. 나태함을 없애버림으로 해서 나태함이 일으키는 모든 해악을 없앨 수 있다. 이것을 검은 법[黑法]을 없애는 정진이라고 일컫는다.
016_1187_a_05L論曰滅除懶墯及諸惡法故名毘釋曰於惡處沈沒故稱懶墯又不厭惡惡行故稱懶墯由懶墯故離諸善生諸惡法三業恒起過故名惡法由滅懶墯故能除懶墯所生諸惡名滅黑法精進
【論】다시 수행하여 멋대로 지내지[放逸] 않고, 헤아릴 수 없는 바른 법을 일으켜 늘리므로 이야(梨耶)라고 한다.
【釋】이것은 인과를 믿고 즐거워함을 간추림으로써 정진을 밝힌다. 인을 믿으므로 행할 수 있고 과를 즐거워하므로 얻을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항상 공손하고 정중한 행위를 행함으로 멋대로 지내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손하고 정중함을 행함으로써 아직 생하지 않은 선은 생하게 할 수 있고, 이미 생겨난 선은 늘리고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법을 일으켜 얻는 정진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비리야(毘梨耶)라고 일컫는다.
016_1187_a_11L論曰復行不放逸生長無量善法故稱梨耶釋曰約信樂因果以明精進信因可行果可得是故恒行恭敬行名不放逸由行恭敬未生善能令生已生善能令增長此卽生得法精進由具此義故稱毘梨耶
【論】산란을 없애버릴 수 있기 때문에 지가(持訶)라고 하며,
【釋】산란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성(自性)산란으로 5식(識)을 말하며, 둘째는 외(外)산란으로 의식이 바깥의 대상을 치달아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셋째는 내(內)산란으로 마음의 높고 낮음과 싱거운 맛[噉味] 등을 말하며, 넷째는 추중(麤重)산란으로 나[我]와 나의 것[我所] 등을 분별하는 것을 말하며, 다섯째는 사유(思惟)산란으로 하열한 마음이며 보살이 대승을 버리고 소승을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016_1187_a_17L論曰能滅除散亂名持訶釋曰散亂有五一自性散謂五識二外散亂謂意識馳動於外塵三內散亂謂心高下及噉味等四麤重散亂謂計我我所等五思惟散亂謂下劣心菩薩捨大乘思惟小乘
【論】다시 마음을 이끌어서 내면의 경계에 머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나(那)라고 일컫는다.
【釋】마음을 이끌어서 다섯 가지의 적정(寂靜)에 머물게 하는 것을 내면의 경계가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지가나(持訶那)라고 일컫는다.
016_1187_a_22L論曰復能引心令住內境故稱那釋曰引心令住五種寂靜名爲內境由具此義故稱持訶那
016_1187_b_02L【論】모든 견행(見行)을 없앨 수 있고 삿된 지혜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반라(般羅)라고 일컬으며,
【釋】견행은 62견을 말하며 삿된 지혜는 세간의 허망한 견해를 말한다. 견행은 곧 혹장(惑障)이고, 삿된 지혜는 지장(智障)이다.
016_1187_b_02L論曰能滅一切見行能除邪智故稱般羅釋曰見行謂六十二見邪智謂世閒虛妄解見行卽是惑障邪智卽是智障
【論】참다운 상을 연할 수 있어서
【釋】진여를 연하는 것을 말하며 곧 여리지(如理智)이다.
016_1187_b_05L論曰能緣眞相釋曰謂緣眞如卽如理智
【論】그 품류를 따라
【釋】품류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유위와 무위를 말하며, 그리고 명(名) 등의 5섭(攝)을 말한다. 만약 이러한 법을 안다면 곧 여량지(如量智)이다.
016_1187_b_07L論曰隨其品類釋曰品類有二種謂有爲無爲及名等五攝若知此法卽如量智
【論】모든 인식현상을 알기 때문에 야(若)라고 일컫는다.
【釋】진여의 상(相)과 품류를 모든 법이라고 말한다. 여리지는 반야라 하고, 여량지는 반야의 과보이므로 역시 반야라고 말한다. 이러한 두 가지 지혜는 세 가지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첫째는 대하여 다스림이니 곧 두 가지 장애이고, 둘째는 경계이니 곧 참다운 상이며, 셋째는 과보이니 곧 여량지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반라야(般羅若)라고 일컫는다.
016_1187_b_09L論曰知一切法故稱若釋曰眞如相及品類名一切法如理智名般若如量智是般若果亦名般若此二智爲三義所顯一對治卽二障二境界卽眞三果卽如量智由具此義故稱般羅若

6) 수습장(修習章)
016_1187_b_15L修習章第六
【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히는 것을 알 수 있는가?
【釋】세간과 2승도 모두 보시 등을 닦아 익힌다. 보살이 보시 등을 닦아 익히는 것이 세간과 2승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016_1187_b_16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修習釋曰世閒及二乘皆有施等修習薩施等修習異世閒及二乘云何可知
016_1187_c_02L【論】간략하게 설명하니, 닦아 익힘에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자세히 설명한다면 닦음에는 열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시수(顯示修)이고, 두 번째는 감손수(減損修)이고, 세 번째는 치성수(治成修)이며, 네 번째는 후행수(後行修)이며, 다섯 번째는 상응수(相應修)이며, 여섯 번째는 승수(勝修)이며, 일곱 번째는 상상수(上上修)이며, 여덟 번째는 초제수(初際修)이며, 아홉 번째는 중제수(中際修)이며, 열 번째는 후제수(後際修)이며, 열한 번째는 유상수(有上修)이며, 열두 번째는 무상수(無上修)이다. 현시수는 4념처를 닦는 것을 말하니, 4제(諦)를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016_1187_b_19L論曰若略說應知修習有五種釋曰若廣說修有十二種一顯示修二損減修三治成修四後行修五相應修六勝修七上上修八初際修中際修十後際修十一有上修十二無上修顯示修者謂修四念處以能顯示四諦義故
손감수란 4정근을 말하니, 모든 나쁜 법을 점차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성수는 4여의족(如意足)을 말하니, 선정을 다스려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잃음[五失]을 제거하고 8멸(滅)의 자량을 지키기 때문이다. 후행수는 5근(根)을 닦는 것을 말하니,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을 갖추기 때문이다. 상응수란 5력(力)을 닦는 것을 말하니, 마땅히 견도를 이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승수란 7각분(覺分)을 말하니 4제관(諦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상수란 8분성도(分聖道)를 말하니, 수승한 견도이기 때문이다. 초제수란 범부의 위계를 말하니, 전도를 좇아 따르기 때문에 계율을 닦고 부정관(不淨觀)과 수식관(數息觀)을 닦기 때문이다. 중제수란 유학위(有學位)를 말하니, 이 가운데에는 전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후제수란 무학위(無學位)를 말하니, 이 가운데는 전도가 없고 전도되는 전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상수란 성문승과 독각승의 닦음을 말하니, 그들의 위계와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수란 보살의 10지(地) 등을 말하니,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016_1187_c_03L損減修者謂四正勤以能漸滅諸惡法故治成修者謂四如意足以能治成定故爲除五失及持八滅資糧故後行修者謂修五根以具解脫分善根故相應修者謂修五力以應續見道故勝修者謂七覺以入四諦觀故上上修者謂八分聖道以勝見道故初際修者謂凡夫修戒乃至得不淨觀及數息觀隨順顚倒故中際修者謂有學位中無倒倒所隨故後際修者謂無學此中無倒非倒所倒故有上修者謂聲聞獨覺修及等彼位故無上修謂菩薩十地等以最勝故
【論】첫째는 가행방법수(加行方法修)이며,
【釋】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넓고 크며 청정하고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다.
