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 다른 지신(地神)이 한 병의 청량한 물을 가지고 마왕 위에 뿌리며 이런 말을 하였다. “너 마왕 파순아, 빨리 일어나 너희 본궁으로 달아나라. 이제 너 때문에 마침 갖가지 병기들이 와서 너를 살해하고자 하고 마디마디 너를 토막치려 한다.” 그러나 그 마군들은 본래 모습에서 괴상한 몸으로 변현해 와서 갖가지 병기를 가지고 이렇게 놀라게 하고는 다시는 다른 형상을 나타내지 못하고 본래 처소에 돌아갔다. 그들은 각각 서로 아득하여, 잃어버린 지 7일이 지난 뒤에 만나기도 혹은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서로 만난 것들은 각각 부여잡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곡하며, 혹은 ‘형이여’, ‘동생이여’, ‘누나여’, ‘누이여’하고 곡하며 자기들끼리 말했다. “이제 이 큰 액(厄)을 만났으니 이것은 우리들의 불행이다. 우리들이 지금 목숨을 부지하여 온 것도 매우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때 이런 게송이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이 나[我]를 집착할 때엔 마음 있기 때문에 공포를 낼 것이나 석가모니 큰 존자께서는 모든 법이 평등함을 관하나니 12가지 인연이 서로 이어 남으로 마음과 경계가 공하여 참됨이 없고 삿된 마(魔)를 보아도 놀람이 없다. 부질없이 신체만 피곤하여서 나무나 돌, 칼과 창 병기들을 모두 버리고 권속들도 달아나 의지할 곳이 없네.
이때 마왕 파순의 장자 상주는 보살의 발에 정례하고 참회를 구하여 이렇게 말했다. “크게 착하신 성자(聖子)여, 저의 부왕의 고백과 사죄를 들어 주소서. 어리석고 천박하기 어린아이 같아서 지혜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이제 성자를 뇌란시키려고 마군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갖가지 모양을 나투어 성자를 위협했습니다. 제가 앞서 아버지께 충정한 마음으로 아뢰었습니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모든 술법을 잘 안다 해도 저 실달태자를 항복시키지 못하는데 하물며 우리겠느냐’고. 성자께서는 부디 저의 아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의 아비는 지혜가 없어 도리를 모르고 이렇게 대성왕자를 괴롭혔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대성왕자여, 부디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옵소서.”
020_0786_c_02L이때 모든 하늘들 중에 보살에게 믿음을 낸 이들이 허공과 지상에서 혹은 여러 곳에서, 모두 기쁨이 몸에 가득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리리 기기 리리’하고 부르짖자 그 소리는 사방 허공에 가득 차 울렸다. 온갖 의상(衣裳)을 희롱하며 말하였다. “오오 희유하도다 보살이여, 이제 모든 마와 그의 군사들을 항복시키셨도다.” 하고 하늘의 음악을 짓고 하늘의 노래를 지어서 보살을 찬탄하였다. 또 하늘의 꽃 만다라ㆍ마하만다라ㆍ만수사ㆍ마하만수사ㆍ우발라ㆍ구물두ㆍ발두마ㆍ분타리꽃들과 하늘의 전단 가루향을 보살 위에 뿌렸다. 뿌리고 또 뿌리고 비내리고 또 비내렸다. 게송이 있었다.
보살이 이미 마왕을 항복 받자 이 대지는 6가지로 진동했네. 중생이 무명의 어둠에 빠졌는데 대성의 신통한 빛은 고루 비추네.
020_0786_c_13L菩薩旣降伏魔王, 此之大地六種動,
衆生沒在無明暗, 大聖神光普照明。
하늘 땅이 열려 해와 달이 빛나듯 마치 부녀자가 얼굴을 장엄하듯 허공에서 갖가지 꽃비를 내렸네. 만다라ㆍ만수사와 온갖 꽃들을.
