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섯째 법은 일체의 인간과 천상을 이롭고 안락하게 한다. 이른바 그것은 설법하는 것이니, 일체 보시하는 법을 말하고 온갖 선법을 말하는 것이다. 일체 존귀한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법을 듣는 것으로서 그것은 일체 교만의 근본을 끊는다. 즉 말하는 법은 교만을 억제한다. 법을 말하고 법을 들으면 법을 존경하게 된다. 법을 믿기를 말하고 법을 받아 지니기를 말하며 수행하는 사람은 설법하기를 떠나지 않기를 말한다. 부처님들도 법으로써 스승이 되었거늘 하물며 성문ㆍ연각이겠는가?
설법에는 열 가지 공덕이 있어 많은 이익이 있다. 그 열 가지란, 때와 장소를 구족하는 것이요, 분별하여 알기 쉬운 것이며 법과 상응하는 것이요,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것이며 마음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요, 수순하여 설법하는 것이며 보시의 과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생사의 법에는 장애가 많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늘 사람의 타락을 말하는 것이요, 업의 과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설법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열 가지 법을 갖추면 그는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공덕을 얻게 하고 이롭고 안락하게 하며, 나아가서는 열반을 얻게 할 것이다. 이 법을 듣는 이와 법을 말하는 이는 그 원을 따라 다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보 시 가운데 법의 보시가 가장 훌륭하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020_0501_b_02L또 법을 듣는 공덕은 깊은 마음을 성취하고 신근(信根)이 청정하여 한결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3보를 믿는 것이다. 법을 들으러 갈 때에는 바른 법을 듣기 때문에 한 발만 내딛어도 깨끗한 복이 생긴다. 만일 누구나 설법하는 법사를 공양하면 그는 곧 현재의 부처님을 공양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공양함으로 소원을 성취하고, 나아가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그것은 법사(法師)를 공양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듣기 때문에 마음이 제어되고 마음이 제어되기 때문에 무지로 흘러 다니는 어둠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법을 듣지 않으면 어떤 법으로도 마음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설법을 들으면 매우 갚기 어려운 네 가지 은혜를 갚을 수 있다. 그 네 가지이란, 첫째는 어머니의 은혜요, 둘째는 아버지의 은혜이며, 셋째는 부처님 은혜요, 넷째는 법사의 은혜이다. 만일 어떤 이로서 이 네 사람을 공양하면 그는 한량없는 복을 얻어 현재에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오는 세상에는 보리를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설법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교만한 사람은 억제되고, 탐착하는 사람은 보시를 믿게 되며, 거친 사람은 부드럽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롭게 되기 때문이다. 또 설법의 힘으로 말미암아 인과를 모르는 사람은 바로 믿음을 얻고, 삿된 소견을 가진 이는 바로 소견에 들어가며, 살생ㆍ도둑질ㆍ사음 등을 즐기는 사람은 그것을 멀리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설법하여 억제하는 인연으로 마침내는 열반을 얻게 한다.
020_0501_c_02L이런 인연으로 설법하는 법사의 은혜는 매우 갚기 어렵고, 이 몸을 낳아 주었기 때문에 부모의 은혜는 갚기 어렵다. 만일 부모를 법 안에 머무르게 하면 그것은 은혜를 조금 갚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삼계에서 가장 뛰어나 생사를 벗어나신 위없는 대사이시니, 그 은혜는 갚기 어렵다. 그러나 그 은혜를 갚는 오직 한 법이 있으니, 이른바 만일 불법에 대해 깊은 마음으로 파괴되지 않는 믿음을 얻으면 그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 공양은 또 자기를 이롭게 한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 경전의 게송으로 말한다.
고요한 법을 연설해 우치의 그물을 잘 끊나니 그런 훌륭한 길잡이는 중생들에게 길을 보인다.
020_0501_c_06L以說寂靜法, 能斷愚癡網,
如是勝導師, 能示衆生道。
어떤 법이 중생들로 하여금 존재의 바다를 건너게 하면 그 법은 가장 뛰어나고 훌륭해 세상 법은 그것을 따르지 못한다.
020_0501_c_07L若法令衆生,
超度諸有海, 此法最殊勝, 世法莫能及。
만일 누구나 이 네 가지의 복밭에 능히 공양하면 그는 좋은 과보를 얻는다고 길잡이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020_0501_c_08L若人能供養, 此四種福田, 斯人得善果,
導師如是說。
이미 감관이 다 원만하고 또 불법을 얻어 들었거니 그리고도 만일 비법 행하면 뒤에 후회하여도 소용없으리.
020_0501_c_10L旣得具諸根, 亦得聞佛法,
若行於非法, 後悔無所及。
가는 곳마다 애착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그 쾌락을 구하며 처자를 탐하고 사랑하면서 죽음이 닥침을 깨닫지 못한다.
020_0501_c_11L處處生愛著,
常求於欲樂, 恒貪愛妻子, 不覺死來至。
온갖 나쁜 일 늘 생각하여 갖가지 허물에 어지럽히는 이 마음은 중생들 결박하여 세 가지 나쁜 길로 달리려 한다.
020_0501_c_12L念念多諸惡, 種種過所亂, 以心縛衆生,
將趣三惡道。
이 악은 제어하기 어려워 하늘과 사람이 그 틈을 찾나니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이 마음은 이 중생들의 큰 원수이니라.
020_0501_c_14L是惡難調伏, 常求天人便,
是心不可信, 衆生之大怨。
잘 듣고 잘 보아 한량없이 닦아 익히어 법으로 그 마음 제어하되 말에 재갈을 물리듯 하라.
020_0501_c_15L以善聞善見;
無量種修習, 以法調伏心, 如馬得銜勒。
020_0502_a_02L 이와 같이 가장 깊고 두터운 복밭은 좋은 공덕을 갖추었으므로 그들을 공양해야 한다. 천자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런 법을 말하고 업의 도를 말하여 설법하는 스승을 존경하고 찬탄하였다. 공작왕 보살은 원력에 의해 천상에 태어나서 그 천자들을 이롭게 하였다. 천자들은 이 법을 듣고는 마음이 청정해져 모두 한마음으로 그 설법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 공작왕의 말은 법과 상응하고 도솔타의 적정천왕(寂精天王)의 말과도 상응하여 다르지 않다. 생각하면 이 법은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다 좋아 가장 청정하고 가장 좋은 법으로서 가장 안온하다. 그리하여 인간ㆍ천상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 열반을 얻게 한다.’
