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어떤 장자가 부처님과 스님네들을 초청하여 큰 모임을 베풀었는데, 세존께서는 여러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그 장자의 집에 가셨다. 그때 존자 바기사(婆耆奢)가 차례가 돌아와서 스님네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많은 여인들이 그 절에 왔는데, 그 여인들 중에서 얼굴이 단정하여 아름다운 이가 하나 있었다.
바기사는 그 여인을 보자 여색에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욕정이 일어났으나, 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허망한 생각으로 큰 이익을 잃고 이익되지 않은 것을 기대했다.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려우며 목숨도 마침내 또한 그러하니, 만약 그러한 마음을 내면 착하지 못하다고 하리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애욕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출가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한창 젊고 단정한 여인을 보자 스스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욕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것이 싫어할 근심거리란 걸 말하리라.’
나는 친히 부처님 앞에서 두 가지의 친한 벗을 들었나니 열반의 도에 나아가는 것만이 내 마음이 즐기는 것일세.
019_0119_b_02L我親佛前聞, 二種之親友。
趣向涅槃道, 是我心所樂。
나는 방일하지 않음을 닦으며 숲 속에 살면서 고요함에 머물렀고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찬양했으니 이를 이름하여 정법을 세웠다고 하네.
019_0119_b_03L我修不放逸,
處林住空寂。 我熟讚於心, 是名立正法。
이 다음 반드시 죽음에 나아갈 때만 열반을 얻는 때라고 한다면 이는 나쁜 마음임을 알아야 하니 어떻게 나를 볼 수 있으랴.
019_0119_b_04L後必趣於死, 若得涅槃時。 當知是惡心,
云何能見我。
25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19_b_06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019_0119_b_07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당시 존자 바기사가 덕이 있는 이와 겸손하고 부드러운 비구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내었다가, 이윽고 스스로 깨닫고서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지극한 이익을 잃어서 도무지 풍요로움이 없구나.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렵고 출가하는 것도 만나기 어렵거늘,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으면서도 근신하질 못해서 출가를 소홀히 여기고 몸 받은 것도 소홀히 여겼으며, 자기의 지혜로 저 겸손하고 부드럽고 덕이 있는 비구들을 경멸하였다. 나는 지금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싫어한다고 말하리라.’
교진여와 사리불 용협(龍脇)과 자자(自恣)는 애욕의 결박을 즐기지 않고 교만함 그것을 벗어났다네.
019_0119_b_20L憍陳如舍利, 龍脅及自恣, 不樂及欲結,
出離及憍慢。
25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19_b_2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019_0119_b_23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019_0119_c_01L당시 존자 바기사가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몸을 잘 닦고 정진을 부지런히 하여 끝내 방일하지 않고, 그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 3명(明)을 얻게 되었다. 존자 바기사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3명을 얻게 되었으니, 나는 내가 얻은 3명(明)을 찬탄해야겠다.’
019_0120_a_01L 그때 바기사가 대중의 모임 속에 있다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지금 네 구절의 법을 연설하셨으니, 나는 지금 그 한 구절에 한 게송으로 칭찬하리라.’ 그리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 바기사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노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 능히 네 가지 병을 고치면 마땅히 왕의 스승이 될 것이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병을 잘 아는 것이며, 둘째는 병이 생긴 원인을 잘 아는 것이며, 셋째는 병이 생겼으면 치유할 줄 아는 것이며, 넷째는 이미 나은 병을 다시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도 또한 네 가지 법을 성취하셨나니,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원께서는 또한 중생의 네 가지 독한 화살을 뽑아 주신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과 괴로움의 쌓임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다.”
