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세로와 너비가 1유순이나 되고 높이도 1유순이나 되는 큰 돌산이 있는데, 가령 어떤 사람이 하늘 옷을 들고 1백 년에 한 번씩 와서 스칠 때, 그 돌은 오히려 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겁수(劫數)는 한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왜냐하면 겁수는 길고 멀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겁이 1겁이나 1백 겁만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생사(生死)는 길고 멀어 한량(限量)할 수도 없고 끝도 없는데, 중생들은 무명(無明)에 덮여 생사에 유랑(流浪)하면서 벗어날 기약이 없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면서 끝날 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가운데에서 생사를 싫어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이와 같나니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애착의 생각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018_0700_c_02L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시로 법을 들으면 다섯 가지 공덕(功德)이 있어 항상 때를 잃지 않는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공덕인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법을 곧 듣게 되는 것, 이미 들은 것은 받들어 가지게 되는 것, 의심을 제거해 없애는 것, 삿된 소견이 없어지는 것, 매우 깊은 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수시로 법을 들으면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부디 잘 기억하여 항상 매우 깊은 법을 듣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곧 나의 가르침이다.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또 사자야, 시주 단월이 보시할 때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그 기뻐하는 마음 때문에 곧 즐거움이 있어서 그 뜻이 견고해진다. 그때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음을 깨달아도 마음이 변하여 후회하지 않고 어떤 이치를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어떤 것이 이치를 스스로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즉 괴로움에 대한 진리와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를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라.”
“또 사자 장자야, 시주 단월은 보시를 할 때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 태어나고,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어 다른 모든 하늘들보다 뛰어나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얼굴의 아름다움과 호귀(豪貴)한 집안에 태어남과 위신(威神)과 광명(光明)이요, 둘째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되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단월 시주로서 인간에 태어나면 부귀(富貴)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요, 넷째는 재물이 풍족하고 보배가 많은 것이며, 다섯째는 말대로 순종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사자야, 이것을 일러 단월에게 이런 다섯 가지 공덕이 있어 선한 길로 인도해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러자 세존께서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그때 사자 대장은 이미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아들이심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온갖 음식을 장만하고 좋은 자리를 펴고 곧 가서 아뢰었다.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원컨대 대성(大聖)께서는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왕림해 주소서.”
018_0701_b_02L그때 세존께서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모든 비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대장의 집에 이르러 각각 차례대로 앉았다. 그때 사자 장군(將軍)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차례로 앉으신 것을 보고, 손수 장만해 두었던 갖가지 음식을 돌렸다. 그때 대장이 음식을 돌리자 모든 하늘들이 허공에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아라한(阿羅漢)입니다. 이 사람은 아라한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보시하면 많은 복을 얻을 것이요, 이 사람에게 보시하면 적은 복을 얻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나함(阿那含)입니다. 이 사람은 아나함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다함(斯陀含)입니다. 이 사람은 사다함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수다원(須陀洹)입니다. 이 사람은 수다원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7생(生)이나 천상과 인간을 오는 간 사람이요, 이 사람은 1생을 오고 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이 사람은 법을 받드는 사람이며, 이 사람은 근기가 영리한 사람이고, 이 사람은 근기가 둔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비천(卑賤)한 사람이고, 이 사람은 정진(精進)하면서 계(戒)를 지키는 사람이며, 이 사람은 계를 범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보시하면 복을 많이 얻고 이 사람에게 보시하면 복을 적게 얻습니다.”
그때 사자 대장은 모든 하늘들의 말을 들었으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여래께서 공양을 마치시자, 그는 발우를 치운 뒤에 따로 작은 자리를 가져다가 여래의 앞에 앉았다. 그때 사자 대장이 세존께 아뢰었다. “아까 하늘들이 제게 와서 ‘이 사람은 아라한이고……(이하 생략) ……이 사람은 계율을 범한 사람입니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래에게 모두 자세히 아뢰고 나서 여래께 아뢰었다. “저는 비록 그런 말을 들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이 사람은 버려두고 저 사람에게만 보시하자. 저 사람은 버려두고 이 사람에게만 보시하자.’ 그리고 또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일체 중생들에게 마땅히 다 보시하여야 한다. 형상이 있는 중생들은 모두 음식을 먹어야 살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저는 직접 여래로부터 이런 게송을 듣고는 항상 마음에 두어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게송인가?
