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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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입경(陰持入經) 서문
020_1078_a_01L陰持入經序


진씨(陳氏) 주석[注]
김달진 번역
020_1078_a_02L陳氏注


제[密]가 엎드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과거에 지은 업이 순행(淳幸)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 8난(難)1)의 어두움을 멀리하고 삼존(三尊)2)의 찬란한 빛을 만나 보니, 큰 은혜가 널리 미쳐서 중생들이 은택을 입었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자질로도 곁에서 규벽(圭壁)3)의 차례를 얻게 하시어 비록 신통한 교화를 보고 청정한 계[淨誡]를 품었으나, 재주 없이 노둔한 사람이라 학문을 정밀하게 부지런히 하지 못하였으며, 밤낮으로 근심되고 걱정되는 것은 큰 도(道)를 욕되게 할까 두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번갯불처럼 빠르고, 몸은 얇은 얼음처럼 무르며, 의심하는 성품 때문에 배움이 깊은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반딧불과 촛불 같은 밝음으로 하늘의 태양을 돕고자 합니다.
대개 음지(陰持)란 것은 행(▼(彳+正+亍))의 이름이니, 안반(安般)과 근원은 같으나 흐름이 다릅니다.
020_1078_a_03L密伏自惟宿祚淳幸生遠八難之矇値睹三尊之景輝洪潤普逮群生蒙澤使密鈆鋌之質獲廁圭壁之次雖睹神化稟懷淨誡然以魯鈍之否學不精勤夕夜怵惕懼忝大道命疾電耀躬膬薄冰疑滯之性學不通窈今以螢燭之耿裨天庭之日蓋陰持御之號也與安般同原而別流
안후(安侯) 세고(世高)4)는 보견(普見)보살이니, 왕위(王位)의 영예를 버리고 가난을 편안히 여겨 도를 즐거워하였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며 도탄(塗炭)에 빠진 중생들을 걱정하고 제도하여 삼보(三寶)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니, 경사(京師:임금이 사는 서울)에 빛났습니다. 이에 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마침내 융성함을 이루니, 명철(明哲)한 선비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이치가 융성[郁郁]하여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세로로는 맑은 하늘보다 더하고 가로로는 8극(極:8방의 끝)에 미쳐서 크게 통하고 바다처럼 넓어 짝할 것이 없었습니다.
020_1078_a_11L侯世高者普見菩薩也捐王位之榮安貧樂道夙興夜寐憂濟塗炭宣敷三寶光于京師於是俊㐅雲集遂致滋盛明哲之士靡不羡甘厥義郁郁淵泓難測植之過乎淸乾撗之彌于八極洪洞浩洋無以爲倫
020_1078_b_02L제가 그 흐름을 눈으로 보고 품부(稟賦) 받아 사랑하여 배고픈 것도 잊고서 한가한 마시(麻緦)를 인(因)하여 그것을 위해 의미를 주석(注釋)하였으니, 맥락을 잡아 줄[行伍]을 자세하게 풀이하여 장(章)을 끊고 구(句)를 해석하였습니다. 막힌 것은 뜻[情]이 통하게 하여 점차 지혜로 나아가게 하였으니, 재주가 생이지지(生而知之)5)가 아닌지라 그 경광(景光)을 다 드날리지는 못하였으나 오히려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물로도 넓고 큰 바다의 윤택하고 귀함을 도울 수 있는 것처럼 잠시라도 본 이로 하여금 다른 점을 쉽게 알도록 할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명철한 선비들이 생각을 머물러 두어서 세 사람이 그 허물을 살펴주어 다행히 윤창(潤暢)함을 더한다면, 함께 삼보(三寶)를 드러내어 장래에는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
020_1078_a_17L密睹其流稟玩忘飢因閒麻緦爲其注義差次條貫縷釋御伍令其章斷句解使否者情通漸以進智才非生知楊不盡猶以指渧之水助洪海之潤貴令蹔睹之者差殊易曉唯願明哲留思三人察其訧腄幸加潤暢共顯三寶不誤將來矣



음지입경(陰持入經) 상권
020_1078_b_03L陰持八經卷上此經多御字他本皆作行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삼장 안세고 한역
본문; 김달진 번역
원주; 김두재 번역
020_1078_b_04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부처님께서 설하신 행은 또한 가르쳐 훈계하신 것이니대사가 이르기를, “‘설하신 행≺所▼(彳+正+亍)≻’이란 당연히 시행해야 할 것을 말하니, 중생들을 교화하여 바르고 참됨≺正眞≻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그들을 경계하여 삿된 것을 무너뜨리고 흉악한 것을 없애서 반드시 자신에게 다가올 재앙을 면하게 하는 것이다., 모두 3부(部)에 있어 합행(合行)하는 것이다.물질≺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으로 인한 느낌≺細滑:觸≻ㆍ법≺邪榮:法≻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이 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5음(陰)이며식신(識神)은 미묘하여 오고 감을 눈으로 볼 수 없음을 말한다. 가만히 갔다가는 말없이 이르러 들고 남에 틈이 없으며, 그 형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음(陰)이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6본(本)이며 ‘본(本)’이란 뿌리≺根≻라는 의미이다. 혼령(魂靈)은 6정(情)1)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사람의 몸이 조건을 받아들여서 지침을 수립≺受由敎樹≻하여 수레바퀴 돌듯 그침이 없기 때문에 ‘본’이라고 말한 것이다., 셋째는 소입(所入)이다.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 이 여섯 가지 본체는 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매끄러움≺細滑:觸≻ㆍ삿된 생각≺邪念:法≻이 조건으로 삼아 들어가는 경로이다. 그런 까닭에 입(入)이라고 한 것이다.
020_1078_b_05L佛經所御亦教誡 師云所御謂所當施御也教化群生示之正眞也誡之所以壞邪御兇必有免已之禍矣皆在三部合御謂色聲香味細滑邪榮與眼耳鼻口身心合作何等爲一爲五陰謂識神微妙往來無診陰往嘿至出入無閒睹其形故日陰二爲六本本根也魂靈以六情爲根本人之身受由教樹輪轉無休故日本也三爲所入眼耳鼻舌身心斯六色聲香味細滑邪念所由入矣故日入也
5음은 무엇인가? 첫째는 색(色)이며4대(大)로 볼 수 있는 것을 색(色)이라고 한다., 둘째는 통(痛)이며뜻≺志≻에 간직하고 있는 바람으로, 비참하고 슬프고 두려워하고 실망하는 감정이 감정을 고달프게 하므로 통(痛:受, 느낌)이라고 한다., 셋째는 상(想)이며상(想)은 형상≺像≻이라는 의미이다. 말없이 기억하고 날마다 생각하여 뜻에 있는 것이니, 만약 그 형상이 이미 지나간 것에 처하여 있다면, 곧 그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사상(思想)이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는 행(▼(彳+正+亍))이며‘행(▼(彳+正+亍))’은 행(行)과 같은 글자이다. 이미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은 끝없는 데까지 치달려 선(善)을 생각하고 악(惡)을 간직한 채 시방세계를 돌고 돌아 두루 거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행’이라고 한 것이다., 다섯째는 식(識)이니‘식(識)’은 알음알이≺知≻이다. 눈으로 본 것을 마음이 곧 알기 때문에 ‘식(識)’이라고 한 것이다.
020_1078_b_12L五陰爲何等一爲色四大可見謂之色二爲痛志所存願慘怚懼失之情爲情勞謂之痛也三爲想想像也嘿念日思在所志若敢其像之處已則前故日思想矣四爲御御行也已處于此心馳無思善存惡周旋十方靡不帀也故日御也五爲識識知也暏所御心卽知之故日識也
이것이 바로 5음이다. 색음(色陰)을 이름하여 열 가지로 나타나는 색입(色入)이라고 하니대사가 이르기를, “ ‘열 가지로 나타나는 색입’이라는 것은 저 안과 밖이 서로 들어와 서로 잃어버리지 않음을 말한다”고 하였다. 눈으로 보면 볼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現≻’고 말한 것이다. 소리는 아무 형상이 없는데 어째서 ‘물질≺色≻’이라고 하는가? 대답하기를, “소리는 귀를 대(對)해야 하니, 귀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소리는 4대(大)로 인해서 발생하니, 4대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색(色)과 어긋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니, 6정(情:根)이 똑같은 이치이다., 열 가지로 나타나는 색입은 무엇인가? 첫째는 눈, 둘째는 물질, 셋째는 귀, 넷째는 소리, 다섯째는 코, 여섯째는 냄새, 일곱째는 혀, 여덟째는 맛, 아홉째는 몸, 열째는 즐거움[樂]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로 나타나는 색입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색종(色種)이라고 한다.‘낙(樂)’은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종(種)’은 심는다는 의미이다. 여섯 가지 욕망이 일어나면 곧 몸이 이것을 심어 생겨나게 하여 행위를 따라 형상을 받으니, 지금의 모든 중생들이 다 이 행위에 부림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심는다≺種≻고 말한 것이다.
020_1078_b_17L是爲五陰色陰名爲十現色入師云:"十現色入者云其內外相入不相失也"視之可見故曰現聲無形云何色乎?日聲以耳爲對耳可見故云色矣又以聲因四大而四大爲色矣願與色違心𤺙悁痛六情同義矣十現色入爲何等是爲十現色入是名爲色種樂愛也種栽也謂六欲興卽身栽生隨御受形今之群生皆御使然故日種也
020_1078_c_02L통종(痛種)은 무엇인가? 통종은 몸의 여섯 가지 통(痛)이니, 첫째는 안지통(眼知痛), 둘째는 이지통(耳知痛), 셋째는 비지통(鼻知痛),넷째는 설지통(舌知痛), 다섯째는 신지통(身知痛), 여섯째는 심지통(心知痛)으로서, 이것이 몸의 여섯 가지 통(痛)이며, 통종이라고 한다.
사상종(思想種)은 무엇인가? 사상종은 몸의 여섯 가지 사상(思想)이니, 첫째는 색상(色想)색(色)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성상(聲想), 셋째는 향상(香想), 넷째는 미상(味想), 다섯째는 갱상(更想), 여섯째는 법상(法想)으로서마음에 선한 것을 생각하면 곧 선한 법이 일어나고, 악한 마음이 생기면 곧 악한 법이 일어나니, 저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법구경(法句經)』에서 이르기를, “마음이 법의 근본이 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몸의 여섯 가지 사상이며, 사상종이라고 한다.
020_1078_b_24L痛種爲何等痛種爲身六痛眼知痛耳知痛鼻知舌知痛身知痛心知痛爲身六痛名爲痛種思想種爲何等思想種爲身六思想色想色義中上同矣聲想香想味想更想法想心念善卽善法興惡念生卽惡法興夫心者衆法之本也 『法句經』日:"心爲法本斯也"是爲身六思想名爲思想種
행종(行種)은 무엇인가? 행종은 몸의 6갱(更)이니뜻이 가는 바에 뜻이 이르기만 하면 문득 바뀌기 때문에 갱(更)이라고 한다., 첫째는 색소갱(色所更), 둘째는 성소갱(聲所更), 셋째는 향소갱(香所更), 넷째는 미소갱(味所更), 다섯째는 촉소갱(觸所更)몸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이른바 6정(情)이 몸에 통틀어 붙어 있기 때문에 ‘통틀어≺通≻’라고 한 것이다., 여섯째는 법소갱(法所更)으로서 이것이 몸의 6갱이며, 행종이라고 한다.
020_1078_c_08L行種爲何等御種名爲身六更志之所往至轉更之故日更矣色所更聲所更香所味所更觸所更通身也謂六情通著身日通矣法所更是爲身六更是名爲御種
식종(識種)은 무엇인가? 식종은 몸의 6식(識)이니,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심식(心識)으로서 이것이 몸의 6식이며, 식종이라 하고, 5음종(陰種)이라고 한다.대사가 이르기를, “‘5음종(陰種)’이란 몸을 말한다. 몸에는 6정(情:根>이 있고, 그 감관≺情:根≻에는 5음(陰)이 있다. 습기(習氣)가 있어서 눈은 좋은 물질 때문에 옮겨가고, 중간쯤 되는 물질 때문에 옮겨가고, 아주 나쁜 물질 때문에 옮겨가니, 이러한 세 가지 대상 물질이 있다. 물질에는 다섯 가지 음(陰)이 있는데, 6정이 세 가지의 물질과 서로 그 습기가 어우러지면 합해서 열여덟 가지 일이 된다. 6정이 각각 다 그러하니, 모두 108가지 번뇌≺結≻가 된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생겨나는 것이 마치 곡식 종자를 땅속에 심어서 썩으면 그 몸을 받아 싹이 위로 자라나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마치 원기(元氣)가 봄에 생겨나고, 여름에는 자라며, 가을에는 쭈그러들고, 겨울에는 마르는 것처럼,온갖 곡식과 풀, 나무가 땅 위에 시들어 떨어지면, 그 원기는 땅속 뿌리로 잠복해 숨어서 땅속에서 몸을 받아 가지고 있다가 봄 절기에 음양의 기운≺卦≻이 온화한 경지에 이르면, 원기가 아래에서 몸을 근심하여 위에서 몸을 받으니, 식(識)이 있는 영(靈)이 풀과 나무를 심는 데 미쳐서 원기와 더불어 서로 머금는다. 오르고 내리며 무너지고 일어남이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여 삼계(三界)를 돌고 돌아 끝이 없기 때문에 종(種)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020_1078_c_13L識種爲何等識種名爲身六識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心識是爲身六識是名爲識種名爲五陰種師六五陰種身也身有六情情有五陰有習眼爲好色轉中色轉惡色轉三色色有王陰幷習合爲十八事六情各然爲百八結滅此生彼猶穀種朽于下栽受身生于上又猶元氣春生夏長秩萎冬枯百㲉草木喪于土上元氣潛隱稟身于參氣之節至卦之和元氣悁躬于下稟身于上有識之虛及草木之栽與元氣相含升降廢興終而後始輪轉三界無有窮極故日種也
이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니, 무엇을 좇아 이것이 무상[非常]하고 괴롭고 공(空)이고 비신(非身)임을 아는가? 이것을 좇아 아는 것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혜(慧)의 지(知)요, 둘째는 단(斷)의 지(知)이다.
020_1078_c_20L當知是是從何知爲非常苦非身從是知亦有二知一爲慧知二爲斷
020_1079_a_02L혜를 좇아 아는 것은 무엇인가? 무상과 괴로움과 공과 비신이니, 이것이 혜를 좇아 아는 것이다. 단을 좇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애욕이 이미 끊어짐이 바로 단을 좇아 아는 것이다.천지는 시작과 끝이 있고, 중생들에게는 흥하고 쇠퇴함이 있으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마련이고, 왕성해진 것은 틀림없이 쇠퇴하니,이를 일러 항상하지 않음≺非常≻이라고 한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삿된 짓을 해서 죄를 받음을 일러 괴로움≺苦≻이라고 한다. 중생들은 그 근본이 있지 않고 본래 공(空)하니, 지금은 어리지만 마침내 성인이 되어 반드시 공(空)하게 되는 것을 일러 공이라고 한다. 몸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끝내는 각각 그 근원으로 돌아가므로 이미 항상 존재하는 보배가 아니니, 이를 일러 몸이 아니라고非身 한다. 이 네 가지 근원을 깊이 살펴보고 그 욕망이 돌아가는 곳을 자세하게 구별하면, 삼계를 윤회하면서 몸을 버렸다가 다시 몸을 받아 괴로움을 쌓음이 한량없다. 올바른 데 뜻을 지니고 삼계의 욕망이 공함을 관찰하여 본래 아무것도 없음≺本無≻에 이르면 모든 괴로움이 고요하게 사라지리니, 이를 일러 혜의 지≺慧知≻라고 한다. 『대명도경(大明度經)』에서 이르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무상≺非常≻ㆍ괴로움ㆍ공(空)ㆍ비신(非身)을 가지고 늘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니, 그 몸에 대하여 밝게 깨달아 해탈하여 변화시키기 때문에 대명(大明)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020_1078_c_23L從慧知爲何等爲非常非身是爲從慧知從斷知爲何等愛欲已斷是爲從斷知乾坤有終始群生有興廢成者必敗盛者必衰謂之非常生老病死履邪受罪謂之苦群生未有厥本自空今有幼終成必空謂之空身爲四大終各歸本非已常寶謂之非身深賭四事之原縷別厥欲之歸輪迴三界捨身受身積苦無量持志於正觀空三界欲逮于本無諸苦寂滅謂之慧知明度經日癡者以非常苦空非身爲常樂有身明度變之故日大明
음근(陰根)은 무엇인가? 적(積)도 음근이 되고, 족(足)도 음근이 된다. ‘적(積)’이란 모으다≺聚≻라는 의미이니, 마음속에 묵묵히 5음(陰)을 모아 쌓아서 가득 채워지면 이것이 바로 6정(情)의 온갖 괴로움이다.
