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아난은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이 관을 지을 때, 공(空)을 관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몸이 비고[虛] 마음이 피로하면 마땅히 소(酥)와 모든 보약(補藥)을 먹어야 한다. 깊은 선정(禪定)에서 마땅히 보상관(補想觀)을 지어야 한다. 보상관이란, 먼저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가죽과 가죽을 서로 뒤집기를 마치 파초(芭蕉)와 같이 한다. 그런 뒤에 마음을 평안하게 하여 스스로 정수리 위의 생각을 연다.
또 마땅히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세상을 지키는 대범천왕(大梵天王)의 모든 하늘을 부지런히 정진시켜 금병(金甁)을 가지고 하늘의 약(藥)을 채우게 해야 한다. 석제환인은 왼쪽에 있고 세상을 지키는 모든 하늘은 오른쪽에 있으면서 하늘 약을 가지고 정수리에 붓고 온몸에 가득 차 넘치게 한다. 밤과 낮, 여섯 때[六時]로 항상 이 생각을 짓는다.
그때 석제환인은 매우 깊은 공(空)과 무아(無我)의 법을 설하고 행자(行者)를 찬탄하여 얼굴을 숙여 공경하고 절을 한다. 하늘 약을 먹은 까닭으로 정(定)에서 나올 때, 얼굴의 색이 고르고 빛나서 신체가 윤택함이 고유(膏油)를 바른 것과 같다.” 이 일을 보면 열여섯 번째인 4대관(大觀)이 끝났다고 이름한다.
019_0932_b_02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생각을 이루기를 마치고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하여 뜻을 머물게 하여 밖의 색을 관하게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일체의 색은 어느 곳으로부터 오는가 하는 이 관을 지을 때 밖의 5색(色)을 봄에, 5색의 빛[光]과 같이 자기의 몸을 둘러싼다.
이 관을 얻을 때, 사방에 자연히 네 마리 검은 코끼리가 나온다. 검은 코끼리가 크게 울부짖고 뭇 색을 짓밟아 없앤다. 이와 같이 뭇 색이 땅에 있는 것은 없어지고, 허공 중에서는 검고 누렇게 되어 사랑할 만하고 배로 더하여 또 항상 뛰어나다. 이때 큰 코끼리는 코로 나무를 감고, 네 마리 코끼리가 네 방면으로부터 이 나무를 뽑고자 하지만 움직여 넘어뜨리지 못한다. 또 네 마리의 코끼리가 있는데 코로 나무를 감지만 역시 움직이지를 못한다.
위와 같이 몸을 보하는 약의 법을 닦고 익혀 또 세 달을 지내고, 일심으로 정진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마음이 방일하지 않고, 받은 계를 범하겠다는 마음[犯心]을 일으키지 않고, 낮과 밤의 여섯 때에 모든 죄를 참회하라. 또 다시 몸이 무아(無我)이고 공(空)임을 사유함이 앞의 경계와 같고,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관하여 지극히 명료하게 하라.
이 생각을 이룰 때, 가슴의 뼈가 점차로 밝아짐이 마치 신구(神球)와 같아, 안과 밖이 비쳐 보인다. 마음 속의 독사는 또 다시 몸을 날려 공중에 올라 머물러 있고, 입 속에 불이 있고, 마니주(摩尼珠)를 삼키려 하지만 끝내 얻지를 못한다. 앞에서와 같이 잃어버려서 스스로 땅에 던지고, 몸과 마음이 미혹하고 번민한다. 사방을 바라봄에, 이때 모든 코끼리는 또 다시 분주히 다투어와서 나무 있는 곳에 이른다.
019_0932_c_02L그때 여러 야차와 나찰과 악한 짐승과 모든 용과 뱀들이 일시에 독을 내뿜어 검은 코끼리와 싸운다. 이때 검은 코끼리는 코로 나무를 휘감고 소리를 지르며 당긴다. 코끼리가 나무를 당길 때, 모든 용과 야차는 독을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와 싸우며 아예 쉬지를 않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신념처(身念處)와 관정(灌頂)의 장구(章句)를 잘 받아 지니어 삼가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고, 감로(甘露)의 법문(法門)을 열어 미래세의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널리 연설하여야 한다.” 이때 아난은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서 환희 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19_0933_a_02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생각을 이루고 나서, 또 마땅히 생각을 집중하고 사유하여 얼굴의 뼈를 분명히 관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 얼굴의 뼈를 봄에, 백옥(白玉)의 거울과 같다. 안과 밖이 모두 깨끗하고, 깨끗하기가 밝은 거울[明鏡]과 같다. 점점 넓고 커져서 온몸의 뼈를 봄에 희기가 파리경(頗梨鏡)2)과 같아 안팎이 모두 맑고, 일체의 온갖 색이 모두 그 안에 나타난다. 잠깐 동안 몸을 보아도 백옥(白玉)의 사람과 같다. 또 맑고 깨끗하기가 비유리(毘琉瑠)3)와 같아 겉과 안이 모두 비었다[空]. 일체의 온갖 색이 다 그 안에 나타난다.
또 자기의 몸이 백은(白銀)의 사람과 같다고 본다. 다만 얇은 가죽이 있는데, 그 가죽은 매우 가늘고 얇아서 천겁패(天劫貝)보다도 얇아 안팎이 서로 비쳐 보인다. 또 자기의 몸이 염부단금(閻浮檀金)4)의 사람과 같아 안과 밖이 모두 공함을 본다. 또 자기의 몸이 금강(金剛)의 사람과 같음을 본다.
이 땅을 볼 때, 검은 코끼리는 배(倍)로 많아지는데, 코로 나무를 휘감아 제 몸의 힘을 다하나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이때 모든 코끼리가 울부짖는 소리에 진동하며 대지(大地)가 몹시 놀라 움직인다. 대지가 움직일 때, 금강산(金剛山)이 아래쪽[下方] 땅으로부터 나와 행자의 앞에 머문다.
오직 5색의 물이 나무 위로부터 나와서 나뭇가지 위쪽으로 흐르고, 나무 끝으로부터 나뭇잎 사이 아래로 흐르고, 나아가 나무 줄기에도 역시 흘러 금강산 사이에 퍼지고 흩어져 가득 고여 대지에 가득 찬다. 금강지(金剛地) 아래와 나아가 금강산(金剛山)에 이 5색의 물은 5색의 빛을 나투고, 혹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 유행(遊行)하여 항상함이 없다.
019_0933_b_02L이 일을 볼 때, 모든 물의 광명은 다 기악(伎樂 : 音樂)을 울린다. 혹은 변화함이 있어 모양이 천녀(天女)와 같고 노래를 부르고 기예(伎藝)를 지으니 매우 사랑할[愛樂] 만하다. 이 여자는 단정하여 천상(天上)ㆍ인간과 비할 바 없고, 그 지어내는 즐겁고 묘한 음성은 도리천(忉利天) 위에서도 역시 이에 비할 바가 없다. 이와 같이 화녀(化女)가 여러 가지 기술을 짓는데 그 수가 억천만(億千萬)으로 모두 말할 수는 없다.
이 일을 볼 때, 삼가 따라 집착하지 말아라. 마땅히 마음을 집중하여 앞의 부정(不淨)을 염(念)해야 하다. 정에서 나올 때, 마땅히 지혜로운 이를 찾아서 매우 깊은 공(空)의 뜻을 물어야 한다. 이때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행자를 위하여 무아(無我)와 공을 설해야 한다.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관함에, 무명(無明)은 곧 나인가, 지어감[行]은 곧 나인가, 의식[識]는 곧 나인가, 이름과 물질[名色]은 곧 나인가, 6입(入)은 곧 나인가, 접촉[觸]은 곧 나인가, 느낌[受]은 곧 나인가, 애욕[愛]은 곧 나인가, 취함[取]은 곧 나인가, 존재[有]는 곧 나인가, 태어남[生]은 곧 나인가, 늙음과 죽음[老死]은 곧 나인가?
만약 눈이 곧 나라면, 눈 속에 실제[實]가 없다. 땅과 물이 합하고, 불을 빌어서 밝음을 만들고 바람을 빌어서 움직이고 돈다. 흩어져 없어지고 무너질 때는 까마귀와 까치가 모두 와서 이를 먹고, 곪은 곳의 구더기를 여러 벌레가 함께 쪼아먹는 다고, 이 눈을 분명히 관하여야 한다.
만약 마음이 곧 나라고 하면 바람의 힘에 굴려져[轉] 잠시도 정지해 있는 때가 없다. 또 여섯 용이 있는데 이 마음 속에 온통 무량한 독이 있어 마음을 근본이라고 한다. 이 여러 가지 독과 마음의 성품을 살핌에 모두가 공(空)을 쫓아 있고, 망상(妄想)으로 해서 나라고 이름한다.
나에게 속한 것이라 함은, 청색(靑色)은 곧 나이며, 황색(黃色)은 곧 나이며, 적색(赤色)은 곧 나이며, 백색(白色)은 곧 나이며, 흑색(黑色)은 곧 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 5색은 사랑하는 것을 쫓아서 있고 묶이고 집착해서 그를 따라 생하고, 음욕(婬欲)에 물들어 늙음과 죽음의 강[河]에서 나고, 은애(恩愛)의 도둑을 쫓아 일어나 어리석은 미혹을 쫓아서 본다.
이 사유를 지을 때, 스스로 몸의 뼈를 보면 밝고 깨끗하며 사랑할 만하다. 일체 세간에서 희유하게 보는 이 일이 모두가 그 안에 나타난다. 또 자기의 몸이 비유리(毘琉璃)의 사람과 같아 안과 밖이 모두 비었음을 본다. 사람이 유리당(琉璃幢)을 이고서 우러러 공중을 보면 일체의 모두가 보이는 것과 같다.
또 여러 여자가 있는데 고운 노래를 부르고 여러 가지 변화를 지어서 이 산을 지키고 돕는다. 만약 이 일을 보면 마땅히 일심으로 관하여야 한다. 여러 여자가 나타날 때, 마땅히 이 여자를 관하기를, 마치 그림의 병 속에 더러운 냄새가 가득한 부정(不淨)한 그릇과 같이 보아야 한다. 허망으로부터 나와서 오는 인(因)도 없고 가는 곳도 없다.