016_1187_c_16L論曰一加行方法修釋曰謂身口意業能成廣大淸淨最勝故
【論】둘째는 신락수(信樂修)이며,
【釋】듣고 가르침에 있어서 첫장에서 주석한 것과 같다.
016_1187_c_18L論曰二信樂修釋曰約聞教如初章釋
【論】셋째는 사유수(思惟修)이며,
【釋】사유수 가운데는 세 가지가 있으니, 애중(愛重)ㆍ수희(隨喜)ㆍ원득(願得)을 말한다. 합하여 사유수라고 일컬으며 역시 첫장의 주석과 같다.
016_1187_c_19L論曰三思惟修釋曰思惟修中有三種謂愛重隨喜願得合名思惟亦如初章釋
【論】넷째는 방편승지수(方便勝智修)이며,
【釋】곧 무분별지이며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넓고 큼이고, 두 번째는 청정함이며, 세 번째는 빠르게 이룸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방편승지라는 이름을 세운다.
016_1187_c_22L論曰四方便勝智修釋曰卽無分別智有三義一廣大淸淨三速成具此三義故立方便勝智名
016_1188_a_02L【論】다섯째는 남에게 이익되는 일을 닦음[利益他事修]이다. 이 가운데 앞의 네 가지 닦음은 앞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익타사수(利益他事修)란 부처님의 공용이 없는 마음을 말하며, 여래의 일을 버리지 않는다.
【釋】대승의 가르침 가운데서 설명한 것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록 이미 열반에 드셨지만 오히려 다시 마음을 일으키신다. 반열반(般涅槃)은 곧 법신이다. 다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응신(應身)과 화신(化身)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미 법신에 머무셨다. 본원력(本願力)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업을 떠나서도 중생에 이익되는 일을 좇아서 자연히 응신과 화신을 나투신다. 항상 여래의 정법을 버리지 않고 모든 바라밀을 행한다. 이런 이유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힘이 있다.
016_1188_a_02L論曰五修利益他事此中前四修應知如前利益他事修者謂佛無功用心不捨如來事釋曰明大乘教中所說諸佛雖已般涅槃猶更起心般涅槃卽法身更起心卽應化二身諸佛已住法身由本願力離三隨利益衆生事自然顯現應化二恒不捨如來正事及行諸波羅蜜是故諸佛有諸波羅蜜修習
【論】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혀서 원만위(圓滿位) 가운데 이르러 다시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
【釋】부처님과 보살은 이 원만위 가운데서 부분부분 원만하기도 하고, 모든 부분에서 원만하기도 하다. 만약 모든 바라밀을 닦았다면 스스로의 일은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중생이 이러한 수행으로 말미암아 4취(趣)를 떠나 3승의 도과(道果)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곧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다.
016_1188_a_10L論曰修習諸波羅蜜至圓滿位中更修諸波羅蜜釋曰佛及菩薩或隨分圓滿或具分圓滿於此圓滿位若修諸波羅蜜自事已成故不自爲見衆生由此行得離四趣入三乘道果故修諸波羅蜜卽是利益他事
【論】또한 다시 사유수습(思惟修習)이란 애중(愛重)ㆍ수희(隨喜)ㆍ원득(願得)의 사유이며, 여섯 가지 뜻[六意]에 포섭되어 닦여진다.
【釋】이 장에서 수습의 의미를 꿰뚫어 밝혔다. 앞에서 다섯 가지 수행을 밝혔으나, 수행의 위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했다. 어떻게 원행위의 수행이 청정위의 수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만약 6의가 세 가지 사유를 섭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는다면 청정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행위 가운데는 이러한 의미가 없다. 세 가지 사유가 수행의 근본이어서 여섯 가지 뜻으로써 이 세 가지를 장엄하게 섭지한다.
016_1188_a_16L論曰復次思惟修習者愛重隨喜願得思六意攝所修釋曰此章通明修習義前明五修未分別修位有異何得知願行位修異淸淨位修若六意攝三思惟修諸波羅蜜應知在淸淨位願行位中則無此義三思惟是修行本以六意莊嚴攝持此三
016_1188_b_02L【論】여섯 가지 뜻이란 첫째는 넓고 큰 뜻이고, 둘째는 오랜 시간의 의지이며, 셋째는 환희의 뜻이며, 넷째는 은덕이 있는 뜻이며, 다섯째는 큰 의지의 뜻이며, 여섯째는 착하고 우호적인 뜻이다. 넓고 큰 뜻이란 만약 보살이 약간의 아승기겁에서 위없는 보리를 얻을 수 있다면
【釋】겁의 수를 통틀어 거론한다면 많고 적음이 무한하기 때문에 약간이라고 말한다. 대소승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겁의 수가 같지 않기 때문에 겁의 수가 많고 적음을 정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소승에서는 3아승기겁에 성불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고, 대승에서는 혹은 3 혹은 7 혹은 33아승기겁에 성불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016_1188_a_23L論曰六意者一廣大意二長時意歡喜意四有恩德意五大志意六善好意廣大意者若菩薩若干阿僧祇劫能得無上菩提釋曰摠擧劫數無限多少故言若干以大小乘經說劫數不同故不定說劫數多少小乘明三阿僧祇劫得成佛大乘明或三或七或三十三阿僧祇劫得成佛
【論】이러한 시간이 한 찰나찰나가 되는데,
【釋】혹은 3아승기겁을 합하여 한 찰나가 되고 혹은 33아승기겁을 합하여 한 찰나가 되기 때문에 다시 찰나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이 한 찰나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찰나까지가 하루, 한 달 내지는 1아승기겁이 된다. 1아승기부터 33아승기까지 성불할 수 있다. 보살의 뜻이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이 긴 시간을 설한다.
