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8_0174_b_01L중아함경 제46권
018_0174_b_01L中阿含經卷第四十六

승가제바 한역
018_0174_b_02L東晉罽賓三藏瞿曇僧伽提婆譯

14. 심품 제3②

176)행선경(行禪經) 제5제4 분별송
018_0174_b_03L心品行禪經第五第四分別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174_b_04L我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018_0174_b_05L一時佛遊舍衛國在勝林給孤獨園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선(禪)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衰退)했다고 생각하고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며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알고 또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018_0174_b_06L爾時世尊告諸比丘世閒眞實有四種行禪者云何爲四或有行禪者熾盛而謂衰退或有行禪者衰退而謂熾盛或有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或有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正思]을 닦아 익히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息]이요 고요함[寂]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을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定)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4_b_11L云何行禪者熾盛而謂衰退彼行禪者離欲離惡不善之法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遊心修習正思則從初禪趣第二禪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初禪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則從初禪趣第二禪是勝息寂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018_0174_c_02L또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4_b_20L復次行禪者覺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心修習正思從第二禪趣第三禪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趣餘處失第二禪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二禪趣第三禪是勝息寂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4_c_08L復次行禪者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第三禪成就遊彼心修習正思從第三禪趣第四禪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第三禪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三禪趣第四禪是勝息寂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018_0175_a_02L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생각[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無量空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禪)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4_c_18L復次行禪者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第四禪成就遊彼心修習正思從第四禪趣無量空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第四禪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四禪趣無量空處是勝息寂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無量識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a_04L復次行禪者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是無量空處成就遊彼心修習正從無量空處趣無量識處是勝息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無量空處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空處趣無量識處是勝息寂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無量識)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식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a_13L行禪者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心修習正思從無量識處趣無所有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趣餘處失無量識處滅定也彼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快樂息從無量識處趣無所有處是勝息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018_0175_b_02L선을 닦는 사람은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無所有)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a_22L復次行禪者度一切無量識處無所有無所有處成就遊彼心修習正思無所有處趣非有想非無想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更趣餘處失無所有處滅定也行禪者不知如眞我心修習正思樂息寂從無所有處趣非有想非無想處是勝息寂彼不知如眞已於如退轉意便失定如是行禪者熾盛而謂衰退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小想]들을 사유하며 제2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想]을 사유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2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b_09L云何行禪者衰退而謂熾盛彼行禪者離欲離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遊彼思餘小想修習第二禪道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初禪趣第二禪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初不應思餘小想入第二禪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定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018_0175_c_02L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하고 전일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생각하며 제3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2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3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b_18L復次行禪者覺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思餘小想習第三禪道彼行禪者便作是念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二禪趣第三禪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寧可思厭相應想入第二禪不應思餘小想入第三禪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定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 선에서 제4 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3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c_04L復次行禪者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得第三禪成就遊彼思餘小想修習第四禪道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樂息寂從第三禪趣第四禪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第三禪不應思餘小想入第四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無量空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4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018_0175_c_13L復次行禪者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思餘小想修習無量空處道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從第四禪趣無量空處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第四禪不應思餘小想入無量空處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018_0176_a_02L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無量識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공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5_c_22L復次行禪者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空是無量空處成就遊彼思餘小想修習無量識處道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空處趣無量識處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無量空處不應思餘小想入無量識處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定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처가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을 생각하며 무소유처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식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소유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a_09L復次行禪者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處是無量識處成就遊彼思餘小想修習無所有處道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識處趣至無所有處是勝息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無量識處不應思餘小想入無所有處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定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
018_0176_b_02L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a_18L復次行禪者度一切無量識處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思餘小修習非有想非無想處道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從無所有處趣非有想非無想處是勝息寂彼行禪者不知如眞寧可思厭相應想入無所有處不應思餘小想入非有想非無想處彼不知如眞已不覺彼心而便失定如是行禪者衰退而謂熾盛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 곧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비유상비무상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定]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b_04L云何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彼行禪者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所有處非有想非無是非有想非無想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唯行無所有處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非有想非無想處滅定也彼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b_13L復次行禪者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識處無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唯行無量識處相應念想本所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無所有處滅定也彼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018_0176_c_02L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b_20L復次行禪者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無量空處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無量空處滅定也彼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색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c_05L復次行禪者所行所相所標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是無量空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色樂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更趣餘處失無量空處滅定也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걱정은 벌써 이미 멸하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c_12L復次禪者所行所相所標樂滅苦滅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三禪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失第四禪滅定也彼知如眞已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018_0177_a_02L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과 공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6_c_20L復次行禪者所行所標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得第三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二禪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第三禪滅定也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a_05L復次禪者所行所相所標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行初禪相應念想本退具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第二禪滅定也彼知如眞已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욕심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a_13L復次行禪者所行所相離欲離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得初禪成就遊彼不受此行念此相唯行欲樂相應念想本退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離本相更趣餘處失初禪滅定也彼知如眞於如不退意不失定如是行禪者衰退則知衰退如眞
018_0177_b_02L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a_20L云何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彼行禪者離欲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初禪成就遊彼心修習正思快樂息則從初禪趣第二禪是勝息寂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樂息寂則從初禪趣第二禪是勝息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b_05L行禪者覺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二禪趣第三禪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二禪趣第三禪是勝息寂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則知熾盛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b_13L復次行禪者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得第三成就遊彼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三禪趣第四禪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三禪趣第四禪是勝息寂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018_0177_c_02L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b_21L復次行禪者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第四禪趣無量空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第四禪趣無量空處是勝息寂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c_06L復次禪者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空是無量空處成就遊彼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空處趣無量識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從無量空處趣無量識處是勝息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018_0177_c_14L行禪者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識處趣無所有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量識處趣無所有處是勝息寂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
018_0178_a_02L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세상에서 선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018_0177_c_22L復次行禪者度一切無量識處無所有是無所有處成就彼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所有處趣非有想非無想處是勝息寂彼行禪者便作是念我心修習正思快樂息寂從無所有處趣非有想非無想處是勝息寂彼知如眞已便覺彼心而不失定如是行禪者熾盛則知熾盛如眞世閒實有是四種行禪因此故說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행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77자이다.
018_0178_a_08L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行禪經第五竟二千五百七十七字

