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성에는 마혜제리(摩醯提利)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외도의 경술(經術)에 밝았고 천문과 지리에도 모두 능숙하였으며 세상에서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법들을 모두 다 통달하였다. 그 바라문에게는 의애(意愛)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매우 총명하고 세상에서 보기 드물 만큼 얼굴이 단정하였다.
그때 바라문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 바라문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세상에 출현하는 일은 매우 만나기 어렵고 참으로 만날 수 없다. 누가 그 두 사람인가? 이른바 여래ㆍ지진ㆍ등정각과 전륜성왕이다. 전륜성왕이 세상에 출현할 때에는 7보가 메아리처럼 저절로 따른다. 내게는 지금 이 여보(女寶)가 있으니, 얼굴이 너무도 묘해 미녀 중에서도 제일이다. 그런데 지금 전륜성왕이 없다. 나는 또 〈진실하고 청정한 왕자 실달(悉達)은 출가하여 도를 배웠고 32대인상(大人相)과 80종호가 있는데, 그가 집에 머문다면 분명 전륜성왕이 될 것이요,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불도를 이룰 것이다〉라고 들었다. 나는 이제 내 딸을 저 사문에게 주리라.’
그때 세존께서는 장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여래 앞에서 그런 나쁜 말을 하는구나. 너는 어떻게 얽혀들었기에 이 여자에게 마음을 두는가? 무릇 여자에게는 아홉 가지 나쁜 법이 있다. 아홉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여자는 냄새나고 더러워 깨끗하질 않다. 둘째, 여자는 입버릇이 나쁘다. 셋째, 여자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 넷째, 여자는 질투를 잘한다. 다섯째, 여자는 인색하다. 여섯째, 여자는 놀러 다니기를 좋아한다. 일곱째, 여자는 성을 잘 낸다. 여덟째, 여자는 거짓말을 많이 한다. 아홉째, 여자는 말이 경솔하다. 비구야, 여자에게는 이런 아홉 가지 나쁜 점이 있느니라.”
018_0621_c_02L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미련한 사람아. 너는 지금 여래의 신성한 말을 믿지 않는가? 내 이제 설명해 주리라. 먼 옛날, 바라내성(婆羅㮈城)에 보부(普富)라는 큰 상인이 있었다. 그는 5백 명의 상인을 거느리고 보배를 캐러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바다 가에는 늘 사람들을 잡아먹곤 하는 나찰이 살고 있었다. 이때 그 바다에 거센 바람이 일더니 그 상인들의 배에 불어 닥쳐서는 나찰이 사는 곳에 떨어뜨렸다. 나찰은 상인들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한량없이 기뻐하였다. 곧 나찰은 형상을 숨기고 견줄 이 없이 단정한 여자의 모습이 되어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 이 보배로운 섬은 저 하늘 궁전과 다름이 없으니, 수많은 온갖 보배에 수 천 백 가지 풍족한 음식이 있습니다. 또 미녀들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함께 여기서 즐기십시오.’
비구야, 알아야 한다. 그 상인들 가운데 어리석고 미혹한 이들은 그 여자들을 보고는 곧 집착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 우두머리 상인 보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큰 바다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닌데 어떻게 이 여자들이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이들은 의심할 것도 없이 나찰임이 분명하다.’ 이에 보부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아가씨들아, 우리는 여색을 탐하지 않는다.’
이때 매달 8일, 14일, 15일에는 마왕(馬王)이 허공을 돌면서 이렇게 외쳤다. ‘누구든 이 험난한 바다를 건너려한다면 내가 그를 업어 건네주리라.’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그 우두머리 상인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멀리서 그 마왕을 바라보고 또 그 소리를 듣고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느니라. 그는 마왕에게 달려가 마왕에게 말하였다. ‘저희 5백 상인들은 바람에 밀려 지금 매우 난처한 곳에 떨어졌습니다. 이 바다를 건너고 싶으니 부디 건네주십시오.’ 마왕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오라. 내가 저 바다 끝으로 건네주리라.’
018_0622_a_02L이때 보부(普富) 장자는 여러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마왕이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 모두 그에게 찾아가 험난한 바다를 함께 건너자.’
