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5백 사문과 함께 월지국[越祇]을 유행하시다가 고거성(鼓車城) 밖에 이르시어 나무 밑에 앉으셨다. 이웃 마을에 호귀(豪貴)하고 현명한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이름이 비가사(費迦沙)였다. 그는 경서(經書)와 성수(星宿)의 운행(運行)과 속도(速度)를 환히 깨달아 묻는 것에 모두 대답하였다. 제자 5백 사람이 있었는데, 제자 중에 첫째 제자의 이름이 아발(阿颰)이었다.
아발이 스승에게 물었다. “지금 부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이 모두 그 덕을 칭찬하며 그 명성이 천지(天地)를 덮고 있습니다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019_0238_b_08L阿颰問師言:“今有佛來,人稱其德,名蓋天地,不識斯何人也?”
비가사가 말하였다. “나는 그가 석가족(釋迦族) 국왕의 태자로서 스승도 없이 일어나 스스로 경을 지어 교화(敎化)한다고 들었다.”
019_0238_b_09L費迦沙言:“吾聞是釋種國王太子,厥興無師,自著經化。”
아발이 말하였다. “스승이 없으면서도 명예가 어찌 그렇게 훌륭합니까? 또 국왕의 아들이면 흔히 교만하고 음탕하며 향락을 즐길 텐데, 어찌 기꺼이 길에 다니면서 뜻을 낮추고 걸식하며 사람들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사람이 바로 진인(眞人)이 아닙니까?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가셔서 그의 도(道)와 덕(德)을 살펴 주십시오.”
비가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나는 세상에서 호귀하고 현명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재주가 많지만 그는 새로 출가한 사람이니, 그가 와서 나를 찾아뵙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지 내가 가는 것은 옳지 않다.”
019_0238_b_14L費迦沙言:“不然,我世豪賢,聰睿多才,彼爲新出,義當來謁,吾不宜往。”
아발이 말하였다. “저는 천제석(天帝釋)과 제7 범천(梵天)도 모두 내려와 받들어 섬기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모두 5통(通)1)을 얻어 몸이 가볍고 날 수 있으며, 멀리까지 꿰뚫어 보고 막힘 없이 들으며 사람들의 뜻을 알며, 또한 태어나기 이전의 온 곳과 죽어서 가는 곳까지도 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하늘까지도 덮을 수 있는 스승이니, 어찌 기꺼이 와서 찾아뵈려 하겠습니까?”
019_0238_c_01L비가사가 말하였다. “경에서, ‘제왕이 아들을 낳아 32상호(相好)를 지니면 곧 비행황제(飛行皇帝:전륜성왕)가 되어 온 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고, 저절로 칠보가 생기리니,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요,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옥녀보(玉女寶)요, 다섯째는 신주보(神珠寶)요, 여섯째는 이가보(理家寶)요, 일곱째는 현장보(賢將寶)이다.
마땅히 천 명의 아들을 두는데, 모두 재주 있고 총명하며 용감하고 무예를 지녀 한 사람이 천 명을 당해 낼 수 있으며, 군사와 무기2)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 세상이 태평할 것이다. 만일 천하를 버리면 마땅히 저절로 부처가 되어 무위도(無爲道)로 교화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여 도를 증득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그이가 과연 그러한 분일까? 네 일단 가서 살펴보되, 이러한 상호가 있으면 그는 틀림없는 부처이리니, 내 마땅히 그분을 섬기겠다.”
아발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동지들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스승이 말하였다. “매우 훌륭하다.” 곧 5백 제자와 함께 가서 모두 수레에서 내려 부처님께 인사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자리에 앉도록 하시자 5백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는데, 유독 아발만이 좌우로 오가면서 부처님의 상호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부처님께서 그의 뜻을 아시고 일어나시어 함께 거니시며 아발이 서면 부처님도 서시고 아발이 앉으면 부처님도 앉으셨다.
아발이 이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본래 어떠한 종류의 도를 받들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으셨으며, 발우는 왜 지니십니까?”
019_0238_c_11L阿颰乃問佛言:“本事何等道?除鬚髮、披袈裟、持鉢何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도를 구하여 온 이래로 지내 온 세월이 하도 오래 되어 기억하여 말할 수 없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보살도를 행하며 섬긴 스승과 벗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수염과 머리를 깎은 것은 이 몸을 마칠 때까지 계(戒)로 삼아 탐애를 버리고, 다시는 아름답게 꾸미지 않아 사람들이 나에게 애욕을 두지 않도록 하고, 나 또한 사람들에게 애욕을 두지 않도록 한 것이요,
가사는 법복(法服)으로서 옛날 성인의 표지와 같이 번뇌의 결박을 풀고 다시는 속세의 생각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요, 발우는 응기(應器)이니, 도를 닦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것을 사용하여 쓰기에 알맞나니, 몸을 절제하고 검약하고 살피며 옳은 것이 아니면 받지 않으니, 이 모두가 무위의 청정한 표상이다. 내가 지금 부처를 이루어 천하의 스승이 되었으니, 그대는 마음대로 묻고 싶은 것을 거리끼지 말고 물어라.”
