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악생 태자가 시역(弑逆)할 마음을 일으켜 드디어 모든 신하들과 더불어 가만히 모의를 하니 왕의 5백 명 대신들이 모두 따르는데, 오직 한 사람 장행(長行)이라는 대신은 왕의 사랑이 무거웠는데 그 계략에 순종하지 않았다. 뒤에 악생이 장행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 “태자님, 어찌하여 그런 법 아닌 말씀을 하십니까? 부왕께서 이제 늙으셨으니 오래지 않아서 돌아가시면 태자님이 저절로 당연히 왕위를 받으실 것인데, 왜 역해(逆害)를 도모하여 악명(惡名)에 빠지려 하십니까. 신이 비록 우둔하오나 불가한 줄로 아룁니다.”
악생이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짐짓 이런 말을 해본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입을 지키어 남에게 말하지 말라.” 장행이 말하였다. “감히 명령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뒤에 승광왕이 장행 대신과 함께 종자를 거느리지 않고 모든 취락을 순시하다가, 어느 취락에 이르러서 왕이 좋은 난야처(蘭若處)가 있음을 보았다. 바라보니 활짝 트인 안계가 맑고 한가로우며, 지저분한 것이 없어서 선정을 닦고 정신을 길러 선업(善業)을 닦아 나가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왕이 장행에게 말하였다. “이와 같이 좋은 곳에 세존 큰 스승님께서 계시면 좋을 터인데, 어떻게 하면 오시게 하여 친히 공양할 수 있을까. 지금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없군.”
장행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자오니 세존께서 길상취락(吉祥聚落) 석가종족이 사는 곳에 계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얼마나 먼가?” “여기서 3구로사(拘盧舍)쯤 되나이다.” “내가 이제 가서 친히 세존을 받들고자 하노라.” “삼가 대왕님의 뜻에 따르오리다.” 곧 왕가를 돌려 길상원(吉祥園)으로 나아갔다. 이미 저곳에 이르매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나아가 예로 뵈오려 하였다.
022_0641_c_01L그때 여래께서 저 당(堂) 안에서 문을 닫고 정(定)에 들어 계셨고, 비구들은 밖에서 거닐고 있었다. 왕이 비구를 보고 공손히 물었다.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시오?” “부처님께서는 당 안에서 문을 닫고 선정에 드셨습니다. 대왕님께서 세존을 뵙고자 할진대 마땅히 당으로 가서 천천히 문을 두드리십시오. 부처님께서 스스로 때를 알아서 하십니다.” 왕에게는 다섯 가지의 승묘한 장신구(裝身具)가 있으니, 첫째는 보배 관[寶冠], 둘째는 보배 일산[寶傘], 셋째는 보배 칼[寶劒], 넷째는 보배 불자[寶拂], 다섯째는 보배 신[寶履]이다.
그때 왕이 이 모든 성장(盛裝)을 버리고 세존을 뵙고자 하여, 드디어 장행에게 이 다섯 가지 물건을 맡기고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장행은 생각하였다. ‘임금님께서 물건들을 내게 가지고 있게 하시고 나의 얼굴을 보시는 것은 차림을 벗고 마음놓고 부처님을 뵙고자 하시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여기 있으리라.’ 왕이 당에 가서 천천히 문을 두드리니, 부처님께서 곧 여셨다. 곧 큰 스승님께 절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를 뵙지 못한 지 오래 되었나이다. 이제 다행히 여기서 존안을 친견하오니, 기쁨을 이길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어찌 이다지 내게 몸을 굽히고 깍듯하십니까?” “제가 세존님 법에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오며 공경하여 믿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은근하고 정중한 마음을 발하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세존ㆍ응공ㆍ정등각께옵서는 잘 법을 설하시어 성문들로 하여금 다 받들어 행하게 하시니, 어기고 거스리는 자가 없나이다.” “대왕이여, 어떠한 법에 공경하여 믿는 마음을 내십니까?”
022_0642_a_01L“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다른 모든 사문ㆍ바라문 등이 조금 지혜가 있으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다른 이를 힐난하기 위하여 서론(書論)을 짓는데, 사람들이 모두 이것은 잘 분석한 것이라 하여 그 견해에 무리들이 따르게 되면 따로 종(宗)과 양(量)을 세우고 문제를 구상합니다.
이렇게 하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사문 고타마에게 가서 함께 담론하리라. 만약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 내가 저를 욕보일 것이요, 만약 해석이 있어서 이러한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다시 힐난하기를, 그 해석은 진리가 아니라 상응하지 않는다’고 하리라.