그때에 공작왕은 도솔타천의 이 말을 듣고 깨끗한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일체를 가까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 천자들을 안온하고 이롭게 하며, 나아가서는 열반을 얻게 하려 한다. 그리하여 다시 말한다. ‘여섯째의 깊고 훌륭한 법문은 능히 열반에 이르게 한다. 이 법은 가장 안온하고 가장 훌륭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니, 이른바 가엾어 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 믿음을 내게 하고, 생사를 두려워하는 중생을 위안하여 안온하지 못한 이를 안온하게 하고, 구원할 이가 없는 이에게는 구호가 된다. 만일 가엾어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다. 가엾어 하는 마음은 유연하여 속이거나 거칠지 않고 분노를 끊는데, 그것은 그 마음이 자비롭고 윤택하기 때문이다. 또 가엾어 하는 마음을 대장엄(大莊嚴)이라 한다.
만일 다섯 길의 중생에 대해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는 능히 분노의 번뇌를 끊을 것이다. 지옥의 중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가? 즉 이 중생들은 어떻게 자기 마음에 속고 마음의 원수가 지은 업으로 말미암아 비유할 수 없는 갖가지 큰 고통을 받는가. 이른바 쇠갈고리ㆍ쇠망치ㆍ녹는 구리쇠는 불이 일고 나쁜 벌레는 파먹으며 건너기 어려운 사나운 강물은 중생을 떠내려 보내고, 솔개ㆍ독수리ㆍ까마귀ㆍ까치 등은 그들을 쪼아 먹는다. 또 칼숲과 잿강 속에 들어가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020_0502_b_02L이른바 활지옥ㆍ흑승지옥ㆍ중합지옥ㆍ규환지옥ㆍ대규환지옥ㆍ초열지옥ㆍ대초열지옥과 아비지옥 및 그와 떨어져 있는 곳의 큰 지옥 등 136곳이 있는데, 중생들은 그 속에 떨어져 허물어지고 찢기며 찢어지고 쪼개지며 끊기고 굽히며 삶긴다. 그것은 다 자기 마음에 속음으로써 업의 그물에 걸리어 애욕의 불에 타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할 이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으므로 동서로 달리면서 가엾이 여기기를 구하고, 또 간절히 구호를 구하되 <나는 언제나 이 큰 고뇌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라고 한다. 이 중생들에 대해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만일 이런 마음을 일으키면 천왕이나 혹은 전륜성왕이 되어 중생들의 사랑을 받는다. 가여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업을 즐겨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이른바 지옥의 중생들이 큰 고뇌를 받는 것을 보고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한량없이 깨끗한 법을 증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선인들로서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저 아귀들을 관찰하고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즉 저 중생들은 어떻게 아귀들 속에 떨어져 갖가지 주림과 목마름으로 그 몸을 태우되 우거진 숲을 태우 듯 하여 사방으로 달리다 서로 받고, 온몸이 불꽃에 타지마는 구원할 이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으며, 곳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구호할 이를 구해도 구호할 이가 없는가? 이 중생들은 언제나 이런 갖가지 고뇌를 떠날 수 있을까, 또 언제나 이 주리고 목마르는 고통을 끊을 수 있을까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아귀의 고통을 관찰하여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020_0502_c_02L또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선인들은 축생을 관찰하고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저 축생들은 한량없이 고뇌하면서 서로 해친다. 축생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공중으로 다니는 것과 물속으로 다니는 것과 육지로 다니는 것이다. 죽는 법은 한량없어 서로 해치고 서로 잡아먹는다. 이 중생들은 언제나 축생에서 벗어날까?> 이것이 이른바 축생들의 고통을 관찰하여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만일 누구나 이런 마음을 내면 그는 범천(梵天)에 태어날 것이니, 그것은 가엾어 하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을 가엾게 생각하기 때문에 세 가지 나쁜 길의 큰 괴로운 곳에서, 즉 가장 큰 악업의 과보의 땅에서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또 욕계의 여섯 하늘에 대해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욕계의 여섯 하늘에서 받는 쾌락은 비유할 수 없다. 갖가지 산골짝ㆍ산봉우리ㆍ동산숲 등에서 그들은 향락하고 연꽃숲의 못으로 가서는 천녀들과 유희하면서 백천 가지로 향락한다. 그렇게 향락한 뒤에 업이 다하면 타락하여 괴로운 곳에 태어나서는 큰 고뇌를 받고 지옥이나 아귀ㆍ축생들 속에 떨어진다. 이 생사의 곳은 중생을 희롱하므로 중생들은 애욕의 사슬에 얽매여도 서로 달리면서도 미혹하기 때문에 무지하여 고뇌를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러 하늘의 고통을 관찰하여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들은 인간을 관찰하고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갖가지 업으로 인간에 태어나서 고락의 과보를 받는다. 상ㆍ중ㆍ하의 중생들은 갖가지로 업을 짓고 갖가지 심성으로 갖가지로 믿고 안다. 어떤 이는 빈궁하여 다른 사람을 의지하므로 미워하고 방해하며, 남의 천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떤 업을 구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이렇게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런 가엾어 하는 마음은 가장 깨끗한 법으로서 능히 열반을 얻게 한다. 이상과 같이 다섯 길의 중생들의 다섯 가지 고통을 관찰하고는 가엾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런 사람은 훌륭한 안온을 얻고 곧 열반을 얻는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과 같은 가가촌타부처님의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누구나 그 마음 부드러워 자비로운 마음으로 스스로 장엄하면 모든 것들의 보호를 받고 뭇 사람들의 칭찬 받으리.
020_0502_c_21L若人心柔軟, 悲心自莊嚴, 爲一切所護,
衆人所稱歎。
이와 같이 그 마음 부드러우면 모든 감관이 기쁘고 즐거우리니 바른 견해를 가진 이런 선인들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020_0502_c_23L如是柔軟心, 諸根常悅預,
此正見善人, 去涅槃不遠。
만일 자비로운 마음으로 장엄하면 그는 사람 중의 하늘이니라. 사람으로 자비로운 마음 없으면 그는 언제나 빈궁하니라.
020_0502_c_24L若悲心莊嚴,
則爲人中天; 若人無悲心, 是則常貧窮。
020_0503_a_02L
만일 누구나 부드러운 마음으로 잘 다루어 순금과 같고 그 마음속에 자비 있으면 그 보배는 다할 때 없으리.
020_0503_a_02L若人柔軟心, 調伏如眞金; 若悲在心中,
此寶無窮盡。
만일 누구나 늘 정진하고 항상 바른 법을 닦아 행하면 그 사람 마음의 지혜 광명은 마치 저 큰 등불 같으리.
020_0503_a_04L若人常精進, 恒修行正法,
此人心智光, 猶如大明燈。
만일 사람으로 낮이나 밤이나 그 마음 항상 법 안에 머무르면 그 사람의 자비로운 마음은 밤낮으로 항상 떠나지 않으리.
