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873_a_01L불설내녀기역인연경(佛說㮈女祇域因緣經)
019_0873_a_01L佛說柰女祇域因緣經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 안세고(安世高) 한역
권영대 번역
019_0873_a_02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873_a_03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국(羅閱衹國)에서 큰 비구들 1,250인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은 보살마하살과 천룡팔부(天龍八部)였다.
대중을 모으시고 설법하실 때에 그들 중에 보시하는 이가 한량없었는데, 어떤 한 가난한 사람은 다만 떨어진 수건 하나만 있어서 보시하고 싶었지만 물건이 나쁜 것이 두려워서 망설였다.
019_0873_a_04L一時佛在羅閱祇國與大比丘千二百五十人俱菩薩摩訶天龍八部大衆集會說法時世人民施者無量有一貧人唯有一爛壞手巾意欲布施懼此物惡猶豫未
그때 자리에 있던 내녀(㮈女)라는 비구니가 곧 일어나서 옷을 가지런히 하고 예를 올리며 길게 꿇어앉아 손을 맞잡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건대 저는 전생에서 바라내국(波羅㮈國)에 가난한 여인으로 태어났었습니다. 그때 가섭(迦葉)이라는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경을 듣고 환희하여 보시하고 싶었으나 돌아보니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빈천함을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저는 남의 과수원에 가서 보시할 과일을 구걸하였는데, 마침 큼직하고 향기로운 큰 사과 한 개를 얻었습니다. 저는 물 한 대야와 사과 한 개를 받쳐 들고 가섭부처님과 여러 스님들께 바쳤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극한 뜻을 아시고 주원(呪願)하시고 받으셨으며, 물과 사과를 나누어 모든 이에게 돌리셨습니다. 저는 이 복을 인연하여 목숨을 마치자 하늘에 태어났으며 천상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포태(胞胎)되지 않고 세간에 내려와서는 91겁 동안 사과꽃 속에서 단정하고 깨끗하게 살며 항상 숙명(宿命)을 기억하였는데, 이제 세존을 만나 도의 눈이 열렸습니다.”
019_0873_a_09L爾時座中有一比丘尼名曰柰女卽從座起整服作禮長跪叉手白佛世尊我自念先世生波羅柰國貧女人時世有佛名曰迦葉時與大衆圍繞說法坐聞經歡喜意欲布施顧無所有自惟貧賤心用悲感詣他園圃求乞果蓏當以施佛時得一柰大而香好擎一盂水幷柰一枚奉迦葉佛及諸衆僧佛知至意呪願受之分布水柰一切周普緣此福祚壽盡生天得爲天后下生世間不由胞胎九十一劫生柰華中端正鮮潔常識宿命今値世尊開示道眼
그때 내녀는 게송을 읊었다.
019_0873_a_21L爾時柰女以偈頌曰
019_0873_b_02L
3존의 자비[慈潤] 크시어
지혜로 제도하심에 남녀가 없네.
물과 과일이 큰 과보 베풀어
그 인연으로 온갖 고통 여의었네.
019_0873_a_22L三尊慈潤普
慧度無男女
水果施弘報
緣得離衆苦

올라가선 왕후가 되었고
세간에선 꽃 속에 살다가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니
복밭이 가장 깊고 두텁네.
019_0873_b_03L在世生華中
上則爲天后
自歸聖衆祐
福田最深厚

내녀 비구니는 절하고 다시 앉았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였다. 유야리국(維耶梨國) 국왕의 동산에 저절로 한 그루의 사과나무[㮈樹]가 났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열매 또한 크고 빛이 났으며 향기와 아름다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왕은 이 사과를 사랑하였으니, 궁중의 존귀한 미인이 아니면 이 사과를 먹을 수 없었다.
나라 안에 한 바라문[梵志] 거사가 있었는데, 재물이 한량없어 나라에서 짝할 이 없었으며, 또 총명하고 널리 통달하여 재주와 지혜가 무리에서 뛰어났으므로 왕은 매우 사랑하여 대신으로 등용하였다.
019_0873_b_04L比丘尼柰女禮已還坐佛在世時維耶梨國王苑中自然生一捺樹枝葉繁茂實又加大旣有光香美非凡王寶愛此捺自非中宮尊貴美人不得啖此捺果國中有梵志居士財富無數一國無雙又聰明博達才智超群王重愛之用爲大臣
왕은 바라문을 식사에 초청하였는데, 식사하고 나자 사과 한 개를 주었다. 바라문이 사과를 보니 향기롭고 아름다움이 보통이 아니어서 곧 왕에게 물었다.
“혹시 작은 그루를 하나 얻을 수 있습니까?”
“작은 그루는 많은데 혹 큰 나무에 방해될까 두려워 제거하였는데, 경이 만약 얻겠다면 지금 주겠소.”
왕은 곧 사과나무 모종을 하나 바라문에게 주었다. 바라문이 얻어서 돌아와 아침ㆍ저녁으로 물을 주니 날마다 자라서 가지가 무성하여 3년째에 열매를 맺었는데, 크든 작든 윤이 나서 왕의 사과와 같았다.
019_0873_b_11L請梵志飯食食畢以一柰實與之志見柰香美非凡乃問王曰此柰樹寧有小栽可得乞不王曰大多小吾恐妨其大樹輒除去之卿若欲今當相與卽以一柰栽與梵志志得歸種之朝夕漑灌日日長大條茂好三年生實光彩大小如王家
바라문은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였다.
‘나는 재산이 한량없어 왕보다 모자라지 않았는데, 다만 이 사과가 없어서 왕과 같지 못하더니 이제 얻고 나니 왕보다 모자라는 것이 없구나.’
그리고는 곧 따서 먹었는데, 어찌나 쓰고 떫은지 조금도 먹을 수가 없었다.
019_0873_b_19L梵志大喜自念我家資財無數減於王唯無此柰以爲不如今已得爲無減王卽取食之而大苦澀不可食
019_0873_c_02L바라문은 다시 근심하며 물러가서 생각하였다.
‘이 땅이 기름지지 못한 때문이다.’
곧 백 마리의 소젖을 짜서 한 소에게 먹이고, 이 소젖을 끓여서 제호(醍醐)를 만들어 사과나무 뿌리에 부었다. 이듬해가 되자 열매는 달고 맛이 있어 왕궁의 사과와 똑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주먹만 한 크기의 한 옹이가 생기더니 날마다 자라났다.
바라문은 생각하기를, ‘갑자기 옹이가 생겼으니 열매에 방해가 될까 두렵고, 베어 버리자니 나무가 상할까 두려워 날마다 생각하였으나 결단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디에서 갑자기 가지 하나가 생기더니 곧장 위로 자라서 높다란 나무 꼭지가 땅에서 일곱 길[丈]이나 되었으며, 그 가지 끝에서 다시 여러 가지들이 빙 둘러서 생겨 모양이 거꾸로 단 일산 같았으며, 꽃과 잎이 무성하여 본래의 나무보다 무성하였다.
019_0873_b_22L梵志更大愁惱乃退思惟當是土無肥潤故耳乃捉取百牛之乳飮一牛復取此一牛乳煎之爲醍醐灌柰根日日灌之到至明年實乃甘如王家柰而柰樹邊忽復生一瘤節大如手拳日日增長梵志心念忽有此瘤節恐妨其實適欲斫去恐復傷連日思惟遲徊未決而節中忽生一枝正指上向洪直調好高出樹巓去地七丈其杪乃分作諸枝周圍旁形如偃蓋花葉茂好勝於本樹
바라문은 괴상히 여겼다. 그는 가지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여 곧 사다리를 만들고 올라가 보았다. 거꾸로 된 일산 같은 가지 가운데에 못[池水]이 있는데 맑고 향기로웠으며, 또한 여러 꽃들이 있는데 채색이 밝고 고왔다. 헤치고 꽃 밑을 보니 한 여자아이가 못 한복판에 있었다. 바라문은 그 아이를 안고 돌아와서 길렀는데, 이름은 내녀(㮈女)라고 하였다. 그는 열다섯 살이 되자 얼굴이 단정하기가 천하에 짝이 없었으며, 그 소문이 먼 나라에까지 퍼졌다.
019_0873_c_09L志怪之不知枝上當何所有乃作棧登而視之見枝上偃蓋之中乃有池水旣淸且香又有衆華彩色鮮明披視華下有一女兒在池水中梵志抱歸養長之名曰柰女至年十五色端正天下無雙宣聞遠國
일곱 나라에서 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바라문에게 나아가 내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하였다. 바라문은 크게 두려워서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곧 동산에 높다란 누각을 세워서 그 위에 내녀를 올려놓고 나와서 여러 왕들에게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낳은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 위에서 저절로 나왔으니 천룡(天龍)인지 귀신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도깨비 같은 것을 일곱 왕들이 요구하니, 설령 내가 한 왕에게 준다 해도 여섯 왕들이 반드시 성을 낼 것이니 감히 사랑하고 아낄 수 없습니다. 여자는 지금 동산 가운데 누각 위에 있으니, 여러 왕들은 곧 의논해서 얻게 되는 왕은 데리고 갈 일이며, 내가 주선할 일이 아닙니다.”
019_0873_c_15L有七國同時俱來詣梵志所求娉柰女爲夫人梵志大恐怖不知當以與誰乃於園中架一高樓以柰女著上謂諸王曰此女非我所生自出於柰樹之上亦不知是天鬼神女耶鬼魅之今七王求之我設與一王六王當不敢愛惜也女今在園中樓上王便自平議有應得者便自取去我所制也
019_0874_a_02L그리하여 일곱 왕들은 함께 입씨름을 하였으나 시끄러웠을 뿐 결정하지 못하였다. 밤이 되자, 병사왕(甁沙王)은 개천[瀆] 속으로 기어들어 누각에 올라가 내녀와 함께 잤고, 이튿날 새벽에 가려고 하자 내녀는 말하였다.
