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351_a_01L변중변론송론(辯中邊論頌)


미륵보살(彌勒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1. 변상품(辯相品)

다만 모양[相]과 장애[障]와 진실함[眞實]과
모든 다스림을 닦음[修對治]이다
곧 이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修分位]와
과위를 얻음[得果]과 무상승(無上乘)만이 있다

허망한 분별은 있고
이것에 두 가지는 도무지 없으며
이 안에는 ≺공≻이 있을 뿐이요
그것에도 역시 이것만이 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공≻이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라고 말하나니
있음[有]과 없음[無]과 및 있음[有] 때문에
이는 곧 중도(中道)에 꼭 들어맞는다

의식[識]이 나서 변하여
뜻[義]ㆍ유정(有情)ㆍ≺나≻[我]와 알음[了]과 비슷하되
이 대경[境]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경이 없는지라 의식도 없다

허망한 분별의 성품은
이 뜻으로 말미암아 서로 있음[實有]도
전혀 없음[全無]도 아님을 이룩하게 되나니
사라져서 해탈(解脫)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직 제나름 분별[遍計所執性]과 새로 의지성[依他起性]과
두루 진실성[圓成實性]만은
대경[境]이기 때문이요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공≻하기 때문에 말한다

의식[識]은 얻는 바[所得]가 있는 데에 의지하고
대경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며
대경은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고
의식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긴다

의식의 얻음이 있는 성품[有得性]도
얻는 바가 없음[無所得]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두 가지의 얻음이 있음[有得]은
얻음이 없는 성품[無得性]과 평등한 줄 알아라

세 가지 세계[三界]의 임자 마음과 딸린 마음[心心所]은
이야말로 허망한 분별인 것이니
대경을 아는 것만을 임자 마음이라고 하고
또한 차별하는 것을 딸린 마음이라 한다

첫째를 곧 연식(緣識)이라고 하고
둘째를 받는 이[受者]라고 하나니
이 가운데서 능히 수용(受用)하고
분별하여 추리함[推]은 딸린 마음이다

가려 막음[覆障]과 편히 세움[安立]과
거느려 인도함[將導]과 포섭함[攝]과 원만함[圓滿]이며
세 가지 분별[三分別]과 받아 씀[受用]과
끌어 일으킴[引起]과 연달아 맴[連縛]이며

앞에 나타남[現前]과 괴로움의 결과[苦果] 때문에
이것만이 세간을 괴롭히나니
세[三]과 둘[二]과 일곱[七]의 섞여 더러움[雜染]은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서이다

모든 모양[相諸] 및 다른 문[異門]과
뜻[義]과 차별(差別)과 성립(成立)은
두 가지가 ≺공≻한 성품인 줄 알지니
간략히 말하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없고[無二]없음이 있기[有無]때문이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니며
다름[異]도 아니고 또한 동일함[一]도 아니니
이것을 말하여 ≺공≻한 모양이라고 한다

≺공≻의 다른 문을 간략히 말하자면 진여(眞如)와 실제(實際)와
모양 없음[無相]과 뛰어난 이치의 성품[勝義性]과
법계(法界) 따위인 줄 알아야 하리라

변함이 없음[無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과
모양의 사라짐[相滅]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聖智境]와
모든 거룩한 법의 원인[聖法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다른 문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라

이것은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하여[淸淨]
때 있음[有垢]과 때 없음[無垢]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마치 물 경계[水界]와 온전한 허공[空]처럼
깨끗하므로 인정하여 깨끗함[淨]이라고 한다

능히 먹음[能食]과 먹을 바[所食]와
능히 이것을 봄[能見此]과 그대로의 이치[如理]는
구하는 바 두 가지 깨끗함의 ≺공≻[二淨空]이며

언제나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를 위하고
나고 죽음[生死]을 버리지 않기를 위하고
착함[善]의 다함이 없기를 위하여
그 때문에 이를 살피어 ≺공≻으로 삼는다

