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실라벌성에 계셨다. 어느 때에 필추들은 여분의 옷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푸른색의 옷을 얻게 되면 곧바로 옷을 만들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간직하기만 하고 다시 다른 것을 바라면서 ‘만약 이와 비슷한 물건을 얻게 되면 내가 마땅히 옷을 만들리라’고 생각하였다. 푸른색의 옷은 물론이요, 황색ㆍ적색ㆍ백색 및 진한 색과 옅은 색의 옷을 얻으면 또한 모두 모아서 간직했다. 그때에 욕심이 적은 필추들은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내었다. “어찌하여 필추가 옷가지들을 많이 간직하기만 하고 모아 둔 것들로 기꺼이 옷을 만들지 않는가?” 필추가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이 인연으로 앞에서와 같이 대중들을 모으시고 사실을 물으시고 꾸짖으시며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또 말씀하셨다. “그 계율을 제정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하노라.
만약 다시 필추니가 옷 짓기가 이미 끝나고 갈치나의(羯恥那衣)도 다시 내놓았는데 때 아닌 옷[非時衣]을 얻게 되거든 필요하면 받고, 받고 나서는 마땅히 빨리 옷을 만들지니라. 만약 바랄 곳[望處]이 있으면 구하여서 만족하게 하되, 만약 부족하면 한 달 간은 간직할 수 있다. 만약 기한을 넘기면 니살기바일저가(泥薩祇波逸底迦)이니라.”
‘옷 짓기가 이미 끝나고 갈치나의도 이미 내놓았는데’라는 것에는 네 가지 구(句)가 있으니 자세히 설한 것은 앞에서와 같다.
022_0484_a_18L衣已竟羯恥 那衣已出,有四句,廣如前說。
022_0484_b_01L ‘때 아닌 옷을 얻는다’는 것에서 무엇이 제때이고 무엇이 때 아닌 때인가? 만약 머무르는 곳에서 갈치나의가 베풀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달 동안이니, 즉 안거가 끝난 8월 16일로부터 9월 15일까지이고, 만약 머무는 곳에서 갈치나의가 베풀어진 사람이라면 다섯 달 동안이니, 즉 8월 16일로부터 1월 15일까지를 ‘제때’라고 하고 나머지는 ‘때 아닌 때’라고 하는 것이다.
‘한 달 간은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부모ㆍ형제ㆍ자매ㆍ스승 등의 처소에 바랄 곳을 둔다는 말이니, ‘마땅히 나에게 옷을 줄 것이다. 5년회(年會)나 6년회나 정계회(頂髻會)나 성년회(盛年會)에서 나는 마땅히 옷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족하다면 좋으나 5의(衣)에서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한 달 동안에 한하여 얻을 수 있다. 만약 기한을 넘겨 간직하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바랄 곳이 있는 경우와 바랄 곳이 없는 경우와 바랄 곳이 끊어진 경우와 같지 않은 옷과 새 옷과 헌옷과 분소의(糞掃衣)의 여러 가지와 조(條)의 수(數)와 주(肘)의 양(量)이 있다.
022_0484_b_10L有望無望處、 望斷不同衣、 新故糞掃殊、 條數肘量等。
만약 필추니가 한 달의 초하룻날에 약간의 푸른색 옷을 얻어서 아직은 옷을 만들지 못하고 간직하되, 바랄 곳이 있어 생각하기를, ‘만약 이와 같은 색의 옷을 얻게 되면 나는 마땅히 옷을 만들리라’고 하였다가 바로 그날에 같은 색의 옷을 얻었다면, 그 필추니는 10일 이내에 옷을 만들어서 마땅히 지니거나 마땅히 버리거나 마땅히 작법(作法)을 해야 한다. 만약 지니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며 작법을 하지도 않고서 11일의 새벽이 된다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022_0484_c_01L만약 필추니가 초하룻날에 나머지 옷을 얻지 못하고 2일에야 비로소 옷을 얻고 3일에 옷을 얻으며 내지 10일에 옷을 얻었다면, 그 필추니는 10일 하루 안에 옷을 만들어서 마땅히 지니거나 마땅히 버리거나 마땅히 작법을 해야 한다. 만약 지니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작법을 하지도 않고서 11일의 새벽이 된다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만약 다시 필추니가 10일에 나머지의 옷을 얻지 못하며 11일에도 얻지 못하고 12일에도 얻지 못하며, 내지 19일에도 옷을 얻지 못하다가 20일에야 비로소 나머지 옷을 얻었다면 곧 마땅히 앞에서와 같이 작법을 해야 한다. 만약 작법을 하지 않는다면 사타(捨墮)를 범한다. 만약 필추니가 21일에 나머지 옷을 얻지 못하고, 내지 29일이 되도록 나머지 옷을 얻지 못하다가 30일에야 비로소 나머지 옷을 얻었다면 30일 하루 안에 옷을 만들어서 마땅히 지니거나 마땅히 버리거나 마땅히 작법을 해야 한다. 만약 작법을 하지도 아니하였는데 31일의 새벽이 된다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푸른색의 옷을 얻은 경우에는 이미 그러하지만 나머지 색깔의 옷을 얻은 경우에도 일은 모두 이와 같다.
만약 필추니가 초하룻날에 푸른색의 옷을 얻고서 옷을 만들지 못하고 간직하되 별로 바랄 곳이 없어서 곧 생각하기를, ‘만약 이와 같은 색깔의 옷을 얻게 되면 나는 마땅히 옷을 만들리라’고 하였는데 그날에 같은 종류의 옷을 얻게 된다면, 그 필추니는 10일 안에 옷을 만들어서 마땅히 버리거나 마땅히 작법을 해야 한다. 만약 작법을 하지도 않았는데 11일의 새벽이 된다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만약 초하룻날에 나머지 옷을 얻지 못하고 2일에 옷을 얻은 경우와 내지 30일에 옷을 얻은 경우 ……(이하 자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한 것과 같음)……. 푸른색의 옷을 얻은 경우에는 이미 그러하지만 다른 색깔로 된 옷을 얻은 경우 등도 모두 이와 같다.
만약 필추니가 초하룻날에 푸른색의 옷을 얻어서 옷을 만들지 못하고 간직하되, 바랄 곳이 있기는 하지만 바랄 곳이 너무 멀어서 구하는 바에 맞지 아니하여 힘을 얻을 수가 없거나 혹은 그날에 푸른색의 옷을 얻게 되면 10일 안에 마땅히 옷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30일에야 비로소 다른 색깔의 옷을 얻었다면 일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022_0485_a_01L만약 필추니가 초하룻날에 푸른색의 옷을 얻어서 옷을 만들지 못하고 간직하되, 마음에 바랄 곳이 있는데 만약 바랄 곳이 모두 단절되었다면 그 필추니가 얻은 옷은 10일 안에 마땅히 지니거나 마땅히 버려야 하니 ……(이하 앞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음)…….
