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477_a_01L인명입정리론(因明立正理論)
-간추린 불교논리학-


상갈라주보살(商羯羅主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원의범 번역


불교논리학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통틀어 다음의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 주는 방법.
둘째,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러 주는 말에 잘못이 있음을 말로 하여 깨우쳐 주는 방법.
셋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러 주는 방법에서 잘못되기 쉬운 것들.
넷째,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잘못이 있음을 말로 하여 깨우쳐 주는 방법에서 잘못 되기 쉬운 것들.
다섯째, 감각기관이 직접 아는 것.
여섯째,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
일곱째, 감각기관의 직접 앎에서 잘못 되기 쉬운 것들.
여덟째,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에서 잘못 되기 쉬운 것들.
이 여덟 가지 가운데에서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다만 남을 깨우쳐 주는 데에 대한 설명들이고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는 다만 나 혼자 스스로 깨닫는 데에 대한 설명들이다.


1.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 주는 방법

이 방법은 남이 자기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나에게 물을 때에 내가 그 사람에게 결론ㆍ이유ㆍ실례를 말하여 주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전에는 아직 알고 있지 못하던 것을 알게 하여 주는 방법이다.

결론
결론에는 문법적으로가 아니고 논리적으로 보아서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이 들어 있다.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적 속성들 가운데에서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속성을 어느 것이든지 골라서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으로 삼을 때에 비로소 그의 결론이 이루어진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라는 따위이다.

이유
이유가 이유 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은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 안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둘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은 그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의 하나에라도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셋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은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는 하나에라도 결코 들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라고 함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노릇을 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그런 어떤 다른 물건을 가리켜서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고 있는 물건에 대하여 하는 말이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는 결론에서 주어 노릇을 하는 ‘말소리(聲:śabda)’에 대하여, 그 같은 경우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말소리’와 똑같이 ‘무상성(無常性:anitya)’을 갖고 있는 곧잘 깨져 버리는 물 단지 따위 질그릇인 것이다.
같지 않은 경우 노릇을 하는 물건이라고 함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노릇을 하고 있는 속성이 거기에 들어 있지 않는 그런 어떤 다른 물건을 가리켜서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고 있는 물건에 대하여 하는 말이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라는 결론에서 술부개념 노릇을 하고 있는 속성인 ‘무상성’이 거기에 들어 있지 않는 물건은 ‘하늘[空:ākāśa]’ 따위이다. ‘하늘’은 영원불변하는 원소의 한 가지로 대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이유 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그린 이유의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령,
결론[宗:Pratijtñā] 말소리는 무상하다.
이유[因:hetu]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경우의 실례 anvaya dṛṣṭānta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무상하다. 마치 물 단지 따위처럼.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vyatireka dṛṣṭānta, 영원불변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하늘 따위처럼.
이 말은 결국 말소리는 무상한 것임을 남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기 위하여 하는 말인데 그 결론에서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은 ‘말소리’이다.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은 ‘무상성’이다.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의 부정은 ‘영원불변성’이다. 그 이유 노릇을 하는 것은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이다. ‘물 단지 따위’는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고 ‘하늘 따위’는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다. 그 이유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은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말소리’에 들어 있고 그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인 ‘물 단지 따위’에 들어 있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하늘 따위’에는 들어 있지 않다. 이런 이유를 이유가 이유 노릇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한다.