종성(種性)의 맑고 깨끗함을 위하고
모든 좋은 모습[相好]를 얻기 위하고
모든 부처님 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 때문에 보살은 ≺공≻임을 살핀다

보특가라[補特伽羅]와 법(法)의
실제 성품[實性]은 다 같이 있음[有]이 아니며
이 없는 성품[無性]이 있는 성품[有性]이므로
두 가지의 ≺공≻[二空]을 세운다

이것이 만약 섞여 더러움이 없다면
온갖 것은 저절로 해탈되어야 하고
이것이 만약 맑고 깨끗함이 없다면
하욤[功用]은 결과가 없어야 하리

더러움[染]도 아니고 더럽지 않음[不染]도 아니며
깨끗함[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음[不淨]도 아니니
마음의 성품[心性]은 본래 깨끗하지마는
손티[客塵]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


2. 변장품(變障品)

전체 부분[具分]과 한 부분[一分]과
더욱 왕성함[增盛]과
나고 죽음에 있어서 가지거나 버림[取捨]은
두 가지 종성(種性)을 장애한다고 말한다

아홉 가지 번뇌의 모양[煩惱相]이라 함은
사랑함[愛] 따위의 아홉 가지 번뇌[九結]이니
첫째와 둘째는 싫어함[厭]과 버림[捨]을 장애하고
나머지의 일곱은 참된 소견[眞見]을 장애한다

말하자면 몸에 대한 소견[身見]과 그의 일[事]과
사라짐[滅]과 도(道)와 보배[寶]와
이끗 공경함[利養恭敬] 따위와 멀리 여읨[遠離]과의
두루 앎[徧智]을 장애하기 때문이니라

행을 더함이 없음[無加行]과 그릇된 곳[非處]과
이치답지 않음[不如理]과 내지 않음[不生]과
바른 생각[正思惟]을 일으키지 아니함과
양식[資糧]이 아직 원만하지 못함이며

종성(種性)과 착한 벗[善友]과를 궐(闕)함과
마음이 극히 고달프고 싫증나는 성품과
바른 행[正行]을 궐함과
비루하고 나쁜 이와 함께 사는 것이며

뒤바뀐 거칠고 무거움[倒麤重]과 셋의 나머지와
반야(般若)가 아직 성숙되지 못함과
본래 성품[本性]의 거칠고 무거움과
게으름[怠惰]과 방일(放逸)과의 성품이며

존재[有]에 집착함과 재물[資材]에 집착함과
마음 성품의 낮고 열등함과
믿지 않음[不信]과 훌륭한 알음[勝解]이며

법을 가벼이 하고 명리[名利]를 중히 여김과
유정에게 가엾이 여김이 없음과
들음이 모자람[匱聞]과 들음이 적음[少聞]과
미묘한 선정[妙定]을 닦고 다스리지 않음이다

착함[善]과 보리(菩提)와 섭수함[攝愛]과
지혜 있음[有慧]과 어지러움[亂]도 장애도 없음과
회향함[廻向]과 두려움[怖]도 아낌[慳]도 아님과
자재함[自在]을 착함 따위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착함 따위의 열 가지 것은
각각 앞의 세 가지씩 장애를 보유하며
깨달음 장래[覺分]와 건넘[度]과 자리[他]에선
따로[別]의 장애가 있는 줄 알지니라

일에 있어 잘하고 교묘하지 않음과
게으름과 선정에 둘을 줄게 함[定滅二]과
심지 아니함과 파괴하고 열등한 성품[嬴劣性]과
소견[見]과 거칠고 무거움[麤重]과의 허물이다

부귀(富貴)와 착한 갈래[善趣]와
모든 유정들을 버리지 아니함과
허물[失]과 덕(德)에 있어 줄어짐과 불음[減增]과
나아가 들게 함[趣入]과 해탈을 장애함과

보시[施] 따위의 모든 선행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할 일을 잘 결정함[所作善決定]과
법을 수용하여 성숙케 함을 장애함이다