“대왕께서 다행히 위엄을 굽히시고 저를 가까이하셨는데 이제 버리고 가시니,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곧 왕족일 터인데 어떻게 처리하오리까?”
019_0873_c_24L於是七王口共爭之紛紜未決至其夜缾沙王從伏瀆中入樓就之共宿明晨當去柰女白曰王幸枉威尊接逮於我今復相捨而若其有子則是王種當何所付
왕이 말하였다.
“만약 사내아이거든 나에게 돌려 줘야겠지만, 계집아이면 너에게 주겠다.”
왕은 손에 꼈던 금반지를 빼서 내녀에게 주어 신표로 삼았다. 왕은 나가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녀와 하룻밤을 같이했는데, 이상한 것도 없고 여느 사람과 같았는데 취(取)하지 않았을 뿐이다.”
병사왕의 군사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면서 “우리의 왕이 이미 내녀를 얻었다”고 외치니, 여섯 왕은 듣고 각기 돌아갔다.
019_0874_a_05L若是男兒當以還我若是女兒便以與汝王則脫手金鐶之印以付柰以是爲信便出語群臣言我已得柰女與一宿亦無奇異故如凡人故不取耳缾沙軍中皆稱萬歲我王已得柰女六王聞之便各還去
병사왕이 떠난 뒤에 내녀는 곧 태기가 있었다. 내녀는 곧 문지기에게 명하기를, “만약 누가 나를 보려고 하거든 그에게 내가 앓는다고 하여라” 하였다. 나중에 달이 차자,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였다. 아이는 나올 때에 침과 약주머니를 갖고 있었다.
바라문은 말하기를, “그는 국왕의 아들인데 의료기를 가졌으니, 틀림없이 의왕(醫王)이리라” 하였다.
019_0874_a_11L甁沙王去後遂便有娠時柰女勅守門人言有求見我者當語言我病後日月滿一男兒顏貌端正兒生則手持鍼藥梵志曰此國王之子而執醫器醫王也
그러나 내녀는 횐옷으로 아이를 싸서 계집종에게 명하여 “가져다 거리에 버려라” 하였다. 계집종은 명령을 받고 안아다가 버렸다.
이때 왕자 무외(無畏)는 맑은 아침에 수레를 타고 대왕을 보려고 사람을 보내 길을 치우다가 멀리서 길 가운데 횐 물건이 있는 것을 보았다. 왕자는 곧 수레를 멈추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저 흰 물건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린애입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살아 있습니다.”
왕자는 사람을 시켜 안고 왔다. 그리고는 곧 아이를 기를 유모를 찾았다.
019_0874_a_16L時柰女卽以白衣裹兒婢持棄著巷中婢卽受勅抱往棄時王子無畏淸旦乘車往欲見大遣人除屛道路時王子遙見道中有白物卽住車問傍人言此白物是何等答言此是小兒問言死活荅言故活王子勅人抱取卽覓乳母養之以活
019_0874_b_02L 바라문은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내녀에게 주었으며, 이름을 기역(祇域)이라고 불렀다. 그가 여덟 살이 되자 총명하고 재주가 높으며 학문이 뛰어났고, 이웃 아이들과 놀면 늘 여러 아이들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업신여겼다. 여러 아이들은 모두 놀리기를, “애비 없는 자식, 음녀(婬女)의 소생이 감히 우리를 깔본다”고 하였다.
019_0874_a_23L梵志將此小兒還付柰女名曰祇域至年八歲聰明高學問書疏越殊倫疋與鄰比小兒遊戲心常輕諸小兒以不如己諸小兒共罵之曰無父之子婬女所生敢輕我
기역은 놀랐으나 잠자코 대답하지 않다가 문득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내가 보기에 아이들이 모두 나만 못한데, 도리어 나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립니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너의 아버지는 바로 병사왕이다.”
기역이 말하였다.
“병사왕은 라열기국(羅閱衹國)에 있고, 여기서 5백 리나 떨어진 곳인데, 무슨 인연으로 나를 낳았습니까? 만약 어머니 말대로라면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어머니는 곧 금반지를 내보이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네 아버지의 반지이다.”
019_0874_b_05L祇域愕然默而不答便歸問母曰我視子曹皆不如我而反罵我無父之子我父今者爲在何許汝父者正缾沙王是也祇域曰沙王乃在羅閱祇國去此五百里緣生我若如母言何以證之母則出印鐶示之曰此則汝父鐶也
기역은 그것을 살펴보았는데, 병사왕의 인(印) 무늬가 있음을 보고, 곧 그 반지를 지니고 라열기국으로 갔다. 대궐문을 들어가도 문에서 힐문하는 이가 없었다. 곧바로 왕의 앞에 나아가 왕에게 절하고 길게 꿇어앉아 아뢰었다.
“저는 왕의 아들로서 내녀의 소생입니다. 올해 여덟 살이 되어 비로소 대왕의 혈통임을 알고 신표인 반지를 가지고 멀리서 돌아왔습니다.”
019_0874_b_11L祇域省見有缾沙王印文便奉持此鐶往到羅閱祇徑入宮門門無呵者卽到王爲王作禮長跪白王言我是王子柰女所生今年八歲始知是大王種故持鐶印信遠來歸家
왕은 찍힌 무늬[印文]를 보자, 옛날의 맹서를 기억하여 자기 아들임을 알 고 감개무량[愴然]해하며 아껴주었다.
그리고 태자로 삼은 지 2년이 지나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이 태어났다. 기역은 곧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처음 태어날 때 손에 침과 약주머니를 잡았으니, 의원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왕께서 비록 저를 태자로 삼으셨지만 저는 즐겁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제 아들이 있으니,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십시오. 저는 의술을 배우기가 소원이니 왕께서는 허락해주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네가 태자가 되지 않겠다니 녹(祿)을 그냥 먹을 수는 없다. 마땅히 의학을 배워라.”
019_0874_b_16L王見印文覺憶昔之誓知是其子愴然矜之爲太子涉歷二年後阿闍世王生域因白王曰我初生時手把鍼藥囊應當爲醫也王雖以我爲太子非我所樂王今自有嫡子生矣應襲尊嗣我願得行學醫術王則聽之王曰不爲太子者不得空食王祿應學醫
019_0874_c_02L왕은 곧 나라 안의 여러 훌륭한 의원들에게 명하여 의술을 가르치게 하였지만 기역은 놀기만 하고 배우는 적이 없었다.
여러 스승들은 꾸짖어 말하였다.
“의술이란 천하여서 진실로 지존(至尊)하신 태자께서 배울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대왕의 명령은 어길 수 없습니다. 명을 받은 이래로 여러 날이 되었지만 태자께서는 처음부터 반 마디의 기술[方]도 받지 않으시니, 만약 왕께서 물으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019_0874_b_24L王卽命勅國中諸上手醫盡術敎而祇域但行嬉戲未曾受學諸師責謂之曰醫術鄙陋誠非太子至尊所宜當學然大王之命不可違廢勅已來積有日月而太子初不受半言之方若王問我我何以對
기역은 대답하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의원의 증거가 손에 있었으므로 대왕께 아뢰어 영화로운 이름을 버리고 의술 배우기를 구했습니다. 어찌 게을러서 스승을 번거롭게 독촉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 스승들의 의술[道]에는 배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곧 본초(本草) 약방문과 침맥의 모든 경락을 들어 스승에게 물었으나 스승은 막혀 대답하지 못하고 모두 기역에게 절하고 길게 꿇어앉아 손을 맞잡고[叉手] 말하였다.
“오늘 태자의 신성(神聖)을 알았습니다. 실로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조금 전에 물으신 여러 가지는 모두 우리들의 대대로 전해 온 의문으로 능히 알지 못한 것들입니다. 원컨대 태자께서 모두 설명하셔서 저희들의 평생의 맺힘을 풀어 주십시오.”
기역은 곧 그 뜻을 해설하였다. 모든 의원들은 기뻐하며 다시 일어나 절하고 그 법을 이어받았다.
019_0874_c_06L祇域曰我生而有醫證在手故白大王捐棄榮號求學醫術豈復懈怠煩師督促直以諸師之道無足學者故耳便取本草藥方鍼脈諸經具難問師師窮無以答皆下爲祇域作禮長跪叉手今日益知太子神聖實非我等所及也向所問諸事皆是我師歷世疑義所不能通願太子具悉說之開解我曹生年之結祇域便爲解說其義醫歡喜皆更起頭面作禮承受其法
그때 기역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왕께서 모든 의원에게 명하였으나 배울 만한 이가 전혀 없으니 누가 내게 의학을 가르칠까?’ 하였다. 때마침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에 성은 아제리(阿提梨)이며, 자는 빈가라(賓迦羅)라는 의원이 있는데, 의술이 매우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다. ‘저 사람이라면 능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곧 그 나라로 가서 빈가라의 집에 가서 말하였다.
“대사(大師)시여, 저는 이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배우겠습니다.”
7년이 지나자,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껏 의술을 익히고 배웠다. 누가 나를 당할까?’
그리고는 곧 스승에게 가서 말하였다.
“저는 지금까지 의술을 익히고 배웠으니, 누가 나를 당하겠습니까?”
019_0874_c_16L爾時耆域卽自念言王勅諸醫都無可學者誰當敎我學醫道時聞彼德叉尸羅國有醫姓阿提梨字賓迦羅善醫道彼能敎我爾時耆域童子卽往彼國詣賓迦羅所白言大師我今請仁者以爲師範從學醫術經七年自念言我今習學醫術何當有已卽往師所白言我今習學醫術何當有已
019_0875_a_02L스승은 곧 한 상자의 그릇과 풀 캐는 연장을 주면서 말하였다.
“너는 덕차시라국에 1유순(由旬)을 다니면서 모든 풀을 찾아서 약이 아닌 것이 있거든 갖고 오너라.”
