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유야리국(維耶離國)에 계셨는데 여름 안거 때로서 대비구승들과 함께 있었다. 그때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어려웠으니, 모든 사람들이 처자의 먹을거리도 모자라는데 하물며 걸인에게 줄 수 있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이 때문에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아는가? 이곳에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처자의 먹을거리도 모자라는데 더구나 걸인에게 줄 수 있겠는가. 너희 비구들은 아는 사람에 따라, 친척에 따라, 믿는 사람에 따라 그곳으로 가서 안거하라. 음식 때문에 고뇌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모든 비구들은 가르침을 받고 나서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아는 사람을 찾아 떠났다. 그리하여 교살라국(憍薩羅國)에 가서 안거하는 자도 있었고, 어떤 비구들은 바구마(婆求摩) 강가로 가서 어느 한 마을에 의지해 안거하게 되었다. 그 마을에는 부귀한 집안이 있었으니, 재물이 많고 미곡이 풍족하였으며 산업과 토지가 많고 백성ㆍ노비ㆍ일꾼 등 갖가지를 성취하고 있다. 이에 바구마의 비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금년은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처자의 먹을거리도 모자라는데 더구나 걸인에게 주려고 하겠는가. 이 마을에는 부귀한 집안이 있어 재물이 많고 미곡도 풍족하며 산업과 토지가 많고 백성ㆍ노비ㆍ일꾼 등 갖가지를 성취하고 있다. 우리들이 어찌 그 집에 가서 함께 인사를 하고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이 마을의 주인들께선 아십니까? 여러분은 크고 좋은 이익을 얻고 큰 복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많은 스님들이 여러분 마을에서 안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아무개는 아라한(阿羅漢)이고, 아무개는 향아라한(向阿羅漢)이고, 아무개는 아나함(阿那含)이고, 아무개는 향아나함(向阿那含)이고, 아무개는 사다함(斯陀含)이고, 아무개는 향사다함(向斯陀含)이고, 아무개는 수다원(須陀洹)이고, 아무개는 향수다원(向須陀洹)입니다. 또 아무개는 초선(初禪)ㆍ이선(二禪)ㆍ삼선(三禪)ㆍ사선(四禪)을 얻었고, 아무개는 한량없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얻었고, 아무개는 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었고, 아무개는 부정관(不淨觀)을 얻었고, 아무개는 아나반나념(阿那般那念)을 얻었습니다.’” 비구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즉시 마을에 들어가 부귀한 집으로 찾아가 함께 인사하고 말하였다. “거사(居士)께선 아십니까? 여러분은 크고 좋은 이익을 얻고 큰 복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많은 스님들이 여러분 마을에서 안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아무개는 아라한이고, 아무개는 향아라한이고, 아무개는 아나함이고, 아무개는 향아나함이고, 아무개는 사다함이고, 아무개는 향사다함이고, 아무개는 수다원이고, 아무개는 향수다원입니다. 또 아무개는 초선ㆍ이선ㆍ삼선ㆍ사선을 얻었고, 아무개는 한량없는 자ㆍ비ㆍ희ㆍ사를 얻었고, 아무개는 공처ㆍ식처ㆍ무소와 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를 얻었고, 아무개는 부정관을 얻었고, 아무개는 아나반나념을 얻었습니다.” 여러 거사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신심(信心)을 얻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정말 좋은 이익을 얻고 큰 복전을 가지게 되었으니, 많은 스님들이 우리 마을에 의지해 안거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 중 아무개는 아라한이고 아무개는 향아라한이며 내지 아무개는 아나반나념을 얻은 분이다.’ 나아가 풍년이 들었을 때 스님들에게 소식(小食)ㆍ중식(中食)과 달발나(怛鉢那)1)를 제공했던 것처럼 흉년인데도 역시 그렇게 하였다. 이에 바구마 강가에서 안거하던 비구들은 그 음식을 먹고는 크게 힘이 생겼고 몸이 살찌고 윤택해졌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법도에 일 년마다 두 번의 대회(大會)를 가졌으니, 곧 봄의 마지막 달과 여름의 마지막 달에 있었다. 봄의 마지막 달에는 여러 국토 곳곳에 있던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우리는 여름 안거 때 익히고 얻어 안락하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대회이다. 여름 마지막 달에는 모든 비구들이 여름 석 달간의 안거를 마치고 옷을 만든 뒤에 의발(衣鉢)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 ‘우리는 오랫동안 부처님을 뵙지 못했고, 오랫동안 세존을 뵙지 못했다’고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대회이다. 이때 교살라국에서 안거했던 비구들이 여름 석 달을 지내고 옷을 만든 뒤에 의발을 가지고 여행하다가 유야리에 도착하였다. 부처님과 함께 안거한 비구들은 나그네 비구가 찾아오면 함께 나가 영접하고 한마음으로 안부를 묻고는 방문을 열어 와구가 있는 곳을 보이며 “이곳이 여러분의 방입니다. 상탑(床榻)ㆍ거상(踞床)ㆍ독좌상(獨坐床)ㆍ피욕(被褥)ㆍ침석(枕席)에 차례대로 머무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상법이었다. 이때 유야리의 비구들은 교살라의 비구들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장 나가 맞이하며 한마음으로 인사하였다. 그리고 옷과 발우를 들어 주고 방문을 열어 와구가 있는 곳을 보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이 여러분의 방입니다. 와구와 상탑에 차례대로 머무십시오.” 그리고 안부를 물었다. “그대들은 여행길에 피곤하진 않았습니까, 기력은 건강하고 걸식이 어렵진 않았습니까?” “저희들은 여행길에 피곤하지 않았고 기력도 건강했으나 다만 걸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야리의 비구들이 말하였다. “그대들은 정말 여행길에 피곤하지도 않고 기력도 건강하나 걸식하기가 어려웠나봅니다. 여러분은 수척하고 안색이 초췌합니다.” 그때 바구마의 강가에서 안거했던 비구들도 석 달을 마치고 옷을 만든 뒤에 의발을 가지고 여행하다가 유야리에 도착하였다. 부처님과 함께 안거한 비구들은 바구마 강가의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고 모두 나가 영접하고 한마음으로 인사하였다. 그리고 옷과 발우를 들어 주고 방문을 열어 와구가 있는 곳을 보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이 여러분의 방입니다. 와구와 상탑에 차례대로 머무십시오.” 그리고 안부를 물었다. “그대들은 여행길에 피곤하진 않았습니까, 기력은 건강하고 걸식이 어렵진 않았습니까?” “저희들은 기력도 건강하고 걸식하기 어렵지도 않았으나 다만 여행길이 아주 피곤했습니다.” 