실례
실례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같은 경우의 실례와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이다.
같은 경우의 실례라고 함은, 이유노릇을 하는 물건이 있을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도 있음을 세상 사람들이 이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실지 물건을 지적하여 알려 주는 동시에,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과의 사이에 그런 긍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가 있음을 알려 주는 말이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과 이유에 대하여 같은 경우의 실례는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무상하다. 마치 물 단지 따위처럼’ 이라는 실례 따위이다.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는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이 거기에 없으면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도 반드시 없음을 세상 사람들이 이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실지 물건을 지적하여 알려주는 동시에, 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과의 사이에는 그런 부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 관계가 있음을 알러 주는 말이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결론과 이유에 대하여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는 ‘영원불변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하늘 따위처럼’이라는 실례 따위이다.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에서 주어 노릇을 하고 있는 ‘영원불변성’은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고 있는 ‘무상성’에 대한 부정이다. 또 이 부정적 실례에서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뜻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성질’은 결론의 이유 노릇을 하고 있는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에 대한 부정이다. 부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라는 것은 ‘유(有:sat)’와 ‘비유(非有:asat)’와의 사이에 있는 관계 등을 가리킨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 주는 방법은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종류의 결론ㆍ이유ㆍ실례에 일일이 맞추어서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주는 방법일 뿐이다.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자기의 생각을 아직 말소리가 무상한 줄을 모르고 있는 남에게 알리려고 ‘말소리는 무상하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자기가 맞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결론이고. ‘뜻대로 만들어 갈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그 이유이고,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무상하다. 마치 물 단지 따위처럼.’이라고 말하면 이것은 같은 경우의 실례이고, ‘영원불변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하늘 따위처럼’이라고 말하면 이것은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이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줄 때에는 이런 종류의 결론ㆍ이유ㆍ실례의 세 가지만을 말하면 된다.


2.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 주는 방법에서 잘못 되기 쉬운 것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하여 남에게 알려 주기는 주었지만 그 알려준 것이 눈이나 귀 따위 감각 기관이 직접 보고 들은 것 따위에 대하여 어긋나면 그 가리켜준 것은 잘못 가리켜준 것이다. 이런 잘못을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눈다. 결론에서의 잘못, 이유에서의 잘못. 실례에서의 잘못이다. 결론에서의 잘못이다.

결론에서의 잘못
결론에서의 잘못에는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가 있다.
첫째, 감각기관의 직접 앎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둘째,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셋째,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교파나 학파의 교리나 원리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넷째, 세상 사람들이 이미 누구나 다 그렇게 쓰고 있는 말버릇 따위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다섯째, 자기가 하는 말 그 자체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여섯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고 있는 속성이,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교파나 학파의 교리나 원리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일곱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고 있는 물건이,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교파나 학파의 교리나 원리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여덟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고 있는 물건과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고 있는 속성과의 둘이 다,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교파나 학파의 교리나 원리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
아홉째,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하는 잘못.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들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따위의 결론이다. 말소리는 귀애 직접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잘못이다.
둘째 잘못은 가령 ‘물 단지 따위는 영원불변이다’라는 따위의 결론이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영원불변하는 물 단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잘못이다.
셋째 잘못은 가령 바이세씨까(勝論, vaiśeṣika)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어떤 학자가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라고 하는 따위의 결론이다. 바이세시까 학파에서는 말소리는 무상하다고 인정하고 있는데도 이런 말을 하면 자기 자신의 입장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바이세시까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 자신에게 대하여 잘못이다.
넷째 잘못은 가령 ‘하늘에 떠 있는 토끼의 모양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둥근 것이 달이 아니다. 있기 때문에’라는 따위의 결론이다. ‘하늘에 떠있는 토끼의 모양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둥근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달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잘못이다. 또 ‘해골바가지는 더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마치 소라 껍데기처럼’이라는 따위의 결론도 역시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다섯째 잘못은 가령 ‘나를 낳은 어머니는 애기를 낳은 경험이 없다’라는 따위의 결론이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라고 하면서 그 어머니가 애기를 낳은 경험이 없다고 하니까 이런 결론은 말 그 자체에 대하여 어긋나는 잘못된 결론이다.
여섯째 잘못은 가령 어떤 바우드하(佛敎:bauddha)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가 상캬(數論:sāṃkhya)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에게 ‘말소리는 무상하다’라고 하는 따위의 결론이다. 상캬 학파에서는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고 그들대로 이미 교리적으로 논증도 하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그 말을 듣는 상캬 학파의 학자에게 대하여 잘못된 결론이다.
일곱째 잘못은 상캬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가 바우드하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에게 “나(我, ātman)는 ‘나’라는 ‘생각(思, cetana)’일 뿐이다”라고 하는 따위의 결론이다. 바우드하 학파에서는 ‘나’라는 것은 없다고 교리적으로 논증도 하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은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인 바우드하 학파의 학자에 대하여 잘못이다.
여덟째 잘못은 가령 바이세시까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가 바우드하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에게 ‘나는 여러 가지 본바탕이 공간적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합쳐져서 생긴 것이다’라고 하는 따위의 결론이단. 이 결론을 듣고 있는 바우드하 학파의 학자에게 대하여서는 바우드하 학파의 교리에 의하여 ‘나’도 없고 그런 ‘본바탕(samavāyikāraṇa)도 없기 때문에 이런 결은 잘못이다.
아홉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들리는 것이다’라는 따위의 결론이다. 이런 결론은 누구나 다 이미 갈 알고 있는, 말 할 필요도 없는 말이기 때문에 잘못이다.
이상과 같은 결론에서의 잘못들 가운데에서 첫째부터 다섯째까지는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갖고 있는 속성 그 자체와 어긋난 속성으로 하여금 술부개념 노릇을 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잘못이고,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는 결론을 듣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 결론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잘못이고 아홉째는 말 할 필요도 없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기 때문에 잘못이다.
이상으로 결론에서의 잘못들에 대한 설명은 끝났고 다음은 이에서의 잘못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유에서의 잘못
이유에서의 잘못을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눈다. 맞지 않는 이유, 한갓 되지 못한 이유, 모순된 이유이다.

