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714_c_01L발보리심경론(發菩提心經論) 상권
017_0714_c_01L發菩提心經論卷上


천친(天親) 지음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권오민 번역
017_0714_c_02L天親菩薩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1. 권발품(勸發品)
017_0714_c_04L勸發品第一

가없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과
평등하고 공하고 부동(不動)인 지혜와
세간을 구제하시는 대비존(大悲尊)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옵니다.
017_0714_c_05L敬禮無邊際
去來現在佛
等空不動智
救世大悲尊

마득륵가장보살마하살(摩得勒伽藏菩薩摩訶薩)께서 닦고 행하신 대방등(大方等)의 최상의 미묘한 법이 있으니, 이는 말하자면 위없이 높은 보리(菩提)를 닦아 쌓음을 권하고 즐김으로서 중생들로 하여금 능히 깊고 넓은 마음[深廣心]을 일으켜서 서원(誓願)을 세워 장엄을 필정(畢定)하게 하는 것이다. 즉, 신명(身命)과 재물을 버리고 탐욕과 인색함을 거두어 조복하며, 오취계(五聚戒)를 닦아 금하는 바를 범하지 않도록 교화하고, 끝까지 인욕(忍辱)을 행하여 진에(瞋恚)를 조복하며, 용맹정진하여 중생을 편안히 쉬게 하고, 온갖 마음[衆心]을 알기 위해 온갖 선정을 닦고 쌓으며, 지혜를 닦고 행하여 무명을 소멸해 없애고, 여실문(如實門)에 들어가 온갖 집착을 여의고, 심오한 공(空)과 무상(無相)의 행(行)을 널리 나타내고, 공덕을 칭찬하여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따위의 헤아릴 수 없는 방편으로 보리법(菩提法)의 청정문(淸淨門)을 도우니, 마땅히 일체의 상상품(上上品)의 선(善:열반)을 위하여 분별하고 현시하여서 모든 이들로 하여금 궁극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해야 할 것이다.
017_0714_c_07L有大方等最上妙法摩得勒伽藏薩摩訶薩之所修行所謂勸樂修集無上菩提能令衆生發深廣心建立誓願畢定莊嚴捨身命財攝伏貪悋修五聚戒化導犯禁行畢竟忍調伏瞋㝵發勇精進安止衆生集諸禪定爲知衆心修行智慧滅除無明入如實門離諸執著宣示甚深空無相行稱讚功德使佛種不斷有如是等無量方便助菩提法淸淨之門當爲一切上上善欲分別顯示悉令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7_0715_a_01L모든 불자(佛子)들이여, 만약 불제자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수지하고서 중생을 위해 능히 법을 연설하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며 선양해야 할 것이며, 중생들은 그것을 듣고 나서 능히 발심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추구한다면, 그 발심 때문에 부처님의 종자는 끊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또한 여래를 생각한다면, 그는 보살도를 행할 때 법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의 온갖 노력과 고통을 감수한다. 또한 이와 같은 생각으로 보살을 위해 법을 설하고 나아가 한 가지 게송이라도 설한다면, 보살은 이러한 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매우 즐겨서 마땅히 선근을 심고 불법을 수습(修習)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다.
017_0714_c_19L諸佛子!若佛子受持佛語能爲衆生演說法者應先稱揚佛之功德衆生聞已乃能發心求佛智慧以發心故佛種不斷若比丘ㆍ比丘尼ㆍ優婆塞ㆍ優婆夷念佛ㆍ念法念如來行菩薩道時爲求法故阿僧祇劫受諸勤苦以如是念爲菩薩說法乃至一偈菩薩得聞是法示教利喜當種善根修習佛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시작도 없는 생사의 온갖 고뇌를 끊게 하기 위해 보살마하살(부처님을 말함)께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몸과 마음[身心]을 성취하고자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여 크나큰 서원[大願]을 깊이 일으키셨으며, 대방편을 행하고 대자비를 일으켜 대지혜의 무견정상(無見頂相)을 추구하셨으며, 이와 같은 따위의 온갖 부처님의 대법(大法)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법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법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복덕과 과보도 역시 헤아릴 수 없다. 여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017_0715_a_06L爲斷無量衆生無始生死諸苦惱故菩薩摩訶薩欲成無量身勤修精進深發大願行大方便起大慈悲求大智慧無見頂相求如是等諸佛大法當知是法無量無邊法無量故福德果報亦復無量如來說言
“모든 보살의 최초의 발심이 아무리 하열(下劣)할지라도 1찰나의 복덕과 과보는 백천만 겁 동안 설한다 하더라도 다할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하루, 한 달, 일 년 내지 백 년 동안 닦은 온갖 마음의 복덕과 과보를 어찌 다 설할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보살이 행한 바는 다함이 없어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1)에 머물게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획득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017_0715_a_11L如諸菩薩最初發心下劣一念福德果報百千萬劫說不能盡況復一日一月一歲乃至百歲所習諸心福德果報豈可說盡何以故菩薩所行無盡欲令一切衆生皆住無生法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모든 불자들이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發菩提心]은 비유하자면 대해(大海)가 처음으로 점차 일어날 때와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곳(대해)은 모두 하품ㆍ중품ㆍ상품의 가치가 있는 보주(寶珠)나 나아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만들어지고 머무는 곳이니, 이러한 보주는 모두 대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의 발심도 또한 마찬가지다. 즉,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점차 일으킬 때,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것은 사람과 하늘[人天]ㆍ성문ㆍ연각ㆍ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일체 선법(善法)과 선정과 지혜가 생겨나는 처소가 된다.
017_0715_a_17L諸佛子!菩薩初始發菩提心譬如大海初漸起時知皆爲下中上價乃至無價如意寶珠作所住處此寶皆從大海生故薩發心亦復如是初漸起時當知便爲人ㆍ天ㆍ聲聞ㆍ緣覺ㆍ諸佛菩薩一切善法禪定智慧之所生處
017_0715_b_01L또한 다시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삼천대천세계가 처음으로 점차 일어날 때와 같다. 그것(삼천대천세계)은 바로 스물다섯 가지2)의 존재[有]를 위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 가운데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이 모두 다 짐을 지고서 의지처로 삼기 때문이다. 보살의 발보리심도 역시 또한 마찬가지다. 즉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점차 일으킬 때 그것은 널리 헤아릴 수 없는 일체의 중생들을 위해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테면 육취(六趣)와 사생(四生), 정견자(正見者)와 사견자(邪見者), 선을 닦는 자와 악을 익히는 자, 청정한 계율을 지켜 지니는 자와 네 가지 중금(重禁, 혹은 四波羅夷:婬戒ㆍ盜戒ㆍ殺生戒ㆍ大妄語戒)을 범하는 자, 삼보를 존중하여 받드는 자와 정법을 비방하고 훼손하는 온갖 마군ㆍ외도ㆍ사문ㆍ범지(梵志)ㆍ찰리(刹利)ㆍ바라문ㆍ비사(毘舍)ㆍ수다(首陀) 등의 일체의 짐을 진 자의 소의처이다.
017_0715_a_23L復次又如三千大千世界初漸起時當知便爲二十五有其中所有一切衆生悉皆荷負作依止處菩薩發菩提心亦復如是漸起時普爲一切無量衆生所謂六趣四生正見邪見ㆍ修善習惡護持淨戒ㆍ犯四重禁尊奉三寶ㆍ謗毀正法諸魔外道ㆍ沙門梵志剎利ㆍ婆羅門ㆍ毘舍ㆍ首一切荷負作依止處
또한 다시 보살의 발심은 자비를 으뜸[首]으로 삼으니,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의 발심은 결코 제한이 없으며 중생계에 평등하다. 비유하자면 허공이 두루 덮지 않음이 없듯이 보살의 발심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일체 중생으로서 보살의 발심에 덮이지 않는 자가 없다. 또한 중생계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가이없어 끝내 다하여 없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의 발심도 역시 또한 이와 같으니,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가이없어 끝내 다하여 없어질 수 없다. 즉 허공은 끝내 다하여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계도 끝내 다하여 없어질 수 없으며, 중생계가 끝내 다하여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의 발심은 그러한 중생계에 대해 평등한 것이다.