이 사유를 짓기를 마치고 일심으로 공(空)과 무아(無我)의 법을 분명히 관하여야 한다. 무아를 관할 때, 위쪽의 유리(琉璃)의 땅 끝에 네 큰 귀신이 있는데 자연히 와서 이르러 금강산을 짊어진다. 그때 모든 야차와 나찰은 또 이 귀신을 도와서 금강의 산을 깨트린다. 그때 금강의 산은 점점 기울고 무너져서, 많은 때를 지나서는 물이 깊어져서 모두 다하면 오직 금강(金剛)의 땅만이 있다.
019_0934_b_02L또 스스로 유리의 몸을 봄에 점점 더 다시 밝고 깨끗하며 안과 밖이 환히 통하여 모든 장애가 없다. 몸의 안과 몸의 바깥 중에 화불(化佛)이 가득하다. 이 모든 화불은 각각 광명을 놓으니, 그 빛은 미묘하여 억천의 해와 같이 밝고 빛나고 단엄(端嚴)하며 모든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하다. 그 중에 화불이 가득하다. 하나하나의 화불은 32상(相)과 80종수형호(種隨形好)가 있다.
하나하나의 상호(相好)는 각각 천의 빛을 발하고, 그 광명은 치성하기가 백천(百千)의 해와 달을 합한 것과 같다. 하나하나의 빛 사이에는 무수한 불(佛)이 있고, 이와 같이 점점 다시 증가하니 그 수를 알 수 없다. 하나하나의 불꽃 사이에는 다시 무수한 화불(化佛)이 배로 있고, 이 모든 화불은 빙글빙글 돌고 서서히 굴러서 유리(琉璃)의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스스로 자기의 몸을 봄에, 7보(寶)의 산과 같이 높게 드러나 보인다. 또 다시 장엄하게 나타나서 여러 보배로 된 수미산(須彌山)과 같고, 산은 비치어 나타나서 금강의 땅 위에 있다. 그때 금강의 땅은 또 다시 밝게 나타남이 염마천(焰摩天)의 자감마니주(紫紺摩尼珠)와 같다. 몸이 구르면[轉] 또 밝고 깨끗하여 무수한 모든 부처님의 광명과 같고, 화(化)하여 보배의 대(臺)가 되어 또 유리의 사람의 정수리로 들어간다.
굳게 둘러싼 모든 산[鐵圍諸山]5)을 봄에 깨끗하기가 유리와 같아 장애 하는 생각이 없다. 염부제를 봄에 산과 강과 석벽(石壁)과 수목(樹木)과 가시덩굴 모두가 곧 여러 미묘한 모든 화불이다. 마음이 점점 넓고 커져서 삼천대천세계를 봄에 허공과 땅은 일체가 모두 곧 미묘한 불상(佛像)이다.
019_0934_c_02L이때 행자는 오직 무아(無我)를 관하고, 삼가 마음을 일으키어 불상을 쫓아 따르지 말아야 한다. 또 마땅히 사유해야 한다. ‘내가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건대, 모든 부처님과 여래(如來)에게 두 가지 몸이 있다. 첫째는 생신(生身)6)이며, 둘째는 법신(法身)이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이미 법신이 아니며, 또 생신도 아니다. 이는 가상(仮想)의 견(見)으로서 허망으로부터 일어난다. 모든 부처는 오지 않고, 나도 또한 가지 않는다. 어찌 이곳에 홀연히 불상이 나오겠는가.’
이 말을 할 때, 다만 마땅히 스스로 자기의 몸의 무아(無我)를 관하고 삼가 모든 화불의 상을 쫓아 따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019_0934_c_07L說是語時,但當自觀己身無我,愼勿隨逐諸化佛像。
또 마땅히 분명하게 관하여야 한다. ‘지금 나의 이 몸은 전에 부정(不淨)하여 아홉 개의 구멍으로 고름을 흘리고 근육이 얽혀 있고 피를 발랐으며, 생장(生藏)과 숙장(熱藏)과 대소변(大小便)과 8만 호(戶)의 벌레가 있다. 하나하나의 벌레는 또 80억의 작은 벌레로 권속을 삼는다. 이와 같은 몸에 마땅히 무슨 깨끗함이 있겠는가.’
이 일을 볼 때, 마땅히 지혜로운 이를 찾아가 모든 괴로움의 법을 물어야 한다. 괴로움의 법을 듣기를 마치고 나서 이 몸은 모든 인연에 속하고, 마땅히 생(生)의 괴로움이 있음을 분명하게 관한다.
019_0934_c_14L見此事時,當詣智者問諸苦法。聞苦法已,諦觀此身屬諸因緣,當有生苦。
이미 생을 받고 나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고뇌(苦惱)하며, 은혜 입은 이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원수와 미워하는 이를 만나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가 곧 세간(世間)의 괴로움의 법이다. 지금의 나의 이 몸은 오래지 않아서 썩고 무너지며, 괴로움의 그물 속에 있으면서 생(生)과 사(死)의 종자에 속한다.
나의 몸은 바람의 칼[風刀 : 風大]인 여러 도둑을 따르고 쫓으니, 아비지옥의 사나운 불길이 치성하여 마땅히 나를 태운다. 낙타와 나귀와 돼지와 개의 모든 축생과 그리고 여러 짐승의 모든 나쁜 모양을 나는 다 받아 경험하였으니,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을 이름하여 ‘밖의 괴로움[外苦]’이라고 한다.
019_0935_a_02L‘지금 나의 몸 안에 4대(大)의 독룡(毒龍)과 무수한 독사(毒蛇)가 있다. 하나하나의 뱀은 아흔아홉 개의 머리가 있다. 나찰악귀(羅刹惡鬼)와 구반다(鳩槃茶)와 모든 악귀들이 나의 마음에 모여 머물러 있다.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은 극히 부정하다고 한다. 이는 폐악(弊惡)의 모임이며 삼계(三界)의 종자로서 싹이 끊이지 않는다.
어찌 지금 내가 부정함 중에서 깨끗한 생각을 내고, 허망한 것에서 금강의 생각을 짓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 불상(佛像)의 생각을 짓지 아니하겠는가. 일체 세간의 모든 행(行)의 성상(性相)은 모두 다 무상(無常)하여 오래지 않아서 마멸(磨滅)한다. 나의 이 몸과 같은 것은 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와 같아서 또 마땅히 썩고 무너진다. 이 허망한 상(想)으로 해서 부정(不淨) 중에서 거짓으로 깨끗함을 본다.’
이때 검은 코끼리는 앞에서와 같이 코로 나무를 휘감는다. 한량없는 모든 용과 모든 야차는 또 검은 코끼리와 싸운다. 미친 코끼리는 모든 귀신을 차고 밟으니, 땅에서 절름거리고 너무 괴로워 기절한다. 허공 중에 여러 귀신이 있는데 그 수가 매우 많고 손에는 칼[刀輪]을 잡고 검은 코끼리를 도와서 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
이와 같이 하기를 많은 때를 지나 나무의 한 뿌리가 움직인다. 이 나무가 움직일 때, 행자가 스스로 승상(繩床)7) 아래의 땅을 보면 자연히 진동한다. 날마다 이와 같이 해서 90일을 채운다. 이와 같이 해서 마땅히 좋고 맛있는 음식과 온갖 보약을 빌어 이로써 신체를 보(補)하고, 안온하고 단정하게 앉아 또 앞의 법과 같이 해야 한다.
019_0935_b_02L 앞의 경계와 같이 첫 경계로부터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관하여 왕복해서 반복하고, 열여섯 번의 반복을 거쳐서 매우 밝고 맑게 하라. 이미 밝고 맑게 하기를 마치고 나서, 또 다시 생각을 집중하여 몸의 고(苦)와 공(空)과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관하면 남김없이 모두가 공하다. 이 사유를 지을 때, 몸을 관하나 몸을 보지 아니하고, 나를 관하나 나를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관하나 마음을 보지 아니한다.
이때 홀연히 이 대지와 산하(山河)와 석벽(石壁)의 모두가 다 무(無)임을 본다. 정(定)에서 나올 때, 마치 어리석고 취한 사람과 같이 마땅히 지순한 마음으로 참회의 법을 닦고, 도지(塗地)에 예배하고, 이 관을 내버려야 한다. 예배할 때 아직 머리를 들지 않을 무렵, 자연히 여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여래는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법자(法子)에게 찬탄하여 말한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는 지금 모든 부처의 공법(空法)을 잘 관하였다.’ 부처의 모습을 봄으로써 마음은 크게 환희하고 다시 깨어남을 얻는다.
이때 존자 마하빈두로(摩訶賓頭盧)8)는 5백의 아라한과 함께 날아와 그 앞에 이르러 널리 위하여 매우 깊은 공법(空法)을 설한다. 5백의 성문비구(聲聞比丘)를 본 까닭에 마음이 크게 환희하여, 머리를 조아려 참회한다. 또 존자 사리불과 마하 목건련과 라야나(羅夜那)와, 그리고 1,250의 성문의 모습을 본다.
이때에 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나서, 다시 과거의 여섯 부처님의 모습을 본다. 이때 모든 부처님의 모습은 파리경(頗梨鏡)과 같이 밝게 보인다. 각각 오른손을 뻗어 행자의 정수리를 만지며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스스로 이름[名字]을 설하신다.
첫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비바시(毘婆尸)이다’ 하고, 둘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시기(尸棄)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셋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비사(毘舍)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넷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구루손(拘樓孫)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다섯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여섯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가섭비(迦葉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일곱째 부처님께서는 ‘나는 곧 석가모니 부처이며, 곧 너의 화상(和上 : 스승)이다. 너는 공법(空法)을 관하라. 나는 와서 너를 위하여 증명(證明)이 된다. 여섯의 불세존이 눈앞에 나타나 지견(知見)을 증명한다’라고 말씀하신다.