020_0786_c_15L天地開朗日月輝, 猶如婦女莊嚴面,
虛空下種種花雨, 曼陁羅等及餘花。
이때 또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하늘들 수천 만억과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과 제석천왕 등도 모두 다 크게 기뻐하며……온몸 가득 기쁨에 차 어쩔 줄 몰라 하며 합장하고 보살에게 정례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이 성자께서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리라.” 이때 보리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라용왕이 있었는데 곧 게송으로 보살을 찬탄했다.
020_0787_b_02L 이때 보살은 이미 일체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독한 가시를 빼내고 승리의 깃대를 세우고 금강좌(金剛座)에 앉아서 모든 세간의 다투는 마음을 멸하였다. 다투는 마음을 멸하고 나서 안팎으로 조복하고 마음이 청정한 행으로 일체 세간 중생과 안락을 얻게 하고자 하였으며, 일체 악한 중생에게 자비심을 내게 하고 그들에게 맺힌 때[垢]를 끊어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수면과 얽힘과 덮임을 제멸하니, 마음에 청정을 얻어 광명이 앞에 나타나고 바른 생각이 원만하며, 또한 중생에게도 모든 수면과 덮임의 장애를 끊게 하였다. 스스로 일체 희롱을 끊고 없애 청정한 마음을 얻어 탁하고 어지러움이 없으며, 또한 중생에게도 일체 희롱하는 마음을 멸하여 청정을 얻게 하였다. 스스로 일체 의심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끊고 어둡고 나쁜 행을 떠나서 선악 일체법 가운데 의심이나 걸림이 없이 청정한 마음을 얻었다.
020_0787_c_02L보살은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마음을 끊고 나자 번뇌가 점점 엷어졌다. 왜냐하면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지혜를 덮고 막기 때문이며, 또 지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열반으로 가는 미묘하고 착한 길을 막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체를 다 버리고 모든 욕심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안팎을 분별하여 생각하고 관찰하자, 마음이 적정하여 희락(喜樂)을 증득하고자 초선법에 들어가 행하였다. 그때 보살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이미 처음 증상심(增上心)을 증득하여 안락 미묘한 법을 얻었으며, 마음이 방일하지 않으니 마침내 바른 생각으로 마을을 버리고 떠나 아란야를 의지하여 행하는 법을 다 얻으리라.’ 이때 보살은 모든 분별관(分別觀)을 버리고 청정한 속마음에 분별이 하나도 없게 하려고 삼매에서 환희락(歡喜樂)을 내고 나서 제2선법(禪法)을 증득하여 행하였다.
그때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지금 이미 이 둘째번 증상심을 내어……모든 악한 것을 버리고 모든 행을 이루고 2선에 들었도다.’ 그때 보살은 환희를 떠나고 사(捨)하는 행이 청정하여 정념(正念)과 정혜(正慧)로 몸에 안락을 받았다. 성인들이 찬탄한 대로 모든 악을 버리고 이미 안락을 얻어 이렇게 증상하여 제3선법을 증득하여 행하였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내가 셋째로 얻은 증상심이다. 아란야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때 보살은 낙(樂)과 고(苦)를 버리고자 하여, 앞에서 고락에 대한 분별을 버렸듯이 괴로움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모두 버리고서 바른 생각이 청정하여 제4선법을 증득하여 행하였다.
020_0788_a_02L이때 보살은 이렇게 한 마음이 청정하고 때[垢]가 없으며 막힘도 없고 가리움도 없었다. 모든 괴로움과 근심을 없앴으며 조화롭고 부드럽게 모든 할 일을 이미 결정하였다. 그 날 밤 초경(初更)에 몸의 신통을 이루려고 갖가지 신통의 경계를 받으려 하였다. 즉 한몸이 많은 몸이 되고 다시 많은 몸이 한 몸이 되며, 한 몸이 된 뒤에 위 허공 중에서 없어졌다가 밑에서 나오고 밑에서 없어졌다가는 위에서 나타나서, 숨고 나툼을 마음대로 하고 이리저리 어디나 나타남도 그러하였다. 산 벼랑과 석벽을 뚫고 지나가도 걸림이 없이 생각하는 대로 갈 수 있었다. 벽에 들어 갔다가 곧 나오며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 마치 안개 속에 꺼졌다가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도로 꺼지듯 하였다.
