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061_b_01L별역잡아함경 제7권
019_0061_b_01L別譯雜阿含經卷第七

역자 미상
019_0061_b_02L 失譯人名今附秦錄

2. 이송(二誦) ②
019_0061_b_03L二誦第二

122
어느 때 세존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竹林)정사에 계셨다.
019_0061_b_04L爾時世尊在王舍城迦蘭陁竹林
당시 그 성 안에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동발(動髮)이었다. 그는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처소에 도달한 후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일찍이 아주 늙은 재주 부리는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습니다.
‘놀이하는 장소에서 놀이 도구를 시설하고, 백천만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하는 데에서 거문고를 타고 광대 노릇을 하며, 풍류를 울리고 노래 부르며, 갖가지로 희롱하고 웃기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을 다하고 목숨을 마친 후에는 광조천(光照天)에 태어났다.’
그와 같은 말이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019_0061_b_05L彼城中有伎人主號曰動髮往詣佛到佛所已頭面禮足卻坐一面作是言瞿曇我於昔者曾從宿舊極老伎人邊聞於伎場上施設戲具千萬人皆來觀看彈琴作倡鼓樂絃種種戲笑所作訖已命終之後光照天如是所說爲實爲虛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그대는 이제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그러나 저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는 두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모두 대답하지 않으셨다.
019_0061_b_12L佛告之汝今莫問是事彼伎主第二第三亦如是問佛悉不答
오히려 여래께서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의 뜻대로 대답하라. 만일 어떤 재주 부리는 사람이 놀이터에서 놀이 도구를 시설하고, 거문고를 타거나 광대 노릇을 하며, 풍류를 울리고 노래를 부른다면, 이러한 일로 인하여 백천의 사람들이 모두 다 와서 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본래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인데, 또다시 방일한 일을 더 지어 주고 있으니, 어찌 그들에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019_0061_b_14L爾時來語伎主言我今問汝隨汝意答有伎人於伎場上施設戲具彈琴作鼓樂絃歌以是事故百千種人悉來集如此諸人本爲愛欲瞋恚癡之所纏縛復更造作放逸之事不增其貪癡耶
019_0061_c_01L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노끈에 묶였을 때 물로써 그 위를 적시어 주면 그 노끈이 더 조이는 것과 같으니, 이처럼 여러 사람들도 본시 3독(毒)에 얽히고 묶였는데도 또다시 저 놀이터에서 광대 노릇과 풍류를 지어 주면 오직 3독만을 더욱더 치성하게 할 뿐이다.
따라서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여! 그대가 그러한 일을 하다가 목숨을 마친 후에 광조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019_0061_b_20L譬如有人爲繩所以水澆之逾增其急如是諸人爲三毒之所纏縛復更於彼伎場之上作倡伎樂唯當增其三毒熾盛如伎主汝爲斯事命終得生光照天無有是處
만일 어떤 사람이 놀이터에서 온갖 풍류를 울리다가 목숨을 마치면 광조천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삿된 소견을 짓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삿된 소견의 결과는 두 곳에 태어나게 되니,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저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는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019_0061_c_03L若有人計於伎場上作衆伎樂命終生於光照天者我說是人名爲邪見邪見之果生於二處墮地獄或墮畜生佛說是已彼伎主悲泣墮淚
부처님께서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그대가 세 번 말했으나,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019_0061_c_07L佛告伎主以是因緣故汝三請我不爲汝說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주 부리는 사람들이 어리고 어리석고 지혜가 없고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그와 같은 소견을 지니다가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큰 고통을 받으면서 항상 남에게 속고 멸시받는 것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주 부리는 사람이 ‘놀이터에서 광대 노릇과 풍류를 울리다가 목숨을 마치면 저 광조천에 태어난다’고 한 말은 큰 거짓말이라고 하겠으니, 그러한 업으로써 광조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다시는 그와 같은 나쁜 업을 짓지 않겠습니다.”
019_0061_c_08L爾時伎主白佛世尊我今不以聞佛語故而便涕我愍如斯諸伎人等嬰愚無智作不善彼於長夜作如是見於未來世當受大苦常被欺誑爲人所輕若有伎人作如是言於伎場上作倡伎樂命終生彼光照天者如是之言名大妄語若以此業生光照天無有是處世尊我從今日更不造彼如是惡業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참으로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019_0061_c_17L佛卽告言汝今眞實於未來世必生善處
그때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061_c_18L爾時伎主及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1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1_c_19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019_0061_c_20L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林
019_0062_a_01L그 성 안에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마을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는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며 문안한 뒤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일찍이 늙은 원로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싸우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지니고 있는 무기를 잘 갖추고서 굳게 스스로를 방어하고 용맹스럽게 전진하는데, 두려움 없이 앞에 있는 적들을 쳐부수고 생명을 죽임으로써 딴 군중들로 하여금 모두 물러나게 하면, 이러한 일을 하고 나서 목숨을 마치면 전장엄천(箭莊嚴天)에 태어난다.’”
019_0061_c_21L彼城中有善鬪將爲聚落主往詣佛所頂禮佛足問訊已訖在一面坐白佛言世尊我於昔者曾從宿舊耆老邊聞若欲戰時要當莊嚴所持器仗牢自防護勇猛直進無有怯能破前歒傷殺物命使餘軍衆皆悉退散作是事已命終得生箭莊嚴
싸우는 장수가 이렇게 질문하자,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지금 묻는 취지는 매우 좋지 못한 것이다.”
그는 두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019_0062_a_05L彼時鬪將作如是問佛告之曰不須說汝於今者所問義趣甚爲不第二第三亦如是問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은근하게도 나에게 세 번이나 물었으니, 그대가 잘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노라.
모든 싸우는 이는 스스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투하는 기술을 잘 알아서 가장 진두에 서서 용감하게 전진하는데, 그렇게 싸우는 장수가 어찌 수단껏 적의 군사를 해치려는 뜻을 갖지 않았겠는가? 그는 ‘어떻게 그들을 계박하고 그들을 해쳐서 몽땅 쳐부술까?’를 생각할 텐데, 어찌 그러한 뜻을 갖지 않겠는가?
019_0062_a_07L佛復告言已慇懃三問於我汝若能受當爲汝諸有戰者牢自莊嚴善知鬪術爲陣首勇猛前進如是戰將豈不作意方便欲得傷害彼諸軍衆作是念云何當繫縛於彼傷害於彼令其壞盡寧可不生如是念耶
싸우는 장수여! 그대는 중생에게 세 가지 삿된 나쁜 업을 지었다. 무엇이 세 가지 삿된 나쁜 업인가?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이다. 만약 이러한 세 가지 좋지 못한 업을 짓는다면 몸이 망가지고 목숨을 마친 후에 천상에 태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싸우는 장수여! 그대가 지금 이런 소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곧 삿된 소견이다. 삿된 소견의 업은 반드시 두 곳에 태어나나니, 바로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
019_0062_a_13L戰將汝於衆生所起三邪惡業何等名爲三邪惡業所謂卽是身口意也若以如是三不善業身壞命終得生天者無有是處戰將汝今若如是見者卽是邪邪見之業必生二處或在地獄墮畜生
이때 싸우는 장수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나는 그대가 세 번 물었어도 말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그대를 위하여 말한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대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가?”
019_0062_a_19L爾時鬪將聞佛語已悲泣流佛復告曰我以是故三請不說爲汝說何故涕泣
019_0062_b_01L싸우는 장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씀을 듣고서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싸우는 이들이 오랫동안 어리석고 어둡고 어리고 지혜가 없고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항상 그러한 일을 하다가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큰 고통을 받을 것을 불쌍히 여긴 겁니다. 그러한 나쁜 업으로는 실로 하늘에 태어나지 못하니, 만일 그러한 업으로 저 전장엄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다시는 그와 같은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겠습니다.”
019_0062_a_21L彼鬪將白佛言世尊我不爲聞是說故而生悲惱愍諸鬪戰者長夜愚闇嬰孩無智作不善常爲此事於未來世當受大如是惡業而實不得生於天中以此業而生彼箭莊嚴天者實無是世尊我從今更不作於如是邪見
부처님께서 곧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가 말한 바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니라.”
019_0062_b_05L佛卽讚言善哉善哉汝所說者甚爲希有
싸우는 장수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배하고서 떠나갔다.
爾時鬪將聞佛所說頂禮還去

12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2_b_06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019_0062_b_07L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
말을 잘 다루는 마을의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말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몇 가지 인연으로 말을 다루는가?”
019_0062_b_08L爾時善調馬師聚落主往詣佛所頂禮佛足在一面坐佛告調馬師曰以幾因緣令馬得調
말을 다루는 이가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세 가지 일로 말을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언제나 부드럽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언제나 거칠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럽게 하기도 하고 거칠게도 하는 것입니다.”
019_0062_b_10L馬師言瞿曇三事故能令馬調一者一向須濡一向須麤三者亦濡亦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 세 가지 일로 잘 다스리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말을 다루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때려서 죽게 합니다.”
019_0062_b_12L佛語之若斯三事不能調者復當云何師對曰打令命終
그리고 말 다루는 사람은 이어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당신께서는 위없는 조어사(調御師)이신데, 사람을 조복(調伏)하실 때 몇 가지 일로 조복하십니까?”