019_0875_a_02L時師卽與一籠器及掘草之汝可於德叉尸羅國面一由旬求覓諸草有非是藥者持來
그리하여 기역은 곧 스승의 명대로 덕차시라국을 1유순을 다니면서 약이 아닌 것을 찾았으나 끝내 약이 아닌 것을 찾지 못하였다. 보이는 초목 일체를 잘 분별해 보면 다 쓰이는 곳이 있고 약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와서 스승에게 말하였다.
“스승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덕차시라국에서 약초 아닌 것을 찾아 1유순을 돌아다녔으나 약이 아닌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초목을 다 분별해 보니 다 쓰이는 데가 있었습니다.”
019_0875_a_04L時耆域卽如師勅於德叉尸羅國面一由旬求覓非是藥者周竟不得非是藥者所見草木一切物善能分別知有所用處無非藥者彼卽空還往師所白如是言師今當知我於德叉尸羅國求非藥草者面一由旬周竟不見非藥者所見草木盡能分別所入用處
스승은 기바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이제 가도 좋다. 의술의 도가 이루어졌다. 나는 염부제에서 제일이었는데 내가 죽고 나면 네가 있겠구나.”
019_0875_a_11L師答耆域言汝今可去醫道已成於閻浮提中最爲第一我若死後次復有汝
그리하여 기역은 곧 다니면서 병을 치료하였는데, 치료하면 곧 나아서 나라 안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 후에 궁궐에 들어갔는데, 궐 문 앞에서 나뭇짐을 진 아이를 만났다. 기역이 바라보니 그 아이의 오장(五藏)이 다 보여서 낱낱이 분명하였다. 기역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본초경』에 말하기를, 약왕수(藥王樹)란 것이 있어서 밖에서 안을 비추어 사람의 장기를 본다고 하였는데, 이 아이의 나무 가운데 혹시 약왕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곧 아이에게 가서 나무를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10전이라고 하였다. 그는 돈을 치렀다. 아이가 나무를 땅에 내려놓으니 깜깜하여 뱃속이 보이지 않았다.
019_0875_a_14L於是祇域便行治病所治輒愈國內知名後欲入宮於宮門前逢一小兒擔樵祇域望視悉見此兒五藏腸胃縷悉分明祇域心念本草經說有藥王樹從外照內見人腹藏此兒樵中得無有藥王耶卽往問兒賣樵幾兒白十錢便雇錢取樵下樵置地闇冥不見腹中
019_0875_b_02L기역은 다시 생각하기를 ‘묶음 중에 어느 것이 약왕인지 알 수 없구나’ 하고 곧 두 묶음을 풀어서 낱낱이 들고 아이의 배 위에 대어 비쳐 보고, 보이는 것이 없으면 곧 다시 집었다. 이렇게 하여 두 묶음의 나무가 다하고 마지막으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남았는데 길이는 한 자 남짓하였다. 시험 삼아 들어 비추니 뱃속이 환히 드러났다. 기역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이 작은 가지가 바로 약왕(藥王)이란 것을 알고 나무를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아이는 돈도 얻고 나무도 다시 찾아 기뻐하며 갔다.
019_0875_a_22L祇域更心思惟不知束中何所爲是藥王便解兩束一一取之以著小兒腹上無所照見輒復更取如是盡兩束樵最後有一小枝栽長尺餘試取以照具見腹內祇域大喜知此小枝定是藥王悉還兒樵兒旣已得錢樵又如故歡喜而去
그때 기역은 생각하기를, ‘이제 누구를 먼저 치료할까? 이 나라는 작고 또 변두리에 있으니 차라리 본국에 돌아가서 의도(醫道)를 열자’ 하고, 곧 파가타성(婆迦陀城)으로 돌아왔다.
파가타성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12년 동안 두통(頭痛)을 앓고 있었다. 모든 의원이 다스렸으나 차도가 없었다. 기역은 소문을 듣고 집으로 가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너의 장자께 의원이 문 밖에 있다고 말하여라.”
이때 문지기는 곧 들어가서 문 밖에 의원이 있다고 말하였다.
019_0875_b_05L爾時耆域自念我今先當治誰此國旣小又在邊方我今寧可還本國始開醫道於卽還歸婆迦陁城婆迦陁城中有大長者其婦十二年中常患頭痛衆醫治之而不能差時耆域聞卽往其家語守門人言白汝長者有醫在門外時守門人卽入白門外有
장자의 부인은 물었다.
“의원의 얼굴이 어떻더냐?”
대답하였다.
“나이가 젊습니다.”
그 부인은 생각하기를, ‘나이 많은 여러 의원이 다스렸어도 낫지 못했는데, 나이 젊은 사람이겠는가’ 하고 곧 문지기에게 명하였다.
“이제 나는 의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여라.”
문지기는 나와서 말하였다.
“나는 당신을 위해 장자께 말하였으나 장자의 부인께서는 이제 의원이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기역은 다시 말하였다.
“너는 가서 장자 부인에게 말하기를, ‘다만 나의 치료만 받고 혹시 낫는다면 마음대로 내게 물건을 주시라’고 하여라.”
019_0875_b_13L長者婦問言醫形貌何似答言年少彼自念言老宿諸醫治亦不差況復年少卽勅守門人語言我今不須醫守門人卽出語言我已爲汝白長者長者婦言今不須醫耆域復言汝可白汝長者婦但聽我治若差者隨意與我物
019_0875_c_02L문지기는 다시 아뢰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다만 내 치료만 받고 낫는다면 마음대로 물건을 달라’고 합니다.”
장자 부인은 듣고 생각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손해는 없겠다’고 하고, 곧 문지기에게 들어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기역은 들어가 장자 부인에게 나아가 물었다.
“어디가 아픕니까?”
“이렇게 이렇게 아픕니다.”
“병이 어찌하여 일어났습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여 일어났습니다.”
“병든 지가 오래되었습니까?”
“이러한 때에 들었습니다.”
그는 묻기를 마치고 말하였다.
“나는 당신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곧 좋은 약을 내서 타락죽으로 달여서 부인의 코에다 부었다. 병자의 입에서는 타락과 침이 한꺼번에 나왔다.
019_0875_b_19L時守門人復白之醫作如是言但聽我治若差隨意與我物者婦聞已自念言若如是無所損守門人喚入時耆域入詣長者婦所何所患苦答言患如是如是復問病從何起答言從如是如是起復問病來久近答言病如許時彼問已語我能治汝彼卽取好藥以酥煎之灌長者婦鼻病者口中酥唾俱出
이때 병자는 그릇에 대고 타락을 받아서 담고, 침을 따로 뱉었다.
기역은 이것을 보자 마음으로 근심했다.
‘이와 같은 깨끗지 못한 작은 타락도 도리어 아끼는데 하물며 내게 보답하겠는가.’
병자는 보더니 기역에게 말했다.
“당신은 걱정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걱정합니까?”
“내가 생각해 보니, 당신은 이 깨끗하지 못한 타락도 아까워하는데 더구나 내게 보답할지, 이 때문에 근심합니다.”
019_0875_c_04L病人卽器承之酥便收取唾別棄之時耆域見已心懷愁惱如是少酥不猶尚慳惜況能報我病者見已耆域言汝愁惱耶答言實爾問言故愁惱答言我自念言此少酥不淨猶尚慳惜況能報我以是故愁耳
“집에서는 쉽지 않은 것인데 버려서 무엇이 이롭겠습니까? 등불을 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았습니다. 당신은 병만 고칠 것이지, 어찌 그런 것을 걱정합니까?”
그가 치료하여 뒤에 병이 나았다. 장자 부인은 금 40만 냥을 주고, 노비와 수레와 말도 주었다.
019_0875_c_10L者婦答言爲家不易棄之何益可用燃燈是故收取汝但治病何憂如是彼卽治之後病得差時長者婦與四十萬兩金幷奴婢車馬
이때 기역은 왕사성(王舍城)으로 돌아와서 무외 왕자를 찾아가 문지기에게 말했다.
“너는 가서 기역이 밖에 있다고 왕께 아뢰어라.”
문지기는 곧 들어가 왕에게 알렸으며, 왕은 곧 문지기에게 명하여 들어오게 하였다.
기역은 들어가서 절하고 한쪽에 서서 앞의 일들을 모두 무외 왕자에게 말하였다.
“얻은 것을 모두 왕께 바치겠습니다.”
왕자가 말하였다.
“아니오, 그럴 필요가 없소. 공양을 받은 것이니, 당신 스스로 쓰시오.”
이것이 기역의 맨 처음 치료였다.
019_0875_c_14L時耆域得此物已還王舍城詣無畏王子門語守門人言汝往白王言耆域在外守門人卽入白王王勅守門人喚入耆域入已前頭面禮已在一面住以前因具白無畏王子言以今所得物用上王王子言且止不須便爲供養汝自用之此是耆域最初治病
019_0876_a_02L그때 구담미국(拘啖彌國)에 한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바퀴 위에서 놀다가 창자가 뱃속에서 꼬여 음식이 소화되지 못하고, 또한 나을 수도 없었으나 그 나라에서는 다스릴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마가다국에 병을 능히 치료할 큰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사신을 보내어 왕에게 말하였다.
“구담미 장자 아들의 병을 기역은 능히 다스릴 것이니, 왕께서는 보내 주소서.”
019_0875_c_21L爾時拘睒彌國有長者子輪上嬉戲腸結腹內食飮不消亦不得出彼國無能治者彼聞摩竭國有大醫善能治病卽遣使白王拘睒彌長者子病耆域能治願王遣來
그리하여 병사왕은 곧 기역을 불러서 물었다.
“구담미 장자 아들의 병을 네가 다스릴 수 있겠느냐?”
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가서 다스려라.”
이때 기역은 수레를 타고 구담미로 향하였다. 기역이 막 도착하자 장자의 아들은 이미 죽어서 풍악 소리가 났다.
기역은 소리를 듣고 물었다.
“이것은 웬 풍악 소리이냐?”
옆에서 대답하였다.
