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5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019_0628_a_0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有五百比丘俱。
사위성에는 5백 명의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성을 나와 자기들 농막[田盧]으로 가서 둘러 앉아 이야기하였다. “이 땅에 처음 사람이 생겨났을 때에 그들은 모두 우리 바라문 종족이었고, 둘째 종족은 찰리(刹利), 셋째 종족은 농부, 넷째 종족은 기술자[工師]였는데 우리 종족이 가장 높다.
처음 이 땅에 사람이 생겨났을 때에 그들은 모두 우리 종족이었다. 우리 종족이 처음 날 때에는 모두 입으로부터 났는데 지금 사람들은 모두 밑으로부터 난다. 천하에 있는 사람들 중에 우리 종족이 가장 높다. 우리 종족은 모두 일곱째 범천의 자손인데, 부처는 도리어 ‘세상에는 한 종족뿐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 종족을 저 찰리종족이나 농부, 기술자 종족과 같다고 한다. 우리 종족은 죽으면 모두 범천에 올라가는데, 부처는 우리 종족을 저 범부들과 같다고 한다.”
그들은 또 이야기하였다. “누가 능히 저 부처와 토론하여 이 종족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019_0628_a_16L自相與議:“誰能與佛共講議分別是種者?”
이 때 어떤 바라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는 15, 6세요, 이름을 알파라연대성[頞波羅延大聖]이라 하였다. 그는 기술학에 밝고 미래의 일을 내다봤다. 5백 명의 바라문 중에는 그와 짝할 이가 없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또한 그는 경전을 잘 설명할 줄 알았고 온 세상의 일을 알았으며, 그 몸에는 기이한 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바라문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알파라연만이 부처와 토론할 수 있을 뿐 우리는 저 부처를 상대하여 토론할 수 없다.”
019_0628_a_22L諸婆羅門自共議言:“獨頞波羅延能與佛共談,我曹皆不能與佛共談。”
019_0628_b_01L그 5백 명의 바라문들은 다 같이 알파라연에게 말하였다. “부처는 온 세상 사람은 다 한 종족이라 합니다. 우리 종족은 저 찰리종족이나 농부, 기술자 종족과 다릅니다. 우리 종족은 범천에서 내려와 입으로부터 났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은 밑으로부터 났습니다. 그런데 부처는 ‘천하에는 네 가지 종족이 있지만 그 네 종족은 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알파라연께서는 스스로 굽혀 저 부처에게 가서 그를 상대로 토론해주시기 바랍니다.”
019_0628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법에서는 종족들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바라문 남자가 찰리종족의 여자에게 장가가면 찰리종족의 여자가 자식을 낳을 것이다. 찰리종족의 남자가 농부의 여자에게 장가가면 농부의 여자가 자식을 낳을 것이며, 농부의 남자가 기술자 종족의 여자에게 장가가면 지술자 종족의 여자가 자식을 낳을 것이요, 기술자 종족의 남자가 바라문의 여자에게 장가가면 바라문의 여자가 자식을 낳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우리 법에서는 행(行)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선을 행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종족이다. 천하에 존귀한 자는 모두 선을 행함으로써 얻는 것이지 종족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 무수한 겁 동안 바라문의 아들이 되기도 하였고 찰리종족의 아들이 되기도 하였으며 농부의 아들이 되기도 하였고 기술자 종족의 아들이 되기도 하였으며, 또 스스로 왕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부처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로 양가의 아들이 종이 되고 그 종이 다시 양가의 아들이 되는가. 그 종은 마음으로 선을 행하였기 때문에 양가의 아들이 되고, 양가의 아들은 마음으로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팔려 남의 종이 된 것일 뿐이다. 너희들은 사람에게 그러한 종족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종족이 어디 있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바라문이나 찰리종족, 농부, 기술자의 이 네 종족 가운데 살생을 매우 좋아하고 도둑질이나 음행을 좋아하며 이간질 하는 말이나 욕설, 거짓말이나 참소(讒訴)하기를 좋아하고, 어리석은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성내거나 제사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행을 행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019_0629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바라문 종족이나 찰리종족, 농부, 기술자 종족 가운데 살생할 마음이 없고 도둑질이나 음행할 마음이 없으며 이간질이나 욕설이나 거짓말하려는 마음이 없고 다른 이를 참소하는 일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고, 어리석은 이를 따르는 일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으며 성내거나 제사하기를 기뻐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런 사람도 죽어서는 천상에 나지 않겠는가?”
019_0629_b_01L부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만일 국왕이 ‘어떤 나라, 어떤 고을, 어떤 마을에 어떤 바라문의 아들이 그 덕이 높고 현명하며, 어떤 찰리의 아들이 덕이 높고 현명하며, 어떤 농부의 아들이 덕이 높고 현명하며, 어떤 기술자 종족의 아들이 덕이 높고 현명하다’는 말을 들으면, 왕은 곧 그들을 모두 불러 신하로 삼되 그 종족의 부류는 묻지 않는다. 왕은 그 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며 현명한 자에게 먼저 좋은 나라와 고을을 주면서 왜 그 아들들의 종족의 부류는 묻지 않는가?