아발이 말하였다. “저희들이 섬기는 스승인 비가사는 대대로 총명하고, 명성이 멀리까지 높습니다. 또 범종(梵鐘:브라만)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훌륭합니다. 천하에는 비록 신분이 귀하여 왕이 되었다지만 어질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종족만은 유독 살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019_0239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본래 사람들이 악한 살상을 하기 때문에 부처의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했지만 그대들 범지(梵志) 종족은 다만 입으로는 인자함을 귀히 여긴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비록 죽이지 않으나 마음에는 모두 살상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이제 나는 부처가 되어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여 모든 것을 죽이지 않으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죽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의(仁義)로써 교화하고 있다.”
아발이 여쭈었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처자를 버리시고 스스로 종족과 후사를 끊으시니, 우리 스승이 대대로 계승하는 것만 못한 듯합니다.”
019_0239_a_05L阿颰問言:“今佛棄捐妻子,自絕種嗣,殆不若我師,世世繼嗣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하 사람들의 종성(種姓)3)이 본말(本末)이 각각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전생에 나의 아들이었던 적이 있었고, 나 또한 많은 사람의 아들이었던 적이 있었다. 만나면 곧 이별이 있고 종성도 무상(無常)하며, 혹 어느 때에는 원수였다가 서로 인연을 따라서 친족이 되기도 하고, 혹 어느 때에는 친족이 다시 원수가 되기도 하니, 인연으로 헤어지고 모이는 것이 모두 환(幻)과 같다.
‘사람이 사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4) 근심은 이렇게 길구나. 내가 왕이 되어 아들을 얻고자 하여 이미 아들을 두었는데, 도리어 서로 치려고 하니, 후사(後嗣)가 있어도 이와 같다면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는 차마 죄없는 이들을 죽이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다만 집을 버리고 사문이 되어야겠구나.’
마리는 마음에 해탈을 얻어[意解] 이에 끝까지 정진하였다. 이와 같다. 아발이여, 설령 아들이 현명하더라도 아버지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아들이 물리칠 수 없으며,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 나쁜 짓을 하여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아들이 대신할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항상 자비심(慈悲心)으로 사람과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어 온 세상이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도록 하는 것[度脫]이다.”
“지금 그대의 조모는 여종의 아들을 취하여 뒤를 이었는데, 참되고 존귀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발이 잠자코 있었다. 5백 제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말하였다. “구담(瞿曇) 사문은 어찌하여 우리 종족을 헐뜯으십니까? 아발의 재주와 지혜 또한 부처님과 서로 논란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들 잠자코 있으라. 만일 그의 재주와 지혜가 그와 같다면 마땅히 스스로 변론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의 할아버지에 대해 세 번이나 물으셨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019_0239_b_14L佛言:“皆嘿然。若其才智,當自辯之。”佛問其祖,至三無對。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금강저를 들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거듭 너에게 물으시는데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느냐?” 아발이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실로 부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019_0239_b_15L金剛力士,擧大杵言:“佛重問汝,何故不對?”阿颰懼曰:“實如佛言。”
5백 사람들이 말하였다. “부처님은 지혜가 밝으십니다. 아발의 모친은 진실로 석가족의 여종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부터 다시는 공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019_0239_b_17L五百人言:“佛聖智明,阿颰母者,信釋家婢。我等從今,請不復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혹 어머니는 천하지만 아들은 현명하고 존귀한 이가 있다. 아발은 현명한 사람이니 헐뜯지 말아야 한다. 만일 범지 종족이 찰리 종족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장성하면 아버지의 가계(家系)를 따라 배우겠는가, 어머니의 가계를 따라 배우겠는가?” 모두가 말하였다. “마땅히 아버지의 가계를 따라 배울 것입니다.”
019_0239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면 어머니가 천한들 무슨 모자람이 있겠는가. 만일 아들이 장성하여 경(經)을 분명하게 알고 행실이 높아 아버지보다 뛰어나다면 그대들은 더욱 그를 공경해야 한다. 만일 범지의 딸이 찰리의 부인이 되어 아들을 낳아 장성하여 그가 외가가 현명한 것을 알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고 아버지의 가계만을 스스로 본받아 화살을 쏘아 사냥하며 산 목숨을 죽인다면 그대들은 마땅히 공경해야 하겠는가?” 모두가 말하였다.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우리의 종족은 존귀하니 체포해서는 안 된다’고 거부하는 말을 하지 않는가?” “현재 죄가 있는데 어떻게 종족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019_0239_c_09L“汝何不拒,言:‘我種貴,不應收捕?’”曰:“現有罪,何得言種!”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부처가 되어 백성들을 인(仁)과 효(孝)로 이끌며 바른 말로 알려 주되, 항상 지니고 있는 마음[態]인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제거하도록 하며, 나쁜 악행을 저지르는 모든 이들에게는 내가 곧 가르쳐서 살생ㆍ도둑질ㆍ음행(婬行)ㆍ거짓말[妄語]과 음주ㆍ제사와 삿된 것을 섬기지 않도록 한다.
덕이 있어야 하늘의 도움[祐]이 이르고, 살생으로 복을 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천하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임금은 부처의 경과 계율을 듣고 모두 나쁜 짓을 스스로 끊고 나쁜 짓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계율을 지키다가 죽으면 넋이 하늘에 오르고, 만일 마음이 청정함에 이를 수 있으면 곧 사문의 네 가지 도[四道]를 얻으니, 첫째는 구항(溝港:수다원)이요, 둘째는 빈래(頻來:사다함)요, 셋째는 불환(不還:아나함)이요, 넷째는 응진(應眞:아라한)이다.