019_0120_b_01L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과 같은 독한 화살은 이 세상 의원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태어남의 괴로움에 대한 인연과 태어남의 괴로움을 끊는 것도 능히 알지 못하며, 또한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의 인연과 그것을 능히 끊는 법도 알지 못하고, 오직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원만이 태어남의 괴로움에 대한 인연과 그 괴로움 끊는 법을 알고, 나아가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의 인연과 그것을 끊는 법을 안다. 그러므로 여래는 네 가지 독한 화살을 뽑아 버리니 이 때문에 여래를 더할 나위 없는 의원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당시 니구타겁파(尼拘陀劫波) 비구가 저 첫째 가는 광야(曠野) 숲 속에 있었으며, 이 숲 속에는 또 하나의 숲이 있었는데, 이 비구가 거기서 병을 얻었다. 존자 바기사가 병든 니구타겁파 비구를 간호하였으나, 그는 그 병으로 말미암아 곧 열반에 들고 말았다. 존자 바기사는 화상 니구타겁파를 공양하고는 차츰 유행하다가 왕사성 가란타 죽림까지 왔었다.
광야의 성(城) 안에서 비구가 열반에 들었는데 나면서부터 복과 덕 있었으며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여 껴잡고 겸하여 큰 명성이 있었습니다.
019_0120_c_13L於曠野城中。 比丘入涅槃, 生來有福德,
守攝身口意, 兼有大名聞。
니구타겁파(尼拘陀劫波)라고 부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 주셨으며 부처님께서 그 바라문을 위하시어 그와 같은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019_0120_c_15L尼瞿陁劫賓,
佛爲作是名, 佛爲婆羅門, 立如是名字。
25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0_c_16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019_0120_c_17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019_0121_a_01L당시 위대한 성문(聲聞)인 장로들이 부처님의 좌편 우편에다 각기 암자와 토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즉,교진여(憍陳如)ㆍ파발기(頗發耆)ㆍ현발구(賢跋溝)ㆍ마하남(摩訶南)ㆍ야사(耶舍)ㆍ나비마라(那毘摩羅)ㆍ우시(牛齝)ㆍ존자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련(摩訶目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ㆍ마하겁빈나(摩訶劫賓那)ㆍ존자 아나율(阿那律)ㆍ존자 난타(難陀)ㆍ존자 겸비라(鉗比囉)ㆍ야사사라(耶舍賖羅)ㆍ구비하(俱毘訶)ㆍ부나구비라(富那拘毘羅)ㆍ구바니니가타비라(拘婆尼泥迦他毘羅) 같은 이들과 그 밖의 위대한 성문들이 각기 암자와 토굴 속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 달 15일에 포살(布薩)하게 되자, 여래께서는 여러 스님들 앞에서 자리를 정하고 앉으셨다. 존자 바기사도 역시 그 모임에 있었는데,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말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네가 말함을 허락하노라.”
존자 바기사가 비사가(毘舍佉)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왔을 때 병을 얻어 병세가 위독하였는데, 부닉(富匿)이 그 존자의 병을 간호하고 있었다. 존자 바기사가 부닉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세존의 처소에 가서 나를 대신하여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세존께 문안하되, ‘병이나 괴로움이 적고 행동거지는 가뿐하셔서 고통이 없으십니까?’라고 하라.”
019_0121_b_01L그리고 부닉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바기사가 병세가 위독하여 곧 열반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그곳에 왕림하십시오.” 여래께서는 잠자코 부닉의 말을 받아들이셨다. 그러자 부닉은 곧 존자 바기사가 있는 처소에 가서 아뢰었다. “화상이시여! 제가 문안을 마치고 나서 세존께 여쭙기를, ‘바기사가 혹시 병세가 위독하여 열반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세존께서는 잠자코 저의 말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따로 자리를 정하신 후 바기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몸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느냐? 음식을 잘 먹기도 하느냐?”
019_0121_b_09L爾時,世尊別敷座坐,告婆耆奢:“汝今身體苦痛爲可忍不?能飮食不?”
바기사가 아뢰었다. “이 고통이 더욱 심해서 낫거나 덜하질 않습니다. 지금 저는 마치 힘이 센 사람이 파리한 사람의 머리털을 잡아당겨서 비트는 것처럼 저의 머리가 아픈 것도 그와 같습니다. 또 소를 잡는 힘센 사람이 칼로 배를 찌르고 그 창자를 베는 것처럼 저의 배가 아픈 고통도 그와 같습니다. 또 수척한 사람을 힘이 센 이가 강제로 잡아다가 그 몸을 지지면 몸이 타는 것처럼 저의 몸이 고통스러움도 그와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열반에 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칭찬하겠습니다.”
