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497_a_01L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1) 상권
019_0497_a_01L長阿含十報法經卷上


후한(後漢) 안식국삼장(安息國三藏) 안세고(安世高) 한역
019_0497_a_02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497_a_03L聞如是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때 현자(賢子) 사리왈(舍利曰:舍利弗)이 여러 비구에게 설법을 듣도록 청하였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슬기로움도 있고 교묘함도 있으며, 청정(淸淨)과 번뇌의 제멸(除滅)을 완전히 갖추어 구경(究竟)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을 설하리니, 잘 들으시오.
그것은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씩 증가하여 열에 이르는 법이니, 잘 듣고 마음을 기울여 마음에 새기고 진리의 말씀[如言]을 잘 들으시오.”
여러 비구들은 현자 사리왈에게 청하였다.
“듣고 싶습니다.”
019_0497_a_04L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賢者舍利曰請諸比丘聽說法上亦好中亦好竟亦好有慧有巧最具淨除至竟說行聽從一增至十聽向意著意聽說如言諸比丘從賢者舍利曰請願欲聞
사리왈이 곧 말하였다.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씩 증가하여 열에 이르는 법이 있으니, 이 모두는 무위(無爲)를 성취하게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입니다.그 첫째의 한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無爲)를 이루기 위하여 행(行)을 오로지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사유(思惟)하는 것입니다.
셋째의 한 가지 법은 알아야 할 세간(世間)의 거침과 미세함입니다.
넷째의 한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교만입니다.
다섯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에 새겨야 할 근본적인 관찰[本觀]2)입니다.
019_0497_a_09L舍利曰便說從一增起至十法皆聚成無爲從苦得要出一切惱滅第一一法行者竟無爲但守行第二一法可思惟意不離身第三一法可識世閒麤細第四一法可棄憍慢第五一法可著意本觀
여섯째의 한 가지 법은 근본적인 관찰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의 한 가지 법은 들어가기 어려운 중지하지 않는 선정[不中止定]입니다.
여덟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意]을 그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홉째의 한 가지 법은 모든 사람들이 음식[食]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열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에 의심이 없도록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열 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諦]하고 여여[如]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497_a_16L第六一法多作本觀第七一法難受不中止定第八一法可成令意止第九一法當知一切人在食第十一法當證令意莫疑是行者十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是如有持慧意觀
019_0497_b_01L그리고 첫째의 두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해선 마땅히 뜻을 지니고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의 두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수행해야 할 지(止)와 관(觀)입니다.
셋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명(名)과 자(字)3)입니다.
넷째의 두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어리석음과 세간의 애착입니다.
다섯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없애야 할 남부끄러움 없음과 제 부끄러움 없음입니다.
019_0497_b_01L第一兩法行者竟無爲當有意亦當念第二兩法可增行止亦觀第三兩法當知名字第四兩法可捨癡亦世閒愛第五兩法當除不愧不慚
여섯째의 두 가지 법은 결정하기 어려운 두 가지 법인 부당함과 타당함입니다.
일곱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타당함과 부당함입니다.
여덟째의 두 가지 법은 구해야 할 진힐(盡黠)과 불부생힐(不復生黠)4)입니다.
아홉째의 두 가지 법은 사람이 본래 어떤 인연으로 세간에서 고통을 받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어떤 인연으로 세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열째의 두 가지 법은 응당 스스로 증득해야 할 지혜와 해탈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2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증득함도 있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5)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497_b_06L第六兩法難定兩法不當爾爾第七兩法當知當不爾爾第八兩法可求盡點不復生點第九兩法可識人本何因緣在世閒得苦亦當知何因緣得度世第十兩法當自證慧亦解脫是爲行者二十法是不非是不異有證如不惑不倒是知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세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하여 지혜로운 이를 섬기고, 법과 경을 들으며, 또 마땅히 근본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둘째의 세 가지 법은 마땅히 사유해야 할 희망함[欲]과 생각[念]이 있는 선정, 희망함은 없고 생각만 있는 선정, 희망함도 없고 또 생각도 없는 선정입니다.
셋째의 세 가지 법은 알아야 할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입니다.
넷째의 세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입니다.
다섯째의 세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근본적인 세 가지 악(惡)인 탐욕[貪欲惡]ㆍ성냄[瞋恚惡]ㆍ어리석음[愚癡惡]입니다.
019_0497_b_14L第一三法行者竟無爲事慧者亦聞法經亦當觀本第二三法當思惟欲念定不欲但念亦不欲亦不念第三三法可識欲有色有不色有第四三法可捨欲愛色愛不色愛第五三法可捨本三惡貪欲惡瞋恚愚癡惡
019_0497_c_01L여섯째의 세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탐욕이 없는 선근(善根)ㆍ성냄이 없는 선근ㆍ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입니다.
일곱째의 세 가지 법은 증득하기 어려운 상(相)이니, 곧 선정의 상[定相]ㆍ선정에 머무는 상[定止相]ㆍ선정에서 일어나는 상[定起相]입니다.
여덟째의 세 가지 법은 수행해야 할 3활향(活向:解脫門)인 공(空)삼매ㆍ무원(無願)삼매ㆍ무상(無相)삼매입니다.
아홉째의 세 가지 법은 알아야 할 3통(痛:受)인 괴로운 느낌[苦痛]6)ㆍ 즐거운 느낌[樂痛]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不樂不苦痛]입니다.