018_0622_a_02L是時,普富長者語衆商人曰:今馬王近在,悉來就彼,共渡海難。
그러자 여러 상인들은 대답하였다. ‘그만두시오, 주인. 우리는 우선 여기서 살면서 즐기겠소. 저 염부제에 살면서 열심히 애쓴 까닭은 즐거운 것을 구하기 위해서요. 진기한 보물과 아름다운 여자가 이곳에 모두 갖추어져 있소. 우리는 여기서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누리다가 뒷날 차차 재물을 모아 가지고 이 어려움을 함께 건너리다.’
018_0622_b_02L 이 게송을 마치고는 곧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그는 마왕에게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는 그를 타고 곧 떠나버렸다. 그때 여러 상인들은 멀리서 그 주인이 마왕을 타고 떠나는 것을 보았고, 그 중에는 부르는 이도 있었지만 부르지 않으며 원망하는 이도 있었다.
그 동안에 마왕은 곧 우두머리 상인을 태우고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머지 5백 상인은 모두 곤욕을 치렀느니라.
018_0622_b_10L是時,馬王卽負商主,度至海岸,泰爾。餘五百商人盡受其困。
그때 바라내성(波羅㮈城)에서는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때 나찰은 ‘아이고, 내 남편을 잃다니’ 하며 곧바로 우두머리 상인을 뒤쫓았다. 그 무렵 우두머리 상인은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나찰은 변화한 모습으로 사내아이를 안고는 범마달왕을 찾아가 호소하였다. ‘세상에 큰 재앙이 닥쳤으니 그것을 모두 없애셔야 합니다.’ 왕은 말하였다. ‘세상에 완전히 없애야 할 어떤 재앙이 닥쳤단 말인가?’ 나찰은 아뢰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았습니다. 헌데 저는 남편에게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이때 범마달왕은 너무도 아름다운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곧 애착이 생겨 여자에게 말하였다. ‘네 남편은 사람으로서의 의리도 없이 너를 버리고 떠났구나.’
018_0622_c_02L범마달왕은 곧 사람을 보내 남편이라는 자를 불러와 말하였다. ‘네가 이렇게 좋은 아내를 버렸다는 게 사실인가?’ 우두머리 상인은 대답하였다. ‘이 자는 나찰이지 여자가 아닙니다.’ 나찰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이 사람은 남편으로서의 의리도 없습니다. 지금 저를 버리고도 다시 저를 나찰이라고 욕하는군요.’ 왕은 상인에게 물었다.
‘네가 정말로 필요 없다면 내가 거두리라.’ 상인은 아뢰었다. ‘이 자는 나찰입니다. 왕의 뜻대로 하소서.’
비구들아, 달리 생각지 말라. 그때의 우두머리 상인은 바로 지금의 사리불 비구요, 그때의 나찰은 바로 지금의 이 여자이고, 그때의 범마달왕은 바로 지금의 이 장로 비구요, 그때의 마왕(馬王)은 바로 지금의 나이며, 그때의 5백 상인은 바로 지금의 이 5백 비구이니라.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애욕이란 더러운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다시 애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가?”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시(釋翅)의 암바리과원(闇婆梨果園)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018_0622_c_20L一時,佛在釋翅闇婆梨果園,與大比丘衆五百人俱。
018_0623_a_02L그때 존자 사리불과 존자 목건련이 다른 곳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5백 명의 비구들을 데리고 세상을 유행하다가 차츰 다가와 석시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때 먼 길을 온 비구들과 머물고 있던 비구들은 제각기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그 음성들이 너무 높고 컸었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동산에서 누가 저처럼 크게 떠드는가? 마치 나무나 돌을 부수는 소리 같구나.”
그러자 석가족 사람들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현자들이여, 잠시만 생각을 거두십시오. 저희들이 여래께 참회하겠습니다.”
