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480_a_01L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세친(世親) 지음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대승에서 3계(界)는 오직 식(識)1)뿐이라고 안립한다.2)
경전에서3) 3계는 오직 마음[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4) 심(心)ㆍ의(意)ㆍ식(識) 및 요별[了]은 명칭의 차이이다.5)
여기서 ‘마음[心]’의 의미는 심소(心所)도 포함한다. ‘오직[唯]’이란 외부대상만을 부정하며, 상응법[心所]은 부정하지 않는다.6)
내부의 식이 일어날 때에 외부대상으로 사현(似現)한다.7) 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이 머리털이나 파리 등을 보는 것과 같다.8) 여기에는 진정한 대상이 전혀 없다.9)

곧 이 취지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비판을 시설한다.10)

게송으로 말한다.

만약 식뿐으로 실재하는 대상이 없다면
곧 장소와 시간이 일정한 것과
상속에서 일정하지 않은 것과
작용이 있는 것은 마땅히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
若識無實境 則處時決定
相續不決定 作用不應成

논하여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11) 실재하는 색깔ㆍ형태[色境] 등 외부의 법을 떠나서 안식[色識] 등이 생겨나고, 색깔ㆍ형태 등을 반연하지 않는다면, 무슨 까닭으로 이 식은 어떤 곳에서는 일어날 수 있고, 모든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12)
어째서 이 장소에서 어느 때는 식이 일어나고, 언제나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13)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서 많은 상속이 있을 때, 어째서 결정적으로 하나에 따라서 식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14) 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은 머리털이나 파리 등을 보지만, 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식이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무슨 까닭으로 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들이 보는 머리털 등에는 머리카락 등의 작용이 없는가?15) 무슨 까닭으로 꿈속에서 얻은 음식ㆍ칼ㆍ몽둥이ㆍ독약ㆍ옷 등에는 음식 등의 작용이 없는가? 무슨 까닭으로 신기루에 의한 성[尋香城]16) 등에 성 등의 작용이 없는가? 무슨 까닭으로 그 외에 머리털 등의 사물은17) 그것의 작용이 있는가?
만약18) 참으로 다 같이 색깔ㆍ형태 등의 외부대상이 없고, 오직 내부의 식(識)만이 있어서 외부대상으로 사현하는 것이라면, 일정한 장소ㆍ일정한 시간ㆍ일정하지 않은 상속ㆍ작용이 있는 사물은 모두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
모두 성립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19) 게송으로 말한다.

[2]
장소와 시간이 일정한 것은 꿈과 같도다.
신체에서 일정하지 않은 것은, 아귀[鬼]가
다 같이 고름의 강 등을 보는 것과 같다.
꿈에서 손실하여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네.
處時定如夢 身不定如鬼
同見膿河等 如夢損有用

논하여 말한다. ‘꿈과 같다’는 것20)은 꿈에서 본 것과 같다는 뜻이다. 꿈속에서는 비록 실제의 대상이 없어도, 혹은 어떤 곳에서는 마을ㆍ동산ㆍ남자ㆍ여자 등의 사물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모든 장소에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곧 이곳에서 어느 때에는 그 마을ㆍ동산 등이 있는 것으로 보며, 언제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이것에 의거해서 비록 식에서 떠나 실재하는 대상이 없어도 장소와 시간의 결정은 성립될 수 있다.
‘아귀[鬼]와 같다’는 말21)은 아귀와 같음을 나타낸다. 강물 속에 고름이 가득 찼기 때문에 ‘고름의 강[膿河]’이라고 이름한다. 타락죽의 항아리[酥甁]란 그 속에 타락죽이 가득 찬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아귀의 동업(同業)의 이숙(異熟)인 여러 신체가 함께 모여서 모두 고름의 강물을 보는데, 이 중에서 반드시 오직 하나만을 보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게송에서) ‘등(等)’이라는 말은, 혹은 똥 등을 보는 것과 유정이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막아 지켜 서서 먹을 수 없게 함을 보는 것을 나타낸다.22)
이것에 의거해서 비록 식에서 떠나 실재하는 대상이 없어도, 많은 상속에서 일정하지 않은 것의 의미가 성립된다.
또한 꿈속의 대상은 비록 실체가 없어도,23) 정혈을 손실하는 등의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24)
이것에 의거해서 비록 식에서 떠나 실재하는 대상이 없어도, 허망한 작용이 있는 뜻이 성립된다.
이상과 같이 또한 갖가지 비유에 의거해서 장소의 결정 등 네 가지 뜻이 성립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게송으로 말한다.25)

[3]
모든 것은 지옥에서
다 같이 옥졸 등이
능히 핍박하고 해치는 일을 한다고 보는 것과 같도다.
따라서 네 가지 뜻이 모두 성립된다네.
一切如地獄 同見獄卒等
能爲逼害事 故四義皆成

논하여 말한다. 마땅히 알라. 이 가운데 하나인 지옥의 비유는, 장소의 결정 등의 모든 것이 다 성립됨을 나타낸다. ‘지옥과 같다’는 말은, 지옥에 있어서 핍박과 해롭게 하는 고통을 받는 모든 유정의 무리를 나타낸다. 지옥 중에서는 비록 진짜 유정의 무리에 포함되는 옥졸 등의 사물이 없어도, 그 유정의 동업이숙(同業異熟)의 증상력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많은 상속[身體]이 다 함께, 옥졸ㆍ개ㆍ까마귀ㆍ철산(鐵山) 등의 사물이 있어 그곳에 와서 핍박과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을 본다.26)
이것에 의거해서 비록 식에서 떠나 실재하는 대상이 없어도, 장소의 결정 등 네 가지 뜻이 모두 성립된다.
【문】 무슨 까닭으로 옥졸 등의 무리는 실재하는 유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가?27)
【답】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28) 또한29) 이들은 마땅히 지옥 중생[那落迦]30)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31)
그들(지옥 중생)이 받는 것 같은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32)
서로 핍박하고 괴롭히기 때문에, 마땅히 그들은 지옥 중생이고 이들은 옥졸 등이라고 건립할 수 없다.33)
형상과 크기와 힘이 이미 같아서 마땅히 서로 매우 두려워해야 한다.34)
마땅히 (뜨겁게 달구어진) 쇠[鐵]로 된 땅과, 불길의 뜨거움과 맹렬한 불꽃이 항상 타오르는 고통을 스스로 참아낼 수 없어야 한다. 어떻게 그곳에서 능히 다른 것을 핍박하고 해칠 수 있겠는가?35)
지옥 중생이 아니므로 마땅히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36)
【문】 그렇다면 어떻게 하늘나라에 현재 축생[傍生]이 있는가? 지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축생도 아귀도 있어서 옥졸 등이 된다.37)
【답】이 반박의 주장은 옳지 않다. 게송으로 말한다.

[4]
하늘나라에 축생이 있는 것과 같이
지옥 중에서는 그렇지 않도다.
집착된 축생과 아귀는
그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네.
如天上傍生 地獄中不爾
所執傍生鬼 不受彼苦故

논하여 말한다. 모든 축생이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능히 그 기세간의 즐거움을 초감(招感)하는 업이 있고, 그곳에 태어나서 반드시 그 기세간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을 받는다.38) 그러나 옥졸 등은 지옥 중의 기세간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마땅히 축생과 아귀세계의 중생이 지옥에 태어난다고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문】 만약 그렇다면39) 마땅히 그 지옥 중생들의 업의 증상력에 의해 다른 물질의 4원소[大種]40)를 생겨나게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뛰어난 형상ㆍ색깔ㆍ크기ㆍ힘 등의 차별을 일으키고, 그것에 대하여 옥졸 등의 명칭을 시설한다.41) 그들(지옥 중생)을 두렵게 하기 위해서 갖가지로 손ㆍ발 등을 움직이는 차별된 작용을 변현한다. 또한 숫염소와 같은 산(山)이 갑자기 분리되고 합하며42), 강철로 된 숲의 나무 가시가 혹은 낮아지고 혹은 높아지는 것43)과 같다.
【답】이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5]
만약 업력에 의해
다른 물질의 4원소[大種]가 생겨나는 일이 있어서
이와 같은 전변을 일으킨다고 인정하면
식에 있어서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가?
若許由業力 有異大種生
起如是轉變 於識何不許

논하여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식의 업력에 의해 이와 같이 전변한다고 인정하지 않고서, 물질의 4원소에만 집착하는가?44)
다시 게송으로 말한다.45)

[6]
업은 다른 곳에서 훈습하고
그 외의 다른 곳에 결과가 있다고 집착하는도다.
훈습 받는 식에 결과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음은 무슨 정당한 근거[因]가 있는가?
業熏習餘處 執餘處有果
所熏識有果 不許有何因