본래 술취함과 같다는 것과 네 구절 게송으로 칭찬함 용협과 독한 화살 뽑는 것 니구타겁파가 열반에 들어감 위대한 성문들을 칭찬함 바기사가 열반한 것이었네.
019_0121_b_19L本如酒醉ㆍ四句讚 龍脅ㆍ拔毒箭
尼瞿陁劫賓入涅槃 讚大聲聞
婆耆奢滅盡
25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1_b_2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俱薩羅)에서 유행하시다가 다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이르셨다.
019_0121_b_23L一時佛遊俱薩羅,還至舍衛國祇樹給孤獨園。
019_0121_c_01L당시 극만(極慢)이라는 마납(摩納)이 있었는데, 그의 집안은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참되고 바르며 박식하고 많이 배웠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 외우고 읽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운 것을 가르쳤으며, 들은 것은 지닐 수 있었고, 네 위타(圍陀)의 경전에 대해서는 그 뜻을 통달하였으며, 사라건타론(娑羅乾陀論)과 성론(聲論)과 비가라론(毘伽羅論)과 희소론(戱笑論)과 비타라론(毘陀羅論)의 의취(義趣)와 법구(法句)를 잘 이해했으며, 그와 같은 갖가지 논을 모두 통달하였다.
용모가 단정하며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서 짝할 이가 없었다. 게다가 호족으로 태어난 데다가 부귀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재주와 힘을 믿고 큰 교만심을 내었으며, 부모에게도 공경을 하거나 순종하지 않았고,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와 스승ㆍ어른ㆍ친속에게도 공경을 하거나 예배하지 않았다.
극만 마납은 “부처님께서 구살라로부터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부처님 처소에 오려고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사문 구담께서 나를 대접하면 나는 마땅히 문안을 드리겠지만, 만일 나에게 묻지 않으면 잠자코 돌아오리라.’ 마납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부처님 처소에 왔다.
법을 위해 여기에 왔으면서 얻지도 못하고 돌아가려고 하는가? 여기 오게 된 마음을 칭함으로써 어찌하여 얻으려고 하지 않는가?
019_0121_c_20L爲義來至此, 未得便欲還, 何不使獲得,
稱汝所來心?
019_0122_a_01L 극만 마납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사문 구담께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아시는구나.’ 그리고는 곧 믿는 마음을 내어 부처님 발에 예배하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반드시 예배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으로 족하다.”
근심하거나 괴로운 이를 보면 마땅히 그 괴로움을 없애 줘야 하고 또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두루 다 공양해야 하네.
019_0122_a_15L若見憂惱者,
應爲除諸苦, 亦與其快樂, 普皆應供養。
만약 탐욕과 성냄 끊으며 또 어리석음까지 떠나서 바른 지혜로 해탈 얻고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있으면
019_0122_a_16L若斷貪欲瞋, 幷離愚癡者, 漏盡阿羅漢,
正智得解脫。
그와 같은 훌륭한 사람에게는 교만을 버리고 높은 체하지 말며 마땅히 그이에게 귀의하여 합장하고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리.
019_0122_a_18L於斯上人所, 除慢不自高,
應當向歸依, 合掌而敬禮。
이처럼 세존께서 극만을 위해서 온갖 요긴한 법을 말씀하시니, 그는 후생 몸[後有]을 받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 밖의 자세한 것은 『파라밀사경(波羅蜜闍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019_0122_a_19L爾時,世尊爲極慢說諸法要,乃至不受後有。餘如波羅蜜闍經中說。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122_a_21L佛說是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25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2_a_2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에서 유행하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셨다.
019_0122_a_23L一時佛遊俱薩羅,至舍衛國祇樹給孤獨園。
019_0122_b_01L당시 우갈제사리(優竭提舍利) 바라문이 큰 제사를 마련하려고 7백 마리 황소를 기둥에 매어 두었으며, 암소와 송아지와 암염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갖가지 가축들을 제사하는 마당 여기저기에다 매어 두었으며, 온갖 반찬과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바라문들도 그가 제사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 와서 운집하였다.