보시는 마땅히 널리 평등하게 하여 마침내 거스름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성현(聖賢)을 만나 그것으로 인연하여 해탈하게 되리라.
세존이시여, 이것이 이른바 그 게송을 제가 직접 여래께 듣고 나서 언제나 기억하여 받들어 실천하는 것입니다.”
018_0701_b_21L是謂世尊斯偈所說,我躬從如來聞之,恒念奉行。”
018_0701_c_02L세존께서 대장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이것을 일러 보살 마음의 평등한 보시라고 한다. 만일 보살이 보시한다면 그 역시 ‘나는 이 사람에게는 보시하고 저 사람에게는 보시하지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평등하게 보시할 것이다.
또 ‘일체 중생은 먹을 것이 있어야 살고 음식이 없으면 죽는다’라고 생각할 것이니라.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는 역시 이런 업(業)을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을 것이다.
대개 사람은 그 행을 닦을 때 악(惡)도 행하고 또 선(善)도 행하지만 그들은 제각기 그 과보(果報)를 받나니 그 행은 끝내 멸하지 않느니라.
사람들이 만일 그 행을 찾아보면 그 과보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나니 선을 행하면 선의 과보를 받고 악을 지으면 악의 과보를 받는다.
018_0701_c_07L如人尋其行, 卽受其果報,
爲善獲其善, 作惡受惡報。
악을 행하거나 선을 행하거나 그 사람이 익힌 대로 따르나니 마치 5곡의 종자를 심어 제각기 그 열매 거두는 것과 같네.
018_0701_c_08L爲惡及其善,
隨人之所習, 如似種五穀, 各獲其果實。
사자 대장아, 마땅히 이러한 방편을 보아도 선과 악은 각각 그 행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뜻을 세울 때부터 도(道)의 마음을 이룰 때까지 그 마음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어, 사람을 선택(選擇)한다거나 또는 그 지위를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사자야, 만일 보시를 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평등이 할 것을 생각하고 옳으니 그르니 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사자야,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018_0702_a_02L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디에 보시를 해야 큰 공덕을 얻습니까?”
018_0702_a_02L王復白佛:“爲施何處,得大功德?”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왕께서는 아까는 ‘어디에 보시해야 하느냐?’고 묻더니, 이제는 또 ‘복을 얻는 공덕’을 물으시는군요.”
018_0702_a_03L佛告王曰:“汝所問當施何處?今復問獲福功德?”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여래께 ‘어디에 보시해야 그 공덕을 얻는가?’ 하고 여쭌 것이었습니다.”
018_0702_a_04L王白佛言:“我今問如來爲施何處,獲其功德?”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다시 물을 터이니 왕은 마음대로 대답하십시오. 어떻습니까? 대왕이시여, 만일 어떤 찰리의 아들이나 바라문의 아들이 찾아왔는데, 그들은 모두 어리석고 미혹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마음이 착란(錯亂)하여 항상 일정하지 않다고 합시다. 그런 그들이 왕에게 찾아와서 ‘저희들은 마땅히 성왕(聖王)을 공경하고 받들어 수시로 필요한 것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대왕은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여 좌우에 두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어떻습니까? 대왕이시여, 만일 찰리 종족이나 바라문 종족이 온갖 방편이 많고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함이 없으며, 또 무서워하지 않아 능히 외적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들이 왕에게 찾아와 ‘저희들이 항상 성왕을 보살펴 받들겠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은혜를 베풀어 받아들여 주소서’라고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대왕은 그들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비구가 다섯을 버리고 여섯을 성취한 것이며, 하나를 보호하고 넷을 항복 받은 것입니까?”
018_0702_a_22L王白佛言:“云何比丘捨五,成六,護一,降四?”