018_0623_a_18L是時,諸釋白舍利弗言:“諸賢,小留意。我等當向如來懺悔。”
018_0623_b_02L이때 석가족 사람들은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먼 곳에서 찾아온 비구들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원컨대 세존께서는 때를 따라 깨우쳐 주소서. 저 멀리서 찾아온 비구들 중에 처음으로 도를 배우고 우리 법에 새로 들어온 자들은 세존을 뵙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하고 마음이 변할 것입니다. 마치 무성한 모종이라도 물기를 만나지 못하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저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여래를 뵙지 못하고 떠나면 후회하고 마음이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범천왕은 여래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범천에서 사라져 여래가 계신 곳으로 와서는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때 범천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멀리서 온 비구들이 저지른 허물을 용서하시고 때를 따라 깨우쳐 주소서. 저들 가운데 아직 구경에 이르지 못한 비구들이 있다면 그들은 곧 후회하고 마음이 변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래의 존안을 뵙지 못하면 곧 마음이 변해 본래의 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그 어미를 잃으면 시름에 잠겨 먹지 않는 것처럼, 저 처음으로 도를 배우는 비구들도 여래를 뵙지 못하면 곧 이 바른 법에서 멀리 떠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석가족들의 간청과 송아지로 비유를 든 범천왕의 말을 받아들이시고 아난을 돌아보셨다. 아난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는 이미 여러 사람과 천신들의 간청을 들어주셨다.’ 아난은 곧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를 찾아가 말하였다. “여래께서 여러 스님들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목건련은 아뢰었다. “‘지금 여래께서 성중을 쫓아버리셨지만 우리는 다시 그들을 모아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018_0623_c_15L目乾連白佛言:“然今如來遣諸聖衆,我等宜還,收集之,令不分散。”
018_0624_a_02L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목련아. 그대 말이 옳다. 이 대중 가운데 우두머리는 오직 나와 그대 둘 뿐이다. 지금부터 목건련은 여러 후학 비구들을 잘 가르쳐 긴 세월 동안 언제나 안온한 곳에 살게 하고 중간에서 물러나 생사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비구가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그는 현세에서 성장할 수 없으리라. 아홉 가지란 무엇인가? 나쁜 벗을 섬기고 가까이 하는 것, 일 없이 항상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는 것, 늘 병(病)을 품고 사는 것,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는 것, 가사와 발우에 탐착하는 것, 허황하고 잘 잊으며 생각이 어지러워 안정되지 못한 것, 지혜의 밝음이 없는 것,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때로 가르침을 받지 않는 것이다.
목련아,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이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세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교화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만일 비구가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그는 곧 큰 결과를 이룰 것이다. 아홉 가지란 무엇인가? 좋은 벗을 섬기는 것, 바른 법을 수행하고 삿된 업에 집착하지 않는 것, 항상 홀로 노닐며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병이 적고 근심이 없는 것, 재보를 많이 쌓아 두지 않는 것, 가사와 발우에 탐착하지 않는 것, 부지런히 정진하며 어지러운 마음이 없는 것, 이치를 들으면 곧 이해해 거듭 배우지 않는 것, 때때로 법을 들으며 싫증내지 않는 것이다. 목련아,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세에서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목련아, 모든 비구들을 더욱 부지런히 가르쳐 긴 세월 동안 함이 없는 곳에 이르게 하리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018_0624_b_02L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18_0624_b_02L解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3 ]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624_b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8_0624_b_0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촌락(村落)을 의지해 살면서 선한 법은 소멸하고 악한 법이 불어가거든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촌락에 머물러 살면서 나쁜 법이 늘어나고 선한 법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생각이 한결같지 않아 번뇌를 없앨 수 없고 함이 없는 안온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얻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병에 맞는 의약품도 노고 끝에야 겨우 얻을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 사유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촌락에서 머물러 살면서 나쁜 법이 늘어나고 선한 법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나는 또한 의복ㆍ음식ㆍ침구ㆍ병에 맞는 의약품 등을 위해 사문이 된 것이 아니다. 내가 구하고 원하는 것은 아직 그 결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그 촌락을 멀리 떠나야 하느니라.
만일 또 어떤 비구가 촌락을 의지해 살면서 선한 법은 자꾸 늘어나고 나쁜 법은 없어지며, 그가 얻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병에 맞는 의약품 등도 애를 써야만 얻어지거든 그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촌락에서 머물러 살면서 나쁜 법이 늘어나고 선한 법은 자꾸 줄어들고 있으며, 내가 얻는 여러 가지 공양 거리도 애를 써야만 얻을 수 있다. 나는 의복을 위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범행을 닦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배우는 도에 있어서 구하고 원하는 법을 반드시 성취하여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섬김과 공양을 받으리라.’”
