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외도가 주장하는 네 가지 비불법설[非佛法]이란 어떤 것인가? 【답】 일체법은 같은 것[一]이다. 일체법은 서로 다른 것[異]이다.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俱].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不俱]는 주장이다. 【문】 일체법은 같은 것이고, 다른 것이고,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하고,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하며, 어떤 외도들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 이것은 외도들이 허망한 법에 대하여 각각 집착하여 실제로 그러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 어떤 외도들이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가? 【답】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외도 승거(僧)1)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외도 비세사(毘世師)2)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은 외도 니건자(尼犍子)3)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외도 약제자(若提子) 4) 논사의 말이다. 【문】 승거 논사는 왜 일체법은 같다고 말하는가? 【답】 승거 외도는, “나(我)와 앎[覺] 두 가지 법은 같다. 왜냐하면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문】 왜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는가? 【답】 소나 말과 같이 다른 법은 두 가지의 차이를 볼 수 있고 얻을 수 있어, ‘이것은 소다’, ‘저것은 말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앎을 떠나 나를 얻을 수 없고, 나를 떠나 앎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경에서, “나와 앎의 본질[體相]은 불[火]과 뜨거움[熱]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다. 【문】 왜 차별할 수 없는 건가? 【답】 그 법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흰 무명에 대해,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두 가지 법의 차별은 흰 무명과 같다. 모든 원인과 결과도 또한 이와 같다. 【문】 비세사 외도는 왜 일체법이 다르다고 하는가? 【답】 다르다고 한 것은 나와 앎이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것[異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왜 다른 법이라고 말하는가? 【답】 마치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 ‘이것은 천덕(天德)이다’, ‘이것은 천덕의 무명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나’와 ‘앎’이 다른 것도 이와 같아서, ‘이것은 나[我]다’, ‘이것은 앎[智]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 어떤 차별이 있기에 그들 법을 같다고 말할 수 없는가? 【답】 예를 들면, 흰 무명에 대해,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원인과 결과는 각기 달라서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니건자는 왜 일체법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하는가? 【답】 일체법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은 마치 나와 앎을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음과 같다. 또 다른 뜻으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어떻게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가? 【답】 마치 나와 수명[命]의 작용[用]과 모양(相)이 다르고 방편(方便)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고, 마치 탐ㆍ진ㆍ치 등이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등불[燈]과 밝음[明]을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기 때문에 같다고 할 수 있고, 등불은 다른 것이고 밝음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등불과 밝음, 원인과 결과, 하얀 것과 무명과 같이 일체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한 것이다. 【문】 약제자 외도는 왜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하는가? 【답】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일체법은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극단은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는 논사들에게는 모두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을 주장하지 않는다. 【문】 어떠한 과실이 있는가? 【답】 만약 흰 것을 떠나 따로 무명포가 있지 않다면 흰 것이 소멸될 때 무명포도 역시 소멸되어야 한다. 만약 흰 것과는 달리 무명포가 있다면, 마땅히 무명포가 있을 때 흰 것이 없고 흰 것이 있을 때 무명포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등의 법을 모두 주장하지 않는다. 【문】 비록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無]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답】 이것은 외도들의 허망분별(虛妄分別)로 사견상(邪見相)이지 지혜상[智相]이 아니며, 모두 불선(不善)에 속한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또 같다[一]는 등의 법은 허망분별이다. 그들 법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법이 같다고 하면 ‘병(甁)’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병이 같다고 하면, 모든 병은 곧 다 같이 똑같은 병이 되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법은 같기 때문에 병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무명은 같기 때문에 병과 서로 다르다. 무명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법은 다른 법을 여읜다. 다른 법은 같을 수도 없고 다를 수도 없으므로 다른 법은 다른 법으 이룰 수 없고, 다른 법은 다른 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두 가지 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한다면, 그 두 가지 법은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해야 한다. 