비유컨대 물건 종류를 물건 종류라 하고 나무 종류를 나무 종류라 하며, 불 종류를 불 종류라 하고 물 종류를 물 종류라 하듯이, 일체의 5음(陰)도 또한 이와 같아서사물은 나무ㆍ불ㆍ물 등 각기 본래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나무는 저절로 나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서 5음과 6정의 본래 이름도 또한 그러함을 비유한 것이다. 열여덟 가지 본지(本持)가 있다.대사가 이르기를, “마음은 온갖 것의 근본이요, 모든 욕망을 주관하여 지니기 때문에 ‘지(持)’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020_1079_a_07L陰貌爲何等積爲陰貌爲陰貌積聚也謂心默積聚五陰盛滿足六情衆苦也譬如物種名爲物種木種名爲木種火種名爲火種水種名爲水種一切五陰亦如是物木火水各有本名木自名木以譬五陰六情本名亦然有十八本持師云:"心爲衆之本主持諸欲故日持"
열여덟 가지 본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눈, 둘째는 물질, 셋째는 눈과 빛깔의 식(識)이요눈과 눈의 인식작용이 합쳐져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식별(識別)하니, 6정의 이치도 똑같다. 『노모경(老母經)』에서 이르기를 “눈이 물질을 보면 곧 뜻이 일어나니 뜻이 곧 물질인 셈이다”라고 하였으며, 『요본생사경(了本生死經)』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은 물질로 인해서 인식작용을 일으킨다’고 하셨다”고 하였으니, 이 의미가 바로 그러한 뜻이다., 넷째는 귀, 다섯째는 소리, 여섯째는 귀와 소리의 식이요, 일곱째는 코, 여덟째는 냄새, 아홉째는 코와 냄새의 식이요, 열째는 혀, 열한째는 맛, 열두째는 혀와 맛의 식이요, 열셋째는 몸, 열넷째는 갱(更), 열다섯째는 몸과 갱의 식이요, 열여섯째는 마음, 열일곱째는 법, 열여덟째는 마음과 법의 식이니, 이것을 열여덟 가지 본지라고 한다.
이미 이것을 알았다면 무엇을 좇아 무상과 괴로움과 공과 비신(非身)임을 아는 것인가? 이것을 좇아 아는 것도 또한 두 가지 지(知)가 있으니, 첫째는 혜(慧)을 좇아 아는 것이요, 둘째는 이미 끊음[斷]을 좇아 아는 것이다.
020_1079_a_12L十八本持爲何等明與議合識別好醒六情義同『老母經』日:"眼見色卽是意意卽是色"『了本』云:"佛說爲眼從色令識生"斯義如之也十一十二十三十五十六十七十八是名爲十八本持已知是從何知非常空非身是爲知從是知亦有二知一爲從慧知二爲從已斷知
020_1079_b_02L혜을 좇아 아는 것은 무엇인가? 무상과 고와 공과 비신이 바로 혜을 좇아아는 것이다. 끊음을 좇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애욕이 이미 끊어짐이 바로 끊음을 좇아 아는 것이다.
저들이 구족(具足)되었다고 하니, 무엇이 구족된 것인가? 혹은 남음[有餘]이 없는 것을 구족이라고 하니대사가 이르기를, “ ‘저들’은 저 수행하는 사람이다. 모든 욕망을 이미 끊고 나면 37품(品:助道品)2)이 곧바로 나타날 것이니, 탁월한 수행이 갖추어진 이는 삿된 곳으로 향하려는 마음이 다 없어져서 다시는 남은 것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이미 남음이 없다면 눈이 밝고 소견이 밝게 마련이므로‘밝은 눈≺明眼≻’이란 지혜가 밝은 것이며, ‘소견이 밝음≺見明≻’이란 천안(天眼)을 말하는 것이다. 천안이라는 것은 도가 밝아지면 곧 구족되니, 도의 눈을 구족한 이는 곧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목련(目連)이 악마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나는 도의 눈으로 안을 관찰하고 천안으로 저 바깥을 보기 때문에 안팎이 다 청정해서 하늘의 유리보다 더 깨끗하니, 어떤 작은 먼지인들 보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눈이 밝고 소견이 밝다고 말한 것이다. 도[一]를 행하는 이가 이를 말하고 나면 눈의 근본과 귀의 근본이 끊어지며, 두루 이와 같이 말함이‘일(一)’이란 도(道)이다. ‘이 두 가지’는 37품(品)을 말한다. ‘근본≺本≻’이란 여섯 가지 탐욕의 근본을 말한다. ‘두루≺遍≻’는 모두라는 의미이다. ‘도를 행하는 이’는 저 37품의 청정한 행을 얻은 사람이니, 5음(陰)의 여섯 가지 근본과 모든 욕망이 다 끊어진 것이다.
020_1079_a_20L慧知爲何等爲非常非身是爲從慧知從斷知爲何等愛欲已斷是爲從斷知彼爲具足具足爲何等或言無有餘具足師六彼彼御家也衆欲已斷三十七品卽現矣高御具者邪向都盡無復有餘也已無有餘令眼明見明眼慧明也見明天眼也天眼者道明卽足道眼足者卽無不睹道謂魔日:"吾以道眼觀內天眼識表內外淸淨過天珍璃何微塵而不睹乎?"故日眼明見明矣一御者說是已爲斷眼本耳本遍說如是一道也是二三十七品也本六欲本也遍諸也道御者云夫得三十七品之淨御者五陰六本諸欲皆圻
마침내[卒] 본지(本持)가 된다.‘졸(卒)’이란 마침내라는 뜻이다. ‘지(持)’란, 6정과 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섬세하고 매끄러운 감촉은 마음을 수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는 것이니, 마침내 그것을 이름하여 본지(本持)라고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 사람이 열성을 띠어 이와 같이 두루 비유하여 말하는 것이 바로 구족(具足)이다.‘열성을 띠어≺多熱≻’란 비유하면 질병이 더 심해지면 온몸에 열이 나는 것과 같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미 열여덟 가지 본지(本持:界)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식(識)이 모두 윤회하며, 또 5음과 6본과 모든 입(入:界)이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을 불러들이니, 마음이 번뇌를 일으켜 쌓인 것과 합하여 온갖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것을 바로 ‘족(足)’이라고 하는 것이다.
020_1079_b_07L卒名爲本持卒遂也持六情與色聲香味細滑可心之榮相持遂名之爲本持矣譬是人爲多熱如是名遍多熱譬時疾彌重通身皆熱由人已受十八本持識神輪轉更五陰六本諸入以相憂悲不如意惱合聚衆苦其爲是足矣譬喩是爲具足
또한 12입(入)이 있으니,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자신과 바깥에 각기 여섯 가지가 있다. 자신의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안(眼)이요대사가 이르기를, “눈이 물질을 보는 데는 세 가지 일이 있으니, 6정도 다 그러하다. 마음≺心≻과 뜻≺意≻과 식(識)이 그 근본이 된다. 첫째는 기억하는 것이고, 둘째는 행위하는 것이며, 셋째는 구하는 것이니, 기억은 마음≺心≻에 속한 것이고, 행위하는 것은 뜻≺意≻에 속한 것이며, 이 두 가지는 식(識)에 속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이 세 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심(心), 이것이 자신의 6입(入)이다.
바깥의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갱(更)ㆍ법(法)이다. 이것이 12입(入)이 된다.
일체는 무엇을 좇아 무상과 괴로움과 공과 비신임을 아는가? 이것을 좇아 아는 것도일체의 12입(入)은 무엇을 좇아 알 수 있는가? 능히 5음을 되돌려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안에 있는 6정(情)이 바깥의 여섯 가지 욕망을 받아들임을 알 수 있다.
020_1079_b_11L有十二入何等爲十二自身六外有自身六爲何等一爲眼師云:"眼見色有三事六情皆然也心意識爲本也一念二作三求念屬心作屬意二不屬議所言惡不過是三事是爲自身六外有六爲何等爲十二入一切從何知爲非常非身是從是知一切十二入當從何知之乎?謂能還五陰覺四非常知內六情受外六欲也
020_1079_c_02L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혜(慧)를 좇아 아는 것이요, 둘째는 단(斷)을 좇아 아는 것이다. 혜를 좇아 이해하여 아는 것은 무엇인가?
무상과 고와 공과 비신이 바로 혜을 좇아 아는 것이다. 단을 좇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애욕이 이미 끊어짐이 바로 단을 좇아 아는 것이다.
무엇이 입(入)인가? 앎이 이것을 좇아 이루어지는 것을 입(入)이라고 한다.‘입(入)’이란 12입을 말하는 것이다. 안의 6정을 따라 바깥의 여섯 가지 대상 물질에 이른다는 것을 장차 무엇으로써 아는가? 많은 날을 지내면서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은 것으로써 비추어 보라.
입(入)을 좇아 이해함은, 비유컨대 금을 좇아 들어가면 금지(金地)가 되고, 은을 좇아 들어가면 은지(銀地)가 되는 것과 같으니,이와 같이 각각 이 비유에 응한다.
좇는 대상과 들어가는 대상‘따라 들어간다≺從所入≻’는 것은 각각 그 경지를 따르는 것이니, 곧 눈이 스스로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6정이 모두 그러하다., 좇음과 유(有)도, 이렇듯 뜻과 생각을 따르며‘뜻과 생각≺所意念≻’이란 뜻≺意≻을 말한다. 뜻이 물질을 기억하면, 곧 행동이 이루어져 죄(罪)가 있게 되니, 죄가 있으면 곧 괴로움의 빌미≺苦具≻가 된다., 유(有)와 행(行)과 죄(罪)와 고(苦)와 법(法)도 이와 같아서악한 행을 지으면 곧 죄를 받으니, 비유하면 도를 수행하는 사람만이 도를 증득하는 것과 같다. 좇아서 이르니, 이것을 이름하여 좇아서 들어간다고 한다.‘좇아서 이른다≺從所致≻’는 것은, 비유하면 6정이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 것을 좇아서 여섯 가지 욕망에 이르는 것과 같다. ‘입(入)’이란 사특한 욕망이 6정을 통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좇아서 들어간다는 것은, 비유컨대 왕이 자기의 소유로부터 거두어들이는 것을 이름하니, 이것 또한 이와 같다.‘또한 이와 같다≺亦如是≻’는 말은 다시 비유한 말을 인용하여 6정의 일을 되풀이해서 말한 것이다. ‘왕이∼거두어들이는 것≺王有入≻’이라고 한 것은 모든 고을의 수령들이 저마다 제가 통치하는 땅에서 나온 것을 본래의 이름을 구별해 나누어서 왕에게 공물로 들인다는 것이니, 6정에 들어오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이다.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의 4제(諦)에 있어서, 고를 긴요한 말[要語]이라고 한다면 신(身)이 또한 염(念)이 되며대사가 이르기를, “저 몸뚱이는 온갖 괴로움의 근본이니, 몸의 괴로움과 마음이 껄끄러운 것은 그 긴요함이 이 두 가지 일에 달려 있기 때문에 ‘긴요함≺要≻’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020_1079_b_20L亦有二知一從慧二從斷知從慧解知爲何等爲非非身是爲從慧知從斷知爲何等愛欲已斷是爲從斷知何等爲解從是致名爲入入諸十二入也從內六致外六當何以知之?多日當以四非常照之從入解譬從金入名爲金地從銀入名爲銀地如是各各應是譬喩所從所入從所入者各從其地是眼自入色情皆然是從是有如是從所意念所意念者謂意意念色便成御有罪有罪爲有苦具有行罪苦法如有作惡御卽受罪喩如御道者得道從所致是名爲從是入從所致者譬六情從意所念致六欲也入者邪入于六情矣亦有從是入譬如王有入所有名是亦如是亦如是者謂更引譬重說六情事王有入者諸郡縣君各以地所出分別本名貢入於王六情所入亦然矣爲有四諦苦名爲要語身亦念師云:"夫身衆苦之根身苦與心澀要在斯二事故日要也"
습(習)을 긴요한 말이라고 한다면 치(癡)가 또한 세간의 애(愛)가 되며수없이 많은 갈래로 나고 죽음을 따라 근심과 괴로움이 수없이 많은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을 일러 ‘습(習)’이라고 한 것이다. 모이는習:集 이유는 어리석음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니, 그런 까닭에 괴로움이 괴로움인 줄 알지 못한다., 진(盡)을 긴요한 말이라고 한다면 혜(慧)가 또한 해탈이 되며지혜로운 사람은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을 보고서 어리석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쉽게 소멸시키고, 어리석음과 좋아하는 마음이 끊어진 이는 곧 번뇌≺結≻가 풀리며, 번뇌가 풀어진 이는 삼계(三界)를 벗어나 37도문(道門:道品)을 보면 재앙도 복도 다 없어지게 된다., 도(道)를 긴요한 말이라고 한다면 지(止)가 또한 관(觀)이 된다.어리석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해서 마음이 고요해져 멈추어≺止≻ 관(觀)하여 보게 되면 삼계(三界)가 공(空)하여 도리어 근본이 없으니, 이를 일러 도(道)라고 한다. 지(止)와 관(觀)이 도의 긴요함이 된다.
020_1079_c_12L習名爲要癡亦所世閒生死萬端勤苦無數而愚者樂之之謂習習之所由癡與愛也故不知苦之爲苦也盡名爲要慧亦解脫明者睹四非常臥滅癡愛癡愛斷者則結解結解者脫於三界睹道門殃福盡也道名爲要止亦觀癡愛盡心寂止觀睹則空三界還本謂之道止與觀道要也
020_1080_a_02L또한 37품 경법(經法)이 있으니‘37품’이란 세상을 해탈하는 밝은 법이다., 4의지(意止)3)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4)과 5근(根)과 5력(力)5)과 7각의(覺意)와 현자(賢者)의 여덟 가지 도행(道行)이 바로 37품 경법이다.
과거 부처님도 이것이 있으셨고, 현재 부처님도 이것이 있으시고, 미래 부처님도 이것이 있으실 것이며, 벽지불도 또한 이것을 좇아 세간을 건너는 도를 얻었고, 부처님 제자도 또한 이것을 따르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건너는 무위(無爲)의 도(道)가 된다.대사가 이르기를, “‘37도품’이란 더할 나위 없이 바르고 참된 밝은 법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보시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며, 제자들이 이어받아서 행하였다”고 하였다. 『혜인삼매경(慧印三昧經)』에서 말하기를, “삼존(三尊) 가운데 부처님이 제일 존귀하시니, 부처님 혼자만이 능히 7각의(覺義)를 설하셨네. 게으른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나타내시니, 이 삼매는 다할 수 없어라”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7각의의 깨끗한 선정으로써 다함없는 지혜를 얻고 일체의 소원을 증득하셨다.보살은 이미 날마다 청정한 계율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37도품을 범하지 않고, 근주를 활짝 열어 주셨으니≺根株是闓≻, 보살≺大士≻께서 하신 일은 그지없는 지혜에 이른 것이다. 세존께서도 이것을 인연하셨고, 일각(一覺:獨覺)과 응의(應儀:아라한)도 모두 이로 말미암아 도를 증득하였으니, 가장 높은 최상의 지혜라 할 만하다.
020_1079_c_18L亦有三十七品經法七品者度世之明法也四意止四意斷四神足五根五力七覺意賢者八種道御爲三十七品經法過去佛亦有是現在佛亦有是未來佛亦有是辟支佛亦從是得度世道佛弟子亦從是是爲度世無爲道師云:"三十七品者無上正眞之明法也佛先睹之以教知士弟子承之而御矣"『慧印』日:"三尊中佛爲尊獨能說七覺意懈怠未現法是三昩不可盡"佛以七覺淨定獲無盡之明也得一切願薩日日如淨識者不犯三十七品根株是聞士大士所作以至無極慧尊緣一覺應儀皆由之得道可謂無上慧者
4의지(意止)는 무엇인가? 비구가 혹 자신의 신상(身相)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하며, 바깥 몸의 신상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하며, 안과 바깥 몸의 신상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해서대사가 이르기를, “‘자신(自身)’이란 자기의 몸이고, ‘바깥 몸≺外身≻’이란 다른 사람의 몸이며, ‘안과 바깥 몸≺內外身≻’이란 풀이나 나무의 몸을 말한다.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의 몸도 풀과 나무의 몸도 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수행하는 이들이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보고 뜻≺意≻을 멈추어 도에 붙여 두기 때문에 ‘지(止)를 행하기도 한다’고 말한 것이다.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주해에서 이르기를, ‘숨은 안으로부터 나오니 숨 가운데 4대(大)를 갖추고 있으며, 마음이 그 가운데 있으므로 이를 일러 안의 몸≺內身≻이라고 하며, 숨은 밖에서부터 들어오니 4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호흡으로 몸을 삼아 뜻을 잡아매어 호흡에 두고 몸이라는 생각을 없도록 한다”고 하였다. 뜻과 생각을 다함으로써 세간의 어리석은 마음[癡心]의 불편함을 물리친다.‘다한다≺盡≻’는 것은 마음을 다하는 것이며, 마음의 작용을 다 끊는 것을 말한다. ‘불편함≺不便≻’이란 온갖 사(邪)를 말하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작용을 다 끊고 도력(道力)의 큰 것으로 하여금 마땅히 삼계의 어리석음의 도둑을 물리쳐서 자기의 마음이 잘못됨을 깨달아 3활(活)의 보배를 즐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설에는 어리석음의 병폐가 도를 닦으려는 마음을 물러나게 하니, 마음을 밝히는 것은 어리석음의 병폐에 대해서는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불편함’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020_1080_a_04L四意止爲何等或見比丘自身身身相觀御止外身身身相觀御止內外身身身相觀行止師云:"自身已身也外身彼人身也內外身謂草木身也已身人身草木身皆非常有御家照然止意著道故日御止『安般』 解日:"息從內出息中具有四大而心在中謂之內身也息由外來四大亦爾禪家以息爲身繫意在息令身想矣"盡意念以卻世閒癡心不便盡盡心也用也不便衆邪也御家盡心教道力之大者當用卻三界穢賊主已心令不樂三活之寶者也一說云癡穢卻道心明心不便於穢故日不便也
스스로 통(痛)의 통상(痛相)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하며마음이 기뻐하는 것을 ‘양(痒)’이라 하고, 마음이 근심하는 것을 ‘통(痛)’이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여섯 가지 탐욕을 획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며, 그것을 잃어버림을 슬퍼하지 않는다. 『법경경(法鏡經)』에서 이르기를, “이익≺利≻과 손해≺衰≻와 헐뜯음≺毁≻과 기림≺譽≻과 칭찬함≺稱≻과 나무람≺譏≻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에 기울어져 동요하지 않으니, 번뇌의 때≺垢≻가 다 사라지고 안이 맑아지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괴로움도 공(空)해지기 때문에 아프고 가려움≺痛痒:憂喜≻이 멈추게 된다”고 하였다., 바깥 통의 통상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하며, 안과 바깥 통의 통상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해서 뜻과 생각을 다함으로써 세간의 어리석은 마음의 불편함을 물리친다.
