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502_a_01L장아함십보법경 하권
019_0502_a_01L長阿含十報法經卷下


후한 안식국삼장 안세고 한역
019_0502_a_02L 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첫째의 여덟 가지 법은 수행자의 근본의 행법[本行]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는) 여덟 가지 법의 인연입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수행자가 배운 교훈과 계율에 의지하고 또 지혜로운 이와 도반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의 행법이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첫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이미 부처님과 그 밖의 지혜로운 이와 도반에게 의지하였으면 때때로 미묘한 법과 경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근본의 행법을 증장시키고 근본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근본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두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019_0502_a_03L第一八法行者爲增本行未得慧法八因緣何等八一爲若行者依受教誡行亦依慧者同學者是本行未得慧便得慧是爲一法因緣已依佛亦餘慧者同學者得時時聞微法經是增本行不得本慧便得本是爲二法因緣
이미 법을 들었으면 몸을 버리고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 근본 행법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으리니, 이것이 세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이미 법을 들었으면 정진해야 합니다. 이로부터 근본 행법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으리니, 이것이 네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019_0502_a_10L已聞法卻身卻意從是本行因緣得慧便得慧是爲三法因緣已聞法精進行從是增本行不得慧便得慧是爲四法因緣
마음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오래오래 짓고 오랫동안 좋아하며, 생각하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들은 말과 배운 법대로 실천하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019_0502_a_14L守意行盡力自久作久說欲念得念是增行不得慧便得慧是爲五法因受語亦如受法行是增行不得慧便得慧是爲六法因緣
019_0502_b_01L법을 좋아하고 행하기를 좋아하며 자주 경을 연설하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5온의 늘고 줆을 알고 그 변화를 보아야 합니다. 즉, ‘이것은 색(色)이다. 이것은 색의 쌓임[色習]이다. 이로부터 색은 사라진다’고 알아야 하고, 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생사(生死:行)ㆍ식(識)도 마찬가지며, ‘이것은 식(識)이다. 이로부터 식은 사라진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는 근본 행법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019_0502_a_18L樂法樂行說經是增行不得慧便得慧是爲七法因緣知五陰增減見行若是色若是色習若從是色得滅是痛痒思想生死識是識是從是識得度是增本行未得慧便得慧是爲八法因緣
둘째의 여덟 가지 법은 도를 얻은 이가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도이니, 첫 번째는 정직한 소견이요, 두 번째는 정직한 생각이요, 세 번째는 정직한 말이요, 네 번째는 정직한 법이요, 다섯 번째는 정직한 업이요, 여섯 번째는 정직한 방편이요, 일곱 번째는 정직한 마음이요, 여덟 번째는 정직한 선정입니다.
019_0502_b_02L第二八法可行得道者八種道一爲直見二爲直念三爲直語四爲直法五爲直業六爲直方便七爲直意爲直定
셋째의 여덟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이로운 것이요, 두 번째는 이롭지 않은 것이요, 세 번째는 이름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름나지 않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논의함이요, 여섯 번째는 칭찬이요, 일곱 번째는 즐거운 것이요, 여덟 번째는 즐겁지 않은 것입니다.
019_0502_b_06L第三八法當知八世閒法一爲利爲不利三爲名聞四爲不名聞五爲論議六爲稱譽七爲樂八爲不樂
넷째의 여덟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첫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소견이요, 두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생각이요, 세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말이요, 네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법이요, 다섯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업이요, 여섯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방편이요, 일곱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마음이요, 여덟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선정입니다.
019_0502_b_09L第四八法可捨一爲不直見二爲不直念三爲不直語四爲不直法五爲不直業六爲不直方便七爲不直意八爲不直定
다섯째의 여덟 가지 법은 줄여야 할 것들로, 흐리멍덩하여 도에 정진하지 않는 여덟 가지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되 속으로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녀 본 결과 마음껏 먹을 만큼 많이 얻을 수 없게 되면 곧 ‘오늘은 마음껏 먹을 만큼 많이 얻지 못했으니 몸이 파리하여 앉을 수 없다. 당연히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다시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하여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흐리멍덩하여 도에 정진하지 않는 종류입니다.
019_0502_b_13L第五八法可減八瞢瞢不精進道者若在郡在縣在聚亦餘處依行朝起著衣持應器入郡縣求食意計當得多可意噉食已行不得多可噉便念今日自不得多可意噉食羸不能坐當傾臥便傾臥不復求度世方便未得當得未解當解當自知不自知是爲一瞢瞢種不精進道
019_0502_c_01L어떤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되 속으로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게 되면 스스로 ‘나는 아침에 많이 얻어 많이 먹게 되었구나’고 생각하고, 곧 ‘아침에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었으니 나는 몸이 무거워 다니지도 앉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응당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응당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응당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2_b_22L行者若在郡在縣在聚餘處依行淸朝起著衣持應器入郡縣求食意計當多可意噉食自得多可噉食自意念我爲朝得多可噉食便自念朝得多可噉食爲我身重能行不能坐令我傾臥便臥無有度世方便所應得不得所應解無解應自知不自知是爲二瞢瞢種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가서 도를 행해야 할 때에 곧 ‘나는 마땅히 나가서 도를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나가서 도를 행할 수 없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시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2_c_06L或有時行者或時應出行道便意生我爲應出行道我不能出行道不能受教誡行令我傾臥不復求度世方便當得未得當解未解當自知未自是爲三瞢瞢種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낮에 도를 행해야 할 때에 ‘아침부터 도를 행하였으니 몸이 야윌까 염려되어 앉지도 다니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2_c_11L或時行者晝日行道意計朝行道來念身羸不能坐行令我傾臥便傾臥無有度世方便當得不得當解不解當自知證不自知證是爲四瞢瞢種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응당 수행하기를 좋아해야 할 것인데도 ‘나는 응당 수행하기를 좋아해야겠지만 나는 수행할 수도 없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잠깐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따라야 할 것을 따르지 않으며, 응당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흐리멍덩한 종류입니다.