이러한 삿된 생각을 하고 부처님께 와서는 겨우 큰 스승님의 위신의 힘만 보아도 오히려 감히 여래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오니, 하물며 능히 대적하여 담론을 할 수 있사오리까. 이러므로 제가 이제 세존께 깊은 신심을 일으킨 것이옵고 공경하여 믿기 때문에 이렇게 은근하고 정중한 마음을 내게 되었나이다. 또 부처님 세존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잘 법을 설하시어 성문들로 하여금 다 모두 받들어 행하게 하시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다른 모든 사문ㆍ바라문 등이 조금 지혜가 있으면 스스로 믿어 잘난 체하고, 먼저 말씀한 것처럼 스스로 이론의 실마리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부처님을 힐난하고자 하나, 세존을 우러러보고는 감히 물음을 발하지 못하고 찬탄하기를, ‘큰 스승님이여, 법의 왕이시여, 인간과 천상에 제일이십니다’고 하였나이다. 모든 지견을 남음이 없이 통달하옵고 그들의 삿된 뿌리를 뽑아 바른 길을 따르게 하시오니, 이러므로 제가 이제 세존께 깊은 신심을 일으킨 것이옵고 공경하여 믿기 때문에 이렇게 은근하고 정중한 마음을 내게 되었나이다. 또 부처님 세존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잘 법을 설하시어 성문들로 하여금 다 모두 받들어 행하게 하시나이다.
022_0642_b_01L또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다른 모든 사문ㆍ바라문 등이 조금 지혜가 있으면 스스로 믿어 잘난 체하고, 먼저 말씀한 것처럼 많은 이론의 꼬투리를 만들어 가지고 부처님을 힐난하고자 하여 부처님께 와서는 세존을 우러러보고 원만하지 못한 질문을 하나, 부처님께서 곧 그를 위하여 원만한 대답을 하시니 그들이 듣고는 모두 기뻐서 큰 신심을 발하고 삼보께 귀의하여 학처(學處)를 수지(受持)하오니, 이러므로 제가 이제 세존께 깊은 신심을 일으킨 것이옵고 공경하여 믿기 때문에 이렇게 은근하고 정중한 마음을 내게 되었나이다. 또 부처님 세존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잘 법을 설하시어 성문들로 하여금 다 모두 받들어 행하게 하시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다른 모든 사문ㆍ바라문들이 조금 지혜가 있으면 스스로 믿어 잘난 체하고, 위에 말씀한 것처럼 부처님께 와서 힐난하고자 하여 이미 와서는 세존을 우러러뵙고 원만한 질문을 하면 부처님께서 곧 근기를 따라서 아주 원만한 대답을 하시니, 부처님의 묘한 법을 듣고 깊이 다행하고 기쁨을 내어 다른 도를 버리고 바른 법을 숭상하여 곧 청하여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으며 부지런히 범행을 닦아서 오래지 않아 번뇌를 모두 끊고 아라한이 되어 해탈의 즐거움을 받으면서 생각하기를, ‘얼마나 헛되이 나를 상실하면서 스스로 속였던가. 전에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고 하였고, 바라문이 아니면서 바라문이라고 하였으며, 아라한이 아니면서 아라한이라고 하였더니 내가 이제는 참된 사문이요, 바라문이며 참된 아라한이로다’ 하오매, 세존이시여, 제가 이로 말미암아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온 바 위에 말씀드린 바와 같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다른 모든 사문ㆍ바라문들이 얼굴빛이 누렇게 뜨고 형모가 비리비리하며 육신에 결함이 있어 보는 자가 싫어하였나이다. 제가 이것을 보고 문득 생각하기를, ‘어찌 저 사람은 범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혹 또 긴 병으로 이런 쇠약함을 가져온 것인가. 혹 숨은 곳에서 죄악을 짓고서 마음으로 덮어 감췄기에 저러한 꼴이 되어서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제가 가서 물었나이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얼굴에 빛이 없고 형용이 초췌하여서 사람들이 보기를 싫어하는가.’ 그들이 대답하였나이다. ‘대왕이여, 우리는 욕심에 얽히어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022_0642_c_01L제가 듣고는, ‘욕심을 끊지 않으면 이와 같은 허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나이다. 많은 욕락을 누리는 자는 욕락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땅히 색신에 힘이 더하고 단엄하여야 할 터인데, 그러나 이런 일이 없으니 무슨 까닭이옵니까. 저는 국왕으로서 5욕락을 구비하여 걸림이 없이 자재하오니 마땅히 색신의 상호가 뛰어나게 좋아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으니 그러므로 알겠나이다. 모든 욕락을 가까이함으로써 색신의 힘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건만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다 모두 욕락을 사랑하나이다.
