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891_a_01L불설유리왕경(佛說琉璃王經)
019_0891_a_01L佛說琉璃王經


서진(西晉) 월지국(月氏國) 축법호(竺法護) 한역
권영대 번역
019_0891_a_02L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891_a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유라위(迦維羅衛) 석씨정사(釋氏精舍)의 니구류나무[尼拘留樹] 밑에서 유행하시면서 5백 비구와 시자 아난(阿難)과 금강역사(金剛力士) 누유(樓由)와 함께하셨다.
성안에 사이(舍夷)라는 귀한 성(姓)을 가진 5백 장자들이 함께 세존을 위해 강당을 세우면서 서로 이야기하였다.
“강당이 완성되거든, 부처님[正覺]을 모시고 공양을 베풀어야 하며, 사문이나 범지(梵志)나 장자나 거사나 일반 인민이 부처님보다 먼저 함부로 이 강당에 올라서서는 아니 된다. 만약 이것을 어기면 그 죄가 헤아릴 수 없으리라.”
019_0891_a_04L一時佛遊迦維羅衛釋氏精尼拘類樹下與五百比丘侍者阿金剛力士樓由俱於城中有舍夷貴姓五百長者共爲世尊造立講堂自相興誓講堂成已當請正覺於上設供沙門梵志長者居士群黎人民不得先佛妄升此堂若違要者罪在不測
사위국엔 유루려(維樓黎)란 태자가 있었는데, 그가 태어나 자랄 때 유리 보배와 함께하였던 까닭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는 근위병을 거느리고 외갓집에 문안하였는데, 성에 들어와서 강당을 보니 높고 넓고 엄숙하고 깨끗하였으며, 조용하고 우아하고 특별하고 묘하기가 세상에 드물었으므로 곧 그 위에서 머물러 쉬었다. 강당지기가 이를 보자 곧 가서 여러 귀족들에게 말했다.
“사위국의 태자가 와서 강당에 들어갔습니다.”
귀족들은 이 말을 듣고 성을 내며 말하였다.
“어디에서 온 이방인[異德]이기에 감히 우리가 지어놓은 강당에 들어갔단 말인가. 본래 그 집을 지은 것은 곧 부처님을 위해 지은 것이니, 좋은 음식을 차리고 부처님께 공양을 마친 뒤에야 우리들이 거처하려고 하였거늘 하찮은 이[微者]가 세존보다 먼저 그곳에 몸을 두다니.”
그들은 곧 하인을 시켜 태자의 얼굴에 대고 욕을 하고 서둘러 쫓아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밟았던 땅은 발자국을 파내고 밟았던 층층대는 곧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019_0891_a_11L舍衛國王時有太子名維樓黎——產育之初與琉璃寶俱因以爲號——領衛士定省外氏方來入城見視講堂高廣嚴淨都雅殊妙世所希有則於其上頓止息涼監講堂者往白諸貴姓言舍衛太子來止講堂貴姓聞之興怒罵曰吾等家產有何異德敢登此堂本造斯殿乃爲佛擧當具上饌延屈世尊至眞聖衆供養畢訖然後吾等乃宜自處而微者前尊置體于尋遣使者面罵辱之催逐發遣不久滯所蹈之地剗去足迹所履寶階輒更貿易
019_0891_b_02L이때 유리 태자는 자신을 꾸짖는 소리를 듣자얼굴빛이 변하였으며 독한 마음을 품고 태사(太史)에게 명령하였다.
“깊이 이것을 기억하였다가 내가 왕이 되거든 그들을 죽여야 하오.”
태사(太史) 아살타(阿薩陀)진(晉)나라 이름으로 무신(無信)이다.는 천문(天文)을 잘 관찰하였는데, 이에 재난과 변고를 점쳐서 그 상태를 적어 띠[帶] 속에 넣어 간직하였다. 태자는 앙심을 품고 푸대접 받은 것을 기억하고는 선뜻 물러나와 돌아왔으며, 다시는 외갓집에 문안을 가지 아니하였다.