논하여 말한다. 그대들은 지옥 중생이 자신의 업력에 의해 차별된 물질의 4요소를 생겨나게 하고, 형상 등의 전변을 일으킨다고 집착한다.46) 그 업의 훈습은, 논리적으로 마땅히 식의 상속 중에 있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야 한다.47) 그대들은 훈습이 있는 식에 곧 결과가 있어서 전변한다고 인정하지 않고서, 훈습이 없는 곳에서 반대로 결과가 있다고 집착한다.
【문】 이것에 무슨 정당한 근거[因]48)가 있는가?49)
【답】가르침이 있음을 정당한 근거로 삼는다.50) 만약 오직 식뿐으로서 색깔ㆍ형태 등으로 사현하고, 별도의 색깔ㆍ형태 등이 없다면, 부처님은 마땅히 색깔ㆍ형태 등의 포섭처[處]가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아야 한다.
이 가르침은 정당한 근거가 아니다. 별도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51) 게송으로 말한다.
[7]
그 교화 받는 중생에 의거해서
세존께서는 밀의(密意)의 취지로써
색깔ㆍ형태 등의 포섭처가 있다고 말씀하셨도다.
변화로써 태어나는 유정과 같다네.52)
依彼所化生 世尊密意趣
說有色等處 如化生有情

논하여 말한다. 부처님께서 변화로써 태어나는[化生] 유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들은 다만 마음이 상속하여 단절되지 않고 능히 다음 세상에 간다고 하는 밀의(密意)의 취지에 의거해서 말씀하신 것뿐이다. 실제로 변화로써 태어나는 유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유정도 자아도 없고, 다만 법과 원인이 있을 뿐이라고53)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색깔ㆍ형태 등의 포섭처를 설하는 경전도 역시 그러하다. 교화 받는 유정이 그 가르침을 적절하게 받아들이는 데 의거해서, 밀의의 취지로써 설하신다. 별도로 실유(實有)인 것은 아니다.
【문】 어떤 밀의에 의거해서 색깔ㆍ형태의 포섭처[色境處] 등 열 가지54)를 말씀하는가?55)
【답】게송으로 말한다.56)
[8]
식은 자신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대상의 모습으로 사현해서 전전한다.
내부의 인식기관[內入處]과 외부의 인식대상[外入處]을 이루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것을 열 가지 포섭처[十處]라고 말씀하셨도다.
識從自種生 似境相而轉
爲成內外處 佛說彼爲十

논하여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색깔ㆍ형태로 사현하는 식은 자신의 종자로부터 연(緣)이 합할 때에 전변하여 차별적으로 생겨난다. 부처님은 그것의 종자 및 사현된 색깔ㆍ형태에 의거해서 순서대로 안근의 포섭처[眼根處] 및 색깔ㆍ형태의 포섭처[色境處]로 설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촉감으로 사현하는 식은 자신의 종자로부터 연(緣)이 합할 때에 전변하여 차별적으로 생겨난다. 부처님께서 그것의 종자 및 사현된 촉감에 의거해서 순서대로 신근의 포섭처[身根處], 촉감의 포섭처[觸境處]로 말씀한다. 이러한 밀의에 의거해서 색깔ㆍ형태의 포섭처 등의 열 가지를 말씀한다.
【문】 이 밀의의 가르침에 어떤 뛰어난 이로움이 있는가?57)
【답】게송으로 말한다.

[9]
이 가르침에 의지해서 능히
인무아[數取趣無我]58)에 깨달아 들어간다.
집착되는 법의 무아에는
다시 다른 가르침에 의지해서 깨달아 들어간다.
依此敎能入 數取趣無我
所執法無我 復依餘敎入

논하여 말한다. 여기서 설한 12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교화를 받는 자는 능히 인무아(人無我)에 깨달아 들어간다.59) 만약 여섯 가지의 두 법60)으로부터 6식이 전전함이 있고, 보는 자 나아가 아는 자가 전혀 없다고 요달하면, 마땅히 인무아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자는61), 문득 능히 인무아에 깨달아 들어간다.
또한62) 이외에 오직 식뿐이라는 가르침에 의지해서 교화를 받을 만한 자는,63) 능히 집착되는 법의 무아에 깨달아 들어간다. 만약 오직 식이 현행하여 색깔ㆍ형태 등의 법으로 사현하며, 이 중에서 색깔ㆍ형태 등을 체상(體相)으로 하는 법이 전혀 없다고 요달하면, 마땅히 모든 법은 실체의 자아가 없는 것[諸法無我]이라는 가르침을 받을 만한 자는, 문득 모든 법은 실체의 자아가 없음의 도리에 깨달아 들어간다.
【문】 만약 일체법의 모든 종류가 비실재[無]라고 알고 법무아(法無我)에 깨달아 들어간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오직 식뿐인 것도 역시 궁극적으로 비실재이어야 하는데, 어째서 안립하는 바가 있는가?64)
【답】일체법은 모든 종류가 비실재라고 아는 것을, 곧 법무아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으로 이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어리석은 범부가 두루 계탁하여 집착하는 바[遍計所執]의 자성과 차별의 일체법은 실체의 자아가 없다고 통달하면, 이와 같은 것을 법무아에 깨달아 들어간다고 이름한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도, 언어를 초월한 법성[離言法性]도 역시 전혀 비실재이므로 법무아라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의 식이 집착하는 이 유식의 성품도, 그 자체는 역시 비실재이기 때문에 법무아라고 이름한다. 그렇지 않고서 다른 이의 식이 집착하는 대상이 실재라면, 곧 유식의 도리는 성립될 수 없어야 한다. 모든 다른 이의 식에 실재하는 대상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도리에 입각해서 유식의 가르침을 건립하고, 널리 모든 법의 무아에 깨달아 들어간다. 모든 종류에 있어서 존재성을 부정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65)
【문】 또한 어떻게 아는가?66)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밀의의 취지에 의거해서 색깔ㆍ형태 등의 포섭처가 있다고 말씀하지만, 실제로 색깔ㆍ형태 등의 외부 법이 별도로 있어서 안식[色識] 등의 각기 다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님을 말이다.
【답】게송으로 말한다.67)

[10]
그 대상은 하나가 아니고
역시 많은 극미68)도 아니다.
또한 화합 등도 아니므로
극미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라네.
以彼境非一 亦非多極微
又非和合等 極微不成故

논하여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실제로 외부의 색깔ㆍ형태 등의 포섭처가 있어서 안식 등의 대상이 된다면69), 이와 같은 외부대상은 혹은 마땅히 하나이어야 하고, 그러면 곧 승론자(勝論者)가 유분색(有分色)을 집착하는 것과 같다.70)
혹은 마땅히 이것은 많은 것이어야 하고, 그러면 곧 실제로 많은 극미가 각기 다르게 대상이 된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71)
혹은 마땅히 많은 극미가 화합 및 쌓인 것[和集]이어야 하고, 그러면 곧 실유(實有)인 많은 극미가 모두 함께 화합하거나 쌓여서 대상이 된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72)
우선73) 그 외부 대상은 논리적으로 마땅히 하나가 아니어야 한다. 유분색의 자체는 모든 분색(分色)과 다른 것으로서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74)
논리적으로 역시 많은 것도 아니다. 극미는 각기 다른 것으로서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75)
또한 논리적으로 화합하거나 혹은 쌓여서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실체로서의 극미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76)
【문】 어째서 성립되지 않는가?77)
【답】게송으로 말한다.

[11]
극미가 여섯 개와 합한다면
중심의 하나는 마땅히 여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여섯 개와 같은 곳이라고 말하면
덩어리[聚]는 마땅히 극미와 같아져야 하리라.78)
極微與六合 一應成六分
若與六同處 聚應如極微

논하여 말한다. 만약 하나의 극미가 여섯 방향에서 각각 하나의 극미와 합한다면79), 마땅히 여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장소에서는 나머지 다른 장소가 있음이 용인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극미가 있는 곳에 만약 여섯 개의 극미가 있다면, 마땅히 모든 물질의 덩어리[聚色]도 극미의 크기와 같아져야 한다. 전전이 배대해서 크기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땅히 물질의 덩어리도 역시 볼 수 없어야 한다.
가습미라국의 비바사사(毘婆沙師)80)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81) “모든 극미에는 서로 합하는 뜻이 없다. 부피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와 같은 과실을 떠난다. 그런데 다만 물질의 덩어리에만 서로 합하는 이치가 있다. 부피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것도 역시 그렇지 않다.82) 게송으로 말한다.

[12]
극미는 이미 화합이 없다면
덩어리에 화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서로 화합하는 것이 성립되지 않음은
부피가 없는 데 근거하지 않는다.
極微旣無合 聚有合者誰
或相合不成 不由無方分

논하여 말한다. 지금 마땅히 그들이 주장한 이론의 취지를 비판해야 한다. 이미 극미와 다른 것으로서 별도의 물질의 덩어리는 없다고 말한다. 극미가 화합이 없다면, 덩어리에 화합이 있는 것은 무엇의 화합인가? 만약 해명하여 말하기를, 물질의 덩어리도 전전하여 역시 화합의 뜻이 없다고 하면, 곧 마땅히 “극미에 화합이 없다. 부피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덩어리에 부피가 있는 것조차도 화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미에 화합이 없는 것은 부피가 없는 데 근거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실체로서의 극미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83) 극미가 화합하거나 혹은 화합하지 않는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과실은 또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러하다. 만약 극미에 부피가 있다거나 혹은 없다고 인정하면, 모두 큰 과실이 된다.
【문】 무슨 까닭인가?84)
【답】게송으로 말한다.