맞지 않는 이유
맞지 않는 이유에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이유를 말하는 편과 듣는 편과의 둘 다에 대하여서 맞지 않는 이유.
둘째. 이유를 말하는 편과 듣는 편과의 둘 가운데에서 그 어느 한편에 대하여서만 맞지 않는 이유.
셋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 자체가 애매한 이유.
넷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놓여 있는 자리가 없는 이유.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말소리’는 이유를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둘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무상 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를 미만사(聲顯論, mīmārnsa)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에게 말하는 따위이다. 이 이유는 미만사 학파에서는 ‘말소리’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원불변한 것이라고 원리적으로 논증도 하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유를 듣는 미만사 학파의 학자에게 대하여서는 잘못이다.
셋째 잘못은 가령 연기인지 안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애매한 물건이 어떤 연못 위에 있을 때에 ‘저 연못에는 불이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대해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를 듦이다. 이 이유는 ‘연기’라고 한 그 ‘연기’ 자체가 연기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이다.
넷째 잘못은 가령 ‘하늘은 실지 있는 물건이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를 사우뜨라안띠까(無空論:經量部, sautrāntika) 학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에게 말하는 따위이다. 사우뜨라안띠까 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하늘’은 없기 때문에 하늘에 어떤 이유도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한갓되지 못한 이유
한갓되지 못한 이유에 다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도 다 들어 있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도 다 들어있는 이 유.
둘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오직 견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만 하나에만 들어 있는 이유.
셋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는 일부에만 들어 있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는 다 들어 있는 이유.
넷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는 일부에만 들어 있고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는 다 들어 있는 이유.
다섯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이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의 일부에만 들어 있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에로 일부에만 들어 있는 이유.
여섯째, 그 이유에 의하여 증명되는 결론과 반대되는 결론에도 또한 맞는 이유가 있을 때의 이유.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한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이유 노릇을 하는 ‘지각될 수 있는 성질’은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영원불변하는 물건인 ‘하늘 따위’에도 다 들어 있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무상한 물건인 ‘물 단지 따위’에도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지각될 수 있는 성질’과 ‘영원불변성’과의 사이에 아무런 논리적 필연적 일치성도 성립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둘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이 세상에 말처럼 귀에 ‘들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소리’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도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도 모두 없다. 따라서 이 이유는 ‘말소리’와 ‘들리는 것’과의 사이에 있어야 할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를 확인할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잘못이다.
셋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뜻대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무상하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성전’을 갖고 있는 ‘번갯불ㆍ하늘 따위’이고,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이 아닌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물 단지 따위’이다. 그런데 그 이유 노릇을 하고 있는 ‘무상성’은 ‘번갯불’에는 들어 있고 ‘하늘’에는 들어있지 않고 ‘물 단지 따위’에는 다 들어 있다. 결국 ‘말소리’는 무상하기 때문에 ‘번갯불’처럼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말소리’는 무상하기 때문에 ‘물 단지 따위’처럼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넷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무상하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그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물 단지 따위’이고, 그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이 아닌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성질’을 갖고 있는 ‘번갯불, 하늘 따위’이다. 그런데 그 이유 노릇을 하는 ‘무상성’은 ‘물 단지 따위’에는 다 들어 있고 ‘번갯불’에도 들어 있지만 ‘하늘’에는 들어 있지 않다. 결국 ‘말소리’는 무상하기 때문에 ‘물 단지 따위’처럼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말소리’는 무상하기 때문에 번갯불처럼 뜻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다섯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부피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은 ‘영원불변성’이고 그것이 아닌 것은 ‘무상성’이다. 그. 같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영원불변성’을 갖고 있는 ‘하늘, 원자(極微), paramāṇu 따위’이고 그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할 수 있는 물건은 ‘무상성’을 갖고 있는 ‘물 단지, 즐거움 따위’이다. 그 이유 노릇을 하는 ‘부피가 없는 성질’은 ‘하늘’에는 들어 있고 ‘원자’에는 들어 있지 않고 ‘물 단지’에는 들어 있지 않고 ‘즐거움’에는 들어 있다. 결국 ‘말소리’는 부피론 없기 때문에 ‘하늘’처럼 영원불변한다고 할 수도 없고, ‘말소리’는 부피가 없기 때문에 ‘즐거움’처럼 무상하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이유는 잘못이다.
여섯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물 단지 따위처럼.’이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이 이유에 의하여 증명되는 결론과 반대되는 결론에도 또한 맞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말소리의 본성(聲性:śabdatva)처럼’이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이 두 이유는 교파나 학파의 교리나 원리에 따라 서로 대립되는 두 이유이기 때문에 둘 다 정당하다거나 둘 다 정당하지 못하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물에 둘 다 잘못이다.