019_0502_c_15L或時行者應好行便計我應好行不能行不能奉受教誡令我須臾閒傾臥便傾臥不求度世方便應及者不及應解者不解應自知證不自知是爲五瞢瞢種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는 아침부터 도를 행하여 이미 몸이 피곤해 앉아 있을 수 없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2_c_20L或時行者計我朝以行道已身羸不能坐令我傾臥已傾臥不求度世方便應得不得應解不解應自知證不自知證是爲六瞢瞢種
019_0503_a_01L혹 어떤 때 수행자는 병이 들면 ‘나는 이미 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몸이 야위어 다니지도 앉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3_a_01L或時行者已得病苦便念我已苦得身羸不能行不能坐令我傾臥便傾臥無有度世方便當得不得當解不解當自知證不自知證是爲七瞢瞢種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침 병에서 일어나게 되면 오래지 않아 곧 ‘나는 이제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다. 몸이 야위어 다니거나 앉을 수 없으니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019_0503_a_06L或時行者適從病起不久便念我爲適從病起身羸不能行坐令我傾臥便傾臥不求度世方便當得不得解不解當自知證不自知證是爲八瞢瞢種
여섯째의 여덟 가지 법은 도를 증가하는 여덟 가지 정진하는 방편의 도입니다. 어떤 때 수행자는 군이나 현 또는 마을이나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면서 속으로 ‘마땅히 많이 얻어서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얻지 못하여 많이 먹지 못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나는 아침에 많이 얻어 먹지는 못했으나 몸이 가뿐하여 다니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방편을 지어 얻지 못한 것을 얻도록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도록 하고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a_11L第六八法行增道八精進方便道若在郡在縣在聚亦餘處依行朝起著衣持應器入郡縣求食意計當得多可噉食不得多可噉食自意我朝不得多可噉食身輕能行坐令我作方便未得令得未解令解自知令自知是爲一精進方便
혹 어떤 때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면서 속으로 ‘마땅히 많이 얻어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곧 많이 얻어 먹고는 ‘아침에 많이 얻어 먹어서 몸에 힘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며 앉고 다닐 수 있다. 나는 방편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a_18L或時行者若在郡在縣在聚亦餘處依行淸朝起著衣持應器入郡縣求意計當得多可噉食便得多可噉便念已朝得多可噉食身有力能前坐行令我求方便未得當得未解當解未自知當自知是爲二精進方便
019_0503_b_01L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가야 할 때를 당해서 ‘나는 마땅히 나가야 하는데 몸이 나갈 수도 없고 또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이제 가르침에 따라 방편을 구하고 스스로 도를 수행하는 방편을 지어 얻지 못한 것을 얻도록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도록 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01L或時行者當出行意生我爲應出不能行亦不能受教誡行令我教勅求方便爲自作道方便未得者致得未解者致解未自知致自知是爲三精進方便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도를 행하고 나서는 ‘나는 도를 행한 이래로 스스로 도를 행하지 못하였고 가르침을 받들어 섬기지 못하였다. 나는 내가 범한 것들을 밝히고 방편을 써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06L或時行者已行道生我已行道來能自行道不能奉事教誡令我開所令有方便未得當得未解當解自知當自知是爲四精進方便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땅히 행해야 할 때에 ‘나는 수행을 하며 가르침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앞서 방편을 구하며 앞서 방편을 행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10L或時行者應行便念我不能作行成或令我居前求方便便前行方便末得當得未解當解未自知當自知是爲五精進方便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온 힘을 다해 수행하고 나서는 ‘나는 이미 온 힘을 다해 수행했지만 더 수행할 수도, 가르침을 이룰 수도 없다. 나는 범한 것을 막을 수 있으니 곧 방편을 구하여 범한 것을 막고, 얻지 못한 것을 얻으며,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고,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14L或時行者盡行便念我已盡行不能復行成教誡令我能得閉所犯便求方便所犯閉未得當得未解當解自知當自知是爲六精進方便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몸에 병이 들어 고통이 극심하면 곧 ‘나는 병이 들어 고통이 심하니 언젠가는 이 병으로 죽으리라. 나는 잠깐 동안에 방편의 행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18L或時行者身有病苦極便念我有病苦極有時從是病死念我須臾閒求方便行未得當得未解當解未自知當自知是爲七精進方便
019_0503_c_01L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침 병에서 일어나게 되면 오래지 않아 곧 ‘몸이 이제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는데 병이 다시 올까 두렵다. 이제 나는 앞서 방편의 행을 구하리라’고 생각하고는 곧 앞서 방편의 행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압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019_0503_b_22L或時行者適從病起不久便念身適從病起畏恐病復來今我居前求方便行便居前求方便行未得得未解未自知自知是爲八精進方便
일곱째 여덟 가지 법은 받기 어려운 여덟 가지 해탈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안으로 색(色)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관찰하여 색에 있는 몇 가지 예쁨과 추함을 자유로이 알고 자유로이 보며, 뜻과 생각에도 역시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입니다.
혹 어떤 때 도를 수행하는 자는 안으로 물질을 생각하고 밖으로 물질을 봅니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입니다.
019_0503_c_03L第七八法難受八解脫或時行者想色外觀色若少好醜所色自在知自在見意想亦如有是爲一解脫或時行道者內思色外見色是爲二解脫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청정히 해탈한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해탈입니다.
모든 색(色)을 벗어나 성냄을 없애고 어떤 생각도 생각하지 않으며 바라는 것 없이 공(空)을 받아들이고 공을 행하면 이것은 네 번째의 해탈입니다.