018_0702_b_02L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비구가 탐욕의 덮개[貪欲蓋]ㆍ성냄의 덮개[瞋恚蓋]ㆍ수면의 덮개[睡眠蓋]ㆍ들뜸의 덮개[掉戱蓋]ㆍ의심의 덮개[疑蓋]4)를 버렸으면, 그런 비구를 다섯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비구가 여섯을 성취한 것인가? 왕은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만일 비구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서도 빛깔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그로 말미암아 안근(眼根)을 보호하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 안근을 보호하며, 또 귀ㆍ코ㆍ혀ㆍ몸도 그러하며 뜻도 의식을 일으키지 않아 의근(意根)을 보호하면, 그런 비구를 여섯을 성취한 비구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비구가 하나를 보호하는 것인가? 비구가 생각을 매어 앞에 두면 이와 같은 비구를 하나를 보호하는 비구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비구가 넷을 항복 받은 것인가? 비구가 몸이라는 마[身魔]를 항복 받고, 탐욕이라는 마[貪欲魔]ㆍ죽음이라는 마[死魔]ㆍ천사의 마왕[天魔]를 모두 다 항복 받으면, 이와 같은 비구를 넷을 항복 받은 비구라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이런 것을 ‘다섯을 버리고 여섯을 성취하였으며, 하나를 보호하고 넷을 항복 받았다’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에게 보시하면 한량없이 많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삿된 소견은 치우친 소견과 서로 호응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은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때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비구가 한 법만 성취했어도 그 복은 오히려 헤아리기 어렵겠거늘 하물며 여럿을 다 성취한 사람이겠습니까?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니건자(尼乾子)는 항상 몸의 행과 뜻의 행만 헤아리고[計身行意行] 입의 행은 생각하지 않기[不計口行]5)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니건자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뜻이 항상 착란하고 마음도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스승의 법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대개 몸이 행한 과보와 입이 행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뜻이 행한 과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세 가지 행(行)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합니까?몸의 행입니까, 입의 행입니까, 뜻의 행입니까?”
018_0702_b_20L王白佛言:“此三行中,何者最重?身行耶,口行耶,意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 가지 행 가운데 뜻의 행이 가장 중합니다. 입의 행과 몸의 행은 말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018_0702_b_22L佛告王曰:“此三行中,意行最重,口行、身行,蓋不足言。”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因緣)으로 뜻의 행이 가장 중하다고 하십니까?”
018_0702_b_23L王白佛言:“復何因緣故,說念意最爲第一?”
018_0702_c_02L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개 사람의 소행은 먼저 뜻으로 생각한 뒤에 입으로 말하고, 입으로 말하고 나면 곧 몸으로 살생ㆍ도둑질ㆍ음행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설근(舌根)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또한 단서(端緖)도 없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더라도 신근(身根)과 설근(舌根)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그 사람은 무슨 까닭에 몸으로 행하지 못하고 입으로 말하지 못합니까?”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나니 마음이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부린다. 그 마음속에 선을 생각하여 곧 그대로 실행하게 되면 거기에서 선의 과보 받는데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네.
018_0702_c_10L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善,
卽行卽爲, 受其善報, 如影隨形。
그때 바사닉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악을 지은 사람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그 행을 따라 나쁜 세계에 떨어지게 됩니다.”
018_0702_c_12L爾時,波斯匿王白世尊言:“如是如來,爲惡之人身行惡,隨行,墮惡趣?”
부처님께서 왕에게 물으셨다. “왕께서는 어떤 이치를 관찰하였기에 나에게 와서 묻기를 ‘어떤 사람에게 보시해야 복을 더 많이 받습니까?’ 하고 물었습니까?”
018_0702_c_14L佛告王言:“汝爲觀何等義,而來問我,爲施何人,獲福益多?”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옛날 니건자의 처소에 이르러서 그에게 묻기를 ‘어떤 곳에 보시해야 합니까?’ 하였더니, 니건자는 내 질문을 듣고 나서 다른 일만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니건자가 나에게 말하기를 ‘사문 구담(瞿曇)은 〈나에게 보시하면 복(福)을 많이 받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복이 없다. 그러니 마땅히 내 제자에게만 보시하라. 그러면 그 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018_0703_a_02L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혹 그런 이치가 있다면 여래에게 보시할 때 그 복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여래께 ‘어디에 보시하면 그 복을 헤아리기 어렵습니까?’ 하고 여쭙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존께서는 칭찬도 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사람을 헐뜯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입으로 ‘내게 보시하면 복을 많이 얻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복을 얻지 못한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발우에 남은 것을 가지고 남에게 주면 그 복은 헤아리기 어렵다. 청정한 마음으로 깨끗한 물에 던지면서 널리 그렇게 생각하면 그 가운데 살고 있는 형상이 있는 중생들도 한량없는 복을 받겠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대왕이여, 다만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계를 지키는 이에게 보시하면 그 복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지만, 계를 범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은 말할 것이 못 된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마치 저 농부가 농지를 잘 다스리고 잡초를 없앤 뒤에 좋은 종자를 가져다가 좋은 밭에 뿌리면 거기서 얻는 수확이 한량없이 많겠지만, 만일 그 농부가 땅을 잘 다스리지 않고 잡초들도 없애지 않고서 곡식 종자를 뿌리면 그 수확은 말할 게 못 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지금 비구들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만일 비구가 다섯 가지를 버리고 여섯 가지를 성취하며, 한 가지를 보호하고 네 가지를 항복 받았다면, 그런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또 대왕이시여,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찰리 종족이나 바라문 종족이 뜻에 의심이 없고 외적을 항복 받는 경우와 같은 것이니, 그런 사람은 마땅히 아라한과 같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그 바라문 종족이 마음이 전일하고 안정되지 못하거든 마땅히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처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바사닉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계(戒)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을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부터는 그런 사문이 찾아와서 구하는 것이 있으면 결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사부대중이 와서 요구하는 것이 있더라도 절대로 거절하지 않고 수시로 의복ㆍ음식ㆍ침구 등을 역시 공급해 줄 것이며, 또 여러 범행(梵行)을 닦는 사람들에게도 보시하겠습니다.”