열째의 세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해야 할 다시 더 배울 것 없는 지혜, 즉 전생을 아는 지혜ㆍ어디에 태어날지를 아는 지혜ㆍ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는 지혜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3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497_b_22L第六三法可增無有貪欲本無有瞋恚本無有愚癡本第七三法難受相定相定止相定起相第八三法可作三活向不願不想第九三法可識三痛樂痛亦不樂亦不苦痛第十三法自證慧不復學從本來往生爾無所應除是爲行者三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是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네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이루고, 천상과 인간에 태어나게 하는 4륜(輪)이니, 곧 마지막 함이 없는 것으로서 좋은 고을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에게 의지하며, 스스로 바른 원(願)을 내고, 전생의 선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의 네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닦아야 할 4의지(意止:念處)입니다. 즉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남의 몸을 관찰하며 자신과 남의 몸을 관찰하되,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세간의 어리석음과 고뇌를 벗어납니다. 통양(痛痒:受)과 마음[意]과 법(法)에 대해서도 몸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셋째의 네 가지 법은 알아야 할 네 가지 음식[飯], 즉 단반(摶飯:段食)ㆍ낙반(樂飯:觸食)ㆍ염반(念飯:思食)ㆍ식반(識飯:識食)입니다.
019_0497_c_09L第一四法行者竟無爲天人輪好郡依慧人自直願宿命有本第二四法增行四意止自觀身觀外身觀莫離意知著意離世閒癡惱意法亦如觀身法第三四法可識四飯搏飯樂飯念飯識飯
넷째의 네 가지 법은 버려야 할 네 가지 결박[★], 즉 애욕의 결박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결박ㆍ계율과 원(願)의 결박ㆍ몸을 받는 결박입니다.
다섯째의 네 가지 법은 줄여야 할 네 가지 과실[失], 즉 계(戒)의 과실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의 과실ㆍ행동의 과실ㆍ업(業)의 과실입니다.
여섯째의 네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네 가지 성취, 즉 계의 성취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의 성취ㆍ행동의 성취ㆍ업의 성취입니다.
일곱째의 네 가지 법은 알기 어려운 4제(諦)이니, 곧 고제(苦諦)ㆍ습제(習諦:集諦)ㆍ진제(盡諦:滅諦)ㆍ수멸고제(受滅苦諦:道諦)입니다.
019_0497_c_16L第四四法可捨四𧓲欲𧓲意生是𧓲戒願𧓲受身𧓲第五四法可減四失戒失意是失業失第六四法可增四成戒成意是成業成第七四法難知四諦苦諦習諦盡諦受滅苦諦
019_0498_a_01L여덟째의 네 가지 법은 지켜야 할 네 가지 지혜[黠]이니, 곧 괴로움에 대한 지혜[苦黠]ㆍ괴로움의 쌓임에 대한 지혜[習黠]ㆍ괴로움의 사라짐에 대한 지혜[盡黠]ㆍ사라짐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지혜[道黠]입니다.
아홉째의 네 가지 법은 알아야 할 네 가지 인식[識]이니, 곧 약간의 인식[少識]ㆍ많은 인식[多識]ㆍ한량없고 소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인식ㆍ많은 것을 알고 한량없는 것을 알며 소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인식입니다.
열째의 네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해야 할 것이니, 첫 번째는 법신(法身)을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법의 뜻을 알아야 하며, 세 번째는 법안(法眼)을 알아야 하고, 네 번째는 법의 지혜[法慧]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4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498_a_01L第八四法令有四黠苦黠習黠盡黠道黠第九四法可識四相識少識多識有量無所有不用識知多知無有量知無所有不用智知第十四法自證一法身當知二法意當知三法眼當知四法慧當知是爲行者四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是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다섯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해 닦는 5단의(斷意)이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도를 수행하는 제자는 도에 대한 믿음이 있고 선근이 있어 인욕선인(忍辱仙人)처럼 누구도 그를 파괴할 수 없으니, 하늘이나 악마나 범천, 또는 그 밖의 세간이겠습니까? 또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참되고 바르며, 몸으로 행할 일이 있으면 뜻을 도에 두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몸도 또한 병이 없도록 편안하고 쾌적하게 하며, 마땅히 지켜야 할 바대로 충실하게 수행하며, 몸을 크게 춥게 하지도 않고 크게 덥게 하지도 않으며, 성내지 않고 때 맞추어 생활하여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고 몸을 편안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정진하는 행을 일으키고 또 정진의 방편을 살펴서 훌륭한 법을 확고히 증득하고 뜻으로는 방편을 버리지 않으며, 차라리 살ㆍ힘줄ㆍ뼈와 온몸이 없어질지언정 정진을 중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증득해야 할 행(行)은 지혜를 써서 기멸(起滅:生滅)에서 벗어나는 길을 증득하는 것이요, 반드시 싫어하지 않아야 할 행은 곧장 괴로움을 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단의(斷意)입니다.
019_0498_a_10L第一五法行者竟無爲五種斷意等五道弟子有道信有根著本無有能壞者忍辱亦仙人若天若魔若梵亦餘世閒耶亦無有匿無有態眞直如有身行意著道慧同行身亦少病安善如應持腹行身不大寒不大熱無有恚時和令消飮食噉令身安調發精進行有瞻精進方便堅得好法意不捨方便寧肌筋骨血幹盡精進不得中止要當得所行行慧從起滅慧得道者要不厭行直滅苦是五種斷意
019_0498_b_01L둘째의 다섯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닦아야 할 덕(德)인 다섯 가지 정(定)입니다. 도를 닦는 제자는 자기 몸을 스스로 지켜 기쁨을 얻고 (그 기쁨에) 몸을 담궈 적시며, 스스로 즐거움을 지켜 기쁨에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하면 지혜로 목욕하는 자와 지혜로 목욕하는 제자와 같습니다. 제자는 나무통이나 가마솥 같은 그릇에 조두(澡豆:세탁제)를 물에 풉니다. 그리고 물에 풀고 섞어 조두가 때에 붙게 하면 때를 충분히 적시기 때문에 안팎으로 때에 붙어서 다시는 흩어지지 않습니다. 도를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지키고 사랑하여 즐거움을 내고, 적시고 화합하여 서로 가까이하고 서로 붙게 하면 스스로 즐거움을 지키기 때문에 즐거움이 붙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첫 번째 행입니다.
