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계율을 성취한 비구는 ‘5성음(盛陰)은 무상(無常)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번민이요 두려움이 많은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또 ‘괴로운 것[苦]이요 공한 것[空]이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것[無我]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5성음(盛陰)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색음(色陰)ㆍ통음(痛陰: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입니다. 계율을 성취한 비구가 이 5성음(盛陰)을 사유한다면, 그때 곧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성취할 것입니다.”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수다원을 성취한 비구도 ‘5성음(盛陰)은 괴로운 것이요, 번민이며 두려움이 많은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또 ‘괴로운 것이요, 공한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여러분, 꼭 아셔야만 합니다. 만일 수다원을 이룩한 비구가 이 5성음을 사유한다면, 그는 그때 곧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성취할 것입니다.”
018_0508_c_02L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사다함을 성취한 비구도 ‘이 5성음은 괴로운 것이요, 번민이며 두려움이 많은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또 ‘괴로운 것이요, 공한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사다함을 성취한 비구가 이 5성음을 사유한다면, 그는 그때 곧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성취할 것입니다.”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나함을 성취한 비구도 ‘이 5성음은 괴로운 것이요, 번민이며 두려움이 많은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또 ‘괴로운 것이요, 공한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아나함을 성취한 비구가 이 5성음을 사유한다면, 그는 그때 곧 아라한(阿羅漢)을 성취할 것입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당신들의 질문은 어찌 그리 지나칩니까? 나한(羅漢)이 된 비구는 할 일이 이미 끝나 다시는 업을 짓지 않습니다. 그래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여 나고 죽는 바다인 다섯 갈래의 세계로 향하지 않고, 짓는 바가 있는 존재의 몸을 다시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계(戒)를 지키는 비구도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도 이 5성음(盛陰)을 사유해야 합니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18_0509_a_02L그때는 여래께서 도를 이루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터이라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큰 사문[大沙門]이라 일컬었다. 그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은 왕위를 새로 이어받았었다. 이때 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새로 왕위를 이어받았으니 먼저 석가족 집안의 딸을 데려와야겠다. 만일 내게 딸을 준다면 내 마음이 흡족하겠지만 만일 주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힘으로 핍박하리라.’ 그리고는 바사닉왕이 곧 어떤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너는 가비라위(迦毗羅衛)의 석가족에게 가서 내 이름으로 그들 석가족에게 ‘바사닉왕은 문안드립니다. 기거는 편안하신가 하고 몇 번이고 묻습니다’라고 말하라. 또 그들 석가족에게 ‘나는 석가족의 딸을 데려 오고 싶습니다. 만일 내게 준다면 그 은혜를 길이 새기겠지만 만일 어긴다면 힘으로 핍박할 것입니다’ 하고 말하라.”
그때 대신은 왕의 명령을 받고 가비라국(迦毗羅國)으로 갔다. 그때 가비라위의 석가족 5백 명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대신은 곧 5백 명의 석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바사닉왕의 이름으로 그들 석가족에게 말하였다. “바사닉왕은 성심으로 문안드립니다. 기거는 편안하신 지 간절하기 한이 없습니다. 나는 석가족의 딸을 데려오고 싶습니다. 만일 내게 준다면 매우 다행스럽지만 주지 않으신다면 힘으로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무리 중에 마하남(摩呵男)이라는 한 석가족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화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저 바사닉왕은 됨됨이가 포악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사닉왕이 온다면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직접 가서 바사닉왕을 만나보고 이 사정을 말해 보겠습니다.”
이때 마하남의 집에는 여종이 낳은 한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세상에 드물 만큼 얼굴이 단정하였다. 마하남은 이 처녀를 목욕시킨 뒤 고운 옷을 입히고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에 태워 가지고 바사닉왕에게 가서 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이 아이는 제 딸입니다. 인연을 맺으소서.”
바사닉왕은 그 처녀를 맞아 매우 기뻐하였고 곧 그녀를 첫째 부인으로 삼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인은 아이를 배었고 8ㆍ9달이 지나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기가 짝이 없을 만큼 세상에서 빼어났다. 바사닉왕은 여러 관상가(觀相家)들을 불러 모아 태자의 이름을 짓게 하였다.
018_0509_b_02L 이때 관상가들은 왕의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대왕께서 부인을 구하셨을 때 여러 석가족들은 서로 다투었고 혹은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혹은 ‘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으며 이쪽저쪽 무리로 갈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름을 비류륵(毗流勒)1)이라고 지어 올립니다.” 관상가들은 이름을 지어 올린 뒤에 제각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018_0509_c_02L그때 가비라위성 안에 큰 강당을 새로 세웠는데, 그곳엔 아직 하늘도 사람도 마(魔)도 혹은 마천(魔天)도 전혀 머무른 적이 없었다. 여러 석가족들은 제각기 서로 의논하였다. “지금 이 강당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림과 단청도 이미 마쳐 마치 천궁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먼저 여래(如來)와 비구 스님을 청하여 이곳에서 공양하시게 하여 우리가 무궁한 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리하여 석가족들은 곧 강당 위에 갖가지 자리를 펴고, 비단과 번기와 일산을 달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온갖 유명한 향을 피우고, 또 좋은 물을 준비하고, 모든 등불을 밝혔다. 이때 유리태자는 5백 동자를 데리고 강당으로 가 곧장 사자좌(師子座)에 올랐다. 여러 석가족들은 그것을 보고는 크게 화를 내며 곧 달려 나가 팔을 붙잡고 문 밖으로 내쫓으면서 모두들 꾸짖었다. “이 종년의 자식아, 하늘도 사람도 아직 여기서 머무른 일이 없는데, 이 종년의 자식이 감히 이 안에 들어와 앉다니.” 그들은 다시 태자를 붙잡아 매를 치다가 땅에 메쳤다. 그때 유리 태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한숨을 지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때 호고(好苦)라고 하는 범지(梵志)의 아들이 있었다. 유리태자는 범지의 아들 호고에게 말하였다. “이 석가족들은 나를 붙잡아 이렇게까지 욕을 보였다. 만일 내가 나중에 왕위를 이어받게 되거든, 그때 너는 이 일을 내게 말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유리왕이 온다는 길목으로 나아가 가지도 잎사귀도 없는 한 메마른 나무 밑에 가부좌하고 앉으셨다. 유리왕은 세존께서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곧 수레에서 내려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신하들은 곧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사위성을 출발하여 석가족을 정벌하기 위하여 가비라월로 떠났다.