또 물에 들어가듯 땅에 들어가고 땅을 밟듯 물을 밟으며, 날아 다니는 새처럼 허공에 출몰하였다. 큰 불무더기 같은 연기를 내고 불꽃을 내며, 위덕이 가장 높고 위풍당당한 해와 달을 손바닥으로 잡아서 어루만지며 장대한 몸을 나투어 범천에까지 이르게 했다. 마치 솜씨좋은 공장과 그 제자들이 깨끗한 금을 가지고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 때, 마음만 먹으면 곧 이루어지고 값이 싼 지 비싼 지를 가려내듯 했다. 옹기장이와 그 제자들이 진흙 덩어리를 뭉쳐 바퀴 위에 놓고 무슨 그릇을 만들고자 하면 곧 이루며 그 값을 알 듯 하였다. 잘하는 대목과 그 제자들이 썩지도 마르지도 않은 나무를 가려서 베고 무슨 그릇을 만들고자 하면 곧 이루며 그 값을 알 듯 하였다. 상아(象牙) 기술자와 그 제자들이 좋은 상아를 얻어 무슨 그릇을 만들고자 하면 곧 만들고 그 값을 알 듯 하였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였다. 이렇게 청정한 마음과 탁하고 더러움이 없는 마음과 막히고 걸림이 없는 마음과 근심과 걱정이 없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업을 성취하는 마음과 참으로 적정한 마음을 성취하였다. 그리고는 초경에 갖가지 신통을 닦아 익히고 지혜의 마음을 성취하여 갖가지 신통의 경계를 나타내었다. 즉 한 몸이 많은 몸이 되며……몸이 범천에 이르는 등 보살은 마음에 이런 적정과 이런 청정과 이런 때 없음과 이런 걸림 없음을 얻어 일체 번뇌의 근심과 누를 제멸하고 모든 업을 짓고 나자 마음에 적멸(寂滅)을 얻었다.
020_0788_b_02L보살은 이날 밤 초경에 다시 숙명(宿命)의 신통을 증득해 알고 심행(心行)을 성취하고자 하였으니 자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하는 수를 알고자 했다. 이른바 몸을 받아 한 번 난 곳, 두 번 난 곳ㆍ셋ㆍ넷ㆍ다섯ㆍ여섯ㆍ일곱ㆍ여덟ㆍ아홉ㆍ열ㆍ스물ㆍ서른ㆍ마흔ㆍ쉰ㆍ백ㆍ2백ㆍ천ㆍ만ㆍ한량없는 억만ㆍ반겁(劫)ㆍ소겁(小劫)ㆍ중겁ㆍ대겁ㆍ한량없는 소겁ㆍ한량없는 중겁ㆍ대겁 등에 내가 옛날 어느 곳에 나고 내 이름은 누구이며 어떠한 종성이며 어떤 종류이며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어떤 복락을 누렸으며 수명은 얼마였고 어떻게 죽었으며 또는 그곳에 나고 그곳에 났다가 다시 죽었는가 하는 등이었다.
이때 보살은 이러한 상(相)과 이러한 행(行)으로 갖가지로 숙세(宿世)를 알았으니 자신의 숙세는 물론 다른 사람의 숙세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갖가지 숙명도 알았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나와 다른 마을에 이르러 그 길을 갈 때 어느 곳에 앉았으며 어느 곳을 갔으며 어느 곳에서 잠자고 어느 곳에서 말하고 어느 곳에서 말이 없었음을 알며, 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저 마을의 거리를 알며 길을 갈 때 어느 곳으로 가고 어느 곳에 앉고 내지 어느 곳에서 자고 눕고 말하고 말 없었으며, 저 마을에 이르렀다가 이 마을로 돌아온 것도 이렇게 생각하자 다 알았다. 이 마을에서 얼마간 지나 저 마을에 갔는지, 또 어느 곳에서는 얼마간 머물고 얼마간은 말하고 얼마간은 말이 없었는지, 얼마간을 지나 또 어느 읍(邑)에 갔는지, 또 그곳에서 알마간을 가고 앉고 일어나고 눕고 말하고 묵묵하고 머물렀는지를 알았으며 내지 다른 마을에 이른 것까지 다 이렇게 알 듯 보살도 그러하였다.
