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三界)는 오직 언어와 명자로 그 바탕[體]을 삼는데, 굳이 분별해 보면 실유(實有)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함을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의 자성(自性)에 대해 전도됨이 없는 지혜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간택문(簡擇門)에 의해 이 논(論)을 세운다.
등나무에 대해 뱀이라는 인식을 일으키나 등나무를 잘 살펴보면 본래 뱀이라는 경계는 없네.
어두컴컴할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등나무의 형색은 뱀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여 그 경계에 속은지라 아직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뱀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를 낸다. 그러나 만일 등나무를 뱀과는 다른 모습으로 파악한다면, 앞서 헤아려 분별한 까닭으로 허망함이 생겼던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이해는 단지 산란한 인식[散知]1)이었을 뿐, 그런 경계(뱀)는 없는 것이다.
만일 등나무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등나무에 대한 인식도 뱀에 대한 인식이나 마찬가지이네.
만약에 이 등나무라는 경계를 이러니저러니 하고 헤아려 분석해 보아도 등나무의 실체를 얻을 수 없다. 만일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등나무에 대한 인식은 뱀에 대한 인식의 경우와 다름이 없으니 단지 산란한 인식이었을 뿐이다. 등나무의 구성성분들에 대해 또한 이와 같이 헤아려 분석해 보아도 그 체상(體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등나무를 연려(緣慮:인식대상으로 삼아 인식함)하든 등나무의 구성성분들을 연려하든 이러한 인식은 다 잘못된 인식이다.
일체 가명의 세속법들은 자성(自性)을 간택(簡擇)할 때 가명이 다른 것을 따라 일어난 것이며 세속의 인지(認知) 경계이네.
구성성분에 의거하여 등나무 등을 분석하여 관찰해 보면 자체성(自體性)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뱀에 대한 인식처럼 이 등나무 등에 대한 인식도 단지 잘못된 인식일 뿐이며 실제로는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 가명으로서의 유법(有法)2)은 항아리ㆍ의복ㆍ사람 등을 말하는데, 만약에 항아리 등의 모든 성분을 관찰해 보면 세속적인 인식지혜의 경계에 머물거나 최후의 성분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항아리 등의 가명은 다른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어서 최후에는 분석할 수가 없는 어려움에 처하니 드러나거나 사라짐[顯離]이 다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 가명의 법들은 최후의 성분을 분석할 수 없으니, 오직 하나의 인허(鄰虛)3)이다. 만일 하나의 구성요소를 떠나면 나머지 구성요소들이나 하나의 구성요소가 아울러 드러나지 않으니 이는 자체(自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법(無法)4)인 토끼뿔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 인허라는 것은 하나의 사물로 인정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물이 있으려면 반드시 여섯 방분(方分:방위)의 차이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항아리 등의 예에서와 같다. 항아리 등의 모든 사물은 세간의 존재로서 여섯 방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유분(有分)5)만 가지고는 하나의 사물도 이루지 못한다. 만약의 인허를 실유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응당 여섯 방위가 존재하게 될 것인즉 유분(有分)만으로는 한 사물도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유분만으로 하나의 사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여러 물질에 의해 성립된다는 의미가 되어 버려 항아리 등의 경우와 다르지 않으니 이 또한 실체(實體)가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속의 경계에 대해 진실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네.
이렇듯 삼계에는 오로지 잘못된 인식만 존재하니 만일 지혜로운 이가 해탈을 구하려면 세속의 경계가 진실한 것이라는 헤아림[計度]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문】산란한 분별식[散識]6)이란 존재합니까? 【답】만일 그대가 “나는 항아리 등과 같이 외부로 드러난 사물은 그 자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산란한 분별식[亂識]만 존재한다고 믿는다”라고 한다면 이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경계를 연려(緣慮)하여 일으킨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허깨비ㆍ변화인ㆍ건달바성 등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산란한 분별식이 허깨비 등과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이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옳지 않은 것이다.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성립할 수 없는가? 인지할 대상이 이와 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산란한 분별식은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사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분별식(識)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식대상[所緣]인 객진경계(客塵境界)의 자성이 이러하다면 인식주체[能緣]의 자성 역시 이러하다. 인식대상인 객진경계가 존재하지 않는한 이 산란한 분별식[散識]도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것의 공력으로 말미암아도 그와 다른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일어난다[起]는 의미가 어디에 존재할 수 있으리오. 이러한 뜻이 있는데 산란한 분별식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세간에서는 이와 같은 법은 있을 수 없으니 당연히 종자 등은 싹 등을 생기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만일 종자가 싹 등을 생기게 하는 일이 없이 열매[果]가 존재한다면 이러한 처소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속의 측면에서는 허깨비ㆍ변화인 등의 비유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일체 가명의 사물을 오로지 세심하게 사량(思量)하여 지혜로운 이는 탐욕 등의 번뇌를 마치 뱀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듯 제거할 수 있네.
이와 같이 설했으니 삼계가 단지 가명임을 인식하여 항아리 등에 대한 거친 인식을 제거하고 미세한 마음을 닦아 익혀야 한다. 가령 세간에서 성립하는 항아리ㆍ옷 등의 사물은 가명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니 대략 세속심(世俗心)에 따르면 이 일이 어긋나지 않으나 후에 이 세속심을 떠나보내면 바야흐로 간택심(簡擇心)이 일어나 오직 산란한 분별식만을 볼 수 있고 외진경계(外塵境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산란한 분별식의 원인도 성립될 수 없고 이와 유사한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체성(體性)이 성립되지 않으니 내외(內外)가 존재하지 않아 법공(法空)임을 알 수 있다. 일체 분별이 지은 탐욕 등의 모든 번뇌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제거하기가 쉽다. 비유하자면 등나무에 대하여 허망하게 분별하여 뱀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두려운 마음을 내지만, 만일 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결정적으로 이것이 등나무임을 알 수 있어 뱀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잘 사량(思量)함으로 말미암아 탐욕 등의 모든 객진번뇌를 일으키는 자성(自性)을 신속하고도 쉽게 멸할 수 있으니 탐욕 등과 같은 번뇌의 허망함이 또한 이러한다.
지혜로운 이는 세간과 어긋나지 않게 세간법에 따라 설하며 만일 번뇌의 장애를 멸하려 하면 진제(眞諦)에 의지하여 관찰해야 하네.
가령 세속제에 따르면 세간의 항아리ㆍ의복 등의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해도 어긋나지 않으니, 다른 것들도 이와 같이 제시하여 말할 수 있다. 지혜로운 이는 먼저 이 일을 따르고 난 후에, 만일 해탈을 구하려면 응당 진리를 닦아야 하나니 세간법의 자성을 간택해야 한다. 이치에 맞게 간택하여, 일어나 나타난 번뇌는 멸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이 논을 세우는 공용(功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