019_0498_a_22L第二五法可增行德者五種定行道第子是身自守得喜樂澆漬身行身一切無有一處不到喜樂從自守譬慧浴者亦慧浴弟子弟子持器若杅若釜澡豆水漬已漬和使澡豆著膩內外著膩不復散從漬膩故行者亦如是是身自守愛生樂漬和相近相著身一切無有不著從自守喜樂道弟子是五種定是上頭行
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이미 즐거워져서 몸이 적시어지면 기쁨을 확고히 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컨대 언덕의 샘물 못과 같습니다. 샘물은 위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동쪽에서 온 것도 아니며, 또 서쪽에서 온 것도 아니고 북쪽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오직 샘에서 풍부하게 솟아나는 물, 촉촉히 솟아나 샘을 가득 채우는 물이 샘을 적셔, 시원한 물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어느 한 곳도 없게 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의 행도 그와 같아서 이 몸의 확고한 즐거움으로 몸을 적셔 확고한 즐거움이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온몸에 두루하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두 번째 행입니다.
019_0498_b_08L亦有道弟子是身已定喜樂澆漬身可身一處無有不到從定喜樂阪頭泉水池亦不從上來亦不從東亦不從南亦不從西亦不從北但從泉多水潤生遍泉水爲泉澆漬無有一處不到水冷水道弟子行如是身定喜樂澆漬身行可遍身一切無有不到從定喜樂道弟子是五種定是爲第二行
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사랑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즐거움에도 집착 하지 않으며 서로 연해서 서로 핍박하는 모양에 이르러 온몸이 두루 즐거워하지 않는 데에 도달합니다. 비유컨대 연꽃이 물 속에서 생겨 물 속에서 자라 뿌리ㆍ줄기ㆍ잎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가운 물에 두루 적시어짐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을 사랑함과 즐거워함 없음으로 적셔 사랑함과 즐거워함 없음이 온몸에 두루하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세 번째 행입니다.
019_0498_b_17L亦有道弟子是身不著愛著樂相連至到相促相可遍一切身到不喜樂譬如蓮華水中生水中長至根至莖至葉一切從冷水遍澆漬遍行道弟子身亦如是從無有愛樂澆漬可一切身遍從無有愛樂道弟子是五種是爲第三行
019_0498_c_01L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뜻을 청정히 하고 없애 버리고 나서 행을 배우고 행을 이루어, 뜻을 청정히 하고 뜻을 없앰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컨대 네 종성과 네 종성의 아들을 여덟 길[丈]이나 아홉 길 되는 흰 모포로 머리부터 발까지 온몸을 싸면 흰 모포나 깨끗한 모포에 싸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이 뜻을 청정히 하고 뜻을 없애고 나서, 행함이 있으면 이미 뜻이 청정해지고 뜻이 없어지지 않은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네 번째 행입니다.
019_0498_c_01L亦有道弟子是身淨意已除受行成身中無有一處不到從淨意除意譬如四姓亦四姓子白㲲若八丈九人頭足遍裹身遍無有不到從白㲲淨㲲如是道弟子是身淨意除意已有行一切身無有不到已覆淨意除意道弟子是五種定是爲第四行
또 도를 지닌 제자는 몸[身]을 감수(感受)하여 진리를 관찰하고 나서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지속하며 충분히 감수합니다. 비유컨대 선 사람이 앉은 사람을 관찰하고 앉은 사람이 누운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의 행도 그와 같아서 행(行)과 상(相)과 사유(思惟)를 감수하여 충분히 감수하고, 충분히 감수함으로써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실행하며 충분히 감수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다섯 가지 정의 다섯 번째 행입니다.
019_0498_c_08L亦有道弟子受身觀諦已熟念熟居熟受譬如住人觀坐人坐人觀臥人道弟子行如是受行相思惟熟受熟受熟念熟事熟受道弟子是五種定是爲第五行
셋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다섯 가지 종(種:蘊)이니, 첫 번째는 물질의 종[色受種:色取蘊], 두 번째는 느낌의 종[痛受種:受取蘊], 세 번째는 생각의 종[想受種:想取蘊], 네 번째는 지어감의 종[行受種:行取蘊], 다섯 번째는 의식의 종[識受種:識取蘊]입니다.
019_0498_c_13L第三五法當知五種一爲色受種爲痛受種三爲想受種四爲行受種五爲識受種
넷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버려야 할 5개(蓋)이니, 첫 번째는 애욕의 덮개, 두 번째는 성냄의 덮개, 세 번째는 수면의 덮개, 네 번째는 희롱과 즐김의 덮개, 다섯 번째는 후회와 의심의 덮개입니다.