020_0503_a_05L若人於晝夜,
心常住於法, 斯人之悲心, 晝夜常不離。
그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들을 다 이롭게 하리니 그는 안락을 누릴 것이요 뒤에 가서는 열반 얻으리.
020_0503_a_06L其人心淸淨, 利益諸衆生, 旣受安樂已,
後得於涅槃。
자비로운 마음의 깨끗한 보시는 저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바로서 능히 일체의 허물 끊나니 자비의 재물은 다함이 없다.
020_0503_a_08L悲心淸淨施, 牟尼所讚歎,
能斷一切過, 悲財無窮盡。
그 공덕의 훌륭한 장엄으로 능히 일체의 허물을 끊음은 저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니 그러므로 멸하지 않는 곳에 가셨다.
020_0503_a_09L功德勝莊嚴,
能斷一切過, 牟尼悲潤心, 故至不滅處。
자비의 인(因)이 있는 그곳은 꿀과 젖이 합한 것 같아 분노와 또 뜨거운 번뇌는 그 마음에 머물지 못한다.
020_0503_a_10L悲因隨所在, 如蜜乳和合, 瞋恚及熱惱,
不能住其心。
자비로운 마음의 뗏목을 타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 씩씩해지면 그는 능히 존재 바다의 3독(毒)의 소용돌이 건너가리라.
020_0503_a_12L旣昇悲心栰, 哀矜心勇健,
能度於有海, 三毒大洄澓。
공덕은 훌륭한 보시로서 이보다 나은 장엄이 없고 선한 사람의 사랑 받나니 그러므로 자비로운 마음이라 한다.
020_0503_a_13L功德勝營邑,
無勝此莊嚴, 善人之所愛, 故名爲悲心。
공작왕 보살은 이렇게 천자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그 법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아 적멸과 상응하였으므로 천자들은 모여 즐겨 들었다. ‘또 그 부처님께서는 일곱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어떤 법과 상응하여 해탈을 얻는가? 그것은 방일을 끊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업인가? 이른바 부드러운 마음으로서 경솔한 허물을 끊고 온갖 공덕을 섭취한다. 만일 누구나 그 마음이 부드럽고 깊으면 번뇌를 모두 떠나고 저 열반과 해탈은 마치 손 안에 있는 듯한 것이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그 마음이 백랍(白鑞)과 같다. 선법을 수행하고 사람들의 신임을 받을 것이다.
020_0503_b_02L그러나 거친 마음은 마치 금강석과 같아 항상 원한을 잊지 않고 그 행이 고르지 않아 사람들이 미워하여 사랑하지 않고 신임하지 않는다.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키면 굳게 잡아 버리지 않으므로 마음이 안락하지 못하다. 그는 선정이나 독경을 좋아하지 않고, 선인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선법을 내지 못한다. 마치 짠 땅은 종자를 내지 못하고 모래 속에서는 기름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의 거친 마음도 이와 같아서 선법을 내지 못한다. 또 그것은 마치 뿔에서 젖을 짜는 것 같고 달 속의 따듯한 기운 같으며, 석녀(石女)의 아이와 같고 허공의 꽃과 같다.
거친 악업을 짓는 사람은 거짓을 부리고 무지하여 스스로 속이고 남도 속이므로 다섯 가지 길에 빠져 있으면서 선인을 가까이하지 않고 3보를 떠난다. 그런 눈 먼 사람은 바른 법의 밝은 지혜의 해를 보지 못하므로 매우 가엾은 사람이다. 그는 생ㆍ노ㆍ병ㆍ사와 근심ㆍ슬픔ㆍ고뇌 등의 온갖 고통의 무더기로서 큰 광야에 들어가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부드러운 감로(甘露)의 맛을 멀리 떠난다. 그런 악인은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열반에서 멀다. 왜냐하면 열반의 도의 인행(因行)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고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람으로서 능히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하면 그들은 결정코 열반을 얻을 것이다. 마치 깨의 성질은 기름을 내고 해의 성질은 빛을 내며 달의 성질은 차가우며, 또 불은 뜨겁고 땅은 단단하며 바람은 움직이고 물은 적시는 것으로서 이 4대는 모두 그 자성(自性)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그 마음을 제어하여 신심으로 정진하기 때문에 뒤바뀐 소견을 가지지 않고 인과를 믿으므로 마치 열반이 앞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과 같은 부처님 경전의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누구나 그 마음 부드럽기 마치 잘 단련한 순금 같으면 그는 안이나 밖이 다 좋아 빨리 온갖 괴로움 벗어나리라.
020_0503_b_19L若人心柔軟, 猶如成鍊金, 斯人內外善,
速得脫衆苦。
만일 누구나 마음 그릇 단련하여 모두가 다 부드럽고 연하면 그 사람은 좋은 종자 내는 것 마치 저 좋은 벼밭 같으리.
020_0503_b_21L若人心器調, 一切皆柔軟,
斯人生善種, 猶如良稻田。
일체의 모든 그 중생들도 이 창고는 다 쓸 수 없으리니 그것은 능히 저 빈궁과 또 많은 미혹을 쳐부수리라.
020_0503_b_22L一切諸衆生,
不能盡斯藏, 能破於貧窮, 及以多誑詐。
근기가 날카로운 고요한 사람 그는 언제나 선정을 수행하여 방일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아 갖가지 고뇌를 길이 떠난다.
020_0503_b_23L利根寂靜人, 常修行禪定, 不著放逸境,
永離諸苦惱。
020_0503_c_02L
이렇게 공작왕 보살이 게송으로 말할 때 야마천의 천자와 도솔타천의 천자들은 염증을 내지 않고 즐겨 들었다. 그리고 다시 법을 듣고자 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아뢴다. ‘큰 성인이시여, 요컨대 우리들을 위해서 그 22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그 천자들을 위해 22법을 연설한다. ‘이미 7법을 말하였으니, 이제는 여덟째 법을 말하리라.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선인들은 마음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법인가? 그것은 이른바 제어하는 법으로서 능히 일체를 장엄하는 법이다. 그 제어함은 모두 계율과 상응한다. 사문ㆍ바라문이나 혹은 그 밖의 사람으로 재가인이거나 출가인이거나 혹은 늙었거나 젊었거나 이 제어하는 법과 상응하면 그는 이 장엄으로 모두를 단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어하는 마음을 버리면, 그는 마치 여우ㆍ까마귀ㆍ부엉이ㆍ독수리ㆍ솔개 등과 같은 것이다.
출가인은 어떻게 제어하는가? 출가인은 먼저 가사(袈裟)로써 자신을 제어하는데, 거기는 일곱 가지 일을 행해야 한다.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그 국법대로 분소의(糞掃衣)를 받는 것으로서, 그가 사는 나라에 따라 재가인들이 버린 옷이나 혹은 무덤 사이에 있는 옷으로서 시체에 눌린 것이면 취하지 않아야 하고, 만일 무덤 사이에서 헤어진 옷을 얻으면 그것은 취해 써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가사로 제어하는 법이다.