그때 구수 오파리(鄔波離)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몇 종류의 옷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종류가 있나니 하나는 새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것이니라. 새것이란 새로 짠 것을 말하고, 헌것이란 일찍이 넉 달 이상을 입었던 것을 말하느니라. 오파리야, 다시 다섯 가지 옷이 있나니 첫째는 유시주의(有施主衣)이며, 둘째는 무시주의(無施主衣)이며, 셋째는 왕환의(往還衣)이며, 넷째는 사인의(死人衣)이며, 다섯째는 분소의(糞掃衣)이니라. 무엇이 유시주의인가? 남자나 여자나 반택가(半擇迦) 등이 그를 위하여 시주한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무시주의인가? 남자나 여자나 반택가 등이 그를 위하여 시주하지 않은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왕환의인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권속들이 슬프게 생각하여 옷을 시신 위에 올려놓아서 불태우는 곳까지 실어 갔다가 화장이 끝나면 다시 그 옷을 가지고 돌아와서 승중(僧衆)에 받들어 보시한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사인의인가? 묘지에 있는 죽은 자의 옷으로서 주인이 없어 거두어들인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분소의인가? 다섯 종류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길에 버려진 옷이며, 둘째는 더러운 곳에 있는 옷이며, 셋째는 강가에 버려진 옷이며, 넷째는 개미가 쏠아 구멍 난 옷이며, 다섯째는 해진 옷이니라. 다시 다섯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불에 탄 옷이며, 둘째는 물에 젖은 옷이며, 셋째는 쥐가 갉아먹은 옷이며, 넷째는 소가 씹어 놓은 옷이며, 다섯째는 유모가 버린 옷이니라.
022_0485_b_01L만약 필추니가 새 옷을 얻어서 옷을 짓고자 한다면 마땅히 세탁을 하고 물을 들이며 재단하고 꿰매야 하며, 두 겹으로는 승가지(僧伽胝)1)를 만들며, 두 겹으로는 니사단(尼師但)2) 필추가 앉거나 누울 때 땅에 펴서 몸을 보호하며, 또 와구(臥具) 위에 펴서 와구를 보호하는 네모진 깔개이다. 을 만들며, 한 겹으로는 올달라승가(嗢呾羅僧伽)3)를 만들며, 한 겹으로는 안달바사(安呾婆娑)4)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필추니가 두 겹으로 승가지를 만들 때 만약 덧붙여서 세 번째 겹을 붙인다면 덧붙일 때에 악작죄를 얻으며 11일의 새벽 무렵에는 곧 사타를 범하게 된다. 만약 필추니가 새로 만든 승가지에서 오래된 속감을 떼어내어 그것을 다른 데에 쓰려고 한다면 떼어낼 때에 악작죄를 얻으며, 11일의 새벽에 이르는 때에는 곧 사타를 범하게 된다. 만약 필추니가 새로 만든 승가지에서 그 속을 떼어내어 세탁하고 물들이고 꿰매고 수선해서 다시 본래의 자리에 붙이려고 한다면 범하는 것이 없으나 11일의 새벽에 이를 때까지 붙이는 일을 완료하지 못하면 니살기바일저가이다. 승가지의 경우에는 이미 그러하지만 니사단의 경우에서도 일은 모두 이와 같다. 만약 필추니가 새로 만든 올달라승가가 있는데 두 번째의 겹을 붙인다면 붙일 때 악작죄를 얻으며, 11일의 새벽에 이를 때는 곧 사타를 범하게 된다. 안달바사의 경우도 이와 같다. 만약 필추니가 헌옷을 얻어서 옷을 지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세탁을 하고 물들이며 재단을 하고 꿰매고 하여 네 겹으로는 승가지를 만들고, 네 겹으로 니사단을 만들며, 두 겹으로는 올달라승가와 안달바사를 만든다. 만약 필추니가 두 겹으로 된 올달라승가와 안달바사에서 다시 덧붙이고자 하여 세 번째의 겹을 붙인다면 붙일 때에 악작죄를 얻으며, 11일의 새벽이 되면 사타죄를 범하게 된다. 만약 필추니가 두 겹으로 된 옷에서 속을 떼어 내고자 하거나, 혹은 속을 붙이거나 붙이지 않는 경우에, 범하는 것이 되는가 안 되는가의 자세한 것은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 만약 필추니가 유시주의(有施主衣)와 왕환의(往還衣)와 사인의(死人衣)가 있는 경우에는 그것이 새것인가 헌것인가에 따라서 겹의 수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분소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겹의 수를 마음대로 하여도 옷을 짓는데 제한이 없다.
022_0485_c_01L그때 구수 오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승가지에는 몇 종류가 있으며, 조(條)의 수(數)는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오파리에게 말씀하셨다. “아홉 종류의 구별이 있느니라.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9조(條)와 11조와 13조와 15조와 17조와 19조와 21조와 23조와 25조이니라. 오파리야, 처음의 세 가지 가사는 긴 조각 두 개와 짧은 조각 한 개로 하고, 다음의 세 가지 가사는 긴 조각 세 개와 짧은 조각 한 개로 하며, 뒤의 세 가지 가사는 긴 조각 네 개와 짧은 조각 한 개로 하나니, 마땅하게 만들고 마땅하게 지킬지니라. 이것을 넘어서면 곧 잘못된 납의(納衣)가 되느니라.”
오파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가사의 크고 작음에는 몇 가지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승가지에는 세 가지 차별이 있나니 상ㆍ중ㆍ하를 말하느니라. 상(上)이란 세로가 3주(肘)5)이고 가로가 5주이며, 하(下)란 세로가 2주 반이고 가로가 4주 반이니라. 이 두 가지의 중간을 중(中)이라 이름한다. 올달라승가와 안달바사의 경우에도 세 종류가 있으니, 상ㆍ중ㆍ하를 말하며 분량은 승가지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오파리야, 다시 두 가지의 안달바사가 있으니 세로가 2주이고 가로가 5주인 것과 세로가 2주이고 가로가 4주인 것이니라. 가장 아래의 안달바사의 경우에는 다만 3륜(輪)을 덮었을 뿐이니, 이것이 소지하는 가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이니라. 니살기의(泥薩祇衣) 같은 경우에 가장 작은 것은 다만 가로 세로를 1주로 제한한 것이니라.”