019_0498_c_16L第四五法當捨五蓋一爲愛欲蓋爲瞋恚蓋三爲睡眠蓋四爲戲樂蓋五爲悔疑蓋
019_0499_a_01L다섯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줄여야 할 다섯 가지 마음의 못[釘]입니다. 만일 배우는 이가 도(道)를 믿지 않고 의심하여 (자신을) 낮추지 않고 (도를) 옳다고 하지 않으며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음의 첫 번째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도의 가르침[道法]과 교훈[敎誡:戒]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며, 또 만일 배우는 자가 도의 무리[道散:僧]에 있으면서 명예가 있는 자, 지혜로운 자, 같이 배우는 자들에게 나쁜 말을 하고 흩고 괴롭힐 생각만 한다면 (이것은 마음의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도와 명망이 있는 자, 지혜로운 자, 같이 배우는 자가 있을 때 그에게 나쁜 말을 하고 흩고 괴롭힐 생각만 한다면 이것은 다섯 번째 마음의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019_0498_c_19L第五五法可當咸五心意釘若學者不信道疑不下不可不受如是心意一釘爲未捨不受道法教誡故亦如有學者在道散名聞慧者同學者持惡口向啄勤意離嬈侵若有道名聞者慧者同學者持惡口向啄勤意離嬈侵如是是爲五心意釘未捨
여섯째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증장시켜야 할 5근(根)이니, 첫 번째는 믿음의 뿌리[信根], 두 번째는 정진의 뿌리[精進根], 세 번째는 뜻의 뿌리[意根], 네 번째는 정의 뿌리[定根], 다섯 번째는 지혜의 뿌리[慧根]입니다.
019_0499_a_03L第六五法當增道五根一爲信根爲精進根三爲意根四爲定根五爲慧根
일곱째 다섯 가지 법은 해탈을 얻게 하는 다섯 가지 행으로, 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도를 닦는 제자라면 도를 열심히 배워 애욕(愛欲)을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이 애욕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애욕을 좋게 여기지도 않으며, 마음이 애욕을 그치려 하지 않고, 마음이 애욕을 넘어서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애욕의) 마음을 오그라트리고 그 마음을 싫어하며, 그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 마음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여 나쁘지 않게 합니다. 비유컨대 닭의 털이나 힘줄이 불에 들어가면 곧 오그라들고 쭈그러져서 다시 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도를 본 제자가 마음을 굳건히 하여 애욕을 생각하지 않아 곧 애욕을 부리지 않고 곧 애욕을 좋게 여기지도 않으면, 마음은 애욕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은 곧 오그라듭니다. 마음이 곧 오그라들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문득 도를 생각하는 것도 벗어나게 됩니다. 애욕의 행위에서 이미 벗어난 뒤에는 (애욕의) 마음이 생기건 (애욕을 버리려는) 마음이 굳건하건 마음이 바로 마음이 아니어서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 그 마음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애욕의) 마음을 오그라트리려 하지도 않고, 그 (애욕의) 마음을 싫어하지도 않으며, 그 (애욕의)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장애될 것이 없고 사용할 것이 없어 그 마음은 편안하나니, 이는 마음으로 행하고 열심히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019_0499_a_06L第七五法難受五行得要出若道弟子熟受道不念愛欲意不著欲意不可欲意不止欲意不度欲意縮意惡意不起意不用意卻意穢不用惡如雞毛亦筋入火便縮皺不得申是見道弟子行堅意不念愛欲便不用愛欲便不可愛欲意不墮愛欲便縮意便縮意不起便出念道欲行已出意生意堅意不意出意解意不縮意不惡意起意無所礙無所用安隱爲意行故熟行故
만일 다시 애욕의 인연으로부터 근심과 괴로움의 번뇌가 생기더라도, 생각[念]한 뒤에 그것을 해탈하고 쉬며 집착하지 않고 벗어나 다시는 그런 인연으로 감수[痛痒]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애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성냄[瞋恚]과 성냄 아님ㆍ침해[侵]와 침해 아님ㆍ물질[色]과 물질 아닌 것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도를 닦는 제자가 마음을 굳건히 해 다시는 몸[身]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굳건히 해 몸을 생각하지 않은 뒤에는 곧 몸을 탐내지 않고, 몸을 좋게 여기지 않고, 몸에 머무르지 않게 되며, 마음이 애욕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문득 마음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019_0499_a_17L若復生從愛欲因緣結惱憂念爲已從是解止不著得離不復從是因緣痛痒行如是行者從欲得度瞋恚不瞋恚侵不侵色不色若道弟子堅意不復念身已堅意不念身便不欲身不可身不住身意不墮愛欲便惡意起
019_0499_b_01L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마치 닭의 털이나 힘줄이 불에 들어가면 곧 오그라들고 쭈그러져서 다시는 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이미 견해가 굳건해지면 다시는 몸을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이 몸을 좋게 여기지도 않고, 마음이 몸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마음이 넘어서려 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은 그 마음을 오그라트리고 그 마음을 싫어하여 일으키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지키고 나쁜 짓을 그치며, 나쁜 것에 대해서는 무위(無爲)를 생각하고, 몸을 제도하려 하고 몸을 벗어나기를 생각하며, 하건 하지 않건 권도(勸道)를 생각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며, 그치려고 생각하고 건너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마음을 오그라트리려 하지도 않고 그 마음을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 마음은 생각을 펴더라도 장애될 것이 없고 사용할 것이 없어 그 마음은 안온하나니, 이는 행으로부터 잘 행했기 때문이니라.