보살은 이렇게 났던 것을 기억해 내고 곳곳에서 모든 중생들이 모든 생을 받던 가운데 자비심을 성취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이렇게 알았다. ‘이것은 나의 친구요, 이것은 나의 외인(外人)이다. 이 친구를 버리고 또 어느 곳에 난 것과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유전(流轉)하여 쉬지 않음이 마치 풍차(風車)와 같고 파초와 같아서 결정코 실다움이 없고 번뇌는 무상(無常)하다. 이런 이치는 결정적인 것이다’
020_0789_a_02L보살은 이렇게 정한 마음,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때[垢]가 없고 이렇게 번뇌가 없고 이렇게 부드럽고 정업(靜業)을 지을 만한 마음으로 밤중이 되자 천이통(天耳通)를 증득해 알고자 하여 이 마음을 내었다. 그는 천이가 매우 청정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귀보다 뛰어나 갖가지 소리를 들었다. 즉 지옥의 소리ㆍ축생의 소리ㆍ하늘 소리ㆍ인간의 소리ㆍ먼 데 소리ㆍ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마을ㆍ성읍ㆍ국토나 혹은 저자 가운데 어떤 사람이 높은 집이나 누각 위에서 소리를 듣는 것과 같았다. 또 귀가 청정한 사람이 소라ㆍ고동 소리ㆍ큰 북 소리ㆍ작은 북 소리ㆍ장고 소리ㆍ공후 소리ㆍ비파 소리ㆍ젓대ㆍ퉁소ㆍ생ㆍ거문고 등 갖가지 소리를 듣거나 노래소리ㆍ춤추는 소리ㆍ웃는 소리ㆍ우는 소리ㆍ여자 소리ㆍ장부 소리ㆍ동자소리ㆍ동녀의 소리를 듣듯이, 보살도 이와 같이 적정하고 청정하고 때가 없고 번뇌가 없고 탁함이 없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 업을 성취할 만한 마음으로 그 밤중에 갖가지 소리와……일체 지옥의 소리를 들었다.
이때 보살은 적정하고 청정하여 때가 없고 번뇌가 없어 밤중이 되자 천안(天眼)을 증득하여 성취하였으니 보통 사람의 눈을 능가하여 모든 것을 다 보았다. 목숨을 마치고 타락하는 중생 혹은 나는 중생, 천상의 중생과 하계(下界)의 중생, 단정한 중생과 추하고 비루한 중생, 혹 악도에 떨어진 일체 중생ㆍ선도에 나는 일체 중생ㆍ가는 사람ㆍ머무는 사람이며 혹은 업을 지은 사람들이 지은 업대로 되는 것을 모두 눈으로 환히 보았다. 또 이러한 중생들이 지은 부정(不淨)한 신업(身業)과 의업(意業), 사승(師僧)을 훼방하거나 사견(邪見)에 물들어 사견 때문에 악업을 지으며 이런 인연으로 목숨을 버리고 악도 지옥에 나서 모든 고뇌를 받는 것을 다 알았다. 어떤 중생은 구업(口業)을 지어 갖가지 모든 악도의 괴로움을 받는데, 이들은 부정한 구업이 구족한 인연으로 축생에 태어나 모든 고뇌를 받는다.