[13]
극미에 부피가 있다고 말하면
논리적으로 마땅히 하나를 이루지 않아야 한다.
없다면 마땅히 그림자와 장애가 없어야 한다.
덩어리가 다르지 않다면 둘이 없도다.
極微有方分 理不應成一
無應影障無 聚不異無二

논하여 말한다. 하나의 극미에서 여섯 개의 부피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본체로 삼는다면, 어떻게 하나를 이루겠는가?85)
만약 하나의 극미에 다른 부피가 없다고 말하면, 태양이 방금 떠올라서 빛이 비추어 닿을 때에 어떻게 다른 쪽에 그림자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나머지의 부분으로서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극미에 부피가 없다고 집착한다면, 어떻게 그것과 이것이 전전하여 서로 장애가 되겠는가? 나머지 부분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행하지 않은 곳을, 이것과 그것이 전전하여 서로 장애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모든 극미는 전전하여 장소가 같아야 한다. 곧 모든 물질의 덩어리는 극미의 크기와 같아져야 한다. 이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문】 어째서 그림자와 장애는 덩어리에 속하고 극미에 속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는가?86)
【문】 어째서 극미와 다른 것으로서 물질의 덩어리가 있어서, 그림자를 일으키고 장애를 만든다고 인정하는가?87)
【답】그렇지 않다.88)
[논파] 만약 그렇다면 덩어리에도 마땅히 둘이 없어야 한다. 만약 물질의 덩어리가 극미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 그림자와 장애는 마땅히 물질의 덩어리에 속하지 않게 되어야 한다.89)
안포(安布)의90) 차별을 건립하여 극미로 삼고, 혹은 건립하여 덩어리로 삼는다. 둘 다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91)
【문】 어째서 극미와 덩어리를 생각으로 결택함을 사용하는가?92) 오히려 아직 외부의 색깔ㆍ형태 등의 모습을 부정할 수 없다.
【문】 이것은 다시 어떤 모습인가?93)
【답】안근 등의 대상도 역시 푸른 색 등의 색경(色境) 등의 참다운 성품이 되는 것을 말한다.94)
【문】 마땅히 함께 살펴서 생각해야 한다. 이 안근 등의 대상과 푸른 색 등의 참다운 성품은 하나인가, 여럿인가?95)
【문】 가령 그렇다 치더라도 무슨 과실인가?96)
【답】둘 다 모두 과실이 있다. 여럿이라고 말하는 과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하나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바른 논리가 아니다.97) 게송으로 말한다.

[14]
하나라고 말하면 마땅히 순서대로 행하는 것과
동시에 도달함과 도달하지 않는 것
및 많은 간격이 있는 일과
아울러 미세한 물질을 보기 어려운 일이 없어야 하리라.
一應無次行 俱時至未至
及多有間事 幷難見細物

논하여 말한다. 만약 간격이 없는 모든 푸른색 등 안근이 취한 대상을 집착해서 하나의 사물로 삼는다면, 마땅히 대지(大地)를 점차적으로 걷는다는 이치가 없어야 한다. 만약 한 걸음을 내딛으면 일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땅히 동시에 이것에 있어서와 그것에 있어서 도달함과 도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하나의 사물이라면 논리적으로 마땅히 얻음과 얻지 않음이 동시에 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장소에서 마땅히 많은 코끼리ㆍ말 등이 있고, 간격이 있는 사물이 있을 수 없어야 한다. 만약 어떤 장소에서 하나가 있다면 역시 곧 다른 것도 있게 되는데, 어떻게 이것과 그것에서 차이를 판별할 수 있겠는가? 혹은 둘이라면 어떻게 한 장소에서 도달함과 도달하지 않음이 있고, 중간에 공간을 볼 수 있겠는가? 또한 역시 마땅히 작은 물벌레 등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 미세한 사물도 없어야 한다. 그것과 두드러진 사물은 동일한 장소에서 크기가 마땅히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98) 모습에 의거해서 이것과 그것을 구분하고, 곧 별개의 사물을 이루는 것으로서, 다른 뜻에는 근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곧 반드시 마땅히 이 차이나는 사물을 전전이 분석해서 많은 극미를 이룬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미 극미는 하나의 실체의 사물이 아니라고 판별하였다. 곧 식을 떠난 안근 등과 색경 등이란, 감각기관이든 외부대상이든 모두 성립될 수 없다.99) 이것에 의거해서 오직 식만 존재한다는 뜻이 잘 성립된다.
【문】 모든 법은 인식방법[量]100)에 의거해서 있고 없음을 판별한다. 모든 인식방법 중에서101) 현량(現量)102)을 뛰어난 것으로 삼는다. 만약 외부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인식[覺]이 있어서, 나는 지금 현재 이와 같은 대상을 깨닫는다고 말하겠는가?103)
【답】이 증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게송으로 말한다.104)

[15]
현량의 인식도 꿈 등과 같도다.
이미 현각(現覺)105)을 일으킬 때는
보는 것과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현량이 있다고 인정하는가?
現覺如夢等 已起現覺時
見及境已無 寧許有現量

논하여 말한다. 꿈 등의 시간에는 비록 외부대상이 없지만, 역시 이와 같은 현각(現覺)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시간의 현각도 마땅히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한다.106) 따라서 그들이 이것을 이끌어서 증명으로 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107) 만약 그때에 이 현각이 있어서, 나는 지금 현재 이와 같은 대상을 깨닫는다고 말하면, 그때에 대상에 대해서 보는 주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의식에 있어서 능히 분별하기 때문에, 그때에 안식 등은 반드시 이미 지나가버렸기[落謝] 때문이다.108)
찰나론자에 있어서 이 인식이 있다고 말할 때에는, 색깔ㆍ형태 등의 현재의 대상도 역시 모두 이미 소멸한다.109)
어떻게 이때에 현량이 있다고 인정하는가?
반드시 이전에 현량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식이 능히 기억[憶念]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전에 받아들인 대상이 존재한다. 이 대상을 보는 것을 현량으로 삼는다고 인정한다. 이것에 의거해서 외부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이 성립된다.110)
이와 같이 반드시 먼저 받아들이고 나중에 기억하는 데 의거해서 외부대상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111)
【문】 무슨 까닭인가?112)
【답】게송으로 말한다.

[16]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상으로 사현하는 식이 있다.
이것으로부터 기억을 일으킨다네.
如說似境識 從此生憶念

논하여 말한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비록 외부대상이 실재하지 않지만, 안식 등이 외부대상으로 사현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염(念) 심소113)와 상응하여 분별의식이 이전의 대상으로 사현한다. 곧 이것을 이전에 받아들인 것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나중의 기억으로써 이전의 본 것은 실재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문】 만약 꿈속에서는 비록 실제의 대상이 없어도 식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깨어 있을 때에도 역시 그렇다고 말하면114),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꿈속의 대상은 실재가 아니라고 아는 것처럼 깨어 있을 때에도 역시 그러해야 하는데, 어째서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 이미 스스로 깨어 있을 때의 대상이 비실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꿈에서의 식과 같이 실제의 대상이 모두 없는가?115)
【답】이것도 역시 증명이 아니다. 게송으로 말한다.

[16]
아직 깨어나지 않은 때에는 알 수 없도다.
꿈에서 본 것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未覺不能知 夢所見非有

논하여 말한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때에는 꿈속의 대상이 외부에 실재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지만, 깨어났을 때에는 곧 그것을 아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간은 허망분별의 관습에 흐리멍덩해져 있기 때문에 꿈속에서 본 것은 모두 다 실재가 아닌 것과 같다.
아직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알 수 없다. 만약 어느 때에 그 세간을 벗어나서 능히 다스리는 무분별지혜를 얻으면 곧 참다운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 이다음에 얻는 세간의 청정한 지혜116)가 현전하는 단계에서 사실 그대로 그 대상은 실재가 아니라고 요달한다. 그 뜻이 평등하다.
【문】 만약 모든 유정이 자신의 상속이 전변하는 차별에 의거해서, 대상으로 사현하여 식이 일어나고, 외부대상을 인식대상[所緣]으로 삼는 데 의거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유정은 훌륭한 벗이나 악한 벗에 가까이해서 바르거나 삿된 법을 듣고서, 둘117)의 식이 결정된다.118) 이미 친구와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떻게 성립되겠는가?119)
【답】성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게송으로 말한다.

[17]
전전이 증상하는 세력이
둘의 식이 결정됨을 이룬다.
展轉增上力 二識成決定

논하여 말한다. 모든 유정이 자신과 타인의 상속하는 모든 식이 전전하여 증상연(增上緣)이 됨으로써,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둘의 식이 결정된다. 다른 이의 상속하는 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상속으로써 차별된 식을 생겨나게 해서 각각 결정을 이룬다. 외부대상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문】 만약 꿈속에서 대상이 실재하지 않아도 식은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깨어 있을 때에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하면,120) 무엇에 반연하여 꿈과 깸[覺]에서 선행(善行)과 악행을 짓고, 애착할 만한 것과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닌 결과를 장차 받는 것이 같지 않은가?121)
【답】게송으로 말한다.

