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4_0918_a_01L아비달마발지론권제일(阿毘達磨發智論卷第一)
024_0918_a_01L阿毘達磨發智論卷第一
송당왕장성교서(宋唐王藏聖教序)1)
024_0918_a_02L宋唐王藏聖教序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024_0918_a_03L太宗文皇帝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24_0918_a_04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024_0918_a_10L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無滅無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24_0918_a_16L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24_0918_b_01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24_0918_a_20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像開圖空端四八之相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24_0918_b_02L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024_0918_b_07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袖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凝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析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
024_0918_c_01L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24_0918_b_15L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萬里山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霰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24_0918_b_20L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賾妙門精窮奧業一乘五律之道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業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24_0918_c_03L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聖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同臻彼是知惡因業墜善以緣升升墜之惟人所託


황제술성기(皇帝述聖記)8)
재춘궁일제(在春宮日製)9)
024_0918_c_08L譬夫桂生高嶺雲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良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淨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猶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不緣慶而求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窮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24_0918_c_15L皇帝述聖記
在春宮曰製
024_0919_a_01L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24_0918_c_16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10)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1)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24_0918_c_22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應身經塵劫而不朽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2)가 중국의 중심13)에 흐르는 팔천(八川)14)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24_0919_a_05L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24_0919_a_08L伏惟皇帝陛下 上玄資福垂拱而治八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虫金匱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5)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6)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24_0919_a_13L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堯舜比其聖德者哉
024_0919_b_01L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17)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18) 이것은 법상(法相)19)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ㆍ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24_0919_a_19L玄奘法師者夙懷聰令立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巡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會一乘之旨隨機化物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24_0919_a_23L以中華之無質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字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翻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同二儀之固
024_0918_a_01L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 제1권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지음
현장(玄奘) 한역


1. 잡온(雜蘊)

1) 세제일법납식(世第一法納息)

세제일법(世第一法)에 일곱 가지
정(頂)에 두 가지, 난(煖)과 신견(身見)
그리고 열한 가지 견(見)의 끊음과 포섭관계를
이 장(章)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문】무엇을 세제일법이라고 하는가?1)
【답】심(心)ㆍ심소법(心所法)이 등무간(等無間)으로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가는 것, 이것을 세제일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만약 오근(五根:信ㆍ勤ㆍ念ㆍ定ㆍ慧)이 등무간으로 정성이생에 들어간다면 이것을 세제일법이라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 유부종의(有部宗義)에서는 만약 심ㆍ심소법이 등무간으로 정성이생에 들어가면 이것을 세제일법이라고 한다.
【문】무엇 때문에 세제일법이라고 이름하는가?
【답】이와 같은 심ㆍ심소법은 그밖의 다른 세간법과 비교할 때 가장 으뜸이고 뛰어나며, 좋고 존귀하며, 높고 묘한 것이기 때문에 세제일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심ㆍ심소법은 등무간으로 이생성(異生性)을 버리고 성성(聖性)을 획득하고, 사성(邪性)을 버리고 정성(正性)을 획득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제일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문】세제일법은 욕계의 계박[繫]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색계의 계박, 혹은 무색계의 계박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색계의 계박이라고 해야 한다.
【문】어째서 이 법을 욕계의 계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답】욕계의 실천도로는 5개(蓋)를 끊을 수 없고 10전(纏)을 제거하지 못하며, 욕계의 전(纏)으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다시는 일어나지[現起] 못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계의 실천도로는 능히 5개를 끊을 수 있고 10전을 제거할 수 있으며, 욕계의 전으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욕계의 실천도로써 5개를 끊고 10전을 제거하며, 욕계의 전으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세제일법을 욕계의 계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욕계의 실천도로는 5개를 끊을 수 없고 10전을 제거할 수 없으며, 욕계의 전으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게 할 수 없지만 색계의 실천도로는 5개를 끊고 10전을 제거하며, 욕계의 전으로 하여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제일법을 욕계의 계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어째서 이 법을 무색계의 계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답】정성이생에 들어갈 때, 먼저 욕계의 괴로움을 관찰[現觀]하여 괴로움이라 하고 난 다음에 색계와 무색계의 괴로움을 함께 관찰하여 괴로움이라 한다. 또한 성도(聖道)를 일으킬 때, 먼저 욕계의 본질[事]을 변별한 후 색계와 무색계의 본질을 함께 변별한다. 만약 정성이생에 들어갈 때 먼저 무색계의 괴로움을 관찰하여 괴롭다고 여긴 다음에 욕계와 색계의 괴로움을 괴롭다 하고, 성도를 일으킬 때 먼저 무색계의 본질을 변별하고 난 다음에 욕계와 색계의 본질을 변별한다고 하면, 세제일법을 무색계의 계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성이생에 들어갈 때 먼저 욕계의 괴로움을 관찰하여 괴롭다고 한 다음에 색계와 무색계의 괴로움을 관찰하여 괴롭다 하며, 성도를 일으킬 때 먼저 욕계의 본질을 변별하고 난 후에 색계와 무색계의 본질을 변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제일법은 무색계의 계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무색정(無色定)에 들어서는 색상(色想)을 제거하니, 색상을 제거한다면 욕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이 법을 소연(所緣)으로 하여 고법지인(苦法智忍)을 일으킨다면, 바로 이 법을 소연으로 하여 세제일법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문】세제일법을 유심유사(有尋有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혹은 무심유사(無尋有伺), 혹은 무심무사(無尋無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어떤 때는 유심유사이고, 어떤 때는 무심유사이며, 혹은 어떤 때는 무심무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유심유사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유심유사의 삼마지(三摩地)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획득한 세제일법을 유심유사라고 한다.
【문】무심유사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무심유사의 삼마지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획득한 세제일법을 무심유사라고 한다.
【문】무심무사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무심무사의 삼마지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획득한 세제일법을 무심무사라고 한다.
【문】세제일법을 낙근(樂根)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희근(喜根)과 상응하는 것, 혹은 사근(捨根)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어떤 때는 낙근과 상응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낙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제3정려(靜慮)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세제일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문】희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제2정려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세제일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문】사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미지정(未至定)과 제4정려에 의거하여 정성이생에 들어가, 그때 세제일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문】세제일법을 마땅히 한찰나의 마음[一心]이라고 해야 하는가, 다 찰나의 마음[多心]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한 찰나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어째서 이 법은 다 찰나에 걸친 마음이 아닌가?
【답】이러한 심ㆍ심소법으로부터는 무간(無間)에 그밖의 또 다른 세간심(世間心)이 일어나지 않으며, 오로지 출세간심만이 일어난다. 만약 그밖의 다른 세간심이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세제일법보다 열등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동등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뛰어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만약 열등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성이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퇴도(退道)로써는 정성이생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동등한 것이라고 해도 역시 정성이생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와 유사한 도(道)로써는 정성이생에 먼저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선행된 마음은 세제일법이 아니며, 후자가 바로 세제일법인 것이다. 이같은 이유에서 세제일법은 다 찰나에 걸친 마음이 아닌 것이다.
【문】세제일법은 물러남이 있다고 해야 하는가, 물러남이 없다고 해야 하는가?
【답】물러남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어째서 이 법은 결정코 물러남이 없는 것인가?
【답】세제일법은 사제(四諦)에 따르고, 사제를 향해 나아가며, 사제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 사이에 불상사심(不相似心)을 일으켜 성제현관(聖諦現觀)에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절벽을 건너가는 것과 같으니, 중간에 돌아서서 본래의 처소나, 혹은 일찍이 가려고 했던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증상신(增上身)은 아직 이르지 못한 목적지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멈춤이 없을 것이다. 세제일법도 역시 이와 같다. 즉 사제에 따르고, 사제를 향해 나아가며, 사제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 중간에 불상사심을 일으켜 성제현관에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섬부주(贍部洲)의 긍가(殑伽:Gaṅgā)ㆍ염모나(閻母那:Yamunā)ㆍ살락유(薩洛踰:Sarayū)ㆍ아씨라벌저(阿氏羅筏底:Airāvatī)ㆍ막혜(莫醯:Mahī) 등 다섯 큰 강은 큰 바다의 흐름에 따라 바다로 나아가며,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니, 중간에 회전하여 그 흐름이 본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정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세제일법도 역시 이와 같아서 사제에 따르고 사제를 향해 나아가며, 사제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 중간에 불상사심을 일으켜 성제현관에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제일법과 고법지인(苦法智忍)은 등무간연이 되므로 그 사이 마음에 빠르게 회전하여 지나가는 어떠한 법[一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때 세제일법이 능히 장애되어 성제현관에 들지 못하게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은 결정코 물러남이 없는 것이다.
【문】무엇이 정(頂)인가?2)
【답】불(佛)ㆍ법(法)ㆍ승(僧)에 대해 작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세존께서 바라연나(波羅衍拏)와 마납바(摩納婆)에게 설명하신 것과 같다.

만약 부처님과 법과 승단에 대하여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일으킨다면,
유동(儒童)들3)註呼이여, 반드시 알아야 할지니,
그들은 이미 정법을 획득하였도다.

【문】무엇을 정법의 물러남[頂墮]이라고 하는가?
【답】어떤 한 존재가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정법을 청문하고, 참답게 뜻을 새기며[如理作意], 부처님의 보리법과 이를 잘 설명하신 승가를 믿고 묘행을 닦아 색(色)은 무상이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무상이라 하여 고제(苦諦)를 잘 설명해 주고 집(集)ㆍ멸(滅)ㆍ도제(道諦)를 잘 설명해 주어도, 그가 어느 때 선지식을 가까이하지 않아 정법을 청문하지 않고 참답게 뜻을 새기지 않으면, 이미 획득한 세속의 믿음에서 물러나 정법을 파괴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그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법의 물러남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즉 부처님께서 바라연나와 마납바를 위해 설명하신 것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이와 같이
삼법(三法)에서 물러나 그것을 잊어버리면
나는 그들을 이렇게 설명하고자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지니, 그들을 정법의 물러남이라 이름한다.

