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519_b_01L불설일체유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019_0519_b_01L佛說一切流攝守因經 容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 삼장 안세고(安世高) 한역
019_0519_b_02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519_b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류국(拘留國)의 모여서 법을 생각하는 곳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시자 비구들은 ‘예’ 하고 대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은 곧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지혜로운 자며, 보는 자인 비구는 번뇌[流]1)를 끊게 되고, 지혜롭지 못한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무엇이 비구로서 지혜로운 자와 보는 자는 번뇌를 다할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는 번뇌를 다하지 못하는 것인가. 오직 근본을 관찰하는 일과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일 때문이다.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欲流]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욕심은 더욱 생겨서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癡流]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어리석은 비구와 무식한 세간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보지도 않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법을 듣지도 않으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도 않고, 또한 지혜로운 사람에게 다라 분별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곧 근본이 아닌 생각을 가지게 되어 아직 생기지 않은 번뇌를 곧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를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하여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을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된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함으로써,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곧 생각하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하여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곧 탐애의 번뇌[愛流]가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게 되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는다.
019_0519_b_04L一時佛在拘留國留國聚會法議思惟是時佛告比丘比丘比丘便從佛受敎佛便說是智者見者比丘爲得流盡不智者不見者流不得盡何等比丘智者見者令流得盡不智不見者流不得盡但爲本觀非本觀非本觀者未有欲便有欲生已生欲欲便增生不致未生有流亦癡流便生已生有亦癡便增多不致癡者比丘不聞者世閒人不見慧者亦不從慧人聞法亦不從慧人受敎誡亦不從慧人分別解便得非本念令未生流便生已生流令增饒不致未生有亦癡便生已生有亦癡便增饒不致以不知不解如有令不可念法便念可應念法者便不念應念法不念不應念法者便念便愛流已愛流生便增多不致未生愛流亦癡流便生已生愛流亦癡流便增多不致
019_0519_c_01L법을 들은 비구와 도덕이 있는 제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봄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지혜로운 사람을 좇아 분별하고 이해하여 곧 이와 같이 안다.
‘근본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근본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능히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를 능히 버린다.’
만일 그런 줄을 알면 그는 곧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곧 생각하나니,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버리게 된다.
019_0519_c_01L聞者比丘道德弟子以見慧者從慧者受敎誡亦從慧者分別解便是如有知非本念者未生愛流便生已生愛流便增多不致未生愛流亦癡流便生已生愛流亦癡流便增多不致本念者未生愛流不生已生愛流能捨未生愛流亦癡流不生已生愛流亦癡流能捨若是如有知便所法不應念便不念所應念法便念以不應念法不念應念法者念令未生愛流不生已生愛流便捨解未生愛流亦癡流不生已生愛流亦癡流便捨
또한 어떤 비구는 일곱 가지 번뇌 때문에 번민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비구는 번뇌가 봄으로써 끊어지고[見斷], 거둠으로써 끊어지고[攝斷], 피함으로써 끊어지고[避斷], 씀으로써 끊어지고[更斷], 참음으로써 끊어지고[忍斷], 깨우침으로써 끊어지고[曉斷], 생각함으로써 끊어진다[念斷].
019_0519_c_13L亦有比丘爲七流從是惱生從是從是憂何等爲七比丘有流從見斷有流從攝斷有流從避斷有流從更斷有流從忍斷有流從曉斷流從行念斷
019_0520_a_01L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봄으로써 끊는 것인가? 이것은 법을 들은 비구와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세간 사람으로서, 어진 이를 보지도 못하였고 어진 이로부터 깨침을 받지 못하였고, 또한 어진 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가 이와 같이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한다.