태자의 부왕 바사닉(波斯匿)은 왕후 말리(末利)와 함께 수레를 타고 기수원(祇樹園)으로 가는데, 수레에서 내려 일산을 물리치고 관(冠)을 벗고 칼을 풀고 신을 벗은 채 군사를 물리치고 지름길로 걸어서 갔다. 그는 말리와 함께 땅에 엎드려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편 유리 태자가 그때 바로 성으로 돌아와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했으므로 좌우에게 물었다.
“부왕과 태후는 지금 어디 계시느냐?”
아뢰었다.
“부처님께 가셨습니다.”
019_0891_b_02L琉璃太子聞其罵音姿色變動心懷毒恚勅太史曰深憶記須吾爲王當誅此類太史阿薩陁晉名無信能觀天文占究災怪令書此狀內于帶中俠惡識非嚴退還歸不復前至朝覲外家太子父王名波斯匿與后末利駕乘導從詣祇樹園下車卻蓋免冠解劍屛拂脫屣除四種兵步涉小徑與末利俱五體投地首爲禮卻坐一面琉璃太子時歸還無所瞻睹問左右曰父王太后今爲湊曰造佛
태자는 이 말을 듣자 솔깃하여 무장을 풀지 않은 채로 정사(精舍)로 가서 “바로 지금이 절호의 기회로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태자는 좌우[翼從]를 핍박하여 왕의 근신(近臣) 5백여 인을 단번에 섬멸하였으며, 왕의 관과 머릿수건[幘]과 일산ㆍ칼ㆍ불자(拂子)ㆍ옷ㆍ수레와 모든 장식을 버렸으나 아무도 왕께 아뢰는 이가 없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왕과 왕후를 위하여 ‘세상이란 덧없는 애욕이 모였다가 헤어진다’는 구절을 설하셔서 왕은 물러나지 않는 믿음[不退轉]을 세웠으며, 왕후는 도의 자취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경을 설해 마치시자 왕은 절하고 물러났는데, 돌아와서 보니 받드는 신하[侍輔]가 보이지 아니했으며, 넘어진 시체가 낭자하였다. 다만 왕의 의관(衣冠)과 두 사람만이 화(禍)를 면하여 나무 사이에 도망해 숨었다가 왕과 만났다.
왕은 물었다.
“모든 신하들은 지금 다 어디 있느냐?”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태자께서 거느리고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019_0891_b_13L太子聞問欣率所領復解嚴遂至精舍宜知是時於是太子逼害翼從王之近臣五百餘人一時夷滅卻王冠幘蓋劍拂履服乘諸飾外無白者於時世尊爲王及后說世無常愛欲合會別離法句王立不退轉后得睹道迹佛說經已王稽首退不見侍輔而僵尸狼藉唯王衣冠二人得免逃入樹閒還與王遇王問之曰群僚所在二人答曰太子率勒所統脅將還宮
019_0891_c_02L왕은 말리에게 말하였다.
“자식이 불순(不順)해서 반역함이 이러하오. 이럴 줄 평소에 알았던들 나라를 정사(精舍)에 바침으로써 난을 피하였을 터인데.”
좌우에 있던 족성들이 왕과 왕후의 몸이 유약(柔弱)하여걸어갈 수 없음을 민망하게 여기어 수레에 태워 더럽고 험한 곳을 건네주었으므로 왕은 드디어 성문에 도착하였다.
앞서 태자는 5백 인을 문에 배치하여 지키게 하고 수문장[門監]에게 명하였다.
“만약 부왕이 오거든 들어오게 하지 말며, 만약 왕이 말하기를, ‘들어갈 수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가느냐?’고 하거든, 대왕에게 명령하여 경계를 벗어나라고 하라.”
이때 바사닉왕은 게송으로 탄식하였다.
019_0891_b_23L王謂末利子造不順謀逆如斯素知此吾當避以國付精舍左有族姓愍王及后體柔狀樂不堪步濟以車乘弊陋難處遂升進邁至于城門先時太子列五百人置門鎭衛勅門監曰若父王來勿聽使入王曰若不得入吾將焉如大王當令出境王波斯匿涕泣哽以偈歎曰

진실하도다, 세존의 가르침이여.
