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성안에는 큰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수마제(須摩提)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어서 그의 부모ㆍ종친ㆍ벗들이 모두 울부짖고 슬퍼 몸부림쳤으며, 원망하여 크게 소리치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졌고, 어떤 이는 남편이나 주인[大家]을 부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갖가지로 울고불고 하였으니, 어떤 이는 땅을 파고 스스로 묻는 이도 있었고, 또한 칼로 머리털을 자르는 이도 있어서 마치 독화살이 심장에 들어가서 그 괴로움이 한없는 듯 하였으며, 혹 옷을 덮고 슬피 우는 이도 있어서 마치 폭풍[大風]이 숲을 때려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는 것 같았다. 또한 물을 잃은 물고기가 땅에서 꿈틀거리는 것과 같았으며, 또한 큰 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려 흐트러진 것 같았다. 이렇게 심한 괴로움이 그들의 몸을 덮었다.
020_1123_b_02L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성안에 큰 장자의 아들 수마제(須摩提)가 죽어서 그의 부모ㆍ형제ㆍ처자ㆍ종친과 벗들이 애욕[恩愛]에 묶여서 이렇게 헤매는 것이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모두를 위하셔서 그들에게 가시옵소서. 모든 불세존께서는 청함이 없이는 설하지 않으시기에 제가 이제 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불세존께 청하오니, 크신 자비로 저희들에게 이를지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의 청을 받아들이시고 곧 그 집으로 가시는데, 이때 저들 모두는 멀리 세존을 보고서 각기 손으로 얼굴을 씻고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처소에 이르시니 부처님 발에 얼굴을 대어 절하고는 슬픔에 목이 메서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으며 길게 탄식하였으나,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내쉬지 못하고 숨이 목구멍에서 멎었다.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소리 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성안에 오직 이 사람만이 총명하고 지혜롭고 단정하고 뛰어나, 나이가 차 장성하매 모든 사람 가운데서 제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를 사모하여 마음에 두고 여의지 않았으며, 뭇 사람들은 우러러보아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씨는 부드러웠으며, 그는 부모에 효도하였고 형제에게 공순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재보ㆍ금은ㆍ유리ㆍ차거(硨磲)ㆍ마노(馬瑙)ㆍ산호ㆍ호박 등 창고 가득히 진기한 보배를 구족하였으며, 또한 수레ㆍ말ㆍ음식ㆍ의약ㆍ의복ㆍ침구ㆍ노비 그리고 시종들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하루아침에 생을 마쳤습니다. 이러므로 저희들은 슬피 울고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020_1123_c_02L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설법하시어 모든 번뇌를 여의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 이러한 모든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인 모든 번뇌[結使]의 뿌리를 끊고, 생ㆍ노ㆍ병ㆍ사의 언덕을 건너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의 바다를 영원히 끊어서, 나는 곳마다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을 만나고, 결코 나쁜 연(緣)을 만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들이 만일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을 여의고 싶다면, 다시는 애욕[恩愛]의 속박을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세우고[標心] 견해를 바로 하여 삼보(三寶)에 귀명할지니, 왜냐하면 눈멀고 어리석은 중생을 인도할 이 중에 부처보다 나은 이가 없으며, 상인의 우두머리[商主]나 의원[醫王] 중에 상호가 부처님과 같을 이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곧 약왕(藥王)이시고, 설하신 법은 곧 좋은 약이기 때문이다.”
020_1124_a_02L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삼보와 계를 지니는 덕 있는 사문을 공경하지 아니했다면, 이러한 사람 또한 죽었다고 한다.”
020_1123_c_24L復告大衆:“若有不敬三寶及諸持戒有德沙門,如是之人亦名爲死。”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이가 간탐하고 질투하고 교만하여 스스로 계를 지키지 아니하며, 집안의 크고 작은 범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말씨가 거칠고 사납거나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거나, 미치고 어리석고 게으르고 마음이 안정되지 아니하거나, 6정(情)을 갖추지 못하고 지혜가 편협하거나, 의심하여 남의 말을 전혀 믿지 아니하거나, 항상 질투와 성냄을 품으면서 스스로 칭찬하거나, 남이 잘하는 것은 가리고 못하는 것은 드러내거나, 스스로 뽐내기를 좋아하여 사문이나 범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거나 바른 법을 듣지 않았다면, 이러한 사람 또한 죽었다고 하느니라.”
