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500_b_01L유식론(唯識論)
파색심론(破色心論)이라고도 한다.
017_0500_b_01L唯識論一卷一名破色心論


천친(天親) 지음
구담반야류지(瞿曇般若流支) 한역
017_0500_b_02L天親菩薩造
後魏瞿曇般若流支譯


식(識) 뿐이고 경계(境界)는 없다.
6진(塵)이 없는데 있다고 허망하게 보는 것이
사람의 눈에 백태가 있으면
털이나 달 따위가 보이는 것과 같네.
017_0500_b_04L唯識無境界
以無塵妄見
如人目有瞖
見毛月等事

만일에 마음뿐이고 6진이 없으며
바깥 경계를 허망하게 보는 것 떠났다면
장소와 시간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아니함과
사람이거나 짓는 일은 무엇이리.
017_0500_b_06L若但心無塵
離外境妄見
處時定不定
人及所作事

장소와 시간 따위의 모든 사실에
빛깔 따위인 바깥 법이 없는데
사람의 꿈에서와, 그리고 아귀들은
업(業)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네.
017_0500_b_07L處時等諸事
無色等外法
人夢及餓鬼
依業虛妄見

꿈속에 여자가 있지 않는데도
모믈 움직여 유정을 하며
지옥에서 모두들 그 지옥주(地獄主)에게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과 같네.
017_0500_b_08L如夢中無女
動身失不淨
獄中種種主
爲彼所逼惱

축생(畜生)이 천상에 태어나 있지마는
지옥에는 그렇지 않나니
그 까닭은 천상에 있어서는
축생의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이네.
017_0500_b_10L畜生生天中
地獄不如是
以在於天上
不受畜生苦

만일 중생의 업에 의하여
4대(大)가 그와 같이 변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 업에 의하여
마음이 그렇게 전변하지 않으랴.
017_0500_b_11L若依衆生業
四大如是變
何故不依業
心如是轉變

업이 다른 법을 훈습(熏習)하면
과보가 어찌 다른 장소이리오.
선과 악이 마음을 훈습하거니
어찌 마음을 떠나서 말하랴.
017_0500_b_12L業熏於異法
果云何異處
善惡熏於心
何故離心說

빛깔 따위의 온갖 받아들임[入]을 말함은
교화 받을만한 중생을 위하심이요,
그 보다 앞에서 법을 받은 이에겐
화생(化生)이 있다고 말씀하셨네.
017_0500_b_14L說色等諸入
爲可化衆生
依前人受法
說言有化生

저 본래의 마음 지혜에 의하여
식(識)의 허망으로 바깥 경계 취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팎의 온갖 받아들임 있다고 하셨네.
017_0500_b_15L依彼本心智
識妄取外境
是故如來說
有內外諸入

허망하여 진실함 없다고 관찰하면
그와 같은 이는 아공(我空)에 들며
온갖 다른 법을 관찰한다면
모든 법 ≺나≻ 없음에 들어가리.
017_0500_b_16L觀虛妄無實
如是入我空
觀於諸異法
入諸法無我

저 하나인 것을 볼 수가 없고
많음도 역시 볼 수 없으며
화합인 것도 볼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대상[塵]의 법이 없네.
017_0500_b_18L彼一非可見
多亦不可見
和合不可見
是故無塵法

6진(塵)이 동시에 화합한다면
티끌에 곧 여섯 모양이 있을 것이요,
만일 여섯이 하나의 처소뿐이라면
모든 4대(大)는 하나의 티끌이리.
017_0500_b_19L六塵同時合
塵則有六廂
若六唯一處
諸大是一塵

만일 미진(微塵)과 화합하지 않는다면
저 화합함은 무엇으로 된 것이며
미진을 모양이 없다고 말하나
능히 이름은 곧 모양이 있음이다.
017_0500_b_20L若微塵不合
彼合何所成
言微塵無廂
能成則有廂

방소가 다른 법이 있나니
그를 하나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림자의 가림이 만일 4대가 아니라면
곧 저 둘은 그것이 아니리라.
017_0500_b_22L有法方所別
彼不得言一
影障若非大
則彼二非彼
017_0500_c_01L
하나라면 다님[行]에 차례가 아닐 것이며
취하거나 버림도 같지 아니하리.
차별도 한량없는 장소일 것이요
미세한 것도 볼 수 있어야 하리라.
017_0500_c_01L若一行不次
取捨亦不同
差別無量處
微細亦應見

직접 본다는 것은 꿈과 같으며
봄과 보이는 것이 함께하지 않아서
볼 적에는 분별하지 아니하거늘
어떻게 ‘직접 본다.’고 말하랴.
017_0500_c_02L現見如夢中
見所見不俱
見時不分別
云何言現見

먼저 말한, 저 허망하게 봄이란
저 허망하게 생각함에 의함이다.
허망한 꿈을 꾸고 있는 이는
꿈 깨기 전엔 그를 알지 못하네.
017_0500_c_04L先說虛妄見
則依彼虛憶
見虛妄夢者
未寤則不知

번갈아 함께 증상(增上)하는 원인으로
피차의 마음 인연이 합해진 것이다.
무명(無明)이 마음을 덮었나니
그러므로 꿈과 꿈 깬 결과가 다르네.
017_0500_c_05L迭共增上因
彼此心緣合
無明覆於心
故夢寤果別

죽이는 일이 타심(他心)에 의하며
또한 자심(自心)에 의하기도 하여
가지가지 인연에 의해서
자기 심식(心識)을 잃어버리네.
017_0500_c_06L死依於他心
亦有依自心
及種種因緣
破失自心識

경에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단나가(檀拏迦)ㆍ가릉가(迦陵迦)ㆍ마등(摩登)의 나라는
신선이 성냄으로 인해 텅 비었나니
그러므로 마음 업이 참으로 중하네.
017_0500_c_08L經說檀拏迦
迦陵摩燈國
仙人瞋故空
是故心業重

모든 법에서 마음이 근본이요
모든 법에서 마음이 수승하나니
마음 떠나서는 모든 법이 없어
마음뿐이고 몸과 입은 이름뿐이네.
017_0500_c_09L諸法心爲本
諸法心爲勝
離心無諸法
唯心身口名

타심(他心)으로 경계를 안다는 것은
실답게 깨달아 아는 것 아니니
식(識)의 경계를 떠난 것 아니기 때문이라
부처님만이 실답게 아시리.
017_0500_c_10L他心知於境
不如實覺知
以非離識境
唯佛如實知

내가 지금 이 유식론을 짓는 것이
내가 생각해 낸 것 아니니
부처님의 미묘하고 깊은 경지의
북과 덕을 중생에게 베풀려 함이네.
017_0500_c_12L作此唯識論
非我思量義
諸佛妙境界
福德施群生

【문】그 첫 게송은 어떠한 내용을 밝힌 것인가.
017_0500_c_13L問曰此初偈者明何等義
【답】무릇 논(論)을 짓는 것에는 모두 세 가지 내용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냐 하면, 첫째는 뜻을 세움[立義]이요, 둘째는 인증(引證)을 함이요, 셋째는 비유(譬喩)이다.
017_0500_c_14L答曰凡作論者皆有三義何等爲三一者立義ㆍ二者引證ㆍ三者譬喩
뜻을 세움이란 게송에서 ‘식(識)뿐이고 경계(境界)가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인증을 함이란 게송에서 ‘진(塵)이 없는데 있다고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비유란 게송에서 ‘사람에게 눈에 백태가 있으면 털이나 달 따위가 보이는 것과 같네.’라고 말한 것과 같다.
017_0500_c_16L立義者如偈言唯識無境界引證者如偈言以無塵妄見譬喩者如偈言如人目有見毛月等事
또 다시 이러한 뜻이 있으니, 대승경(大乘經)에서 ‘3계(界)가 마음뿐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음뿐이라’고 한 것은 다만 안의 마음만이 있고 빛깔, 냄새 따위의 바깥 경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십지경(十地經)』에서 말씀하시기를 ‘3계(界)가 허망하나니 다만 하나의 마음으로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017_0500_c_19L又復有義如大乘經中說三界唯心唯是心但有內無色香等外諸境界此云何知『十地經』說三界虛妄但是一心作
마음ㆍ뜻ㆍ의식(意識)ㆍ요별(了別) 따위의 그와 같은 네 가지 법은 내용은 하나이고 명칭만 다르나니 그것은 서로 응하는 마음[相應心]에 의하여 말한 것이요,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相應心]에 의하여 말한 것이요,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不相應心]에 의하여 말한 것은 아니다.
017_0500_c_22L心ㆍ意與識及了別等如是四法義一名異此依相應心說非依不相應心
017_0501_a_01L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서로 응하는 마음[相應心]이요, 둘째는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不相應心]이다.
서로 응하는 마음이란 이른바 온갖 번뇌의 결사(結使)와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 따위의 모든 마음과 서로 응한다 함이니, 그 까닭으로 마음ㆍ뜻ㆍ의식ㆍ요별(了別) 따위가 내용은 하나이고 명칭만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이란, 이른바 제일의제(第一義諦)로서 항상 머무르고 변치 아니하여 자성(自性)이 청정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017_0501_a_02L心有二種何等爲二一者相應心ㆍ二者不相應心相應心者所謂一切煩惱結使ㆍ受想行等諸心相應以是故言心意與識及了別等義一名異不相應心者所謂第一義諦常住不變自性淸淨心
‘3계(界)가 허망하나니 다만 하나의 마음으로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게송에서 말하기를 ‘식(識)뿐이고 경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위에서 뜻 세움[立義]을 이미 밝혔으니 다음엔 인증(引證)에 대해 밝히리라.
017_0501_a_07L故言三界虛妄但是一心作是故偈言唯識無境界已明立義次辯引證
【문】어떤 일로써 증험하여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는 없고 다만 안의 마음만이 있어 능히 허망하게 목전의 경계를 보는 것이라고 아는가.
【답】게송에서 ‘6진(塵)이 없는데 있다고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함이니 ‘6진이 없는데 있다고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 함은 다만 안의 마음만이 있어 허망하게 분별을 내며 빛깔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능히 본다는 것을 의미함이다.
017_0501_a_09L問曰以何事驗得知色等外境界無但有內心能虛妄見前境界也
答曰偈言以無塵妄見無塵妄見者明畢竟無色等境界有內心妄生分別能見色等外諸境界已明引證次顯譬喩
【문】만일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가 없다면 다만 그러한 말만이 있는가. 또한 그에 관한 비유도 있는가.
017_0501_a_14L問曰若無色等外境界者爲但有言說ㆍ爲亦有譬
【답】게송에서 ‘사람에게 눈에 백태가 있으면 털이나 달 따위가 보이는 것과 같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힘이냐하면, 비유컨대 사람의 눈에 혹 백태나 열기(熱氣)의 병 따위가 있으면 그로 인하여 허망스레 갖가지 모든 사물을 보며, 허공중에서 털이나 아지랑이를 보며, 두 개의 달과 눈흘림과 건달바성(乾闥婆城)을 보나니 그와 같은 것들은 실제로 목전에 그러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허망하게 본 것에 불과하다. 빛깔ㆍ냄새ㆍ맛ㆍ따위를 수용하는 것과 바깥의 모든 경계도 역시 모두 그와 같나니 끝없는 세상 오면서 안의 마음이 뒤바뀌고 미혹하여 괜히 수용함이 있다고 본 것이요, 실로 빛깔 따위의 바깥의 경계는 전혀 없다.
017_0501_a_16L答曰偈言如人目有瞖見毛月等事此明何義譬如人目或有膚瞖熱氣病等是故妄見種種諸事於虛空中睹見毛炎等見第二月及以夢幻乾闥婆城如是等法實無前事但虛妄見而有受用色香味等外諸境界皆亦如是無始世來內心倒惑妄見有實無色等外諸境界
【문】게송에서 말한,
問曰偈言
017_0501_b_01L
만일에 마음뿐이고 6진(塵)이 없으며
바깥 경계를 허망하게 보는 것 떠났다면
장소와 시간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과
사람이거나 짓는 일은 무엇이리.
017_0501_a_23L若但心無塵
離外境妄見
處時定不定
人及所作事