020_0504_a_02L또 둘째 제어하는 법이란, 이른바 만일 촌락에 들어갈 때는 땅을 보고 가되, 여섯 자 앞을 바로 가면서 부처님의 영상을 생각하거나 한마음과 바른 생각으로 감관을 어지럽히지 않고 드나드는 숨을 세면서 마음과 몸에 생각을 매어 둔다. 그리고 촌락에 들어가서는 필요한 기구들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즉 갖가지 기물(器物)을 보지 않고 남의 장엄한 휘장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와 말하지 않고 어린애를 안지 않으며, 발을 자주 놀리지 않고 팔이나 평상을 흔들지 않으며, 손으로 머리를 만지지 않고 옷을 자주 여미지 않으며, 가사를 떨지 않고 손을 어루만지지 않으며, 또 손가락을 튀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둘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또 셋째의 제어하는 법이란, 시주 집에 들어가 밥을 먹을 때에는 팔을 가지런히 해 손을 씻고, 음식을 받을 때에는 팔을 너무 펴지 않고 1주(肘)쯤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 먹을 때에는 경솔하거나 장난하지 않는다. 즉 만족할 줄 모르면 남의 깨끗한 신심을 잃고 그를 교만하게 할 것이니, 그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밥수저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입을 너무 벌리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큰 숨을 쉬지도 않는다. 적당히 먹되 다만 2분쯤만 먹으며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남의 발우를 보고 탐심을 내지 않고, 받은 음식으로 남의 기분을 다치지 않으며, 자기 발우 보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 밥을 먹고는 발우를 챙기고 깨끗이 손을 씻고 양치질한 뒤에는 감관을 단속하여 바른 마음으로 설법한다. 즉 마음으로 진리를 생각하고 말은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으며, 굽이치거나 너무 솔직하지 않고, 때가 아니면 설법하지 않되,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시주의 마음을 잘 살펴 그 신심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셋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020_0504_b_02L또 넷째의 제어하는 법이란, 밥 때가 되어 촌락이나 도시에서 전에 보았던 음식을 생각하거나 자주 말하지 않고, 또 받을 침구를 바라지도 않으며 법다이 받고 훌륭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넷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또 다섯째의 제어하는 법이란, 어떤 하는 일에 있어서도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않되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도구에 있어서 많이 쌓아 두지 않고, 변방의 두려운 곳으로 다니지 않고, 별다른 옷을 입지 않고 초대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한 집만을 즐기어 오가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다섯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또 여섯째의 제어하는 법이 있으니, 초목을 끊지 않고 생땅을 파지 않으며, 잡색의 가죽신을 신거나 잡색의 옷을 입지 않고, 계율을 깨뜨린 사람이 있어도 비방하거나 말하지 않으며, 왕의 음식을 바라지 않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비구와 친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섯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또 일곱째의 제어하는 법이 있다. 즉 어떤 비구로서 뜻이 같고 법이 같으면 그를 친근하여 이익을 얻는다. 일정한 법도가 있고 악마의 경계를 버리어 고요하고자 하며 모든 감관을 제어하여 거두어 잡으면, 그런 비구는 친해야 한다. 혹은 산굴, 나무 밑의 한데[露地]에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수행한다. 이것이 이른바 일곱째의 제어하는 법이다. 만일 비구로서 능히 이렇게 행하면 그는 일체의 결박을 떠나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천자들을 위해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제어하는 법과 상응하고 지혜의 경계를 닦아 행하며 생사의 허물을 두려워하면 그가 집을 나온 것 헛되지 않으리.
020_0504_b_18L調伏法相應, 修行智境界, 怖畏生死過,
則不空出家。
계율을 지켜 깨뜨리지 않고 본래의 쾌락을 생각하지 않으며 언제나 5음을 관찰하면서 고요한 숲 속에 살아야 한다.
020_0504_b_20L學處不毀缺, 不念於本樂,
常觀於諸陰, 應住靜林中。
말이 부드러운 고요한 사람 현세에 열반으로 나아가리니 계율로 그 몸을 장엄하면 집 나온 법과 상응하리라.
020_0504_b_21L軟語寂滅人,
現趣於涅槃, 持戒莊嚴身, 與出家相應。
자기나 남의 법 안에서 미혹하지 않아야 하나니 도와 도 아닌 것에도 그러하니라.
020_0504_b_22L於自他法中, 若能不迷惑, 業報非業報,
道非道亦然。
나쁜 업의 행을 떠나고 고락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열반으로서 해탈을 얻어 어떤 고통도 결박하지 못하리.