‘전생에 내가 있었던가, 전생에 나는 없었던가, 전생에 나는 무엇이던가, 전생에 나는 어떠했던가. 미래세에도 내가 있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없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어떠할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스스로의 몸에 의심을 일으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사람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따진다.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함으로써 여섯 곳의 의심이 생겨 갖가지 번뇌가 생기니, 장차 이 몸은 있는가, 장차 이 몸은 없는가 하는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며, 이것이 의심이 되어 스스로 몸을 헤아려 몸이라는 견해를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심이 생겨 스스로 이 몸은 곧 내 몸이라고 헤아리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 몸이라는 소견이 생기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이 아닌 것을 몸이라고 보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이 내 몸이라는 헤아림이 생긴다. 그리하여 그의 깨닫고 말하고 짓고 느끼고 행하고 일으키는 모든 곳에서 짓고 행하는 바의 착하고 악한 것은 다 죄를 받나니, 생기지 않는 것과 생기는 것도 또한 모두 그러하다.
019_0519_c_17L何等比丘流從見斷比丘不聞者世閒人不見賢者亦不從賢者解亦不從賢者解敎誡令如是非本念前世我爲有不前世我爲無有不前世我爲何等前世我爲云何未來世我當有不未來世我當無有不未來世我當云何未來世我云何爲自身爭疑有何等有人從何來當復往至何許是要當云以如是非本念者爲六處疑生異結生莊有是身莊無有是身是爲疑生生自計身身見如是疑生生自計是身是我身爲是疑生身生身相爲是疑生生非身見是身爲是疑生計是爲是我身所覺所說所作所更所擧所起彼彼處處所作所行善惡受罪止不生亦生亦爾
이 비구는 번뇌를 번뇌하게 하고 의심을 의심하게 하며, 나쁜 의심과 바르지 않은 견해와, 들뜨는 의심과 번뇌의 의심이 서로 달라붙는다. 비구들이여, 무식한 세간 사람은 이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그 원인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남[生]을 존재한다.
그러나 도를 들은 비구와 제자는 이 괴로움의 진실을 알고 그 원인의 진실을 알며 그 멸함의 진실을 알고 그 괴로움을 멸하게 하는 행의 진실을 안다. 이렇게 안 뒤에는 이렇게 보아 곧 세 가지 번뇌의 결박을 다 끊으니, 첫째는 몸에 대한 번뇌요, 둘째는 의심의 번뇌며, 셋째는 행원(行願)의 번뇌다. 이 세 가지 번뇌가 다함으로 말미암아 곧 도(道)를 따라 첫 번째 과보인 수다원과를 얻고 다시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건너게 될 것이며, 인간과 천상에 있어서는 7세(世)를 넘지 않고 7세를 지낸 뒤에는 곧 괴로움을 모두 마치게 된다.
만일 비구로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자는 번민과 흥분과 근심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생기는데, 그 번뇌를 몸으로써 끊는다면, 이 번뇌의 번민과 흥분과 근심은 다시는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몸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0_a_11L比丘結令結疑令疑惡疑不正見跳疑結疑相著比丘不聞者世閒人從是苦習有從是生致聞者比丘弟子是苦如有知是習如有知是盡滅如有知是苦滅行令滅如有知是知已如是見便三縛結畢盡一者身結二者疑結三者行願結以是三結盡便隨道得一不復墮惡處當得度世在人閒天上不過七世已更七世便畢苦比丘不知者不見者所生流從惱熱憂令從見者斷爲是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比丘從見流
019_0520_b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다고 하는가?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눈으로 색(色)을 보되 안근(眼根)을 거두어 스스로 지키고, 오로관(惡露觀)1)을 행하여 본래 생겨난 곳을 생각한다. 비구가 안근을 거두어 지키지 않으면, 오로관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본래 생겨난 번뇌를 생각함으로써 번뇌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그러나 안근을 거두어 지킴으로써 멈추어서 오로(惡露)의 근본을 관찰하면 곧 번뇌에 대한 번민이나 흥분, 근심은 없어진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한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019_0520_b_01L何等爲比丘流從守斷是聞比丘行者眼見色攝眼根自守行惡露觀念本從所生比丘眼根不守攝行令從惡露觀從念本所生流惱熱憂以眼根守攝止便從惡露見本觀便所流惱熱憂便不有是爲比丘流從守斷意亦爾