【문】무엇이 난(煖)인가?4)
【답】정법(正法)과 비나야(毘奈耶) 중에 조그마한 신애(信愛)가 있는 것이니, 이는 세존께서 마사(馬師)와 정숙(井宿)이라는 두 비구를 위해 설명하신 것과 같다. 즉 “이 두 어리석은 이는 나의 정법과 비나야를 떠났으니, 비유하자면 대지가 허공과 거리를 멀리 두고 있는 것처럼 이 두 어리석은 이는 나의 정법과 비나야 중에 있어서 조그마한 난(煖)도 없다”고 하셨다.
【문】이같은 20구(句)의 살가야견(薩迦耶見) 중 몇 가지가 아견(我見)이고, 몇 가지가 아소견(我所見)인가?5)
【답】다섯 가지가 아견이니, ‘색은 바로 아(我)이며, 수ㆍ상ㆍ행ㆍ식도 바로 아이다’고 하는 등에 따라 관찰하는 것[隨觀]을 말한다. 그리고 열다섯 가지는 아소견이니, ‘나는 색을 갖는다. 색은 바로 나의 것이다. 나는 색 가운데 있다. 나는 수ㆍ상ㆍ행ㆍ식을 갖는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바로 나의 것이다. 나는 수ㆍ상ㆍ행ㆍ식 가운데 있다’고 하는 등에 따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문】만약 비상(非常)을 상(常)이라고 보면 이는 5견(見)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6)
【답】변집견(邊執見)의 상견(常見)에 포섭되며, 견고로써 끊어진다[見苦所斷].
【문】만약 상을 비상이라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사견(邪見)에 포섭되며, 견멸로써 끊어진다[見滅所斷].
【문】만약 괴로움을 즐겁다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열등한 법을 취하여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견취(見取)에 포섭되며, 견고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즐거움을 괴롭다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사견에 포섭되며, 견멸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부정한 것을 청정한 것이라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열등한 법을 취하여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견취에 포섭되며, 견고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청정한 것을 부정하다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사견에 포섭되는데, 끊어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번뇌의 소멸을 부정한 것이라고 보면 견멸로써 끊어진다. 만약 번뇌소멸의 방법[道]을 부정하다고 하면 견도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비아(非我)를 아(我)라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유신견(有身見)에 포섭되며, 견고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원인이 아닌데[非因] 원인이라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원인이 아닌데 원인이라고 함은 계금취(戒禁取)에 포섭되며, 견고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원인인데 원인이 아니라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사견에 포섭되며, 견집으로써 끊어진다[見集所斷].
【문】만약 존재하는 것[有]을 존재하지 않는다[無]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사견에 포섭되는데, 그 끊어짐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만약 괴로움[苦]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견고로써 끊어진다. 만약 그 원인[集]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견집으로써 끊어진다. 만약 그 소멸[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견멸로써 끊어진다. 만약 그 소멸의 방법[道]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견도로써 끊어진다.
【문】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보면 이는 5견 중 어떠한 견에 포섭되며, 어떠한 견에 의해 끊어지는가?
【답】이것은 견(見)이 아니며, 바로 사지(邪智)이다.

2) 지(智)납식

한 찰나의 지(智)와 식(識), 인(因)과 연(緣),
두 찰나의 마음[二心]과 기억[念]과 제사,
세 가지 근(根)의 작용과 과거,
의혹과 단어[名]ㆍ문장[句]ㆍ음소[文],
부처의 꾸짖음[訶責]과 여섯 가지 원인[六因],
수면과 마음, 그리고 그것의 끊어짐[斷],
변행인과 소연이 끊어진 식[因境斷識] 등의 내용을
이 장(章)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문】한 찰나의 지(智:jñāna)로써 모든 법을 알 수 있는가?7)
【답】알 수 없다.
【문】만약 이 지가 ‘모든 법은 비아(非我)이다’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때 지는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
【답】자성(自性)과 이에 상응하고 구유(俱有)하는 모든 법을 알지 못한다.
【문】한 찰나의 의식(vijñana)으로 모든 법을 깨달아[了] 알 수 있는가?
【답】깨달아 알 수 없다.
【문】만약 이 의식이 ‘모든 법은 비아이다’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때 의식은 무엇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가?
【답】자성과 이에 상응하고 구유하는 모든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문】두 찰나의 마음이 전전(展轉)할 때, 서로 원인[因]이 될 수 있는가?8)
【답】될 수 없다. 왜냐 하면, 하나의 보특가라(補特伽羅 : pudgala)에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닌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생기[俱生]하는 일은 없으며, 또한 후찰나의 마음[後心]은 전찰나의 마음[前心]에 원인이 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문】두 찰나의 마음이 전전할 때, 서로 연(緣)이 될 수 있는가?
【답】될 수 있다. 어떤 마음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로 이를 사유하여 제2찰나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어떤 마음에 미래가 존재한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로 이를 사유하여 제2 찰나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어떤 마음에 미래의 도(道)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로 이를 사유하여 제2찰나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어떤 마음에 미래의 도가 존재한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로 이를 사유하여 제2찰나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두 사람의 두 마음은 전전하여 서로 연이 되는 것과 같다.
【문】어째서 하나의 보특가라에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닌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생기하는 일이 없는가?9)
【답】제2찰나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유정에게는 하나하나의 마음이 상속하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문】보특가라는 이미 불가득(不可得)이며, 또한 전찰나의 마음이 후찰나의 마음으로 나아갈 리도 없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이전에 행위하였던 일을 기억하는가?10)
【답】유정은 법에 있어서 관습력에 따라 이같은 동분지(同分智)를 획득하고, 경험[所更]한 일에 따라 이같이 아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장을 잘 만드는 두 사람이 자신과 다른 이가 만든 도장의 글자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비록 그 두 사람은 ‘너는 이 글자를 지었는가’라고 가서 서로 묻지 않고, 역시 또한 ‘나는 이와 같이 이 글자를 만들었다’고 서로 대답하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이 두 사람은 관습력(串習力)에 따라 이같은 동분지를 획득하여 자기나 타인이 만든 도장의 글자를 잘 아는 것이다. 유정 역시 그러하여, 관습력에 따라 이같은 동분지를 획득하고, 경험한 일에 따라 이와 같이 아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과 같다. 즉 비록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서 ‘너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묻지 않으며, 또한 역시 서로에게 ‘나는 이와 같이하여 너의 마음을 안다’고도 대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두 사람은 관습력에 따라 이같은 동분지를 획득하여 서로간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유정 역시 그러하여 관습력에 따라 이같은 동분지를 얻고, 경험한 일에 따라 이같이 아는 것이다.
또한 모든 심(心)ㆍ심소법(心所法)은 소연(所緣)에 있어 결정적이며, 소연에 안주(安住)한다. 그리고 수의(受意)의 근거[因]가 되는 힘이 강해서 생각은 바로 잊혀지지 않는다.
【문】어떠한 연유에서 유정은 잊어버렸던 것을 다시 기억하는가?
【답】유정의 동분(同分)이 상속하여 전전할 때, 법 중에 상속의 지견(智見)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는 수의의 근거가 되는 힘이 강해서 생각이 바로 망실되지 않는 것이다.
【문】어떠한 연유에서 유정은 기억하였다가 다시 잊어버리는 것인가?
【답】유정의 이분(異分)이 상속 전전할 때, 법 가운데 상속의 지견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수의의 근거가 되는 힘이 약해서 생각이 바로 잊혀지기 때문이다.
【문】어떠한 연유에서 제사를 지내면 아귀(餓鬼)는 바로 거기에 이르지만 다른 취(趣)는 그러하지 못하는가?11)
【답】아귀의 취는 법이(法爾)로서 그와 같은 처(處)ㆍ사(事)ㆍ생(生)과 아분(我分)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면 바로 거기에 이르나 다른 취는 그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거위나 기러기ㆍ공작ㆍ앵무ㆍ사리12)ㆍ명명조13) 등, 그것들은 비록 마음대로 허공을 자유롭게 비상하지만, 그러나 신력(神力)이나 위덕(威德)에 있어 사람보다 크지 못한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러한 취들은 법이로서 그와 같은 처ㆍ사ㆍ생ㆍ아분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허공을 비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귀의 취도 역시 그러하여, 제사를 지내면 법이력(法爾力)에 의해 바로 이르지만 다른 취는 그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아귀가 제사에 바로 응하는 것은 능히 숙주(宿住)를 기억하고 다른 이의 마음[他意]을 알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나락가(那洛迦 : naraka, 지옥)와 같다. 즉 어떤 종류의 방생(傍生 : 축생의 다른 이름)이나 어떤 종류의 아귀는 능히 숙주를 기억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연기와 불꽃[煙焰]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며, 춥거나 덥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록 그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정신력이나 위덕에 있어 사람보다 크지 못하다. 그러나 그러한 취들은 법이로서 그와 같은 처ㆍ사ㆍ생ㆍ아분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그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귀의 취도 역시 그러하여 제사를 지내면 법이력에 따라 바로 이르지만, 다른 취는 그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긴긴 밤에 이와 같이 욕망하고 애락한다. ‘나는 부인을 취할 것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 부인을 취해야 하고, 손자를 낳기 위해 부인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생겨난 아들과 손자로 하여금 후사를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면 내가 죽은 다음, 만약 아귀의 취에 태어나더라도 그들은 나를 염원하기 때문에 나에게 제사지낼 것이다. 그는 기나긴 밤 이같이 욕락함에 따라 제사를 지내면 바로 도달하는 것이며, 다른 취는 그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하나의 눈[一眼]으로 색(色)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두 개의 눈[二眼]으로 색을 보는 것인가?14)
【답】두 개의 눈이 색을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문】그 이유가 무엇인가?
【답】만약 하나의 눈을 감고 색을 보면 부정식(不淨識 : 명료하지 않은 인식)이 일어나며, 두 눈을 뜨고 볼 때 정식(淨識 : 명료한 인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의 눈을 감고 볼 경우에도 이와 같은 정식이 일어나고, 두 눈을 뜨고 볼 때에도 역시 이같은 식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두 눈이 색을 본다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눈을 감으면 부정식이 일어나고, 두 눈을 뜨고 볼 때 비로소 정식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눈이 색을 본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눈을 감고 보면 부정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눈이 손 등에 의해 가리워지고[覆] 티끌 등에 손상되거나[損], 망막을 다치거나[破] 노쇠해져도[壞]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냄새를 맡는 것 역시 눈이 색을 보는 경우와 같다.
【문】모든 과거는 그 모두가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15)
【답】네 가지 유형[四句]으로 분별할 수 있다. 과거의 것이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구수(具壽) 오타이(陀夷 : Udāyi)가 말한 것과 같다.

