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4_1105_c_01L아비달마법온족론 제3권
024_1105_c_01L阿毘達磨法薀足論卷第三


존자 목건련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024_1105_c_02L尊者大目乾連造


3. 증정품 ②
024_1105_c_03L三藏法師玄奘奉 詔譯

‘이 승(僧) 가운데서’라 함은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이니, 이것은 곧 모임[聚]을 나타내고 쌓임[蘊]을 나타내며 부류[部]를 나타내고 요약하는 뜻[義]을 나타낸다.
‘예류향(豫流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無間道)를 얻고 예류과(豫流果)를 증득[證]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예류과를 증득한 이이다.
그는 욕계(欲界)의 탐냄[貪欲]과 성냄[瞋恚]에 대하여 세간의 도[世間道]로 말미암아 앞서 아직 많은 부분의 품류를 끊지 못했으며 4성제(聖諦)에 대하여 앞서 아직 현관(現觀)하지 못하고 이제 현관을 닦고 있으므로 ‘예류향’이라 한다.
024_1105_c_04L證淨品第三之餘
‘예류과(豫流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이미 3결(結)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안 것이니, 유신견(有身見)과 계금취(戒禁取)와 의(疑)가 그것이다. 그는 이 끊어진 것[斷] 가운데 머무르면서 아직 더 나아가 일래과(一來果)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않는 이이므로 ‘예류과’라 한다.
‘일래향(一來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를 얻고 일래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일래과를 증득하고 있는 이이다.
그는 욕계의 탐냄과 성냄에 대하여 세간의 도로 말미암아 혹은 먼저 이미 많은 부분의 품류를 끊었으며 4성제에 대하여는 먼저 아직 현관하지 못하고 이제 현관을 닦고 있으며 혹은 예류과에 머무른 뒤에 나아가 일래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으므로 ‘일래향’이라 한다.
024_1105_c_05L於此僧中者佛弟子衆中此卽顯聚顯薀顯部顯要略義預流向者已得無閒道能證預流果謂此無閒證預流果彼於欲界貪欲瞋念由世閒道先未能斷多分品類於四聖諦先未現觀今脩現觀名預流向
024_1106_a_02L‘일래과(一來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이미 3결(結)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알았으며 그리고 많은 부분의 탐냄과 성냄을 끊은 이이다. 그는 이러한 끊어진 것에 머무르면서 아직 나아가 불환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않는 이이므로 ‘일래과’라 한다.
‘불환향(不還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의 불환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불환과를 증득하고 있는 이이다.
그는 욕계의 탐냄과 성냄에 대하여 세간의 도로 말미암아 혹은 먼저 영원히 끊게 되었으나 4성제에 대하여는 앞에서 아직 현관하지 못했고 여기에서 현관을 닦고 있으며 혹은 일래과에 머무른 뒤에 더 나아가 불환과의 증득을 구하므로 ‘불환향’이라 한다.
024_1105_c_11L預流果者謂現法中已於三結永斷遍知謂有身見戒禁取彼住此斷中未能進求一來果證名預流果一來向者得無閒道能證一來果謂此無閒證一來果彼於欲界貪欲瞋恚由世閒道或先已斷多分品類於四聖諦先未現觀今脩現觀或住預流果已能進求一來果證名一來向
‘불환과(不還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5순하분결(順下分結)인 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戒禁取)ㆍ의(疑)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를 이미 영원히 끊었고 두루 안다. 그는 이 끊어진 것에 머무르면서 아직 나아가 아라한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지 못하므로 ‘불환과’라 한다.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은 이미 무간도를 얻고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는 이이니, 이는 끊임없이 최상의 아라한과를 증득한 이이다. 혹은 불환과에 머무른 뒤에 더 나아가 아라한과의 증득을 구하고 있으므로 ‘아라한향’이라 한다.
024_1105_c_19L一來果者謂現法中已於三結永斷遍知及斷多分貪欲瞋恚彼住此斷中未能進求不還果證名一來果不還向者已得無閒道能證不還果謂此無閒證不還彼於欲界貪欲瞋恚由世閒道或先永斷於四聖諦先未現觀今脩現或住一來果已能進求不還果證名不還向
