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 아승기(阿僧祇)1)의 세계에 사는 중생들의 공덕이 있어야만 부처님의 털구멍 하나를 이루며, 이와 같이 부처님의 털구멍 하나를 이루어 내는 그러한 공덕이 여래의 몸에 있는 모든 털구멍마다 두루 미쳐야만 그 공덕이 하나의 상호[好]를 이룬다. 이와 같이 성취한 80종호(種好)2)의 공덕을 백 배로 늘려야만 여래의 몸에 있는 하나의 상호[相]3)를 이루며, 그 성취한 32상(相)의 공덕을 천 배로 늘려야만 여래의 이마 위에 있는 백호상(白毫相)4) 하나를 이루며, 일천의 백호상의 공덕을 백 배로 늘려야만 여래의 정골상(頂骨相) 하나를 이루는데, 일체의 날아다니는 신들도 이 정골상은 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하고 청정한 공덕이 모여야만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는 하늘과 인간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뛰어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말씀하셨으니, 너희 비구들이여, 만약에 12인연이 생겨나는 모습[十二因緣生相]을 보게 되면 이것은 곧 법을 보는 것이며, 만약에 법을 보게 되면 그것은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말씀하신 그 뜻은 무엇일까? 그 뜻은 이 인연으로써 12인연이 생겨나는 모습으로써 생겨남이 있는 것[有生]과 생겨남이 없는 것[無生]을 보게 된다면 이는 곧 법을 보는 것이며, 만약에 법에 대하여 생겨남이 있는 것과 생겨남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면 이는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며 이로써 지혜를 좇아 따르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12인연의 이름을 삼았을까?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두 가지 의미로 말씀하셨다. 따라서 첫째는 인(因)에 따라, 둘째는 연(緣)에 따라 12인연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하겠다. 그리고 다시 두 가지 의미에서 각각을 살펴보겠으니, 첫째는 외(外)이고 둘째는 내(內)이다. 먼저 인의 뜻을 따르는 외인연(外因緣)이란 무엇일까?
024_0473_b_01L일체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종지(種智)5)로써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곧 씨앗으로부터 싹이 생겨나고, 싹으로부터 잎이 생겨나고, 잎으로부터 마디가 생겨나고, 마디로부터 대가 생겨나고, 대로부터 줄기가 생겨나고, 줄기로부터 가지가 생겨나고, 가지로부터 꽃받침이 생겨나고, 꽃받침으로부터 꽃이 생겨나고, 꽃으로부터 씨앗이 생겨난다. 만약 씨앗이 없으면 싹도 생겨나지 않고 마찬가지로 꽃이 없으면 씨앗도 생겨나지 않으며, 씨앗이 있기 때문에 싹이 생길 수 있고 마찬가지로 꽃이 있기 때문에 씨앗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씨앗은 “나는 싹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싹도 또한 “나는 스스로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일체법은 이치 그대로 안주한다. 이러한 뜻으로써 인의 뜻을 따르는 외인연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인의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연의 의미를 살펴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의 성품[地性]ㆍ물의 성품[水性]ㆍ불의 성품[火性]ㆍ바람의 성품[風性]ㆍ허공의 성품[空性] 그대로 살펴보는 것이다. 땅의 성품은 능히 씨앗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물의 성품은 능히 씨앗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불의 성품은 능히 씨앗을 숙성시킬 수 있다. 바람의 성품은 능히 씨앗을 기를 수 있다. 허공의 성품은 능히 씨앗에 걸림이 없도록 할 수 있다. 만약에 이러한 연을 여읜다면 씨앗은 자라나지 못한다.
땅의 성품이 능히 종자를 받아들이고 물의 성품이 종자를 윤택하게 하며, 바람의 성품이 종자를 기르고 허공의 성품이 종자에 걸림이 없도록 하며, 시절에 의지하기 때문에 종자가 자라나고, 종자가 자라나기 때문에 싹이 생겨나지만, 그 땅의 성품은 또한 “나는 능히 종자를 받아들인다”고 말하지 않고, 물의 성품도 또한 “내가 능히 종자를 윤택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불의 성품도 또한 “내가 능히 종자를 숙성시킨다”고 말하지 않으며, 허공의 성품도 또한 “내가 능히 종자를 위해 걸림이 없도록 한다”고 하지 않으며, 종자 역시도 “나는 이러한 연에 기대어 능히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024_0473_c_01L만약 이러한 연을 벗어나면 종자는 싹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싹이라는 것은 역시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남과 함께 만든 것도 아니고, 자재천(自在天)이 만든 것도 아니고, 또한 원인 없이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이 모두가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 그리고 종자와 시절 등을 따르기 때문에 싹이 생겨난다. 이 외인연은 반드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대로이지 않고[非常], 단절되지 않고[非斷], 이어 가지 않으며[非傳度], 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과실은 불어나고[藉緣故果實增廣], 서로 닮은 모습으로 자라난다[從相似生].
‘그대로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이 종자가 멸하기 때문에 그대로이지 않다고 한다. 종자가 멸하는 때가 곧 싹이 트는 때여서 둘 사이에 아무런 장애가 없으니, 마치 숙였다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때문에 단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씨앗과 싹은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에 ‘이어 가지 않는다’고 한다. 뿌린 씨앗은 적지만 거두어들이는 열매는 아주 많은 까닭에 연에 의지하여 과실이 불어난다고 한다. 뿌려진 종자 그대로 서로 닮은 모양의 과실이 생겨나니 이것을 서로 닮은 모습으로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마치 꽃에서 씨앗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반드시 이치에 따라 안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외인연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내인연(內因緣)의 뜻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는데, 역시 첫째는 인의 의미에 따라, 둘째는 연의 의미에 따라서이다.
그렇다면 인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이란 무엇일까? 이른바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가 있어 차례로 뻗어가며, 이러한 괴로움의 덩어리[苦陰]가 모이고 쌓여 불어난다. 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뻗어가고 나아가 마찬가지로 생이 있으므로 노사가 뻗어간다. 만약에 무명이 없으면 행이 생겨나지 않고 만약에 생이 없으면 노사도 없다.
024_0474_a_01L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의 뻗어감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노사의 뻗어감이 있으나, 그 무명은 역시 “나는 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 역시 “나는 무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아가 생 역시 “나는 노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노사 역시 “나는 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뻗어가며 나아가 생이 있으므로 노사의 뻗어감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일컬어 무명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은 여섯 가지 성품[六種性]에 의지하여 남자라거나 여자라거나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무엇을 여섯 가지 성품이라고 하는가?
땅의 성품[地性]ㆍ물의 성품[水性]ㆍ불의 성품[火性]ㆍ바람의 성품[風性]ㆍ허공의 성품[空性]ㆍ인식의 성품[識性]이 그것이다. 땅의 성품은 단단한 모양이어서 능히 몸을 이루고 몸을 허물어지지 않도록 한다. 물의 성품은 역시 능히 지탱해 주며 능히 윤택하게 하며 능히 부드럽게 하며 능히 촉촉하게 한다. 불의 성품 역시 능히 음식을 먹고 마시고 삼키고 맛보도록 하며 능히 성숙하도록 한다. 바람의 성품 역시 능히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며 헐떡이거나 기침을 하도록 한다.
이들 4대(大)6)로 이루어진 것의 사이[內]에 있는 공간이 곧 공의 성품이다. 나아가 이들은 다시 명색(名色)을 이루는데, 비유하자면 마치 억새 다발에서 연유한 것과 같으니, 곧 인식의 성품이다. 따라서 땅의 성품은 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목숨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자신도 아니고, 남도 아니며 나아가 인식의 성품도 이와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해서 여섯 가지 성품의 조건[緣]을 갖추게 되면 중생상(衆生想)ㆍ상상(常想)ㆍ항상(恒常)ㆍ유상(有想)ㆍ오아상(吾我想)ㆍ음욕상(淫慾想)ㆍ아상(我想)이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여러 가지의 무지이니, 일컬어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이 무명이 있는 까닭에 대상에 대하여 애욕으로 애착을 일으키고 성냄을 일으키고 우치를 일으킨다. 이러한 탐ㆍ진ㆍ치는 대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일어나니, 일컬어 바로 행(行)이라 하며, 일을 따라 분별하기 때문에 식(識)이라 하며, 이 식으로부터 다시 네 가지 음(陰)이 일어나니 곧 명색(名色)이다. 명색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이 있으니 이들을 일컬어 6입(入)이라 하며, 이것의 쌓임 때문에 촉(觸)이 있으며, 촉을 느끼기 때문에 상(想)이 있으며, 상을 뒤따르기 때문에 애(愛)가 있으며, 애가 뻗어가기 때문에 취(取)가 있다. 취에 의지하기 때문에 후유(後有)가 생기고, 업유(業有)가 생기기 때문에 유(有)가 있다. 업이 인(因)이 되어 음(陰)이 있고, 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생(生)이 있으며, 음이 성숙하기 때문에 노(老)가 있고, 음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사(死)가 있다.