두루한 행[徧行]과 가장 훌륭함[最勝]과
훌륭한 종류[勝流]와 포섭함이 없음[無攝]과
서로 잇달아서 차별이 없음[相續無差別]과
섞여 더러움도 맑고 깨끗함도 없음이며

가지가지 법의 차별이 없음[種種法無別]과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不增不滅]과
아울러 분별함이 없는 따위의
네 가지 자재함의 의지[四自在依]의 이치니라

이 열 가지 법계[十法界]에서는
물들지 아니하는 무명[不染無明]이것이
10지의 공덕을 장애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열 가지 장애[十障]라고 하느니라

이미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모든 소지장(所知障)을 설명하였나니
이 두 가지가 다하였기 때문에
온갖 장애[一切障]는 해탈되었다 하리라


3. 변진실품(辯眞實品)

진실함[眞實]은 열 가지가 있을 뿐이니
근본(根本)과 모양[相]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과 인과(因果)와
굵고 가늘음[麤細]의 진실함이며

지극하게 이루짐[極成]과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와
받아들임[攝受]과 차별(差別)과
열 가지 교묘함[十善巧]의 진실함이니
다 ≺나≻라는 소견[我見]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세 가지의 제 성품[三自性]에 있어서
하나만은 언제나 있음이 아님[非有]이고
하나는 있음[有]이면서 진실함이 아니며
하나는 있음[有]ㆍ없음[無]이면서 진실함이다

법(法)과 보특가라[數取趣]와
취할 바[所取]와 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있음과 있음이 아닌 성품[有非有性] 중에는
더 늘음[增益]과 줄어짐[損滅]의 소견이 있다

이를 알기 때문에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을 진실한 모양[眞實相]이라고 하며
성품 없음[無性]과 나고 없어짐[生滅]과
때 끼고 깨끗함[垢淨]이 셋의 무상함이다

취할 바[所取]와 일 모양[事相]과
어울려 합함[和合]이 괴로움의 세 가지[苦三種]며
≺공≻함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없음[無]과 다름[異]과 각자[自]의 성품이다

모양이 없음[無相]과 모양이 다름[異相]과
제만의 모양[自相]이 셋의 ≺나≻ 없음이며
다음과 같이 네 번의 세 가지는
근본의 진실함에 의지함인 것이다

괴로움의 세 모양[苦三相]은 이미 설명하였고
쌓임[集]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습기(習氣)와 등기(等起)와
모양의ㅏ 매임을 여의지 못함[未離繫]이다

제 성품[自性]과 두 가지의 나지 않음[不生]과
때와 고요함[垢寂]의 둘은 셋의 사라짐[滅]이며
두루 앎[遍知]과 영원히 끊음[永斷]과
증득함[證得]은 세 가지 도의 진리[道諦]이다

알아야 하리니 세속의 진리[世俗諦]는
차별하자면 세 가지가 있어서
거짓[假]과 행함[行]과 나타나 앎[顯了]이니
차례대로 세 가지의 근본(根本)에 의한다

으뜸가는 진리[勝義諦]에도 세 가지가 있어서
뜻[義]과 얻음[得]과 바른 행[正行]이니
근본의 하나에 의한 변함이 없음[無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의 둘은 두루 진실[圓實]이다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世極成]은 첫째에 의하고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理極成]은 셋째에 의하여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에 두 가지 있나니
하나의 두루 진실성[圓成實]에 의하느니라

이름[名]은 제나름 분별성[遍計所執]이고
모양[相]과 분별(分別)은 서로 의지성[依他起]이며
진여(眞如) 및 바른 지혜[正智]는
두루 진실성의 소속이니라

헤맴[流轉]과 편히 세움[安立]과
삿된 행[邪行]은 처음과 둘째에 의하고
실제 모양[實相]과 오직 의식[唯識]과 깨끗함[淨]과
바른 행[正行]은 뒤의 하나에 의한다

쌓임[蘊] 등에 있어서 ≺나≻라는 소견[我見]은
하나[一]와 원인[因]과 받는 것[受者]과
짓는 것[作者]과 자재로이 바꿈[自在轉]과
더 위가는 이치[增上義]와 항상 함[常]이며