019_0240_a_01L내가 도를 구하여 온 이래로 지나 온 겁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지만 태어날 때마다 발원하였다. ‘바라건대 애욕을 버리고 사문의 행을 닦고 한 가지만을 옳다고 함도 없고[無適] 모두가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없으며[無莫], 천하 사람 중의 현명한 군자(君子)들이 부처의 경과 계율을 듣고 모두 받들어 행하지 않는 이가 없고,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뒤에 모두 후회하며, 뜻을 억제할 수 있어 다시 탐욕이 없어 곧 나고 죽고 근심하고 통곡하는 길을 끊기를 발원합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세상[天下]은 무상하고 사람은 물거품과 같아서 한 번 이루어졌다가 한 번 흩어지니, 스스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019_0240_a_04L不追相戀焉,得離苦痛。天下無常,人如水泡,一成一壞,莫能自存。”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물으셨다.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계로 삼도록 하는가?”
佛問阿颰:“汝師以何敎戒?”
아발이 대답하였다. “제 스승은 사람을 죽이지 말고, 소를 죽이지 말고, 금과 은을 훔치지 말고, 스승이나 제자의 부인과 음행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고, 나이 48세가 되어야 아내를 얻을 수 있는 것을 계로 삼고 있습니다. 제 스승은 사람들이 이 여덟 가지 계를 모두 지키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부처님의 계는 또 어떠한 뜻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듣기 좋아하는 이는 들어라. 만일 족성자(族姓子:善男子, kula-putra)가 와서 스스로 ‘부처님의 계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의 능력에 따라 계를 준다.
019_0240_a_10L佛言:“樂聞者聽。若族姓子來自陳說,貪樂佛戒,我隨其能而授與戒。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도를 닦으려고 하는 이들을 청신사(淸信士)라고 하며, 마땅히 5계(戒)를 지켜야 한다. 첫째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날짐승ㆍ들짐승과 꿈틀거리는 무리들까지도 몸으로 상해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이 그들에게 무기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 인자한 생각을 하고, 말로 죽이라고 해도 안 된다.
둘째는 훔치지 않는 것이니, 남의 재물을 탐내거나 손해를 입히지 말고,7) 말ㆍ저울ㆍ자로 잴 때 규(圭:6개의 낟알의 양)ㆍ수(銖 : 한 냥의 1/24)ㆍ푼[分]조차도 속이지 말고, 남을 습격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올바름[義]에 두고 입으로도 남의 것을 취하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019_0240_a_15L二不偸盜,貪殆人財,欺斗秤尺,如圭銖分,不得侵人,心存于義,口不敎取。
셋째는 음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남의 부녀자를 범하지 말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말고 좋은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는 예(禮)와 금계(禁戒)를 닦고 말로도 법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019_0240_a_17L三不好欲婬犯人婦女,不觀華色,不聽好音樂,心修禮禁,言不失法。
넷째는 거짓말[妄語]을 하지 않는 것이니, 남의 죄를 참소하지 말고, 말할 때가 된 후에야 말하고, 말은 반드시 성실하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도 누설하거나 경솔하지 않도록 하고, 입으로 칭찬하거나 헐뜯지 말아야 한다.
019_0240_a_19L四不妄語,譖入人罪;時而後言,言必誠信;心不漏慢,口無毀譽。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감정에 따라 술 주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도 좋아하지 말고 입으로 맛보지 말아야 한다. 술에 스물여섯 가지의 허물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청신사의 계율이다.”
019_0240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사람들을 부른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스스로 와서 공손히 계 받기를 청하기에 가르침을 펴서 악을 버리고 선에 나아가도록 하였다.
019_0240_a_23L佛言:“我不呼人,人自來請,敬受戒,轉敷敎,去惡就善。
천하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사문이 되려고 할 때마다 나는 먼저 묻는다. ‘무슨 인연으로 깨달으려고 하는가? 사람의 아들이라면 마땅히 효도로써 공경하고 부모가 편안하도록 봉양에 힘써야 하지만, 도를 닦고자 하면 마땅히 부모에게 알리고, 부모가 승낙한 후에야 사문의 계를 말할 것이다. 2백50계(戒)8)를 종신(終身)토록 청정하게 지키고, 중도에서 그만두지 말아야 하니,공양하는 이의 은혜를 저버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 사람이 만일 진실로 간청하고 믿음과 뜻이 변하지 않고 법과 계율을 받들 만하면 비로소 계를 준다. 사문의 계는 자비와 사랑을 근본으로 삼아 꿈틀거리는 무리까지도 해치거나 죽이지 않으며, 사람과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는 것이 갓난애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하며, 또 힐책하거나 소송으로 남에게 올바름을 구하려 하지 않고, 항상 부모와 스승과 벗의 은혜를 생각하며, 정진하여 도를 구하여 부모를 제도하려고 해야 한다.