024_0474_b_01L안으로 뜨겁게 타오르기 때문에 우(憂)가 있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悲)가 있고, 육신이 인식작용[識陰]과 만나기 때문에 고(苦)가 있고, 마음이 인식작용과 만나는 까닭에 부적(不適)함이 있으니, 이들을 수번뇌(隨煩惱)의 부류라고 이름한다. 그 어둡다는 뜻을 따라 무명이라 하고, 만들고 꾸민다는 뜻을 따라 행이라 하며, 인식한다는 뜻을 따라 식이라 하고, 견고하게 버틴다는 뜻을 따라 명색이라 하며, 문으로 들어간다 하여 6입이라 하고, 닿는다는 뜻을 따라 촉이라 하며, 받아들인다는 뜻을 따라 수라 하고, 애착하여 받아들인다는 뜻을 따라 취라 하며, 다시 후유(後有)을 일으킨다는 뜻을 따라 유라 하고, 일어난다는 뜻을 따라 생이라 하며, 무르익는다는 뜻을 따라 노라 하고, 허물어진다는 뜻을 따라 사라 하며, 뜨겁게 타오른다는 뜻을 따라 우라 하고, 생각한다는 뜻을 따라 비라 하며, 괴로움이 몸에 닥친다는 뜻을 따라 고라 하고, 괴로움이 마음에 닥친다는 뜻을 따라 부적함이라 하며, 수번뇌의 부류라는 뜻을 따라 고뇌라 한다.
이와 같이 실상(實相)을 따르지 않기에 곧 삿된 행을 따르는 것이고 무지이며, 그러므로 곧 무명이다. 이같은 무명으로 인하여 세 가지 행이 생겨나니, 곧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7)이다. 따라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이 있기 때문에 선식(善識)ㆍ불선식(不善識)ㆍ무기식(無記識)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행을 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다. 식을 따라 선(善)이 있게 되면 곧 선을 따르는 명색이 생겨나고 불선 및 무기를 따르는 명색 역시 이와 같이 생겨난다. 따라서 식을 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말한다.
명색이 뻗어나기 때문에 6문(門)은 대상에 응하여 만들어진 지식 등을 낳으니, 명색을 연하는 까닭에 6입이 된다고 말한다. 여섯 가지의 느낌이 들어오기 때문에 육촉이 생겨나니, 이 육입을 연하는 까닭에 촉이 된다고 한다. 이 촉이 생겨나기 때문에 수가 생겨나므로 촉을 연하여 수가 생겨난다고 하며, 모든 반연을 취하여 맛들이고 집착하기 때문에 수라고 부른다. 수를 연하여 애가 된다고 하니, 명색을 기뻐하고 탐착하고 호색하고 물들어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거듭 깊이 탐하여 구하는 것을 일컬어 애라 한다. 애를 연하는 까닭에 취가 있고, 다시 몸ㆍ입ㆍ생각으로 지은 업으로 인하여 후유(後有)를 바라고 구하게 되니,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고 일컫는다.
024_0474_c_01L업(業)에 의지하여 음(陰)이 생기니, 이것이 바로 ‘유(有)를 말미암아 생(生)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르익고 허물어짐이 있다. 따라서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12인연이 생겨나고 다시 서로를 인으로 의지하여 서로를 낳고 뻗어간다. 시작도 없이 돌고 돌아 끊어짐이 없으며, 다시 업과 식 등이 거듭 12인연을 낳기 때문에 사지(四支)가 생겨나니, 이는 인의 의미에 따른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이 그것으로, 그 식은 종자(種子)로서 있으면서 명색의 인(因)이 되고, 업은 밭으로서의 인이 되며, 무명과 애는 번뇌(煩惱)로서의 인이 된다. 이 업과 번뇌가 없다면, 그 때문에 식의 종자는 자라나지 않는다. 곧 이 원인이 되는 업을 식의 종자가 밭을 삼으면, 무명 때문에 식의 종자가 뿌려지고, 애 때문에 식의 종자가 촉촉하게 젖는다. 그러나 그 무명은 “나는 식의 종자를 뿌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애도 역시 “나는 식의 종자를 촉촉이 적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업도 역시 “나는 식에게 밭으로 쓰였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식의 종자도 역시 “나는 이들을 연하여 생겨났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식의 종자가 업의 밭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애는 촉촉이 적셔주고 무명은 은밀히 덮어주면, 그 때문에 씨앗이 자라나서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일체의 음에 대해 명색의 싹을 낳지만, 이 명색의 싹은 저 혼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든 것도 아니며, 자재천(自在天)이 만든 것도 아니다. 또한 원인 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어서 앞에서처럼 업과 번뇌가 있기 때문에 식의 종자는 자라나고 명색의 싹을 틔운다. 이는 또한 현재의 세상으로부터 다음 세상으로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니, 업의 결과를 따라 인연이 충분히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에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다.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얼굴을 닮은 모습이 그 안에 있으니, 이는 그러한 인연을 갖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육신은 이곳에서 멸하여도 다른 곳에서 태어나니, 이는 그 업의 인연을 충분히 따라 갖추기 때문이다.
024_0475_a_01L비유하자면 여기에서 3만 2천 유순(由旬)8)이나 떨어진 둥근 달의 모양이 허공에 나타나면, 그릇에 가득 물을 채우고 달의 모양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달은 허공에서 여기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또한 건너오지도 않지만 달의 모양은 그 안에 있으니 역시 그 인연을 갖추기 때문이다.
다시 비유하자면 불을 가져다가 오목한 그릇 안에 넣어 두면 불씨가 타면서 꺼지지도 않고 불꽃이 사라지지도 않으니, 그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와 같이 업과 번뇌는 식의 종자를 낳고, 이 낳아진 것은 상속하여 주체가 없는 법에서 명색의 싹을 낳는다. 인연을 갖추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다. 일체의 지분[支])9)이 이치에 따라 안주한다는 것은 이와 같다. 인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은 이와 같고, 다시 연의 의미에 따라 이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의 의미에 따르면 이상과 같고 연의 의미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수다라(修多羅)10) 안에서도 설하는 바와 같이 연은 이와 같이 일어나고, 연은 이와 같이 모이니, 연은 이러하다. 아비담(阿毘曇)11) 안에서도 이제 미묘하고 훌륭한 모양을 갖춰 다음과 같이 설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이면 음욕이 있으며, 시절이 갖추어지면 만나고 상속하여 식의 종자가 여인의 뱃속에서 명색의 싹을 일으킨다. 이처럼 눈이 색을 반연하고 광명[明]과 뜻을 일으키는 연[生意緣]에 기대어 안식(眼識)이 생긴다. 이와 같이 색은 안식에게 반연하는 대상이 되고, 광명은 시선을 열고 이끌며, 허공은 장애가 없도록 한다. 뜻을 일으킴도 이와 같다. 이와 같은 연이 없으면 곧 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024_0475_b_01L만약에 눈의 감관[眼入]에 문제가 없다면 색 등의 바깥 경계는 곧 반연의 대상이 되고, 광명은 시선을 열고 이끌며, 허공은 장애가 없도록 하고, 뜻을 일으키는 연은 뜻에 의지하여 작용할 것이다. 결국 눈[眼]ㆍ색[色]ㆍ광명[明]ㆍ공[空]과 뜻을 일으키는 연[生意緣]이 이와 같이 서로 화합하기 때문에 안식이 생긴다. 그러나 이 눈은 역시 “나는 안식이 의지하는 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색 역시 “나는 안식의 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광명 역시 “나는 얼마든지 안식을 위해 광명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공 역시 “나는 안식을 위해 장애가 없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뜻을 일으키는 연 역시 “나는 얼마든지 안식에게 뜻을 일으키는 연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안식 역시 “나는 이들 연에 기대어 생겨났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일 이런 연들이 있기만 한다면 곧 안식이 생겨난다. 이것은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똑같은 이치로써 널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곧 그것들은 저마다 명확한 자리에 안주하며, 의식은 뜻ㆍ법과 뜻을 일으키는 연에 의지하여 생겨나니. 이처럼 자세히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연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의 뜻을 살펴보았다.