019_0503_c_08L或時行者淨解脫身知受行爲三解脫一切度色滅恚若干念不念無有空受空行是爲四解脫
모든 공을 벗어나 바라는 것 없이 식(識)을 받아들이고, 모든 식을 벗어나 인식하는 바 없이 유불용(有不用:無所有)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입니다.
모든 무소유(無所有), 즉 불용(不用)을 벗어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無有想亦非無有想]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입니다.
019_0503_c_11L一切度空無有要識受行一切度識無所識有不用受行是爲五解脫一切度無所有不用無有想亦非無有想受行是爲六解脫
모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행을 벗어나면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입니다.
지각[想]과 사고[思]가 멸한 것을 몸으로 느끼면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입니다.
019_0503_c_15L一切度無有想亦不無有想行是爲七解脫滅想思身知受行是爲八解脫
여덟째의 여덟 가지 법은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입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도법(道法)을 생각한다는 것은 욕심이 적은 것이요, 욕심 많은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니, 만족을 모르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받아 수행하는 것이니, 받아 수행하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이니, 정진하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019_0503_c_17L第八八法合有八大人念何等爲八一爲念道法少欲者非多欲者二爲道法足者不足者無有道法三爲道法受行者不受行者無有道法四爲道法精進者不精進者無有道法
019_0504_a_01L다섯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뜻을 지키는 것이니, 뜻을 지키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니,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곱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니, 지혜롭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덟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가정의 즐거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지만 함께 어울려 살게 되면 가정의 즐거움이 있게 됩니다. 함께 어울려 살게 되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입니다.
019_0503_c_23L五爲道法守意者不守意者無有道法六爲道法定意者不定意者無有道法七爲道法智慧者不智慧者無有道法八爲道法無有家樂無有家不樂居有家樂共居無有道法是爲八大人念
아홉 번째, 여덟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여덟 가지 법입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안으로 색(色)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몇 가지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또 자재롭게 보며 뜻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첫 번째 자재함입니다.
안으로 색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한량없는 여러 가지 면들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두 번째 자재함입니다.
019_0504_a_07L第九八法當知八法知爲何等內想外見色少端正不端正得攝色自在亦自在見意念計是爲一自在內念色外見色見色不啻在所行自在知自在見如是想是爲二自在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이 없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몇 가지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세 번째 자재함입니다.
안으로 색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한량 없는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네 번째 자재함입니다.
019_0504_a_12L內無有色想外見色少端正不端正所色在所行自在知自在見如是想是爲三自在內不念色外見色不啻端正不端正所色在所行自在知自在見如是想是爲四自在
019_0504_b_01L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며 파랗게 보이는 파란 색, 마치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며 파랗게 보이는 욱(郁)이라는 꽃의 파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고 파랗게 보이는 파란 색을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다섯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노란 색, 마치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가니(加尼)꽃이나 아주 밝은 빛깔의 옷의 노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노란 색을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여섯 번째 자재함입니다.
019_0504_a_18L內念色想外見色靑靑色靑明靑見譬如華名爲郁者靑靑色靑明靑見如是內色想外見色靑靑色靑明靑如是想是爲五自在內知色想外見色黃黃色黃明黃見如加尼華最明色衣黃黃色黃明黃如是內色想外見色黃黃色黃明黃見如是想是爲六自在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붉은 색, 마치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붉은 빛깔의 꽃[絳色華]이나 아주 붉은 빛깔의 옷의 빨강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빨간 색을 보며, 이와 같이 색에 있는 것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일곱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하얀 색, 마치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샛별이나 흰 옷의 하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하얀 색을 보며, 이와 같이 색에 있는 것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있으면 이는 여덟 번째 자재함입니다.
019_0504_b_03L內色想外見色赤赤色赤明赤見如絳色華亦最色絳衣赤赤色赤明赤見如是行者內色想外見色赤色赤明赤見如是色在所行自在知自在見如是想是爲七自在內色想外見色白白色白明白見譬如明星亦最成白衣白白色白明白見如是行者內色想外見色白白色白明白如是色在所行自在知自在見如是想是爲八自在
열째의 여덟 가지 법은 때때로 알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인, 집착 없는 수행자의 여덟 가지 힘입니다. 집착 없는 수행자는 애욕을 마치 불과 같이 봅니다. 이와 같이 보아 알고 이와 같이 분명히 보아서 애욕과 애욕에 대한 생각을 떠나 보내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다시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첫 번째 힘입니다.
4의지(意止)의 행을 이미 구족하여 집착하는 바 없는 이것이 두 번째 힘입니다.
4의단(意斷)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세 번째 힘입니다.
4선족(禪足:如意足)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네 번째 힘입니다.
019_0504_b_13L第十八法時知當自知八無有著行者力無所著行者愛欲見譬如火如是見知如是見令愛欲念愛往使慧意不復著著者是爲一力四意止行已足無所著者是爲二力四意斷行已足是爲三力四禪足行已具足是爲四力
5근(根)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다섯 번째 힘입니다.
5력(力)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여섯 번째 힘입니다.
7각의(覺意)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일곱 번째 힘입니다.
8행(行)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여덟 번째 힘입니다.
019_0504_b_20L五根行已足是爲五力五力行已足是爲六力七覺意行已足是爲七力八行行已足是爲八力
019_0504_c_01L이것이 수행자의 8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504_c_01L是爲行者八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아홉 가지 법은 수행자가 흔히 행하는 아홉 가지 마음의 기쁨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법을 듣는 기쁨이요, 두 번째는 생각하는 기쁨이요, 세 번째는 기뻐하는 기쁨이요, 네 번째는 즐거워하는 기쁨이요, 다섯 번째는 받아 믿는 기쁨이요, 여섯 번째는 편안한 기쁨이요, 일곱 번째는 선정의 기쁨이요, 여덟 번째는 그치는 기쁨이요, 아홉 번째는 떠나는 기쁨입니다.