016_1188_b_08L論曰以如此時爲一剎那剎那釋曰或合三阿僧祇劫爲一剎那合三十三阿僧祇劫爲一剎那故再稱剎那如此從一剎那至無量剎那爲一日一月乃至一阿僧祇劫從一阿僧祇至三十三阿僧祇方得成佛欲顯菩薩意無厭足故說此長時
【論】보살은 이 시간 가운데서 찰나찰나에 항상 신명(身命)을 버린다.
【釋】이 시간은 통틀어 긴 시간을 거론한 것이다. 찰나는 세간에서 말하는 찰나를 밝힌다. 앞에서 설명한 긴 시간 가운데 세간에서 설명하는 찰나와 같이 한 찰나 가운데서 항상 신명과 그 밖의 재물을 버려 성불할 때까지 싫어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없다.
016_1188_b_15L論曰菩薩於此時中剎那剎那常捨身命釋曰此時卽摠擧長時剎那明世閒所說剎那於向所說長時中如世閒所說剎那於一一剎那中捨身命及以外財乃至成佛無有厭足心
016_1188_c_02L【論】그리고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의 세계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물을 베풀어 마음을 처음 냈을 때부터 궁극의 청량한 보리에 들어가 머물 때까지 여래를 봉양한다.
【釋】번뇌의 더러움을 떠나기 때문에 유여열반(有餘涅槃)을 청(淸)이라고 하며, 많은 고통과 뜨거운 번뇌를 떠나기 때문에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양(凉)이라고 일컫는다. 또한 보리는 깨끗함과 즐거움이 체가 되므로 깨끗한 덕을 드러내기 위하여 청이라고 하고, 즐거움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양이라고 말한다.
016_1188_b_21L論曰及等恒伽沙數世界滿中七寶奉施供養如來從初發心至入住究竟淸涼菩提釋曰有餘涅槃名淸以離煩惱濁故無餘涅槃名涼以離衆苦熱惱故又菩提以淨樂爲體欲顯淨德故言淸欲顯樂義故言涼
【論】그래도 보살의 베풀려는 의지는 오히려 만족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많은 시간의 찰나찰나가 삼천대천세계의 맹렬한 불로 가득하여도 보살은 그 가운데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4위의(威儀)가 된다. 모든 생활의 도구가 없어도
【釋】이 밑으로는 보살이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닦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 긴 시간에서 한 찰나찰나 가운데 보살은 극히 고통스럽고 힘든 곳에 있다. 몸을 자양할 도구가 항상 족하게 공급되지 않아서 보살은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아도 이러한 시간 속에서도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여 싫어함도 만족함도 맛보지 않는다.
016_1188_c_04L論曰是菩薩施意猶不滿如此多時剎那剎那滿三千大千世界熾火菩薩於中行住坐臥爲四威儀離一切生生之具釋曰此下欲明菩薩修餘五度於此長時一一剎那中常在極苦難處資身之具恒不供足菩薩雖受此苦於此時中修諸波羅蜜未嘗厭足
【論】지계ㆍ인욕ㆍ정진ㆍ삼마제ㆍ반야심을 보살은 항상 눈앞에 드러내 닦아서 궁극의 청량한 보리에 들어가 머물 때까지 보살의 지계와 인욕의 의지는 역시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는 마음이며 보살의 넓고 큰 의지이다.
만약 보살이 처음 발심할 때부터 성불할 때까지 싫어함도 만족함도 없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긴 시간의 뜻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로 말미암아 짓는,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은 항상 비길 데 없는 환희를 일으켜서 중생은 그 마음에 어느 것도 이를 수 없는 환희를 더할 수 있으면, 이것을 보살 환희의 뜻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여 이미 중생을 이익되게 했다면 중생이 그에게 커다란 은덕이 있음을 보지만 자신이 중생에게 은혜가 있음을 보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의 은덕이 있는 뜻이라고 한다.
016_1188_c_11L論曰戒忍精進三摩提般若心菩薩恒現前修乃至入住究竟淸涼菩提是菩薩戒忍等意亦不滿足是無厭足心是名菩薩廣大意若菩薩從初發心乃至成佛不捨無厭足心是名菩薩長時若菩薩由六波羅蜜所作利益他常生無等歡喜衆生得益其心歡喜所不能及是名菩薩歡喜意若菩薩行六波羅蜜利益衆生已見衆生於己有大恩德不見自身於彼有恩是名菩薩有恩德意
016_1189_a_02L만약 보살이 6바라밀로부터 생하여진 공덕선근을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 주었다면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써 회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랑할 수 있고 소중한 과보를 얻게 한다면, 이것을 보살의 큰 의지의 뜻이라고 말한다.
만약 보살이 행한 6바라밀의 공덕선근을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얻게 하여 그들이 위없는 보리를 회향하게 된다면 이것을 보살의 착하고 우호적인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뜻으로 섭지하는 애중사유(愛重思惟)로 말미암아 보살은 닦아 익힌다.
【釋】마음을 구하여 얻으면 큰 공덕이 있음을 본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것을 얻고자 한다.
016_1188_c_22L若菩薩從六波羅蜜所生功德善根施與一切衆生以無著心迴向爲令彼得可愛重果是名菩薩大志意若菩薩所行六波羅蜜功德善根令一切衆生平等皆得爲彼迴向無上菩提是名菩薩善好意由此六意所攝愛重思惟薩修習釋曰爲顯求得心見有大功德故求欲得之
【論】보살의 수희(隨喜)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 보살은 6의가 생하는 공덕과 선근을 닦아 가행한다. 이것이 보살의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수희사유(隨喜思惟)라고 일컫는다.
【釋】의심이 없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미 수희하는 뛰어난 사람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코 의심이 없다.
016_1189_a_07L論曰若菩薩隨喜無量菩薩修加行六意所生功德善是名菩薩六意所攝隨喜思惟釋曰爲顯無疑心旣隨喜勝人所行決定無疑
【論】만약 보살이 모든 중생이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6바라밀을 수행하기를 원하고, 자신도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6바라밀을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가행을 닦아 익혀서 이에 성불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보살의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원득(願得)의 사유이다.