만약 같다고 하지 않거나 다르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허망분별이다. 만약 그 두 가지가 같다면 그 법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두 가지가 다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법은 서로 의지하여 이루어지므로 세속제[世諦]의 허망분별에 의거한 것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이러한 외도의 허망분별이라는 희론(戱論)에 의한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 가지 외도들이 말하는 사견상(邪見相)에 대한 총체적인 대답이다. 이제부터는 네 가지 외도들의 각각의 주장에 대해 대답하겠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 관찰하면 가비라(迦毘羅)5)ㆍ우루거(憂樓佉)6) 등의 외도들이 갖는 허망분별은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일체법은 같다[一]는 말은 맞지 않다. 소멸하면 소멸해야 하고[以滅應滅], 소멸하지 않으면 소멸하지 않아야 하니[不滅不應滅], 함께 소멸하고 함께 소멸하지 않는다.[俱滅俱不滅]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대는 나와 앎에 모양[相]의 차별이 없다고 말하였다. 마치 ‘흰 무명’에서처럼 나는 이것을 파척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말한 것은 모든 경과 논에서 말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하는, ‘모든 법은 차별이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손[手]과 손톱[爪]이라는 그들 두 가지 법이 서로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마치 손톱ㆍ손가락ㆍ손바닥을 손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세 가지가 달라서 손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이 흰 것과 무명포가 같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세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앎이 같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흰 것과 무명포가 같을 수 없다. 마치 손ㆍ손가락ㆍ손바닥의 관계처럼, 만약 이것이 소멸된다면 저것도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흰 것이 소멸된다면 저것도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흰 것이 소멸된다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손이 잘리면 손가락과 손바닥도 잘리는 것과 같다. 흰 것이 소멸되어도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대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맞지 않는다. 만약 무명포가 소멸되지 않으면 흰 것도 역시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손을 잘랐는데도 손가락과 손바닥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손가락을 잘랐는데도 손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대의 주장이 푸른색[靑]ㆍ노란색[黃]ㆍ붉은색[赤] 등이 오직 흰색만을 소멸하고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의 색깔은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명포가 소멸되지 않는다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의 색깔도 역시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문】 내가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이 흰색을 가리는 것이지 흰색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어떠한가? 【답】 무명포도 역시 이와 같아서 무명포를 가리는 것이지 무명포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무명포를 빨면 다시 흰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포도 이와 같아서 무명포를 가리는 것은 무명포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흰 것이 곧 무명포이고 무명포가 곧 흰 것이다. 만약 무명포가 소멸되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ㆍ흰색 등의 색깔은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의 주장이 흰색의 소멸은 가려지는 것으로 소멸이 아니며, 무명포가 소멸되어도 무명포를 가리는 것으로 흰 것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어떤 법은 소멸되고 가려지지만 어떤 법은 소멸되지도 가려지지도 않게 되는데, 어떻게 일체법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같다고 하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외도인 승거 논사의 ‘일체법은 같다’고 하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마친다. 【문】 가나타(迦那陀)7) 외도 논사는 일체법은 다르다고 말한다. 나와 앎은 다르다.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앎이다’라고 하는 것은 마치 흰 무명포에 대해, ‘이것은 흰 것이다’, ‘이것은 무명포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답】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이 이것은 손이고 이것은 손가락과 손바닥이라고 말할 때처럼 그 사람들은 비록 이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다른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앎이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마치 흰 무명포와 같이 세간을 볼 때 두 가지의 차별이 잇기 때문이다. 두 가지 차별이란 첫째는 모양[相]이고, 둘째는 장소[處]이다. 모양의 차별이란 색깔[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은 다르지 않고 모양이 서로 다른 모양을 갖고 지니기 때문이다. 장소의 차별은 곡식, 콩 등이 지닌다. 흰 무명포가 다르지 않으면서 모양의 차별을 갖고 있는 것은 그러한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과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 가지의 과실이 있게 된다. 이는 무슨 뜻인가? 흰 것이 소멸하면 무명포도 역시 소멸된다. 그러한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과 같이, 비유하면 불과 화합하여 타는 병은 붉은색이 되었다가 다시 푸른색이 된다. 