사문은 부인과 자손을 두지 않으니, 여인들을 막고 멀리하며 욕정을 금하고 막아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자를 보더라도 눈으로라도 맞아들였다가 보내지 말고 늙은 여인은 어머니로 보고, 젊은 여인은 누님이나 여동생과 같이 여겨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여도 마음이 그치지 않으면 마땅히 오로(惡露)를 관(觀)하여 음행을 물리쳐야 한다. 음행으로 나고 죽음이 생기나니, 모두 어리석은 애욕(愛欲)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문은 거짓말, 꾸미는 말[綺語], 남의 죄를 참소하는 말을 하지 않고 여실(如實)하게 보고 듣고, 옳지 않은 것이면 전하지 않으며, 다투는 이들에게는 양쪽에 훌륭한 것을 말해 주어 화해시키고, 귓속말[徐言]은 마땅히 그만두어야 하고9) 남의 사사로운 일은 퍼뜨리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시를 읊고 노래하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장난하며, 광대에 대하여 논란하지 않고,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고 사유하며, 전에 배운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019_0240_b_20L沙門不得吟詠歌曲、弄儛調戲及論倡優,當勤精思溫故知新。
사문이 말하는 것은 그 말이 반드시 법과 스승의 가르침에 합치해야 하고, 듣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지 않으며, 새벽과 밤에 경을 독송하여 잘못하지 않도록 하고, 도(道)의 추요(樞要)를 정성스레 수행하여 많은 청정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남들에게 설법할 때에는 이치와 뜻에 합치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019_0240_c_01L사문은 좋은 평상에 편히 눕지 않고, 옷에 아름다운 무늬를 넣지 않고, 먹을 때에도 맛에 집착하지 않으며, 금ㆍ은ㆍ붉은색ㆍ검은색 그릇은 사용하지 않고 다만 질그릇이나 철(鐵)로 된 발우를 사용해야 한다.
019_0240_c_02L沙門不得安臥好牀,衣不文綵,食不著味,不用金銀朱漆之器,但應瓦鐵之鉢。
사문은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즐기거나 맛있는 것 먹기를 생각하지 않으며, 약(藥)이 든 술을 마시거나 술집에 갈 수 없다. 사문은 모든 꽃과 향을 몸에 바르거나 향을 피워 냄새가 의복에 스미게 할 수 없으며, 계율을 지킬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문은 노비를 사서 부리거나 하인을 빌리지 않아야 하고, 혹시 다른 사람이 보내 주더라도 한 사람도 받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여섯 가지 가축을 기르거나 수레나 말을 타고 마음껏 즐기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쌀과 곡식을 저장하지 않아야 하고, 아침마다 걸식하되 일곱 집을 넘기지 말고, 한 집에서 얻지 못하면 두 번째 집으로 가고 일곱 집을 모두 돌아도 얻지 못하면 다만 물만 마셔야 한다. 사문이 마을에 들어가면 마땅히 새들이 먹다가 배부르면 버리고 떠나 남은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먹을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또한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집을 버렸으니 편안히 머물기를 생각하지 않고 좋은 집을 그리워하지 않고, 오직 산ㆍ물가ㆍ나무 밑에 머무를 뿐이다. 사문은 장사하여 이익을 구하거나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한지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농막을 짓고 과수원과 밭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거나 씨앗을 심고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좋은 땅ㆍ물ㆍ향ㆍ꽃에 대하여 말하지 않아야 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직 도만 생각하고, 나머지 것은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나라ㆍ읍ㆍ마을의 좋고 나쁨과 높고 낮음에 대하여 의논하거나 말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도반의 가업ㆍ밭ㆍ집ㆍ식량ㆍ의복ㆍ음식 중에 저것은 있고, 이것은 없다는 등의 평론을 하지 않아야 한다.
019_0241_a_01L사문은 축생의 모양새가 좋고 나쁜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하니,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요, 도와 법다운 말이 아니다.
사문은, 경을 이해하였다고 자찬(自讚)하고 저 사람은 통달하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뽐내며 현명한 체하지 않아야 하고, 자랑하거나 잘난 체 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법을 강설할 때 나는 경에 대하여 막힘이 없고 너는 경에 대하여 장애가 있으며, 나의 계행은 청정하고 너의 계행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며, 나의 스승은 현명하고 너의 스승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니, 부처의 경은 하나로 통하여 그 귀취(歸趣)가 둘이 없으며, 뜻을 크게 갖고 스스로를 대적할 뿐, 비방도 칭찬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대대로 훌륭한 종족이고, 너의 종족은 외롭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고, 또 스스로 아무개와 함께 강설한 적이 있는데, 나만 못하더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서로 아무개는 좋은 평상ㆍ걸상ㆍ이불ㆍ침구가 있고, 또 아무개는 해지고 거친 것만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고,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수염을 다듬거나 곱고 부드러운 것을 걸칠 것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장자(長者)들의 싸움과 천한 사람과 축생들의 싸움을 구경하지 않아야 하고, 그것을 흉내내어 상대방에게 주먹을 가하지 않아야 하고, 저포(摴蒲:주사위를 던져서 하는 도박의 일종)ㆍ장기ㆍ바둑 등 모든 놀이를 보고 흉내내거나 게을리 누워 먹을 것을 꾀하지 않아야 하며,
아무 지방, 아무 고을에 이르는 것을 생각하거나 그곳에서 이곳까지 돌아오는 길과 리(里) 수를 계산하지 않아야 하며, 남녀의 의원 노릇과 소ㆍ말의 의원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하며, 사람에게 토해야 한다, 토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아야 하며, 무기ㆍ탄환ㆍ도박 등을 익히며 희롱하지 않아야 하며, 가난하고 부유함, 귀하고 천함, 유상(有相), 무상(無相)의 상(相)을 보는 것과 여섯 종류의 가축의 생김새의 상을 보지 않아야 하며, 수재와 가뭄, 재해와 변고, 그 해의 풍작과 흉작을 쳐보지 않아야 한다.