[17]
마음은 수면에 의해서 무너지기 때문에
꿈과 깸의 결과가 같지 않다네.
心由睡眠壞 夢覺果不同

논하여 말한다. 꿈을 꿀 때의 마음은 수면에 의해서 무너지고 세력이 미약해지지만, 깨어 있을 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지은 행을 장차 받을 이숙은 뛰어남과 열등함이 같지 않다. 그것은 외부대상에 의거하지 않는다.
【문】 만약 오직 식(識)만이 있고 신체와 언어 등이 없다면, 양(羊) 등은 어떻게 남에게 살해되는가? 만약 양 등의 죽음이 남의 살해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백정은 어떻게 살생죄를 받겠는가?122)
【답】게송으로 말한다.

[18]
다른 이의 식의 전변에 의거해서
살해하는 행위가 있도다.
귀신 등이 의지의 힘으로써
남으로 하여금 생각을 잃게 하는 것 등과 같다네.
由他識轉變 有殺害事業
如鬼等意力 令他失念等

논하여 말한다. 귀신 등이 생각하는 세력에 의해서, 다른 유정으로 하여금 산란되거나 꿈꾸게 하는 것과 같다. 혹은 도깨비 등에게 홀려서 변화하는 일을 이룬다. 또는 신통을 갖춘 자가 의지로 생각하는 세력은, 남으로 하여금 꿈속에서 갖가지 일을 보게 한다. 예를 들면 대가전연이 마음으로 원하는 세력이, 바라나 왕 등으로 하여금 꿈에서 다른 일을 보게 한 것과123) 같다. 또한 아련야 선인의 마음에 성내는 세력이, 베마질다리 왕으로 하여금 꿈에서 다른 일을 보게 한 것과124) 같다.
이와 같이 다른 이의 식의 전변에 의거함으로써, 남으로 하여금 목숨[命根]을 해롭게 하는 일을 일으킨다. 마땅히 알라. 죽음이란 중동분(衆同分)125)이 식의 달라짐에 의해서 상속이 단절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게송으로 말한다.

[19]
탄타가 등이 텅 빈 것은
어떻게 선인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인가?
의지의 벌을 큰 죄로 삼은 것은
이것은 또한 어떻게 성립되는가?
彈咤迦等空 云何由仙忿
意罰爲大罪 此復云何成

논하여 말한다. 만약 타인의 식이 전변하는 증상력에 의해서 다른 유정이 죽는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세존은 의지의 벌이 큰 죄를 이루기 때문에, 우빨리 장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는가? “그대는 자못 일찍이 무슨 인연으로 탄타가숲,126) 마등가숲,127) 갈릉가숲128)이 모두 텅 비어 적막하게 되었다고 들었는가?”라고 물으니, 장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고타마시여. 저는 선인(仙人)의 마음이 분노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129)라고 하였다.
만약 귀신이 선인을 존경해서 선인이 싫어함을 알고 그 유정의 무리를 죽이는 일을 하였고, 다만 선인의 마음의 분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집착한다면, 부처님께서 어째서 그것을 인용하여 의지의 벌을 큰 죄로 삼고, 신체나 말의 업보다 크다고 하셨겠는가? 이것에 의거해서 마땅히 알라. 다만 선인의 분노에 의해서 그들 유정이 죽었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잘 성립된다.
【문】 만약 오직 식이 있을 뿐이라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는 남의 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130)
【답】가령 그렇다 치더라도 무슨 과실이 있는가?131)
【문】 만약 알 수 없다면, 어떻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라고 말하는가? 만약 능히 안다면, 오직 식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마땅히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132)
【답】비록 남의 마음을 알지만,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은 아니다. 게송으로 말한다.

[20]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는 어째서
대상을 아는 것이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
자기 마음을 아는 지혜와 같도다.
알지 못함이 부처님의 경계와 같다네.
他心智云何 知境不如實
如知自心智 不知如佛境

논하여 말한다.
【문】 남의 마음을 아는 모든 지혜는, 어째서 대상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133)
【답】자기 마음을 아는 지혜와 같다.
【문】 이 자기 마음을 아는 지혜는, 어째서 대상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134)
【답】무지(無知)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지혜는 대상에 대해서 각각 무지에 은폐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가 취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과 같다. 이 두 가지135)가 대상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외부대상으로 사현하여 허망되게 현현하는 데 근거하기 때문이고, 취착된 인식대상[所取]과 인식주체[能取]의 분별을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식의 이취(理趣)는 끝없는 것으로서, 결택하는 데 품류의 차이는 헤아리기 어렵고 매우 심오하다.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누가 능히 갖추어 결택하겠는가?136) 게송으로 말한다.

[21]
나는 이상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간략히 유식의 취지를 성립시켰도다.
이 가운데 일체의 품류는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도다. 부처님만의 경계이니라.
我已隨自能 略成唯識義
此中一切種 難思佛所行