스스로 뜻의 의상(意相)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하며‘상(想)’이란 형상≺像≻이라는 의미이다. 뜻≺意≻이 있는 것을 생각≺思≻이라 하며, 이미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것으로서 그 모습이 이전에 있던 곳을 기억해 내는 것을 상(想)이라 말한다. 스스로 자기의 뜻을 관찰하고, 또 다른 사람의 뜻을 관찰하며, 또 풀과 나무도 관찰하여 이 모든 것은 똑같이 4대(大)를 본체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같은 부류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님을 보면 마음은 더 이상 욕망을 가지지 않게 된다. 게송에 이르기를,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에 대하여/ 그 형체가 존재한다고 계교하지 않으며/ 있느니 없느니 생각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사람은 당연히 이런 생각 멀리 여의나니/ 이것을 일러 사상의지(思想意止)라고 한다.
020_1080_a_15L自痛痛痛相觀御止夫心喜日痒憂日痛御家獲六欲卽不喜失之不慼『法鏡經』日:"利衰毀譽稱譏苦樂不以傾動也盡內淨心寂若空故日痛痒止也外痛痛痛相觀御止內外痛痛痛相觀御止盡意念以卻世閒癡心不便自意意意相觀御止想像意所存日思髣髴如睹其容之處前日想自觀已意觀彼人意又觀草木俱用四大爲體云爲之類睹其非已有心卽無所復欲矣偈日:"吾我人及與壽亦不計有是形意不念有與無智慧者當遠離斯所謂思想意止"
020_1080_b_02L바깥 뜻의 의상(意相)을 관하여 지(止)를 행하기도 하며, 안과 바깥 뜻의 의상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해서 뜻과 생각을 다함으로써 세간의 어리석은 마음의 불편함을 물리친다.
스스로 법의 법상(法相)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하며, 바깥 법의 법상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하며, 안과 바깥 법의 법상을 관하여 지를 행하기도 해서 뜻과 생각을 다함으로써 세간의 어리석은 마음의 불편함을 물리친다. ‘법(法)’이란 12인연법을 말한다.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 생각대로 형상을 이루니, 법을 가지고 법을 관찰하면 그 법은 똑같은 것이다. 다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량없이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내어 그지없이 많은 신색(身色)의 통양(痛痒:憂喜)이 생기게 된다.그러므로 사상(思想)의 마음이 멈추면 나고 죽음의 마음도 멈추게 되고, 나고 죽음의 마음이 멈추어지면 의식이 고요해져서 오락가락하는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안반수의경』에서 이르기를, “기억하는 것으로 인하여 분별이 일어나니, 기억하는 것이 다 없어지면 곧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 공(空)ㆍ불원(不願)ㆍ무상(無想)이 결정코 니원문(泥洹門:涅槃門)으로 향하게 한다”고 하였으며, 『혜인삼매경(慧印三昧經)』에서 이르기를, “공(空)하여 아무 곳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니원(泥洹:涅槃)이니, 이것이 나고 죽음의 법이 멈춘 것이다”라고 하였다.
020_1080_a_20L外意意意相觀御止內外意意意相觀御止盡意念以卻世閒癡心不便自法法法相觀御止外法法法觀御止內外法法法相觀御止盡意念以卻世閒癡不便法十二因緣法也心所想卽如想或形以法觀法其法一也心造無量之想而有無盡之思想意止生死意亦止生死意止識寂無往來想矣『安般』四:"念因有分念盡無有斯空不願無想定向泥洹門也"『慧印經』日:"空無所著是爲泥洹斯生死法止者"
무엇이 4의정단(意正斷:正勤)을 좇음인가? 만약[或] 비구가 어쩌다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몹쓸 악의법(惡意法)이 있다면 방편을 내어서 생겨나지 않게 하며, 뜻을 권유하여 방편의 행을 버리지 않는다.대사가 이르기를, “4의지(意止:意斷)이다. ‘혹(或)’은 만약≺若≻과 같은 뜻이며, ‘법(法)’이란 열두 가지 인연생사법(因緣生死法)이다. 삿된 근기가 깊어지고 넓어지면 다시 생겨나게 될까 두려우니, 마땅히 미리 도력에 정진하겠다는 마음을 내고 덕으로 도를 지켜서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권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진으로 뜻을 거두어 제어하여 악한 뜻을 흩어 버리는 것이 바로 첫 번째 단의(斷意)이다.말하자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정밀하게 하고 그 의지를 나아가게 하여 6정을 거두어 제어하고 온갖 욕망을 버리며, 모든 악한 생각을 흩어 버리고 5근(根)과 10력(力)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020_1080_b_05L何等爲從四意正斷或比丘有未生弊惡意法發方便令不生意不捨方便師云:"四意止也或若也法十二因緣生死勸邪根深廣懼其復生當豫發道力進意德守道無懈怠矣"精進攝制意捨散惡意是爲一斷意謂御家精其心進其志攝制六情舍衆欲散諸惡念進就根力
이미 몹쓸 악의가 생겨났다면 청정한 법을 일으켜 끊고자 하며, 뜻을 권하여 방편의 행을 구하고 정진으로 뜻을 거두어 제어하여 악한 뜻을 흩어 버리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단의이다.‘청정한 법’이란 지관법(止觀法)6)을 말한다. 사특한 생각을 제어해서 멈추게 하여 모든 탐욕의 근원을 끊고,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을 관찰하는 것을 일러 청정한 법이라고 한다.
아직 청정한 법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뜻을 권하여 방편을 일으켜서 행을 생겨나게 하며, 정진으로 뜻을 거두어 제어하여 악한 뜻을 흩어 버리는 것이 이 세 번째 단의이다.
이미 청정한 법이 생겨났다면 멈추게[止] 해서 잊어버리지 않고, 감(減)하지 않게 하며‘지(止)’란 제어해서 멈추게 한다≺制止≻는 뜻이니, 감각 기관으로 하여금 청정한 행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수행이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행을 많게[啻] 하고 구족하게[足] 할 뿐 아니라‘시(啻)’란 많다≺多≻는 의미이고, ‘족(足)’은 가득하다≺滿≻는 의미이다. 마땅히 덕행을 자꾸 쌓아 나가서 다함이 없는 뜻을 성취하여 도를 만족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방편의 행을 일으켜 정진으로 뜻을 거두어 제어하여 악한 뜻을 흩어 버리는 것이 바로 4의정단이다.
020_1080_b_10L已生弊惡意淸淨法欲斷勸意求方便御精進攝制意捨散惡意是爲二斷意淸淨法謂止觀也制止邪念斷諸欲根觀四非常謂之淨法未生淸淨法勸意發方便令生御精進攝制意捨散惡意是爲三斷意已生淸淨法令止不忘令不減止制止淨御情無忘之勿令御減也令御不啻令御足啻多也足滿也當進德御就無盡之意令道滿足也發方便御精進攝制意捨散惡意 是爲四意正斷
020_1080_c_02L무엇이 4신족(神足)인가? 혹 어떤 비구가 정(定)으로 생사를 끊고자 해서 행을 따라 신족(神足)을 증장하며대사가 이르기를, “정의(定意)를 얻어서 나고 죽음의 싹을 끊어 버리고자 하면, 수행을 따라서 정진하고 도의 의지를 더욱더 늘려서 신족(神足)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생사윤회에 얽매임[猗]을 싫어해서‘얽매임≺猗≻’7)이란 12인연법에 의지한다는 것이니, 윤회하여 편안함이 없으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욕망에 의지함과 진(盡)에 의지함을 물리치며‘욕망’이란 여섯 가지 탐욕이다., 좋지 못한 뜻이 생기는 것을 좇아 여의고 없애는 것이12인연이 모든 악한 행위의 근원이 되니,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불편한 것이 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속히 떨쳐 버려서 그런 것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누가 됨이 없게 하기 때문에 ‘좇아≺遣≻’라고 하였다. 바로 첫 번째 신족이다.
정진의 정(定)으로대사가 이르기를, “‘정(定)’이란 선정으로 매진해 나아가 심오한 수행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사를 끊고 행을 따라 신족을 증장하며, 생사에 얽매임을 싫어해서 욕망에 의지함과 진(盡)에 의지함을 물리치고,좋지 못한 뜻이 생기는 것을 좇아 여의고 없애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신족이다.
020_1080_b_19L何等爲四神足或有比丘爲欲定斷生死隨御增神足師云:"欲得定意以斷生死栽隨御而進增益道志以成神足也"惡生死猗十二因緣輪轉無寧御家惡厭之卻欲猗盡猗欲六欲也從不便意生遣離去十二因緣諸惡行之原矣非便已者也御家當疾遣之去無令爲已累故日遣也是爲一神足精進定師云:"定定在進取深御也"斷生死隨御增神足惡生死猗卻欲猗盡猗從不便意生遣離去是爲二神足
뜻의 정[意定]8)으로 생사를 끊고대사가 이르기를, “질투와 성냄과 어리석음을 다 없애면, 뜻이 곧 적정(寂定)해지나니, 이것을 ‘뜻의 정’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행을 따라 신족을 증장하며, 생사윤회에 얽매임을 싫어해서 욕망에 의지함과 진에 의지함을 물리치고, 좋지 못한 뜻이 생기는 것을 좇아 여의고 없애는 것이 바로 세 번째 신족이다.
계(戒)의 정으로 생사를 끊고 행을 따라 신족을 증장하며, 생사에 얽매임을 싫어해서 욕망에 의지함과 진에 의지함을 물리치고, 좋지 못한 뜻이 생기는 것을 좇아 여의고 없애는 것이 바로 네 번째 신족이다.
4의지(意止)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을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대사가 이르기를, “안의 병폐가 다 맑아져서 밝음≺明:慧≻이 왕성해지면, 눈으로 우주의 끝 그 바깥까지도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고, 귀로는 모든 소리를 다 통해 들을 수 있으며, 몸은 날아다닐 수 있어서 만단(萬端)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은 지난 과거의 일과 다가올 미래의 일까지 밝게 알아 이미 중생들에게까지 미친다. 마음속의 생각과 입으로 하는 말, 그리고 몸의 모든 감촉으로 인한 느낌≺所更≻ 등의 미세한 것까지 살피지 못할 게 없다. 부처ㆍ연각(緣覺)ㆍ일각(一覺:獨覺)ㆍ응의(應儀:阿羅漢)는 네 가지 신통력이 이미 원만하게 갖추어져서 사특한 것9)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신족(神足)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020_1080_c_03L意定斷生死師云:"嫉恚疑滅意卽寂定謂之意定"隨御增神足惡生死猗卻欲猗盡猗從不便意生遣離去是爲三神足戒定斷生死御增神足惡生死猗卻欲猗盡猗不便意生遣離去是爲四神足四意四意斷四神足爲已說具師云:"內穢盡淨明盛眼能洞視無極之表耳能徹聽身能飛行變化萬端心明往古來今已及衆生心念口言身諸所更無微不察佛緣一覺應儀四神已足不師受故日神足矣"
무엇이 5근(根)인가?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과 염근(念根)과 정근(定根)과 혜근(慧根)이니, 이것을 5근이라고 한다.대사가 이르기를, “나무는 뿌리가 아니면 자라지 않고, 도는 믿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도덕(道德)의 뿌리인 신근(信根)이 세워져야 도가 이루어지니, 그런 까닭에 신(信)이 우두머리가 된다. 정진(精進)은 수행하는 데 있고, 부지런함은 몸에 있으니, 만약 사특하고 병든 생각을 끊고 뜻은 청정한 선정을 익히며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을 관찰한다면, 세 가지 사는 문≺三活門≻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혜인삼매경(慧印三昧經)』에서 이르기를, “이 존귀한 지혜로 지혜의 문≺慧門≻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지혜의 문’이 이른 바 세 가지 사는 문이다.
저 근(根)은 무슨 뜻에 응하는가? 근본이 근의 뜻이 되고, 속함[屬]이 근의 뜻이 되며‘근(根)’이란 도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고, ‘속(屬)’이란 도에 속한다는 뜻이다. 잎사귀와 가지, 마디와 꽃 그리고 열매의 이 다섯 가지 일은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뿌리에 속한 것이며, 믿음≺信≻ㆍ정진(精進)ㆍ생각≺念≻ㆍ선정≺定≻ㆍ지혜≺慧≻, 이 다섯 가지 덕은 다 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속한다≺屬≻’고 말한 것이다., 기뻐할 만함[可喜]이 근의 뜻이 되고, 같은 일[同事]이 되지 않음이 근의 뜻이 되니‘가(可)’란 뿌리를 세울 만하다는 뜻이고, ‘희(喜)’는 기쁘다≺悅≻는 뜻이며, ‘같은 일이 되지 않음≺不同事≻’이라는 말은 다른 지류라는 의미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5근을 얻으면 기뻐하면서 덕을 심고, 세속과 서로 등져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달리하니, 기뻐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뻐할 만한 근≺可喜根≻’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근의 뜻이라고 한다.
020_1080_c_11L何等爲五根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是名爲五根師云:"樹非根不生道非信不成爲道德之根信根立道乃成故信爲首精進在御勤存身若絕邪穢念習志于淨定觀四非常入三活門"『慧印』日:"是尊慧入慧門"慧門所謂三活門者彼根應何義根爲根義屬爲根義根道屬屬道也葉枝節華實五事雖殊俱屬於根信精進念定慧五德皆屬於道故日屬可喜爲根義不爲同事爲根義可可根立也喜悅也不同事別流也御家獲道五根喜以殖德與俗相背終始別流喜而自可故日可喜根也是名爲根義
020_1081_a_02L무엇이 5력(力)인가? 신력(信力)과 정진력(精進力)과 염력(念力)과 정력(定力)과 혜력(慧力)이니, 이것을 5력이라고 한다. 저 역(力)은 마땅히 무슨 뜻인가? 파괴할 수 없음이 역의 뜻이고대사가 이르기를, “이미 4의지(意止)를 얻었으면, 5근(根)이 곧바로 서고, 5근이 바로 서면 도의 힘이 곧 이루어지니, 하늘 선녀의 옥(玉) 같은 얼굴도 그의 눈을 어지럽힐 수 없으며, 이름난 소리꾼≺樂妓≻의 노래도 그의 귀를 괴롭힐 수 없다. 온갖 향(香)과 가장 맛있는 음식과 마왕의 존귀함과 날아다님과 황제의 영화도 6정을 혼미하게 하지 못하니, 뜻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러 ‘역(力)’이라고 한다”고 하였다.이익되는 바가 있음이 역의 뜻이며도를 행하는 것을 덕을 내린다고 하니, 중생들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일러 ‘이익되게 한다≺益’≻고 하였다., 담기(膽氣)가 있음이 역의 뜻이고마군의 졸개가 억 팔천만이라도 보살의 한 터럭도 움직이지 못하니, 도의 힘이 높고 빛나서 마왕을 항복하므로 ‘담(膽)’이라고 말한 것이다., 의지할 수 있음이 역의 뜻이니‘의지’라 한 것은 공(空)에 의지하여 4의지를 수행하는 것이다. 깊은 못에 빠지지 않고 배를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간다., 이것을 역의 뜻이라고 한다.