020_0789_b_02L이런 중생은 몸으로 악업을 행하여 몸의 악업이 구족한 인연으로 뜻의 악업을 지으며, 뜻의 악업을 갖추므로……모든 성인을 훼방하는 약간의 사견을 지으며, 사견으로 인연하여 목숨을 마치고 몸을 버린 뒤 아귀에 떨어져 아귀의 괴로움을 받는다. 이런 중생이 몸의 정업(淨業)과 입의 정업을 행하여 모든 성인을 훼방하지 않고 정견(正見)을 행하고 정견의 업을 지으면, 이런 인연으로 목숨이 다하면 몸을 버리고 천상에 태어난다. 어떤 중생들은 몸과 입으로 청정한 행실을 지어 일체가 구족함으로써 범하지 않고 모자람도 없고 모든 성인을 훼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갖는다. 이런 정견업을 인연하여 목숨이 다하면 몸을 버리고 인간에 나는 것이다. 보살은 이렇게 천안(天眼)이 청정하여 모든 인간을 능가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타락하는 때와, 혹은 생을 받을 때와, 상계(上界) 중생이며, 중하(中下) 중생이며, 단정하고 추루한 것과, 혹 몸에 향기가 있거나 냄새가 나고, 혹 악도에 이르거나 선도에 이르러 지은 업대로 되는 것을 진실하게 다 알았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라ㆍ성읍ㆍ마을ㆍ저자 요란스러운 곳에서 큰 누대(樓臺)나 높은 누각에 앉아 청정한 천안으로 모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았다. 동쪽에서 오거나 혹 서쪽에서 오거나 서에서 동으로 향하거나 혹 동에서 서로 향하거나 남에서 북으로 향하거나 북에서 남으로 향하거나 남쪽에서 오거나 북쪽에서 오며, 오거나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그 가운데서 전전하고 혹은 거꾸로 가며 혹은 제대로 감을 보듯 하였다. 보살은 이렇게 적정하고 청정하며 때도 없고 번뇌도 없이 부드러운 마음과 업을 성취하는 마음으로 그 밤중에……모든 중생들이 업을 따라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020_0789_c_02L 지옥에서 받는 업은 고통도 심하고 축생들은 각각 서로 잡아 먹으며
아귀는 항상 주리고 목마른 걱정 인간은 재물 구하기 힘들기도 하네.
020_0789_b_24L地獄受業苦極殃, 畜生各各相噉食,
餓鬼恒常患飢渴, 人閒困厄求資財。
천상의 보가 다하면 사랑을 이별하나니 이런 고통 무거워라 비길 데 없네. 굴러 도는 모든 중생 무리들은 곳곳마다 즐거운 때가 없도다.
020_0789_c_03L天上報盡愛別離, 此苦最重無方喩,
展轉一切衆生類, 處處無有歡樂時。
이것은 죽음 귀신의 깊은 못이요, 또한 번뇌의 바다 밑이라. 중생들 거기 빠져 나올 곳 없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돌기만 하네.
020_0789_c_05L此名死命鬼深淵, 亦是煩惱海根底,
衆生沒溺無出處, 輪轉此彼來去行。
이렇게 5도 가운데를 관찰하면서 천안으로 빠짐없이 보시니 번뇌는 언제나 참됨이 없어 잎잎이 찢어진 파초와 같네.
020_0789_c_07L如是觀察五道中, 以於天眼遍能見,
煩惱始終無有實, 猶如葉葉破芭蕉。
보살은 이렇게 고요한 마음과 이렇게 깨끗한 마음과 때 없는 마음으로 이렇게 모든 악을 멀리 떠나 마음이 부드러워 업을 성취할 만하였다. 적정을 얻고 나서 후야(後夜)가 다하려 할 무렵 마음으로 여의통(如意通)을 증득해 알고자 하자 저절로 이루어졌다. 그러고는 남의 뜻도 알아서 어느 곳에 나고 무슨 일을 생각하는지 일체를 두루 여실히 알았다. 그리하여 어떤 중생이 욕심을 내고 욕행(欲行)을 하고 욕사(欲事)를 하고자 하면 사실대로 알고, 욕심을 떠나려는 마음으로 욕심을 멀리 떠나려 하면 그것도 사실대로 알았다. 만약 성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을 내면 그것도 환히 알고, 화를 여의고자 하여 화를 멀리 떠나면 그것도 환히 알았다. 어리석은 마음이 있어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그것도 환히 알았고,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어도 환하게 알았다. 이렇게 간략하게 말하거니와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함을 여의고자 함과……유위(有爲)와 무위, 하등과 상류(上流), 고요하고 어지럽고, 넓고 좁으며, 크고 작으며, 끝이 있고 끝이 없으며, 위가 있고 위가 없으며, 정(定)을 얻고 정을 얻지 못하며, 해탈하고 해탈하지 못함을 사실대로 다 알았다.