이때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4대는 음식을 의지해야 존재할 수 있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의지하며, 모든 선한 법은 마음을 의지해 생긴다’고 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또 그 비구는 촌락을 의지해 살면서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의복과 음식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선한 법을 일으킬 수 있기에 멀리 떠나지 말고 그 마을에서 살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의복ㆍ음식ㆍ침구ㆍ병에 맞는 의약품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만일 어떤 비구가 네 가지 공양에만 전념하고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의지한 것들이 곧 괴로움이 된다. 그러나 만일 만족할 줄을 아는 마음을 내고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 기뻐할 것이다. 비구라면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런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비구라면 마땅히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아야 함을 명심해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바라촌(婆羅村)으로 들어가셨다. 이때 악마 파순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사문이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하려고 한다. 내 이제 방편을 써서 저 마을의 남녀들이 그에게 밥을 주지 않게 하리라.’ 악마 파순은 곧 온 나라 사람들에게 “저 사문 구담에게는 음식을 주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악마 파순이 세존께 다가와 말하였다. “사문이여, 걸식에서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했구나.”
018_0625_a_03L是時,弊魔波旬至如來所,問佛言:“沙門乞食,竟不得乎?”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악마가 수작을 부려 밥을 얻지 못하게 하였다. 너도 오래지 않아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악마야, 이제 내 말을 들어보아라. 옛날 현겁(賢劫)동안에 구루손(拘樓孫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계셔 이 세상에 출현하셨느니라. 그때 그분 역시 이 마을을 의지해 40만 대중을 거느리고 머물고 계셨다. 이때 악마 파순(波旬)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이제 방편을 구해 저 사문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리라.’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이 바라촌 사람들과 약속해 저 사문이 밥을 얻지 못하게 하리라.’ 이때 성중(聖衆)들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그러나 비구들은 마침내 밥을 얻지 못하고 마을에서 도로 나왔다.
018_0625_b_02L그때 그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묘한 법을 설하리라. 대개 음식을 관찰해보면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인간이 먹는 4식(食)과 세간을 벗어난 이들이 먹는 5식(食)이다. 인간이 먹는 4식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단식(揣食),4) 둘째는 갱락식(更樂識),5) 셋째는 염식(念食),6) 넷째는 식식(識食)7)이니, 이것이 세간의 4식이니라. 어떤 것이 세간 밖으로 벗어난 이들이 먹는 5식인가? 첫째는 선식(禪食), 둘째는 원식(願食, 셋째는 염식(念食), 넷째는 8해탈식(解脫食), 다섯째는 희식(喜食)이니, 이것이 5식이니라. 비구들아, 이와 같은 5식은 세상 밖으로 벗어난 이들이 먹는다. 부디 전념하여 4식(食)을 버리고, 방편을 구해 5식(食)을 마련하도록 하라. 비구들아,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때 비구들은 그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곧 스스로 수행하여 5식을 성취하였다. 그래서 악마 파순도 그 틈을 노리지 못하였다.
이때 악마 파순은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이 사문에게 방편을 쓸 수가 없다. 이제는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口]ㆍ몸[身]ㆍ뜻[意]의 틈을 노리리라. 나는 이제 저 마을에 머물며 마을 사람들을 시켜, 이양(利養)을 구하던 사문들이 이양을 얻게 하고 이미 이양을 얻었던 이들은 더욱 많이 얻게 하리라. 그리고 그 비구들로 하여금 이양에 탐착(貪着)하여 잠깐도 버리지 않고, 또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따라 방편을 얻고 싶어 하도록 하리라.’
