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8_0264_a_01L중아함경 제56권
018_0264_a_01L中阿含經卷第五十六

승가제바 한역
018_0264_a_02L東晉罽賓三藏瞿曇僧伽提婆譯

17. 포리다품 제3②

204) 라마경(羅摩經)1) 제3제5 후송
018_0264_a_03L晡利多品羅摩經第三 第五後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264_a_04L我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셨다.
018_0264_a_05L一時佛遊舍衛國在於東園鹿子母堂
그 때 세존께서 오후에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당(堂)에서 내려와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와 함께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2)강으로 가서 목욕하리라.”
018_0264_a_06L爾時世尊則於晡時從燕坐起堂上來下告尊者阿難我今共汝至阿夷羅婆提河浴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018_0264_a_08L尊者阿難白曰唯然
존자 아난은 지게문 자물쇠를 가지고 여러 집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모든 비구들을 보고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범지 라마(羅摩)의 집으로 가시오.”
모든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함께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갔다.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데리고 아이라바제강으로 가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신 뒤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셨다.
018_0264_a_09L尊者阿難執持戶鑰遍詣諸屋而彷徉見諸比丘便作是說可共詣梵志羅摩家諸比丘聞已便共往詣梵志羅摩家世尊將尊者阿難往至阿夷羅婆提河脫衣岸上便入水浴浴已還出拭體著衣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부채로 세존을 부쳐 드리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범지 라마의 집은 극히 좋고 잘 정리되어 매우 즐거운 곳입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가 주소서.”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위해 잠자코 받아 주셨다.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가셨다.
018_0264_a_14L爾時尊者阿難立世尊後執扇扇佛於是尊者阿難叉手向佛白曰世尊梵志羅摩家極好整頓甚可愛樂唯願世尊以慈愍故往至梵志羅摩家世尊爲尊者阿難默然而受於是世尊將尊者阿難往至梵志羅摩家
018_0264_b_02L그 때 범지 라마의 집에서는 많은 비구들이 모여 앉아 설법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문 밖에 서서 모든 비구들의 설법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많은 비구들이 이내 설법을 마치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런 줄 아시고 기침을 하시면서 문을 두드리자 모든 비구들은 곧 나와 문을 열었다. 세존께서 곧 범지 라마의 집에 들어가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물으셨다.
“비구들아, 아까는 무엇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는가?”
018_0264_a_20L爾時志羅摩家衆多比丘集坐說法佛住門外待諸比丘說法訖竟衆多比丘尋說法訖默然而住世尊知已謦欬敲門諸比丘聞卽往開門世尊便入梵志羅摩家於比丘衆前敷座而坐問曰諸比丘向說何等以何事故集坐在此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는 법을 연설하였고 이 법을 연설하기 위해 이렇게 여기 모여 있습니다.”
018_0264_b_06L諸比丘答曰世尊向者說以此法事集坐在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 모여 앉으면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설법과 침묵이니라.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018_0264_b_07L世尊歎曰善哉比丘集坐當行二事一曰說二曰默然所以者何我亦爲汝說諦聽諦聽善思念之
“예, 분부 받자와 경청하겠습니다.”
018_0264_b_10L諸比丘白曰唯然當受教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 두 가지의 구함이 있으니, 첫째는 거룩한 구함이요, 둘째는 거룩하지 못한 구함이다. 어떤 것이 거룩하지 못한 구함인가? 어떤 사람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그 병드는 법을 구하고 실로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인데 그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을 구하며 실로 더러운 법인데 그 더러운 법을 구한다. 실로 병드는 법인데 그 병드는 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병드는 법인가? 자식과 형제들이 바로 병드는 법이요,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ㆍ노비ㆍ재물ㆍ보배ㆍ미곡들이 바로 병드는 법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것에 물들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한 채 그것을 받아쓰고 있다.
018_0264_b_11L佛言有二種求一曰聖求二曰非聖求云何非聖求有一實病法求病法實老法死法愁憂慼實穢污法求穢污法云何實病法求病法云何病法耶兒子兄弟是病法也象馬牛羊奴婢錢財珍寶米穀是病害法衆生於中觸染貪著憍傲受入不見災患不見出要而取用之
018_0264_c_02L어떤 것이 늙고 죽는 법이고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인가? 자식과 형제들이 바로 늙고 죽는 법이고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이다.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ㆍ노비ㆍ재물ㆍ보배ㆍ미곡(米穀)들이 늙고 죽는 법이요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것에 빠져 더럽혀지고 집착하며 오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한 채 취해 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하지만 끝내 그리 될 수 없다.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하지만 끝내 그리 될 수 없다. 이것을 거룩한 구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018_0264_b_18L云何老法死法愁憂慼法穢污法耶兒子兄弟是穢污法象馬牛羊奴婢錢財珍寶米穀是穢法害法衆生於中染觸貪著憍傲受入不見災患見出要而取用之彼人欲求無病無上安隱涅槃得無病無上安隱涅槃終無是處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得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者終無是處是謂非聖求
그러면 어떤 것이 거룩한 구함인가? 어떤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我]라고 하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도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고 하는 것은 실로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고 걱정하는 법ㆍ더러운 법인데도 까닭 없이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ㆍ더러운 법을 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그래서 그 사람이 곧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다. 또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018_0264_c_05L云何聖求耶有一作是念我自實病法無辜求病我自實老法死法愁憂慼法穢污無辜求穢污法我今寧可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法無上安隱涅槃彼人便求無病無上安隱涅槃得無病無上安隱涅槃者必有是處求無老無死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得無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者必有是處
나도 본래 위없는 정각을 깨닫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라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는 것은 실로 늙는 법이요 죽는 법이며 근심 걱정하는 법이고 더러운 법인데 까닭 없이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 걱정하는 법ㆍ더러운 법을 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나는 그 때 나이 젊은 동자(童子)로서 맑고 깨끗한 새까만 머리에 한창 나이인 29세였다. 그 때 한없이 즐겁게 유희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나는 그 때 부모님이 울부짖고 여러 친척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면서 몸을 청정하게 보호하였고 입과 뜻을 청정하게 보호하였다.