라고 한,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빛깔 따위의 바깥 모든 경계를 떠났는데도 허망하게 본 것이라 한다면, 무슨 내용으로 말미암아 빛깔이 있는 장소에는 눈으로 곧 빛깔을 보고 그 밖의 빛깔이 없는 장소에서는 곧 빛깔을 보지 못하는가?’
017_0501_b_02L此偈明何義若離色等外諸境界妄見者以何義故於有色處眼則見色ㆍ餘無色處則不見色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에 빛깔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저 보는 장소에 관하여 빛깔이 있는 때에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빛깔이 없는 때에는 빛깔을 보지 못하는가?’
017_0501_b_05L又復有難無色等外諸境界虛妄見者以何義卽彼見處於有色時眼則見色ㆍ於無色時則不見色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에 빛깔 따위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그와 같이 응당 어느 때던지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러하지 않는다면 응당 어느 때에나 모두 다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하였고,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기를 ‘만일에 마음뿐이고 6진(塵)이 없으며 바깥 경계를 허망하게 보는 것 떠났다면 장소와 시간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이다.’라고 하였다.
017_0501_b_08L又復有難若無色等外諸境界虛妄見者如是則應一切時見若不如是應一切時悉皆不是故偈言若但心無塵離外境妄處時定不定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에 빛깔 따위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함께 모여 빛깔이 있는 곳에서는 함께 빛깔을 보고 빛깔이 없는 곳에서는 함께 보지 못하는가?’
017_0501_b_12L又復有難若無色等外諸境界虛妄見者以何義故人共集同處同時於有色處則同見色ㆍ於無色處則同不見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에 빛깔 따위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은 허망하게 해와 달과 털바퀴와 파리 따위를 보고 눈이 청정한 사람은 곧 허망하게 보지 아니하는가?’
017_0501_b_15L又復有難無色等外諸境界虛妄見者以何義眼瞖之人妄見日月毛輪蠅等眼之人則不妄見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에 평등하게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이 보는 해와 달과 털바퀴와 파리 따위는 모두 다 작용이 없고 눈이 청정한 사람이 보는 바가 있는 것은 모두 다 작용이 있는가?’
017_0501_b_18L又復有難若等無有色香味等外諸境界虛妄見者何義故眼瞖之人所見日月毛輪蠅等皆悉無用淨眼之人有所見者皆悉有用
017_0501_c_01L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 평등하게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꿈에 보는 음식과 배부름과 굶주림과 칼이나 곤장과 독약인 그러한 따위의 사실은 모두 다 작용이 없고 깰 적에 보는 음식과 배부름과 굶주림과 칼이나 곤장과 독약인 그러한 따위의 사실은 모두 다 작용이 있는가?’
017_0501_b_22L又復有難若等無有色香味等外諸境界虛妄見者以何義故中所見飮食飢飽刀杖毒藥如是等事皆悉無用寤時所見飮食飢飽刀杖毒藥如是等事皆悉有用
또 다시 힐난하기를 ‘만일 평등하게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무슨 까닭으로 건달바성(乾闥婆城)은 실로 성(城)이 없어서 성의 작용이 없고 그 밖의 성(城)은 모두 실로 성(城)이 있어 성(城)의 작용이 있는가? 그러한 까닭으로 말미암아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모든 경계가 모두 실로 있어서 눈병이나 꿈이나 건달바성 따위와 같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장소와 시간과 사람의 짓는 업이 모두 실로 있어서 꿈 따위와 같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장소와 시간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과 사람이거나 짓는 일은 무엇이리.’라고 하였다.
017_0501_c_03L又復有若等無有色香味等外諸境界妄見者以何義故乾闥婆城實無有城而無城用自餘城者皆實有城而有城用以是義故色香味等外諸境界皆悉實有不同瞖夢乾闥婆城等是故處時人所作業皆是實有不同夢是故偈言處時定不定人及所作
【답】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장소와 시간 따위의 모든 사실에
빛깔 따위인 바깥 법이 없는데
사람의 꿈에서와, 그리고 아귀들은
업(業)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나니
017_0501_c_11L處時等諸事
無色等外法
人夢及餓鬼
依業虛妄見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그대가 말한, ‘무슨 내용으로 말미암아 빛깔이 있는 장소에서는 눈으로 곧 빛깔을 보고, 그 밖의 빛깔이 없는 장소에서는 곧 빛깔을 보지 못하는가?’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저 꿈속에서 빛깔이 없는 장소에서도 곧 빛깔이 있는 것을 보고 빛깔이 있는 장소에서도 빛깔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017_0501_c_13L此偈明何義汝言以何義故於有色處眼則見色餘無色處不見色者義不然何以故以彼夢中於無色處則見有色於有色處不見色故
또 그대가 말한 ‘무슨 까닭으로 저 보는 장소에 관하여 빛깔이 있는 때에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빛깔이 없는 때에는 빛깔을 보지 못하는가?’라고 한 것은 그대가 무슨 까닭으로 말했던가.
저 꿈속에서 어떤 장소에서는 마을이나 성읍(城邑)이나 남자ㆍ여자 따위를 모두 보기도 하고, 혹 저 장소에서는 마을이나 성읍이나 남자ㆍ여자 따위를 모두 보지 못하기도 하며, 혹 어느 때에는 보기도 하고, 혹 어느 때에는 보지 못하기도 하여 항상 보는 것이 아니다.
017_0501_c_17L又汝以何義故卽彼見處於有色時眼則見色若無色時不見色者汝以何義於彼夢中一處見有聚落城邑及男女等或卽彼處聚落城邑及男女等皆悉不見或時有見ㆍ或時不見是常見
017_0502_a_01L또 그대가 말한 ‘만일에 빛깔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가 없는데 허망하게 본다면 그와 같이 응당 어느 때던지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러하지 않는다면 응당 어느 때에나 모두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어느 장소와 어느 때고 빛깔ㆍ냄새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가 없고, 또한 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시간에 함께 보기도 하고, 또한 동일한 장소와 동일한 시간에 보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사람의 꿈에서와 그리고 아귀들은 업(業)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나니’라고 말했다.
017_0501_c_23L又汝言若無色等外諸境界虛妄見者如是則應一切時見若不如是應一切時不見者此義不然以故有於處時無色香等外諸境界亦有同處同時同見亦有同處同時不見是故偈言人夢及餓鬼依業虛妄見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그대가 먼저 번에 말하기를 ‘만일 빛깔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가 없다면 어찌하여 어떤 때와 어떤 장소에서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하느냐?’고 한, 그 내용은 성립되지 않아 그는 곧 허망한 말이 된다. 왜냐하면 응당 빛깔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나서도 시간이나 장소 따위의 사실이 모두 성립되기 때문이다.
017_0502_a_05L此明何義以汝向言若無色等外諸境界云何有時處等見不見此義不成是虛妄說何以故應離色等外諸境界時處等事皆悉成故
또 그대가 말한 ‘무슨 까닭으로 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함께 모여 빛깔이 있는 곳에서는 함께 빛깔을 보고, 빛깔이 없는 곳에서는 함께 보지 못하는가?’라고 함과, 또 그대가 말하기를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은 허망하게 해와 달과 털바퀴와 파리를 보고 눈이 청정한 사람은 허망하게 보지 아니하는가?’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아귀(餓鬼) 따위들은 빛깔ㆍ냄새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나서도 장소와 시간ㆍ사람 따위의 온갖 것들이 모두 성립된다.
017_0502_a_09L又汝言以何義故多人共集同處同時於有色處則同見色於無色處則同不見又汝言眼瞖之人妄見日月毛輪蠅等淨眼之人不妄見者此義不然何以故如餓鬼等離色香等外諸境界處時人等一切皆成
그 내용이 어떠한가 하면, 아귀 따위들은 혹 백의 같은 업[同業]과, 혹 천의 같은 업[同業]으로 강물이 모두가 고름이라고 보고, 혹은 모두 피로 보며, 혹은 소변으로 보고, 혹은 대변으로 보며, 혹은 흐르는 쇠로 보고, 혹은 흐르는 물로 보되, 두 언덕 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칼이나 곤장을 가지고 지키며 막아 있어서 그 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본다. 그는 빛깔ㆍ소리ㆍ냄새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났으나, 그러나 허망하게 보나니 그러므로 게송에서 ‘사람의 꿈에서와 그리고 아귀들은 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나니’라고 말했다.
017_0502_a_14L義云何如餓鬼等或百同業ㆍ或千同同見河中皆悉是膿或皆見血ㆍ或見小便ㆍ或見大便ㆍ或見流鐵ㆍ或見流而兩岸邊多有衆人執持刀杖守掌防護不令得飮此則遠離色聲香等外諸境界而虛妄見是故偈言夢及餓鬼依業虛妄見
017_0502_b_01L또, 그대가 말하기를 ‘무슨 까닭으로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이 보는 해와 달과 털바퀴와 파리 따위는 모두 다 작용이 없고 눈이 청정한 사람이 보는 것은 모두 다 작용이 있는가? 꿈에 보는 음식과 배부름ㆍ굶주림ㆍ칼ㆍ곤장ㆍ옥약등 그러한 따위의 사실은 모두 다 작용이 없고 깰 적에 보는 음식과 배부름ㆍ굶주림ㆍ칼ㆍ곤장ㆍ독약인 그런 것들만이 모두 그 작용이 있는가? 또 무슨 까닭으로 건달바성(乾闥婆城)은 실로 성(城)이 없어서 성(城)의 작용이 없고 그 밖의 성(城)은 모두 실로 성(城)이 있어 성(城)의 작용이 있는가?’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를 다음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2_a_21L又汝言以何義故眼瞖之人所見日月毛輪蠅等皆悉無用淨眼之人皆悉有用夢中所見飮食飢飽刀杖毒藥如是等事皆悉無用寤時所見飮食飢飽刀杖毒藥如是等皆悉有用又汝言以何義故乾闥婆城實無有城而無城用自餘城者皆實有城而有城用者此義不然何以故又偈言

꿈속에 여자가 있지 않는데도
몸을 움직여 유정을 하며
지옥에서 모두들 그 지옥주(地獄主)에게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 같네.
017_0502_b_05L如夢中無女
動身失不淨
獄中種種主
爲彼所逼惱