【釋】크게 가련히 여겨 혼자서 구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세 가지 사유는 곧 세 가지 마음을 없앤다. 첫째는 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없애고, 둘째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마음을 없애며, 셋째는 치우쳐 나아가는 마음을 없앤다.
016_1189_a_11L論曰若菩薩願一切衆生修行六意所攝六波羅蜜及願自身修行六意所攝六波羅蜜修習加行乃至成佛是名菩薩六意所攝願得思惟釋曰爲顯大悲無獨求之心此三思惟卽除三心一除不行二除進退心三除偏進心
【論】만약 사람이 여섯 가지 뜻이 섭지하는 보살의 사유를 듣고 닦아 익힐 수 있다면 한 생각에 믿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람은 곧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복덕의 덩어리를 얻어서 모든 악업의 장애를 무너뜨려 없애어 남음이 없을 것이다.
【釋】업의 장애를 없애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업을 무너뜨려 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업이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선력(善力)한 힘이 크기 때문에 악도의 과보를 막을 수 있어서 영원히 업을 받지 않게 한다. 역시 무너뜨려 없앤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사람이 단지 듣기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끝없는 복덕을 얻는다고 한다면 하물며 어찌 보살이 능력을 다하여 수행하겠는가?
016_1189_a_17L論曰若人得聞六意所攝菩薩思惟修習生一念信心是人則得無量無邊福德之聚諸惡業障壞滅無餘釋曰滅業障有二義一能壞業令盡業雖在以善力大故能遮惡道報令永不受業亦有壞滅義若人但聞尚得無量無邊福德何況菩薩盡能修行

7) 차별장(差別章)
016_1189_a_24L差別章第七
016_1189_b_02L【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의 차별을 알아야 하는가?
【釋】이것은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가를 묻는다. 모든 바라밀을 헤아려 셀 수 없다. 진실한 체를 드러내고자 이렇게 의문을 짓는다. 모든 바라밀의 차별을 밝힘으로써 진실한 체가 드러난다.
016_1189_b_02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差別釋曰此問欲何所顯諸波羅蜜品類不可數量欲顯眞體故作此問由明諸波羅蜜差別故眞體顯現
【論】각기 세 가지 품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차별을 안다.
【釋】이것은 수량을 총체적으로 나타내어 답함으로써 묻는다.
016_1189_b_06L論曰由各有三品知其差別釋曰此摠標數以答問
【論】보시(布施)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교법의 보시이고, 둘째는 재물의 보시이며, 셋째는 무외(無畏)의 보시이다.
【釋】법의 보시는 남의 마음을 이익되게 한다. 법의 보시로 말미암아서 다른 사람이 지혜 등의 선근을 듣고서 덕을 일으킨다. 재물의 보시는 다른 사람의 몸을 이익되게 하며, 무외의 보시는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이익되게 한다. 또한 다시 재물의 보시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을 이끌어서 선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무외의 보시로 말미암아 그들을 두루 포섭하여 권속을 이루게 한다. 법의 보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선근과 해탈을 이루는 것을 일으킨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보시에 세 가지 품성이 있다고 설한다.
016_1189_b_08L論曰施三品者一法施二財施三無畏施釋曰法施利益他心由法施故他聞慧等善根得生財施利益他身無畏施通利益他身心復次由財施有向惡者引令歸善由無畏施攝彼令成眷屬由法施生彼善根及成熟解脫由具此義故說施有三品
【論】지계(持戒)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계율을 지키어 보호함이고, 둘째는 선법의 계율을 섭지함이며, 셋째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율을 섭지하는 것이다.
【釋】계율을 지키어 보호하는 것이 나머지 두 가지 계율의 근거이다. 만약 사람이 악을 떠나지 않고 선을 섭지하여 남을 이익되게 하지 않는다면 곧 계율을 얻을 수 없다. 만약 사람이 계율을 지키어 보호하고 있다면 선법의 계율을 이끌어 섭지할 수 있어서 불법(佛法)과 보리가 생하여 일어나는 근거가 된다. 만약 앞의 두 가지 계율에 머무른다면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계율을 이끌어 섭지할 수 있어서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의지가 된다.
016_1189_b_15L論曰三品者一守護戒二攝善法戒三攝利衆生戒釋曰守護戒是餘二戒依止若人不離惡攝善利他則不得若人住守護戒能引攝善法戒佛法及菩提生起依止若住前二戒能引攝利衆生戒爲成熟衆生依止
016_1189_c_02L또한 계율을 지키어 보호하는 것은 악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후회하고 번뇌하는 마음이 없어서 현세에 안락하게 머무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안락하게 머무는 것으로 말미암아 선법의 계율을 닦아 섭지할 수 있어서 불법을 성숙시키게 된다. 만약 사람이 앞의 두 가지 계율에 머문다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율을 닦아 섭지할 수 있어서 남을 성숙시키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품성의 계율은 곧 네 가지 무외의 인이 된다. 왜냐 하면 첫째의 계율은 끊음의 덕이고, 둘째의 계율은 지혜의 덕이며, 셋째의 계율은 은혜의 덕이다. 네 가지 무외는 이러한 세 가지 덕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곧 네 가지 무외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지계에 세 가지 성품이 있다고 설한다.
016_1189_b_21L復次守護戒由離惡故無悔惱心得現世安樂住由此安樂住故能修攝善法戒爲成熟佛法若人住前二能修攝利衆生戒爲成熟他此三品戒卽四無畏因何以故初戒是斷第二戒是智德第三戒是恩德無畏不出此三德故言卽四無畏因具此義故說戒有三品
【論】인욕(忍辱)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남이 헐뜯고 욕함을 참는 것이고, 둘째는 고통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인욕이고, 셋째는 인식현상을 자세히 보아 살피는 인욕이다.
【釋】헐뜯고 욕함을 참는 것으로 말미암아 남이 일으키는 과실을 참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보살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행하게 됨으로써 발심하여 수행한다. 비록 남이 헐뜯고 욕하게 되더라도 그 과실에 얽매여서 본래의 수행하는 마음을 돌이켜 물러서지 않는다. 고통을 편안하게 받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비록 다시 생사가 있는 모든 고난 가운데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수행하려는 마음을 그만두지 않는다. 인식현상을 자세히 보아 살피는 인욕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모든 인식현상의 진리에 들어간다. 이러한 인욕은 인식 주관[人]과 인식현상[法], 이 두 가지 집착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곧 앞의 두 가지 인욕의 의지처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인욕에 세 가지 성품이 있다고 설한다.