모순된 이유
모순된 이유에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그 결론과 모순되는 결론을 증명 하는 이유.
둘째. 이유를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과 모순되는 이유.
셋째,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이유.
넷째, 이유를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이유.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이유 노릇을 하는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 또는 ‘뜻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은 모두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인 ‘무상성’을 갖고 있는 ‘물 단지 따위’에만 들어 있기 때문에 결국 ‘무상성’을 증명하는 이유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다.
둘째 잘못은 가령 ‘눈 따위 감가기관은 남에게 의하여 사용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침대 따위처럼.’이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은 ‘눈 따위 감각기관’을 마치 사람들이 ‘침대 따위’ 생활도구를 사용하듯이 사용하고 있는 영혼 따위가 눈 따위 감각기관 밖에 따로 있으며 영혼은 결코 ‘눈 따위 감각기관’이나 ‘침대 따위’ 처럼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절대 순수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리나 여기서 이유 노릇을 하는 ‘이것저것 여리 가지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야 비로소 생겨 날 수 있는 성질’은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 물건은 반드시 그 물건 아닌 어떤 ‘남에게 의하여’ 사용되는 물건임을 증명하는 이유인 등시에 그런 성질을 가진 물건을 사용하는 그 ‘남’도 역시 그렇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야 비로소 생겨나는 성질을 가진 물건’임을 또한 증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이유는 영혼이 어떤 순수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반대인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재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상대적인 것임을 증명하기 때문에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과 모순되는 잘못된 이유이다.
셋째 잘못은 가령 ‘유성(有性) sattā은 물체도 아니고 성질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다’라는 결론에 대하여 ‘하나하나의 물체(實:dravya)’를 갖고 있고, ‘성질(德:guṇa)’을 갖고 있고, ‘운동(業:karman)’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유개념(類槪念:sāmānya) 따위가 자기에게 내포되는 ‘종(種:viśeṣa) 따위를 갖고 있듯이’라는 따위의 이유이다. 여기서 이유 노릇을 하는 것은 마치 ‘유개념’이 ‘종’을 갖고 있듯이 ‘유성’이 ‘물체ㆍ성질ㆍ운동’을 갖고 있는 관계인데 이 관계는 ‘유성’이 ‘물체’도 아니고 ‘성질’도 아니고 ‘운동’도 아님을 증명하는 동시에 ‘유성’으로부터 ‘물체ㆍ성질ㆍ운동’을 아주 분리시켜 버리기 때문에 ‘유성’자체가 아주 없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유는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잘못된 이유이다.
넷째 잘못은 가령 다음과 같다. 바로 앞에 말한 셋째 잘못에서 ‘유성’을 결론의 주어로 삼은 실례에서 그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은 ‘유정’은 ‘물체’도 ‘성질’도 ‘운동’도 아니기 때문에 ‘물체ㆍ성질 ㆍ운동’으로부터 분리된 어떤 순수만 절대적 ‘유성’이 있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그 실례에서의 이유는 ‘유성’이 ‘물체’도 ‘성질’도 ‘운동’도 아님을 증명하는 동시에 ‘유성’으로부터 ‘물체ㆍ성질ㆍ운동’을 아주 분리시켜 버리기 때문에 ‘유성’은 마치 ‘종’ 없는‘유개념’이 없듯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그런 이유는 결국 이를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은근히 품고만 있는 결론의 주어 노릇을 하는 물건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잘못된 이유이다.
이유에서의 잘못들에 대한 설명은 이상으로 끝났다. 다음에는 실례에서의 잘못에 대하여 설명한다.