018_0703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 마십시오. 왜냐하면 축생(畜生)들에게 보시하여도 그 복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다만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계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이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것이고, 계를 범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거듭 다시 한 번 세존께 귀의하나이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처럼 은근(殷勤)하신 데가 있으십니다. 저 외도(外道) 이학(異學)들은 서로들 항상 세존을 비방하는데도 세존께서는 항상 저들을 찬탄하고 칭찬하시며, 저 외도 이학들은 이양(利養)에만 탐착(貪着)하는데 또 여래께서는 이양에 탐착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나라 일이 너무 많아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그 서모(庶母)의 아들 1백 명을 죽이고 곧 후회하였다. ‘나는 매우 많은 악(惡)의 근원을 지었는데, 또 이런 버릇으로 왕위를 위해 사람을 1백 명이나 죽였다. 누가 내 이 근심을 덜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바사닉왕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오직 세존만이 능히 내 근심을 덜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왕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이런 근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잠자코 세존께 찾아가되, 왕의 위엄을 차리고 세존께 가야 한다.’ 그때 바사닉왕은 많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보배 깃털 수레를 준비시켜라. 예전 왕의 법과 같이 사위성(舍衛城)을 나가 직접 여래를 뵈올 것이다.”
모든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나서 곧 보배 깃털로 장식한 수레를 준비하고 곧 왕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수레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왕이시여, 때를 알아서 하소서.”
018_0703_b_20L群臣聞王教已,卽時嚴駕羽寶之車,卽來白王言:“嚴駕已訖,王知是時。”
018_0703_c_02L그러자 바사닉왕은 곧 보배 깃털 수레를 타고는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휘날렸으며, 종자(從者)들에겐 모두 갑옷을 입혔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사위성을 나가 기원(祇洹)에 이르러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전 왕의 법과 같이 다섯 가지 위의(威儀)를 버렸으니, 즉 일산[蓋]ㆍ하늘 갓[天冠]ㆍ총채[拂]ㆍ칼[劍]ㆍ가죽신[履屣] 등을 모두 다 버리고 세존 앞에 나아가 머리를 땅에 대고, 다시 손으로 여래의 발을 어루만지면서 모두 다 고백하며 아뢰었다. “저는 지금 참회하나이다.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닦겠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여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왕의 위력을 이용하여 서모의 아들 1백 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와서 스스로 후회하고 있사오니 부디 바라옵건대 받아 주소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합니다. 대왕이시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십시오. 지금 법을 설하겠습니다.”
018_0703_c_07L佛告王曰:“善哉!大王,還就本位,今當說法。”
바사닉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본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갔다.