부처님께서 이어 알파라연에게 물으셨다. “만일 바라문과 찰리와 농부와 기술자 종족과 또 다른 종족의 태아들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열 달이라는 기한이 혹시 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있는가?” 알파라연은 대답하였다. “모두 다 열 달일 뿐이지 거기에는 누구도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무슨 이유로 ‘우리 종족은 범천의 자손으로서 입으로부터 났다’고 말하는가. 또 해와 달은 왜 바라문 종족ㆍ찰리 종족ㆍ농부 종족ㆍ기술자 종족과 또 다른 종족 중에서 너희 한 종족만 비추지 않고 다른 종족까지 함께 비추는가?” 알파라연은 말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종족은 다른 종족보다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바라문이 농부 종족의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아들이 살생할 마음과 도둑질할 마음과 음행할 마음이 있고, 이간질할 마음과 욕설할 마음과 거짓말할 마음과 참소할 마음이 있으며, 어리석은 이를 따를 마음과 성낼 마음과 제사할 마음이 있다. 너희들은 그런 행을 가진 사람과 사귀겠는가?”
019_0630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말하기를 ‘우리 종족은 본래 범천이며, 입으로부터 나서 사람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옥에 들어가겠는가?”
019_0630_a_01L佛言:“若曹言,我種本梵天,生從口出,於人中最尊。何爲入地獄中?”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천하 사람들에게는 종족의 구별도 없고 항상 같은 종족도 없다. 덕이 높고 현명한 사람이란 마음으로 선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기를 좋아하면 이런 사람은 존귀한 자가 되며,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고 악을 행하면 그것을 하천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 알파라연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에 바라문 일곱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도가 있었고 날마다 하늘에 제사하였다. 그들도 스스로 ‘우리는 범천의 자손으로서 입으로부터 났고 일반 사람들은 밑으로부터 났다. 우리 종족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 종족은 죽어서 모두 하늘에 올라간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나 역시 그때 도인으로서 이름을 아혁(阿洫)이라 하였고 사람들은 내 도를 가리켜 천도(天道)라 불렀다. 나는 그 때 그 바라문 일곱 명이 불을 제사지내는 사당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우리는 죽으면 이 불빛처럼 하늘로 올라간다.’고 말하였다.”
‘나도 너희 선조 어머니가 바라문에게서 너희들을 낳았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너희 종족을 낳았는지 모른다. 종족의 부류가 다르면 조상을 알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너희 선조가 범천에서 내려와 난 줄을 아는가. 여자 마음은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너희들은 세상의 부부들이 어떻게 화합하여 자식을 낳는지 알 것이다.’ 그들은 모두 말하였다. ‘우리는 모른다.’
너희들은 아이가 처음으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때를 아는가. 아버지의 음욕을 탐하는 모양과 어머니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과 장차 아이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아이가 될 자는 따뜻한 마음으로 부모를 만나야 비로소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뱃속에 든 아이가 혹 전생에 악을 지었으면 지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앞을 못 보거나 못 듣거나 말을 못하거나, 혹은 등이 굽어지거나 다리를 절거나 혹은 난장이가 되겠지만 부모는 그런 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자식을 뱃 속에 품고 있으면서 그 자식의 좋고 추한 것을 모르거늘 너희들은 어떻게 선조가 범천의 자손으로서 입으로부터 나와 사람 중에서 저만 홀로 높은 줄을 아는가!”
부처님께서 알파라연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일곱 바라문들은 주문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지마는 그 때에 나는 그들에게 걸리지 않았고 또 그들의 말도 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부처가 되었는데도 너희들은 또 와서 ‘우리는 범천으로서 입으로부터 났으며 사람 중에서 홀로 높다’고 말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내 말을 잘 생각하라. 천하에 자식이 생기면 기르는 이는 부모요, 가르치는 이는 스승이다.
019_0630_c_15L佛告頞波羅延:“思惟我所語,天下生子,養者爲父母,成者師也。
알파라연 바라문과 5백의 바라문과 또 여러 바라문들은 모두 생각하라. ‘나는 과거에 일곱 바라문의 스승이 되었다. 그 일곱 바라문들은 모두 도덕이 있는 자들이었고 주문으로 사람을 죽였다. 나는 지금 분별하여 말한다. 즉 이 사람의 종족은 하나가 백이 되고 백이 천이 되며 천이 만이 되고 또 만이 하나가 된다.’”
019_0631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생사를 탐내고 즐기는 이가 매우 많다. 한 사람이 자손을 낳으면 그 뒤에는 나뉘어져 백 집이 되고, 그 백 집은 하나의 도를 구한다. 그 하나의 도란 이른바 무위(無爲)의 도이니 이것이 ‘하나가 천이 되고 천이 만이 된다.’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