실례에서의 잘못
실례에서의 잘못을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눈다. 같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이다.

같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
같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에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에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둘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에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셋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에도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에도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넷째, 이유와 결론과의 사이에 있는 긍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를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한 실례.
다섯째, 이유와 결론과의 사이에 있는 긍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를 거꾸로 표현한 실례.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하다. 부피가 없기 때문이다. 부피 없는 것은 무엇이든지 영원불변한다. 마치 원자처럼’이라는 따위의 실례이다. 여기서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인 ‘원자’는 ‘영원불변성’이 있기 때문에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는 긍정적으로 일치되지만 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인 ‘부피 없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원자는 부피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은 가령 바로 앞에서 말한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마치 지각(知覺:buddhi)처럼’이라고 하면 ‘지각’은 ‘부피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인 ‘부피 없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일치되지만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는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지각’은 무상하기 때문에 ‘영원불변성’이 없다.
셋째 잘못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 실지 있으면서 잘못된 것,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 실지 없어서 잘못된 것이다. 가령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마치 물 단지처럼’이라고 하면 ‘물 단지’는 무상하고 부피가 있기 때문에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도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고 이유 노릇을 하는 ‘부피 없는 것’에도 긍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이것은 실례 노릇을 하는 물건이 실지 있으면서도 잘못된 실례이다. 또 만약 ‘마치 하늘처럼 ’이라고 한다면 ‘하늘’은 사우뜨라안띠까 학파에서는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대하여서는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도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인 ‘부피 없는 것’에도 긍정적으로 일치되지는 못한다.
넷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무상하다.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과 이유에 대하여 ‘물 단지 따위는 만들 수도 있고 무상하기도 하다’라고만 말하는 실례 따위이다. 충분하게 말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상하다. 마치 물 단지’이라고 하여야 한다.
다섯째 잘못은 바로 앞에 말한 넷째 잘못의 실례에서 바로 말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상하다. 마치 물 단지처럼’이라고 말하여야 하는데 그 주어와 술부를 거꾸로 놓아서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따위이다.
이상으로 같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에 대한 설명은 끝났다. 다음은 같지 않는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에 대하여 설명한다.
같지 않은 경우의 실례에서의 잘못에도 역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에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둘째,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에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셋째,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에도 이유 노릇을 하는 물건에도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하는 실례.
넷째, 결론과 이유와의 사이에 있는 부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를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한 실례.
다섯째, 결론과 이유와의 사이에 있는 부정적 논리적 필연적 일치관계를 거꾸로 표현한 실례.
첫째 잘못은 가령 ‘말소리는 영원불변한다. 부피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과 이유에 대하여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피가 있는 것이다. 마치 원자 따위처럼’이라는 따위의 실례이다. 원자는 ‘부피가 있는 것’이고 ‘영원불변성’이 있기 때문에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이유 노릇을 하는 ‘부피가 없는 것’에는 부정적으로 일치된다.
둘째 잘못은 가령 바로 앞에서 말한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마치 운동처럼’이라는 따위의 실례이다. ‘운동’은 부피는 없고 무상하기 때문에 결론의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는 부정적으로 일치되지만 이유 노릇을 하는 ‘부피가 없는 것’에는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셋째 잘못은 가령 역시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그 실례를 듣고 있는 상대편이 ‘하늘’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인 경우에 그에게 대하여 ‘마치 하늘처럼’이라고 하는 따위의 실례이다. ‘하늘’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하늘’은 부피가 없고 영원불변한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은 술부개념 노릇을 하는 속성인 ‘영원불변성’에도 이유 노릇을 하는 ‘부피가 없는 것’에도 부정적으로 일치되지 못한다.
넷째 잘못은 가령 역시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충분하게 표현하려면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피가 있는 것이다. 마치 물 단지처럼’이라고 하여야 할 것인데, 다만 ‘물 단지 따위처럼 무상하기도 하고 부피도 있다’라고만 하였기 때문에 그 표현이 충분하지 못한 따위의 실례이다.
다섯째 잘못은 가령 역시 첫째 잘못의 실례에서 바로 표현 하려면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피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야 하는데 그 주어와 술부를 거꾸로 놓아서 ‘부피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상한 것이다’라는 따위의 실례이다.
이상과 같은 잘못들이 결론의 주어에 있든지 이유에 있든지 실례에 있든지 하면 아무리 자기는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려고 말을 하여도 남은 그 말에 의하여 아무것도 깨달지 못한다.