018_0264_c_15L我本未覺無上正盡覺時亦如是念我自實病法無辜求病法我自實老法死法愁憂慼法污法無辜求穢污法我今寧可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耶我時年少童子淸淨靑髮盛年年二十九爾時極多樂戲莊飾遊行我於爾時母啼哭諸親不樂我剃除鬚髮著袈裟衣至信捨家無家學道護身命淸淨護口意命淸淨
018_0265_a_02L그래서 나는 이 계의 몸을 성취한 뒤에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자 하여 다시 아라라가라마(阿羅羅伽羅摩:仙人名)를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아라라여, 저는 당신에게서 범행(梵行)을 법답게 행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라라가 대답하였다.
‘현자(賢者)여, 나는 상관없다. 행하고 싶거든 곧 행하라.’
‘아라라여, 당신은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아라라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일체의 식처(識處)를 지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게 되었다.’
018_0265_a_02L我成就此戒身欲求無病無上安隱涅槃無老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便往阿羅羅伽羅摩所問曰阿羅我欲於汝法行梵行爲可爾不羅羅答我曰賢者我無不可汝欲行便行我復問曰阿羅羅云何汝此法自知自覺自作證耶阿羅羅答我曰賢者我度一切識處得無所有處成就遊是故我法自知自覺自作證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런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정진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지혜가 있다. 그런데 아라라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하여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018_0265_a_11L復作是念不但阿羅羅獨有此信亦有此信不但阿羅羅獨有此精進亦有此精進不但阿羅羅獨有此慧我亦有此慧阿羅羅於此法自知自覺自作證我欲證此法故便獨住遠空安靖處心無放逸修行精勤獨住遠離空安靖處心無放逸修行精勤已不久得證彼法
018_0265_b_02L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아라라가라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아라라여, 당신은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까?’
아라라가라마는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아라라가라마는 다시 내게 말했다.
‘현자여, 내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러하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이렇게 아라라가라마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동등하게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018_0265_a_19L證彼法已往詣阿羅羅加羅摩所問曰阿羅羅此法自知自覺自作證謂度一切無量識處得無所有處成就遊耶阿羅羅伽羅摩答我曰賢者我是法自知自覺自作證謂度無量識處得無所有處成就遊阿羅羅伽羅摩復語我賢者是爲如我此法作證汝亦然如汝此法作證我亦然賢者汝來共領此衆是爲阿羅羅伽羅摩師處與同等最上恭敬最上供養最上歡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그래서 나는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울다라라마자(鬱陀羅羅摩子:仙人名)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물었다.
‘울다라여, 저는 당신의 법 안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상관없다. 그대가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
‘울다라여, 그대 아버지 라마(羅摩)께서는 어떤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현자여, 나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018_0265_b_07L我復作是念此法不趣智不趣覺不趣涅槃我今寧可捨此法更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我卽捨此法便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已往詣鬱陁羅羅摩子所問曰鬱陁羅我欲於汝法中學爲可爾不鬱陁羅羅摩子答我曰賢者我無不汝欲學便學我復問曰鬱陁羅羅摩子自知自覺自作證何等法耶陁羅羅摩子答我曰賢者度一切無所有處得非有想非無想處成就遊賢者我父羅摩自知自覺自作證此法也
018_0265_c_02L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정진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지혜가 있다. 라마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라고 어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해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018_0265_b_21L我復作是念不但羅摩獨有此信我亦有此信不但羅摩獨有此精進我亦有此精進不但羅摩獨有此慧我亦有此慧羅摩自知自覺自作證此法我何故不得自知自覺自作證此法耶我欲證此法故便獨住遠離空安靖處心無放逸修行精勤我獨住遠離空安靖處心無放逸行精勤已不久得證彼法
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울다라라마자에게로 가서 물었다.
‘울다라여, 당신의 아버지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다.’
울다라가 다시 내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우리 아버지도 또한 그러했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울다라라마자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스승처럼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018_0265_c_06L證彼法已復往鬱陁羅羅摩子所問曰鬱陁羅汝父羅摩是法自知自覺自作證度一切無所有處得非有想非無想處成就遊耶鬱陁羅羅摩子答我曰賢者我父羅摩是法自知自覺自作謂度一切無所有處得非有想非無想處成就遊鬱陁羅復語我曰我父羅摩此法作證汝亦然如汝此法作證我父亦然賢者汝來共領此鬱陁羅羅摩子同師處我亦如師最上恭敬最上供養最上歡喜
018_0266_a_02L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리라.’
그래서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상정산(象頂山) 남쪽에 있는 울비라(鬱鞞羅)의 사나(斯那)라는 범지 마을로 갔다. 그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며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었다.
018_0265_c_17L我復作是念此法不趣智不趣覺不趣涅我今寧可捨此法更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穢污無上安隱涅槃我卽捨此法便求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已往象頂山南鬱鞞羅梵志村名曰斯於彼中地至可愛樂山林鬱茂尼連禪河淸流盈岸
나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다.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구나. 만일 큰 종족의 아들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이런 곳이 좋을 것이다. 내가 공부하기에도 아주 적절하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여기서 공부하리라.’
그리고는 곧 풀을 가지고 보리수가 있는 데로 가서 그 밑에 깔고 니사단(尼師檀)을 풀 위에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나는 번뇌를 다할 때까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과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번뇌를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다. 그리고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道品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018_0266_a_03L我見彼已便作是念此地至可愛樂山林鬱茂尼連禪河淸流盈岸若族姓子欲有學者可於中學我亦當學我今寧可於此中學卽便持草往詣覺樹到已布下敷尼師檀結跏趺坐要不解坐至得漏盡我便不解坐至得漏盡我求無病無上安隱涅槃便得無病無上安隱涅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便得無老無死無愁憂無穢污無上安隱涅槃生知生見定道品法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곧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아라라가라마에게 먼저 설법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 어떤 하늘이 허공에게 내게 말하였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 지 벌써 7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지 7일째 되는 날인 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생각하였다.