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피함[避]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응하는 바를 따라 스스로 지켜,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ㆍ사나운 뱀ㆍ깊은 구덩이ㆍ납가새1)ㆍ개울ㆍ위험ㆍ언덕과 못ㆍ산ㆍ편하지 않은 곳ㆍ강ㆍ깊은 시내ㆍ악지식ㆍ나쁜 동무ㆍ나쁜 구호처ㆍ나쁜 장소ㆍ나쁜 곳ㆍ나쁜 침구를 피한다. 어진 이로부터 의심이 생긴다면 비구는 마땅히 이런 것을 피해야 하나니, 위에서 말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생겨난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을 다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피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0_b_07L何等爲比丘流從避斷是聞比丘行所應從自守避弊象避弊馬避弊避弊狗避弊虺避深坑避蒺蔾避危避陂池避山避不安避河深㵎避惡知識避惡伴避惡求避惡避惡處避惡臥具所臥具從賢者疑生如是應比丘當避如是上說不所生流惱熱憂已得避令是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比丘流從避斷
019_0520_c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옷을 입되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음으로써 입으며, 다만 그것은 이 몸에서 모기ㆍ등에ㆍ바람을 막거나 강한 햇볕이나 독(毒)을 물리치기 위하여 입으며, 서로 접촉할 때 어지러운 뜻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다.
또 밥을 먹되 먹는 일을 즐겨 하거나 살 찌우기 위해서 먹거나 겉모습을 단정하게 하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몸을 부지하여 도(道)를 행하기 위해서만 먹어야 하며, 먹음으로써 통증을 없애고 새로운 통증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병이 나음으로써 죄를 짓지 않게 하고 힘을 얻어 안온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 와구(臥具)나 상과 자리는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말아야 하며, 다만 그것을 씀으로써 이 몸의 심한 괴로움과 피로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또 필요한 곳에 약을 쓰되 꾸미지 않고 즐겨 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으로써 이 몸을 큰 아픔과 심한 고통과 불쾌한 생각에서 구원하고 풀어 주기 위해 약을 쓸 뿐이며, 만일 비구가 약을 쓰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지만 그 약을 쓰면 번뇌와 번민과 흥분ㆍ근심이 멈추고 다시는 자라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0_b_16L何等爲比丘流從用斷是聞比丘行從所用被服不綺故不樂故不貪不嚴事故但爲令是身卻蚊日曝含毒相更從亂意生亦自守食不樂故不貪故不健故不端正故但令是身得住行道故供養令斷故痛痒新痛痒不復起令從是差不隨罪得力安隱行令從所更臥具牀席不綺故不樂故不貪故不嚴事但令從是是身以有用劇苦疲惓令得止亦令從所樂用樂所用不綺不樂故不貪故不嚴事故但爲令從是是身以生有痛惱大劇甚痛不可意從斷令救令解止若比丘從不用故生流惱熱憂以從用得止爲所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諸比丘從以更得斷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忍]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들은 것이 많은 비구 수행자는 정진하는 행으로써 나쁜 법을 끊게 하고 청정한 법행(法行)을 받아 담력(膽力)을 더욱 내고, 견고한 정진 방편으로 청정한 법을 버리지 않아서, 방편으로 이 몸의 살과 뼈와 골수와 지방과 가죽이 마르고 부서지더라도, 오직 정진하여 얻어야 할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담력이 있는 이와 뜻이 견고한 이와 방편으로 정진하는 이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으면 정진을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방편을 지닌 수행자 비구는 능히 추위ㆍ더위ㆍ주림ㆍ목마름ㆍ모기ㆍ등에ㆍ바람ㆍ뜨거운 태양을 참으며, 비록 형언하지 못할 말을 듣고 상대가 교만한 마음으로 오더라도 능히 참고 능히 쉬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불쾌감과 지독한 아픔도 능히 그대로 참고 지내야 하는데 만일 비구가 참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도 그대로 지내고 이런 수행으로 지낸다면 다시는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지 않고 그치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0_c_10L何等爲比丘流從忍斷是聞比丘行發精進行令斷惡法受淸淨法行增發膽力堅精進方便不捨淸淨法方便聽令是身肌肉骨消乾壞幷髓肪皮但令所應發精進所得令得膽堅者精進方便者所求未得精進不可中止便行者比丘能忍寒熱飢蚊蚋風日曝令止含毒從聞不可語言憍慢意以來能忍能暇以生有含毒痛惱不可意劇痛能過止從不忍耐所生流熱惱憂令從過令從是行不復流惱熱憂令得止名爲比丘流從忍耐斷