섞여 더러우며 맑고 깨끗함의 의지[雜染淸淨依]와
관(觀)과 묶고 푸는 것의 성품[縛解者性]을 집착하며
이 집착할 바[所執]와 분별(分別)과
법의 성품[法性]의 이치가 거기에 있다

하나가 아님[非一]과 묶어 간략히 함[總略]과
나눈 대문[分段]의 이치를 쌓임이라 하며
능히 취함[能取]과 취할 바[所取]와
저 취함[取]의 종자(種子)의 이치를 경계[界]라 한다

능히 받음[能受]과 알 바 대경[所了境]과의
받아 쓰는 문[受用門]의 이치를 처소라 하며
연기(緣起)의 이치는 원인[因]과
결과[果]와 작용[用]에서 더하고 덜함이 없음이다

사랑스럽지 않음[非愛]과 사랑스러움[愛]과 깨끗함[淨]과
함께 남[俱生]과 훌륭한 임금[勝主]과
얻음[得]과 행함[行]에 자재(自在)하지 아니함이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處非處]의 이치이다

뿌리는 취함[取]과 머무름[住]과 이어짐[續]과
씀[用]과 두 가지 깨끗함[二淨]에서 더함[增上]이며
원인[因]ㆍ결과[果]와 이미[已]ㆍ아직[未]의 수용은
바로 세상[世]의 이치인 줄 알라

느낌[受]과 느낌의 양식[受資糧]과
저 원인하는 바의 모든 행[所因諸行]과
두 가지 고요히 사라짐[二寂滅]과 다스림[對治]은
이는 진리[諦]의 이치인 줄 알라

공덕(公德)과 허물[過失]과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 의하거나 스스로가 벗어남[出離]은
이는 승[乘]의 이치인 줄 알아야 한다

함이 있고 함이 없는[有爲無爲]이치라 함은
거짓[假]이거나 원인[因]이거나
모양[相]이거나 고요함[寂靜]이거나
또는 저 살필 바[所觀]의 이치이니라


4. 변수대치품(辯修對治品)

거칠고 무거움[麤重]과 사랑의 원인[愛因]과
≺나≻라는 일[我事]과 헷갈림 없음[無迷] 때문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들기 위하여
염주(念住)를 닦는 줄 알아야 한다

장애[障]와 다스림[治]의 온갖 차별을
이미 두루하게 알았다고 하면
멀리 여읨[遠離]과 닦아 쌓음[修集]을 위하여
네 가지 정단[四正斷]을 부지런히 닦는다

감당하는 성품[堪能性]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온갖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허물[五過失]을 없애버려서
여덟 가지 끊는 행[斷行]을 부지런히 닦는다

게으름[懈怠]과 성인 말씀[聖言]을 잊음과
흐리멍텅[惛沈]하고 들뜸[悼擧]과
행을 짓지 않음[不作行]과 행을 지음[作行]
바로 다섯 가지의 허물[五失]인 줄 알아라

게으름을 끊어서 없애기 위하여
하고자 함[欲], 부지런함[勤], 믿음[信], 편안함[安]을 닦음이니
곧 의지할 바[所依]와 능히 의지함[能依]과
원인한 바[所因]와 능한 결과[能果]이며

그 밖의 네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억[念]ㆍ지혜[智]ㆍ생각[思]ㆍ버림[捨]을 닦음이니
말씀 기억함과 흐리멍덩하고 들뜸을 깨달음과
조복의 행[伏行]과 없애서 평등하게 흐름[滅等流]이다

이미 순해탈(順解脫)을 심었지마는
다시 다섯 가지 더함[五增上]을 닦나니
하고자 함[欲]과 행함[行]과 잊지 않음[不忘]과
산란하지 않음[不敬亂]과 생각하여 가림[思擇]이다