말씀이 자세하고 요긴하여라.
흉하고 쇠함 귀하고 천함
일체가 상주(常住)함이 없구나.
019_0891_c_08L誠哉世尊教
所演審而諦
興衰與貴賤
一切無常住

차라리 계율을 지키고 도를 생각하여
두터운 녹(祿)을 탐하지 않고
요행히 설법하심 들어
억(億)의 국토 원하지 않으리.
019_0891_c_10L寧守戒念道
不貪厚俸祿
僥聞講法會
不願億國土

왕은 나라를 의지해 뜻을 함부로 하며
더러움을 탐하고 즐김을 서두르다가
법 듣고 해탈 입으매
번뇌와 괴로움 그 때문에 사라졌네.
019_0891_c_11L王據國恣情
饕穢遑所欲
聞法蒙解脫
塵垢用消除

그때에 이것을 본 이가 무수한 사람이었으며, 왕의 탄식을 듣고 8백 사람이 큰 도의 뜻을 내어 물러나지 않는 믿음을 얻었다. 그러나 왕은 근심하여 마음에 즐거워하지 아니했다. 이에 왕후 말리가 왕께 아뢰었다.
“근심하지 마옵소서. 함께 저의 부왕의 나라에 가시면 됩니다.”
그들은 곧 출발해서 일곱 날 일곱 밤 만에 가유라위의 두살(兜隆)마을에 도착했으나 어두워서 문이 닫혔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주리고 목말랐으나 갈래야 갈 데가 없고 구걸할래야 구걸할 데가 없었으므로 물가로 가서 나물 씻는 이에게 무우를 얻어먹었는데, 배가 팽창하여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다.
019_0891_c_12L爾時觀者無數千人聞王歎音八百人發大道意皆立不退轉憂色不悅王后末利白王曰幸勿愁憒可共俱逝還我父國卽便進發七日七夜迦維羅衛兜薩聚値冥門閉亦不得各共飢渴無所向仰求乞無地於水傍人洗菜處得逬蘿蔔食之脹腹痛而薨
019_0892_a_02L이에 왕후는 비통해서 소리 높여 크게 울었다.
마을을 지키던 사람이 왕후에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왕후입니다.”
또 물었다.
“왕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왕후가 말하였다.
“오, 왕께서 물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마을지기는 곧 달려가서 여러 사이(舍夷) 귀족들에게 알렸다. 귀족들은 흉보(凶報)를 듣고 깜짝 놀라 곧 와서 부의(賻儀)를 내고 관을 기증하여 법대로 화장하였으며, 모두들 슬피 울어 애통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그때 귀족 구이(瞿夷)의 아버지인 석마남(釋摩男)은 여러 부호들과 함께 게송으로 탄식하였다.
019_0891_c_20L王后悲慟擧聲大哭聚者問曰何人乎吾王后也又問王爲在何乎后曰痛哉王薨水側守門者卽馳白舍夷諸貴姓貴姓聞奔波驚愕尋皆來出賵贈殯棺維如法咸皆號悼莫不摧感爾時族釋摩男者瞿夷之父也與諸豪右以偈歎曰
자식 있고 재물 있다 술렁대지만
내 자신이 내가 아닌데 아들ㆍ재물 어찌 있으랴.
어리석은 이는 높은 세력 끝이 있다고 믿지만
태자는 나라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리.
019_0892_a_04L有子有財思惟波波
我自非我何有子財
愚癡自怙豪尊有終
太子用國殪入地獄

석씨 귀족 250인은 깊이 무상(無常)을 생각해서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얻었고, 아직 출가하지 않은 5백 여인은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유리 태자는 부왕의 죽음을 듣자 곧 왕이라 칭하였는데, 외도인 태사(太史)가 띠 속에서 전날의 원한에 대해 기록한 글을 꺼내어 태자에게 보이자 이에 매우 성내고 분개하는 마음이 일어 네 군대[四種兵]를 소집하여 가유라위를 공격하였다.