019_0062_b_14L馬師卽言瞿曇爲無上調御之師調丈夫時以幾事調
019_0062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또한 세 가지 일로 조복하나니, 첫째는 부드러운 말로 하고, 둘째는 거친 말로 하고, 셋째는 부드럽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게 해서 조복한다.
어떤 것을 언제나 부드럽게 한다고 하는가?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그대들이 세 가지 업으로 착한 일을 닦으면 착한 과보를 얻나니, 이것은 하늘이고, 이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언제나 부드러움으로써 조복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거칠게 말한다고 하는가? 3악도를 설하면서 ‘이것은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나쁜 과보를 지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부드럽게도 하고 거칠게도 한다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착한 업을 지으면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몸과 입과 뜻의 착한 업으로 얻어진 과보이다’라고 말하거나,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3악도에 떨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몸과 입과 뜻의 나쁜 짓으로 얻어진 과보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를 거칠게도 하고 부드럽게도 해서 중생을 조복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9_0062_b_16L佛言我亦以三事調御須濡語二者麤語三者不濡不麤而得調伏云何名爲一向須濡如佛告比丘若修三業善者獲善果報此是天是人是名一向以濡而得調伏云何名麤如說三惡道此是身口意業造惡果報云何名爲麤而濡說身口意有諸善業得生人天此是身口意善所獲果報亦說身口意有諸惡業墮三塗斯亦身口意所獲果報是則名爲亦麤亦濡而調衆生
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이 세 가지로 조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조복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에게 간절한 말을 하는데도 조복하지 않으면 심한 해를 가하노라.”
019_0062_c_03L馬師白佛若以此三不調伏者當云何調佛告之曰與其切言若不調者深加毀害
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말하였다.
“지금 당신 사문께서는 항상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해를 가한다고 말씀하십니까?”
019_0062_c_05L馬師對曰今汝沙門常說不殺云何言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다스리는 자여! 그렇고 그러하다. 말하자면 여래는 실로 죽이지 않으며, 그런 짓을 해서도 안 된다. 여래 세존께서 이 세 가지 일로 중생을 조복하다가 만약 조복하지 않으면, 마침내 그와 말을 하지도 않고, 가르치거나 명령하지도 않고, 또한 지도하지도 않는다.”
019_0062_c_07L佛言馬師如是如是言如來者實不應殺所不應作如來世尊以此三事用調衆生若不調者終不與語亦不教詔亦不指授
부처님께서 다시 말을 다루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가르치지도 않고, 함께 말하지도 않으며 지도해 주지도 않는다면 곧 해(害)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진정한 해이다.”
019_0062_c_10L佛告馬師於汝意云何如來若不教授設不與語不指授如是者則名毀害是眞毀害
말을 다루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여래께서 함께 말씀하지도 않으시고 법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신다면 진정한 해가 될 터이니, 이는 세상에서 해치는 것보다 더 심합니다.”
말을 다루는 사람이 또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마땅히 해치는 짓을 끊어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019_0062_c_12L馬師對曰實爾瞿曇如來若當不與其語不教授法實成毀害甚於世害馬師復言瞿曇我自今已後當斷毀害更不造惡
부처님께서 곧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참으로 참되고 바른 것이다.”
019_0062_c_16L佛卽讚言馬師如汝所說實爲眞正
말을 다스리는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2_c_17L爾時馬師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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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2_c_18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019_0062_c_19L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林
악성(惡性)이라고 하는 마을의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의 어떤 사람은 닦은 것이 없어서 남을 괴롭히거나 자극하거나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만을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몹시 나쁜 놈[極惡]이라고 부릅니다.”
019_0062_c_20L聚落主名曰惡性往詣佛所頂禮佛足在一面坐卽白佛言世尊如世有人無所修集惱觸於他作惱觸語是故諸人咸稱其人名爲極惡
019_0063_a_01L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괴롭히고 자극하거나 괴롭히고 해치는 말을 하였다면, 괴롭히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성을 나게 하나니, 이 때문에 악성(惡性)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다.
바른 소견과 바른 행위와 바른 말과 바른 생활과 바른 생각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지와 바른 선정을 닦지 않고, 바른 선정을 닦지 않았으므로 남을 괴롭히거나 자극하며, 남을 괴롭히고 자극하기 때문에 몹시 성을 내게 되고, 성을 내기 때문에 성내는 말을 하게 되고, 성내는 말을 하기 때문에 악성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다.”
019_0062_c_23L佛告聚落主設有一人惱觸於彼惱害語出惱語故令他瞋忿以是之故名爲惡性不修正見正業正語正命正念正方便正志正定不修正定故惱觸於彼以惱觸故極生瞋忿以瞋忿故出瞋忿語出瞋語故名爲惡性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희유(稀有)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실로 말씀하신 대로 괴롭히고 자극하기 때문에 실제로 악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을 괴롭히고 자극하였으며, 괴롭히고 자극했기 때문에 저를 악성이라고 칭하면서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저를 악성(惡性)이라고 부른 것이며, 이때부터 악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019_0063_a_06L村主言希有瞿曇實如所言以惱觸故實名惡性我以不修正見故彼觸惱以惱觸故稱我惡性一切世人咸皆稱我以爲惡性從是已來爲惡性
마을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괴롭히거나 자극하지 않게 되며, 괴롭히거나 자극하지 않으므로 괴롭히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며, 비록 남들에게 괴롭히거나 자극을 당하더라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비록 남들이 괴롭히는 말을 하더라도 괴롭히는 말로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비록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괴로워하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참는착한 이라고 일컬으며, 아울러 그들로 하여금 참거나 착한 생각을 내도록 하겠습니까?
019_0063_a_11L村主復言瞿曇云何得不惱無惱觸故得無惱語雖復爲彼之所惱觸不惱於他雖復爲彼之所惱而不惱語以惱於彼雖爲他惱生心惱以不惱故世人咸稱能忍善亦復於彼生忍善想
만약 이렇게 한다면 바른 소견을 잘 닦을 것이며, 바른 소견을 닦기 때문에 바른 행위와 바른 말과 바른 생활과 바른 의지와 바른 방편과 바른 선정과 바른 생각을 닦을 것입니다.
바른 선정을 닦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극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기 때문에 잘 참는 착한 이라고 이름할 것입니다.”
019_0063_a_16L若如是者修正見修正見故正業正語正命正方便正定正念修正定故爲他所觸而不生惱不生惱故名爲忍善
019_0063_b_01L마을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
“희유하십니다, 구담이시여! 말씀하신 바가 너무나 훌륭하시니, 실로 그 말씀처럼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저를 악성이라고 불렀는데, 모두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에 악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8정도(正道)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극을 받으면,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을 하게 되고, 드디어는 성을 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저를 악성이라고 불렀습니다.”
019_0063_a_19L村主言希有瞿曇所說甚善實如所我以不修正見故爲他所惱爲他惱故出惱觸言是以世人稱我惡性皆生惡想故名惡性不修八正道故爲他所觸出惱觸語遂至瞋忿有是想故世人稱我以爲惡性
마을 주인이 또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이런 나쁜 성질[惡性], 즉 급하고 사납고 오만하고 흉악하고 못된 것을 반드시 버리겠습니다.”
019_0063_b_02L村主言我從今已後如是惡性卒暴我慢我當捨棄
부처님께서 그를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참으로 매우 착한 일이다.”
019_0063_b_04L佛讚之曰汝若如是爲甚善
그러자 마을 주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3_b_05L彼村主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126
당시 여의주정발(如意珠頂髮)이라는 마을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날 왕의 궁전에서 여러 대신들과 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여러 신하들과 관속들은 ‘이른바 사문이 된 사람들은 돈과 보물을 만질 수 있는가, 만질 수 없는가’를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중 속에서 한 사람이 ‘설사 그것을 만진다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만질 수 있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이 ‘만져서는 안 되니, 사문 석자(釋子)는 금과 보물을 만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말이 법에 적합하게 말한 것입니까, 적합하게 말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그러한 말을 하면 부처님을 헐뜯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말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 옳지 않은 것입니까?”
019_0063_b_06L爾時有聚落主=名如意珠頂髮往詣佛所頂禮佛足在一面坐卽白佛言世尊我於往日=在王宮殿與諸輔相共一處坐群臣眷屬詳議講論所謂作沙門者爲得捉於錢寶以不得捉金不彼衆中有一人言縱令捉者竟有何過應當得捉有一人言不應得捉沙門釋子不捉金寶世尊如是二語爲得名爲稱法而說爲不稱說若作斯語非爲毀佛非過言耶爲是佛說爲非是乎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러한 말을 하면, 이는 나를 비방하는 말이고, 맞는 말이 아니고, 잘못된 말이라 할 것이다. 내가 말한 바는 실로 그렇지가 않으니, 왜냐 하면 비구가 된 사문 석자의 법에서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진다면 그것은 사문 석자의 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교법은 더욱 수승하고 단정하고 엄숙하나니, 부처님은 ‘비구가 된 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나니, 만일 만진다면 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다’라고 했느니라.”