냄새와 맛도 또한 그러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도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이 흰 것과 무명포는 다를 수 없다. 만약 흰색이 소멸하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하고 무명포가 소멸하지 않으면 흰색도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문】 이 주장은 옳지 않다. 그것에 의지해 이것이 있는 것이다. 비유하며 벽 그림에서 벽에 의지해 그림이 있는 것과 같다. 벽이 소멸되면 그림도 역시 소멸된다. 그러나 그림이 소멸되어도 벽은 소멸되지 않는다. 내가 말한 흰 것이 소멸되어도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역시 이것과 같다. 【답】 그대의 이러한 비유는 그 경우가 같지 않다. 벽이 먼저 있었고, 그림은 나중에 그린 것이다. 그러나 흰 무명포의 생김에는 시간적인 전후(前後)가 없으므로 흰 색이 먼저 있고 무명포가 나중에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외도 위세사(衛世師) 논사의 ‘일체법은 다르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 【문】 니건자(尼犍子) 외도논사는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한다. 가비라(迦毘羅) 등의 논사들에게는 모두 과실이 있다. 일체법은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면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고 말한다. 비유하면, 등불과 밝음에서와 같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으며, 그리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이 없어진다. 마치 등불이 있으면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등불이 있으며, 등불이 없으면 밝음이 없고 밝음이 없으면 등불이 없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은 밝히는 것[能照:등불]과 밝혀지는 것[所照:밝음]이다. 등불이 다른 곳이고 밝음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나와 앎, 흰 것과 무명포 등과 같이 또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비유하면 흰 것은 무명포 가운데 다른 것이어서 ‘이것은 흰 것이다’, ‘이것은 무명포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세간에서 ‘이것은 소다’, ‘이것은 말이다’ 따위로 말하는 것처럼, 흰 무명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르다고도 하지 않고, 같다고도 하지 않는다. 만약 같다고 한다면 흰색이 소멸되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한다. 또 만약 같다고 한다면 붉은 무명포ㆍ검은 무명포 따위를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어떠한가? 【답】 이 주장은 맞지 않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승거(僧佉)ㆍ비세사(毘世師) 논사들의 과실과 다름이 없다. 승거 논사는 무슨 뜻에서 같다고 주장하였으며, 비세사 논사는 어떤 뜻에서 다르다고 주장하였는가? 이들이 주장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등불과 밝음이 같다는 것은 등불이 곧 밝음이요, 밝음이 곧 등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법수[數]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뿐이지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등불이 밝음이어야 하고, 밝음도 역시 등불이어야 한다. 만약 이들 두 가지 법이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서로 다른 부분[處]이 있을 수 있는가? 마치 손과 손가락과 손바닥에 차별이 없는 것과 같다. 발과 손에는 차별이 있으며, 손과 손가락과 손바닥에는 차별이 없다. 만약 모두 같다면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외도 니건자 논사의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 【문】 약제자(若提子) 논사는 승거 등의 논사들이 ‘일체법은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은 모두 과실이 있다. 나 약제자 논사는, ‘일체법은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논(論) 속에서 말했듯이 나는 그러한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만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승거 논사들과 같은 과실이 없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어떠한가? 【답】 그 주장은 옳지 않다.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할 수 없다는 것은 세속제에는 이와 같은 법이 있으나 제일의제에는 이와 같은 모습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한 주장이 성립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없으면 곧 이것이 없고, 그것의 실체[體]가 없으면 이것의 실체 역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이 될 수 없고, 저것은 이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저것이 아니고, 저것도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아니다. 흰색은 무명포가 아니고, 무명포는 흰색이 아니다. 이것이 소멸한다고 해서 저것이 소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다[一]고 한다면 흰 것이 무명포이고, 무명포가 곧 흰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멸하는 것을 소멸하고, 소멸하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왜 허망분별이라고 하는가? 그들 법이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면 무명포는 무명포가 아닐 것이기도 하고, 무명포가 아닌 것도 아니어야 한다. 흰 것도 역시 흰 것이 아니기도 하고, 흰 것이 아닌 것도 아니어야 한다. 무명포는 무명포이고, 흰 것은 곧 흰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포는 무명포가 아니고, 흰 것은 흰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흰 것이 아닌 것은 흰 것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모두 허망분별이니 오직 말만 있고 참다운 의미는 없다. 이와 같이 나는 원인과 결과 등의 이치를 이해한다. 이것으로 외도 약제자 논사의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