017_0715_b_08L復次菩薩發心慈悲爲首菩薩之慈無邊無量故發心無有齊限等衆生界譬如虛空無不普覆菩薩發心亦復如是切衆生無不覆者如衆生界無量無邊不可窮盡菩薩發心亦復如是量無邊無有窮盡虛空無盡故衆生無盡衆生無盡故菩薩發心等衆生
017_0715_c_01L중생계란 결코 제한이 없다. 나는 여기서 마땅히 성지(聖旨)를 이어받아 그 중의 일부를 설해 보리라. 동방에는 모두 천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3)의 온갖 부처님의 세계가 있으며, 남방ㆍ북방ㆍ서방과 사유(四維: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의 네 방향)와 상방ㆍ하방에도 각기 천억 항하사 아승기의 온갖 부처님의 세계가 있지만 끝내 미진(微塵)이 되지 못하는데, 이러한 온갖 미진은 모두 육안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백만억 항하사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에 존재하는 중생이 모두 모여 공히 하나의 티끌[塵]을 취하고, 이백만억 항하사 아승기의 삼천대천세계에 존재하는 중생은 공히 두 개의 먼지 티끌을 취하며, 이와 같이 계속 나아가 시방 각각의 천억 항하사 아승기의 온갖 부처님의 세계에 존재하는 땅의 종류[地種]와 미진을 전부 다할지라도 이러한 중생계는 오히려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하나의 터럭을 쪼개어 백 개로 나눈 뒤에 그 하나의 터럭으로 대해의 물을 적시는 것과 같으니, 내가 지금 설한 중생계의 일부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 설할 수 없는 중생계는 대해의 물과 같아서 설령 온갖 부처님들이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아승기겁 동안 널리 비유로써 연설한다 할지라도 역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017_0715_b_16L衆生界者無有齊限我今當承聖旨說其少分東方盡千億恒河沙阿僧祇諸佛世界南西北方四維上下各千億恒河沙阿僧祇諸佛世界末爲塵此諸微塵皆不與肉眼作百萬億恒河沙阿僧祇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共聚集共取一塵二百萬億恒河沙阿僧祇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共取二塵如是展轉取十方各千億恒河沙阿僧祇諸佛世界所有地種微塵都盡是衆生界猶不可盡譬如有人扸破一毛以爲百分以一分毛渧大海水我今所說衆生少分亦復如是其不說者如大海水假使諸佛於無量無邊阿僧祇劫廣演譬喩說亦不盡
보살의 발심은 바로 이와 같은 중생계를 모두 능히 두루 덮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불자들이여, 이러한 보리심에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만약 보살로서 이와 같은 설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침몰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러한 자는 결정코 능히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리라. 설령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동안 그의 공덕을 찬탄하더라도 역시 다하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러한 보리심에는 결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보살의 발심에는 이와 같은 등의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일으켜 널리 수지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널리 설해야 하는 것이다.
017_0715_c_08L菩薩發心能遍覆如是衆生云何諸佛子!是菩提心豈可盡也若有菩薩聞如是說不驚不怖不退不沒當知是人決定能發菩提之心假令無量一切諸佛於無量阿僧祇劫讚其功德亦不可何以故是菩提心無有齊限ㆍ不可盡故有如是等無量利益是故宣說爲令衆生普得受行發菩提心

2. 발심품(發心品)
017_0715_c_16L發菩提心經論發心品第二

보살은 어떻게 보리심을 일으키며, 어떠한 인연에 의해 보리를 닦고 쌓는 것인가?
보살은 선지식과 가까이하고, 모든 부처님들에게 공양하며, 선근을 닦아 쌓고, 수승한 법[勝法]을 바라고 추구하며, 마음이 항상 유화(柔和)하고,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능히 참아내며, 자비가 두텁고 깊으며, 마음이 평등하고, 대승을 믿고 즐기며, 부처님의 지혜를 추구하니, 만약 어떤 이가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을 갖추었다면 마침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017_0715_c_17L菩薩云何發菩提心以何因緣修集菩提若菩薩親近善知識ㆍ供養諸佛ㆍ修集善根ㆍ志求勝法ㆍ心常柔和ㆍ遭苦能忍ㆍ慈悲淳厚ㆍ深心平等ㆍ信樂大乘ㆍ求佛智慧若人能具如是十法乃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017_0716_a_01L다시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발심하여 무상(無上)의 보리를 닦고 쌓게 된다.
무엇을 일컬어 네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을 사유함으로써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둘째는 신체의 허물을 관찰함으로써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불쌍히 여김으로써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넷째는 최승의 과보를 희구함으로써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017_0715_c_23L復有四緣發心修集無上菩提何謂爲四者思惟諸佛發菩提心ㆍ二者觀身過患發菩提心ㆍ三者慈愍衆生發菩提心ㆍ四者求最勝果發菩提心
모든 부처님을 사유하는 것에는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시방(十方)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처음으로 발심하셨을 때에는 지금의 나와 같이 번뇌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끝내 정각을 성취하여 무상존(無上尊)이 되었다’고 사유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두 번째는 ‘일체의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대용맹을 일으킴으로써 각기 능히 위없이 높은 보리를 증득할 수 있었으니, 만약 이러한 보리가 바로 증득할 수 있는 법이라면 나도 역시 마땅히 증득하게 되리라’고 사유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세 번째는 ‘일체의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크고 밝은 혜(慧)를 일으켜 무명의 알 속에서 뛰어난 마음[勝心]을 건립하고 고행을 쌓음으로써 능히 스스로 삼계(三界)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나도 역시 이와 같이 마땅히 스스로 삼계에서 벗어나리라’고 사유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네 번째는 ‘일체의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인간 가운데 위대한 영웅이 됨으로써 모두 생사 번뇌의 대해를 건넜으니, 나도 역시 대장부가 되면 능히 생사 번뇌의 대해를 건널 수 있게 되리라’고 사유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다섯 번째는 ‘일체의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대정진을 일으켜 신명(身命)과 재물을 버리고 일체지(一切智)를 추구하였으니, 나도 역시 지금 마땅히 모든 부처님을 따라 배우리라’고 사유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017_0716_a_04L思惟諸佛復有五事一者思惟十方過去未來現在諸佛初始發心具煩惱性亦如我今終成正覺爲無上尊以此緣故發菩提心二者思惟一切三世諸佛發大勇猛各各能得無上菩提此菩提是可得法我亦應得緣此事故發菩提心三者思惟一切三世諸佛發大明慧於無明㲉中建立勝心積集苦行皆能自拔超出三界我亦如當自拔濟緣此事故發菩提心者思惟一切三世諸佛爲人中雄度生死煩惱大海我亦丈夫亦當能緣此事故發菩提心五者思惟一切三世諸佛發大精進捨身命財求一切智我今亦當隨學諸佛緣此事故發菩提心
017_0716_b_01L신체의 허물을 관찰하여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도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의 몸은 오음(五陰)과 사대(四大)로 이루어져서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악업을 짓는 것이라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그것들을 여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의 몸은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부정한 것이라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염리(厭離)를 낳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나의 몸은 탐(貪)ㆍ진(瞋)ㆍ치(癡)의 헤아릴 수 없는 번뇌가 있어서 선심(善心)을 태워 버린다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그것들을 소멸하고 제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나의 몸은 물거품과 같이 생각 생각에 생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이는 버릴 수 있는 법[可捨法]으로 버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나의 몸은 무명에 덮여 항상 악업을 짓는 것이라고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니, 육취(六趣)를 윤회하여 이로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017_0716_a_20L觀身過患發菩提心復有五事一者自觀我身五陰四大俱能興造無量惡業欲捨離故者自觀我身九孔常流臭穢不淨厭離故三者自觀我身有貪瞋癡無量煩惱燒然善心欲除滅故四者自觀我身如泡如沫念念生滅是可捨欲棄捐故五者自觀我身無明所覆常造惡業輪迴六趣無利益故
최승의 과보를 희구하여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도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모든 여래께서는 보리심을 닦아 쌓으셨기 때문에 상호(相好)의 장엄이 빛나고 청정하고 명철해서 만나는 이의 번뇌를 제거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든 여래께서는 보리심을 닦아 쌓으셨기 때문에 법신(法身)이 상주하고 청정하여 물듦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모든 여래께서는 보리심을 닦아 쌓으셨기 때문에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ㆍ해탈지견(解脫知見)ㆍ청정법취(淸淨法聚)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네 번째는 모든 여래께서는 보리심을 닦아 쌓으셨기 때문에 십력(十力)4)ㆍ사무외(四無畏)5)ㆍ대비(大悲)ㆍ삼념처(三念處)6)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모든 여래는 일체지(一切智)로 중생을 가련히 여기고 자비를 두루 펼쳐서 일체의 어리석고 미혹한 이를 능히 올바로 인도할 수 있으니, 이는 닦아서 쌓기 때문이다.