020_0504_b_24L 離於惡業行, 苦樂不怖畏,
於家得解脫, 衆苦不能縛。
020_0504_c_02L
이와 같이 공작왕 보살은 제어하는 법의 한량없는 공덕을 설명하여 천자들로 하여금 모두 그것을 믿고 알게 할 때 천자들은 일심으로 자세히 들었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야마천과 도솔타천을 위해 쉬지 않고 설법한다. 그리하여 그는 천자들이 법을 존경하는 줄을 알았으므로 다시 아홉째의 청정결백한 법을 말한다. 청정결백한 법이란, 이른바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세간 사람으로서 업보를 믿는 것이니, 업보를 믿기 때문에 큰 법을 얻는다.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세간 사람으로서 업의 과보를 믿으면, 그는 몸의 악업을 알고는 그 악업을 자꾸 지어 늘리거나 사랑하거나 즐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보로서 지옥이나 아귀ㆍ축생 등의 나쁜 경계에 태어나게 되겠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입의 악업도 자꾸 지어 늘리거나 사랑하거나 즐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써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나쁜 과보를 받겠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뜻의 악업도 자꾸 지어 늘리거나 사랑하거나 즐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써 지옥ㆍ아귀ㆍ축생 등의 고통을 받겠기 때문이다. 사문ㆍ바라문은 과거에 지은 악업을 생각하고는 후회하여 다시는 짓지 않고 스승을 가까이하여 그의 법을 듣는다. <어떻게 하면 이 악업의 과보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020_0505_a_02L그 스승이 지혜로 그를 제어하고 그 인연을 말하기 위해 방편으로 말하여 지은 것을 뉘우치게 하면 과거의 악업은 다 사라진다. 이렇게 선업을 생각하기 때문에 악업을 짓지 않고, 그 업의 인연이 어디서 일어나는가를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 악업을 짓지 않음으로써 나쁜 업을 모두 소멸하게 하거나 혹은 현재에 짓는 몸ㆍ입ㆍ뜻 등의 악업을 희박하게 한다. 그는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짓고는 빨리 뉘우쳐 다시 짓지 않는다. 이런 뉘우치는 마음은 업으로 이루어진 악업을 모두 소멸시킨다. 그 사문ㆍ바라문이나 혹은 그 밖의 세간 사람들은 이렇게 그 업을 알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악을 익혔으므로 장차 몸ㆍ입ㆍ뜻 등의 악업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보가 익은 때에는 지옥이나 아귀ㆍ축생 등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악업은 바른 방편으로 그것을 생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렇게 업의 과보를 믿으면 설사 지옥의 악업을 성취하였더라도 오랫동안 지옥에 있으면서 받을 큰 고뇌가 희박해지거나 혹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그리고 또 부지런히 정진하면 그로써 혹 아귀에 떨어질 악업이 있더라도, 오랫동안 아귀로 있으면서 주리고 목마르는 그 큰 고통을 잠깐 동안 받거나 혹은 그것이 모두 소멸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사문ㆍ바라문이나 혹은 그 밖의 중생들로서 혹 축생에 떨어질 악업이 있더라도, 오랫동안 축생으로 있으면서 서로 잡아먹는 고통을 잠깐 동안 받거나 혹은 그것이 모두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꾸 지어 결정코 성취된 악업은 여기서 제외된다. 즉 지옥이나 아귀ㆍ축생 등 경계의 어느 길에 떨어지더라도 결정코 성취된 것은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020_0505_b_02L또 업의 과보를 믿는다. 그것은 생각하여 알기 어려운 미세한 업의 과보이다. 즉 세 가지 업을 지은 뒤에 참회하고 다시 짓지 않으면 결정되지 않은 업으로 축생에 태어난다. 그때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옥의 업이나 혹은 아귀의 업으로 축생의 몸을 받았다. 후회하는 마음이 청정하면 중한 업도 파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의 힘으로 전부 소멸시키거나 혹은 조그만치 끊는다. 또 혹 축생의 몸을 받을 악업이 있더라도 후회하는 마음은 그 업을 소멸시켜 오래 사는 축생의 몸을 받지 않고 큰 고통을 받지 않으며 혹은 훌륭한 마음으로 악업을 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업의 과보를 믿어야 한다.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업의 과보를 믿으면 그는 생사의 저 언덕에 이를 수 있다. 왜냐하면 다섯 길의 생사는 모두 선업과 악업으로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진실한 업의 과보를 믿어야 한다. 일체 중생은 다 업보의 인연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밤낮으로 업의 과보를 생각하면 그는 생사 가운데서 가장 견고한 사람이 될 것이다.
또 열째로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생각해야 할 법이 있으니, 그것은 어떤 법인가? 이른바 머무르는 곳의 손해를 입는 것이다. 즉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지혜가 적은 이는 머무르는 곳의 손해를 입으면서도 그곳에 집착하여 아쉬운 생각으로 버리지 못한다. 절이나 승방ㆍ촌락ㆍ나라ㆍ도시 및 다른 곳에 살면서 항상 게으름을 즐기고 법답지 않은 곳을 즐긴다. 그리하여 고요한 절이나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으므로 그는 스님이라고도 할 수 없고 속인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 법답지 않은 곳에서 목숨을 마친다.
020_0505_c_02L이런 사람은 무엇 때문에 스님이 되었던가? 그에게 어울리는 숲이나 절에는 가지 않고 법답지 않은 곳에서 목숨을 마치기까지 한다. 선정을 닦기 위해 집을 나왔으면서 숲 속의 고요한 곳에는 가지 않고,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고 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시주들은 그를 비방하고 가까이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공양도 바치지 않고 보기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온갖 허물이 드러나 범부와 속인들의 비웃음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비방한다. <아무 사문ㆍ바라문이나 또 다른 사람은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님이라고도 할 수 없고 속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는 숲 속의 한적한 곳을 좋아하지 않고 재물을 저축하며 속인과 만나기를 좋아하고, 속인과 친하여 마치 종과 같으므로 속인들의 천시를 받는다. 그러므로 그는 속인이라고도 할 수 없고 스님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기 때문이니, 설령 아무 허물이 없는데 남의 비방을 받는다 해도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는 곳 없으면 그는 시주의 천대는 받지 않을 것이다.>
속인을 자주 만나거나 혹은 가까이하면 그는 남의 무시는 당하지 않더라도 혹은 다른 허물이 생기게 될 것이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 맞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그는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름으로써 아무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은 파괴되는 곳에는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항상 머무를 곳을 즐기되, 늘 혼자 있기를 즐기고 나무 밑이나 무덤 사이 등 고요한 곳에 머물기를 즐기어 선정을 닦고 혹은 산골짝에 혼자 있으면서 목숨을 마치더라도 법답지 않은 곳에서는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법답지 않은 곳을 모두 버리면 해탈을 얻을 수 있으나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무르면 그는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비구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사람들은 그를 종처럼 보고 또 초개(草芥)처럼 업신여기리니 그러므로 스스로의 이익 잃는다.
020_0505_c_18L比丘住非處, 人視如僮僕, 輕之如草芥,
亦失自利益。
비구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그는 속인도 스님도 아니다. 선정이나 독경 그 어느 법도 그는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020_0505_c_20L比丘住非處, 非在家出家,
於禪誦法中, 其心不憙樂。
비구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재물을 저축해 두고 탐하는 마음으로 재물에 집착하여 죽을 때의 닥침을 깨닫지 못한다.
020_0505_c_21L比丘住非處,
貯積稸財物, 貪心著財寶, 不覺死時至。
목숨은 찰나찰나 줄어들건만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짓는바 업을 알지 못하여 그는 미래의 과보 받는다.
020_0505_c_22L身命念念盡, 而不能覺知, 不知所作業,
能受未來報。
비구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살면서 항상 즐기어 속인 만나고 법답지 않은 곳에 늘 다니면 그는 죽어서 나쁜 길에 들어가리.
020_0505_c_24L比丘住非處, 常樂見俗人,
常行於非處, 死則入惡道。
020_0506_a_02L 마음에 즐겨 집착하는 것 없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탐욕을 모두 벗어버리면 그런 이야말로 사문이라 하리.
020_0506_a_02L心無所樂著,
一切不悕望, 能脫一切貪, 是名爲沙門。
산이나 혹은 나무 밑에서 항상 선관(禪觀)을 닦아 익히면 그는 청정한 지혜를 얻어 일체의 허물을 멀리 떠나리.
020_0506_a_03L若在山樹下, 常修習禪觀, 則得淸淨智,
遠離一切過。
일체의 탐욕을 멀리 떠나 경계의 유혹을 받지 않으면 그는 능히 번뇌를 멸하는 것 불이 마른 나무 태우듯 하리.