논하여 말한다. 유식의 이취(理趣)는 품류(品類)가 끝없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이상에서 간략히 성립시켰다. 나머지 모든 품류는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살펴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작용하는 경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취(理趣)는 오직 부처님만의 경계이다. 모든 불세존은 일체의 경계 및 모든 품류에 대해서 지혜가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017_0480_a_01L唯識二十論一卷 世親菩薩造 大唐三藏法師玄奘奉 詔譯安立大乘三界唯識以契經說三界唯心心意識了名之差別此中說心意兼外境不遣相應內識生時似外境現如有眩瞖見髮蠅等此中都無少分實義卽此義有設難言頌曰若識無實境 則處時決定 相續不決定作用不應成論曰此說何義若離識實有色等外法色等識生不緣色等何因此識有得生非一切處何故此處有時識起非一切時同一處時有多相續何決定隨一識生如瞖人見髮等非無眩瞖有此識生復有何因瞖者所髮等無髮等用夢中飮食刀杖毒藥衣等無飮等用尋城等無城餘髮等物其用無若實同無色等外境唯有內識似境生定處定時不定相續有作皆不應成非皆不成頌曰處時定如夢 身不定如鬼 同見膿河等如夢損有用論曰如夢意說如夢所見謂如夢中雖無實境而或有處見有村園男女等物非一切處卽於是處或時見有彼村園等非一切時由此雖無離識實境而處時定非不得成說如鬼言顯如餓鬼河中膿滿故名膿河如說其中酥滿謂如餓鬼同業異熟多身共集皆見膿河非於此中定唯一見等言顯示或見糞等及見有情執持刀杖遮捍守護不令得食由此雖無離識實境而多相續不定義成又如夢中境雖無實而有損失精血等用由此雖無離識實境而有虛妄作用義成如是且依別別譬喩顯處定等四義得成復次頌曰一切如地獄 同見獄卒等 能爲逼害事故四義皆成論曰應知此中一地獄喩顯處定等一切皆成如地獄言顯在地獄受逼害苦諸有情類謂地獄中雖無眞實有情數攝獄卒等事而彼有情同業異熟增上力故同處同時衆多相續皆共見有獄卒狗烏鐵山等物來至其所爲逼害事由此雖無離識實境而處定等四義皆成何緣不許獄卒等類是實有情不應理故且此不應那落迦攝不受如彼所受苦故互相逼害應不可立彼那落迦此獄卒等形量力旣等應不極相怖應自不能忍受鐵地炎熱猛焰恒燒然苦云何於彼能逼害他非那落迦不應生彼如何天上現有傍生地獄亦然有傍爲獄卒等此救不然頌曰如天上傍生 地獄中不爾 所執傍生鬼不受彼苦故論曰諸有傍生生天上者必有能感彼器樂業生彼定受器所生樂非獄卒等受地獄中器所生苦故不應許傍生鬼趣生那落迦若爾應許彼那落迦業增上力生異大種起勝形量力差別於彼施設獄卒等名爲生彼怖變現種種動手足等差別作用羝羊山乍離乍合剛鐵林刺或低或非事全無然不應理頌曰若許由業力 有異大種生 起如是轉變於識何不許論曰何緣不許識由業力如是轉變而執大種復次頌曰業熏習餘處 執餘處有果 所熏識有果不許有何因論曰執那落迦由自業力生差別大起形等轉變彼業熏習理應許在識相續中不在餘處有熏習識汝便不許有果轉變無熏習處翻執有果此有何因有教爲因謂若唯識似色等現無別色等佛不應說有色等處此教非因有別意故頌曰依彼所化生 世尊密意趣 說有色等處如化生有情論曰如佛說有化生有情彼但依心相續不斷能往後世密意趣說不說實有化生有情說無有情我但有法因故說色等處契經亦爾依所化生宜受彼教密意趣說非別實有依何密意說色等十頌曰識從自種生 似境相而轉 爲成內外處佛說彼爲十論曰此說何義似色現識從自種子緣合轉變差別而生佛依彼種及所現色如次說爲眼處色處如是乃至似觸現識從自種子緣合轉變差別而生佛依彼種及所現觸如次說爲身處觸處依斯密意說色等十此密意說有何勝利頌曰依此教能入 數取趣無我 所執法無我復依餘教入論曰依此所說十二處教受化者能入數取趣無我謂若了知從六二法六識轉都無見者乃至知者應受有情無我教者便能悟入有情無我復依此餘說唯識教受化者能入所執法無我謂若了知唯識現似色等法此中都無色等相法應受諸法無我教者便能悟入諸法無我若知諸一切種無入法無我是則唯識畢竟無何所安立非知諸法一切種乃得名爲入法無我然達愚夫計所執自性差別諸法無我如是乃名入法無我非諸佛境離言法性都無故名法無我餘識所執此唯識性其體亦無名法無我不爾餘識所執境則唯識理應不得成許諸餘識有實境故由此道理說立唯識教普令悟入一切法無我非一切種撥有性故復云何知佛依如是密意趣說有色等處非別實有色等外法爲色等識各別境耶頌曰以彼境非一 亦非多極微 又非和合等極微不成故論曰此何所說謂若實有外色等處與色等識各別爲境如是外境或應是一如勝論者執有分色或應是多如執實有衆多極微各別爲境或應多極微和合及和集如執實有衆多極微皆共和合和集爲境且彼外境理應非一有分色體異諸分色不可取故理亦非多極微各別不可取故又理非和合或和集爲境一實極微理不成故云何不成頌曰極微與六合 一應成六分 若與六同處聚應如極微論曰若一極微六方各與一極微合應成六分一處無容有餘處故一極微處若有六微應諸聚色如極微量展轉相望不過量故則應聚色亦不可見加濕彌羅國毘婆沙師言非諸極微有相合義無方分故離如前失但諸聚色有相合理有方分故此亦不然頌曰極微旣無合 聚有合者誰 或相合不成不由無方分論曰今應詰彼所說理趣旣異極微無別聚色極微無合聚合者誰若轉言聚色展轉亦無合義則不應言極微無合無方分故聚有方分亦不許合故極微無合不由無方分是故一實極微不成又許極微合與不合其過且爾若許極微有分-無分俱爲大失所以者何頌曰極微有方分 理不應成一 無應影障無聚不異無二論曰以一極微六方分異多分爲體何成一若一極微無異方分日輪纔光照觸時云何餘邊得有影現以無餘分光所不及又執極微無方分云何此彼展轉相障以無餘分所不行可說此彼展轉相礙旣不相㝵應諸極微展轉處同則諸色聚同一極微量過如前說云何不許影-障屬聚不屬極微豈異極微許有聚色發影爲障不爾若爾聚應無二謂若聚色不異極微影-障應成不屬聚色安布差別立爲極微或立爲聚俱非一實何用思擇極微-聚爲猶未能遮外色等相此復何相謂眼等境亦是靑等實色等性應共審思此眼等境-靑等實性爲一爲多設爾何失二俱有過多過如前一亦非理頌曰一應無次行 俱時至未至 及多有閒事幷難見細物論曰若無隔別所有靑等眼所行境執爲一物應無漸次行大地理若下一至一切故又應俱時於此於彼至-未至一物一時理不應有得-未得又一方處應不得有多象馬等閒隙事若處有一亦卽有餘云何此可辯差別或二如何可於一處有至-不至中閒見空又亦應無小水虫等難見細物彼與麤物同一處所量應等故若謂由相此彼差別卽成別物不由餘義則定應許此差別物展轉分析成多極微已辯極微非一實物是則離識眼等-色等若根若境皆不得成由此善成唯有識義諸法由量刊定有無一切量中現量爲勝若無外境寧有此覺我今現證如是境耶此證不成頌曰現覺如夢等 已起現覺時 見及境已無寧許有現量論曰如夢等時雖無外境而亦得有如是現覺餘時現覺應知亦爾故彼引此爲證不成又若爾時有此現覺我今現證如是色等爾時於境能見已無要在意識能分別故時眼等識必已謝故剎那論者有此覺時色等現境亦皆已滅如何此時許有現量要曾現受意識能憶是故決定有曾受境見此境者許爲現量由斯外境實有義成如是要由先受後憶證有外境理亦不成何以故頌曰如說似境識 從此生憶念論曰如前所說雖無外境而眼識等似外境現從此後位與念相應分別意識似前境現卽說此爲憶曾所受故以後憶證先所見實有外境其理不成若如夢中雖無實境而識得起覺時亦然如世自知夢境非有覺時旣爾何不自知旣不自知覺境非有寧如夢識實境皆無此亦非證頌曰未覺不能知夢所見非有論曰如未覺位不知夢境非外實有覺時乃知如是世閒虛妄分別串習惛熟如在夢中諸有所見皆非實有未得眞覺不能自知若時得彼出世對治無分別智乃名眞覺此後所得世閒淨智現在前位如實了知彼境非實其義平等若諸有情由自相續轉變差別似境識起不由外境爲所緣生彼諸有情近善惡友聞正邪法二識決定旣無友教此云何成非不得成頌曰展轉增上力 二識成決定論曰以諸有情自他相續諸識展轉爲增上緣隨其所應二識決定謂餘相續識差別故令餘相續差別識生各成決定不由外境若如夢中境雖無實而識得起覺識亦然何緣夢覺造善惡行愛非愛果當受不同頌曰心由睡眠壞夢覺果不同論曰在夢位心由睡眠壞勢力羸劣覺心不爾故所造行當受異熟勝劣不同非由外境若唯有識無身語等羊等云何爲他所殺若羊等死不由他害屠者云何得殺生罪頌曰由他識轉變 有殺害事業 如鬼等意力令他失念等論曰如由鬼等意念勢力令他有情失念得夢或著魅等變異事成具神通者意念勢力令他夢中見種種事如大迦多衍那意願勢力令娑剌拏王等夢見異事又如阿練若仙人意憤勢力令吠摩質呾利王夢見異事如是由他識轉變故令他違害命根事起應知死者謂衆同分由識變異相續斷滅復次頌曰彈咤迦等空 云何由仙忿 意罰爲大罪此復云何成論曰若不許由他識轉變增上力故他有情死云何世尊爲成意罰是大罪故返問長者鄔波離言汝頗曾聞何因緣故彈咤迦林末蹬伽林羯陵伽林皆空閑寂長者白佛言喬答摩我聞由仙意憤恚故若執神鬼敬重仙人知嫌爲殺彼有情類不但由仙意憤恚者云何引彼成立意罰爲大罪性過於身語由此應知但由仙忿彼有情死理善成立若唯有識諸他心智知他心不設爾何失若不能知何謂他心智若能知者唯識應不成雖知他心然不如實頌曰他心智云何 知境不如實 如知自心智不知如佛境論曰諸他心智云何於境不如實知自心智此自心智云何於境不如實知由無知故二智於境各由無知所覆蔽不知如佛淨智所行不可言境此二於境不如實知由似外境虛妄顯現故所取能取分別未斷故唯識理趣無邊決擇品類差別難度甚深非佛誰能具廣決擇頌曰我已隨自能 略成唯識義 此中一切種難思佛所行論曰唯識理趣品類無邊我隨自能已略成立餘一切種非所思議超諸尋思所行境故如是理趣唯佛所行諸佛世尊於一切境及一切種智㝵故唯識二十論一卷丹藏此論有後序三十餘行沙門靖邁製者今撿之彼乃慈恩述記 之後序耳非爲論本所製故今不取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여기서 식(識)의 산스끄리뜨는 vijñapti(위갸쁘띠)로서 표상식(表象識), 활동태로서의 식을 의미한다. 주5 참조.
  2. 2)본 논서의 근본취지[宗旨]인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을 안립한다(第一立宗). 대승유가유식학파(大乘瑜伽唯識學派)에서는 3계가 오직 식(識, viñapti)의 양상[相]에 지나지 않으며 실존적인 대상[實境]이 없다고 주장함을 나타낸다.
  3. 3)『증일아함경』 제51권,『잡아함경』 제10권, 『화엄경』의 「십지품」ㆍ「야마천궁품」, 『해심밀경』 제3권, 『능가경』(4권 본) 제2권 등.
  4. 4)본 논서 나아가 유가유식학파에서 주장하는 유식무경설은, 석존(釋尊)께서 말씀하신 경전의 내용에 의거한 것임을 밝힌다[敎證]. 또한 대승 중에서도 삼계유식(三界唯識)을 인정하지 않는 계통도 있었기 때문에, 삼계유식은 넓은 의미에서 대승유심론을 가리키며, 유가유식학파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5. 5)본 논서에서 말하는 ‘유식(唯識)’과 경전에서 말씀하는 ‘유심(唯心)’이 얼핏 보기에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경론에서 말하는 심(心, citta)ㆍ의(意, manas)ㆍ식(識, vijñāna) 및 요별(了別, vijñapti)은 명칭의 차이인 것을 밝힌다. 심(心)은 아뢰야식, 의(意)는 말나식, 식(識)은 6식에 해당한다. 요별(vijñapti)은 활동태(活動態)로서의 식(識, vijñāna), 표상식(表象識)이다. 즉 구체적인 인식상황 속에서 식이 인식주관[能取, 見分]과 인식대상[所取, 相分]으로 이분화(二分化)되며, 대상이 알려지고 주관이 대상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6. 6)이 문단은 앞의 근본주장을 천명한 문장[立宗文]의 별석(別釋)이다. 유식(唯識)에서의 ‘식(識)’과 ‘오직[唯]’이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밝힌다.
  7. 7)외도뿐만 아니라 설일체유부 등 부파교단에서 마음 밖에 실존(實存)의 대상이 있다고 믿는 잘못된 집착을 논파한다. 즉 식(識)이 전변생기[轉起]할 때에, 식의 자체분이 객관으로서의 식[相分]과 주관으로서의 식[見分]으로 변현됨으로써, 외계에 실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일으킴을 밝힌다.