바라문은 우보(羽葆) 수레를 탔으며, 입었던 의복은 위아래가 모두 흰색이었으며, 세 갈래진 금 지팡이를 짚고 금으로 아로새긴 물 병을 가졌는데, 그 속에는 깨끗한 물이 가득하였고, 여러 마납들이 좌우를 둘러싸고 다른 나라의 각종 바라문들도 곁에서 수행했는데, 그는 그러한 차림으로 부처님 처소에 와서 문안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큰 제사를 마련하기 위해서 7백 마리 황소와 각종 가축들을 매어 놓았으며, 나아가 다른 나라의 바라문들까지 모두 와서 운집했으니, 준비를 끝내고서 큰 제사를 베풀려고 합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모든 것이 만족하여 남음이 있고 조금도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제사를 주재하여 크게 보시함으로써 복을 구하지만 도리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세 가지 칼을 세우면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데, 괴로움의 원인만 짓기에 또한 괴로움의 과보를 얻으며, 괴로움의 이익을 얻기에 과보를 받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다.
019_0122_c_01L무엇을 세 가지 칼이라고 하는가? 뜻과 입과 몸의 칼이다. 무엇을 뜻의 칼이라고 하는가? 그대가 제사할 적에 뜻의 업이 착하지 못해서 온갖 가축들을 죽이는 것을 큰 제사로 여긴다면, 이것을 뜻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입의 칼인가? 그대가 제사를 지낼 때 ‘내가 내일 마땅히 갖가지 생명을 죽이겠다.’고 하면, 이는 입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몸의 칼이라고 하는가? 그대가 제사할 때 손으로 황소와 여러 축생들을 끌면서 주원(呪願)을 받도록 하면, 이는 몸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또 세 가지 불이 가장 수승하고 가장 미묘하나니, 마땅히 삼가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으로서 그대가 섬기는 삿된 견해의 불이 아니다. 무엇을 셋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공경의 불이요, 둘째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요, 셋째는 복밭의 불이다.
무엇을 공경의 불이라고 하는가? 마땅히 부모를 공양하면서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왜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구할 적에 신명에게 빌고 제사한 후에 자식을 얻었기 때문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수와 피가 화합함으로써 몸을 이루고 태어나고 길러지고 자라났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공경의 불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불[火]은 마땅히 바르게 공양하고 온갖 쾌락으로 받들어서 조금도 모자람이나 괴로움이 없게 해야 한다.
어떤 것을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라고 하는가? 만일 족성자(族姓子)라면 부지런히 노력하여 돈과 재산을 모아서 그 처자와 권속과 종들과 친우와 돕는 이와 모든 친척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이익과 안락을 줌으로써 그들과 함께 괴로움과 즐거움을 같이하나니, 이것을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가?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능히 탐욕을 끊어서 탐욕을 해탈하고, 성냄을 끊어서 성냄을 해탈하고, 어리석음을 끊어서 어리석음을 해탈하면, 그와 같은 사문과 바라문을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데, 위로 모든 하늘에 태어나서 능히 쾌락의 과보를 얻기에 이를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성자는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쾌락을 얻게 해야 한다.
공경의 불과 함께 어울린 불과 복밭의 불 이 세 가지 불에게 제사하여 부지런히 공양한다면 세 가지의 낙을 얻게 되리라.
019_0123_a_03L恭敬俱福田, 此三火應祀, 若勤心供養,
獲得三種樂。
무엇이 세 가지 낙인가? 보시와 계율과 선정을 닦음이네. 그 세 가지의 과보는 인간과 천상과 열반의 낙이네.