제가 세존님과 성문제자들을 뵈오니 범행을 좋아하오니 모든 감관이 밝고 청정하며, 얼굴이 빛나고 윤택하여 기쁘게 살면서 항상 조심성을 품은 것이 사슴이 숲에 의지하는 것과 같으며, 내지 죽을 때까지 순일하여 섞임이 없고 원만 청백하며 범행을 구족하오니, 제가 이로 말미암아서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온 바 널리 위에 말한 것과 같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일찍이 정전(正殿)에 앉아서 나라 일을 다스릴 때 많은 사람들이 모두 5욕을 위하여 내게 와서는 혹 부모와 자녀와 형제와 자매와 아는 친구간에 서로 다투어 송사하여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을 보았사오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오리까.
또 제가 일찍이 보았나이다. 어느 두 비구가 모든 비구들과 함께 다투다가 드디어 계를 버렸나이다. 그러나 그 두 비구가 불ㆍ법ㆍ승 삼보에게는 조그마한 과실도 능히 말하지 못하고 다만 스스로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다. 복과 덕이 없어서 능히 청정한 범행을 닦지 못한다’고, 자신을 꾸짖을 줄 알면서 세존의 가르침에 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살아서 범하려는 마음이 없었사오니, 제가 이로 말미암아서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온 바 널리 위에 말한 것과 같나이다.
022_0643_a_01L또 세존이시여, 제가 예전에 일찍이 보니 한 무리의 사문ㆍ바라문이 마음을 스스로 고요히 하고 범행을 지키어 8,9개월을 마치더니, 애욕에 끌린 바 되어 곧 계율과 위의를 버리고 더러움에 물드는 짓을 하여 5욕에 얽매어서 즐기었나이다. 그러나 제가 세존의 성문들을 보니 범행을 닦아서 청정하고 원만하며, 몸이 다하도록 세존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마음에 범함이 없사오니, 제가 이로 말미암아 깊이 신심을 일으켰사온 바 널리 위에 말씀한 것과 같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나라의 주인으로서 이름을 승광(勝光)이라고 하나이다. 이 나라에서 마음대로 거느려서 마땅히 죽이지 않는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사오나, 죽여야 마땅할 자도 제가 놓아 주오니 온 국토 안에 따르고 존경하지 않음이 없나이다. 그러나 대신ㆍ재상은 다 호족(豪族)이며 큰 바라문이며 찰제리 장자로서 혹 국정을 논하고 여러 신하들의 공과 죄를 평하여 아뢸 때 오히려 방자하고 교만함을 품으며 예도와 용의가 부족하여 조정의 기강을 흐리게 함이 있사오나, 제가 세존을 보매 한량없는 백천 대중 속에 둘러싸여 설법하실 때 모든 천상과 인간의 무리가 각각 마음을 가다듬고 존안을 우러르면서 다 함께 자세히 듣되 산란함이 없으니 자리 밑이 조용하여서 기침소리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사오니, 하물며 다른 시끄러움이 있사오리까.
문득 한 사람이 기침소리를 내니 옆에 앉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는 좀 조용히 있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 그대는 어찌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지 못하는가. 아름답고 묘하며 근기에 맞는 것이 마치 좋은 꿀과 같은데……’ 이렇게 말하니 그가 곧 잠잠하였나이다. 이때 제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께서는 진실로 큰 위력이 있어서 헤아리기 어렵다.’ 칼과 몽둥이로 엄히 형벌하지 않고도 능히 중생을 조복하여 모두 따르게 하시오니, 제가 이로 말미암아서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오니 널리 위에 말한 것과 같나이다.
022_0643_b_01L또 세존이시여, 제게 두 신하가 있사온 바 하나는 이름이 선수(仙授)요, 하나는 고구(故舊)이옵나이다. 그들이 소유한 봉읍(封邑)과 상사(賞賜)와 부귀와 명예가 다 내게서 말미암은 것이어서 살아오는 동안 항상 편안하고 즐거움을 받건만, 그들이 내게 비록 은혜를 생각하오나 오히려 세존께 공경하는 마음처럼 농후할 수 없나이다. 또 제가 한때 군마를 삼엄하게 거느리고 나아가 토벌을 행할 때, 저 두 신하에게 그들이 부처님과 나를 생각하는데 누구를 더 존중하는가 시험하기 위하여 함께 비밀한 곳에 가서 그들에게 물었나이다. ‘경들이 잘 때에 나와 부처님을 대하여 머리와 발을 어디로 향하는가.’