내인연의 의미를 살펴 볼 때에는 반드시 다음의 다섯 가지를 관찰해야만 한다. 곧, 그대로이지 않고, 단절되지 않으며, 이어가지 않고, 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과실은 불어나고, 서로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지만 또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임해서는 음이 멸하기 때문에 ‘그대로이지 않다’고 말한다. 곧 이 죽는 때에는 음이 멸하기 때문에 다른 음이 다시 태어나는데, 그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어 마치 숙였다가 일어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단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닮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초심(初心)으로부터 다시 수승한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업을 지었지만 거두어들이는 과보는 크기 때문에 연에 의지하여 과실이 불어난다고 한다. 지어 놓은 업과 서로 닮은 모양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닮은 모양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만약에 이러한 인연으로 12인연의 음이 생겨날 때에 생겨남이 있는 것[有生]과 생겨남 없는 것[無生]을 안다면, 바로 이때 이 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식(識)으로 네 가지 진리를 닦아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고(苦)는 지혜로 깨닫고, 집(集)은 수명으로 깨달으며, 멸(滅)은 바로 앞에 나타난 것으로 깨닫고, 도(道)는 관하여 깨닫는다. 이와 같이 바른 제자들이 네 가지 바른 진리를 보게 되면 이는 곧 법을 보는 것이고, 만약에 법을 보게 되면 이는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024_0475_c_01L지혜로운 행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와 같은 인연으로 음이 생겨날 때 생겨남 없이 생겨나는 것을 알면 곧 두 가지 진리를 볼 것이니, 이른바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이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만약에 능히 함께 보게 되어 앞의 두 진리를 본다면 곧 뒤의 두 진리도 보게 되니, 곧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진리[四諦]를 보게 되면 바른 제자들은 곧 부처님을 보게 되며, 곧 지혜도 따르게 되므로 심념(心念)을 일으킨다. 이것을 비유로써 말하자면,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솜씨 좋은 화가가 그려 놓은 단정한 모습의 인물상을 보고는 바로 분별을 내어 “이 화가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바른 제자들이 네 가지의 옳은 진리를 보게 되면 생각이 일어나 “여래(如來)12)ㆍ응공(應供)13)ㆍ정변지(正遍知)14)께서는 능히 이러한 법을 설하시어 중생들의 고통을 끊으시는구나” 하고 말하면서 즉시 부처님에 대해 비할 바 없는 신심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저절로 말하기를 “이 성문(聲聞)15)의 법은 아주 깊고 미묘해서 능히 평안하게 머무르게 한다”고 말하면서, 곧 이 법에 대해 견고한 믿음을 얻는다. 다시 저절로 말하기를 “이 『아비담경(阿毘曇經)』은 일체의 고통을 끊어주니, 만약에 이것을 능히 따른다면 좋은 일들도 따라올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곧 승가[僧]에 대해 비할 바 없는 믿음을 낸다. 그리고 이미 진실한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청정하고 결백한 계품(戒品)을 얻어 신견(身見)16)과 계취(戒取)17)를 벗어나서 모든 의혹을 여읜다.
이와 같이 바른 제자들이 네 가지 진리[四諦]를 보고, 네 가지를 갖추어 비할 바 없는 믿음을 내게 되면 바로 세 가지의 번뇌[纏]를 벗어나 수다원(須陀洹)18)을 이루며, 결정된 법[決定法]을 깨닫고 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최초의 과위에 머무른다. 다시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는 까닭에 사다함(斯陀含)19)을 이루어 둘째 과위 머무른다. 다시 다섯 가지 음의 얽힘[五種陰纏]과 아홉 가지로 불어나는 번뇌[九增上結]를 여의며, 힘써 수행하고 도를 닦아 마침내 모든 번뇌의 결사를 벗어나 아나함(阿那含)20)을 이루고 세 번째 과위에 머무른다. 다시 물질의 욕망과 교만과 무명 등을 여의고 가장 뛰어난 네 번째 사문의 과위를 얻어 아라한(阿羅漢)을 이루고 유여열반(有餘涅槃)에 머무른다. 다시 일체의 존재를 점차 여의고 기다리던 시절을 따라 몸이 무너져 목숨이 끝나게 되면 바로 무여열반(無餘涅槃)21)에 들어간다.
024_0476_a_01L이와 같이 신음(身陰)이 생겨나는 모습을 살펴 네 가지 옳은 진리를 분명히 알게 되면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과위를 얻으며,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얻는다. 이와 같이 몸이 생겨나는 모습을 여러 가지로 살핀다면 네 가지 참된 진리를 깨닫게 되겠지만, 몸이 생겨나는 모습을 살피지 않고 또 네 가지 진리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해탈도(解脫道)를 얻지 못한다. 만약에 해탈도를 구하고자 하거나, 네 가지 진리를 구하고자 하거나, 비할 바 없는 믿음을 구하거나, 사문과를 성취하고자 하거나, 『아비담경』에서 설하는 무여열반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힘써 음(陰)이 생겨나는 모습을 살필 것이니, 위없는 바른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이러하다.
이제 다음은 율의 모양[律相]을 논하겠다. 불세존께서는 천룡(天龍)ㆍ야차(夜叉)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건달바(乾闥婆)가 공경하고 존중하고 공양하는 세간의 존귀한 분이시다. 이미 훌륭한 이익을 얻으셨으며, 이미 마음속의 소원을 만족하셨으며, 일체의 선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일체의 선한 법을 얻으셨으며, 애착도 없고 취함도 없고 나라는 생각도 여의셨으며, 일체종지(一切種智)22)의 지혜를 얻어 자유자재하시며, 이미 모든 취(趣)23)를 끊고 모든 헤어짐을 끊어 어떤 번뇌도 없으며, 이미 해탈하여 능히 벗어나셨으며, 모든 윤회와 생사의 바퀴의 근본을 바꾸어 놓으셨으며, 모든 미래의 선(善)은 쌓아 가시고 과거의 선은 바로 눈앞에 나타나며, 선근(善根)을 갖춘 이들을 해탈케 하여 교화를 펴나가신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중생들을 장엄하시고 훌륭한 이익을 주신다. 세존께서는 눈이 되시고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법이 되시니, 이야말로 위대한 법을 모두 쌓으셨으며, 세 부류의 중생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장수가 되시며, 몸소 길잡이로서 교화하시기도 하고 다른 사람도 길잡이가 되도록 하시며, 몸소 스승이 되시기도 하고 다른 사람도 스승이 되도록 하시며, 큰 상인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시기도 하여 능히 지름길을 아시고 능히 좋은 길을 설해 주신다. 이야말로 위대한 의왕(醫王)이시며, 위 없는 전륜인(轉輪人)24) 가운데 가장 뛰어나시며, 대장부 사나이로서 마지막으로 최후의 몸을 받으셨으며, 사문(沙門) 가운데에서도 대사문(大沙門)으로 사문이 되셨으며, 번뇌의 티끌도 없고 번뇌의 때도 없이 밝고 청정하시다. 두루 살피시어 능히 광명을 주시고 눈을 주시어 어둠을 제거하시며, 광명을 지어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해 주시며, 미처 평안하지 못한 것은 평안하게 하신다. 비할 바 없는 정진력을 갖추시고 비할 바 없는 지혜를 갖추셨으며, 크게 용맹하시고 크게 감싸 주시고 큰 위엄과 덕을 갖추셨으며, 위대한 장부이시고 위대한 신력과 위대한 힘이 있으시고 위대한 길잡이이시다.
024_0476_b_01L이와 같은 이로는 세존이 최초이시고 세존이 최고이시다. 세존께서는 법의 나팔을 부시고 법의 북을 울리시며, 법의 깃대를 견고히 세워 법의 깃발을 날리시고 법의 등불을 밝히시어 악취(惡趣)25)를 막으시고 선취(善趣)26)를 보이시며, 세상의 모든 악(惡)을 제거하시고 세상의 모든 험난함을 제거하신다. 악도(惡道)27)를 막으시고 천도(天道)를 여시며, 신통력으로 해탈도를 보이시며, 지혜의 힘으로 온갖 중생의 미혹된 마음을 없애주신다. 법의 비를 내려 주시고 4무외(無畏)28)을 보이시고, 마치 처음에 솟아오르는 해처럼 세상을 광명으로 비추시며, 모든 이교도들을 굴복시키시고, 중생들을 천도와 해탈의 과위에 평안히 머무르게 하신다. 자신도 건너시고 남도 건네주시며, 자신도 해탈하시고 남도 해탈하게 하시며, 자신도 평안하시고 남도 평안히 하시며, 자신도 열반에 드시고 남도 열반에 들게 하신다.
한때 불세존께서는 마가다(摩伽陀)국의 영찰산(靈刹山)29) 숲에 평안히 머무르고 계셨다.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30)는 세존께서 대비구(大比丘)의 무리 천 명과 함께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들은 모두 전에 외도를 배웠으나 이미 모든 누(漏)31)가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이미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유의 결박[有結]을 다하여 바른 이치 안에서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왕은 이미 소문을 듣고 마차와 병사들을 성대하게 채비시키니 큰 위세가 있었다. 이는 왕의 힘 때문이니, 만 이천 대의 마차와 만 팔천 기(騎)의 기병대였다. 아울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의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도 부처님을 뵙고 공양을 올리고자 왕사성(王舍城)으로부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이윽고 가마가 목적지에 닿자 왕은 곧 가마에서 내려서는 걸어서 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빈바사라 왕은 멀리서 부처님을 보자 바로 다섯 가지의 장엄을 물리쳤으니, 곧 보배 의복과 보배 왕관ㆍ일산과 보배 왕검과 보배 부채와 보배 신발이었다.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는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공손하면서도 경건하게 자신의 성명을 세 번 밝히는 예를 올렸다. 곧, “대덕이시여, 저는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입니다”라고 이처럼 세 번을 아뢰었다.