022_0486_a_01L그때 보살께서는 도사천(都史天)으로부터 내려오시어 겁비라성(劫比羅城)의 정반왕(淨飯王)의 가문에 의탁하여 태어나셨다. 그때에 사방에 큰 명성을 날리고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석가족에 태자가 탄생하셨으니, 설산 주변의 분염(分鹽) 강 곁에 있는 겁비라(劫比羅) 선인(仙人)이 머무는 곳에 계시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아사다(阿私多)라고 하는 바라문 선인이 있었는데, 점을 잘 치고 관상을 잘 보았다. 왕이 부르니, 관찰하는 수기(授記)를 하되, “두 가지 상서로움이 있으니, 만약 출가를 하지 않고 세속에 있게 되면 전륜왕이 되어 온 천하를 교화하여, 대성주(大聖主)가 되어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주보(珠寶)ㆍ여보(女寶)ㆍ주장신보(主藏臣寶)ㆍ주병신보(主兵臣寶)인 일곱 가지 보배를 구족하며, 천 명의 아들이 원만하고 큰 위력을 갖추어 용맹무쌍하여 원수를 항복시키되, 이 대지와 사해의 끝을 다하며 온 천하의 모든 도적들이 없어지며, 또한 혹독한 벌로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없어지고 법으로써 사람들을 다스려 편안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출가한다면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고 바른 신심(信心)으로 집으로부터 집 아닌 데에 이르러 마땅히 불(佛)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가 되셔서 명성이 시방에 가득하며 널리 많은 중생을 구제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여러 나라의 대왕들을 모두 석가족에 태자가 탄생하여 설산(雪山)에 있으며, 나아가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각기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가서 태자를 받들어 모셔서 마땅히 다음에 복록(福祿)을 얻도록 해야겠다.’ 또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나는 태자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없으니, 만약 정반왕을 받들어 모신다면 곧 태자를 받들어 모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때에 여러 나라의 왕들이 모두 사신과 함께 나라의 신표(信標)를 지니고 정반왕에게 나아갔다.
뒤에 보살은 깊은 궁궐 안에서 자라서 점차 성장하였는데 늙고 병들고 죽은 것을 본 것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과 고뇌를 품게 되니, 드디어 숲 속으로 가서 세속의 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여러 나라의 왕들은 이 소식을 듣자 모두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 정반왕을 섬기는 까닭은 태자를 섬기기 위함인데 태자는 이미 숲 속으로 가서 출리(出離)를 구하고자 하고 있다. 내가 이제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비용을 낭비할 것인가?’ 이에 사신과 여러 국신(國信)을 모두 단절시켰다.
022_0486_b_01L그때에 교살라국(憍薩羅國)의 승광대왕(勝光大王)은 정반왕의 나라와 가까이 있어서 신물(信物)은 비록 단절시켰으나 사신은 여전히 오가게 하여 때때로 사신을 보내어 서로 문안하였다. 파견된 사신은 이 나라의 대신으로서 이름을 밀호(密護)라고 하였다. 이때 밀호는 정반왕의 처소에 이르러 국사를 논하고 나서 곧 대신인 오타이(隖陀夷)의 집에 머물렀다. 정반왕이 사신을 보내어 승광왕을 문안할 때에는 대신인 오타이를 가게 하였는데, 그럴 때 오타이는 실라벌성에 이르러 승광왕을 뵙고 국사를 논의하고 난 뒤에 밀호의 집에 가서 머물렀다. 밀호에게는 부인이 있어서 이름을 급다(笈多)라고 하였는데, 얼굴과 용모가 단정하여 사람들이 보고는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 오타이는 급다와 법답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 이때 밀호는 자기 부인이 오타이와 몰래 정을 통한다는 말을 듣자 곧 생각하기를, ‘이 두 못된 것들을 죽여야겠다’ 하다가 뒤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그들을 죽인다면 왕성(王城)이 시끄러워져서 크게 놀랄 것이다. 어떻게 이 잘못된 여인 때문에 바라문(婆羅門)을 죽이겠는가?’ 하고는 내버려두고 묻지 않았다. 나중에 밀호가 죽자 승광왕은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재산을 거두어들여서 왕의 것으로 만들었다. 오타이는 이 일을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저 급다로 하여금 아무 의지할 데 없이 만들 수 있겠는가?’ 밤새도록 궁리를 하다가 새벽이 되자 곧 정반왕의 처소로 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승광왕과 국경이 인접하여 있사온데 이와 같이 온당치 못한 일을 보셨으니 마땅히 사신을 보내시어 그곳에 가서 일을 헤아리셔야 할 것입니다. 만약 문안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재앙을 초래하게 되실 것입니다.” 왕이 곧 그에게 말했다. “그러하다면 경이 사신이 되어 그곳에 가서 일을 헤아리도록 하시오.”
022_0486_c_01L오타이는 곧 실라벌성으로 가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대왕을 먼저 만나야 될 것인가, 신하를 먼저 만나야 될 것인가? 하고는 곧 다시, ‘일을 하는 법은 이치가 아래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곧 대신의 처소로 가서 자신의 본의(本意)를 설명하고 말했다. “내가 왕에게 아뢰어 급다를 취하고자 하니 바라건대 당신께서 나를 도와서 말씀드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신이 듣고 나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오타이는 곧 승광왕의 처소로 가서 함께 국사를 논의하고 그 자리에서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저에게 머물 곳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말했다. “경이 그 전에 왔을 때는 어느 곳에서 머물렀소?” “저는 지난번에는 밀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왕이 말했다. “이번에도 마땅히 그곳에 마무르는 것이 좋겠소.” 곧 왕에게 말하였다. “밀호는 죽었습니다.” 왕이 말했다. “집주인이야 비록 죽었지만 집이야 어찌 죽었겠소?” 오타이가 말했다. “집은 비록 죽지 않았지만 벌어들이는 수입이 하나도 없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명했다. “머물 곳을 찾아서 오타이를 편안하게 해 주도록 하라.” 신하가 말씀드렸다. “달리 머물 곳이 없나이다. 그런데 저 사람은 전에 급다와 정을 통하여서 본래의 뜻은 이것을 인연하여 왕께 고하자 함이니 왕께서 이제 이 사람을 거두어들이신다면 이는 곧 정반왕을 거두어들이시는 것입니다.” 이때에 승광왕은 곧 사람을 시켜서 오타이를 오게 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오타이여, 나는 경이 급다와 더불어 정을 통하였던 것을 참으로 알지 못하였소. 이제 급다를 경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집과 재물도 드리도록 하겠소.” 그러자 오타이는 절을 하여 감사드리고 물러났다.
022_0487_a_01L 한편 급다는 오타이가 그의 집에 온다는 말을 듣고 곧 문 밖으로 나와서 큰 소리로 통곡을 하였다. 오타이가 문에 이르러 급다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우는 것이오?” 급다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사랑하던 남편이 죽었는데 당신마저 어찌 또한 나를 버리려는 것입니까?” 오타이가 말했다.
“내가 본래 우리 두 사람을 위하여 이곳에 왔소. 이미 왕께 말씀드려서 당신과 집의 재산을 모두 하사받았으니 당신은 이곳에 있겠소, 겁비라성(劫比羅城)으로 가겠소?” 급다는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만약 겁비라성으로 간다면 바라문의 부인이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니 그냥 이 집에 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오타이는 두 개의 집을 갖게 되었으니, 하나는 겁비라성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실라벌성에 있었다.