020_1080_c_20L何等爲五力信力精進力念力定力慧力是名爲五力彼力應何義無有能得壞爲力義師云:"夫已得四意止者五根卽立五根立道力卽成天女五色不能亂其目名樂妓聲不能突其耳衆香上甘魔王之尊飛行皇帝之榮六情不爲迷志如虛空莫能動者謂之力有所益爲力義道御日降德潤群生謂之益矣有膽爲力義魔兵億八千萬不能動菩薩一毛隆赫魔王降伏謂之瞻能得依爲力義依依空御四淵不能沒由依船度海是名爲力
7각의(覺意)가 있으니, 무엇이 7각의인가? 첫째는 생각[念]의 각의요대사가 이르기를, “‘각(覺)’이란 선과 악을 깨닫는 것이다. 악한 생각이 생기면 곧 멸하여 없애고, 도의 마음이 생기면 곧 그 마음을 거두어 지니니, 이를 일러 생각의 각의라고 한다”고 하였다., 둘째는 법을 분별하여 관(觀)하는 각의요‘법(法)’이란 선하고 악한 법이고, ‘관(觀)’이란 고요하게 진리를 관찰하는 것이니,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해서 청정한 법만을 가려 취하면, 삼계의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반수의경』에서 이르기를, “법을 가리는 각의≺擇法覺意≻이다”라고 하였다., 셋째는 정진의 각의요, 넷째는 애(愛)의 각의요어리석은 사람은 여섯 가지 사(邪)를 좋아해서 옳다고 여겨 보배로 삼고, 뛰어나게 밝은 사람은 12신(神)으로 그것은 틀림없이 화가 되는 것임을 비추어 보고 마음을 바꾸어 도를 받아 3법(法)의 훌륭한 수행을 한다. 『십▣법』10)에 이르기를, “올바른 행으로써 사특한 행을 소멸시킨다”고 하였는데, 이 뜻과 같은 의미이다.
020_1081_a_06L有七覺意何等爲七覺意念覺師云:"覺覺善惡也惡念生卽滅之道念生卽攝持謂之念覺意矣"法分別觀覺意法善惡法觀寂諦觀分別眞僞擇取埩法可以免三界者矣 『安般』日:"擇法覺意"精進覺意愛可覺意愚者愛六邪可之以爲寶上明十二神照其必爲榾轉心以受道可三法之高『十崚法』云:"以直御消邪御"斯義如之也
다섯째는 의(猗)의 각의요슬기로운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 4의지(意止)를 의지하여 색(色)ㆍ통(痛:受)ㆍ상(想)ㆍ행(▼(彳+正+亍))의 네 가지 음(陰)이 일어나면 곧 깨달아 소멸시키니, 이를 일러 의(猗)의 각의라고 한다., 여섯째는 정(定)의 각의요지(止:4意止)ㆍ단(斷:4意斷)ㆍ신족(神足:4身足)ㆍ근(根 :5根)ㆍ역(力:5力)ㆍ의(意:7覺意)를 증득하면 곧 고요하게 선정에 들며, 그가 뜻한 바를 분별하여 병폐를 제거하고 도를 지켜 행을 청정하게 하고 뜻을 끝까지 규명하여 높은 덕으로 마음에 나아가 도를 취하니, 우레 소리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정(定)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곱째는 호(護)의 각의이니뜻은 위태로워서 보호하기 어렵고, 미묘해서 제어하기도 어려우니, 만약 행함이 욕심에 있다면 삼가하고 보호하여 탐욕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며, 색계≺色≻에 있거나 무색계≺無色≻에 있어도 보호하기를 그와 같이 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호의 각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7각의라고 한다.
020_1081_a_12L猗覺意智士常以意猗四意止色痛想御四陰起卽覺滅之謂之猗覺意矣覺意得止斷神足根力意卽寂定在其所志分別陰穢守道淨御究意德進心取道雷震之嚮不能聞其耳故日定矣護覺意意危難護其妙難制若御在欲將護之使其出欲在色在無色護之亦然故日護覺意是名爲七覺意
도를 얻는 데 여덟 가지 도행(道行)이 있으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바른 소견이요삼계의 올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 모두 환술로 변화한 것이라 여기고, 오직 도가 있는 곳에 항상 나아가 뜻으로 그것을 취하기 때문에 바른 소견≺直見≻이라고 말한 것이다., 둘째는 바른 행이요삼존(三尊)의 깨끗한 행이 아니면 끝까지 행하지 않는다., 셋째는 바른 말이요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바른 다스림이요탐욕이 없음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다섯째는 바른 이익이요도의 깨끗한 행으로 이익을 삼는 것이다., 여섯째는 바른 방편이요모든 부처님께서는 37조도품(助道品)으로써 세상을 건지는 방편으로 삼으셨다., 일곱째는 바른 뜻이요마음이 삼계를 멀리하면 곧바로 12문(門:12因緣說)을 벗어나서 다시는 사특한 데로 기울지 않으니, 이를 일러 바른 뜻≺直意≻이라 한다., 여덟째는 바른 선정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 도행이라고 한다.‘선정’이란 결정코 37품과 3활(活)에 있는 것이니, 이 40가지 품(品)은 부처님의 귀중한 보배이다. 『둔진경(屯眞經:屯眞陀羅所問如來三昧經)』에서 이르기를, “마음이 니원(泥洹:涅槃)에 들어가서 근본을 따르면, 근본이 고요해지고 또 고요해지니, 이것이 곧 보배가 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그 마음이 37도품(道品)과 합해져서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것이 바로 보배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보배란 세상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020_1081_a_16L有得道者八種道御何等爲八直見見三界非直皆爲幻化唯道有常進意取之故日直見也直御非三尊淨御終而不御也直語非佛教不言之矣以無欲爲治矣直利以道淨御爲利直方便諸佛以三十七品爲度世之方便直意意遠三界直出十二不復邪傾謂之直意也直定是名爲八道御定定在三十七品及三活斯四十品者佛之尊寶也『屯眞經』日:"心入泥洹從本本寂而復寂是則爲寶"又日:"心合三十七品用度諸苦是則爲寶"夫寶世事之謂
020_1081_b_02L여덟 가지 도행은 세 가지로 통합되니, 첫째는 계(戒)의 종류요, 둘째는 정(定)의 종류요, 셋째는 혜(慧)의 종류이다.37도품은 통틀어 여덟 가지 도행(道行)이 되니, 계(戒)ㆍ정(定)ㆍ혜(慧)와 합하여 계가 깨끗해지면 욕계(欲界)에서 해탈하고, 정이 깨끗해지면 색계(色界)에서 해탈하며, 혜가 깨끗해지면 무색계(無色界)에서 해탈한다. 계ㆍ정ㆍ혜에 대하여 원상(願想)이 있으면 그것을 번뇌≺垢≻라고 하니, 삼계의 욕(欲)ㆍ색(色)ㆍ식(識)을 받아 이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저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다스림을 바로 계의 종류라 하고, 저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을 바로 정의 종류라 하고, 저 바른 소견, 바른 행을 바로 혜의 종류라 한다.
020_1081_b_02L八種道御爲墮合三種戒種慧種三十七品㧾爲八道御合爲戒定慧戒淨度欲界淨度色界慧淨度無色界於戒定慧有願想謂之垢也受三界然色識出斯矣彼所直語直業直治是名爲戒種彼所直方便直念直定是名爲定種彼所直見直御是名爲慧種
이 가르침을 모두 따라야 할 것이니, 계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며, 정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며, 혜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다.‘∼뿐만이 아니라≺不啻≻’는 것은 많다는 뜻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여러 겁 동안 계율을 잘 지켜서 수행을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계율을 지킨 기간이 많고, 선정을 닦은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의행(意行)으로 하여금 4선(禪)을 초월하여 모든 선정에 깊이 들어가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이 많은 해혜(解慧)를 배웠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만족하게 여길만한 것이 없으니, 마땅히 저 계ㆍ정ㆍ혜에 나아가야만 도를 얻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뿐만이 아니라’라고 말한 것이다.
저 계(戒)의 종류는, 비구가 성냄[瞋恚]과 악의 뿌리를 뽑으며, 성냄의 묶임[結]을 풀며‘풀며≺散≻’는 ‘끌고간다≺牽≻’는 뜻이니,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네 가지 등으로써 성내고 분해하는 독한 기운을 뽑아 버리고 모든 원한을 흩어 버리며 온갖 맺힌 것을 풀어 버리고, 사랑과 불쌍히 여김과 기뻐함과 보호함으로써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성냄의 부스럼[瘡]을 아물게 하며성냄의 독한 기운이 일어나서 몸과 목숨을 위태롭게 하므로 이를 일러 ‘부스럼≺瘡≻’이라고 한 것이다. 분해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부스럼도 아물게 될 것이다., 괴로움[苦]과 아픔[痛]을 식별하여 욕계를 건너게 한다.‘괴로움≺苦≻’은 몸이다. 몸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서 그 고통을 말하기 어려우니, 수행하는 사람은 비추어 보고서 몸의 괴로움을 싫어하여 욕심을 끊고 성냄을 멸하여 욕계를 건넌다.
020_1081_b_08L從是教誡令不啻教誡令不啻教意令不啻慧教誡不啻多也御家由累劫持戒積御不虧令戒多也修禪累久故令意御過四禪深入諸定學於諸佛解慧無量然無以爲足矣當進其戒定慧至於得道故日不啻彼戒種比丘爲拔瞋恚亦𦼇本爲散瞋恚結散牽也以恕已四等拔瞋恚毒散諸怨解衆結興慈悲喜識濟群生也爲合恚瘡恚毒與而身命危謂之瘡矣與滅瘡合矣 爲識苦痛爲度欲界苦身也身生老痛死其痛難御家照之厭身苦斷欲滅恚度欲界也
020_1081_c_02L저 정(定)의 종류는, 비구가 간탐(慳貪)의 뿌리를 뽑으며, 탐욕의 묶임을 풀며, 탐욕의 부스럼을 아물게 하며, 즐거움[樂]과 고통[痛]을 알아 색계를 건너게 한다.‘정(定)’이란 ‘멈춘다≺止≻’는 뜻이다. 6정이 욕망하는 바를 얻는 것을 ‘즐거움’이라고 하며, 그것을 잃어버리면 곧 껄끄러우니, 이를 일러 ‘고통≺痛≻’이라고 한다. 마땅히 계율로써 도를 구한다면 묵묵히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리니, 재앙과 복의 근원과 즐거움과 괴로움의 문을 고요한 선정으로 멀리 비추어 보면, 나중에는 틀림없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여섯 가지 탐욕의 아까워하는 마음을 뽑아버리고 색신(色身)에 대한 집념을 소멸하여 선정에 들어가서 네 가지 의지(意止)에 머물러 있으면, 저런 즐거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이를 일러 ‘색계(色界)를 건넜다’고 말한 것이다.
저 혜(慧)의 종류는, 비구가 어리석음의 뿌리를 뽑으며, 어리석음의 묶임을 풀며, 교만(憍慢)의 부스럼을 아물게 하며, 즐겁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음을 알아 무색계를 건너게 한다. 이 세 가지는‘즐겁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음’이라고 한 것은, 마음이 선을 생각하지도 않고,또한 악을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중간에 깜깜하게 있다가 나중에는 껄끄러운 몸뚱이를 받아 이 몸뚱이가 괴로움을 겪기 때문에 이것을 ‘고통≺痛≻’이라고 말한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뜻을 공(空)에 두어야 하니, 공한 것을 공한 것으로 여지지 않고 색계천의 즐거움도 공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마음의 번뇌≺結≻가 있어서 세간에 부처님이 항하강 모래처럼 많지만 자기는 그런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복이 다하면 3악도에 들어가 온갖 괴로움과 껄끄러움을 받으니, 이것이 ‘아픔≺痛≻’이 된다. 슬기로운 사람은 항상하지 않음ㆍ괴로움ㆍ공함ㆍ몸이 아니라는 안목≺眼≻으로 삼계를 관찰해 보고, 바늘귀만한 땅도 죽음을 면하고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없으므로, 곧 공함을 생각하고 바람을 없애서 청정한 무상(無想)에 나아가 3활문(活門)에 들어간다. 『혜인삼매경』에서 이르기를, “공하여 집착하는 바가 없으면 이것이 바로 니원(泥洹)이다”라고 하였다.
020_1081_b_17L彼定種比丘爲拔慳𦼇本爲散欲結爲合欲瘡爲知樂痛爲度色界定止也六情所欲謂之樂失之卽𤺙謂之痛當以戒求道而默存天樂夫福禍之原樂苦之門御寂照遠知後必苦拔六欲之慳滅色身之想定在四止不受彼樂謂之度色矣彼慧種比丘爲拔癡𦼇本爲散癡爲合憍慢瘡爲知不樂不苦痛得度無有色界是爲三種不苦不樂謂意來念善又未在𦼇中間瞢瞢後受𤺙身此身更苦斯爲痛矣御家意在空不能空空不色天樂空心結在之世有佛如恒沙而已不能受閒福盡入三𦼇道受諸苦𤺙斯爲痛矣慧者以非常苦空非身眼觀視三界無鍼鼻之土可免死不受苦者卽念空滅願就淨無想入三活門『慧印』日:"空無所著是爲泥洹也"
비구가 3악(惡)의 뿌리를 뽑으며, 3악의 사(使)를 흩으며, 네 가지 부스럼을 아물게 하며, 3통(痛)을 알아 삼계를 건너게 하는 것이다.‘3악’이란 세 가지 독(毒:貪ㆍ嗔ㆍ癡)이고, ‘네 가지 부스럼’이란, 첫째 탐욕의 부스럼이고, 둘째 견결(見結)의 부스럼이며, 셋째 계원(戒願)의 부스럼이고, 넷째 신결행(身結▼(彳+正+亍))의 부스럼이다. 마음이 세 가지 독의 원인이 되어 저 네 가지 부스럼을 받아들여서 관찰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사(使)라고 말한다. ‘3통(痛)’이란 삼계(三界)이다. 식신(識神)이 껄끄러움을 받아들여 끝이 없는 곳으로 흘러가니, 수행하는 사람이 세 가지 독을 만나면 덕을 쌓는 일을 그치지 않고 매진해 나아가 열반에 이르는 것을 한계로 삼는다고 말한다. 『대명도경』에서 이르기를, “만약 안으로 보살이 심오한 법에 들어오게 하여 마땅히 공(空)을 행한다면, 생각도 없고, 바람도 없으며, 인식작용도 없고, 생멸도 없어서 니원(泥洹:열반)을 한계로 삼는다”고 하였다.
020_1081_c_07L比丘止爲拔三𦼇本散三𦼇使合四瘡知三痛度三界三𦼇三毒也四瘡者一欲二見結瘡三戒願瘡四身結御瘡心爲三毒因受彼四瘡其使難察故云使矣三痛三界也識神受𤺙因流無際御者當三毒積德莫休趣至泥日爲限矣『明度經』日:"若內菩薩便入深當御空無想無願無識無生滅泥洹爲限也"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12인연법을 말한다. 이것을 3부로 나누어 수행하는데, 위의 넷은 과거에 속하고, 중간의 넷은 현재에 속한 것이며, 마지막 넷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구함을 좇아 구하는 바와 같이 함께[等] 태어나고‘좇는다≺從≻’고 한 것은 어리석음을 좇는다는 말이며, ‘같이’라는 것은 그가 구하는 바와 같다는 뜻이며, ‘등(等)’이란 함께≺俱≻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식(識)이 본래의 청정함을 버리고 말단의 더러움을 좇으면, 곧 그가 구하는 바와 같이 12인연이 차례로 동시(同時)에 함께 생겨나니, 그런 까닭에 ‘함께 태어난다’고 하였다., 어리석음[癡]의 인연을 좇아 행이 있으며‘어리석음’이란 어둡다≺冥≻는 뜻이다. ‘행(行)’이란 중생들의 식신(識神)이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장님은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위험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여기고 복을 버리고 재앙을 따르니, 식신이 본래 어리석으면 몸≺身≻을 즐거워하여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직접 자기를 높다고 여겨서 뜻이 향하는 대로 하고자 하여 마침내 의지하여 몸을 받는다. 『중심경(中心經:忠心經)』에서 이르기를, “본래 어리석음을 좇아 왔는데, 이제 사람이 되어 다시 어리석어졌구나”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행을 좇아 식(識)이 있다.‘식(識)’이란 안다≺知≻는 뜻이다. 영혼(靈魂)이 몸을 받으면 곧 좋고 나쁜 것을 알아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게 된다.
020_1081_c_12L何等爲十二種十二種因緣也分爲三部御上四事屬過中四事屬當來也從求如求等生從從癡也如如其所等俱也謂識舍本淨從未穢卽如其所求十二因緣次第同時俱生也故日等生也從癡因緣令有御癡冥也御也謂群生識神沒在癡冥由盲者不明安危去福就禍識神本癡樂身苦不知親爲已尊而欲意向之遂依受身『中心經』日:"本從癡中來今爲人復癡"斯之謂矣從御令有識識知也魂虛受身卽知好惡而有憎愛之心也
식을 좇아 명자(名字)가 있고‘자(字)’라는 것은 색(色)이고, 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명(名)이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이 볼 수 있는 것을 일러 색이라고 한다., 명자를 좇아 6입(入)이 있으며5음(陰)으로 말미암아 몸을 받고, 6정이 생겨나 여섯 가지 삿됨이 들어옴이≺入≻ 있다., 6입을 좇아 이루어짐이 있다.6정이 갖추어지면, 곧 물질ㆍ소리ㆍ냄새ㆍ감촉 등 온갖 생각이 이루어진다. 『요본생사경(了本生死經)』에서 이르기를, “갱락(更樂:觸)은 눈이 물질을 통과하여 마음이 즐거운 것이니, 이를 일러 갱락(更樂)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루어짐을 좇아 아픔[痛痒]이 있고, 아픔을 좇아 애(愛)가 있으며늙으면 몸에 병이 들게 되고, 목숨을 마칠 적에 지독한 아픔이 따르게 된다. 어리석은 마음이 그리워하고 사랑하여 말을 하매 목이 메이니, 이를 일러 ‘애(愛)’라고 한다., 애를 좇아 받음[受]이 있다.사랑하기 때문에 5음이 왕성하여 사나워져서 다음 생에 태어날 빌미≺生栽≻를 받는데, 그것이 한량없이 계속 이어진다.