곧 장애 줄이는 것을 힘[力]이라고 하나니
원인과 결과로 차례를 세우며
순결택분(順決擇分)의 두 가지와 두 가지는
5근(根)에 있고 5력(力)에 있다

깨달음 갈래[覺支]를 요약하면 다섯 가지 있나니
의지할 바[所依]아 제 성품[自性]과
벗어남[出離]과 아울러 이익(利益)이며
그리고 세 가지의 물듦 없는 갈래[三無染支]이다

인연(因緣)과 의지할 바와
제 성품으로 말미암아 뜻이 차별되나니
그러므로 가뿐함[輕安]과 선정[定]과 버림[捨]을
말하여 물듦 없는 갈래라고 한다

분별(分別)과 가르쳐 보임[誨示]과
다른 이를 믿게 함에 세 가지가 있음과
장애 다스림[對治障]에도 세 가지가 있으므로
도의 갈래[道支]는 여덟 가지가 된다

소견[見]과 계율[戒]과 멀리 여읨[遠離]을 나타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깊이 믿어 받게 하며
근본과 따름의 미혹[本隨惑] 및
자재의 장애[自在障]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뒤바뀜 있음[有倒]에서 뒤바뀜 없음[無倒]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있음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없음에 따름의
이것이 다스림을 닦는 것의 차별이다

보살로서 닦아 익히는 바는
반연할 바[所緣]와 뜻 지음[作意]과
증득함[證得]의 자못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2승과는 차별이 있다


5. 변수분위품(辯修分位品)

통틀어서 세 가지 위 없음[三無上]으로 말미암아
무상승(無上乘)이라고 말하나니
바른 행[正行]과 반연할 바[所緣]와
닦아 증득함[修證]의 위 없음이다

바른 행에는 여섯 가지 있나니
가장 훌륭함[最勝]과 뜻 지음[作意]과
법을 따름[隨法]과 두 편을 여읨[離二邊]과
차별(差別)과 차별 없음[無差別]이 그것이니라

가장 훌륭함에는 열두 가지 있나니
넓고 큼[廣大]과 오랜 동안[長時]과
의지할 곳[依處]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어려움 없는 성품[無離性]이며

자재(自在)와 섭수(攝受)와 일으킴[發起]과
얻음[得]과 같은 종류[等流]와 마지막[究竟]이니
이로 말미암아 열 가지 건넘[十度]을 말하여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 이름하게 된다

열 가지의 바라밀다라고 함은
보시[施]와 계율[戒]과 편안히 참음[安忍]과
힘써 나아감[精進]과 선정[定]과 반야(般若)와
방편(方便)과 소원[願]과 힘[力]과 지혜[智]이다

이롭게 함과 해치지 않음과 받음[受]과
공덕을 더함과 들임[入]과 벗어남과
그지없음과 항상 일으킴과 결정함과
수용하여 다른 이를 성숙시킴이다

보살은 세 가지의 지혜[三慧]로ㅆ
한결같이 대승(大乘)을 생각하면서
베풀어 설치하는 법[施設法] 그대로를
뜻 지음의 바른 행이라고 한다

이는 착한 경계[善界]를 더욱 자라게 함과
뜻에 들어감과 일을 이룩함이며
이 돕는 짝[助伴]은 바로
열 가지 법의 행[法行]인 줄 알아야 한다

쓰고 베낌과 공양함과
남에게 베풂과 들음과 펼쳐 읽음과
받아 지님과 바르게 열어 폄과
읊고 욈과 그리고 생각함과 닦음이다

열 가지 법의 행[十法行]을 행하게 되면
복 더미[福聚]를 얻음이 한량없나니
훌륭하기 때문이고 그지없기 때문이며
남을 거둬 주되 쉬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따른 행[隨法行]은 두 가지여서
모든 산란함이 없음[無散亂]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이 변하여 바뀜[轉變]이니
모든 보살은 알아야 한다

선정에서 나옴[出定]과 대경에서 흐름[於境流]과
맛ㆍ흐림ㆍ들뜸[味ㆍ沈ㆍ掉]과 속여 보임[矯示]과
≺나≻라는 고집[我執]과 마음의 열등[心下劣]이니
지혜로운 이들은 알아야 한다