“이는 곧 당신이 다스리려고 하는 장자의 아들이 이미 죽어서 울리는 풍악 소리입니다.”
기역은 온갖 음성을 잘 분별하였으므로 곧 말하여 되돌리라고 시켰다.
“이는 죽은 사람이 아니다.”
말을 마치자 곧 되돌렸다.
019_0876_a_03L時甁沙王喚耆域問言拘睒彌長者子病汝能治不答言若能汝可往治之時耆域乘詣拘睒彌耆域始至長者子已死伎樂送出耆域聞聲卽問言此是何等伎樂鼓聲傍人答言是汝所爲來長者子已死是彼伎樂音聲耆域善能分別一切音聲卽言語使迴還非死人語已卽便迴還
이때 기역은 곧 수레에서 예리한 칼로 배를 가르고 뭉친 창자를 헤쳐서 그의 부모와 친척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곧 바퀴 위에서 놀다가 이렇게 장이 뭉쳐 있어 음식이 소화되지 못한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곧 그는 장을 풀고 다시 본래대로 놓고는 살가죽을 꿰매어 살을 붙였으며 좋은 약을 발랐다. 상처는 곧 낫고 털도 도로 나서 상처 없는 데와 똑같았다.
019_0876_a_11L時耆域卽下取利刀破腹披腸結處示其父母諸親語言此是輪上嬉戲使腸結如食飮不消非是死也卽爲解腹復本處縫皮肉合以好藥塗之瘡卽毛還生與無瘡處不異
이때 장자의 아들은 곧 기역에게 금 40만 냥을 주었고, 부인 역시 금 40만 냥을 주었으며, 장자의 부모 또한 각기 금 40만 냥씩 주었다.
기역은 생각하기를 ‘스승에게 은혜를 보답해야겠다. 이제 160만 냥의 금을 가지고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에 있는 스승 빈가라(賓迦羅)에게 드려야겠다’ 하고는, 금을 가지고 스승에게 가서 스승의 발에 절하고 금을 바쳤다.
“오직 바라건대 스승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받아주십시오.”
스승이 말하였다.
“이는 곧 공양한 것이니 이것을 받을 필요가 없네.”
기역의 청이 지극히 간절하여 빈가라는 그때야 그 금을 받았다. 기역은 절하여 사례하고 떠나갔다.
019_0876_a_16L時長者子卽報耆域四十萬兩金婦亦與四十萬兩金長者父母亦爾各與四十萬兩金耆域念言夫爲師者須報其恩今持一百六十萬兩金與德叉尸羅國大師賓迦羅念已持金詣師所面禮師足奉上此金唯願大師哀愍納受師曰便爲供養已我不須此寶耆域慇懃至到賓迦羅乃受此金域奉辭禮足而去
019_0876_b_02L한번은 나라 안에 열다섯 살 된 어떤 거사의 딸이 시집갈 날을 앞두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죽었다. 기역은 그 소문을 듣고 그 집에 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여자가 평소에 어떤 병이 있었기에 이렇게 요절[夭亡]하였습니까?”
아버지가 말하였다.
“딸이 두통이 좀 있었는데 나날이 더하더니 오늘 아침에 발작하여 여느 때보다 심하더니 죽었습니다.”
019_0876_b_02L爾時國中有迦羅越家女年十五臨當嫁日忽頭痛而死祇域聞之往至其家問女父曰此女常有何病乃致夭亡父曰女小有頭痛日月增甚朝發作尤甚於常以致絕命
기역은 곧 약왕(藥王)을 내어 머릿속을 비추어 보았다. 거기엔 찌르는 벌레[剌蟲]가 있어서 서로 번식하여 수백 마리가 뇌를 갉아먹어 뇌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그는 곧 금칼[金刀]로 머리를 쪼개 벌레들을 집어내어 병속에 넣고 신비한 세 가지 고약을 발랐다. 곧 한 가지는 벌레가 먹은 뼈의 틈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며, 하나는 뇌가 생기게 하는 것이며, 하나는 바깥의 칼자국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잘 안정시키고 놀라게 하지 마시오. 열흘이면 나아서 예전대로 회복할 것이니 그날 내가 다시 오겠소.”
019_0876_b_07L祇域便以藥王照視頭中見有刺虫大小相生乃數百枚鑽食其腦腦盡故死便以金刀披破其頭悉出諸虫封著罌中以三種神膏塗瘡一種者補虫所食骨閒之瘡一種生腦一種治外刀告女父曰好令安靜愼莫使驚日當愈平復如故到其日我當復來
기역이 뗘나간 뒤에 여자의 어머니는 다시 울부짖었다.
“내 자식이 두 번 죽는구나. 어찌 머리를 쪼겠는데 다시 살겠는가. 당신은 어찌 차마 남을 시켜 그렇게 하였소.”
남편은 만류하며 말하였다.
“기역은 나면서부터 침과 약을 가졌으며, 존귀하고 영화로운 자리를 버리고 의사가 되어 오직 일체의 생명만을 위하니, 그는 곧 하늘의 의원인데 어찌 헛되겠소. 당신에게 부탁하기를 ‘조심하여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당신이 지금 도리어 울어서 놀라게 한다면 이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없소.”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자, 그치고 다시 울지 않고 함께 잘 보호하여 이레를 조용히 하였다.
019_0876_b_14L域適去女母便更啼哭曰我子爲再死也豈有披破頭腦當復活者父何忍使人取子那爾父止之曰祇域生而把鍼藥棄尊榮位行作醫師但爲一切命此乃天之醫王豈當妄耶囑語汝言愼莫使驚而汝今反啼哭以驚動之將令此兒不復得生母聞父言止不復哭共養護之寂靜七日
019_0876_c_02L이레째 새벽에 여자는 갑자기 숨을 내쉬고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일어나 말하였다.
“이제 나는 머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고 몸이 모두 편안합니다. 누가 나를 보호하여 이렇게 하였습니까?”
아버지는 말하였다.
“너는 전에 죽었는데, 의왕(醫王) 기역이 너의 머릿속의 벌레를 꺼내고 너를 살려 냈다.”
그리고는 단지 안의 벌레를 꺼내 보여 주었다. 딸은 그것을 보고는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나 깊이 스스로 다행스러워하였다.
“기역의 신이함이 이와 같으니, 나는 그 은혜를 갚아야겠습니다.”
아버지가 말하였다.
“기역이 나와 악속하기를 오늘 온다고 하였다.”
019_0876_b_22L七日晨明女便吐氣而寤如從臥覺曰今者了不復頭痛身體皆安誰護我使得如是父曰汝前已死醫王祇域故來護汝破頭出虫以得更生便開罌出虫示之女見太便驚怖深自慶幸祇域神乃如是我促得報其恩父曰祇域與我期言今日當來
바로 이때 기역이 왔다. 여자는 반가워서 문에 나아가 맞이하여 절하고 길게 꿇어앉아 손을 맞잡고 말하였다.
“원컨대 저는 당신의 종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공양하여 다시 살아난 은혜를 갚겠습니다.”
기역은 말했다.
“나는 의사라 돌아다니면서 병을 고치자니 거처가 일정하지 않은데 어찌 종이 필요하겠소. 그대가 꼭 은혜를 갚겠다면 내게 금 5백 냥을 주시오. 나는 이 금을 쓰지 않으나, 구하는 까닭은 사람이란 도를 배우면 으레 스승에게 사례해야 하는 것이오. 스승이 비록 내게 가르친 것이 없지만 나는 일찍이 그의 제자가 되었으니 나는 이제 그대의 금을 얻어서 스승에게 드려야겠소.”
여자는 곧 금 5백 냥을 받들어 기역에게 올렸다.
기역은 그것을 스승에게 드렸으며, 곧 잠깐 돌아가 어머니를 뵙겠다고 왕에게 아뢰고 유야리국(維耶梨國)으로 갔다.
019_0876_c_06L於是須臾祇域便來女歡喜出門迎頭面作禮長跪叉手曰願爲祇域作婢身供養以報更生之恩祇域曰我爲醫師周行治病居無常處何用婢爲汝必欲報恩者與我五百兩金我亦不用此金所以求者凡人學道法謝師師雖無以敎我我嘗爲弟子得汝金當以與之女便奉五百兩金以上祇域祇域受以與師因白王歸省母到維耶梨國
019_0877_a_02L또 나라 안의 어떤 가라월가(迦羅越家)의 사내아이가 무술을 익히기를 좋아하여 높이가 일곱 자가 넘는 목마(木馬)를 만들어 놓고 날마다 말에 뛰어 오르는 것을 배워 가면서 탔다. 오래될수록 더욱 익숙하여졌는데, 갑자기 미끄러져 땅에 떨어져 죽었다.
기역은 그 소문을 듣고서 곧 가서 약왕으로 뱃속을 비추어 보았더니 간이 뒤로 뒤집혀 숨이 막혔기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그는 금칼을 내어 배를 가르고 손으로 만져서 간을 도로 앞으로 돌려놓고 세 가지 신비한 고약을 발랐는데, 한 가지는 손으로 움켜쥐었던 데를 치료하는 것이며, 하나는 숨을 통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는 칼자국을 아물게 하는 것이었다. 기역은 그의 아버지에게 부탁하였다.
“조심해서 놀라지 않도록 하시오. 사흘이면 나을 것입니다.”
019_0876_c_16L爾時國中復有迦羅越家男兒好學武事作一木馬高七尺餘日日學習騗上初學適得上馬久久益習忽過去失據落地而死祇域聞之便往以藥王照視腹中見其肝反戾向後結不通故死復以金刀破腹手探料還肝向前畢以三種神膏塗之一種補手所獲持之處一種通利氣一種生合刀瘡畢囑語父曰愼莫令驚三日當愈
아버지는 지시를 받들어 조용하게 보살펴 3일이 되자 아이는 숨을 토하고 깨어났는데, 마치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은 것 같았다. 잠시 후에 기역이 왔다. 아이는 기뻐하며 문에 나가서 맞이하고 절한 뒤 길게 꿇어앉아 말하였다.