그때 보살께서는 6년 동안에 하나도 가진 것이 없이 고행을 닦아 마치시고 곧 마음에 따라 훌륭한 음식을 받고자 하시어 곧 음식물과 여러 소유(蘇油)를 온 몸에 바르시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셨다. 그런 뒤에 곧 승군(勝軍) 마을의 두 소치는 여인의 처소로 가셨으니, 한 사람은 이름을 환희(歡喜)라 하였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을 환희력(歡喜力)이라 하였다. 그곳에서 16배(倍)의 우유죽을 받아 배불리 드시고 나서 다시 선행(善行) 남자의 처소로 가셔서 길상초(吉祥草)를 취하시니, 이때에 흑룡왕(黑龍王)이 찬탄하였다. 보살께서는 보리수(菩提樹) 아래로 가셔서 손으로 풀을 고르게 펴서 어지럽지 않게 하신 뒤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시어 몸을 단정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시고서 마음속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나의 모든 번뇌를 끊고 다하지 못한다면 나는 끝내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 그런데 보살은 아직 가부좌를 풀지 않았는데 미혹이 모두 다 하였다.
022_0487_b_01L 그때 세존께서는 36억의 마군을 항복시키시고 나서 모든 지혜를 증득하셨다. 그리고 범왕(梵王)의 청을 받아들이시어 바라닐사(婆羅痆斯)로 가셔서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의 법륜을 굴리시어 다섯 필추와 그들을 따르던 다섯 필추니를 제도하셨다. 이어서 백첩림(白氎林) 가운데로 가셔서 60현부(賢部)를 제도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견제(見諦)에 머물게 하셨으며, 또한 승군 마을에 이르시어 두 명의 소치는 여인을 제도하시어 또한 견제에 머물게 하셨으며, 또한 오로빈라(烏盧頻螺)숲 근처에 가시어 천 명의 외도를 제도하시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셨다. 또한 가야산(伽耶山) 정상에 이르시어 삼신변(三神變)을 나투시어 교화하여서 안온한 열반에 머물게 하셨으며, 또한 장림(杖林)에 이르시어 마갈타[摩揭陀]의 국왕인 빈비사라왕(頻毘娑羅王)으로 하여금 견제에 머물게 하셨으며, 아울러 팔십백천(八十百千)의 여러 하늘 무리와 무량백천의 마갈타국 바라문 등을 제도하셨다. 다음으로는 왕사성(王舍城)에 이르시어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받으시고, 또한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출가를 허락하시고 구족계를 주셨다. 다음으로는 실라벌성으로 가시어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級孤獨園)을 받으셨다. 다음으로는 교살라국(憍薩羅國)에 이르시어 『소년경(少年經)』을 설하여서 승광왕으로 하여금 견제를 얻게 하시고 서다림에 머무르셨다.
022_0487_c_01L 어느 날 승광왕은 사신을 시켜 정반왕이 있는 곳으로 편지를 보내 이렇게 고하게 하였다. “대왕이시여, 이제 기뻐하십시오. 태자께서는 이미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증득하셨습니다. 또한 유정으로 하여금 같은 감로를 맛보게 하시면서 지금은 서다림 안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정반왕은 이 소식을 듣자 손으로 뺨을 괴고 근심하면서 탄식하였다. “지난날 일체의성(一切義成)8) 태자가 고행할 때에 내가 늘 사람을 보내어 태자의 안부를 묻게 하면 심부름하는 사람이 곧 돌아와서 나에게 머무는 곳을 보고하곤 하더니 요즘에는 사람을 보내어 묻게 해도 끝내 한 사람도 돌아오는 자가 없었는데, 지금 서다림 안에 와 있다고 하니 그 일이 어찌 된 일인가?” 그때에 대신인 오타이가 앞으로 나서서 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곧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손으로 뺨을 괴시고 근심하고 계십니까?” 왕이 말했다. “내가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지난날 일체의성 태자가 고행을 할 때에 내가 항상 사람을 보내어 태자의 안부를 물으면 심부름하는 사람이 곧 돌아와서 나에게 머무르는 곳을 알려주곤 하였소. 그런데 요즈음에는 사람을 보내어 묻게 해도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자가 끝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제 소식이 있어서 말하기를 ‘일체의성 태자가 무상정각을 증득하였으며 또한 유정으로 하여금 같은 감로를 맛보게 하며 서다림으로 왔다 하니 어찌 근심하지 않겠소?”
오타이는 곧 왕에게 말하였다. “만약 그러하시다면 청하건대 제가 사신이 되어서 소식을 가지고 갔다가 되돌아오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경이 간다 해도 도리어 그곳에 머물러서 또한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 오타이가 말했다. “대왕의 명령을 받들었는데 어찌 감히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정반왕은 스스로 편지를 써서 말했다.
처음에 수태(受胎)한 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길렀노라. 번뇌의 불길이 항상 타올라서 언제나 최승수(最勝樹)를 희구하더니
022_0487_c_06L始從受胎後, 長養於世尊; 煩惱火恒然, 常希最勝樹。
이제 이미 부처를 이루어 따르는 무리의 수는 끝없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안락함을 받았는데 오직 나만이 아직 고통을 없애지 못하였도다.
022_0487_c_08L今旣得成佛, 徒衆數無邊; 餘人受安樂, 唯吾未除苦。
편지를 다 쓰고 도장을 찍고 난 뒤에 오타이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오타이는 왕의 친서를 가지고 실라벌성으로 가서 세존께 올렸다. 세존께서는 편지를 받으시자 곧 스스로 뜯어서 읽으셨다. 오타이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겁비라성에 가시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오타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와 함께 가겠소.” 그때에 오타이는 그 전에 태자가 성을 넘어서 출가를 하자 왕이 자주 불렀지만 끝내 나라에 돌아오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고 거듭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세존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제가 억지로라도 모시고 가겠나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오타이에게 게송으로 설하셨다.
022_0488_a_01L 오타이는 세존께서 가타(伽他)를 설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궁으로 돌아가서 부왕께 알려드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오타이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심부름하는 사람이 된 자는 마땅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오타이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심부름하는 사람이 된 자는 그 일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오타이에게 이르셨다. “무릇 출가를 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부처님의 심부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오.” 오타이가 말씀드렸다. “저는 출가를 하고자 하나이다. 하오나 맹세를 하였기에 돌아가서 정반 대왕께 보고를 해야 하니 저는 우선 떠나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가하기를 기다렸다가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오.” 오타이가 말씀드렸다. “좋습니다. 저는 지금 출가하겠나이다.” 그러나 세존께서 보살로 계실 적에 태어나는 곳마다 두 스승과 두 어버이와 여러 존중하는 무리들에게 법답게 하시어 일찍이 거스른 일이 없었기에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그때에 오타이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출가를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오타이에게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고, 그로 하여금 오랫동안 길이 이익을 얻게 하여라.”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곧 출가를 시키고 아울러 구족계를 주었으며, 행해야 할 법을 대략 일러주었다. 그때에 오타이는 가르침을 받고 나서 사리자에게 예배드리고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출가하였나이다.”