019_0063_b_17L佛告聚落主若作是斯名謗我爲不稱說名爲過說我所說實不同彼何以故爲比丘者沙門釋子法不應捉金等錢寶若捉金等錢寶彼非沙門釋子之法佛之教法轉勝端嚴佛如是說爲比丘者不應捉於金等錢寶設有捉者非沙門法
019_0063_c_01L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저도 그때 그 대중들에게 ‘사문 석자는 실로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나니, 만약 만진다면 제멋대로 5욕락에 방일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마을 주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3_c_01L村主言我於彼時於大衆中作是說沙門釋子實不應捉金等錢若有捉者宜應自恣放逸五欲彼村主聞佛所說頂禮而去
그때 마침 아난 비구가 부처님을 곁에 모시면서 부채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왕사성에 머무르고 있는 비구들을 모두 불러서 이 강당에 모이도록 하라.”
019_0063_c_04L當於爾時阿難比丘侍立佛側以扇扇佛佛告阿難曰汝可召諸比丘依此王舍城而住止者盡集講堂
부처님의 분부를 받은 아난은 부처님 명령대로 비구들에게 모두 강당에 모이라고 지시하였다.
비구들이 제각기 와서 모이자, 아난은 부처님께 나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있던 비구들이 모두 강당 안에 모여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때가 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세존께서는 곧 강당으로 가셔서 비구들이 모인 앞에 자리를 정하고 앉으셨다.
019_0063_c_07L爾時阿難奉佛教已如佛所命勅諸比丘盡集講堂諸比丘各來集已阿難詣佛頂禮佛足在一面坐白佛言世尊諸比丘僧依王舍城迦蘭陁竹林者皆來集在講堂之中唯願世尊宜知是時世尊卽往講堂於衆僧前敷座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의주정발이라는 마을 주인이 나의 처소에 와서 나에게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제가 지난날 왕의 궁전에서 여러 대신들과 함께 〈사문의 법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질 수 있느냐, 만질 수 없느냐〉를 갖고 의논하였는데, 그때 그 대중 안에서 한 사람이 〈설령 사문이 돈과 보물과 금ㆍ은 따위를 만지고 가진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만져도 탈이 없다〉고 말하자, 또 어떤 사람이 〈사문의 법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질 수 없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말이 같지 않은데, 두 사람의 말 중에서 어느 말이 법에 합당합니까?’
019_0063_c_14L佛告比丘有如意珠頂髮聚落主來至我所頂禮我已而作是言我於往日在王宮殿與諸輔相共議講論≺沙門之法爲應捉持金等錢寶爲不捉耶≻時彼衆中有一人言≺假令沙門捉持錢寶及金銀等有何過咎但捉無苦≻復有人言≺沙門之法法不應捉金等錢寶≻如斯二人其語不同此二人言何者稱法
019_0064_a_01L내가 즉시 ‘사문 석자는 마땅히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 마을 주인은 ‘제가 옛날에도 저 대중들에게 〈만일 이 사문이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게 되면 반드시 제멋대로 5욕락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그때 저 마을 주인은 나의 말을 듣고 나서 기뻐하며 떠나갔다.”
019_0063_c_22L我卽答言沙門釋子不應捉持金等錢寶聚落主而作是言我於昔時於彼衆中亦作是語≺如斯沙門得捉金等及以錢寶亦應恣令受於五欲彼村主聞我所說歡喜而去
부처님께서 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알아야 하나니, 저 여의주정발 마을 주인이 여러 사람 앞에서 사자후로 외치기를, ‘사문의 법에는 마땅히 금ㆍ은과 돈과 보물 따위를 받아 지니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대 비구들도 앞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해서 만지고 싶다면, 반드시 초목과 똥덩어리를 만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차라리 더러운 똥을 만질지언정 보물은 만지지 말아야 한다.”
019_0064_a_04L佛告諸比丘汝等當知如意珠頂髮聚落主於衆人前作師子吼言沙門法不應受取金銀錢寶汝諸比丘從今已後若有所須欲捉之者當作草木及捉糞想寧捉糞穢不捉寶物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4_a_09L諸比丘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12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4_a_10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첨파국(瞻波國) 갈성(竭城) 지지(祇地) 언덕에 계실 때였다.
019_0064_a_11L一時佛在瞻波國竭城祇池岸
왕정발(王頂髮)이라는 마을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많은 중생들은 두 가지 법에 의지하나니, 첫째는 욕락을 탐함이요, 둘째는 이익 없는 짓을 익히고 성스럽지 않은 법을 몸소 받드는 것으로서 한갓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을 뿐이다.
019_0064_a_12L聚落主號王頂髮來詣佛所頂禮尊足在一面坐佛告之曰此世閒中多有衆生依二種法一貪欲樂二名習於無益身事非聖之法徒受無益損減
욕락을 좋아하는 것을 하천하고 속박된 법이라고 하는데, 욕락을 받는 것에 무릇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법답지 않은 재물을 모으고 생명을 해치고 자기 몸만을 즐겁게 하면서 자기 몸만을 올바른 즐거움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또한 부모에게 공양하지 않는다고 하며, 처자와 그 종들에게 베풀지 않는다고 하며, 친우와 아는 이와 권속과 자기를 돕는 이들에게도 잘못하며, 사문과 바라문과 온갖 복밭에게도 공양하거나 공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최상의 도를 닦지 않고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으므로 즐거움의 과보를 얻지 못하는데, 이것을 첫째의 욕락이라고 말한다.
019_0064_a_16L習於欲樂是名下賤繫累之法受欲樂者凡有三種云何爲三一者聚非法財殘害物命自樂己身而爲己身作正樂因此亦不名供養父亦不名與妻子及其僮僕亦非親知識眷屬輔弼己者亦復不名爲供飬供給沙門婆羅門諸福田等如是者不修上道不作樂因不得樂是名第一欲樂
019_0064_b_01L설령 욕락을 받더라도 어느 때는 법답게 받고 어느 때는 법답지 않으며, 혹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생명을 해치지 않기도 하며, 자기 몸을 안락하게 하고, 부모ㆍ처자ㆍ종들과 친우ㆍ권속ㆍ자기를 돕는 이들에게도 공양하고 공급하고 바른 안락을 주지만, 그러나 사문ㆍ바라문과 온갖 복밭에게는 보시하지 않으며, 또한 바른 도를 닦지 않고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아서 즐거움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짓지 않으니, 이것을 둘째의 욕락이라고 말한다.”
019_0064_b_01L設受欲樂或時如或不如法或爲殘害或不殘害樂己身安樂父母妻子僮僕親友輔弼己者悉皆供飬供給與正安然不施與沙門婆羅門及諸福田亦復不修正道不作樂因不求樂報不作生天因緣是名第二欲樂
부처님께서 다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재물과 보물을 법답게 모으고, 생명을 해침을 법답게 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자기 몸을 잘 닦아서 그 즐거움을 바르게 누리면 또한 바른 이치[正理]라고 하며,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우와 권속과 자기를 돕는 자들에게 공양하면 바르게 안락을 주고 바르게 섬기고 공급한다고 말하며, 때때로 사문ㆍ바라문에게 공양하고 복밭을 닦아서 수립하고 최상의 도를 닦고 즐거움의 원인을 심어서 즐거움의 과보를 구해서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지으면, 이것을 셋째의 욕락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019_0064_b_07L佛復告聚落主若有集於財寶如法而聚而爲殘害以如法故不造殘惡故自己身正受其樂亦名正理供飬父及與妻子僮僕親友眷屬輔成己皆名正與安樂正事給飬時時供飬沙門婆羅門修立福田修於上道種於樂因求樂果報作生天因緣名第三受於欲樂
내가 지금 온갖 욕락을 받는 자를 위해서 모두 동일하게 말했지만,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나는 ‘하천하다’고 말하며,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중간의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최상이다’라고 말한다.
019_0064_b_15L我今爲諸受欲樂皆悉同說設受欲樂我說下賤受欲樂我說爲中設受欲樂我說爲
무엇이 하천한 것인가? 법답지 않게 재물을 모으거나 또는 법답지 않게 재물을 모으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자기만 즐기고 자기 몸만을 올바른 즐거움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니, 이는 부모에게 공양하지 않고 또한 처자와 종들과 친우와 권속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라 하며, 또한 수시로 사문ㆍ바라문과 온갖 복밭 등에게 공양하지 않고, 최상의 도를 닦지 않으며,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아서 즐거움의 과보를 얻지 못하며,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짓지 않으면, 이것을 하천하다고 한다.
019_0064_b_18L何者下賤非法聚財又不非法聚自樂己身而爲己身作正樂因亦不供飬亦不名與妻子僮僕親友眷屬亦不隨時供飬沙門婆羅門諸福田等不修上道不作樂因不得樂不作生天因緣是名爲下
019_0064_c_01L무엇을 중간이 된다고 하는가? 가령 욕락을 누릴 때 어떤 경우는 법답게 하고, 어떤 경우는 법답지 않게 하는 것이니, 생명을 해치면서 스스로 자신만을 즐겁게 하다가도 다시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속들을 안락하게 하지만 결국 천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짓지 않으니, 이것을 중간이 된다고 말한다.