018_0510_a_19L是時,群臣卽集四部之兵,出舍衛城,往詣迦毘羅越,征伐釋種。
그때 비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세존께 가서 아뢰었다. “지금 유리왕이 군사를 일으켜 석가족을 치러 간다고 합니다.”
018_0510_a_21L是時,衆多比丘聞已,往白世尊:“今流離王興兵衆,往攻釋種。”
018_0510_b_02L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신통력으로 길가에 있는 한 메마른 나무 아래로 가서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세존께서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 수레에서 내려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때 유리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다른 좋은 나무들도 있는데 거기 앉아 계시지 않으시고, 왜 세존께서는 지금 이 메마른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그때 호고 범지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선 옛날 석가족에게 당한 치욕을 기억하소서.”
018_0510_b_11L是時,好苦梵志復語王曰:“王,當憶本釋種所辱。”
유리왕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사위성을 출발하여 가비라월로 나아갔다.
018_0510_b_13L是時,流離王聞此語已,復集四種兵,出舍衛城,詣迦毘羅越。
이때 대목건련(大目乾連)은 유리왕이 석가족을 정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때 목련(目連)이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 유리왕이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석가족을 치러 온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유리왕과 그 네 종류의 군사들을 모두 다른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때 유리왕은 가비라월로 갔다. 모든 석가족은 유리왕이 네 종류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1유순(由旬)이나 나아가 유리왕을 맞이하였다. 모든 석가족들은 1유순 안으로 유리왕이 들어오자 멀리서 유리왕에게 활을 쏘았다. 화살은 혹 귓구멍을 맞추면서 귀는 다치게 하지 않고, 상투를 맞추면서 머리는 다치게 하지 않기도 하였다. 혹은 활을 맞춰 부수고 활줄을 맞추면서도 그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 혹은 갑옷을 맞추면서도 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자리를 맞추면서도 그 사람은 해치지 않았으며, 수레의 바퀴를 맞춰 부수면서도 그 사람은 다치게 하지 않고, 깃대를 맞추면서도 그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 유리왕은 이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하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화살들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아보아라.”
그때 가비라월성(迦毗羅越城)에 나이가 겨우 열다섯쯤 되 보이는 사마(奢摩)라고 하는 석가족 동자가 있었다. 그는 유리왕이 성밖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곧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는 성 위로 올라가 혼자서 유리왕과 싸웠다. 그때 사마 동자는 많은 군사를 죽였다. 그들은 제각기 흩어져 달아나면서 모두들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냐? 하늘인가 귀신인가? 멀리서 보니 어린애 같던데.”
석가족은 동자가 유리왕의 군사를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 사마 동자를 불러 말하였다. “너 같은 어린애가 왜 우리 집안을 욕되게 하느냐? 우리 석가족은 착한 법을 수행한다는 것을 너는 어찌 모르느냐? 우리는 벌레도 해치지 않는데 더구나 사람의 목숨이겠느냐? 우리는 저 군사들을 다 쳐부술 수 있다. 한 사람이 저들 1만 명씩 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자면 무수한 중생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도 또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고, 설사 인간으로 태어난다 해도 수명이 매우 짧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이곳에 머물지 말고 빨리 떠나라.”
그러자 가비라월성에 있던 모든 석가족들은 동문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남문으로 들어오고, 혹은 남문으로 달아났다가 도로 북문으로 들어오며, 혹은 서문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북문으로 들어오기도 하곤 하였다. 이때 유리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마하남 조부께선 왜 물 속에 숨어 지금까지 나오지 않는지 살펴보아라.
018_0511_c_02L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곧 물속으로 들어가 마하남을 끌어냈지만 이미 죽어 있었다. 유리왕은 죽은 마하남을 보자 그때서야 후회가 되었다. “나의 조부께선 이미 목숨을 마쳤다. 그것은 모두 친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이 죽을 줄은 몰랐다. 만일 알았더라면 결코 이 석가족을 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근심하고 저기서도 근심하니 저 유리왕은 두 곳에서 늘 근심하네. 악을 행하면 뒤에 과보 받나니 그건 모두 현세의 과보로 인해서이다.