019_0892_a_06L釋氏貴姓二百五十深惟無常得不退轉五百女人未出家者得不起法於是琉璃太子聞父王薨卽在殿稱制爲王異道太史出帶中書證案本狀記惡之忌聞之大怒心意憤踊召四種兵伐迦維羅衛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곧 정사(精舍)로부터 나오셔서 길가에 있는 바싹 마른 나무 밑에 앉으셨는데, 이때 태자의 군대가 그곳에 이르렀다. 유리왕은 멀리서 세존을 보고 곧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절하고 단정히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보리부차(菩提附差)ㆍ니구류(尼拘類)ㆍ필발(畢鉢)ㆍ우담발(優曇鉢)ㆍ살라(薩羅)ㆍ달라(怛羅)ㆍ건니사라(揵尼赦羅) 등 일곱 나무는 그늘이 있고 높고 크며 덕이 있고 무성하온데 어찌하여 버려두시고 마르고 가시 많은 나무 밑에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유리왕에게 대답하셨다.
“일곱 나무들은 그늘이 비록 무성하지마는 무성함이 어찌 영원하리요? 내가 가시나무에 앉아도 편안하게 여기니, 이는 친속(親屬)을 불쌍히 여긴 때문이오.”
019_0892_a_12L佛知其意精舍出止于路要坐於荄枯樹下須之頃太子軍至琉璃王遙見世卽便下象車稽首于地長跪問佛天中天有菩提附差尼拘類畢鉢優曇鉢薩羅怛羅揵尼赦羅有此七其蔭高大有德茂盛何因棄捨枯槁多刺樹耶佛告琉璃王雖有七樹蔭茂盛盛豈有常吾坐刺樹爲安隱用哀愍傷親屬故也
019_0892_b_02L왕은 생각하기를, ‘예전에 실은 비밀참서[秘讖]에 군사를 써서 정벌하다가도 사문을 만나면 그치라고 하였는데, 더구나 지금 부처님을 만났으니 어찌 나아갈 수 있으랴’ 하고는, 부처님 발에 절하고 곧 군대를 돌려 사위국(舍衛)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에 시자 아난과 역사(力士) 누유(樓由)는 세존을 모시고니구류원(尼拘類園)으로 돌아왔는데, 아난으로 하여금 자리를 펴게 하고 사부대중에게 알려서 모두 모이게 하셨다.
이때 불세존의 얼굴에는 광채가 없고 목에는 광명이 없었으며 의복도 빛깔이 변해 있었으므로 아난은 이를 관찰하고 앉아 옷과 가사를 바로한 뒤 오른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아뢰었다.
“세존을 모신 지 여러 해 동안 이 세 가지 변화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019_0892_a_21L王心念先古所載藏室秘讖用兵征旅遇沙門者轉迴軍還況今値佛焉得進稽首佛足卽便反旅還于舍衛來日未久侍者阿難力士樓由翼從世尊還尼拘類園令阿難敷座宣告四輩皆令集會時佛尊顏姿容無燿項無光明衣服變色阿難察坐已定則整衣法服右膝投地叉手白言侍尊積未睹三變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7일 뒤에 가유라위의 석씨 귀족들이 다 상하거나 죽음을 당하여 집안에 상(喪)을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대목건련(大目揵連)이 나와서 세존께 아뢰었다.
“그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의 신통력은 궁구한 바른 깨달음[正覺所究]입니다. 오른손으로 능히 사이국(舍夷國)을 번쩍 들어 공중에 두면 위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밑으로 땅에 이르지 못하리니, 유리왕이 죽이려고 한들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위덕(威德)이 족히 그러함은 알겠다마는 숙명(宿命)의 죄는 누가 대신 받느냐?”
019_0892_b_07L佛告阿難卻數七日維羅衛釋氏貴姓皆當傷斃現斯變爲中家持服故也大目揵連前白世尊是何足言我之神力正覺所究能以右掌擧舍夷國跳置空中上不至天下不至地琉璃王殺焉能得乎佛告目連知汝威德過足如斯宿命之罪誰當代受
또 말하였다.