모든 결(結)은 지나가 버리고[過去]
수풀에서 노닐다가 수풀을 떠나왔도다.
모든 욕탐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찾으니
드러난 산꼭대기가 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구나.16)

드러나지 않는 것이면서 과거의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다음의 일과 같은 것이니, 혹은 신통으로써, 혹은 주술로써, 혹은 약물로써, 혹은 생처득지(生處得智)로써 깊이 숨어서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면서 역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행(行)의 이기(已起)ㆍ등기(等起), 이생(已生)ㆍ등생(等生)이 이미 전전(展轉)하여 현재 전전한 것, 이미 모여 일어나고[集起], 이미 현재에 나타나고, 이미 과거로 흘러갔고, 이미 다해 소멸(盡滅)했고, 이미 떠나 다르게 변화[離變]한 것, 이것이 과거이고, 과거의 상태[分]이며, 과거세에 포섭되는 것이면서 역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 아니면서 역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앞서의 경우를 제외한 것이다.
【문】모든 과거는 그 모두가 다한 것[盡]인가?
【답】네 가지 유형으로 분별할 수 있다. 과거의 것이면서도 다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말하자면 구수 오타이가 말한 것과 같다. ‘모든 결은 지나가 버리고(이하 생략)’
다한 것이면서 과거의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이미 지옥을 다하였고, 이미 방생을 다하였으며, 이미 아귀를 다하였으며, 존재하는 모든 험악취(嶮惡趣 : 지옥)와 갱(坑 : 축생ㆍ지옥 등의 악취를 말함)을 이미 다하였다”고 설명하신 것과 같다.
과거의 것이면서 역시 다한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행(行)의 이기ㆍ등기(이하 생략).’
과거의 것이 아니면서 역시 다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앞서의 경우를 제외한 것이다.
또한 만약 결(結)의 끊어짐을 근거로 하여 설명하면, 어떤 결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다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아직 변지(遍智)되지 않았으며, 아직 소멸되지 않았고 아직 변토(變吐)되지 않은 과거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다한 것이면서도 과거의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는 이미 끊어지고, 이미 변지되고, 이미 소멸되고, 이미 변토된 미래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과거의 것이면서 역시 다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이미 끊어지고, 이미 변지되고, 이미 소멸되고, 이미 변토된 과거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과거의 것도 아니면서 역시 다하지도 않은 경우가 있다. 이는 현재의 결(結)과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아직 변지되지 않았으며, 아직 소멸되지 않았고, 아직 변토되지 않은 미래의 결을 말한다.
【문】모든 과거는 그 모두가 멸(滅)한 것인가?
【답】네 가지 유형으로 분별할 수 있다. 과거의 것이면서 멸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구수 오타이가 말한 것과 같다. ‘모든 결은 지나가 버리고 (이하 생략).’
멸한 것이면서 과거의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것은 세속에 의거하여 작은 길, 작은 집, 작은 그릇, 작은 눈을 바로 멸한 길, 또는 멸한 눈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면서 역시 멸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행(行)의 이기ㆍ등기(이하 생략).’
과거의 것이 아니면서 역시 멸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앞서의 경우를 제외한 것이다.
또한 만약 결(結)의 끊어짐을 근거로 하여 설명하면, 어떤 결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멸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아직 변지되지 않았으며, 아직 소멸하지 않았고, 아직 변토되지 않은 과거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멸한 것이면서도 과거의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이는 이미 끊어지고, 이미 변지되고, 이미 소멸되고, 이미 변토된 미래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과거의 것이면서 역시 멸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이미 끊어지고, 이미 변지되고, 이미 소멸되고, 이미 변토된 과거의 결을 말한다.
어떤 결은 과거의 것도 아니면서 역시 멸하지도 않은 경우가 있다. 이는 현재의 결(結)과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아직 변지되지 않았으며, 아직 소멸되지 않았고, 아직 변토되지 않은 미래의 결을 말한다.
【문】만약 고(苦)에 대해 의혹을 낳으면 이것은 바로 고인가, 고가 아닌가? 한 찰나의 마음[一心]이라고 해야 하는가, 다 찰나의 마음[多心]이라고 해야 하는가?17)
【답】다 찰나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바로 고이다’라고 하면 이것은 한 찰나의 마음이고, ‘이것은 고가 아니다’고 하면 이것은 제2찰나의 마음이다. 집(集)ㆍ멸(滅)ㆍ도(道)에 대해 의혹을 낳는 것 역시 그러하다.
【문】그렇다면 한 찰나의 마음에 의혹이 있는가, 의혹이 없는가?
【답】없다.
【문】그 이유는 무엇인가?
【답】고제(苦諦)에 대해 만약 ‘이것은 바로 고인가’라고 말한다면 이 마음에는 의혹이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은 바로 고이다’라고 말하면 이 마음에는 의혹이 없다. 만약 ‘이것은 고가 아닌 것인가’라고 말하면 이 마음에는 의혹이 있다. 만약 ‘이것은 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마음에는 의혹이 없다. 그리고 집ㆍ멸ㆍ도에 대해서도 역시 이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무엇을 다명신(多名身)이라고 하는가?18)
【답】말하자면 많은 명호(名號)ㆍ이어(異語)ㆍ증어(增語)ㆍ상(想)ㆍ등상(等想)ㆍ가시설(假施設), 이것을 다명신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다구신(多句身)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구절[諸句]로써 만족되지 못한 뜻을 그 가운데 연합시켜 만족시키는 것, 이것을 다구신이라고 하는데,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

모든 악을 행하지 말고
여러 선한 것을 받들어 행하면,
스스로 그 마음이 청정하게 되니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은 사구(四句)는 각기 만족되지 못한 뜻을 그 가운데 연합시켜 만족시키니, 이를 다구신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다문신(多文身)이라고 하는가?
【답】여러 글자의 모임[衆], 이것을 다문신이라고 하는데,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

≺송(頌)을 지으려는≻ 의욕은 송의 근본이 되며
문(文)은 바로 자(字)이다.
곧 송은 명(名)ㆍ≺구(句)ㆍ문(文)≻과
송을 짓는 이에 의거하는 것이다.