019_0123_a_05L云何爲三樂? 施戒及修定,
三種之果報, 人天涅槃樂。
만일 어떤 사람이 일체에 대해서 그 방도와 법을 잘 이해하면 제사하는 그 때에도 그 권속을 잘 기를 수 있으며
019_0123_a_06L若人於一切,
善解於方法, 於祠祀時節, 能養其眷屬。
응공(應供)에게 공양하는 자가 능히 응공에게 공양할 수 있다면 재앙과 환란의 처소를 여의는 것을 마침내 반드시 얻게 되리라.
019_0123_a_07L供養應供者, 能供養應供, 終竟必獲得,
永離災患處。
그때 우갈제사리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곧 오답(烏答) 마납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제사하는 장소에 가서 저번에 제사에 쓰려고 매어 두고 기르던 축생들을 지금 모두 석방해서 물과 풀에다 놓아 주고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잡거나 구속하지 말도록 하라.” 오답 마납이 말하였다. “화상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저는 실행(實行)하겠습니다.”
그는 곧 제사하는 장소에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는 우갈제사리의 지시를 받았으니, 온갖 축생들을 모두 다 석방하여 마음대로 가게 하라”고 하였다. 오답 마납이 제사하는 장소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서 여래께서는 우갈제사리 바라문을 위하여 부처님의 법대로 요긴한 법을 말씀하여 보여 주시며, 가르쳐 주시며, 이롭게 하시며,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계(戒)를 받고 진리를 보기에 이르렀다. (그 밖에 자세한 것은 「돌라사품(突羅闍品)」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019_0123_b_01L마침내 우갈제사리 바라문은 곧 의복을 정돈하고는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디 내일 여러 대중과 함께 제사하는 마당에 오셔서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의 청을 받아 주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아울러 자기의 청을 받아 주시는 것을 보자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바라문은 제사하는 곳에 가서 밤새도록 갖가지 음식과 나아가 깔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물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래께서는 대중과 함께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제사하는 마당에 가셔서 대중 스님 앞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바라문은 부처님과 대중이 고요히 좌정하신 것을 보고는 손수 깨끗한 물을 돌리고 갖가지 반찬과 음식을 차려 놓고 잡수시는 것이 끝나자 발우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세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법문 듣기를 원하였다.
그가 또 물었다. “착하고 훌륭한 장부는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처님께서 또 대답하셨다. “역시 달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019_0123_b_22L又問:“云何觀察善勝丈夫?”佛復答曰:“亦如觀月。”
그러자 마납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착하지 못한 장부에 대하여 달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019_0123_b_23L爾時,摩納復白佛言:“云何不善丈夫觀之如月?”
019_0123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지 못한 장부는 16일 날의 달빛이 차츰차츰 줄어들면서 둥근 것이 이지러지다가 끝내는 모두 줄어들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불법에서 믿는 마음으로 능히 계율을 받아 지니지 않고, 경을 외우고 읽거나 보시를 닦는 것을 조금은 하더라도 그 후에는 게으르고 부지런하지 않아서 차츰 믿는 마음을 버리고 계율을 범하며, 다시는 보시하지 않고 악한 벗을 가까이하며, 절에 가서 법을 받아 듣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법을 듣지 않으므로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만 지으며, 나쁜 짓을 짓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면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악한 장부(丈夫)는 마치 저 달이 차츰차츰 줄어들다가 아주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마납이 또 물었다. “‘착하고 훌륭한 장부를 대해서도 달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019_0123_c_10L又問:“云何善勝丈夫亦復如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초생달의 광명이 치성하여 차츰차츰 더 증가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아주 둥근 것과 같은 것이다. 불법 중에서 능히 믿는 마음을 가지고 계율을 수행하며, 많은 학문을 닦고 보시를 행하며,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닦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불법 중에서 순일하게 믿는 마음을 얻어서 계율을 굳게 지키고, 많은 학문을 잘 닦으며, 능히 보시하여 인색하지 않으며, 바른 소견을 갖추면 믿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님과 학문을 닦음과 보시를 하는 것이 차츰 더 증가한다. 이러한 착한 장부는 몸과 입과 뜻이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온갖 착한 것을 갖추어 닦으니, 이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목숨을 마친 후에는 천상에 나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장부도 역시 달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비유컨대 저 둥근 달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원만한 광명이 찬란히 빛나면 온갖 별이 비추어 가리듯이
019_0123_c_20L譬如盛滿月, 處於虛空中, 圓光甚暉曜,
映蔽於諸星。
또한 믿음을 갖춘 사람도 계율과 배움으로 탐냄과 질투 버리니 온갖 질투하는 자에 대해서 달이 뭇 별의 빛을 가리듯 하네.