이때 그 부처님의 성문들은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그때 바라촌 사람들은 비구들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병에 맞는 의약품 등을 공급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고, 모두들 나와 승가리를 붙잡고 억지로 물건을 주었다. 이때 그 부처님은 성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양이란 사람을 나쁜 곳에 떨어뜨리고 함이 없는 곳[無爲之處]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희 비구들은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것으로 향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양에 집착하는 비구가 있다면 그는 다섯 가지 법신(法身)을 이루지 못하고 계의 덕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이양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그것을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겼거든 곧 없애도록 하라.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이때 악마 파순은 곧 몸을 숨기고 떠났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널리 펴라.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면 온갖 성내는 마음은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비구들아, 내가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리라. 옛날에 아주 사나운 귀신이 찾아와 석제환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삼십삼천들은 크게 성을 내며 ‘무슨 일로 이 귀신이 우리 주인 자리에 앉는단 말인가’고 하였다. 여러 하늘들이 성을 내면 낼수록 그 귀신은 더욱 단정하였고 얼굴은 보통 때보다 훌륭한 모습이 되었다. 그때 석제환인은 보집강당(普集講堂)에서 미녀들과 즐기고 있었다. 이때 어떤 천자가 석제환인에게 가서 아뢰었다. ‘구익(瞿翼)이여, 아소서. 지금 어떤 못된 귀신이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삼십삼천들은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하늘들이 성을 내면 낼수록 그 귀신은 더욱 단정하였고 얼굴은 보통 때보다 훌륭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석제환인은 생각하였다. ‘그 귀신은 틀림없이 신묘한 귀신이다.’
그는 귀신이 있는 곳으로 가 멀지 않은 곳에서 자기 이름을 밝혔다. ‘나는 모든 하늘의 주인인 석제환인이다.’ 석제환인이 자기 이름을 밝히자 그 못된 귀신은 곧 추한 몸으로 변하였고 얼굴도 미워졌다. 그리고 그 귀신은 이내 사라졌다. 비구들아,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자애로운 마음을 쓰며 버리지 않으면 그 덕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느니라.
018_0626_a_02L또 비구들아, 나는 옛날에 7년 동안 늘 자애로운 마음을 닦았었다. 그래서 일곱 번의 성겁(成劫)ㆍ패겁(敗劫)을 거치면서도 생ㆍ사에 왕래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겁이 무너지려 할 때에는 바로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났고, 겁이 시작되려 할 때에는 바로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났었다. 혹은 범천이 되어 여러 하늘들을 거느리고 1만 세계를 거느리기도 했고, 또 서른일곱 차례나 석제환인이 되고 수 없이 전륜성왕이 되었다. 비구들아,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자애로운 마음을 쓰면 그 덕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자애로운 마음을 쓰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범천에 태어나고, 세 갈래 나쁜 세계를 떠나며, 여덟 가지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다. 또 자애로운 마음을 쓰면 중심에 있는 바른 나라에 태어날 것이다. 또 자애로운 마음을 쓰면 얼굴이 단정하고 모든 감각기관이 온전하여 형체가 완전히 갖추어질 것이다. 또 자애로운 마음을 쓰면 여래를 직접 보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게 될 것이며,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하는 이는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는 사문의 법을 닦고 위없는 범행을 닦게 될 것이다.
비구들아, 알아야 한다. 마치 저 금강(金剛)을 사람이 삼키면 그것은 끝내 소화되지 않고 반드시 아래로 나오게 되는 것처럼, 자애로운 마음을 닦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게 되면 반드시 도인이 되어 위없는 범행을 닦아 ‘삶과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알 것이다.”
아난은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그가 스스로 범행과 3승(乘)의 행을 닦는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로 나아가게 됩니까?”
018_0626_a_22L是時,阿難白佛言:“云何世尊,彼人自修梵行、三乘之行,彼人何所趣向?”
018_0626_b_02L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나는 항상 3승의 행을 말한다. 과거와 미래를 비롯한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모두 3승의 법을 말한다. 아난아, 알아야 한다. 어떤 때가 되면 중생들의 얼굴과 수명은 갈수록 못해지고, 몸이 쇠약해지고 위신이 없어지며, 온갖 성냄ㆍ질투ㆍ어리석음ㆍ간사함ㆍ거짓ㆍ의혹이 많아지고 소행이 진실하지 않게 되리라. 혹 근기가 날카롭고 빠른 자가 있다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다투고 서로 싸우면서 주먹이나 기왓장,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서로를 해칠 것이다. 그때의 중생들은 풀을 잡아도 곧 칼이 되어 그들의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 중에서 자애로운 마음을 행하는 중생들은 성냄 없이 그런 변괴를 보다가, 모두들 곧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들 그 나쁜 곳을 버리고 달아나 산이나 들에서 살면서, 스스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위없는 범행을 닦으며 자기를 극복할 것이다. 그래서 번뇌가 있는 마음을 없애고 해탈을 얻어 곧 번뇌 없는 경지에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끼리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이겼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을 가장 훌륭한 자들이라 하느니라.”