019_0064_b_23L何等名設受欲樂或時如法或不如法爲殘害以自樂身亦復安樂父母僮僕親屬乃至不作生天因緣名爲中
무엇을 최상이 된다고 하는가? 이른바 법답게 재물을 모으고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이 바르게 즐거움을 누리고 올바른 이치대로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우에게 공양하며, 나아가 하늘에 태어나는 인연을 능히 지으니, 이것을 최상이 된다고 말한다.
019_0064_c_04L云何名上所謂如法聚財作殘害身正受樂正理供飬父母及與妻子僮僕親友乃至能作生天因是名爲上
무엇을 이익이 없는 세 가지 괴로움의 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괴로움이 성스러운 법이 아니라서 의로움과 이익이 없는 것이다. 만약 괴로움의 몸이 있게 되면 마음이 이미 변하면서 계율을 처음 범하자마자 몸과 마음의 안팎이 모두 뜨거워지며, 그 일이 자꾸만 떠올라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므로 현세에서 번뇌를 여의지 못하고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첫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인 법이라고 한다.
019_0064_c_07L何等無益三種苦身謂苦非聖法無有義利若有苦身已變壞初犯禁戒身心內外一切俱追念此事無時暫離現在之世離煩熱終不能得過人之法是名初無益苦身法
또는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도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또는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이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세의 번뇌를 떠나지 못해서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니, 그것을 두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이라고 한다.
019_0064_c_12L若復有人雖不犯戒亦不變然復稱於身心二業內外俱修學是事現在之世不離煩惱不能得過人之法是名第二無益苦
또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심한 번뇌는 떠나지는 못하고 사람을 뛰어넘는 법에 약간의 진척이 있어서 혹은 적은 지혜를 얻기도 하고 법을 보기도 하고 적은 선정(禪定)을 얻기도 하니, 이것을 세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이라고 한다.
019_0064_c_16L復次若更有人雖不犯戒心不變然復稱於身心二業內外俱適念此事現在之世不離惱熱有少增進過人之法或得少智或得見法少禪定是名第三無益苦身
마을 주인이여! 나 또한 이익이 없는 고행(苦行)을 모두 하나의 종류라고는 말하지 않나니, 어떤 고행은 하품이라 말하고, 또 어떤 고행은 중품이라 말하며, 또 어떤 고행은 상품이라고 말하노라.
019_0064_c_20L聚落主我亦不說無益苦行都爲一種有一苦行名爲下品復有苦行名爲中品又有苦行名爲上品
019_0065_a_01L무엇을 하품이라고 하는가? 계율을 처음 범할 때의 마음이 이미 변하고 파괴되면서 몸과 마음의 안팎이 모두 뜨거워지고, 그 일이 늘 생각에 떠올라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으니, 현재의 세상에서 번뇌를 떠나지 못하여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는 그것을 하품이라고 말한다.
019_0064_c_23L云何名下初毀戒時心已變壞身心內外一切俱熱追念此事無時暫離於現在世不離煩惱終不能得過人之法是名爲下
무엇을 중품이라고 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번뇌를 떠나지 못하여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는 그것을 중품이라고 말한다.
019_0065_a_04L云何名中若復有人雖不犯戒心亦不變然復稱於身心二業內外俱適修學此事於現在世不離惱熱亦不能得過人之法是名爲中
무엇을 상품이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온갖 번뇌를 영원히 끊지 못하고 다만 사람을 뛰어넘는 법에 약간의 진척이 있어서 적은 지혜를 얻기도 하고 법을 보기도 하고 선정의 즐거움을 접촉하는 그것을 상품이라고 말한다.
019_0065_a_07L云何名上若更有人雖不犯戒心不變異然復稱於身心二業內外俱適修學此事於今現在不能永斷一切煩惱有少增進過人之法或得少智或得見法或觸禪樂是名爲上
마을 주인이여! 이 두 가지를 제거하면 도에 나아가는데, 이른바 세 가지 욕락과 세 가지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을 없애서 중도(中道)에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세 가지 욕락의 일과 세 가지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을 버리고서 중도에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는가?
019_0065_a_12L聚落主除是二邊趣向於道所謂三種欲樂及以三種無益苦身趣向中道何等名爲捨於三種欲樂之事及以三種無益苦身向中道耶
019_0065_b_01L마을 주인이여! 욕락을 탐내고 집착하면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남도 해치게 되어서 나와 남이 모두 해로워서 현재에도 온갖 악을 쌓게 되고 미래 세상에서도 온갖 악을 쌓게 되리니, 이 인연으로 마음이 번거롭고 근심되고 슬퍼져서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나 애욕과 결박을 없애면, 자기도 괴로움이 없고 남도 괴로움이 없으며, 또한 나와 남들도 괴로움이 있지 않아서 현재의 세상에서 모든 괴로움을 쌓지 않고, 미래의 세상에서도 온갖 괴로움을 쌓지 않으니, 이 때문에 현재에 법락(法樂)을 얻어서 온갖 고뇌를 떠날 뿐만 아니라 시절에 상관 없이 열반에 다가가므로 현재의 세상에서 능히 도의 과위(果位)를 얻을 것이다.
슬기로운 이는 스스로 알아서 막힘 없이 분명하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니, 그것을 첫 번째 중도라고 말한다.
019_0065_a_16L聚落主貪染欲樂惱害自身亦惱害他自他俱害現集諸惡於當來世亦集諸惡以此因緣心煩悲憂受諸苦惱設盡欲結亦無自苦亦不苦他亦復無有自他之苦現在之世不集諸苦於未來世亦復不集一切衆苦以是義故得現法樂離衆惱熱不擇時節得近涅槃於現在世能得道果智者自知明了無滯不隨他教是名初中道
마을 주인이여! 또 중도가 있나니 치열한 번뇌를 떠나서 시절에 상관 없이 열반에 다가가는 것이다. 슬기로운 이로서 스스로 알고 남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게 되리니, 이른바 바른 소견과 바른 말과 바른 행위와 바른 생활과 바른 선정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지와 바른 생각으로서 이를 두 번째 중도라고 말한다.”
019_0065_b_02L聚落主復有中道離於惱熱不擇時節得近涅槃智者自知不隨他教所謂正見正語正業正命正定正方便正志正念是名第二中道
이 법을 말씀하시자 마을 주인 왕정발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어서 법의 눈이 청정하게 되었다.
마을 주인 왕정발은 법을 알고 법을 보고 법을 체득하여 저 언덕에 도달해서 의혹을 여의고, 남의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고, 다른 소견에 빠지지 않고, 불법에서 막힘없는 변재를 얻었다.
019_0065_b_06L說是法時王頂髮聚落主遠塵離垢得法眼淨爾時王頂髮聚落主知法見法得法度疑彼岸離於疑不隨他教不受異見於佛法中自在辯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에야 허물에서 벗어나게 되어 부처님께 귀의하고, 또한 법과 승가 두 가지 보배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바새(優婆塞)의 계율을 지니고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019_0065_b_10L卽從坐起整衣服合掌向佛白佛言世尊我於今日已得出過依於佛亦復歸依法僧二寶我持優婆塞戒從今盡壽歸依三寶
그리고 마을 주인 왕정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5_b_13L爾時頂髮聚落主聞佛所說歡喜踊躍禮而去

128
그때 세존께서 말뢰(末牢) 촌읍(村邑)을 유행하시다가 차츰 우루빈라(優樓頻螺) 마을까지 가셔서 앵무염무과(鸚鵡閻無果) 숲 속에 계셨다.
019_0065_b_15L爾時世尊遊行於末牢村邑漸次至於優樓頻螺聚落在鸚鵡閻無果林
마을 주인 여성(驢姓)이 세존께서 말뢰 읍에 유행하시다가 우루빈라 마을 앵무염무과 숲에 오셨다는 말을 멀리서 듣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세존 구담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능히 현재의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신다〉고 들었는데, 나도 현재의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려면 마땅히 그 분께 나아가서 미묘한 법을 들어야겠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괴로움과 쌓임을 다 없애는 도를 말씀해 주실 것이다.’
019_0065_b_18L驢姓聚落主遙聞世尊遊末牢至優樓頻螺聚落鸚鵡閻無果林作是思惟我聞世尊瞿曇所說之法能滅現在一切苦習我亦欲滅現在一切苦習宜應詣彼聽斯妙法彼或爲我說於盡滅苦習之道
019_0065_c_01L이렇게 생각한 여성은 즉시 마을로 나와 세존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능히 중생들의 현재괴로움과 쌓임을 없애신다.’고 들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현재의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019_0065_b_23L彼驢姓思惟是已卽出聚落往世尊所頂禮佛足在一面坐白佛言世尊我聞如來所說之法能滅衆生現在苦習世尊垂哀矜愍願爲敷演現在能滅苦習之義
세존께서 즉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그대를 위하여 과거에 있었던 한량없는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멸하는 법을 말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믿지 않겠는가? 혹은 좋아하겠는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미래의 한량없는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하고자 하면, 그대는 믿겠는가, 믿지 않겠는가? 좋아하겠는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019_0065_c_05L爾時世尊卽告之曰若爲汝說於過去曾更無量衆苦滅苦習法汝或時信或不信或樂不樂我今亦欲爲汝說於未來無量衆苦滅苦習法而汝或信或不信或樂不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그대를 위하여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하리니, 그대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듣고서 받아 지닐지어다.