019_0499_b_01L譬道弟子如雞毛筋入火便縮便皺不得申道弟子亦如是已見堅不復念身意不可身意不著身意不度意縮意惡意不起自守生止惡可惡念無爲欲度身念度身爲無爲意勸意意止意度意不縮意不惡意便申念無所礙無所用意隱止從行熟行
만일 몸의 인연으로부터 죄와 괴로움과 근심이 생기더라도, 죄와 괴로움과 근심이 인연으로 생긴 뒤에 이로부터 벗어나고 그쳐 집착하지 않고 넘어서며, 다시는 이런 인연으로부터 감수[痛]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는 이와 같이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019_0499_b_09L若從身因緣生罪惱憂緣生罪惱憂已從是解止不著度不復從是因緣更痛道弟子如是從身得要出
여덟째의 다섯 가지 법은 도를 일으키는 다섯 가지 지혜로운 선정입니다. ‘도덕을 갖춘 자는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받들어 따르는 것도 없다’고 하면, 이는 첫 번째 지혜가 안에서 저절로 생긴 것입니다. ‘이 정(定)은 보통 사람은 이루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만 될 수 있다’고 하면, 이것은 두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 정은 한결같아야 이루어지고 이에 의지해 도의 행을 얻는다’고 하면, 이것은 세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 정은 기쁜 견해에 이르게 하고 느낌도 또한 좋다’고 하면 이것은 네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 정(定)으로부터 마음대로 앉고 마음대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이 정이다’고 하면, 이것은 다섯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019_0499_b_11L第八五法令生起道五慧定道德者無所著無所供從是一慧內自生是定恒人不能致慧者可如是二慧內起生是定從一向致得猗得道行如是三慧內起生是定見致樂行受亦好如是四慧內起生是定從是定自在坐自在起是五慧內起生
019_0499_c_01L아홉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다섯 가지 해탈입니다. 만일 학자가, 도인이 경을 말하면 도인에게 듣고, 또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면 그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들으며, 또는 같은 도반에게서 듣고는 그 들은 대로 법과 이치와 행을 알고, 법을 이해하고는 곧 이치를 알며, 이치를 알고는 곧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나서는 곧 기뻐하며, 기뻐하고는 몸이 즐겁고, 즐겁고 나서는 곧 마음이 안정되며, 마음이 안정되고 나서는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고 나서는 곧 물리치고 쓰지 않으며, 쓰지 않고는 곧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는 곧 해탈을 얻는다면, 이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해탈입니다.
019_0499_b_19L第九五法當知五解脫若學者道說經從道聞亦慧人說從慧人聞亦同學者聞已如說聞知法義行已解法便解義已解義便受已受便喜已喜身樂已樂便意定定意如有知如有已如知見便卻不用已不用便不著已不著如便得解脫是行者一解脫
이미 머무름을 얻은 어떤 수행자는 바른 뜻[正意]을 얻지 못했다가 곧 바른 뜻을 얻고, 선정의 마음[定意]을 얻지 못했다고 선정의 마음을 얻으며, 결박을 풀지 못했다가 결박을 풀고, 함이 없음[無爲]을 얻지 못했다가 곧 함이 없음을 이룹니다.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고, 지혜로운 이와 같은 도반들이 또한 경을 연설하지 않더라도 그는 들은 대로 받은 대로 곧 외우고 읽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두 번째 해탈입니다.
또한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과 도반들도 경을 연설하지 않으면 다만 들은 법대로 받은 법대로 배우는 이들에게 갖추어 말해 주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세 번째 해탈입니다.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더라도 배우는 이는 다만 듣고 받은 법대로 혼자 어느 곳에서 생각하여, 법을 듣고 받은 그대로 갖추어 외우고 읽으며 곧 그 이치를 이해하고 그 법을 이해하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네 번째 해탈입니다.
019_0499_c_03L已行者得住未正意得正意未定意得定意未解結得解結未得無爲便致無爲或時佛亦不說經慧者同學者亦不說經但如聞如受竟便自諷是行者二解脫或時佛亦不說經慧者同學者亦不說經但如聞法如受法具說學者行者三解脫或時佛不說經學者但如聞如受法獨一處計念若如聞如受法具諷讀便如應解如法解是行者四解脫
019_0500_a_01L혹은 들은 대로 하지 않고 받은 대로도 하지 않으며, 또한 생각하지도 않고 다만 행에 따라 한결같은 정(定)의 모양을 취하여 충분히 느끼고[受] 충분히 생각하며[念] 충분히 행하기도 합니다. 그는 정의 모양을 받아들여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생각하며 충분히 행하고 나서는 익숙해짐에 따라 곧 법다워지고, 곧 이치대로 이해하며, 곧 법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치대로 이해하고 법대로 이해하고 나서는 곧 생(生)을 옳게 여기고, 생을 옳게 여기고 나서는 곧 생(生)을 가엾이 여기며, 생을 가엾이 여기고 나서는 곧 몸이 즐거워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즐겁고 나서는 곧 그치고 곧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며 곧 뉘우칩니다. 뉘우치고 나서는 곧 욕심내지 않고, 욕심내지 않은 뒤에는 곧 해탈을 얻습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다섯 번째 해탈입니다. 만일 도를 닦는 수행자가 이 그침[止]을 얻고 이 행(行)을 얻는다면, 그는 그 마음이 그침을 얻지 못했으면 곧 그치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곧 안정되게 되며, 결박이 없어지지 못했으면 곧 없어지게 되고, 세상을 벗어나 무위의 도를 얻지 못했으면 곧 세상을 벗어나 무위의 도를 얻게 됩니다.
019_0499_c_14L或時不如聞不如受亦不計念但從行取一定相熟受熟念熟行已受定相熟受熟念熟行熟隨便如法便如應解便如法解已如應解已如法解便可生已可生便哀生已哀生便身便身知樂已樂意便止便如有知有見便悔已悔便不欲已不欲便得解脫行者五解脫若道行者得是止得是行意未得止便止意未定便定結未盡便盡未得度世無爲便得度世無爲
열째의 다섯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것이니, 첫 번째는 불학(不學:無學)7)의 음(陰)이요, 두 번째는 불학의 계(戒)요, 세 번째는 불학의 정(定)이요, 네 번째는 불학의 혜(慧)요, 다섯 번째는 불학의 세상을 벗어난 해탈(解脫)8)입니다.