018_0512_a_20L此憂彼亦憂, 流離二處憂,
爲惡後受惡, 皆由現報故。
마땅히 복의 공덕을 의지해야 하나니 앞에서 지은 것 뒤에도 그러하다. 혹은 혼자서 몰래 지으면 때로는 남들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018_0512_a_21L當依福祐功,
前作後亦然, 或獨而爲者, 或復人不知。
악을 행하면 그것이 악인 줄 아나니 앞에서 지은 것 뒤에도 그러하다 혹은 혼자서 몰래 지으면 때로는 남들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018_0512_a_22L作惡有知惡, 前作後亦然, 或獨而爲者,
或復人不知。
인간이나 천상에서 그 복을 받는데 두 곳 어디서나 복을 누리네. 선을 행하면 뒤에 과보 받나니 그건 모두 현세의 과보로 인해서이다.
018_0512_a_24L人天中受福, 二處俱受福,
爲善後受報, 皆由現報故。
018_0512_b_02L 여기서도 근심하고 저기서도 근심하나니
악을 지으면 두 곳에서 다 근심하네. 악을 행하면 뒤에 과보 받나니 그건 모두 현세의 과보로 인해서이다.
018_0512_b_02L此憂彼亦憂,
爲惡二處憂, 爲惡後受報, 皆由現報故。
이때 5백 명 석가족 여자들은 스스로 귀의하고는 여래의 명호를 칭송하여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셨고, 또한 이곳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운 뒤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하온데 지금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괴로운 일을 당해 모진 고통을 겪는데도 끝내 돌보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왜 돌보지 않으시나이까?”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석제환인은 곧 하늘나라 옷으로 그 5백 명 여자들의 몸을 가려 주었다.
018_0512_b_16L釋提桓因報言:“如是,世尊。”是時,釋提桓因卽以天衣覆此五百女身體上。
세존께서 비사문왕에게 말씀하셨다. “저 여인들은 굶주리고 목말라한 지가 오래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018_0512_b_18L爾時,世尊告毘沙門王曰:“此諸女人飢渴日久,當作何方宜。”
비사문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018_0512_b_20L毘沙門王白佛言:“如是,世尊。”
비사문왕은 곧 천연의 하늘나라 음식을 마련해 모든 석가족 여자들에게 주어 배불리 먹게 하였다.
018_0512_b_21L是毘沙門天王卽辦自然天食,與諸釋女,皆悉充足。
018_0512_c_02L그때서야 세존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미묘한 법을 차근차근 설명하셨다. “이른바 법(法)이란 모두 흩어지기 마련이니,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여인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5성음(盛陰:몸)은 다 이와 같은 고통과 온갖 번민을 받다가 다섯 갈래의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 5성음의 몸을 받으면 반드시 행(行)의 과보를 받기 마련이고, 행의 과보로 곧 태(胎)에 들어가게 되며, 태에 들어가고 나면 다시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만일 이 5성음이 없다면 곧 몸을 받지 않을 것이요, 몸을 받지 않는다면 태어남이 없을 것이며,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이 없고, 늙음이 없기 때문에 병이 없으며, 병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기 때문에 만났다 헤어지는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인들아, 이 5음(陰)이 이루어지고 없어지는 변화를 잘 사유(思惟)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5음을 알면 곧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알게 되고, 다섯 가지 욕망을 알면 애욕[愛]이라는 법을 알게 되며, 애욕이라는 법을 알면 곧 물들고 집착함[染著]이라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를 알고 나면 다시는 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요, 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이 없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석가족 여인들에게 차례로 이런 법을 말씀하셨다. 즉 보시에 대한 논[施論]과 계율에 대한 논[戒論]과 천상에 태어나는 데 대한 논[生天論]과 탐욕은 더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에 이해가 생긴 것을 아시고, 모든 불세존(佛世尊)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법인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集]ㆍ괴로움의 소멸[盡]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모두 설명하셨다. 그때 그 모든 여자들은 온갖 티끌과 때가 완전히 다해 법안(法眼)이 깨끗해졌고, 제각기 그 자리에서 목숨을 마치고는 모두 천상에 태어났다.
018_0513_a_02L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모두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시고는 니구류원(尼拘留園)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니구류원이다. 나는 옛날 여기서 여러 비구들에게 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텅 비어 아무도 없구나. 옛날 수천만 사람들이 이곳에서 도를 얻어 법안이 깨끗해졌느니라. 오늘 이후로 여래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설법을 마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018_0513_a_05L爾時,世尊與諸比丘說法已,各從坐起而去,往舍衛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오늘부터 이레 뒤에는 모두 없어지고 말 것이다.”
018_0513_a_07L爾時,世尊告諸比丘:“今流離王及此兵衆不久在世,卻後七日,盡當磨滅。”
유리왕은 세존께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지금부터 이레 뒤에 모두 없어지리라’고 예언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두려워하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오늘 예언하시기를 ‘유리왕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이레 뒤에 군사들과 함께 모두 없어지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너희들은 도적이나 수재(水災)나 화재(火災)의 변이 우리나라를 침노하는 일은 없는지 바깥 경계를 잘 살펴보아라. 왜냐하면 모든 불여래(佛如來)께서는 두 갈래 말을 하지 않으신다. 그 말씀은 결국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유리왕이 말하였다. “범지여, 모든 불세존(佛世尊)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8_0513_a_18L流離王言:“梵志,當知,諸佛世尊言無有異。”
018_0513_b_02L이때 유리왕이 사람을 시켜 날짜를 세게 하였는데, 이레가 되자 대왕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여러 군사들과 시녀들을 데리고 아지라(阿脂羅)라는 강가에 나가 즐기면서 놀다가 바로 그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한밤중에 갑자기 구름이 일어나더니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쳤다.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모조리 물에 휩쓸려 모두 사라졌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졌다. 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성 안에 있는 모든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만일 집에서 지낼 때라면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018_0513_b_08L設在家中時, 爲火之所燒,
若其命終時, 必生地獄中。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유리왕과 그 네 종류의 군사들은 지금 목숨을 마치고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018_0513_b_09L爾時,衆中多比丘白世尊言:“流離王及四部兵今已命絕,爲生何處?”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유리왕자는 지금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018_0513_b_11L世尊告曰:“流離王者,今入阿鼻地獄中。”
모든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 석씨들은 과거에 무슨 인연을 지었기에 지금 유리왕에게 해침을 당하였습니까?”