022_0488_b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떠나가도 좋다. 그러나 잠깐 동안이라도 왕궁에 들어가서는 안 되느니라. 마땅히 그 문에 도달하거든 서서 알리기를, ‘석가의 필추가 지금문 밖에 와 있다’라고 하여 만약 들어오라고 하거든 마땅히 따라 들어가되 그가 ‘또 다른 석가의 필추들이 있습니까?’라고 묻거든 ‘더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만약 묻기를, ‘일체의성 태자께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하거든, ‘또한 이와 같은 형상을 하고 계십니다’라고 할 것이니라. 너는 또한 마땅히 왕궁 안에서 숙박을 하지 말 것이며, 만약 일체의성 태자께서는 왕궁에서 묵으십니까?’라고 하거든, ‘묵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하라. 그가 묻기를, ‘어느 곳에서 머무르십니까?’라고 하거든, ‘아란야나 비하라(毘訶羅)9)에 머무르십니다’라고 대답하여라. 만약 ‘일체의성 태자께서는 오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묻거든, ‘오시려고 하십니다’라고 대답하라. 만약 ‘어느 때에 오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묻거든, ‘7일이 지나서야 이곳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라.” 그리하여 오타이는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떠나갔다.
022_0488_c_01L 그때 세존께서는 신력(神力)으로 가피를 내리시어 오타이로 하여금 팔을 펴는 잠깐 사이에 겁비라성에 도착하게 하셨다. 오타이는 왕궁의 성문 밖에 서서 문지기에게 알렸다. “나를 위하여 왕께 고하시오. 석가의 필추가 지금 문 밖에 와 있노라고.” 문지기가 물었다. “다른 석가의 필추들도 있습니까?” “더 있습니다.” 문지기가 곧 들어가서 왕에게 고하였다. “석가의 필추가 문밖에 와 있습니다. 들어오게 할까요?” 왕이 말했다. “불러들여라. 내가 석가의 필추는 그 형상이 어떠한지 보아야겠다.” 문지기가 인도하여 들어갔다. 왕이 있는 곳에 이르니 왕이 얼굴을 알아보고 오타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출가를 하였구려.” 오타이가 왕에게 말했다. “저는 이미 출가를 하였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일체의성 태자도 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소?” “대왕이시여, 또한 이 형상과 같으십니다.” 그때에 정반왕은 무시겁(無始劫) 이래의 은애(恩愛)의 정이 두터워 이 말을 듣는 순간 기절하여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차가운 물을 뿌려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소생하여 일어나 오타이에게 물었다. “일체의성 태자는 이곳에 오려고 하오?” “오려고 하십니다.” “어느 때 오려고 하오?” “7일이 지나 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곧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일체의성 태자가 7일이 지나 옛 집에 오려고 하니 경들은 마땅히 성을 꾸미고 도로를 장엄하도록 할 것이며, 궁중의 내인(內人)들도 물 뿌리고 청소를 하게 하라. 태자가 올 것이니라.” 오타이가 말했다. “세존께서는 왕가(王家)와 내궁(內官) 안에는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왕이 말했다. “어느 곳에서 머무르오?”
“아란야나 비하라에 머무르십니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경들은 아란야처(阿蘭若處)인 굴로타림(屈路陀林)으로 가서 서다림에 있는 것과 같은 한 주처(住處)를 조성하되 열여섯의 대원(大院)을 두고 하나의 원에는 예순 개의 방을 두도록 하시오.” 이때 여러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곧 아란야처인 굴로타림으로 가서 서다림의 것과 같이 열여섯 채의 큰 집과 집마다 예순 개의 방을 지으니, 대왕의 명령대로 곧 이루어졌다. 여러 천인(天人)들이 마음을 일으키고 일을 준비하여 정력(定力)에 상응하여 뜻과 생각이 모두 이루어졌다. 이 성 안에서는 큰 거리와 골목골목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다 제거되고, 전단향수(栴檀香水)를 곳곳에 뿌렸으며 곳곳에는 모두 기이하고 묘한 향을 공양하였고, 여러 가지 그림들을 내건 당번(幢幡)을 세웠으며, 널리 향과 꽃을 벌여 놓아 참으로 즐길 만하였으니, 마치 제석천에 있는 환희원(歡喜園)과도 같았다. 이때 여러 대중들은 각기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가지고 세존을 고대하며 마음속에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서다림에 계셨는데 대목련에게 명하셨다. “너는 지금 가서 모든 필추들에게 알리도록 하여라. 여래께서 겁비라성으로 가시고자 하니 만약 여러 구수께서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가사와 발우를 챙기도록 하시오’라고.” 대목련은 부처님의 명을 받고 나서 필추들에게 알렸다. “여러 구수여, 세존께서는 겁비라성으로 가시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 구수들께서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가사와 발우를 챙겨서 세존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022_0489_a_01L필추들은 알리는 말을 받들고 나서 모두 와서 부처님을 뒤따랐다. 그때 세존께서는 스스로 조복(調伏)시키신 까닭에 조복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적정(寂靜)하신 까닭에 적정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해탈하신 까닭에 해탈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안온(安隱)하신 까닭에 안온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선순(善順)하신 까닭에 선순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욕심을 떠나신 까닭에 이욕(離欲)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아라한이신 까닭에 아라한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단엄(端嚴)하신 까닭에 단엄함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전단(旃檀)의 숲과 같으신 까닭에 전단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코끼리왕과 같으신 까닭에 코끼리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사자왕과 같으신 까닭에 사자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대우왕(大牛王)과 같으신 까닭에 여러 소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기러기왕과 같으신 까닭에 여러 기러기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묘시왕(妙翅王)과 같으신 까닭에 묘시조(妙翅鳥)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바라문과 같으신 까닭에 학도(學徒)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훌륭한 의사와 같으신 까닭에 병자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대군(大軍)의 장군과 같으신 까닭에 병사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와 같으신 까닭에 행인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상주(商主)와 같으신 까닭에 상인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대장자(大長者)와 같으신 까닭에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국왕과 같으신 까닭에 대신들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밝은 달과 같으신 까닭에 많은 별들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해와 같으신 까닭에 천(千)의 빛에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지국천왕(持國天王)과 같으신 까닭에 건달바(乾闥婆)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증장천왕(增長天王)과 같으신 까닭에 구반다(鳩槃茶)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추목천왕(醜目天王)과 같으신 까닭에 용(龍)의 무리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다문천왕(多聞天王)과 같으신 까닭에 약차(藥叉) 무리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정묘왕(淨妙王)과 같으신 까닭에 아소라(阿蘇羅) 무리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제석천(帝釋天)과 같으신 까닭에 삼십삼천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범천왕(梵天王)과 같으신 까닭에 범천의 무리에게 둘러싸이셨으며, 스스로 큰 바다가 고요한[湛然] 것과 같으신 까닭에 편안히 머무르셨으며, 마치 큰 구름이 많이 모여서 널리 드리운 것과 같으셨으며, 마치 코끼리의 새끼가 취하여 날뛰는 것을 그친 것과 같으셨으니, 모든 감관을 조복시키시고 위의가 고요하시어 32상(相)으로 꾸미시고 80종호(種好)로 몸을 장엄하셨으며, 1심(尋)의 원광(圓光)이 천 개의 해보다 더 밝게 비추며, 편안한 모습으로 천천히 나아가시는 모습은 보산(寶山)을 옮기는 모양과 같으셨으며, 시방의 4무소의(無所畏)와 대비(犬悲)와 3념주(念住)와 무량공덕이 모두가 원만하였다.