019_0504_c_03L第一九法行者多行九意喜何等爲一爲聞法喜二爲念喜三爲喜喜四爲樂喜五爲受猗喜六爲安喜爲定喜八爲止喜九爲離喜
둘째의 아홉 가지 법은 정진하여 청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정진하는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두 번째는 마음의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세 번째는 소견으로부터 해탈하여 청정함을 이룸이요, 네 번째는 의심으로부터 해탈하여 청정함을 이룸이요, 다섯 번째는 도를 닦는 것으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여섯 번째는 지혜로운 견해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로운 견해로 애욕을 끊는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여덟 번째는 종자를 끊음이요, 아홉 번째는 세상을 벗어남입니다.
019_0504_c_07L第二九法精進致淨何等爲九一爲精進度致淨二爲意度致淨三爲見度致淨四爲疑度致淨五爲道道致六爲慧見如淨七爲見慧愛斷度致淨八爲斷種九爲度世
셋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정신이 머무르는 아홉 곳입니다. 무엇이 아홉 곳인가? 색상(色象)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인간세계라 불리는 곳과 한 종류의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첫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여러 가지 몸에 똑같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의식과 수명이 극치에 이른 범천(梵天)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두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019_0504_c_12L第三九法當知九神止處何等爲九有色象神止處若干身若干想非一譬名爲人亦一輩天是爲一神止處有色神止處若干身非一一想譬天名爲梵意命上頭致是爲二神止處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하나의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낙명(樂明)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세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하나의 몸에 하나의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변정(遍淨)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네 번째 정신이 머무는 곳입니다.
019_0504_c_17L有色神止處一身若干想譬天名爲樂明是爲三神止處有色神止處一身一想譬天名爲遍是爲四神止處
019_0505_a_01L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생각을 느끼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곳이 있으니, 마치 생각이 없는 하늘[無有想天]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다섯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모든 색상을 벗어나고 성냄을 없앴으나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몸에 한량없는 허공을 수용하는 곳이 있으니, 마치 공혜(空慧)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여섯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019_0504_c_21L有色神止處不受想不更想譬天名爲無有想是爲五神明止處有無有色神止處一切度色滅恚不可不念若干身無有量空受行譬天名爲空慧是爲六神明止處
색상이 없이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모든 허공을 다 벗어나 한량없는 식(識)의 지혜만이 행하고 마음이 그치는 곳이 있으니, 마치 식혜행(識慧行)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일곱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만 머무르는 곳으로서, 식에서 생긴 모든 지혜를 다 벗어나 무소유(無所有)의 지혜를 수용해 벗어나는 곳이 있으니, 마치 무소념혜(無所念慧)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여덟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019_0505_a_03L有不色神止處一切竟度空無有量識慧行意止譬天名爲識慧行是爲七神明止處有不在色神止處一切從識慧竟度無所有慧受行度譬天名爲無所念慧是爲八神明止處
색상이 없이 정신만 머무르는 곳으로서, 바람이 없는 데서 생긴 모든 지혜를 다 벗어나 생각함도 없고 또한 생각함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을 수용해 마침내 그치는 곳이 있으니, 마치 생각함도 없고 또한 생각함을 떠날 수도 없는 하늘[無有思想亦不離思想天]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아홉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019_0505_a_08L有無有色神止處一切從無所欲慧竟度無有思想亦不得離思想受竟譬天名爲無有思想亦不離思想是爲九神明止處
넷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뽑아버려야 할 아홉 가지 결박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애욕이 첫 번째 결박이요, 성냄이 두 번째 결박이요, 교만이 세 번째 결박이요, 어리석음이 네 번째 결박이요, 삿된 견해가 다섯 번째 결박이요, 의심이 여섯 번째 결박이요, 탐내는 것이 일곱 번째 결박이요, 질투가 여덟 번째 결박이요, 인색한 것이 아홉 번째 결박입니다.
019_0505_a_12L第四九法當拔九結何等爲九愛欲爲一結瞋恚爲二結憍慢爲三結爲四結邪見爲五結疑爲六結貪爲七結嫉爲八結慳爲九結
다섯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없애야 할 아홉 가지 고뇌의 근본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어떤 수행자는 욕심을 부리고 나쁜 짓을 하며 불안하게 하고 침해하며, 또 다른 나쁜 짓을 생각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첫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이미 나쁜 짓을 저질렀고 나쁜 짓을 하고는 불안해 하며 침해하고 나서는 또 다른 나쁜 짓도 저질렀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두 번째 고뇌입니다.
019_0505_a_16L第五九法當滅九惱本何等爲九行者有欲施惡施令不安施令侵念餘惡若行者向念是從是生惱爲一惱若行者已有作惡已施惡已不安侵亦餘惡已施若行者向念是從是生惱是爲二惱
019_0505_b_01L어떤 수행자는 뒤에 또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하고 나쁜 짓을 저질러 불안하게 하려고 하며 침해하려 하고 또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세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친한 이 가운데 수행자에게 욕심을 부리는 그런 이도 있습니다. 그 친한 이는 나쁜 욕심을 부리고, 나쁜 욕심을 부려 불안하게 하며, 침해를 가하려고 하고 다른 나쁜 짓도 하려고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네 번째 고뇌입니다.
019_0505_a_23L若行者後復欲施惡欲施令不安欲施侵欲施餘惡若行者向念是從是生惱是爲三惱若行者有親厚有欲施行者親厚惡欲施惡欲施不安欲施侵欲餘惡行者向念是從是復生惱是爲四惱
어떤 수행자에게는 이미 나쁜 짓을 하였고, 이미 불안하게 하였으며, 이미 침해하였고, 이미 다른 나쁜 짓도 한 적이 있는 그런 친한 이도 있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다섯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는 뒤에 수행자에게 다시 탐욕을 부리려는 친한 이도 있습니다. 친한 이는 나쁜 짓으로 불안하게 하려 하고, 침해하려 하며,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여섯 번째 고뇌입니다.