그 게송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사람이 꿈속에 실로 여인(女人)이 없건마는 여인과 성교하는 것을 보고 유정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끝없는 세상 적부터 오면서 허망하게 빛깔ㆍ냄새ㆍ맛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를 수용하나니 모두가 그와 같아 실로 없지마는 성립되므로 그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 비유로써 빛깔ㆍ냄새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났으나 장소와 시간과 사람과 짓는바 업 따위의 네 가지 사실이 성립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017_0502_b_07L此偈明何義如人夢中實無女人見女人與身交會漏失不淨衆生如無始世來虛妄受用色香味等外諸境界皆亦如是實無而成以如是等種種譬喩離色香等外諸境界有處ㆍ時ㆍ人ㆍ所作業等四種事成
또 다시, 한 가지 비유가 있으니 빛깔ㆍ냄새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나서 네 가지 사실이 성립되나 모두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기를 ‘지옥에서 모두들 그 지옥주(地獄主)에게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 같네.’라고 하였다.
017_0502_b_13L又復更有一種譬喩離色香等外諸境界四種事成皆虛妄不實是故偈言中種種主爲彼所逼惱
그 게송은 무슨 뜻을 밝힌 것이냐 하면, 저 네 가지 사실이 빛깔ㆍ냄새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를 떠났으나 모든 것이 모두 성립된다 함이다. 어떻게 모두 성립되느냐 하면, 지옥 안에 지옥주(地獄主)가 없지마는 지옥 중생들은 자기의 죄업(罪業)에 의하여 지옥주를 보되 저 지옥주가 갖가지 고통을 준다고 하며,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소견을 내되 ‘이것은 지옥이며, 이것은 지옥의 장소며, 이것은 지옥의 시간이며, 이것은 지옥의 밤이고, 이것은 지옥의 낮이며, 이것은 지옥의 아침 시간이고, 이것은 지옥의 오후 시간이며, 저것은 지옥주(地獄主)이고 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다.’고 하여, 나쁜 업 때문에 개와 까마귀를 보고, 혹은 쇠 갈고리[鐵鉤]를 보며, 혹은 두 양(羊)을 보기도 한다.
017_0502_b_16L此明何義四種事離色香等外諸境界一切皆云何皆成如地獄中無地獄主地獄衆生依自罪業見地獄主彼地獄主與種種苦而起心見此是地獄此是地獄處此是地獄時此是夜時ㆍ此是晝時此中前時ㆍ此中後時彼是地獄主ㆍ我是作罪人以惡業故見狗見烏ㆍ或見鐵鉤或見兩羊ㆍ或見兩山
017_0502_c_01L그리고 혹은 두 산이 양쪽으로부터 와서 죄인의 몸을 핍박하는 것을 보기도 하며, 혹은 죄인이 칼 나무[劒樹]에 오를 적에는 칼날이 아래로 향하고 죄인이 내려올 적에는 칼날이 위로 향하여 꽉 둘러 있는 것을 본다.
017_0502_b_24L從兩邊來逼罪人身ㆍ或見劍樹罪人上時劍刃向下罪人下時劍刃向上周帀而有
왜냐하면 업이 같기 때문에 함께 같이 모이어 모두가 같이 보고 과보를 같이 받는다. 만일 업이 같지 아니하면 곧 함께 모이지 아니하며, 또한 같이 보지도 아니하고 같이 고통을 받지도 아니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대가 말한 ‘장소와 시간의 일정함과 일정하지 않음과 사람이거나 짓는 일은 무엇이리.’라고 함과 ‘응당 빛깔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가 있고, 장소와 시간과 사람과 짓는바 업 따위가 모두 실로 있다.’고 함이 또한 허망하다.
그러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장소와 시간과 사람과 짓는바 업 따위의 그 네 가지 사실을 한 가지 지옥의 비유만으로도 모두가 허망함이 된다고 그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7_0502_c_03L何以故以業同故同共聚皆悉同見同受果報若業不同不同集亦不同見不同受苦以是義汝言處時定不定人及所作事有色等外諸境界處時及人所作業等皆是實者彼亦虛妄以是義故處時及身所作業等此四種事唯以一種地獄譬喩皆成虛妄應如是知
【문】지옥 안의 지옥주와 까마귀ㆍ개ㆍ염소 따위는 바로 중생인가, 중생이 아닌가.
【답】그는 중생이 아니다.
017_0502_c_10L問曰地獄中主烏狗羊等爲是衆生ㆍ爲非衆生
答曰非是衆生
【문】무슨 까닭으로 그것이 중생이 아니라고 하는가.
017_0502_c_12L問曰以何義故非是衆生
【답】상응(相應)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무슨 내용이 있느냐 하면, 다섯 가지 재용이 있어서 저 지옥주와 까마귀ㆍ개 따위가 중생이 아닌 것이다.
017_0502_c_13L答曰以不相應故此以何義有五種義彼地獄主及烏狗等非是衆生
무엇이 다섯이냐 하면, 첫째는 지옥 안에서 죄가 있는 중생들이 가지가지 고통을 받나니 지옥주들이 만약 중생이라면 그들도 역시 가지가지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거늘 그들은 한결같이 그와 같은 가지가지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러한 내용으로 보아서 그들은 중생이 아니다.
017_0502_c_15L何等爲五者如地獄中罪衆生等受種種苦獄主等若是衆生亦應如是受種種而彼一向不受如是種種苦惱是義故彼非衆生
둘째는 그 지옥주들이 만약 중생이라면, 응당 서로 서로 살해할 것이므로 이것은 죄인이며, 이것은 지옥주라고 분별할 수 없을 것이거늘 실로 서로 서로가 살해하지 아니하여 이것은 죄인이며 이것은 옥주라고 분별할 수가 있나니 그러한 내용으로 그들은 중생이 아니다.
017_0502_c_19L二者地獄主等若是衆生應迭相殺害不可分別此是罪人此是主等而實不共遞相殺害可得分別此是罪人ㆍ此是獄主以是義故彼非衆生
017_0503_a_01L셋째는 지옥주들이 만약 중생이라면, 형체와 힘 따위가 모두 같아서 응당 서로 서로 살해할 것이므로 응당 죄인만이 공포를 받지 아니할 것이거늘 실로 죄인만이 공포를 받고 있으니 그러한 내용으로 그들은 중생이 아니다.
017_0502_c_23L三者地獄主等若是衆生形體力等應遞相殺害不應偏爲受罪人畏而實偏爲罪人所畏是義故彼非衆生
넷째는 저 지옥의 땅은 항상 뜨거운 철이기에 지옥주들이 바로 중생이라면, 능히 그 고통을 참지 못할 것이거늘 어찌 저 죄 받는 사람들을 칠 수가 있으랴. 그러나 실로 저 죄 받는 사람들을 해치고 있나니 그러한 내용에서 그들은 중생이 아니다.
017_0503_a_03L四者彼地獄地常是熱鐵地獄主等是衆生者不能忍云何能害彼受罪人而實能害彼受罪人以是義故彼非衆生
다섯째는 지옥주가 만약 중생이라면, 죄를 받지 않는 사람은 저 지옥 안에 나지 아니할 것이거늘, 그러나 실로 저 지옥에 태어나나니 그러한 내용에서 그들은 중생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내용이냐 하면, 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은 5역(逆) 따위의 온갖 악업(惡業)을 지어 그곳에 태어나거니와 지옥주들은 악업을 짓지 아니했거늘 어찌하여 그 곳에 태어났겠는가. 그러한 다섯 가지 내용으로 말미암아 상응하지 않음이라고 말한다.
017_0503_a_06L五者地獄主等若是衆生非受罪人不應於彼地獄中生而實生於彼地獄中是義故彼非衆生此以何義彼地獄中受苦衆生造五逆等諸惡罪業於彼中生地獄主等不造惡業云何生彼以如是等五種義故名不相應
【문】만일 저 옥주들이 중생이 아니고 죄업을 짓지 아니했으며 그곳에 태어나지도 않는다면 어찌하여 하늘에 축생이 있는가? 그것은 무슨 내용이냐 하면, 저 하늘 안에 갖가지의 새와 모든 축생들이 저 곳에 태어나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는 무슨 까닭으로 그러하지 않으면서 축생ㆍ아귀 등 갖가지 것들이 섞여나서 그들로 하여금 주(主)가 되게 하는가?
017_0503_a_12L問曰若彼主等非是衆生不作罪業不生彼者云何天中得有畜生此以何如彼天中有種種鳥諸畜生等生在彼處於地獄中何故不爾畜生餓鬼種種雜生令彼爲主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축생이 천상에 태어나 있지마는
지옥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나니
그 까닭은 천상에 있어서는
축생의 고통을 받지 않음이네.
017_0503_a_17L畜生生天中
地獄不如是
以在於天上
不受畜生苦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저 축생들이 천상에 태어난 것은 저 천상의 기세계[器世間]에서 조그마한 업이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저 기세계에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지옥의 지옥주와 까마귀와 개 따위들은 온갖 고통을 받지 아니하나니 그러한 까닭으로 저 지옥에는 실지의 옥주와 까마귀와 개 따위가 없다. 단 죄업의 중생만은 예외이다.
017_0503_a_19L此偈明何義彼畜生等生天上者於天上器世閒中有少分業是故於彼器世閒中受樂果報彼地獄主及烏狗等不受諸苦以是義故彼地獄中無有實主及烏狗等除罪衆生
017_0503_b_01L【문】만일 그렇다면 지옥의 중생들이 죄업에 의하여 바깥 4대(大) 따위 가지가지로 전변(轉變)하며 그 중의 몸이나 힘 따위가 수승한 이를 지옥주ㆍ까마귀ㆍ개 따위라고 말한다. 어떤 것은 4대(大)의 전변함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그곳에서 4대(大)가 가지가지로 전변하되 손이나 다리 따위를 움직이며 입으로는 말을 하여 죄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래고 두려워하도록 한다. 그리고 두 마리의 염소가 양쪽에서부터 와서 저 지옥의 중생들을 함께 살해하며 모든 산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여 그 중생들을 살해하는 것이 보이고, 쇠 나무숲이 보이고, 가시 숲 따위가 보이는데 죄인들이 그 곳에 오를 때에는 나무 가시가 아래로 향하고 죄인들이 내려 올 때에는 그 나무 가시가 위로 향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안의 마음만 있고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017_0503_b_01L問曰若如是者地獄衆生依罪業故外四大等種種轉變形色力等勝者名主及烏狗等云何名爲四大轉變處四大種種轉變動手腳等及口言令受罪人生於驚怖如有兩羊從兩邊來共殺害彼地獄衆生見有諸山或來或去殺害衆生見鐵樹林見棘林等罪人上時樹刺向下罪人下時樹刺向上以是義故不得說言唯有內心無外境界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만일 중생의 업에 의하여
4대(大)가 그와 같이 변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 업에 의하여
마음이 그렇게 전변하지 않으랴.
017_0503_b_11L若依衆生業
四大如是變
何故不依業
心如是轉變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그대가 위에서 말하기를 ‘죄인의 업에 의하여 바깥 4대(大) 따위가 그와 같이 전변한다.’고 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저 중생들의 죄업력(罪業力)에 의하여 안의 자기 심식(心識)이 그와 같이 전변한다고 말하지 아니하는가. 마음의 허망한 분별에서 바깥 4대(大) 따위가 그와 같이 전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017_0503_b_13L此偈明何義汝向言依罪人業外四大等如是轉變何故不言依彼衆生罪業力故內自心識如是轉變而心虛妄分別說言外四大等如是轉變
또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3_b_17L又偈言