019_0935_c_02L부처님께서 이 말을 설하실 때,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보면 밝고 분명하다. 또 여섯 부처님을 보아도 밝고 분명하다. 이때 일곱 부처님께서는 각각 미간(眉間)의 백호(白豪)에서 대인의 상[大人相]의 빛을 발하고, 광명은 크게 커져서 사바세계와 유리(瑠璃)의 몸을 비추어 모두가 밝게 나타나게 한다.
이때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상(相)이 나타날 때, 몸의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대광명(大光明)을 놓으신다. 화불(化佛)이 무수하게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찬다. 땅과 허공은 순전한 황금색이다. 이 여러 세존(世尊) 가운데 날아다니시는 분이 계시고, 그 중에는 열여덟 가지 변화[十八變]9)를 짓는 분이 계시고, 그 중에는 경행(徑行)하는 분이 계시고,
그 중에는 깊은 선정(禪定)에 든 분이 계시고, 그 중에는 묵연(黙然)하게 안주(安住)하는 분이 계시고, 그 중에는 대광명을 놓는 분이 계시다. 오직 대화상(大和尙)인 석가모니 부처만이 행자를 위하여 네 가지 진리를 설하시고,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와 모든 법공(法空)의 뜻을 분별하신다.
과거의 여섯 부처님께서도 또 다시 12인연(因緣)을 분별하고, 혹은 또 37도품(道品)10)을 연설하여 거룩한 행(行)을 찬탄하신다. 이때 행자는 부처님을 보고 법을 듣고 마음에 환희가 생겨서 때를 맞추어 스스로 사유한다. ‘모든 불세존께서는 두 가지 몸이 있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은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보는 것이다. 여래의 해탈지견(解脫知見)11)의 오분법신(五分法身)12)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사유를 지을 때, 또 다시 겸손하고 정중하게 참회하기를 게으르지 않고, 밤과 낮, 여섯 때에 항상 삼매를 닦고, 마땅히 이 생각을 해야 한다.
019_0935_c_18L作是思惟時,復更懺悔慇懃不懈,晝夜六時恒修三昧,應作是念:
‘이 색신은 허깨비[幻]와 같고 꿈과 같고 불꽃과 같으며 불이 돌면서 이루어지는 불바퀴와 같고, 건달바(乾闥婆)의 성(城)과 같고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다. 이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13)을 꿈과 허깨비과 물거품과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다고 설하셨다. 이와 같은 모든 법 등을 나는 지금 하나하나 분명히 관하여 지극히 명료하게 해야 한다.’
019_0936_a_02L이 생각을 할 때, 화불(化佛)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또 다시 공(空)을 관하라. 공을 관함으로 해서 화불은 곧 사라진다. 오직 일곱 부처님만이 있다. 이때 일곱 부처님께서는 모든 성문(聲聞)과 권속(眷屬)과 대중과, 행자를 위하여 널리 37조도법(助道法)을 설하신다. 이 법을 듣기를 마치면 몸과 마음이 환희한다.
이 일을 볼 때, 대지는 잠시 움직이고, 성(城) 안의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것을 본다. 하나의 성을 보고 나서 또 두 개의 성을 본다. 점점 확대해서 1유자나(踰闍那 : 1由旬)를 본다. 1유자나를 보고 나서 또 다시 확대하여 널리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땅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움직일 때, 동쪽이 솟아오르면 서쪽이 내려앉고, 서쪽이 솟아오르면 동쪽이 내려앉으며, 남쪽이 솟아오르면 북쪽이 내려앉고, 북쪽이 솟아오르면 남쪽이 내려앉으며, 중앙이 솟아오르면 가장자리가 내려앉고, 가장자리가 솟아오르면 중앙이 내려앉는다. 이 땅이 움직일 때, 큰 나무의 뿌리와 나아가 금강의 세계[金剛際]를 본다.
019_0936_b_02L 그때 금강인이 금강저로 나뭇가지를 쳐서 꺾는다. 이 나무를 칠 때, 하나의 금강저 나아가 팔만 사천의 금강저가 나뭇가지를 사방에서 꺾는다. 이때 금강저의 끝에서 자연히 불이 나와 이 나무를 다 태운다. 오직 수심(樹心)만이 마치 금강추(金剛錐)와 같아 삼계(三界)의 꼭대기로부터 아래로는 금강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이때 행자가 이 관(觀)을 얻을 때, 정(定)에서 나와 편안하고 즐겁다. 정에서 나오고 정에 들 때, 마음은 항상 고요하여 근심과 기쁜 생각이 없다. 또 부지런히 정진하여 낮과 밤으로 쉬지 아니하고 정진한 까닭에 세존 석가모니께서 과거 여섯 부처님과 함께 마땅히 그 앞에 나타나 그를 위하여 매우 깊은 공삼매(空三昧)14)와 무원삼매(無願三昧)15)와 무작삼매(無作三昧)16)를 설하신다.
만약 부처가 멸도(滅度)한 뒤에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 감로관정성법(甘露灌頂聖法)을 듣고, 능히 모든 뿌리[根 : 五管]를 거두어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을 집중하여 몸은 나누어지나 마음은 흩어지지 아니함을 분명하게 관하며, 마음을 머물게 하기를 잠깐 사이[須臾間]만 지나게 해도,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고 나서 하늘 위에 태어남을 얻는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생각을 집중해 분명하게 관하여 온몸이 백골(白骨)임을 보면 이 사람은 목숨이 다하여 도솔타천(兜率陀天)에 태어나고, 미륵(彌勒)이라고 불리는 일생보처(一生補處)17) 보살을 만나게 된다. 저 하늘을 보기를 마치고 따라서 즐거움을 받고, 미륵이 부처를 이루면 맨 처음으로 법을 듣고서 아라한과(阿羅漢果)와 3명(明) 6통(通)18)을 얻고, 8해탈(解脫)19)을 갖춘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실 때,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과 호세천(護世天)과 무수한 천자(天子)들이 하늘의 만다라(曼陀羅) 꽃과 큰 만다라 꽃과 만수사(萬殊沙) 꽃과 큰 만수사 꽃을 가지고 부처님 위와 모든 대중에게 흩뿌리고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부처님을 찬탄하여 말하였다.
“여래께서 세상에 태어나심은 매우 희유합니다. 지금 능히 교만하고 사견(邪見)을 가진 가치라난타(迦絺羅難陀)를 항복하게 하시고, 또 미래의 음욕을 탐하는 중생을 위하여 감로의 약을 설하시고, 하늘의 종자를 증장(增長)시키어 삼보(三寶)를 끊이지 않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이 법을 기꺼이 설하셨습니다.”
이 관을 얻은 자를 십색부정(十色不淨)이라고 이름하며, 또 분별제충경계(分別諸蟲境界)라고 이름한다. 이는 최초의 부정문(不淨門)이다. 열여덟 가지 방편의 여러 경계의 성품이 있는데 다 말할 수는 없다. 삼매에 들 때, 자연히 얻는다. 이 열여덟 가지 일문(一門)의 관(觀)이 끝났다.
019_0937_a_02L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1,250인의 비구와 함께 계셨다. 이때에 모임 가운데 선난제(禪難提)라는 한 비구가 있었다. 깊은 선정(禪定)에 든 지 오래여서 이미 통달하고 아라한을 이루었으며 3명 6통과 8해탈을 갖추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하게 하고 손을 마주잡고 무릎을 길게 꿇고서[叉手長跪]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지금의 세간에 계시면서 일체를 이롭게 하고 평안하게 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으므로, 모든 사부중(四部衆)과 업장(業障)이 있는 자가 만일 생각을 집중할 때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은 번뇌와 일체의 죄와 돌길라(突吉羅)21)와 나아가 무거운 죄를 범하고서도 참회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어떻게 이 여러 죄상(罪相)을 없앱니까?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삿된 견해로 살생했으나 바른 생각을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어떻게 그 삿된 견해와 살생의 나쁜 번뇌장(煩惱障)을 없애겠습니까?”
019_0937_a_12L若復有人殺生邪見、欲修正念、當云何滅邪見殺生惡煩惱障?”
이 말을 하고 나서 큰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해설하시어 미래세의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생각을 얻게 하여 현인과 성인[賢聖]을 여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때 세존께서는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그 아들을 안위(安慰)함과 같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너의 자비를 행하는 마음은 자비와 함께 모두 생한다. 지금 대비(大悲)를 갖추면 무루의 근(根 : 五根)과 힘[力 : 五力]과 깨달음[覺 : 七覺支]과 도(道 : 八正道)를 성취한다. 너는 오늘 미래세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죄를 없애는 법을 물었다. 분명히 듣고 분명히 들어서 이를 잘 사념(思念)하여라.”
019_0937_b_02L이때 세존께서는 선난제(禪難提)에게 말씀하시고 아난에게 명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미래의 중생의 죄 많은 자들을 구해야 한다. 죄를 없애기 위한 까닭에 가르쳐서 염불(念佛)하게 하여라. 염불한 까닭에 모든 업장(業障)23)과 보장(報障)24)과 번뇌장(煩惱障)25)을 없앤다.
앞의 땅을 보기를 마치고서 왼쪽의 땅을 보고 또 밝고 깨끗하게 하고, 오른쪽 땅을 보고 또 밝고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뒤의 땅을 보고서 밝고 깨끗하게 한다. 사방의 땅을 모두 평평하게 하기를 손바닥과 같이 하고, 그 하나하나의 방면으로 각각 두 길의 땅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매우 밝고 깨끗하게 한다.
이 상(像)을 보기를 마치면 마땅히 정수리 위의 육계(肉髻)를 분명히 관하여야 한다. 정수리 위의 육계를 봄에, 머리털은 감청색(紺靑色)으로 하나하나의 머리털을 펴면 길이가 1길 3척이나 된다. 또 놓을 때에는 오른쪽으로 돌아 감긴다. 유리(瑠璃)의 빛이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 머문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구멍에는 하나의 털이 돌면서 나있고, 팔만 사천의 털구멍을 보되 모두가 명료하게 한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다음으로 상의 얼굴을 보면 상의 얼굴이 원만하기가 보름달과 같아 떨치는 빛이 더욱더 빛나서 분제(分齊)가 분명하다. 또 이마가 넓고 평평하고 단정한 미간(眉間)의 백호상(白毫相)을 봄에, 희기가 흰 눈[珂雪]과 같고, 파리주(頗梨珠)와 같으며, 오른쪽으로 돌아 있다[宛轉].