016_1189_c_06L論曰忍三品者一他毀辱忍二安受苦忍三觀察法忍釋曰由毀辱忍能忍他所起過失何以故由菩薩爲作利益他發心修行雖爲他毀辱不由著此過失還退本行心由安受苦忍雖復墮在生死諸苦難中不由此苦退本行心由觀察法忍菩薩能入諸法眞此忍卽是前二忍依處以能除人法二執故由具此義故說忍有三品
016_1190_a_02L【論】정진(精進)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용맹하게 애써 힘쓰는 정진이고, 둘째는 가행하는 정진이며, 셋째는 하락하지 않고 무너지기 어려우며 만족하지 않는 정진이다.
【釋】어떻게 정진에 이러한 세 가지 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불세존께서 경 가운데 말씀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경에서 “이 사람은 정실(貞實)함이 있고 수승한 능력이 있으며, 용맹함이 있고 강제력이 있으며,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 가지 체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러한 다섯 구절을 설하셨다. 용맹하게 애써 힘쓰는 정진을 드러내기 위하여 정실함이 있다고 설하셨고, 가행하는 정진을 드러내기 위하여 수승한 능력이 있다고 설하셨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가행할 때에 수승한 능력이 있어서 앞에서와 같이 바라는 것을 모두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락하지 않고 무너지기 어려우며 만족하지 않는 정진을 설명하기 위하여 차례로 용맹함이 있고 강제력이 있으며,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는 세 구절을 설하셨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위없는 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정실함이 있는 가행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수승한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016_1189_c_15L論曰精進三品者一懃勇精進二加行精進三不下難壞無足精進釋曰云何得知精進有此三體由佛世尊於經中說經言此人有貞實有勝能有勇猛有强制力不捨善軛顯三體說此五句爲顯懃勇精進說有貞實爲顯加行精進說有勝能以故此人於加行時有勝能如前所欲皆能行故爲顯不下難壞無足精次第說有勇猛有强制力不捨善軛三句何以故有人始時爲得無上菩提先有貞實加行時有勝能
시간이 오래되어도 구하고자 하는 과보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이 중간에 하열한 마음이 생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대하여 다스리기 위해서 하락하지 않는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용맹을 설한다. 사람이 비록 다시 용맹심을 내어 물러나 약해지지 않더라도 만약 생사의 고난을 만나면, 그 마음을 그만두고 무너져 곧 보리를 구하는 바람을 그만둔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너지기 어려운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강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한다. 강제력이 있으므로 생사의 고난에서 물러나게끔 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비록 다시 고난을 만나 물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그마한 소득에도 다시 만족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만족을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최상의 보리를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만족하지 않는 정진을 드러낸다. 따라서 바른 굴레를 버리지 않는다고 설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정진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016_1190_a_04L爲時長遠所求果相未現於此中閒生下劣心爲對治此心顯不下精進故說勇猛若人雖復勇猛心無退弱若遭生死苦難沮壞其心則退菩提願對治此心顯難壞精進故說有强制由有强制力生死苦難不能令退若人雖復遭苦不退於少所得便生足想由此知足不能得最上菩提對治此心顯無足精進故說不捨善由具此義故說精進有三品
【論】선정(禪定)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안락하게 머무는 선정이고, 둘째는 신통을 이끄는 선정이며, 셋째는 남을 이익되게 함을 좇는 선정이다.
【釋】선정이 있으므로 현세에 안락하게 머물 수 있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더러움에 물든 법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정에 의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생하게 된다. 3명(明) 때문에 6신통을 이끌어 이룰 수 있다. 신통을 이끄는 선정으로 인하여 남을 이익되게 함을 좇는 선정을 생한다.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은 곧 3륜(輪)이다.
016_1190_a_14L論曰定三品者一安樂住定二引神通定三隨利他定釋曰有定爲現世得安樂住何以故能離一切染污法故依此定爲生自利謂三明故能引成六神通因引成通定生隨利他利他卽是三輪
016_1190_b_02L첫째는 신통륜(神通輪)이며, 신통(身通)과 천안통 그리고 천이통을 말한다. 이 윤(輪)은 삿된 자를 이끌어 구하여 그를 올바름으로 돌아가게 한다. 둘째는 기심륜(記心輪)이며, 타심통과 천안통 그리고 천이통을 말한다. 이 윤은 이끌어서 이미 올바름으로 돌아온 사람이 만약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교륜이며, 숙주통(宿住通)과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숙주통으로 말미암아 그 근성을 인식하고, 누진통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얻은 것과 같이 바른 가르침을 설하게 되어 하열한 종류의 것이 성숙하여 해탈을 얻게 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선정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016_1190_a_20L一神通輪謂身通天眼通天耳通此輪爲引向邪者令其歸正二記心輪謂他心通天眼通天耳通此輪爲引已歸正者若未信受令其信受三正教輪謂宿住通漏盡由宿住通識其根性由漏盡通如自所得爲說正教令得下種成熟解由具此義故說定有三品
【論】반야의 세 가지 품류란 첫째는 분별이 없는 가행반야이고, 둘째는 분별이 없는 반야이며, 셋째는 분별이 없는 뒤에 얻는 반야이다.
【釋】상이 없는 대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부터 문(聞)ㆍ사(思)ㆍ수혜(修慧)를 얻어 분별의 생각이 비어 있음에 들어간다. 통틀어 무분별가행반야(無分別加行般若)라고 일컫는다. 이미 3무성에 들어갔으므로 곧 무분별지이며 무분별반야라고 일컫는다. 무분별지를 얻은 뒤에 관에서 나와 앞에서 증득한 것과 같이 혹은 스스로 사유하고 혹은 남을 위하여 설하는 것을 무분별후득반야(無分別後得般若)라고 일컫는다. 반야에 다시 세 가지 품류가 있으니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이며, 출세간의 일을 생하고 머무르고 쓰기 위함이다. 이러한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반야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고 설한다.
016_1190_b_04L論曰般若三品者一無分別加行般若二無分別般若三無分別後得般若釋曰從聞無相大乘教得聞思修慧入分別想空通名無分別加行般若已入三無性卽無分別智名無分別般若得無分別智後出觀如前所證或自思惟或爲他說名無分別後得般若般若復有三品謂未知欲知根知根知已根爲生住用出世閒事故由具此義故說般若有三品

8) 섭장(攝章)
016_1190_b_14L攝章第八
【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이 포섭한다는 의미를 알 수 있는가?