‘아라라가라마, 그 사람은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018_0266_a_15L我初覺無上正盡覺已便作是念我當爲誰先說法耶我復作是念我今寧可爲阿羅羅加摩先說法耶爾時有天住虛空中語我曰大仙人當知阿羅羅加摩彼命終來至今七日我亦自知阿羅羅加摩其命終來得今七日我復作是阿羅羅加摩彼人長衰不聞此法若聞此者速知法次法
018_0266_b_02L내가 처음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나는 마땅히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차라리 울다라라마자에게 먼저 설법하리라.’
그 때 하늘은 다시 허공에서 내게 말했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 지 벌써 14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지 14일째인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울다라라마자는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018_0266_a_23L我初覺無上正盡覺已作如是念我當爲誰先說法耶我復作是念我今寧可爲鬱陁羅羅摩子先說法耶天復住空語我曰大仙人當知鬱陁羅羅摩子命終已來二七日也我亦自知鬱陁羅羅摩子命終已來二七日也我復作是念鬱陁羅羅摩子彼人長衰不聞此法若聞法者速知法次法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을 깨달은 뒤에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저 다섯 비구는 나를 위해 수고하고 내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내가 고행할 때 그 다섯 비구는 나를 받들어 섬겼다. 나는 이제 저 다섯 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 주리라.’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그 다섯 비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람의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그 다섯 비구들이 바라나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사는 녹야원(鹿野園)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보리수 밑에서 옷을 챙겨 발우를 가지고 바라나국의 도읍 가시(加尸)로 갔다. 그 때 이교도 우타(優陀)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여, 모든 감관[根]은 청정하고 형상은 극히 묘하며 얼굴의 광명은 빛나고 있습니다. 현자 구담이여,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누구에게서 도를 배웠고 누구의 법을 믿습니까?’
018_0266_b_08L我初覺無上正盡覺已作如是念我當爲誰先說法耶我復作是念昔五比丘爲我執勞多所饒益我苦行時彼五比丘承事於我我今寧可爲五比丘先說法耶我復作是念昔五比丘今在何處我以淸淨天眼出過於人見五比丘在波羅柰仙人住處鹿野園中我隨住覺樹下攝衣持鉢往波羅柰加尸都邑爾時異學優陁遙見我來而語我曰賢者瞿曇諸根淸淨形色極妙面光照耀賢者瞿曇師爲是誰從誰學道爲信誰法
나는 그 때 우타에게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018_0266_b_20L我於爾時卽爲優陁說偈答曰

나는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니라.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애욕 벗어나 스스로 깨쳤거니
다시 또 그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018_0266_b_21L我最上最勝
不著一切法
諸愛盡解脫
自覺誰稱師

같은 사람도 없고 나은 사람도 없다.
위없는 깨달음을 스스로 깨쳤나니
나는 여래요 또 천상ㆍ인간의 스승으로
그 힘을 성취한 것 두루 아노라.
018_0266_b_23L 無等無有勝
自覺無上覺
如來天人師
普知成就力

우타가 다시 내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스스로 훌륭하다고 하셨습니까?’
018_0266_b_24L優陁問我曰賢者瞿曇自稱勝耶
018_0266_c_02L나는 다시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018_0266_c_02L復以偈而答彼曰

훌륭한 사람은 이러하나니
이른바 모든 번뇌 이미 다하고
나는 모든 악법 파괴했으니
우타여, 그러므로 나는 훌륭하니라.
018_0266_c_03L勝者如是有
謂得諸漏盡
我害諸惡法
優陁故我勝

우타가 다시 네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018_0266_c_05L優陁復問我曰
賢者瞿曇欲至何處
나는 또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018_0266_c_06L我時以偈而答彼曰

나는 바라나(波羅㮈)로 가서
묘한 감로(甘露)의 북 두드리고
세상에서 아직 굴리지 못한
위없는 법의 바퀴 굴리려 하네.
018_0266_c_07L我至波羅柰
擊妙甘露鼓
轉無上法輪
世所未曾轉

우타가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시여, 혹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렇게 말한 뒤에 그는 곧 삿된 길을 지나 돌아왔다. 나는 선인이 사는 곳인 녹야원으로 갔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제각기 서로 행동지침을 약속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사문 구담이 온다. 그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ㆍ보릿가루ㆍ소(酥)ㆍ꿀을 먹고 삼씨기름을 몸에 바른다. 지금 그가 다시 오고 있으나 너희들은 아예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또한 예도 올리지 말며 미리 자리를 준비하여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그리고 그가 오거든 〈그대가 앉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자.’
그 때 나는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내게 있는 지극히 훌륭한 위덕(威德)에 어쩔 수 없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와 발우를 받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펴는 사람도 있으며 물을 가져와 발을 씻어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어찌 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한가. 저희끼리 행동지침을 만들어 약속하더니 저희끼리 어기고 있구나.’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안 뒤에 그들이 편 자리에 앉았다.