만약에 부처를 믿지 않거나 또한 법을 행하지 않거나 법 아닌 것을 행하였다면 곧 그를 일러서 죽었다 하네.
020_1124_a_14L若人不信佛, 亦復不行法, 行於非法者,
是則名爲死。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람은 부귀를 얻더라도 교만한 마음이 없거나, 뜻이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스스로 높이지도 낮추지도 아니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를 보되 내 몸같이 여기며, 부귀를 얻고도 마음에 달라짐이 없고 항상 무상이라고 관하여 내 것이라 여기지 않아서 이를 원수나 독(毒)으로 여기며, 모든 법은 반드시 모이면 기필코 헤어진다는 것을 알며, 이미 이렇게 알고 나서는 부지런히 힘써서 닦아 익히며, 의지할 어떤 법도 없음을 알며, 어떤 명예와 이익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아니하며, 또한 일체의 어떤 번뇌에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항상 마음을 닦아서 지혜로운 이를 친근히 하며, 나쁜 벗을 가까이하지 아니하고 항상 멀리 여의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처음부터 어기거나 잃어버리지 말라.”
덧없음을 영원하다 여기고 깨끗지 않음을 깨끗하다 하네. 사실은 괴로운데 즐겁다 하고 나[我]가 없는데 있다고 하네.
020_1124_b_14L無常計有常, 不淨計有淨, 實苦而言樂,
無我計有我。
중생은 나고 죽는 가운데 뒤바뀐 망상에 깊이 집착해 천만억 겁 지나면서도 생사의 뿌리를 알지 못하네.
020_1124_b_16L衆生生死中, 深著於倒見,
千萬億劫中, 不知生死本。
만약에 사람이 진실한 큰 법 능히 안다면 덧없고 괴로움의 큰 뿌리인 줄 능히 알리라.
020_1124_b_17L若有人能解,
眞實大法者, 能知此非常, 最爲大苦本。
만약 때 묻고 더러움 보고 3독의 뿌리 끊어 버리면 위없는 큰 법 기필코 이루리라.
020_1124_b_18L若人見垢濁, 斷除三毒本, 必能得成就,
無上之大法。
다시 대중에게 이르셨다. “번뇌[結使] 때문에 모든 인연 일으키고, 인연 때문에 모든 고뇌를 받으며, 이것들 때문에 생사에 바퀴처럼 윤회한다. 형상[色]은 내세에 이르지 못하며,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도 내세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5음(陰)은 얻을 수 없으며 굳건하지 못하며 잠깐도 머묾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을 이미 너희들 위해 설하였나니 중생에게 자비하시기에 감로(甘露) 같은 이 법 설하였노라.
020_1124_c_09L諸佛之妙法,
已爲汝等演, 慈悲衆生故, 說是甘露法。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땅[地]은 뒷세상에 이르지 못한다. 물ㆍ불ㆍ바람 또한 뒷세상에 이르지 못한다. 까닭이 무엇이냐. 땅은 느낌과 앎이 없다. 즉 4대는 의식이 없으니, 땅은 곧 거짓 4대(大)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뒷세상에 이르지 못한다.”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뒷세상에 이르지 못한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뒷세상에 이르지 못한다. 무슨 까닭이냐. 눈이란, 공하고 나가 없고 덧없으며, 잠깐도 머무르지 못해서 설사 멈추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인연이 있으면 났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지니, 나도 온 곳이 없고 가도 이르는 데가 없다. 귀나 코나 혀나 몸이나 뜻도 또한 이와 같다.
020_1125_a_02L모든 사람은 알아야 한다. 이 6정(情)은 인연이 모이면 있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진다. 비유하면 붙어 있는 손이 오래 머물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빚진 사람이 날짜를 세어 빚을 갚다가 날짜가 끝나면 가버려서 끝내 머무를 기약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가버리면 곧 공하여 마침내 얻을 수 없으며, 또한 오고감이 없다. 이 6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모든 감관 견고함이 없어 그것은 마치 허공과 같도다. 일정[安]하지 않고 수명도 없어 내 것[我所]이 될 수 없네.