019_0123_c_22L亦如具信人, 戒聞捨貪嫉,
於諸嫉妒者, 如月蔽衆星。
019_0124_a_01L 승가라 마납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떠나갔으며,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123_c_23L時僧伽羅摩納聞佛所說,踊躍而去。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26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4_a_0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019_0124_a_03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당시 생청(生聽)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즉, 세존께서 ‘다만 나에게만 보시하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보시하지 말며, 다만 나의 제자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제자에게는 보시하지 말 것이니, 만약 나와 나의 제자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제자에게 보시하면 과보를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실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는 말을 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실로 허망한 말이며 나를 비방하는 말이다. 나는 전혀 그러한 말을 하지 않았다. 만일 그와 같이 말하면 반드시 두 가지 힐난을 당할 것이니, 첫째는 그럴 리 없다는 힐난이요, 둘째는 받는 이가 손실을 당한다는 힐난이다. 만약 그와 같이 말한다면 큰 손실이 있게 되어서 몸이 망가지거나 목숨을 마치면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질 것이다. 그대는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발우를 씻은 물조차도 나는 오히려 ‘벌레와 개미에게 그 물을 보시하면 큰 복의 과보를 얻는다’고 말했는데, 하물며 나에게 보시함이랴. 실제로 한 말은 ‘계율을 지니는 이에게 보시하면 복을 얻는 것이 매우 많고, 계율을 깨뜨린 이에게 보시하면 복을 얻는 것이 매우 적다’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당신을 위하여 게송을 말해 줄 테니, 당신은 대중 속에서 이 게송을 말할 수 있겠는가?” 늙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019_0124_b_11L佛告之言:“我今爲汝說偈,汝能於大衆中說此偈不?”答言:“我能。”
그러자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9_0124_b_13L爾時,世尊卽說偈言:
아들을 낳고서 아주 기뻐하며 그를 위해 재산을 모으고 각각 모두 장가를 들였는데 문득 나를 버리고 내쫓는구나.
019_0124_b_14L生子太歡喜, 爲之聚財寶, 各爲娶妻子,
而便驅棄我。
이들은 효심과 인정 없어서 입으로만 부모를 위한다고 말할 뿐 저 나찰의 아들과 같아서 죽을 무렵엔 나를 버리는구나.
019_0124_b_16L此等無孝慈, 口言爲父母,
如彼羅剎子, 垂死驅棄我。
마치 말 구유와 마판 안에 보리와 곡식이 가득한데도 젊은 말들이 양보하는 마음이 없어 늙은 말을 쫓고 밟는 것과 같네.
019_0124_b_17L譬如馬槽櫪,
滿中置穀䴬, 少馬無敬讓, 驅蹹於老者。
이 자식들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를 버리고 구걸하게 만드니 지팡이가 나를 사랑함만 못하네.
019_0124_b_18L此子亦如是, 無有愛敬心, 棄我使行乞,
不如杖愛我。
나는 지금 이 지팡이 가지고 개와 염소와 말을 다루니 다닐 적엔 나를 도와 주고 어둔 밤에는 나의 벗이 되네.
019_0124_b_20L我今捉此杖, 御狗及羊馬,
行則佐我力, 闇夜爲我伴。
물을 짚으면 깊고 얕음 알아내고 자빠지면 지팡이를 붙잡고 일어나서 지팡이가 많이 배운 것보다 나으니 이 지팡이만이 나를 아껴 주고 생각하네.