019_0500_a_02L第十五法自證知一不學陰二不學三不學定四不學慧五不學度世解脫
이것이 배우는 이의 쉰 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며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500_a_05L是學者五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지막 함이 없음인 것으로서 특수하고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몸의 행동[身行]을 고르게 하여 부처님이나 지혜로운 이나 같은 도반과 같이 머무는 것,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과 존경이 생겨나게 되고, 마음으로 옳게 여겨 사랑과 존경이 생겨나게 되면 남들과 모여 있을 적에 다투거나 시비하지 않게 되고, 언제든지 정을 행하고 인욕을 닦게 됩니다. 또 입으로 하는 말[口言]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心行]을 고르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계율을 범하지 말고 파하지 말며 느슨하게 지니거나 숨기지도 말고 잃어버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019_0500_a_06L第一六法者竟無爲不共取重等身行止在佛慧同學者是法不共取重從是得愛從是得敬可意已得愛得敬行聚合不諍訟一向行定致忍等口言等心行所有戒行不犯不穿不緩不藏不失
이는 도가 있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행이니, 이와 같은 무리들도 계를 행하는 이들이고 나도 계를 지키는 자이니 마땅히 지혜로운 이, 같은 도반들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벗어나기를 구하는 자들은 바로 고통을 없앱니다. 이런 무리처럼 나도 또한 이와 같은 무리이니 지혜로운 이, 같은 도반들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다. 또 만일 법에 따라 얻은 이익이 있으면 그 얻은 것은 모두 발우에 있는데, 이와 같은 이익을 당연히 같은 도반들과 함께 하고 혼자만 가지거나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니, 이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옳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과 존경과 옳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 실천하고 나면 합하고 모이더라도 다투거나 시비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을 행하며 이로부터 인욕을 얻게 됩니다.
019_0500_a_12L爲有道者可具足行如是輩行戒者我亦戒者當應比共慧者同學者所求道要厭者但行直滅苦如是輩我亦如是輩應比共慧者同學者是法不共取重亦若所有利法致從法得一切所得在隨器中如是利當爲同學共無有獨匿是法不共取重爲從是愛得敬得可意得愛已得敬已得可意已得行得合得聚不諍不訟一心行定從是致忍
019_0500_b_01L둘째의 여섯 가지 법은 보호하여야 할 6공거(共居)입니다. 눈으로 색(色)을 보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또 싫어하지도 않으며 다만 관찰하여 마음대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귀ㆍ코ㆍ입ㆍ몸도 또한 마찬가지이며, 의식으로 법을 알더라도 또한 기뻐하지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다만 관찰하고 그쳐 마음으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의 여섯 가지 법은 알아야 할 6내입(內入)이니, 눈[眼內入]과 귀ㆍ코ㆍ입ㆍ몸ㆍ의식[意內入]입니다.
넷째의 여섯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여섯 가지 애착이니, 눈의 애착과 귀ㆍ코ㆍ입ㆍ몸ㆍ의식의 애착입니다.
019_0500_a_21L第二六法護行六共居眼見色亦不喜亦不惡但觀行意正知耳鼻口身意法觀亦不喜亦不瞋但觀止意不忘第三六法可識六內入眼內入耳鼻口身意內入第四六法可捨六愛眼更愛耳鼻口身意更愛
다섯째의 여섯 가지 법은 줄여야 할 여섯 가지 공경하지 않음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나쁜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악지식(惡知識)입니다.
여섯째의 여섯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여섯 가지 공경함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공경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공경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공경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공경함이요, 다섯 번째는 좋은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선지식(善知識)입니다.
019_0500_b_05L第五六法可減六不恭敬一爲不恭敬佛二爲不恭敬法三爲不恭敬同學者四爲不恭敬戒五爲惡口六爲惡知識第六六法可增六恭敬一爲恭敬佛二爲恭敬法三爲恭敬同學者四爲恭敬戒五爲好口六爲善知識
일곱째의 여섯 가지 법은 세상을 벗어났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섯 가지 행(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벌써 행하였고 이미 소유하였다’고 하면서 또 ‘그러나 나의 마음 속 성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곧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여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일으키고 이미 소유했다면 어찌 성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으면 성냄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일 어떤 수행자가 ‘나는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짓고 행하고 지녔지만 죽이려는 뜻만은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짓고 이미 지녔다면 어찌 죽이려는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으면 죽이려는 뜻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019_0500_b_12L第七六法難受六行度世若有言有等意定心已行已有復言我意中瞋恚未解便可報言莫說是何以故無有是已等心定意已行已作已有寧當有瞋恚耶無有是何以故有等心定意爲除瞋恚故二爲若行者言我有慈意定心已作已行已有但有殺意不除可報不如何以故已慈心定意已行已作已寧當有殺意耶無有是何以故有慈意定心爲無有殺意
019_0500_c_01L 세 번째, 어떤 학자가 ‘나는 기뻐하는 마음과 평등한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지었고 이미 지녔지만 뜻만은 그치지 못하고 옳지도 못하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어서 이미 행하고 이미 증가하였고 이미 지녔다면 어찌 안정되지 못하고 옳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없나니, 왜냐 하면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은 옳지 못함과 불안정을 없애기 때문이다.’