사문은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아야 하고, 의복과 음식이 거칠고 해져도 마음에 한탄하지 않고, 발우는 항상 왼쪽 옆구리 아래에 차고 어느 곳에 가더라도 굶주림과 추위를 근심하지 않고, 새가 날개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몸에 항상 발우를 지니고, 입으로는 함부로 먹지 않고, 6정(情:6根)을 항상 단속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올라오지 않도록 하고, 몸의 괴로움을 한탄하지 않고,
019_0241_b_01L 항상 경과 계율을 지키기를 발원하고, 눈으로 색(色)을 보려고 하지 않고, 귀와 코ㆍ입ㆍ몸도 또한 좋고 싫은 것에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음식을 조절하고 몸을 단속하여 굶주리지도 배부르지도 않게 하고, 누워서 몸을 쉬려고 할 때 잠이 들더라도 오래 자지 않아야 한다. 뜻을 높고 맑고 장원하게 하여 항상 니원(泥洹:열반)에 두어야 하니,
마치 효자가 일찍 부모를 잃고 슬피 통곡하고 그리워하여 잠시도 잊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문이 뜻을 지키고 도(道)를 수행하는 것이다. 앉으면 곧 고요히 전일하게 사유하고, 일어서면 읽고 외우며 자나깨나 정진하여 계행에 한가할 틈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불제자이다.”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계가 2백50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대강 말했을 뿐이다. 사문은 뜻을 거두어 방일하지 않게 하고 고요한 곳에 한가로이 머물며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 지혜로 나아가며 항상 자비한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누워 잠자거나 탐욕의 마음을 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믿고 다시는 의혹이 없게 하여야 나한(羅漢)을 증득한다.
나한은 이미 진리에 합한 사람[應眞]이니, 비유하면 사람이 항상 가난하여 빚을 지고 살다가 돈벌이를 하여 큰 이익을 얻어 마침내 기뻐하는 것과 같고, 또 죄를 지은 사람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훌륭한 장자가 방편(方便)을 써서 감옥에서 나오게 하는 것과 같고, 또 종들이 해방되어 양민이 되는 것과 같고, 또 여러 해 동안 병들어 있다가 치료하여 병이 낫는 것과 같고, 또 상인이 험난한 길에서 귀중한 재물을 얻어 돌아오는 것과 같으니,
무엇을 5음이라 하는가? 첫째는 색(色)이요, 둘째는 통(痛:受)이요, 셋째는 상(想)이요, 넷째는 행(行)이요, 다섯째는 식(識)이니, 이 다섯 가지가 사람을 덮어 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문은 스스로 이것을 사유하여 무상과 몸이, 몸이 아님을 깨달아 어리석은 뜻에서 해탈하고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어야 색음(色陰)이 제거되니, 이것이 첫 번째 기쁨이다.
019_0241_c_01L사문이 사유하여 몸의 5장(臟)이 모두 깨끗하지 않은 것임을 스스로 보아서 탐욕의 뜻에서 해탈하고, 선과 악이 대립된 두 상(相)이 없어지면[無二] 통음(痛陰)이 제거되니, 이것이 두 번째 기쁨이다.
019_0241_b_23L沙門思念,自見身中五藏不淨,貪欲意解、善惡無二,痛陰已除,是第二喜;
사문이 자세히 사유하여 은혜와 사랑의 괴로움을 보고 번뇌와 습기(習氣)에 휘둘리지 않고, 또 즐기려는 뜻이 없어지면, 상음(想陰) 제거되니, 이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019_0241_c_02L沙門精思,見恩愛苦、不爲漏習、無更樂意,想陰已除,是第三喜;
사문이 사유하여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고 다시 기쁨이나 성냄이 없고 뜻이 평온하고 오롯하여 일으키지도 않고 휘둘리지도 않으면 행음(行陰)이 제거되지 이것이 네 번째 기쁨이다.
019_0241_c_04L沙門思惟,身口意淨、無復喜怒、寂然意定、不起不爲,行陰已除,是第四喜;
사문이 스스로 생각하여 부처의 청정한 교화를 증득하고 모든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緣起]을 끊고, 어리석음과 애욕이 모두 소멸되면 식음(識陰)이 제거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기쁨이다.
019_0241_c_06L沙門自念、得佛淸化、斷諸緣起、癡愛盡滅,識陰已除,是第五歡喜也。”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사문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경과 계율을 받들어 행하여 나고 죽음을 끊어 곧 금생에 다시는 근심하고 통곡하며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을 탐내지 않고, 다른 사람도 또한 나를 탐내지 않는다. 나는 도로써 모든 중생을 사랑하여 제도하고 해탈[度脫]시키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은 한 생(生)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는 것뿐이고, 도를 닦지 않는 사람은 그 고통이 더욱 길어질 것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목욕을 할 때 다만 겉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의 때는 제거하지 못하는 것과 같지만 응진(應眞:아라한)을 증득한 사람은 모든 악을 모두 제거한다.