024_0476_c_01L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도 “당신은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이십니다”라고 이처럼 세 번 말씀하시고 나서 “대왕이시여, 그대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마가다 국의 왕 빈바사라는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는 물러 나와 한켠에 앉았다.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도 함께 한 곳에 있으면서 또한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켠에 물러나 있었다.
이때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은 부처님께 문안을 올렸으며,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로 위로하여 말씀하여 마치시자, 이들은 곧 물러나와 한켠에 앉았다. 마가다국의 다른 바라문과 거사들은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예를 올리고는 물러나와 한켠에 앉았으며, 나머지 마가다국의 바라문ㆍ거사들은 단지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묵연히 앉아 있었다.
024_0477_a_01L그대 마음이 안락하지 않았다면 먹고 마시는 것의 모든 맛은 어찌하여 안락하지 않았는지 사람과 하늘 가운데 훌륭한 도를 그대는 이제 내게 대답하라.
024_0477_a_01L汝心不安樂, 飮食等諸味, 云何心不樂,
人天中勝道,
汝今應荅我。
가섭이 말씀드렸다.
024_0477_a_04L迦葉言:
제가 무여열반[無餘滅]을 보았으니 도 가운데 최고이고 제일이라서 세상의 모든 욕락에도 마음에 탐착이 생기지 않나이다.
024_0477_a_05L我見無餘滅, 道最爲第一, 於世閒欲樂,
心不生貪著。
다시 다른 모습 없으니 그렇기에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이러한 까닭에 불 섬기는 일 버렸으니 그 일은 마음의 안락을 낳지 못합니다.
024_0477_a_07L更無別異相, 故不從餘教,
是故捨事火, 心不生安樂。
불을 공양하고 섬기면서 예전에 제 마음은 삿되어 이에 기대어 해탈을 얻으려 했으니 참으로 저는 큰 장님이었습니다.
024_0477_a_08L供養幷事火,
我昔心邪盡, 緣此得解脫, 我實大盲闇。
생사의 물결을 따라다니느라 바르고 참된 도를 알지 못하다가 이제 비로소 무위(無爲)를 보았으니 여래의 진실하고도 착한 말씀은
024_0477_a_09L隨從生死流, 不識正眞道, 今始見無爲,
如來實善說。
대중들의 귀의할 곳이니 세존께서는 군대의 장수이시라 구담(瞿曇)의 참다운 진리를. 저는 이제 모두 깨달았습니다.
024_0477_a_11L大衆所歸依, 世尊爲軍主,
我今已覺了, 瞿曇實諦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024_0477_a_12L佛言:
이 수행의 길로 잘 왔도다.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이고 법의 모습 잘 분별하고 있으니 이미 가장 훌륭한 것을 얻었구나.
024_0477_a_13L善來修行道, 爾所念皆是, 善分別法相,
其最勝已得。
그리고는 “가섭아, 너는 이제 반드시 대중들의 의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이때 장로 구루비라가섭은 즉시 삼매에 들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마음을 일으켜 동방의 허공계에 머물러서 걷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네 가지 위의를 보이자, 그 몸에서는 불꽃이 솟아나왔다. 장로 구루비라 가섭의 몸에서 솟아나온 불꽃은 여러 가지 색이었으니, 곧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홍색ㆍ수정색이었다. 그리고 몸을 변화시켜 몸 아래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몸 윗쪽에서는 맑고 시원한 물을 내뿜었다. 이와 같이 남쪽ㆍ서쪽ㆍ북쪽 곳곳에서 온갖 신통과 변화를 내보이기를 마치자, 그는 돌아와 다시 합장한 채 예를 올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저의 스승님이시며 저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024_0477_b_01L이렇게 세 번에 걸쳐 거듭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너의 스승이고 너는 나의 제자이다. 가섭아, 너의 자리로 돌아가 편히 앉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장로 구루비라가섭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그때 마가다국의 바라문과 거사들은 마음속으로 ‘결정코 이 대사문이 구루비라가섭에게 도를 배우지 않고, 구루비라가섭이 이 대사문에게 도를 배우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이 때 불세존께서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색은 생하기도 하고 또한 멸하기도 하니, 이 생과 멸은 서로 응하는 것입니다. 식ㆍ상ㆍ수ㆍ행 역시 생하기도 하고 역시 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니, 이 생멸은 서로 응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색은 생멸하는 법임을 알아야 하니, 선남자는 이미 식ㆍ상ㆍ수ㆍ행이 생멸하는 법임을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선남자는 이러한 일을 이미 알며, 이러한 식임을 알고 나서는 대왕이시여, 선남자는 색을 알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취하지 않으며 머무르지 않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중생들은 식ㆍ상ㆍ수ㆍ행을 나[我]라고 계착하지만 선남자는 이러한 일을 알고 나서는 집착하지 않고 취하지 않으며 머무르지 않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중생들은 색을 나라고 계착하지만, 선남자는 집착하지도 않고 취하지 않으며, 무아라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나는 설하노니, 이러한 사람은 바로 한량없고 가없는 생사에서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마가다국의 바라문ㆍ거사들은 각기 생각했다. ‘만약에 색이 내가 아니고 식ㆍ상ㆍ수ㆍ행이 내가 아니라면, 그 누가 마땅히 나와 남과 중생 그 자체를 이룰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만들고 만들어지며 일으키고 일으켜지며 알고 알려지는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곳곳에서 지은 선악업의 과보도 없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 누가 그 과보를 받는 것으로, 누가 이 음을 버리고 뒤에 음을 받는다는 말인가?’
024_0477_c_01L이때 세존께서는 마가다국의 바라문ㆍ거사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말하는 자는 모두가 범부이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로,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어디에도 나[我]는 없으며 나의 것[我所]도 없다. 고(苦)가 생겨나기 때문에 생(生)이 있고 고가 멸(滅)하기 때문에 멸이 있다. 행(行)이 생겨나기 때문에 생이 있고 행이 멸하기 때문에 멸이 있다. 이와 같은 인연에 의함으로써 중생의 몸과 행을 일으키니, 여래께서는 중생의 이어 상속하는 일과 생멸하는 일을 모두 아신다.
여러 비구들이여, 나는 사람의 눈을 넘어서는 청정하고도 뛰어난 눈으로써 모든 것을 보나니, 만약에 중생들이 생멸하면서 잘생기고 못생기게 되고, 뛰어나고 열등하게 되며, 선도(善道)에 태어나거나 악도(惡道)에 태어나게 되면, 나는 업의 법을 따르는 그대로 여실히 안다. 몸으로도 악업을 짓고 입과 뜻으로도 악업을 지어서 현성과 착한 이들을 비방하는 이런 중생들은, 삿된 견해의 법과 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곧 악취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난다.
한편, 몸으로 선업을 짓고 입과 뜻으로도 선업을 지어서 현성과 착한 이들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중생들은, 바른 견해로써 바른 견해를 짓는 업과 법의 이런 인연으로 육신이 허물어지고 목숨을 다하면 즉시 선도에 떨어지고 하늘에 태어나니, 나는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알고 본다. 또한 나는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중생이고 이것은 목숨이고 이것은 인간이며, 이것은 만들어진 것이고 만드는 이이며, 이것은 낳아진 것이고 이것은 낳는 이이며, 이것은 일으키는 이이고 이것은 일으켜진 것이며, 이것은 아는 이이고 이것은 알려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고 있지도 않다. 곳곳에서 지은 선업과 악업의 과보로 지금의 음을 버리고 나중의 음을 받는 것은 다른 법들이 서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법이 서로 의지한다는 것은 ‘이 법이 있기 때문에 저 법이 생겨난다’는 것이니, 곧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입(六入)이 있으며, 육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으며,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연하여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가 있게 되니, 이와 같이 해서 큰 고통의 덩어리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여, 지어진 것[有爲]은 모두 괴로움이며, 열반으로 적멸이 있게 된다. 원인[因]이 모이기에 고가 모이고 원인이 멸하면 고도 멸하니, 그 근본을 끊어버리면 다시는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 이어지지 않기에 멸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고통이 다한 곳에 이르게 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멸(滅)이라 하는가? 처한 곳에 고통이 있다가 고통이 사라지게 되면 곧 고요히 적멸(寂滅)하게 된다. 적멸하여 고통이 다하면 이러한 곳이 적정처(寂靜處)이다. 만약에 일체의 번뇌[煩累]를 벗어나게 되면 곧 애착도 다하여 여의고 욕망이 고요히 그친[寂滅] 열반인 것이다.”