020_0506_a_05L遠離一切貪, 不爲境界惑,
則能滅煩惱, 如火焚乾薪。
혼자 수행하는 비구로서 다섯 감관을 잘 거두고 여실히 그 몸의 성질을 알면 그는 열반의 도를 얻으리.
020_0506_a_06L獨修行比丘,
攝持於五根, 如實知身相, 則得涅槃道。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기 생각하고 일체의 허물을 멀리 떠나면 그는 저 열반에 이르기 마치 놀이터에 가듯 하리라.
020_0506_a_07L常念勤精進, 遠離一切過, 是人到涅槃,
如至遊戲處。
언제나 열반을 구하고 항상 생사를 두려워하면 그와 같은 깨끗한 마음은 법답지 않은 곳을 즐기지 않는다.
020_0506_a_09L常求於涅槃, 常怖畏生死,
如是淸淨心, 則不樂非處。
이와 같이 비구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온갖 많은 허물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비구는 법답지 않은 곳을 떠나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그는 범부의 속인과 다름이 없으리라. 속인으로도 법답지 않은 곳에 머물면 한량없는 악을 받겠거늘 하물며 사문이겠는가? 속인과 가까이하면 그것은 일체의 선법과 어긋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법답지 않은 곳을 멀리 떠나야 한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시 야마천과 도솔천을 위해 가가촌타부처님의 열한째 법을 말하였다. ‘이 선법은 매우 즐거운 것으로서 능히 열반에 이른다. 그 선법이란, 이른바 주심(住心)이니, 만일 비구로서 주심하면 선법을 지니므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주심의 법은 일체의 악을 떠난다. 원래부터 흘러 도는 마음의 허물인 그물의 번뇌는 견고하므로, 그것은 짧은 시간이나 적은 정진과 적은 선정으로는 이런 큰 악의 그물을 끊을 수 없다.
020_0506_b_02L만일 비구로서 주심이 약하면 마음의 허물의 그물을 끊을 수 없다. 어떤 법도 생사를 끊는 데 있어서 주심의 법만 한 것은 없다. 오직 수행하는 사람으로 주심의 법을 가진 이는, 혹 좋지 못한 법이 일어나면 마음을 거두어 억제 하여 악업을 즐기지 않고 그것을 부지런히 끊으며 용맹 정진하여 그 좋지 못한 법을 끊는다. 즉 탐욕이 일어나면 부정관(不淨觀)을 닦는데 이것을 상응(相應)이라 하며, 그것으로 이 나쁜 욕심의 더러움을 끊고는 줄잡아 자비관(慈悲觀)을 닦고 또 우치가 일어나면 마음을 거두어 12인연을 관한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주심하기 좋아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따라 온갖 욕망 일으킨다. 만일 그 욕망에 결박되면 두 세상의 이익 잃으리.
020_0506_b_08L若不樂住心, 隨樂起諸愛, 若爲愛所縛,
失於二世利。
이렇게 공작왕 보살은 야마천과 도솔천을 위해서 주심(住心)하지 않으면 한량없는 허물이 있음을 말하였다. 그때에 그 천자들은 두 세상의 이익이란 말을 듣고는 즐거이 들으며 싫증을 내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공작왕님은 참으로 희한합니다. 우리들을 위해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깊은 법을 연설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고, 갖가지 생사에 대해 염증을 내게 하여 우리는 가장 안온합니다. 원컨대 우리를 위해 차례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받들어 듣고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겠습니다.’
그때에 공작왕은 이 말을 듣고 천자들이 한마음으로 즐겨 듣는 줄을 알고는 기뻐 뛰었다. 그리하여 가장 남을 이롭게 할 것을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미묘한 소리로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들은 마음으로 법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 뒤에는 부지런히 두려워하는 법을 닦는다. 어떤 두려워하는 법을 닦는가? 이른바 나쁜 이름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로서 나쁜 이름을 두려워하면 그는 온갖 허물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자들이 희롱하며 웃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고 술집에 들어가지 않으며, 술 파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아 그와 말하지 않고, 술을 즐기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아 그와 말하지 않으며, 도적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020_0506_c_02L또 과거에 큰 죄를 지은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으며, 악을 숨기고 독을 품은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항상 되지 않아 자주 도를 버리는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으며, 도박을 하는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광대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어린애를 가까이하지 않고, 여자에게 얽매인 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경솔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탐욕이 많은 이를 가까이하지 않고, 장사로 속이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교묘하게 속이는 장사로써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고, 못을 파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와는 길을 같이하여 한걸음도 가까이하지 않으며, 코끼리를 다루는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회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마부를 가까이하지 않고, 단견(斷見)을 가진 이와는 가까이하지 않으며, 계율이 없는 이와는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비구의 법을 잃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비구는 저런 사람들과 가까이한다. 반드시 그와 동행일 것이다.>
누구나 나쁜 사람 가까이하면 그도 곧 나쁜 사람 되리니 그러므로 그 나쁜 사람을 떠나 좋지 못한 업 행하지 말라.
020_0506_c_18L若人近不善, 則爲不善人, 是故應離惡,
莫行不善業。
어떠한 사람과 가까이하여 서로 자주 친근함을 따라 가까이함으로써 그 행이 같으리니 선하거나 혹은 선하지 않으리라.
020_0506_c_20L隨近何等人, 數數相親近,
近故同其行, 或善或不善。
누구나 선을 구하는 사람 선한 사람을 가까이하라. 그렇게 하면 즐거움 얻으리니 선이란 고통의 원인 아니다.
020_0506_c_21L一切人求善,
當近於善人, 如是能得樂, 善則非苦因。
선을 가까이하면 공덕 더하고 악을 가까이하면 고통 더하다. 그 공덕과 악의 모양을 지금 이렇게 간략히 말하였다.
020_0506_c_22L近善增功德, 近惡增尤苦, 功德及惡相,
今如是略說。
언제나 선인을 가까이하면 좋은 이름을 얻을 것이요 만일 악인을 가까이하면 그는 사람들의 천대 받으리.
020_0506_c_24L常近於善人, 則得善名稱;
若近不善人, 令人速輕賤。
020_0507_a_02L 언제나 그 선인을 친하고
저 나쁜 벗 멀리 떠나라. 선인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온갖 악업을 버릴 수 있다.