“능히 쇠상자로 이 나라를 가리고 또 쇠발우로 덮어 모양이 드러나지 않게 하여 다른 곳에 옮겨 놓으며, 또 사방으로 수미산(須彌山)을 헤치고 들어가게 한 뒤에 다시 산으로 둘러서 안치하며, 또 깊이와 너비가 360만 리인 큰 바닷물 한가운데 이 나라를 띄우더라도 모든 인민들의 생각이 수선스럽지 아니하며, 또 이 나라를 수미산 꼭대기에 세워놓았다가 넘어뜨려도 조금도 상함이 없으며 또 밑으로 금강지(金剛地)의 끝에 빠뜨리고, 또 유리왕의 군대[四種兵] 속에 던지며 대철위산(大鐵圍山) 겉에 두어도 양쪽 원적들이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019_0892_b_14L又曰能以鐵文籠遮此國上又以鉢覆使無形候擲置他方異土又以四披須彌山南內著于山然後合之各得所安又大海水深廣之量三百三十六萬里我以此浮置中央令諸人民無往來想一以此國倚須彌山頂復能倒覆無毀害又下沒之金剛地際又打擲于琉璃王衆四種之兵置大鐵圍山使兩怨歒不相討伐
019_0892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세존은 네가 진실로 이 열 가지 위덕으로 능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사이(舍夷) 귀족들의 전생의 죄와 재앙은 누가 보상하고 대신 받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차라리 속임수를 써서 이 나라를 도와 편안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사이(舍夷) 사람들이 능히 마음을 함께하여 외적[外讎]과 왕래하는 인연을 갖지 않는다면 나라는 보존될 수 있다.”
태사가 왕에게 세 번 부추겨서 사이(舍夷)를 토벌할 때라고 하자, 왕은 이를 듣고 곧 성내어 군사를 일으켰다. 세존께서는 이를 아시고 다시 마른나무로 가셨으며 이렇게 하시길 세 번에 왕도 또한 세 번 모두 되돌아갔다.
019_0892_b_23L佛言善哉尊信汝此十威力能辦此擧舍夷貴宿世殃罪孰堪畢償而代受者難白佛寧有譎詭祐護此國令安隱佛言若舍夷人能同心不與外讎有往來緣國可全也太史三諫王宜用時進討舍夷王聞赫怒興軍勒衆世尊知之還坐枯樹如是至三王亦三還
그러나 네 번째 정벌에는 부처님께서 간섭[遂屬]하지 않으셨으므로 네 군대[四兵]의 정예병들은 사이국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석씨 호족들도 또한 많이 모여서 몰려나가 방어했다. 호족 중에 날래고 용감한 이들은 활을 잘 쏘았는데, 40리를 쏘는 이, 20리를 쏘는 이, 10리를 쏘는 이, 7리를 쏘는 이가 있어서 그 능력껏 쏘아서 과녁을 맞혔으니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다. 화살로 털 한 개를 능히 일곱 등분으로 끊을 수 있었고 떨어진 거리에 따라 모두 맞추었으며, 소리만을 듣고 활을 쏘아도 일찍이 실수[遺漏]가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어 유리왕의 군대를 활로 쏘았는데 번기를 뚫고 당기를 꺾고 깃대[杠]를 꺾었으며, 멍에[轅]를 부러뜨리고 말뱃띠[韅]를 끊었으며, 투구를 깨고 띠를 끊고 활과 활줄을 끊었으나, 코끼리ㆍ말ㆍ소들의 생명은 해치지 아니했으며, 귀고리ㆍ팔찌ㆍ반지ㆍ영락을 맞추면서 살갗은 맞히지 않았고, 구레나룻ㆍ털ㆍ좌우의 눈썹ㆍ속눈썹은 쏘아 없애면서 몸은 해치지 않았다.
019_0892_c_08L第四征時佛不遂屬精銳四品之兵到舍夷國界釋氏豪姓又亦多衆出而禦之族黨驍勇强盛善射射四十里者射二十里者十里者里者任其本德御飛破初箭不虛發能析一髮以爲七分去有里數射盡中尋聲應弦曾無遺漏於是交戰琉璃王軍穿幡折幢裂蓋摧杠截轅韅攝決鎧帶韅絕弓弩弦不害象馬牛畜之命射珥臂指環釧瓔珞而不中肌翦除鬚髮左右眉鬚髮毛睫不害體
019_0893_a_02L이에 유리왕은 두렵고 놀라 신하에게 물었다.