【문】불(佛)세존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꾸짖어 지칭하기를 ‘어리석은 이[癡人]’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19)
【답】이것은 꾸짖어 책망하는 말이다. 불세존께서 제자를 꾸짖어 책망하여 ‘어리석은 이’라고 함은, 이를테면 오늘날 친교사(親敎師)나 궤범사(軌範師)가 만약 가까이 머물며 의지하는 어떤 제자가 과실을 일으킴이 있을 경우 꾸짖어 책망하기를, ‘너희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밝지 못하고 선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존 역시 그러하여 여러 제자들을 꾸짖어 ‘어리석은 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문】무엇 때문에 세존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꾸짖어 지칭하기를 ‘어리석은 이’라고 하셨던 것인가?
【답】그들은 세존의 교계(敎誡)나 교수(敎授)에 있어 뜻에 따라 행하지 않고, 수순하지 않으며, 상속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성교(聖敎)에 대해 어리석은 일을 도모하여 어떠한 과보도 없고, 벗어남[出離]도 없으며, 맛도 없고, 어떠한 승리도 없다고 하는 등 헛되이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고 멀리한다. 그리고 학처(學處 : 비구ㆍ비구니가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에 있어서도 능히 그 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어 ‘어리석은 이’라고 지칭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다. 여섯 가지 원인이 있으니, 상응인(相應因)으로부터 능작인(能作因)에 이르기까지이다.20)
【문】무엇을 상응인(相應因)이라고 하는가?
【답】수(受)는 수와 상응하는 법에 상응인이 되며, 수와 상응하는 법은 수에 상응인이 된다. 상(想)ㆍ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ㆍ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지(三摩地)ㆍ혜(慧)는 혜와 상응하는 법에 상응인이 되며, 혜와 상응하는 법은 혜에 상응인이 된다. 이것을 상응인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구유인(俱有因)이라고 하는가?
【답】마음[心]은 심소법(心所法)에 구유인이 되며, 심소법은 마음에 구유인이 된다. 마음은 마음에 따라 전전된[隨心轉]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에 구유인이 된다. 마음은 마음에 따라 전전된 불상응행(不相應行)에 구유인이 되며, 마음에 따라 전전된 불상응행은 마음에 구유인이 된다. 또한 동시에 생기[俱生]한 사대종(四大種)은 전전하여 구유인이 된다. 이것을 구유인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동류인(同類因)이라고 하는가?
【답】이전에 생겨난 선근(善根)은 이후에 생겨나는 자신의 세계[自界]에 속하는 선근과 상응법에 동류인이 된다. 과거의 선근은 미래ㆍ현재의 자신의 세계에 속하는 선근과 상응법에 동류인이 된다. 현재의 선근은 미래의 자신의 세계에 속하는 선근과 상응법에 동류인이 된다. 선근과 마찬가지로 불선(不善)ㆍ무기근(無記根) 역시 그러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불선 중에서는 자신의 세계가 배제될 뿐이다. 이것을 동류인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변행인(遍行因)이라고 하는가?
【답】이전에 생겨난 견고소단(見苦所斷)의 변행의 수면(隨眠)은 이후에 생겨나는 자신의 세계에 속하는 견집(見集)ㆍ멸(滅)ㆍ도(道)ㆍ수소단(隨所斷)의 수면과 상응법에 변행인이 된다. 과거 견고소단의 변행의 수면은 미래ㆍ현재의 자신의 세계에 속하는 견집ㆍ멸ㆍ도ㆍ수소단의 수면과 상응법에 변행인이 된다. 현재 견고소단의 변행의 수면은 미래 자신의 세계에 속하는 견집ㆍ멸ㆍ도ㆍ수소단의 수면과 상응법에 변행인이 된다. 그리고 견고소단과 마찬가지로 견집소단 역시 그러하다. 이것을 변행인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이숙인(異熟因)이라고 하는가?
【답】모든 심ㆍ심소법은 이숙(異熟)의 색(色)과 심ㆍ심소법과 심불상응행을 향수하는데, 이때 심ㆍ심소법은 그러한 이숙에 이숙인이 된다. 또한 모든 신업과 어업은 이숙의 색과 심소법과 심불상응행을 향수하는데, 이때 모든 신업과 어업은 그러한 이숙에 이숙인이 된다. 또한 심불상응행은 이숙의 색과 심ㆍ심소법과 심불상응행법을 향수하는데, 이때 이러한 심불상응행은 그러한 이숙에 이숙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숙인이라고 한다.
【문】무엇을 능작인(能作因)이라고 하는가?
【답】안근(眼根)과 색경(色境)이 연(緣)이 되어 안식(眼識)을 일으키니, 이러한 안식은 그 자성[自性]을 제외한 그러한 안과 색과 그 상응법과 그 구유법, 그리고 이(耳)ㆍ성(聲)ㆍ이식(耳識), 비(鼻)ㆍ향(香)ㆍ비식(鼻識), 설(舌)ㆍ미(味)ㆍ설식(舌識), 신(身)ㆍ촉(觸)ㆍ신식(身識), 의(意)ㆍ법(法)ㆍ의식(意識), 유색(有色)ㆍ무색(無色), 유견(有見)ㆍ무견(無見), 유대(有對)ㆍ무대(無對), 유루(有漏)ㆍ무루(無漏), 유위(有爲)ㆍ무위(無爲) 등 모든 법으로써 능작인을 삼는데 그 자성을 제외한다. 안식과 마찬가지로 이ㆍ비ㆍ설ㆍ신ㆍ의식 역시 그러하다. 이것을 능작인이라고 한다.
【문】모든 마음은 수면(隨眠)에 따르기 때문에 유수면심(有隨眠心)이라고 이름한다. 그렇다면 그 수면은 이 마음에서 수증(隨增)되는가?21)
【답】어떤 경우에는 수증하고, 혹은 수증하지 않는다.
【문】수증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그 수면은 이 마음과 상응하여 아직 끊어지지 않았거나 이 마음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문】수증하지 않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그 수면이 이 마음과 상응하여 이미 끊어진 것이다.
【문】만약 수면이 마음에서 수증된다면 이 마음은 단지 그 수면에 따르기 때문에 유수면심이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답】어떤 경우에는 그것에 따르고 여타의 것에는 따르지 않으며, 혹은 그것과 여타의 것에 따르기도 한다.
【문】‘그것에 따르고 여타의 것에는 따르지 않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이 마음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문】‘그것과 그밖의 것에 따르기도 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고지(苦智)가 이미 생겨나고 집지(集智)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 견고소단되는 마음은 견집소단의 수면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문】모든 마음은 수면에 따르기 때문에 유수면심이라고 이름한다. 그렇다면 그 수면은 이 마음에서 끊어지는가?
【답】어떤 경우에는 끊어지고, 혹은 끊어지지 않는다.
【문】끊어진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그 수면이 이 마음을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
【문】끊어지지 않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그 수면이 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다.
【문】모든 수면은 무엇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답】소연에 의해서이다.
【문】그대는 수면이 소연에 의해 끊어진다고 설명하는 것인가?
【답】그렇다.
【문】만약 그렇다면 모든 수면으로서, 견멸(見滅)ㆍ도소단(道所斷)인 유루연(有漏緣)의 그러한 수면은 무엇에 의해 마땅히 끊어지는 것인가? 만약 이것이 끊어져야 그것이 함께 끊어진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답】견멸ㆍ도소단인 무루연(無漏緣)의 수면은 소연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끊어진다. 이것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것 역시 끊어지는 것이다.
【문】만약 수면이 마음에서 끊어지는 것이라면, 이 마음은 다만 그러한 수면에 따르기 때문에 유수면심이라고 이름하는 것인가?
【답】어떤 경우에는 그것에 따르고 그밖의 것에는 따르지 않으며, 혹은 그것과 그밖의 것에 따르기도 한다.
【문】‘그것에 따르고 그밖의 것에는 따르지 않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말하자면 마음이 염오하지 않아 수소단되는 것이다.
【문】‘그것과 그밖의 것에 따르기도 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말하자면 마음의 염오함이다.
【문】무엇을 인경단식(因境斷識)이라고 하는가?22)
【답】고지가 이미 생겨나고 집지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 만약 견집소단되는 마음이 견고소단을 소연으로 삼는다면, 이것을 인경단식이라고 한다.
【문】이러한 식에서는 몇 가지 수면이 수증하는가?
【답】열아홉 가지이다.
【문】인경단식은 일심(一心)인가?
【답】그렇지 않다. 즉 아직 욕계의 염[欲染]을 떠나지 않았으면서 고법지(苦法智)가 이미 생겨나고 집법지(集法智)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만약 욕계의 견집소단되는 마음이 견고소단을 소연으로 삼으면, 이러한 인경단식에서는 욕계 견집소단의 일곱 가지 수면(見取ㆍ邪見ㆍ貪ㆍ瞋ㆍ慢ㆍ疑ㆍ無明)이 수증한다. 또한 이미 욕계의 염을 떠났으나 아직 색계의 염을 떠나지 않았으면서 고류지(苦類智)가 이미 생겨나고 집류지(集類智)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만약 색계의 견집소단되는 마음이 견고소단을 소연으로 삼으면 이러한 인경단식에서는 색계 견집소단의 여섯 가지 수면(욕계 견집소단의 일곱 가지 수면에서 瞋을 제외한 것)이 수증한다. 또한 이미 색계의 염을 떠나, 고류지가 이미 생겨나고 집류지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만약 무색계의 견집소단되는 마음이 견고소단을 소연으로 삼으면 이러한 인경단식에서는 무색계 견집소단의 여섯 가지 수면이 수증한다.

3) 보특가라(補特伽羅)납식

연기(緣起)와 연(緣)과 숨의 근거[息依]
마음의 근거[心依]와 무유애(無有愛)
마음의 해탈[心脫]과 의(依)와 계(界)와 상(想)
이 장(章)에서 모두 설명하겠다.