017_0716_b_05L求最勝果發菩提心復有五事一者見諸如來相好莊嚴ㆍ光明淸徹ㆍ遇者除惱爲修集故二者見諸如來法身常住淸淨無染爲修集故三者見諸如來有戒ㆍ定ㆍ慧ㆍ解脫ㆍ解脫知見淸淨法聚修集故四者見諸如來有十力ㆍ四無所畏ㆍ大悲ㆍ三念處爲修集故五者見諸如來有一切智憐愍衆生慈悲普能爲一切愚迷正道爲修集故
나아가 중생을 불쌍히 여겨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도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무명에 속박되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괴로움에 의해 속박되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불선업(不善業)을 쌓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극히 무거운 악업을 짓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정법을 닦고 있지 않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017_0716_b_14L愍衆生發菩提心復有五事一者見諸衆生爲無明所縛ㆍ二者見諸衆生爲衆苦所纏ㆍ三者見諸衆生集不善業ㆍ四者見諸衆生造極重惡ㆍ五者見諸衆生不修正法
무명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에는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어리석음과 애욕[愛癡]에 미혹되어 매우 극심한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인과를 믿지 않고 악업을 짓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올바른 믿음[正信]을 버리고 삿된 도를 믿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이 번뇌의 강에 빠져 네 가지 흐름[四流]에 표류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017_0716_b_19L無明所縛復有四一者見諸衆生爲癡愛所惑受大劇苦ㆍ二者見諸衆生不信因果造作惡業ㆍ三者見諸衆生捨離正法信受邪道ㆍ四者見諸衆生沒煩惱河四流所漂
017_0716_c_01L여러 가지 괴로움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에도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생ㆍ노ㆍ병ㆍ사를 두려워하면서도 해탈을 추구하지 않고 또다시 업을 짓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항상 업을 조작(造作)하며 쉬는 일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방편을 깨닫지 못하고 물들어 집착[染着]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와 만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항상 혐오하고 질투하며 또다시 미워한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017_0716_c_01L衆苦所纏復有四事一者見諸衆生畏生老病死不求解脫而復造二者見諸衆生憂悲惱苦而常造無有休息三者見諸衆生愛別離苦而不覺悟方便染著四者見諸衆生怨憎會苦常起嫌嫉更復造怨
불선업을 쌓고 있다는 것에도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애욕으로 인해 악업을 조작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욕망이 괴로움을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즐거움을 욕구하면서도 계(戒)를 구족하지 않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괴로움을 즐기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괴로움을 조작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017_0716_c_06L不善業復有四事一者見諸衆生爲愛欲故造作諸惡ㆍ二者見諸衆生知欲生苦而不捨欲ㆍ三者見諸衆生雖欲求樂不具戒足ㆍ四者見諸衆生雖不樂苦造苦不息
극히 무거운 악업을 짓고 있다는 것에도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중계(重戒)를 범하고서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오히려 방일(放逸)하게 지낸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극악의 오무간업을 짓고 서도 사납고 모질게 스스로 그것을 숨기며 부끄러워[慚愧]하지 않는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대승의 방등(方等)의 정법을 비방 훼손하고서도 오로지 어리석음에 스스로 집착하여 오히려 교만심을 일으킨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비록 총명함을 지녔을지라도 선근을 모두 끊고 도리어 스스로 자만하면서[貢高] 영원히 참회하여 고치는 일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017_0716_c_11L造極重惡復有四一者見諸衆生毀犯重戒雖復憂懼而猶放逸二者見諸衆生興造極惡五無閒業凶頑自蔽不生慚愧者見諸衆生謗毀大乘方等正法愚自執方起憍慢四者見諸衆生雖懷聰哲而具斷善根反自貢高永無改悔
017_0717_a_01L정법을 닦고 있지 않다는 것에도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8난처(難處)7)에 태어나 정법을 듣지 못하고 선(善)을 닦을 줄 모른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을 때 태어나 정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도 능히 수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외도에 물들거나 외도의 법을 익혀 신체를 괴롭히는 업만을 닦을 뿐 출요(出要:出離의 要道: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깨달음의 도)를 영원히 여의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온갖 중생들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닦아 증득한 것을 바로 열반이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선한 과보가 다하면 다시 3도(塗)8)에 떨어지게 된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살은 온갖 중생들이 무명에 의해 업을 짓고 기나긴 밤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정법을 여의고 출로(出路:해탈도)를 미혹한다고 관찰하니, 이러한 것들 때문에 대자비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지향해 추구하는 것은 예컨대 머리가 타는 이[頭燃]를 구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일체 중생으로서 고뇌가 있는 자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들을 남김없이 구제해야 하리라.
모든 불자들이여, 나는 지금까지 초행(初行) 보살의 인연과 발심에 대해 간략하게 설하였는데, 만약 널리 설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며 끝이 없을 것이다.
017_0716_c_18L不修正法復有四事一者見諸衆生生於八難不聞正法不知修善二者見諸衆生値佛出世聞說正法不能受持三者見諸衆生染習外道苦身修業永離出要四者見諸衆生修得非想非非想定謂是涅槃善報旣盡還墮三塗菩薩見諸衆生無明造業長夜受苦捨離正法迷於出路爲是等故發大慈悲志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救頭燃一切衆生有苦惱者我當拔濟令無有餘諸佛子!我今略說初行菩薩緣事發心若廣說者無量無邊

3. 원서품(願誓品)
017_0717_a_07L發菩提心經論願誓品第三

보살은 어떻게 보리를 일으키며, 어떠한 업행(業行)으로 보리를 성취하는 것인가?
발심한 보살은 간혜지(乾慧地)9)에 머물면서 먼저 마땅히 올바른 원을 견고히 일으켜야 하는데, 일체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섭수(攝受)하면서 ‘나는 위없이 높은 보리를 추구하여 그들을 남김없이 구하여 보호하고 해탈로 인도하며, 그들로 하여금 모두 구경의 무여열반에 들게 하리라’고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발심은 대비(大悲)를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 즉, 대비심 때문에 수승한 열 가지의 크나큰 올바른 원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017_0717_a_08L菩薩云何發趣菩提以何業行成就菩提發心菩薩住乾慧地先當堅固發於正願攝受一切無量衆生我求無上菩提救護度脫令無有餘皆令究竟無餘涅槃是故初始發心大悲爲首以悲心故能發轉勝十大正願
017_0717_b_01L무엇을 일컬어 열 가지라고 하는가?
원하건대, 나는 이전 세상에서 심은 선근이나 지금의 몸으로 심은 선근을 가없는 일체의 중생들에게 시여(施與)함으로써 함께 위없이 높은 보리로 회향(廻向)하며, 나의 이러한 원이 생각 생각마다 증장하여 세세생생 태어날 적마다 항상 마음에 남아 있어 끝내 망실되지 않으면서 다라니(陀羅尼)에 의해 수호를 받으리라. 원하건대, 나는 대보리로 회향하고 나서 이러한 선근을 태어나는 모든 곳에서 항상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에게 공양함으로서 반드시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은 국토에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게 하리라. 원하건대, 나는 온갖 부처님께서 계시는 국토에 태어나서 그림자가 본래의 형상을 따르듯이 항상 좌우로 친근히 모시면서 찰나의 순간이라도 온갖 부처님을 멀리 여의는 일이 없게 하리라. 원하건대, 나는 부처님과 친근히 하고 나서 내가 감응하는 바에 따라 나를 위해 설법함으로서 바로 보살의 5통(通)10)을 성취하리라.
017_0717_a_14L何謂爲十願我先世及以今身所種善根以此善根施與一切無邊衆生悉共迴向無上菩提令我此願念念增長世世所生常繫在心終不忘失爲陁羅尼之所守護願我迴向大菩提已以此善根於一切生處常得供養一切諸佛永必不生無佛國土願我得生諸佛國已常得親近隨侍左右如影隨形無剎那頃遠離諸佛願我得親近佛已隨我所應爲我說法卽得成就菩薩五通
원하건대 보살의 5통을 성취하고 나서 바로 능히 세속제(世俗諦)의 가명(假名)을 통달해서 유포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야말로 진실의 성품[眞實性]와 같음을 이해해서 정법지(正法智)를 증득하리라. 원하건대, 나는 정법지를 획득하고 나서 무염심(無厭心)을 중생을 위해 설하고 가르침의 이익과 기쁨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깨달아 이해할[開解] 수 있게 하리라. 원하건대 나는 능히 온갖 중생들을 깨달아 이해하게 하고 나서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시방의 세계에 남김없이 두루 이르게 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정법을 들어 지녀서 중생을 널리 섭수하리라.
017_0717_b_02L願我成就菩薩五通卽能通達世諦假名流布解了第一義諦如眞實性得正法智願我得正法智已以無厭心爲衆生說示教利喜皆令開解願我能開解諸衆生已以佛神力遍至十方無餘世界供養諸佛ㆍ聽受正法ㆍ廣攝衆生
원하건대, 나는 온갖 부처님들의 처소에서 정법을 수지하고 나면 바로 능히 청정법륜을 따라 굴려서 시방세계의 일체중생으로서 내가 설하는 법을 듣고 나의 이름을 듣는 자는 바로 일체의 번뇌를 버리고 여의어서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게 하리라. 원하건대, 나는 능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나서 항상 그들과 함께 그것을 수호하며, 이익이 없는 것을 제거하고,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베풀며, 신명(身命)과 재물을 버리고 중생을 섭수하여 정법을 짊어지리라. 원하건대, 나는 능히 정법을 지고 나서 비록 정법을 행하였을지라도 마음으로 행한 바가 없게 하리니, 이는 이를테면 모든 보살이 정법을 행하였을지라도 실로 행한 바가 없고 또한 행하지 않은 바도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올바른 원은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017_0717_b_08L願我於諸佛所受正法已卽能隨轉淸淨法輪十方世界一切衆生聽我法者ㆍ聞我名者卽得捨離一切煩惱發菩提心願我能令一切衆生發菩提心已隨將護除無利益ㆍ與無量樂捨身命財攝受衆生ㆍ荷負正法願我能負荷正法已雖行正法心無所行如諸菩薩行於正法而無所行亦無不行化衆生不捨正願
이와 같은 것을 발심한 보살의 열 가지 크나큰 올바른 원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열 가지 크나큰 원은 중생계에 두루 편재하면서 일체 항하사의 온갖 원을 두루 섭수하니, ‘만약 중생이 다한다면 나의 원도 다할 것이지만, 그러나 중생계는 실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나의 크나큰 원도 역시 또한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017_0717_b_17L是名發心菩薩十大正願此十大願遍衆生界攝受一切恒沙諸願若衆生盡我願乃盡衆生實不可盡我此大願亦無有盡
017_0717_c_01L또한 다시 보시(布施)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일체의 중생을 섭취(攝取)하기 때문이며, 또한 지계(持戒)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온갖 선을 구족하여 본원(本願)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인욕(忍辱)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를 성취하기 때문이다.11)
또한 정진(精進)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선행을 증장시켜 온갖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도록 하기 때문이며, 또한 선정(禪定)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보살이 스스로를 능히 잘 조복하고 중생의 온갖 마음의 작용[心行]을 능히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지혜도 바로 보리의 원인이니, 구족할 경우 온갖 법의 성상(性相)을 능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6바라밀(波羅蜜)이 바로 보리의 원인이다. 그리고 4무량심(無量心)12)과 37품(品)13)의 온갖 만 가지 선행도 서로 함께 도와 보리를 성취하게 한다.