“이 고는 유상합니까, 무상합니까?” “고는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생멸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성문(聲聞)의 바른 제자들은 ‘나라는 견해를 따라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물건이며, 이것은 나의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이처럼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시여,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식(識)ㆍ상(想)ㆍ수(受)ㆍ행(行)은 유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024_0478_a_18L“大王,汝意云何?識想受行爲常無常?”“無常,世尊。”
“이들 고는 유상합니까, 무상합니까?” “고는 모두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이 고가 무상하다면 이는 곧 생멸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성문(聲聞)의 바른 제자들은 ‘나라는 견해를 따라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물건이며, 이것은 나의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이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024_0478_b_01L“그와 같아서 대왕이시여, 설령 아무리 사소한 색이라 해도 그것이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현재에 있든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광대하든 미세하든, 불어나든 줄어들든, 가깝든 멀든 이것들은 일체가 내가 아니며, 나의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여실히 바른 지혜로써 살펴야 합니다. 또한 설령 수가 있고 상이 있고 행이 있고 식이 있다 해도 그것이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현재에 있든,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광대하든 미세하든, 불어나든 줄어들든, 가깝든 멀든 이것들은 일체가 내가 아니며, 나의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여실하고도 바른 지혜로써 살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바른 제자들은 이와 같이 알고 보기 때문에 색을 싫어하고 수ㆍ상ㆍ행ㆍ식 등을 싫어합니다. 또한 싫어하기 때문에 벗어나고 싫어하여 벗어나기 때문에 해탈을 얻으며, 해탈하기에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모든 번뇌도 다했으며, 할 일을 모두 마쳐 다시는 뒷몸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견(見)과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을 설하시자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는 모든 번뇌에 다시 물드는 일이 없게 되었으며, 모든 티끌과 때를 여의게 되어 법에 대하여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게 되었다. 그때 팔만의 천신들과 한량없는 수천의 마가다국 바라문ㆍ거사들도 법에 대하여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게 되었다. 이때 마가다국의 왕 빈바사라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아, 깊고 깊은 법에 들어가서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건너고, 모든 의심의 그물을 건넜다. 그리하여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다시는 다른 것을 믿지 않으며,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는 경지[無畏]를 얻었다.
024_0478_c_01L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로 부처님을 향하여 예를 올리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번뇌를 넘어서고 나서 이제 세존과 비구승에게 귀의하며, 제가 우바새가 되었음을 기억하여 지니겠습니다. 오늘부터 죽는 그날까지 살생을 하지 않고 지난 업을 청정히 하는 데에 귀의하겠습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부디 왕사성으로 왕림하여 주소서. 저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세존께 의복(衣服)ㆍ음식(飮食)ㆍ와구(臥具)ㆍ탕약(湯藥) 등을 공양하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과 비구승들께서는 저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이에 세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으로 향하셨다. 차례대로 서서 왕사성에 이르러서는 왕사성의 가란타(枷蘭陀) 새가 사는 죽림(竹林)에 머무셨다.
024_0478_c_05L爾時,世尊向王舍城,次第行已至王舍城,住王舍城柯蘭陁所住竹林。
그때 왕사성에는 산사이(刪闍夷)라는 도사(道士)가 있었다. 그는 출가하여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스승을 섬기고 가르침을 익히어 비로소 무상(無常)을 터득했다. 그에게는 두 제자가 있어서 무리들을 이끌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우파저사(優婆底沙)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고리다(古利多)였다. 이들 두 사람은 서로 약속하기를, 만약에 누구든지 먼저 감로(甘露)의 훌륭한 과위를 얻으면 반드시 서로 나누어 주자고 하였다.
언젠가 장로 아설기(阿說耆)는 이른 아침에 가사와 발우를 갖추고 왕사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고 있었다. 때에 우파저사 도사(道士)도 왕사성에서 나오던 참이었는데, 마침 길 위에서 어떤 작은 일로 인하여 우파저사 도사는 우연히 장로 아설기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마음으로 환희를 일으켰다.
가사와 발우를 갖춘 모습을 한동안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이 왕사성 안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 이와 같은 위의를 갖춘 사람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다. 저 출가인에게 이제 나는 마땅히 ≺걸사여,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그대는 무엇을 위해 출가하였으며, 그대는 누구의 법을 따르는가?≻라고 물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길에 선채 장로 아설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024_0479_a_01L“장로시여, 구담(舊曇)32)이라는 사문이 계십니다. 그는 석가족 출신으로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었으며, 바른 믿음으로 유위(有爲)를 벗어났습니다. 출가하여 도를 배우시어 위없는 ‘바르게 두루 아시는 분[正遍知]’이시자 ‘바르게 길을 깨달은 분[正覺道]’이 되셨습니다. 이 세존이시야말로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그 분에게 출가했으며, 저는 그분의 법을 따릅니다.”
“원컨대 그것을 설해 주십시오. 저는 오직 그 뜻을 바랄 뿐, 장황한 말씀은 바라지 않습니다.”
024_0479_a_08L“願爲說之。我唯須義,不須文字。”
이때 장로 아설기가 게송으로 설하여 말했다.
時,長老阿說耆而說偈言:
만약에 법이 원인을 따라 생긴다면 여래께서는 이것이 원인임을 말씀하시고 이러한 원인을 멸하는 일 말씀하시니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치시네.
024_0479_a_09L若法從因生, 如來說此因, 滅如是等因,
如是世尊教。
이와 같이 법을 설하자, 도사 우파저사는 번뇌의 때[垢]에 물들지 않고 벗어났으며, 법에 대하여 법안의 청정함을 얻었다. 이때 도사 우파저사는 이미 법을 보고, 이미 법을 얻고, 이미 법을 알고, 깊고 깊은 법으로 들어가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건넜으며 모든 의심의 그물을 건넜다. 다시는 다른 것을 믿지 않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으며, 불세존의 두려움 없는 경지[無畏]를 얻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로 장로 아설기를 향하여 예를 올리고 나서 거듭 이렇게 말했다. “세존의 가르침인 이런 심오한 법을 설해 주시니, 흔들림도 없고 번뇌도 없게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나유타(那由他)33)의 겁 이래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씀입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024_0479_b_01L이때 도사 우파저사는 장로 아설기의 말이 끝나자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아설기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도사 우파저사는 고리다 도사를 찾아갔다. 고리다는 도사 우파저사를 멀리서부터 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모든 감관은 맑고 기쁜 빛이며, 낯빛은 청정하고 피부는 하얗게 빛이 나는군요. 장로여, 그대는 이미 감로를 얻었습니까?” “그렇소, 장로여.” “장로여, 나를 위해 법을 설해 주시오.”
만약에 법이 원인을 따라 생긴다면 여래께서는 이 원인을 말씀하시고 이러한 원인이 없어짐을 말씀하시니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치시네.
024_0479_b_05L若法從因生, 如來說此因, 滅如是等因,
如是世尊教。
장로는 다시 그를 위해 거듭 설하였다.
長老更爲我重說:
만약에 법이 원인을 따라 생긴다면 여래께서는 이 원인을 말씀하시고 이러한 원인이 없어짐을 말씀하시니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치시네.
024_0479_b_07L若法從因生, 如來說此因, 滅如是等因,
如是世尊教。
이와 같이 법을 설하자, 도사 고리다는 번뇌의 때에 물들지 않고 벗어났으며, 법에 대하여 법안의 청정함을 얻었다. 이때 도사 고리다는 이미 법을 보고, 이미 법을 얻고, 이미 법을 알고, 깊고 깊은 법으로 들어가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건넜으며 모든 의심의 그물을 건넜다. 다시는 다른 것을 믿지 않고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으며,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는 경지를 얻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로 도사 우파저사를 향하여 예를 올리고 나서 거듭 이렇게 말했다. “세존의 가르침인 이런 심오한 법을 설해 주시니, 흔들림도 없고 번뇌도 없게 되었네. 이런 법은 헤아릴 수 없는 나유타의 겁 이래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일세.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바로 여기 왕사성 가란타의 주처인 죽림에 계신다네.” “그렇다면 서둘러 함께 세존께 가세. 세존 계신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으세. 마땅히 그곳으로 가서 대중들을 살펴보고 그곳에도 역시 우리와 같은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보세.”
024_0479_c_01L이때 도사 우파저사와 도사 고리다는 바라문 제자들에게 고하여 말했다. “우리들은 불세존이 계신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자 한다.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저희들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는 모두 스승님들의 가르침에 의한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만약에 세존을 의지하여 범행(梵行)을 닦으신다면 저희들도 스승님들을 따라 출가하겠습니다.” “너희 바라문들이여, 지금이 바로 그때인 줄 알라.”
세존께서는 우파저사와 고리다라는 두 도사가 각각 250명의 권속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는 곧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두 도반을 보거라. 각자 무리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우파저사와 고리다 일행이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두 사람은 분명히 나의 가르침을 가장 훌륭히 따르는 제자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은 신통이 제일이고, 한 사람은 지혜가 제일인 자가 되리라.”
024_0480_a_01L이때 왕사성의 주민들은 도사 산사이의 제자들이 출가하여 계를 받은 것을 보고는 그 비구들을 게송으로 비난하여 말했다.
024_0479_c_24L時,王舍城人民見刪闍夷道士徒衆出家受戒,見此比丘已訶責,而說偈言: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오셨으니 마가다야말로 훌륭한 나라일세. 그런데 웬 일로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저 산사이의 권속들은.