알고 봄[知見]의 글[文]과 뜻[義]과
뜻 지음[作意] 및 움직이지 않음[不動]과
두 모양[二相]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과 손[客]과
두려움도 뽐냄도 없음[無怖高]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서로 응함[相應]과 많이 익힘[串習]과
혹은 이것을 뒤집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있고 있지 않는 줄을 아나니
이것이 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두 가지 성품[二性]에 비슷하게 나타남과
현실 같이는 실제 있음이 아님과
있음과 있음 아닌 것을 여읜 줄 앎이
이것이 뜻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뜻 지음에 있어서 뒤바뀜이 없다 함은
저 말의 훈습(熏習)함이
말의 뜻 지음이며 그의 의지[依]라고 알지니
나타나서 두 원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음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뜻[義]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눈흘림[幻] 따위인 줄 알지니
있음[有]ㆍ없음[無]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모양[自相]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온갖 것은 이름뿐인 줄을 알아서
온갖 분별을 여의는 것이니
으뜸가는 뜻의 자기만의 모양[勝義自相]에 의한다

참된 법계[眞法界]를 여읨으로써
따로 하나의 법도 없는지라
그러므로 이것을 통달한다면
공통의 모양[共相]에서 뒤바뀜이 없다

뒤바뀜의 뜻 지음이 아직 사라지지 못함과
이미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면
법계의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함[淸淨]에 있어 뒤바뀜이 없음이다

법계의 본래 성품은
맑고 깨끗함이 허공과 같은지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이 주인이 아님을 안다면
이것이 손[客]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유정(有情)과 법(法)은 없기 때문에
더럽거나 깨끗함의 성품조차 없나니
이 두렵거나 뽐냄 없음[無怖高]을 안다면
이것이 두 가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다른 성품[異性]과 동일한 성품[一性]이고
외도(外道)와 그리고 성문(聲聞)의 치우침은
유정(有情)과 법(法)에 두 가지씩이다

다스릴 바[所治]와 능히 다스림[能治]이고
항상 머무름[常住]과 아주 없음[斷滅]이며
취할 바[所取]과 깨끗함[淨]의 둘에는 세 가지 있다

두 치우침[二邊]의 성품을 분별한다면
다시 일곱 가지가 있는 줄 알지니
있음과[有] 있지 않음[非有]의 치우침이며
능소(能所)의 고요함[寂]ㆍ두려움[怖]ㆍ무서움[畏]이다

취할 바와 능히 취함과 바름[正]과 삿됨[邪]이고
쓸데 있음[有用]과 쓸데없음[無用]이며
일으키지 않음[不起]과 시간[時] 따위이니
이것이 두 치우침을 분별함이다

차별과 차별이 없음이라고 함은
알아야 한다 10지(地)에 있어
열 가지의 바라밀다[十波羅密多]의
더함[增上]과 평등한 것[等]의 닦아 모음이다

반연할 바[所然]라 함은 벌려 세움[安]과 법계[法界]와
세울 바[所立]와 능히 세움[能立]과 지녀 있음[任持]과
새겨 지님[引持]과 안에 지님[內持]과 통달함[通達]과
더함[增]과 분증(分證)과 등운(等運)과 가장 훌륭함[最勝]이다

닦아 증득함[修證]이란 모자람이 없음[無闕]과
헐뜯지 않음[不毁]과 요동 않음[不動]과 원만함[圓滿]과
일으킴[起]과 견고함[堅固]과 고르고 부드러움[調柔]과
머무르지 않음[不住], 장애 없음[無障], 쉼이 없음[無息]이다.