온갖 중생들이 작은 괴로움을 일으키는데, 이 괴로움에도 갖가지 차별이 있다. 이 온갖 고통들은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나니, 모두가 애욕을 익히고 애욕을 근본으로 삼고 애욕이 인연이 된 것이다.”
019_0065_c_10L佛復告曰我於今者卽於此處汝說於滅苦習法汝當諦聽至心受諸有衆生起小苦處而此苦中種差別是等衆苦因欲而生皆習於欲爲根本欲爲因緣
마을 주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근기가 둔해서 대략적으로 말씀하시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뜻을 자세히 펼쳐서 제가 깨닫도록 하옵소서.”
019_0065_c_14L聚落主復白佛言善哉世尊今我根鈍不解略唯願垂愍廣演斯義令我開悟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그대에게 물을 테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이 우루빈라 마을에 있는 민중들을 가령 어떤 사람이 모두 다 묶어서 온갖 욕설과 매질을 가하고서 베어 죽인다면, 그대는 자못 그것에 대하여 괴로워하지 않겠는가?”
019_0065_c_16L復告言今我問汝隨所樂答此優樓頻螺聚落中所有民衆假設有人盡繫縛之加諸罵辱皆悉斬戮汝頗於生苦惱不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비록 근심하고 슬퍼하기는 하겠지만, 한결같이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019_0065_c_20L聚落主言雖復憂慘必一向生大苦惱
그러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우루빈라 마을이 제가 사랑하는 것이라면 저에게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기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만, 제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욕심내는 것이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제가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019_0065_c_21L復白佛言世尊優樓頻螺聚落之中是我愛者則能生我憂悲苦惱心不悅豫非我愛者非我所欲非我所念於斯等邊我則無有憂悲苦惱
019_0066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따라서 온갖 갖가지 괴로움의 발생은 모두 애욕으로 말미암고,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019_0066_a_02L佛告之曰聚落主故當知一切種種苦惱之生皆由於悉因於欲欲爲根本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그대의 자식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의지하지도 못해서 보거나 듣지도 못할 때이니, 그 자식에 대하여 친근(親近)하려 하거나 사랑스러운 생각이 있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019_0066_a_04L佛復告言落主於汝意云何若汝子未生未依於母未見聞時頗於彼所有欲親昵愛念心不對曰無也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대의 자식이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생장했다면, 그대가 그 자식을 볼 적에 자못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있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019_0066_a_07L佛復告言汝子依母而生長已汝若見時頗生欲親愛念以不對曰實爾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자식이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태어나서 차츰 자라났는데, 만약 사고를 만나거나 도적에게 겁탈을 당했다면 그대는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019_0066_a_09L佛言汝子依母生已漸大設當敗壞王賊劫奪若如是者汝生苦惱憂悲念不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만약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때는 저의 마음이 너무나 걱정되어서 죽거나 죽을 지경에 이르는데, 하물며 근심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겠습니까?”
019_0066_a_11L聚落主曰若遭是事當于爾時我心愁毒若死若近死況復不生憂悲苦惱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따라서 온갖 갖가지 괴로움의 발생은 모두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으로부터 생기며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019_0066_a_13L佛復告是故當知一切種種苦惱之生因於欲悉從欲生欲爲根本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바가 매우 훌륭해서 교묘한 방편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019_0066_a_15L聚落主希有世尊所說甚善巧爲方喩
그리고 그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의 아들이 만일 먼 곳에 있으면 심부름꾼을 보내서 살피게 하는데, 그 심부름꾼이 만약 늦게 돌아온다면 저는 그의 어미와 함께 마음이 불안할 것입니다. 그래서 심부름꾼이 늦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나의 아들이 혹시 편치 못한가?’라고 걱정합니다.”
019_0066_a_16L白佛言我子設當在于遠處遣使往使若還遲我與其母心意不安使遲晩我子將不平安耶
019_0066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따라서 중생의 괴로움과 갖가지 슬픔과 근심은 모두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령 네 가지의 애욕에서 무너지거나 바뀌게 되면 네 가지의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생기며, 만약 세 가지 애욕이 있으면 또한 세 가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게 되고, 만약 하나의 애욕이 있으면 곧 하나의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게 되지만, 만약 애욕이 없다면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없고 티끌과 때[垢]를 여의게 되어서 마치 못 속에 있는 연꽃에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다.”
019_0066_a_19L佛言聚落是故當知衆生苦惱種種憂悲因於欲由欲而生欲爲根本假使四愛敗壞變異便生四種憂悲苦惱三亦皆生於憂悲苦惱若有一愛便生一憂悲苦惱若無愛者是則無有憂悲苦惱離於塵垢如池蓮華不著於水
이 법을 말씀하시자, 마을 주인 여성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면서 법안의 청정함을 얻었다. 그리하여 법을 얻고 법을 이해하고 법을 알아서 의혹을 벗어나 남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다른 길에서 헤매지 않았으니, 부처님의 교법에서 변재를 얻었다.
019_0066_b_03L說是法時驢姓聚落主遠離塵得法眼淨見法得法解法知法疑離惑不從他心不趣異道於佛教獲得辯力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이러한 말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해탈하였습니다. 삼보에 귀의하여 오늘부터는 우바새가 되어서 저의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믿음을 내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그는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6_b_06L卽從坐起整衣服合掌白佛而作是言世尊我已出離歸依三寶從今日夜爲優婆塞盡我形壽生淸淨信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066_b_09L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129
그때 세존께서 1천2백50명의 큰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 5백 명의 걸인 아이에게 둘러싸여서 마갈제국을 유행하시다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에서 저 성에 이르셨는데, 한 번은 나라건타성(那羅乾陀城)의 매첩(賣疊) 동산 숲에 이르셔서 그 안에서 쉬고 계셨다.
019_0066_b_10L爾時世尊與千二百五十大比丘僧千優婆塞五百乞兒而自圍遶遊行摩竭提國從一聚落至一聚落從城至城乃至到彼那羅健陁城賣疊園於中止住
당시 마을 주인 폐구성(閉口姓)은 바로 니건타(尼乾陀)의 제자였는데, 부처님께서 마갈제국에 유행하시다가 이 동산 숲 속에까지 오셨다는 말을 듣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마땅히 스승 니건타에게 가서 고한 후에 구담의 처소에 가 보아야겠다.’
그래서 폐구성은 곧 니건타의 처소에 가서 그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019_0066_b_15L閉口姓聚落主是尼乾陁弟子聞佛在摩竭提遊乃至是中到此園林作是念言我當往白師尼乾陁然後往詣瞿曇邊閉口姓卽往尼乾陁所頂禮其足在一面坐
니건타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능히 두 가지 논리로 구담에게 따질 수 있다. 두 개의 낚시로 물고기를 낚으면 토해 버리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것처럼, 이 두 가지 논리도 마찬가지라서 능히 그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삼키지도 못하게 하리라.”
019_0066_b_20L尼乾陁卽告之言汝能以二種論難瞿曇不如兩鍓鉤鉤取於魚旣不得吐又不得嚥斯二種論亦復如是能令於彼不得吐嚥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마땅히 가서 따지겠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 논리이길래, 능히 구담으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019_0066_b_23L聚落主言唯願教我我當往問何等二論能令瞿曇不得吐嚥
019_0066_c_01L니건타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곳에 가서 내가 말한 대로 하라.
‘지금 당신 구담께서는 여러 집안을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까? 만약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범부나 어리석은 이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만약 이롭게 한다면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1천2백 명의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優婆塞), 5백 명의 걸인 아이를 데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城)에서 저 성에 이르면서 여러 집안을 망칩니까? 거친 곳마다 당신에게 짓밟히고 꺾이고 망가진 것이 마치 우박이 벼를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로 파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이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019_0066_c_02L尼乾陁言汝詣彼所如我辭曰汝今瞿曇頗欲利益諸家不不利益與諸凡愚有何差別若言利汝今云何將千二百比丘千優婆五百乞兒從一聚落至一聚落城至城破壞諸家所經之處爲汝踐摧壞傷毀如雹害禾是名破壞爲利益
가르침을 받은 폐구성은 매첩숲 속으로 가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대강 문안을 마치고는 한쪽에 앉아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여!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여러 집안을 더 이롭게 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찌하여 항상 더 이롭게 하는 것을 찬양하지 않으십니까?”
019_0066_c_09L爾時閉口受其教已詣賣疊往詣佛所粗相問訊在一面坐白佛言瞿曇汝今寧可不欲增長利益於諸家耶汝豈不常讚歎增長利益者乎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변함 없이 이익된 법을 더 늘리려고 했느니라.”
019_0066_c_13L佛告之曰我於長夜恒欲增長利益之法
그러자 마을 주인은 이러한 말을 하였다.