‘아라한과(阿羅漢果)’라 함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등 온갖 번뇌를 모두 이미 영원히 끊었으므로 ‘아라한과’라 한다.
‘4쌍(雙)의 보특가라(補特伽羅)’라 함은 예류향ㆍ예류과가 곧 첫 번째의 쌍이요, 일래향ㆍ일래과가 곧 두 번째의 쌍이며, 불환향ㆍ불환과가 곧 세 번째의 쌍이요, 아라한향ㆍ아라한과가 곧 네 번째의 쌍이다.
‘8척(八隻)의 보특가라’라 함은 예류향 등의 보특가라를 여덟 가지로 벌여 세워 저마다 따로따로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들[佛弟子衆]’이라 함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뛰어난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알아듣도록 말한 것이다.
024_1106_a_07L不還果者謂現法中於五順下分結已永斷遍知謂有身見禁取貪欲瞋恚彼住此斷中未能進求阿羅漢果證名不還果阿羅漢向者已得無閒道能證阿羅漢果此無閒證得最上阿羅漢果或住不還果已能進求阿羅漢果證名阿羅漢向
024_1106_b_02L‘계율이 구족하다[戒具足]’고 함은 학(學)ㆍ무학(無學)의 승가[僧]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學]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계율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선정이 구족하다[定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선정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지혜가 구족하다[慧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를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해탈이 구족하다[解脫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024_1106_a_14L阿羅漢果者謂現法中貪瞋癡等一切煩惱皆已永斷名阿羅漢果言四雙補特伽羅者謂預流向預流是第一雙一來向一來果是第二不還向不還果是第三雙阿羅漢阿羅漢果是第四雙八隻補特伽羅者謂顯安立預流向等補特伽羅八種各別佛弟子衆者顯示開曉佛弟子衆具勝功德
‘해탈지견이 구족하다[解脫智見具足]’고 함은 학ㆍ무학의 승가로써 배울 것이 있는 이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지견을 성취하고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청(請)에 응(應)한다’고 함은 보시에 응하고 공양에 응하며 제사[祠祀]에 응하기 때문에 ‘청에 응한다’고 한다.
‘굴(屈)에 응한다’고 함은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면서 적은 공로(功勞)를 지으면서도 큰 과보와 이익을 얻기 때문에 ‘굴에 응한다’고 한다.
024_1106_a_22L戒具足者謂學無學僧成就具足學無學戒定具足者謂學無學僧成就具足學無學定具足者謂學無學僧成就具足學無學慧解脫具足者謂學無學僧成就具足學無學解脫
‘공경(恭敬)에 응한다’고 함은 아는 이거나 모르는 이거나 간에 모두 마땅히 일어나 맞이해야 하고 몸을 굽혀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발에 대고 찬탄하면서 “바르게 행하면서[正行] 안락하십니까?”라고 문안해야 되나니, 이 때문에 ‘공경에 응한다’고 한다.
‘위없다[無上]’는 말은 마치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시되 “온갖 화합한 부류(部類)의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의 제자들을 맨 첫째로 삼나니, 가장 높고[最尊]ㆍ가장 수승하며[最勝]ㆍ맨 위[最上]이고 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無上]”고 하신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위없다’고 한다.
024_1106_b_03L解脫智見具足者謂學無學僧成就具足學無學解脫智見言應請者謂應惠施應供養祠祀故言應請言應屈者謂已惠施善惠施已供養善供養已祠祀善祠少作功勞獲大果利故名應屈
‘복전(福田)’이라 함은 세존께서 아난타에게 말씀하시되 “나는 모든 하늘ㆍ악마ㆍ범(梵)ㆍ사문ㆍ바라문 등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는 것을 받을 만한 이로서 나의 승가[僧]와 같은 이들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아난아, 그러므로 알아라. 만일 나의 승가에 대하여 이미 보시하였고 잘 보시하며 이미 공양하였고 잘 공양하며 이미 제사 지냈고 잘 제사 지내면 적은 공로를 지으면서도 큰 과보와 이익을 얻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또 하늘의 제석(帝釋)이 취봉산(鷲峰山)으로 와서 묘한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물었다.
024_1106_b_08L恭敬者謂若識知若不識知皆應起迎曲躬合掌稽首接足而讚問言至正行得安樂不名應恭敬言無上如世尊告苾芻衆言一切和合部類衆中佛弟子衆最爲第一最尊最最上無上故名無上