유야리에 머물렀던 비구들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정말 여행길에 피곤하긴 하지만 걸식이 어렵진 않았나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살이 찌고 안색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유야리의 비구들은 점점 다그쳐 물었다. “여러 장로들이여, 금년은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자의 먹을거리도 모자라는데 하물며 걸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들은 어떤 인연으로 안거할 때 기력이 왕성하고 안색이 편안할 수 있었으며 걸식하기 어렵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이때 바구마 강가에서 온 비구들은 즉시 이들에게 위의 까닭을 자세히 말하였다. 모든 비구들이 물었다. “여러분은 찬탄을 받을 만한 분들입니까, 실제로 그런 공덕이 있습니까?”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오직 음식을 위해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실제로 가졌다고는 하지만 어찌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단 말입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바구마 강가에서 온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오직 음식을 위해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실제로 가졌다고는 하지만 어찌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실제로 가졌더라도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이란 비구와 비구니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가졌다’는 것은 성스러운 법을 터득했다는 말이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실제로 아라한이라 해도 남들에게 그걸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실제로 향아라한이라 해도 남들에게 그걸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실제로 아나함이거나 향아나함이고, 실제로 사다함이거나 향사다함이고, 실제로 수다원이거나 향수다원이라 해도 남들에게 그걸 말한다면 모두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실제로 초선을 터득했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그걸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실제로 이선ㆍ삼선ㆍ사선과 자ㆍ비ㆍ희ㆍ사와 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와 부정관과 아나반나념을 터득했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그걸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나아가 ‘나는 계율 지키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남들에게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비구가 실제로 보았더라도 ‘모든 하늘이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고, 용ㆍ야차ㆍ부다귀(浮茶鬼)ㆍ비사차귀(毘舍遮鬼)ㆍ나찰귀(羅刹鬼)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고 남들에게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나아가 실제 보았더라도 ‘토귀(土鬼)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고 남들에게 말한다면 돌길라이다.”[일곱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였다. 그때 육군비구들은 다투고 서로 비방하고 서로 욕하기를 좋아하였다. 이에 육군비구들은 다른 비구들과 다투고 서로 비방하고 서로 욕하고 나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죄악을 말하였다. 이를테면 “아무개 비구는 바라이를 범했다, 승가바시사ㆍ바야제ㆍ바라제제사니ㆍ돌길라를 범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비구들은 갈라서지 않았던 자들마저 곧 갈라서고 이미 갈라졌던 자들은 화합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생기지 않았던 일들이 곧 생기고 이미 생겼던 일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육군비구들을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다투고 서로 비방하고 서로 욕하기를 좋아하고, 남들과 다투고 나서는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 ‘아무개 비구는 바라이ㆍ승가바시사ㆍ바야제ㆍ바라제제사니ㆍ돌길라를 범하였다’라고 말합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육군비구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다투고 서로 비방하고 서로 욕하기를 좋아하고, 남들과 다투고 나서는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 ‘아무개 비구는 바라이ㆍ승가바시사ㆍ바야제ㆍ바라제제사니ㆍ돌길라를 범하였다’라고 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남의 죄악을 알고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했다면, 승가의 갈마를 거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야제이다. 알았다는 것은 직접 알았거나 남에게 들어서 알았거나 당사자가 직접 말한 경우를 말한다. 죄악(罪惡)이란 바라이나 승가바시사 등 일체 범죄를 모두 죄악이라 한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이란 비구와 비구니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승가의 갈마를 거친 경우는 제외한다’는 것에서 승가의 갈마를 거친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일반인의 집에 가서 악한 짓을 하였거나 남을 시켜서 했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그 자리에 참석한 승가의 스님들이 마땅히 설죄갈마(說罪羯磨)를 작지해야 한다. 설죄갈마를 작지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죄를 말할 사람을 찾아야 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작지하라. 한마음으로 화합한 대중 스님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이렇게 창언하라. ‘어느 분이 이 비구의 죄를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느 분이 아무개 거사에게 아무개 비구의 죄를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중에 만약 어떤 비구가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 그 비구에 대해 대중 스님들이 잘 헤아려 보아 다섯 가지 법이 있으면 대중 스님들은 죄를 말할 사람을 시켜서는 안 된다. 무엇이 다섯 가지 법인가? 애착에 따라 말하고, 분노에 따라 말하고, 두려움에 따라 말하고, 어리석음에 따라 말하고,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그 비구가 다섯 가지 법을 성취했다면 대중 스님들은 그를 죄를 말할 사람으로 지정해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애착에 따라 말하지 않고, 분노에 따라 말하지 않고, 두려움에 따라 말하지 않고, 어리석음에 따라 말하지 않고,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그 가운데 한 비구가 대중 스님들 가운데서 이렇게 외친다. ‘대덕 스님들께서는 청허하소서. 