019_0505_b_05L若行者有親厚有者已施惡已施不已施侵已施餘惡若行者向念是從是生惱是爲五惱若行者有親厚後復欲施行者親厚欲施不安欲施侵欲施餘惡若行者向念是從是生惱是爲六惱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도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두렵고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편안함을 주려 하고, 침해를 풀어주려 하며, 다른 나쁜 짓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일곱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수행자를 도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편안함을 주었고, 이미 침해를 풀어주었으며, 또 다른 나쁜 짓도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여덟 번째 고뇌입니다.
019_0505_b_11L若行者有恐不相便有者助行者恐不相便欲施安欲解侵不欲令有餘若行者向念不可是從是生惱爲七惱若行者有恐不相便有者欲助行者不相便已施安已解侵不欲令有餘若行者向念不可是生從是生惱是爲八惱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수행자를 위해 주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이미 돕고 이미 편안케 하였으며 침해와 다른 나쁜 짓도 풀어 주었습니다. 수행자가 늘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것은 편치 않은 관계에 있는 저 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아홉 번째 고뇌입니다.
019_0505_b_19L若行者有恐不相便有者爲行者恐不相便已助已安已解侵亦餘惡行者向念不可是令不相便者令安從是生惱是爲九惱
019_0505_c_01L여섯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사유하여 없애야 할 아홉 가지 마음의 고뇌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다른 이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이미 나에게 했다’고 하며 이러한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현재 나에게 하고 있다’고 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두 번째입니다.
019_0505_b_23L第六九法當思惟除九意惱何等九或時行者是爲我令亡令我他有我無有樂令我不安隱已施我惡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一或時行者是爲我令我亡令我有他令我無有樂令我不安隱見作我惡持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二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마침내 나에게 할 것이다’고 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세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그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이미 하였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네 번째입니다.
019_0505_c_07L或時行者是爲我令亡令我有他我無有樂令我不安隱會作我惡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三或時行者有時是意生所我有親厚令亡令有他令無有樂令不安隱施惡持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四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그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현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다섯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마침내 저지를 것이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여섯 번째입니다.
019_0505_c_14L或時行者有時是意生所我有親厚令亡令有他令無有樂令不安隱見作惡持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爲五或時行者有時是意生所我有親厚令亡令有他令無有樂令不安隱會作惡持是惡惱意向若行者向念是爲六
019_0506_a_01L때로 수행자는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이미 하였다’고 생각하며 이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일곱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현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여덟 번째입니다.
019_0505_c_22L或有時行者有是意生所我不相便我念惡念令不安隱念令不吉爲令我怨有利令安令樂令安隱已作持是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七或有時行者有是意生所我不相便我念惡念令不安隱念令不吉令我怨有利令安令樂令安隱見作持見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八
때로 수행자가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아홉 번째입니다.
019_0506_a_08L或有時行者有是意生所我不相便我念惡念令不安隱念令不吉爲令我怨有利令安令樂令安隱欲作持是惱意向若行者向念是是爲九
일곱째의 아홉 가지 법은 받기 어려운 아홉 가지 의지하여 머무름[依住]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수행자가 믿음을 얻어 의지하여 머무르고 나쁜 것을 능히 버리고 좋은 것을 받으면 이것이 첫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마음을 수행에 두고 수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버리면 이것이 두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정진을 일으켜 정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버리면 이것이 세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019_0506_a_12L第七九法難受九依住何等九若行者得信依住能捨惡受好是爲一依若行者意著行捨不欲行是爲二依住若行者起精進捨不起精進爲三依住
만일 수행자가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을 버리면 이것이 네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이와 같이 의지하여 머무른 뒤에 바르게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것이 다섯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한 법을 버리면 이것이 여섯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019_0506_a_17L若行者閑處自守捨不守是爲四依住若行者能堪依住如是依得住已得正挍計是爲五依住行者捨一法是爲六依住
한 법을 버리고 나서 곧 한 법을 깨달으면 이것이 일곱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한 법을 깨닫고 나서 곧 한 법을 받으면 이것이 여덟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한 법을 받고 나서 한 법을 행하면 이것이 아홉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019_0506_a_20L已捨一法便曉一法是爲七依住已曉一法便受一法是爲八依住已受一法便行一法是爲九依住
019_0506_b_01L여덟째의 아홉 가지 법은 일으켜야 할 9차제정(次第定)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마음이 그치는 초선(初禪)이 첫 번째 정이요, 초선으로부터 2선(禪)의 끝까지가 두 번째 정이요, 2선으로부터 3선의 끝까지가 세 번째 정이요, 3선으로부터 4선의 끝까지가 네 번째 정이요, 4선으로부터 공의 정[空定]까지가 다섯 번째 정이요, 공에서 벗어나 식(識)까지가 여섯 번째 정이요, 식에서부터 벗어나 욕심이 없는 데[無有欲]까지가 일곱 번째 정이요, 욕심 없는 데에서 벗어나 생각이 없는 데[無有思想]까지가 여덟 번째 정이요, 생각이 없는 데서 벗어나 멸도(滅度)하는 데까지가 아홉 번째 정입니다.