보통 사람들은 뜻을 마음에 두지만 도인은 마음이 한결같아 마치 땅에 놓여 있는 돌이 해가 쪼여도 녹지 않고, 비에 젖어도 풀어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고, 범속(凡俗)에서 벗어나 지극한 도를 이루어 마음과 뜻이 차가워져 다시는 뜨거운 번뇌와 음욕이 없어 마치 연꽃이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뿌리와 잎이 항상 차가워 더러운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은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은혜는 한 생(生)[世]에 가장 지극하지만 부처는 온 세상에 도(道)를 열어 보여 사람들이 도를 증득하도록 하고, 스스로 5도(道)10)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는 본말(本末)을 보고, 사람들의 수명을 알고, 뜻이 이미 그쳐서11) 하는 것마다 자유자재하여 하늘에 오르고자 하면 곧 오르고, 바다에 들어가고자 하면 곧 들어간다.
비유하면 죽은 사람을 향수로 목욕시켜도 향기롭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쁜 사람에게 착한 일을 가르친다 하여도 반드시 착해지지는 않는 것과 같으니, 사람의 마음이 악한 이는 몸과 입도 함께 악하다.
019_0241_c_22L譬如以香盥浴死人,不能使香,敎惡人善,不能必善。人心惡者,身口俱惡。
019_0242_a_01L외도[外學家]들이 ‘다만 자유롭게 할 뿐이요, 진실한 도는 없다’라고 말하지만, 도인들은 이 말을 듣고 끝까지 응답하지 않고, 그 사람들의 뜻과 생각과 소견이 모두 뒤바뀌었음을 안다. 어리석은 이는 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정도(正道)를 사도(邪道)로 여기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니, 성인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더욱 자비롭게 사랑한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어릴 때에는 도로 가르치지만 자라서 죄를 범하여 죽는다 하여도 양친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마치 의자를 만들 때에 나무만 있고 엮을 끈이 없으면 앉을 수 없듯이 자녀에게 밝은 스승이 없으면 또한 도를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선비여. 나는 전생에 성현을 많이 섬겼는데, 얻은 것이 평범하지 않았고, 모두 무위도(無爲道)를 증득한 이었다.
나한을 증득한 이는 스스로 말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 구항(溝港)을 증득하였고, 어느 곳에서 빈래(頻來)와 불환(不還)을 증득하였고, 응진(應眞)에 이르러 모든 해탈을 이루어 다시는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넓고 좁음을 아울러 안다. 마치 훌륭한 그림을 보고 다섯 가지의 색채를 분별하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의 사람들을 보니, 모두 3독(毒)ㆍ교만ㆍ방일ㆍ맛을 탐내는 마음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알고 이미 해탈하여 다시는 천상 세계에 나는 것을 탐내지 않고, 또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다만 중생을 생각하여 해탈하게 하려고 하니, 누구라도 아직 듣지 못했으면 마땅히 잘 배워야 한다.
마치 채색된 실을 가지고 유리주(瑠璃珠)를 꿰면 5색이 모두 나타나듯이 도안(道眼)으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혼신이 어느 곳에서 와서 태어났으며 죽어서 어느 길로 가는지 보인다. 어느 사람은 죽어서 혼신이 지옥에 떨어지고, 어느 사람은 축생에 떨어지고, 어느 사람은 귀신에 떨어지며, 어느 사람은 사람의 몸을 받아 들어오고, 어느 사람은 죽어서 천상에 오르는 것을 안다. 도를 이루어 스스로 알아서 이 5처(處 : 5도)를 끊어 이미 소원을 이루었다. 몸을 보니 흙덩이와 같으니, 내 몸을 가져다가 조각조각 부수어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도 좋다.
019_0242_b_01L마치 맑은 물에 들어가면 모래ㆍ자갈ㆍ구슬ㆍ보배 등 그 안에 있는 것이 모두 보이듯이 온 세상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백 사람도 되고, 백 사람이 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왜냐 하면, 한 사람이 아들을 낳아서 차츰 현손(玄孫)에 이르러 자손이 번성하여 백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백 사람이 죽어서 모두 없어지기도12) 한다.’
본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심식(心識)이 행(行)을 이루고, 행(行)이 명색(名色)을 이루는 등 다만 인연에 의지하여 모태(母胎)에서 태어나 서로에게 근심거리가 되었으나, 부모는 나의 아들이라 말하고, 아들은 나의 부모라고 말하면서 정신이 더욱 전도되어 모두 스스로 알지 못한다.
과거세[宿命]에 선업(善業)을 쌓은 이는 또 사람으로 태어나 부귀하고 장수하며, 불선업을 쌓은 이는 괴롭고 단명하니, 각각 본래의 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019_0242_b_09L宿命善者,復生爲人,則富貴長壽;其不善者,則苦短命,各由本業。
천지ㆍ사람ㆍ만물이 한결같이 4기(氣)에 의지하니, 첫째는 지(地)요, 둘째는 수(水)요, 셋째는 화(火)요, 넷째는 풍(風)이다. 사람의 몸 중에서 단단한 것은 지(地)요, 온화하고 젖은 것은 수(水)요, 뜨거운 것은 화(火)요,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풍(風)이다. 살아서는 이것을 빌려쓰다가 죽으면 도로 본래의 것으로 되돌려 주니, 그 본말을 헤아려 보면 각자가 남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범부들은 깨닫지 못한다.