019_0937_c_02L또 상(像)의 코를 봄에 쇠를 녹여서 틀에 부어 만든 살촉과 같고 독수리 왕의 부리와 같아 얼굴을 대표한다. 또 상의 입술을 봄에 빛깔이 붉고 좋아 마치 빈바라(頻婆羅)의 열매와 같다. 다음으로 상의 치아를 관함에 입에 마흔 개의 치아가 있는데 희고 가지런하고 고르다. 치아 위에는 인(印)이 있고 인 가운데에서 빛을 내니, 마치 진주(眞珠)와 같이 희다. 치아 사이의 붉은 색은 붉은 빛을 흘러낸다.
다음으로 불상(佛像)의 팔을 봄에 코끼리 왕의 코와 같이 유연하여 좋아할 만하다. 다음으로 상의 손을 관함에 열 개의 손가락이 낮게 또는 높게 있어[參差] 그 자리[所]를 잃지 아니하고, 손은 쥐었다 폈다 한다. 손위에 털이 나 있는데 유리의 빛과 같고, 털은 모두 위로 뻗어 있다.
붉은 구리와 같은 손톱이 있고, 손톱 위는 금색이고 손톱 안은 붉은 색이다. 마치 붉은 구리의 산[赤銅山]과 자금(紫金)이 합한 것과 같다. 다음으로 합만(合曼)27)한 손바닥을 봄에 마치 거위의 왕과 같고, 펼 때는 곧 나타나는데 진주의 그물과 비슷하다. 손을 거두어 쥐면 보이지 않는다.
상의 손을 관하기를 마치고서, 다음으로 상의 몸을 관함에 방정(方正)하게 앉아서 안온하기가 진금(眞金)의 산과 같고, 나아가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며 복판에 앉아 있다.
019_0937_c_13L觀像手已,次觀像身,方坐安隱如眞金山,不前不卻,中坐得所。
또 상의 정강이를 봄에 사슴왕의 장딴지와 같이 고르고 원만하다. 다음으로 발의 복사뼈를 봄에 고르게 차올라 안상(安祥)하고, 발 아래는 연꽃 천 폭(千幅)이 갖추어져 있고, 발 위로는 털이 나서 감색(紺色) 유리와 같다. 털은 모두가 위로 뻗어 올라 있다. 발가락은 단정하고 가지런하나 고르지 아니한 중간을 얻었다. 발톱은 붉은 구릿빛이며, 발가락 끝에는 또 천 폭의 바퀴 모양이 있다. 발가락의 그물 사이는 마치 비단 무늬와 같아, 기러기 왕의 다리와 비슷하다.
이와 같은 모든 것과, 그리고 신광(身光)과 원광(圓光)과 정광(頂光)이 있다. 빛에는 화불(化佛)과 모든 큰 비구의 무리와 화보살(化菩薩)이 있다. 이와 같은 화인(化人)은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이 빛을 돌리면서 달린다. 이와 같이 하여 역관(逆觀)은 발로부터 거꾸로 관하여 나아가 정수리의 육계에 이르고, 순관(順觀)은 정수리로부터 발에 이른다.
019_0938_a_02L이와 같이 상을 관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하여 오로지 하나의 불상만을 본다. 하나의 불상을 보기를 마치고는 또 다시 마땅히 관하여 둘의 불상을 보도록 한다. 둘의 불상을 볼 때, 불상의 몸으로 하여금 유리(瑠璃)가 되게 한다. 여러 색의 빛을 내어 불꽃과 불꽃이 서로 이어 금산(金山)을 태우는 것과 같이 화상(化像)이 무수하다. 둘의 상을 보고 나서 또 셋의 상을 본다. 셋의 상을 보고 나서 또 넷의 상을 본다. 넷의 상을 보고 나서 또 다섯의 상을 본다. 다섯의 상을 보고 나서 나아가 열의 상을 본다.
열의 상을 보기를 마치고서 마음을 굴려 밝고 날카롭게 하여 염부제를 보고 사해(四海) 안에 가지런하게 한다. 범부의 마음은 좁아서 광대하게 할 수 없다. 만일 광대한 자가 마음을 거두어들여 돌아가게 하여 사해 안에 가지런하게 하고 철위산으로써 경계를 삼은 이 바다 안을 보면, 그 안에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의 불상(佛像)이 가득하고 모두가 분명하다. 하나하나의 상호(相好)에는 무수한 광명이 있는데, 만약 여러 광명에서 하나하나의 경계가 잡되고 더럽고 깨끗하지 못함을 봄은 죄의 과보로 얻은 것이다.
만약 분명해지지 않으면 또다시 참회하고, 모든 고역(苦役)을 치르고 그렇게 한 뒤에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앞에서와 같이 상을 관하여라. 모든 불상을 보면 신색(身色)이 단정하고, 32상을 모두 다 구족하고, 사해(四海) 안에 가득하여 모두가 꽃 위에 앉았다. 앉은 상을 보기를 마치고 또 다시 생각[念]하여라.
019_0938_b_02L이 생각을 하고 나서 또 다시 참회하라. 이미 참회하기를 마치고서 앞에서와 같이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생각을 집중하여 상을 관하여라. 상을 관할 때, 여러 앉은 상을 보면 일체가 모두 일어나는데 큰 몸으로 1길 6척이다. 방정(方正)하여 기울지 않고 몸의 모양은 광명을 모두 다 구족하였다. 상이 서있는 것을 보고 나서 또 상이 가는 것을 본다. 발우를 들고 석장을 지녔으며 위의(威儀)는 교화의 집[庠序]29)이다. 모든 하늘과 사람의 무리가 또 모두 둘러싼다.
허공 중에서 동쪽에 솟고 서쪽에 숨으며, 서쪽에 솟고 동쪽에 숨으며, 남쪽에 솟고 북쪽에 숨으며, 북쪽에 솟고 남쪽에 숨고, 복판에 솟고 가장자리에 숨고, 가장자리에 솟고, 복판에 숨으며, 위에 솟고 아래에 숨고, 아래에서 솟고 위에 숨으며,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마음대로 자재한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세존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모든 비구를 가르쳐 오른쪽 옆구리를 붙이고 눕게 하였다. 나는 지금 또 마땅히 모든 상이 눕는 것을 관하리라.’
019_0938_b_14L見此事已,復當作念:‘世尊在世,教諸比丘右脅而臥。我今亦當觀諸像臥。’
그리하며 모든 상(像)을 생각하여 보되, 승가리(僧伽梨)를 접어서 오른쪽 팔꿈치를 베게하고 오른쪽 옆구리로 눕고, 옆구리 아래에 자연히 금색의 상(床)이 생기고, 금광전단(金光栴檀)과 여러 가지 색의 온갖 묘한 연꽃으로 자리를 삼고, 위에는 보배의 휘장이 있는데 여러 가지 영락(瓔珞)을 드리웠다.
019_0938_c_02L누워 있는 상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생각을 해야 한다.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이름하였다. 오직 홀로 중생을 교화하시고, 이 세상에 49년 머물러 계시다가 대열반(大涅槃)에 들어 반열반(般涅槃)하셨다. 마치 장작이 다하여 불이 없어짐과 같이 영원히 멸하여 남음이 없다.’
부처님께서 선난제(禪難提)에게 말씀하시고, 또 아난에게 명하셨다. “부처가 멸도(滅度)한 뒤, 만약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로서 참회하고자 하는 자와 죄를 없애고자 하는 자는 부처가 비록 있지 않아도 생각을 집중해서 형상을 분명히 관하면 모든 악의 죄업은 속히 청정해짐을 얻는다.
이 상(像)을 관하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마땅히 관하여야 한다. 상의 배꼽으로부터 곧 하나의 광명을 놓는다. 그 광명은 금색으로서 나뉘어서 다섯 갈래가 되니, 하나의 광명은 왼쪽을 비추고, 하나의 광명은 오른쪽을 비추고, 하나의 광명은 앞을 비추고, 하나의 광명은 뒤를 비추고, 하나의 광명은 위를 비춘다. 이와 같은 다섯 광명의 광명마다 그 위에 모두 화불이 있다. 부처의 모양은 차례로 허공 중에 가득 찬다. 이 상(相)을 볼 때, 매우 명료하게 하여라.
또 화불(化佛)이 위로는 범천(梵天)의 세계에 이르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함을 본다. 삼천대천세계 중에서 금색의 광명은 자금산(紫金山)과 같고 안과 밖이 막힘이 없음을 본다. 이 일을 볼 때, 마음과 뜻이 상쾌하여[快然] 앞의 좌상(坐像)을 봄에 부처님의 진영(眞影)과 같다. 부처님의 모습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생각[念]을 지어야 한다.
‘이는 곧 모습일 뿐이다. 세존의 위력과 지혜는 자재하여 지금 이 일을 지으신다. 나는 지금 마땅히 참 부처님을 분명히 관하여야 한다.’
019_0938_c_22L‘此是影耳。世尊威力、智慧自在,現作此事。我今應當諦觀眞佛。’
019_0939_a_02L이때 이어서 부처님의 몸을 보면 미묘함이 맑은 유리와 같고, 안에 금강(金剛)이 있으며, 금강 안에 자금광(紫金光)이 있어 서로 빛을 발하여 온갖 좋은 모양을 이루고, 32상과 80종호가 마치 무늬[印文]와 같아 병연(炳然)30)하여 밝게 빛나니, 미묘함과 청정함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손에 조병(澡甁)31)을 들고 공중에 머물러 서 계신다. 병 안에 물을 채웠는데 감로(甘露)와 같다. 그 물은 5색으로서 다섯 가지의 광명이 청정하기가 마치 유리 구슬과 같아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매끄럽다. 행자의 정수리에 부어 몸 안에 가득하다. 행자 스스로 몸 안을 봄에 물이 닿은 곳에 80호(戶)의 벌레는 점점 말라 떨어진다. 벌레가 말라 버리고 나면 신체가 유연(柔軟)하여 마음과 뜻이 쾌락하다.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자비의 아버지이신 여래께서 맛이 훌륭한 감로(甘露)의 법수(法水)를 나의 정수리에 부어주신다. 이 관정법(灌頂法)은 반드시 정(定)하여 허(虛)하지가 않다.’