024_0480_a_02L佛至王舍城, 摩伽陁勝國, 何故不盡化,
刪闍夷眷屬。
이때 모든 비구들은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서 대처하지를 못했다. 방법도 모르고 말재주도 없어서였다. 모든 비구들은 왕사성에서 차례대로 음식을 얻어 식사를 마치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사와 발우를 제자리에 놓고 발을 씻은 다음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린 다음 자리를 물러 나와 한 켠에 앉았다.
024_0480_b_01L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오셨으니 마가다야말로 훌륭한 나라일세. 그런데 웬 일로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저 산사이의 권속들은.
024_0480_b_01L佛至王舍城, 摩伽陁勝國, 何故不盡化,
刪闍夷眷屬。
이때 다른 비구들이 즉시 게송으로 말했다.
024_0480_b_03L時,餘比丘卽說偈言:
대웅께서 제도하고자 하는 이들이니 여래께서는 바른 가르침과 선법으로 중생을 거두시거늘 그 누가 알지도 못한 채 기이하다 하는가.
024_0480_b_04L大雄所將度, 如來以正法, 善法攝衆生,
誰無知當怪。
이와 같이 설하자 왕사성의 주민들은 할 말을 잃고는 잠자코 있었다. 이때 불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외도의 모양과 복색을 하고 출가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계율로 정하여 외도의 모양과 복색으로는 출가할 수 없도록 하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외도를 제도하여 출가시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여 이러한 일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렇기 때문에 비구들은 반드시 이러한 일을 거듭 물어야 한다”고 하셨다.
독자족 외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이제 구담(舊曇)께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원컨대 저의 물음을 허락하시고 저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이렇게 여쭈어도 세존께서는 묵연히 계셨다. 독자족 외도는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이제 구담대덕께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원컨대 허락하시어 저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이렇게 두 번 세 번 말씀드렸지만 세존께서는 묵연히 계셨다. 여기에서 독자 외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오늘 밤이 깊도록 함께 여기에 있었습니다. 세존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원컨대 저를 허락하시어 저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024_0480_c_01L이때 부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 독자족 외도는 밤늦도록 불평도 없고 거짓말도 없으니 성품이 순박하고 정직하구나. 만약 묻는 바가 있다면 이미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며, 나를 괴롭히거나 혼란시키려는 것은 아니라면 아비담의 비밀스런 뜻과 계율의 비밀스런 뜻에 따라 그를 위해 설명하리라’ 하고 생각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독자 외도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네가 묻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물어라.”
“독자여,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갖가지로 분별하여 선과 불선을 설해 주겠다. 간략히 설할 것이니, 독자여, 잘 들어라. 욕탐에 물드는 것은 불선이고 욕탐에 물드는 것을 여읨은 선이며, 성내고 어리석으면 불선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을 여읨은 선이며, 살생은 불선이고 살생을 버리고 여읨은 선이며, 도둑질하고 삿되게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거친말하고 꾸밈말하고 인색하고 욕심 많고 삿되게 보는 것은 불선이고 바르게 보는 것은 선이다.
독자여, 나는 이미 이와 같이 세 가지는 불선이고 세 가지는 선이라고 설했다. 만약에 나의 제자라면 이와 같은 불선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며, 세 가지 선과 열 가지 불선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 열 가지 불선 이외의 나머지도 알아야 하며, 탐욕이 사라짐도 알고 성냄이 사라짐도 알고 어리석음이 사라짐도 알아야 한다.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하고 누(漏)35)가 다하는 까닭에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을 얻어서 저절로 법을 보고 법을 증득하여 성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我]의 생은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모두 마쳐서 다시는 뒷몸[後有]을 받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구담이시여, 만약에 어떤 비구(比丘)가 이 법 안에서 누를 다하고 누가 없는 법 가운데에서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면,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뒷몸을 받지 않는 것인지요?” “독자여, 한 비구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구라도 이 법 안에서 누가 다하여 무루를 얻는다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뒷몸을 받지 않는다.”
024_0481_a_01L“구담이시여, 한 비구는 차치하고라도 만약에 한 비구니가 이 교법 안에서 누가 다하고 무루를 얻어 마음으로 해탈하게 된다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뒤에 유를 받지 않는 것인지요?” “독자여, 한 비구니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구니라도 이 법 안에서 누가 다하고 무루를 얻어 마음으로 해탈하게 된다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뒤에 유를 받지 않을 것이다.”
“구담이시여, 비구니는 차치하고라도 만약에 어떤 우바새(優婆塞)가 이 법 안에서 범행을 닦는다면, 바라고 구하는 것을 건너고 의심의 그물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독자여, 한 우바새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바새라도 이 법 안에서 다섯 가지로 분별되는 번뇌[纏]에 대하여 해탈을 얻고 화생(化生)하며, 즉시 그 가운데서 열반하여 다시는 물러나지 않으며, 법에 응하여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구담이시여, 비구는 차치하고 비구니도 차치하고 또한 우바새가 범행을 닦는 것도 차치하고라도 만약에 어떤 우바이(優婆夷)가 이 법 안에서 범행을 닦는다면 바라고 구하는 것을 건너고 의심의 그물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독자여, 한 우바이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바이라도 이 법 안에서 다섯 가지로 분별되는 번뇌[纏]에 대하여 해탈을 얻고 화생(化生)하며, 즉시 그 가운데서 열반하여 다시는 물러나지 않으며, 법에 응하여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024_0481_b_01L“독자여, 한 우바새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라도 이 법 안에서 처자식과 와구(臥具)와 머무는 집을 소유하고 향기로운 꽃과 영락을 걸치고 묘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며, 온갖 금은보화를 모으고 노비와 일꾼들을 채찍질하여 부리더라도, 세 가지 번뇌로부터 해탈하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엷어지며 사다함(斯陀含)을 얻어서 단 한번만 이 세상에 오게 되며, 모든 고통을 다할 것이다.”
“독자여, 한 우바이뿐만 아니라 둘ㆍ셋이나 다섯도 아니고 백도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라도 이 법 가운데에서 아이를 기르고 앞에서와 같이 노비나 일꾼들을 채찍질하여 부리더라도, 세 가지 번뇌[纏]로부터 해탈하고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 물러서거나 떨어지지 않는 법을 얻어서 반드시 정각(正覺)을 증득하게 되리니, 일곱 번 사람 몸을 받고 일곱 번 천상에 태어난 뒤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모든 고통을 다할 것이다.”
“만약에 구담께서 법으로써 정각을 이루신 것처럼 모든 비구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나아가 비구니와 범행을 닦는 우바새와 범행을 닦는 우바이와 욕락을 누리는 우바새와 욕락을 누리는 우바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존 구담이시여,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교법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담께서 법으로 정각을 이루신 것처럼 비구들도 모두 이것을 얻고 나아가 비구니와 범행을 닦는 우바새와 범행을 닦는 우바이와 욕락을 누리는 우바새와 욕락을 누리는 우바이도 이와 같을 수 있다면, 그 때문에 구담의 교법은 성취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독자여,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024_0481_c_01L“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빗물이 아래로 따라 흘러가듯이, 이와 같이 세존 구담께서는 남자나 여자, 동남동녀, 노인과 젊은이 등 일체를 교화하여 열반을 따라 내려가도록 하고 열반을 따라 흘러가도록 하고 열반을 따라 머무르도록 하며, 그에 따르면서 열반을 설하도록 하십니다. 그에 따르고 나서는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깨달음을 이루고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훌륭히 법을 설할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만약에 외도에 출가한 어떤 도사가 와서 자연법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기를 바란다면 얼마 동안 비구에 의지하여 함께 머물러야 합니까?”
“독자여, 만약에 외도에 출가한 어떤 도사가 와서 만약에 자연법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비구, 곧 비구 화상에게 의지하여 넉 달 동안 가사를 입고 시험받아야 하며, 그러고 나서는 저 두 가지36) 궁극의 것을 취해야 한다. 이것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구담이시여, 만약에 외도에 출가한 어떤 도사가 와서 자연법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비구 화상에게 의지하여 넉 달 동안 가사를 입고 이것을 시험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이제 저는 단지 넉 달 뿐만이 아니라 4년 동안이라도 능히 의지하여 따르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자연법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세존 구담께 의지하여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
“독자여, 그런데 나는 이미 저 두 가지 궁극의 것을 말하지 않았더냐?” “구담이시여, 당신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024_0481_c_16L犢子,然我先不已說二彼究悉?”汝瞿曇已說。”
이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이여, 이 독자족 도사를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도록 하라.” 독자족 도사는 자연법의 가르침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독자 종족 출신 장로는 구족계를 받고 나서 보름이 지난 뒤부터 지혜를 배우니, 마땅히 배우고 마땅히 살피고 마땅히 도달하고 마땅히 깨달았으며, 이와 같은 지혜를 이미 보고 이미 알고 이미 깨달아 세존의 정법을 증득하였다.