“당신의 종이 되어 평생 공양하여 다시 살아난 은혜를 갚겠습니다.”
기역은 말했다.
“나는 의사가 되어 돌아다니면서 병을 치료하였다. 병자의 집에서는 다투어서 내게 종노릇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 어머니가 나를 기르느라고 힘드셨는데도 나는 아직 그 공양의 은혜를 어머니께 갚지 못하였다. 그대가 만약 나에게 은혜를 갚겠거든 내게 금 5백 냥을 주어서 어머니의 은혜를 갚도록 하라.”
그리하여 기역은 금을 가져다 내녀(㮈女)에게 바치고는 도로 라열기국(羅閱祇國)으로 돌아왔는데, 그가 이 네 사람을 치료하고 이름이 천하에 퍼져 모르는 이가 없었다.
019_0877_a_04L父承敎勅寂靜養視至於三日兒便吐氣而寤狀如臥覺卽便起坐須臾祇域亦來兒歡喜出門迎頭面作禮長跪白言願得爲祇域作奴終身供養以報再活之恩域曰我爲醫師周行治病病者之家爭爲我使當用奴爲我母養我勤苦我未有供養之恩報母卿若欲謝我恩者可與我五百兩金以報母恩是取金以上柰女還歸羅閱祇國域治此四人馳名天下莫不聞知
남쪽에 큰 나라가 있는데 라열기국에서 8천 리 떨어져 있었다. 병사왕과 모든 작은 나라들이 모두 신하로 속해 있었다. 그 나라의 왕이 병이 위독하여 해가 오래되어도 낫지 않아 늘 성을 내었다. 흘겨보아도 사람을 죽이고 쳐다보아도 죽였으며, 머리를 숙이고 쳐다보지 않아도 죽였다. 심부름을 시키면 더디 가도 죽였으며 뛰어가도 죽였으므로 좌우의 시자들은 손발을 어떻게 둘지를 몰라 했으며, 의사가 약을 지으면 곧 독이 있을까 의심하여 죽였다. 그리하여 앞뒤에 죽은 가까운 신하와 궁녀 및 의사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병은 날로 더욱 심하였으므로 답답하고 숨이 차기가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는 기역의 소문을 듣고 곧 글을 내려 병사왕에게 명하여 기역을 불렀다.
019_0877_a_14L又南有大國去羅閱祇八千里缾沙王及諸小國皆臣屬之其王病疾積年不差恒苦瞋恚睚眥殺人人擧目視之亦殺低頭不仰亦殺使人行遲亦疾走亦殺左右侍者不知當何厝手足醫師合藥輒疑恐有毒亦殺之前後所殺旁臣宮女及醫師之輩可勝數病日增甚毒熱攻心煩懣短如火燒身聞有祇域卽爲下書缾沙王徵召祇域
019_0877_b_02L기역은 이 왕이 의사를 많이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매우 무서워하였으며, 병사왕 또한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을 불쌍히 여겨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침범을 당할까 두려워 부자가 서로 지켜 밤낮으로 걱정하였으나, 뚜렷한 계책이 없었다.
019_0877_a_24L祇域聞此王多殺醫師大以恐怖缾沙又怜其年小恐爲所殺適欲不遣畏見誅伐父子相守晝夜愁憂不知何計
그리하여 병사왕은 곧 기역을 데리고 부처님 처소에 가서 두 발에 절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왕이 성질이 포악하니 의사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가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기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전생에서 나와 함께 맹세하기를, 천하를 구원하되 나는 안의 병을 다스리고 너는 바깥의 병을 다스리기로 하였다. 이제 나는 부처가 되었으며 본래의 서원대로 내 앞에 모였다. 왕은 병이 위독해서 너를 멀리서 청하는데 어찌하여 가지 않느냐. 급히 가서 구호(救護)하라. 방편을 써서 병이 꼭 나을 것이며, 왕은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019_0877_b_03L爾時沙王乃將祇域俱往佛所頭面禮足而白佛言世尊彼王惡性恐殺醫師爲可往不佛告祇域汝宿命時與我約誓俱當救護天下我治內病汝治外病今我得佛故如本願會生我前此王病篤遠來迎汝如何不往急往救護之趍作方便令病必王不殺汝
기역은 곧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받들고 왕에게 갔다. 맥(脈)을 살피고 약왕으로 비추어 보니, 왕은 오장과 모든 맥 속에 혈기가 어지러워[擾擾] 온통 뱀과 구렁이의 독이 온몸에 두루 하였다.
019_0877_b_11L祇域便承佛威神往到王所診省脈理及以藥王照之見王五藏及百脈之中血氣擾擾悉是蛇蟒之毒周帀身體
기역은 왕에게 말하였다.
“왕의 병은 다스릴 수 있으며, 다스린다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서 태후(太后)께 상의하고 약을 써야만 되고, 만약 태후를 보지 못한다면 끝내 약을 짓지 못하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마음에 매우 성이 났지만 몸의 병을 생각하였다. 또한 기역의 이름을 들어왔기 때문에 멀리서 맞아왔으니 꼭 이익이 되기를 바랐으며, 또한 그는 아직 어린아이니 다른 흉계[奸]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참고 허락하여 청의황문(靑衣黃門)을 보냈다. 기역은 곧 태후를 만나 태후에게 말하였다.
“왕의 병은 다스릴 수 있으며 이제 약을 지어야겠으나 그 방법을 비밀히 하고 드러내서는 안 되니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태후는 곧 청의황문을 내보냈다.
019_0877_b_14L祇域白王王病可治之保愈然宜入見太后諮議合若不見太后藥終不成王聞此語不解其故意甚欲怒然患身病宿聞祇域之名故遠迎之冀必有益且是小兒知無他奸忍而聽之卽遣靑衣黃門將入見太后祇域白太后王病可今當合藥宜密啓其方不可宣露宜屛左右太后卽逐靑衣黃門去
019_0877_c_02L기역은 말을 이었다.
“왕의 병을 살피니 몸의 혈기가 온통 뱀과 구렁이의 독이며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왕은 정녕 누구의 아들입니까? 태후께서 사실대로 저에게 말씀하시면 능히 다스릴 수 있지만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왕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019_0877_b_22L祇域因白太后省王病見身中血氣悉是蛇蟒之毒似非人類王爲定是誰子太后以實語我我能治之若不語我王病則不可愈
태후는 말하였다.
“옛적에 내가 금주전(金柱殿)에서 낮잠을 자는데 갑자기 무엇이 와서 내 위를 누르는데 나는 황홀하여 꿈도 같고 생시도 같으며 흡사 가위눌린 것 같았다. 드디어 정을 통하고는 깨어서 보니 세 길이나 되는 큰 뱀이 내 위에서 나갔으며 그 뒤로 몸이 무거웠으니 왕은 뱀의 자식이 틀림없다. 나는 이를 수치로 여겨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는데, 동자는 이내 알아차리니 어찌 그리 신묘한가. 병을 다스린다면 왕명으로 동자를 위촉할 것이니, 치료에는 무슨 약을 쓰는가?”
019_0877_c_03L太后曰我昔於金柱殿中晝臥忽有物來厭我上者我時恍若夢若覺狀如魘夢遂與通情然而寤見有大蟒長三丈餘從我上則覺有軀王實是蟒子也我羞恥未曾出口童子今乃覺之何若神妙若病可治願以王命委囑童子今者治當用何藥
기역이 말하였다.
“오직 제호(醍醐)뿐입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동자는 제호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왕은 제호 냄새를 아주 싫어하여 제호의 이름조차 싫어합니다. 지금까지 제호 이야기를 하다가 죽은 사람이 수천백 명인데 이제 그대가 그것을 말한다면 반드시 죽일 것이며, 그것을 왕에게 먹이면 끝내 넘어가지 않을 터이니 다른 약을 쓰기 바라오.”
019_0877_c_10L祇域曰唯有醍醐耳太后童子愼莫道醍醐而王大惡聞醍醐之氣又惡聞醍醐之名前後坐口道醍醐而死者數千百人汝今道必當殺汝以此飮王終不得下更用他藥
기역은 말하였다.
“제호는 독을 다스립니다. 독이 든 병자가 제호 맡기를 꺼리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왕의 병이 만약 그 독이 아니고 다른 독이라면 다른 약으로 나을 수 있지만, 뱀독이 이미 위중하고 또 벌써 온몸에 번졌으니 제호가 아니고는 끝내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끓여서 물이 되게 하면 냄새도 맛도 없어서 왕은 알아채지 못하고 스스로 마실 것이며, 약이 넘어가면 반드시 나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기역은 나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아까 들어가서 태후를 뵙고 약방문을 의논하여 보름 동안이면 되기로 합의하였으나, 저는 다섯 가지 원이 있습니다. 왕께서 들어주시면 병은 나을 수 있으나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병은 나을 수 없습니다.”
019_0877_c_15L祇域曰醍醐治毒毒病惡聞醍醐是也王病若微及是他毒爲有餘藥可以愈之蟒毒旣重又已遍身體自非醍醐終不能消今當煎煉化令成水無氣無味王意不覺自當飮之藥下必愈無可憂也便出見王曰入見太后已啓藥方今當合之十五日當成今我有五願王若聽我病可卽愈若不聽我病不可愈
019_0878_a_02L왕이 물었다.
“다섯 가지 원이란 모두 어떤 것들이냐?”
기역이 말하였다.
“첫째는 왕의 옷장에서 아직 입어보지 않은 새 옷을 저에게 주시는 것이며, 둘째는 저 혼자 드나들어도 문에서 묻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날마다 혼자 들어가 태후와 왕후를 뵈어도 아무도 금지시키지 못하는 것이며, 넷째는 왕께서 약을 마실 때에 단숨에 다 마시고 중간에 쉬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왕의 8천 리(里) 흰 코끼리를 제가 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019_0877_c_23L王問五願盡何等事祇域曰一者願得王甲藏中新衣未歷軀者與我二者願得令我獨自出入門無呵者三者願得日日獨入見太后及王后莫得禁呵我四者願王飮藥當一仰令盡莫得中五者願得王八千里白象與我乘
왕은 듣고 크게 성내었다.