즉, 만약 보살이 육바라밀을 닦고 쌓으면, 그 행하는 바에 따라서 점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이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불자들이여, 보리를 추구하는 자는 마땅히 방일(放逸)해서는 안 될 것이니, 방일의 행은 선근을 허물어트린다. 만약 보살로서 6근(根)을 조복하고 방일하지 않은 자라면, 이러한 자는 능히 6바라밀을 닦고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보살의 발심은 먼저 지극한 정성과 결정적인 서원을 세워야 하는 것이니, 서원을 세운 이는 끝내 방일하거나 해태(懈怠)ㆍ완만하지 않게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결정적인 서원을 세울 때에는 다섯 가지 일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니, 첫째는 능히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능히 번뇌를 제압하고 조복하는 것이며, 셋째는 능히 방일을 막는 것이며, 넷째는 능히 5개(蓋)14)를 깨트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능히 부지런히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바와 같다.
017_0717_b_20L復次布施是菩提因攝取一切諸衆生故持戒是菩提因具足衆善滿本願故忍辱是菩提因成就三十二相八十隨形好故精進是菩提因增長善行於諸衆生勤教化故禪定是菩提因菩薩善自調伏能知衆生諸心行智慧是菩提因具足能知諸法性相故取要言之六波羅蜜是菩提正四無量心ㆍ三十七品ㆍ諸萬善行共相助成若菩薩修集六波羅蜜隨其所行漸漸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諸佛子!求菩提者應不放逸放逸之行能壞善根若菩薩制伏六根不放逸者是人能修六波羅蜜菩薩發心先建至誠立決定誓立誓之人終不放逸懈怠慢緩何以故立決定誓有五事持故一者能堅固其心ㆍ二者能制伏煩惱ㆍ三者能遮放逸ㆍ四者能破五蓋ㆍ五者能勤修行六波羅蜜佛所讚

여래 대지(大智)의 존자께서는
공덕의 증득을 나타내 설하셨으니,
인혜(忍慧)와 복업(福業)의 힘과
서원의 힘이 가장 뛰어나도다.
017_0717_c_17L如來大智尊
顯說功德證
慧福業力
誓願力最勝
017_0718_a_01L
보살은 어떻게 서원을 세우는 것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여러 가지를 구하여 찾으면, 나는 그 때 구하고 찾는 바에 따라 물건을 베풀 것이며, 나아가 한 찰나라도 인색한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손가락을 튀길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악한 마음을 낳아서 그 베푼 인연으로 청정한 과보를 추구하였다면, 나는 바로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자가 될 것이며, 미래세에도 역시 마땅히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하게 되리라. 혹은 내가 계를 지니다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청정한 마음을 건립하여 바꾸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인욕을 닦을 경우 다른 이가 침해하거나 나아가 끊고 자를지라도 항상 자애로운 마음을 낳아서 미워함의 장애[恚礙]가 없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정진을 닦을 경우 추위나 더위, 왕이나 도적, 수해나 화재, 사자ㆍ호랑이ㆍ승냥이ㆍ사막[無水穀處] 등을 만나더라도 요컨대 반드시 그 마음을 견고히 하고 강건히 해서 물러나지 않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선(禪)을 닦을 경우 외적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워져 섭수할 수 없다 해도 요컨대 생각을 붙들어 대상에 매어두고서 점차 법이 아닌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지혜를 닦고 쌓는 경우 일체법의 여실성(如實性)을 관찰해서 수순하여 수지하더라도 선ㆍ불선, 유위ㆍ무위, 생사ㆍ열반에 대해 두 가지 차별된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017_0717_c_18L云何立誓有人來種種求索我於爾時隨有施乃至不生一念慳悋之心若生惡心如彈指頃ㆍ以施因緣求淨報者卽欺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現在諸佛於未來世亦當必定不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我持戒乃至失命建立淨心誓無改悔若我修忍爲他侵害乃至割截常生慈愛誓無恚㝵若我修精進遭逢寒暑王賊水火師子虎狼無水穀處要必堅强其誓不退沒若我修禪爲外事所嬈不得攝心要繫念在境誓不暫起非法亂想若我修集智慧觀一切法如實性隨順受持於善不善ㆍ有爲無爲ㆍ生死涅槃不起二見
그러나 만약 손가락을 튀길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나의 마음에 후회와 미워함의 장애와 물러남과 어지러운 생각이 있고, 두 가지 차별된 견해를 일으켜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써 청정한 과보를 구한다면, 바로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아승기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며, 미래세에도 역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코 성취하지 못하게 되리라.
그렇지만 보살이 열 가지 크나큰 서원으로써 정법의 행(行)을 수지하고 여섯 가지의 크나큰 서원으로 방일의 마음을 제압하면, 반드시 능히 육바라밀을 정근(精勤)하여 닦고 쌓음으로서 마침내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017_0718_a_10L若我心悔恚㝵退沒亂想起於二見如彈指頃而以戒ㆍ忍ㆍ精進ㆍ禪ㆍ智求淨報者我卽欺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現在諸佛未來世亦當必定不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菩薩以十大願持正法行以六大誓制放逸心必能精勤修集六波羅蜜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4. 단바라밀품(檀波羅蜜品)
017_0718_a_17L發菩提心經論檀波羅蜜品第四
017_0718_b_01L
그렇다면 무엇을 일컬어 보살이 보시를 수행한다고 하는가?
보시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와 양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이와 같은 보시는 바로 보리의 도를 능히 장엄할 수 있다. 보살은 중생을 조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고뇌를 여의게 하고자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보시를 수행하는 자는 자기의 재물에 대해 항상 버리려는 마음을 내고, 와서 구하는 자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는데, 마치 부모와 스승과 선지식의 마음[想]과도 같다. 빈궁하고 하천한 자에 대해서는 독자(獨子)를 생각하듯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주는 바에 따라 마음이 기뻐하고 공경하는데, 이를 일러 보살이 처음으로 보시를 닦을 때의 마음이라고 한다. 또한 보시를 닦기 때문에 선한 이름으로 유포되어 태어나는 곳마다 재물과 보배가 풍요롭게 넘쳐나니, 이를 일러 ‘자리(自利)’라고 하였다. 또한 능히 중생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고 교화하고 조복해서 인색하지 않게 하니, 이를 일러 ‘이타(利他)’라고 하였다. 또한 이미 닦은 무상(無相)의 크나큰 보시로써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자신이 획득한 이익과 동일한 이익을 획득하게 하니, 이를 일러 ‘양자 모두의 이익[俱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보시를 닦음으로 인해 전륜왕(轉輪王:불타)의 지위를 획득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체의 중생을 섭수하고 나아가 마침내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획득하게 되었으니, 이를 일러 ‘보리의 도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017_0718_a_18L云何菩薩修行布施布施若爲自利他利及二俱利如是布施則能莊嚴菩提之道菩薩爲欲調伏衆生令離苦惱是故行施修行施者於己財物常生捨心於來求者起尊重心如父母師長ㆍ善知識想於貧窮下賤起憐愍心如一子想隨所須與心喜恭敬是名菩薩初修施心修布施故善名流布隨所生處財寶豐盈是名自利能令衆生心得滿足教化調伏使無慳是名利他以已所修無相大施化諸衆生令同己利是名俱利因修布施獲得轉輪王位攝受一切無量衆生乃至得佛無盡法藏是名莊嚴菩提之道
보시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법시(法施)이며, 둘째는 무외시(無畏施)이고, 셋째는 재물시(財物施)이다. 법시란 사람들에게 계(戒)를 수지하게 하고 출가의 마음을 닦도록 권유하며, 사견을 허물어트리기 위해 단(斷)ㆍ상(常)의 네 가지 전도(顚倒)15)와 여러 악과 허물을 설하고, 진제(眞諦)의 뜻을 분별하고 개시(開示)하고 정진의 공덕을 찬탄하며, 방일의 허물과 악에 대해 설하여 주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법시’라고 한다. 또한 어떤 중생이 왕이나 사자ㆍ호랑이ㆍ승냥이, 물이나 불, 도적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면 보살은 이를 보고서 능히 구호하니, 이를 일컬어 ‘무외시’라고 한다. 또한 보살은 스스로 재물을 베풀어 인색하지 않으니, 위로는 진귀한 보배, 코끼리나 말, 수레, 수가 놓인 비단, 곡물이나 의복, 음식으로부터 아래로는 찐 보릿가루 한 주먹, 한 가닥의 실에 이르기까지 많든 적든 구하는 자가 있으면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 주는 것이니, 이를 일컬어 ‘재시’라고 한다.