018_0266_c_09L優陁語我曰賢者瞿曇或可有是是語已卽彼邪道經便還去我自往至仙人住處鹿野園中五比丘遙見我來各相約勅而立制曰諸賢知此沙門瞿曇來多欲多求食妙飮好粳糧飯及麨酥蜜麻油塗體今復來至汝等但坐愼莫起迎亦莫作禮豫留一座莫請令坐到已語曰欲坐者自隨所欲我時往至五比丘所五比丘於我不堪極妙威德卽從坐起有持衣鉢者有敷牀者取水者欲洗足者我作是念此愚癡何無牢固自立制度還違本要知彼已坐五比丘所敷之座
018_0267_a_02L그 때 다섯 비구들은 내 성(姓)과 자(字)를 부르고 나를 경(卿)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나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이다. 너희들은 내 본래의 성과 자를 부르지 말고 또한 나를 경이라고 부르지도 말라. 왜냐 하면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나는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018_0266_c_23L五比丘呼我姓字及卿於我我語彼曰比丘我如來ㆍ無所著ㆍ正盡覺汝等莫稱我本姓字亦莫卿我所以者何求無病無上安隱涅槃得無病無上安隱涅槃我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得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知生見定道品法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
그들은 내게 말하였다.
‘경(卿) 구담이여, 그대는 이전에 그러한 행과 그러한 도의 자취와 그러한 고행을 하고서도 오히려 사람의 법을 벗어난 지극히 거룩한 앎과 소견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물며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ㆍ보릿가루ㆍ소ㆍ꿀을 먹으며 삼씨기름을 몸에 바르는 오늘에 있어서이겠는가?’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너희들은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根]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다섯 비구가 내게 대답하였다.
‘이전에는 경의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대 구담이여, 지금은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형색도 매우 아름다우며 얼굴에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다.’
018_0267_a_09L彼語我卿瞿曇本如是行如是道迹如是苦行尚不能得人上法差降聖知聖況復今日多欲多求食妙飮食粳糧飯及麨酥蜜麻油塗體耶我復語曰五比丘汝等本時見我如是諸根淸淨光明照耀耶五比丘復答我曰本不見卿諸根淸淨光明照耀卿瞿曇今諸根淸淨形色極妙面光照耀
018_0267_b_02L나는 그 때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야, 마땅히 알라. 도를 닦는 모든 사람이 배워서는 안 될 두 가지 치우친 행이 있으니, 하나는 욕심과 향락의 하천한 업인 범인의 행에 집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현의 법이 아닌 것으로서 도리에 맞지 않는 것에 스스로 번거로워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다섯 비구들아, 이 두 가지 치우친 행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하면 밝음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며 선정[定]을 성취하여 자재함을 얻고 지혜로 나아가며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중도란 이른바 8정도(正道)이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이 여덟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섯 비구를 가르쳤는데 두 사람을 교화할 때면 세 사람이 밥을 빌고 세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세 사람을 교화할 때면 두 사람이 밥을 빌고 두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나는 이렇게 저들을 가르치고 이렇게 저들을 교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 걱정ㆍ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틀림없는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하였느니라.’
018_0267_a_18L我於爾時卽告彼曰五比丘知有二邊行諸爲道者所不當學曰著欲樂下賤業凡人所行二曰自煩自苦非賢聖求法無義相應五比丘捨此二邊有取中道成明成智成就於定而得自在趣智趣覺趣於涅槃謂八正道正見乃至正定是謂爲八意欲隨順教五比丘教化二人三人乞三人持食來足六人食教化三人二人乞食二人持食來足六人食如是教如是化彼求無病無上安隱涅槃得無病無上安隱涅槃求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得無老無死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生知生見定道品法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
018_0267_c_02L세존이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좋아할 만하고 즐길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고 욕심과 잘 어울리는 5욕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취하여 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에 걸린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사냥꾼이 와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그것을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받아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018_0267_b_11L於是世尊復告彼曰五比丘有五欲功德可愛可樂可意所念欲相應云何爲五眼知色耳知聲知香舌知味身知觸五比丘愚癡凡夫而不多聞不見善友不知聖法御聖法彼觸染貪著憍傲受入不見災患不見出要而取用之當知彼隨弊魔自作弊魔墮弊魔手爲魔網纏魔羂所羂不脫魔羂五比丘猶如野鹿爲羂所羂當知彼隨獵師自作獵師墮獵師手爲獵師網纏獵師來已能得脫如是五比丘愚癡凡夫而不多聞不見善友不知聖法不御聖法彼於此五欲功德觸染貪著憍傲受不見災患不見出要而取用之知彼隨弊魔自作弊魔墮弊魔手魔網纏魔羂所羂不脫魔羂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스럽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를 벗어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아 사냥꾼이 와도 곧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도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게 되느니라.
018_0267_c_04L五比丘多聞聖弟子見善知識而知聖法御聖法彼於此五欲功德不觸不染不貪不著亦不憍傲不受入見災患見出要而取用之當知彼不隨弊魔不自作魔不墮魔手不爲魔網所纏不爲魔羂所羂便解脫魔羂五比丘猶如野鹿得脫於羂當知彼不隨獵不自在獵師不墮獵師手不爲獵師網所纏獵師來已則能得脫如是五比丘多聞聖弟子見善知識而知聖法又御聖法彼於此五欲功德不染不貪不著亦不見憍傲不受見災患見出要而取用之當知彼不隨弊魔不自在魔不墮魔手不爲魔網所纏不爲魔羂所羂便解脫魔
018_0268_a_02L다섯 비구야,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5개(蓋)와 마음의 더러움 내지 슬기의 병을 끊고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제4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이 선정[定]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게 되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닦아 익혀 몸으로 증득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集]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 이 번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018_0267_c_20L五比丘若時如來出興于世無所著ㆍ等正覺ㆍ明行成爲ㆍ善逝ㆍ世閒解ㆍ無上士ㆍ道法御ㆍ天人師號佛ㆍ衆祐彼斷乃至五蓋心穢慧羸離欲離惡不善之法至得第四禪成就遊彼如是定心淸淨無穢無煩柔軟善住得不動心修學漏盡智通作證彼知此苦如眞知此苦習知此苦滅知此苦滅道如知此漏如眞知此漏習知此漏滅知此漏滅道如眞彼如是知如是見欲漏心解脫有漏無明漏心解脫脫已便知解脫生已盡梵行已立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彼於爾時自在行自在住自在坐自在臥所以者何彼自見無量惡不善法盡是故彼自在行自在住自在坐自在臥
다섯 비구야, 마치 일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 있는 저 들사슴은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 들사슴은 사냥꾼의 경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어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다섯 비구야 이것을 남음이 없는 해탈이라 하고 이것을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며 이것을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느니라.’”