022_0489_b_01L여러 대성문으로서 존자 아신야교진여(阿愼若憍陳如)와 존자 고승(高勝)과 존자 바슬파(婆瑟波)와 존자 대명(大名)과 존자 무멸(無滅)과 존자 사리자(舍利子)와 존자 대목련(大目連)과 존자 가섭파(迦攝波)와 존자 명칭(名稱)과 존자 원만(圓滿) 등의 여러 대성문과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겁비라성으로 향하여 점차로 행하여 로희다하(盧呬多河)에 이르렀다. 이때에 필추들은 혹은 손과 발을 씻기도 하며, 혹은 양치하는 나무를 씹기도 하며, 혹은 깨끗한 물을 담기도 하며, 혹은 목욕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겁비라성의 사람들은 일체의성 태자가 지금 막 도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앞 다투어 달려서 굴로타(屈路陀)숲으로 갔다. 그때 정반왕은 넓은 곳에 상과 좌석을 설치하고서 태자를 기다렸다.
무량백천의 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으니 혹은 선세(先世)의 선근이 있어 서로가 경각(警覺)시켜 주기도 하였고, 혹은 마음에 기쁘고 즐거운 생각을 내어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예를 갖출 것인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예를 갖출 것인 가?’ 불세존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만약 발로 걸어서 성안으로 들어간다면 여러 석가족의 사람들은 각자가 업신여기는 생각을 일으켜 믿지 않는 마음을 내고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일체의성 태자는 큰 잘못을 하였다. 옛날에 떠나던 날에는 백천(百千)의 천중(天衆)이 허공으로부터 뒤를 따라가 겁비라성에서 둘러싸고 갔는데 오늘 무상(無上)의 묘지(妙智)를 획득하였거늘 발로 걸어서 돌아오다니≻라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업신여기는 마음을 쉬게 만들고자 나는 이제 마땅히 신통변화로써 겁비라성에 들어가도록 해야겠구나.’ 그때 세존께서는 마음에 생각하신 대로 삼매에 드셨다. 이미 정(定)에 드시자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으셨고 여러 제자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오르시니, 마치 보름달이 함께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으셨으며, 또한 큰 기러기왕이 날개를 펼치고 가는 것과 같으셨으니,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네 위의 가운데에 널리 신통변화를 나투셨다.
022_0489_c_01L그때 세존께서는 먼저 동쪽에서 화광정(火光定)에 드시어 갖가지 불꽃으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홍(紅)의 파지(頗胝:수정) 색깔을 나투셨으며, 혹은 신통변화를 나투시어 몸 위로는 물을 나오게 하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나오게 하시며, 몸 위로는 불이 나오게 하고 몸 아래로는 물이 나오게 하셨다. 동쪽에서 이미 이와 같이 하시고, 남쪽ㆍ서쪽ㆍ북쪽에서도 이와 같이 하셨다. 다음으로는 신통을 거두어서 허공 가운데에서 7다라수(多羅樹)의 높이로 오르시니 필추들은 다만 6다라수의 높이였다. 세존께서 6이 되면 필추는 5가 되고, 부처님께서 5가 되면 대중은 4가 되고, 부처님께서 4가 되면 대중은 3이 되고, 부처님께서 3이 되면 대중은 2가 되고, 부처님께서 2가 되면 대중은 1이 되고, 부처님께서 1이 되면 대중은 여섯 사람의 키와 같게 되었으며, 부처님께서 여섯 사람의 키와 같게 되면 대중은 5가 되고, 부처님께서 5가 되면 대중은 4가 되고, 부처님께서 3이 되면 대중은 2가 되고, 부처님께서 2가 되면 대중은 1이 되고, 부처님께서 1이 되면 대중은 곧 땅에 머물렀다. 세존께서는 땅을 떠나시어 한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이로 허공을 다니시며, 아울러 무량백천 구지(俱胝)10) 인간과 천상의 대중에게 둘러싸이셔서 겁비라성에 도착하셨다. 그때에 정반왕은 부처님을 뵙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두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부처님의 발을 받들어 올려 예배드리고 게송을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에 태어나 대지가 진동했을 때와 섬부(贍部)나무의 그림자가 부처님의 몸을 떠나지 않았을 때였도다. 이제 세 번째로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에 예배드리오니 마군과 원수를 항복시키시고 정각(正覺)을 이루셨도다.
022_0489_c_13L佛初生時大地動, 贍部樹影不離身; 今是第三禮圓智, 降伏魔怨成正覺。
022_0490_a_01L 여러 석가족과 나머지 대중들은 정반왕이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는 것을 보자 마음으로 참지 못하여 함께 큰소리로 말했다. ‘어찌하여 존귀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의 발에 예배를 드리십니까?” 정반왕은 모든 석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그와 같이 말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 보살께서 처음 태어나신 날에는 대지가 진동하였으며 큰 광명을 놓아 세계를 두루 비추었으니 그 빛이 찬란하여 삼십삼천을 지났고, 세계의 중간에 있는 어두운 곳으로서 해와 달의 광명이 미치지 않는 곳에도 그때를 당하여서는 모두가 그 빛을 받았으며, 그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던 유정(有情)들도 광명을 받아서 서로 볼 수 있었으니 서로가 말하기를, ‘당신들 유정이 또한 이곳에 살고 있었구나’라고 했다. 그때 내가 그 보기드믄 일을 보고 나서 곧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렸느니라. 또한 보살께서 일찍이 밭 가운데로 가셔서 여러 가지 농사짓는 것을 관찰하시고 섬부나무 그늘에서 결가부좌로 앉으시어 욕계(欲界)의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不善法]을 멀리 여의시고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남아 있는 희락정(喜樂定)을 얻으셔서 초정려(初靜慮)에 들어가셨다. 이미 정오가 지나서 다른 여러 나무들의 그림자는 모두 동쪽으로 옮겨갔으나 오직 섬부나무의 그늘만은 홀로 옮겨가지 아니하고 보살의 몸에 그늘을 드리웠던 것이니라. 그때 나는 그 희유한 일을 보고 나서 다시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렸던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로 세존의 발에 예배를 드렸던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필추 대중 가운데에서 여러 대중들과 자리에 나아가시어 앉으셨다. 정반왕은 다시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것이 네 번째로 세존의 발에 예배드린 일이었다.
한편 여러 석가족 사람들은 굴로타숲의 훌륭하고 묘한 곳에서 훌륭한 자리와 좋은 공양을 차려놓고서 세존과 여러 필추 대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그 숲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시어 대중 가운데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나아가 앉으셨다. 그때에 정반왕은 곧 갖가지 온 세상의 미묘하고 훌륭한 공양으로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드렸다. 정반왕은 백반왕(白飯王)ㆍ곡반왕(斛販王)ㆍ감로반왕(甘露飯王)과 나머지 그곳에 온 백천의 대중들과 함께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사람들 중에는 합장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멀리서 세존께서 묵묵히 앉아 계시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반왕은 곧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왕궁에 계실 때에는 나가실 적에 코끼리나 말이 끄는 수레를 타셨거늘 어찌하여 두 발로 가시밭 가운데를 돌아다니십니까?