017_0718_b_09L施有三種一以法施ㆍ二無畏施ㆍ三財物施以法施者勸人受戒修出家心爲壞邪見說斷常四倒衆惡過患別開示眞諦之義讚精進功德ㆍ說放逸過惡是名法施若有衆生怖畏王者ㆍ師子虎狼ㆍ水火盜賊菩薩見已能爲救護名無畏施自於財物施而不上至珍寶象馬車乘繒帛穀麥衣服飮食下至麨搏一縷之綖若多若少稱求者意隨所須與是名財施
017_0718_c_01L재시에는 다시 다섯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지심시(至心施)이며, 둘째는 신심시(信心施)이고, 셋째는 수시시(隨時施)이며, 넷째는 자수시(自手施)이고, 다섯째는 여법시(如法施)이다.
마땅히 보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도 역시 다섯 가지가 있다. 즉 비리로써 구한 재물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부정(不淨)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술이나 독약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중생들을 어지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나 짐승을 잡는 그물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중생을 괴롭히고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이나 몽둥이ㆍ활ㆍ화살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중생들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여색(女色)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청정한 마음을 허물어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여법(如法)하지 않은 물건은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일체의 물건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니, 이런 보시를 ‘여법시’라고 이름한다.
보시를 즐기는 이는 다시 다섯 종류의 명문(名聞)과 선한 이익을 획득하니, 첫째는 항상 일체의 현성(賢聖)과 친근하게 되며, 둘째는 일체 중생이 즐거이 보게 되며, 셋째는 대중 속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의 으뜸가는 존경을 받는 것이며, 넷째는 좋은 명예가 시방에 널리 퍼지게 되며, 다섯째는 능히 보리를 위해서 최상의 미묘한 인연을 짓는다.
017_0718_b_19L施復有五種一者至心施ㆍ二者信心施ㆍ三者隨時施ㆍ四者自手施ㆍ五者如法所不應施復有五事非理求財不以施人物不淨故酒及毒藥不以施亂衆生故罝羅機網不以施人衆生故刀杖弓箭不以施人害衆生音樂女色不以施人壞淨心故要言之不如法物惱亂衆生不以施自餘一切能令衆生得安樂者如法施樂施之人復獲五種名聞善一者常得親近一切賢聖ㆍ二者一切衆生之所樂見ㆍ三者入大衆時人所宗敬ㆍ四者好名善譽流聞十方ㆍ五者能爲菩提作上妙因
보살인(菩薩人)이 행하는 보시를 일체시(一切施)라고 이름한다. 여기서 일체시란 많은 재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시하는 마음[施心]을 말한다. 여법하게 재물을 구하여 지니다가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아첨이나 곡해함이 없이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빈궁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재앙이나 고통을 당하는 자를 보고 자비의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가난하여 재물이 적으면서도 능히 잘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보물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면서도 마음을 열어 능히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계를 지녔거나 계를 어겼거나 밭16)을 가졌거나 밭을 갖지 않았거나 관계없이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한다.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의 미묘하고 좋은 즐거움을 바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위없이 높은 대보리를 희구하여 보시하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하며, 보시하고자 하여 보시했을 때 보시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것을 ‘일체시’라고 이름한다.
017_0718_c_09L菩薩之人名一切施一切施者非謂多財謂施心如法求財持以布施名一切施淸淨心無諂曲施名一切施見貧窮者憐愍心施l名一切施見厄苦者慈悲心施名一切施居貧少財而能用名一切施愛重寶物開意能施一切施不觀持戒毀戒田非田施一切施不求人天妙善樂施名一切施志求無上大菩提施名一切施欲施ㆍ施時ㆍ施已不悔名一切施
017_0719_a_01L꽃을 보시하면 다라니와 칠각화(七覺華:七覺支 혹은 七覺分)를 구족할 것이기 때문에, 향을 보시하면 계ㆍ정ㆍ혜를 구족하여 자신에게 훈습[熏塗]할 것이기 때문에, 과일을 보시하면 무루의 과보를 구족하고 성취할 것이기 때문에, 먹을 것을 보시하면 목숨과 변재(辯才)와 색과 힘과 즐거움을 구족할 것이기 때문에, 의복을 보시하면 청정한 색을 구족하여 무참(無慚)ㆍ무괴(無愧)를 제거할 것이기 때문에, 등(燈)을 보시하면 불안(佛眼)을 구족하여 일체 제법의 성품을 밝게 요별할 것이기 때문에, 코끼리나 말의 수레를 보시하면 무상승(無上乘)을 획득하여 신통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에, 영락(瓔珞)을 보시하면 80수형호(隨形好)를 구족할 것이기 때문에, 진귀한 보배를 보시하면 대인(大人)의 32상(相)을 구족할 것이기 때문에, 힘 있는 하인을 보시하면 부처님의 10력과 4무외를 구족할 것이기 때문에 일체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나라나 도성, 처자, 머리나 눈ㆍ손발 등의 몸을 보시할 때 마음에 인색함이 없으면 위없이 높은 보리를 증득하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살마하살은 보시를 수행할 때 재물과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차별을 돌아보지 않으니, 그것은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단바라밀(檀波羅蜜)을 구족하는 것이다.
017_0718_c_19L若以華施具陁羅尼七覺華故若以香施具戒定慧熏塗身故若以果施具足成就無漏果故若以食施具足命辯色力樂故以衣服施具淸淨色除無慚愧故以燈明施具足佛眼照了一切諸法性故以象馬車乘施得無上乘具足神通故以纓絡施具足八十隨形好以珍寶施具足大人三十二相故以筋力僕使施具佛十力ㆍ四無畏故取要言之乃至國城妻子頭目手足擧身施與心無悋惜爲得無上菩提度衆生故菩薩摩訶薩修行布施見財物ㆍ施者ㆍ受者以無相故是則具足檀波羅蜜

5. 시라바라밀품(尸羅波羅蜜品)17)
017_0719_a_10L發菩提心經論尸羅波羅蜜品第五

무엇을 일컬어 보살이 지계(持戒)를 수행한다고 하는가?
지계는 자리와 이타와 양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이와 같은 지계는 바로 보리의 도를 능히 장엄한다. 그리고 보살은 중생을 조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고뇌를 여의게 하고자 계를 지니는 것이다.
지계를 닦으면 일체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이 모두 청정해져서 불선행(不善行)의 마음을 능히 버리며, 악행과 금계(禁戒)를 훼손한 것을 능히 잘 꾸짖고, 작은 죄에 대해서도 마음은 항상 두려워하게 되니, 이를 일러 보살이 처음으로 지계를 닦을 때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계를 닦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악과 허물을 멀리 여의어서 항상 좋은 곳에 태어나니, 이를 일러 ‘자리’라고 하였다. 또한 중생을 교화하여 악을 범하지 않게 하니, 이를 일러 ‘이타’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가 닦은 바를 보리의 계(戒)로 돌려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자신이 획득한 이익과 동일한 이익을 획득하게 하니, 이를 일러 ‘양자 모두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또한 지계를 닦음으로 인해 욕망을 여의게 되며 나아가 번뇌[漏]가 다하여 최정각(最正覺)을 성취하게 되니, 이를 일러 ‘보리의 도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017_0719_a_11L云何菩薩修行持戒持戒若爲自利他利及二俱利如是持戒則能莊嚴菩提之道菩薩爲欲調伏衆生令離苦惱是故持戒修持戒者悉淨一切身口意業於不善行心能捨遠善能呵嘖惡行毀禁於小罪中心常恐怖是名菩薩初持戒心修持戒故遠離一切諸惡過患常生善處是名自利教化衆生令不犯惡是名利他以己所修向菩提戒化諸衆生令同己利是名俱利因修持戒獲得離欲乃至漏盡成最正覺是名莊嚴菩提之道
017_0719_b_01L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신계(身戒)이며, 둘째는 구계(口戒)이고, 셋째는 심계(心戒)이다.
신계를 지니는 것이란 일체의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영원히 여의는 것으로서 물건이나 목숨을 빼앗지 않고 남의 재물을 침해하지 않으며, 외적인 색[外色:자신의 처 이외의 여인]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살생 등의 인연이나 그것의 방편도 행하지 않는 것으로서 몽둥이나 나무ㆍ기와ㆍ돌 따위로 중생을 상해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어떤 물건이 다른 이에게 소속된 것이나 다른 이에 의해 수용된 것이라면 풀 한 포기, 잎사귀 하나라도 주지 않은 것은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일찍이 섬세한 여색을 곁눈질하는 일이 없으며, 네 가지 위의(威儀)를 갖추고서 공경하여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신계’라고 한다.