018_0513_b_12L諸比丘白世尊言:“今此諸釋昔日作何因緣,今爲流離王所害?”
그러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이 라열성(羅閱城)에 한 어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으니, 금 한 되로 쌀 한 되를 바꿀 정도였다. 그 마을에는 큰 못이 있었는데 또 그 못에는 고기도 많았다. 그래서 라열성 사람들은 그 못으로 가서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었다. 그때 그 못에는 두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구소(拘璅)이고 다른 하나는 양설(兩舌)이라고 하였다. 그 두 물고기는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는 이전에 이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또 우리는 물에서 사는 짐승이라서 땅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고 있으니, 만일 우리가 전생에 조그만 복이라도 지은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원수를 갚자.’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그때 라열성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지금의 석가족이 바로 그들이었느니라. 그때 그 구소라는 물고기는 지금의 저 유리왕이고, 그때 저 양설이라고 하는 물고기는 지금의 호고 범지이며, 그때 언덕에 죽어 있는 물고기를 보고 웃었던 어린애는 바로 나였느니라. 그때 그 석가족은 앉아서 물고기를 먹었는데, 그 인연으로 무수한 겁 동안 지옥에 떨어졌다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그때 앉아서 바라보며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를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 같은 두통을 앓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온갖 행(行)을 버렸으며 모든 액난(厄難)을 벗어났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아,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런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梵行)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며 받들어 섬기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018_0514_a_02L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천자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전에 없었던 다섯 가지 징조가 앞에 나타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꽃으로 만든 관이 저절로 시들고, 둘째는 옷에 때가 끼며, 셋째는 몸에서 냄새가 나고, 넷째는 본래의 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천녀들이 별처럼 흩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천자가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에는 다섯 가지 징조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때 그 천자는 몹시 근심하면서 가슴을 치고 울부짖는다. 그러면 다른 천자들이 그 천자를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지금 이렇게 가면 좋은 곳에 태어나 좋은 것을 얻고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오.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니 좋은 업에 편안히 머무를 것을 생각하시오.’ 여러 천자들은 이렇게 가르칠 것이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에게는 인간세상이 바로 좋은 곳이다. 좋은 곳을 얻고 좋은 이익을 얻는 이는 바른 식견이 있는 집안에 태어나 선지식(善知識)과 함께 일하며, 여래의 법 안에서 신근(信根)을 얻는다. 이것을 일러 ‘좋은 이익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좋은 업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인가? 그는 여래의 법 안에서 신근(信根)을 얻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운다. 그는 도를 배워 계성(戒性)을 두루 갖추고 모든 감각기관이 원만하며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항상 경행(經行)을 생각하며 세 가지 지혜를 얻는다. 이것을 일러 ‘좋은 업에 편안히 머무른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삼십삼천은 5욕(欲)에 집착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인간 세상이 좋은 곳이 된다. 그래서 그는 여래의 법에 출가하여 좋은 이익을 얻고 세 가지 지혜를 얻는다. 왜냐하면 모든 불세존은 모두 인간에서 나왔고 하늘에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장차 천상에 태어나야 하느니라.”2)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문에게는 비방 받을 만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인가? 첫째는 머리를 기르는 것이요, 둘째는 손톱을 기르는 것이며, 셋째는 옷에 때가 낀 것이요, 넷째는 적절한 시기를 모르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이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말이 많은 비구에게는 또 다섯 가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허물인가? 첫째는 남들이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남들이 그 말을 듣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남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남을 싸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말이 많은 사람은 다섯 가지 허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구들아, 너희들은 지금 이 다섯 가지를 버리고 삿된 생각을 없애도록 하라.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 빈비사라왕(頻毗娑羅王)이 모든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속히 준비시켜라. 내가 사위성으로 가서 친히 세존을 뵈리라.”
018_0514_b_18L爾時,頻毘娑羅王勅諸群臣:“速嚴駕寶羽之車。吾至舍衛城,親覲世尊。”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곧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준비하고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수레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대왕께선 때가 되었음을 아소서.”
018_0514_b_20L是時,群臣聞王教勅,卽駕寶羽之車,前白王言:“嚴駕已訖。王知是時。”
018_0514_c_02L그때 빈비사라왕은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라열성(羅閱城)을 나서 사위성(舍衛城)으로 나아갔고, 점차 기원정사(祇洹精舍)에 이르러 기원정사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물로 관정의식을 치룬 왕의 법에는 다섯 가지 위용(威容)이 있다. 그런데도 왕은 그것을 모두 한쪽에 치워두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빈비사라왕은 한적한 곳에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여래와 비구 스님들께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빈약한 사람들도 가엾이 여겨야 한다.’ 빈비사라왕은 곧 그날로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아까 ‘나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여래와 비구 스님들께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을 공양할 수 있다. 그러나 빈약한 사람들도 가엾이 여겨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너희들은 제각기 차례로 여래와 비구 스님들께 공양하도록 하라. 영원토록 무궁한 복을 받으리라.” 그때 마갈국(摩竭國)의 왕은 곧 궁궐 문 앞에 큰 강당을 세우고 또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였다.