018_0703_c_08L波斯匿王卽從坐起,禮世尊足,還詣本位。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목숨은 매우 위태롭고 약한 것입니다. 기껏 살아야 1백 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불과 몇 명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1백 년으로 계산하면 삼십삼천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그 하늘의 낮과 밤을 계산하여 30일을 한 달로 삼고 열두 달을 한 해로 삼으면, 그 삼십삼천의 정수(正壽) 1천 살은 인간의 수명으로 계산하면 10만 년입니다. 또 계산해보면 환활(還活) 지옥의 하루 낮 하루 밤에 해당되는데, 그 지옥의 낮과 밤을 계산하여 30일을 한 달로 삼고 열두 달을 한 해로 삼으면 환활 지옥의 수명은 5천 년이 됩니다. 혹은 거기에서 반 겁(劫)을 살기도 하고, 혹은 1겁을 살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지은 행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혹 그 중에서 중간에 일찍 죽는 이가 있기도 한데, 그것을 계산하면 인간 세상의 수명은 백억 년에 해당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널리 그 행을 수행하기를 생각하는데 또 거기에서 악을 행하겠습니까? 그곳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 그 재앙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왕은 자기 몸이나 부모ㆍ처자ㆍ국토(國土ㆍ백성들로 말미암아 죄업(罪業)을 행하지 말고, 또 왕의 몸을 위하여 죄(罪)의 근본을 짓지 마십시오. 비유하면 마치 석밀(石蜜)이 처음에는 달지만 뒤에는 쓴 것처럼, 이것도 역시 그와 같은데 짧은 일생 동안에 무엇을 하느라 죄를 짓겠습니까?
018_0704_a_02L대왕이시여,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네 가지 큰 두려운 것이 있어서 항상 사람들의 몸을 핍박해오지만 그것은 끝내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또 주술(呪術)이나 전투(戰鬪)나 약초(藥草)로써도 억눌러 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입니다. 마치 네 개의 큰 산(山)이 사방에서 밀려와 각각 서로 부딪치면 나무를 꺾고 부수어 모두 없애는 것처럼, 그 네 가지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생이 올 때에는 부모로 하여금 근심ㆍ걱정ㆍ고통ㆍ번민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겪게 한답니다. 또 늙음이 올 때에는 다시 젊음은 아주 없어지고 몸은 허물어지고 무너지며, 사지와 뼈마디는 차츰 이지러지고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또 병이 오면 젊고 씩씩하던 기력은 없어지고 점점 더 목숨이 촉박해질 것입니다. 또 죽음이 오면 목숨이 끊어져 은혜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5음(陰)은 각각 흩어질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일러 네 가지 크게 무서운 것이 있어 다 자재(自在)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만일 살생을 가까이 한다면 온갖 죄의 근원을 다 받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수명(壽命)이 아주 짧아질 것입니다. 또 사람이 도둑질을 익히면 후생(後生)에는 빈곤(貧困)하여, 옷은 몸을 가리지 못하고 음식은 배를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았기 때문에 그런 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또 사람이 남의 아내와 음행을 즐기면 후생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아내는 정숙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또 사람이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면 후생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말에 신용(信用)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니, 그것은 모두 전생에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사람이 모진 말을 하면 지옥(地獄)에서 죄(罪)를 받고,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안색(顔色)이 추하고 더러울 것이니, 그것은 모두 전생에 모진 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꾸며서 하는 말을 하면 지옥에서 죄를 받고,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여 항상 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전생에 지었던 과보 때문입니다. 또 사람이 이간질하는 말로 이쪽 사람과 저쪽 사람을 싸움 붙이면 지옥에서 그 죄를 받을 것이요,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여 항상 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전생에 피차(彼此)간에 싸움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018_0704_b_02L또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기를 좋아하면 지옥에서 죄를 받을 것이요,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을 것이니, 모두가 전생에 행한 근본 때문이랍니다.