018_0268_a_12L比丘猶如無事無人民處彼有野鹿自在行自在住自在伏自在臥所以者何彼野鹿不在獵師境界是故自在行自在住自在伏自在臥如是比丘比丘漏盡得無漏心解脫慧解自知自覺自作證成就遊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彼於爾時自在行自在住自在坐自在臥所以者何彼自見無量惡不善法盡是故彼自在行自在住自在自在臥五比丘是說無餘解脫說無病無上安隱涅槃是說無老無愁憂慼無穢污無上安隱涅槃
018_0268_b_02L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라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121자이다.
018_0268_b_02L佛說如是尊者阿難及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羅摩經第三竟四千一百二十一字

205) 오하분결경(五下分結經) 제4제5 후송
018_0268_b_05L中阿含晡利多品五下分結經第四 第五後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268_b_06L我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018_0268_b_07L一時佛遊舍衛國在勝林給孤獨園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5하분결(下分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모든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018_0268_b_08L爾時世尊告諸比丘我曾說五下分結汝等受持耶諸比丘默然不答
세존께서 다시 두 번 세 번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내가 일찍이 5하분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여전히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018_0268_b_10L世尊復再三告諸比丘我曾說五下分結汝等受持耶諸比丘亦再三默然不答
그 때 존자 만동자(鬘童子)3)가 대중들 속에 있었다. 이에 존자 만동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일찍이 5하분결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018_0268_b_12L爾時尊者鬘童子在彼衆中於是尊者鬘童子卽從坐起偏袒著衣叉手向佛白曰世尊曾說五下分結我受持之
“만동자여, 나는 예전에 5하분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너는 그것을 기억하느냐?”
018_0268_b_15L世尊問曰鬘童我曾說五下分結汝受持耶
“세존께서는 예전에 탐욕[貪]이 첫 번째 하분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성냄[恚]ㆍ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身見]ㆍ그릇된 계에 대한 집착[戒取]을 말씀하셨고 의심[疑心]이 다섯 번째 하분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018_0268_b_16L尊者鬘童子答曰世尊曾說初下分結我受持身見戒取世尊說第五下分結是我受持
018_0268_c_02L세존께서 나무라시며 말씀하셨다.
“만동자여, 너는 어떻게 내가 말한 5하분결을 받아 가졌느냐? 너는 누구에게서 내가 말한 5하분결을 듣고 기억하고 있느냐? 만동자여, 많은 이교도들이 와서 어린 동자의 비유로 너를 꾸짖고 힐책하지는 않았느냐?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마음에는 아무 욕심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욕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使]이기 때문에 짐짓 욕심의 번뇌[欲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중생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성냄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성냄의 번뇌[恚使]라고 말한다.
018_0268_b_19L世尊訶曰鬘童汝云何受持我說五下分結鬘童汝從何口受持我說五下分結耶鬘童子非爲衆多異學來以嬰孩童子責數喩詰責汝耶鬘童子嬰孩幼柔軟仰眠意無欲想況復欲心纏住耶然彼性使故說欲使鬘童子孩幼小柔軟仰眠無衆生想況復恚心纏住耶然彼性使故說恚使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내 몸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몸이 있다는 소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몸이 있다는 소견의 번뇌[身見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계라는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계에 집착하는 마음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계에 집착하는 번뇌[戒取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법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의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의심의 번뇌[疑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많은 이교도들이 와서 이 어린 동자를 비유로 들어 꾸짖고 너를 힐책하지 않았느냐?”
이에 존자 만동자는 면전에서 세존께 꾸지람을 듣고는 마음에 근심을 품고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018_0268_c_04L鬘童嬰孩幼小柔軟仰眠無自身想復身見心纏住耶然彼性使故說身見使鬘童子嬰孩幼小柔軟仰眠有戒想況復戒取心纏住耶然彼性使說戒取使鬘童子嬰孩幼小柔軟仰眠無有法想況復疑心纏住耶彼性使故說疑使鬘童子非爲衆多異學來以此嬰孩童子責數喩詰責汝耶於是尊者鬘童子爲世尊面訶責已內懷憂慼低頭默然失辯無言如有所伺
그 때 세존께서는 만동자를 면전에서 나무라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부채를 들고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이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5하분결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018_0268_c_15L彼時世尊面前訶責鬘童子已默然而住爾時尊者阿難立世尊後執扇扇佛於是尊者阿難叉手向佛白曰世尊今正是時善逝今正是時若世尊爲諸比丘說五下分結諸比丘從世尊聞已善受善持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018_0268_c_20L尊告曰阿難諦聽善思念之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겠습니다.”