022_0490_a_21L佛昔在王宮, 出乘象馬輿; 云何以雙足, 遊於棘刺中?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a_23L 世尊報曰:
022_0490_b_01L
나는 신족통(神足通)으로 자유자재로 허공을 타고 날아다니니 온 대지를 두루 다니더라도 번뇌의 가시에 다치는 일이 없습니다.
022_0490_b_01L我以神足通, 自在乘空去; 周行大地盡, 煩惱刺無傷。
왕이 다시 여쭈었다.
022_0490_b_03L 王復問曰:
예전에는 아주 좋은 옷을 입으시고 얼굴빛도 많은 광채가 났었거늘 지금은 거칠고 해진 옷을 입으셨으니 어떻게 견디실 수 있겠나이까?
022_0490_b_04L昔衣上妙服, 容色多光彩; 今著麤弊衣, 如何得堪忍?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b_06L 世尊報曰:
부끄러움은 최상의 옷이니 매우 단정하고 엄숙합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나니, 고요히 숲이나 들에 머무릅니다.
022_0490_b_07L慚愧爲上服, 披著甚端嚴; 見者起歡心, 寂靜居林野。
왕이 다시 여쭈었다.
022_0490_b_09L 王復問曰:
예전에는 기름진 쌀로 지은 밥을 드시고 훌륭한 금으로 만든 쟁반에 먹을 것이 풍성하였거늘 구걸을 하여 손수 거친 음식을 드시니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겠나이까?
022_0490_b_10L昔飡香稻飯, 盛以妙金槃; 乞丐噉麤疏, 云何得充濟?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b_12L 世尊報曰:
저는 미묘한 법을 먹으니, 맛은 정(定)과 상응합니다. 음식을 탐하는 마음을 깨끗이 물리치고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받을 뿐입니다.
022_0490_b_13L我飡微妙法, 味與定相應; 蠲除飮食貪, 愍物故哀受。
왕이 다시 여쭈었다.
022_0490_b_15L 王復問曰:
예전에는 훌륭한 누각과 집에 오르시어 시절 따라 스스로 편안하셨거늘 지금은 숲 속에 계시니 어찌 두렵지 않으십니까?
022_0490_b_16L昔昇妙樓殿, 隨時以自安; 比在山林中, 云何不驚怖?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b_18L 世尊報曰:
저는 두려움의 근본을 끊었고 번뇌를 모두 깨끗이 제거했으니 비록 숲이나 들에 머물지라도 모든 근심과 두려움이 영원히 끊겼습니다.
022_0490_b_19L 我斷怖根本, 煩惱悉蠲除; 雖處林野中, 永絕諸憂懼。
왕이 다시 여쭈었다.
022_0490_b_21L 王復問曰:
예전에는 왕궁 안에 계시어 향내 나는 물을 끓여서 목욕을 하셨거늘 이제 숲과 들판 가운데에 머무르시니 모니께서는 무엇으로 목욕을 하시나이까?
022_0490_b_22L昔在王宮內, 沐浴以香湯; 比居林野中, 牟尼以何浴?
022_0490_c_01L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c_01L 世尊報曰:
법(法)의 연못은 공덕수(功德水)로 가득 차 있어서 청정한 사람을 기쁘게 하나니 지혜로운 이는 그 가운데에서 목욕을 하여 모든 번뇌의 때를 영원히 끊어버립니다.
022_0490_c_02L法池功德水, 淸淨人所歎; 智者浴於中, 永絕諸塵垢。
왕이 다시 여쭈었다.
022_0490_c_04L 王復問曰:
예전에는 왕궁에 계시어 금으로 만든 병으로 물을 뿌리면서 목욕하셨거늘 지금은 강이나 못이 있는 곳에 계시니 어떤 그릇으로 몸에 물을 뿌리시나이까?
022_0490_c_05L昔日在王宮, 金甁灌水浴; 比在江池處, 何器以澆身?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022_0490_c_07L 世尊報曰:
저는 청정한 계율의 물로 목욕을 하고 묘법(妙法)의 그릇으로 물을 뿌립니다. 지혜로운 이는 모두 흠모하여 찬탄하니 능히 몸과 마음의 때를 깨끗하게 합니다.
022_0490_c_08L我浴淨戒水, 灌以妙法器; 智者共欽讚, 能淨身心垢。
그때 세존께서는 묘한 게송으로 정반왕에게 대답하시고 나서 다음으로는 대중들의 하고자 하는 생각[意樂]과 번뇌[隨眠]와 계성(界性)의 차별을 관하시고 그들의 근기에 맞게 법을 설하셨다. 그 법을 들은 사람들, 이를테면 백반왕(白飯王)ㆍ곡반왕(斛飯王)ㆍ감로반왕(甘露飯王)과 나머지 그곳에 왔던 백천의 대중들은 함께 묘법(妙法)을 듣고 예류과(預流果)를 얻으며, 혹은 일래과(一來果)를 얻기도 하였으며, 혹은 불환과(不還果)를 얻기도 하였으며, 혹은 출가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기도 하였으며, 혹은 독각보리심(獨覺菩提心)을 발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무상(無上)의 보리심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나머지 모든 대중들 모두를 삼보에 귀의하게 하여 바른 믿음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러나 정반왕은 너무나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던 까닭에 미처 견제(見諦)를 얻지 못하였다. 정반왕과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공경스럽게 물러났는데 그 정반왕은 밤중에 이렇게 생각했다. ‘오직 하나뿐인 내 아들만이 이러한 위덕을 갖추었으니 그에 미칠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022_0491_a_01L그때 세존께서는 정반왕의 생각을 아시고 종친(宗親)이라는 교만심을 항복시키려고 새벽이 되자 대목련에게 명하였다.
‘너는 부왕을 불쌍하게 여겨 관찰하도록 하여라.” 목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곧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정반왕의 처소로 갔다. 왕은 존자를 보자 곧 큰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받들어 맞아들여서 자리로 나아갔다. 이때 목련은 곧 생각한 대로 삼매[三摩地]에 들었다. 곧 정(定)에 들자 몸을 자리에서 숨기고 뛰어올라 허공에 몸을 나타냈다. 먼저 동쪽에서 대신통 변화를 나투어 화광정(火光定)에 들어서 갖가지 불꽃을 나타내니 청ㆍ황ㆍ적ㆍ백ㆍ홍색의 수정[頗貾迦] 색깔이었다. 몸 위로는 물을 나오게 하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나오게 하였으며, 또 몸 위로는 불을 나오게 하고 몸 아래로는 물을 나오게 하였다. 남쪽ㆍ서쪽ㆍ북쪽에서도 그와 같이 하였다. 다음으로는 신통을 거두고 본래의 자리에 몸을 나타내었다. 정반왕은 대목련에게 말하였다. “세존의 제자들께서는 이와 같은 대위덕(大威德)을 갖추심이 존자와 같으십니까?” 대목련은 곧 부왕을 위하여 게송으로 설하였다.
