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아사세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조달(調達:提婆達兜)의 발에 절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조달에게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존자 조달에게 들으니, 저 사문 구담(瞿曇)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5역죄(逆罪)가 있는데 족성자(族姓子)거나 족성녀(族姓女)거나 이 다섯 가지 구원 못할 죄를 지으면 틀림없이 지옥에 들어가나니, 그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하면, 아버지를 죽이는 것, 어머니를 죽이는 것, 아라한(阿羅漢)을 죽이는 것, 대중 승단을 어지럽히는 것, 여래(如來)에게 악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구원 못할 죄이다. 만약 남자거나 여자거나 이것을 저지르면 지옥에 반드시 들어가느니라’라고 하셨으니, 조달이여, 이제 나는 직접 부왕을 죽였으니, 나도 또한 마땅히 지옥에 들어갑니까?”
이에 조달은 아사세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두려움을 품지 마소서. 무슨 재앙이 있으며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누가 재앙을 만들어서 그 갚음을 받으며, 누가 재앙을 만들기에 그 과보를 받아야 합니까? 대왕께선 또한 도리에 어긋나는 극악한 반역을 하지 않으신 것이요, 악을 저지른 자가 스스로 그 업보를 받은 것일 뿐입니다.”
019_0902_b_02L그때에 많은 비구들은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라열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마침 많은 비구들은 라열성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듣기를, “왕인 아사세왕이 조달에게 ‘존자 조달이여, 나는 들으니 사문 구담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섯 가지 구원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남자건 여자건 이 다섯 가지를 행하는 이는 반드시 지옥에 들어감이 틀림없다〉고 하셨다는데, 나는 무고하게 직접 부왕을 죽였으니, 나는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때 조달은 ‘대왕은 두려워마시오. 누가 재앙을 만들었으며, 재앙은 무엇에서 생겨납니까? 누가 악을 지어서 나중에 갚음을 받습니까? 왕께서는 재앙을 만들지 아니하셨으니, 재앙을 만든 이가 스스로 갚음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비구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인간에서 명이 끝나면 어느 곳에 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마갈국왕 아사세는 20겁(劫) 동안 3악도(惡道)에 나지 않으면서 천상과 인간을 돌다가, 최후에 몸을 받아 머리카락을 깎고 3법의(法衣)를 입고서 믿음을 굳게 하고 출가하여 도를 배워 벽지불(辟支佛)이 되나니, 이름은 무예(無穢)이리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갈국의 아사세는 마음을 발한 것이 성취되어 온갖 선이 크게 이르렀나니, 비구가 참고 견디어서 마음을 발한 것이 성취되면 지옥을 벗어나며, 만약 마음을 발한 것이 성취되지 못하고 인연이 성취(成就)되면 아직 지옥에 나지는 않지만 오히려 방편을 베풀어서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이때 그 비구는 곧 그날로 옷을 갖추어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저 마갈국의 궁문 밖에 나아갔는데, 이때 아사세왕이 이 비구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 문지기에게 명하였다. “석씨(釋氏) 비구 중에 존자 조달 외에는 들이지 말라고 이미 명령하지 않았느냐?”
019_0903_b_02L비구는 아사세왕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왕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마갈국왕이 비록 부왕을 죽이는 악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목숨이 다하면 박국(拍鞠) 같은 지옥에 나지마는, 지옥에서의 목숨이 끝나면 사천왕 궁에 태어날 것이며, 거기서 목숨이 끝나면 삼십삼천에 태어나며, 거기서 목숨이 끝나면 야마천ㆍ도솔천ㆍ화자재천ㆍ타화자재천에 차례로 태어나며, 거기서 목숨이 끝나면 다시 화자재천ㆍ도솔천ㆍ야마천ㆍ삼십삼천ㆍ사천왕 궁에 태어난 뒤에 다시 인간에 나되, 이와 같이 하여 대왕이 20겁 동안 3악도(惡道)에 나지 않고 인간에 유전(流轉)하다가 마지막으로 사람의 몸을 받으면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견고한 믿음을 갖고 출가해서 도를 배우다가 벽지불이 되는데, 이름은 무예(無穢)라고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대왕께서는 뿌리 없는 믿음을 얻겠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019_0903_c_02L비구는 이런 말을 하고는 곧 물러갔는데 이때 아사세왕은 이 비구가 말한 것을 듣고서 기뻐하지도 성내지도 않고, 또한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곧 왕자 기역(耆域)에게 말하였다. “기역이여, 사문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저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수결(授決)하시기를, 〈부왕을 죽여서 극악한 반역을 저질러 목숨이 끝나면 박국 같은 지옥에 태어나겠지마는, 거기에서 목숨이 끝나면 사천왕 궁ㆍ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자재천ㆍ타화자재천에 태어나며, 거기서 목숨이 끝나면 다시 화자재천ㆍ도솔천ㆍ야마천ㆍ삼십삼천ㆍ사천왕 궁에 태어나며, 거기서 목숨이 끝나면 인간에 태어나는데, 맨 마지막 몸을 받고는 머리를 깎고 3법의를 입고 믿음을 단단히 다지고 출가하여 도를 배워 벽지불이 되는데, 이름은 무예이리라〉라고 하셨다’고 하니, 너 기역은 그 사문 구담의 처소에 가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알아보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리고는 기역은 마갈국왕의 명을 받들고 곧 라열기성을 나와 영취산으로 가서 세존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는 엎드려 절하고 한쪽으로 가서 앉아 마갈국왕이 말한 것을 모두 여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기역이여, 불세존은 두 말이 있을 수 없으며, 말한 그대로이니라. 왜냐하면 기역이여, 그 아사세왕은 뿌리 없는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니라. 기역이여, 어떤 남자나 여자건 일체가 또한 이런 갈래에 있어 다를 것이 없느니라.”
때에 기역 왕자는 곧 여래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발에 절하고 물러와서 마갈국왕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는 곧 아사세왕에게 말하였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사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뿌리 없는 믿음을 얻은 이는 다 같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 원컨대 왕께서는 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처소에 가십시오.”
왕은 대답하였다. “기역이여, 들으니 그 사문 구담은 주술(呪術)이 있어서 능히 사람을 굴복시키며, 외도와 이단들로 하여금 누구나 그의 가르침을 받게 한다니, 이 때문에 나는 가서 사문 구담을 볼 자신이 없다. 그러니 기역이여, 생각해 보자. 그 사문 구담은 일체의 지혜를 가졌더냐? 사실 일체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안 뒤에야 내가 가서 사문 구담을 보겠다.”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기역이여, 마갈국왕은 머지않아서 내게 와서 뿌리 없는 믿음을 성취할 것이며, 내가 열반한 뒤에도 나의 사리(舍利)에 공양할 것이다.” 기역 왕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세존께서는 기역 왕자에게 미묘한 법을 설하시어 환희심을 내도록 하였다. 기역 왕자는 여래로부터 이런 깊은 법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발에 절하고 그 주위를 세 바퀴 돈 뒤에 물러갔다. 기역 왕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