아무개 비구는 죄를 말할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개 거사에게 아무개 비구의 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께서 시도하였다면 스님들께서는 인허하고 청허하소서. 아무개 비구는 죄를 말할 사람이 되어 아무개 거사에게 아무개 비구의 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표백하고, 이와 같이 백이갈마(白二羯磨)를 작지하라. 그러면 설죄갈마(說罪羯磨)를 작지한 것이 되니, 스님들이 인허하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와 같이 작지하라. 죄를 말할 자로 지목된 비구는 그 비구의 죄만 말해야지 다른 비구의 죄를 말해선 안 된다. 만약 다른 비구의 죄를 말한다면 돌길라가 된다. 죄를 말할 자로 지목된 비구는 마땅히 그 거사에게만 말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집안에 따라 말할 경우엔 한 집안이나 많은 집안, 다닌 곳에 따라 말할 경우엔 한 길이나 많은 길, 마을에 따라 말할 경우엔 한 마을이나 많은 마을, 거리나 시장에 따라 말할 경우엔 한 군데나 많은 곳, 그 중 꼭 해당된 곳에서만 말해야지 만약 다른 곳에서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그 죄를 지은 비구가 대중 스님들이 설죄갈마를 작지한 다음에 대중 스님들을 괴롭힌다면, 그때는 모든 스님들이 그 사람의 죄를 말해야 하니, 이와 같이 작지하라. 한마음으로 화합한 대중 스님들 가운데에서 한 비구가 이렇게 창언하라. ‘대덕 스님들께서는 청허하소서. 이 아무개 비구는 대중 스님들이 설죄갈마를 작지한 다음에 다시 스님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스님들께서 시도하였다면 스님들께서는 인허하고 청허하소서. 모든 스님들이 마음대로, 언제든, 어느 곳에서건 아무개 비구의 죄를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표백하고, 이와 같이 백이갈마를 작지하라. 그러면 대중 스님들이 마음대로 죄를 말하는 갈마를 작지한 것이니, 스님들이 인허하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와 같이 작지하라. 이것이 승가의 갈마를 거친 경우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라이를 범한 것을 보고 바라이라고 생각했을 경우,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범한 것을 보고 승가바시사라고 생각했을 경우,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야제나 바라제제사니나 돌길라를 범한 것을 보고 돌길라라고 생각했을 경우,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돌길라이고, 그 일을 말해도 역시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라이를 범한 것을 보고 바라이라고 여기거나 승가바시사라고 여기거나 바야제라고 여기거나 바라제제사니라고 여기거나 돌길라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 비구가 바라이를 돌길라라고 생각했건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범한 것을 보고 승가바시사라고 여기거나 바야제라고 여기거나 바라제제사니라고 여기거나 돌길라라고 여기거나 바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바라이라 생각했건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야제나 바라제제사니나 돌길라를 범한 것을 보고 돌길라를 돌길라라고 여기거나 바라이라고 여기거나 승가바시사라고 여기거나 바야제라고 여기거나 바라제제사니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 비구가 돌길라를 바라제제사니라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돌길라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돌길라이다.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라이를 범한 것을 보고 그것이 바라인지 바라이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가, 그 비구가 뒤에 의심을 결단하고 바라이를 바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비구가 다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범한 것을 보고 그것이 승가바시사인지 승가바시사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가, 그 비구가 뒤에 의심을 결단하고 승가바시사를 승가바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야제나 바라제제사니나 돌길라를 범한 것을 보고, 그 비구가 돌길라를 돌길라인지 돌길라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가, 그 비구가 뒤에 의심을 결단하고 돌길라를 돌길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돌길라이고, 그 일을 말해도 역시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돌길라이다. 만약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라이를 범한 것을 보고 그 바라이에 대해 의문이 생겨 저것이 ‘바라이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바라이일까, 바야제일까’, ‘바라이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바라이일까, 돌길라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의심을 결단하고 바라이에 대해 바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범한 것을 보고 그 승가바시사에 대해 의문이 생겨 저것이 ‘승가바시사일까, 바야제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돌길라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바라이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의심을 결단하고 승가바시사에 대해 승가바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야제나 바라제제사니나 돌길라를 범한 것을 보고 그 돌길라에 대해 의문이 생겨 저것이 ‘돌길라일까, 바라이일까’, ‘돌길라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돌길라일까, 바야제일까’, ‘돌길라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의심을 결단하고 돌길라에 대해 돌길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돌길라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돌길라이다.