018_0268_c_21L尊者阿難白曰唯然當受教聽
018_0269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탐욕에 얽매여 욕심이 생기고 나면 평정[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욕심[欲]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성냄[恚]에 얽매여 성내는 마음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한 뒤에는 성냄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내 몸이 있다는 소견[有身]에 얽매여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그릇된 계율의 집착[戒取]에 얽매여 그릇된 계율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그릇된 계율에 집착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의심[疑]에 얽매여 의심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의심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018_0268_c_22L佛言阿難有一爲欲所纏欲心生已不知捨如彼不知捨如眞已欲轉熾盛不可制除是下分結阿難或有一爲恚所恚心生已不知捨如眞彼不知捨如眞已恚轉熾盛不可制除是下分阿難或有一爲身見所纏身見心生已不知捨如眞彼不知捨如眞已身見轉盛不可制除是下分結阿難或有一爲戒取所纏戒取心生已知捨如眞彼不知捨如眞已戒取轉不可制除是下分結阿難或有一爲疑所纏疑心生已不知捨如眞不知捨如眞已疑轉熾盛不可制除是下分結
018_0269_b_02L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迹]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도를 의지하지 않고 이 자취를 의지하지 않고서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느니라.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4)을 구하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에 들어갔다. 그는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가지ㆍ잎과 심으로 된 것을 알았다. 이 때 그가 그 뿌리와 줄기는 베지 않고 그 심을 얻어 돌아오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도를 의지하지 않고 이 자취를 의지하지 않고서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느니라.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하면 5하분결을 끊는다. 그가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해서 5하분결을 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다.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무심을 구하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에 들어갔다. 그는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가지ㆍ잎과 심으로 된 것을 보았다. 이 때 그가 그 뿌리와 줄기를 베어 심을 얻어 돌아오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가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하여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느니라.
018_0269_a_13L阿難若依道依迹斷五下分結彼不依此道不依此迹斷五下分結者終無是處阿難猶如有人欲得求實爲求實故持斧入林彼人見樹成就根葉及實彼人不截根得實歸者終無是處如是阿難依道依迹斷五下分結不依此道依此迹斷五下分結者終無是處若依道依迹斷五下分結彼依此道依此迹斷五下分結者必有是處猶如有人欲得求實爲求實故斧入林彼人見樹成就根葉及實彼人截根得實歸者必有是處阿難若依道依迹五下分結此道依此迹斷五下分結者必有是
아난아, 어떤 도를 의지하고 어떤 자취를 의지하여야 5하분결을 끊는가?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욕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욕심의 얽매임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욕심의 얽매임은 곧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성냄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성냄의 얽매임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성냄의 얽매임은 곧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내 몸이 있다는 소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면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의 얽매임은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그릇된 계율의 집착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그릇된 계율에 집착하여 얽맴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그릇된 계율에 대한 집착이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의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의심의 얽맴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의심의 얽매임이 곧 소멸된다. 아난아,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하여 5하분결을 끊느니라.
018_0269_b_05L阿難依何道依何迹斷五下分結阿難或有一不爲欲所纏若生欲纏卽知捨如眞彼知捨如眞已彼欲纏便滅阿難或有一不爲恚所纏若生恚纏卽知捨如眞彼知捨如眞已恚纏便滅阿難或有一不爲身見所若生身見纏卽知捨如眞彼知捨如眞已彼身見纏便滅阿難或有一不爲戒取所纏若生戒取纏卽知捨如眞彼知捨如眞已彼戒取便滅阿難有一不爲疑所纏若生疑纏卽知捨如眞彼知捨如眞已彼疑纏便滅依此道依此迹斷五下分結
018_0269_c_02L아난아, 마치 긍가하(恆伽河:갠지스강)와 같다. 그 물이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려고 할 때에 그는 생각한다.
‘이 긍가하의 물은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나는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가려고 한다. 그러나 내 몸에는 저쪽 언덕까지 안온하게 헤엄쳐 갈 힘이 없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힘이 없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이 깨달음ㆍ멸(滅)ㆍ열반으로 가는데, 그 마음이 거기로 향하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으며 해탈에 머무르지도 않는다면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저 사람이 병에 걸려 힘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마치 긍가하와 같다. 그 물이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가려고 할 때에 그는 생각한다.
‘이 긍가하 물은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나는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내 몸에는 저쪽 언덕까지 헤엄쳐 갈 힘도 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힘이 있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이 깨달음ㆍ멸ㆍ열반으로 가는데 그 마음이 거기로 향하고 청정하며 또 해탈에 머무른다면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저 힘 있는 사람과 같으니라.
018_0269_b_17L阿難猶恒伽河其水溢岸答有人來彼岸有事欲得度河彼作是念此恒伽河其水溢岸我於彼岸有事欲度身無有力令我安隱浮至彼岸阿難當知彼人無力如是阿難若有人覺其心不向而不淸淨不住解脫當知此人如彼羸人無有力也猶恒伽河其水溢岸若有人來彼有事欲得度河彼作是念此恒伽其水溢岸我於彼岸有事欲度今有力令我安隱浮至彼岸阿難知彼人有力如是阿難若有人覺涅槃心向淸淨而住解脫阿難當知此人如彼力人
아난아, 또 마치 산과 물이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결은 빠르고 급해 많은 물건들이 떠내려가는데 거기엔 배도 없고 또 다리도 없는 것과 같다. 그 때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곧 건너가려고 한다. 그는 건너가려고 하다가 곧 생각한다.
‘지금 이 산과 물은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결은 빠르고 급해 많은 물건들이 떠내려가고 있다. 여기엔 배도 없고 또 다리도 없어 건너갈 수가 없다. 내가 이제 저쪽 언덕에 볼 일이 있어 건너가고 싶은데 어떤 방편을 써야 안온하게 저쪽 언덕까지 건너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이쪽 언덕에서 풀과 나무를 주워 모아 묶어서 떼배를 만들어 그것을 타고 건너가자.’