업이 다른 법을 훈습(薰習)하면
과보가 어찌 다른 장소이리오.
선과 악이 마음을 훈습하거니
어찌 마음을 떠나서 말하랴.
017_0503_b_18L業熏於異法
果云何異處
善惡熏於心
何故離心說
017_0503_c_01L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그대가 허망하게 분별해서 말하기를 ‘저 중생들의 죄업력에 의하여 바깥 4대(大) 따위가 그와 같이 전변하여 저 죄인들에게 갖가지 두려움이 생기게 한다.’고 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저 중생들의 죄업력에 의하여 안의 자기 심식(心識)이 그와 같이 전변한 것이다.’고 그와 같이 말하지 아니하는가? 그러므로 게송에서 ‘업이 다른 법을 훈습하면 과보인들 어찌 다른 장소이리오.’라고 말하였다.
017_0503_b_20L此偈明何義以汝虛妄分別說言依彼衆生罪業力故外四大等如是轉變生彼罪人種種怖等以何義故不如是說依彼衆生罪業力故內自心識如是轉變是故偈言業熏於異法云何異處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저 지옥 중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의 온갖 죄업은 본마음[本心]에 의하여 지었고 도로 마음 안에 있어서 마음을 떠나지 아니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악업이 마음을 훈습하고서 도로 마음 안에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 왜냐하면 선ㆍ악의 업은 심식(心識)을 훈습하고, 저 바깥 4대(大) 따위를 훈습하지 않나니 4대(大) 안에는 훈습하는 사실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03_c_03L此以何義彼地獄中受苦衆生所有罪業依本心作還在心不離於心以是義故惡業熏心應心中受苦果報何以故以善惡業熏於心識而不熏彼外四大等以四大中無所熏事
어찌 허망한 분별로 ‘4대(大)가 전변하여 4대(大) 중에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말하랴. 그러므로 다음 게송에서 ‘선과 악이 마음을 훈습하거니 어찌 마음을 떠나서 말하랴.’라고 말하였다.
017_0503_c_08L云何虛妄分別說言四大轉變於四大中受苦果報是故偈言善惡熏於心何故離心說
【문】그대가 위에서 말함과 같이 무슨 까닭으로 ‘저 중생들의 죄업력에 의하여 안의 자기 심식(心識)이 그와 같이 전변한 것이라 말하지 아니하느냐 함과 마음의 허망한 분별로 바깥 4대(大) 따위가 그와 같이 전변함이라’고 말한 그것은 무슨 내용인지를 아함(阿含)에 근거를 두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함이라 함은 부처님 여래께서 말씀하신 언교(言敎)를 뜻함이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 만일 다만 심식(心識)의 허망한 분별로 바깥 경계를 본 것이요,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로부터 눈의 인식[眼識] 따위가 나온 것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으로 여래가 경중에서 ‘눈ㆍ빛깔 따위의 열두 가지 받아들임[入]’을 말씀하셨겠는가? 여래께서 12입(入)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응당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경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017_0503_c_10L問曰如汝向說何故不言依彼衆生罪業力故內自心識如是轉變而心虛妄分別說言外四大等如是轉變者此以何義以有阿含證驗知故言阿含者謂佛如來所說言教此以何義但心識虛妄分別見外境界不從色等外境界生眼識等者以何義故如來經中說眼色等十二種入以如來說十二入故明知應有色香味等外境界也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빛깔 따위 온갖 받아들임[入]을 말함은
교화 받을 만한 중생을 위하심이요,
그보다 앞에서 법을 받은 이에겐
화생(化生)이 있다고 말씀하셨네.
017_0503_c_20L說色等諸入
爲可化衆生
依前人受法
說言有化生
017_0504_a_01L
그 게송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가? 그대가 앞에서 말하기를, ‘아함(阿含)에 근거를 두어 알 수 있기 때문에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인 12입(入)과 바깥의 모든 경계가 모두 다 있다.’고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저 경의 뜻을 이끌어 인증한 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시 딴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여래가 ‘저 마음 업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음’에 의하여 ‘화생(化生)하는 중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또 다시 딴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나≻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자(壽者)도 없고 오직 인연이 화합하여 모든 법의 생김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기를, ‘그보다 앞에서 법을 받은 이에겐 화생(化生)이 있다고 말씀하셨네.’라고 하였다.
017_0503_c_22L此偈有何義以汝向言以有阿含證驗知故色香味等十二入外諸境界皆悉是有若如是者彼所引經義則不然何以故以復有餘修多羅中依彼心業相續不斷不絕是故說有化生衆生又復有餘修多羅中無我無衆生無壽者唯因緣和合有諸法生是故偈言依前人受法言有化生
여래가 그와 같이 빛깔 따위의 받아들임[入]을 말씀하신 것은, 앞의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받도록 하기 위하심이니 저 앞의 사람들은 인연인 모든 법체가 공(空)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실로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가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빛깔 따위의 온갖 받아들임[入]을 말함은, 교화 받을 만한 중생을 위하심이요.’라고 말하였다.
017_0504_a_09L如來如是說色等入令前人得受法故以彼前人未解因緣諸法體空非謂實有色香味等外諸境界是故偈言說色等諸入爲可化衆生
【문】만일에 실로 빛깔 따위의 받아들임[入]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여래가 경에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가?
017_0504_a_13L問曰若實無有色等入以何義故如來經中作如是說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4_a_14L偈言

저 본래의 마음 지혜에 의하여
식(識)의 허망으로 바깥 경계를 취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팎의 온갖 받아들임 있다고 하셨네.
017_0504_a_15L依彼本心智
識妄取外境
是故如來說
有內外諸入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오직 안에 마음의 허망 분별로 빛깔 따위 바깥의 모든 경계가 있다고 봄이니, 그것은 끝없는 마음ㆍ뜻ㆍ의식 따위인 종자(種子)의 전변함에 의하여 허망스레 저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 경계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그 허망한 두 가지 법에 의하여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냐 하면, 첫째는 근본 식(識)의 종자요, 둘째는 허망한 바깥 경계 따위이니, 그 두 가지 법에 의하여 여래께서, ‘눈ㆍ빛깔 따위의 받아들임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그와 같이 차례로 내지 ‘몸의 닿음[身觸]이 있다.’고 하셨다.
017_0504_a_17L此偈明何義唯是內心虛妄分別有色等外諸境界此依無始心意識等種子轉變虛妄見彼色香味等外諸境界是故如來依此虛妄二種法作如是說何者爲二一者本識種子ㆍ二者虛妄外境界等依此二法來說有眼色等入如是次第乃至
017_0504_b_01L허망한 마음이 끝없는 옛적부터 오면서 마음ㆍ뜻ㆍ의식 따위인 종자가 전변(轉變)함에 의하여 허망스레 저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보기 때문에 여래께서 그 허망한 두 가지 법에 의하여 그와 같은 말을 하신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근본 식(識)의 종자요, 둘째는 허망한 바깥 경계 따위이니 그 두 가지 법에 의하여 여래께서 ‘몸의 닿음 따위인 받아들임이 있다.’고 하셨고, 또 차례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저 본래의 마음 지혜에 의하여 식(識)의 허망으로 바깥 경계 취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팎의 온갖 받아들임 있다고 하셨네.’라고 말하였다.
017_0504_b_02L以虛妄心依無始來心意識等種子轉變虛妄見彼色香味等外諸境是故如來依此虛妄二種法故如是說何者爲二一者本識種子ㆍ二者虛妄外境界等依此二法如來說有身觸等入如是次第是故偈言彼本心智識妄取外境是故如來說有內外諸入
【문】만일 그와 같은 뜻에 의하여 말한들 무슨 공덕과 이익이 있는가.
017_0504_b_09L問曰若依如是義說有何功德利益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4_b_10L答曰偈言