018_0515_a_02L그때 세존께서 5백 명 비구들을 데리고 사위성을 나와 세간에 노닐면서 차츰 라열성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 가까이에 이르셨다. 빈비사라왕은 세존께서 가란타죽원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즉시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빈비사라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한적한 곳에서 ‘지금 나는 당장이라도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을 공급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저 빈약한 사람들도 생각해줘야만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제각기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로 부처님께 공양하라’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이것은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대왕이여, 그것은 많은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천상과 인간을 위해 좋은 복밭을 만들었습니다.”
018_0515_a_08L世尊告曰:“善哉,善哉!大王,多所饒益,爲天世人,而作福田。”
그때 빈비사라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내일은 궁중에 오셔서 공양하소서.”
018_0515_a_09L爾時,頻毘娑羅王白世尊言:“唯願世尊,明日就宮中食。”
빈비사라왕은 세존께서 잠자코 그 청을 들어주신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갔다.
018_0515_a_11L爾時,頻毘娑羅王以見世尊默然受請。時,王尋起,頭面禮足,便退而去。
이튿날 아침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으로 들어가 왕궁에 이르러 차례로 앉으셨다. 왕은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자신의 손으로 손수 돌리면서 기뻐하였고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자 빈비사라왕은 발우를 치우고 곧 낮은 자리를 가져다 여래 앞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왕을 위해 미묘한 법을 차례로 설명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해 주셨다. 그때 세존께서 왕과 신하들을 위해 설명한 미묘한 법은 보시에 대한 논[施論]과 계율에 대한 논[戒論]과 천상에 태어나는 데 대한 논[生天論]과 탐욕은 깨끗하지 못한 생각이고 음욕은 더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셨다.
018_0515_b_02L그때 세존께서는 그 중생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에 이해가 생긴 것을 다시는 의심이 없음을 아시고, 모든 불세존(佛世尊)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법인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集]ㆍ괴로움의 소멸[盡]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모두 말씀하셨다. 이렇게 세존께서 설법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60여 명은 온갖 번뇌가 사라져 법안(法眼)이 깨끗해졌고, 60명 대신들과 5백 명 하늘 신들도 온갖 번뇌가 다 사라져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018_0515_c_02L범지는 아내의 말을 따라 곧 성 안에 들어가 여러 곳을 다니며 빚을 구했지만 끝내 얻지 못하였다. 그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와서 말하였다. “나는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해보았으나 끝내 얻을 수 없었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때 아내가 대답하였다. “라열성 동쪽에 불사밀다라(不奢蜜多羅)라는 큰 장자가 있는데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습니다. 그에게 가서 빚을 구하되 ‘돈 세 냥만 빌려 주십시오. 이레 뒤에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만일 갚지 못하면 우리 부부가 모두 노비가 되겠습니다’라고 해 보셔요.”
비사문천왕이 세존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제 몸을 숨기더니 사람 모양으로 변해 5백 명 귀신들을 데리고 음식거리를 준비하였다. 그때 비사문천왕이 귀신들에게 명(命)하였다. “너희들은 속히 저 전단(栴檀)숲으로 들어가 전단 나무를 가져다 쇠로 만든 부엌에 두어라.” 부엌에서는 5백 귀신들이 음식을 장만하였다.
018_0516_b_02L자재천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재천자는 석제환인의 말을 듣고, 라열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신통으로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마노ㆍ적주ㆍ자거의 7가지 보배로 된 강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금ㆍ은ㆍ수정ㆍ유리의 네 층계를 만들었다. 금 층계 위에는 은 나무를 만들고 은 층계 위에는 금 나무를 만들었는데, 금 뿌리에 은 줄기와 은 가지와 은 잎이었다. 또 금 층계 위에는 은 잎과 은 가지를 만들고, 수정 층계 위에는 유리 나무를 만들어 그 갖가지들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또 여러 가지 보배로 그 사이사이를 장식하고 다시 7가지 보배 그 위를 덮었다. 4방에는 좋은 금방울을 두루 달아놓았는데 그 방울들은 모두 여덟 가지 소리를 내었다. 다시 좋은 평상을 만들어 좋은 자리를 펴고, 비단과 번기와 일산을 달아 두었으니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들이었다. 그때 우두전단(牛頭栴檀)4)에 불을 붙여 밥을 짓자 그 향기가 라열성에서 12유순 안에 가득 찼다.
그때 마갈국의 빈비사라왕이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빈비사라왕은 세존께 아뢰었다. “전에는 이런 높고 넓은 강당을 보지 못하였사온데 오늘 이것을 보나이다. 전에는 이 쇠로 만든 부엌을 보지 못하였사온데 오늘 이것을 보나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물건이며, 누구의 조화입니까?”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 감히 슬피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뒷세상 사람들은 성인의 출현을 직접 보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 사람들은 재물에 집착하고 위엄과 덕이 없어 이런 기이한 보물이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할 텐데 하물며 어떻게 보겠습니까? 지금 여래께서 그런 기이하고 특별한 신통으로 세상에 나타내심을 뵈오니 저절로 슬픈 울음이 납니다.”