024_0482_a_01L이때 장로 독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배워야 할 지혜를 마땅히 배우고 마땅히 살피고 마땅히 도달하고 마땅히 깨달았으며, 이와 같은 일체의 지혜를 이미 보고 이미 알고 이미 깨달아 세존의 정법을 증득하였다. 지금이 바로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야 할 때이다.’
이때 장로 독자는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이르러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를 올리고 물러나와 한켠에 있더니, 장로 독자는 세존에게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혜를 배우게 되어 마땅히 배우고 마땅히 살피고 마땅히 도달하고 마땅히 깨달았으며, 이와 같은 일체의 지혜를 이미 보고 이미 알고 이미 깨달아 세존의 정법을 증득하였습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제가 가까이해야 할 법을 설하시어 저로 하여금 방일하지 않게 하시고 근본과 같아져서 다음 생을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해 주십시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독자여, 너는 반드시 두 가지 법을 가까이하여 살펴보고 널리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을 가까이하여 살펴보고 널리 닦는다면, 곧 성품의 지혜를 얻어 모든 성품을 깨닫게 된다. 이미 갖가지 종류의 성품을 알고 갖가지 종류의 성품을 깨닫고는 한량없는 성품을 알게 되고 한량없는 성품을 깨닫게 된다.
독자여, 만약에 비구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싶어 한다고 하자. ‘통쾌하도다. 나는 모든 욕망을 여의고 모든 악과 불선법을 여의었다. 바라고 구하는 마음[希望]37)과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籌量]38)은 있지만 적정하고 안락한 초선(初禪)의 경지에 평안히 머무른다. 바라고 구하는 마음이 멸하고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도 멸하여 속으로 기뻐하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니, 마침내 바라고 구하는 마음도 없고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도 없는 제2선(禪)의 경지에 평안히 머무른다. 기쁨마저도 여의는 까닭에 무관심[捨]에 평안히 머물면 편안한 생각이 또렷해지고 몸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바른 진리를 증득하고 무관심한 마음으로 안락하게 되어 제3선의 경지에 평안히 머무른다.
안락도 여의고 고통도 여의고 슬픔과 기쁨도 멸하고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이 모두 버리면 편안한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어 제4선에 평안히 머무른다. 다시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와 공처(空處)와 식처(識處)와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常非非常處)에도 평안히 머무른다.
024_0482_b_01L통쾌하도다. 나는 이미 세 가지 번뇌[纏]를 여의고 수다원(須陀洹)을 얻으며, 세 가지 번뇌를 여의고 나서는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斯陀含)을 이루며,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번뇌의 얽힘을 여의고 아나함(阿那含)을 이룬다. 여러 가지 신통력을 얻으며 안근(眼根)을 청정하게 하고 이근(耳根)을 청정하게 하고 의근(意根)을 청정하게 하여 본래의 자리에 이르며, 생사를 벗어나고 모든 번뇌를 다하니, 모두 두루 갖추게 됨이 이와 같다.
여러 가지 신통력을 갖추니, 한 몸을 한량없는 몸으로 만들고 다시 한량없는 몸을 한 몸으로 만들며, 능히 광명도 만들고 어둠도 만들며, 모든 지혜를 두루 살핀다. 바위도 통과하고 벽도 통과하여 몸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장애가 없어서 대지를 통과한다. 마치 허공인 듯 대지에서 나오거나 숨으며, 마치 물속인 듯 나오거나 숨는다. 허공 위에 머물러 결가부좌한 채 다니기를 마치 나는 새처럼 하며, 해와 달의 크고 위력 있는 광명을 능히 손으로 만지며, 나아가 육신으로 범천까지 오른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법문(法門) 안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뜻대로 통하고 자재로움을 얻는다.
통쾌하도다. 나는 이런 비구이다.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구하는 것과 따지고 헤아리는 것과 마음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며, 욕탐이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며, 욕탐을 여의고 욕상(欲想)을 여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 욕탐이 있는지 욕탐을 여의었는지를 아는 것처럼, 성냄이 있는지 성냄을 여의었는지, 어리석음이 있는지 어리석음을 여의었는지를 안다.
거두어진 마음인지 방종한 마음인지를 있는 그대로 알며, 고만한 마음[高心]ㆍ겸손한 마음[不高心]ㆍ고요한 마음[靜心]ㆍ지극히 고요한 마음[極靜心]ㆍ작의심(作意心)ㆍ부작의심(不作意心)ㆍ해탈심(解脫心)ㆍ불해탈심(不解脫心)도 있는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법문 안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능히 뜻대로 얻는다.
024_0482_c_01L통쾌하도다, 나는 이런 비구이다. 한량없이 많은 것을 종류대로 분별하여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알아낸다. 한 생의 전생은 이와 같았고 이ㆍ삼ㆍ사ㆍ오ㆍ육ㆍ칠ㆍ팔ㆍ구ㆍ십ㆍ이십ㆍ삽십ㆍ사십ㆍ오십ㆍ백생ㆍ천생ㆍ백천생은 이와 같았으며, 한량없는 백천 생 전생은 이와 같았고 한량없는 과거와 미래의 겁수(劫數)는 이와 같았다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알아낸다.
곧 일찍이 어떤 중생이 있었으니 이름은 아무개이며, 나는 그때 이름이 아무개이며, 종성(種姓)은 이와 같으며, 음식은 이와 같으며, 겪은 고락(苦樂)은 이와 같으며, 장수(長壽)한 것은 이와 같으며,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이와 같으며, 수명을 다하여 죽은 것은 이와 같으며, 나는 거기서 죽어서는 다시 어디에 났으며, 또는 거기서 죽어서는 지금 여기에 났으며, 모습은 이러하고 장소는 이러하다는 등의 온갖 것을 분별하여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알아낸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법문 안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능히 뜻대로 얻는다.
통쾌하도다. 나는 이런 비구이다. 사람들의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눈으로 모든 중생들이 죽을 때와 태어날 때 선한 색(色)을 받는지 악한 색을 받는지, 줄어드는지 늘어나는지, 선도(善道)로 나아가는지 불선도(不善道)로 나아가는지 일에 따라 업에 따라 중생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
어떤 중생들은 몸으로 악업을 짓고, 입과 뜻으로 업을 지어 현선(賢善)들을 비방하며, 삿된 견해로 삿된 견해의 업과 법을 갖추고 인연을 익히니, 그 인연 때문에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다하면 악도에 떨어지고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또 어떤 중생들은 몸으로 선업을 짓고 입과 뜻으로 선업을 지어 현선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로써 바른 견해의 업과 법을 갖추며 인연을 익히니, 이런 인연으로 육신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다하면 선도로 향하여 가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법문 안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뜻대로 얻는다.
024_0483_a_01L통쾌하도다. 나는 이런 비구이다. 이미 모든 누의 마음을 다하여 무루의 해탈을 얻었고 지혜의 해탈을 얻어 이미 두루 갖추었으며, 자연법을 증득하였으니, 나의 생은 다했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모두 마쳐 다시는 후유를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법문 안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능히 뜻대로 얻는다. 깨달은 법을 기쁨과 즐거움이 증명하니 스스로 이룩한 법문 안에서 마음이 향하는 곳을 따라 능히 뜻대로 얻는다.’
이러한 비구들은 반드시 그 두 가지 법을 가까이하여 살펴보고 널리 닦아야 한다. 그와 같은 두 가지 법을 닦고서 가까이하여 살펴보고 널리 닦는다면 곧 성품의 지혜를 얻어 성품을 깨닫고, 갖가지 종류의 성품을 아는 지혜를 갖추고 한량없는 성품의 지혜를 갖추어 한량없는 성품을 깨닫게 된다.”
이는 마치 여느 선남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여 머리칼과 수염을 모두 깎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고 바르게 믿는 마음으로 유위를 버리고 무위를 향하여 출가해서 위없는 범행(梵行)과 맑은 법[白法]을 스스로 알고 구족하여 법을 증득하고서는,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이미 범행은 섰으며, 할 일을 모두 마쳐 다시는 뒷몸을 받지 않게 되었으니, 이미 깨달아 마쳤다”고 말하게 된 것과 같았다. 이 장로는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024_0483_b_01L이어서 장로 독자는 다시 이와 같이 말했다. “저는 이미 평안히 바로 섰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기쁨과 즐거움을 오래 익혀서 기쁘고 즐겁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제자는 마땅히 이루어놓은 일로써 세존께 공양 올리니, 저는 환희를 이루어 환희롭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때 비구들이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는 물러나와 한켠에 앉았다. 이때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장로 독자가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를 올리고 ‘병도 적으시고 번거로움도 적으시며 기거는 경쾌하여 가고 오는 기력이 안온하고 장애가 없어서 안락하십니까’라며 문안을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장로 독자는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평안히 바로 섰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기쁨과 즐거움을 오래 익혀서 기쁘고 즐겁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제자는 마땅히 이루어놓은 일로써 세존께 공양 올리니, 저는 환희를 이루어 환희롭지 않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불세존께서는 장로 독자를 칭찬하시고 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비구라도 의지가 되어주지 않는 자는 사저사라(娑底娑羅)를 얻는다. 만약에 외도 도사 등이 와서 출가하기를 구하는데도 비구가 그와 함께 머무르지도 않고 제도하여 출가시켜주지도 않으면 바로 사저사라의 죄를 얻는다.