019_0521_a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들은 이미 욕심을 내고도 살피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며, 깨우치기를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고, 이미 성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며, 이미 죽이고 속이고 도둑질할 마음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난다. 만일 모든 비구가 깨우침을 따르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길 것이요, 깨우침을 따른다면, 곧 번민과 번민ㆍ흥분ㆍ근심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모든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0_c_23L何等爲比丘流從曉斷是聞諸比丘比丘已生欲令不聽不過曉相已生瞋恚不聽不過曉相卻離已生殺欺盜不聽不過曉相卻離諸比丘不從曉生流惱熱憂已從曉不生便所流惱熱憂令無復有名爲諸比丘流從曉斷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행을 더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는 의각(意覺)으로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이 있어 혼자 앉으며 멈추고 들뜸을 떠나고 악을 여의어 법을 굴려야 한다. 분별각(分別覺)도 그러하고 정진각(精進覺)도 그러하며, 희각(喜覺)도 그러하고 의각(猗覺)도 그러하며 정각(定覺) 또한 그러하고 관각각행(觀却覺行)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비구가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을 하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고 더해 가는 행을 하면 번뇌와 번민 흥분ㆍ근심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모든 비구기 번뇌를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019_0521_a_07L何等爲比丘流從增行斷是聞諸比丘意比丘意覺有增念行獨坐止卻猗離惡轉法分別覺亦如是精進覺亦如是喜覺亦如是猗覺亦如是定覺亦如是觀卻覺行亦如是不聽不過曉相諸比丘不行不增所生流惱熱憂已行增爲所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諸比丘流從行增斷
만일 모든 비구가 봄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봄으로써 끊고, 만일 지켜 거둠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지켜 거둠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因)이 씀으로써 끊을 것이면 씀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참아 지냄으로써 끊을 것이면 참아 지냄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깨우침으로써 끊을 것이면 깨우침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을 것이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어 마쳐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비구가 일체 번뇌를 거두어 지키는 인(因)이라 하나니, 그리하면 이미 세간을 따르는 탐애를 부수고 세간을 건너 결박을 풀어서 출요(出要)를 얻어 반드시 괴로움을 떠날 것이다.”
019_0521_a_15L諸比丘所流應從見斷已從見斷若所流應從守攝斷已從守攝斷流因從避斷已從避斷若流因從用已從用斷若流因從忍過斷已從忍過斷若流因從曉斷已從曉斷流因從行增斷已從行增斷是名爲諸比丘一切流攝守因已壞惡愛從世閒逮得度世捨縛結得要離苦
019_0521_b_01L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세간을 건너 마침내 도(道)를 얻었다.
019_0521_b_01L佛說從是聞比丘意受喜行得度世竟得道
佛說一切流攝守因經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류(流)는 흘러 나오는 것, 새어 나오는 것이란 뜻으로서 ‘번뇌’인 누(漏)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누(漏)는 āsava, 즉 흐름이 순조롭지 못하고 거스르는 것으로서, 중생이 본래의 진실한 성품에 거스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
  2. 1)오로관(惡露觀)이란 우리의 몸은 피ㆍ고름ㆍ똥ㆍ오줌ㆍ땀과 같은 더러운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임을 관찰하는 관법으로서, 부정관(不淨觀)을 뜻한다.
  3. 1)납가새[蒺蔾]는 매우 억센 가시를 품은 식물 이름인데, 납가새 열매 모양으로 무기를 만들어 적의 진로를 막는 것도 납가새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