범지는 천왕의 분부를 받고 곧 그 금을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 갖가지 음식을 사서 부엌으로 가지고 왔다. 비사문천왕은 범지를 목욕시킨 뒤 갖가지 옷을 입히고 손에는 향불을 들게 하고는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원컨대 존자께선 왕림하소서’라고 아뢰라고 시켰다.
범지는 그 분부를 받고 손에 향로를 들고 아뢰었다. “때가 되었습니다. 원컨대 왕림하소서.”
018_0517_a_10L是時,梵志卽受其教,手執香爐,而白:“時到,唯願屈顧。”
그때 세존께서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비구들을 데리고 강당으로 가 앉으셨으며, 비구들도 차례로 앉았다. 그때 계두 범지는 음식은 매우 많은데 비구들이 너무 적은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 음식은 이처럼 풍족한데 비구 스님들이 너무 적습니다. 어찌하오리까?”
018_0517_b_02L범지가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범지는 부처님 분부를 받고 곧 다락 위로 올라가 번뇌가 다한 모든 아라한을 청하였다. 그때 동방에 있던 2만 1천 아라한이 동방에서 강당으로 왔고, 남방에서 2만 1천, 서방에서 2만 1천, 북방에서 2만 1천의 아라한이 이 강당으로 와 모였다. 그래서 그 강당에는 8만 4천 아라한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때 빈비사라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또 비구 스님에게도 예배하였다. 계두 범지는 비구승들을 보자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되 자신의 손으로 직접공양하면서 기뻐해 마지않았다. 그러고도 음식이 남자 계두 범지는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다 공양을 올렸는데도 아직 음식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대중 속에 사구리(舍鳩利)라고 하는 비구니(比丘尼)가 있었다. 그 비구니가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혹 석가문불의 제자로서 번뇌가 다한 아라한 중에 이곳에 모이지 않은 이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안(天眼)으로 동방세계, 남방ㆍ서방ㆍ북방세계를 두루 살펴보았지만 오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다 모였습니다. 지금 이 대회에는 순전히 나한(羅漢) 진인(眞人)들만 모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구리야. 네 말과 같다. 이 대회는 순전히 진인들만 동ㆍ서ㆍ남ㆍ북에서 빠짐없이 모두 다 와서 모인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인연으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혹 비구니 중에서 천안이 이 비구니처럼 투철한 이를 본 적이 있느냐?”
이때 계두 범지는 이레 동안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을 성중(聖衆)에게 공양하였고, 다시 향과 꽃을 여래 위에 뿌렸다. 그러자 그 꽃들은 허공에서 7보가 그물처럼 얽힌 누각으로 변하였다. 범지는 그 누각을 보고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 세존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도 도에 들어가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018_0518_a_02L그때 계두 범지는 곧 도를 닦게 되어 모든 감각기관이 고요해졌고 스스로 그 뜻을 닦아 잠을 없애버렸다. 비록 눈으로 빛깔을 보더라도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고, 그 눈도 나쁜 생각이 없어 잡생각으로 치달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잘 보호하였다. 또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아도 그러했으며, 몸으로 보드라운 감촉을 느껴도 보드랍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고, 뜻으로 법을 알아도 그 또한 그러하였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덮어 지혜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5결(結)과 5개(蓋)를 곧 없앴다. 살해할 뜻이 없이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살생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지도 않고, 칼이나 몽둥이를 손에 잡지 않았으며, 인자(仁慈)한 마음을 내어 일체 중생을 대하였다. 또 도둑질을 버리고 도둑질 할 생각을 내지 않아 그 마음을 깨끗이 하였으며, 항상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또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 제 자신이 음행하지 않고 남을 시켜 음행하게 하지 않으며, 항상 범행(梵行)을 닦아 깨끗해 더러움이 없었으며 범행 안에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또 제 자신이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 거짓말하게 하지 않으며, 항상 진실만을 생각해 거짓말로 세상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이 그 안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또 제 자신이 이간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 이간질하게 하지 않으며, 여기서 이 말을 듣더라도 저기 가서 전하지 않고 저기서 저 말을 듣더라도 여기 와서 전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그는 또 음식에 있어서도 만족할 줄을 알아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고, 고운 빛깔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기름지고 깨끗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다만 그 몸을 지탱하고 목숨을 보존하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 병이 생기지 않게 하며, 도를 닦아 언제나 함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려고 할 뿐이었다. 이를 비유하면 마치 남자나 여자가 부스럼에 고약을 바르는 것은 그 부스럼을 고치기 위해서인 것과 같았다. 그도 또한 마찬가지여서 음식에 있어 만족할 줄 알았던 것은 묵은 병을 고치고 새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일 따름이었다.
또 그는 때로는 밤을 새우면서 도를 닦아 때를 놓치지 않고 37품도(品道)의 행을 잃지 않았다. 앉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면서 수면의 장애[蓋]를 없앴으니, 초저녁에는 앉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면서 수면의 장애를 없앴고, 한밤중에는 오른쪽으로 누워 다리를 포개고 마음을 밝은 데에 메어두었으며, 새벽에는 앉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면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경행(經行)함에 있어 때를 놓치지 않았으며 탐욕과 더러운 생각을 버리고 어떤 나쁜 행도 없이 초선(初禪)에 노닐었다. 다시 이전부터 있었던 각(覺)과 관(觀)을 쉬고, 기억[念]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禪)에 노닐었다. 다시 즐거움이 없어지고 평정한 기억[念] 청정하고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느끼며, 성현들이 구하는 평정한 기억이 청정한 제3선에 노닐었다. 그는 다시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어지고 아무 근심도 없으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평정한 기억이 청정한 제4선에 노닐었다.