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라이를 범한 것을 보고 의문이 생겨 ‘저 죄가 바라이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바야제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돌길라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바라이에 대해 돌길라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승가바시사를 범한 것을 보고 의문이 생겨 ‘저 죄가 승가바시사일까, 바야제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돌길라일까, 바라이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승가바시사에 대해 바라이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바야제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다른 비구가 바야제나 바라제제사니나 돌길라를 범한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이 돌길라에 대해 의문이 생겨 ‘돌길라일까, 바라이일까, 승가바시사일까, 바야제일까, 바라제제사니일까’ 하다가 그 사람이 돌길라에 대해 바야제제사니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고 보았다고 생각했건 보고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보고 의심했건 듣고 들었다고 생각했건 듣고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건 듣고 의심했건 만약 그 이름을 말한다면 돌길라이고, 그 일을 말한다면 돌길라이다. 이름을 말하고 그 일을 말하는 것에 따라 하나하나의 말이 돌길라이다.”[여덟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였다. 그때 장로인 타표 역사의 아들[陀驃力士子]은 지혜가 많고 아는 것이 많아 음식과 의복ㆍ와구ㆍ의약품 등 생활의 도구를 공양 받을 수 있었다. 이때 타표 비구의 의복이 떨어지자 모든 거사들이 타표 비구로 인해 대중 스님들에게 많은 음식과 의복 등 현전(現前)의 승가2)가 마땅히 나누어야 할 물품을 많이 주었다. 이때 미다라부마(彌多羅浮摩) 비구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타표 비구로 인해 대중 스님들이 음식과 의복ㆍ와구ㆍ탕약 등 많은 공양을 얻게 된 것이다. 이는 타표 비구의 의복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 스님들이 얻은 현전승물(現前僧物)은 당연히 대중 앞에서 갈마를 작지하여 타표 비구에게 주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즉시 대중 스님들 가운데서 갈마를 작지해 타표 비구에게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미다라부마 비구는 먼저는 주도록 자기가 권장하더니 뒤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비구들은 친한 바에 따라 승물(僧物)을 돌리고 주라.”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먼저는 스스로 주도록 권장하더니 뒤에 ‘모든 비구들은 친한 바에 따라 승물을 돌리고 주라’ 한단 말입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가서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미다라부마 비구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먼저는 스스로 주도록 권장하더니 뒤에 ‘모든 비구들은 친한 바에 따라 승물을 돌리고 주라’고 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먼저 스스로 주도록 권장하고선 뒤에 ‘모든 비구들은 친한 바에 따라 승물을 돌리고 주라’고 했다면 바야제이다. 먼저는 주도록 권장했다는 것은 먼저는 스님에게 주려고 했다가 뒤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친한 바에 따른다는 것은 화상과 아사리에 따라, 동류의 화상과 아사리에 따라, 선지식에 따라, 아끼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자에 따라, 국토에 따라, 마을에 따라, 집안에 따라, 친구에 따라 한다는 것이다. 승물(僧物)이란 보시로 얻은 물품으로서 옷[衣]ㆍ발우[鉢]ㆍ호구(戶鉤)ㆍ시약(時藥)ㆍ야분약(夜分藥)ㆍ칠일약(七日藥)ㆍ종신약(終身藥) 등을 말한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먼저는 주도록 권장하고 나서 뒤에 ‘모든 비구들은 친한 바에 따라 승물을 돌리고 주라’고 하였다면 바야제가 된다. 만약 ‘회상에 따라 하라, 아사리에 따라 하라, 동류의 화상에 따라 하라, 동류의 아사리에 따라 하라, 선지식에 따라 하라, 아끼는 사람에 따라 하라, 같은 일을 하는 자에 따라 하라, 국토에 따라 하라, 마을에 따라 하라, 집안에 따라 하라, 친구에 따라 하라’고 하였다면 모두 바야제이다.”[아홉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구섬미국(拘睒彌國)에 계실 때였다. 그때 장로인 천나(闡那)가 잘못을 뉘우쳐야 할 만한 죄를 범하였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자비심으로 가엾게 여겨 이롭게 하고자 잘못을 뉘우치게 하면서 말하였다. “천나여, 그대는 뉘우쳐야 할 어떤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대는 숨김없이 드러내야지 덮어 두어선 안 됩니다.” 천나가 말하였다. “그런 잡스러운 계율을 적용해 보름날 계를 설하는 때에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하는군요.”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그런 잡스러운 계율을 적용해 보름날 계를 설하는 때에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한다’는 그런 말을 합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천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참으로 그런 짓을 하였는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이미 배운 것을 헐뜯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계를 설할 때 ‘그런 잡스러운 계율을 적용해 보름날 계를 설하는 때에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한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경솔하게 계를 헐뜯는 자는 바야제이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4바라이(波羅夷)를 설할 때에 ‘그런 4바라이를 적용해 보름날 계를 설할 때에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한다’고 말한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13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를 설할 때, 2부정법(不定法)을 설할 때, 30니살기바야제법(尼薩耆波夜提法)을 설할 때, 90바야제(波耶提)를 설할 때, 4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를 설할 때, 모두가 배워야 할 법을 설할 때, 7지쟁법(止諍法)을 설할 때 및 율경(律經)에 따라 설할 때 만약 ‘그런 율경에 따른 것을 적용해 보름날 계를 설하는 때에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한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자는 모두 바야제이다. 율경에 따르는 것 이외의 다른 경을 설할 때 ‘그런 경을 설해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하고 번민하게 하며, 근심하고 즐겁지 않게 하며, 계를 버릴 마음을 생기게 한다’는 이런 말을 한다면 돌길라이다. 설해지는 곳에 따라 하나하나가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열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아라비국에 계실 때였다. 그때 아라비의 모든 비구들이 손수 사찰 안의 풀과 경행하는 길의 풀과 경행하는 길 양쪽의 풀을 뽑고, 손수 꽃을 채취하였다. 