020_0507_a_02L常應親善人,
遠離於惡友, 以近善人故, 能捨諸惡業。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시 그 천자들을 위해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로서 일곱 가지 공덕이 있으면 나쁜 이름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대중을 떠나는 것이요, 둘째는 공양의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만족할 줄을 알아 시주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산골짝의 고요한 곳에 살면서 갖가지 선업을 다 거두어 잡기를 즐기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이 많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혹 촌락에 들어가더라도 술집에 가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장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이런 공덕이 있어 바른 행과 상응하면 나쁜 이름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니, 그러므로 무엇보다 나쁜 이름을 두려워해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나쁜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가 얻는 허물은 속인보다 더할 것이다. 마음대로 행하고 마음대로 말하면서 계율을 깨뜨리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런 계율을 깨뜨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한적한 곳을 즐기어 촌락이나 도시에 가까이 가기를 좋아하지 않고 만족할 줄 알기 때문에 남의 신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시끄러운 곳을 모두 멀리 떠나 조그만 허물에도 항상 두려워한다. 이렇게 나쁜 이름을 두려워하는 비구는 세간의 좋은 이름을 얻을 것이다.
020_0507_b_02L또 열셋째 선법은 많은 이로움이 있다. 그 선법이란, 이른바 법에 낙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 법은 매우 좋다. 만일 비구로서 집착을 떠나 청정하고 뜻이 순직하여 집착함이 없고 한적한 것을 즐겨 깨끗한 생활에 편안히 머무르면 그는 근심과 고뇌를 떠나 가장 안온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을 한 곳에 거두어 고액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욕설을 들어도 성내지 않으며, 기쁜 일을 당해도 기뻐하지 않고, 두려운 경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친족을 친해 스스로의 이익을 잃지 않고 하는 일을 다 성취한다.
과거에 지은바 온갖 악업을 즐거워하지 않고, 유희 가무 등을 즐겨 보지 않으며, 이 촌락에서 저 촌락으로,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도 편안하고 깨어도 편안한데, 그것은 낙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정하고 바른 행은 마치 아주 늙은 노인과 같으므로 악마도 그 틈을 엿보지 못한다. 그는 색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 등에 집착하지 않고 또 공양의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좋지 못한 각(覺)ㆍ관(觀)을 이미 버렸으므로 부지런히 끊어 그것을 다시 생기지 못하게 하고, 혹 나쁜 각ㆍ관이 생기면 곧 없애 버려 그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런 비구도 좋지 못한 각ㆍ관을 부지런히 없애거늘 하물며 추한 허물을 끊지 않겠는가?
세 가지 법이 있으니 마땅히 수행하여야 한다. 그 세 가지란, 이른바 이미 생긴 악법은 자비스런 마음을 방해하므로 그것을 끊어 버리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고, 생기지 않은 악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미 생긴 선법은 부지런히 닦아 익혀 더욱 늘리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바른 뜻이 깨끗하여 애욕을 끊으려 하고 염증을 내려 하며 안락을 구하려 하면 즐겨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마음으로 즐겨 집착하지 않으면 그는 가장 훌륭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항상 선정을 닦고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그 마음 청정하기 때문에 뜻이 밝아 어지럽지 않다.
020_0507_b_21L常修於禪定, 心無所樂著, 心常淸淨故,
意正不錯亂。
만일 누구나 바르게 생각하면 어떤 악도 물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온갖 허물 떠남으로써 그는 안온을 얻었다 한다.
020_0507_b_23L若人正憶念, 諸惡不能染,
以能離諸過, 是名得安隱。
한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면 각ㆍ관도 그것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나쁜 각ㆍ관을 떠남으로써 그것을 편안히 머무름이라 한다.
020_0507_b_24L一心正憶念,
覺觀莫能亂, 以離惡覺觀, 是名善安住。
020_0507_c_02L
만일 누구나 그 뜻이 고요하여 언제나 열반을 즐거워하면 그 사람의 모든 감관은 그 온갖 악을 멀리 떠나리.
020_0507_c_02L若人意寂靜, 常樂於涅槃, 其人諸根中,
遠離諸不善。
만일 어떤 수행하는 사람으로 선정 삼매의 즐거움을 얻으면 그것은 다 한마음으로 생각하는 수행으로써 얻은 것이다.
020_0507_c_04L若有修行者, 得禪三昧樂,
皆由一心念, 修行之所得。
만일 혼자 즐거워하는 비구의 그 즐거움 마음속에서 나오면 그 즐거움은 모든 즐거움 중에서 가장 훌륭해 짝할 것 없다.
020_0507_c_05L若樂獨比丘,
樂從內心生, 此樂於諸樂, 第一無等倫。
일심으로 생각을 매어 둔 사람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해 온갖 허물의 그물을 벗어나 그 뜻은 언제나 고요하니라.
020_0507_c_06L一心係念者, 其心則淸淨, 得脫諸過網,
心意常寂滅。
항상 일심으로 생각을 잡아매고 다섯 감관을 거두어 지니면 그 사람의 지혜의 물은 능히 욕망의 독한 불 끈다.
020_0507_c_08L常一心係念, 攝持於五根,
斯人智慧水, 能滅愛毒火。
욕망의 결박을 벗어난 사람 언제나 청정한 즐거움 얻나니 현재에 얻은 훌륭한 그곳은 다하거나 또 파괴되지 않으리.
020_0507_c_09L解脫愛縛人,
常得淸淨樂, 現前得勝處, 無盡亦無壞。
각ㆍ관이 그 마음 어지럽히면 여러 곳에서 생사를 받지마는 한 생각의 인연과 상응하는 삼매의 힘은 그것을 껴잡으리.
020_0507_c_10L覺觀亂其心, 處處受生死, 一念緣相應,
三昧力能持。
그러므로 이 훌륭한 도는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고 한마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능히 마왕의 군사를 부순다.
020_0507_c_12L是故此勝道, 能到涅槃城,
以一心念故, 能破魔王軍。
이 견고한 지혜의 광명은 달리는 마음의 말을 얽매어 가장 좋은 저 언덕의 청정결백한 곳에 이르게 하리.
020_0507_c_13L堅固智光明,
繫縛心逸馬, 到第一彼岸, 無垢淸淨處。
가장 씩씩하고 건장한 사람 수행하여 저 언덕에 이르고 한마음으로 생각을 맴으로써 능히 무너지지 않는 곳에 이른다.
020_0507_c_14L第一勇健者, 修行到彼岸, 以一心係念,
能至不壞處。
이렇게 공작왕 보살은 천자들을 위해 한량없이 설법하여 그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도솔타천과 야마천을 위해서 끊임없이 설법하여 그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려고 그 천자들에게 말한다. ‘일체의 선법 가운데 제일의 참 법은 이른바 열넷째 법이다. 혼자 다니는 비구는 선업을 행하기를 좋아하여 숲 속으로 가서 적멸의 행을 잘 행한다. 즉 혼자 다니는 비구는 고요함으로써 마음을 제어하여 아무 두려움이 없이 모든 곳을 즐거워한다. 그리하여 산골짝이나 산굴이나 풀더미 결에 있으면서 치우쳐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이 정직하다.