019_0939_a_09L當自念言:‘如來慈父以此法水上味甘露而灌我頂,此灌頂法,必定不虛。’
이때 또 다시 마땅히 상념(想念)을 일으켜야 한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설법해 주십시오.’ 죄업을 없애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이란 4념처(念處)를 설하고, 4정근(正勤)을 설하며, 4여의족(如意足)32)을 설하고, 5근(根)과 5력(力)을 설하고, 7각지(覺支)를 설하고 8성도(聖道)를 설하는 것이다.
이 서른일곱 가지 법을 하나하나 분별하여 행자를 위하여 설한다. 이 법을 설하기를 마치고서 또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를 관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 법을 가르치기를 마치고서 부처님을 보는 까닭에 묘법(妙法)을 들을 수가 있게 되어 마음과 뜻이 열림이 마치 물의 흐름에 따르는 것과 같아 오래지 않아서 역시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이룬다.
업장이 무거운 자는 부처님께서 입을 움직이시는 것을 보고서 설법을 듣지 않으니, 마치 귀머거리와 같아 듣고 아는 것이 없다. 이때 마땅히 또 다시 참회하여야 한다. 이윽고 참회하기를 마치면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부처님에 대하여 흐느껴 울고, 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온갖 공덕을 닦고, 그러한 뒤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019_0939_b_02L설법을 듣는다 하여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 세존께서 조병(澡甁)의 물을 행자의 정수리에 붓는다. 물의 색은 변하여 순수한 금강의 색이 되고, 정수리 위로부터 들어가 그 색은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으로 각각 달라진다. 온갖 더럽고 잡된 상(相)이 그 안에 나타난다. 물은 정수리 위로부터 들어가 곧 바로 몸 안을 내려가 발뒤꿈치로 나와서 땅 속으로 흘러든다. 그때 그 땅은 곧 변하여 광명이 되고, 크기가 한 길 가량이며, 내려가서 땅 속에 든다.
이와 같이 점점 곧고 깊게 들어가 물의 세계에 이른다. 물의 세계에 이르고 나면 마땅히 또 뜻을 지어서 이 광명을 따라 떠나야 한다. 또 이 물을 관함에 물의 아래는 순수하게 비어 있다. 마땅히 또 다시 관하여야 한다. 그 비어 있는 아래에 감색(紺色) 유리의 땅이 있고, 유리의 땅 아래에 금색(金色)의 땅이 있고, 금색의 땅 아래에 금강(金剛)의 땅이 있고, 금강의 땅 아래에 또 허공이 보인다. 이 허공을 봄에 활연하여 큰 허공은 모두가 소유함이 없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마음을 거두어들여 앞에서와 같이 하나의 불상을 관하여야 한다. 이때 저 부처의 광명은 더욱더 빛나니, 모두 설할 수가 없다. 또 조병(澡甁)의 물을 들어 행자의 정수리에 붓는다. 물의 모양과 광명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일곱 번을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관불삼매(觀佛三昧)의 관정법(灌頂法)을 잘 받아 지니어 미래세의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널리 분별하여라.”
019_0939_b_17L佛告阿難:“汝好受持此觀佛三昧灌頂之法,爲未來世一切衆生,當廣分別。”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실 때, 존자 선난제와 모든 하늘의 무리와 1,250의 비구는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는 오늘 모든 중생으로서 마음이 흩어진 많은 자를 위하여 죄를 없애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이시여, 다시 감로(甘露)를 여시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께서 멸하신 뒤에 열반의 길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앞의 법과 같이 다시 골인(骨人)을 짓게 하여 교연(皎然)하여 크게 희게 함이 마치 설산(雪山)과 같아야 한다. 또 마땅히 생각을 집중해서 뜻을 머물게 하여 배꼽 속에 있게 해야 한다. 혹은 허리 속에 두고, 숨이 들고나는 것을 따른다. 하나를 세고 둘을 따르며, 혹은 둘을 세고 셋을 따르며, 혹은 셋을 세고 넷을 따르며, 혹은 넷을 세고 다섯을 따르며, 혹은 다섯을 세고 여섯을 따르며, 혹은 여섯을 세고 일곱을 따르며, 혹은 일곱을 세고 여덟을 따르며, 혹은 여덟을 세고 아홉을 따르며, 혹은 아홉을 세고 열을 따른다.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숨을 따라서 반복하여 열에 이르고, 다시 세는 것을 버리고서 그친다. 이때 마음과 뜻이 고요하고 무위(無爲)하여 스스로 몸의 가죽을 보면 마치 자루와 같다.
019_0939_c_17L終而復始,隨息往反至十復捨數而止。爾時心意恬靜無爲,自見身皮猶如練囊。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몸의 뼈를 보지 못하고 마음의 곳[心處]을 보지 못하면, 이때 다시 마땅히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또 몸 안의 마음과 뜻과 신체의 지체와 마디를 백옥인(白玉人)과 같게 한다. 이윽고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생각을 집중해서 허리 속과 등골뼈의 큰 마디 위에 두고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019_0940_a_02L이때 또 자연히 몸의 위를 보아야 한다. 하나의 밝은 상(相)이 있는데 크기는 동전(銅錢)만 하다. 점점 확대하여 마가(摩伽 : 鯨)의 큰 고기와 같다. 두루 운집(雲集)하여 흰 구름과 비슷하다. 흰 구름 안에 흰 광명이 있는데 파리(頗梨)의 거울과 같다. 광명은 점점 커져서 온몸이 밝게 드러난다. 또 흰 광명이 있는데, 둥글고 정등(正等)하여 마치 수레바퀴와 같고, 안과 밖이 함께 밝아서 밝기가 해보다 뛰어나다.
이 일을 볼 때, 또 다시 앞에서와 같이 하나를 세고 둘을 따르며, 혹은 둘을 세고 셋을 따르며, 혹은 셋을 세고 넷을 따르며, 혹은 넷을 세고 다섯을 따르며, 혹은 다섯을 세고 여섯을 따르며, 혹은 여섯을 세고 일곱을 따르며, 혹은 일곱을 세고 여덟을 따르며, 혹은 여덟을 세고 아홉을 따르며, 혹은 아홉을 세고 열을 따른다. 혹은 단수(單數)로 하고, 혹은 복수(複數)로 하여 닦는데 길고 짧은 것은 뜻에 따른다.
이와 같이 생각을 집중해서 비밀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한다. 또 마땅히 생각을 집중해서 앞에서와 같이 다시 허리 속의 큰 마디를 관하여야 한다. 큰 마디를 관할 때, 마음은 정(定)하여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또 스스로 몸을 보면, 다시 점점 더 밝고 성하여 앞에서보다 뛰어남이 몇 배이며, 큰 동전만 하다.
또 이 밝음을 봄에, 가슴 앞에 있는 밝은 거울과 같다. 이 밝음을 볼 때,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해야 한다. 은근하고 부지런하여 멈추지 않으면 이윽고 이 밝음을 볼 것이며, 다시 더 더욱 늘어나고 치성하니, 모든 하늘의 보배 구슬을 가지고도 비유할 수가 없다.
019_0940_b_02L또 다시 정진하여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하고 쉬지 않으면, 광명이 구름과 같아 몸을 일곱 겹으로 휘감고, 그 하나하나의 광명은 변화하여 광명의 바퀴를 이룸을 본다. 광명의 바퀴 중에서는 자연히 12인연(因緣)의 근본 모양을 본다. 만약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 나태하여 가벼운 계율과 나아가 돌길라죄(突吉羅罪)를 범하면 광명을 보아도 곧 검고, 마치 장벽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부정관(不淨觀)의 관정법문(觀頂法門)은 모든 현성의 종자이다.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이와 우바새에게 말하여라. 만약 모든 현성의 법을 닦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모든 법의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인연(因緣)을 분명히 관하고, 수식(數息)33)을 배움과 같이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며, 마땅히 부지런히 계를 지니어 일심으로 거두어 지니어야 한다.
작은 죄 가운데도 마땅히 정중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참회하여야 한다. 나아가 작은 죄도 삼가 감추지 말아야 한다. 만약 죄를 감추면 모든 광명을 봄이 썩은 나무와 같다. 이 일을 볼 때는 곧 계를 범함을 안다. 또 다시 부끄럽게 여기고 참회하여 스스로 꾸짖어서 소도파(掃兜婆)를 땅에 바르고 모든 괴로운 일을 하고, 또 마땅히 스승과 어른과 부모를 공양하고 공경해야 한다. 스승과 부모를 부처님과 같이 생각하고 지극하게 공경하여라.
이와 같이 참회하고 공덕을 닦기를 마치고서 앞에서와 같이 숨을 세고서 다시 이 광명을 보면 밝고 빛나 사랑할 만하니, 앞에서와 같아 다름이 없다. 또 다시 마땅히 생각을 집중해서 허리 속의 큰 마디를 분명히 관하여야 한다. 생각과 마음이 안정하여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뜻이 없다.
만약 산란한 마음이 있으면, 다시 마땅히 스스로 꾸짖어 부끄럽게 여기고 참회하여야 한다. 이미 참회하기를 마치고서 다시 배꼽의 광명을 보면 일곱 가지 빛깔을 구족하여 마치 일곱 가지 보배와 같다. 마땅히 이 광명을 합하여 하나의 광명이 되게 하니, 선명하고 희어서 사랑할 만하다.
019_0940_c_02L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 앞에서와 같이 다시 생각을 집중해서 사유(思惟)하게 한다. 백골(白骨)의 사람을 관함에 희기가 흰 눈[珂雪]과 같다. 이미 백골의 사람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다시 가르쳐야 한다. 생각을 집중해서 뜻을 머물게 하여 골인(骨人)의 정수리에 두고, 골인의 정수리를 보면 자연히 광명을 발한다.