“적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기에 화살이 날아와 상함이 이러하냐?”
“40리ㆍ20리ㆍ10리이고, 가까운 데는 7리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자 더욱 두려워 마음이 편안치 못하였으므로 적군을 물리치려고 하다가 두려워서 되돌아왔다.
그때 태사가 간하였다.
“대왕은 두려워 마시고 물러나지 마시옵소서. 사이국의 인민은 모두 부처님의 계율을 받드는 청신사(淸信士)들로서 자비롭고 어질기 때문에 화살로써 겁을 줄 뿐이지 사람을 해칠 뜻은 없으며, 차라리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면 상하였지 산 목숨을 해치지 아니합니다.그러하니 다시 진(陣)을 정비하고 마음을 합쳐서 나아가 공격하고 방비를 굳게 하면 승리는 멀지 않을 것입니다.”
019_0892_c_19L琉璃怖駭問臣下曰敵去此幾何而箭所至傷毀若茲答曰或四十二十里十里近者七里王聞加悸不能自寧將破敵軍卽悸退還太史諫曰大王莫懼愼無敗卻舍夷人民奉佛戒爲淸信士慈仁不殺以箭恐無傷害意寧自喪身不夭生命更整陣倂心撲討將牢持重剋捷不久
모든 신하들은 아뢰었다.
“적군의 활쏘기를 관찰하여도 파묻혀 있고 멀어 보이지 않으니 힘으로는 맞설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는 아마도 패전하여 저희들을 모조리 죽일 것입니다. 적의 화살은 당할 수 없으니 그냥 두고 출전하지 마십시오. 태사의 전략은 따를 수 없습니다.”
모두의 마음은 흔들렸으며 도망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왕은 크게 분노하여 독촉하여 진격하였으며, 사이국의 군중들은 달아나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켰다.
성을 포위한 지 7일이 되자 나아가고 물러남을 보고 알아서 이들을 회유하여 꾀어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안을 향하여 외쳤다.
“이제 항복하라. 만약 나와서 항복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을 남김없이 멸하겠다.”
019_0893_a_03L諸臣啓曰察敵軍射陷遠無形非力所距懼被摧折永令臣等爲糜戮之慮箭不可當置時據安小史之謀足專從各各心動志在逬徂王大奮催勅進戰舍夷外衆奔走保城門自固列陣圍繞至于七日示悟去招懷誘納唱令內寇宜時歸命不出降殄滅爾類
석씨들은 함께 의논하였는데 마땅히 굳게 성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와 성문을 닫고 이마를 조아려야 한다는 견해, 또는 몰래 숨어 도망해야 한다는 견해가 난무하여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산가지[籌]를 각자에게 나누어 주고서 이를 거두어서 중의[衆心]를 결정키로 하였다. 그 결과 산가지를 받은 이는 많았고 받지 않은 이는 적었으므로 소수가 다수를 따랐다.
이에 문을 열고 악(惡)을 도와 화(禍)를 이루었으니, 안과 밖이 서로 응하여 적으로 하여금 침범을 하게 하였다. 적들 가운데 선(善)을 권하는 이가 적었으므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성을 지키던 근위병 5백 인을 죽였다.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을 베었으며, 귀족 3만 인을 묶어 산 채로 땅에 묻고 머리만 나오게 하고는 코끼리 떼들을 채찍질하여 발로 밟아 죽인 뒤에 소에 쟁기를 메어 그 머리를 밭을 갈듯 갈았는데 이러한 참혹한 일을 당한 이는 모두 수다원(須陀洹)들이었다.
019_0893_a_11L釋氏共議當堅城守禦當閉門稽顙當密潛奔竄躊躇狼狽則各賦籌驗定衆心受籌者多不受者少以少從多開門助惡成禍內與外應欲令敵勝勸善者少得開門入入挌殺門衛五百人斬害不貲生縛貴姓三萬人埋著于地但令頭驅迫群象比足蹈殺然後駕犂而耕其首値此酷者皆須陁洹
019_0893_b_02L석마남은 바사닉왕의 옛 친구였는데, 그는 인민들에게 말하였다.