모니(牟尼)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가 대위덕을 갖추었으니 3명(明)과 6통(通)을 구족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022_0491_a_13L牟尼諸弟子, 皆有大威德, 三明及六通, 無不具足者。
022_0491_b_01L 그때에 정반왕은 곧 생각하기를, ‘오직 나의 아들만이 대위덕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가지고 있었구나. 이와 같은 필추도 대신력(大神力)을 갖추고 있구나’ 하고는 전에 일어났던 교만한 마음이 곧 없어졌다. 왕은 다시 생각하기를 ‘이번에 세존께서는 오직 사람들만이 공양을 올렸을 뿐 여러 천(天)들은 보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대목련은 왕의 생각을 알고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그때에 정반왕도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세존께서는 부왕의 생각을 아시고 곧 굴로타숲을 모두 소파지가(蘇頗胝迦)로 변하게 하셨다. 왕이 동쪽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문지기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왕이 말했다. “무슨 까닭이냐?”
“부처님께서는 지금 오로지 여러 천(天)들만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왕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현수(賢首)여,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대왕이시여, 나는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입니다.” 곧 남쪽 문으로 가서 세존을 뵈려고 하니 문지기가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이냐?” “부처님께서는 지금 오로지 여러 천들만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왕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현수여,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입니다.” 곧 서쪽 문으로 가서 세존을 뵈려고 하니 문지기가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이냐?” “부처님께서는 지금 오로지 여러 천들만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왕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현수여,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입니다.” 곧 북쪽 문으로 가서 세존을 뵈려고 하니 문지기가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왕이 물었다. “무슨 까닭이냐?” “부처님께서는 지금 오로지 여러 천들만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왕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현수여,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신력(神力)으로써 정반왕에게 가피를 내리시어 문 밖에서 불세존께서 여러 하늘의 무리들에게 미묘한 법을 설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다. 왕은 그것을 보자 곧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불세존께서는 사람들의 공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여러 천(天)들도 와서 친히 받들어 봉양을 하는구나.’ 정반왕으로 하여금 자랑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쉬게 하시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변화를 거두어들이셨다.
022_0491_c_01L 그러자 대목련은 정반왕을 인도하여 안으로 들여서 세존을 뵙게 하였다. 정반왕은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예배드리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정반왕과 정반왕을 따라온 여러 대중들의 의요(意樂)와 수면(隨眠)과 계성(界性)의 차별을 따라서 근기에 맞게 법을 설하시어 정반왕으로 하여금 지혜의 금강저(金剛杵)로써 스무 가지 신견(身見)11)의 높은 산을 쳐서 무너뜨리고 예류과를 얻게 하셨다. 정반왕은 이미 예류과를 얻고 나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증득한 것은 고조(高祖)께서 해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모님께서 해 주실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왕이나 천(天)이나 사문ㆍ바라문이나 여러 종친(宗親)들이 능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세존 선지식(善知識)께 의지한 까닭에 비로소 이 일을 얻었나이다. 나락가[㮈落迦:지옥]와 방생(傍生:축생)과 아귀(餓鬼)의 3악도(惡道)에서 벗어나 인간과 하늘에 편안히 놓이게 되었사오니 능히 미래의 생사의 끝을 다하고, 젖과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다를 마르게 하고, 백골로 이루어진 높은 산을 뛰어넘어 무시이래로 일찍이 쌓아온 신견(身見)의 집을 이제 모두 제거해 버리고 이러한 묘과(妙果)를 증득하였나이다. 대덕이시여, 생사의 물결에서 제가 이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사오니 저는 이제 불보ㆍ법보ㆍ승보에 귀의하여 우바새[鄔波索迦]가 되겠나이다. 세존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살피소서.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중생의 목숨을 끊지 않을 것이오며 나아가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나이다. 세존의 다섯 가지를 공경히 받겠나이다.”
022_0492_a_01L정반왕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물러나서 곧 백반왕의 처소로 가서 그에게 말했다. “아우는 이제 왕위를 받으라.” 그가 곧 말했다. “무슨 까닭이십니까?” 왕이 말했다. “나는 이제 견제(見諦)를 얻었으니 왕이 될 수가 없다.” “언제 얻으셨습니까?” “오늘이다.” 그가 곧 왕에게 말했다. “저는 세존께서 처음 오시던 날에 이미 견제를 얻었습니다.” 다음으로 곡반왕에게 갔고, 뒤에는 감로반왕의 처소로 가서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모두가 스스로 말하였다. “저는 이미 견제를 얻었습니다.” 정반왕이 말했다. “만약 그러하다면 나는 이제 누구의 정수리에 물을 뿌려 왕위를 받게 할 것인가?” 그가 곧 말했다. “석가족의 동자로서 현선(賢善)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왕위를 이을 만합니다.” 왕이 자신의 뜻을 알리니 그는 곧 잠자코 받아들였다. 정반왕은 곧 그의 정수리에 물을 뿌려 왕위를 현선에게 주었다.
022_0492_b_01L 그때 세존과 여러 필추 대중들은 하루의 정오에 왕궁 안으로 들어가셔서 공양을 받으셨다. 그때에 정반왕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지금의 부처님 제자 가운데에는 전에 외도였던 자들의 수가 천 명이나 있다. 그들의 마음은 비록 단정하나 몸은 보기에 좋지 못하니 예전에 몸을 괴롭혀 몰골이 초췌해진 까닭이다. 어떻게 해야 세존의 문도들로 하여금 용모와 위의를 사랑할 만하게 하여 보는 이가 좋은 마음을 내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석가족의 사람들로 하여금 세존을 모시게 한다면 단정하고 엄숙하여 사람들이 함께 존중할 것이다.’ 정반왕은 석가족의 사람들을 모으고 말했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라. 일체의성 태자께서 만약 출가하지 않으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겠는가?” “전륜왕(轉輪王)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저희들은 신하로서 모두가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왕이 다시 그들에게 일렀다. “지금 일체의성 태자는 감로법을 증득하셨으며, 또한 유정들로 하여금 똑같이 그 맛을 보게 하고 계신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그분을 따르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모두 말했다. “저희들은 출가하여 세존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왕이 말했다. “각자 그대들의 뜻대로 하라.” 여러 석가족의 남자들이 말했다. “온 가족이 다 가야 합니까, 집집마다 한 사람씩만 가야 합니까?” 왕이 말했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만 가도록 하라.” 그때에 정반왕은 방울을 울려 널리 알리고 석가족들에게 말했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출가하여 부처님을 모시도록 하라. 만약 기꺼이 따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책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때 석가족 가운데에서 현선(賢善)과 무멸(無滅) 등 5백 명의 석가족 남자가 모두 출가하였다. 세존께서 만약 귀족을 버리고 출가한다면 많은 이양(利養)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때 5백 명의 석가족 출신의 필추들은 매우 많은 이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