020_0790_a_02L그래서 마치 장부나 부녀자가 한창 젊었을 때 항상 몸을 꾸미기를 즐겨, 몸을 꾸미고서 깨끗한 거울이나 깨끗한 물 위에 자기 얼굴을 비춰 그 모양을 다 보듯 하였다. 보살도 이렇게 적정하여 그 마음이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때가 없고 번뇌가 없이 부드럽고 조화되고 업을 성취할 만하였다. 적정함을 얻고 나서 다시 후야(後夜)에 청정한 마음으로 숙명지통(宿命智通)을 증득하려 하였다. 이렇게 자기 마음뿐만 아니라 남의 마음도, 어디서 발심하고 어느 곳에서 마음을 일으켰는지, 마음과 마음을 두루 다하여 사실대로 환히 알았다. 그리하여 욕심이 있는지 욕심을 떠났는지를 사실대로 환히 알고……해탈했는지 해탈하지 못했는지도 이렇게 알았다.
보살은 이렇게 정(定)한 마음과 청정한 마음과 때와 더러움이 없는 마음을 얻어 일체 악을 여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업을 성취할 만하였다. 이미 적정(寂靜)을 얻고 다시 새벽에 누가 다한 신통[漏盡神通]을 증득해 알고자 하여 속으로 지혜의 마음을 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모든 중생들은 번뇌의 바다에 빠졌구나. 끊임없이 생ㆍ노ㆍ병ㆍ사 하여 여기서 목숨이 다하고 저기에 이르며, 뒤에 생을 받을 때 도로 이렇게 모든 괴로움을 겪으면서 생ㆍ노ㆍ병ㆍ사 등의 괴로움을 떠날 줄 모르는구나.’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어떤 방편을 써야 이런 모든 괴로움을 여의며 어떤 업행(業行)을 지어야 생ㆍ노ㆍ병ㆍ사를 버리고 저 언덕에 이를 것인가?’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세간은 생사의 바다에 빠져서 끊임없이 죽고는 다시 생을 받네. 이 늙고 병듦 온갖 고통 얽혔으나 어리석고 미련해 떠날 줄 모르네.
020_0790_a_21L世閒生死沒溺海, 數數死已復受生,
爲此老病衆苦纏, 愚迷不能得出離。
020_0790_b_02L 보살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다시 생각하였다. ‘이 늙고 병들고 죽음은 어디서 오는가. 어떤 인연으로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는 것인가?’ 보살이 이렇게 생각할 때 늙고 병들고 죽음이 생 때문에 있음을 알았다. ‘늙고 병들고 죽음은 태어남[生]이 있는 까닭에 노ㆍ병ㆍ사가 따르는 것이다.’
보살은 또 생각하였다. ‘태어남[生]이란 어디서 왔으며 어떤 인연으로 태어남이 있는 것인가?’
보살은 또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무명을 인연한 까닭에 제행이 있고 제행을 인연한 까닭에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한 까닭에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한 까닭에 6입이 있고 6입을 인연한 까닭에 촉이 있고 촉을 인연한 까닭에 ‘수’가 있고 수를 인연한 까닭에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한 까닭에 취가 있고 취를 인연한 까닭에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한 까닭에 생이 있고 생을 인연한 까닭에 늙음이 있고 늙음을 인연한 까닭에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온갖 고뇌 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괴로움은 각각 서로 인연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보살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적도 없고 스스로 본 적도 없었으나 법에 따라 눈을 내고 지혜(智)를 내고 뜻을 내고 혜(慧)를 내고 밝음을 내었다.