018_0518_b_02L그는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삼매에 든 마음[三昧心]으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다시 삼매를 얻어 무수한 세월 동안 겪은 일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그는 과거 1생ㆍ2생ㆍ3생ㆍ4생ㆍ5생ㆍ10생ㆍ20생ㆍ30생ㆍ40생ㆍ50생ㆍ1백 생ㆍ1천 생ㆍ만 생ㆍ수천만 생과 이루어지는 겁[成劫]ㆍ무너지는 겁[敗劫]ㆍ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成敗劫]에 있었던 일들을 다 기억하였다. ‘나는 예전에 어디에 태어났었고, 성(姓)은 무엇이었으며 이름은 무엇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었다’라고 알았고, 또 수명이 길고 짧았던 것과 저기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고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났다는 그러한 인연의 본말을 모두 다 알았다. 그는 또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삼매에 든 마음[三昧心]으로 두려움이 없게 되어, 태어나고 죽는 중생들을 관찰하였다. 그는 또 천안(天眼)으로 태어나고 죽는 중생들을 관찰하여 좋은 세계와 나쁜 세계, 좋은 모양과 나쁜 모양, 예쁜지 추한지 등 그 행에 따른 종류들을 모두 다 알았다. 또 어떤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성현을 비방하며 온갖 삿된 업의 근본을 짓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알았고, 또 어떤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한 행을 하였고 성현(聖賢)을 비방하지 않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의 좋은 곳에 태어났다는 것을 죄다 알았다.
그는 또 청정한 천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여 예쁘고 추함과 좋은 세계와 나쁜 세계, 좋은 모양과 나쁜 모양을 모두 다 알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또 보시하는 마음이 있고 번뇌가 다한 뒤에는 괴로움을 관찰해 사실 그대로 알았으니, 즉 ‘이것은 괴로움[苦]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苦集]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苦盡]이고,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苦出要]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알았다. 그는 이렇게 관찰하고는 탐욕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존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였다. 이렇게 해탈하고 나서는 곧 해탈하였다고 아는 지혜[解脫智]를 얻었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그때 계두 범지는 바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인가? 없어질 물건은 잃지 않으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고, 완전히 소멸할 법은 소멸하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으며, 늙는 법은 늙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고, 병드는 법은 병들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으며, 죽는 법은 죽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도저히 될 수 없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출현하지 않건 이 법계는 영원히 머물러 여여(如如)하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지만, 없어지고 소멸하는 소리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들은 생기거나 혹은 사라져서 모두 다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다섯 가지 법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방편을 구해 5근(根)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니라. 비구들아, 이 5근을 닦아 익히면 곧 수다원(須陀洹)을 성취하고 가가(家家)와 일종(一種)을 성취하고, 더욱 나아가면 사다함(斯陀含)을 성취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5결사(結使)를 없애면 아나함(阿那含)을 성취하여 거기에서 열반에 들고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거기서 더 나아가 번뇌가 다하면 번뇌가 없게 되어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자유롭게 노닐면서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방편을 구해 앞의 다섯 가지 일을 버리고 뒤의 5근(根)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018_0519_a_02L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고칠 수 없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종류의 사람인가? 첫째 아첨하는 사람은 고칠 수 없고, 둘째 간사한 사람은 고칠 수 없으며, 셋째 입이 거친 사람은 고칠 수 없고, 넷째 질투하는 사람은 고칠 수 없으며, 다섯째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고칠 수 없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다섯 무리의 사람은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항상 바른 마음을 배워 질투를 버리고, 말한 바대로 법답게 위의(威儀)를 닦으며, 은혜를 기억해 갚을 줄을 알아야 하나니, 작은 은혜도 잊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큰 은혜이겠는가?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또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않도록 하라.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018_0519_b_02L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석제환인은 삼십삼천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만일 너희들이 아수륜(阿須倫)과 싸워 아수륜이 지고 하늘이 이기게 되거든, 너희들은 비마질다라(毗摩質多羅)5)아수륜을 잡아 이리 끌고 와서 그 몸을 다섯 군데를 꼭꼭 묶어라.’ 그때 비마질다라아수륜도 여러 아수륜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이 오늘 저 하늘들과 싸워 만일 이기게 되거든 석제환인을 잡아 결박해 이곳으로 끌고 오너라.’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그 둘은 서로 싸웠는데 하늘이 이기고 아수륜이 졌다. 삼십삼천은 아수륜의 왕 비마질다라를 잡아 그 몸을 결박하여 석제환인에게 끌고 가서 중문 밖에 두고 다섯 군데를 밧줄로 꼭꼭 결박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때 아수륜의 왕 비마질다라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하늘들의 법은 바르고 아수륜의 소행은 비법(非法)이다. 나는 이제 아수륜을 좋아하지 않고 지금부터는 이 천궁에서 살리라.’ 그리고 그는 곧 말하였다. ‘하늘들의 법은 바르고 아수륜은 비법이다. 나는 여기서 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 즉시 아수륜들의 왕 비마질다라는 그 몸의 결박이 저절로 풀어지고 다섯 가지 욕망[五欲]으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아수륜들의 왕 비마질다라가 ‘하늘들은 비법이요 아수륜의 법만이 바르다. 나는 삼십삼천이 쓸데가 없다. 다시 아수륜 궁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면, 그 즉시 아수륜왕의 몸은 곧 다섯 개의 밧줄에 묶이고 다섯 가지 욕망은 저절로 사라지곤 하였다.