017_0719_a_23L戒有三種一者身ㆍ二者口ㆍ三者心身戒者永離一切殺ㆍ盜ㆍ婬行不奪物命ㆍ不侵他財ㆍ不犯外色又亦不爲殺等因緣及其方便不以杖木瓦石傷害衆生若物屬他ㆍ他所受用一草一葉不與不取又亦未嘗眄睞細色於四威儀恭謹詳審是名身戒
구계를 지니는 것이란 일체의 망어(妄語)ㆍ양설(兩說)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를 끊어 없애고, 항상 남을 속이거나 화합을 이간질하지 않으며, 비방ㆍ훼손하거나 말을 꾸미거나 아울러 방편으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말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부드럽고 충성스럽고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서 말은 항상 이롭고 교화를 권유하고 선을 닦는 것이어야 하니, 이것을 일컬어 ‘구계’라고 한다.
017_0719_b_07L持口戒者斷除一切妄語ㆍ兩舌ㆍ惡口ㆍ綺語常不欺誑離閒和合ㆍ誹謗毀呰ㆍ文飾言辭及造方便惱觸於人言則至誠柔軟忠信常饒益勸化修善是名口戒
심계(心戒)를 지니는 것이란 탐욕ㆍ진에ㆍ사견을 제거ㆍ소멸하고 항상 유연한 마음을 닦아 허물이나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죄업은 악한 과보를 얻는다고 믿는 사유의 힘으로 인해 죄업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가벼운 죄에 대해 지극히 무겁다는 생각을 내고, 설혹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후회하면서 중생들에게 진뇌(瞋惱)를 일으키지 않으며, 중생을 보고 애념(愛念)의 마음을 내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며, 마음에 인색함이 없고 즐거이 복덕을 지음으로써 항상 사람들을 교화하며, 항상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아 일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심계’라고 한다.
017_0719_b_11L持心戒者除滅貪欲ㆍ瞋恚ㆍ邪見常修軟心不作過罪信是罪業得惡果報思惟力故不造諸惡於輕罪中生極重想設誤作者恐怖憂悔於衆生所不起瞋惱見衆生已生愛念心知恩報恩心無慳悋樂作福德常以化人常修慈心憐愍一切是名心戒
017_0719_c_01L그리고 이러한 10선업계(善業戒)18)에는 다섯 가지 이익이 있으니, 첫째는 능히 악행을 제압하는 것이며, 둘째는 능히 선심을 조성하는 것이고, 셋째는 능히 번뇌를 막는 것이며, 넷째는 청정한 마음을 성취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능히 계를 증장시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방일의 행을 능히 잘 닦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정념(正念)을 구족하고 선악을 분별하여 결정코 능히 십선업계를 닦게 될 것이다. 그리고 팔만 사천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계품(戒品)은 모두 다 십선계 중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러한 십선계는 능히 일체 선계(善戒)의 근본이 된다. 나아가 이는 곧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악을 끊고 능히 일체의 불선법을 제압하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계’라고 한 것이다.
017_0719_b_18L是十善業戒有五事利益一者能制惡行ㆍ二者能作善心ㆍ三者能遮煩惱ㆍ四者成就淨心ㆍ五者能增長戒若人善修不放逸行具足正念分別善惡是人決定能修十善業戒八萬四千無量戒品悉皆攝在十善戒中是十善戒能爲一切善戒根本斷身口意能制一切不善之法故名爲戒
계에는 다시 다섯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이며, 둘째는 정공계(定共戒)이고, 셋째는 무루계(無漏戒)이며, 넷째는 섭근계(攝根戒)이고, 다섯째는 무작계(無作戒)이다.
즉 스승으로부터 백사갈마(白四羯磨)를 받는 것을 ‘바라제목차계’라고 하며,19) 근본사선(四禪:사정려)과 사미도선(四未到禪:사미지정)을 ‘정공계’라고 하고, 근본사선과 초선의 미도선을 무루계라고 하며, 온갖 감관을 섭수하여 정념(正念)의 마음을 닦아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보고 듣고 각지(覺知)하여도 방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섭근계’라고 하고, 육신을 버리고서 후세에 더 이상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을 ‘무작계’라고 이름한다.
017_0719_c_03L有五種一者波羅提木叉戒ㆍ二者定共戒ㆍ三者無漏戒ㆍ四者攝根戒ㆍ五者無作戒白四羯磨從師而受名波羅提木叉戒根本四禪ㆍ四未到禪是名定共戒根本四禪ㆍ初禪未到名無漏戒收攝諸根ㆍ修正念心見聞覺知色聲香味觸不生放逸名攝根戒捨身後世更不作惡名無作戒
보살이 닦는 계는 성문이나 벽지불이 닦는 계와는 같지 않으니, 공통되지 않기 때문에 ‘선지계(善持戒)’라고 이름한다. 즉 선계(善戒)를 지녔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살이 자심계(慈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중생을 구호하여 안락하게 하기 때문이며, 비심계(悲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온갖 괴로움을 참고서 위난(危難)을 제거하기 때문이며, 희심계(喜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기쁘게 선을 닦으며 해태(懈怠)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심계(捨心戒)를 지니고 있음은 원수나 친구를 평등하게 대하여 사랑과 미움[愛恚]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혜시계(惠施戒)를 지니고 있음은 온갖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였기 때문이며, 인욕계(忍辱戒)를 지니고 있음은 마음이 항상 유연하여 미워함이나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정진계(精進戒)를 지니고 있음은 선업이 날로 증가해서 물러나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선정계(禪定戒)를 지니고 있음은 욕탐과 불선을 여의고 선의 갈래[禪支]에 오래 머물기 때문이며, 지혜계(智慧戒)를 지니고 있음은 다문(多聞)의 선근(善根)은 싫어함이나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며,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계[親近善知識戒]를 지니고 있음은 보리의 위없이 높은 도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며, 악지식을 멀리 여의는 계[遠離惡知識戒]를 지니고 있음은 삼악도(三惡道)와 팔난처(八難處)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다.
017_0719_c_11L菩薩修戒與聲聞辟支佛共以不共故名善持善持戒故則能利益一切衆生慈心戒救護衆生令安樂故持悲心忍受諸苦拔危難故持喜心戒樂修善不懈怠故持捨心戒怨親平等離愛恚故持惠施戒教化調伏諸衆生故持忍辱戒心常柔軟無恚㝵持精進戒善業日增不退還故禪定戒離欲不善長禪支故持智慧多聞善根無厭足故持親近善知識戒助成菩提無上道故持遠離惡知識戒捨離三惡八難處故
017_0720_a_01L나아가 보살인으로서 청정계(淸淨戒)를 수지하는 자란 이렇다; 욕계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에 가까이하지 않으며 무색계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욕망과 번뇌를 버리고 미워하는 장애를 없애서 무명의 장애를 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단(斷)ㆍ상(常)의 두 극단을 여의어서 인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가명(假名)의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원인에 계박되지 않고 온갖 견(見)20)을 일으키지 않고 의심이나 후회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탐ㆍ진ㆍ치의 세 가지 불선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017_0719_c_23L菩薩之人持淨戒者不依欲界ㆍ不近色界ㆍ不住無色界是淸淨戒捨離欲塵ㆍ除瞋恚㝵ㆍ滅無明障是淸淨戒離斷常二邊ㆍ不逆因緣是淸淨戒不著色受想行識假名之相是淸淨戒不繫於因ㆍ不起諸見ㆍ不住疑悔是淸淨戒不住貪瞋癡三不善根是淸淨戒
아만(我慢)ㆍ교만(憍慢)ㆍ증상만(增上慢)ㆍ만만(慢慢)ㆍ대만(大慢)21)에 머물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며 선에 수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이익과 쇠퇴, 훼손과 영예, 칭찬과 꾸짖음, 괴로움과 즐거움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세제(世諦)와 허망ㆍ가명(假名)에 물들지 않고 진제(眞諦)에 수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번뇌하지 않고 뜨겁지 않아서 상(相)을 여의어 적멸한 것,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무상상(無常想)을 관찰해서 염리(厭離)를 낳고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 용맹정진하는데 까지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청정계이다.
보살마하살은 지계(持戒)를 수행하면서 이 같은 청정한 마음조차 살피지 않으니, 그 상념[想]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라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
017_0720_a_07L不住我慢ㆍ憍慢ㆍ增上慢ㆍ慢慢ㆍ大慢柔和善順淸淨戒利衰毀譽稱譏苦樂不以傾是淸淨戒不染世諦虛妄假名於眞諦是淸淨戒不惱不熱ㆍ寂滅離是淸淨戒取要言之乃至不惜身觀無常想生於厭離勤行善根勇猛精進是淸淨戒菩薩摩訶薩修行持戒不見淨心以離想故是則具足尸羅波羅蜜

6. 찬제22)바라밀품(羼提波羅蜜品)
017_0720_a_16L發菩提心經論羼提波羅蜜品第六
017_0720_b_01L
무엇을 일컬어 보살이 인욕(忍辱)을 수행한다고 하는가?