그때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들은 어느 부류에 속합니까? 즉 성문의 부류입니까, 벽지불의 부류입니까, 부처의 부류입니까?”
018_0626_b_15L是時,阿難復白佛言:“彼人爲在何部?聲聞部,辟支部,爲佛部耶?”
018_0626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을 바로 벽지불의 부류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온갖 공덕을 짓고 온갖 선(善)의 근본을 행하며, 청정한 네 가지 진리를 닦고 모든 법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선한 법을 행한다는 것은 바로 자애로운 마음이다. 왜냐하면 어짊을 실행하고 자애로움을 행하면 그 덕은 넓고 크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에 이 자애로움과 어짊의 갑옷을 입고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 받았고, 나무 밑에 앉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였다.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자애로움이 가장 제일이고, 자애로움이 가장 훌륭한 법임을 알 수 있느니라. 아난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자애로운 마음을 쓴다는 것은 그 덕이 이와 같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니 부디 방편을 구해 자애로운 마음을 닦도록 하라. 아난아,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불아. 공삼매에서 노닐 수 있다니. 무엇 때문인가? 모든 허공삼매(虛空三昧)가 가장 제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비구가 공삼매에서 노닌다면 그는 ‘나[吾我]’와 ‘사람[人]’과 ‘수명(壽命)’이라는 것이 없음을 알고 또 ‘중생(衆生’을 보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모든 행의 본말을 보지 않을 것이고, 이미 보지 않으므로 행의 근본을 짓지 않으며, 이미 행이 없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몸을 받는 일이 이미 없어졌으므로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를 다시는 받지 않느니라.
018_0627_a_02L사리불아, 알아야 한다. 나는 옛날 불도를 이루기 전에 나무 밑에 앉아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 중생들이 어떤 법을 얻지 못해 생ㆍ사에 흘러 다니면서 해탈을 얻지 못하는가?’ 이때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공삼매가 없으면 곧 생ㆍ사에 떠다니게 되고 끝내 해탈에 이르지 못한다. 이 공삼매가 있더라도 중생들이 그것을 닦지 않으면, 중생들은 집착하는 생각을 내게 되고 세상이란 생각을 일으킨 뒤에는 곧 생ㆍ사의 흐름을 받게 된다. 만일 이 공삼매를 얻고 또 원하는 것이 없게 되면 곧 무원삼매(無願三昧)를 얻게 될 것이며, 무원삼매를 얻어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하지 않고 전혀 아무 상(相)도 없을 때, 그 행자는 다시 무상삼매(無想三昧:無相三昧)를 얻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중생들은 다 삼매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ㆍ사에 흘러 다니는 것이다. 모든 법을 관찰하면 곧 공삼매를 얻을 것이요, 공삼매를 얻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10)를 이룰 것이다.’ 나는 그때 공삼매를 얻고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보리수를 관찰하면서 눈도 깜짝인 일이 없었다. 사리불아,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공삼매가 모든 삼매 중에서 가장 제일의 삼매임을 알 수 있다. 왕삼매(王三昧)란 바로 공삼매이다. 그러므로 사리불아, 부디 방편을 구해 공삼매를 갖추도록 하라. 사리불아,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때 라열성에 시리굴(尸利掘)11)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아 금ㆍ은 등의 보배와 자거ㆍ마노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또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멀리 하고 외도 니건자(尼乾子)만을 섬기며, 국왕ㆍ대신들과 모두 친한 사이였다. 이때 외도 범지들과 니건자의 신도와 제자들은 스스로 불법을 비방하며 ‘내가 있고, 내 몸이 있다’고들 말하였다. 아울러 육사외도의 무리들도 모두 함께 모여 이렇게 의논하였다. “지금 저 사문은 일체지(一切智)가 있어 모르는 일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양을 얻지 못하는데 저 사문은 많은 이양을 얻는다. 그러니 방법을 써서 이양을 얻지 못하게 해야 마땅하다. 우리 저 시리굴 장자 집으로 가서 그 장자에게 방도를 세우게 하자.”