그 두 신하가 부처님의 공덕과 아울러 설하신 바른 법과 승보의 복밭을 찬탄하고는, 이러하기 때문에 머리를 부처님께로 향하고 발은 왕에게로 향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를 듣고는 세존께서 불가사의한 큰 위력이 있으심을 존경하였나이다. 그들은 모두 나의 총애와 녹으로 말미암아 큰 명예와 부귀와 안락을 누리건만 그러나 저들이 나를 공경하는 것이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만 못하오니, 제가 깊은 신심을 일으켰사오니 널리 위에 말한 바와 같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나는 교살라의 왕이오며, 부처님도 또한 교살라에 계십니다. 나는 찰제리 종이온데 부처님도 또한 찰제리 종이오며, 나는 이미 나이가 높아서 80이온데 부처님도 수가 80이옵니다. 나는 관정(灌頂)한 찰제리의 왕이오나 세존은 위없는 법왕이시라, 나의 힘을 부처님께 견주면 비교가 안되나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깊은 신심을 일으켰나이다.” 이렇게 널리 말하고는 다시 말하였다. “그러니 모두 받들어 행하나이다.” 이때 승광왕이 세존 앞에서 이와 같이 모든 보고 들은 일인 기묘한 법을 말하고는, 두 발에 절하고 하직을 올리고 갔다.
022_0643_c_01L왕이 간 지 오래지 않아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왕이 말한 바 기묘한 법을 기억하여 독송할지니라. 왜냐하면 글 뜻이 구족한 때문이며, 바른 법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범행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능히 변지(遍智)ㆍ등각(等覺)ㆍ원명(圓明)ㆍ열반과(涅槃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 이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을지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모든 비구들이 다 모두 기뻐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앞의 것을 거두어 게송으로 하리라.
사람을 논하자면 네 가지가 있고 욕락을 생각하면 몸이 파리하다. 두 신하의 공경함이 달라서 임금을 높인 것이 부처님께보다 못하였다.
022_0643_c_06L論人有四種, 念欲身形瘦, 二臣恭敬殊,
尊王不如佛。
그때 장행 대신은 왕이 부처님을 뵙고 있음을 알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왕에게 대신 5백이 있으되 다 악생에게 돌아가고, 오직 나 한 사람만 따르지 않았다. 저들이 어떻게 큰 일을 능히 이룰 수 있을까. 내가 이제 나라로 돌아가서 마땅히 악생을 책동하여 왕위를 잇게 하고, 승만과 행우 두 부인 등을 궁 밖으로 몰아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지키고 있던 것을 버리고 수레로 실라벌성에 이르러서 악생에게 말하였다. “태자님, 이제 왕위에 오르시렵니까?” 악생이 말하였다. “그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요.”
이때 장행이 문득 모든 신하들과 더불어 함께 책동하여 왕을 삼고, 두 부인에게 신칙하여 노왕에게 가라고 하였다. 이에 승만과 행우가 장행에게 임금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왕은 석가묘광원(釋迦妙光園) 안에 계신다.” 두 부인이 도보로 걸어가면서 노왕을 찾았다. 그때 승광 대왕이 문밖에 이르니 장행이 보이지 않는지라, 비구들에게 물었다. “대덕이여, 나의 대신이 어디로 갔는지 보았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대왕님이 들어가신 지 얼마 안 되어 장행이 수레를 타고 갔습니다.”
022_0644_a_01L왕이 듣고는 도보로 차츰 걸어갔고, 부처님도 이때 또한 왕사성으로 향하셨다. 왕이 중도에서 행우 등을 만나서 왕이 문득 물었다. “그대들은 웬일로 걸어서 이렇게 멀리 왔는가?” “대왕님이시여, 장행 대신이 악생을 책동하여 세우고 우리들을 몰아내니, 걸어서 대왕님을 찾아왔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승만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는 남편인 왕의 총애와 녹을 받았지만 이제는 또 돌아가서 아들인 왕의 봉료(俸料)를 받도록 하오. 나는 행우를 데리고 이로부터 돌아다니겠소.” 이에 승만은 실라벌성으로 돌아가는데,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길을 따라 돌아갔다.