3. 감각기관이 직접 앎(現量:pratyakṣa)과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比量:anumāṇa)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앎에는 눈 따위 감각기관이 직접 앎과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 밖에는 없다.
이 두 가지 앎 가운데에서 눈 따위 감각기관이 직접 앎은 ‘기억과 상기(想起)에 의한 반성적 생각이 아니다(無分別:nirvikarpaka)’ 가령 눈이 ‘색(色:rūpa)’을 대하여 볼 때에 그것이 무슨 색이라는 ‘이름(名:nāma’이나 ‘종(種:jāti)’ 따위 생각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다만 그) ‘색’만이 눈에 비치면 그런 것이 곧 감각기관이 그 대상을 직접 앎이다. 감각기관들이 모두 저마다의 대상을 그렇게 직접 알기 때문에 ‘감각기관이 직접 앎’이라고 한다.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은 충분한 조건을 갖춘 이유에 근거하여 생각난 개념적 대상이다. 이유가 이유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그 세 가지 조건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바로 그러한 충분한 이유에 근거하여 대상을 틀림없이 앎이 곧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이다. 가령 ‘연기’에 근거하여 생각만 ‘불’을 알고 ‘만들어진 것’에 근거하여 생각난 ‘무상’을 아는 따위이다. 이런 것이 바로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이다.
이렇게 감각기관이 직접 앎과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은 그 앎이 곧 안 결과이다. 알 때에는 언제나 알았다고 알기 때문에 마치 아는 작용의 결과가 앎인 것처럼 느껴진다.

4. 감각기관이 직접 앎에서 잘못 되기 쉬운 것들과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에서 잘못되기 쉬운 것들

감각기관이 그 대상을 직접 대하고 있으면서도 직접 알지 못하고 그 대상에 대한 기억과 상기에 의한 반성적 생각 따위가 일어나면 감각기관은 그 대상을 잘못 알고 있다. 가령 눈에 직접 비친 ‘옷’이나 ‘물 단지’ 따위에 대하여 ‘이것은 옷이다’ ‘저것은 물 단지다’라는 생각이 나는 따위이다. 감각기관이 그 대상을 직접 대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 따위가 나면 그때에 아는 것은 ‘감각기관에 직접 직감된 그 대상 그 자체(自相:svalakṣaṇa)’를 앎이 아니고 거기에 따라 ‘생각난 개념적 대상(槪念的對象:sāmānya lakṣaṇa)’을 앎이다. 감각기관이 직접 앎에서 이런 잘못이 있기 쉽다.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에서도 역시 잘못된 이유에 근거하여 일어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여러 가지로 잘못된 대상이 생각난다. 잘못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자기 혼자 스스로 생각한 앎에서 그렇게 잘못된 이유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잘못된 대상이 생각나기 쉽다.