또 사람이 모략을 써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내면 지옥에서 죄를 받을 것이요,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뜻이 전일하지도 안정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전생에 이런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이 삿된 소견을 익히면 지옥에서 죄를 받을 것이요,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귀머거리나 장님이나 벙어리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전생에 행한 근본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을 일러 열 가지 악의 과보로 말미암아 이런 재앙[災舋]과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라 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대왕이시여, 부디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법 아닌 것[非法]을 쓰지 마십시오. 또 이치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이치 아닌 것은 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온갖 바른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 모두 천상(天上)에 태어날 것이요, 가령 또 대왕이 목숨을 마친 뒤라도 백성들은 기억하고 추모하며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이요, 이름이 멀리 퍼질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법 아닌 것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죽은 뒤에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그때 옥졸(獄卒)들은 다섯 묶음으로 얽어맬 것이며 거기에서 받는 고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혹은 때리기도 하고 혹은 결박하기도 하며, 혹은 종아리를 치기도 하고 혹은 사지를 가르기도 하며, 혹은 불로 지지기도 하고 혹은 끓는 구리쇠 물을 그 몸에 붓기도 하며, 혹은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혹은 풀을 뱃속에 넣기도 하며, 혹은 그의 혀를 뽑기도 하고 혹은 그의 몸을 찌르기도 하며, 혹은 톱으로 그 몸을 썰기도 하고 혹은 쇠 절구통에 넣고 찧기도 하며, 혹은 바퀴로 그 얼굴을 갈기도 하고 혹은 칼 산과 칼 나무 위로 달리게 하기도 하여 잠깐도 쉬지 못하게 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구리쇠 기둥을 안게 하기도 하고, 혹은 눈을 뽑아내기도 하고 혹은 귀를 베기도 하며, 혹은 손발을 끊기도 하고 혹은 귀나 코를 베어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다시 돋아나기도 합니다. 온몸을 큰 가마솥에 넣고 또 쇠 가지[鐵叉]로 그 몸을 흔들어대며 잠깐도 그치지 않다가 다시 가마솥에서 꺼내어 등의 힘줄을 뽑아서는 수레를 고치는데 씁니다.
018_0704_c_02L또는 열자(熱炙)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는 열시(熱屎)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며, 또는 자(刺)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는 회(灰)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는 도수(刀樹)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는 반듯하게 눕히고 뜨거운 쇠 구슬을 먹이면 창자와 밥통 등 5장(藏)이 모두 다 문드러지면서 쇠 구슬이 밑으로 내려가며, 또 끓는 구리쇠 물을 입에 부어 밑으로 내려가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 가운데에서 받는 고뇌(苦惱)는 반드시 그 죄가 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중생들이 지옥에 들어가는 상황은 이러한데, 그것은 모두 전생에 바르지 않은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법으로 다스려 교화(敎化)하면 자기 몸과 부모ㆍ처자ㆍ노비ㆍ친족을 구제할 것이요 또 나라 일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대왕이시여, 항상 마땅히 법으로 다스리며 교화하시고 법이 아닌 것은 쓰지 마십시오. 사람의 목숨은 매우 짧아서 세상에 있는 동안은 잠깐이며, 생사(生死)는 길고 멀어서 온갖 두려움과 어려움이 많습니다. 만일 죽음이 오면 그 가운데서 아무리 울부짖어도 뼈마디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몸은 모두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도 구제할 이가 없을 것이니, 부모ㆍ처자ㆍ노비(奴婢ㆍ복종(僕從)ㆍ국토(國土)ㆍ백성들도 다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을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오직 보시(布施)와 지계(持戒)만이 있을 뿐입니다. 말은 언제나 부드럽게 하여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고, 온갖 많은 공덕을 지어 선(善)한 근본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까닭에 대왕이시여, 지금부터 이후로는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고 법 아닌 것을 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18_0705_a_23L“是故大王,自今已後,當以法治化,莫以非法。如是大王,當作是學。”
018_0705_b_02L그때 바사닉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18_0705_b_02L爾時,波斯匿王聞佛所說,歡喜奉行。
[ 9 ]7) 이와 같이 들었다.
018_0705_b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8_0705_b_0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국왕 바사닉은 밤에 꿈속에서 열 가지 일을 보았다. 왕은 곧 꿈을 깨고 나서 매우 근심하고 무서워하면서, 나라와 자기 몸과 처자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하고 매우 두려워하였다. 이튿날 곧 공경(公卿) 대신(大臣)들과 지혜가 밝은 도사(道士)와 바라문들 중에 꿈 풀이를 잘하는 이를 모두 불러 모았다. 왕은 곧 지난 밤 꿈속에서 본 열 가지 일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누가 잘 해석할 수 있는가?”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것을 물리치는 일은 가능합니다. 지금 태자를 죽이시고 또 왕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대부인(大夫人)과 곁에서 모시는 시자(侍者)ㆍ하인[僕從]ㆍ노비(奴婢)와 중히 여기는 대신을 죽여 천왕(天王)께 제사를 올리고, 왕께서 가지고 계신 침구와 진기한 보물을 모두 불에 살라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소서. 그렇게 하면 왕과 나라는 모두 무사할 것입니다.”