020_1081_c_19L從識令有名字字色也痛想御識名也地水火風可見謂之色矣從名字令有六入由五陰受身令六情生而有六邪入從六入令有致六情備卽致色聲香味細滑衆念『了本』日:"更樂眼更色心樂之謂之更樂矣"從致令有痛痒從痛痒令有愛老至身病命終毒痛癡心戀愛言之哽噎謂之愛也從愛令有受以愛之故五陰盛猛受後生栽其爲無量
020_1082_a_02L받음을 좇아 유(有)가 있고왕성한 음(陰)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후생의 몸이 있게 되어 재앙 속에 끊임없이 굴러다니면서 계속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 유를 좇아 태어남이 있으며이미 왕성한 음이 있기 때문에 식신이 그것을 가까이함으로 인하여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태어남을 좇아 늙고 죽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괴로움이 있으니, 마음에 맞지 않아 껄끄러운 것이 이와 같이 구족되어 괴로움의 종자는 습(習)을 이룬다.4대(大)가 시들어 마르는 것을 늙는다 하고, 목숨이 다하여 식신이 옮아가는 것을 죽는다 하며, 속에서 열이 나고 마음이 아픈 것을 근심이라 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슬퍼하는 것을 슬픔≺悲≻이라 하며, 무거운 재앙을 감당하는 것을 괴로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온갖 일들은 심소(心所)와 맞지 않아 즐거워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찾아오는 것으로서 그런 것을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면할 수 없다. 마음속에 번뇌가 가득한 것을 ‘껄끄럽다’고 하니, 의식이 종자가 되어 12인연법을 만들어 내어 괴로움이 가득 차게 하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롭게 여기지 않는 것은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익힌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나고 죽음은 고습(苦習)이 근본이 되며, 도는 극진히 다하는 것으로 기반을 삼으니, 기반으로 도를 세운다면 어찌 성취할 수 없겠는가?
020_1082_a_02L受令後有由受盛陰令有後身殃禍輪轉經緜不絕從有令有生已有盛陰識神因親受身更生從生令有老死憂悲苦不可心致𤺙如是具足苦種爲致習四大萎枯日老命盡神遷日死內熱心痛日憂存之噓唏日悲荷負重禍日苦若斯衆事心所不可不樂而自來求離而不勉心滿內結日𤺙識爲種生十二因緣令苦備足而不以苦者以其說習之久矣生死以苦習爲本道以盡爲基基立道焉得不成乎?
어리석음[癡]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행이 다하며, 행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식(識)이 다하며, 식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명자가 다하며, 명자가 다하고 나면 곧바로 6입이 다하며, 6입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이루어짐이 다하며, 이루어짐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아픔이 다하며, 아픔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애가 다하며, 애가 다하고 나면 곧바로 받음이 다하며, 받음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유(有)가 다하며, 유가 다하고 나면 곧바로 태어남이 다하며, 태어남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늙고 죽음이 다하며, 늙고 죽음이 다하고 나면 걱정하고 슬퍼하는 괴로움과 마음에 맞지 않아 껄끄러움이 곧바로 다하여 이 같은 온갖 괴로움의 종자가 곧바로 다하게 된다.12인연법이 다하면 그게 바로 니원(泥洹:涅槃)이다.
020_1082_a_09L癡已盡便御盡已御盡便識盡已識盡便名字盡已名字盡便六入盡已六入盡便致盡已致盡便痛痒盡已痛痒盡便愛盡已愛盡便受盡已受盡便有盡已有盡便生盡已生盡便老死已老死盡憂悲苦不可心𤺙便盡如是具足苦種便得盡十一因緣盡卽泥洹矣
020_1082_b_02L저 어리석음은 4제(諦)를 알지 못함을 말하니제(諦)마다 고습(苦習)이 있어 그 재앙이 무거운데, 이미 고달픔을 겪었으면서도 그걸 알지 못하고 있다. 탐욕을 멈추고 껄끄러움을 다 없애면 청정함을 관(觀)하여 도를 증득하고 편안해져서 아무 걱정이 없으리라. 그런데도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어리석음≺癡≻’이라고 말한다., 만일 이해하지 못하여 보지 못하고 서로 응하지 못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여 근(根)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어리석음이라고 한다.바르게 인도해 주는데도 중생들은 마음이 사특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 짓을 하니, 이것을 ‘응하지 못함≺不應≻’이라고 한다.
저 어리석음은 어떤 행을 인연하는가? 여섯 가지 보고 받아들임[望受]이 인연이 되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하면,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이 바로 몸의 여섯 가지 보고 받아들임이며, 이것을 행이라고 한다.6정이 여섯 가지 삿된 경계를 대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법을 이룬다.
저 행을 인연한 식(識)이 몸의 6식이 되니,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심(心), 이것을 몸의 6식이라고 한다.6식(識)이 일어나면 문득 몸의 형상을 심게 되니, 그런 까닭에 ‘6신식(身識)’11)이라고 한 것이다.
저 식(識)을 인연한 것이 명자(名字)이니, 자(字)는 색(色)이 되고, 명(名)은 네 가지 색이 아닌[不色] 음(陰)이니, 즉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명(名)이라 한다.‘불(不)’이란 없다≺無≻는 의미이니,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색이 아니다≺不色≻’라고 말하였다.
020_1082_a_16L彼癡名爲不知四諦如有諦諦有苦習重禍已爲之困而不知止欲盡穢觀淨得道安康無患而已不受謂之癡也不解不見不相應不受不解不解根是名爲癡道正而群生心邪與佛教違謂之不應矣彼癡因緣御爲何等爲六望受何等爲六色聲是爲身六望受是名爲御六情望六邪而心受之以成法也彼御因緣識爲六身識是名爲六身識六識所興輒種身像故日六身識也彼識因緣名字字爲色名爲四不色痛想御識是爲名不無也謂痛想御識無形可睹故日不色矣
색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대의 근본이 된다. 이 위[上]는 명(名)이 되고, 이 네 가지는 색이 되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함께 명자(名字)가 된 것이다.몸에서 딱딱한 것은 흙이고, 부드럽고 축축한 것은 물이며, 따뜻한 기운은 불이고, 호흡의 기운은 바람이다. 이 4대는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물질이라 하고, 식신(識神)은 명색(名色)이라 하는데, 삼계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저 명자를 인연한 것이 몸의 여섯 가지 받아들임[入受]이 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심, 이것을 몸의 여섯 가지 받아들임이라고 한다. 저 6입(入)을 인연한 것이 몸의 여섯 가지 생각하여 바라봄[思望]이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심, 이것을 몸의 여섯 가지 생각하여 바라봄이라고 한다. 저 생각하여 바라봄을 인연한 것이 몸의 여섯 가지 아픔[六痛]이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심, 이것을 몸의 여섯 가지 아픔이라고 한다.
020_1082_b_05L色爲四大本謂地風是上爲名是四爲色是二相連共爲名身强者地也軟濕水也溫煖火也氣息風也斯四大可見謂之色神爲斯名色因于三界也彼名字因緣身六入受是名身六入受彼六入因緣身六思望名爲身六思望彼思望因緣身六痛是名爲身六痛
저 아픔을 인연한 것이 몸의 여섯 가지 애(愛)이니, 색애(色愛)ㆍ성애(聲愛)ㆍ향애(香愛)ㆍ미애(味愛)ㆍ촉애(觸愛)ㆍ법애(法愛), 이것을 몸의 여섯 가지 애라고 한다. 저 애를 인연한 것이 수(受)이니, 4수(受)가 있다. 첫째는 욕수(欲受)욕계에 처해 있어서 욕계의 몸을 받은 것을 말한다., 둘째는 견결수(見結受)색계의 하늘은 색을 볼 수 있다. 마음의 번뇌가 나고 죽음의 싹을 받지만, 그것 때문에 몸에 더해지지는 않는다., 셋째는 계원수(戒願受)수행하는 사람은 계를 지키면서 도를 구하기 때문에 하늘의 복을 즐기고, 더 위의 하늘에 오르기를 원한다. 저들이 오랜 수명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을 ‘원수(願受)’라고 말한다., 넷째는 신결행수(身結行受)이다.‘결(結)’이란 마음이 짓는 것이며, ‘행(行)’은 몸 받기를 흠모하는 것이다. 몸을 받는 것은 결과 행으로 인해서이니, 가르침을 얻어 결의 원인을 풀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몸을 받아 탐욕의 깊은 못으로 들어가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여기기 때문에 몸을 받아 있다≺有≻고 여기는 깊은 못으로 들어가며, 항상하지 않는 것을 항상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몸을 받아 소견의 깊은 못으로 들어가고, 몸 아닌 것을 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몸을 받아 밝지 않음≺不明≻의 깊은 못으로 들어간다. 네 가지 받음과 네 가지 못, 이 두 가지 이치가 함께 돌아간다. 이를 4수(受)라고 한다.
020_1082_b_13L彼痛因緣六身愛色愛聲愛香愛味愛觸愛法愛是名爲六身愛彼愛因緣受爲四受欲受謂處欲界受欲身也見結受色天見色心結受生死栽不以身加戒願受御家戒當以求道而樂天福願升天庶彼延壽謂之願受身結御受結心作御慕爲身爲身由結御得指解結由愚者以不淨爲淨致受入欲淵以若爲樂致受入有淵以非常爲常致受入見淵以非身爲身致受入不明淵四受四淵二義同歸矣是名爲四受
저 수를 인연한 것이 유(有)이니, 3유(有)가 있다. 첫째는 욕계, 둘째는 색계, 셋째는 무색계이다. 이를 3유라고 한다.‘3유(有)’란 삼계의 나고 죽고 하는 몸이 있는 것이다.
020_1082_b_21L彼受因緣有爲三有欲界色界無色界是名爲三有三有有三界生死身
020_1082_c_02L저 유를 인연한 것이 생(生)이니, 위로 5음(陰)ㆍ6지(持)ㆍ6입(入)이 되며‘위로’란 위에서 말한 3부를 이르는 것이다. 이미 3부가 있음으로 해서 식신이 돌고 돌면서 생(生)을 받아 편안함이 없다., 이미 유가[如有] 있으므로‘이미 유가 있으므로’란이미 위에서 말한 3부에 삿된 식신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행위를 짓는다. 심은바 존재≺有≻와 같은 것에 몸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여유(如有)’라고 말한 것이다. 생겨나 모임이 있으며어리석으면 5음과 6입 등 온갖 일을 모아 쌓아서 4대에 함께 의지하여 태어나고, 곧 다섯 갈래 세계에서 나고 죽게 된다., 이미 지나가 이루어져서[墮致] 근(根)을 분별(分別)하고‘지나가’란 3부로 가서 이르는 것이고, ‘타(墮)’는 3부의 행(行)에 떨어지는 것이며, ‘치(致)’는 6정을 이루는 것이고, ‘분(分)’은 모든 근(根)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미 들어가 유(有)를 얻으니6정의 근(根)을 갖춘 사람은 물질이 눈으로 들어오니, 다른 5정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얻으니’란 여섯 가지 사(邪)가 6정을 만난 것이다. 6정이 봄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유(有)’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이 있다는 것이니, 삼계의 모든 근심과 온갖 괴로움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생(生)이라고 한다.
020_1082_b_23L有因緣生爲上五陰六持六入上謂上所說三部已有三部識神輪轉受生蓋無寧矣已有如有已有已有上三部邪識神因之作御如所種有有身像故日如有也生聚癡舍聚五陰六入諸事共依四大生卽有五道生死已往墮致分別根往往至三部所墮墮三部御六情分分別諸根入得有六情根具者色則入眼五情俱然得者六邪得六情也情不得見故日得也有有生老病死三界諸患衆苦備矣是名爲生死
사(死)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이 있는 곳과 가는 곳에서 이미 지나간 것은 파괴되며, 아주 지나가면 죽고 마니‘사람’이란 중생을 말하는 것이고, ‘있는 곳’이라고 한 것은 사는 곳을 말하며, ‘소왕(所往)’이란 식신이 가는 곳인데, 가는 곳이 같지 않다. ‘파괴되며’라고 하는 것은 무너진다는 의미이고, ‘지나가면’이란 떠나간다는 의미이다. 가서 몸을 받으면 무너져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목숨은 지나서 가버리지 않는 것이 없다. 게송에 이르기를,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며/ 또한 산과 돌 사이도 아니네./ 어느 땅 방소가 따로 없으니/ 죽음을 벗어나면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때에는 이 명근(命根)이 이미 닫히고 막히므로‘이’는 바로 중생들이요, ‘명(命)’이란 호흡이며, ‘근(根)’이란 6정이다. 중생들이 죽을 때에 숨이 끊어지면 몸뚱이가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 6정은 다 닫혀 버리고 만다. 그때에 혼령(魂靈)이 몸을 버리고 떠나가면 죽었다고 한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020_1082_c_08L爲何等名爲人人所在在所往已往壞已過人人群生也所在所居所往謂識神所往地不同也壞敗也過去也所往受身無不壞敗命無不過去偈日:非空非海中亦非山石閒無有地方所脫死不受苦"斯義如之死時是命亦根已閉塞是是群生也命息也根六根也群生死時息絕身冷六情根都閉於是魂虛從去日死也是爲死
위에서는 늙음을 말하였고, 뒤에서는 죽음을 요약하였으니, 그러므로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게송에 이르기를, “비로소≺適≻ 태어나 곧 병이 드니/ 그 다음에는 늙어서 죽으리라”고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이 의미이다.
어리석음[癡]의 상(相)은 무엇인가? 저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을 보기 때문에식신의 근본이 3독과 5음의 깊고 어두운 연못에 빠져 있고, 또 6정으로 여섯 가지 삿됨≺邪≻을 골라 받아 스스로 덮어 가리니, 이를 일러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을 본다’고 말한 것이다.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이르기를, “비유하면 아주 깜깜한 밤에 사람이 다시 깜깜한 가운데 눈을 감고 걸어가는 것과 같으니, 어느 때에나 밝음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리석음의 모습≺相≻이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마치 어두운 것과 같다는 말이다. 신령(神靈)이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음은 행을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이니, 그런 일이 정말로 있지만, 어리석은 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중심경(中心經 : 忠心經)』에서 이르기를, “어디서 와서 태어나는지 죽으면 혼령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니, 이를 일러 어리석다고 한다”고 하였다., 이를 좇아 행상처(行相處)에 떨어진다.
020_1082_c_13L上本爲後要爲死是故名爲老死偈日:"適生使病次當老死"斯義如之癡相爲何等爲冥中見冥識神本沒在三毒五陰窈冥之淵又以六情採受六邪以自覆弊謂之冥中見冥矣『道地經』日:"譬如夜極冥人復於冥中閉目行是何時當見明?"斯癡之相矣如有不解如冥也神靈捨身受身隨御受報其事眞有而愚不解『中心經』日:"不知生所來死靈所趣謂之癡也"令從是致墮御相處
행(行)의 상(相)은 무엇인가? 뒤에 다시 생ㆍ멸이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행의 상이니, 위로 이것을 좇아 발기(發起)하여‘위로’란 위에서 말한 어리석음≺癡≻을 말한다. 어리석음을 따라 발기하여 마침내 행상(行相)에 이르기 때문에 ‘위로 이것을 좇아 발기한다’고 말하였다. 『법구경(法句經)』에서 이르기를, “어리석음은 12인연의 어머니다”고 하였다. 이것을 좇아 식처(識處)에 떨어지게 된다.
식(識)의 상은 무엇인가? 물건을 식별하고 일을 식별하는 것이 바로 식의 상이니의식이 생기면 사물을 분별하기 때문에 ‘식(識)의 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좇아 명자처(名字處)에 떨어지게 된다.
020_1082_c_20L御相爲何等爲令後復有是爲御相上從是發起上癡也從癡發起遂至御相故云上從是發起『法句經』日:"癡十二因緣之毋"令從是致墮識處識相爲何等爲識物識事是爲識相識生分別事物故六識相矣令從是致墮名字處
020_1083_a_02L명자(名字)의 상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5음의 행상에 의지하여 온갖 번뇌≺使≻를 이룬다고 말하였다. 바로 명자의 상이니, 이것을 좇아 6입처(入處)에 떨어지게 된다.
6입(入)의 상은 무엇인가? 근(根)을 분별하는 것이 바로 6입의 상이니, 이것을 좇아 사망처(思望處)에 떨어지게 된다.
사망(思望)의 상은 무엇인가? 서로 만나 바뀌어 생겨나는 것이 바로 사망의 상이니눈과 물질이 만나면 식신이 즐거워하니, 이를 일러 ‘서로 만나 바뀐다相會更’고 한다. 『요본생사경(了本生死經)』에서 이르기를, “아버지와 어머니와 식(識), 이 세 가지가 만나 바뀌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을 좇아 통처(痛處)에 떨어지게 된다.