【문】하나의 보특가라(補特伽羅 : pudgala)의 이러한 생의 12지(支) 연기(緣起)에 있어 몇 가지가 과거이고, 몇 가지가 미래이며, 몇 가지가 현재인가?23)
【답】두 가지가 과거이니, 무명(無明)과 행(行)이다. 두 가지가 미래이니, 생(生)과 노사(老死)이다. 여덟 가지가 현재이니, 식(識)ㆍ명색(名色)ㆍ육처(六處)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이다.
【문】세존께서 “무명은 행의 연(緣)이 되고,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무명은 행의 연이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며,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24)
【답】무명이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업(業)이 이전의 다른 생 중에서 조작(造作)하고 증장(增長)한 바가 있어 현재 존재[今有]의 이숙(異熟)과 이미 향수한 이숙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취가 유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업이 현재의 생 중에서 조작하고 증장함이 있어 미래 존재[當有]의 이숙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무명은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과 ‘취는 유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무명이 행의 연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러한 업의 연으로서 세존께서는 하나의 번뇌를 말씀하시어 무명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취가 유의 연이 된다’고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러한 업의 연으로서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말씀하시어 모든 취[諸取]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차별이라고 한다.
【문】행으로서 무명을 연해도 명(明)을 연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답】없다.
【문】행으로서 명을 연해도 무명을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없다.
【문】행으로서 무명을 연하고, 명 역시 연하는 것이 있는가?
【답】있다.
【문】행으로서 무명을 연하지 않고, 명 역시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없다.
【문】이유가 무엇인가?
【답】어떠한 유정도 오랜 옛날부터 성도(聖道)를 비방하여 비도(非道)라고 말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이전에 도를 비방하고 난 후세에 그는 대지를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장하고, 혹은 그 후세에 소왕(小王)을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장하고, 혹은 그 후세에 대왕을 감응시키는 업을 조작하고 증작하고, 혹은 그 후세에 전륜왕(轉輪王)의 업을 조작하고 증장한다. 이러한 인(因)에 의해, 이러한 연(緣)에 의해, 그러한 성도(聖道)에 의해 전전(展轉)하여 대지와 그 나라에 존재하는 성과 도시ㆍ취락ㆍ사람ㆍ사람이 아닌 것[非人]ㆍ짐승ㆍ곡식ㆍ약초ㆍ수목ㆍ수풀[叢林]의 증장과 번창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선행된 마음의 네 가지 연(緣)은 최후의 마음에 대해 다만 하나의 증상연(增上緣)이 되는 것이다.
【문】다시 앞에서의 문제를 네 가지 연에 의해 설명해 볼 것 같으면, 행으로서 무명을 연해도 명(明)을 연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답】있다. 무명이숙과 염오행(染汚行)이다.
【문】행으로서 명을 연해도 무명을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있다. 초명(初明 : 苦法智忍을 말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루행이다.
【문】행으로서 무명을 연하고, 명 역시 연하는 것이 있는가?
【답】없다.
【문】행으로서 무명을 연하지 않고, 명 역시 연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답】있다. 무명이숙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무부무기행(無覆無記行)과 초명과 선한 유루행이다.
【문】들숨[入息]과 날숨[出息]은 몸에 의거하여 전전(展轉)한다고 해야 하는가,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몸에 의거하여 전전하기도 하며,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응하는 것에 따라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입ㆍ출식이 다만 몸에 의거하여 전전하고,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상태에서도 입ㆍ출식이 역시 전전할 것이다. 또한 만약 입ㆍ출식이 단지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고, 몸에 의거하여서는 전전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무색계 유정의 입ㆍ출식 역시 전전할 것이다. 만약 입ㆍ출식이 다만 몸과 마음에 의거하여서만 전전하고, 그것이 응하는 것 같은 모공이나 풍도(風道) 등 여타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알[卵]이나 곡식, 모태 중의 갈라람(羯邏藍 : kalalam)ㆍ알부담(頞部曇 : arbudam)ㆍ폐시(閉尸, peśī)ㆍ건남(鍵南 : ghanam) 등 여러 기관[諸根]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 그리고 제4정려에 있는 자에게도 역시 입ㆍ출식이 전전해야 하는 것이다.
입ㆍ출식은 몸에 의거하여 전전하며, 역시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며, 아울러 그것이 응하는 것에 의거함으로써 전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로는 무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변정천(遍淨天)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유정으로서 여러 기관이 모두 갖추어지고 성숙한 이에게는 입식과 출식이 몸과 마음에 의거하여 전전하는 것이다.
【문】만약 유색(有色) 유정의 심상속(心相續)이 몸에 의거하여 전전한다면 무색계 유정의 심상속은 무엇에 의거하여 전전하는가?25)
【답】명근(命根)과 중동분(衆同分)과 그 밖의 이와 같은 종류의 심불상응행이다.
【문】무유애(無有愛)는 견소단(見所斷)이라고 해야 하는가, 수소단(修所斷)이라고 해야 하는가?26)
【답】수소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分別論者]는 주장하기를, “무유애는 혹은 견소단이고, 혹은 수소단이다. 무엇이 견소단이냐 하면 견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貪)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수소단이냐 하면 수소단인 무유의 법에 대해 탐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부종의에 따르면 무유애는 다만 수소단일 뿐이라고 해야 한다.
【문】그렇다면 그대는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預流者)는 아직 이 애(愛)를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분별론자의 물음)
【답】그렇다.(應理論者, 즉 論主 가다연니자의 대답)
【문】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斷壞)하여 존재하지 않으면[無有]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애를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모든 예류자는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가 ‘만약 내가 죽은 후 단괴하여 존재하지 않으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무유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애(愛)를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그대들 역시 ‘지옥ㆍ방생(傍生)ㆍ아귀의 이숙애(異熟愛)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그렇다.(분별론자의 대답)
【문】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나는 마땅히 애라벌나(哀羅筏拏 : airāvana)용왕ㆍ선주(善住)용왕ㆍ염마귀왕(魔鬼王 : amarāja)이 되어 귀계(鬼界)의 모든 유정을 통섭(統攝)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지옥ㆍ방생ㆍ아귀의 이숙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예류자는 ‘나는 애라벌나용왕으로부터 나아가 모든 유정까지를 통섭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가 ‘나는 애라벌나용왕으로부터 나아가 모든 유정까지를 통섭하리라’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지옥ㆍ방생ㆍ아귀의 이숙애는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이 애를 아직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그대들은 또한 ‘모든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그렇다.(분별론자의 답)
【문】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친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류자는 이와 같은 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전(纏)이 얽혀졌기 때문에 부모의 생명을 해치니, 이러한 전은 오로지 수소단으로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러한 전을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그대들은 또한 ‘수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가?(응리론자의 물음)
【답】그렇다.(분별론자의 답)
【문】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愛)를 일으킨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답】그렇지 않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라. 만약 ‘수소단법인 무유(無有)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모든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愛)를 일으킨다’ 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예류자가 이를 소연으로 삼아 애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수소단법인 무유에 대해 탐하니, 이러한 탐은 오로지 수소단으로 모든 예류자는 아직 이 탐을 끊지 못하였다’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양자 모두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 이치에 맞는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무유(無有)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답】삼계(三界)의 무상이다.
【문】세존께서는, “마음은 탐(貪)ㆍ진(瞋)ㆍ치(癡)로부터 해탈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떠한 마음이 해탈을 획득하는 것인가? 탐ㆍ진ㆍ치의 마음인가, 탐ㆍ진ㆍ치를 떠난 마음인가?27)
【답】탐ㆍ진ㆍ치를 떠난 마음이 해탈을 획득한다. 그런데 어떤 이(분별론자)는 ‘탐ㆍ진ㆍ치와 상응하는 마음이 해탈을 획득한다’라고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 마음은 탐ㆍ진ㆍ치와 서로 합쳐지거나[相合], 서로 응하거나 잡스럽게 섞이지[相雜]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탐ㆍ진ㆍ치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며, 탐ㆍ진ㆍ치가 끊어진 마음은 바로 해탈한다. 세존 역시 설명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라! 이러한 일월(日月)의 수레바퀴가 오예(五翳)에 가리워지면 밝지 않고 빛나지 않으며, 광대하지 않고 청정하지 않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구름이며, 둘째는 연기이며, 셋째는 먼지, 넷째는 안개, 다섯째는 갈라호아소락(曷邏呼阿素洛 : rāhuasura)의 손이다”라고 하셨다. 이를테면 일월의 수레바퀴는 오예와 서로 합쳐지지도, 서로 응하거나 서로 잡스럽게 섞이지도 않지만 그 예를 버리지 않으면 이 일월의 수레바퀴는 밝지 않고 빛나지 않으며, 광대하지 않고 청정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그 예가 떠난다면 이 일월의 수레바퀴는 밝고 빛나며, 광대하고 청정하다. 이처럼 이 마음은 탐ㆍ진ㆍ치와 서로 합쳐지거나 서로 응하거나 서로 잡스럽게 섞이지 않지만, 탐ㆍ진ㆍ치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며, 탐ㆍ진ㆍ치가 끊어진 마음은 바로 해탈하는 것이다.
【문】어떠한 마음이 해탈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28)
【답】미래 무학(無學)의 마음이 생겨날 때 모든 장애[障 : 번뇌의 획득을 말함]에서 해탈한다.
【문】그러한 것은 어떠한 것인가?
【답】무간도(無間道)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이 멸하고 해탈도의 진지(盡智)가 생겨나는 것이니, 무간도의 금강유정이 올바로 멸하고 해탈도의 진지가 올바로 생하면 그때를 ‘미래 무학의 마음이 생겨나는 때로서 모든 장애로부터 해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아직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해탈한다고 해야 하는가, 이미 해탈한 마음이 해탈한다고 해야 하는가?
【답】이미 해탈한 마음이 해탈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미 해탈했다면 해탈한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해탈한다고 하면 이미 해탈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해탈한 마음이면서도 해탈한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正理]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응당 그것을 물어본다면,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이하 論主의 반문)

만약 애(愛)를 끊어 남음이 없으면
물에 피어 있는 연 꽃의 모습과 같고,
비구가 잡다한 모든 번뇌를 버리는 것은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문】그대는 이러한 말씀을 바로 선설(善說)이라고 인정하는가?
【답】그렇다.
【문】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미 버려진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하는가, 아직 버려지지 않은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하는가?
【답】이미 버려진 것을 버린다고 해야 한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들어라. 만약 이미 버려졌다면 버린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버린다고 하면 이미 버려졌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버려진 것이면서도 버린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慢)을 끊어 스스로 정(定)에 잘 들면
선한 마음은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고요함에 머물러 방일하지 않으므로
죽음을 넘어 피안에 이른다.

【문】그대는 이러한 말씀을 바로 선설이라고 인정하는가?
【답】그렇다.
【문】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미 이른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하는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하는가?
【답】이미 이른 것을 이른다고 해야 한다.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들어라. 만약 이미 이르렀다면 이른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른다고 하면 이미 이르렀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이르렀다고 하면서도 이른다고 말한다면 올바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반론이 이미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이것 역시 응당 그러할 것이다. 계경에 뜻을 분별하여 놓았으니,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

짐승은 숲으로 돌아가고
새는 공중으로 돌아가며
성(聖)은 열반으로 돌아가고
법은 분별로 돌아간다.