020_0508_a_02L혼자 다니는 비구에게는 일곱 가지 이익이 있으니, 이른바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만족할 줄을 알아 항상 마음이 기쁜 것이요, 둘째는 마음이 항상 청정한 것이며, 셋째는 세간의 존경과 하늘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요, 넷째는 나쁜 번뇌를 떠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선법이 늘어나는 것이요, 여섯째는 한 마음과 바른 생각으로 몸ㆍ입ㆍ뜻 등을 깨끗이 하여 해탈이 나타나는 것이요, 일곱째는 더러운 법을 떠나 깨끗한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 다니기 때문에 한량없고 처음이 없이 흘러 다니는 번뇌의 원수를 쳐부순다. 혼자 다니는 비구는 한마음과 바른 행으로 번뇌를 두려워하고 조그만 악에도 두려워하여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고 위의가 고요하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그 천자들을 이롭게 하려고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소란스럽고 견고한 악은 어떤 큰 힘으로도 다루기 어렵다. 용맹스럽게 마음을 억제하면 그는 제일의 즐거움 얻으리.
020_0508_a_11L輕擾堅牢惡, 大力難調伏, 勇健調伏心,
則得第一樂。
이런 세 가지 허물은 온갖 세간을 파괴하나니 지혜의 물로 그것을 꺼 버리면 그는 제일의 즐거움을 얻으리.
020_0508_a_13L如是三種過, 破壞諸世閒,
智水能除滅, 則得第一樂。
사람으로 법을 사랑하지 않으며 사람이라 하지만 사람 아니다. 그러므로 참 도에 머무르지 못하고 열반의 성에도 이르지 못한다.
020_0508_a_14L若人不愛法,
雖人而非人, 不住於眞道, 不至涅槃城。
이미 공덕이 의지하는 곳 이 사람의 몸을 얻었거니 어찌하여 이 배에 올라 온갖 존재의 바다 건너지 않는가.
020_0508_a_15L旣得此人身, 功德所依處, 云何不昇栰,
度諸有流海?
일체 중생들 목숨은 번개나 돌리는 불바퀴 같고 또 저 건달바의 성과 같아 빨리 지나 잠깐도 머물지 않는다.
020_0508_a_17L一切衆生命, 如電旋火輪,
如乾闥婆城, 速過不暫停。
이 몸은 찰나찰나 무너지므로 언제나 늙어 죽음 두려워한다. 그것 빨리 멸해 머무르지 않나니 어찌하여 이 몸의 교만을 일으키랴.
020_0508_a_18L是身念念壞,
常畏於老死, 速滅無堅住, 如何起身慢?
이 몸을 병의 성[病城]이라 하고 큰 근심과 슬픔이 있는 곳이며 또 선과 악의 땅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몸이라 한다.
020_0508_a_19L此身爲病城, 是大憂悲處, 善不善之地,
是故名爲身。
누구나 보시ㆍ지계ㆍ지혜로 그 몸을 장엄하면 그는 인간에서 가장 훌륭해 그 선의 과보를 성취하리라.
020_0508_a_21L若人施戒智, 而自莊嚴身,
於人中最勝, 成就善果報。
보시와 지계와 지혜와 정진ㆍ자비ㆍ인내ㆍ억제 등 이 일곱 가지 진리를 가지면 그는 저 부처님과 짝하리.
020_0508_a_22L若人有七眞,
其人與佛等, 施戒智精進、 悲忍善調伏。
만일 사람으로 한량없는 셀 수 없는 겁(劫) 동안을 6바라밀을 닦으면 그 사람을 일러 부처라 하리.
020_0508_a_23L若人於無量, 不可數時劫, 修六波羅蜜,
斯人名爲佛。
020_0508_b_02L 만일 사람으로 욕심을 버리면 그는 삼계에서 제일이니라.
온갖 욕심을 버렸으므로 그는 언제나 큰 안락 얻으리.
020_0508_b_02L若人捨離欲, 三界最第一,
以捨諸欲故, 常得大安樂。
만일 누구나 욕심에 탐착하면 온갖 고통 항상 그 앞에 나타나리. 욕심은 온갖 고통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그것을 버려야 한다.
020_0508_b_03L若人貪著欲,
衆苦常現前, 欲爲衆苦因, 是故應捨離。
이렇게 공작왕 보살은 도솔타천과 야마천을 위해 이 법을 말하였다. 그때에 공작왕은 다시 그 천자들을 위해 열다섯째의 이로운 법을 말한다.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들로서 그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이익을 얻을 것이다. 만일 그 마음이 산란하면 그는 그 뜻을 잘 거두어 바로 머무르게 한다. 즉 항상 함께 깨끗한 행을 수행하는 이를 친근하고 늘 부지런히 정진하여 안온을 구하고 온갖 나쁜 길을 떠난다.
만일 비구로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여섯 감관을 제어하여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생사를 두려워하여 일체 악법을 버리며 일체의 악법을 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안락을 얻는다. 만일 비구로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등에 대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른바 비구가 마음으로 바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바로 생각하기 때문에 선법은 자꾸 늘어나는 것이다. 바로 생각하는 사람은 생사를 좋아하지 않고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즐겨 삼매를 닦는다.
생각이 바르기 때문에 도를 얻고 이미 도를 얻고는 온갖 행을 부지런히 닦으며, 부지런히 수도함으로써 온갖 행을 일으킨다. 바로 생각하기 때문에 도의 결과를 얻고, 마음으로 늘 바로 생각하여 도를 닦아 익히기 때문에 온갖 결박을 끊고 온갖 번뇌를 멸한다. 어떤 결박을 끊는가? 이른바 애욕의 결박ㆍ분노의 결박ㆍ무명의 결박ㆍ교만의 결박ㆍ질투의 결박ㆍ인색의 결박 등이니, 이런 결박을 다 끊는다. 어떤 번뇌를 없애는가? 이른바 욕심의 번뇌ㆍ분노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소견의 번뇌 등이니, 이런 번뇌를 다 없앤다. 이런 결박과 번뇌의 큰 힘 때문에 중생들은 온갖 길에 흘러 들면서 삼계에 포섭된다. 만일 마음이 산란하지 않아 도를 보기와 도를 닦기를 생각하면 그는 그것을 다 소멸시킬 것이다.
020_0508_c_02L만일 사문ㆍ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안온을 얻고자 하면, 일체 선ㆍ악의 법은 그 마음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도에 정진해야 한다. 존재의 허물을 두려워해 마음을 껴잡고 생각을 바루면 번뇌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원래로 흘러 도는 번뇌의 빽빽한 숲을 없애는 것으로서 바른 생각 이외에 다른 법은 없다.’ 그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의 일체지(一切智)의 게송을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