허망하여 진실함 없다고 관찰하면
그와 같은 이는 아공(我空)에 들어
온갖 다른 법을 관찰한다면
모든 법 ≺나≻ 없음에 들어가리.
017_0504_b_11L觀虛妄無實
如是入我空
觀於諸異法
入諸法無我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성문(聲聞)들로 하여금 저 여섯 감관(六根)과 여섯 대상[六塵]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인식[六識]을 내나니 눈의 인식은 빛깔을 보고 더 나아가서는 몸의 인식은 닿음을 안다. 어느 한 법이라도 진실이라고 볼 것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어느 한 법이라도 진실이라고 느낄 것이 없음을 알도록 하심이다. 교화 받을 만한 중생들로 하여금 그러한 관찰을 하여 인무아공(人無我空)에 들도록 하심이니 그러므로 게송에서, ‘허망하여 진실함 없다고 관찰하면 그와 같은 이는 아공(我空)에 들며’라고 말하였다.
017_0504_b_13L此偈明何義爲令聲聞解知因彼六根六塵生六種識眼識見色乃至身識覺觸無有一法是實見者乃至無有一法是實覺者爲令可化諸衆生等作是觀察入人無我空是故偈言觀虛妄無實如是入我空
017_0504_c_01L아래의 반 게송인 ‘온갖 다른 법을 관찰한다면 모든 법 ≺나≻ 없음≺法無我≻에 들어가리’라고 한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온갖 다른 법을 관찰한다면’이라 함은, 보살이 ‘오직 안의 식(識)만 있을 뿐이라’고 관찰함을 뜻함이다. 어떻게 관찰하느냐, 이를테면 보살이 관찰하기를, ‘바깥의 여섯 대상[六塵]은 있지 않고 오직 안의 식(識)만 있을 뿐이다. 허망하게 안의 감관과 밖의 대상이 있다고 보나 실제로 빛깔 따위 바깥의 대상과 어느 한 법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실로 어느 한 닿음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함이니, 그와 같이 관찰하면 인연과 모든 법체(法體)의 공한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017_0504_b_19L觀於諸異法入諸法無我此下半偈復明何義觀於諸異法者菩薩觀察唯有內識云何觀察謂菩薩觀無外六唯有內識虛妄見有內外根塵實無有色等外塵一法可見乃至實無一觸可覺如是觀察得入因緣諸法體空
【문】만일 일체 법이 필경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앞에서 말하기를, ‘식(識) 따위만 있다.’고 하였는가. 만일 그렇다면 저 식(識) 따위도 역시 없어야 할 것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안의 식(識)만이 있다.’고 말했는가.
【답】나는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필경에 없다고 말하지 아니했나니, 그와 같이 하여야만 모든 법의 ≺나≻ 없음[諸法無我]에 들어간다.
017_0504_c_03L問曰若一切法畢竟無者何故向言唯有識等若爾彼識等亦應是無何故說言唯有內識
答曰不說言一切諸法皆畢竟無如是則入諸法無我
【문】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모든 법의 ≺나≻ 없음에 들어가는가.
【답】허망한 법을 막아버리기 위한 때문이다. 허망한 법을 막아 버리기 위함이란, 온갖 외도(外道)와 일체 범부들이 허망하게 분별하여 ‘빛깔 따위인 모든 법의 자체가 실로 있다.’고 하나니 그러한 허망하게 분별함을 막아버리기 위하여 ‘빛깔 따위인 일체 모든 법이 필경에 공하여 없다.’고 말한 것이요, 말 없는 자리도 모두 다 공하여 없다는 것이 아니다. 말 없는 자리란, 이른바 부처님ㆍ여래께서 행하신 자리이다. 그와 같이 오직 참다운 식[眞識]만 있고 다시 그 외의 식(識)은 없다. 능히 그와 같이 분별하고 관찰하여 식(識)의 공함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그와 같이 식(識)에 의하여 ‘일체 모든 법이 ≺나≻가 없다.’고 말한 것이요, 한결같이 참다운 식[眞識]인 ≺나≻를 훼방하여 ‘불성(佛性)인 진실식[實識]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017_0504_c_07L問曰若爾云何入法無我
答曰爲遮虛妄法故遮虛妄法以諸外道一切凡夫虛妄分別有色等一切法體爲欲遮彼虛妄分別故色等一切諸法畢竟空無非無言處皆悉空無無言處者所謂諸佛如來行處如是唯有眞識更無餘識不能如是分別觀察入於識空如是依識說入一切諸法無我非謂一向謗眞識我說言無有佛性實識
【문】그대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면, 오직 안의 식(識)만 있고 바깥 경계는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안의 식(識)은 취할만한 것이 되는가, 취하지 못할 것이 되는가. 만일 취할만한 것이라면, 빛깔ㆍ냄새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와 같을 것이요, 만일 취하지 못할 것이라면, 곧 없는 법이 되리니 어찌 ‘오직 안의 식(識)만 있고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가.
【답】여래께서 방편을 가지고 차츰 중생으로 하여금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때문에 안의 식(識)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실로 안의 식(識)을 취할만한 것은 있지 않다. 만일 그러하지 않는다면 곧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말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한 내용으로 허망한 분별로 이 마음으로 저 마음을 알고 저 마음으로 이 마음을 안 것이다.
017_0504_c_16L問曰如汝向言唯有內識無外境界若爾內識爲可取ㆍ爲不可取若可取者色香等外諸境界若不可取者則是無云何說言唯有內識無外境界
如來方便漸令衆生得入我空及法空故說有內識而實無有內識可若不如是則不得說我空法空是義故虛妄分別此心知彼心彼心知此心
017_0505_a_01L【문】또, 다시 힐난이 있나니 부처님ㆍ여래께서 그 내용에 의하기 때문에 빛깔 따위 일체의 모든 받아들임[入]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실로 빛깔 따위의 모든 받아들임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식(識) 따위로써 경계를 능히 취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빛깔 따위의 받아들임이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017_0505_a_02L問曰又復有難云何得知諸佛如來依此義故說有色等一切諸而非實有色等諸入又以識等能取境界以是義故不得說言無色等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저 하나인 것을 볼 수가 없고
많은 것도 역시 볼 수 없으며
화합도 볼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대상[塵]의 법이 없네.
017_0505_a_06L彼一非可見
多亦不可見
和合不可見
是故無塵法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그대가 위에서 말하기를, ‘빛깔 따위의 모든 받아들임이 모두 실로 있다. 왜냐하면 식(識)이 바깥 경계를 능히 취하기 때문이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세 가지 내용에서 빛깔 따위의 모든 받아들임이 없다.
017_0505_a_08L此偈明何義汝向說言色等諸入皆是實有何以故以識能取外境界此義不然何以故有三義故無色等
무엇이 세 가지 내용이냐 하면, 첫째는 하나의 미진(微震)이 실로 있다 함이니 저 외도(外道)ㆍ위세사(衛世師)들이 허망하게 분별하되 ‘머리ㆍ눈ㆍ몸 따위를 떠난 외에 실로 신아(神我)가 있듯이 미진(微塵:작은 분자)도 역시 그러하여 빛깔ㆍ냄새 따위를 떠나서도 실로 있느냐?’라고 함과 같음이요, 둘째는 ‘실로 많은 미진(微塵)의 차별을 볼 수 있느냐?’라고 함이요, 셋째는 ‘많은 미진이 화합된 것을 볼 수 있느냐?’라고 함이다.
017_0505_a_12L何等爲三一者爲實有一微塵如彼外道衛世師等虛妄分別離於頭目身分等外實有神我微塵亦爾色香等實有不耶二者爲實有多微塵差別可見不耶三者爲多微塵和合可見不耶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저 하나의 미진이 실로 있다면, 곧 볼 수 없는 것이 저 외도 위세사(衛世師)들이 허망하게 분별하되, ‘머리ㆍ눈ㆍ몸 따위를 떠난 외에 하나의 신아(神我)가 있는 것을 볼 수 없듯이 미진(微塵)도 역시 그러하여 빛깔ㆍ냄새 따위를 떠나서 볼 수가 없다.’함과 같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의 진실인 대상도 볼 수 없나니 그러므로 게송에서, ‘저 하나인 것을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017_0505_a_17L此明何義若實有彼一微塵者則不可見如彼外道衛世師等虛妄分別離於頭目身分等外有一神我不可得見微塵亦爾離色香等不可得見是故無一實塵可見故偈言彼一非可見
017_0505_b_01L만약에 많은 미진(微塵)의 차별이 실로 있다면, 응당 낱낱 미진을 뚜렷이 볼 수 있을 것이거늘 볼 수가 없으니 그러한 까닭으로 많은 미진의 차별도 역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많은 것도 역시 볼 수 없으며’라고 하였다.
만일 ‘많은 미진의 화합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도 역시 옳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의 미진이 실로 물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화합하겠는가. 그러므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화합도 볼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대상[塵]의 법이 없네.’라고 말한 것이다.
017_0505_a_22L若實有多微塵差別者應一一微塵歷然可見而不可見以是義故多塵差別亦不可見是故偈言多亦不可見若多微塵和合可見者此亦不然何以故以一微塵實無有物故云何和合是故不成是故偈言和合不可見是故無塵法
【문】어떻게 성립되지 않는가.
017_0505_b_05L問曰云何不成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6진(塵)이 동시에 화합한다면
티끌에 곧 여섯 모양이 있을 것이요,
만일 여섯이 하나의 처소뿐이라면
모든 4대(大)는 하나의 티끌이리.
017_0505_b_06L六塵同時合
塵則有六廂
若六唯一處
諸大是一塵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모든 미진(微塵)이 여섯 방위[六方]로부터 와서 6진(塵)과 화합했다고 하자. 만일 그와 같으면 티끌에 여섯 바위가 있을 것이다. 만일 여섯 바위가 있다면 곧 여섯 모양이 있을 것이며, 또 만일 미진(微塵)에 여섯 처소가 있다면 그 외의 티끌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6진(塵)이 동시에 화합한다면 티끌에 곧 여섯 모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017_0505_b_08L此偈明何義若諸微塵從六方來六塵和合若如是者塵有六方若有六方則有六廂又若微塵有六處所者不容餘塵是故偈言六塵同時合塵則有六
‘만일 여섯의 미진(微塵)이 하나의 처소뿐이라’면, 하나의 미진인 처소에 여섯의 미진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6진(塵)이 하나의 처소일 것이다. 만일 하나의 처소라면 여섯의 미진을 볼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이 미진이나 저 미진이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와 같다면 일체는 거친 물체와 산이나 강 따위의 사물도 역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만일 여섯이 하나의 처소라면 모든 4대(大)는 하나의 티끌이리.’라고 말하였다.
하나의 티끌이라면, 물체 없는 것이 앞에서 답한 것과 같나니 하나의 화합과 많음의 화합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017_0505_b_13L若六微塵唯一處者一微塵處有六微塵若如是者六塵一處若一處則六微塵不可得見何以故彼此微塵無差別故若如是者一切麤物山河等事亦不可見是故偈言若六唯一處諸大是一塵一塵者無物向前答一多和合不可得見故
계빈국(罽賓國)의 비바사(毘婆沙) 스님이 묻기를, ‘나에게는 그와 같은 허물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미진(微塵)은 여섯의 방위와 모양이 없으니 빛깔ㆍ냄새ㆍ맛ㆍ닿음을 떠나서 거친 물체와 함께 화합하여 4대(大) 따위의 온갖 거친 물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017_0505_b_19L罽賓國毘婆沙問曰我無如是過失何以以我微塵無六方廂以離色香味觸而與麤物和合成四大等一切麤
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答曰偈言
017_0505_c_01L
만일 미진(微塵)과 화합하지 않는다면
저 화합함은 무엇으로 된 것이냐.
미진을 모양이 없다고 말하나
능히 이름은 곧 모양이 있다.
017_0505_b_23L若微塵不合
彼合何所成
言微塵無廂
能成則有廂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미진이 화합하여 4대(大) 따위를 이루었는가. 미진을 떠나서 별로 4대(大)를 이루었는가.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만일 미진으로 4대(大)를 이루었다면, ‘미진은 모양이 없어서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미진을 떠나서 4대(大)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저 4대(大)는 바로 어느 집의 4대(大)인가. 만일 그와 같다면, ‘미진은 여섯의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만일 미진과 화합하지 않는다면 저 화합함은 무엇으로 된 것이냐’라고 말하였다.
017_0505_c_02L此偈明何義爲微塵和合成四大等ㆍ爲離微塵別成四大此明何義若以微塵成四大者不得說言微塵無廂不相和合若離微塵成四大者彼四大是誰家四大若如是者不得說言微塵無六廂是故偈言若微塵不合合何所成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저 미진이 서로 화합하여 4대(大)를 이루지 아니했다면, ‘티끌에는 여섯의 모양이 없고 거친 물체와 함께 화합하여 4대(大) 따위를 이루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그대가 말한, ‘거친 물체와 함께 화합하여 4대(大)를 이루었다.’는 것은, 다만 말만 있을 뿐이고 전혀 실지의 사실이 없다.
그러므로 미진(微塵)이 하나의 물체를 이루지 아니했다. 만일 저 미진이 하나의 물체를 이루지 아니했다면, ‘저 4대(大) 따위의 물체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모두 다 허망하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미진을 모양이 없다고 말하나 능히 이름은 곧 모양이 있다.’고 말하였다.
017_0505_c_09L此明何義若彼微塵不相和合成四大者不得說言塵無六廂與麤物合成四大等汝言與麤物合成四大者但有言說都無實事故微塵不成一物若彼微塵不成一說言成彼四大等物悉皆虛妄故偈言微塵無六廂能成則有廂
또,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5_c_15L又偈言