세존께서는 설명하였다. “비구들이여, 잘 알아야 한다. 염(厭)에 의하여 염을 버리고[離染], 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하고, 해탈에 의해 열반한다.”
【문】여기서 무엇을 염이라고 하는가?29)
【답】만약 모든 행에 대해 무학이 염오(厭惡)하고 위역(違逆)하면, 이것을 염이라고 한다.
【문】염에 의하여 이염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염이 무탐(無貪)과 무등탐(無等貪)ㆍ무진(無瞋)과 무등진(無等瞋)ㆍ무치(無癡)와 무등치(無等癡)의 선근과 상응하면, 이것을 염에 의해 염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문】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만약 염을 버리는 것과 상응하는 마음이 이미 승해(勝解)하고 지금 승해하며, 미래에 승해한다면, 이것을 염을 버리는 것에 의해 해탈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해탈에 의해 열반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답】만약 탐을 영원히 끊고, 진을 영원히 끊고, 치를 영원히 끊으며,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으면, 이것을 해탈에 의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세존께서는 “삼계(三界)가 있으니, 단계(斷界)ㆍ이계(離界)ㆍ멸계(滅界)이다”라고 설명하셨다. 무엇을 단계라고 하는가?30)
【답】애결(愛結)을 제외한 나머지 결의 단(斷)을 단계라고 한다.
【문】무엇을 이계라고 하는가?
【답】애결의 단을 이계라고 한다.
【문】무엇을 멸계라고 하는가?
【답】나머지 결에 따르는 모든 법의 단을 멸계라고 한다.
【문】모든 단계는 바로 이계인가?
【답】그렇다.
【문】만약 이계라면 이것은 바로 단계인가?
【답】그렇다.
【문】모든 단계는 바로 멸계인가?
【답】그렇다.
【문】만약 멸계라면 이것은 바로 단계인가?
【답】그렇다.
【문】모든 이계는 바로 멸계인가?
【답】그렇다.
【문】만약 멸계라면 이것은 바로 이계인가?
【답】그렇다.
【문】세존께서는 “삼상(三想)이 있다. 단상(斷想)ㆍ이상(離想)ㆍ멸상(滅想)이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무엇을 단상이라고 하는가?31)
【답】애결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 결(瞋恚結ㆍ憍慢結ㆍ無明結ㆍ見結ㆍ失願結ㆍ疑結ㆍ慳結ㆍ嫉結)을 끊는 모든 상[諸想]의 해(解 : 자각적 지혜를 말함)를 단상이라 한다.
【문】이상이란 무엇인가?
【답】애결을 끊는 모든 상의 해를 이상이라 한다.
【문】멸상이란 무엇인가?
【답】나머지 결에 따르는 모든 법을 끊는 모든 상의 해를 멸상이라고 한다.
024_0919_b_10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嶽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024_0919_b_13L阿毘達磨發智論卷第一
024_0919_b_14L尊者迦多衍尼子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024_0919_b_16L雜薀第一中世第一法納息第一
024_0919_b_17L世第一法七
頂二煖身見
十一見攝斷
此章願具說
024_0919_b_19L云何世第一法
若心心所法——爲等無閒入正性離生是謂世第一法作是說若五根——爲等無閒入正性離是謂世第一法於此義中若心所法——爲等無閒入正性離生是謂世第一法
024_0919_c_02L何故名世第一法
如是心心所法於餘世閒法——爲最爲勝爲長爲尊爲上爲妙故名世第一法復次如是心心所法爲等無間——捨異生性得聖性捨邪性得正性能入正性離故名世第一法
024_0919_c_07L世第一法當言欲界繫色界繫無色界繫耶
應言色界繫
024_0919_c_09L何故此法不應言欲界繫耶
非以欲界道能斷蓋制纏令欲界纏不復現起乃以色界道能斷蓋制纏欲界纏不復現起若以欲界道能斷蓋制纏令欲界纏不復現起如是世第一法應言欲界繫然非以欲界道能斷蓋制纏令欲界纏不復現起以色界道能斷蓋制纏令欲界纏不復現起是故世第一法不應言欲界
何故此法不應言無色界繫耶
024_0919_c_18L入正性離生——先現觀欲界苦爲苦合現觀色無色界苦爲苦聖道起辯欲界事後合辯色無色界事
024_0919_c_21L若入正性離生——先現觀無色界苦爲苦合現觀欲色界苦爲苦聖道起先辯無色界事後合辯欲色界事如是世第一法應言無色界繫
024_0920_a_02L然入正性離生——先現觀欲界苦爲苦後合現觀色無色界苦爲苦聖道起先辯欲界事後合辯色無色界事是故世第一法不應言無色界繫
024_0920_a_06L復次入無色定除去色想非除色想能知欲界若緣此法起苦法智忍卽緣此法起世第一
024_0920_a_09L世第一法當言有尋有伺無尋唯無尋無伺耶
應言或有尋有伺或無尋唯伺或無尋無伺
024_0920_a_11L云何有尋有伺
若依有尋有伺三摩地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a_13L云何無尋唯
若依無尋唯伺三摩地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a_15L云何無尋無
若依無尋無伺三摩地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a_17L世第一法當言樂根相應喜根相應捨根相應耶
應言或樂根相應或喜根相應捨根相應
024_0920_a_20L云何樂根相應
若依第三靜慮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a_21L云何喜根相應
若依初二靜慮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a_23L云何捨根相應
若依未至第四靜慮入正性離生彼所得世第一法
024_0920_b_02L世第一法當言一心多心耶
應言一心
024_0920_b_03L何故此法非多心耶
從此心心所法無間不起餘世閒心唯起出世心若當起餘世閒心者爲劣爲等爲勝若當劣應不能入正性離生何以故非以退道能入正性離生故若當等者不能入正性離生何以故先以此類道不能入正性離生故若當勝者應非世第一法後方是世第一法
024_0920_b_11L第一法當言退不退耶
應言不退
024_0920_b_12L何故此法定不退耶
024_0920_b_13L世第一法隨順諦趣向諦臨入諦此彼中閒無容得起不相似心令不得入聖諦現觀壯士度河度谷度山度崖中閒無能迴轉彼身還至本處或往餘處所發起增上身行未至所趣必不止世第一法亦復如是隨順諦趣向臨入諦此彼中閒無容得起不相似心令不得入聖諦現觀
024_0920_b_21L贍部洲有五大河一名殑伽二名閻母那名薩洛踰四名阿氏羅筏底五名莫如是五河——隨順大海趣向大海入大海中閒無能迴轉彼流還至本或往餘處彼決定能流入大海第一法亦復如是隨順諦趣向諦入諦彼此中閒無容得起不相似心令不得入聖諦現觀
024_0920_c_06L復次世第一法與苦法智忍作等無閒緣無有一法速疾迴轉過於心者可於爾時能作障礙令不得入聖諦現觀是故此法決定不退
024_0920_c_10L云何頂
於佛法僧生小量信如世尊爲波羅衍拏摩納婆說
024_0920_c_11L若於佛法僧
生起微小信
儒童應知彼
名已得頂法
024_0920_c_13L云何頂墮
如有一類親近善士聞正法如理作意信——佛菩提法是善僧修妙行色無常受想行識無常善施設苦諦善施設集滅道諦彼於異時不親近善士不聽聞正法不如理作意於已得世俗信退沒破壞亡失故名頂墮如佛卽爲波羅衍拏摩納婆說
024_0920_c_21L若人於如是
三法而退失
我說彼等類
應知名頂墮
024_0920_c_23L云何煖
若於正法毘奈耶中有少信受如世尊爲馬師井宿二苾芻說此二愚人離我正法及毘奈耶譬如大地去虛空遠此二愚人於我正法毘奈耶中無少分煖
024_0921_a_05L此二十句薩迦耶見幾我見幾我所見耶
五我見等隨觀——色是我想行識是我十五我所見等隨觀——我有色色是我所我在色中我有受想行識受想行識是我所我在受想行識中
024_0921_a_11L若非常常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
邊執見常見攝見苦所斷
024_0921_a_13L若常非常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邪見攝見滅所斷
024_0921_a_15L若苦樂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取劣法爲勝取攝見苦所斷
024_0921_a_17L若樂苦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邪見攝見滅所斷
024_0921_a_18L若不淨淨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
取劣法爲勝見取攝見苦所斷
024_0921_a_20L若淨不淨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
邪見攝此有二種若謂滅爲不淨——見滅所斷若謂道爲不淨——見道所
024_0921_b_01L若非我我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有身見攝見苦所斷
024_0921_b_02L若非因因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因謂因戒禁取攝見苦所斷
024_0921_b_04L若因非因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見攝見集所斷
024_0921_b_06L若有無見於五見——何見攝何見所斷
邪見攝此有四種若謂無苦——見苦所斷若謂無集——見集所斷若謂無滅——見滅所斷若謂無道——見道所斷
024_0921_b_10L若無有見於五見——何見攝見所斷
此非見是邪智
024_0921_b_11L雜蘊第一中智納息第二
024_0921_b_12L一智識因緣
二心念祭祀
三根用過去
疑名句文身
佛訶責六因
隨眠心及斷
因境斷識義
此章願具說
024_0921_b_15L頗有一智知一切法耶
024_0921_b_16L若此智一切法非我此智何所不知