020_1083_a_02L名字相爲何等爲俱猗云五陰御相猗以成諸使是爲名字相令從是致墮六入處六入相爲何等爲分別根是爲六入相從是致墮思望處思望相爲何等相會更生是爲思望相眼與色會識神樂之謂之相會更也『了本』云:"父母識爲三會更"令從是致墮痛處
통(痛)의 상은 무엇인가? 갱각(更覺)이 바로 통의 상이니, 이것을 좇아 애처(愛處)에 떨어지게 된다.
애(愛)의 상은 무엇인가? 일어나 가는 것이 바로 애의 상이니속마음의 애욕이 마음을 발하여 가게 된다., 이것을 좇아 수처(受處)에 떨어지게 된다.
수(受)의 상은 무엇인가? 받아 지니는 것이 바로 수의 상이니‘수(受)’란 모든 탐욕을 받아들여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좇아 유처(有處)에 떨어지게 된다.
유(有)의 상은 무엇인가? 여러 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 바로 유의 상이니이미 받아들였으면 몸이 태어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여러≺若干≻’란 한 곳에서만 몸을 받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좇아 생처(生處)에 떨어지게 된다.
020_1083_a_08L痛相爲何等爲更覺是爲痛相令從是致墮愛處愛相爲何等爲發往爲愛相內情愛欲而心發往令從是致墮受處受相爲何等爲受持是爲受相受受諸欲而心持之不捨令從是致墮有處有相爲何令墮若干處是爲有相已受則有身處若干云其非一處受身令從是致墮生處
생(生)의 상은 무엇인가? 이미 5음(陰)이 있는 것이 바로 생의 상이니몸을 받아 태어나면 5음이 나타나니, 이것이 바로 ‘생의 상’이다., 이것을 좇아 노처(老處)에 떨어지게 된다.
노(老)의 상은 무엇인가? 점점 노숙해지는 것이 바로 노의 상이니, 이것을 좇아 사처(死處)에 떨어지게 된다.
사(死)의 상은 무엇인가? 명근(命根)이 다한 것이 바로 사의 상이니, 이것을 좇아 고처(苦處)에 떨어지게 된다.
020_1083_a_15L生相爲何等爲已有五陰是爲生相生受身則五陰是爲生相矣令從是致墮老處老相爲何爲轉熟是爲老相令從是致墮死死相爲何等爲命根盡是爲死相令從是致墮苦處
고(苦)의 상은 무엇인가? 몸이 달리는 것이 바로 고의 상이니목숨이 다하면 4대(大)가 나뉘어 다투니, 아프고 껄끄러움이 한량이 없다. 그런 까닭에 몸이 시달려서 괴롭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좇아 맞지 않는 곳[不可處]에 떨어지게 된다.
맞지 않음[不可]의 상은 무엇인가? 마음과 뜻이 시달리는 것이 맞지 않음의 상이니‘맞지 않는 곳’이란 늙고 병들고 죽는 곳을 말한다. 목숨이 흔들리는 것을 일러 ‘시달린다’고 하였다. 비록 마음에 맞지는 않으나 모이면 흩어져 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이르기를, “몸이 궁색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늙음과 죽음을 만나게 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뜻과 같은 맥락이다., 이것을 좇아 답답한 곳에 떨어지게 된다.
020_1083_a_20L苦相爲何等爲身是爲苦相謂命盡四大分諍痛𤺙無量故言身急爲苦也令從是致墮不可處不可相爲何等爲心意急是爲不可相不可處謂老病死處也擾謂之急也雖心不可會必往之 『維摩詰』日:"身身爲窮道會老死故"斯義如之令幹從是致墮悒悒憂
020_1083_b_02L답답한 상은 무엇인가?즉 5음(陰)을 근심하는 것이니‘5음’은 줄기가 되고 108행은 가지가 된다. 『비가사경(沸12)迦沙經:蓱沙王五願經)』에서 이르기를, “그 가지의 근간을 끊고 뿌리를 자르면 다시는 움이 트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을 좇아 걱정하고 슬퍼하는 곳에 떨어지게 된다.
걱정하고 슬퍼하는 상은 무엇인가? 입으로 소리를 내며 슬픔과 기쁨을 이루게 되니, 기쁨이 곧 슬픔이요, 슬픔이 곧 기쁨인 것이다.‘소리를 낸다≺出聲≻’고 한 것은 병든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은애하는 이들과 이별을 고하는 슬픈 소리를 말한다.
020_1083_b_02L悒悒相爲何等爲憂五陰五陰爲幹百八御爲枝條 『沸迦沙經』日:"斷其枝幹截其根莖不復生栽"是之謂也令從是致墮愁𤺙處悲愁相爲何等口出聲言令致悲𤺙懣懣爲𤺙𤺙亦爲懣出聲謂爲病者臨亡與思愛辭別之悲聲
아홉 가지 끊긴 곳[九絶處]은 모든 악행의 반려(伴侶)가 되어서‘아홉 가지 끊긴 곳≺九絶處≻’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 흘러 다니니말하자면 어리석음이 흘러 가서 나고 죽음에 이르러 삼계를 돌아 흘러 다니니, 그런 까닭에 ‘흐른다’고 말하였다., 유(有)를 좇아 죄에 결박되는 두 가지 근본[本]이 있고, 세 가지 악(惡)의 근본이 있으며, 또한 네 가지 뒤바뀜[四倒]이 있다. 이 두 가지 근본이 되는 죄는 무엇인가? 첫째는 어리석음, 둘째는 애착[有愛]에 떨어짐이니, 이것을 두 가지 근본이라고 한다. 세 가지 악의 근본은 무엇인가? 첫째는 탐욕, 둘째는 성냄[瞋恚], 셋째는 어리석음[癡惑]이니, 이것을 세 가지 악의 근본이라고 한다. 네 가지 뒤바뀜[四倒]이 있으니, 네 가지 뒤바뀜은 무엇인가? 항상하지 않음[非常]을 항상[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상도(思想倒)이고 의도(意倒)이고 견도(見倒)이니, 이것이 하나의 뒤바뀜이며,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억측하고 몸이 아닌 것을 몸이라 여기고 부정(不淨)을 정(淨)이라 여기는 것도 위에서 설한 것과 같이 사상도ㆍ의도ㆍ견도이니, 이것을 네 가지 뒤바뀜이라고 한다.
020_1083_b_07L九絕處爲一切𦼇御令部伴九絕處者其宜在下從流行謂癡流行至生死迴流三界故謂之流爲有二本從有結罪爲三𦼇本亦有四倒彼二本罪𤺙爲何等一爲癡爲墮有愛名爲二本三𦼇本爲何等一爲貪欲二爲瞋恚三爲癡惑是名爲三𦼇本有四倒四倒爲何等非常念常是爲思想倒爲意倒爲見倒爲一倒計苦爲樂非身爲身不淨爲思想意見倒如上說是名爲四倒
저 어리석음[癡]을 이해하지 못함[不解]이라 이름하니, 4제(諦)에 지혜롭지 못하여4제를 저버리고 네 가지 뒤바뀌어 거꾸로 됨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혜롭지 못함’이라고 말하였다. 보지 못하고부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서로 응하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악(惡)이며,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귀명(歸命)하지 않은 스님이 부처님의 심오한 법을 받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악이 없음을 일러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저 유애(有愛)는 무엇인가? 세간의 욕심을 일으켜 놓아 버리지 않음이 바로 유애이다. 이것을 두 가지 근본이라고 한다.‘놓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효자가 잠시도 부모 돌보는 일을 놓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020_1083_b_16L彼癡名爲不解四諦不慧背四諦向四顚倒之不慧也不見不見佛也不相應不解受爲𦼇是爲癡不解不歸命僧受佛深法斯𦼇莫大謂之癡矣彼有愛爲何等爲所世閒欲發往不捨爲有愛是名爲二本不捨者謂之孝之不捨須臾也
020_1083_c_02L저 탐욕(貪欲)의 근본은 무엇인가? 있는 곳마다 탐욕을 심으니‘심으니≺種≻’란 심는다≺殖≻는 뜻이며, ‘있는 곳≺所在≻’이란 5도(道) 가운데 있는 곳마다 탐욕을 심는 것을 말한다., 저[奇] 진귀한 보배나 저 재산, 저 장엄한 일, 저것에 대한 질투‘기(奇)’란 저것≺彼≻이라는 뜻이다. 중생들은 욕심 낼 만한 물건을 보면 탐내는 마음이 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이 저쪽 대상에 달려 있기 때문에 질투를 일으킴이 저것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등 탐할 만한 것을 탐하며,애상(愛相)과 애애상(愛哀相)을 일으켜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탐악의 근본이다.오로지 어리석기만한 소인은 탐낼 만한 것이 있으면 탐하고, 사욕(邪欲)으로 서로 어울려 피차(彼此)가 같이 좋아하며, 어리석게도 좋아하고 서로 애달파 하니, 처음 중생이 생겨난 이래로 계속 이어져 쉬지 않고, 돌아 흘러 다니면서 재앙을 받아 다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도의 모습은 다 그런 것이라 하여 모습으로 여기고 비슷한 무리들끼리 도를 쌓으면 고상한 뜻이 서로 생겨난다. 그러나 중생은 삿된 것을 바르다고 여기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비슷한 무리를 서로 구하여 그릇된 것으로 서로 구제하니, 이를 일러 악의 근본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020_1083_b_21L欲貪本爲何等爲所在所種貪種殖也在者謂在五道中在在所種貪爲奇珍寶爲奇財產奇嚴事爲有嫉在奇奇彼也謂群生見可欲之物靡不有貪嫉之心在彼故謂之嫉在奇貪可貪欲可往愛相愛哀相往不捨是爲貪𦼇本專思小人貪者可貪邪欲相投彼此相愛愚愛相哀始有衆生已來傅之不休迴流受禍更之至今經日:"道御者以道相然相可相類類以道聚高志相生凡物以邪爲正以穢爲淨黨類相求以非相濟謂之本惡也
이것은 누가 소유한 탐착에 근본하는가? 몸으로 비법(非法)을 행하며, 입으로 비법을 행하며, 마음으로 비법을 행하고, 또한 다른 것과 서로 연결하여 악의 종자를 짓는 뜻과 생각이 이 법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탐악의 근본이라고 한다.‘누가≺誰≻’라는 말은, 묻기를 “저 온갖 악은 어떤 것인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몸과 입과 마음의 올바르지 않은 행이며, 나머지 다른 인연들도 다 그러하다”고 하였다. ‘법의 근본’이란 참되고 지혜로우며 바른 법의 근본이다. 삿된 지혜를 일러 악의 근본이라고 한다.
020_1083_c_06L是本爲誰爲所有貪爲身非法御口非法御非法行亦餘俱相連𦼇種所作意念是法本是故名爲貪𦼇本誰者問告斯諸惡誰乎?答云由身口心非法之御餘因緣亦然法本者眞慧正法之本也邪慧謂之𦼇本矣
저 성냄이 비법(非法)이 되는 근본은 무엇인가? 사람에 있고 행에 있으니, 성을 내면 상대도 성을 내어행은 사람에게 있으니, 소인(小人)은 여섯 가지 삿된 것을 탐하여 자기의 욕망대로 하며, 남이 획득하는 것을 보면 곧바로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질투가 왕성해지면 곧바로 성을 낸다. 어진 사람은 자기를 미루어보아 어진 행위를 하지만, 소인은 자기 마음대로 하여 독(毒)을 행한다. 자기가 성을 내면 남도 나에게 성을 내니, 이를 일러 성을 내면 상대도 성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 참지 못하고 식별하지 못하며어리석은 사람은 무명(無明)을 명색(名色)이라고 여겨서 과감하게 도의 힘으로써 삿된 마음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어리석음을 펴서 그름≺非≻을 이룩하며, 재앙이 되고 어려움을 당하는 해로운 일인 줄 모르고, 탐욕으로 말미암아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식별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성냄을 인연하여 비평을 함부로 늘어놓으며‘비평’이란 비판을 쏘아냄으로 말미암아 성을 내는 것이니, 화가 얽혀 흉악한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 남을 헐뜯고 비방하게 된다., 옳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옳지 않은 것을 말하여 생각과 말하는 것이 좋지 않고 착한 뜻을 물리치는 것이삼존(三尊)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닌데 생각하는 것을 ‘옳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고 하고, 12부 경전의 법이 아닌데 진술하는 것을 일러 ‘옳지 않은 것을 말한다’고 한 것이다. 생각과 말이 올바르지 못한데 그것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일러 ‘좋지 않다’고 하니, 착한 마음을 사라지게 해서 악한 행동만 하게 된다. 바로 성내어 법이 아닌 것의 근본이 된다.
020_1083_c_10L瞋恚非法本爲何等爲在人爲在御恚相恚夫御在人也小人貪六邪已欲專焉睹彼獲之卽嫉生盛卽瞋恚發賢者恕已御仁小人專已御毒已恚往卽彼來謂之恚相恚不忍不識愚者無明爲名色狂不能以道力忍伏邪心申愚遂不識禍難之害由貪嫉生故日不識矣因緣瞋瞋恚發評諄評諄由評彈瞋恚之忿繳兇氣泄出爲謗訕矣念不可說不可所念說不好令意卻非三草志之所存而念之日念不可非十二部經法而陳之謂之說不可不可所念說而念說之謂之不好令心卻入惡御是爲恚非法本
020_1084_a_02L이 근본은 어떤 것이 비법의 근본이 되는가? 몸의 죄, 말의 죄, 마음의 죄와 또한 다른 것과 서로 연결된 뜻과 생각이 이 법의 근본이 되니, 그러므로 성냄이 비법의 근본이라고 한다.
저 어리석어 미혹됨이 비법이 되는 근본은 무엇인가? 어진 이의 네 가지 진리가 있음을 알지 못하며‘어진 이의 네 가지’는 어진 이의 4제를 말한다.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 구항(溝港:須陀洹)에 이르기까지 여섯 쌍, 즉 열두 무리가 12가 되니, 열두 어진 현인들은 한량없는 지혜로 참다운 진리에 4제가 있음을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不知≻’고 말한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여 보지 못하고, 서로 응하지 못하여 이해해 받아들이지 못하며,비법(非法)을 따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며, 혹은 두기도 하고 식별하지 못하며, 또한 어리석음의 어두움 가운데 처하여 덮고 가려져 어두워 안목이 없어지고 지혜를 무너뜨리며, 아는 것이 다 없어져 능히 무위(無爲)로 세상을 건너감을 이룰 수 없는 것이‘어리석음의 어두움’이란 마음을 말하며, ‘어두움 가운데 처하여’라는 것은 5음에 처해 있음을 말하니, 근본이 어리석고 어둡다는 말이다. 또 5음에 처해 있어서 겹겹이 5개(蓋)로 자신을 덮어 가려 눈을 멀게 하고 지혜를 무너뜨리니, 아는 것이 다 없어져서 네 깊은 늪에 빠지고, 모든 바다를 흘러 다니며, 삼계를 돌고 돌아 세상을 건너는 무위(無爲)의 도를 얻지 못한다. 바로 어리석어 미혹됨이 비법행(非法行)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020_1083_c_19L是本爲誰爲非法本所身罪所言罪所心亦餘所相連意念爲是法本是故爲瞋名爲非法本彼癡惑非法本爲何等不知四賢者諦如有四賢者諦謂賢者四諦也自佛下至溝港六雙十二輩爲十二十二賢賢者以無量之明瞋眞有四諦而愚者不知日不知也不解不見不相應不受非法或隨或受或在或不識癡冥在冥蔽覆令冥令無眼令慧壞知盡不能致無爲度世癡冥心也在冥處五陰也云本癡冥又處在五陰重以五蓋自覆令其眼盲慧壞知盡沒于四淵流于諸海輪三界不獲度世無爲之道是癡惑非法御本
어떤 것이 미혹됨이 비법인 것의 근본이 되는가? 신행(身行)을 지으며, 구행(口行)을 지으며, 심행(心行)을 짓고, 또한 비법과 함께 서로 도와 뜻에 비법의 근본을 생각하는 것을 바로 미혹됨이 비법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열 종류의 악한 무리가 몸과 입과 뜻이 짓는 잘못을 도와주는 것이 그른 법의 근본이 된다는 말이다.
저가 마땅히 알아야만 하고, 뒤바뀜[倒]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고, 뒤바뀐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며, 뒤바뀐 것을 따름도 마땅히 알아야만 하니‘저≺彼≻’란 저 수행하는 사람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세간 중생들의 마음이 너무나 뒤바뀌어 도의 마음과 서로 어긋남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를 일러 뒤바뀜을 안다고 한 것이다. ‘뒤바뀐 것’이란 하나만 뒤바뀐 것이 아니라는 말이고, ‘뒤바뀐 것을 따른다’고 한 것은 마음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서 삿된 인연을 따름으로 인하여 뒤바뀐 것을 받아들여 거꾸로 뒤바뀌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저 하나의 뒤바뀜이 있으면 하나의 뒤바뀜을 좇아 네 가지가 뒤바뀌게 되고, 있는 바를 좇아 세 가지 뒤바뀜이 되는 것이다.