인욕이 자리와 이타, 그리고 양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이와 같은 인욕은 바로 보리의 도를 능히 장엄한다. 그리고 보살은 중생을 조복시켜 그들이 고뇌를 여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욕을 닦는 것이다.
즉 인욕을 닦는 자는 마음이 항상 일체 중생에 대해 겸손하고, 강압과 교만을 버리고 행하지 않으며, 추악한 이를 보고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고, 말은 항상 부드럽고 선을 닦을 것을 권유해 교화하며, 분노와 화합하여 참음[和忍]의 과보의 차별을 능히 잘 분별하여 설하니, 이를 일러 보살이 처음으로 인욕을 닦을 때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욕을 닦기 때문에 모든 악을 멀리 여의어서 몸과 마음이 안락하게 되니, 이를 일러 ‘자리’라고 하였다. 또한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그들을 모두 화순(和順)하게 하니, 이를 일러 ‘이타’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가 닦은 위없이 높은 대인(大忍)으로써 온갖 중생을 교화해서 자신이 획득한 이익과 동일한 이익을 획득하게 하니, 이를 일러 ‘양자 모두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또한 인욕을 닦음으로 인해 단정(端政)을 획득해서 사람들에게 으뜸가는 공경을 받고, 나아가 부처님의 지극히 미묘한 상호를 증득하게 되니, 이를 일러 ‘보리의 도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017_0720_a_17L云何菩薩修行忍辱忍辱若爲自利他利及二俱利如是忍辱則能莊嚴菩提之道菩薩爲欲調伏衆生令離苦惱故修忍辱修忍辱者心常謙下一切衆生剛强憍慢捨而不行見麤惡者起憐愍心言常柔濡勸化修善能分別說瞋恚和忍果報差別是名菩薩初忍辱心修忍辱故遠離衆惡身心安樂是名自利化導衆生皆令和順是名利他以己所修無上大忍化諸衆生令同己利是名俱利因修忍辱獲得端政人所宗敬乃至得佛上妙相好是名莊嚴菩提之道
인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인욕이다.
무엇을 신인(身忍)이라고 하는가?
만약 다른 이가 악한 마음으로 침입하여 훼손하고 때리고 나아가 상해를 입히더라도 그것을 모두 참고 감수할 수 있으며, 온갖 중생들이 위험과 핍박을 당해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몸으로 그를 대신하면서도 괴로워하여 회피하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을 일러 ‘신인’이라고 한다.
무엇을 구인(口忍)이라고 하는가?
만약 꾸짖는 자를 보더라도 묵묵히 감수할 뿐 앙갚음하지 않으며, 혹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로 와서 엄하게 꾸짖는 자를 보더라도 마땅히 부드러운 말로 달래고, 혹은 어떤 이가 무고로 제멋대로 비방하더라도 그것을 마땅히 모두 참고 감수하는 것, 이것을 일러 ‘구인’이라고 한다.
무엇을 의인(意忍)이라고 하는가?
미워하는 이를 보더라도 마음에 한(限)을 품지 않으며, 혹은 번뇌를 촉발시키는 경우가 있더라도 마음이 산란되지 않고, 혹은 꾸짖고 훼손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마음에 역시 두려워함이 없는 것, 이것을 일러 ‘의인’이라고 한다.
017_0720_b_07L忍辱有三謂身ㆍ口ㆍ意云何身忍若他加惡侵毀撾打乃至傷害悉能忍受見諸衆生危逼恐懼以身代之而無疲怠是名身忍云何口忍若見罵者默受不報若見非理來呵嘖者當濡語附若有加誣撗生誹謗皆當忍受名口忍云何意忍見有瞋者心不懷恨若有觸惱其心不亂若有譏毀心亦無怨是名意忍
017_0720_c_01L세간에서 때리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실제적으로 때리는 것[實打]이며, 둘째는 제멋대로 때리는 것[橫打]이다. 만약 죄과가 있든지 혹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혐의를 받아 맞았다면, 그는 마땅히 감로를 마시듯이 스스로 참고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때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능히 나를 잘 가르치고 조복시켜 나로 하여금 온갖 죄과를 여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악한 마음에서 제멋대로 나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마땅히 ‘나는 지금은 죄가 없지만, 이건 과거의 숙업이 초래한 바이므로 역시 마땅히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며, 또한 마땅히 ‘이 몸은 사대(四大)가 일시 화합된 것이고 오중(五衆:오온)이 인연 화합한 것이니, 누가 맞는 자[受打者]일까?’라고 하거나, 또는 ‘앞에서 때리는 사람이 어리석은 이처럼 보이고 미치광이처럼 보여서 나는 마땅히 그를 불쌍히 여기거늘 어찌 참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꾸짖는 것에도 역시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실제적으로 꾸짖는 것[實罵]이며, 둘째는 거짓되게 꾸짖는 것[虛罵]이다. 만약 죄과가 있어서 실제적으로 꾸짖었다면 나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죄과가 없는데도 거짓되게 꾸짖었다면, 나는 일찍이 꾸짖음을 들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 같은 꾸짖음은 이를테면 메아리 소리와 같고 바람이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나에게 손해될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그러한 꾸짖음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성내는 것[瞋]도 역시 그러하니, 타인이 와서 나에게 성을 내더라도 나는 마땅히 참고 감수해야 한다. 만약 그에게 성을 낸다면 미래세에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크나큰 고뇌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나의 몸이 설혹 절단되어 떨어져 나가더라도 마땅히 성을 내지 말아야 하며, 마땅히 오가는 업의 인연을 깊이 관찰해야 할 것이며, 마땅히 자비를 닦아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적은 괴로움을 능히 참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능히 스스로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017_0720_b_16L世閒打者有二種者實ㆍ二者撗若有罪過若人慊疑爲彼所打自應忍受如服甘露於彼人所應生恭敬所以者何善能教誡調伏於我令我得離諸過罪故若撗加惡傷害於我當自思惟我今無罪是過去宿業所招是亦應忍復應思四大假合ㆍ五衆緣會誰受打者觀前人如癡如狂我當愍之云何不又罵者亦有二種一實ㆍ二虛若說實者我應生慚若說虛者無豫我事猶如響聲亦如風過無損於我是故應忍又瞋者亦爾他來瞋我我當忍若瞋彼者於未來世當墮惡道受大苦惱以是因緣我身若被斫截分不應生瞋應當深觀往業因緣修慈悲憐愍一切如是小苦不能忍我卽不能自調伏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능히 중생을 조복하여 일체의 악법(惡法)으로부터 해탈시켜서 위없이 높은 과보를 성취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어떤 지인(智人)이 인욕을 즐거이 닦았다면, 이 사람은 늘 얼굴과 모양새가 단정하고 많은 재물과 보배를 획득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 환희하고 공경해 받들며 복종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관찰해야 하나니, 만약 어떤 사람의 형태가 쇠잔하고 안색이 추악하며 온갖 감관이 결여되어 있고 재물이 궁핍하다면, 이는 성냄의 인연 때문에 얻은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말미암아 지자(智者)는 마땅히 인욕을 깊이 닦아야 하는 것이다.
017_0720_c_10L云何當能調伏衆生令得解脫一切惡法成無上若有智人樂修忍辱是人常得顏貌端正多饒財寶人見歡喜敬仰伏復當觀察若人形殘ㆍ顏色醜惡ㆍ諸根不具ㆍ乏於財物當知皆是瞋因緣以是因緣智者應當深修忍辱
017_0721_a_01L참음, 즉 인욕을 낳는 인연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나[我]와 나의 것[我所]의 상(相)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는 종성(種姓)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세 번째는 교만을 깨트려 제거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악이 닥쳐오더라도 앙갚음하지 않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무상(無常)의 상(想)을 관하는 것이며, 여섯 번째는 자비를 닦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마음이 방일하지 않는 것이며, 여덟 번째는 배고픔이나 목마름에 대해 괴롭고 즐겁다는 등의 느낌을 버리는 것이고, 아홉 번째는 성냄을 끊고 제거하는 것이며, 열 번째는 지혜를 닦아 익히는 것이다. 즉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을 능히 성취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는 능히 인욕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살마하살이 청정필경인(淸淨畢竟忍)을 닦을 때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작(無作)에 들어가면, 보고 지각하고 원하고 짓는 것과 화합하지 않아서 공ㆍ무상ㆍ무원ㆍ무작에도 기대어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온갖 보고 지각하고 원하고 짓는 것은 모두 공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인욕이 바로 둘 없는 모습[無二相]의 인욕으로서 소위 ‘청정필경인’이라고 한다. 혹은 결(結:번뇌)의 다함[盡]에 들거나 적멸(寂滅)에 들어가면, ‘결’에 의한 생사와 화합하지 않고 ‘결의 다함’이나 적멸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갖 결에 의한 생사는 공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인욕이 바로 둘 없는 모습의 인욕으로서 소위 ‘청정필경인’이라고 한다. 혹은 인욕의 자성이 스스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며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도 아니라면, 출현함이 있지 않아서 파괴할 수도 없다. 파괴할 수 없는 것이란 바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인욕이 바로 둘 없는 모습의 인욕으로서 소위 ‘청정필경인’이라고 한다.