방소가 다른 법이 있나니
그를 하나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림자의 가림이 만일 4대가 아니라면
곧 저 둘은 저것이 아니리라.
017_0505_c_16L有法方所別
彼不得言一
影障若非大
則彼二非彼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그대가 위에서 말하기를, ‘미진(微塵)이 화합했다.’고 하는 그 뜻이 옳지 않다. 왜냐하면 게송에서 ‘방소가 다른 법이 있나니 그를 하나라고 말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방소가 다른 법이 있다.’함은, 동방에 있는 미진의 방소가 서방에 있는 미진의 방소와 다르며, 서방에 있는 미진의 방소가 동방에 있는 미진의 방소와 다르며, 그와 같이 더 나아가서는 상방(上方)ㆍ하방(下方)에 있는 미진의 방소도 모두 다 그와 같다.
017_0505_c_18L此偈明何義汝向說言微塵和合義不然何以故偈言有法方所別不得言一有法方所別者東方所有微塵方處異於西方微塵方處西方所有微塵方處異於東方微塵方如是乃至上方下方微塵方處皆亦如是
017_0506_a_01L만일 미진 자체가 그와 같이 차별된다면 어찌 ‘하나’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게송에서, ‘방소가 다른 법이 있나니 그를 하나라고 말하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림자의 가림이 만일 4대(大)가 아니라면’이라고 함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낱낱의 미진에 방소가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동쪽에 해가 뜨면 서쪽에 그림자가 있고, 해가 서쪽에 있으면 동쪽에 그림자가 있는가. 만일 미진이 동쪽과 서쪽 방위의 모양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해가 하나의 모양으로 비치고 그 외의 모양에 비치지 않는가. 그러므로 미진이 모든 4대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그림자의 가림이 만일 4대가 아니라면 곧 저 둘은 저것이 아니리라’고 말하였다.
017_0506_a_02L若微塵體如是差別云何言是故偈言有法方所別彼不得言影障若非大此明何義若一一微塵無方處者以何義故東方日出西方有影ㆍ日在西方東方有影若微塵無東西方相以何義故日照一廂不照餘廂是故微塵不成諸大是故偈言影障若非大則彼二非彼
어느 것을 둘이라고 하느냐 하면, 첫째는 광명이 비치는 곳이요, 둘째는 그림자가 가리는 곳이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저 미진이 이쪽의 미진을 장애하지 않는다면, 곧 ‘미진이 방소가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진은 방소와 분리된 자리와 10방(方)의 차별이 없을 것이니 저 동쪽의 미진이 와서 서쪽의 미진을 능히 장애하지 아니하며, 서쪽의 미진도 역시 동쪽의 미진을 능히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06_a_09L何者爲二一光照處ㆍ二影障處此明何義若彼微塵不障此塵則不得言塵有方所何以故以微塵無方所分處十方差別以彼東方微塵來者不能障於西方微塵西方微塵亦不能障於東方微塵
만일 저쪽 미진과 이쪽 미진이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면, 곧 일체의 미진이 한 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만일 일체의 미진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그것은 곧 장소가 없을 것이니 그러한 까닭으로 일체의 4대(大)가 모두 미진이다. 모두가 미진이라면, 곧 볼 수 없는 것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을 것이다.
017_0506_a_15L若彼此塵不相障者則一切塵聚在一處若一切塵聚在一處者是則無處以是義故一切四大皆是微塵皆微塵者則不可見如向所說
【문】무슨 까닭으로 ‘4대(大)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미진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말하는가.
【답】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묻겠으니, 미진을 떠나서 별로 4대(大)가 있기에 다만 ‘4대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말하는가.
017_0506_a_19L問曰何故不說四大影障言微塵有影障耶
答曰我還問汝離微塵別有四大ㆍ但說四大有影障耶
017_0506_b_01L【문】힐난하는 이가 풀이하기를, ‘미진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하는가.
【답】미진을 떠나지 않고 4대가 있다면, 곧 4대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는 것이로다. 무슨 까닭으로 ‘미진에 저절로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4대 따위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다.’고 하는가.
017_0506_a_21L問曰難者釋云不離微塵而有影
答曰不離微塵有四大者則非四大有影障也以何義故不言微塵自有影障非四大等有影障耶
【문】그 미진에 그림자의 가림이 있는 것인가. 4댕 그림자의 가림이 있는 것인가. 그러한 사실을 그만 두고서 분별할 필요가 없으나, 빛깔 따위 받아들임[入]의 모양은 전혀 없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답】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묻겠으니 어떠한 법이 바로 온갖 받아들임[入]의 모양인가.
017_0506_b_02L問曰爲是微塵有影障ㆍ爲是四大有影障耶且置是事不須分別而色等入相不全令無
答曰我還問汝以何等法是諸入相
【문】힐난하는 이가 풀이하기를, ‘눈 따위의 경계와 푸름ㆍ누름ㆍ붉음ㆍ흰 것 따위의 그와 같은 법이 바로 온갖 받아들임의 모양이라 한다.’고 합니다.
017_0506_b_06L問曰難者釋言眼等境界靑黃赤白如是等法此是諸入相
【답】나의 뜻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려고 하던 참이다. 어이하여 눈 따위 안의 받아들임[內入]이 푸름ㆍ누름ㆍ 따위의 바깥 여러 경계(境界)를 취하는가. 그것이 하나의 물건인가. 그것이 많은 물건인가. 만일 많은 물건인가. 만일 많은 물건이라면, 위에서 이미 ‘많은 것을 볼 수 없다.’고 했으며, 만일 하나의 물건이라면 역시 취할 수 없다.
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6_b_07L我意正爲思惟此事欲益衆生故眼等內入取靑黃等外諸境界是一物ㆍ爲是多物若是多物向已說多不可得見若是一物亦不可取偈言

하나라면 다님에 차례가 아닐 것이며
취하거나 버림도 같지 아니하리.
차별도 한량없는 장소일 것이요
미세한 것도 볼 수 있어야 하리라.
017_0506_b_11L若一行不次
取捨亦不同
差別無量處
微細亦應見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순일하게 푸른 물건이 누른 것 따위와 섞이지 아니했으며, 만일 사람이 눈의 경계를 분별한다면, 땅에 다님에 ‘차례로 다님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게송에서, ‘하나라면 다님에 차례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순일하게 푸른 것이 하나의 물건이라면, 하나의 발을 들 적에 곧 응당 푸른 곳을 두루 밟아야 할 것이거늘 두루 밟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하나가 아니다.
017_0506_b_13L此偈明何義若純一靑物不雜黃等若人分別眼境界者行於地中不得說言有次第行是故偈言若一行不此句明何義若純一靑是一物擧一足時卽應遍躡一切靑處不遍躡是故非一
017_0506_c_01L‘취하거나 버림도 같지 아니하리’라 한 그 구절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순일하게 푸른 물건이라면 발걸음을 옮길 적에 무슨 까닭으로 발이 밟는 곳에만 해당하고 발이 미처 밟지 못한 곳과, 그리고 발걸음의 중간에 있는 빈곳은 무슨 까닭으로 한꺼번에 밟지 못하여 이르는 곳이 있고, 이르지 못하는 곳이 있는가. 또, 만일 하나인 물건이라면, 곧 ‘발이 이곳은 밟고 저 곳은 밟지 못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게송에서 ‘취하거나 버림도 같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였다.
017_0506_b_19L取捨亦不同句明何義若純一靑物者擧足步時何故唯當足所躡處ㆍ足未躡處及步中閒所有空處以何義故不一時躡而有到處ㆍ有不到處又若一物則不得言足躡此處不躡彼處是故偈言取捨亦不同
‘차별도 한량없는 장소일 것이요’라고 한 그 구절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순일하게 푸른 한 덩어리가 바로 하나의 물건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많은 차별이 있어서 코끼리ㆍ말ㆍ수레 따위가 한 곳을 함께 하지 아니하는가. 만일 하나라면, 흰 코끼리의 머무는 곳에도 응당 말이 머물러 있어야 하리라. 만일 그렇다면 응당 코끼리와 말 따위의 머무는 곳이 차별되지 않으리라.
또, 만일 하나라면, 무슨 까닭으로 코끼리가 이르는 곳에 말 따위가 이르지 못하는가. 또, 만일 하나라면, 코끼리와 말의 중간에 무슨 까닭으로 공간이 있는가. 그러므로 게송에서, ‘차별도 한량없는 장소일 것이다.’고 말하였다.
017_0506_c_02L差別無量處此句明何義若純靑一段是一物者以何義故有多差別象馬車等不共一處若是一者白象住處亦應有馬住若爾不應有象馬等住處差別又若一者以何義故象所到處馬等不到又若一者象馬中閒何故有空是故偈言差別無量處
‘미세한 것도 볼 수 있으리라’고 한 그 구절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저 푸름 따위가 하나의 물건이라면, 저 물 따위의 온갖 푸른 물 체중에 푸른 색깔 따위의 거칠고 미세한 벌레가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다만 거친 벌레만 보이고 미세한 벌레는 보이지 아니하는가. 그러므로 게송에서, ‘미세한 것도 볼 수 있어야 하리라’고 말하였다.
017_0506_c_09L微細亦應見此句明何義若彼靑等是一物者於彼水等諸靑物中有靑色等麤細諸虫何義故但見麤虫不見細虫是故偈微細亦應見
【문】무슨 까닭으로 저 푸름ㆍ누름 따위를 의식으로 사유(思惟)하는가.
【답】그대가 위에서 말하기를 ‘온갖 받아들임[入] 따위의 모양과 푸름 따위의 경계를 허망하게 분별하여 실지로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내가 미진(微塵)의 차별을 관찰하나 저 미진은 하나의 물건을 이루지 않는다. 하나의 물건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빛깔 따위의 경계를 눈 따위가 취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나를 이룬다고 한 그것이니 오직 안의 식(識)만 있고 바깥 경계는 있지 않는다.
017_0506_c_13L問曰以何義故意識思惟彼靑黃等
答曰以汝向言虛妄分別諸入等相靑等境界以爲實有是故我觀微塵差別而彼微塵不成一物不成一故色等境界眼等不取是故成我唯有內識無外境界
【문】믿을만한 것에 의하여 ‘있다.’고 말한다. 믿을 만한 것에는 네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직접 봄이요, 둘째는 견주어 앎이요, 셋째는 비유요, 넷째는 아함(阿含)이다. 그 여러 가지 믿을 만한 것 중에서 직접 보아서 믿는 것이 가장 수승하다. 만일에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가 없다면,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이, ‘내가 이 푸른 따위의 물건을 직접 보았다.’고 말하는가.
017_0506_c_18L問曰依信說有信者有四種一者現見ㆍ二者比知ㆍ三者譬喩ㆍ四者阿含諸信中現信最勝若無色等外境界云何世人言我現見此靑等物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6_c_22L偈言
017_0507_a_01L
직접 본다는 것 꿈과 같으며
봄과 보일 것이 함께하지 않아서
볼 적에는 분별하지 아니하거늘
어떻게 ‘직접 본다’고 말하랴.
017_0506_c_23L現見如夢中
見所見不俱
見時不分別
云何言現見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내가 이미 먼저 말하기를, ‘꿈에서 보는 것 허망하다.’고 하였느니 모든 범부들이 번뇌의 꿈속에서 보는 바 사실이 있는 것도 모두 그와 같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직접 본다는 것 꿈과 같으며’라고 말하였다.
017_0507_a_02L此偈明何義我已先說夢見虛妄凡夫人煩惱夢中有所見事皆亦如是故偈言現見如夢中
‘보는 것[見]과 보이는 것[所見]이 함께하지 않아서’라고 한 그 구절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빛깔을 직접 볼 적에 빛깔임을 알지 못함을 뜻함이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마치 저 푸른 빛깔 따위를 직접 볼 적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비록 푸른 색깔ㆍ누른 색깔 따위를 직접 보나 그 때에 푸른 색깔 따위를 보았다.’고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의 때에 의식(意識)이 분별을 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017_0507_a_05L見所見不俱此句明何義如現見色不知色義此明何義如彼現見靑色等時作如是念我雖現見靑黃色等彼時不見靑色等義何以故以於後時意識分別然後了知
의식이 분별할 때에는 눈의 인식 따위가 없나니 눈의 인식[眼識] 따위는 벌써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저 푸른 색깔ㆍ누른 색깔 따위를 직접 본다고 말하겠는가. 부처님 법에서는 그러한 이치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온갖 법이 찰나 찰나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017_0507_a_10L意識分別時無眼等識以眼等識於先滅故云何說言我現見彼靑黃色等於佛法中無如是義何以故以一切法念念不住故
빛깔을 볼 적에는 저 의식과 그 경계가 없으며, 의식이 일어날 적에는 저 눈의 인식[眼識]과 그 경계가 없나니 그러므로 ‘네 가지 믿을 만한 것 중에서 직접 보아서 믿을 만한 것이 가장 수승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함께 하지 않아서 볼 적에는 분별하지 아니하거늘 어떻게 직접 본다고 말하랴’라고 말하였다.
017_0507_a_13L見色時無彼意識及以境界意識起無彼眼識及以境界以是義故得說言於四信中現信最勝是故偈見所見不俱見時不分別云何言現見
【문】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무릇 바깥 경계를 보는 것에는 먼저 눈의 인식이 보고, 그 후에야 의식이 기억하여 분별하고 안다. 그러므로 반드시 빛깔ㆍ냄새ㆍ맛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가 있나니 그러한 까닭으로 ‘저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푸른 것 따위의 바깥의 모든 경계를 보는 것을 푸른 것 따위의 경계를 직접 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017_0507_a_18L問曰此義不然何以故以凡所見外境界者先眼識見後時意識憶念了知是故必有色香味等外諸境界以是義故不得言無彼外境界何以故以見靑等外諸境界名爲現見靑等境界
017_0507_b_01L【답】그 내용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가 위에서 ‘먼저 눈의 인식이 보고 그 후에야 인식이 기억하여 분별하고 안다.’고 말한 그 내용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먼저 말하기를, ‘안의 자기 심식(心識)이 허망하게 분별함으로 바깥 경계가 있는 것이요, 빛깔 따위의 바깥 경계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017_0507_a_23L答曰此義不然何以故向說言先眼識見後時意識憶念了此義不成何以故我已先說內自心識虛妄分別有外境界而無色等外諸境界
그리고 위에서 말하기를, ‘눈의 인식이 허망하게 분별함은 꿈속에서 온갖 보는 바를 말한 것과 같다.’고 했거니와, 전에 허망하게 분별한 것에 의하여 뒤의 의식이 생각하고 기억한다. 그것은 무슨 내용이냐 하면, 전의 허망하게 빛깔 따위 경계를 분별함에 의하여 허망한 눈의 인식이 마음을 일으켜 상응(相應)하며, 허망한 의식(意識)은 허망하게 분별하여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푸른 것 따위의 경계를 분별하여 안다.’고 한다. 그러므로 ‘눈이 경계를 보고 의식이 분별을 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한 까닭으로 ‘눈의 인식이 빛깔을 보고 그 후에야 기억하여 생각한다.’고 한 그 내용이 성립되지 않는다.
017_0507_b_04L向說眼識虛妄分別如說夢中一切所見依彼前時虛妄分別後時意識思惟憶念此以何義依彼前時虛妄分別色等境界虛妄眼識起心相應虛妄意識虛妄分別作是思惟我分別知靑等境界故不得言眼見境界意識分別以是義故眼識見色後時憶念此義不成
【문】꿈속에서 빛깔을 보고 허망하게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꿈을 깬 후에도 역시 그러하여 허망하게 분별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세상 사람들이 꿈을 보고서는 모두 허망하다고 알며, 꿈 깬 후에 보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고 여기지 않는가. 그러므로 꿈을 깬 후에 빛깔 따위를 보는 바가 꿈속에서 허망하게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017_0507_b_11L問曰夢見色虛妄憶念寤時亦爾虛妄分若如是者以何義故世人見夢皆知虛妄寤時所見皆不虛妄是故寤時所見色等不同夢時虛妄所見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7_b_15L偈言