왕은 행우와 더불어 왕사성을 향하여 차츰 나아가서 드디어 성에 이르니, 한 원림(園林)을 보고 거기 머무르면서 행우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기 있을 터이니, 그대는 성중에 들어가서 미생원왕(未生怨王)을 보고 ‘교살라국의 승광 대왕이 지금 성 밖의 동산에서 만나보고자 한다’고 하오.” 행우가 곧 가서 미생원을 보고 그대로 말하니, 미생원왕이 듣고는 문득 크게 놀라면서 물었다. “교살라국의 승광 대왕은 큰 위력이 있고 4병이 강성한데, 어떻게 갑자기 오신 것인지 알 수 없소.” “우리 왕에게 이제 무슨 군사가 있겠습니까. 태자가 역모를 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아 왕이라 일컬으니, 오직 내가 왕을 따라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022_0644_b_01L미생원이 말하였다. “만약 이 일만 있다면 내가 마땅히 저분께 권하여 이 나라의 왕으로 삼고 나는 스스로 물러나 태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신칙하였다. “승광왕은 큰 나라의 주인이며, 찰제리종족의 관정한 왕인데, 이제 갑자기 여기 오셨으니 마땅히 공경하여 대우하여야 한다. 경들은 곧 성과 길을 청소하고 4병을 엄정하게 하며, 백천 무리들을 영솔하라. 내가 친히 가서 왕을 맞아들이리라.” 그때 모든 신하들이 이미 왕명을 받들어 북을 치고 소라를 불어서 사람들에게 고하여 성곽을 장엄하고 거리를 청소하여 배나 더 청정하게 하니, 마치 천제(天帝)의 환희원(歡喜園)과 같았다.
한편 승광왕은 오래 먹지 못한 데다가 사신이 오는 것이 더딤을 이상히 여기어 곧 원림에서 나와 음식을 구하고자 두리번거리면서 무우밭에 이르니, 밭을 지키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으로 알고 드디어 무우 다섯 개를 주었다. 왕이 이미 주리고 허한지라, 뿌리와 잎을 모두 먹으니 먹고 나서 목이 말랐다. 곧 물가로 가서 너무 마시니 이로 인하여 곽난이 났다. 비실비실 약한 몸으로 승만을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서 앞으로 나가다가 문득 땅에 쓰러지니 입에는 흙가루가 들어갔다. 이로 인하여 곧 목숨을 마치었는데, 이때 미생원왕이 엄숙하게 4병을 거느리고 동산으로 나아갔으나 보이지 않으니, 곧 말을 탄 사람들로 하여금 사방으로 찾게 하였다.
그때 한 기사가 무우밭에 이르러 동산 지키는 사람[園丁]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러이러한 사람을 못 보았는가?” “내가 한 사람이 잠시 여기에 와서 무우를 구하여 가지고 물가로 가는 것을 보았소.” 곧 그가 가보니 왕의 시체가 길모퉁이에 쓰러져 있었다. 사자가 곧 위에 고하니 미생원왕이 듣고는 말하였다. “앙화(殃禍)로다. 내가 이제 거듭 나쁜 소리를 듣게 되었구나. 나는 이미 아비를 해하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악명이 붙었는데, 이제 또 아버지의 친구를 죽였다고 하겠구나.”
022_0644_c_01L곧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여러 신하들에게 신칙하였다. “이 승광 대왕은 찰제리의 관정대왕으로서, 이제 곤경에 빠져 여기서 목숨을 마친 것이다. 마땅히 성대한 예법에 의하여 그 몸을 화장하게 하라.” 그때 저 모든 신하들이 왕의 신칙한 바와 같이 상여를 갖추어 한림(寒林)으로 운반하고 화장을 마치었다. 그런 뒤 왕이 부처님께 나아가 두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 세존이시여, 알 수 없나이다. 승광 대왕은 먼저 어떠한 업을 지었기에 무우를 먹고 고통받다가 목숨을 마치었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저 승광왕이 스스로 그 업을 짓고 이제 그러한 과보를 받은 것입니다. 대왕이여, 먼 과거에 한 마을에 바라문이 있었는데 아내를 얻은 지 오래지 않아서 문득 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차츰 나이를 먹어 자라나 스스로 걸식하다가 무우 다섯 개를 얻어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면서 말하였습니다. ‘이제 잠시 목욕을 하겠으니 내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서 먹게 하시오.’