그때 어떤 거사가 초목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보고 질투심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 석자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일체 중생을 죽이는 자들이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아라비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아라비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손수 절 안의 풀과 경행하는 길의 풀과 경행하는 길 양쪽의 풀을 뽑고, 손수 꽃을 채취했단 말인가.” 이때 부처님께서는 꾸짖기만 하시고 계는 제정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그때 어떤 마하로(摩訶盧)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목수 종족으로서 큰 필발수(畢撥樹)를 베어 큰 집을 지었다. 그러자 그 나무의 신이 한밤중에 어린아이를 업고 손에는 아들딸을 끌고서 죽 늘어서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 이런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머무는 곳이고 쉬는 곳이고 의지하는 곳이고 돌아가는 곳이고 찾아가는 곳인 집인데, 어떤 마하로 비구가 우리 나무를 베어 큰 집을 지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또 많습니다. 겨울 팔야(八夜)에 찬바람이 파죽의 기세로 불고 얼음이 얼어 몹시 추울 때면 저는 어디에서 아이들을 편안히 지내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때 다른 귀신에게 명하셨다. “너희들은 이들이 편히 지내도록 이런 머물 곳을 주도록 하라.” 모든 귀신들은 부처님 말씀대로 곧 머물 곳을 주었다. 그 밤이 지난 다음 부처님께서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제 밤에 어떤 귀신이 어린아이를 업고 손에는 아들딸을 끌고서 죽 늘어서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어찌 이런 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머무는 곳이고 쉬는 곳이고 의지하는 곳이고 돌아가는 곳이고 찾아가는 곳인 집인데, 어떤 마하로 비구가 우리 나무를 베어 큰 집을 지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또 많습니다. 겨울 팔야에 찬바람이 파죽의 기세로 불고 얼음이 얼어 몹시 추울 때면 저는 어디에서 아이들을 편안히 지내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법이 아니고, 옳지도 않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거사와 천신(天神)이 모두 싫어하고 꾸짖는 일이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손수 절 안의 풀과 경행하는 길의 풀과 경행하는 길 양쪽의 풀을 뽑고, 손수 꽃을 채취한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귀촌종자(鬼村種子)를 베거나 뽑는다면 바야제이다. 귀촌(鬼村)이란 중생이 의지해 머무는 살아 있는 초목을 말한다. 중생이란 수신(樹神)ㆍ천신(泉神)ㆍ하신(河神)ㆍ사신(舍神)ㆍ교도신(交道神)ㆍ시신(市神)ㆍ도도신(都道神)ㆍ모기ㆍ말똥구리ㆍ나비ㆍ담마충(噉麻蟲)ㆍ전갈ㆍ개미 등을 말한다. 이 중생들은 초목으로 집을 삼고 또한 사는 마을과 성읍(城邑)을 삼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뿌리에 물기가 있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들을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우면 이를 베는 것이라 한다. 초목에는 다섯 종류의 종자가 있으니 곧 뿌리 종자ㆍ줄기 종자ㆍ마디 종자ㆍ스스로 떨어지는 종자ㆍ열매 종자이다. 뿌리 종자란 우(藕)ㆍ나복(羅蔔)ㆍ무청(蕪菁)ㆍ사루루(舍樓樓)ㆍ투루루(偸樓樓)이니, 이와 비슷한 종류는 뿌리에서 생기는 식물이다. 줄기 종자란 석류(石榴)ㆍ포도(葡萄)ㆍ양류(楊柳)ㆍ사륵(沙勒)이니, 이와 비슷한 종류는 줄기에서 생기는 식물이다. 마디 종자란 감자(甘蔗)ㆍ추죽(麤竹)ㆍ세죽(細竹)이니, 이와 비슷한 종류는 마디에서 생기는 식물이다. 스스로 떨어지는 종자란 요(蓼)ㆍ아수로(阿修盧)ㆍ파수로(波修盧)ㆍ수가라(修伽羅)ㆍ보리나(菩提那) 등이니, 이와 비슷한 종류는 저절로 떨어져 생기는 식물이다. 열매 종자란 도(稻)ㆍ마(麻)ㆍ맥(麥)ㆍ대두(大豆)ㆍ소두(小豆)ㆍ편두(褊豆) 등이니, 이와 비슷한 종류는 씨앗에서 생기는 식물이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뿌리 종자를 뿌리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뿌리 종자를 줄기 종자로 생각하거나 가지 종자로 생각하거나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로 생각하거나 열매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줄기 종자를 줄기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줄기 종자를 가지 종자로 생각하거나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로 생각하거나 열매 종자로 생각하거나 뿌리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가지 종자를 가지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가지 종자를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로 생각하거나 열매 종자로 생각하거나 뿌리 종자로 생각하거나 줄기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를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를 열매 종자로 생각하거나 뿌리 종자로 생각하거나 줄기 종자로 생각하거나 가지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열매 종자를 열매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열매 종자를 뿌리 종자로 생각하거나 줄기 종자로 생각하거나 가지 종자로 생각하거나 저절로 떨어지는 종자로 생각하고,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는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자르며, 손수 부러뜨리거나 남을 시켜 부러뜨리며, 손수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웠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한꺼번에 다섯 종자를 태웠다면 한꺼번에 다섯 가지 바야제를 범하는 것이고, 하나하나 태웠으면 하나하나가 바야제이다. 이렇듯 태운 것에 따라 그만큼 바야제에 걸리게 된다. 만약 비구가 손수 나무를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다면 바야제이며, 자른 나무에 따라 그만큼 바야제에 걸리게 된다. 만약 비구가 손수 풀을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다면 바야제이며, 자른 풀에 따라 그만큼 바야제에 걸리게 된다. 살아 있는 것을 산 것이라 생각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어도 바야제이고, 살아 있는 것을 마른 것이라 생각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어도 바야제이고, 살아 있는 것을 마른 것인지 산 것인지 의심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어도 바야제이다. 