모든 법으로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것을
잘 분별하여 연설하시고
온갖 두려움을 초월하신
대교답마(大喬答摩) 높은 이께 머리 조아립니다.
024_1106_b_14L言福田者世尊告阿難陁言我不見有諸天魔沙門婆羅門等天人衆中堪受已惠施善惠施已供養善供養已祠祀善祠祀如我僧者阿難當知若於我僧已惠施善惠施已供養善供養祠祀善祠祀作少功勞獲大果利又如天帝至鷲峯山以妙伽他讚問佛曰

한량없는 중생들이
복을 좋아하여 보시를 닦고
항상 지성껏 신심(信心)을 내며
모든 의지가 있는[有依] 복을 닦고 있습니다.
024_1106_b_21L稽首能辯說
到諸法彼岸
超一切恐怖
大喬荅摩尊

원컨대, 부처님은 가엾이 여기셔서
참되고 훌륭한 복전(福田)을 설하시어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적은 보시로도 큰 과보를 얻게 하소서.
024_1106_b_23L有無量衆生
樂福脩布施
恒發至誠信
脩諸有依福
024_1106_c_02L
세존께서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묘한 게송으로써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024_1106_b_24L願佛垂哀愍
說眞勝福田
令無量衆生
少施獲大果

만일 한량없는 중생들이
복을 좋아해서 보시를 닦고
항상 지성껏 신심을 내어
의지가 있는 복을 닦으면
024_1106_c_02L世尊哀愍諸衆生故以妙伽他告天帝曰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참되고 뛰어난 복전을 설하여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적은 보시로써 큰 과보를 얻게 하리라.
024_1106_c_04L若無量衆生
樂福脩布施
恒發至誠信
脩有依福者

만일 사성향(四聖向)을 행하는 이와
사성과(四聖果)에 머무른 이면
그가 곧 응공(應供)의 진실한 승가[僧]이니
훌륭한 계율ㆍ선정ㆍ지혜를 두루 갖추었다.
024_1106_c_06L我今爲汝等
說眞勝福田
令無量衆生
少施獲大果

이 참되고 뛰어난 승가의 밭[僧田]은
공덕이 심히 넓고 커서
한량없는 이익을 주는 것이
마치 저 사대해(四大海)와 같다.
024_1106_c_07L若行四聖向
及住四聖果
是應供眞僧
具勝戒定慧

조어사(調御士)의 훌륭한 제자들은
이미 법의 광명을 놓으면서
뛰어난 공양을 받을 수 있고
뛰어난 제사를 받을 수 있다.
024_1106_c_08L此眞勝僧田
功德甚廣大
能無量潤益
猶如四大海

적은 승가에게 보시하여도
모든 승가에게 보시한 것이 되며
반드시 큰 과보를 얻게 되나니
나 일체지(一切智)가 칭찬하는 바이다.
024_1106_c_10L調御勝弟子
已發法光明
堪受勝供養
及受勝祠祀

모든 복전 가운데서
승전(僧田)을 가장 뛰어나다 하며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신 바이니
그 보시는 최상의 복을 얻게 된다.
024_1106_c_11L於少僧行施
卽施一切僧
必當獲大果
一切智稱讚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는
적은 보시로도 큰 과보를 얻나니
그러므로 모든 슬기로운 사람들은
마땅히 승가 대중[僧衆]에게 공양해야 한다.
024_1106_c_12L於諸福田中
僧田最爲勝
諸佛所稱歎
施獲最上福