不知自性及此相應俱有諸法
024_0921_b_18L頗有一識了一切法耶
024_0921_b_19L若此識生一切法非我此識何所不了
不了自性此相應俱有諸法
024_0921_b_21L頗有二心展轉相因耶
所以者何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俱生非後心爲前心
024_0921_c_01L頗有二心展轉相緣耶
心起無未來卽思惟此起第二心有心起有未來卽思惟此起第二有心起無未來道卽思惟此起第二心有心起有未來道思惟此起第二心有二知他心者二心展轉相緣
024_0921_c_07L何故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俱生
無第二等無閒緣故有情一一心相續轉故
024_0921_c_09L補特伽羅旣不可得又無前心往後心理何緣能憶本所作事
024_0921_c_11L有情於由串習力得如是同分智隨所更能如是知有二造印者能了自他所造印字雖彼二人不往相問汝云何造此字亦不相答我如是造此字而彼二人由串習力得如是同分智了自他所造印字有情亦爾由串習得如是同分智隨所更事能如是
024_0921_c_19L又如有二知他心者互相知心彼二人不往相問汝云何知我心不相答我如是知汝心而彼二人串習力得如是同分智互相知心情亦爾由串習力得如是同分智所更事能如是知復次一切心心所於所緣定安住所緣又以受意爲因力强念便不忘
024_0922_a_03L何緣有情忘而復
有情同分相續轉時於法能起相屬智見又以受意爲因力强念便不忘
024_0922_a_06L何緣有情憶而復忘
有情異分相續轉時於法不起相屬智見以受意爲因力劣念便忘失
024_0922_a_08L何緣祭祀餓鬼則到非餘趣耶
024_0922_a_09L趣法爾得如是處我分是故祭祀則到非餘孔雀鸚鵡舍利命命鳥等雖如意自在飛翔虛空神力威德不大於人然彼趣法爾如是處我分能飛翔虛空鬼趣亦爾由法爾力祭祀則到餘趣不爾
024_0922_a_15L如一類那洛迦能憶宿住亦知他心一類傍生一類餓鬼能憶宿住亦知他心及起煙焰興雲致雨作寒熱等雖能作是事而神力威德不大於人然彼趣法爾得如是處我分作是事鬼趣亦爾由法爾力祭祀則餘趣不爾
024_0922_a_22L復次有人長夜起如是如是愛樂我當娶婦爲兒娶婦孫娶婦令生子孫紹繼不絕我命終若生鬼趣彼念我故當祭祀我彼長夜有此欲樂是故祭祀則到
024_0922_b_04L當言一眼見色二眼見色耶
二眼見色所以者何若合一眼起不淨識開二眼時起淨識故設合一眼起如是識開二眼時亦起此識不應言二眼見色然合一眼起不淨開二眼時便起淨識是故應言眼見色如合亦爾如眼見耳聞聲鼻嗅香亦爾
024_0922_b_11L諸過去彼一切不現耶
024_0922_b_12L應作四句有過去非不現如具壽鄔陁夷言
024_0922_b_13L一切結過去
從林離林來
樂出離諸欲
如金出山頂
024_0922_b_15L有不現非過去如有一或以神通或以呪術或以藥物或以如是生處得智有所隱沒令不顯現有過去不現所有行——已起等起已生等生已轉現轉已集已現已過去已盡滅已離變是——過去過去分過去世攝有非過去亦非不現除前相
024_0922_b_22L諸過彼一切盡耶
024_0922_b_23L應作四句有過去非盡如具壽鄔陁夷言一切結過乃至廣說有盡非過去如佛言此聖弟子已盡地獄已盡傍生已盡餓鬼已盡所有嶮惡趣坑有過去所有行——已起等起乃至廣說非過去亦非盡除前相
024_0922_c_06L復次若依結斷說者有結過去非盡結過去——未斷未遍知未滅未變吐有結盡過去結未來——已斷已遍知已滅變吐有結過去亦盡結過去——已斷已遍知已滅已變吐有結非過去非盡結未來——未斷未遍知未滅變吐及結現在
024_0922_c_13L諸過去彼一切滅耶
應作四句有過去非滅如具壽鄔陁夷言一切結過去乃至廣說非過去依世俗小街小舍小器小眼言是滅街乃至滅眼有過去所有行——已起等起乃至廣說非過去亦非滅除前相
024_0922_c_19L復次若依結斷說者有結過去非滅結過去——未斷未遍知未滅未變吐有結滅過去結未來——已斷已遍知已滅變吐有結過去亦滅結過去——已斷已遍知已滅已變吐有結非過去非滅結未來——未斷未遍知未滅變吐及結現在
024_0923_a_03L若於苦生疑——此是苦耶此非苦耶言一心多心耶
應言多心此是苦是一心此非苦耶是第二心於集滅道生疑亦爾
024_0923_a_07L頗有一心——有疑無疑
所以者何於苦諦——若言是苦耶此心有疑若言此是苦此心無疑若言此非苦耶此心有疑若言此非苦此心無疑於集滅道應知亦爾
024_0923_a_11L云何多名身
多名號異語增語等想假施設是謂多名身
024_0923_a_13L云何句身
諸句能滿——未滿足義於中連是謂多句身如世尊說
諸惡莫作
諸善奉行
自淨其心
是諸佛教
如是四句各能滿足未滿足義於中連合是謂多句身
024_0923_a_19L云何多文身
字衆是謂多文身如世尊說
欲爲頌本
文卽是字
頌依於名
及造頌者
024_0923_a_22L如佛世尊訶諸弟子稱言癡人此有何義
是訶責語佛世尊訶責弟稱言癡人如今親教及軌範師——若有近住依止弟子起諸過失便訶責汝爲愚癡不明不善世尊亦爾諸弟子稱言癡人
024_0923_b_05L何故世尊訶諸弟稱言癡人
彼於世尊教誡教授不隨義行不隨順不相續復次彼於聖教作愚癡事空無有果無出無味無有勝利違越佛教於諸學處不能受學故佛訶彼稱言癡人有六因相應因……乃至能作因
024_0923_b_11L云何相應因
受與受相應法爲相應因受相應法與受爲相應因……想思作意勝解三摩地……慧與慧相應法爲相應因慧相應法與慧爲相應因是謂相應
024_0923_b_16L云何俱有因
心與心所法爲俱有心所法與心爲俱有因心與隨心轉身業語業爲俱有因心與隨心轉不相應行爲俱有因隨心轉不相應行與心爲俱有因復次俱生四大種展轉爲俱有因是謂俱有因
024_0923_b_21L云何同類因
前生善根與後生自界善根及相應法爲同類因過去善根與未現在自界善根及相應法爲同類現在善根與未來自界善根及相應法爲同類因如善根不善無記根亦爾差別者不善中除自界是謂同類因
024_0923_c_05L云何遍行因
前生見苦所斷遍行隨眠與後生自界見集滅道所斷隨眠及相應法爲遍行因過去見苦所斷遍行隨眠與未來現在自見集滅道修所斷隨眠及相應法爲遍行因現在見苦所斷遍行隨眠與未來自界見集滅道修所斷隨眠及相應法爲遍行因如見苦所斷集所斷亦爾是謂遍行因
024_0923_c_13L云何異熟
諸心心所法受異熟色心所心不相應行此心心所法與彼異熟爲異熟因復次諸身語業受異熟心所法心不相應行此身語業與彼異熟爲異熟因復次諸心不相應行受異熟色心所法心不相應此心不相應行與彼異熟爲異熟是謂異熟因
024_0923_c_21L云何能作因
眼及色爲緣生眼識此眼識以彼眼色相應法彼俱有法及耳聲耳識鼻香鼻識舌味舌識身觸身識意法意識有色無色有見無見有對無對有漏無漏有爲無爲等一切法爲能作因除其自性如眼識耳鼻舌身意識是謂能作因
024_0924_a_05L諸心由隨眠故名有隨眠心彼隨眠於此心隨增耶
或隨增或不隨增云何隨增彼隨眠與此心相應未及緣此心云何不隨增彼隨眠與此心相應已斷
024_0924_a_10L設隨眠於心隨增此心但由彼隨眠故名有隨眠心耶
或由彼非餘或由彼及餘云何由彼非餘此心未斷云何由彼及餘苦智已生集智未生若心見苦所見集所斷隨眠所緣
024_0924_a_15L諸心由隨眠名有隨眠心彼隨眠於此心當斷
或當斷或不當斷云何當斷彼隨眠緣此心云何不當斷彼隨眠與此心相應
024_0924_a_19L諸隨眠因何當斷
因所緣
024_0924_a_20L汝說隨眠因所緣當斷
如是
024_0924_a_21L若爾諸隨眠見滅道所斷有漏彼隨眠因何當斷若言此斷彼斷俱不應理
見滅道所斷無漏緣隨因所緣故斷由此斷故彼亦斷
024_0924_b_01L隨眠於心當斷此心但由彼隨眠故名有隨眠心耶
或由彼非餘或由彼及餘云何由彼非餘心不染污所斷云何由彼及餘心染污
024_0924_b_05L云何因境斷識
苦智已生集智未若心——見集所斷見苦所斷緣是謂因境斷識
於此識幾隨眠隨增
十九
024_0924_b_08L一心耶
024_0924_b_09L不爾未離欲染苦法智已生集法智未生若心——欲界見集所見苦所斷緣此因境斷識——欲界見集所斷七隨眠隨增
024_0924_b_12L已離欲染未離色染苦類智已生集類智未生若心——色界見集所斷見苦所斷緣此因境斷識——色界見集所斷六隨眠隨增
024_0924_b_15L離色染苦類智已生集類智未生心——無色界見集所斷見苦所斷緣因境斷識——無色界見集所斷六隨眠隨增
024_0924_b_19L雜薀第一中補特伽羅納息第三
024_0924_b_20L緣起緣息依
心依無有愛
心脫依界想
此章願具說
024_0924_b_22L一補特伽羅於此生十二支緣起——幾過去幾未來幾現在耶
二過去無明二未來老死八現在名色六處
024_0924_c_03L如世尊說明緣行取緣有云何無明緣行云何取緣有
無明緣行者此顯示業——先餘生中造作增長得今有異熟及已受異熟取緣有者——此顯示業——現在生中造作增長得當有異熟
024_0924_c_08L無明緣行取緣有何差別
無明緣行者廣說如前此業緣世尊說一煩惱謂無明取緣有者廣說如前此業緣世尊說一切煩惱謂諸取是謂差別
024_0924_c_12L行緣有無明不緣明耶
024_0924_c_13L頗有行緣明不緣無明耶
024_0924_c_14L頗有行緣無明亦緣明耶
024_0924_c_15L頗有行不緣無明亦不緣明耶
024_0924_c_16L所以者何
無一有情從久遠來不於聖道謗言非道先謗道已——彼於後時造作增長感大地業或於後時造作增長感小王業或於後時造作增長感大王業或於後時造作增長轉輪王業由此因此緣由彼聖道展轉感得大地所有——城邑聚落非人穀稼藥草樹木叢林增長滋茂如是前心四緣於後心但爲一增上緣
024_0925_a_02L復次若依因緣說頗有行緣無明不緣明耶
無明異熟及染污行
024_0925_a_04L頗有行緣明緣無明耶
除初明諸餘無漏
頗有行緣無明亦緣明耶
024_0925_a_06L行不緣無明亦不緣明耶
除無明異熟諸餘無覆無記行及初善有漏行
024_0925_a_09L入息出息當言依身轉耶依心轉耶
024_0925_a_10L應言亦依身轉亦依心如其所應若入出息但依身轉依心轉則在無想定滅盡定位入出亦應轉若入出息但依心轉不依身轉則無色界有情入出息亦應轉若入出息但依身心轉不如所應在卵㲉及母胎中羯剌藍頞部曇尸鍵南諸根未滿未熟幷在第四靜慮入出息亦應轉
024_0925_a_18L以入出息——亦依身亦依心轉及如所應是故下從無間地獄上至遍淨其中有情諸根滿入息出息依身心轉
024_0925_a_21L如有色有情——心相續依身轉無色有情——心相續依何轉耶
依命根衆同及餘如是類心不相應行
024_0925_b_01L有愛當言——見所斷修所斷耶
應言修所有作是說無——有愛——或見所斷或修所斷云何見所斷謂於見所斷法而貪云何修所斷謂於修所斷法而貪於此義中有愛但應言修所斷
024_0925_b_07L汝說無——有愛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愛耶
如是
024_0925_b_08L汝何所欲諸預流者爲起如是心若我死後壞無有豈不安樂
不爾聽我所無——有愛唯修所斷諸預流者斷此愛則應說預流者起如是心——我死後斷壞無有豈不安樂若預流者不起如是心若我死後斷壞無有豈不安樂則不應說無——有愛唯修所諸預流者未斷此愛作如是說俱不應理
024_0925_b_17L汝等亦說地獄傍生鬼異熟愛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愛