그 광명은 크게 치성하여 불의 빛깔과 같다. 길고 짧고 거칠고 가늘고 바르고 함께 찌르는 등, 그 정수리 위로부터 전도(顚倒)하여 아래로 드리워 정수리의 뼈 속으로 들어간다. 정수리의 뼈로부터 나와서 목의 뼈 속으로 들어간다. 목의 뼈로부터 나와서 가슴의 뼈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의 뼈로부터 나와서 다시 배꼽 속으로 들어간다. 배꼽 속으로부터 나와서 곧 등골뼈의 큰 마디 속으로 들어간다. 큰 마디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광명은 곧 사라진다. 광명이 이미 사라지면, 때를 응하여 곧 자연히 하나의 큰 광명 구름이 있는데,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보배의 꽃은 청정하다.
빛깔 중에 가장 훌륭한 것 안에 부처님이 한 분 계시는데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이름한다. 광명이 구족하여 32상(相)과 80종수형호(種隨形好)가 있다. 하나하나의 상호(相好)는 천의 광명을 놓는다. 이 광명은 크게 성하여 억천만(億千萬)의 해와 같이 밝게 빛나며 매우 뜨겁다. 그 부처님께서는 또 네 가지 진리의 법[四眞諦法]을 설하고, 광명의 모양은 병연(炳然)하며, 행자의 앞에 머물러 손으로 머리를 만진다.
화불(化佛)은 또 가르쳐 말한다. ‘너는 예전의 몸일 때, 탐욕과 진에(瞋恚)와 어리석음의 인연으로 모든 악을 따라 쫓아다녔고 무명이 가리웠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세세에 태어나고 죽는 몸을 받게 하였다. 너는 지금 마땅히 네 몸 안의 모든 병들고 피폐한 일과 몸밖의 모든 불의 일체가 변하여 없어지는 것을 관하여야 한다.’
이 말을 마치고서 앞에서와 같이 다시 부정관법(不淨觀法)을 가르친다. 몸의 모든 벌레 모두가 말라 떨어짐을 본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마땅히 불을 일으켜 모든 벌레를 태워 죽여야 한다. 벌레가 이미 죽으면, 다시 스스로의 몸을 봄에 흰 파리(頗梨)와 같아 자연히 선명하고 희다. 흰 뼈를 보기를 마치고 머리로부터 광명을 낸다. 그 광명의 크고 작고 성기고 가는 것은 창[矟]과 같다. 길이가 한 길 다섯 자이다.
019_0941_a_02L또 마땅히 생각을 지어서 머리를 거꾸로 향하게 해야 한다. 또 마땅히 뜻을 지어서 머리를 거꾸로 향하게 하고, 몸을 모두 거꾸로 하여 머리로 등골뼈를 버티고 배꼽의 큰 마디와 상대가 되게 한다.
019_0941_a_02L復當作念使頭卻向,復當作意使頭卻向,令身皆倒,以頭拄脊骨,對臍大節。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 또 마땅히 분명하게 관하여 백골의 사람으로 하여금 광명과 같은 빛깔이 되게 해야 한다. 이미 같은 빛깔이 되게 하기를 마치고 그 광명의 끝을 보면 여러 가지 빛깔의 열매가 있다. 이 열매를 보기를 마치고 다시 뭇 광명이 열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 흰 빛깔의 광명이 있는데 그 광명은 크게 성하여 흰 보배의 구름과 같다.
이 모든 골인(骨人)은 그 빛깔이 선명하고 희어서 광명과 다름이 없다. 또 모든 뼈가 꺾이고 부러져서 떨어지는 것을 본다. 혹은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자가 있고, 혹은 뼈마디가 각각 나뉘어 흩어지는 것이 있고, 혹은 온몸의 흰 뼈가 마치 사나운 바람이 비와 눈을 불어제치는 것과 같다. 모이고 흩어짐이 정해지지 않으니, 비유하면 번개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아, 따라서 나타나고 따라서 없어진다.
이 모든 골인은 땅에 떨어져서 무리를 이루어 마치 둔덕이 쌓인 것과 같고, 썩은 톱밥이 한 곳에 모여 쌓인 것과 같다. 행자가 스스로 둔덕 위를 관함에, 자연의 기운이 나와서 허공에 이르니, 마치 안개와 구름과 같다. 그 빛깔은 선명하고 희어서 허공에 가득 차고, 오른쪽으로 돌아 서서히 굴러서 또 다시 구름처럼 모여 한 곳에 함께 있다.
이 일을 볼 때, 또 마땅히 하나의 골인의 생각을 지어야 한다. 이 골인의 몸에 아홉 가지 빛깔이 있음을 본다. 아홉 개의 획(劃)34)이 분명하고 하나하나의 획 중에는 아홉 가지 빛깔의 골인이 있고, 그 빛깔은 선명해서 모두 다 말할 수가 없다. 하나하나의 골인은 또 마땅히 모두 신체를 구족하게 하여 앞의 골인 중에 나타나 방해하고 걸리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 관을 짓기를 마치고 또 마땅히 스스로 관하여야 한다. 하나하나의 빛깔이 마치 유리와 같아 모든 장애와 가림이 없고, 그 빛깔 중에 아흔아홉 가지 빛깔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빛깔에는 또 아홉 가지 빛깔의 수많은 골인이 있다. 이 여러 골인에게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그 성품은 같지 않아서 서로 방해하거나 걸리지 않는다.
019_0941_b_02L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의 악을 없애야 한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면 앞에 모인 광명의 구름은 마치 흙으로 빚은 그릇과 같이 와서 그 몸에 들어간다. 배꼽으로부터 들어가고, 이미 배꼽에 들기를 마치면 등골뼈 속으로 들어간다. 등골뼈에 들어가기를 마치면 스스로 자기의 몸을 봄에, 본래와 다름이 없고 몸이 회복[平復]35)되어 예전과 같다. 정(定)에 나오거나 정에 들어갈 때에 수식(數息)을 하기 때문에 항상 위의 일을 본다.
이 일을 볼 때,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해서 뜻을 머물게 하여 본래의 배꼽의 광명 속에 두고 마음으로 하여금 흩어지지 않게 하여라. 이때 마음과 뜻은 지극히 안온하다. 이미 안온하여지면, 또 마땅히 스스로 모든 성인의 해탈을 분명하게 살펴 분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때 또 마땅히 과거의 일곱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본다. 설법이란 네 가지 진리[四眞諦]의 설함이며, 다섯 가지 느낌과 쌓임의 공(空)과 나의 것이 없음을 설하는 것이다.
019_0941_b_10L爾時,復當見過去七佛,爲其說法。說法者,說四眞諦,說五受陰空無我所。
이때 모든 부처님은 모든 현성(賢聖)과 항상 행자(行者) 앞에 이르러 여러 가지 법을 가르치고, 또 공(空)ㆍ무아(無我)ㆍ무작(無作)ㆍ무원(無願) 삼매를 관하는 것을 가르치며 법자(法子)에게 말한다.
019_0941_b_12L是時諸佛與諸賢聖恒至行者前,教種種法,亦教觀空無我無作無願三昧,告言:
‘너는 지금 마땅히 분명하게 관하여라.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모두 다 무상하여 오래도록 설 수가 없고, 황홀하여 번개와 같아 즉시 변하여 없어진다.
019_0941_b_14L‘法子!汝今應當諦觀色聲香味觸,皆悉無常不得久立,怳忽如電卽時變滅,
또한 허깨비[幻]와 같고, 아지랑이[野馬]와 같으며, 더운 때의 불꽃과 같고, 건달바성(乾闥婆城)과 같으며, 꿈에서 보는 것과 같아 깨달으면 있는 곳을 알 수 없고, 돌을 쳐서 빛을 보는 것과 같아 잠깐 사이에 변하여 없어지며,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이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부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아 응답하는 자가 없다. 너는 지금 마땅히 이와 같은 관을 지어야 한다.’
019_0941_c_02L삼계(三界)는 허깨비와 같고 또 변화(變化)와 같다. 이로서 곧 일체의 몸 안과 몸밖을 봄에 공(空)하고 소유함이 없어 새가 허공을 날아 의지할 곳이 없음과 같고, 마음은 삼계를 뛰어 넘는다. 모든 세간을 관하면 수미산(須彌山)과 큰 바다도 모두가 오래도록 머무르지 못하고, 또한 환화(幻化)와 같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함에 몸의 모양[身相]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곧 이 생각을 한다. ‘세계는 무상하여 삼계는 불안하다. 일체는 모두 공하니 어느 곳에 몸이 있겠는가.’
따라서 눈의 상대되는 경계인 이 모든 색욕(色欲)과 그리고 모든 여인(女人)은 전도로부터 일어나서 삿되게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실로 이는 빠르게 썩고 무너지는 법이다. 무릇 여색(女色)은 마치 가쇄(枷鎖)36)와 같아 사람의 의식과 정신을 피로하게 한다. 어리석은 지아비는 사랑하고 집착하여 싫어하고 만족함을 모르며, 스스로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수갑을 면하지 못하고 가쇄(枷鎖)를 끊지 못한다. 행자는 이미 법상(法相)을 알고 법의 공적(空寂)함을 안다.
019_0942_a_02L이와 같이 생각하기를 마치고, 다시 일체를 관하면 모두가 공적(空寂)하다. 이 모든 음욕(淫欲)과 모든 색정(色情)의 양태(樣態)는 모두가 5음(陰)과 4대(大)로부터 생겨난다. 5음은 주인이 없고 4대는 나[我]가 없고 성품과 모양은 함께 공한데 무엇을 연유해서 있겠는가.
일체의 번뇌[結使]는 마치 수많은 물고기가 다투어 쫓아가다가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짐과 같고, 무명과 늙음과 죽음은 지혜의 불을 태우는 것이다. 색을 관함에, 잡되고 더럽고 추악하며 깨끗하지 못하다. 마치 환혹(幻惑)과 같아 잠시도 멈추는 일이 없다. 길이 색(色)에 물드는 것을 여의고, 색에 묶이지 말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서 음욕을 탐함이 많은 자가 있으면 먼저 부처를 관하게 하여 모든 죄를 여의게 하고, 그런 뒤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하여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한다.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숨을 세는 것[數息]이다. 이 숨을 세는 법은 곧 음욕을 탐하는 데 대한 약으로서 위없는 법왕(法王)이 행하는 곳이다. 너는 잘 받아 지니어 삼가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생각을 이루는 것을 스무 번째 수식관(數息觀)이 끝났다고 이름한다.”