대왕이여, 만약 부처님이 없을 때에는 독각이 세간에 출현하여 고독하고 약한 자를 연민히 여기면서 고요함을 즐기고 편안히 있으면서 세간의 복밭이 됩니다. 그때 한 독각이 인간에 노닐다가 이른 아침에 의발을 지니고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하는데 드디어 저 집에 이르니, 바라문의 아내가 이 독각의 몸이 상호가 단엄하고 육근이 고른 것을 보고 곧 무우를 가져다가 바치니, 독각이 그것을 받아가지고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신통변화를 지었습니다. 범부들은 신통을 보았을 때 마음이 조복되는지라, 곧 멀리 예배하면서 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그때 바라문의 아들이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어머니에게 무우를 찾으니, 어머니가 마침 벽지불이 와서 빌기에 이미 보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이 말을 듣고 주림에 못견디어 성을 내고 사나운 생각을 일으켜서 저주하였습니다. ‘그 무우를 먹고 곽난이나 나서 죽어라.’ 대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저 아들이었던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곧 승광왕인 것입니다.
022_0645_a_01L그가 예전에 독각에게 이 악심을 발하였기 때문에 이 업력으로 한량없는 백천 세 동안 지옥에 떨어져서 모든 고뇌를 받고도 다시 남은 업보 인연의 힘으로 이미 여섯 번을 곽난병으로 죽음을 당하였고, 이제 일곱 번째 태어나서도 남아 있던 업력으로 무우를 먹고 곽난으로 죽은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승광의 업보는 이것으로 아주 끝나서 다시는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흰 업에는 흰 과보요, 검은 업에는 검은 과보며, 잡된 업에는 잡된 과보이니, 이러므로 마땅히 검음과 잡됨의 두 가지 업을 버리고 흰 업을 닦으며 사나운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미생원왕이 부처님의 설하신 바를 듣고, 몸과 마음에 기쁨이 차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믿어 받고 떠나갔다.
이때 악생 태자가 이미 왕위를 이었다. 그 뒤 다른 때 모든 대신들을 데리고 대전(大殿)에서 조회를 하였다. 고모가 말하였다. “대왕님이시여, 지난날 대중 앞에서, ‘내가 만약 왕위에 오르면 먼저 마땅히 모든 석가종족을 베어서 나의 첫 원수를 갚겠다’고 사자후하신 것을 생각하십니까?” 왕이 고모에게 물었다. “대체로 내가 한 말은 다 마땅히 그대로 해야 하느냐.”
“대왕님께서 이제 처음 보위(寶位)에 임하셨으니, 마땅히 예전에 석가종족을 토벌하겠다고 하신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때가 이르렀는데도 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되오니, 원컨대 밝은 신칙을 내리시어 날을 점쳐서 출군하시되 상(象)ㆍ마(馬)ㆍ차(車)ㆍ보(步)의 4병을 함께 일으켜 창과 갑옷을 번쩍이게 하옵시고,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면서 실라벌성에서 가비라국으로 가서 석가 종족을 베어 없애야 하옵니다.” 그때 악생왕이 고모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곧 칙명을 내리어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저 나라를 치게 하였다.
022_0645_b_01L세존 큰 스승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 보시는 것이 없으시며, 모든 석가족이 결정코 멸망될 것을 아시고 양국의 경계인 큰 길 가에서 가지와 잎이 많지 않은 작은 나무 밑에 단정하신 몸으로 앉아 계셨다. 그때 악생왕이 멀리서 세존을 보고 곧 그곳으로 나아가서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동산에 그늘 짙은 숲이 많사온데 왜 그런 데를 버리고 여기에 계시옵니까? 이 나무는 잎이 없고 그늘이 없는데 어떻게 계실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친족의 그늘이 청량하거늘 어찌 나무인들 청량하지 않겠습니까.”
악생이 세존의 말씀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가비라국의 모든 석가족의 가지들은 모두 부처님의 친 권속이므로 여래께서 연민히 여기시는 것이니 그 뜻을 어길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니 고모가 두세 번 멸할 것을 간청하였다. 그 뒤 악생이 모든 신하들과 조회할 때에 여러 신하들에게 고하였다. “가비라국의 모든 석가의 종자들은 항상 나를 종의 자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욕이 심하니 이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래의 종족이라 세존께서 연민히 생각하시므로 매양 스스로 눌러 참고 베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원수를 갚을 수 있겠느냐?”
고모가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문 고타마는 스스로 이르기를, ‘욕심을 떠났다’고 한답니다. 욕심을 떠난 자라면 권속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요, 만약 권속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욕심을 떠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도(道)와 속(俗)이 각각 다르니, 대왕님께서 스스로 결단하소서.” 그리고는 또 말하였다. “오늘이 바로 이 석가 종자를 벨 때이옵니다.”
