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요산(鷂山)에 계셨는데, 모든 하늘ㆍ용ㆍ귀신ㆍ제왕ㆍ신하ㆍ인민들이 다 부처님 처소에 가서 절하고 받들어 공양하되 예절을 극진히 하였다. 조달(調達)은 그것을 보고 질투가 한없이 나서 태자 미생원(未生寃)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태자의 아버지가 나라의 온갖 보배를 부처님과 여러 사문들에게 바칩니다. 나라의 창고가 바닥이 날 터이니, 빨리 일을 도모하여 왕위에 오르십시오. 나는 군대를 일으켜서 부처님을 치겠습니다. 그러면 태자께서는 왕이 되고 나는 부처가 되어 둘이 다 자기의 길을 얻으면 그 아니 좋습니까. 당신은 꼭 성공할 것입니다.” 미생원과 조달은 이렇게 음모를 꾸미고 곧 세력을 잡고 있는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군사를 정돈하였다가 왕이 돌아오거든 그 옥새를 빼앗고 옥에 가두라” 왕이 돌아오자 신하는 곧 명령대로 옥에 가두었으나, 왕은 태연하게 전생의 재앙을 비추어 보고 마음에 두려움이 없었으며 거듭 부처님의 말씀을 믿었다. 왕은 말했다.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나를 가두느냐?” 황후와 귀인들과 온 나라 사람들은 애통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왕은 우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나 땅이나 해ㆍ달이나 수미산(須彌山)과 바다나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허물어지며, 성한 것은 곧 쇠하고, 합함과 만남엔 헤어짐이 있으며, 생겨난 것은 반드시 죽으며, 그것을 근심하고 슬퍼하기 때문에 바퀴처럼 돌아감이 끝이 없으며, 때문에 거듭 괴로움을 만든다’고 하셨다. 그 근원을 찾고 그 시작을 살핀다면, 인연이 합하여 모여서 있는 것을 생한다[生]고 하며, 인연이 흩어져 곧 사라지는 것을 공(空)이라 한다. 무릇 몸뚱이란, 4대(大)일 뿐인데, 중생의 혼령이 그 속에 깃들어 살다가 죽으면 도로 근본으로 돌아간다. 혼령이 허공으로 떠나가면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고 이르니 몸뚱이도 오히려 보존하지 못하는데, 어찌 나라가 항상 보존되겠느냐? 부처님께서 처음 나라에 들어오실 때 나는 아직 자식이 없었는데, 나에게 물으시기를 ‘다음 세상에서도 왕 노릇을 할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세존께서 거듭 말씀하시기를 ‘일체가 무상하니 그대는 잘 생각하라’고 하시더니, 부처님께서 나를 경계하신 것이 바로 지금을 위해서이다. 그러니 각기 노력하여 뜻을 세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직하라.” 왕은 태자에게 말했다. “너는 늘 병이 있어서 나는 속을 태우면서 목숨 바쳐 너의 위급함을 대신하려고 하였으니, 부모의 어진 은혜 하늘보다 높거늘 너는 무슨 마음을 품었기에 이렇게 반역을 하였느냐? 부모를 죽인 자는 죽으면 태산(太山)지옥에 들어가 쉬지도 못하는데 네가 장차 이를 당하겠구나. 나는 너의 부모이다. 부모를 중히 여기고 효도를 높인다면 이름조차 두려워 함부로 일컫지 않는데, 하물며 너는 어찌 아버지를 죽이려 하느냐? 나라는 너에게 주고 나는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겠다. 내가 평소에 관찰하니 음탕함과 방탕함은 마치 불이 몸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여자[女類]의 아름다움은 허공과 같이 없는 것으로 여겼으나, 눈이 있는 자는 이에 미혹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하니 너는 다만 부처님의 경전을 보고서 여자의 거짓이 더욱 많은 허물을 만듦을 비추고 영리(榮利)는 몸을 해친다는 것을 바로 알아라.” 태자가 말했다. “당신은 많은 말을 하지 마시오. 내가 숙원을 이루었으니 어찌 놓아주겠는가?” 그는 옥졸[有司]에게 명하였다. “밥 주는 것을 끊어서 굶겨 죽여라.” 옥졸이 옥에 넣으려고 하자 병사왕(洴沙王)은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려 거듭 절하고 아뢰었다. “아들에게 하늘과 땅만큼 많은 악이 있지만 저에겐 털끝만한 분함도 없사오며,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엔 영원한 즐거움이란 없으며 괴로움은 항상된 것입니다.” 그는 옥에 들어가 머리를 풀고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었다. “아, 하늘이여, 어찌 이런 법이 있습니까?” 후비와 귀인과 온 나라 사람들 중에 애통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왕후가 태자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질곡(桎梏:차꼬와 수갑)에 채워져 옥에 계시어 앉고 일어서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니,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너를 낳은 뒤로 대왕께서는 오로지 너에게 정을 두어 먹을 때나 쉴 때 잊지 않느라고 몸이 쭈그러졌으며, 아플 때는 너에게 엎드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몸이 마르도록 애태우시며 당신의 목숨으로 너의 죽음을 대신하려고 하셨으며, 천상과 인간의 양육 방법을 지켜 거스른 적이 없으셨다. 부처님의 경에 이르시기를, ‘선의 극치는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장 큰 악은 어버이를 해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어른과 어린이가 서로 섬겨도 하늘은 돕거늘 더구나 어버이를 섬김이겠느냐? 너의 사납고 모진 마음으로 크고 무거운 악행을 저질렀으니, 반드시 태산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세간의 60억 년이 태산지옥에서는 하룻밤 하루 낮이라 온갖 독을 지나는데 머무는 데마다 몇 해[年]가 걸릴 터인데, 네가 그것을 마치자면 또한 어렵지 않겠느냐? 한 순간의 쾌락한 마음을 내는 자는 반드시 후회가 없지 않느니라.” 