이때 존자 아난과 선난제, 그리고 모든 비구는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서 환희 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19_0942_a_21L爾時尊者阿難,及禪難提幷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9_0942_a_23L如是我聞:
019_0942_b_02L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에 계시면서 여러 곳을 다니시며 교화하셨는데 다라(多羅) 마을에 이르셨다. 마을에 이르고 나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하고 돌아와서는 나무 밑에 머물러 발을 씻고 나서 의발(衣鉢)을 거두시고 니사단(尼師壇 : 坐具)을 펴고 결가부좌하셨다.
이때 무리 가운데 한 비구가 있었는데 가전연(迦栴延)이라고 이름하였다. 그에게 반직가(槃直迦)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그는 출가하여 8백 일의 많은 때 동안 하나의 게(偈)만을 독송하여 통달함[通利]이 없었다. 밤낮 여섯 때로 항상 이 말을 외우며,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여 수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만 이 말만 외워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이익 됨이 많았습니다. 하늘과 사람을 이롭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셨으며 널리 일체를 제도하셨습니다. 오직 저의 제자만이홀로 아직껏 은혜를 입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천존(天尊 : 世尊)께서는 저를 위하여 깨달음을 열어주시어 해탈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그 부처님은 세간에 나와 중생을 교화하고 사람을 제도함을 두루 마치고 반열반(般涅槃)에서 멸도(滅度)하셨다. 부처님 멸도 후에 한 비구가 있었는데,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 삼장(三藏)을 독송하면서 스스로 믿고 교만하여 산란하고 방일(放逸)하였다. 따라서 배우고자 하는 자가 있어도 허락하여 가르치지 않았다. 오로지 어리석음으로 해서 스스로 높이 받들고 정념(正念)을 닦지 않았다.
천상에 태어났다 하여도 천궁(天宮)의 광명과, 그리고 모든 공구(供具)까지도 모두가 검고 어두워 모든 하늘에게서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삼장을 독송했던 까닭에 천상의 목숨이 끝나고 염부제(閻浮提)에 태어나서 부처님 세상을 만날 수 있었으나, 전에 스스로를 높이 받들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만났다 하여도 법상(法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 마땅히 여러 가지 방편을 설하여 생각을 집중하는 법을 가르치리라.”
부처님께서 반직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늘부터 항상 조용한 곳에 머물러 일심으로 단정히 앉아 차수(叉手)하고 눈을 감고 몸과 입과 뜻을 거두어들여 삼가 방일(放逸)하지 말아라. 너는 방일함으로 인하여 많은 겁(劫) 동안 오래도록 괴로움을 받았다. 너는 나의 말을 따라서 모든 법을 분명히 관하여라.” 이때 반직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집중하였다.
하나를 보고 나서 다시 둘을 본다. 둘을 보고 나서 다시 셋을 본다. 셋을 보고 나서 다시 넷을 본다. 넷을 보고 나서 다시 다섯을 본다. 다섯을 보고 나서, 나아가 열을 본다. 열을 보고 나서 마음을 점차 확대하여 하나의 방안을 본다. 하나의 방안을 보고 나서, 나아가 하나의 천하(天下)를 본다. 하나의 천하를 보고 나서, 만약 넓으면 다시 거두어들여 돌이켜서 앞에서의 관과 같이 한다.
한 차례 관하기를 마치면 또 마땅히 생각[想]을 옮겨 생각[念]을 집중하고 코끝을 분명하게 관해야 한다. 코끝을 관하기를 마치고서 마음이 분산(分散)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분산되지 않으면 앞에서 뼈를 관함과 같이, 다시 마땅히 스스로 몸의 살과 가죽을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부모(父母)가 화합해서 부정한 정기(精氣)가 함께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이란 종자(種子)이니, 부정(不淨)하다.’
이 관을 지을 때, 만약 근성(根性)이 둔한 자는 한 달이 지나고 90일에 이르도록 이 일을 분명히 관하고, 그런 뒤에 그 쪽을 본다. 만약 근성이 날카로운 자는 한 생각[念]에 곧 본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허리 속의 큰 마디의 백골(白骨)을 관한다. 보기를 마치고서 곧 앞에서와 같이 마땅히 여러 가지 빛깔의 골인(骨人)을 관하여야 한다.
019_0943_b_02L이 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땅히 다시 자심관(慈心觀)38)을 가르쳐야 한다. 자심관이란, 자세히 설하면 자삼매(慈三昧)와 같다. 자심(慈心)을 가르치기를 마치고서 또 다시 백골을 관하게 한다. 만약 다른 일을 보아도 삼가 따라서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만 이 마음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하여 백골인(白骨人)을 흰 눈의 산과 같이 보아라. 만약 다른 일을 보고서 마음을 일으키면 없애기 위해 마땅히 이 생각을 해야 한다.
이때 반직가 비구는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서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관하여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하고 분명하게 하여, 때를 응하여 곧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얻고, 3명 6통과 8해탈(解脫)을 갖추고, 스스로 전생[宿命]을 생각하여 익힌 3장(藏)을 분명하게 하고 또한 그르침이 없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이 어리석고 교만한[貢高] 반직가 비구로 인해서 이 청정관(淸淨觀)의 백골법(白骨法)을 제정하시고, 부처님께서는 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이 반직가와 같이 어리석은 비구도 오히려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아라한을 이룬다. 하물며 어찌 지혜로운 자가 선(禪)을 닦지 않겠는가.” 이때 세존께서는 이 일을 보시고 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선(禪)은 감로(甘露)의 법이며 정심(定心)39)으로써 모든 악을 없앤다. 지혜는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고 길이 후유(後有 : 後生)를 받지 않는다.
019_0943_b_17L禪爲甘露法, 定心滅諸惡, 慧殺諸愚癡,
永不受後有。
어리석은 반직가(槃直迦)까지도 오히려 정심(定心)을 얻거늘 어찌 하물며 지혜로운 자가 생각을 집중하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지 않겠는가.
019_0943_b_19L愚癡槃直迦, 尚以定心得,
何況諸智者, 不勤修繫念。
019_0943_c_02L 이때 세존께서는 가전연에게 말씀하시고, 아난에게 명하셨다. “너는 지금 마땅히 부처님의 말을 받아 지니어 이 묘법(妙法)으로써 널리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만약 후세의 어리석은 중생과 교만하고 스스로 높이는 사악(邪惡)한 중생으로서 좌선을 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처음 가치라난타(迦絺羅難陀)의 관법(觀法)으로부터 선난제(禪難提)의 관상법(觀像法)에 이르고, 또 마땅히 이 반직가 비구가 관한 법을 배워야 하다.
그런 뒤에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하고 모든 백골을 보면 흰 눈[珂雪]과 같이 희다. 그때 골인은 다시 와서 몸으로 들어가고 모두 백골의 흐르는 빛이 흩어져 없어짐을 본다. 이 일을 보기를 마치면 행자는 자연히 마음과 뜻이 화평하여 기쁘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무위(無爲)하다.
정(定)에서 나올 때, 정수리 위는 따뜻하고 몸의 털구멍 속으로부터는 항상 여러 가지 향을 낸다.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도 항상 묘법(妙法)을 듣고, 이어서 또 스스로 보면 신체가 따뜻하며, 기쁘고 즐거워 쾌락하고, 얼굴의 모양이 빛나고 화평하며, 항상 적게 자고 몸에 괴로움과 병이 없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부처가 멸도(滅度)한 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서 흐린 세간 가운데서 정수(正受)41)의 사유(思惟)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처음 생각을 집중하여 부정(不淨)을 관하는 것으로부터, 나아가 이 법에 이른다. 이것을 난법(暖法)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이 법을 얻으면 스물한 번째 난법관(暖法觀)이 끝났다고 이름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번뇌[結使]의 상(相)을 분명히 관하여 처음 부정(不淨)으로부터 나아가 이 법에 이르면, 스스로 몸과 마음이 모두 다 따뜻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상속하여 모든 괴로움과 성냄이 없고, 얼굴의 빛이 화평하고 빛남을 깨닫는다. 이를 난법이라고 이름한다.
019_0944_a_02L또 다음으로 아난아, 만약 행자가 난법을 얻기를 마치면 다음으로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백골 사이에 있고 모두가 흰 빛이다. 흰 빛을 볼 때, 백골이 흩어져 없어진다. 만약 다른 경계가 지금 앞에 있으면 또 마땅히 마음을 거두어 잡고 다시 흰 빛을 관해야 한다.
몸의 털구멍 속에서도 또한 황금의 빛이 나오니, 속금(粟金)42)을 뿌리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이 안락하니, 마치 자금(紫金)의 광명과 같다. 다시 정수리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이를 정법(頂法)43)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행자가 이 관을 얻을 때 능히 정관(頂觀)을 얻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생각을 이루기를 마치면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해서 모든 백골을 관하여야 한다. 모든 흩어진 모든 뼈를 마치 바람이 눈을 불어 모아 두는 것과 같이 한 곳에 두고 자연히 쌓여서 희기가 설산(雪山)과 같게 하라. 만약 이 일을 보면 도(道)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해서 뜻을 머물게 하여야 한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함에 마치 풀 다발과 같다. 정에서 나올 때 또한 자기의 몸을 보면, 마치 파초와 같이 가죽과 가죽이 서로 겹쳤다. 또 마땅히 스스로 많은 파초의 잎이 마치 가죽 주머니와 같음을 관하여야 한다. 몸 안은 공기와 같아 역시 뼈를 볼 수 없다.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갈 때도 항상 이 일을 본다.