019_0242_c_01L도를 얻으면 막힘이 없이 보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거울을 보는 것과 같고, 날아다님에 걸림이 없어서 석벽13)도 모두 지날 수 있고, 수미산(須彌山)에 올라가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질 수 있고, 몸 속에서 따로 물과 불이 나오도록 할 수 있고, 땅 속에 잠겼다가 한쪽으로 나올 수 있고, 허공을 다니다가 자재롭게 앉고 누울 수 있고, 마왕ㆍ범천ㆍ제석 등 모든 천신들이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할 수 있으니, 비유하면 도공(陶工)이 불에 구워 질그릇을 만들어 물을 담으면 새지 않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은 굽지 않은 질그릇과 같지만 도를 얻은 이는 불에 구운 질그릇이 불에 쪼일 수도 있고, 축축하게 할 수도 있고, 물에 담궈 적셔도 부수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쇠붙이를 단련하는 사람이 어느 그릇이나 마음대로14) 만들 수 있듯이 신족(神足)을 얻은 사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마음대로 변화를 부린다.
도공과 대장장이는 치성한 불로 그릇을 만들고,15) 우리 사문 또한 치성한 뜻으로 도를 이룬다. 마치 말린 소의 가죽은 말아도 소리가 나고 펴도 소리가 나지만 기름에 적시면 말거나 펼 때 모두 부드럽듯이 도의 뜻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을 부드럽게 하여 다시는 뻣뻣하게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목욕하거나 몸을 안마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면 다시 충분히 안마하듯이, 도안으로 관하면 제도할 만한 사람인가 알게 되니, 곧 불경을 전해 주고 분명하게 깨닫게 하면[開解] 의지가 착한 이는 다시 사람이 되고, 행실이 높은16) 이는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고,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면, 곧 사문의 4도(道)를 얻게 된다.
019_0243_a_01L 그 도를 얻은 이는 1생, 10생, 1백 생, 무수한 생의 일들을 모두 알게 되고, 또한 천지의 처음과 마지막, 겁(劫)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때를 알게 되고, 무수한 겁 동안 몸이 생겨났던 그 때의 부모와 성명, 그 때의 제각기 다른 수명의 수가 많고 적음을 알게 되고, 그 때 인간 세상에서 천상 세계에 오르고, 천상 세계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는 것을 알게 되고,
혹은 인간 세상에서 지옥으로 들어가고, 지옥에서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며, 아귀에서 사람이 되기도 하며, 혹은 인간 세상에서 다시 귀신이 되고, 귀신에서 지옥에도 들어가고 천상에 오르기도 하는 것을 모두 다 분별하여 알게 되니, 마치 어떤 사람이 멀리 떠나 나그네가 되어 자기 고향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사유하여라.
있는 모든 것을 알아 5도를 관하여 보아 스스로 알게 되면 이미 해탈한 것이니, 도력(道力)이 자유자재하여 수명을 백 살, 천 살, 만 살, 무수겁까지도 늘리고 싶으면 모두 할 수 있고, 먹고 싶지 않으면 10일ㆍ백일ㆍ1년ㆍ백년ㆍ무수겁까지도 할 수 있고, 먹고 싶으면 곧 먹게 된다.
나한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한 종류는 사라지려 하는 이[滅]요, 한 종류는 보호하려 하는 이[護]이다. 이른바 사라지려 하는 이는 도를 얻은 것을 스스로 근심하여 곧 니원(泥洹)을 취하는 것이고, 보호하려 하는 이는 사람들을 근심하여 온 세상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려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세간을 보니, 또한 도사가 있는데, 불법을 알지 못하고 숲 속에 은거(隱居)하면서 과일이나 풀 열매를 먹으며, ‘스승은 필요 없이 저절로 도를 얻는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아발이 대답하였다. “얻을 수 없습니다.”
019_0243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마음에서 얻고 마땅히 사법(師法)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어리석고 망령되게 도를 믿는 첫 번째 종류이다. 또 어떤 도사는 ‘모든 풀의 가지ㆍ잎ㆍ꽃ㆍ열매를 채취하여 이것을 조제한 약을 먹으면 저절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대의 스승과 제자들도 역시 이것을 믿는가?” 아발이 대답하였다.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리석고 망령되게 도를 믿는 두 번째 종류이다. 혹 어떤 도사는 부모를 버리고 사슴 가죽을 옷삼아 걸치고 풀 위에 누워 지내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먹지도 않은 채 하늘에 예배하면서 도를 구하지만 이것은 스스로를 괴롭힐 뿐 얻는 성과가 없다. 그대는 그를 본받겠는가?” 아발이 대답하였다. “본받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어리석고 망령되게 도를 믿는 세 번째 종류이다. 또 어떤 도사는 한적한 곳에 숨어 있으면서 도가 있다고 문에 표시하고, 물ㆍ불ㆍ해ㆍ달ㆍ5성(星)에 제사하고 섬기며 제물을 삶아 죽여 하늘에도 제사지내고, 널리 제사지내17) 복을 구하는데, 그대는 이렇게 하겠는가?” 아발이 대답하였다. “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말씀하셨다. “천지가 개벽(開闢)한 이래 훌륭한 범지와 도사(道士)가 23인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기도(耆屠)ㆍ유모(留耗)ㆍ진타(盡陁)ㆍ가이(迦夷)ㆍ아유(阿柔)ㆍ가신(迦晨)ㆍ우이(謣夷)ㆍ알초(頞超)ㆍ염모(炎毛)ㆍ파밀(巴蜜)ㆍ감화(監化)ㆍ아륜(阿倫)ㆍ구담(裘曇)ㆍ기상(耆顙)ㆍ우루(謣淚)ㆍ가섭(迦葉)ㆍ폭복(暴伏)ㆍ아반(阿般)ㆍ혜리(㨙履)ㆍ우찰(優察)ㆍ파리(波利)ㆍ요경(僥頸)ㆍ피가(陂佉)이다. 온 세상의 성곽은 모두 이 23인이 함께 지은 것이다. 지금의 비가사는 이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아발이 대답하였다. “따르지 못합니다.”