024_0925_b_19L汝何所欲諸預流者爲起如是心我當作哀羅筏拏龍王善住龍王……琰魔鬼王統攝鬼界諸有情
024_0925_b_21L不爾聽我所說若地獄傍生鬼異熟愛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愛則應說流者起如是心——我當作哀羅筏拏龍王……乃至廣說若預流者不起如是心——當作哀羅筏拏龍王……乃至廣說則不應說地獄傍生鬼異熟愛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愛作如是說俱不應理
024_0925_c_06L汝等亦說諸纏所纏故害父母此纏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
如是
024_0925_c_08L汝何所欲諸預流者起如是纏故害父母命耶
不爾我所說纏所纏故害父母命此纏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纏則應預流者起如是纏故害父母命預流者不起如是纏故害父母命不應說諸纏所纏故害父母命此纏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纏作如是說俱不應理
024_0925_c_16L汝等亦說於修所斷無有而貪此貪唯修所斷諸預流未斷此貪
如是
024_0925_c_18L汝何所欲預流者爲緣此起愛耶
不爾聽我所說於修所斷法無有而貪此貪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貪則應預流者緣此起愛若預流者不緣此起愛則不應說於修所斷法無有而貪此貪唯修所斷諸預流者未斷此貪作如是說俱不應理彼旣應理此亦應然
無有名何法
三界無常
024_0926_a_03L如世尊說心解脫貪瞋癡何等心得解脫有貪瞋癡心耶離貪瞋癡心耶
024_0926_a_05L離貪瞋癡心得解脫有作是說貪瞋癡相應心得解脫彼不應作是說以者何此心與貪瞋癡相合相應相雜而貪瞋癡未斷心不解脫貪瞋癡心便解脫
024_0926_a_10L世尊亦說苾芻當知日月輪五翳所翳不明不照不廣不何等爲五一雲二煙三塵四霧五曷邏呼阿素洛手如日月輪非與五翳相合相應相雜彼翳未離此日月輪不明不照不廣不淨彼翳若離此日月輪明照廣淨
024_0926_a_16L如是非此心與貪瞋癡相合相應相雜而貪瞋癡未斷不解脫貪瞋癡斷心便解脫
024_0926_a_18L何等心解脫——過去耶未來耶現在耶
未來無學心生時解脫一切障
024_0926_a_20L其事如何
如無閒道金剛喩定將滅解脫道盡智將生若無間道金剛喩定正滅解脫道盡智正生爾時名未來無學心生時解脫一切障
024_0926_b_01L未解脫心當言解脫已解脫心當言解脫耶
024_0926_b_02L已解脫心當言解脫若已解脫不應言解若解脫不應言已解脫已解脫心而言解脫不應正理今應問彼——如世尊說
024_0926_b_06L若斷愛無餘
如蓮華處水
苾芻捨此彼
如蛇脫故皮
024_0926_b_08L汝許此說是善說耶
如是
024_0926_b_09L汝何所爲已捨言捨未捨言捨耶
已捨言捨聽我所說若已捨不應言捨不應言已捨已捨而言捨不應正世尊說
024_0926_b_13L斷慢自善定
善心一切脫
一靜居不逸
越死到彼岸
024_0926_b_15L汝許此說是善說耶
如是
024_0926_b_16L汝何所爲已到言到未到言到耶
已到言到聽我所說若已到不應言到不應言已到已到而言到不應正彼旣應理此亦應然故於契經分別義如世尊說
024_0926_b_21L獸歸林藪
鳥歸虛空
聖歸涅槃
法歸分別
024_0926_b_23L如世尊說苾芻當知依厭離染依離染解脫依解脫涅槃云何厭
若於諸行無學厭惡違逆是謂厭
024_0926_c_03L云何依厭離染
若厭相應——無貪無等貪無等瞋無癡無等癡——善根是謂依厭離染
024_0926_c_06L云何依離染解脫
若離染相應心——已勝解今勝解當勝解是謂依離染解脫
024_0926_c_08L云何依解脫涅槃
貪永斷瞋永斷癡永斷一切煩惱永是謂依解脫涅槃
024_0926_c_10L如世尊說有三界斷界離界滅界何斷界
除愛結餘結斷名斷界
024_0926_c_12L云何離界
愛結斷名離界
024_0926_c_13L云何滅界
諸餘順結法斷名滅界
024_0926_c_14L諸斷界是離界耶
如是
024_0926_c_15L設離界是斷界耶
諸斷界是滅界耶
如是
024_0926_c_16L設滅界是斷界耶
如是
024_0926_c_17L諸離界是滅界耶
如是
024_0926_c_18L設滅界是離界耶
如是如世尊說有三想斷想離想滅想
024_0926_c_19L何斷想
除愛結餘結斷諸想解斷想
024_0926_c_21L云何離想
愛結斷諸想解離想
024_0926_c_22L云何滅想
諸餘順結法斷諸想解名滅想
說一切有部發智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1)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송당왕장성교서(宋唐王藏聖教序)이다.
  2. 2)2) 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3)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4) 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5) 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6) 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7) 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8) 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9) 고종이 황태자일 때 이 기문을 지었다는 뜻이다. 춘궁(春宮)은 황태자를 가리킨다.
  10. 10)10)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1. 11)11) 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2. 12)12) 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3. 13)13) 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4. 14)14) 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5. 15)15) 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6. 16)16) 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7. 17)17) 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구(久)’로 번역하였다.
  18. 18)18) 원문에는 ‘양(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양(揚)’으로 번역하였다.
  19. 19)19)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20. 1)세제일법(世第一法)에 관한 모든 논의.
  21. 2)정선근(頂善根)과 그것의 물러남[退]에 대한 것이다.
  22. 3)영혼과 같은 실체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인간 일반을 가리킨다.
  23. 4)난선근(煖善根)에 대한 것이다.
  24. 5)살가야견(薩迦耶見 : ṣatkāya dṛṣṭi)에 대한 것이다.
  25. 6)모든 악견(惡見)의 본질과 끊어짐[斷]에 대한 것이다.
  26. 7)한 찰나의 지(智)ㆍ식(識)과 모든 법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27. 8)두 찰나 마음의 상호 인(因)ㆍ연(緣) 관계에 대한 것이다.
  28. 9)두 마음[二心]의 동시 불생기(不俱起)에 대한 것이다.
  29. 10)기억의 지속과 망실에 대한 것이다.
  30. 11)제사를 지내면 아귀가 이에 응하는 이유와 아귀의 숙주지(宿住智)에 대한 것이다.
  31. 12)sāri, sārikā, 추로(鶖鷺), 혹은 구욕조(鸜鵒鳥), 백설조(百舌鳥) 등으로 한역하며,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구관조의 일종이다.
  32. 13)생사를 함께 하는 일신양두(一身兩頭)의 새.
  33. 14)근(根)의 작용, 특히 이안견색(二眼見色)에 대한 것이다.
  34. 15)과거와 불현(不現)ㆍ멸진(滅盡)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35. 16)『중아함경(中阿含經)』 29권 『용상경(龍象經)』(대정장1, p. 608 중하).
  36. 17)의혹의 본성에 대한 것이다.
  37. 18)이하 명(名 : nāma)ㆍ구(句 : pada)ㆍ문(文 : vyañjana) 일반에 대한 것이다.
  38. 19)어리석은 이[癡人]에 대한 논의이다.
  39. 20)육인론(六因論) 일반에 대한 것이다.
  40. 21)유수면심과 그 수증(隨增) 및 단멸에 대한 것이다.
  41. 22)인경단식(因境斷識 : 변행인과 소연이 이미 끊어진 識)에 대한 것이다.
  42. 23)12지(支)의 삼세(三世) 관계에 대한 것이다.
  43. 24)무명과 행(行), 취(取)과 유(有)의 인과관계에 대한 것이다.
  44. 25)무색계 유정의 심상속의 근거에 대한 것이다.
  45. 26)무유애(無有愛 : vibhavaṭṛṣṇa)의 견(見)ㆍ수소단(修所斷)에 대한 것이다.
  46. 27)해탈심의 본성에 대한 것이다.
  47. 28)해탈심의 주체와 삼세와의 관계이다.
  48. 29)염(厭 : nirveda)ㆍ이염(離染 : virāga)ㆍ해탈(mokṣa)ㆍ열반(nirvāṇa)에 대한 것이다.
  49. 30)단(斷)ㆍ이(離)ㆍ멸(滅) 삼계(三界)에 대한 것이다.
  50. 31)단(斷)ㆍ이(離)ㆍ멸(滅) 삼상(三想)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