신체가 약하면 또 마땅히 다시 가르쳐서 스스로 몸을 관하게 하여라. 다시 모아서 하나를 이룸이 마치 마른 풀의 다발과 같다. 몸이 굳세고 단단함을 보고, 이미 굳세고 단단한 것을 보면 또 마땅히 타락죽[酥]을 먹어야 한다. 음식을 적당하게 조절하고, 그런 뒤에 몸을 관하면 도리어 빈 주머니와 같다.
불이 안에서부터 이 몸을 다 태운다. 몸을 다 태우고 나서 정에 들어갈 때, 항상 화광(火光)을 본다. 화광을 관하기를 마치고서 사방에 일체의 불이 일어남을 본다.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가도 몸은 뜨거워 불과 같고, 이 불은 팔 다리의 큰 마디에서 일어남을 본다. 모든 털구멍 속에서 불이 나온다. 정에서 나올 때도 역시 스스로 몸을 보면, 큰 불덩이와 같고 신체는 찌고 더워서 스스로 지탱하지를 못한다.
불이 타기를 마치면, 정에 들어갈 때에 몸을 관함에 몸은 없고, 몸이 불 때문에 남김없이 다 타버렸음을 본다. 불이 다 타고나면 자연히 몸 안에 나[我]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일체의 번뇌도 모두가 남김 없이 같으니, 모두 말할 수는 없다. 이를 화상진실화대(火想眞實火大)라고 이름하며, 스물네 번째 화대관(火大觀)이 끝났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화대무아관(火大無我觀)을 잘 받아 지녀라. 이 화대관(火大觀)은 지혜의 불이라고 이름하며, 모든 번뇌를 태운다. 너는 잘 받아 지니어 미래세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널리 펴고 연설해야 한다.” 이때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화대관을 얻기를 마치면, 다시 마땅히 생각을 집중해서 사유하게 하여야 한다. 코끝에 생각을 집중하여[繫念] 다시 ‘이 불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가’라고 관하게 하여야 한다. 이 불을 관할 때, 스스로 자기의 몸을 관하면 모두 내[我]가 없다. 이미 내가 없으면 불은 자연히 소멸된다.
또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 ‘나의 몸은 무아(無我)로서 4대(大)는 주인이 없다. 이 모든 번뇌와 그리고 번뇌의 근본은 전도로부터 일어난다. 전도(顚倒)도 또한 공(空)이니, 어찌하여 이 공법(空法) 중에서 삿되게 몸의 불을 보겠는가.’ 이 관을 지을 때, 불과 나를 구하고 찾을 것이 없다. 이를 화대무아관(火大無我觀)이라고 이름한다.”
019_0945_a_02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이 없어짐을 볼 때, 먼저 코에서부터 없어지고, 그런 뒤에 몸에서 일시에 함께 없어진다. 몸 안의 마음의 불인 여든여덟 가지 번뇌[八十八結]44)도 또한 함께 없어짐을 얻는다. 몸 안은 청량하여 조화롭고, 깊이 스스로 깨달아 분명하게 무아(無我)를 결정(決定)하고,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가도 항상 몸 안에 나의 아(我)가 없음을 안다. 이를 ‘멸무아관(滅無我觀)이 끝났다’라고 이름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마땅히 다시 관정법(灌頂法)을 관하게 하여야 한다. 관정을 관한다고 함은, 스스로 자기의 몸을 유리(琉璃)의 광명처럼 보고, 삼계(三界)를 뛰어난다. 진실한 부처[眞佛]가 있음을 봄에, 조병(澡甁)의 물을 정수리에 부어 물이 몸 안에 가득 찬다. 몸에 가득 차고 나면 팔 다리의 마디에도 가득 차고, 배꼽 속으로부터 흘러나와서 앞 땅에 있다. 부처는 항상 물을 붓는다.
이때 세존은 관정을 마치고서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는다. 배꼽 속으로부터 물이 나오니 마치 유리와 같다. 그 빛깔은 감(紺)유리의 광명과 같고, 광명의 기운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찬다. 물이 나와 다하고 나면,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원하오니 불세존께서는 다시 저를 위하여 관정해 주십시오.’
이때 몸은 자연히 공기와 같아 아주 크고 매우 넓어서 삼계를 뛰어남을 본다. 물이 정수리로부터 들어가는 것을 본다. 몸이 아주 커져서 물과 참으로 같아져서 물 속에 가득함을 본다. 또 스스로 배꼽을 보면 마치 연꽃과 같고, 샘이 솟아 흘러 나와서 그 몸을 가득 채우고 몸을 휘감으니, 마치 못과 같다.
019_0945_b_02L또 마땅히 생각을 일으키어 자기의 마음을 4대(大)의 독룡(毒龍)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자기의 마음 안이 마치 털구멍이 열림과 같음을 본다. 여섯 종류의 용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용에는 여섯 개의 머리가 있다. 그 머리에서 독을 내뿜으니, 마치 바람과 불과 같으며, 못 속에 가득한 연꽃 위에 있다. 하나하나의 연꽃의 광명은 용의 정수리로 흘러 들어간다. 광명이 정수리로 들어갈 때, 용의 독은 스스로 그치고, 오직 큰 물이 있는데 그 몸 안에 가득 찬다.
이 생각을 이룰 때를 관칠각화(觀七覺華)라고 이름한다. 이 상(想)을 본다 하여도 깊은 선정(禪定)에는 아직 통달하지 못한다. 또 마땅히 다시 앞에서와 같이 숨을 세는 것을 가르치고 마음으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여 아무런 생각이 없어 무념(無念)하게 해야 한다. 이 생각을 이룰 때를 사대상응관(四大相應觀)이라고 이름한다.”
이때 아난은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하여 뜻을 머물게 해서 수대(水大)를 분명히 관해야 한다. 털구멍으로부터 나와서 그 몸에 가득 차고, 정에서 나오거나 정에 들어도 몸을 보면 못과 같다. 그 물은 푸른[綠] 빛깔로서 이와 같은 푸른 물은 산꼭대기의 샘과 같아서 정수리에서 나와 정수리를 따라서 들어간다.
일곱 가지 꽃이 있는데 순수한 금강의 빛깔로서 금빛 광명을 놓는 것을 본다. 그 금색(金色)의 광명 속에 금강의 사람 이 있다.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앞의 여섯 마리 용을 친다. 또 많은 불이 용의 입으로부터 나와서 불이 온몸을 태우며 많은 물이 마르면 불이 곧 다하여 없어짐을 본다.
019_0945_c_02L또 마땅히 다시 생각을 집중해서 남을 관하게 해야 한다. 밖의 경계를 관하되 밖의 생각으로써 하는 까닭에 자연히 하나의 나무에 기묘하고 단 열매가 생기는 것을 본다. 그 열매는 네 가지 빛깔로 네 가지 광명을 구족하였다. 이와 같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유리의 나무와 같고, 일체에 가득하다.
이 나무 보기를 마치면, 널리 모든 4생(生)46)의 중생이 굶주림의 불길에 쫓겨 모두가 와서 걸식함을 본다. 보고 나면 환희 하여 연민 하는 마음이 생긴다. 곧 자심(慈心)을 일으키어 이 걸식하는 자를 보기를 자기 부모(父母)가 커다란 고뇌를 받음과 같이 한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마땅히 이를 구제할 수 있는가.’
21)악작(惡作)이라 번역. 250계(戒) 중 두 가지 부정(不定)과 백 가지 중학(衆學)과 일곱 가지 멸쟁(滅諍)의 109계(戒)를 범한 죄를 총칭(總稱)하며 비교적 가벼운 죄임.
22)고려대장경에는 침(枕)으로 나와 있으나 궁(宮)본에는 정(頂)으로 나와 있으므로 이에 따른다.
23)여러 가지 악업(惡業)으로 5역(逆), 10악(惡) 등.
24)번뇌업(煩惱業)의 성과인 현실의 미계(迷界)로서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인간(人間)ㆍ천상계(天上界) 등.
25)일체의 번뇌, 탐(貪)ㆍ진(瞋)ㆍ치(癡) 등.
26)26)원본(原本)은 벽(壁)이지만 송(宋)ㆍ원(元)ㆍ명본(明本)에 따라 벽(辟)으로 함.
27)손가락 끝이 붙어 있는 것.
28)사람의 수(數)를 셈하는 도구(道具). 참회와 수계(受戒) 등에 쓰임.
29)학교를 은(殷)나라는 서(序), 주(周)나라는 상(庠)이라 하고, 순자(旬子)는 대략(大略)에서 ‘상서자교화지관야(庠序者敎化之官也)’라 함.
30)빛이 비쳐 밝은 모양.
31)손 씻는 물을 담는 병.
32)4신의족(神意足), 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이 정(定)을 얻는 수단으로 욕(欲)ㆍ정진(精進)ㆍ심(心)ㆍ사유(思惟)의 넷이 있다.
33)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세어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는 수행방법.
34)『고려대장경』에는 화(畵)로 되어 있으나 궁본(宮本)을 따른다.
35)평유(平愈). 병이 나아서 본래의 상태와 같게 됨.
36)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과 발에 채우는 쇠사슬.
37)주검에 대한 아홉 가지 관법(觀法)으로서 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ㆍ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청어상(靑瘀想)ㆍ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壤想)ㆍ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ㆍ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ㆍ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ㆍ새나 짐승에게 먹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ㆍ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ㆍ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이다.
38)자(慈)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즉 중생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자(慈)이다.
39)산심(散心)에 반대되는 말. 즉 의식을 통일하여 한 곳에 집중한 마음.
40)4선근(善根)ㆍ4가행위(加行位)의 첫자리인 난위(暖位)를 법(法)으로 이름한 것. 화난법(和暖法).
41)대경(對境)을 관하는 마음과 관(觀)해야 하는 대경이 일치되어 바른 마음으로 대경을 섭입(攝入)하는 심적(心的) 상태. 사유정수(思惟正受).
42)좁쌀 알과 같은 금(金), 즉 사금(砂金).
43)4선근(善根)의 하나.
44)88사(使)라고도 함. 방편(方便)의 수행이 끝나고 처음으로 성자(聖者)의 위(位)에 들어 예류과(預流果)를 증(證)할 때 끊는 번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