019_0506_a_23L第八九法起包九次定何等九意止初禪爲一定從一次二禪竟爲二定從二次三禪竟爲三定從三次四禪爲四定從四次禪竟空定爲五定從空次竟度識爲六定從識次竟度無有欲爲七定從無有欲次竟度無有思想爲八定從無有思想次竟度爲九定
아홉째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아홉 가지 적당치 않은 때입니다. 이 때는 사람이 수행할 수도 없고 수행이 이룩될 수도 없습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사람이 혹 지옥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하였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혹 축생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혹 아귀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019_0506_b_08L第九九法當知九不應時人不得行第九行不滿何等爲九或時人在地獄罪未竟不令應得道二或時在畜生罪未竟不令應得道三或時在餓鬼罪未竟不令應得道
네 번째는 혹 장수천(長壽天)에 있어서 복이 다하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혹 법과 이치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어서 말해주는 이가 없고 받아듣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혹 귀가 먹어서 들을 수 없고 받을 수 없으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019_0506_b_12L四或時在長壽天福未竟不令應得道五或時在不知法義處無有說者能得受不令應得道六或時在聾不能聞不能受不令應得道
일곱 번째는 혹 벙어리가 되어 받아 지닐 수 없고 외우고 말할 수 없으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혹 들었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혹 총명하지 못하여 경을 말해주어도 마음이 열리지 못하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019_0506_b_17L七或時在瘖不能受不能諷說不令應得道八或時在聞不能受不令應得道九或時未得明者無有開意說經令應得道
019_0506_c_01L열째의 아홉 가지 법은 멸함이 없는 것을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름[名]과 물질[色]이 없어짐이요, 두 번째는 여섯 감관[六入]이 없어짐이요, 세 번째는 닿임[更受:觸]이 없어짐이요, 네 번째는 느낌[痛:受]이 없어짐이요, 다섯 번째는 애욕이 없어짐이요, 여섯 번째는 집착[受:取]이 없어짐이요, 일곱 번째는 존재[有]가 없어짐이요, 여덟 번째는 태어남이 없어짐이요,아홉 번째는 늙고 죽음이 없어짐입니다.
019_0506_b_22L第十九法自證知無滅何等爲九滅名字苦二滅六入三更受滅四痛五愛滅六受滅七有求滅八生滅九老死滅
이것이 수행자의 9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019_0506_c_03L是爲行者九十法是不非是不異有諦如有不惑不倒是如有持慧意觀
그리고 첫째의 열 가지 법은 도를 불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능히 수호하는 법이고 구제하는 법입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만일 여래로부터 배운 도가 있는 제자가 믿음에 따라 근본이 성립된다면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다른 세간(世間)의 어느 누구도 그를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계행을 청정히 하여 계율을 지키고 가야할 곳을 잘 알아서 죄를 보는 대로 두려워하며 배운 가르침대로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혜로운 자와 알고 지내고 지혜로운 자를 따르며 지혜로운 자를 서로 찾아가야 합니다.
네 번째는 혼자 앉아서 사유하고, 행동함에는 둘을 제어해야 하나니 몸을 제어하고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019_0506_c_05L第一十法多增道能守法者有救法何等爲十一者若有道弟子從如來受隨信本生立無有能壞者若沙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亦餘世閒二爲淨戒行攝守律能曉行處隨畏見罪見如教誡學三爲有慧知識有慧相隨有慧相致四爲獨坐思惟行牽兩制制身制意
다섯 번째는 정진하는 행을 지녀 넉넉한 힘을 가지고 온 힘을 쏟아 행하며 방편인 깨끗한 법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잘 지켜 마음으로 미묘하게 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말해진 것을 능히 기억하고 그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는 지혜로운 행을 닦아 나고 멸하는 지혜[生滅慧]로부터 도를 얻은 자는 모든 의심을 없애고 괴로움을 무너뜨려 없애는 일만 해야 합니다.
여덟 번째는 좋은 말을 받아 지니고 좋은 법의 말대로 따라 행해야 합니다.
019_0506_c_14L五爲受精進行有瞻有力盡行不捨方便淨法六爲意守居最意微妙隨爲遠所作所說能念能得意七爲慧行從生滅慧隨得道者要卻無有疑但作令壞苦滅八爲受好語如好法言隨行
019_0507_a_01L아홉 번째는 법 듣기를 좋아하고 법의 행 듣기를 좋아하며 자주 설법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열 번째는 같이 배우는 이를 위하여 함께 일하고 정진할 수 있어야 하며 몸소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열 가지 구제하는 법이니, 이 뒤부터 믿음과 계율과 지혜로 단속하고 혼자 앉아서 사유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지혜로운 마음으로 정진하고, 좋은 말씀을 받아 경을 연설하며, 몸과 하는 일을 꼭 같게 하여 그치지 않으면 이것을 구제함이라 합니다.
019_0506_c_21L九爲喜聞法喜聞法行但樂數說法十爲所有同學者共事能作精進身是爲十救法從後縛束信戒慧獨坐思惟行者精進意慧受好言欲說經身事如等不是名爲救
둘째 열 가지 법은 실천해야 할 열 가지 바른 행입니다. 무엇이 바른 행인가? 첫 번째는 바른 소견이니, 곧 삿된 소견을 없앨 수 있고, 또 삿된 소견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소견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두 번째는 바른 사유이니 삿된 사유를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사유를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사유를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019_0507_a_04L第二十法可作十種直何等爲直爲直見行者便邪見行得消亦從邪見因緣非一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見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二爲直思惟計消邪計亦從邪計因緣非一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思惟計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
세 번째는 바른 말이니 삿된 말을 녹여 없애고, 또한 삿된 말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말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네 번째는 바른 행동이니 삿된 행동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행동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행동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019_0507_a_13L三爲直言消邪言亦從邪言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言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四爲直行消邪行亦從邪行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行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
019_0507_b_01L다섯 번째는 바른 업이니 삿된 업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업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업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이니 삿된 방편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방편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방편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019_0507_a_19L五爲直業消邪業亦從邪業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業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六爲直方便消邪方便亦從邪方便因緣非一若干弊惡行生能得消從直方便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
일곱 번째는 바른 기억이니 삿된 기억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기억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기억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여덟 번째는 바른 선정이니 삿된 선정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선정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선정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019_0507_b_03L七爲直念消邪念亦從邪念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念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八爲直定消邪定亦從邪定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定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
아홉 번째는 바른 해탈이니 삿된 해탈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해탈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해탈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열 번째는 바른 지혜니 삿된 지혜를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지혜를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지혜를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019_0507_b_09L九爲直度消邪度亦從邪度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度因緣非一若干好法致從行具行十爲直慧消邪慧亦從邪慧因緣非若干弊惡行生能得消亦從直慧因緣非一若干好法得足具行
셋째의 열 가지 법은 마땅히 분명히 알아야 할 안팎의 열 가지 색입(色入)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눈[眼入]이요, 두 번째는 빛깔[色入]이요, 세 번째는 귀[耳入]요, 네 번째는 소리[聲入]요, 다섯 번째는 코[鼻入]요, 여섯 번째는 냄새[香入]요, 일곱 번째는 혀[舌入]요, 여덟 번째는 맛[味入]이요, 아홉 번째는 몸[身入]이요, 열 번째는 거칠고 고움[麤細]입니다.