018_0627_b_02L이때 외도 범지 니건자와 그 육사외도들은 시리굴 장자 집으로 찾아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대성(大姓)은 아시오. 당신은 범천의 소생인 범천자로서 세상에 많은 이익을 주었소. 당신은 우리를 가엾이 여겨, 저 사문 구담을 찾아가 그 사문과 비구들을 청해 집으로 와서 제사를 지내시오. 그리고 또 명령하여 집안에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불을 붙여 두고 음식에는 독을 넣어 그들을 초청해 먹게 하시오. 만일 사문 구담이 일체지가 있어 3세의 일을 안다면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요, 만일 일체지가 없다면 곧 청을 받아들여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가 모두 불에 탈 것이오. 만일 그가 하늘 사람이라면 불의 피해를 입지 않고 안온할 수 있을 것이오.”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속 생각을 알면서도 잠자코 청을 받아 주셨다. 이때 시리굴은 여래께서 잠자코 청을 받아 주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이내 물러갔다. 그는 도중에서 생각하였다. ‘우리 육사외도들의 말씀은 참으로 진실하구나. 저 사문은 내 마음속 생각을 알지 못하니 반드시 큰불에 탈 것이다.’ 이때 시리굴은 집으로 돌아와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불을 활활 피워 두도록 명령하고, 또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모두 독을 넣어 두도록 명령하였다. 또 문밖에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큰불을 피우고는 그 불 위에 자리를 깔고 음식마다 지독한 독을 넣어 두고 세존께 때가 왔음을 아뢰었다.
018_0627_c_02L그때 세존께서는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비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그의 집으로 떠나셨다. 그리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나보다 먼저 앞서 가지 말고, 또 나보다 앞서 먼저 앉지 말며, 또 나보다 먼저 음식을 먹지 말라.”
이때 라열성 사람들은 시리굴이 큰 불구덩이를 만들고 음식에 독을 넣어 부처님과 비구 스님과 네 무리들12)을 초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울면서 ‘장차 여래와 비구 스님을 해치려는 것이 아닌가’고 하였다. 또 어떤 이는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그 장자의 집에 가시지 마소서. 그는 큰 불구덩이를 만들고 독이 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여래는 결코 남의 해침을 받지 않는다. 이 염부제 안의 불이 범천까지 치솟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나를 태우지 못하거늘 하물며 조그만 불이 여래를 해칠 수 있겠느냐? 끝내 그럴 리 없느니라. 우바새야, 알아야 한다. 내게는 조금도 해칠 마음이 없느니라.”
018_0628_a_02L그때 세존께서 막 발을 들어 문턱 위에 놓자 그 불구덩이는 저절로 목욕하는 연못으로 변했는데, 매우 맑고 시원하며 온갖 꽃이 그 가운데 피어 있었고 또 수레바퀴만한 크기에 줄기는 7보로 된 연꽃이 피어 있었으며, 또 다른 연꽃들이 피어 꿀벌들이 그 안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석제환인과 범천왕ㆍ사천왕ㆍ건답화(乾沓惒:건달바)ㆍ아수륜 및 여러 열차(閱叉)ㆍ귀신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을 보고 제각기 경사라 외치며 모두 같은 소리로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훌륭한 이들 중에서도 제일이시라.’
그때 그 장자의 집에는 여러 외도 이학들이 모여 있었다. 우바새와 우바이들은 여래의 신통을 보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 몰랐고, 외도 이학들은 여래의 신통을 보고 모두 근심에 잠겼으며, 허공의 모든 천신(天神)들은 갖가지 이름난 꽃들을 여래 위에 흩뿌렸다. 그때 세존께서는 땅에서 네 치쯤 떠서 허공을 밟고 장자의 집에 이르셨는데, 여래께서 발을 디디는 곳마다 곧 수레바퀴만한 연꽃이 피어났다.