017_0720_c_16L忍因緣有十事一者不觀於我及我所相ㆍ二者不念種姓ㆍ三者破除憍慢ㆍ四者惡來不報ㆍ五者觀無常想ㆍ六者修於慈悲ㆍ七者心不放逸ㆍ八者捨於飢渴苦樂等事ㆍ九者斷除瞋恚ㆍ十者修習智慧若人能成如是十事當知是人能修於忍菩薩摩訶薩修於淸淨畢竟忍時若入空ㆍ無相ㆍ無願無作不與見覺願作和合不猗著空無相無願無作是諸見覺願作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名淸淨畢竟忍也若入盡結ㆍ若入寂滅不與結生死合不猗盡結寂滅諸結生死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名淸淨畢竟忍也若性不自生ㆍ不從他生ㆍ不和合生無有出不可破壞不可壞者是不可如是忍者是無二相是名淸淨畢竟忍也
그리고 무작(無作)ㆍ비작(非作)이라서 의지해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분별도 없고 장엄도 없고 닦아서 다스리거나 발진(發進)하는 일도 없어서 끝내 생(生)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인욕이 바로 무생인(無生忍)이다. 나아가 보살은 바로 이와 같은 인욕을 수행하여 수기(受記)된 인[忍]을 획득하게 된다. 그렇지만 보살마하살은 인욕을 수행하면서도 그것의 성상(性相)이 다 공(空)이라고 여기니, 더 이상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찬제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
017_0721_a_11L無作非作ㆍ無所猗著ㆍ無分別ㆍ無莊嚴ㆍ無修治ㆍ無發進終不造生是忍者是無生忍如是菩薩修行是得受記忍菩薩摩訶薩修行忍辱性相盡空無衆生故是則具足羼提波羅蜜
發菩提心經論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무생법, 즉 생사를 떠난 진여실상의 이치에 대해 인가하고, 이에 안주하여 동요됨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보살의 초지(初地) 혹은 7지ㆍ8지ㆍ9지에서 획득되는 불퇴전의 깨달음이다.
  2. 2)중생이 윤회하는 생사의 세계를 스물다섯 가지로 나눈 것으로, 욕계의 4악취(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와 4대주(大州)와 6욕천(欲天), 색계의 4선천(禪天), 그리고 초선의 대범천과 제4선 중의 정거천과 무상천, 무색계의 4천을 말한다.
  3. 3)항하는 강가(Ganga), 즉 갠지즈 강의 음사로서, 갠지즈 강의 모래만큼 많은 것을 항하사라고 하며, 아승기(혹은 無數)는 asamkhya의 음사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말한다.
  4. 4)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옳고 그름을 아는 것)ㆍ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ㆍ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4정려ㆍ8해탈ㆍ온갖 등지와 8등지를 아는 것)ㆍ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중생근기의 상하우열을 아는 것)ㆍ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중생 意樂의 차별을 아는 것)ㆍ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중생 性類의 차별을 아는 것)ㆍ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일체의 제행은 반드시 결과로 능히 나아가는 것[能趣]임을 아는 것)ㆍ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자신과 타인의 과거 숙주의 차별을 참답게 아는 것)ㆍ사생지력(死生智力:중생이 미래세에 여러 가지 존재로 續生하는 것을 아는 것)ㆍ누진지력(漏盡智力:열반을 아는 것).
  5. 5)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번뇌를 영원히 끊었다는 대자각이 있어 다른 이의 비난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ㆍ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번뇌를 다하였기 때문에 설법함에 있어 다른 이의 비난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ㆍ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염오법은 반드시 성도에 장애가 되는 법임을 설함에 있어 외도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ㆍ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도를 닦으면 반드시 苦에서 출리함을 설함에 있어 외도가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이치에 맞게 해명하여 이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6. 6)여래는 제자들이 공경하고 올바로 수지(受持)하더라도 그것에 환희하지 않고 정념(正念)ㆍ정지(正知)에 안주한다(제1념주). 여래는 제자들이 공경하지 않고 올바로 수지하지 않더라도 그것에 근심하지 않고 정념ㆍ정지에 안주한다(제2념주). 여래는 제자들 중의 어떤 이는 공경하고, 어떤 이는 공경하지 않더라도 그것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정념.정지에 안주한다(제3념주).
  7. 7)부처님을 만나고[見佛] 법을 듣는 데[聞法] 장애가 있는 여덟 처소로서, 지옥ㆍ아귀ㆍ축생ㆍ북구로주(4大洲의 북쪽. 여기서는 즐거움의 과보가 뛰어나 괴로움이 없기 때문임)ㆍ장수천(長壽天:색계ㆍ무색계의 장수 안온처)ㆍ귀머거리와 장님과 벙어리[聾盲瘖瘂]ㆍ세속지만이 뛰어난 자[世智辯聰]ㆍ부처님이 세간이 계시지 않을 때[佛前佛後]를 말한다.
  8. 8)화도(火塗:사나운 불길이 타오르는 지옥취)ㆍ혈도(血塗:축생)ㆍ도도(刀塗:칼로써 서로를 핍박하는 아귀취).
  9. 9)보살 10지의 첫 번째 단계로서, 성문의 5정심위ㆍ4념주ㆍ총상념주의 삼현위(三賢位)에 해당한다. 간은 건조의 뜻으로, 이 단계의 지혜는 아직 법성의 이수(理水)를 증득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간혜지이다.
  10. 10)다섯 가지 부사의하고 자재한 작용으로,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숙명통(宿命通)ㆍ타심통(他心通)ㆍ신족통(神足通) 등이다.
  11. 11)32상 80수형호(혹은 種好)란 전륜성왕이나 전법륜왕(불타)이 갖는 신체상의 수승한 덕성을 말한다.
  12. 12)자무량심(慈無量心)ㆍ비무량심(悲無量心)ㆍ희무량심(喜無量心)ㆍ사무량심(捨無量心)을 말한다.
  13. 13)열반의 자량이 되는 서른일곱 가지 도를 말하는 것으로 4념주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覺分)ㆍ8정도의 자량이 되는 37각지 도를 말하는 것으로, 4념주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가지ㆍ8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14. 14)선법을 가리어 심성을 장애하는 법으로, 탐욕ㆍ진에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개(疑蓋) 등이다.
  15. 15)단ㆍ상의 네 가지 전도란, 무상ㆍ고(苦)ㆍ무아ㆍ부정(不淨)의 생사를 상ㆍ낙ㆍ아ㆍ정이라고 집착하는 것, 혹은 상ㆍ낙ㆍ아ㆍ정의 열반을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전자는 유위의 네 전도이며, 후자는 무위의 네 전도이다.
  16. 16)밭[田, ksetra]이란 복전(福田), 즉 공덕을 지닌 이, 혹은 밭을 지키는 이(田主, 혹은 守田者, ksetrapa), 즉 찰리(刹利)를 의미한다.
  17. 17)시라바라밀(s´lapramita)의 시라는 계율의 뜻으로, 곧 지계(持戒)를 말한다. 계율에는 출가ㆍ재가, 소승ㆍ대승의 차별이 있다.
  18. 18)앞서 언급한 신계인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떠나는 것과 구계인 망어(妄語)ㆍ양설(兩說)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를 끊어 제거하는 것과, 심계인 탐욕ㆍ진에ㆍ사견을 제거ㆍ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19. 19)백사갈마(혹은 一白三■磨)란 수계와 같이 승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승중(僧衆)에 대해 먼저 그 일을 한 번 아뢰고, 다음에 세 번 그 가부를 물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라제목차(pratimoksa, 戒經)란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 조문(사분율의 경우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을 말한다.
  20. 20)여기서 견이란 오취온으로서, 나[我]도 나의 것[我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그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유신견(有身見), 이러한 오취온은 단멸하는 것[斷]도 영속적인 것[常]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ㆍ상의 두 극단에 집착하는 변집견(邊執見),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업의 상속도, 이숙도 없으며, 해탈도 해탈에 이르는 실천도도 없다고 하는 사견(邪見), 상주론의 입장에서 영속의 실재를 세간의 참된 원인으로 간주하여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불로 지지는 등의 그릇된 금계를 청정도라고 집착하는 계금취(戒禁取), 이상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지식으로 간주하는 견취(見取) 등을 말한다.
  21. 21)아만ㆍ교만ㆍ증상만ㆍ만만ㆍ대만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오만한 마음[慢心]의 다섯 종류로, 일반적으로는 일곱 가지 만, 즉 만(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ㆍ과만(過慢: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 것)ㆍ만과만(慢過慢:구역에서는 過過慢, 자신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 것)ㆍ아만(오취온을 아, 아소로 집착하는 것)ㆍ증상만(예류과 등의 과보를 얻지 못하였으면서 이미 증득하였다고 하는 것)ㆍ비만(卑慢, 구역에서는 下慢,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ㆍ사만(邪慢, 실제로는 덕이 없으면서 덕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22. 22)인욕(忍辱)의 뜻으로, 일체 중생의 꾸짖음[罵■]ㆍ모욕ㆍ타격 등과 추위와 더움ㆍ기근ㆍ갈증 등을 참아내는 대행(大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