020_0791_b_02L보살은 이렇게 옛적에 들은 적은 없으나 이런 법 가운데서 눈이 나고ㆍ지(智)가 나고ㆍ뜻이 나고ㆍ밝음이 나고ㆍ빛이 나고ㆍ혜(慧)가 났다. 보살은 이러한 정(定)한 마음, 청정한 마음, 때 없는 마음, 모든 번뇌를 여읜 부드러운 마음, 업을 성취할 만한 마음을 얻었다. 이미 고요한 마음을 얻고 이 무명이란 것을 진실하게 알고 또 무명의 인이 이렇게 나는 것을 알았으며 또 무명이 이렇게 멸함을 알고 이 무명이 다 멸한 상(相)을 진실하게 깨달았다. 이미 바른 길을 얻어 참다이 알았으며,……간략하게 말하거니와 식ㆍ명색ㆍ6입ㆍ촉ㆍ수ㆍ애ㆍ취ㆍ유ㆍ생ㆍ노ㆍ병ㆍ사 들을 진실하게 알았다. 이것은 일체 노ㆍ병ㆍ사의 집(集)이다, 이것은 일체 노 병 사의 멸함이다,. 이것은 일체 노ㆍ병ㆍ사가 멸하고 나서 도를 얻음이다 하는 것을 다 알았다. 이 고제(苦諦)의 집임을 진실하게 알았고 이 고제가 멸함도 진실하게 알았고 이 고제가 멸함으로써 <도>를 이룸을 진실하게 알았으며 이런 누(漏)를 여실(如實)히 알았고, 이렇게 누가 모이고, 이렇게 누가 멸하고, 이렇게 누가 멸하므로 <도>를 이룸도 여실히 알았다. 이것은 욕루(欲漏)라는 것을 여실히 알고 이것은 유루(有漏), 이것은 무명루(無明漏)라는 것을 여실히 알았으니 이 모든 누를 남김없이 다 멸해야 모든 유를 끊어 버린다.
020_0791_c_02L예컨대 성읍(邑)이나 성(城) 곁이나 혹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못이 하나 있는데 그 물이 서늘하고 감미롭고 청정하여 더럽거나 탁함이 없으며 물이 항상 차서 그 언덕과 평평하다. 또 언덕 가에는 모든 나무가 많이 둘러 쌓여 장엄하였으며 못 안에는 조개며 소라ㆍ큰 자라ㆍ남생이ㆍ거북ㆍ자라 등 물 안에 사는 생물들이 있고 혹은 돌과 모래가 깔려 있다. 뱀장어ㆍ송어ㆍ방어ㆍ메기ㆍ가물치ㆍ마갈어 등 모든 고기들이 물 속에서 동ㆍ서남북으로 이리저리 달리며 먹을 것을 찾아 머물기도 하고, 서로 쫓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언덕 위에서 그들 모든 생물을 보고 이것은 조개요 이것은 소라ㆍ이것은 거북ㆍ이것은 악어ㆍ이것은 자라ㆍ이것은 모래ㆍ이것은 돌ㆍ이것은 고기ㆍ이것은 벌레ㆍ마갈 등인데, 어떤 것들은 먹을 것을 구하고, 얼마쯤은 엎드려 자며 얼마쯤은 동서남북으로 달아나고 얼마쯤은 서로 쫓는 것을 환히 보고 알 듯이, 보살도 마음이 적정하여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때가 없고 이렇게 번뇌가 없고 이렇게 부드럽게 모든 업을 성취할 만하였으며 이미 적정을 얻어 이것은 무명이란 것을 여실히 알고 이것은 무명집(無明集)이다, 이것은 무명멸(無明滅)이다, 이것은 무명이 멸함으로써 도를 이룬다는 것을 여실히 알았다.……간략히 말하면 여기서 모든 누가 남김없이 멸하였다.