【釋】그 밖의 다른 모든 바른 법이 모든 바라밀과 함께 상호간에 포섭한다는 의미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016_1190_b_15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攝義釋曰餘一切善法與諸波羅蜜互相攝義云何應知
【論】모든 바른 법은 6바라밀의 포섭함에 들어간다.
【釋】모든 바른 법이란 원(願) 내지는 4무애, 6신통, 여래가 가지고 있는 비밀한 법장(法藏) 등을 말하며 모두 6바라밀에 포섭된다.
016_1190_b_18L論曰一切善法皆入六波羅蜜攝釋曰一切善法願乃至四無㝵六通如來所有秘密法藏等皆是六波羅蜜所攝
【論】그것의 성품이 되기 때문이며
【釋】바라밀이 원 등의 법성이기 때문에 이 원 등은 역시 모든 바라밀을 포섭한다. 원 등이 바라밀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모든 바라밀은 똑같이 무분별지로 본성을 삼기 때문에 서로 포섭할 수 있다.
016_1190_b_21L論曰以爲彼性故釋曰由波羅蜜是願等法性故此願等亦攝諸波羅由願等是波羅蜜性故諸波羅蜜同以無分別智爲性故得相攝
016_1190_c_02L【論】그것들은 6바라밀에 의해 펼쳐지는 과보이기 때문이며,
【釋】그것들은 곧 6신통,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내지 불공법(不共法) 등의 모든 불법(佛法)이며, 모두 6바라밀에 의해 펼쳐지는 과보이다. 바라밀과 더불어 같은 성질이기 때문이다.
016_1190_c_02L論曰彼是六波羅蜜所流果故釋曰彼卽六通十力四無所畏乃至不共法等諸佛法皆是六波羅蜜所流之果以與波羅蜜同性故
【論】모든 바른 법이 좇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釋】믿음과 경안(輕安) 등의 모든 바른 법은 보살도에 포섭된다. 보살이 행하고자 하는 바라밀을 좇아 모두 성취될 수 있다. 바라밀은 곧 그것들에 의해 펼쳐지는 결과이기 때문에 서로 포섭되어질 수 있다.
016_1190_c_06L論曰一切善法所隨成故釋曰信輕安等諸善法是菩薩道所隨菩薩所欲行波羅蜜皆能成就波羅蜜卽是彼所流果故得相攝

9) 대치장(對治章)
016_1190_c_10L對治章第九
【論】모든 바라밀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모든 미혹을 포섭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釋】바라밀이 모든 청정품을 포섭하여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바라밀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도 역시 모든 부정품을 포섭하여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016_1190_c_11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所對治一切惑釋曰如波羅蜜能攝一切淸淨品盡波羅蜜所對治亦應能攝一切不淨品盡云何應知
【論】그것의 성품이 되기 때문이며,
【釋】바라밀이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본성이 되기 때문에 모든 바른 법을 포섭하여 다하듯이 바라밀이 다스리는 것은 집착함으로써 본성이 되기 때문에 모든 부정품을 포섭하여 다한다.
016_1190_c_15L論曰以爲彼性故釋曰如波羅蜜以無著爲性故攝一切善法盡波羅蜜所對治以著爲性故攝一切不淨品盡
【論】그것이 생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며,
【釋】믿지 않음과 삿된 견해와 신견(身見) 등의 모든 법이 아까워함과 질투심과 그릇된 행동 그리고 성냄 등의 과보를 생할 수 있다. 같은 성질이기 때문에 그것의 원인이 될 수 있다.
016_1190_c_19L論曰爲彼生因故釋曰不信邪見身見等諸法能生悋惜嫉妒邪行瞋恚等果以同性故得爲彼因
【論】그것에 의해 펼쳐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釋】이러한 아까워함, 질투심, 그릇된 행동, 성냄 등이 나와 남을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악행을 낳는다. 10악(惡) 등도 역시 같은 성질로써 그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의미로써 서로 포섭할 수 있다.
016_1190_c_22L論曰爲彼所流果故釋曰此悋惜嫉妒邪行瞋恚等由著自他故生諸惡行謂十惡等亦以同性得爲彼果由此諸義故得相攝
016_1191_a_02L
10) 공덕장(功德章)
016_1191_a_02L功德章第十
【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의 공덕을 알아야 하는가?
【釋】세간의 보시 등의 행위를 행하는 것도 역시 공덕이 있다. 보살의 바라밀 공덕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보살의 바라밀 공덕은 세간의 것과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같은 점에 여섯 가지가 있고, 다른 점에 네 가지가 있다. 같은 점 여섯 가지란?
016_1191_a_03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功德釋曰行世閒施等行亦有功德菩薩波羅蜜功德云何應知菩薩波羅蜜功德與世閒有同有異同有六種有四種同有六種者
【論】만약 보살이 생사를 윤회하더라도 큰 부호의 위치에서 자재함에 포함되고,
【釋】전륜왕(轉輪王)과 천제(天帝)ㆍ범왕(梵王) 등이 큰 부호의 위치가 된다. 이 가운데 주인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있다라고 한다. 보살과 범부가 행하는 보시는 똑같이 그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a_08L論曰若菩薩輪轉生死大富位自在所攝釋曰轉輪王天帝梵王等爲大富位於中爲主故名自在菩薩凡夫行施同得此報
【論】크게 생함에 포함되며,
【釋】크게 생함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도의 수승함이고, 둘째는 성품의 수승함이며, 셋째는 위덕(威德)의 수승함이다. 보살과 범부의 지계는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a_12L論曰大生所攝釋曰大生有三種一道勝二性勝威德勝菩薩凡夫持戒同得此報
【論】큰 권속과 무리 대중에 포함되며,
【釋】친척을 권속이라 하고, 포함되어 다스려지는 사람을 무리 대중이라고 한다. 권속과 무리 대중에도 역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 가지 수승함이 있다. 앞에서 설한 것과 같기 때문에 큼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모두 서로 사이가 좋고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항상 함께 기쁘게 모이고 항상 어긋나 떨어지지 않는다. 보살과 범부가 생하는 인욕이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a_14L論曰大眷屬徒衆所攝釋曰親戚名眷屬所攝領者名徒衆眷屬及徒衆亦有三勝如前所說故稱爲大相親愛不生憎嫉恒共歡聚未嘗違菩薩凡夫行忍同得此報
【論】크게 생계를 꾸려가는 사업을 성취함에 포함되며,
【釋】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식물을 심는 것이고, 둘째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며, 셋째는 장사하는 것이며, 넷째는 사왕(事王)이다. 같이 화합하고 어그러져 다투기도 하는 것을 일이라고 일컫는다. 바라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성취한다라고 일컫는다. 보살과 범부가 행하는 정진은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a_19L論曰大資生業事成就所攝釋曰資生業有四種一種植二養獸三商估四事王和同乖諍名事如所欲爲無不諧遂故名成就菩薩凡夫行精進同得此果
016_1191_b_02L【論】질병과 고뇌가 없고 욕심이 적음 등에 포함되며,
【釋】4무량심(無量心)이 섭지하는 선정, 이러한 선정이 얻는 과보로 몸에 모든 병이 없고 마음이 많은 고뇌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항상 기쁘다. 그 외의 모든 선정으로 얻어지는 과보는 비록 다시 재가(在家)이더라도 번뇌가 적기 때문에 이욕선인(離欲仙人)과 다르지 않다는 것 등은 좋은 형상을 얻고 장수하는 것 등을 말한다. 보살과 범부가 닦는 선정은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
016_1191_a_24L論曰無疾惱少欲等所攝釋曰四無量所攝定定得果身無諸病心離衆惱故恒歡其餘諸定所得果報雖復在家離欲仙人不異以少煩惱故等謂得好形相及長壽等菩薩凡夫修定同得此果
【論】모든 공예와 학문에 대한 총명한 지혜에 포함된다.