이에 악생이 4병을 정비하여 토벌을 행하고자 하는데 아직 출발하기 전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성중에 석가족이 진리를 보지 못한 자로서 만약 악생과 더불어 서로 전투하게 되면 곧 진리를 볼 수 있는 그릇이 아니리라.’ 곧 가비라성으로 가서 다근수원(多根樹園)에 머무르시니, 이때 모든 석가족들이 세존께서 여기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대중이 집회하여 여래의 처소에 나아가 두 발에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022_0645_c_01L그때 세존께서 모든 석가족의 근성과 인연을 아시고 그들을 위하여 묘법을 설하시니, 저 무리 가운데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이 큰 이익을 얻어서 혹은 예류과(預流果)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과(不還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혹은 독각의 인을 짓고, 혹은 성불할 인연을 지었으며, 또 한량없는 중생들이 삼보께 귀의하고 모든 계율을 받았으며, 불교를 받들어 행하였다.
이때 악생이 친히 4병을 거느리고 가비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었다. 구수 대목련(大目連)이 세존께 나아가서 부처님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들으니 어리석은 사람 악생이 4병을 모아가지고 와서 석가족을 벤다고 하나이다. 제게 신통력이 있어 능히 적병을 멀리 다른 곳으로 물리칠 수 있사오니, 원컨대 세존께서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 신통력으로써 성(城)을 철로 변하게 할 수도 있사옵고, 큰 철망으로 두루 성 위를 덮을 수도 있나이다. 그리하여 저 악생으로 하여금 가리바성을 볼 수도 없게 한다면, 더구나 어떻게 해를 가할 수 있사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가 신통력이 있고, 짓는 바를 다 이루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석가족이 전생의 업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과보를 받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폭포수가 흐르는 것 같아서 가히 막을 수 없고, 요컨대 반드시 스스로 받아야 되나니 널리 위에 말한 것과 같으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것을 게송으로 설하셨다.
설사 백 겁을 지내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나니 인과 연이 만났을 때에 과보를 제가 도로 받느니라.
022_0645_c_15L假令經百劫, 所作業不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부처님께서 대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알라. 세간에서 모두 업력으로 말미암아서 그 과보를 받아서 업력으로 나고 업력으로 사는 것이니, 일체 중생이 다 업력을 따라서 좋고 나쁜 것을 마땅히 받을지니라.” 이때 목련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절하고 갔다. 이때 가비라의 모든 석가족들이 악생왕이 대병을 거느리고 와서 치고자 한다는 것을 듣고, 곧 4병을 명령하여 무장을 엄정히 하고 성을 나가서 적을 막게 하니, 저들이 미처 방비하지 못한 악생의 군사를 찔렀다.
022_0646_a_01L그런데 이 모든 석가족들은 모두 진리를 보았으니 살해를 행하지 않고 오직 채찍과 몽둥이를 좌우로 휘둘러 쳤고, 혹 또 화살로 저들의 활등을 쏘고 코끼리와 말들의 복대(腹帶)를 쏘아 끊어 놓았으며, 혹 또 투구와 갑옷을 쏘아 땅에 떨어지게 하였고, 혹은 귓가나 안장과 굴레의 끈을 쏘아 떨어지게만 할 뿐, 몸과 목을 상하지 않았고 그 목숨을 죽이지 않았다. 이때 악생의 군사들이 패하여 흩어지니 모든 석가족들이 싸움을 이기고는 군사들이 함께 들어와서 문을 닫고 성위에 올라가서 금제령을 내렸다. “우리들은 마땅히 악생과 그 군사들을 상해하지 말자. 만약 범하는 자가 있으면 이는 곧 석가종족이 아니다.”
그때 악생이 이 석가족들에게서 모두 인자하면서도 큰 용력(勇力)이 있음을 보고 고모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군사를 거두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마땅하겠다.” 고모가 대답하였다. “대왕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비라의 석가족들은 모두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모기나 개미 따위도 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사람을 상해하겠습니까. 대왕님께서 만약 믿지 않으신다면 이제 증험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대진(大陣)에서도 하나도 손상함이 없었으며, 그들은 또 금제하기를, ‘마땅히 악생의 몸이나 그의 군사들을 상하지 말라. 만약 범하는 자가 있으면 석가의 종족이 아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악생이 듣고는 묵묵히 있었다.
022_0646_b_01L한 석가의 종족이 있었으니, 이름은 섬바(閃婆)였다. 외읍(外邑)에 살면서 농사짓는 것을 감독하더니, 저 악생이 직접 4병을 거느리고 가비라에 이르러서 석가족을 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듣고, 석가족들이 금제한 내용도 못 듣고 또 진리도 보지 못한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악생을 습격하였다. 창졸간에 옆을 찔린 악생의 군사는 곧 크게 패하여 많은 살상을 입었다. 이때 악생이 고모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석가족은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모기나 개미도 상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해하겠느냐’고 하더니, 이제 섬바 한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싸웠는데도 살해가 아주 많다. 그러니 더구나 가비라의 모든 석가족이 군사를 일으켜 모여온다면 적대하여 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돌아가는 편이 오히려 전몰되는 것보다 낫겠다.”