019_0124_b_21L指水知深淺,
若趺扶杖起, 蒙杖除多聞, 是杖愛念我。
019_0124_c_01L 바라문은 그 게송을 받아 들고 읽고 외우기를 능란하게 하였다. 그때 일곱 아들이 큰 모임 속에 있었는데, 그 바라문은 대중 속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 주겠습니까?” 대중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바라문은 곧 위에서 말씀하신 게송을 말하였다. 그러자 일곱 아들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일어나 아버지를 안으면서 각각 인사를 하고 난 후,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돌아가서 본래 앉던 자리에 앉히고, 여러 아들들이 각기 두 장의 좋은 담요를 아버지께 올렸다.
그리고는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집에서 온갖 호강과 안락을 얻게 된 것은 바로 당신의 은혜입니다. 우리 경서(經書)에서 말하기를, ‘아사리의 것이면 마땅히 아사리의 몫을 주어야 하고, 화상의 것이면 마땅히 화상의 몫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당신은 지금 바로 저의 아사리이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이 옷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옷을 받으시니,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뛸 듯이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019_0124_c_13L爾時,世尊以憐愍故,爲受是衣。婆羅門踊躍,從座而起,歡喜而去。
26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4_c_15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019_0124_c_16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세존께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는데, 어떤 늙은 바라문이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갖고 걸식하다가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내가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갖고서 남에게 걸식하는데, 당신도 또한 걸식하니, 나와 당신은 모두 비구입니까?”
반드시 남에게 걸식하는 것만으로 비구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비록 재가(在家)에 있더라도 범행을 바르게 닦으며
019_0124_c_21L不必從他乞, 得名爲比丘。 雖具在家法,
正修於梵行。
복의 과보와 나쁜 과보에 대해서도 모두 다 끊고 집착 두지 않으며 온갖 번뇌를 다 끊어 없애면 이것을 비구의 법이라고 칭한다네.
019_0124_c_23L福果及惡報, 俱斷無相著,
乾竭諸有結, 是名比丘法。
019_0125_a_01L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125_a_01L佛說是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26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5_a_02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019_0125_a_03L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林。
당시 왕사성 북쪽에 밭을 가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두라사(豆羅闍)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그가 있는 곳으로 가셨는데, 그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즉시 부처님 처소에 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농사 짓는 사람으로서 밭을 갈고 심고 먹기 때문에 남에게 구걸하지 않습니다. 구담이시여! 당신도 지금 또한 갈고 심으면서 생활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갈고 심으면서 먹느니라.”
김매는 것으로 착한 마음 삼아서 좋은 곡식을 크게 수확하나니 그 결과 편안한 곳에 나아가서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네.
019_0125_a_17L芸耨爲善心, 大獲善苗稼。
趣向安隱處, 可以剋永安。
나의 밭 가는 것도 그와 같아서 단 이슬의 과보를 얻게 되며 삼계를 뛰쳐나 여의어서 온갖 존재[有]에 들어오지 아니하네.
019_0125_a_18L吾所耕如是,
故得甘露果。 超昇離三界, 不來入諸有。
바라문이 말하였다. “당신께서 밭을 가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수승하게 간 것입니다.” 바라문은 게송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자, 발우에다 음식을 가득 담아 와서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으나 부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 밖의 자세한 것은 위의 두라사 바라문이 말한 것과 같으며, 나아가 후생의 몸[後有]을 받지 않았다.)
019_0125_b_01L당시 범천(梵天)이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앙가국(央伽國)에서 유행하다가 첨파(瞻波)까지 와서 건가(健伽)못 가에 이르렀다. 그는 훗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첨파성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다가 본가(本家)에 이르렀다. 그때 존자 범천의 어머니는 문 안에서 소(蘇)와 쌀과 참깨를 구덩이 속에 던지면서 범천에 태어나기를 기원하였다. 하지만 존자 범천이 문에 서 있었는데도 어머니는 알지 못하였다.
불타는 바로 수승한 명호로서 그 이름은 나루터를 건네 준다는 뜻인데 부모께서 그 이름 지었으므로 당신을 부처라고 이름한 것입니까?