“아이가 어찌 감히 이런 다섯 가지 원을 요구하느냐? 속히 모두 설명하여라. 만일 설명하지 않으면 몽둥이로 때려죽일 것이다. 너는 어찌 감히 나에게 새 옷을 요구하였느냐? 나를 죽이고 내 옷을 입고 내 몸을 사칭하기 위함이냐?”
기역은 대답하였다.
“약을 짓자면 으레 정결히 재계(齋戒)해야 합니다. 저는 온 지가 오래되어 입은 옷이 더럽기 때문에 왕의 옷을 얻어 입고 약을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019_0878_a_07L王聞大怒曰兒子何敢求是五願促具解之若不能解今捧殺汝汝何敢求我新衣爲欲殺我便著我衣作我身耶祇域曰合藥宜當精潔齊而我來日久衣被皆塵垢故欲得王衣以之合藥
왕은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매우 좋다. 무엇 때문에 홀로 궁문을 출입하여도 검문하지 않기를 원하였느냐? 군사들을 데리고서 나를 치기 위해서였느냐?”
기역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앞뒤에 신하와 모든 의사들을 다 꺼리고 의심하여 믿고 맡긴 적이 없으며 게다가 베어 죽이고 그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하들의 말이 왕께서 나도 죽일 것이며 병은 더욱 심할 것이라고 하니, 혹시 바깥 사람들이 난을 일으킬 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저 혼자 드나들어도 검문을 당하지 않게 하시면 바깥 사람들 모두가 다 알기를 왕께서 저를 믿으므로 반드시 제 약을 먹고 병이 꼭 나을 것이라고 할 터이니, 그렇게 되면 감히 반역할 마음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019_0878_a_12L王意解曰如此大佳汝何故欲得自出入宮門令無禁呵欲因此將兵來攻殺我耶祇域曰前後使諸師醫皆嫌疑之無所委信又誅殺之不服其藥群臣皆言王當復殺我而王病已甚恐外人生心作若令我自出入不見禁呵外人大小皆知王信我必服我藥病必當愈不敢生逆亂之心
019_0878_b_02L왕이 말하였다.
“매우 좋다. 너는 어찌해서 날마다 혼자 들어가 내 어머니와 부인을 보겠다는 것이냐? 음란한 짓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기역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전후에 사람을 많이 죽였으므로 대소 신하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왕이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와 함께 약을 짓다간 내가 눈을 돌리는 사이에 독약을 넣어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어도 좋을 사람을 생각하니 은혜와 정이 둘이 없기는 오직 어머니와 부인이므로 감히 들어가서 태후와 왕후를 보고 함께 약을 짓고 달이면 보름이면 되겠습니다. 이 때문에 날마다 들어가서 형편과 불을 살피기 위한 것입니다.”
019_0878_a_20L王曰大佳汝何故日日獨入見我母及我婦欲作婬亂祇域曰王前後殺人甚多臣下大小各懷恐怖皆不願王之安隱無可信者今共合藥因我顧睨之閒便投毒藥我所不覺則非小事故思惟可信恩情無二唯有母與婦故敢入見太后王后與共合藥當煎十五日乃成故欲日日入伺候火齊耳
왕이 말하였다.
“매우 좋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내가 약을 단숨에 다 마시고 중간에 쉬지 않도록 요구하였느냐? 독을 넣고 혹시 내가 알아차릴까 두려워서가 아니냐?”
기역이 말하였다.
“약에는 첩수[劑數]가 있으며 약기운과 맛이 서로 미쳐야 하는데, 만약 중간에서 쉰다면 기운이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019_0878_b_05L王曰汝何故使我飮藥一仰令盡不得中爲欲內毒恐我覺耶祇域曰藥有劑數氣味宜當相及若其中息則氣不相繼
왕이 말하였다.
“매우 좋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내 코끼리를 얻어 타려고 하였느냐? 이 코끼리는 내 나라의 보물로서 하루에 8천 리를 간다. 내가 위엄으로 모든 나라를 항복시키는 까닭은 바로 이 코끼리 덕인데 네가 타려고 하니, 아마도 훔쳐서 집에 돌아가 너의 아버지와 함께 내 나라를 치기 위함이 아니냐?”
기역이 말하였다.
“남계산(南界山)에 신묘한 약초가 있는데 여기서 거리가 4천 리입니다. 왕께서 약을 마신 후에는 곧 이 풀을 다시 잡수셔야 하기 때문에 그 코끼리를 타고 가서 캐기 위해서입니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야 약맛이 서로 미치게 됩니다.”
019_0878_b_09L王曰大佳汝何故欲得我象乘此象是我國寶一日行八千里所以威伏諸國正怙此象汝欲乘之爲欲盜以歸家與汝父攻我國耶域曰乃南界山中有神妙藥草去此四千里王飮藥宜當卽得此草重復服故欲乘此象詣往採之朝去暮還令藥味相及
왕은 마음이 확 풀려서 모두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기역은 제호를 보름동안 달여서 맹물처럼 된 것을 닷 되를 얻었다. 곧 태후와 왕후가 함께 약을 받들고 나가서 왕에게 마시기를 말하고 횐 코끼리를 미리 뜰 앞에 두기를 청하니, 왕은 곧 허락하였다. 왕은 약을 보니 꼭 맹물 같으며 아예 냄새도 맛도 없었으므로 그것이 제호인 줄 몰랐으며, 게다가 태후와 왕후가 직접 왔으므로 그것이 독약이 아님을 믿고 본래의 요구대로 단숨에 다 마셨다.
기역은 곧 코끼리를 타고 라열기국으로 떠났다.
019_0878_b_16L王意大解皆悉聽之祇域煎煉醍醐十五日成化如淸凡得五升便與太后王后俱捧藥白王可服願被白象預置殿前卽聽之王見藥但如淸水初無氣味不知是醍醐又太后王后身自臨合信其非毒便如本要一飮而盡祇域便乘象徑去還羅閱祇國
019_0878_c_02L그때 기역은 3천 리를 갔는데, 나이가 어리고 힘이 아직 약했으므로 빠르게 달리기를 견디지 못하여 머리가 어지럽고 피로가 심하였다. 그는 곧 멈추고 누워서 한나절이 지나도록 쉬었다.
한편 왕은 트림을 하자 제호 냄새가 났으므로 다시 크게 노하였다.
“아이가 감히 내게 제호를 먹였구나. 괴이한 놈이 횐 코끼리를 요구한 것은 바로 배반하여 달아나기 위해서였구나.”
019_0878_b_23L爾時祇域適行三千里祇域年小力膂尚微不堪疾迅頭眩疲極便止息到日過中王噫氣出聞醍醐臭便更大怒曰小兒敢以醍醐中我怪兒所以求我白象正欲叛去
왕에게는 오(烏)라는 용맹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걸어서 코끼리를 따라가는 신통한 발을 가졌다. 왕은 곧 오를 불러 말하였다.
“너는 빨리 쫓아가서 아이를 붙들어 산 채로 내게 가져오라. 눈앞에서 때려죽이겠다. 그리고 너는 천성이 깨끗하지 못하여 먹기를 탐내므로 이름을 오(烏)라고 하였다. 의사 놈은 독약을 쓰기를 즐기니, 아이가 만약 너에게 먹을 것을 주더라도 조심하고 먹지 말라.”
019_0878_c_05L王有勇士之臣名曰烏神足步行能及此象呼烏曰汝急往逐取兒來生將以還我欲目前捶殺之汝性常不廉貪於故名爲烏此醫師輩多喜行毒兒爲汝設食愼莫食也
오는 명령을 받고 곧 떠났는데, 산중에 이르러서 기역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제호를 왕에게 먹이고 약이라고 하였느냐? 그 때문에 왕은 나를 보내서 너를 잡게 하였으니 너는 빨리 나를 따라 돌아가자. 자수하고 용서를 빌면 아마 살 가망이 있을 것이고, 달아나려고 하면 지금 너를 죽여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겠다.”
기역은 생각하기를, ‘내가 방편을 써서 이 횐 코끼리를 얻었으나 벗어나지 못하였구나. 이제 다시 방편을 써야지 어찌 따라가겠는가?’ 하고는 곧 오에게 말했다.
“나는 아침에 밥도 못 먹고 왔습니다. 돌아가면 반드시 죽을 터이니 잠깐만 짬을 주어 이 산간에서 과일을 먹고 물을 마셔 배불린 뒤에 죽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019_0878_c_10L烏受勅便行及之於山中汝何故以醍醐中王而云是藥王故令我追呼汝還汝急隨我還陳謝自首庶可望活若故欲今必殺汝終不得脫祇域自念我雖作方便求此白象復不得脫今當復作方便何可隨去乃謂烏言我朝來未還必當死寧可假我須臾得於山閒啖果飮水飽而就死乎
019_0879_a_02L오는 어린애가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떨며 말도 겨우 하는 것을 보고 가여워서 허락하였다.
“빨리 먹고 가야 하며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기역은 곧 배 하나를 따서 반은 먹고 손톱에 넣었던 독약을 나머지 반에 넣고 땅에 놓았으며, 또 한 잔의 물을 떠서 먼저 반은 마시고 손톱 밑의 독약을 나머지 반에 넣어서 땅에다 놓고서 탄식하였다.
“물이나 배가 다 천상의 약이어서 이렇게 맑고 향기롭고 또 맛있구나. 이것을 먹는 이는 몸이 편안하고 백 가지 병이 다 나으며, 기력이 배가 되는데, 이것이 도성에 있었다면 백성들이 다 같이 먹을 터인데, 깊은 산속에 있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한스럽구나.”