020_1084_a_08L本爲誰爲惑非法身御作口御作御作亦所共相助非法意所念非法是名爲惑非法本謂十惡輩助身口意失爲非法本彼當知倒亦當知所倒當知從所倒當知是彼彼修家也御家當知世心廣倒與道心違謂之知倒也所倒者非一倒也御所倒者心愚無明從邪因緣受倒逆倒明者當知之彼有一倒從一倒爲四倒從所有爲三
무엇이 하나의 뒤바뀜인가? 상대가 되거나 혹은 받아들여서 비상(非常)을 상(常)으로 알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알고, 몸 아닌 것을 몸으로 알고,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아는 것이 바로 하나의 뒤바뀜이다.
무엇이 네 가지 뒤바뀜인가? 소유한 신(身)ㆍ통(痛)ㆍ의(意)ㆍ법(法)이 바로 네 가지 뒤바뀜이다.
무엇이 세 가지 뒤바뀜인가? 첫째는 상(想), 둘째는 의(意), 셋째는 견(見), 이것이 세 가지 뒤바뀜의 사(使:번뇌)이다.한 생각 가운데 견해가 네 가지 거꾸로 된 것이 있으니, 뜻의 견해도 역시 그러하여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 마음이 960번이나 바뀌기 때문에 ‘사(使:부려지다)’라고 하는 것이다.
020_1084_a_16L何等爲一倒爲對或受非常爲常苦爲樂非身爲身不淨爲淨是爲一何等爲四倒所有身是爲四倒何等爲三倒一爲想二爲意三爲是爲三倒使一想之中見有四倒意見亦然彈指之間意九百六十轉故日使
저 의근(意根)과 서로 연결되어 이어지는‘연결되어 이어짐’이란 삿되고 뒤바뀐 생각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붙어 있는 것이니, 이를 일러 연결되어 이어진다고 한 것이다. 색(色)과 상(像)이 수상(受想)이 되며, 욕상(欲想)이 되고어리석은 마음의 습기가 다른 사람의 색신의 형상을 보면, 마음은 곧바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심을 이루기 때문에 ‘욕상(欲想)’이라고 한 것이다., 소유한 욕상이 서로 따라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아서중생이 있은 이래로 마음이 삿됨을 행하여, 혹 깨끗한 것을 등지고 어리석음을 향하여 좋아하는 것만 바라보고는 법이라고 여겨 전해서 오래되어 지금까지도 끊지 못하고 있다. 뜻과 생각에 있는 것이 바로 욕념(欲念)의 종자가 된다.
020_1084_a_21L彼所可意根相連著連著者謂邪倒之想首尾相屬謂之連著色若像爲受想爲欲想癡意習所睹色人之像心卽執存尋之成欲故日欲想矣以爲有欲想相隨久不斷自有衆生之來心邪或背淨向穢望嬖爲法傅之久遠于今不斷在意念是爲欲念種
020_1084_b_02L만일 저 상(想)을 분별하여 받아들인다면 이것을 상도(想倒)라고 하며‘분별(分別)’이란 6정이 제각기 받아들이는 것이 있어서 소리다, 물질이다 하고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중심경(中心經:忠心經)』에서 이르기를, “눈은 다만 볼 수만 있지 들을 수는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맞지 않는 것을 좇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을 바로 의도(意倒)라고 하며‘그대로’란 진(眞)과 같은 뜻이다. 진(眞)에는 4제가 있는데, 저 어리석은 마음은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좇아’란 온갖 거꾸로 뒤바뀐 것을 따르는 것이요, ‘맞지 않는 것’이란 도를 실천하는 일에 응하지 않고 여섯 가지 사(邪)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의도(意倒)’라고 한 것이다., 받아들인 것을 버리지 않고 뜻에 두어 생각이 색(色)에 있고‘않는다’란 온갖 거꾸로 뒤바뀐 것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고, ‘색에 있다’고 함은 색신(色身)을 말하는 것이다. ‘몸에 있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정(不淨)한 뜻을 청정하다고 억측해서 가의(可意)만 듣고 생각에 이미 상쾌하여 소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바로 견도(見倒)라고 한다.‘듣는다’란 따른다≺從≻는 의미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란 가서 받는 것을 말한다. 어리석은 마음이 맞다고 여기는 것만 좇아서 애써 마음속에 기억하며, 눈으로 본 것을 즐겁게 여겨서 가서 온갖 탐욕을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뒤바뀐 소견≺倒見≻’이라 한다.
020_1084_b_02L若彼所想分別受是名爲想分別謂六情各有所受聲色分流『中心經』日:"目但能視不能聽"斯之謂矣彼惑意不如有受所從不應受解是名爲意倒如眞也眞有四諦彼愚心惑而不受也所從從諸倒不應不應道御而受六邪謂之意倒所以受不捨在念在色不不捨諸倒存之在意在色色身也存身亦爾淨意計淨聽可意念已快所見受往是名爲見倒聽從也受往往受也從愚心所可勤意念之目所見往受諸欲謂之倒見矣
저 소견은 이미 상(相)을 분별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열두 가지 뒤바뀜이 되니, 무엇이 열두 가지 뒤바뀜인가? 몸에 세 가지가 있고, 아픔[痛]에 세 가지가 있고, 뜻에 세 가지가 있고, 법에 세 가지가 있다. 또한 상도(想倒)에 네 가지가 있고, 의도(意倒)에 네 가지가 있고, 견도(見倒)에 또 네 가지가 있다.
또한 입(入)의 인연이 물질[色]과 서로 만나‘입의≺在入≻’란 물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눈이 가서 물질을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물질을 만나는≺會色≻’ 것이다. 열두 가지 뒤바뀜이 되니, 몸에 세 가지, 아픔에 세 가지, 뜻에 세 가지, 법에 세 가지, 합하여 열두 가지 뒤바뀜이 된다.‘몸에 세 가지’란, 첫째는 생각의 뒤바뀜이고, 둘째는 마음의 뒤바뀜이며, 셋째는 보는 것의 뒤바뀜이다. 이러한 뒤바뀜 가운데 네 가지 뒤바뀜이 있으니, 네 가지 뒤바뀜이란 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非常≻을 항상한다고 여기는 것으로서 이것이 네 가지 뒤바뀜이 된다.
020_1084_b_10L彼所見已爲相分別應當爲十二倒何等爲十二在身有在痛有三在意有三在法有三四想倒意倒亦有四見倒亦有四爲在入因緣相會色在入謂色不入眼眼往求色爲會色令爲十二倒身三痛三意三三合爲十二倒在身有三者謂一想倒二意倒三見倒倒中有四倒四倒者以四非常爲常爲四倒
020_1084_c_02L그러므로 이와 같은 여섯 가지가이미 12인연법이 있기 때문에 곧 6입(入)이 있는 것이다. 72가지 뒤바뀜이 되어 본래 얻은 인연을 좇아 인연에 따라 일어나므로 많고 적음을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으니비록 72가지 뒤바뀜이 있지만,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곧 이러한 뒤바뀜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셀 수 없는 사람에게는 셀 수 없음[無有數]의 뒤바뀜이 있다.사람에게서 뜻이 일어나면, 곧 이것이 뒤바뀜이 된다.
저 5음(陰)은 네 가지 신유(身有)가 되니‘네 가지 몸’이란 몸과 감촉의 느낌과 뜻과 법이다. 상음(想陰)이 행음(行陰)과 합해져서 법신(法身)이 된다., 소유한 색음(色陰)을 좇는 것은 색신(色身)에 속하고색음도 몸에 속한 것이고, 통음(痛陰)도 몸에 속한 것이며, 의음(意陰)도 몸에 속한 것이다., 소유한 통음(痛陰)을 좇는 것은 통신(痛身)에 속하며, 소유한 식음(識陰)을 좇는 것은 의신(意身)에 속하고‘의신에 속하고’라는 것은 식음이 뜻에 속한다는 것이다. 소유한 상음(想陰)을 좇는 것은 이 법신(法身)에 속한다.‘법신(法身)’이란 몸 가운데 여섯 가지로 나뉜 법이다. 이것도 여러 곳에서 나고 죽는 법을 받는다. 이 소유한 5음을 좇아 네 가지 몸[身]의 인연을 받게 된다.‘네 가지 몸’이란 위에서 말한 몸의 네 가지이며, ‘인연(因緣)’이란 12인연법이다. 이미 5음이 있으면, 곧 네 가지 몸이 있게 되니, 12인연법이 갖추어지게 된다.
020_1084_b_18L爲如是六已有十二因緣卽有六入爲七十二倒從本得因緣起隨因緣多少無有量雖有七十二倒隨因緣起卽是倒無有量數也不可數在人無有數無有數在人意起卽是倒也彼五陰爲四身有四身者痛意法也想陰與御陰合爲法身矣從所有色陰是屬色陰爲身痛陰爲身意陰爲身從有痛陰是屬痛身從有識陰是屬意身屬意身者爲識陰屬意也從有想陰亦御陰是屬法身法身謂身中六分法也亦謂受若干生死法從有是五陰受四身因緣有四身上身四也因緣十二因緣已有五陰則有四身令十二因緣具足矣
저 몸은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억측하여 이 신도(身倒)가 되고, 저 아픔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억측해서 이 통도(痛倒)가 되고, 저 뜻은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여기므로 이 의도(意倒)가 되고, 저 법은 몸이 아닌 것을 몸으로 억측해서 이 법도(法倒)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네 가지 뒤바뀜을 바로잡기 위하여 4의지(意止)를 나타내시고 연설하여 분별하셨으니, 저 몸의 신상(身相)을 관하여 행을 멈추는 것은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생각하는 뒤바뀜을 해탈시키기 위함이요부처님께서 중생들의 마음이 어둡고 깜깜한 못에 빠진 것을 보시고, 크게 뒤바뀐 것을 바로잡아서 바른 데로 되돌리려고 한 까닭에 분별해서 4의지(意止)를 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관찰하게 하신 것이다. 술잔처럼 작은 그릇은 진실로 보전하기 어려우니,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이를 먼저 깨닫고서 곧 다시 삼계로 되돌아와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아 것도 없음≺無≻으로 들어가니, 이를 일러 뒤바뀜으로부터 깨달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 통의 통상(痛相)을 관하는 것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억측하는 뒤바뀜을 해탈시키기 위함이요, 저 뜻의 의상(意相)을 관하는 것은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여기는 뒤바뀜을 해탈시키기 위함이요, 저 법의 법상(法相)을 관하는 것은 몸이 아닌 것을 몸으로 억측하는 뒤바뀜을 해탈시키기 위함이다.
020_1084_c_05L彼身不淨計淨是爲身倒彼痛苦計爲樂是爲痛倒彼意非常計爲常爲意倒彼法不爲身計爲身是爲法爲欲正四倒故佛爲現四意止爲說分別彼爲身身相觀御止爲不淨意念淨倒得解佛睹群生心沒盲冥之淵以爲直廣倒反正故分別說四意止令觀坏器實難保侑明者先寂卽還三界滅淨其心入無謂之從倒得解也彼爲痛痛相觀爲苦計爲樂倒得彼爲意意相觀非常計爲常倒得解彼爲法法相觀非身計爲身倒得解
020_1085_a_02L저 어두움 속에 어두움이 있는 것 같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의 상(相)이니, 뒤바뀐 데 떨어지게 되며, 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애상(愛相)이 되니, 이것을 좇아 색(色)을 받아들여 몸[身]이 되며, 짐짓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바로 탐상(貪相)이 되니, 주지 않는데도 가짐[不與取]에 떨어지게 되며‘기(奇)’는 다른 사람≺他≻이라는 뜻이고, ‘주지 않는데도 가진다≺不與取≻’는 것은 훔치는 것이다. 몸 때문에 문득 남을 속일 마음이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지니, 이를 일러 다른 사람을 속인다고 하는 것이다. 물질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지혜의 눈으로 보아서 가만히 가서 물질을 취하니, 6정이 모두 가기 때문에 ‘주지 않는데도 가진다’고 말한 것이다., 뜻과 같지 않은 것이 바로 에상(恚相)이니, 살생하는 데 떨어지게 된다.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치혹상(癡惑相)이니, 삿된 것을 받아들여 삿된 곳에 떨어지게 되며, 저 행할 바의 법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 수상(受相)이니말하자면 뜻이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것이 행하는 바를 따라가기 때문에 악한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상(常)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떨어지게 되며, 몸[身軀]이‘4대(大)’를 몸이라고 한다. 몸≺軀≻은 ▣13)의 몸이니, 6정을 일러 몸이라고 한다. 물건과‘물건’이란 몸속의 서른여섯 가지 물건을 말한 것이다.
020_1084_c_17L彼冥中冥如有不解是爲癡相令墮所倒處欲得往是爲愛相令從是受色爲身故令欺奇是爲貪相令墮不與取奇他不與取盜也以身之故輒有欺心施於他人謂之欺奇色不來惠服嘿往取色六情皆往故日不與取所可不如意是爲恚相令墮殺處爲不解事是爲癡惑令受邪墮邪處爲作彼所御法不卻受相謂意不卻諸惡從非所施御故受惡相是爲令墮有常想不知身四大謂之身也軀者體情謂之體物謂身中三十六物也
접촉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서로 만나는 상[會相]이니, 즐겁다는 생각을 억측하게 해서 몸이 있다는 곳[身處]에 떨어지게 되며뜻이 37도품(道品)을 깨달아 아는 데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법상(法相)을 이해하지 못하고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아소(我所)에 떨어지게 되며, 색상상(色像相)을 받아들여 이것을 청정하다고 억측하고 이것을 좇아 근(根)을 섭수(攝守)하지 못하는 데 떨어지게 된다.6정을 거두어서 지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9품(品)이니, 이미 일체 행하지 않을 비법(非法)의 반려를 분별하여 설했으므로‘반려≺伴≻’란 6정의 짝을 말하니, 눈과 물질이 짝이 되며, 6정도 같은 이치다. 마침내 들음이 많은 이는 능히 이해할 것이요많이 듣고 널리 보아 능히 이것을 이해할 뿐이다., 들음이 적은 이는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끝내≺卒≻’란 마침내≺遂≻라는 뜻이다. 많이 듣지 않고, 또 널리 보지 않으면 행에 집착해 가벼이 여기고 뒤쳐져서 마침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020_1085_a_04L爲更相會相令計樂想爲墮身處爲不解 謂意不入三十七品解了之所法相爲有身想令墮是爲是我所處爲墮受色像相令計是爲淨想從是墮不攝守根處謂不攝守六情根也是爲九品爲已分別爲一切不可御非法伴已說伴六情伴也眼與色爲伴六情同義竟是多聞者能解多聞慱見能解是耳不多聞者卒不解卒遂也不多聞又不廣見執行陵還遂不解是
이것을 지혜로운 이는 능히 이해할 것이요, 지혜롭지 못한 이는 끝내[卒]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어리석은 사람은 널리 배우고 많이 듣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듣고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행하는 이는 능히 이해할 것이요이것을 행하는 이라야 능히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니, 행하지 않는다면 끝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 행하지 않는 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홉 가지 끊는 곳[絶處]이 있어서 일체의 정법(淨法)으로 하여금 합쳐 모이게 하니,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째는 지(止), 둘째는 관(觀), 셋째는 탐하지 않음, 넷째는 성내지 않음, 다섯째는 어리석지 않음, 여섯째는 항상 하지 않음[無常], 일곱째는 괴로움[苦], 여덟째는 몸이 아님[非身], 아홉째는 청정하지 않음[不淨]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이다.대사가 말하기를, “‘끊음≺絶≻’이란 악한 마음을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지관(止觀)의 수행법을 얻어 세간의 애욕을 탐하지 않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서 항상하지 않고, 괴로우며, 공하고, 몸이 아니며, 청정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020_1085_a_12L是爲慧人能不慧卒不解謂愚癡之人不廣學多聞始聞之卒不解是御者能解謂御是者能解之耳不御終不解是不隨御不解有九絕處令一切淨法部墮聚合何等爲九不貪不恚不癡非常爲苦非身不淨是爲九師云:"絕謂與惡意斷絕也得止觀御不貪世聞愛欲無瞋恚愚癡之心覺知非常苦空非身不淨之諦也
020_1085_b_02L저 지(止)는 뜻이 멈춤을 말하니, 있는 곳에서 능히 그치고, 이미 그쳤으며, 바른 데 그치고, 거두어 그치며, 그침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뜻하지 않아도 마음이 적정하고 하나하나 생각으로 향하는 것을 바로 지(止)라고 한다.대사가 이르기를, “이를테면 몸이 있는 곳에서 잘 그쳐야 하니, 아픔≺痛:受≻에 있거나 뜻에 있거나 법에 있거나 간에 그 있는 곳에 문득 잘 그쳐서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 ‘바른 데 그치고’란 4의지(意止)이고, ‘거두어’란 6정을 거두어들여 적연(寂然)해져서 안정된 뜻을 얻는 것이다. ‘하나하나 생각으로 향하는 것’이란 6정을 편안하게 해서 있는 곳마다 한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관(觀)인가? 관은 음(陰)을 분명하게 알고식신(識神)은 미묘하고 모든 음(陰)은 살펴보기 어려우니, 진리를 만나면 그 이치를 분명하게 깨달아서 한 호흡 가운데 5음이 있음을 관찰해야 한다. 이를테면 처음 호흡을 셀 때 바람의 기운은 색음(色陰)이라 하고, 호흡을 생각할 때 받아들일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통음(痛陰:受陰)이며, 이 두 가지를 기억하는 것은 상음(想陰)이고,호흡을 좇아 생각에 이르는 것은 행음(行陰)이며, 이미 호흡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식음(識陰)이니, 이것이 한 번의 호흡 속에 5음이 있다는 것이다.5음을 분별하여 잘 아는 것이 바로 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持)를 분명하게 알고6정을 총체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입(入)을 분명하게 알고진리를 깨달아 여섯 가지 사(邪: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를 물리쳐서 6정에 들어옴이 없게 하는 것이다., 명자(名字)를 분명하게 알고, 근본을 좇아 태어남을 분명하게 알고색음을 제외한 네 가지(수음ㆍ상음ㆍ행음ㆍ식음)는 명(名)이 되고, 4대(흙ㆍ물ㆍ불ㆍ바람)는 자(字)가 된다. ‘근본을 좇아 태어남≺從本生≻’은 근본이 12인연을 좇아 5음(陰)과 6본(本)을 일으켜 들어가는 바를 좇아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본법(本法)을 좇아 이미 태어남을 분명하게 알고‘법(法)’이란 나고 죽고 하는 법이니, 마땅히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고(苦)를 분명하게 알고, 습(習)을 분명하게 알고, 진(盡)을 분명하게 알고, 도행(道行)을 분명하게 알고이른바 도를 행하는 이는 마땅히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를 밝게 분명히 알아야만 4제(諦)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020_1085_a_19L彼止名爲意止在處能止已止正止攝止失止不志心寂然一一向念是名爲止師云:"謂在身處能止在痛在意在法輒能止意不志也正止四意止攝攝六情寂然得定意也一向念者如安般六情在在一向也何等爲觀名爲了陰識神微妙諸陰難察當諦了理觀一息中有五陰也謂初數息時爲風氣謂之色陰念息恐受爲痛陰有是二念想從息至想爲御陰已知息意爲識陰是爲一息中有五陰也分別知五是爲了陰也爲了持㧾持六情爲了入當諦卻六邪無令入六情了名字了從本生四不色陰爲名四大爲字從本生言本從十二緣起五陰六本從所入生也了從本法已生法生死法也當明了知之了苦了習了盡道御謂御道者當曉了知苦習盡道爲了四諦
선과 악이 이 법으로부터 생겨남을 분명하게 알고선은 괴로움을 멸하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좇아 생겨고, 악은 괴로움과 괴로움이 쌓이는 원인을 좇아 생겨남을 분명하게 알아야만 하니,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를 당면해서 분명하게 깨달아 안다., 늘어나고 또 늘어남을 분명하게 알고다시 도를 수행하여 증진하는 것이다., 흑(黑)과 백(白)을 분명하게 알고도는 맑고 흰 것이고, 세속은 흐리고 검은 것이다. ‘흑(黑)’은 어두운 것을 말한다., 이것을 따를 수 있는지도를 수행하는 것은 따를 만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따를 수 없는지를 분명하게 안다.삿됨을 행하는 것은 따라서는 안 되니, 이러한 희고 검은 무리를 분별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020_1085_b_09L了從善𦼇從是法生當了知善從盡道生𦼇從苦習生御家當諦了之了增復增復增道行了白黑道爲淸百世爲濁黑黑冥也了是可隨謂道御可隨也不可隨謂邪御不可隨分別知是白黑輩
분별한 것과 같이자세하게 희고 검은 무리들을 분별함을 말한다. 두타행[拖]을 하고‘타(拖)’란 두타행(頭陀行)이니, 도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타행을 하지 않으며삿된 탐욕은 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려놓고탐욕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다시 내려놓으며다시 낮은 도≺下道≻를 내려놓고 행할 바를 생각하여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서 삼가 잊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고‘생각한다’란 호흡을 헤아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정진 수행하여 도의 근원까지 다하는 것을 일러 ‘다시 생각한다≺復念≻’고 한다. 『안반수의경』에서 이르기를, “깨달음을 생각하여 뜻을 심는다≺念覺種意≻”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르는 말이다.