왕은 바라문의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불쾌하게 여겼다. 그리고 재실(齋室)에 들어가 그 일만 생각하였다. 왕에게는 마리(摩利)라고 하는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이 왕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시름에 잠겨 있습니까? 제가 왕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018_0705_c_02L왕은 곧 부인을 위해 지난밤 꿈에서 본 열 가지 일을 말하였다. “첫째는 세 개의 가마솥이 있는데 양쪽 가마솥은 모두 가득 찼고 복판에 있는 가마솥만 비어 있었소. 양쪽 가마솥에는 끓는 기운이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복판에 있는 빈 가마솥에는 들어가지 않았소. 둘째는 말이 입으로 무엇을 먹었고 엉덩이로도 무엇을 먹고 있었소. 셋째는 꿈속에서 큰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소. 넷째는 꿈속에서 작은 나무에 열매가 맺혀있는 것을 보았소. 다섯째는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밧줄을 끌고 가고 그 뒤에 양이 있었는데, 그 양의 주인이 그 밧줄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소. 여섯째는 꿈속에서 여우가 금(金) 평상 위에 앉아서 금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소. 일곱째는 꿈속에서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소. 여덟째는 꿈속에서 검은 소 떼가 사방에서 모여와 울부짖으며 싸우려고 했는데 막 붙으려고 하다가는 붙지 않고 소도 간 곳을 알 수 없는 일을 보았소. 아홉째는 꿈속에서 큰 늪지대에 못물이 있었는데 그 복판은 흐렸고 사방은 맑은 것을 보았소.
열째는 꿈속에서 큰 개울물이 모두 시뻘겋게 흐르는 것을 보았소. 나는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서 ‘혹 나라와 내 몸과 처자와 백성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하여 몹시 두려워하였소. 그래서 공경 대신들과 도인과 바라문 중에 해몽(解夢)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렀던 것이오. 그런데 그때 어떤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소. ‘태자와 사랑하는 부인과 대신과 종들을 죽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시오.’ 그래서 나는 근심하는 것이오.”
부인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런 꿈 때문에 걱정하지 마소서.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금을 샀을 때는 불로 태우거나 또는 돌에다 갈아보면 좋고 나쁜 것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처럼, 지금 부처님께서 저 가까운 기원정사에 계십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보아 부처님께서 해설하시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저 어리석은 바라문의 말을 믿고 이처럼 혼자서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018_0706_a_02L왕은 비로소 깨닫고 기뻐하며 곧 측근 신하들을 불러 수레를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왕은 높은 덮개가 있는 수레를 타고, 말을 탄 시종 수천만 명을 거느리고 사위성을 나가 기원정사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한 뒤에 꿇어앉아 합장하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젯밤 꿈에 열 가지 일을 보았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가엾이 여겨 낱낱이 해설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대왕께서 꾸신 꿈은 장차 다가올 후세의 징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금지하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두 음일(淫泆)하고 아내와 자식에 탐착하며, 마음껏 놀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질투하고 어리석어 제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청렴결백한 이는 버림을 받고 아첨하는 이가 나라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대왕이 꿈속에서 본 ‘세 개의 가마솥이 있는데, 양쪽 가마솥은 가득 찼고 복판에 있는 가마솥은 텅 비어 있으며 양쪽 가마솥의 끓는 기운은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복판에 있는 텅 빈 가마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 것은, 후세 사람들은 모두 빈궁한 이를 구제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며, 형제ㆍ자매와는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따르고 부귀한 사람들을 따르며 저희들끼리 음식을 먹고 나누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첫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또 대왕이 꿈속에서 본 ‘말이 입으로도 무엇을 먹고 엉덩이로도 무엇을 먹는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대신들과 많은 관리들 그리고 고을의 수령들이 나라의 녹도 먹고 또 백성들에게서 뜯어먹어, 부역과 조세가 끊이지 않고 말단 관리[下吏]까지 간사하게 굴어 백성들이 그 고장에서 편히 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왕이 꿈속에서 본 두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018_0706_b_02L또 왕이 꿈속에서 본 ‘한 사람이 밧줄을 끌고 가는데 뒤에 양이 따라가고 그 양의 주인이 밧줄을 먹는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남편이 행상을 나가거나 혹 군대에 들어가 무리를 지어 거리를 쏘다니면서 저희들끼리 유희(遊戱)에 빠져 있을 때, 어질지 못한 아내는 집에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정(情)을 통하며 집안에서 