네 번째, 어떤 학자가 ‘나는 관찰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짓고 이미 지녔지만 애욕과 성냄만은 제거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이미 관찰과 선정의 마음이 있다면 곧 애욕과 성냄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019_0500_b_23L三爲若學者我有喜心等定意已行已作已有但意不止不可報言莫說何以故無有是已有等意定心行已增已有寧不定不可耶無有是何以故等意定心爲除不可不定故四爲若學者言我有觀定意已行已作已有但愛欲瞋恚未除可報言說是何以故已有觀定意便無有愛欲瞋恚
다섯 번째, 만일 수행자가 ‘나는 의심이 없지만 다만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법을 알면 의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어떤 수행자가 ‘이미 선정의 마음을 얻어 이미 만족했으나 마음만은 생각과 의식에 머무른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그건 있을 수 없다. 또 〈선정의 마음을 얻어 생각하는 바가 없이 이미 만족했는데 또 마음이 생각과 의식을 행한다〉는 그런 생각도 말 것이니,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마음이 이미 해탈한 이는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019_0500_c_09L五爲若行者言我無有疑但意不能可報言莫說是何以故解要無有疑故六爲若行者言已得定意已足但意往念識可報不如言無有是亦不應是念得定意無所念已足復意行念無有是何以故意已得度者不應復念
여덟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땅히 가져야 할 여섯 가지 생각[念]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생각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생각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생각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생각함이요, 다섯 번째는 보시를 생각함이요, 여섯 번째는 하늘을 생각함입니다.
019_0500_c_16L第八六法當令有六念一爲念佛爲念法三爲念同學者四爲念戒爲念與六爲念天
아홉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여섯 가지 한량없음[無量]이니, 첫 번째는 보는 것이 한량없음이요, 두 번째는 듣는 것이 한량없음이요,세 번째는 이익이 한량없음이요, 네 번째는 계행이 한량없음이요, 다섯 번째는 일이 한량없음이요, 여섯 번째는 생각이 한량없음입니다.
019_0500_c_19L第九六法當知六無有量一爲見無有量二爲聞無有量三爲利無有量四爲戒無有量五爲事無有量六爲念無有量
019_0501_a_01L열째의 여섯 가지 법은 증득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여섯 가지 앎[知]이니, 첫 번째는 신통[神足]이요, 두 번째는 모든 것을 들음[徹聽]이요, 세 번째는 사람의 마음을 앎이요, 네 번째는 과거 어디에서 왔는지 그 유래를 앎이요, 다섯 번째는 어느 곳에 가 태어날 것인지를 앎이요, 여섯 번째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것입니다.
019_0500_c_23L第十六法證自知六知一神足二徹三知人意四知本從來五知往生何所六知結盡
이것이 수행자의 6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고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501_a_03L是行者六十法是不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일곱 가지 법은 수행자를 구경의 무위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보배이니, 첫 번째는 믿음의 보배요, 두 번째는 계의 보배요, 세 번째는 남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보배요, 네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보배요, 다섯 번째는 학식의 보배요, 여섯 번째는 보시함의 보배요, 일곱 번째는 지혜의 보배입니다.
둘째의 일곱 가지 법은 행하여야 할 일곱 가지의 각의(覺意:覺分, 覺支)니, 첫 번째는 생각하는 각의[意覺意:念覺支]요, 두 번째는 법을 분별하는 각의[分別法覺意:擇法覺支]요, 세 번째는 정진하는 각의[精進覺意]요, 네 번째는 기뻐하는 각의[可覺意:喜覺支]요, 다섯 번째는 제거하는 각의[猗覺意:除覺支]요, 여섯 번째는 선정의 각의[定覺意]요, 일곱 번째는 보호하는 각의[護覺意:捨覺支]입니다.
019_0501_a_05L第一七法行者竟無爲七寶一爲信二爲戒寶三爲愧寶四爲慚寶爲聞寶六爲施寶七爲慧寶第二七法可行七覺意一爲意覺意二爲分別法覺意三爲精進覺意爲可覺意五爲猗覺意六爲定覺意七爲護覺意
셋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 가지 세계[有]이니, 첫 번째는 좋지 못한 세계(지옥)요, 두 번째는 축생의 세계요, 세 번째는 아귀의 세계요, 네 번째는 인간의 세계요, 다섯 번째는 천신의 세계요, 여섯 번째는 행(行:業)의 세계요, 일곱 번째는 중유(中有:中陰)의 세계입니다.
넷째의 일곱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일곱 가지 결박[結]이니, 첫 번째는 애욕의 결박이요, 두 번째는 옮지 못함의 결박이요, 세 번째는 즐거움의 결박이요, 네 번째는 스스로 교만함의 결박이요, 다섯 번째는 삿됨의 결박이요, 여섯 번째는 어리석음의 결박이요, 일곱 번째는 의심의 결박입니다.
019_0501_a_12L第三七法當知七有爲不可有二爲畜生有三爲餓鬼有四爲人有五爲天有六爲行有七爲中有第四七法可捨七結一爲愛欲結爲不可結三爲樂有結四爲自憍慢五爲邪結六爲癡結七爲疑結
019_0501_b_01L다섯째의 일곱 가지 법은 없애야 할 나쁜 사람의 일곱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믿지 않음이요, 두 번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이요, 세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음이요, 네 번째는 정진하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잊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선정[定]이 없음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가 없음입니다.
여섯째의 일곱 가지 법은 지혜를 증장시키는 슬기로운 이의 일곱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믿음이요, 두 번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함이요, 세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네 번째는 정진할 마음을 냄이요, 다섯 번째는 뜻을 지킴이요, 여섯 번째는 선정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입니다.