018_0269_c_08L阿難猶如山水甚深極廣長流駛疾多有所漂其中無船亦無橋梁或有人來彼岸有事則便求度彼求度時而作是念今此山水甚深極廣長流駛疾多有所漂其中無船亦無橋梁而可度者我於彼岸有事欲度當以何方便令我安隱至彼岸耶復作是念我今寧可於此岸邊收聚草木縛作椑栰乘之而度
그는 곧 언덕 가에서 풀과 나무를 주워 모아 묶어서 떼배를 만들고 그것을 타고 강을 건너 저쪽 언덕에 다다랐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염리(厭離)를 반연하고 염리를 의지하며 염리에 머물러 몸의 악행을 그친다. 그리하여 마음이 여읨[離]과 선정[定]에 들어감으로써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고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고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서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018_0269_c_16L便岸邊收聚草木縛作椑栰乘之而安隱至彼如是阿難若有比丘攀緣厭離依於厭離住於厭離止息身惡故心入離定故離欲離惡不善之有覺有觀離生喜得初禪成就彼依此處觀覺興衰彼依此處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
018_0270_a_02L어떻게 위로 올라가서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의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018_0269_c_24L云何昇進得止息處彼覺觀已息內靖無覺無觀定生喜得第二禪成就遊彼依此處觀覺興衰彼依此處觀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기쁨에 대한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018_0270_a_06L何昇進得止息處彼離於喜欲捨無求遊正念正智而身覺樂謂聖所說聖所捨樂住得第三禪成就遊彼依此處觀覺興衰彼依此處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018_0270_a_12L云何昇進得止息處彼樂滅苦滅憂本已滅不苦不樂淸淨得第四禪成就遊彼依此處觀覺興衰彼依此觀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
018_0270_b_02L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모든 색(色)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고 걸림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며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서 한량없는 허공 세계인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일체의 무량공처를 지나서 한량없는 식(識)인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018_0270_a_17L云何昇進得止息處彼度一切色想滅有㝵想不念若干想無量空是無量處成就遊彼依此處觀覺興衰依此處觀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云何昇進得止息處彼度一切無量空處無量識是無量識處成就遊彼依此處觀覺興衰彼依此處觀覺興衰已住彼必得漏盡設住彼不得漏盡者必當昇進得止息處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일체의 무량식처를 지나고 무소유인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만일 즐겁고 혹은 괴로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깨달으면 그는 이 깨달음이 무상(無常)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다. 그는 이렇게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여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 뒤에 그는 곧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곧 반열반을 얻는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018_0270_b_04L云何昇進得止息處彼度一切無量識處所有是無所有處成就遊彼若有所或樂或苦或不苦不樂彼觀此覺無常觀興衰觀無欲觀滅觀斷觀捨彼如是觀此覺無常觀興衰觀無欲觀滅觀斷觀捨已便不受此世不受此世已便不恐怖因不恐怖便般涅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파초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그 파초를 베어 조각내기를 혹은 열 조각을 내기도 하고 혹은 백 조각을 내기도 한다고 하자. 열 조각을 내고 혹은 백 조각을 낸 뒤에 그 잎사귀 잎사귀를 다 헤쳐 보더라도 그 마디조차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그 심이겠느냐?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만일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는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 뒤에는 곧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곧 반열반을 얻는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018_0270_b_13L猶去村不遠有大芭蕉若人持斧破芭蕉樹破作片破爲十或作百分破爲十分或作百分已便擗葉葉不見彼節況復實耶阿難如是比丘若有所覺或樂或苦或不苦不樂彼觀此覺無常觀興衰觀無欲觀滅觀斷觀捨彼如是觀此覺無常觀興衰觀無欲觀滅觀斷捨已便不受此世不受此世已便不恐怖因不恐怖已便般涅槃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
018_0270_c_02L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의지하고 의지할 곳을 세워 번뇌를 여읠 것을 말씀하시고 번뇌를 벗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이른바 위없는 구경의 다함[究竟盡]을 빨리 얻지 못합니다.”
018_0270_b_24L於是尊者阿難叉手向佛白曰甚奇甚特世尊爲諸比丘依依立依說捨離漏說過度漏然諸比丘不速得無上謂畢究竟盡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니라. 나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의지하고 의지할 곳을 세워 번뇌를 여읠 것을 말했고 번뇌를 벗어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이른바 위없는 구경의 다함을 빨리 얻지 못한다. 왜냐 하면 사람에게는 우세하고 못함이 있기 때문이니, 사람에게 우세하고 못함이 있기 때문에 도를 닦는 데에 곧 정밀함과 거침이 있고 도를 닦는 데에 정밀함과 거침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우세하고 못함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에게는 우세하고 못함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018_0270_c_04L世尊告曰如是阿難如是阿難甚奇甚特我爲諸比丘依依立依說捨離漏說過度漏然諸比丘不速得無上謂畢究竟盡所以者人有勝如故修道便有精麤修道有精麤故人便有勝如阿難是故我說人有勝如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오하분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26자이다.
018_0270_c_10L佛說如是尊者阿難及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五下分結經第四竟 二千三百二十六字

206) 심예경(心穢經)5) 제5제5 후송
018_0270_c_12L中阿含晡利多品心穢經第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270_c_13L我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018_0270_c_14L一時佛遊舍衛國在勝林給孤獨園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마음속의 5예(穢)를 뽑아내지 못하고, 마음속의 5박(縛)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는 것인가? 혹 어떤 이는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세존(世尊)에 대해서 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범행자들이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에 다른 비구들이 이 범행자들을 나무라고 업신여기며 건드리고 침해하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해서이니라.
018_0270_c_15L爾時世尊告諸比丘若比比丘尼不拔心中五穢不解心中五縛者是爲比丘比丘尼說必退法云何不拔心中五穢或有一疑世尊猶豫不開意不解意意不靖若有一疑世尊猶豫不開意不解意意不靖是謂不拔第一心穢謂於世尊也如是法若有諸梵行世尊所稱彼便責數輕易觸嬈侵害不開意不解意意不靖是謂第五不拔心中謂於梵行也
018_0271_a_02L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하는 것인가? 혹 어떤 이는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며 머무르지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 못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018_0271_a_02L云何不解心中五縛或有一身不離染不離欲不離愛離渴若有身不離染不離欲不離愛不離渴者彼心不趣向不靖不住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不趣向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一不解心縛謂身也復次於欲不離染不離欲不離愛不離渴若有於欲不離染不離欲不離愛不離渴者彼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二不解心縛謂欲也
018_0271_b_02L또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疑蓋)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緣起)에 대해 설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하는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는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임[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018_0271_a_14L復次有一所說聖義相應柔軟無疑蓋謂說戒說定說慧說解脫說解脫知見說損說不聚會說少欲說知足說斷說無欲說滅燕坐說緣起如是比丘沙門所說者彼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三不解心縛謂說也復次數道俗共會調憍傲不學問若有數道俗共會調憍傲不學問者彼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若此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是謂第四不解心縛謂聚會也
또 어떤 비구는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지 않는다. 만일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고 그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고 그 마음속의 5박을 잘 푼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한다.