잠을 재우고 남편의 재물을 먹이며 마음껏 향락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그 남편은 그것을 알고도 일부러 모르는 체 한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다섯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또 왕이 꿈속에서 본 ‘여우가 금 평상에 올라앉아 금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천한 사람이 귀하게 되어 금 평상 위에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귀족이나 양반들은 심부름꾼이 되며, 양민들은 노비가 되고 노비는 도리어 양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여섯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 밑에서 젖을 빨아먹었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어미 된 자가 딸의 매파노릇을 해 다른 남자를 데려다가 함께 방에서 지내게 하고는 어미는 문 앞에 지키고 섰다가 거기에서 재물을 얻어 살아가는데, 그 아비도 또한 같은 마음이라 거짓으로 귀머거리인 듯 모른 체한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에서 본 일곱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018_0706_c_02L왕이 꿈속에서 본 ‘검은 소가 사방에서 떼로 몰려와 서로 울부짖으며 싸우려고 하는데, 서로 붙을 듯하다가 붙지 않고 소도 간 곳을 알 수 없었다’고 한 것은, 후세 사람들은 국왕ㆍ대신ㆍ큰 관리ㆍ백성들 모두가 나라에서 국법으로 크게 금지하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음욕을 탐하여 즐기고 재산을 모아 저축하며, 처자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청렴 결백하지 못하여 음일(淫妷)하고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르며, 질투하고 어리석은데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충성과 효도는 행하지 않고 아첨과 간사함으로 나라를 망치는데도 위와 아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가 제때에 내리지 않고 기후는 고르지 않으며, 사나운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 모래를 날리고 나무를 부러뜨리며, 황충(蝗蟲)이 곡식을 먹어 그 곡식들이 여물지 못하게 하리니, 임금과 백성들이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 사방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임금과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제각기 말하기를 ‘구름이 사방에서 모이니 이제는 틀림없이 비가 내릴 모양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구름은 모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일부러 이런 변괴(變怪)를 나타내는 것은 온 백성들로 하여금 행실을 고치고 선(善)을 지키며 계(戒)를 가져, 천지(天地)를 두려워할 줄 알아서 나쁜 길에 들지 않으며, 곧고 청렴하여 제 분수를 지키고 한 아내와 한 남편을 가지며, 자애로운 마음으로 성내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여덟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또 왕이 꿈속에서 본 ‘큰 늪지대에 못물이 있는데 한가운데는 흐리고 사방 변두리는 맑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염부 땅 안에서 신하는 충성하지 않고 자식은 효도하지 않으며,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부처님의 도(道)를 믿지 않으며, 경전에 밝은 도사(道士)를 공경하지 않고 신하는 벼슬 주기만을 탐하며, 자식이 아버지의 재물을 탐하고 은혜를 갚을 줄 모르며 의리(義理)를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방 나라 사람들은 충성하고 효도하며, 어른을 존경하고 부처님의 도를 믿고 좋아하며, 경전에 밝은 도사에게 보시를 하고 은혜 갚기를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아홉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또 왕이 꿈속에서 본 ‘큰 개울물이 시뻘겋게 파도치며 흐른다’고 한 것은 후세에는 제왕이나 국왕들이 장차 자기 나라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울 것입니다. 수레 군사[車兵]와 말 군사[馬兵]를 만들어 서로 공격하고 쳐서 마구 죽임으로 인해서 흐르는 피가 시뻘겋다는 의미입니다. 왕이 꿈속에서 본 열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을 보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후세 사람들의 일을 미리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이 만약 능히 마음에 부처님의 도를 가지고 경전에 밝은 도인(道人)을 받들어 섬긴다면, 죽어서 모두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행을 지어 서로 해친다면 죽어서 세 갈래 나쁜 세계에 들어갈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왕은 곧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마음속으로 환희(歡喜)하고 선정과 지혜를 얻어 다시는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왕은 다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궁(宮)으로 돌아갔다. 그는 궁전으로 돌아와서 부인에게 많은 상(賞)을 주고 지위를 올려 정실 왕후[正后]로 삼았다. 그리고는 많은 재물과 보물을 주어 사람들에게 보시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는 드디어 풍요롭고 즐거워졌다. 왕은 다시 여러 공경 대신과 바라문들의 봉록(俸祿)을 모두 빼앗고 그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다시는 신용(信用)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다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내었다. 왕과 부인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