이 논(論)의 변중변(辯中邊)은
길고 은밀함[深密]과 굳고 착실함[堅實]의 뜻과
넓고 큼[廣大]과 온갖 것[一空]의 뜻을 말하여
모든 상서롭지 않은 것[不吉祥]을 없앴네
017_0351_a_01L辯中邊論頌一卷彌勒菩薩說三藏法師玄奘奉詔譯辯相品第一唯相障眞實 及修諸對治 卽此修分位得果無上乘 虛妄分別有 於此二都無此中唯有空 於彼亦有此 故說一切法非空非不空 有無及有故 是則契中道識生變似義 有情我及了 此境實非有境無故識無 虛妄分別性 由此義得成非實有全無 許滅解脫故 唯所執依他及圓成實性 境故分別故 及二空故說依識有所得 境無所得生 依境無所得識無所得生 由識有得性 亦成無所得故知二有得 無得性平等 三界心心所是虛妄分別 唯了境名心 亦別名心所一則名緣識 第二名受者 此中能受用分別推心所 覆障及安立 將導攝圓滿三分別受用 引起幷連縛 現前苦果故唯此惱世閒 三二七雜染 由虛妄分別諸相及異門 義差別成立 應知二空性略說唯由此 無二有無故 非有亦非無非異亦非一 是說爲空相 略說空異門謂眞如實際 無相勝義性 法界等應知由無變無倒 相滅聖智境 及諸聖法因異門義如次 此雜染淸淨 由有垢無垢如水界全空 淨故許爲淨 能食及所食此依身所住 能見如此理 所求二淨空爲常益有情 爲不捨生死 爲善無窮盡故觀此爲空 爲種性淸淨 爲得諸相好爲淨諸佛法 故菩薩觀空 補特伽羅法實性俱非有 此無性有性 故別立二空此若無雜染 一切應自脫 此若無淸淨功用應無果 非染非不染 非淨非不淨心性本淨故 由客塵所染辯障品第二具分及一分 增盛與平等 於生死取捨說障二種性 九種煩惱相 謂愛等九結初二障厭捨 餘七障眞見 謂能障身見彼事滅道寶 利養恭敬等 遠離遍知故無加行非處 不如理不生 不起正思惟資糧未圓滿 闕種性善友 心極疲厭性及闕於正行 鄙惡者同居 倒麤重三餘般若未成就 及本性麤重 懈怠放逸性著有著資財 及心性下劣 不信無勝解如言而取義 輕法重名利 於有情無悲匱聞及少聞 不修治妙定 善菩提攝受有慧無亂障 迴向不怖慳 自在名善等如是善等十 各有前三障 於覺分度地有別障應知 於事不善巧 懈怠定減二不植羸劣性 見麤重過失 障富貴善趣不捨諸有情 於失德減增 令趣入解脫障施等諸善 無盡亦無閒 所作善決定受用法成熟 遍行與最勝 勝流及無攝相續無差別 無雜染淸淨 種種法無別及不增不減 幷無分別等 四自在依義於斯十法界 有不染無明 障十地功德故說爲十障 已說諸煩惱 及諸所知障許此二盡故 一切障解脫辯眞實品第三眞實唯有十 謂根本與相 無顚倒因果及麤細眞實 極成淨所行 攝受幷差別十善巧眞實 皆爲除我見 許於三自性唯一常非有 一有而不眞 一有無眞實於法數取趣 及所取能取 有非有性中增益損減見 知此故不轉 是名眞實相無性與生滅 垢淨三無常 所取及事相和合苦三種 空亦有三種 謂無異自性無相及異相 自相三無我 如次四三種依根本眞實 苦三相已說 集亦有三種謂習氣等起 及相未離繫 自性二不生垢寂二三滅 遍知及永斷 證得三道諦應知世俗諦 差別有三種 謂假行顯了如次依本三 勝義諦亦三 謂義得正行依本一無變 無倒二圓實 世極成依一理極成依三 淨所行有二 依一圓成實名遍計所執 相分別依他 眞如及正智圓成實所攝 流轉與安立 邪行依初二實相唯識淨 正行依後一 於薀等我見執一因受者 作者自在轉 增上義及常雜染淸淨依 