“무상(無常)과 괴로움을 잘 관(觀)하시오. 전생의 죄는 갚아야 하니 원한은 품지 마시오. 살다가는 곧 죽고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없어집니다.”
도끼로 다섯 갈래로 찢기는 고통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슬피 탄식하였다.
“먹은 복이 같은 때이더니 화를 받는 것도 한 곳이구나.”
호족(豪族) 7만여 사람이 다시 사로잡혀 목에 쇠사슬이 채워졌고, 귀족 여인 천 사람이 사슬로 엮여 줄줄이 길가에 세워졌으며,귀족의 소녀와 어린애들은 울타리에 세워져 사살되었다.
019_0893_a_19L釋摩男波斯匿之舊好也自謂國人諦觀無常苦毒之對宿罪當償勿懷怨恨生現尋死存者忽終若干之痛斧解五杌喟然悲歎食福同時而受禍一豪族七萬餘生復見生獲鐵鎖其貴姓女千人以鎖貫之羅豎道貴姓年少嬰兒置于格上而射殺
그때에 유리왕은 석마남과 여러 사람들이 모진 고통을 당함을 보고 신하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누구냐?”
대답하였다.
“석마남입니다.”
이때 석마남이 나와서 호소할 것이 있다고 말하였더니 왕이 말하였다.
“말하라.”
석마남은 말하였다.
“왕의 선대왕께서 대우하심이 융숭하사 아뢸 것을 받아들이셨으니 갖추어 아뢰겠습니다. 왕께서 사정[委曲]을 알아주시어 마음껏 말하게 하시려거든 노여움을 늦추고 무기를 거두어 함부로 살상하지 못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지금 못[池] 속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왕께 비밀한 뜻을 주어 대책을 보이겠으니, 내가 물에서 나오거든 다시 군사를 정리[燿兵]하십시오.”
왕은 속으로 ‘사람이 물속에서 오래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하고, 곧 그 말에 허락하였다.
019_0893_b_04L時琉璃王見釋摩男與衆辛苦謂臣曰是何人乎答曰釋摩男釋摩男之來欲有所乞王曰現之釋自陳王之大王存遇隆厚聽納所啓具以聞王識委曲恣其所說願節威唯㩲止兵無令放逸多所殘害我入池中斯須當還與王密議立見策也待我出水乃復燿旅王心與口言在水中勢不得久卽聽所白
석마남은 큰 액을 당하는 나라의 인민들을 위하여 물러나와 물속에 들어가 머리를 풀어 나무에 메고 스스로 물에 빠졌다. 오래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왕은 매우 괴이하게 여겨 드디어 곁에 있던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나무뿌리 밑에서 시체를 찾아내어 못가에 안치하였다.
왕은 매우 가엾은 마음이 생겼다.
“문족(門族)을 위하여 스스로 빠져 죽었으니 그 의리[義]가 저와 같구나. 나는 국왕으로서 작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어찌 싸움을 서둘러서 피해를 더욱 넓히겠는가.”
앞의 3억 인은 죽음을 당하였고, 다음 3억 인은 구원을 받아 달아나 목숨을 보존했으며, 또 3억 인은 집에서 공양하고 즐겁게 잔치하며 스스로 풍악을 즐기면서 바깥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액운을 당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고, 또한 몰려 달아나는 공포가 있는 줄을 듣지 못한 채 여느 때처럼 편안하였고, 조금도 대비함이 없었다.