019_0501_a_18L第五七法可減惡人七法一爲不信二爲無有愧三爲無有慚四爲無有精進五爲忘意六爲不定意七爲無有慧第六七法增慧七慧者法一爲信爲愧三爲慚四爲發精進五爲守意六爲定七爲慧
일곱째의 일곱 가지 법은 느껴 알기 어려운 일곱 가지 식이 머무르는 곳[識止處]입니다. 형상이 있는 몸에 서로 다른 몸과 다른 모양이 있는 곳, 이를테면 인간 혹은 천상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첫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있는 몇 가지 종류의 몸에 같은 생각을 하는 곳, 이를테면 하늘 위의 하늘로서 범천이라 이름하는 높은 세계와 같은 곳이니, 이것이 두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있는 세계에 있고 같은 몸에 같은 생각을 하는 곳, 이를테면 자명천(自明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세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없는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일체의 형상을 벗어나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한량이 없는 행(行)으로 머무는 곳, 이를테면 공천(空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네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없는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일체 공으로부터 벗어나 한량이 없는 식(識)을 지으며 머무는 곳, 이를테면 식천(識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9)
형상이 있지 않은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생각이 있지 않고 또한 생각을 여읜 것도 아닌 것, 이를테면 무상천(無想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일곱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019_0501_b_02L第七七法難受知七識止處有色身異身異相譬如或人中或天上是爲一識止處有色若干身一想譬如天上天名爲上頭有是爲二識止處有在色處一身一想譬如天名爲自是爲三識止處有無有色處行者一切從色度滅恚念無有量行止譬如天名爲空是爲四識止處有無有色處行者一切從空得度識無有量止譬如天名爲識是爲五識止處有不在色行者無有想亦不離想譬如天名爲無有想是爲七識止處
여덟째의 일곱 가지 법은 확고한 마음이 생기도록 실천해야 할 것이니, 첫 번째는 바른 견해, 두 번째는 바른 생각, 세 번째는 바른 말, 네 번째는 바른 법, 다섯 번째는 바른 업,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 일곱 번째는 바른 마음입니다.
019_0501_b_17L第八七法行令有定意一爲直見爲直念三爲直語四爲直法五爲直六爲直方便七爲直意
019_0501_c_01L아홉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 가지의 현재 은혜입니다. 첫 번째, 도를 수행하는 이가 부처님에게 뜻을 두어 도의 근본을 믿고 들어가 머무르면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천 그외 세간의 수행자들이 그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를 지니는 이로서 계율을 지키고 계를 보호하여 나가건 들어가건 언제나 죽을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여 계를 지니며 계를 배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 좋은 선지식과 좋은 도반이 있고 스스로 잘 귀의함이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함께하는 사람 없이 혼자 있더라도 행동과 몸과 뜻을 다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정진하는 행을 유지하고 굳게 정진하며 도법(道法)과 방편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차라리 몸과 살과 힘줄과 뼈와 사지가 무너질지언정 응당 행해야 할 것에는 정진하리라’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우러러보는 이, 굳게 행하는 이, 방편을 버리지 않는 이는 도법의 행을 응당 얻어야 할 것이니, 얻지 못했으면 정진을 중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는 행과 훌륭한 마음을 지속하는 행을 스스로 오래도록 실천하고, 오래도록 말하며, 오래도록 마음에 잊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일곱 번째는 지혜를 생각하는 행으로 나고 멸하는 것을 알고 지혜로운 마음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 현재 은혜입니다.
019_0501_b_20L第九七法當知七現恩一爲若道行意在佛信入道根生住無有能壞若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亦餘世閒行者二爲持戒守律攝戒入成畏死罪持戒學戒三爲有好知有好同居有好自歸四爲獨居不二共牽行牽身牽意五爲持精進行堅精進行不捨道法方便六爲意計寧身肌筋骨血幹壞但當所應行者發精進七爲有瞻者堅行者不捨方便者道法行應得已未得精進不得中止守意行最意持行自久行久說意不忘七爲念慧行知生滅得慧意是爲七現恩
열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들이니, 첫 번째는 법이 있음이요, 두 번째는 이해가 있음이요, 세 번째는 때를 앎이요, 네 번째는 만족할 줄을 앎이요, 다섯 번째는 자기 몸을 앎이요, 여섯 번째는 대중을 앎이요, 일곱 번째는 사람의 전과 후를 앎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70가지 법입니다. 이는 그른 것이 아니고, 이는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501_c_11L第十七法當令有證有法二有解三知時四知足五知身六知衆七知人前後是行者七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知有持慧意觀
長阿含十報法經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장아함 제9권 『십상경(十上經)』이 있다. 장아함 아홉 번째 소경인 『중집경(衆集經)』과 장아함 열한 번째 소경인 『증일경(增一經)』을 참조하라.
  2. 2)2)이역경인 『십상경(十上經)』에는 오로관(惡露觀), 즉 육체에서 똥ㆍ오줌ㆍ침ㆍ고름ㆍ가래 등 더러운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고 관찰하는 법으로 되어 있다. 팔리본에는 이 부분이 yoniso manasikra(이치에 맞는 의식 작용), 즉 정사유(正思惟)로 되어 있다.
  3. 3)『십상경』에서는 명(名:nma)과 색(色:rpa)이라고 하였다.
  4. 4)4)고려대장경에는 점(點)자로 되어 있는데, 팔리본에 a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힐(黠)의 오자로 생각된다. 또 이역본인 장아함 『십상경』에도 이 부분이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로 한역된 것으로 보아 힐(黠)자가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5. 5)고려대장경에 지(知)자로 되어 있는 것을 송ㆍ원ㆍ명 3본에 의거하여 여(如)자로 바꿔 번역하였다. 반복되는 앞뒤의 문장과 대조해 보아도 여(如)자가 옳다.
  6. 6)고려대장경에는 빠져 있다. 팔리본에 따라 보입하였다.
  7. 7)아라한(阿羅漢)을 지칭한다.
  8. 8)8)이역본인 『십상경』에서는 아라한의 5분법신인 무학의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을 거론하였다.
  9. 9)9)여섯 번째 식지처(識止處)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문맥으로 보아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