觀縛解者性 此所執分別法性義在彼 非一及摠略 分段義名薀能所取彼取 種子義名界 能受所了境用門義名處 緣起義於因 果用無增減於非愛愛淨 俱生及勝主 得行不自在是處非處義 根於取住續 用二淨增上因果已未用 是世義應知 受及受資糧彼所因諸行 二寂滅對治 是諦義應知由功德過失 及無分別智 依他自出離是乘義應知 有爲無爲義 謂若假若因若相若寂靜 若彼所觀義辯修對治品第四以麤重愛因 我事無迷故 爲入四聖諦修念住應知 已遍知障治 一切種差別爲遠離修集 勤修四正斷 依住堪能性爲一切事成 滅除五過失 勤修八斷行懈怠忘聖言 及惛沈掉擧 不作行作行是五失應知 爲斷除懈怠 修欲勤信安卽所依能依 及所因能果 爲除餘四失修念智思捨 記言覺沈掉 伏行滅等流已種順解脫 復修五增上 謂欲行不忘不散亂思擇 卽損障名力 因果立次第順決擇二二 在五根五力 覺支略有五謂所依自性 出離幷利益 及三無染支由因緣所依 自性義差別 故輕安定捨說爲無染支 分別及誨示 令他信有三對治障亦三 故道支成八 表見戒遠離令他深信受 對治本隨惑 及自在障故有倒順無倒 無倒有倒隨 無倒無倒隨是修治差別 菩薩所修習 由所緣作意證得殊勝故 與二乘差別辯修分位品第五所說修對治 分位有十八 謂因入行果作無作殊勝 上無上解行 入出離記說灌頂及證得 勝利成所作 應知法界中略有三分位 不淨淨不淨 淸淨隨所應依前諸位中 所有差別相 隨所應建立諸補特伽羅辯得果品第六器說爲異熟 力是彼增上 愛樂增長淨如次卽五果 復略說餘果 後後初數習究竟順障滅 離勝上無上辯無上乘品第七摠由三無上 說爲無上乘 謂正行所緣及修證無上 正行有六種 謂最勝作意隨法離二邊 差別無差別 最勝有十二謂廣大長時 依處及無盡 無閒無難性自在攝發起 得等流究竟 由斯說十度名波羅蜜多 十波羅蜜多 謂施戒安忍精進定般若 方便願力智 饒益不害受增德能入脫 無盡常起定 受用成熟他菩薩以三慧 恒思惟大乘 如所施設法名作意正行 此增長善界 入義及事成此助伴應知 卽十種法行 謂書寫供養施他聽披讀 受持正開演 諷誦及思修行十法行者 獲福聚無量 勝故無盡故由攝他不息 隨法行二種 謂諸無散亂無顚倒轉變 諸菩薩應知 出定於境流味沈掉矯示 我執心下劣 諸智者應知智見於文義 作意及不動 二相染淨客無怖高無倒 知但由相應 串習或翻此有義及非有 是於文無倒 似二性顯現如現實非有 知離有非有 是於義無倒於作意無倒 知彼言熏習 言作意彼依現似二因故 於不動無倒 謂知義非有非無如幻等 有無不動故 於自相無倒知一切唯名 離一切分別 依勝義自相以離眞法界 無別有一法 故通達此者於共相無倒 知顚倒作意 未滅及已滅於法界雜染 淸淨無顚倒 知法界本性淸淨如虛空 故染淨非主 是於客無倒有情法無故 染淨性俱無 知此無怖高是於二無倒 異性與一性 外道及聲聞增益損減邊 有情法各二 所治及能治常住與斷滅 所取能取邊 染淨二三種分別二邊性 應知復有七 謂有非有邊所能寂怖畏 所能取正邪 有用幷無用不起及時等 是分別二邊 差別無差別應知於十地 十波羅蜜多 增上等修集所緣謂安界 所能立任持 印內持通達增證運最勝 修證謂無闕 不毀動圓滿起堅固調柔 不住無障息 此論辯中邊深密堅實義 廣大一切義 除諸不吉祥辯中邊論頌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