그리고는 다시 산으로 들어가 다른 과일을 찾았다.
019_0878_c_18L烏見祇域小兒畏死懼怖言辭辛苦怜而聽之促食當去不得久留祇域乃取一喫食其半以毒藥著爪甲中以分餘半便置於地又取一杯水先飮其又行爪下毒於餘水中復置於地乃歎曰水及梨皆是天藥旣淸香且其飮食此者令人身安百病皆愈氣力兼倍恨其不在國都之下百姓當共得之而在深山之中人不知也便進入山索求他果
오(烏)는 성질이 간탐하여 먹는 데는 못 참는 데다가, 기역이 이미 먹고 마시는 것을 보았으므로 틀림없이 독은 없겠지 하고 곧 남은 배를 먹고 남은 물을 마시고는 곧 설사를 하였는데, 설사가 물이 쏟아지듯 하였다. 그는 넘어져 땅에 쓰러졌다가 일어나면 곧 어지러워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였다.
019_0879_a_05L烏性旣貪不能忍於飮食又聞祇域歎爲神藥亦見祇域已飮食之謂必無毒便取餘梨食之盡飮餘水便下痢痢如注水地而臥起輒眩倒不能復動
기역은 말하였다.
“왕이 내 약을 먹었으니 병은 반드시 낫는다. 하지만 약 힘이 아직 작용하지 않았으므로 독이 다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가면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다. 당신은 알지도 못하고 나를 업고 가려고 하겠기에 당신을 병들게 하였다. 그 병은 고통이 없을 것이니 조심하여 움직이지 말라. 사흘이면 나을 것이다. 만약 일어나서 나를 쫓으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019_0879_a_09L祇域曰王服我藥病必當愈然今藥力未行餘毒未盡我今往者必當殺我汝無所知起欲得我以解身負故使汝病病自無苦愼莫動搖三日當差若起逐我必死不疑
기역은 곧 코끼리에 올라 떠나갔는데 마을을 지나다가 장오(長伍)에게 말했다.
“국왕의 사신이 갑자기 앓고 있으니 당신들은 빨리 가서 가마에 태워 돌아오시오. 잘 간호하고 평상과 자리를 좋게 하고 미음을 주어 죽지 않게 하시오. 죽는다면 왕이 당신의 나라를 멸하게 할 것입니다.”
기역은 말을 마치고 떠나가서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장오는 명령대로 맞이해 와서 잘 간호하였다.
오는 사흘 만에 독이 다 풀려서 곧 왕에게 돌아가서 머리를 치면서 고하였다.
“제가 실로 못나고 어리석어 왕의 명령을 저버렸습니다. 기역의 말을 믿고 남겨둔 물과 과일을 먹고 중독되어 사흘을 설사하고 오늘 아침에야 나았습니다. 죽어 마땅한 줄로 압니다.”
019_0879_a_14L便上象而去祇域則過墟聚語長伍曰此是國王使今忽得病汝等急往舁取歸家養護之厚其牀席給與糜粥愼莫令死者王滅汝國語畢便去遂歸本長伍承勅迎取養護三日毒歇下烏便歸見王叩頭自陳曰我實愚違負王敎信祇域言飮食其餘水爲其所中下痢三日始今旦差知當死
019_0879_b_02L오가 돌아오기까지 사흘 동안에 왕의 병은 이미 나았다. 왕은 그를 보낸 것을 후회하였는데 오가 돌아온 것을 보자 후회되고도 반가워서 말하였다.
“나는 네가 그 아이를 즉시 데리고 오지 않은 덕을 입었다. 내가 성낸 당시였다면 틀림없이 때려죽였을 것이다. 그의 은혜를 입어 목숨이 살아났는데 도리어 죽였다면 허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곧 전후에 죽인 일들을 뉘우치고 다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으며, 또한 그들 가문에 돈과 재물을 주었다. 그는 기역을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곧 기역을 맞아올 사신을 보냈다. 기역은 왕의 병이 이미 나은 것은 알았지만 아직도 무서움이 남아서 가려고 하지 않았다.
019_0879_a_23L比烏還三日之中王病已差王自追念悔遣烏往行見烏來還悲且喜曰賴汝不卽將兒來當我恚時必當捶殺我得其恩命得生活反殺之逆戾不細卽悔前後所抂殺悉更厚葬復其家門賜與錢財見祇域欲報其恩卽遣使者奉迎祇祇域雖知王病已差猶懷餘怖不復欲往
그때 기역은 다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왕이 사신을 보내서 부르는데 가는 것이 옳습니까?”
부처님께서 기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본래 전생에서 큰 서원이 있었으니, 공덕을 이루어야 하는데, 어찌 중지할 수 있겠느냐. 다시 가야만 된다. 너는 이미 그의 바깥 병을 다스렸으니 나도 이제 속병[內病]을 다스려야겠다.”
019_0879_b_08L爾時祇域復詣佛所接足頂禮白佛言世尊彼王遣使來喚爲可往不佛告祇域汝本宿命已有弘誓當成功德何得中止今應更往汝已治其外病我亦當治其內病
기역은 곧 사신을 따라서 갔다. 왕은 기역을 보자 매우 반가워하면서 이끌어 같은 자리[同坐]에 앉혀서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그대의 은혜를 입어 지금 다시 살았으니,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국토를 나누어 반을 주고 궁중과 채녀(婇女)와 창고의 보물도 절반을 나누어 줄 것이니, 그대는 받아주기 바라오.”
019_0879_b_12L祇域便隨使者去王見祇域甚大歡喜引與同坐把持其臂曰賴蒙仁者之恩今得更當何以報當分國土以半相與中婇女庫藏寶物悉當分半幸願仁者受之
기역은 말하였다.
“저는 본래 태자로서 비록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백성과 진보(珍寶)를 갖추었습니다. 저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일부러 의원이 되기를 구하였으니 병을 다스림이 당연한데, 토지와 채녀와 보물은 모두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전에 나의 다섯 가지 바람을 들어주고 바깥 병을 고쳤습니다. 이제 만약 한 가지 바람을 허락하신다면 안의 병을 또한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019_0879_b_17L祇域曰我本爲太子雖實小國亦有民人珍寶具足不樂治國故求爲醫當行治病當用土地婇女寶物爲皆所不用王前聽我五願外病已愈今若聽一願內病可復除愈
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가르침을 받겠으니 한 가지 원이란 것을 들려주시오.”
기역이 말하였다.
“원하건대 왕은 부처님을 청하여 밝은 법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왕을 위해 부처님의 공덕이 높고 높아 우뚝하시다는 것을 말하였다. 왕은 듣고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제 신하 오(烏)를 보내 흰 코끼리로 부처님을 맞으면 되겠는가?”
019_0879_b_21L唯聽仁敎請復聞一願之事祇域曰願王請佛從受明法因爲王說佛功德巍巍特尊王聞大喜曰今欲遣烏臣以白象迎佛可得致不
019_0879_c_02L기역이 말하였다.
“횐 코끼리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를 아시므로 멀리서 도 남이 생각하는 것을 아십니다. 다만 재계(齋戒)하여 깨끗이 하고 공양을 차리고 향을 사르고 멀리 부처님께 향하여 절하고 길게 꿇어앉아 말씀드리고 청하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대로 하였다.
이튿날 부처님께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오셔서 공양을 마치시고 왕을 위해 경을 설하셨다. 왕은 뜻이 열리고 풀려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上正眞道心]을 발하였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5계(戒)를 받고 공경한 뒤 절하고 갔다.
019_0879_c_02L祇域曰用白象佛解一切遙知人心所念宿齋戒淸淨供具燒香遙向佛作禮長跪白請佛必自來王如其言佛明日與千二百五十比丘俱來飯食已畢爲王說經王意開解便發無上正眞道心擧國大小皆受五戒恭敬作禮而去
한편 내녀(㮈女)는 태어남이 이미 기이하였는데, 자라남도 또한 총명하였다.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경(經)과 도와 천문과 모든 술법을 널리 아는 것이 아버지보다 뛰어났으며, 더구나 성악(聲樂)을 통달하여 음성이 범천(梵天) 같았으므로 모든 거사[迦羅越]와 범지(梵志)의 딸들이 도합 5백 사람이 다들 와서 배우고 스승으로 삼았다.
내녀는 항상 5백 제자들을 데리고 경과 술법을 가르쳤으며, 때로는 동산이나 못가에서 서로 놀기도 하고 음악도 지었으므로 사람들은 까닭도 알지 못하고 빈정대며 내녀를 음탕한 여자라고 불렀고, 5백 제자들을 음탕한 무리[婬黨]라고 불렀다.
019_0879_c_10L又柰女生旣奇異長又聰明從父學博知經道星曆諸術殊勝於父達聲樂音如梵天諸迦羅越及梵志家女合五百人皆往從學以爲大師柰女常從五百弟子讚授經術或相與遊戲園池及作音樂國人不解其便生譏謗呼爲婬女五百弟子皆號婬黨
나라 안에는 수만녀(須漫女)와 파담녀(波曇女)가 있었는데, 같은 때에 태어났다. 수만녀는 수만화(須漫華)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에 어떤 거사[迦羅越]의 집이 있었는데, 항상 수만을 짜서 향기름을 만들었다. 돌 위에서 기름을 짜다가 갑자기 혹[瘤節]이 만들어졌다. 탄환만 하던 것이 날마다 자라서 주먹만 하게 되자 돌이 폭파되었는데, 돌 속에 덩어리가 있어서 반딧불 같은 빛을 쏘아 땅에 떨어지더니 사흘 만에 수만(須漫)이 생겼다. 또 사흘 만에 꽃이 피었는데 그 꽃 속에 계집아이가 있었다. 거사는 안고 와서 길렀으며 이름을 수만녀(須漫女)라고 하였는데 자라남에 예쁘고 재주 있고 지혜롭기가 내녀의 다음이었다.