019_0893_b_12L於是摩爲國人民遭大厄故辭行入池髮繫樹自沈于水良久不還王大怪遂遣左右往求料索於樹根下其尸喪出殯池側王甚憐之有慈哀用門族故自沈而死其義若茲爲國主不忍小忿豈當急戰使所害彌熾乎前三億人畢對倂命次三億人蒙自次之救得皆視息奔突走脫全濟命又三億人修家供養歡宴熙伎樂自娛不知外有倂命之厄不聞有奔波之怖安雅如常一無所
019_0893_c_02L유리왕은 석마남을 후히 장사하고 그 뒤를 잘 보살폈다. 왕은 사이국을 평정하며 이 나라에 다시 왕을 세우고 위안하기를 마친 뒤에 사위국으로 돌아갔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가유라위성에 이르러서 보니, 부상하거나 죽은 사람들이 많았으며, 또한 여인들을 보니 손ㆍ발ㆍ귀ㆍ코와 사지가 찢겼으며, 몸뚱이가 드러난 채 구덩이에 있어도 덮을 것이 없었다. 세간의 괴로움이란 실로 이와 같으며, 어질지 못한 사람이 서로 해치는 것이 매우 혹독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저 유리왕이 방자한 마음으로 저지른 악한 죄가 저렇듯 치성하구나. 7일 후에 지옥의 불이 일어 그를 태워 죽일 것이다. 그는 현세에서 죄를 지어 바로 현세에서 그 대가를 받는구나.”
019_0893_b_24L琉璃王厚葬摩男存寵其後王平舍夷更立長安慰畢訖還舍衛國與弟子至迦維羅衛見諸人民傷殘者多又察衆女人杌無手足耳鼻支身形裸露委在坑塹無用自蔽閒苦痛如是不仁之人相害甚酷言諸比丘彼琉璃王肆意惡逆罪盛乃爾卻數七日有地獄火當燒殺之現世作罪便現世受
태사(太史)도 점괘를 풀어 아뢰었는데 괴상하게도 부처님께서 예언하신 내용과 똑같았으므로, 왕은 겁이 나서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 머물러서 불을 피하려고 하였는데, 7일의 기간이 끝날 무렵에 물속에서 절로 불이 솟아나와 배와 왕을 태워 한꺼번에 재로 만들었다.
세존께서 모든 발가벗은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곧 위신의 힘으로 도리천(忉利天) 자감색(紫紺色) 궁전을 흔드시자 제석천과 왕비와 수야(首耶) 등 수없는 천자들이 각기 하늘 옷을 싸가지고 내려왔으며, 그것으로 벗은 채 고통을 당한 이들에게 입혀 주었다.
부처님께서 여러 여인들을 위해 게송을 말씀하셨다.
019_0893_c_09L大史奏讖怪與佛同王大恐怖乘舩入海冀得自免停住海中至于七日期盡水中則有自然火出燒舩及王一時灰滅世尊哀愍諸裸露者卽以威神動忉利天紫紺之殿帝釋及后首耶之等無數天子各齎天衣俱供來下以服覆遍裸露厄者佛爲衆女而說偈曰

그대들이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변괴가 이러하다.
묵은 업을 갚아 마치거든 새 업을 짓지 말라.
그리하면 나중에 길이 벗어나리라.
019_0893_c_16L諸仁目所見
現在變如是
畢故莫造新
後可長度脫
019_0894_a_02L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법을 설하시자, 와서 본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勒]ㆍ범지ㆍ거사ㆍ장자ㆍ인민 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5백 비구들은 번뇌가 다하고 뜻이 열렸으며, 5백 범지와 나머지 사람들은 나라가 황폐하고 죽고 상한 고통을 보고서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으며, 5백의 천자들은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세웠으며, 2백 아수라와 1천 용왕들은 다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일으켰다.또 구덩이 속에서 다섯 갈래로 찢김을 당한 벌거숭이 남녀들은 숨이 진 뒤에 도리천에 태어났으며, 1천5백 인은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1천 사람은 아나함과[不還果]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모두들 두루 듣고 나서 절하고 물러갔다.
019_0893_c_18L佛歎偈已復爲說法諸來觀者鬼神阿須倫迦留羅眞陁羅摩休勒梵志居士長者人民無央數千聞佛所五百比丘漏盡意解五百梵志餘現人見國荒毀傷殘之痛出家遵皆爲沙門五百天子立不起法忍二百阿須倫千龍王皆發無上正眞道意溝坑五杌裸形男女命盡得上生忉利天千五百人得見道迹千人得不還證佛說此已一切遍聞稽首而退
佛說琉璃王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