고모가 대답하였다. “대왕님이시여, 저 섬바라는 자는 외부에서 와서 아직 가비라성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제한 것을 모르고 이렇게 졸폭(卒暴)한 전투심을 일으켰고 안팎이 통하지 못한 것이오니, 대왕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옵소서.” 이때 섬바가 성에 들어가고자 하여 성문 앞에 이르러서 열라고 부르니, 그때 문을 지키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섬바이니, 그대는 마땅히 가서 모든 석가족들에게 말하여라.” 성안에서 곧 사신이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부터 석가족이 아니니, 마땅히 마음대로 갈지니라. 왜냐하면 그대가 성중의 금제령을 범하였기 때문에 이 성문에 들어오지 못한다.”
섬바가 물었다. “대중에 어떠한 금제가 있었기에 나더러 범하였다고 하는가?” “우리들은 금제령으로 악생의 군사들을 상해하지 않기로 하고, 만약 범하는 자가 있으면 석가종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나는 실로 듣지 못한 것이니, 원컨대 용납하여 달라.” 이렇게 애써서 청을 하였으나 무리들이 다 허락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다시 청하였다. “이미 용납하여 들이지 않는다면 내 식구나 돌려달라.” 무리들이 내어 주었다.
022_0646_c_01L권속을 얻고는 세존께 나아가서 두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비라성의 모든 석가족들이 나를 물리쳐서 내어보냈나이다. 원컨대 부처님께서 내게 기념할 것을 주옵소서. 마땅히 공양하여 여래를 받들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자비로써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섬바에게 주시니, 그때 섬바가 정중한 마음으로 여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받아가지고 바구다국(婆具茶國)으로 갔다. 그곳 사람들이 크고 굳센 석가족의 아들 섬바가 이제 와서 임금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를 것인가, 아닌가를 의논하고자 모두 한 산밑에 모여서 이 일을 의논하게 되었다.
이때 섬바 석자가 모든 따르는 자들을 한 곳에 숨어 있게 하고, 자신은 서신을 전하는 심부름꾼으로 가장하여 잘 드는 칼을 겨드랑에 끼고 군중이 모인 곳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들으시오. 섬바 석자는 큰 세력이 있고 용건(勇健)하여 당할 수 없는 분이오. 나는 그분이 그대들에게 전하는 서신을 가지고 왔소.” 군중이 물었다. “어찌 하자는 것이오?” “그분이 왕이 되어서 그대들을 영도하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앉아서 함께 그 서신을 읽도록 하오.” “여기는 앉을 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편안히 있겠소.” 그가 곧 칼을 빼어서 바위들을 치니 조각조각 자리가 되어, 무리들로 하여금 앉게 하였다.
사람들이 보고는 아주 감탄하면서 물었다. “장부여, 그대와 같은 분들이 저기에는 몇이나 있습니까?” “나는 서신을 가지고 온 사자인데 어찌 족히 말할 거리가 되겠소. 나머지 사람들은 나보다 배나 더 뛰어납니다.”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크게 놀라서 무서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사자도 오히려 저러하니 하물며 섬바리오. 우리가 그를 임금으로 세우는 것이 옳겠다.” 그리고는 함께 서신을 개봉하여 보고는 사자에게 말하였다. “대왕님께서 잘 오셨습니다. 우리들이 훌륭하신 소문을 듣고 흠모하여 벌써부터 강림하시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022_0647_a_01L섬바가 그들과 작별하고 전부터 머무는 곳에 이르러 무리들을 위엄있게 꾸미어 엄숙히 시위하게 하고 바구다국으로 들어가니 노소가 모두 기뻐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모든 준비를 하고 길일을 선택하여 임금으로 책립하였다. 이 소문은 멀리 모든 나라에 알려졌다. ‘바구다국에서는 섬바라는 석가족 출신을 임금으로 내세우고 국호를 섬바라고 했다.’ 이리하여 섬바가 선 뒤에 드디어 정성껏 큰 탑을 세우고 여래의 머리털과 손톱을 모시어 공양하였다. 그래서 그 탑 이름을 섬바탑이라고 하였다.
그 왕비도 먼저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으나, 나라에 영을 내리어 사묘(祠廟)를 건립하고 세속에 의하여 제사를 지내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