018_0519_c_02L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결박의 빠르기가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느니라. 그러나 악마의 결박은 이보다 더 심하니라. 설사 번뇌[結使]의 악마가 묶으려 하더라도 움직이면 악마에게 묶이겠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악마에게 묶이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마음이 묶이지 않게 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번뇌는 악마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만일 비구가 악마의 경계에 머문다면, 그는 끝내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심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괴로움의 한계를 말했느니라. 또 만일 비구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번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괴로움의 한계를 말했느니라.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이렇게 배워서 번뇌를 없애고 악마의 경계를 초월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색(色)은 함이 없는 인연으로서 그런 이름만 있다. 탐욕도 없고 함도 없는 것으로서 이것을 ‘아주 없어지는 법’이라고 한다. 그 없어지는 것을 ‘완전히 없어진다[滅盡]’고 말한다. 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함도 없고 지음도 없다. 그것은 아주 다 사라지는 법으로서 탐욕도 없고 더러움도 없다. 그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므로 ‘완전히 없어진다’고 말한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5성음(盛陰)은 탐욕도 없고 지음도 없는 사라지는 법이다. 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완전히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 5성음은 아주 없어져 영원히 생기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없어진다’고 말하느니라.”
그때 생루(生漏) 범지(梵志)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이때 생루 범지가 세존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瞿曇)이시여, 어떤 인연이 있고 어떤 과거의 행이 있었기에 이 백성들이 없어지고 사라지고 줄어들게 된 것입니까? 예전엔 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졌고 예전엔 백성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빈터가 되었습니다.”
018_0520_a_02L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지여,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 그 백성들의 소행이 법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졌고, 예전엔 백성이 살았는데 지금은 빈터가 된 것이다. 백성들이 간탐(慳貪)에 묶이고 애욕을 익힌 결과, 때 아닌 바람이 불고 비가 때맞춰 내리지 않아 심은 종자들이 자라지 못했고, 이곳에 살던 백성들의 시체가 길에 넘치게 된 것이니라. 범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인연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번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니라.
또 범지야, 백성들의 소행이 법답지 않으면 뇌성벽력의 자연 현상이 생기고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 어린 벼[苗] 못 쓰게 만든다. 그럴 때 죽어가는 백성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또 범지야, 백성들의 소행이 법답지 않으면 서로 싸우고 다투게 되니,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기왓장이나 돌을 던져 서로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또 범지야, 그 백성들이 서로 싸우며 자기들이 있는 곳을 불안하게 여기면 나라의 임금도 편안하지 않아 군사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게 되어, 칼에 찔려 죽기도 하고 창이나 화살에 찔려 죽기도 하는 등 죽는 사람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된다. 범지야, 이와 같은 인연으로 백성들이 줄어들고 번성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또 범지야, 백성들의 소행이 법답지 않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신이 도와줄 기회를 얻지 못하여 백성들은 재앙을 당하기도 하고, 질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면 항복 받는 이는 적고 병으로 죽는 이는 많게 되느니라. 범지야, 이것을 일러 ‘이런 인연으로 백성들이 줄어들고 번성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니라.”
018_0520_b_02L그때 생루 범지가 세존께 아뢰었다. “구담의 말씀은 매우 시원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줄어드는 이치를 말씀해 주시니, 진실로 여래의 말씀과 틀림이 없습니다. 예전엔 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졌고, 예전엔 사람이 살았는데 지금은 빈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법답지 않기 때문에 곧 간탐의 병이 생겼고, 간탐의 병이 생겼기 때문에 삿된 업이 생겼으며, 삿된 업이 생겼기 때문에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리지 않아 오곡은 익지 않고 백성들은 번성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비법(非法)이 유행하게 되자 하늘이 재앙을 내려 모판을 못 쓰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이 비법을 행함으로써 간탐의 병에 집착하자 나라의 임금도 편하지 않아 제각기 군사를 일으켜 서로 공격하였고 죽은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세존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고 시원스럽습니다. 비법(非法)으로 말미암아 이런 재앙이 닥치게 되니, 즉 남에게 붙잡혀 그 목숨이 끊기게 됩니다. 비법으로 말미암아 도둑질할 마음이 생기고, 도둑질할 마음을 낸 뒤에는 왕에게 잡혀 죽게 되며, 삿된 업을 지음으로써 비인(非人)들이 그 틈을 엿보게 됩니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목숨을 마치게 되어 백성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살만한 성이 없게 된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오늘 너무도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치 꼽추가 등을 펴고 장님이 눈을 뜨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얻은 듯, 눈이 없는 자에게 눈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사문 구담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설법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거듭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원컨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다시는 감히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사문 구담께서 제가 코끼리나 말을 탄 것을 보게 되시더라도 저는 여전히 공경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사닉왕(波斯匿王)과 빈비사라왕(頻毗娑羅王)ㆍ우전왕(優塡王)ㆍ악생왕(惡生王)ㆍ우다연왕(優陀延王)으로부터 범지의 복을 받는 자6)로서 그 덕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거든 세존께서는 저의 예배를 받아 주소서. 만일 제가 걸어가다가 구담께서 오시는 것을 보게 되면 저는 신었던 신을 벗겠사오니, 세존께서는 저의 예배를 받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