  8. 8)비유로써 유식의 취지를 나타낸다. 만약 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갖가지 사물을 본다. 즉 허공 중에 머리털․파리․허공 꽃[空華]․두 번째 달[第二月]․아지랑이․신기루[尋香城] 등을 본다.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색깔․형태․소리 등 외부대상도 역시 식(識)이 사현(似現)된 것일 뿐 실재가 아니다.
  9. 9)이상 제1주장(立宗)이다. 보리류지(菩提流支)의 번역본인 『유식론(唯識論)』과 진제(眞諦)의 번역본인 『대승유식론(大乘唯識論)』에서는 게송을 포함한다.
  10. 10)이하 유식무경설을 논증하는 큰 분단[大段]이다(第二論證). 외도와 부파불교의 비판에 대하여 답변하고 그들의 잘못된 집착을 자세하게 논파한다. 제2논증은 제1송부터 제20송까지이고, 이것은 다시 7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제1송부터 제14송까지는 외경실재(外境實在)의 잘못된 집착을 논파한다. 먼저 제1송에서 외인(外人)이 비판하여 묻기를, 만약 오직 식뿐이고 외부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네 가지 사실[四事:處ㆍ時ㆍ相續ㆍ作用]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問難).
  11. 11)이하 별도로 네 가지 사실로써 비판하여 묻는다.
  12. 12)네 가지 사실[四事] 중에서 장소가 결정적이라는 비판이다[處決定難]. 어째서 색 깔ㆍ형태[色境] 등 외부대상이 있는 장소에서는 눈으로 그것을 보고, 없는 장소에서는 보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13. 13)시간이 결정적이라는 비판이다[時決定難].
  14. 14)상속이 일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한다[相續不決定難]. 많은 유정[相續]들이 같은 장소ㆍ같은 시간에 함께 모여서, 색깔ㆍ형태가 있는 곳에서는 함께 그것을 보고, 없는 곳에서는 함께 보지 못하므로, 외부대상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15. 15)외부대상이 아니면 실제의 작용이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作用不成難]. 꿈에서 보는 음식 등에는 실제의 작용이 없고, 깨어 있을 적에 보는 음식 등에는 작용이 있으므로, 외부대상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16. 16)심향성(尋香城)은 건달바성(乾闥婆城)의 번역어로서, 실체가 없이 공중에 나타나는 성곽, 즉 사막이나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신기루를 말한다. 이것을 건달바성으로 부르는 이유는, 건달바가 항상 천상에 있다는 데서 근거한다. 또는 서역에서 악사(樂師)를 건달바라 부르는데, 그 악사는 환술로써 교묘하게 누각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보이기 때문이다.
  17. 17)현기증이나 눈에 백태가 없는 사람이 보는 머리카락 등과, 깨어있을 적에 보는 음식 등을 가리킨다.
  18. 18)하나의 사물 중에서 네 가지 경우의 비판을 하여, 앞에서의 비판을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19. 19)이하 제2송부터 제6송까지 5송에 걸쳐서, 앞에서 시설한 네 가지 비판[四難]은 도리[理]가 아니기 때문에 오직 식(識)만이 존재함을 논증하여 답변한다(答釋). 먼저 제2송에서 외부대상이 실재하지 않아도 네 가지 사실[四事]이 각각 성립될 수 있음을 밝힌다.
  20. 20)이하 일정한 장소의 비판[處定難]과 일정한 시간의 비판[時定難]에 대하여 모아서 답변한다.
  21. 21)상속이 일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비판[相續不定難]에 대하여 답변한다.
  22. 22)아귀들은 같은 업[同業]으로 강물이 모두 고름[膿]이라고 본다거나, 혹은 모두 피ㆍ소변ㆍ대변ㆍ흐르는 쇳물 혹은 흐르는 물 등으로 본다. 또한 두 언덕 가에 많은 사람들이 몽둥이 등을 가지고 지키며 막아서서 그 물을 먹지 못하게 함을 보는 것을 말한다.
  23. 23)작용이 성립될 수 없다는 비판[作用不成難]에 대하여 답변한다.
  24. 24)꿈속에서 실제의 여인이 없건마는 여인과 성교하고 유정(流精)하는 작용이 있는 것처럼, 외부대상이 아니더라도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힌다.
  25. 25)네 가지 사실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 성립되지 않음을 논증하여 답변한다.
  26. 26)업이 같으므로 함께 모여서 같이 보고, 과보를 같이 받는다. 만일 업이 같지 않다면, 곧 함께 모이지 않고, 같이 보지도 않으며, 또한 같이 고통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27. 27)소승의 대중부(大衆部)ㆍ독자부(犢子部)ㆍ정량부(正量部)에서 반박하여 묻는다. 그들은 옥졸 등이 실제의 유정이라고 주장한다.
  28. 28)총체적으로 답변한다.
  29. 29)별도로 답변한다.
  30. 30)narakaㆍnāraka를 나락가(那落迦)ㆍ날락가(捺落迦) 등으로 음역(音譯)하고 고구(苦具)ㆍ고기(苦器) 등으로 의역(意譯)한다. 나락가(那落迦)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으로, 날락가(捺落迦)를 지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31. 31)이하 옥졸 등이 지옥중생이 아닌 이유로서 다섯 가지를 든다.
  32. 32)지옥에서는 죄를 지은 중생들이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옥졸 등이 만약 지옥 중생[那落迦]이라면, 그들도 역시 갖가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지옥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지옥 중생이 아니다.
  33. 33)옥졸 등이 만약 지옥 중생이라면 마땅히 서로 핍박하고 살해할 것이므로, 이것은 옥졸이고 저것은 죄인이라고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핍박하지 않고, 옥졸 등과 죄인들을 분별할 수 있다. 따라서 옥졸 등은 지옥 중생이 아니다.
  34. 34)만약 옥졸 등이 지옥 중생이라면, 형상ㆍ크기ㆍ힘 등이 모두 같아서 마땅히 서로 핍박할 것이므로, 죄인만이 공포를 받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죄인만이 공포를 받기 때문에, 옥졸 등은 지옥 중생이 아니다.
  35. 35)옥졸 등이 지옥 중생이라면,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이나 바닥이 뜨겁게 달구어진 쇠[鐵]로 된 것 등에서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야 하고, 그 상태에서 죄인들을 핍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고통을 받지 않고 죄인들을 핍박하므로 옥졸 등은 지옥 중생이 아니다.
  36. 36)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은 5역(逆) 등 갖가지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난다. 그런데 옥졸 등은 악업을 짓지 않았으므로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
  37. 37)외인이 다시 반박하여 묻는다.
  38. 38)『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 말씀하기를, 극락세계에 있는 공작ㆍ가릉빈가 등 갖가지 새들은 죄업의 과보로 그곳에 축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께서 법음(法音)을 널리 펴고자 변화로써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39. 39)설일체유부 등에서 비판하여 묻는다.
  40. 40)실제로는 무정(無情)에 포함되지만 유정의 종류[有情數]에 비슷한 것을 건립하여 다른 물질의 4원소[異大種]라고 말한다. 대종(大種)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4원소를 말한다. 이 4가지는 모든 물질[色法]에 두루하므로 대라 하고,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원소이므로 종이라고 한다.
  41. 41)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지옥의 옥졸 등이 비록 실제의 유정은 아니지만, 마음 밖에서 악업에 초감(招感)된 증상(增上)의 4대(大)가 전변하여 생겨난 것으로서, 옥졸 등 갖가지 모습은 만들어진 사물의 형상ㆍ크기ㆍ힘의 차이라고 한다.
  42. 42)중합지옥(衆合地獄)에서 숫염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두 개의 산(山)이 나란히 서 있다가 죄인이 그 사이에 있으면, 마치 숫염소가 양쪽에서 와서 사납게 떠받는 것처럼, 두 개의 산이 양쪽에서 갑자기 합쳐지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43. 43)봉인증지옥(鋒刃增地獄)의 제3쇠나무가시숲[鐵刺林]에서 죄인들이 나무에 오를 때는 쇠나무의 날카로운 가시가 아래로 향하고, 죄인들이 내려올 때에는 그 가시가 위로 향한다고 한다.
  44. 44)게송의 대강(大綱)을 총체적으로 해설한다. 그대들은 앞에서 죄인의 업에 의해 4대大 등이 그와 같이 전변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들의 죄업의 세력에 의해 내부의 식(識)이 그와 같이 전변한다고는 인정하지 않는가라고 논파 한다.
  45. 45)이하 자세하게 논파한다.
  46. 46)설일체유부ㆍ경량부 등의 주장을 서술한다.
  47. 47)설일체유부ㆍ경량부 등의 주장을 논파한다.
  48. 48)여기서 인(因, hetu)은 ‘인식성립의 정당한 근거’, ‘논증의 근거’를 말한다.