020_1085_b_13L如有分別謂諦分別白黑輩也柁柁御也謂道可行不拖謂邪欲不可御爲下下欲重擔復下復下下道思所御思復思愼無忘爲念念念數息進御盡道原謂之復念『安般』日:"念覺種意"是之謂
사관(思觀)이 되고관찰한바 모든 것을 늘 생각하고 기억함을 말한다., 식(識)이 되고‘식(識)’이란 ‘기억하다≺憶≻’라는 뜻이니, 배우는 이들과 더불어 자기가 행한 바를 항상 기억해 아는 것을 말한다.지(智)가 되고다시 다함을 얻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안목이 되고‘눈≺眼≻’은 도의 눈≺道眼≻이니, 이미 도의 마음을 얻었으면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 없다., 꾀가 되고‘꾀≺謀≻’란 훌륭한 자비의 방편을 말한다., 만족함이 되고이미 두루 미침을 관찰하여 그 행을 원만하게 구족하는 것이다., 해탈이 되고도의 깊은 이치를 알아 삼계를 벗어나는 것이다.혜(慧)가 되고, 밝음이 되고도의 깊은 이치를 알아 삼계를 해탈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일체를 다 보는 것이다.되풀이해서 혜(慧)니 밝음이니 하고 말한 것은, 이런 행은 지혜 가운데 지혜이고, 밝음 가운데 가장 밝은 것임을 말한다. 『혜인삼매경』에서 이르기를, “청정한 지혜의 법”이라고 하였는데, 이 뜻과 같은 맥락이다., 욕(欲)이 되고‘욕(欲)’이란 도에 대한 욕망이니, 그 마음이 항상 도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광명이 되고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서 해탈과 혜와 밝음이 가득하여 마음으로 이 법을 좋아하는 이는 널리 자비로움과 은택의 광명이 시방에 미쳐서 모든 중생들이 그 은택을 입기 때문에 ‘광명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감히 여의지 못함이 되고하나같이 이미 깨달아 알았으면 감히 세간의 온갖 더러운 때≺穢垢:번뇌≻를 여의지 않을 수 없다., 관법(觀法)이 되고‘법(法)’이란 37조도품의 법이다., 각의(覺意)가 되고스스로 깨달음을 좇아 알지 못함이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바름을 보는 것이 되고‘바름≺直≻’이란 8직(直:正道)이니, 도의 자취를 보는 것이다., 도의 종자가 되므로37도품을 행하는 것이 도의 종자를 심는 것이 된다. 이것을 관(觀)이라 한다.
020_1085_b_16L爲思觀謂諸所觀常思念之爲識識憶也謂與學者常憶識已所御也得還盡無不知爲眼眼道眼也已得道心眼無不見爲謀謀謂善慈權也爲滿觀已遍浹滿足其御爲解解道奧脫三界爲慧爲明解道奧度三界得無不知爲一切見重本慧明者謂斯御爲慧中之慧明中之大明矣『慧印』日"淸淨慧法"斯義如之也爲欲欲欲道也其心常樂道御爲光御已滿解慧明心之樂斯法者普慈弘潤光被十方群生蒙澤故日爲光爲敢不離一已解了不敢不離世諸穢垢爲觀法法三十七品法也爲覺意從自覺得無不知也爲直見直八直也見道迹也爲道種御三十七品爲下道種是名爲觀
020_1085_c_02L또한 여러 가지로 두 무리의 관(觀)이 있으니마음속에 이미 깨달아 보아서 도의 종자를 심었으니, 이런 까닭에 ‘관(觀)’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여러 가지로 두 무리’라는 말은, 도는 깨끗하고 세간은 더러워서 그 일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라고 말한 것이다., 첫째는 정(淨)을 관함이요텅 비고 한가롭고 고요하고 깨끗하여 37도품을 관하는 것이 정관(淨觀)이다., 둘째는 부정(不淨)을 관함이요3부(部)의 행(行)을 관찰하는 것이 ‘부정관(不淨觀)’이다., 셋째는 청정(淸淨)을 관함이요뜻과 생각이 고요히 멈춤을 ‘깨끗하다≺淸≻’고 하니, 번뇌≺垢≻가 다하면 깨끗해지기 때문에 ‘청정’이라고 말한 것이다., 넷째는 청정하지 않음을 관함이요, 다섯째는 흑(黑)을 관함이요, 여섯째는 백(白)을 관함이요, 일곱째는 행할 만함을 관함이요‘행할 만함’이란 청정한 법은 행할 만한 것이니, 업(業)을 관찰하는 것이 보배가 된다.
020_1085_c_02L亦有若干二輩觀意已覺見爲下道種是故名日觀若干二輩者謂道淨世穢事多故日若干也一爲淨觀謂空閑寂淨觀三十七品爲淨觀二爲不淨觀觀三部御爲不淨觀三爲淸淨觀謂意念止爲淸垢盍爲淨故言淸淨四爲不淸淨觀爲黑觀六爲白觀七爲可御觀可御者淨法可御觀業爲寶矣
여덟째는 행하지 않아야 함을 관함이요, 아홉째는 죄가 되는 행을 관함이요‘죄가 되는 행을 관함’이란 삿됨을 실천해서 3악도에 들어가 마음을 미혹시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열째는 재앙과 복이 됨을 관함이요어떤 행이 재앙과 복에 속하는지를 관찰해 안다는 말이다., 열한째는 속박을 관함이요식신(識神)이 12인연법에 속박되어 있음을 관찰하여 아는 것이다., 열두째는 해탈을 관함이요12인연법을 버리면 마땅히 해탈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열셋째는 이익되는 바가 있음을 관함이요이미 해탈하였으면 이익되는 바가 있다., 열넷째는 잃어버려 이익이 없음을 관함이요‘잃어버림’이란 도행(道行)을 잃어버려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이다., 열다섯째는 감[往]을 관함이요‘감을 관한다’는 것은 6정이 여섯 가지 뒤바뀜≺六倒≻으로 가서 이르러 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細滑≻을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020_1085_c_08L八爲不可御觀九爲罪御罪御觀者觀履邪入三惡道以惑心十爲殃福觀謂觀知何御屬殃福十一爲縛觀觀知識神縛在十二因緣二爲解脫觀知捨十二因緣當得解脫十三爲有所益觀已得解脫爲有所益十四爲失無所益觀失失道御無益於已十五爲往觀往觀謂六情往至六倒色聲香味細滑多念
열여섯째는 돌아옴을 관함이요‘돌아옴’이란 돌아가서 몸을 관찰하는 것이다., 열일곱째는 죄를 받음을 관함이요12인연법을 지으면 죄를 받게 된다., 열여덟째는 죄를 제거함을 관함이니12인연법을 끊어 버리면 죄가 제거됨을 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觀)이라고 한다.
또한 두 가지 인연으로 이것을 설하여 온 천하 사람들의 두 가지 병을 그치게 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애욕이니, 이 두 가지 병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두 가지 약을 시현(視現)하신 것이다.
020_1085_c_14L十六爲還觀還觀身十七爲受罪觀作十二因緣爲受罪也十八爲除罪觀觀斷十二因緣爲除罪是故名爲觀亦爲二因緣令有是說止爲一切天下人有二病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지(止)이요, 둘째는 관(觀)이니, 만일 두 가지 약을 쓴다면 두 가지 병을 고치고지(止)와 관(觀)14)이 두 가지 약이 되고, 어리석음과 애욕이 두 가지 병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지와 관으로 두 가지 병을 치료하셨으니, 이를 일러 병을 고친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증지(證知)하여지(止)로는 애욕을 소멸하고, 관(觀)으로는 어리석음을 소멸하니, 어리석음이 소멸되면 도를 증득하게 된다. 애욕을 다시 탐하지 않아지와 관의 도가 원만해지면 어리석음과 애욕이 곧 소멸되므로, 도에 배부른 이는 속된 것에 허기져 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다시 탐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생각과 뜻이 해탈을 얻고, 어리석음에서 이미 벗어나 지혜를 좇아 해탈을 얻게 된다.네 가지 항상하지 않음과 바르고 깨끗한 행을 얻으면, 곧 삼계에 뜻을 두지 않으니, 이를 일러 ‘해탈’이라고 한다.
020_1085_c_17L何等爲二一爲癡二爲愛是二病故佛現二藥何等爲二一爲止二爲觀若用二藥爲愈二病止觀爲二藥癡愛爲二病佛以止觀治二病謂之愈病者令自證止滅愛觀滅癡癡滅得道之證貪愛欲不復貪 止觀道滿癡愛卽滅飽於道者不飢於俗謂之不復貪矣意得解脫癡已解令從慧得解脫得四非常直淨之御卽無三界志謂之解脫矣
陰持入經卷上
  1. 1)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의 난(難). 곧 재지옥난(在地獄難)ㆍ재축생난(在畜生難)ㆍ재아귀난(在餓鬼難)ㆍ재장수천난(在長壽天難)ㆍ재북울단월주난(在北鬱單越洲難)ㆍ농맹음아(聾盲瘖瘂)ㆍ세지변총(世智辯聰)ㆍ불전불후(佛前佛後). 처음 세 가지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법을 들을 수 없고, 다음 두 가지는 즐거움이 너무 많아서 법을 듣지 못하고, 세지변총은 세상 지혜가 너무 뛰어난 탓으로 분주하여 법을 듣지 못한다고 한다.
  2. 2)본존과 그 좌우에 모시는 두 분의 부처나 보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석가 삼존, 미타 삼존, 약사 삼존 등이 있다.
  3. 3)제후가 천자를 알현할 때 갖는 옥(玉).
  4. 4)안식국(安息國)의 태자로 왕위를 숙부에게 양보하고 출가하여 선(禪)을 닦았고, 아비담에 정통하였다. 2세기 중엽에 중국으로 와서 초기 불전(佛典)들을 번역하였다.
  5. 5)학문(學問)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는 뜻이다.
  6. 1)6근(根)을 말하는 것으로서, 곧 귀[耳]ㆍ눈[目]ㆍ입[口]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다른 이름이다.
  7. 2)37도품(道品) 또는 37조도품(助道品)이라고도 한다. 즉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에 나아가기 위하여 닦는 도행(道行)의 종류.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정도분(正道分)을 말한다.
  8. 3)4정근(正勤) 또는 4정단(正斷)ㆍ4정승(正勝)ㆍ4의단(意端)ㆍ4의단(意斷)이라고도 한다. 37품(品) 가운데 4념처(念處) 다음에 닦는 법.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네 가지 법. 첫째는 이미 생긴 악을 없애려고 부지런한 것이요, 둘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을 미리 방지하려고 부지런한 것이요, 셋째는 이미 생긴 선을 더욱더 자라게 하려고 부지런한 것이요, 넷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을 생기도록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다.
  9. 4)4여의족(如意足)ㆍ4여의분(如意分)이라고도 한다. 정(定)을 얻는 수단에 욕(欲)ㆍ정진(精進)ㆍ심(心)ㆍ사유(思惟)의 넷이 있으므로, 일어나는 원인에 의하여 정(定)을 나눈다. 욕여의족ㆍ정진여의족ㆍ심여의족ㆍ사유여의족을 말한다.
  10. 5)①신력(信力):신근(信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삿된 믿음을 깨뜨리는 것, ②정진력(精進力):정진근(精進根)을 증장케 하여 신체의 게으름을 물리치는 것, ③염력(念力):염근(念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사념(邪念)을 깨트리는 것, ④정력(定力):정근(定根)을 증장케 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끊어 버리는 것, ⑤혜력(慧力):혜근(慧根)을 증장케 하여 삼계의 모든 미혹을 끊는 것.
  11. 6)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스려 얻은 마음의 지혜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공부법.
  12. 7)‘의(猗)’는 의(倚)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13. 8)뜻과 심식의 전일함을 말한다.
  14. 9)원문은 ‘사(師)’로 되어 있는데, ‘사(邪)’의 오자인 듯하다.
  15. 10)‘『십▣법』’은 무슨 경을 말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장아함경(長阿含經)』의 소경(小經)인 「십보법경(十報法經)」 중에 “네 가지 바른 행으로 삿된 행을 녹인다(四直行消邪行)”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십보법경』을 인용한 말인 듯하다.
  16. 11)피부감각(皮膚感覺)ㆍ기계적 감각ㆍ기관감각(器官感覺)을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포괄해서 촉각의 범주 안에 넣어 신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7. 12)‘불(弗)’의 오자인 듯하다.
  18. 13)글자가 마모되어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다.
  19. 14)‘지(止)’는 정신집중으로 마음이 안정된 상태, ‘관(觀)’은 진리ㆍ실상(實相)을 제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이 지관에 관해 잘 설명을 한 것이 천태종(天台宗)의 지의(智顗)이다.그는 『마하지관(麻訶止觀)』에서 좌선 때의 마음의 문제를 열 종류로 분류하고, 또 그 마음의 파악 방법을 열 종류로 분류, 좌선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후에 천태종의 근본교리가 되었다. ‘지’는 ‘정(定)’에, ‘관’은 ‘혜(慧)’에 해당하는데, 그 형식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선정(禪定)을 닦아 차례로 실상(實相)의 진리를 깨닫는 점차지관(漸次止觀), 둘째는 수행자의 성격과 능력에 따라 실천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정지관(不定止觀), 셋째는 처음부터 실상을 대상으로 해서 원만하여 결핍 없이 즉시 깨닫는다는 원돈지관(圓頓止觀)이 있는데, 셋째가 가장 뛰어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