019_0125_c_04L佛陁是勝名, 名生津濟義, 爲父母制名,
故名汝爲佛。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019_0125_c_06L爾時,世尊以偈答曰:
이제 내가 그대를 불쌍히 여겨서 그러한 명칭이 있게 된 것을 마땅히 분별하여 말해 줄 터이니 그대는 지금 잘 들을지어다.
019_0125_c_07L今我哀愍汝, 當爲分別說, 所以有是稱,
汝今善諦聽。
부처는 과거의 세상을 알며 미래의 세상도 또한 알고 온갖 행(行)의 무너져 소멸하는 모양도 현재에 두루 다 아네.
019_0125_c_09L佛知過去世, 未來世亦然,
現在普悉知, 諸行壞滅相。
온갖 법을 밝게 통달하여서 닦아야 할 것은 다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은 모두 끊었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019_0125_c_10L明達了諸法,
應修者悉修, 應斷盡斷除, 以是故名佛。
전체적인 모양과 개별적인 모양을 분별하여 완전히 알고 이해해서 온갖 것을 모두 알아 보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019_0125_c_11L摠相及別相, 分別解了知, 一切悉知見,
是故名爲佛。
바라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겁(劫) 동안 관찰하여도 온갖 법칙의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네.
019_0125_c_13L婆羅門當知, 無量劫觀察,
諸行之苦惱, 受生必終沒。
티끌을 멀리하고 번뇌를 떠나며 독의 화살인 번뇌 뽑아 버리고 나고 죽음의 맨 끝까지 다했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019_0125_c_14L遠塵離垢習,
拔毒箭煩惱, 得盡生死際, 以是故名佛。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19_0125_c_15L婆羅門聞佛所說,歡喜奉行。
26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5_c_16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에서 유행하다가 사림(娑林) 마을에 이르셨다.
019_0125_c_17L一時,佛在憍薩羅國遊行,至沙林聚落。
그때 세존께서는 가시는 것을 멈추고는 어느 나무 밑에서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생각을 모으고 계셨다. 당시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의 성은 연씨(煙氏)였다. 그는 부처님 뒤에서 따라오다가 부처님 발자국 속에 천 개의 바퀴살 모양이 있는 것을 보고는 전에 없던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면서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런 발자국이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마땅히 어떤 사람의 발자국인지 찾아보아야겠다.’
019_0126_a_01L이렇게 생각한 그는 그 발자국을 따라 부처님 처소에 와서 거룩하신 얼굴을 우러러보았는데, 그 얼굴빛은 평화롭고 기쁨에 차서 보는 이마다 믿고 공경할 만했으며, 온갖 모습도 고요하며 안정되고 마음과 뜻도 안정되었으며, 최상으로 조복된 마음은 적멸하고 고요했으며, 몸은 순금의 빛깔로서 마치 금으로 된 누각과 같았다.
019_0126_b_01L
극만과 우갈제사리 바라문 승가라와 생청 바라문과 아주 늙은 이와 비구와 심고 농사 지음과 범천과 불타와 바퀴 모양인 그것이 열 번째이네.
019_0126_b_01L慢ㆍ優竭提 生聽ㆍ極老 比丘ㆍ種作及梵天 佛陁ㆍ輪相爲第十
26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126_b_03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019_0126_b_04L一時,佛在王舍城迦蘭陁竹林。
당시 세존께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화성(火姓)인 달뢰수(達賴殊) 바라문의 집에 이르는데, 화성 달뢰수는 문 안에서 불에게 제사하다가 부처님께서 문에 이르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말하였다. “거기 멈추시오! 전타라(旃陀羅)는 여기 오지 마시오.”
바라문은 그 게송을 듣고 칭찬하면서 말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크게 정진하시는 이시여! 실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위대하신 모니(牟尼)시여, 그 종성을 가지고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 아니며, 그 종성을 가지고 전타라라고 할 것이 아니니, 수행을 능히 잘하면 바라문이 되고 나쁜 행위를 하면 전타라가 됩니다.”
그래서 바라문은 도로 부처님 처소에 와서 아뢰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제가 출가하여 도를 닦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면서 곧 구족계를 얻게 되었다. 그는 출가의 법대로 고요한 곳에서 혼자 부지런히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