  49. 49)논주(論主)가 비판하여 묻는다.
  50. 50)경량부가 교증(敎證)으로써 답변한다. 만약 오직 식뿐이고 외부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아함경』 중에서 12처(處)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6경(境)의 외부대상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51. 51)논주의 논파이다. 앞에서 경량부 등이 제시한 교증(敎證)은 별도의 뜻이 있기 때문에, 유식(唯識)의 취지를 성립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음을 밝힌다. 이하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앞에서의 소승의 비판이 성립되지 않고 오직 식뿐인 것을 안다고 해설한다[人法二無我].
  52. 52)앞의 3구(句)는 12처설의 별도의 뜻[別意]을 나타내고, 제4구는 비유를 들어서 성립시킨다.
  53. 53)원인을 가진 법이 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54. 54)12처(處) 중에서 색법(色法)인 5근(根)과 5경(境)을 말한다.
  55. 55)외인이 다시 묻는다.
  56. 56)밀의(密意)가 있기 때문에 유식의 취지를 성립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음을 밝힌다.
  57. 57)외인이 다시 묻는다.
  58. 58)삭취취(數取趣)는 보특가라(補特加羅, pudgala)의 의역(意譯)이다. 보특가라는 구역(舊譯)에서는 인(人) 또는 중생으로, 신역(新譯)에서는 삭취취로 번역된다. 유정이 누누이[數] 5취(趣)를 취착(取着)해서 윤회하기 때문에, 유정(有情) 또는 유정의 자아를 의미한다. 인무아(人無我)는 중생무아(衆生無我)ㆍ생공(生空)ㆍ인공(人空)ㆍ아공(我空)과 동의어로서, 5온(蘊)이 화합해서 된 중생의 심신(心身)에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의 실아(實我)가 없음을 말한다.
  59. 59)먼저 인무아(人無我)의 가르침의 뛰어난 이로움을 말한다.
  60. 60)내부의 6처[內六處:六根]와 외부의 6처[外六處:六境], 즉 12처를 말한다.
  61. 61)2승(乘)의 근기를 가리킨다.
  62. 62)법무아(法無我)의 가르침의 뛰어난 이로움을 말한다.
  63. 63)대승 보살의 근기를 가리킨다.
  64. 64)외인이 비판하여 묻는다.
  65. 65)경론(經論)에서의 인법이무아(人法二無我)의 가르침을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법무아에 깨달아 들어가면, 변계소집성은 없지만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있다. 만약 이것마저도 없다고 말하면 존재성[有性]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관학파의 일부 악취공자(惡取空者)의 견해를 비판한다.
  66. 66)외인이 비판하여 묻는다.
  67. 67)이하 소승과 외도의 극미존재설을 논파한다(極微不成論).
  68. 68)극미(極微, paramāṇu)는 물질적 존재의 최소단위의 미립자(微粒子), 즉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극히 미세한 입자이다. 극미가 얼마나 미세한 입자인가 하면, 틈을 통해 비쳐 들어오는 광선 중에 떠있는 것이 보이는 실내의 먼지 정도의 입자가 7의 7승(乘), 즉 823,543개의 극미가 집합된 것이라고 한다.
  69. 69)이하 외인의 세 종류의 잘못된 견해를 서술한다.
  70. 70)별도로 외도 특히 승론(勝論, Vaiśeṣika)학파의 견해를 서술한다. 이 학파에서 극미는 생멸이 없는 불변적 실체로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다른 구성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극미의 형상은 원체(圓體)이고, 결합방식은 둘을 단위로 한 2배승(倍乘)으로 간주하였다.
  71. 71)설일체유부의 고파(古派)의 견해이다.
  72. 72)경량부 및 설일체유부의 신파(新派:衆賢系)의 견해이다.
  73. 73)이하 논주가 앞에서 열거한 견해들을 하나하나 논파한다.
  74. 74)승론(勝論) 등 외도의 견해를 비판한다.
  75. 75)설일체유부[古派]의 견해를 논파한다.
  76. 76)경량부와 설일체유부[新派]의 견해를 비판한다.
  77. 77)소승으로부터의 질문이다.
  78. 78)앞부분의 2구(句)는 극미가 합하면 마땅히 여섯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비판한다. 뒷부분의 2구(句)는 극미와 같은 곳[同處]이라면, 물질의 덩어리[聚色]도 마땅히 극미와 같아져야 한다고 비판한다.
  79. 79)극미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여 구체적인 물질적 대상을 이루는가에 관하여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12권에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하나의 극미가 사방상하(四方上下) 여섯 개의 극미에 둘러 싸여서 최초의 결합이 시작되며, 이러한 육방중심(六方中心)의 7극미를 단위로 한 7배승(倍乘)의 방식으로 점차 결합하여 구체적인 물질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80. 80)캐시미르국의 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을 가리킨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을 신봉하므로 비바사사(毘婆沙師)라고 부른다.
  81. 81)설일체유부에서 앞에서 시설한 논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하여 주장한다.
  82. 82)논주가 총체적으로 부정한다.
  83. 83)이하 논증의 단서를 일으켜서 극미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를 든다.
  84. 84)외인이 다시 묻는다.
  85. 85)경량부에서 극미에 부피가 있다고 주장함을 논파한다.
  86. 86)외인이 반박하여 묻는다.
  87. 87)논주가 반대로 비판하여 묻는다.
  88. 88)외인의 답변이다.
  89. 89)논주의 논파이다.
  90. 90)『유식이십론술기(唯識二十論述記)』에는 ‘안포(安布)’의 앞부분에 “각혜가 분석하는[覺慧分析]” 이라는 글귀를 첨가하고 있다.
  91. 91)정의(正義)를 말하고, 극미가 성립되지 않음을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92. 92)승론학파(勝論學派) 등 외도가 비판하여 묻는다.
  93. 93)논주가 반대로 묻는다.
  94. 94)외도의 답변이다.
  95. 95)논주가 비판하여 묻는다.
  96. 96)외인이 다시 묻는다.
  97. 97)논주의 논파이다.
  98. 98)정량부(正量部)에서 반박하여 묻는다.
  99. 99)논주가 논파하여 말한다.
  100. 100)양(量)의 원어는 pramāṇa이다. pramāṇa는 척도ㆍ표준ㆍ규준(規準)의 뜻으로서 양(量)ㆍ인식방법ㆍ인식근거ㆍ인식수단 등으로 번역된다.
  101. 101)인도철학 일반에서는 자파(自派)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토대로서 인식의 문제를 중시하여, 인식의 본질과 형태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다. 인도사상계에서 제시된 바른 인식방법의 종류는 대략 현량(現量, pratyakṣa), 비량(比量, anumāna), 성언량(聖言量, śabda), 비교량(比較量, upamāna), 필수조건량(必須條件量, arthāpatti), 부재량(不在量, anupalabdhi), 세전량(世傳量, aitihya), 태도량(態度量, cheṣṭa), 사상량(捨象量, pariśeṣa), 소속량(所屬量, saṁbhava)의 열 가지가 있다.
  102. 102)현량(現量)은 직관적 인식, 즉 인식기관과 대상의 접촉을 통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103. 103)외인이 비판하여 묻기를, 현량(現量)이 있으므로 외부대상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현량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인식인데, 이 현량에 의해 눈앞의 사물들이 인식되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러한 외부의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없는 것을 현량이 있다고 인식하겠는가라고 비판한다.
  104. 104)이하 소승 등이 현량을 들어서 외부대상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것을 논파 한다.
  105. 105)여기서 현각(現覺, pratyakṣabuddhi)은 현량(現量, pratyakṣa)과 같은 의미이다.
  106. 106)게송의 제1구(句)를 해설한다.
  107. 107)이하 제2구ㆍ제3구를 해설한다.
  108. 108)정량부 등의 견해를 논파한다. 만약 식 외부에 대상 A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A이다.”라고 인식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식 외부의 A는 낙사(落謝)해서 없어지기 때문에, 현량에서 A가 있다는 말은 옳지 않고 다만 의식에서 그 A가 있을 뿐이다.
  109. 109)설일체유부의 견해를 논파한다.
  110. 110)외인이 반박하여 주장한다.
  111. 111)논주가 총체적으로 부정하여 논파한다.
  112. 112)외인이 묻는다.
  113. 113)별경심소(別境心所) 중의 하나로서, ‘지속적인 알아차림’, ‘기억’ 작용을 한다.
  114. 114)외인이 논주의 주장을 먼저 서술한다.
  115. 115)외도와 소승이 꿈으로써 깨어 있을 때에 비유하여 유식무경을 비판한다[夢覺不同難]. 이하 논주가 그 과실을 논파한다.