먼저 말한 저 허망하게 봄이란
저 허망하게 생각함에 의함이
허망한 꿈을 꾸고 있는 이는
꿈 깨기 전엔 그를 알지 못하네.
017_0507_b_16L先說虛妄見
則依彼虛憶
見虛妄夢者
未寤則不知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그대가 위에서 말하기를 ‘꿈에 빛깔을 보는 것은 모두 허망하거니와 꿈을 깬 후에 보는 것은 모두 그와 같지 않다.’고 하여 그 견주어 결정한 내용이 서로 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보는 이가 꿈을 깨기 전에는 모두 진실하다고 여기다가 꿈을 깰 적에야 비로소 그것이 허망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허망한 꿈을 꾸고 있는 이는 꿈 깨기 전엔 그를 알지 못하네.’라고 말하였다.
017_0507_b_18L此偈明何義汝向說言如夢見色皆是虛妄寤時所見皆不如是此比決義不相應何以故以夢見者當未寤時皆謂爲實及至寤時方知虛妄是故偈言見虛妄夢者未寤則不知
017_0507_c_01L그와 같이 세상에 모든 범부들이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고 뒤바뀐 분별이 모여 훈습한 무명(無明)의 꿈을 꾸게 되어 꿈속에서 진실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바깥 경계를 보고 진실이라고 여기나니 꿈에서나 꿈을 깨서나 저 경계를 보는 것은 모두가 허망이다.
017_0507_b_23L如是世閒諸凡夫人爲無始來虛妄顚倒分別集熏無明睡夢夢中不實虛妄分別見外境界謂以爲實以夢寤者見彼境界皆是虛妄
그것이 무슨 내용으로 된 것이냐 하면, 출세간(出世間)의 다스림인 진실한 지혜를 얻음으로 해서 분별함이 있지 아니하고 온갖 세간(世間)의 빛깔 따위 바깥 법은 모두가 다 허망이라고 실답게 깨달아 알고, 저 출세간의 청정한 진실한 지혜에 의하여 곧 세간과 출세간의 수승한 지혜가 앞에 나타남을 체득하며, 온갖 경계는 모두가 다 허망하다고 실답게 알아봄이니 그와 같은 내용은 꿈과 더불어 다르지 아니하다.
017_0507_c_04L此以何義以得出世對治實智無有分別如實覺知一切世閒色等外法皆是虛妄依彼出世淸淨實智便得世閒及出世閒勝智現前如實知見一切境界皆悉虛妄如是義者與夢不異
【문】만일에 다만 자기 마음이 그와 같이 전변(轉變)하여 허망한 분별로 바깥 경계를 본 것이요, 그는 진실함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는 착한 법 연설함을 듣고 악지식(惡知識)을 만나서는 나쁜 법 연설함을 듣는가. 만일 일체의 바깥 경계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연설하며, 만일 연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들으며, 만일 듣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성립되는가.
017_0507_c_09L問曰若但自心如是轉變虛妄分別見外境界彼無實者以何義故遇善知識聞說善法ㆍ値惡知識聞說惡法若無一切外境界者彼云何說若不說者云何得聞若不聞者此云何成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7_c_14L答曰偈言

번갈아 함께 증상(增上)하는 원인으로
피차의 마음 인연이 합해진 것이다.
무명(無明)이 마음을 덮었나니
그러므로 꿈 깬 결과가 다르네.
017_0507_c_15L迭共增上因
彼此心緣合
無明覆於心
故夢寤果別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일체 중생이 허망한 분별과 사유(思惟)와 기억에서 그들이 내가 듣는다는 말하나니 저 앞 사람의 말하는 의식(意識)에 의하여 이 듣는 사람의 듣는 의식에서 그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그들이 ‘내가 들었다.’고 말하나, 실로 저 앞의 경제가 있지 않다. 그러면 게송에서, ‘번갈아 함께 증상(增上)하는 원인으로 피차의 마음 인연이 합해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017_0507_c_17L此偈明何義一切衆生虛妄分別思惟憶念彼說我聞依彼前人說者意識於此聽人聞者意識起如是心彼說我聞而實無有彼前境界是故偈言迭共增上因彼此心緣合
017_0508_a_01L【문】만일 꿈속의 허망한 심식(心識)이고 실지인 경계가 없는 것과 같아서 꿈 깰 적에도 역시 그러하다면 무슨 까닭으로 꿈속에서와 꿈 깬 후에 선과 악을 행하는 법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음의 과보가 같지 아니하는가.
【답】게송에서, ‘무명(無明)이 마음을 덮었나니 그러므로 꿈 깬 결과가 다르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내가 이미 먼저 말하기를, ‘오직 안의 마음만 있고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했나니 꿈속에서와 꿈 깬 후의 마음 차별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깥 경계 따위에 의하여 선업(善業)과 불선업(不善業)을 이룬 것이 아니다.
017_0507_c_22L問曰如夢中虛妄心識無實境界寤亦爾以何義故夢中寤中行善惡法與不愛果報不等
答曰偈言無明覆於心故夢寤果別此明何義我已先說唯有內心無外境界以夢寤心差別不同是故不依外境界等成就善業不善業故
【문】만일 저 3계(界)가 오직 안의 마음뿐이고, 몸과 입의 바깥 경계가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죽이거나 사냥하는 이들이 돼지와 염소와 그리고 소와 말 따위를 살해하는가. 만일 그가 바로 죽이거나 사냥하는 이들이 돼지와 염소와 소와 말 따위를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으로 죽이거나 사냥하는 이들이 살생하는 죄를 얻게 되는가. 그러므로 응당 바깥의 빛깔ㆍ냄새 따위와 몸과 입인 경계가 있을 것이다.
017_0508_a_06L問曰若彼三界唯是內心無有身口外境界者以何義故屠獵師等殺害豬羊及牛馬等若彼非是屠獵師等殺害豬羊牛馬等者以何義故屠獵師等得殺生罪是故應有外色香等身口境界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8_a_11L答曰偈言