020_1125_a_04L諸情無堅固, 此法如虛空, 不安而無壽,
不可爲我所。
인연 때문에 작용하지만 끝내 결정된 것은 아니며 화합으로 이루어진 법이라 세상이 바뀌면 얻을 수 없네.
020_1125_a_06L因緣故有用, 竟無有決定,
和合所成法, 轉世不可得。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 3백 비구가 번뇌[漏]가 다하여 그 속박[結]에서 풀려나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이루었고, 5백의 모든 하늘들이 번뇌를 멀리 여의어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으며, 또 8천 하늘ㆍ사람들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었다.
과거 부처님들이란, 가섭(迦葉)부처님ㆍ구손제(拘孫帝)부처님ㆍ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부처님ㆍ수섭(隨葉)부처님ㆍ시기(尸棄)부처님ㆍ정광(定光)부처님이시니라.
020_1125_a_14L過去佛者名爲迦葉佛、拘孫帝佛、拘那含牟尼佛、隨葉佛、尸棄佛、定光佛。
이와 같이 항하사(恒河沙:갠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 여래께서 온갖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매우 깊고도 한량없는 선법(善法)을 닦아 모았으며 모든 법에 걸리는 바가 없었으되 이는 모두 무상이며, 과거에도 또한 한량없이 많은 벽지불(辟支佛)이 있었는데 뜻이 적정(寂靜)을 좋아하고 선(善)으로 그 마음을 닦았으되 또한 이는 모두 무상이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도 한량없고 가없이 많았으며 모두 번뇌를 여의고 깨달았으며 3명(明)과 6통(通)과 8해탈을 얻어서 영원히 나고 죽기를 여의고 피안(彼岸)에 이르렀으나, 또한 무상의 변천된 바가 되었다.
만약 누가 와서 이러한 모든 것을 원하면 즐겁고 기쁘게 주되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용맹정진하며 몸과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깊이 선정과 해탈삼매를 닦았으며, 깊고 날카로운 지혜와 넓고 큰 지혜와 걸림이 없고 견줄 이 없는 매우 깊은 지혜로써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두루 갖추었다.
내가 그때 손을 펴서 땅을 문지르니, 마귀의 무리와 권속들은 곧 깨어 흩어졌다. 내가 알고 얻고 깨닫고 한 법이 당연히 증험을 나타내어서 성도(成道)하게끔 되어 있었느니라. 그때에 곧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를 쌓아 모으고, 한 생각으로 서로 응하는 지혜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법륜(法輪) 굴려 스스로 성취함을 얻었고, 또한 다시 일체 중생을 성취시켰다.
020_1125_c_02L 그때에 있었던 세 야차(夜叉)인, 곧 아라바가(阿羅婆伽)와 비사나가(毘沙那迦)와 수지람(修脂藍) 등과 이와 같은 한량없는 귀신들을 교화하여 계(戒)를 지니도록 하였으며, 아흔다섯 가지 외도 가운데서 가장 높고 가장 위여서 견줄 이가 없었으며, 일체 3독(毒)의 뿌리를 끊어 없앴으며, 나고 늙고 앓고 죽고 하는 근심이 없어서 위없는 도법을 성취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무상으로 돌아가리니, 석 달 뒤엔 당연히 열반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무상의 법을 깊이 관찰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애욕에 얽힌 마음을 없애고, 또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생각을 없애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영원히 끊고, 온갖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며, 한량없고 맑고 깨끗한 행을 더하고, 깊이 온갖 법의 12연기(緣起)를 완전히 깨달아서 이 인연으로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을 『제제우뇌(除諸憂惱:모든 근심과 고뇌를 없앰)』라고 이름하니, 너희는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한다. 또한 『회제불전(會諸佛前:모든 부처님 앞에 모임)』이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여래보설시현중생(如來所說示現衆生:여래께서 설하신 것을 중생에게 보여 나타냄)』이라고도 이름하니,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뒷세상에서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든 이 『여래보설시현중생경』을 받아 지니는 사람은, 일곱 생 동안 스스로 숙명을 알고 독이 해치지 못하며, 불이 태우지 못하고, 물이 띄우지 못하며,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여덟 가지 불법을 듣기 어려운 곳에 태어나지 아니하며, 죽으면 미륵부처님 앞에 태어나고, 미륵부처님 앞에서는 첫 번째 회중에 참석함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