만약 마른 것을 산 것으로 생각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다면 돌길라이다. 마른 것을 마른 것인지 산 것인지 의심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다면 돌길라이다. 그러나 마른 것을 마른 것이라 생각하고 손수 자르거나 남을 시켜 잘랐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열한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였다. 그때 역사(力士)의 아들 타표(陀驃) 비구는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였기에 승가가 갈마를 작지하여 차회인(差會人)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모든 비구들을 공양 모임에 보낼 때 욕심에 따라 하지 않고, 분노에 따라 하지 않고, 공포에 따라 하지 않고, 어리석음에 따라 하지 않고, 차례를 잘 알아 상좌와 하좌의 순서대로 하며 차례를 뛰어넘지 않았다. 이때 미다라부마(彌多羅浮摩) 비구는 나쁘고 맛없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타표 비구는 욕심에 따라 공양 모임에 사람을 보내고, 분노와 두려움과 어리석음에 따라 그렇게 하며, 차례를 몰라 차례를 뛰어넘고 상좌와 하좌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마땅히 함께 이 사람을 내쫓고 다시 차회인을 뽑아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승가에서 법대로 갈마를 작지한 차회인을 ‘이 사람은 욕심과 분노와 두려움과 어리석음에 따르고, 차례를 몰라 차례를 뛰어넘고 상좌와 하좌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나무란단 말입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미다라부마 비구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 일을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승가에서 법대로 갈마를 작지한 차회인을 나무라고 화를 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차회인을 화를 내며 나무란다면 바야제이다. 바야제란 자소(煮燒)와 복장(覆障)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승가가 법대로 갈마를 작지하여 차회인으로 임명하였는데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란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승가에서 법대로 갈마를 작지해 열네 명을 뽑았을 때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란다면 바야제이다. 열두 명이 갈마를 해제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란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갈마를 해제하고 나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랐다면 돌길라이다. 열네 명 중 두 사람이 갈마를 해제하거나 갈마를 해제하지 않았을 때 그 두 사람에게 화를 내고 나무랐다면 바야제이거나 돌길라이다. 나아가 별방(別房) 차회인과 동사(同事) 차회인을 나무랐다면 돌길라이다.”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고 나자 모든 비구들은 다시는 면전에서 화내고 나무라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멀리서 화를 내고 나무랐다. “타표 비구는 욕심에 따라 모임에 사람을 보내고, 분노와 공포와 어리석음에 따라 하고, 차례도 몰라 차례를 뛰어넘고 상좌와 하좌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말하였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부처님께서 계율로 제정하신 까닭에 면전에서 화내고 나무랄 수 없다고 곧 멀리서 화내고 나무란단 말입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미다라부마 비구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승가에서 법대로 지정한 차회인을 멀리서 화내고 나무랐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승가가 뽑은 사람에게 면전에서 화내고 나무라거나 멀리서 나무란다면 바야제이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비구가 승가에서 법대로 갈마를 작지하여 뽑은 차회인에게 화를 내고 나무랐을 경우, 그 사람이 들었다면 바야제이고 듣지 못했다면 돌길라이다. 승가에서 법대로 갈마를 작지해 열네 명을 지정했는데 멀리서 화를 내고 나무랐을 경우, 그 사람이 들었다면 바야제이고 듣지 못했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비구가 열두 명이 갈마를 해제하지 않았는데 멀리서 화를 내고 나무랐을 경우, 그 사람이 들었다면 바야제이고 듣지 못했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갈마가 해제되고 나서 멀리서 화내고 나무랐다면 그 사람이 들었어도 돌길라이고 듣지 못했어도 역시 돌길라이다. 열네 명 중 두 명이 갈마를 해제하거나 해제하지 않았을 때 멀리서 화를 내고 나무랐을 경우, 그 사람이 들었다면 바야제이고 듣지 못했다면 돌길라이다. 나아가 별방(別房)과 동사(同事)의 차회인에게 멀리서 화를 내고 나무랐다면 그 사람이 들었어도 돌길라이고, 듣지 못했어도 역시 돌길라이다. 두 명이란 비구니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사람[敎誡尼]과 사회(四悔)에서 네 번째로 갈마에서 뽑혀 영식3)을 관리하는 사람[使迎食人]을 말한다.”[열두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구섬미국(拘睒彌國)에 계실 때였다. 그때 천나(闡那) 비구가 잘못을 뉘우쳐야 할 만한 죄를 범하였다. 이에 여러 비구들이 자비심으로 가엾게 여겨 그를 이롭게 하고자 천나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뉘우칠 만한 죄를 범하였으니, 마땅히 숨김없이 드러내고 덮어 두지 마십시오.” 그러자 천나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여깁니까? 나는 여러분이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 비구가 천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죄가 있으면 바로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없다고 말하십시오. 왜 이교도의 방법을 쓰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합니까?” 천나가 말하였다. “내 어찌 그대들의 일에 간여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두려워할까요?” 그러고는 다시 이교도의 방법을 쓰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이 일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죄를 범하고 나서 이교도의 방법을 쓰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한단 말입니까.”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천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천나를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죄를 범하고 나서 이교도의 방법을 쓰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했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마땅히 천나 비구가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憶識] 한다. 