177) 설경(說經) 제6제4 분별송
018_0178_a_10L中阿含心品說經第六 第四分別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178_a_11L我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018_0178_a_12L一時佛遊拘樓瘦劍磨瑟曇拘樓都邑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내나니 그 이름을 사종설경(四種說經)이라고 한다. 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이제 설명해 주겠노라.”
018_0178_a_13L爾時世尊告諸比丘今當爲汝等說法初妙中妙竟亦妙有義有文具足淸淨顯現梵行名四種說經如四種說經分別其義諦聽諦聽善思念之我今當說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018_0178_a_17L諸比丘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인가?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초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초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초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초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a_18L佛言云何四種說經分別其義若有比丘所行所相所標離欲離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唯行欲樂相應念想退轉具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018_0178_b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b_02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欲離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法令住一意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2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b_09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二禪相應念想昇進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亦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是不久當得第二禪彼比丘應如是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초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b_16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欲惡不善之法有覺有觀離生喜初離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018_0178_c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2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2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2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b_22L復次丘所行所相所標觀已息內靖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初禪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彼比丘應如是知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고,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c_06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受此行念此相立念如法令住一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3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c_12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觀已息內靖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三禪相應念想昇進具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第三禪彼比丘應如是知
018_0179_a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8_c_19L比丘所行所相所標觀已息一心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不昇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3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3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3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定]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a_03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樂住得第三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二禪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a_11L復次比丘所行所相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得第三禪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法令住一意彼比丘應當我生此法不退不進亦復不厭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彼比丘應如是知
018_0179_b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이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4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4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a_18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得第三禪成就遊彼不受此不念此相唯行第四禪相應念想昇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第四禪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b_03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第三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唯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4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4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4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제4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b_10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樂滅苦滅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第三禪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b_17L復次丘所行所相所標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令住一意彼比丘應當知我生此不退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018_0179_c_02L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無量空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b_24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不受此不念此相唯行無量空處相應念想昇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不退不住亦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無量空處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4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c_08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不退不住亦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想]조차 기억[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색(色)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공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공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공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량공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c_15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空是無量空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色樂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018_0180_a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성취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79_c_22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量空是無量空處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法令住一意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a_05L復次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色想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空是無量空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無量識處相應念想昇進具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無量識處彼比丘應如是知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공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a_12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色滅有對想不念若干想無量空無量空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018_0180_b_02L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식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식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식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a_19L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無量空處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b_03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法令住一意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b_09L復次比丘所行所標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無量識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無所有處相應念想昇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無所有處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b_16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行滅息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018_0180_c_02L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소유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소유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소유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소유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b_22L復次比丘所所相所標度一切無量識處無所是無所有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無量識處相應念想退轉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住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而令我退然我此定不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c_06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一切無量識處無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受此行念此相立念如令住一意彼比丘應當知我生此不退不進亦復不厭我生此法能令我住而我此定必得久住彼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비유상비무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c_12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識處無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相唯行非有想非無想處相應念想昇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復不厭我生此法令我昇進如是不久當得非有想非無想處比丘應如是知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싫어함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소유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018_0180_c_19L復次比丘所行所相所標度一切無量識處無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不受此行不念此唯行厭相應念想無欲具彼比丘應當知我生此法不退不住亦不昇進我生此法能令我厭如是不久當得漏盡彼比丘應如是知
018_0181_a_02L생각[想]이 있고 앎[知]이 있어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나아가 제일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도 알게 될 것이니라.”
018_0181_a_02L有想有齊是得知乃至非有想非無想處行餘第一有行禪比丘者從是起當爲彼說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설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820자이다. 『중아함경』 제46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6,397자이다.1)
018_0181_a_05L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歡喜奉行
說經第六竟二千八百二十字
中阿含經卷第四十六六千三百九十七字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제46권에 수록된 소경 두 개의 숫자를 합하면 5,397자인데 여기에서는 6,397자로 되어 있어 1,000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