【釋】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공예와 학문들이 필요하다. 곧 18명처(明處)19)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해탈법을 세울 수 있다. 이 가운데 세워서 깨뜨려야 할 두 가지 이치가 있다. 만약 총명한 지혜가 있다면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다. 보살과 범부가 만약 반야를 닦는다면 똑같이 이러한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차이점에는 네 가지가 있다.
016_1191_b_07L論曰一切工巧明處聰慧所攝釋曰爲立資生故須工巧明卽十八明處能立現在未來及解脫法此中有立破二理若有聰慧則能成此事菩薩凡夫若修般若同得此報異有四種者
【論】여의(如意)20)이며
【釋】보살이 보시 등을 행하여 부유함과 즐거움 등의 과보를 얻어도 그 가운데 항상 과실이 없다. 왜냐 하면 더러움에 물듦이 없어서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으나 이러한 일이 없다. 이것이 첫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016_1191_b_12L論曰如意釋曰菩薩行施等得富樂等報於中常離過失謂無染污利益自他故閒行施等雖有功德則無此事是名第一異相
【論】부유함과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釋】보살이 보시 등을 행하여 부유함과 즐거움 등의 과보를 얻는다. 이러한 가운데 여의하다. 왜냐 하면 스스로 쓰기도 하고 남을 위하여 쓰기도 하여 항상 세 가지 환희를 생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더라도 이와 같지는 않다. 이것이 두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016_1191_b_16L論曰無失富樂釋曰菩薩行施等得富樂等報於中如意謂自用及爲他用常生三種歡喜故世閒行施等雖有功德則不如是名第二異相
【論】중생을 이익되게 함으로써 바른 일을 삼기 때문이며,
【釋】보살이 행하는 보시 등에서 생하는 공덕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세간과 출세간의 이익된 일을 일으킨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지 않다. 이것이 세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016_1191_b_20L論曰利益衆生爲正事故釋曰菩薩行施等所生功德常爲衆生作世出世利益事爲自身世閒行施等雖有功德則不如此是名第三異相
016_1191_c_02L【論】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의 공덕 내지는 궁극에 들어가 머무는 청량한 보리는 항상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釋】보살이 행하는 보시 등이 생하는 공덕은 초발심으로부터 궁극의 과보에 이르기까지 본래와 같이 항상 남을 이익되게 하여 다르지 않다. 이것이 곧 항상 머무는 공덕이다. 세간에서 행하는 보시 등은 비록 공덕이 있어도 이와 같지 않다. 이것이 네 번째의 다른 모습이다.
016_1191_b_24L論曰菩薩修行六度功德乃至入住究竟淸涼菩恒在不異故釋曰菩薩行施等所生功德從初發心乃至極果如本恒在利他不異此卽常住功德世閒行施等雖有功德則不如此是名第四異相

11) 호현장(互顯章)
016_1191_c_07L互顯章第十一
【論】어떻게 모든 바라밀이 다시 서로간에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가?
【釋】반야바라밀 등의 경전 가운데 서른여섯 구절과 같이 하나하나의 바라밀을 드러내 설명하는 것이 곧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016_1191_c_08L論曰云何應知諸波羅蜜更互相顯釋曰如般若波羅蜜等經中說三十六句顯說一一波羅蜜卽說餘五波羅蜜云何應知
【論】세존께서는 혹은 보시라는 이름으로 모든 바라밀을 설하셨고, 혹은 지계라는 이름으로, 혹은 인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정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선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반야라는 이름으로 모든 바라밀을 설하셨다.
【釋】다섯 바라밀은 하나의 바라밀에 들어가 포섭된다. 하나의 바라밀 가운데는 곧 여섯이 갖추어져 있다. 단지 보시 등의 하나의 이름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016_1191_c_12L論曰世尊或以施名說諸波羅蜜或以戒名或以忍名或以精進名或以定名或以般若名說諸波羅蜜釋曰五波羅蜜入一波羅蜜攝一波羅蜜中則具有六以施等一名說之
016_1192_a_02L【論】여래께서는 무슨 뜻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는가?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는 방편 가운데 모든 나머지 바라밀이 모두 모여서 보조하여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여래께서 설하신 의도이다.