보살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마음이 욕누(欲漏)로부터 해탈을 얻고 마음이 유루(有漏)로부터 해탈을 얻고 무명루(無明漏)에서 해탈을 얻었다. 해탈을 얻고 나자 혜해탈(慧解脫)이 생겼고, 그러자 곧 나의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서고 할 일을 이미 다해서 마침내 다시는 후세의 태어남[生]을 받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때 밤의 3분이 이미 지나고 4분에 이르러 샛별이 솟을 때였는데, 밤은 아직 적정(寂靜)하기만 하여, 다니는 것이나 다니지 않는 것들이나 모든 중생이 긴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바가바께서는 곧 지견(智見)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셨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020_0792_a_02L 바가바께서 지견을 얻었을 그때 이 세간의 범천궁ㆍ마왕궁이며 천상ㆍ인간ㆍ사문과 바라문 등의 세상은 모두 크게 밝았다. 소철위산(小鐵圍山)과 대철위산은 본래 항상 어두워 이제껏 해와 달의 광명을 보지 못했으며 해와 달의 큰 덕과 광명과 위력으로도 광명을 비추지 못했던 곳이나 이 때는 자연히 다 크게 밝아 모두 광명을 보았다. 그 사이에 있던 모든 중생들이 서로 보고 서로 알았으며 자기들끼리 말하되 ‘여기도 중생이 있었던가, 여기도 중생이 있었던가?’하였다. 그리고 모든 나무들에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열렸으며 익는 대로 땅에 떨어졌다.
020_0792_b_02L세존의 힘 때문에 허공이 청정하여 티끌과 안개가 없고 연기와 노을이 없었으나 문득 저절로 구름이 일어 땅에 가랑비를 뿌리고 또 서늘한 바람이 일어 차고 따뜻함이 고루 맞았으며 모든 곳이 맑고 깨끗하여 분명하게 나타났다. 또 허공의 모든 하늘들은 하늘 음악을 짓고 하늘 노래를 지어 찬탄하고 만다라꽃과 마하만다라꽃 등 갖가지 한량없는 꽃비를 내렸다. 그리고 또 교사야 하늘 옷을 비내리고 또 금ㆍ은ㆍ유리 등 보배를 비처럼 내리고 또 우발라꽃ㆍ구물두꽃ㆍ분타리꽃을 비처럼 내리고 또 갖가지 가루 향과 바르는 향을 비처럼 내려 부처님 위에 뿌렸다. 뿌리고 또 뿌려서 그 땅 둘레 1유순에는 갖가지 꽃비와 가루 향ㆍ바르는 향이 무릎에 이르도록 가득 쌓였다. 이때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일체 중생들은 한결같이 모두 극히 미묘한 쾌락을 받아 모든 괴로움과 번뇌가 없었다. 이 때는 애욕에 시달리거나 성내거나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중생이 하나도 없었다. 또 거만스러운 마음도 나지 않았고 무서움이 없고 모든 죄를 짓지 않으며 질병이 없고 모든 병환이 다 나아 다시 발병하지 않으며, 굶주리고 목마르던 중생들은 다 배부르고 술에 취한 중생은 다 깨어서 다시 술을 마시지 않으며, 미친 중생은 다 본심을 찾고, 눈먼 중생은 다 빛을 보았으며, 귀먹은 중생은 소리를 들었으며 불구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빈궁한 중생은 다 땅의 창고를 얻고, 야윈 중생은 다 살이 찌고, 옥에 구금된 중생은 쇠사슬이 자연히 벗겨져 풀려 나왔으며 지옥 중생은 다 고뇌를 면했고, 축생 중생은 공포가 다 없어지고, 아귀 중생은 기갈의 괴로움을 면하고 다 배부름을 얻었다. 게송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