019_0507_b_15L第三十法當了知十內外色入何等爲十一爲眼入二爲色入三爲耳入四爲聲入五爲鼻入六爲香入七爲舌入八爲味入九爲身入十爲麤細入
019_0507_c_01L넷째의 열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열 가지 안팎의 덮개[蓋]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안의 욕심의 덮개요, 두 번째는 밖의 욕심의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가 없어지고 또 이해도 없게 되며, 또한 함이 없음[無爲]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성냄이요, 네 번째는 성내는 모양입니다. 성내더라도 또한 덮개이고 성내는 모양을 보이더라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019_0507_b_19L第四十法可捨十內外蓋何等爲十一爲內欲蓋二爲外欲蓋具足從是無有慧亦無有解亦不致無爲度世三爲恚四爲恚相設恚是亦蓋設恚相是亦蓋具足從是不致慧亦不致亦不致無爲度世
다섯 번째는 수면(睡眠)이요, 여섯 번째는 어둠입니다. 수면도 덮개이고 어둠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일곱 번째는 고뇌요, 여덟 번째는 의심입니다. 고뇌도 덮개이고 의심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019_0507_c_02L五爲睡六爲瞑設睡是亦蓋設瞑是亦蓋具足從是不致慧亦不致解不致無爲度世七爲惱八爲疑設惱是亦蓋設疑是亦蓋具足從是不致亦不致解亦不致無爲度世
아홉 번째는 혹 청정한 법에 대해 의심함이요, 열 번째는 혹 나쁜 법에 대해 의심함입니다. 설령 청정한 법에 대해 의심하더라도 덮개이고 나쁜 법에 대해 의심하더라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019_0507_c_07L九爲或淨法中疑十爲或惡法中疑設淨法中疑是亦蓋設惡法中疑是亦蓋具足從是不致慧亦不致解亦不致無爲度世
다섯째의 열 가지 법은 줄여야 할 열 가지 나쁜 행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죽임이요, 두 번째는 도적질이요, 세 번째는 음행이요, 네 번째는 이간질이요, 다섯 번째는 허망한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추악한 말을 함이요, 일곱 번째는 꾸미는 말을 함이요, 여덟 번째는 어리석음이요, 아홉 번째는 성냄이요, 열 번째는 삿된 소견입니다.
019_0507_c_11L第五十法可令減十事惡行何等爲一爲殺二爲盜三爲犯色四爲兩五爲妄語六爲麤語七爲綺語爲癡九爲瞋十爲邪意
여섯째의 열 가지 법은 많이 행하여야 할 열 가지 깨끗한 행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죽이는 짓을 떠나 죽이는 짓을 그침이요, 두 번째는 도적질을 떠나 도적질을 그침이요, 세 번째는 음행을 떠나 음행을 그침이요, 네 번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떠나 이간질하는 말을 그침이요, 다섯 번째는 허망한 말을 떠나 허망한 말을 그침이요, 여섯 번째는 추악한 말을 떠나 추악한 말을 그침이요, 일곱 번째는 꾸미는 말을 떠나 꾸미는 말을 그침이요, 여덟 번째는 어리석음을 떠나 어리석음을 그침이요, 아홉 번째는 성냄을 떠나 성냄을 그침이요, 열 번째는 삿된 소견을 떠나 삿된 소견을 그치는 것입니다.
019_0507_c_15L第六十法行令多十淨行何等爲十一爲離殺從殺止二爲離盜從盜止三爲離色從色止四爲離兩舌從兩舌止五爲離妄語從妄語止六爲離麤語從麤語止七爲離綺語從綺語八爲離癡從癡止九爲離瞋從瞋十爲離邪意從邪意止
019_0508_a_01L일곱째의 열 가지 법은 받아 깨닫기 어려운 열 가지 도덕적 삶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자기를 위하여 다섯 가지[五種]를 버림이요, 두 번째는 여섯 가지 바른 도덕을 닦음이요, 세 번째는 하나를 지킴이요, 네 번째는 넷에 의지함이요, 다섯 번째는 스스로 이해하고 다시 이해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함이요, 여섯 번째는 자기를 위하여 구하는 것을 버림이요, 일곱 번째는 구함이 이미 청정해짐이요, 여덟 번째는 몸의 업이 이미 그침이요, 아홉 번째는 입의 업이 이미 그침이요, 열 번째는 뜻의 업이 이미 그침입니다. 마음이 최고의 해탈하는 지혜와 해탈하는 행을 구족하면 으뜸가는 사람이라 합니다.