019_0879_c_18L又柰女生時國中復有須漫女及波曇女亦同時俱生須漫女者生於須漫華中國有迦羅越家常笮須漫以爲香膏笮膏石邊忽作瘤節大如彈丸日日長大至如手拳石便爆破見石節之中有聚聚如螢火出墮地三日而生須漫又三日成華華舒中有小女兒迦羅越取養之曰須漫女長大姝好及才明智慧次柰女
019_0880_a_02L이때 어떤 바라문의 집 못 속에 저절로 푸른 연꽃이 피었는데, 꽃이 유달리 컸으며 날마다 더욱 자라더니 닷 되들이 병만 하였다. 그 꽃 속에 보니 계집아이가 있으므로 바라문은 안고 와서 길렀으며 이름은 파담녀(波曇女)라고 하였다. 자라남에 또한 예쁘고 재주 있고 지혜롭기 수만녀와 같았다.
019_0880_a_03L爾時又有梵志家浴池中自然生靑蓮華華特加大日日長益如五升缾華舒見中有女兒梵志取養之名波曇女長大又好才明智慧如須漫女
모든 나라의 왕들은 이 두 여자가 절세미인이란 말을 듣고 번갈아 와서 구혼하였다. 두 여자는 말하기를 “우리의 태어남은 포태(胞胎)를 말미암지 않고 꽃 속에서 나왔으니 보통 사람과 다르다. 어찌 세속사람처럼 시집가겠느냐. 들으니 내녀가 총명하고 절세미인으로 짝할 이가 없다고 하며, 또한 태어남이 우리와 같다고 하니 부모를 하직하고 가서 내녀를 섬기자”라고 하고는 제자가 되었는데, 그들은 경에 밝고 지혜롭기가 5백 인보다 뛰어났다.
019_0880_a_07L諸國王聞此二女顏容絕世來求娉之二女曰我生不由胞胎出草華之中是與凡人不同何宜當隨世人乃復嫁耶聞柰女聰明容貌絕世無與疋者又生與我同體皆辭父往事柰女求作弟子明經智慧勝此五百人
그때 부처님께서 유야리국(維耶梨國)에 들어오셨다. 내녀는 곧 제자 5백 명을 데리고 나가 부처님을 맞아 절하고 길게 꿇어앉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내일 저의 동산에 오셔서 공양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수락하셨으며, 내녀는 돌아가서 공양거리를 장만하였다.
부처님께서 성으로 들어오시자 국왕은 궁을 나와 부처님을 맞아 절한 뒤에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께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내일 궁중에 오셔서 공양하시길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까 내녀가 이미 먼저 청하였으니 왕은 뒤입니다.”
019_0880_a_13L爾時佛入維耶梨國柰女便率將弟子五百人出迎佛頭面作禮長跪白願佛明日到我園中飯食佛默然受之柰女還歸辦其供具佛進入城國王又出宮迎佛禮畢長跪請佛明日到宮飯食佛言柰女向已前請王後之矣
왕이 말하였다.
“저는 국왕으로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청하는 것이니 꼭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내녀는 곧 음녀로서 날마다 음란한 5백 제자를 데리고 법 아닌 일[不軌]을 짓고 행하는데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고 그의 청에 응하십니까?”
019_0880_a_20L王曰我爲國王至心請佛必望依許柰女但是婬女日日將徒五百婬弟子行作不軌何爲捨我而應其請
019_0880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음녀가 아닙니다. 전생에 큰 공덕이 있어 이미 3억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또한 일찍이 수만녀와 파담녀와 더불어 자매가 되어 내녀는 맏이고, 수만녀는 둘째이고, 파담은 셋째였습니다. 그들은 귀족[大姓]의 집에 태어났으므로 재보가 풍부하였습니다. 이 자매들은 서로 도와 5백 비구니를 공양하여 날마다 음식을 차리고 의복을 만들어 필요한 대로 모자람이 없이 모두 공급하기를 목숨이 끝나도록 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늘 서원을 발하기를 ‘우리들은 후세에 부처님을 만나면 화생(化生)으로 나고 포태(胞胎)로 말미암지 않으며 더러운 때를 멀리 떠나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는데, 이제 본래의 서원대로 내가 있는 때에 태어났습니다.
019_0880_a_23L佛言此女非婬女其宿命有大功德已供養三億佛昔曾又與須漫曇女俱爲姊妹柰女最大須漫次之曇最小生於大姓家財寶饒富姊妹相率供養五百比丘尼日日施設飮及作衣服隨所無乏皆悉供之其壽命三人常發誓言願我後世逢得自然化生不由胞胎遠離穢垢今如本願生値我時
그러나 옛적에 비구니에게 공양할 때에 그들은 부호한 집 아이들이었으므로 말씨가 교만했으며, 때로는 비구니에게 희롱하여 웃으면서 말하기를 ‘여러 도인(道人)들이 답답한 날이 오래되면 반드시 시집가고 싶어서 우리들의 공양을 핍박하여 단속하겠지만 방자한 정의(情意)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금 그 나머지 재앙을 받느라고 날마다 경과 도를 찬탄하면서도 음탕하다는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5백 제자는 그때에 힘을 합해서 서로 도와 공양했으며 한마음으로 즐거워한 까닭에 지금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과보란 서로 따르는 것입니다.
019_0880_b_08L又昔雖供養比丘尼然其作豪富家兒言語嬌溢時或戲笑比丘尼曰諸道人於邑日久必當欲嫁迫有我等供養撿押不得放恣情意耳故今者受此餘殃雖日讚經道虛被婬謗此五百弟子時亦幷力相助供養同心歡喜今故會生果復相隨
기역은 그때 가난한 집 자식이었는데 내녀가 공양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매우 사모하고 기뻐하면서도 돈이 없었던 까닭으로 항상 비구니를 위하여 청소하였으며, 깨끗이 청소하고는 서원을 발하기를 ‘나로 하여금 천하 사람의 신병(身病)과 더러움을 소제(掃除)하여 이렇게 기뻐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019_0880_b_15L祇域爾時爲貧家作子見柰女供養意甚慕樂而無資財乃常爲比丘尼掃除掃除潔淨已輒發誓言我能掃除天下人身病穢如是快耶
019_0880_c_02L내녀는 그가 빈궁하면서도 부지런함을 어여삐 여겨 늘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그 비구니들이 병이 나면 늘 기역을 시켜 의원을 맞아오고 약을 달이면서 말하기를 ‘너도 후세에 나와 함께 이 복을 얻도록 하자’라고 하였으며, 기역은 의원을 맞아 다스린 데가 다 나으면 서원하기를 ‘나는 후세에 큰 의원이 되어 늘 일체 몸뚱이, 4대(大)의 병을 다스리게 하고 가는 곳마다 모두 낫게 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전생의 인연으로 지금 내녀의 아들이 되었으며 모두가 본래의 서원대로입니다.
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길게 꿇어앉아 잘못을 뉘우치고 뒷날을 기약하였다.
019_0880_b_18L柰女憐其貧窮又加其勤力常呼爲其比丘尼有疾病時常使祇域迎醫及合湯藥令汝後世與我共獲是祇域迎醫所治悉愈乃誓曰願我後世爲大醫王常治一切身四大之所向皆愈皆宿日因緣今故爲柰女作子皆如本願王聞佛語乃長跪悔過卻期後日
부처님께서는 이튿날 모든 비구들과 함께 내녀의 동산에 가셔서 그들을 위하여 본원(本願)의 공덕을 설하셨다. 세 여자는 경을 듣자 밝게 알았으며 5백 제자들도 동시에 기뻐하여 출가 수행하였는데, 부지런히 하고 게으르지 않아 모두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얻었다.
019_0880_c_03L佛明日便與諸比丘到柰女園具爲說本願功德三女聞經開解幷五百弟子同時歡喜出家修行精懃不懈皆得阿羅漢道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받아 지니며 사부대중을 위해서 설하되 끊어짐이 없도록 하라. 일체 중생은 몸과 입과 뜻을 조심하며 교만과 방일을 내지 말라. 내녀는 지난 옛적에 비구니를 조롱하였던 까닭에 지금 음탕하다는 비방을 받았다. 너는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닦아 행하고 항상 착한 서원을 발할 것이며, 듣는 이는 따라서 기뻐하고 믿고 즐기고 받아 지니며 비방하지 말라. 지옥에 떨어지고 남은 과보는 축생이며 백천 겁을 지난 뒤의 과보는 사람이되, 빈궁하고 천하며 바른 법을 듣지 못하여 삿된 소견을 가진 집에 태어나며 언제나 나쁜 왕을 만나며 몸은 불구일 것이다. 너는 마땅히 수행하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항상 끊어지지 않게 하라.”
019_0880_c_06L佛告阿難汝當受持爲四衆說莫令斷絕一切衆生愼身口意勿生憍慢放逸柰女往昔時嘲戲比丘尼故被婬謗汝當修行身口意業恒發善聞者隨喜信樂受持莫生誹謗於地獄餘報畜生經百千劫後報爲人貧窮下賤不聞正法邪見家生値惡王身不具足汝當修行受持讀盡未來際常使不絕
그때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조아려 발에 절한 뒤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법의 요추[要]는 무슨 경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내녀기역인연경(㮈女祇域因緣經)』이며, 수행하는 법과 용(用)은 앞에서와 같다. 비구ㆍ비구니에게 공양하며 약을 주고 의원을 맞으며 따라 기뻐하고 서원을 발하여 이제 과보를 얻었다. 이와 같이 받아 지녀라.”
부처님께서 경을 설해 마치시자 대중인 인민(人民)과 천룡팔부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19_0880_c_15L爾時阿難從座而起稽首禮足長跪合掌白佛言世尊此法之要當名何佛語阿難此經名曰『柰女耆域因緣經』修行法用如上供養比丘比丘施藥迎醫隨喜發誓今獲果報是受持佛說經已大衆人民天龍八聞佛所說歡喜奉行
佛說柰女祇域因緣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