“당신이 만약 이롭게 하려고 하셨다면, 어찌하여 요즘처럼 흉년이 든 세상에 1천2백 명의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 5백 명의 걸인 아이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에서 저 성에 이르면서 여러 집안을 망하게 하십니까? 이것은 이로운 법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며, 손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우박이 벼를 해치는 것처럼, 당신이 백성들을 해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019_0066_c_14L聚落主而作是言若利益何故今者於飢饉世與千二百比丘千優婆塞五百乞兒俱從一聚落至一聚落從城至城破壞諸家斯非增長利益之法所爲損減如雹害禾汝壞人民亦復如是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91겁 동안 내려오면서 어느 한 집이라도 밥을 보시하여 손실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대는 지금 온갖 집들을 관찰해 보라. 재물과 권속과 종들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가 많아서 부자의 터전을 이룬 것은 보시를 따라서 얻어진 것이니, 모두 나에게 보시함으로써 그러한 과보(果報)를 얻었느니라.
019_0066_c_19L佛告之曰我憶九十一劫已來無有一家以熟食施而致損減汝今且觀一切諸家多饒財寶眷屬僮僕象馬牛羊是富基業有不從施而得者不盡從施我獲斯果報
019_0067_a_01L여덟 가지 인연이 모든 집을 능히 파괴하나니, 왕과 도적에게 침해를 당하거나, 불에 탄 바가 되거나, 큰 물에 떠내려가거나, 갈무리한 곳을 잃게 되거나, 나쁜 아들을 낳아서 살림할 줄을 모르거나, 위세에 눌려서 재물을 써 버리거나, 나쁜 아들이 무리하게 재물을 낭비하는 것이다. 온갖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여덟 가지 일이 집의 살림살이를 능히 파괴한다.’고 말한다.
019_0067_a_01L有八因緣能壞諸家若爲王賊所侵爲火所燒大水所漂失所伏藏生於惡子不解生業威逼用財惡子無理用於財貨一切世人皆云八事能破居家
내가 지금 아홉째로 파괴하는 것을 말하겠나니, 아홉째는 이른바 무상함이다. 이 아홉 가지를 제외하고 ‘사문 구담이 능히 여러 집을 파괴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 아홉 가지 인연을 떠나서, ‘사문 구담이 능히 여러 집을 파괴하여 이익을 늘리지 않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그러한 말과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공을 차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019_0067_a_05L我今更說第九之破言第九者所謂無常離是九種外沙門瞿曇能破諸家無有是處若棄如是九種因緣言沙門瞿曇能破諸不增長者無有是處不捨是語捨是欲如斯等人猶如拍鞠必墮地
마을 주인 폐구성은 이 말을 듣자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싫어하고 몸에 털이 곤두섰다. 그는 즉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귀명(歸命)하면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저는 이제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겠습니다. 저는 매우 어리석었으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는 짓이 착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부처님 앞에서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하천한 망령된 말을 하였으니,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시옵소서.”
019_0067_a_11L閉口姓聚落主聞是語已心生驚怖憂惱厭惡身毛爲豎起禮佛足歸命於佛而作是言我今誠心向佛懺悔我甚愚癡猶如嬰兒所作不善今於佛前虛妄不實下賤妄語唯願哀愍聽我懺悔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도다. 그대는 진실로 죄를 알고, 진실로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한 짓과 같아서 착하지 못한 걸 알았다. 그대는 여래ㆍ아라하(阿羅訶)에게 허망하고 비천한 업을 크게 지었지만 이제 그 죄를 스스로 알아서 성심으로 참회하니,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악한 일은 소멸하리라.
내가 지금 그대를 불쌍히 여겨 그대의 참회를 받아 줌으로써 그대로 하여금 착한 법이 늘어나서 항상 물러서지 않게 하겠노라.”
019_0067_a_16L佛告之曰知汝至心汝實知罪實知愚癡猶如嬰兒所作不善汝於如來阿羅呵作大虛妄鄙賤之業今自知罪誠心懺悔善法增惡事退滅我今愍汝受汝懺悔汝善法增長常不退失
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7_a_21L閉口姓聚落主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1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7_a_2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라건타성 매첩숲 속에 계셨다.
019_0067_a_23L一時佛在那羅乾陁城賣疊林中
019_0067_b_01L당시 마을 주인 폐구성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사문 구담을 보고 싶은데, 우리의 스승 니건타(尼乾陀)를 보지 않고는 그곳에 갈 수 없다.’
그는 즉시 니건타의 처소에 가서 그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019_0067_b_01L爾時閉口姓聚落主而作是我今欲見沙門瞿曇不見我師尼乾陁者不得往彼卽時往詣尼乾陁頂禮其足在一面坐
니건타가 곧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두 가지 어려운 논리를 가르쳐서 저 구담으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또 삼키지도 못하게 하리라.”
019_0067_b_04L尼乾陁卽告之曰今我教汝作二種難令彼瞿曇旣不得吐又不得嚥
폐구성은 곧 그에게 물었다.
“아사리(阿闍梨)여! 어떤 두 가지 어려운 논리로써 능히 고오타마로 하여금 토해 버리거나 삼키지 못하게 합니까?”
019_0067_b_06L閉口姓卽問之曰阿闍梨以何二難能令瞿曇不得吐嚥
니건타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저 구담의 처소에 가서 이러한 말을 하라.
‘당신은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또한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법을 찬탄하십니까?
만약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어리석은 범부와 무슨 차별이 있으며, 만약 〈내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어찌 온갖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설법하지 않고, 설법해 주지 않는 자가 있는 것입니까?’”
019_0067_b_08L復告之曰汝當往詣彼瞿曇所作如是言汝可不爲利益安樂一切衆生汝亦讚嘆利益安樂一切衆生之法若言不爲利益安樂一切衆生與世凡愚有何差別若言我欲利益安樂衆生何不一切等同說法云何而有不爲說者
마을 주인은 니건타의 지시를 받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대강 문안을 마치고는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당신은 정말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어찌하여 항상 그와 같은 법을 칭찬하시지 않습니까?”
019_0067_b_14L聚落主受其教已往詣佛所粗相問訊在一面坐卽白佛言汝實不欲利益安樂諸衆生耶豈不常讚如是法乎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늘 변함 없이 온갖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고 싶으며, 또한 항상 그와 같은 법을 찬탄하노라.”
019_0067_b_17L佛告之曰我於長夜常欲利益一切衆生亦恒讚嘆如是之法
폐구성이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중생들을 위하여 평등하게 설법하지 않고, 설법해 주지 않는 자가 있는 것입니까?”
019_0067_b_19L閉口姓言若如是者不爲諸衆生等同說法有不說者
019_0067_c_01L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으니 좋을 대로 대답하라. 가령 세상 사람들에게 세 가지 밭이 있는데, 첫째의 밭은 좋고 아름답고 기름져서 가장 좋으며, 둘째의 밭은 중간 정도에 맞게 좋으며, 셋째의 밭은 벌판의 변두리에 멀리 있거나 모래와 갯가에 있다. 만약 농부들이라면 먼저 어떤 밭에다 종자를 뿌리겠는가?”
019_0067_b_20L告之曰我今問汝隨所樂答譬如世有三種田有一上田良美沃壤爲上好第二田者適處其中好第三田者曠野邊遠沙鹵鹹惡有諸田夫先於何田而下種子
폐구성이 말하였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밭에 먼저 심을 것이니,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019_0067_c_02L閉口姓言爲利益者先種良田望獲大利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가장 좋은 밭에다 심었다면, 다음에는 어떤 밭에 심겠는가?”
019_0067_c_03L佛告之言若良田盡次種何田
폐구성이 말하였다.
“다음에는 중간 정도 되는 밭에 심습니다. 중간 정도 되는 밭에다 심으면 그 다음에는 최하의 밭에 심을 것이니, 그런 밭에도 역시 종자를 뿌리는 것은 후일에 조금이라도 소득이 있을까 바라기 때문입니다.”
019_0067_c_04L閉口姓言次種中者種中田已次種下田亦復擲子亦望後時少有所獲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최상의 밭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나의 제자인 비구ㆍ비구니가 그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아서 자기 이익을 이루며, 언구의 뜻이 미묘해서 이익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구족해서 범행(梵行)을 발하니, 저 비구ㆍ비구니는 나의 법을 듣고는 나에게 의지하고, 나에게 귀의하며 나를 신빙[依憑]한다.
나는 선장이 되어서 그들을 건너게 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함으로써 안락에 머물도록 하는데, 그들은 듣고 나서 제각기 이러한 말을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니,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하여 수행하면 오랫동안 이익을 얻어서 뜻[義]을 알고 안락하게 될 것이다.’
019_0067_c_06L佛告之曰欲知上田如我弟子諸比丘比丘尼我爲說法初中後善成於己利句義微妙滿足利益具足淸白顯發梵行彼比比丘尼聽我法已依止我住歸依於我依憑於我我爲舟主而濟渡之我爲開眼令得視瞻住於安樂彼等聞已各作是言佛爲我說我等咸當盡心修行便於我等長夜利益得義得樂
그리고 중간 정도의 밭은 바로 나의 제자인 우바새와 우바이이다. 나는 그들에게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아서 자기 이익을 성취하며, 언구의 뜻이 미묘해서 이익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구족해서 법행을 발하니, 저 우바새와 우바이는 나의 법을 듣고서는 나에게 의지하며 나에게 귀의하고 나를 신빙한다.
나는 선장이 되어서 그들을 건너게 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함으로써 안락에 머물도록 하는데, 그들은 듣고 나서는 모두 이러한 말을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니, 우리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오랫동안 이익을 얻어서 뜻을 알고 안락하게 될 것이다.’