【釋】만약 보살이 하나 하나의 바라밀 가운데서 가행(加行)을 닦는다면 나머지 바라밀 모두가 이 하나를 보조하여 이룬다. 모든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몸과 입을 지켜서 7지악(支惡)을 떠난다. 곧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의 계율을 지킨다. 이러한 계율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지계가 곧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보시를 받는 사람의 서로 어긋나는 말과 서로 어긋나는 위의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내지는 보시를 행할 때의 고통스런 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인욕으로 말미암아 보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인욕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016_1191_c_17L論曰如來以何意作如此說於諸波羅蜜修行方便一切餘波羅蜜皆聚集助成故卽如來說意釋曰若菩薩於一一波羅蜜修加行餘波羅蜜皆助成此如諸菩薩正行施時守護身口離七支惡卽持正語正業正命戒由此戒故施得成就故戒能成施若菩薩正行施時能安受受施人相違言語及相違威儀乃至安受行施苦事此忍故施得成就故忍能成施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보시를 행하려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탐욕과 애착을 없앨 수 있고, 크게 슬퍼하는 마음이 있음으로 해서 성내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몸을 낮추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교만함을 없앨 수 있고, 받는 사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려고 할 때 아까워함과 질투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으며, 보시에 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무명과 삿된 견해를 없앨 수 있다. 정진이 이와 같은 선(善)을 생할 수 있어서 이와 같은 악을 대하여 다스린다. 정진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정진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한마음이 계속 이어진다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일을 연(緣)한다.
이러한 선정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이 보시를 이룰 수 있다. 만약 보살이 바르게 보시를 행할 때에 인과를 요별함으로 해서 3륜(輪)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반야가 보시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을 나머지 바라밀이 하나의 바라밀을 보조하여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6바라밀을 합해 설하여 통틀어 보시라 이름하고 보시와 같이 지계 등도 역시 이와 같다. 하나의 바라밀이 여섯을 갖추었기 때문에 서른여섯 구절을 이룬다.
016_1192_a_04L若菩薩正行施時由欲行施心能除貪愛由有大悲能除瞋恚由下身心能除憍慢欲令受者安樂能除慳悋嫉妒知施有因果能除無明邪見精進能生如此善對治如此惡由精進施得成就故精進能成施若菩薩正行施一心相續緣利樂衆生事由此定故施得成就故定能成施若菩薩正行施時由了別因果不著三輪故般若能成施是名餘波羅蜜助成一波羅蜜故合說六波羅蜜摠名爲施施戒等亦爾一度具六故成三十六句
【論】이 가운데 우타나21)게송을 읊는다.
016_1192_a_16L論曰此中說鬱陁那偈
위계[位]ㆍ수(數)ㆍ상(相)ㆍ순서와
이름ㆍ닦음ㆍ차별ㆍ포섭함과
대하여 다스림ㆍ공덕,
그리고 서로를 드러냄이 모든 바라밀의 정의이다.
016_1192_a_17L位數相次第
名修差別攝
對治及功德
互顯諸度義
016_1192_b_02L제9장 15행에서 “의뢰하고 게으른 것이 바로 마음을 퇴약시키는 인(因)이다.”라고 한 다음에 정(定)과 혜(慧)의 두 바라밀에 관한 문장이 있어야 하는데 삼국(三國)의 본(本)에 모두 빠져 있다. 게다가 다음에 나오는 문장인 “심인(心因)은 산란과 사지(邪智)이다.”라고 한 것과, 결문(結文)인 “여섯 종류의 혹장(惑障)을 대치하기 위해서 6바라밀을 수립했다.”라고 한 것은 모두 유래된 곳이 없다. 지금 본론인 『섭대승론』의 중권(中卷)에서, “이미 발심해서 수행하고 마음을 퇴약시키지도 않는 사람이 심인을 괴실시키는 것을 대치하기 위해서 정과 혜 두 바라밀을 수립한다.” 등의 25자가 있는데, 지금 본론에 의거해서 보충해서 넣는다.
016_1192_a_19L攝大乘論釋卷第九
第九張十五行懶墯卽是退弱心因之下應有定慧二波羅蜜文而三國
本皆闕遂令次文壞失心因者謂散亂邪智及與結文爲對治六種惑障
立波羅蜜有六數等言皆無所從來今撿本論此中有云若已起發行
及不退弱心爲對治壞失心因故立定慧二波羅蜜等二十五字今依本
論加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dāna의 음사(音寫). 6바라밀 가운데 보시(布施)를 말한다.
  2. 2)sīla의 음사. 6바라밀 가운데 지계(持戒)를 말한다.
  3. 3)kṣānti의 음사. 6바라밀 가운데 인욕(忍辱)을 말한다.
  4. 4)virya의 음사. 6바라밀 가운데 정진(精進)을 말한다.
  5. 5)dhyāna의 음사. 6바라밀 가운데 선정(禪定)을 말한다.
  6. 6)prajnā-pāramitā의 음사. 6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말한다.
  7. 7)희론(戱論)이란 자전의 의미대로 ‘말장난’의 의미로 일반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훨씬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촌원(中村元) 박사는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정립하여 그것을 객체화하는 것이다”라고 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이 견해가 옳다고 본다. 중론에서도 “희론이란 억념(憶念)이 상을 취하여 차피(此彼)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中論』, 靑目疏, 대정장 30권, p. 31 a)”라고 설명하고 있다.
  8. 8)부처님의 밀의(密意)가 설하여진 경전. 『해심밀경』 「무자성품(無自性品)」 5, 대정장 16권, p. 695 b 참조.
  9. 9)불료의경의 구절과 문구를 사전상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7권의 34번 주석 참조.
  10. 10)인식현상의 성질을 색깔에 비유하여, 선(善)한 인식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11. 11)욕계의 번뇌이다. 탐욕ㆍ도회(掉悔)ㆍ진(瞋)ㆍ수면(睡眠)ㆍ의심을 말한다.
  12. 12)stīna-middha. 수면(隨眠)과 구분하여야 한다. 식(食:질료)을 덮어버린다고 한다. 즉 지각하여 인식에 있어서 질료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니, 지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상태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구사석론』, 대정장 p.264 a 참조).
  13. 13)1권의 3번 주석 참조.
  14. 14)신통륜과 기심륜과 설법륜을 말한다. 6권 42번과 43번과 44번 주석 참조.
  15. 15)6바라밀의 상을 말한다.
  16. 16)12처 대상과 인식이 맞닿아 인식을 일으키는 장(場).
  17. 17)37도품(道品) 가운데 7각지(覺支)의 하나. 7각지는 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경안(輕安:猗)ㆍ사(捨)ㆍ정(定)ㆍ염(念) 각지를 말한다.
  18. 18)7각지의 하나. 신역에서는 경안(輕安)이라고 번역한다.
  19. 19)18대경이라고도 한다. 바라문교의 성전으로 4베다, 6론, 8론을 말한다.
  20. 20)무분별지의 별칭이다.
  21. 21)udāna의 음사(音寫). 섭송(攝頌)이라고 한역한다. 경ㆍ논ㆍ율을 설한 뒤에 그 의취에 맞게 게송을 읊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