  116. 116)후득지(後得智)를 말한다.
  117. 117)가르침을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가리킨다.
  118. 118)훌륭한 벗으로부터 바른 법을 들으면, 가르침을 주는 자의 식(識)은 비결정(悲決定)을 이루고, 듣는 자의 식은 혜결정(慧決定)을 이룬다. 악한 벗을 가까이할 때는 삿된 법을 가르쳐주는 자와 받는 자의 식이 사결정(邪決定)을 이룬다.
  119. 119)외도와 소승이 비판하여 묻기를, 이식결정(二識決定)을 이루므로 외부대상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二識決定難). 이하 논주가 그 과실을 논파한다.
  120. 120)외인이 먼저 논주의 주장을 서술한다.
  121. 121)외인이 비판하여 묻기를, 꿈 꿀 때와 깨어 있을 때의 마음에 차이가 없다면 행업(行業)과 그 과보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夢覺業果不同難]. 이하 논주가 그 과실을 논파한다.
  122. 122)외인이 비판하여 묻기를, 외부대상이 없다면 살생(殺生) 등의 행위와 그 과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殺業不成難). 이하 논주가 그 과실을 논파한다.
  123. 123)『유식이십론술기(唯識二十論述記)』 하권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된다. 옛날 미제라국의 바자나왕(婆刺拏王, Sāraṇa:舊譯은 沙羅那)이 대단한 미남(美男)이었는데, 왕사성의 대가전연(大迦旃延, Mahkātyāyana)의 출가제자가 되어 아반지국(阿盤地國, Avanti)의 산에 머물며 수행하였다. 어느 날 아반지국의 발수다왕(鉢樹多王, Pradyota)이 많은 궁녀들을 데리고 산에 놀러왔는데, 궁녀들이 바라나왕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에 발수다왕이 질투를 느껴서 바자나왕을 채찍으로 선혈이 낭자하도록 때리고서 환궁하였다. 기절했던 바자나왕은 소생한 뒤, 대가전연에게 청하기를 “본국으로 돌아가 군사를 일으켜 아반지국을 멸망시킨 뒤 다시 돌아와 수행하겠다.”고 했다. 대가전연은 신통력으로써 왕을 잠들게 한 뒤에 꿈을 꾸게 하였다. 바자나왕은 꿈속에서 대군을 일으켜 아반지국에 쳐들어왔으나, 왕의 군대는 전멸하고 그도 포로가 되어 곧 죽게 되었다. 왕은 매우 두려워하며 살려달라고 외치니, 대가전연이 그를 깨워서 만약 아반지국을 정벌하려고 하면 반드시 꿈처럼 되리라고 알려주었다. 대가전연은 그에게 일체법이 오직 가명(假名)일 뿐 실체가 없는 도리를 설해주었고, 이에 바자나왕은 수행에 전념하여 마침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124. 124) 아련야(阿練若, araṇya:舊譯은 阿蘭若)는 촌락에서 멀리 떨어진 적정한 숲을 말하며, 그곳에 거주하는 선인(仙人)을 아련야 선인이라고 한다. 『유식이십론술기』 하권에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어느 때 아련야에 700명의 선인이 머물렀는데, 하루는 제석천(帝釋天)이 몸을 꾸며서 바람 밑에 앉았다. 모든 천인(天人)들이 모여 와서 제석을 공경하였다. 베마질다리왕(吠摩質呾利王, Vemacitra:阿修羅王)이 이것을 보고 자기도 역시 변화해서 천인이 되어 장엄구를 달고 선인들의 처소에 와서 바람 위에 앉았다. 모든 선인들은 그를 괴이하게 여기고 공경하지 않았다. 베마질다리왕은 매우 화가 나서, 제석천만 공경하고 자기를 업신여긴다면서 선인들을 크게 꾸짖었다. 선인들은 사과하면서도 불쾌했으므로, 마음으로 기도하여 왕을 뇌란(惱亂)시키기 위해 갖가지 이상한 일을 꿈꾸게 하였다. 왕은 곧 크게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뉘우치고 선인들에게 사죄하니, 선인들이 그를 용서하여 돌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125. 125)만유 일체법으로 하여금 같게 만드는 원인[因]이다. 유정동분과 법동분이 있는데, 전자는 유정으로 하여금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 동분이고, 후자는 비정물(非情物)로 하여금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 동분이다.
  126. 126)탄타가(彈咤迦, Daṇḍaka:舊譯은 壇陀柯)숲의 이야기는 『유식이십론술기』 하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마등가(摩燈伽, Mātanga)라는 매우 아름다운 바라문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마등가라는 선인(仙人)으로서 산중에 머물렀으며, 그녀가 매일 음식을 갖다 주었다. 하루는 탄타가왕이 산에 놀러 왔다가 그녀를 보고 반하여 강제로 궁궐로 데려갔다. 선인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궁궐로 와서 왕에게 부인을 돌려보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선인이란 애욕을 떠난 사람이니 부인이 필요 없다면서 듣지 않았다. 마침내 선인이 마음에 크게 분노하여 부인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내가 오늘 밤 이 국토를 파괴하고 너를 구하겠노라.”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밤이 되자 선인은 그 의지의 염력(念力)으로써 큰 돌을 비 오듯이 쏟아지게 하여 왕을 비롯한 온 국민을 죽였고, 국토는 홀연히 적막한 산림이 되었다고 한다.
  127. 127)마등가(末蹬伽:舊譯은 迦陵迦)숲의 이야기는 『유식이십론술기』 하권에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된다. 옛날 산중에 5신통(神通)을 얻은 선인이 선정을 닦고 있었는데, 그는 대단히 추남(醜男)이었다. 어느 때 한 음녀(淫女)가 왕과 사랑하다가 버림받고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녀는 산에 갔다가 그 추한 선인을 보고 불길한 징조로 간주하고 “만약 이 추한 사람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하면 반대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곧 집의 하인에게 명하여 똥물 등 오물을 그 선인의 머리에 붓게 하였다. 그러나 선인은 인내하고 결코 화를 내지 않았으며, 한 바라문이 그를 씻겨주었다. 불가사의하게도 그 음녀는 다시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얼마 후에 한 국사(國師)의 신변에 걱정거리가 생겼는데, 음녀의 말대로 선인에게 가서 하니 과연 좋은 일이 생겼다. 마침 국왕이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여 국사의 말대로 산중에 변소를 짓고 항상 똥물로써 선인에게 관정(灌頂)케 하니, 전쟁이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왕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선인에게 그렇게 하니, 마침내 선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마음에 분노를 일으켜 신통력으로써 돌을 비 오듯이 쏟아지게 하여 왕을 비롯하여 온 국민들이 죽고, 다만 선인을 섬긴 한 바라문만이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그 국토는 홀연히 적막한 산림이 되었다고 한다.
  128. 128)갈릉가(羯陵伽:舊譯은 摩登伽로 됨)숲의 이야기는 『유식이십론술기』 하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마등가(摩登伽)라는 선인이 있었다. 그는 천한 전타라(旃陀羅) 종성(種姓) 출신이었는데,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만약 아들을 얻으면 장차 국사(國師)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왕에게 나아가 공주를 부인으로 달라고 간청했으나, 왕은 천한 전타라 종성에게 그럴 수 없다며 크게 분노하였다. 그런데 공주는 마음으로 선인을 좋아했으나, 국왕이 강경하게 반대했으므로, 마침내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선인에게 가서 살면서 아들을 낳았다. 왕은 수소문 끝에 선인의 처소를 알아내어 선인과 공주를 결박하여 항하(恒河)에 버리게 했다. 선인이 항하의 신(神)에게 “만약 나를 죽이려 하면 순식간에 강물을 마르게 하리라.”면서 기도하니, 항하의 신이 두려워하여 결박을 풀어 주고 돌아가게 했다. 선인은 마음속으로 왕에게 크게 분노하여 갑자기 돌을 비 오듯이 쏟아지게 하여 왕을 비롯한 온 국민을 죽이고, 국토를 적막한 산림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129. 129)부처님께서 우빨리(Upali:鄔波離, 優波離) 장자에게 3업(業) 중에서 의업(意業)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신 것은, 『중아함경(中阿含經)』 제32권의 「우파리경(優波離經)」에 나온다.
  130. 130)외인이 비판하여 묻기를, 외부대상이 없다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가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他心智不成難]. 이하 논주가 그것을 해설한다.
  131. 131)논주가 반대로 묻는다.
  132. 132)외인이 두 가지로써 비판하여 묻는다.
  133. 133)외인이 비판하여 묻는다.
  134. 134)외인이 다시 묻는다.
  135. 135)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와 자기 마음을 아는 지혜[自心智]를 가리킨다.
  136. 136)본 논서의 3대단(大段) 중의 제3단으로서,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第三總結). 유식무경의 이취(理趣)가 매우 심오함을 찬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