019_0067_c_15L彼中田者如我弟子優婆塞婆夷我爲說法初中後善成就己利句義微妙滿足利益具足淸白顯發梵行彼優婆塞優婆夷聽我法已止於我歸依於我依憑於我我爲舟而濟渡之我爲開眼令得視瞻於安樂彼等聞已各作是言佛爲我我等咸當至心修行便於我等夜利益得義得樂
019_0068_a_01L모래와 갯벌로 된 최하의 나쁜 밭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저 외도들이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나아가서는 범행을 발하니, 저 외도들은 제각기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들으며 나아가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를 해득함으로써 오랫동안 구제와 이익을 얻고 뜻을 얻어서 안락하게 된다.”
019_0067_c_23L欲知下田沙鹵惡如諸外道我亦爲說初中後善至顯發梵行彼諸外道各能聽受其所樂乃至一句解其義趣亦爲彼於長夜中救濟利益得義得樂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희유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좋은 비유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019_0068_a_04L閉口姓聞佛所說而作是言希有善說美喩
부처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이 뜻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다시 비유로 말하겠다.
세상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동이가 있는데, 첫째의 물동이는 견고하고 완전하고 손상되지 않고 구멍이나 균열이 없어서 물이 새지 않으며, 둘째의 물동이는 완전해서 깨지지 않고 구멍이나 균열도 없으나 물이 조금 새어 나오며, 셋째의 물동이는 깨지기도 해서 새기도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물을 담는 데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어떤 그릇을 먼저 사용하겠는가?”
019_0068_a_06L佛告之曰爲成斯義說譬喩如世人有三種瓫有一水瓫堅完不損無有孔裂亦無滲漏其第二瓫亦完不破無有孔裂少有滲漏第三瓫者亦破亦漏彼人注水應先何器
폐구성이 대답하였다.
“깨지거나 새지 않는 완전한 그릇에다 먼저 물을 담고, 다음 둘째의 그릇을 사용합니다. 둘째의 그릇은 비록 완전하고 깨지지는 않았지만 물이 조금 새는 것이니까요.”
019_0068_a_11L對曰先於不破漏者完器滿已注第二器其第二器雖完不破然小滲漏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동이에 다 채운 후에는 다시 어떤 그릇에 채우겠는가? 셋째의 물동이도 비록 새거나 깨졌지만 물을 담아서 잠깐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물동이는 나의 제자인 비구ㆍ비구니를 비유함이니, 나는 그들에게 설법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둘째의 물동이는 나의 제자인 우바새와 우바이를 비유함이니, 나는 그들에게 설법함으로써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셋째의 물동이는 모든 외도들을 비유함이니, 내가 그들에게 설법할 때 조금이라도 들어서 받아 지니면 그들로 하여금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019_0068_a_13L佛復告言滿是瓫已更注何處其第三瓫雖復漏破亦應注水爲未漏閒暫得用故其第一瓫喩我弟子諸比丘比丘尼我爲說法乃至令其得義得樂其第二瓫喩我弟子諸優婆塞優婆夷我爲說法乃至得義得其第三瓫喩諸外道我爲說法少聽受乃至令其得義得樂
019_0068_b_01L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몹시 놀랍고 두려워서 몸의 털이 곤두선 채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저는 이제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참회하겠습니다. 저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서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부처님 앞에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한 하천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019_0068_a_20L閉口姓聚落主聞佛所說心生驚怖憂愁厭惡身毛爲豎起禮佛足而作是言我今誠心向佛懺悔我甚愚癡猶如嬰兒所作不善面於佛前虛妄不實下賤妄語唯願哀愍聽我懺悔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도다. 그대는 참으로 죄를 알며,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하였다.
그대는 여래ㆍ아라하에게 허망하고 하천한 거짓말을 하였는데, 지금에야 죄를 알고 성심껏 참회를 하니, 착한 법은 날로 늘어나고 나쁜 일은 줄어지리라.
내 이제 그대를 불쌍히 여겨서 그대의 참회를 받아 주나니, 그대로 하여금 착한 법이 늘어나게 함으로써 항상 물러서지 않게 하겠노라.”
019_0068_b_02L佛告之曰知汝至心汝實知罪實知愚癡猶如嬰兒所作不善汝於如來阿羅呵所虛妄下賤作斯妄語汝今知罪誠心懺悔善法日增惡事退減今我愍汝受汝懺悔令汝善法增長常不退失
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기뻐하고 받들어 행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68_b_08L閉口姓聚落主聞佛所說喜奉行頂禮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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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068_b_09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라건타성의 매첩숲 속에 계셨다.
019_0068_b_10L一時佛住那羅健陁城賣疊林中
당시 마을 주인 결집론자(結集論者)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니건(尼乾)을 뵈야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부처님 처소에 가야겠다.’
부처님께 와서 문안을 마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019_0068_b_11L爾時結集論者聚落主作是思惟我今不應往見尼乾當到佛所作是念已尋往詣佛問訊已訖在一面坐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 결집론자에게 말씀하셨다.
“저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는 여러 제자들에게 어떤 법을 말하던가?”
019_0068_b_14L爾時佛告結集論者聚落主尼乾陁若提之子爲諸弟子說何等
마을 주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니건타는 항상 이러한 말을 합니다.
‘만약 살해하는 업을 지어서 살생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많이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019_0068_b_16L聚落主白佛言世尊彼尼乾陁常作是說若作殺業隨殺時多必墮惡趣入于地獄偸盜邪婬及妄語等亦復如是隨作時多必墮地獄
그러자 세존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니건의 말과 같다면, 중생이 도무지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니건의 말처럼 ‘만약 살해하는 업을 지어서 살생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도둑질을 했거나 못된 음행을 했거나 거짓말을 한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
019_0068_b_19L爾時世尊告聚落主若如尼乾之所說者衆生都無墜墮惡趣入于地獄所以者何如尼乾說若作殺業隨殺時多必墮惡趣入于地獄偸盜邪婬及妄語等亦如是者
019_0068_c_01L일체 중생은 살해하는 때가 적고 살해를 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런데도 만약 ‘살생을 많이 저질러야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면, 살생을 많이 하지 않고 적게 했을 경우는 마땅히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과 못된 음행을 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한다면, 그 업을 많이 짓지 않고 적게 지었을 경우는 마땅히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019_0068_c_01L一切衆生殺生時少不殺時多若以時多入地獄者殺生時少不殺時多是故不應墮惡趣中入于地獄偸盜邪婬及妄語等亦復如是作業時少不作時多悉皆不應墜墮惡趣入于地獄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면,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019_0068_c_06L佛復告聚落主如汝說者都無有人入於地獄
마을 주인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019_0068_c_07L落主卽白佛言實爾瞿曇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어떤 지도자가 사량을 잘하고 분별을 슬기롭게 해도 그 사량분별을 자기의 말과 변재로써 한다면 그는 바로 범부의 경지에 있는 이인데, 이런 사람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법을 말한다.
‘만약 살생을 하면 모두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그에 따라 업을 많이 짓게 되면 그 많은 업 때문에 지옥에 끌려 들어간다.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업을 많이 짓게 되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
019_0068_c_08L佛復告聚落主世閒若有教導者出能善量慧分別在思量地以己言辯才是凡夫地爲諸弟子說如是法若殺生者盡墮惡道入于地獄隨作業時多是多業牽入地獄盜竊邪婬幷妄語亦復如是隨作業時多墮於惡趣入于地獄
이렇게 되면 그의 제자들은 전일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 스승의 말씀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고서 이러한 말을 한다.
‘우리를 지도하시는 스승께서는 저 앞날의 경계를 알았으며, 앞으로 볼 것을 보았다.’
또 이 제자들에게도 다시 제자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지도하시는 스승께서는 〈만약 살해하는 경우가 있되 그 살생을 많이 저지른다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렇게 되면 그의 손제자(孫弟子)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일찍부터 살생을 했으니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019_0068_c_15L其諸弟子專心信樂彼師所說至心受持作如是言我教導主知彼前境見彼所見此諸弟子復有弟子而語之言我教導主作如是說若有殺生時隨殺時多墮於惡趣于地獄彼孫弟子作是念言我先殺必墮地獄偸盜邪婬及妄語時墮惡道入於地獄
019_0069_a_01L이런 식으로 소견을 짓는 즉시 그러한 소견을 얻게 되니, 이를 삿된 소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견을 버리지 못하고, 의혹을 풀지 못하고, 지었던 바 나쁜 업의 원인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상 그와 같은 나쁜 업만 지으니, 마음으로 고치려 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해탈도 충분하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충분하지 못하니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현을 비방하고, 성현을 비방하기 때문에 곧 삿된 소견이 되는 것이다.”
019_0068_c_22L因此作見卽得是是名邪見不捨是見不解疑惑悔所作惡業之因而猶常作如是惡心不肯改不能滿足心所解脫不滿足慧解脫亦不滿足以心解脫慧解脫不滿足故誹謗賢聖謗賢聖卽是邪見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러한 삿된 소견을 두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도 모두 그 인연이 더러운 마음의 때를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일체 중생이 업과 번뇌를 얻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출세하시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ㆍ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으로 살해하는 짓을 꾸짖으시며, 도둑질하고 못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꾸짖으시며, 아울러 저 수승한 법에 결정적인 믿음과 이해를 갖는 것을 칭찬하신다.”