이에 태자가 말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는 뜻을 조금씩 품어 오다가 오늘에야 그 원을 얻었는데 어찌 이렇듯 간(諫)하오?” 왕후가 말했다. “간함을 듣지 않음은 나라를 망치는 밑바탕이다. 내가 대왕을 뵈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겠느냐?” 태자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왕후는 깨끗이 목욕하고 몸에 꿀과 찐보리 가루를 바르고 들어갔다. 대왕을 보니 얼굴이 수척하여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슬퍼하니, 듣는 이는 눈물을 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후는 말했다. “부처님께서 영화와 즐거움은 무상하다고 하시더니, 죄와 고통은 항상된 것인가 봅니다.” 왕은 말하였다. “옥졸이 밥을 끊어서 목마르고 배고파한 지 오래되었고, 몸의 8만 구멍마다 수백 가지 벌레가 있어서 뱃속을 시끄럽게 하니, 피가 마르고 살이 빠져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소.” 말을 하는데 목이 메여 숨이 끊어졌다간 다시 이어지곤 하였다. 왕후가 말했다. “어 어려움을 간파하십시오. 첩이 몸에 꿀과 찐보리 가루를 발랐으니 잡수시고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시어 잊지 마옵소서.” 왕은 먹기를 마치고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목메어 울면서 절하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화와 복은 보존하기 어려워 환(幻) 같고 꿈과 같다고 하시더니, 진실로 그러하옵니다.” 다시 왕후에게 말했다. “내가 왕이었을 때엔 국토는 넓고 컸으며 옷과 밥이 풍족하였는데, 이제 이 조금한 옥에 갇혀 굶어죽을 처지에 놓였구려. 자식은 몹쓸 스승을 만나 부처님의 어진 가르침을 어기니,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다만 직접 부처님을 뵙고 깨끗한 교화를 받지 못하는 것과 추로자(鶖鷺子:舍利弗)ㆍ목련(目連)ㆍ대가섭(大迦葉) 등과 함께 높고 오묘한 도를 강론치 못하는 것이 한스럽소.” 왕이 다시 왕후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은혜와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마치 뭇 새들이 모여서 나무에 깃들었다가 새벽엔 뿔뿔이 흩어지듯이 그 재앙과 복에 달렸다’고 하셨는데, 목련은 온갖 번뇌를 이미 없앴고, 온갖 악이 이미 사라졌으며, 여섯 신통[六通]과 네 통달함[四達]을 얻었는데도 오히려 탐냄과 질투의 바라문에게 맞았는데, 하물며 나 같은 것이겠는가? 재앙과 악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몸을 찾듯,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듯 하오. 부처님의 때는 만나기 어려우며 신통변화는 듣기 어렵소. 어진 이들의 행실은 높고 의식은 한량없어서 세간의 선비 따위가 능히 행할 바가 못 되오. 부처님의 경전을 품고 인(仁)으로 인민을 교화하며 공양하는 복을 얻어 맑으신 교화를 여쭙기란 참으로 만나기 어렵소. 나는 이제 죽어서 혼신이 멀리 옮겨 떠나가지마는 뜻을 세우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없이 숭상함이오. 당신은 부디 조심하여 닥쳐오는 화를 막으시오.” 왕후는 왕의 경계를 듣고 거듭 애통해하였다. 어느 날 태자가 옥졸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왕께서 음식을 끊은 지 여러 날이 넘었는데 어째서 죽지 않았느냐?” 대답하였다. “왕후께서 옥에 들어가 찐보리 가루와 꿀을 주시기 때문에 왕의 목숨이 부지되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왕후로 하여금 왕을 친견(親見)하지 못하도록 하여라.” 왕은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절하였다. 그러자 왕은 배고프지 아니했으며, 밤인데도 환하였다. 태자는 이것을 듣고 창문을 막도록 하였으며 발바닥을 깎아서 일어나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없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옥졸[有司]이 곧 발바닥을 깎았으므로 그 아픔이 한없었지마는 부처님을 마음에 떠올리며 잊지 아니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그를 위해 경을 설하셨다. “선한 행이냐 악한 행이냐에 따라 몸에 복과 재앙이 돌아오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도다.” 병사왕은 대답하였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마디마디 끊기더라도 끝내 악을 생각지 않겠나이다.” 세존께서 거듭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정진도(正眞道)ㆍ최정각(最正覺)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로서 삼천대천세계의 해와 달이나 천신이나 용이나 귀신 등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자가 없는데도 전세의 남은 재앙이 아직 풀리지 않거늘, 하물며 중생[凡庶]이겠느냐?” 왕은 부처님의 은혜를 받아 전생의 재앙을 비추어 보고는, 감히 성도 내지 않았으며, 태산지옥의 태우고 삶는 죄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마음의 중심을 부처님과 그의 여러 제자들에게 두어서 앉거나 서거나 감히 잊지 아니하였다. 왕은 곧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오늘 숨이 끊어져서 영원히 신으로 화할 것입니다’ 하고는 헐떡이면서 울다가 이내 숨을 거두었다. 이에 온 나라의 신하들과 대신들은 모두들 뒹굴고 뛰면서 “하늘이여, 어찌할꼬?”라 울부짖었다. 병사왕은 곧 도과[道迹]를 얻고 천상에 올라가서 태어났으며, 세 갈래의 번뇌는 막히고 온갖 괴로움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