018_0628_b_02L이때 시리굴은 여래의 이러한 신통을 보고 생각하였다. ‘내가 저 외도 이학들에게 속아 인간의 행(行)을 잃고 또 하늘 길도 영원히 잃었구나. 내 마음이 마치 독약을 먹은 것처럼 심란하니 반드시 세 갈래 나쁜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진실로 이런 여래는 만나기 어렵다.’ 이렇게 깨닫고는 곧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의 참회를 들으소서.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미래를 닦겠습니다. 저는 스스로 죄인 줄 알면서 여래를 괴롭혔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의 참회를 받아 주소서.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야, 허물을 고치고 본래의 뜻을 버리고는 여래를 괴롭혔다는 것을 능히 스스로 아는구나. 성현의 법은 매우 넓고 크다. 너의 참회를 허락하고 법에 따라 용서한다. 내 이제 너의 참회를 받아 주니 다시는 범하지 말라.”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셨다.
그때 아사세왕은 시리굴 장자가 큰 불구덩이와 독이 든 음식을 준비해 여래를 해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염부제 안에서 그 사람처럼 시리굴이란 이름을 가진 자는 기필코 모두 없애버리리라.” 아사세왕은 또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왕관을 벗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여래를 불태우고 또 비구승들을 모두 불태웠다고 하는구나. 너희들은 빨리 장자 집으로 가 여래를 돌보라.”
그때 기바가(耆婆伽) 왕자가 아사세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시고 또 그런 나쁜 생각도 내지 마소서. 왜냐하면 여래께선 결코 남의 해침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리굴 장자는 여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도 지금 가서 그 신통을 보소서.”
018_0628_c_02L이때 아사세왕은 기바가의 깨우침을 받고는 설산의 큰 코끼리를 타고 곧바로 시리굴 장자의 집으로 갔고, 코끼리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 집 문 밖에는 사람들이 8만 4천 명이나 모여 있었다. 왕은 크기가 수레바퀴만한 연꽃을 보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온갖 악마에게 늘 승리하시기를.” 왕은 기바가 왕자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기바가야. 너는 여래의 이러한 힘을 믿었구나.” 이때 아사세왕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아사세왕은 여래 입에서 광명이 나오는 것을 보고, 또 여래의 안색이 특별하심을 두루 살펴보고는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018_0629_a_02L이때 장자는 손수 갖가지 음식을 올려 부처님과 비구 스님을 공양하였다.
그때 시리굴 장자는 여래께서 공양을 마치시는 것을 보고는 발우를 치우고 다시 작은 자리를 가지고 와서 여래 앞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장자와 8만 4천 대중을 위해 미묘한 논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논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한 논이요, ‘탐욕은 더러운 것이요 음행은 큰 재앙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즐거움이다’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그 장자와 8만 4천 대중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다시는 번뇌가 없게 된 것을 보시고, 모든 불세존들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법, 즉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발생[集]과 괴로움의 소멸[盡]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8만 4천 대중에게 모두 말씀하시고, 그 행을 자세히 분별하셨다.
그때 대중들은 곧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안이 깨끗해졌으니, 마치 새 옷은 색이 쉽게 물이 들듯, 그 대중들도 그와 같아서 제각기 그 자리에서 도의 자취를 보았다. 법을 보고 법을 얻어 모든 법을 분별하고는 온갖 의심을 건너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는 다른 스승을 섬기지 않고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스스로 귀의하여 5계를 받았다.
그때 시리굴 장자는 스스로 도의 자취를 얻은 줄을 알고 세존께 나아가 아뢰었다. “차라리 여래에게 독을 베풀어 큰 과보를 얻을지언정 다른 외도 이학들에게 감로를 주어 다시 그 죄를 받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독이든 음식으로 부처님과 비구 스님을 청하고도 현세에서 이런 증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에 저 외도들에게 홀려 여래에게 그런 나쁜 마음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외도 이학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치우친 길에 떨어질 것입니다.”
018_0629_b_02L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는 늘 그 외도들을 공양해왔기 때문이다. 축생에게 음식을 베풀어도 그 복을 헤아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이겠느냐? 만일 어떤 외도 이학이 너에게 ‘시리굴 그대는 누구의 제자인가’라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