5.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 잘못이 있음을 말로 하여 깨우쳐 주는 방법[反駁:dsaṇa]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 잘못이 있을 때에 그 잘못을 그 사람에게 말로 하여 깨닫게 하여 주는 바른 방법이 있다. 남이 하는 말에서 결론ㆍ이유ㆍ실례 가운데에서 그 어느 하나가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든지, ‘결론에서의 잘못’이 있다든지, ‘맞지 않는 이유’가 있다든지, ‘한갓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든지, ‘모순된 이유’가 있다든지, ‘실례에서의 잘못’이 있다든지 할 때에 그 잘못을 지적하여 주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여 주면 그것이 바로 그 바른 방법이다.


6.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잘못이 있음을 깨우쳐 주는 방법에서 잘못되기 쉬운 것들[詭辯:dsaṇābhāsa]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이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면 그것은 내가 잘못이다. 즉 남이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결론ㆍ이유ㆍ실례가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그 어느 하나가 없다고 지적하든지, ‘결론에서의 잘못’이 없는데도 있다고 지적하든지, 그 이유가 맞는 이유인데도 ‘맞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하든지, 한갓된 이유인데도 ‘한갓되지 못한 이유’라고 지적하든지, 모순됨이 없는 이유인데도 ‘모순된 이유’라고 지적하든지, 그 실례에 잘못이 없는데도 ‘실례에서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든지 하면 이것은 잘못이다.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서 잘못이 있음을 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이다.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말에 잘못이 있음을 깨우쳐 주는 방법에서 그런 잘못이 있기 쉽다. 결국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남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한 것을 나에게 알려 주는 그 말에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불교논리학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통틀어 하는 설명은 다 끝났다. 다만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부하는 방향을 잡아 주는 데에 그쳤을 뿐이다. 여기서 말한 것들에 대한 옳거니 그르거나 참이다 거짓이다 하는 따위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에 대하여서는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017_0477_a_01L因明入正理論一卷 商羯羅主菩薩造三藏法師玄奘奉 