만약 다시 천나 비구와 같은 자가 있다면 역시 그가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했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상기시키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한마음으로 화합한 스님들 가운데서 한 비구 스님이 이렇게 창언하라. ‘대덕 스님들께서는 청허하소서. 이 천나 비구는 죄를 범하고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스님들께서 시도하였다면 스님들께서는 인허하고 청허하소서. 천나 비구가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했음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그대 천나가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하면 그럴 때마다 대중 스님들께서 상기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표백하고, 이와 같이 백이갈마를 작지하라. 그러면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키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 되니, 스님들이 인허하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와 같이 작지하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해 남을 괴롭혔다면 바야제이다. 바야제란 자소와 복장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키기 전에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하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했다면, 그럴 때는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 돌길라에 해당한다. 만약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킨 다음이라면, 그럴 때는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하고 이교도의 방법에 의지한 것이 바야제에 해당한다. 부처님께서 구섬미에 계실 때였다. 그때 천나 비구는 잘못을 뉘우칠 만한 죄를 지었다. 여러 비구들은 자비심으로 가엾게 여겨 이롭게 하고자 천나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뉘우칠 만한 죄를 범하였으니, 마땅히 숨김없이 드러내고 덮어 두지 마십시오.” 이에 천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이교도의 방법을 사용했다면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키는 갈마[憶識羯磨]4)를 작지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침묵해야겠다.’ 천나가 즉시 침묵하자 여러 비구들이 천나에게 말하였다. “그대에게 죄가 있으면 곧 있다 말하고, 없으면 없다고 말하십시오. 왜 침묵으로 우리를 괴롭힙니까?” 천나가 말하였다. “내가 옳습니다. 여러분은 대체 뭐요? 난 그대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침묵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욕심을 줄이고 자족하며 두타를 실천하던 어떤 비구가 그 일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었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죄를 범하고 나서 침묵해 남들을 괴롭힌단 말입니까.” 갖가지로 꾸짖고 나서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비구 스님들을 모으고 아시면서 짐짓 천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랬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으셨다. “어찌 명색이 비구가 죄를 범하고 나서 침묵해 남들을 괴롭혔단 말인가”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천나 비구가 침묵으로 남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도록 하라. 상기시키는 법은 다음과 같다. 한마음으로 화합한 대중 스님들 가운데서 한 비구가 이렇게 창언하라. ‘대덕 스님들께서는 청허하소서. 이 천나 비구는 죄를 범하고도 침묵해 남들을 괴롭혔습니다. 스님들께서 시도하였다면 스님들께서는 인허하고 청허하소서. 천나 비구가 침묵으로 남들을 괴롭힌 일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그대 천나여, 그대가 침묵으로 남들을 괴롭힐 때마다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표백하고, 이와 같이 백이갈마를 작지하라. 그러면 대중 스님들이 상기시키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 되니, 스님들이 인허하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와 같이 작지하라.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이교도의 짓을 하고도 침묵해 남들을 괴롭혔다면 바야제이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대중 스님들이 알고 기억하기 전에 침묵으로 남들을 괴롭혔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대중 스님들이 알고 기억한 다음에 침묵으로 남들을 괴롭혔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입ㆍ입술ㆍ이빨ㆍ혀ㆍ목구멍ㆍ심장에 병이 있거나 얼굴이 붓고 피가 나는 등 이런 이유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 또한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화상과 아사리를 공경하고 상좌(上座)를 공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없어 말하지 않았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열세 번째 일을 마친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그때 어떤 거사가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내일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요청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잠자코 받아들이셨다. 그 거사는 부처님께서 잠자코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나서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떠나갔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에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마련하였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노지(露地)에서 승가의 와구(臥具)를 펴고는 옷과 발우를 들고서 중간에서 식사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비구는 경행하고 어떤 비구는 앉아 있었다. 