019_0069_a_05L佛復告聚落主設有一作是邪見墮在惡道入於地獄切衆生皆有因緣染污心垢以是緣一切衆生得業結使設有佛出來ㆍ應ㆍ正遍知ㆍ阿羅呵ㆍ三藐三佛陁以種種因緣呵於殺生偸盜邪婬及妄語等亦復如是兼讚嘆彼勝法決定信解
마을 주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세존께서는 진실한 지견(知見)으로 갖가지 설법하셔서 저희와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법을 말씀하시는데, 갖가지 인연으로 살해하는 짓을 꾸짖으시고 살해하지 않는 것을 칭찬하시며, 갖가지 인연으로 거짓말 않는 것과 못된 음행 않는 것과 도둑질 않는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019_0069_a_12L復白佛言我之世尊眞實知見種種說法令我得與弟子說如是法種種因緣呵責殺生讚嘆不殺種種因緣讚不妄語不邪婬不偸
저희들은 옛적에 일찍부터 살해하였고 도둑질하였고 못된 음행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인연 때문에 항상 스스로 뉘우치고 자책하였습니다.
비록 스스로 꾸짖고 자책하였어도 죄업을 짓지 않는다는 칭호를 얻어야 하니, 이 때문에 깊이 스스로 꾸짖고 뉘우치면서 그와 같은 나쁜 업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모두가 의심과 후회를 없애고 착한 업을 더욱 증가해서 다시는 살해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겠사오며, 나중에도 갖가지의 나쁜 업을 다시는 짓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만족을 얻어서 해탈하게 되고, 또한 지혜의 해탈도 만족되는 것이니, 마음과 지혜가 만족되기 때문에 성현을 비방하지 않으며, 성현을 비방하지 않기 때문에 문득 정견(正見)을 얻는 것입니다.”
019_0069_a_16L我於昔時已曾殺生偸盜邪婬妄語等我以此因緣常自悔責雖自悔責而得名爲不作罪業是故深自悔責如是惡業以懺悔故皆除疑悔增進善業更不殺生偸盜邪婬妄語等悔責先造後更不作種種惡以是之故心得滿足而獲解脫能滿足慧解脫心慧滿故不謗賢聖不謗賢聖故便得正見
019_0069_b_01L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정견을 잘 닦는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게 되면 좋은 갈래로 가서 천상에 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능히 참회를 통해 정견으로 가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능히 중생의 맺힌 업과 번뇌와 죄의 때를 깨끗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성현의 제자라면 이러한 일을 듣고는 즉시 닦고 배울 것이다.
019_0069_b_01L佛告聚落主以能修於正見緣故身壞命終得向善趣生于天上以能懺悔正見之故能淨一切衆生之心亦能淨於衆生結業煩惱罪垢賢聖弟子得聞此事卽時修學
가령 때와 시분(時分)에서 시분이 중간이라면, 그 중간에서 밤낮이 이미 지나가고 있나니, 이처럼 때[時] 속에서 살해한 때가 많은가, 살해하지 않는 때가 많은가? 이치로 미루어 보건대, 살해한 때가 적고 살해를 하지 않은 때가 많다.
019_0069_b_06L若時及時分時分中閒中閒晝夜已過如是時中爲殺時多不殺時多以義推之殺生時少不殺時多
내가 그때 살해하는 짓을 했으므로 나는 실로 착하지 못하고 하는 짓도 옳지 못하니, 나는 지금부터 다시는 살해하지 않으며, 나는 온갖 것에 대하여 다시는 싫어하지 않으며, 또한 원망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깊이 기뻐하는 마음을 내겠다. 기뻐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깊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며,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깊은 즐거움을 얻으며, 깊이 즐겁기 때문에 안락을 누리게 되며, 안락을 누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안정을 얻는다.
019_0069_b_09L我於彼時故作殺生我實不善所作非理我從今已後更不復殺我於一切更不生嫌更不生恨亦不生嫉深生歡喜生歡喜故深生愛樂生愛樂故深得猗樂深猗樂故得受於樂以受樂故其心得定
성현의 제자는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자비와 함께하며, 자비와 함께 하기 때문에 원망함과 혐오함과 질투함이 없어서 그 마음과 뜻은 한량없이 크고 광대한 것이다.
자비를 잘 닦았기 때문에 저 동쪽에 있는 일체 중생에게 전혀 원망함과 혐오함이 없으며,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온갖 세계에서 두루 자비심을 내어 이러한 뜻과 이해를 지음으로써 반드시 이 착한 마음을 닦아서 세우고 그 착함 속에서 머물러야 한다.”
019_0069_b_14L賢聖弟子心得定故得與慈俱與慈俱故無怨嫌恨得於無嫉其心廣大志趣弘博無量無邊善修慈故於彼東方一切衆生都無怨嫌南西北方四維上下亦復如是於一切世界普生慈心作是意當修立如是善心於善中住
그리고 세존께서는 땅에서 흙을 조금 취하여 손톱 위에 두고는 마을 주인 결집론자에게 물으셨다.
“대지의 흙이 많은가, 손톱 위의 흙이 많은가?”
019_0069_b_20L爾時世尊取地少土置於爪上問造論姓聚落主言大地土多爪上土多
019_0069_c_01L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손톱 위의 흙은 아주 적어서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대지의 흙에 비해 백분ㆍ천분ㆍ천억분의 1도 되지 않으니 도저히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019_0069_b_22L聚落主言爪上之土極爲尟少不可方喩大地之土百分千分千億分不得比共相挍量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죄업도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과 비교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019_0069_c_02L佛告聚落主所有罪業如爪上土大地之土算數譬喩不能量度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나쁜 업을 비교하면 알 수 있나니, 그와 같은 작은 업은 능히 사람을 나쁜 갈래에 떨어지도록 이끌지 못하며, 머물게도 하지 못하며, 또한 따질 만한 것도 못 됩니다. 그리고 자비를 행하는 이는 그 얻은 공덕이 대지의 흙과 같고 살해를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연민의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도둑질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기뻐해 주는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못된 음행을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희사(喜捨)하는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거짓말을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습니다.”
019_0069_c_04L聚落主言如是如是惡業挍量可知如是少業不能牽人令墮惡道亦不能住亦不可計夫行慈者所得功德如大地土殺生之罪如爪上土悲之功德如大地土偸盜之罪如爪上土喜之功德如大地土邪婬之罪如爪上土捨之功德如大地土妄語之罪如爪上土
여래께서 이렇게 법을 분별하시자, 마을 주인 결집론자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면서 법안이 청정하게 되고, 법을 얻고 법을 증험하고, 법을 보고 법을 알고 법의 한계[邊際]까지 얻어서 온갖 의혹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다른 믿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체득하였다.
019_0069_c_11L如來分別如是法時造論姓聚落主聞佛所說遠塵離垢得法眼淸淨得法證法見法知法法邊際度諸疑惑不隨他信尋得已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해탈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미 해탈을 얻었습니다. 지금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과 스님네에게 귀의하여 우바새가 됨으로써 그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믿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겠습니다.”
019_0069_c_15L卽起離坐整衣合掌白佛言世尊我已得度我已得度今歸依佛歸依法僧爲優婆塞盡其形命信心淸淨
마을 주인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이양(利養)을 위하여 나쁜 욕설을 하면, 나날이 더욱 악해져서 오히려 자기의 재물까지 잃게 되는데, 하물며 다시 이익을 얻겠습니까?
저 역시 그처럼 이익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어리석고 착하지 못한 니건(尼乾)을 가까이하였습니다.
저는 미치고 미혹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였으나, 저는 그곳에서 좋은 이익을 얻지 못하고 그에게 빠지게 됨으로써 장차 지옥에 떨어질 것이온데, 세존께서 저를 구제하여 나쁜 갈래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019_0069_c_18L聚落主復白佛言世尊譬如爲利飬作於惡罵日日轉惡尚失己財復得利我亦如是爲得利故親近愚癡不善尼乾我以狂惑親近於彼飬恭敬我於彼所不得善利爲其所將墮地獄世尊拔我得離惡趣
019_0070_a_01L지금 거듭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께 귀의하여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는 먼저 저 어리석은 니건에게 바쳤던 신심과 애착심과 공경심을 모두 다 버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세 번째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에게 거듭 귀의하오며, 저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우바새가 되어서 불신(不信)의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019_0069_c_23L重歸佛法僧我盡形壽爲優婆塞先於彼愚癡尼乾所有信心愛念悉皆捨棄我今第三亦重歸依佛法僧寶盡我形壽爲優婆塞不生不
마을 주인 결집론자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019_0070_a_05L造論姓聚落主聞佛所說歡喜頂禮而去

동요와 싸우는 것
말을 조복함과 악성
정발과 모니
왕발과 여성
기근과 밭에 씨 뿌림
결집론자를 합해서 열이 된다네.
019_0070_a_06L動搖及鬪諍
調馬與惡性
頂髮幷牟尼
王髮及驢姓
飢饉與種田
說何論爲十
別譯雜阿含經卷第七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