“그대들은 어떤 도로 나아가려 하는가?” “스승께서, ‘8계를 지키면 죽어서 범천에 오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19_0243_b_23L“汝等趣何等道?”曰:“師言持八戒者死上梵天。”
019_0243_c_01L“그대들은 이 계를 지켜서 범천에 오른 이를 보았는가?” 아발이 말하였다. “스승의 말씀만 들었을 뿐입니다.”
019_0243_c_02L“寧見汝輩,持是八戒,昇梵天耶?”曰:“聞師言耳。”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사문으로서 응진을 증득한 이는 1겁 동안에 나고 죽은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그 때에 누구였고, 누구로부터 누구로 된 것을 분별하여 알고, 천하의 사람과 천상의 일을 알고, 날아다니다가 있을 곳에 내려앉기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으며, 천지를 움직이고, 수미산을 옮기고 무간지옥을 드나들 수 있는 등 변화가 자유자재하다.
부처님께서 아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수행하다가 사문이 되어 나고 죽음을 끊기를 근심하여 지금 홀로 도를 증득하고,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明行成:明行足)이 되었으며, 선서(善逝19))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禦: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가 되었으며, 부처님ㆍ중우(衆祐:Bhagavat)라는 이름으로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의 스승이 되었으니, 나의 경과 계를 지키면 도를 증득하지 못할 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자비심으로 세상을 교화하되,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선은 항상 행해야 하지만 악은 오래 지속해서는 안 된다. 괴로움은 오래 남아 있지만 즐거움은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즐거움은 당시에는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오래 지나면 괴로움을 받게 되니, 죄를 짓고 후회하나 도울 것이 없다.”
스승이 말하였다. “구담(瞿曇) 사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32상호가 있느냐? 왜 오랫동안 머물렀느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말해 보아라.” 아발이 말하였다. “아침부터 말했던 것을 하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은 후에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함께 돌아가 식사를 마쳤다. 아발이 스승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말하자, 그 스승이 말하였다. “네가 말한 부처님의 말씀 중에 보태거나 뺀 것이 없다면 내가 그를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냐?” 아발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우리 범지보다 훌륭하십니다. 다만 우리 종족이 섬기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스승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자. 마땅히 스스로 부처님을 청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겠다.”
019_0244_a_14L師言:“然當自請佛與共談語。”
날이 저물자 곧 평상과 자리를 마련하고 5백 사람의 공양거리를 준비하였다. 새벽닭이 울자, 스승은 혼자 가서 통성명을 하고 부처님 뵙기를 청하였다. 예를 올리고 나서 한쪽에 앉아 차수(叉手)하고 말하였다. “지금 변변치 못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 여러 사문과 함께 왕림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잠자코 허락하시자 비가사는 기뻐하며 하직하고 돌아와 음식을 장만하였다. 정오가 되기 전에 또 아발을 보내 영접하도록 하였다.
019_0244_a_18L佛以嘿然可之,費迦沙歡喜,辭歸辦食。日未中,又遣阿颰行迎。
부처님께서 5백 사문과 함께 그 집에 이르시어 자리를 정하고 앉으시자 음식을 올렸다. 손씻을 물을 올린 후에 비가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제 아발이 돌아와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다시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태거나 빼지 않고 모두 말했을 것입니다.”
019_0244_b_01L곧 어제 말씀하신 것을 다시 말씀하셨다. 그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곧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다. “제가 어제 공연히 아발이 말한 것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019_0244_b_01L便復爲說昨時所語。聞佛語喜,卽自稽首言:“我昨無故,瞋阿颰所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비록 화를 냈지만 그는 현명한 제자입니다. 비유하면 좋은 말[馬]이 사람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발을 축원[呪願]하여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수하고 몸에 질병이 없을 것이다.” 이에 스승이 부처님을 찬탄하며 말하였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모두 괴로움이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도(無爲道)를 구하네.
019_0244_b_13L恩愛別離, 一切皆苦, 是故聖人,
求無爲道。
비가사가 뜻이 열려 깨달아 알아[意解]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생각하니 우리 선조들은 아무도 부처님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에게 형제와 처자와 여러 친척이 있는데, 지금 데리고 와서 부처님의 법을 받도록 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승낙하시자, 곧 모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리고, 3귀의(歸依)를 받고, 아발 등과 함께 모두 5계(戒)를 지켰다.
019_0244_b_19L佛言:“可。”卽皆來禮佛足,受三自歸,與阿颰等,俱持五戒。
그 후에 비가사의 수명이 다한 후에 그의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스승의 혼신은 어느 곳[道]으로 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미 제3의 불환(不還:아나함) 과위를 증득하였으니, 제19천에 아나함(阿那含)으로 태어나 마땅히 그곳에서 반니원(般泥洹)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