외도와 어떻게 같이 머무르는가? 만약에 외도가 와서 출가를 구한다면 즉시 승가에게 넉 달 동안 같이 머물게 해줄 것을 구하며 대중에게 예를 올려야 한다. ‘저 아무개 외도는 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고자 합니다. 저 아무개 외도는 승가에게 넉 달 동안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원컨대 대덕 스님들이시여, 제가 넉 달 동안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오니, 자비로써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해야 하며 두 번째 세 번째도 이와 같이 말한다.
024_0483_c_01L그러면 갈마사(羯磨師)39)가 대중에게 알리기를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아무개 외도가 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고자 합니다. 이 아무개 외도는 승가로부터 넉 달 동안 같이 머물기를 빌었습니다. 만약 승가가 때에 이르렀으면 승가는 허락하십시오. 승가는 아무개 외도에게 넉 달 동안 머물게 하려 합니다. 이와 같이 아룁니다.’ 다시 다음과 같이 갈마를 짓는다.
‘대덕 스님들은 들으십시오. 아무개 외도가 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고자 합니다. 이 아무개 외도는 승가로부터 넉 달 동안 승가에 머물기를 빌었습니다. 어느 장로시든지 아무개 외도가 넉 달 동안 머무르는 것을 인정하시면 말없이 가만히 계시고, 누구든지 인정하지 않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이것은 처음의 갈마이며, 다시 다음과 같이 제2갈마를 짓고 제3갈마를 짓는다. 승가는 아무개 외도에게 넉 달 동안 머무르게 하겠습니다. 스님들께서 인정하시어 말없이 계셨기 때문이니, 이 일은 이와 같이 지니겠습니다.’
그 외도의 음식은 만약에 승가를 위하여 일을 하면 스님들의 몫을 따라 나누어 주지만, 만약에 승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너는 마땅히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야 하며, 그런 외도는 반드시 스스로 걸식을 해야 한다. 모든 비구들은 반드시 하루에 세 번씩 외도의 앞을 지나가면서 외도를 꾸짖으면서 ‘외도(外道)는 경건한 믿음이 없으며, 외도는 계율을 범하며, 외도는 부끄러움이 없으며, 외도는 타락이며, 외도는 사견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024_0484_a_01L장로는 반드시 이와 같이 설해야 하고 또 반드시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의 다섯 가지 공덕을 찬탄해야 한다. 외도는 이에 응하여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장로시여. 그렇습니다, 장로시여. 외도는 실제로 경건한 믿음이 없으며 나아가 외도는 실제로 사견입니다. 원컨대 장로(長老)40)께서는 저를 구제해주시고, 원컨대 장로께서는 저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로서 돌보아 주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넉 달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를 시험하고 모든 비구들의 동의를 얻으면 마땅히 출가시켜 구족계를 준다. 만약에 다른 외도가 속인의 형태로 찾아오더라도 역시 위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함께 머무르며 시험하고 나서, 바야흐로 구족계를 받고 출가하는 것을 허락한다. 혹은 어떤 외도가 비록 가르침을 이해하더라도 위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함께 머무르며 시험하고 나서, 바야흐로 출가를 허락하여 구족계를 받도록 해야 한다. 만약에 어떤 외도가 함께 머무르지도 않고 위와 마찬가지로 시험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으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을 수 없으며, 만약에 비구가 시험하지도 않고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게 하면 사저사라를 얻는다.”
2)범어로는 aśityanuvyañjana. 부처님 몸의 80가지 특징으로, 80수형호(隨形好)라고도 한다.
3)범어로는 dvatriṃśa-lakṣaṇa. 부처님과 같은 위인에게서 드러나는 32가지 몸의 특징을 말한다.
4)범어로는 urṇa-lakṣana. 미간 사이에 흰 터럭이 난 모양을 말한다.
5)곧 일체종지(一切種智, sarva-ākārajñtā)를 말한다. 일체종지란, 세간 출세간의 모든 존재의 양상을 아는 지혜로, 부처님만의 지혜를 가리킨다.
6)범어로는 catur-mahābhūta. 4대란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 견고함을 본질로 하는 지대(地大, pṛthivi-dhātu)ㆍ습기를 모으는 수대(水大, abdhātu)ㆍ열을 본질로 하며 성숙작용을 지니는 화대(火大, tejo-dhātu)ㆍ생장작용을 하는 풍대(風大, vāyu-dhātu)를 말한다.
7)범어로는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8)범어로는 yojana. 유순나(由旬那)의 약칭이다. 거리의 단위로 약 7마일 혹은 9마일에 해당한다. 또는 제왕이 하루 동안에 행군하는 거리라고도 한다.
9)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의 4지(支)를 말한다.
10)범어로는 sūtra. 경장(經藏)을 말한다.
11)범어로는 abhidharma. 논장(論藏)을 말한다.
12)범어로는 Tathā-gata. 이 말을 tathā와 gata의 복합어로 본다면, ‘그처럼 가신 분(如去)’이 되겠지만, 전통적으로는 tathā와 āgata의 복합어로 보아 ‘그처럼 오신 분’ 곧 여래(如來)라 의역한다.
13)범어로는 Arhat. 의역하여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한다.
14)범어로는 Samyaksaṃbuddha. 정지인(正智人)ㆍ정변지(正邊智)라고도 한다.
15)범어로는 śravaka.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따르는 불제자를 뜻한다.
16)범어로는 satkāya-dṛṣṭi. 유신견을 말한다. 5온이 화합해 이루어진 몸에 대해 나 혹은 내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 혹은 몸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17)외도가 고행 등의 계율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18)범어로는 śrota āpatti. 성스런 도의 흐름에 비로소 들어가게 된 이로, 예류(預流)라고도 한다.
19)범어로는 sakṛd-āgāmin. 죽어서 천계(天界)에 태어나며, 다시 한 번 인간계에 와서 깨달음을 얻어 니르바나에 이르는 되는 이로, 일래(一來)라고도 한다.
20)범어로는 anāgāmin.두 번 다시 욕계에 태어나지 않게 된 이로, 불환(不還)이라고도 한다.
21)생존의 근원을 단절시킨 경지, 곧 ‘완전한 열반’을 가리킨다. 한편 육신의 근거만을 남기는 경지를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고 한다.
22)범어로는 sarva-ākārajñtā. 일체법, 곧 세간 출세간의 모든 존재의 양상을 아는 지혜로, 부처님만의 지혜이다. 일체상지(一切相智)라고도 한다.
23)범어로는 gati. 하늘ㆍ인간ㆍ아수라ㆍ축생ㆍ지옥ㆍ아귀의 세계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24)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n)을 가리킨다.
25)범어로는 durgati. 불행한 세계를 가리킨다.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셋을 삼악취(三惡道, tri-durgati)라고 한다.
26)범어로는 sugati. 악취(惡趣, durgati)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른바 인간ㆍ신의 2도, 혹은 아수라ㆍ인간ㆍ신의 3도를 말한다.
27)악취(惡趣, durgati)와 같은 말이다.
28)범어로는 catur vaiśāradya. 무외(無畏, vaiśāradya)란 법을 설함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말한다.
29)범어로는 Gṛdhakūṭa, Gijjhākūṭa.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왕사성(Rājagriha)의 동쪽에 위치하는 작은 산으로 부처님께서 자주 머무시던 곳이다. 이 말의 어의는 ‘독수리 봉우리’로, 산정이 독수리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30)Bimbisāra는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마가다국을 통치하던 왕으로, Ajātaśatru의 부왕이기도 하다.
31)범어로는 āsrava. 번뇌의 다른 명칭이다.
32)범어로는 Gautama. 석존(釋尊)의 성(姓)이다.
33)범어로는 nayuta. 지극히 큰 수를 가리키는 말로 천만, 천억 혹은 천만억에 상당한다.
34)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35)범어로는 āsrava. 번뇌의 다른 명칭이다.
36)곧 앞에서 말한 선(善)ㆍ불선(不善)의 두 가지를 말한다.
37)범어로는 vittaka. 선정 중에 일어나는 ‘거친 생각’을 말한다. 각(覺) 혹은 심(尋)이라고도 한다.
38)범어로는 vicāra. 선정 중에 일어나는 ‘세밀한 생각’을 말한다. 관(觀) 혹은 사(伺)라고도 한다.
39)범어로는 karma-vāc-ācāryaḥ. 갈마(羯磨, karma)란 구족계를 받는 경우나 승잔죄와 같은 중간의 죄를 참회할 때에 사용되는 작법을 말한다.
40)범어로는 bhadanta. 혹은 āyuṣmat. 대덕(大德)ㆍ존자(尊者)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