詔譯能立與能破及似唯悟他現量與比量及似唯自悟如是摠攝諸論要義此中宗等多言名爲能立由宗因喩多言開示諸有問者未了義故中宗者謂極成有法極成能別差別爲性隨自樂爲所立性是名爲宗如有成立聲是常因有三相何等爲三謂遍是宗法同品定有性異品遍無性云何名同品異品謂所立法均等義品說名同品如立無常甁等無常是名品異品者謂於是處無其所立若有常見非所作如虛空等此中所作性或勤勇無閒所發性遍是宗法性品定有性異品遍無性是無常等因喩有二種一者同法二者異法同者若於是處顯因同品決定有謂若所作見彼無常譬如甁等異法者若於是處說所立無因遍非有謂若是常見非所作如虛空等此中常表非無常非所作言表無所作有非有說名非有已說宗等如是多開悟他時說名能立如說聲無常是立宗言所作性故者是宗法言若是所作見彼無常如甁等者是隨同品言若是其常見非所作如虛空是遠離言唯此三分說名能立雖樂成立由與現量等相違故名似立宗謂現量相違比量相違自教相世閒相違自語相違能別不極成所別不極成俱不極成相符極成中現量相違者如說聲非所聞比量相違者如說甁等是常自教相違者如勝論師立聲爲常世閒相違者說懷兔非月有故又如說言人頂骨衆生分故猶如螺貝自語相違者如言我母是其石女能別不極成者如佛弟子對數論師立聲滅壞所別不極成者如數論師對佛弟子說我是思俱不極成者如勝論師對佛弟立我以爲和合因緣相符極成者如說聲是所聞如是多言是遣諸法自相門故不容成故立無果故名似立宗過已說似宗當說似因不成不定及與相違是名似因不成有四一兩俱不二隨一不成三猶豫不成四所依不成如成立聲爲無常等若言是眼所見性故兩俱不成所作性故對聲顯論隨一不成於霧等性起疑惑時爲成大種和合火有而有所說猶豫不成虛空實有德所依故對無空論所依不成不定有六一共二不共同品一分轉異品遍轉四異品一分轉同品遍轉五俱品一分轉六相違決定此中共者如言聲常所量性故常無常品皆共此因是故不定爲如甁等所量性故聲是無常爲如空等所量性故聲是其常言不共者如說聲常所聞性故常無常品皆離此因常無常外餘非有故是猶豫因此所聞性其猶何等同品一分轉異品遍轉者如說聲非勤勇無閒所發無常性故此中非勤勇無閒所發宗以電空等爲其同品此無常性於電等有於空等無非勤勇無閒所發宗以甁爲異品於彼遍有此因以電甁等爲同法故亦是不定爲如甁等無常性故彼是勤勇無閒所發爲如電等無常性故彼非勤勇無閒所發異品一分轉同品遍轉者如立宗言聲是勤勇無閒所發無常性故勤勇無閒所發宗以甁等爲同品其無常性此遍有以電空等爲異品於彼一分電等是有空等是無是故如前亦爲不定俱品一分轉者如說聲常無質㝵故此中常宗以虛空極微等爲同無質㝵性於虛空等有於極微等以甁樂等爲異品於樂等有於甁等無是故此因以樂以空爲同法故亦名不定相違決定者如立宗言聲是無常所作性故譬如甁等有立聲所聞性故譬如聲性此二皆是猶豫因故俱名不定相違有四謂法自相相違因法差別相違因有法自相相違因有法差別相違因等此中法自相相違因者如說聲常所作性故或勤勇無閒所發性故此因唯於異品中有是故相違法差別相違因者如說眼等必爲他用積聚性故如臥具等此因如能成立眼等必爲他用如是亦能成立所立法差別相違聚他用諸臥具等爲積聚他所受用有法自相相違因者如說有性非實非德非業有一實故有德業故同異性此因如能成遮實等如是亦能成遮有性俱決定故有法差別相違因者如卽此因卽於前宗有法差作有緣性亦能成立與此相違非有緣性如遮實等俱決定故已說似因當說似喩似同法喩有其五種一能立法不成二所立法不成三俱不成四無合倒合似異法喩亦有五種一所立不二能立不遣三俱不遣四不離倒離能立法不成者如說聲常無質㝵故諸無質㝵見彼是常猶如極微然彼極微所成立法常性是有能成立法無質㝵無以諸極微質㝵性故所立法不成者謂說如覺然一切覺能成立法無質㝵有所成立法常住性無以一切覺皆無常故俱不成者復有二種有及非有若言如甁有俱不成若說如空對無空論無俱不成無合者謂於是處無有配合但於甁等雙現能立所立二法如言於甁見所作性及無常性倒合者謂應說言諸所作者皆是無常而倒說言諸無常者皆是所作如是名似同法喩品似異法中所立不遣者且如有言諸無常者見彼質㝵譬如極微由於極所成立法常性不遣彼立極微常性故能成立法無質㝵無能立不遣者謂說如業但遣所立不遣能立彼說諸業無質㝵故俱不遣者對彼有論說如虛空由彼虛空不遣常性無質㝵性以說虛空是常性故無質㝵故不離者謂說如甁見無常性質㝵性倒離者謂如說言諸質㝵者皆是無常如是等似喩言非正能立復次爲自開悟當知唯有現二量此中現量謂無分別若有正智於色等義離名種等所有分別現現別轉故名現量言比量者謂藉衆相而觀於義相有三種如前已說由彼爲因於所比義有正智生了知有火或無常等是名比量於二量中卽智名果是證相故如有作用而顯現故亦名爲量有分別智於義異轉名似現量謂諸有智了甁衣等分別而生由彼於義不以自相爲境界故名似現量若似因智爲先所起諸似義智名似比量似因多種如先已說用彼爲因於似所比諸有智生不能正解名似比量復次若正顯示能立過失說名能破謂初能立缺減過性立宗過性不成因性不定因性相違因性及喩過性顯示此言開曉問者故名能破若不實顯能立過言名似能破謂於圓滿能立顯示缺減性言於無過宗有過宗言於成就因不成因言於決定因不定因言於不相違因相違因言無過喩有過喩言如是言說名似能以不能顯他宗過失彼無過故止斯事已宣少句義 爲始立方隅 其閒理非理妙辯於餘處因明入正理論一卷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