019_0507_c_22L第七十法難受了十德道居何等爲一爲已捨五種二爲六正道德爲守一四爲依四五爲自解不復待六爲已捨求七爲所求已淸淨爲身行已止九爲口語已行止十爲意行已止意最度慧最度行具足爲最人
여덟째의 열 가지 법은 구경에 이르게 하는 열 가지 두루하는 선정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비구에 있어서 땅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두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물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세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불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넷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바람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다섯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푸른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한량없음이요,
019_0508_a_06L第八十法令竟十普定何等爲十爲在比丘爲地普上下遍不二無有量二爲在行者比丘爲水普上下遍無有量三爲在行者比丘爲火上下遍不二無有量四爲在行者比丘爲風普上下遍無有量五爲在行者比丘爲靑普上下遍無有量
019_0508_b_01L여섯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노란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일곱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붉은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여덟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흰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아홉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허공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열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의식[識]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입니다.
019_0508_a_15L六爲在行者比丘爲黃普上下遍無有量七爲在行者比丘爲赤普上下遍無有量八爲在行者比丘爲白普上下遍無有量九爲在行者比丘爲空普上下遍無有量十爲在行者比丘爲識普上下遍無有量
또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이니, 무엇이 열 가지 힘인가? 첫 번째,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이치에 대해 사실대로 아시니,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을 아시고 이치와 이치 아님에 대해서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지혜의 행으로부터 스스로 아시니 이것이 첫 번째 힘입니다.
두 번째, 부처님께서는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지은 죄와 원인이 되는 종자와 그 재앙을 있는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두 번째 힘입니다.
세 번째, 부처님께서는 온갖 곳에서 겪은 일을 사실 그대로 아시니, 자기의 분별하는 지혜의 행으로 이것을 아십니다. 이것이 세 번째 힘입니다.
019_0508_b_02L佛十力何謂爲十力一者佛爲處處如有知當爾不爾處不處如有知慧行得自知是爲一力二者佛爲過去未來現在行罪處本種殃如有知是爲二力三者佛爲一切在處受行如有知更慧行得知是是爲三力
네 번째, 부처님께서는 번뇌를 버리고 해탈하여 선정에 들며, 또한 선정에서 이것은 속박이라고 알고 이것은 해탈이라고 아시며, 또 이로 인하여 선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네 번째 힘입니다.
다섯 번째 부처님께서는 원하는 대로 다른 집안이나 다른 집안이나 다른 사람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힘입니다.
여섯 번째, 부처님께서는 온갖 한량없는 여러 가지 천하의 행(行)을 이와 같이 아시나니, 이것이 여섯 번째 힘입니다.
일곱 번째,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근기가 온전한지 온전하지 못한지를 사실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일곱 번째 힘입니다.
019_0508_b_09L四者佛爲棄解定行亦定知從是縛亦知從是解亦知從是起如有有知是爲四力五者佛爲如心願他家他人如有知是爲五力六者佛爲雜種無有量種天下行如是有知是爲六力七者佛爲他家他根具不具如有知是爲七力
019_0508_c_01L여덟 번째,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분별을 맨 처음부터 나중에 스스로 기억하는 것까지 사실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여덟 번째 힘입니다.
아홉 번째,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이 이미 청정하기가 인간보다 뛰어나서 사람들이 가고 오며 나고 죽는 것을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아홉 번째 힘입니다.
열 번째, 부처님께서는 이미 결박을 다하여 번뇌의 결박이 없으며, 마음이 이미 해탈하고 지혜로써 해탈하여 스스로의 지혜로 증득한 법을 보시며, 또 수(受)가 다하고 생(生)이 끝나며 행할 바를 이미 만족하였음을 알고, 다시는 세간에 왕래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벗어났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열 번째 힘입니다.
019_0508_b_18L八者佛爲無有量分別本上頭至更自念如有知是爲八力九者佛爲天眼已淨過度人閒見人往來死生如有知是爲九力十者佛爲已縛結盡無有使縛結已解脫從慧爲行脫見法自慧證知受止盡生竟行所行已足不復往來世閒已度世如有知是爲十力
아홉째의 열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하여 열 가지 배움이 만족한 것을 알아서 다시는 배우지 않는 것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바른 견해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정직한 견해를 배우지 아니함이요, 두 번째는 바른 사유와 계교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사유와 계교를 배우지 아니함이요, 세 번째는 바른 말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말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네 번째는 바른 행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행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바른 업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업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019_0508_c_03L第九十法自證知十足學不復學等爲十一爲直見已足不復學直見二者直思惟計已足不復學直思惟三者直言已足不復學直言四者直行已足不復學直行五者直業已足不復學直業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방편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일곱 번째는 바른 기억이 이미 만족하여서 다시는 바른 기억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여덟 번째는 바른 선정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선정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아홉 번째는 바른 해탈[度世]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해탈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열 번째는 바른 지혜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지혜를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019_0508_c_09L六者直方便已足不復學直方便七者直念已足不復學直念八者直定已足不復學直定九者直得度世已足不復學直得度世十者直慧已足不復學直慧
이것이 배우는 수행자의 100가지 법입니다. 100가지로 말한 이 법은 그르지 않고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배우는 자들이 들어야 할 설법으로서, 처음 말도 청청하고 중간의 말도 또한 청정하며 마지막 끝내는 말도 역시 청정합니다. 이로움도 있고 좋음도 있으며 청정함과 구경의 해탈을 구족한 행들을 이미 드러냈으니, 이것을 10보법(報法)이라 말합니다. 이는 앞에서와 같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입니다.”
019_0508_c_14L是爲學行者百法法百說是不非是不異諦如有不惑不倒是如有持慧意觀所上說學者聽說法上說亦淨中說亦淨已竟要說亦淨有利有好足具淨竟行已見是名爲十報法如應是上說爲是故說
사리왈(舍利曰:舍利弗)이 이 연설을 마치자 모두들 받아 듣고 마음에 지니고 그의 은혜를 입었다.
019_0508_c_20L舍利曰已說竟諸受著心蒙恩
長阿含十報法經卷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