018_0271_b_04L少有所得故於其中閒住不復求昇進若有少所得故於其中閒住復求昇進者彼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若此心不趣向不靖不住不解自方便斷燕坐者謂第五不解心縛謂昇進也若有比比丘尼不拔此心中五穢及不解此心中五縛者是謂比丘比丘尼必退法也若有比丘比丘尼善拔心中五穢善解心中五縛者是謂比丘丘尼淸淨法
어떤 것이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다. 만일 어떤 비구가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세존(世尊)에 대한 것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어떤 범행자가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 다른 비구들이 그 범행자를 나무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으며 건드리지 않고 침해하지 않고서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며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한 것이니라.
018_0271_b_15L云何善拔心中五穢有一不疑世尊不猶豫開意意解意靖若有不疑世尊不猶豫開意意解靖者是謂第一善拔心中穢謂於世尊也如是法若有梵行世尊所稱譽彼不責數不輕易不觸嬈不侵開意意解意靖是謂第五善拔心中穢謂於梵行也
018_0271_c_02L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푸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다시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018_0271_b_22L云何解心中五縛或有一身離染離欲離愛離渴若有身離染離欲離愛離渴者彼心趣向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趣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一解心中縛謂身也復次於欲離染離欲離愛離渴若有於欲離染離欲離愛離渴者彼心趣向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趣向方便斷燕坐者是謂第二解心中縛謂欲也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한 곳으로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한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이지 않음[不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018_0271_c_09L復次有一所說聖義相應軟無疑蓋謂說戒說定說慧說解脫說解脫知見說損說不聚會說少欲說知足說斷說無欲說滅說燕坐緣起如是比丘沙門所說者彼心趣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趣向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三解心中縛謂說也復次不數道俗共會不調亂不憍傲學問若有不數道俗共會不調亂不憍傲學問者彼心趣向自方便斷燕坐若有此心趣向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四解心中縛謂不聚會也
018_0272_a_02L어떤 비구는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한다. 만일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穢)를 잘 뽑고 또 그 마음속의 5박(縛)을 잘 풀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그들은 이 10지(支)에 머무른 뒤에 다시 5법(法)을 닦는다.
018_0271_c_21L少有所得故於其中閒不住復求昇進若有少所得故於其中閒不住復求昇進者彼心趣向自方便斷燕坐若此心趣向自方便斷燕坐者是謂第五解心中縛昇進也若有比丘比丘尼善拔此心中五穢及善解此心中五縛者是謂比丘比丘尼淸淨法彼住此十支已復修習五法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욕심의 정[欲定]을 닦아 단여의족(斷如意足)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가고, 정진의 정[精進定]ㆍ마음의 정[心定]ㆍ생각의 정[思惟定]을 닦아 단여의족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으로 나아가며, 참고 견딤[堪任]이 그 다섯 번째이다. 그들이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고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리는 경지를 성취한다면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무르리니, ‘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마치 닭이 알을 열 개나 혹 열두 개를 낳아 때때로 품어주고 때때로 덥히며 때때로 보살피는 것과 같다. 어미 닭이 설령 게을러서 그 중에 혹 다른 닭이 부리로 쪼고 발로 밟아 부수더라도 거기서 스스로 안온하게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를 제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가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여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린다면 그는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반드시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물리니, ‘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018_0272_a_07L云何爲五修欲定心成就斷如意足依離依無欲依滅依捨向非品修精進定心定思惟定成就斷如意足依離依無欲依滅依捨向非品堪任第五彼成就此堪任等十五法成就自受者必知必見必正盡覺至甘露門近住涅槃我說無不至涅槃猶如雞生十卵或十二隨時覆蓋隨時溫暖隨時看視雞設有放逸者彼中或雞子以嘴以足啄破其自安隱出者彼爲第一如是比丘成就此堪任等十五法自受者必知必見必正盡覺必至甘露門近住涅我說無不得涅槃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심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99자이다. 『중아함경』 제56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7,846자이다.
018_0272_a_20L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心穢經第五竟 一千三百九十九字
中阿含經卷第五十六 七千八百四十六字 第五後誦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이 경의 이역본으로 당(唐)나라 때 현장(玄獎)이 한역한 『본사경(本事經)』이 있다.
  2. 2)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는 팔리어로 Ajitavati이고 아시다벌저(阿恃多伐底), 또는 발제(跋提)로 음역하기도 하며, 또 무승(無勝)ㆍ유금(有金)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인도 5하(河)의 하나로서 중인도 구시나가라국에 있던 강 이름이다. 세존께서 이 강의 서쪽 언덕에서 입멸하셨다. 현장대사는 희련선하(熙連禪河)와 아이라바제하를 같은 강으로 보았다.
  3. 3)만동자(鬘童子, Mālukyāputta)는 사위성(舍衛城)사람으로 평민 출신이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재무관(財務官) 아들로서 장성하여 출가하였다. 그는 각처를 유행하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문(佛門)에 들어가 6신통을 얻었다. 『잡아함경』 제12권 290번째 경에서는 마라가구(摩羅迦舅)로 되어 있다.
  4. 4)팔리본에 sāra 즉 나무심으로 되어 있다. 문장 내용으로 보아 ‘목재’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5. 5)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증일아함』 제49권 「비상품(非常品)」의 네 번째 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