죽이는 일이 타심(他心)에 의하며
또한 자심(自心)에 의하기도 하여
가지가지의 인연에 의해서
자기 심식(心識)을 잃어버리네.
017_0508_a_12L死依於他心
亦有依自心
依種種因緣
破失自心識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사람이 비사사(毘舍闍) 귀신 따위에 의하여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자기 마음에 의하여 마음을 잃기도 하며, 혹은 사랑스러운 일과 사랑스럽지 않은 일을 기억하여 생각하므로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꿈에 귀신이 붙는 것을 보고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혹은 성인이 신통으로 이리 저리 변화시켜 앞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하기도 한다.
017_0508_a_14L此偈明何義如人依鬼ㆍ毘舍闍等是故失心或依自心是故失心或有憶念愛不愛事是故失心或有夢見鬼著失心或有聖人神通轉變前人失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대가전연(大迦旃延) 비구가 사라나왕(娑羅那王)으로 하여금 나쁜 꿈을 꾸게 하였다.’고 하며, 또, 비니(毘尼)에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비구가 밤에 오이 껍질을 밟고서 개구리를 죽였다고 여겼더니 죽어서는 나쁜 갈래(惡道)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가지가지의 인연에 의해서 자기 심식(心識)을 잃어버리네.’라고 하였다.
017_0508_a_19L如經中說大迦旃延比丘令娑羅那王見惡夢等又毘尼中有一比夜蹈瓜皮謂殺蝦蟆死入惡道故偈言依種種因緣破失自心識
017_0508_b_01L‘죽이는 일이 타심(他心)에 의하며, 또한 자심(自心)에 의하기도 하여’라고 함을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하면, 신선이 성내는 마음으로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ㆍ아수라왕(阿修羅王)을 꾸짖다가 다른 중생을 살해한 일에 의하여 알 수 있다. 그것은 타심(他心)에 의한 것으로서 다른 중생이 마음에서 목숨 뿌리[命根]가 없어졌다고 허망하게 분별함에서이다. 저 몸의 목숨이 계속하거나 끊어짐에 관해서 응당 그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7_0508_a_22L死依於他心亦有依自心此云何知以依仙人瞋心瞋毘摩質多羅阿修羅王故殺餘衆生此依他心他衆生心虛妄分別命根謝滅以彼身命相續斷絕應如是知
또, 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又偈言

경에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단나가(檀拏迦)ㆍ가릉가(迦陵迦)ㆍ마등국(摩燈國)은
신선이 성냄으로 인해 텅 비었나니
그러므로 마음 업이 참으로 중하네.
017_0508_b_04L經說檀拏迦
迦陵摩燈國
仙人瞋故空
是故心業重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만일 죽이는 일이 타심(他心)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심(自心)에 의하지 아니하여 만일 그와 같다면 무슨 까닭으로 여래께서 마음 업이 참으로 중함을 성립시키려고 하시는가?
017_0508_b_06L此偈明何義若有死者不依他心ㆍ不依自心若如是者以何義故如來欲成心業爲重
그러므로 경에서, ‘우파아리[優波離]ㆍ장자(長者)에게 물으시되, ≺장자여, 어떤 인연으로 단나가국(檀拏迦國)ㆍ가릉가국(迦陵迦國)ㆍ마등가국(摩燈迦國)이 그 나라의 벌판이 텅 비고 쓸쓸하게 되어 중생이나 초목 따위가 없게 된 것은 그대는 일찍이 들은 적이 있는가≻ 하시니 우파아리 장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고오타마(瞿曇)시여, 제가 옛적에 들은 바가 있사오니 신선의 성낸 마음에 의하여 그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을 살해했다고 하나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오직 의업(意業)만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래께서 무슨 까닭으로 경에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게송에서, ‘경에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단나가(檀拏迦)ㆍ가릉가(迦陵迦)ㆍ마등(摩燈)의 나라는 신선이 성냄으로 인해 텅 비었나니’라고 말하였다.
017_0508_b_09L是故經中問優波離長者言≺長者汝頗曾聞以何因緣檀拏迦國ㆍ迦陵伽國ㆍ摩燈伽國曠野空寂有衆生及草木等≻優波離長者白佛言≺瞿曇我昔曾聞依仙人瞋心殺害如是無量衆生是故得知唯有意業不爾者如來何故於諸經中作如是是故偈言經說檀拏迦ㆍ迦陵摩燈仙人瞋故空
【문】신선의 성낸 마음에 의하여 신선ㆍ귀신을 믿고 그와 같은 세 나라의 중생들을 살해했으니 신선의 성낸 마음에 의하여 죽은 것은 아니다.
017_0508_b_17L問曰依仙人瞋信仙人鬼殺害如是三國衆生非依仙人瞋心而死
【답】여래가 그대 외도(外道)의 경에서 구학니건자(久學尼乾子)에게 물으시되, ‘3업(業) 중에서 무슨 업이 가장 중한가?’라고 하시니, 구학니건자는 여래에게 답하되, ‘몸의 업이 가장 중합니다.’라고 하였다.
017_0508_b_19L答曰如來於汝外道經中問久學尼乾子言於三業中何業爲重久學尼乾子答如來言身業爲重
017_0508_c_01L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니건자여, 저 성 안에 있는 중생이 많은가, 적은가.’
구학 외도는 말하였다.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이루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니건자여, 만일 어떤 악한 사람이 그러한 여러 중생을 살해하려고 한다면, 며칠 만에 죽일 수가 있는가.’
니건자는 말하였다.
‘1년이나 2년에도 죽일 수 없습니다.’
017_0508_b_22L佛言尼乾子此彼城中所有衆生爲多爲少久學外道言無量無邊不可數知佛言尼乾子若有惡人欲殺害此諸衆生者幾日可殺乾子言非是一年二年可殺
부처님이 구학니건자에게 말씀하셨다.
‘마등가 나라들의 세 나라 중생에 대하여 그들은 어떻게 죽였는지 그대는 일찍이 들은 적이 있는가? 몸의 업으로 죽였는가? 뜻의 업으로 죽였는가?’
니건자는 말하였다.
‘고오타마[瞿曇]시여, 제가 일찍이 듣자오니 신선이 성낸 마음에서 뜻의 업으로 그러한 수효의 중생들을 죽였다고 하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였다.
‘니건자여,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몸의 업이 가장 중하다고 말하는가?’
니건자는 말하였다.
‘그와 같고 그와 같습니다. 저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서 잘못 듣고 말하였나이다.’고 하였으니 그러한 까닭으로 ≺나≻라는 내용이 성립됨을 증명한다.
017_0508_c_03L佛告久學尼乾子言摩燈伽等三國衆生頗曾聞云何而死爲身業殺爲意業尼乾子言瞿曇我昔曾聞仙人瞋以意業殺爾數衆生佛言尼乾子若如是者云何而言身業爲重尼乾子言如是如是我不審諦謬聞而說以是義故證成我義
3계(界)가 마음뿐이고 몸의 업과 입의 업이 없다고 한 그것은 무슨 내용이냐 하면,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도적이 산림(山林)이나 마을ㆍ성읍(城邑)을 불태웠다 하고, 불이 불태웠다고 말하지 않음과 같다.
그 내용도 역시 그러하여 오직 마음에 의하기 때문에 선과 악의 업이 이루어지나니 그러한 까닭으로 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017_0508_c_10L三界唯心無身口業此以何義如世人言賊燒山林聚落城邑不言火燒此義亦爾ㆍ唯依心故善惡業成以是義故經中偈言

모든 법에서 마음이 근본이요
모든 법에서 마음이 수승하나니
마음 떠나서는 모든 법 없어서
마음뿐이고 몸과 입은 이름뿐이네.
017_0508_c_13L諸法心爲本
諸法心爲勝
離心無諸法
唯心身口名

‘마음뿐이고 몸과 입은 이름뿐이네.’라 함은, 다만 심식(心識)만 있고 몸과 입의 업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이니 그 실체는 뜻의 업이요, 몸과 입은 명칭을 말할 뿐이다.
017_0508_c_15L唯心身口名但有心識無身口業身口業者但有名字實是意業身口名說
【문】만일에 마음만 있고 바깥 경계가 없다고 한다면 그 뜻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타심지(他心智)란, 타심(他心)과 타 중생의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바깥 경계이거늘, 어찌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또, 어떤 이가 힐난하기를, ‘타심지란, 마음을 실로 아는 것이 되는가? 실로 아는 것이 아닌가?’하고.
만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타심(他心)을 안다.’고 말할 것인가.
만일 실로 안다면 어찌 ‘바깥 경계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017_0508_c_18L問曰若但有心無外境界此義不然何以故他心智者觀察他心他衆生心是外境界云何說言無外境又復有難他心智者爲實知心ㆍ爲不實知若不知者云何說言知於他若實知者云何說言無外境界
【답】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508_c_23L偈言
017_0509_a_01L
타심(他心)으로 경계를 안다는 것은
실답게 깨달아 아는 것 아니니
식(識)의 경계를 떠난 것 아니라
부처님만이 실답게 아시기 때문이다.
017_0509_a_01L他心知於境
不如實覺知
以非離識境
唯佛如實知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타심지(他心智)란, 실답게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속마음이 허망하게 분별하여 타심(他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능히 알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ㆍ뜻ㆍ의식(意識)이 섞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타심(他心)으로 경계를 안다는 것은 실답게 깨달아 아는 것 아니니 식(識)의 경계를 떠난 것 아니라’고 말하였다.
017_0509_a_03L此偈明何義他心智者不如實知何以以自內心虛妄分別以爲他心不能了知何以故以自心意意識雜故是故偈言他心知於境不如實覺知以非離識境
【문】일체 성인이 모두 타(他) 중생의 마음을 능히 알지 못하는가? 아는 것이 있는가?
017_0509_a_08L問曰爲一切聖人皆不能知他衆生心爲有知者
【답】게송에서, ‘부처님만이 실답게 알기 때문이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저 부처님 경지의 여실(如實)한 과체(果體)와 말을 초월하여 수승하고 미묘한 경계는 부처님만이 능히 알고 그 외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니 세간에서 타심지(他心智)를 얻은 그는 저 두 법에 대하여 실답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는 능히 취하는[能取] 경계와 취할 바[所取] 경계를 허망하게 분별하기 때문이다.
저 세간 사람들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그것은 바로 식(識) 뿐이니 그는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매우 깊은 경계이고 심식(心識)으로 측량할 만한 것이 아니다.
017_0509_a_09L答曰偈言唯佛如實知此明何義如彼佛地如實果體無言語處勝妙境界佛能知餘人不知以彼世閒他心智者於彼二法不如實知以彼能取可取境界虛妄分別故彼世閒人虛妄分別此唯是識無量無邊甚深境界非是心識可測量故
다음의 게송으로 말하리라.
偈言

내가 지금 이 유식론을 짓는 것이
내가 생각해 낸 것 아니니
부처님의 미묘하고 깊은 경지의
복덕을 중생에게 베풀려 함이네.
017_0509_a_16L作此唯識論
非我思量義
諸佛妙境界
福德施群生

그 게송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인가.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매우 깊은 경계이고 우리네들의 생각으로 알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저것은 마음ㆍ뜻ㆍ의식으로 생각할 만한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누구의 경계인가? 게송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미묘하고 깊은 경지’라고 하였다.
그것은 무슨 내용을 밝힌 것이냐 하면,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온갖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해서 모두 실답게 알기 때문이다.
017_0509_a_18L此偈明何義此是諸佛甚深境界非是我等思量所知何以故以彼非是心意意識思量境界故若如是者是誰境界偈言諸佛妙境界此明何義唯諸佛如來以一切種智於一切所知境界皆如實而知故
唯識論一卷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017_0509_b_01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