이때 거사가 일찍 일어나 앉을 자리를 펴 놓고 나서 심부름꾼을 보내 부처님께 알려왔다. “세존이시여, 식사가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성인께서는 때를 아소서.” 그 즉시 모든 비구들은 승가의 와구를 버려두고 각자 옷과 발우만 가지고 거사 집으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거처하시는 방에서 당신 몫의 음식을 맞이하셨다. 여러 비구들이 거사의 집으로 가고 나서 비가 내려 승가의 와구가 젖게 되었다. 모든 비구들이 거사의 집으로 갔을 때 부처님이 손수 호구(戶鉤)를 가지고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모든 방을 살피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상법이었다. 이에 한 방문을 열었다가 노지에서 비에 젖어 썩고 문드러지는 승가의 와구를 보고는 즉시 가져다 말리고 개어 지붕이 있는 곳에 두셨다. 그리고는 방문을 닫고 빗장을 내리고는 당신의 방으로 돌아와 독좌상(獨坐床)에서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계셨다. 이때 거사는 스님들이 자리에 앉은 것을 알고는 손수 물을 돌리고 직접 풍성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어 마음껏 잡수게 하였다. 이에 거사는 스님들이 만족스럽게 잡수고 발우를 거둔 것을 보고 나서 손수 물을 돌렸다. 그리고 작은 상을 가져다 스님들 앞에 놓고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상좌(上座)가 설법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모든 비구들도 차례로 따라 나갔으며, 그렇게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여러 비구들이 음식을 먹고 돌아오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비구들을 위로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상법이었다. “음식은 풍성하고 맛있었는가? 스님들이 배불리 먹었는가?” 이에 비구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음식이 풍성하고 맛있어 여러 스님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너희가 거사의 집으로 가고 나서 내가 호구(戶鉤)를 가지고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모든 방을 살펴보았다. 어떤 방문을 열고 보니 비구들의 와구가 노지에서 비에 맞아 썩어 문드러지고 있더구나.” 그리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옳지 못하고, 법이 아니며, 이래서는 안 된다. 일체 모든 스님들이 사용하는 와구를 가져다 어찌 짓밟으며 아낄 줄을 모르는가? 이는 모든 거사들이 피를 말리고 살을 깎아가며 복덕을 위해 보시하고 공양한 것이다. 너희가 아껴 쓰며 잘 간수하면 좋겠구나.” 갖가지 인연을 들어 꾸짖고 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이익이 있는 까닭에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나니, 지금부터 이 계는 이와 같이 말하라. 만약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ㆍ고운 노끈 평상ㆍ거친 노끈 평상ㆍ이부자리를 펴거나 남을 시켜 펴고는 그 위에 앉고 눕고 하다가 떠날 때 손수 개지 않고 남을 시켜 개지도 않았다면 바야제이다. 고운 노끈 평상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아산제각(阿珊諦脚)ㆍ파랑구각(簸郞劬脚)ㆍ고양각각(羖羊角脚)ㆍ첨각(尖脚)ㆍ곡각(曲脚)이다. 거친 노끈 평상에도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아산제각ㆍ파랑구각ㆍ고양각각ㆍ첨각ㆍ곡각이다. 이부자리에서 요는 감자재저욕(甘蔗滓貯褥)ㆍ포경저욕(匏莖貯褥)ㆍ장과경저욕(長瓜莖貯褥)ㆍ취저욕(毳貯褥)ㆍ추마저옥(芻摩貯褥)ㆍ겁패저욕(劫貝貯褥)ㆍ문사초저욕(文闍草貯褥)ㆍ마저욕(麻貯褥)ㆍ수의저욕(水衣貯褥)이며, 이불은 구집피(俱執被)ㆍ추마피(芻麻被)ㆍ취피(毳被)ㆍ겁패피(劫貝被)이다. 노지란 흙벽이 없고, 초목의 벽이 없고, 돗자리 벽이 없고, 옷이나 휘장으로 가리개가 없고, 이와 비슷한 물건으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곳을 말한다. 스스로 편다는 것은 손수 펴는 것이고, 시켜서 편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펴게 하는 것이다. 앉는다는 것은 위에 앉는 것이고, 눕는다는 것은 몸이 침상에 닿는 것이다. 개지 않는다는 것은 손으로 직접 개지 않는 것이고, 개라고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시켜 개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야제란 자소와 복장이니,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도업을 장애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만약 비구가 새벽에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곧장 방에 들어가 쉬었다가 새벽이 지나서야 지붕이 있는 곳에 갖다 두었다면 바야제이다. 새벽이 지난 시간이나 오전이나 정오나 오후나 해질녘에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곧장 방에 들어가 쉬었다가 해가 진 다음에야 개어 지붕이 있는 곳에 갖다 두었다면 바야제이다. 만약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절 밖으로 마흔아홉 걸음을 벗어난다면 바야제이다. 또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절문 밖이나 담장 밖으로 조금만 나갔더라도 그대로 새벽을 맞이했다면 돌길라이다. 또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남에게 부탁하지도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면 돌길라이다. 만약 두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경우엔 뒤에 일어난 자가 개어야 한다. 또 두 비구가 노지에 승가의 와구를 펴 놓고 옷과 발우를 거기 두었다가 한 비구가 먼저 옷과 발우를 가지고 갔다면 뒤에 옷과 발우를 가지고 가는 자가 개어야 한다. 개지 않는 자는 계를 범하게 된다.” 언젠가 여러 스님들이 노지에서 모여 음식을 먹었다. 비구들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승가의 와구를 노지에 버려둔 채 떠나버렸는데, 이때 모진 풍우로 젖고 더렵혀졌다.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개어서 지붕이 있는 곳에 갖다 두어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여러 비구들이 식사를 끝낼 무렵 여러 일반인이 승가의 와구와 평상에 앉아 있었다.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다려야 한다.” 이에 여러 비구들은 오래 기다리다 더위를 먹고 토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이 있는 자는 가라. 그리고 본 자는 개어라. 만약 두 비구가 보았으면 한 사람은 대상(大床)과 소상(小床)을 들고, 한 사람은 대욕(大褥)과 소욕(小褥)을 개어야 한다. 만약 마을 근처 절에서 와구를 가지고 공한처(空閑處)로 가거나 공한처에서 마을 근처 절로 가지고 오다가 비를 만나 젖었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방 열쇠를 잃어 둘 곳이 없거나 8난(難) 중 하나하나의 재난이 일어나 개지 못했다면 범한 것이 아니다.”[열네 번째 일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