성인 대중들은 묘한 법을 지니고
명(明)ㆍ행(行)ㆍ등지(等持)를 두루 갖추었나니
그러므로 승보(僧寶)에 대하여
보시하는 것이 최상이 된다.
024_1106_c_14L於佛弟子衆
少施獲大果
故諸聰慧人
當供養僧衆

세 가지 청정한 마음으로써
승가에게 옷과 음식을 보시하면
반드시 뛰어난 과보를 얻게 되어
인간과 천상의 착한 사람[善士]이 되며,
024_1106_c_15L聖衆持妙法
具明行等持
故於僧寶中
行施最爲上

결정코 세상마다 사는 동안에
티끌[塵]과 때[垢]와 독화살을 여의고
모든 악한 세계[惡趣]를 뛰어넘어
인간ㆍ천상의 훌륭한 쾌락 받으리라.
024_1106_c_16L以三種淨心
施僧衣飮食
必獲殊勝報
成人天善士

스스로 보배와 재물 바르게 모아
자신과 다른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해
자기 손수 보시를 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큰 과보를 얻게 된다.
024_1106_c_18L定於生生中
離塵垢毒箭
超過諸惡趣
受人天勝樂

총명하고 슬기로운 모든 사람은
청정한 신심으로 보시를 하라.
장차 안락한 세계에 나서
묘한 쾌락과 총명을 받을 것이다.
024_1106_c_19L自正集珍財
自手而行施
爲利自他故
必獲於大果
024_1107_a_02L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복전’이라고 한다.
‘세간의 공양에 응한다’고 함은 성스러운 제자들은 청정하게 세간의 공양에 응할 수 있는 그릇[器]이기 때문이요 이미 공양에 응할 만한 세 가지 청정한 업[三淨業]을 성취했기 때문에 ‘세간의 공양에 응한다’고 한다.
만일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은 모양[相]으로써 승가(僧伽)를 따라 염할[隨念]때의 소견[見]을 근본으로 삼아 증득한 지혜[證智]와 상응하는 모든 믿음과 믿는 성품과 현전에서 믿는 성품과 따르고 인가(印可)하고 애모(愛慕)함과 사랑하고 사모하는 성품과 마음이 맑고 마음이 깨끗함을 승증정이라 한다.
024_1106_c_20L諸有聰慧人
淨信心行施
當生安樂界
受妙樂聰明
만일 이것에 대하여 권하고 격려하고 벌여 세우면 이것을 ‘방편으로 권하고 격려하고 벌려 세워서 승증정 가운데에 머무르게 한다’고 하는 줄 알 것이다.
어떤 것이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聖所愛戒]인가? 무루(無漏)의 몸의 율의[身律儀]와 말의 율의[語律儀]와 생활이 청정함[命淸淨]을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성인이라 하는데 그 분들은 바로 이 계율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뻐하며 참고 순종하면서 거역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이라 한다.
만일 이 법에 대하여 권하고 격려하고 벌여 세우면 이것을 ‘방편으로 권하고 격려하며 벌여 세워서 성인이 사랑하는 계율 가운데 머무르게 한다’고 하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024_1106_c_22L由如是說故名福田世應供者謂聖弟子能淨世閒應供器故已行應供淸淨道故成就應供三淨業故名世應供若聖弟子以如是相隨念僧伽見爲根本證智相應諸信信性現前信性隨順印可愛慕愛慕性心證心是名僧證淨

4. 사문과품(沙門果品)
024_1107_a_06L若能於此勸勵安立當知是名方便勸勵安立令住僧證淨中云何聖所愛戒謂無漏身律儀語律命淸淨是名聖所愛戒何故名爲聖所愛戒謂諸佛及弟子名爲聖於此戒愛慕欣喜忍順不逆是故名爲聖所愛戒若能於此勸勵安立知是名方便勸勵安立令住聖所愛戒中

어느 때 박가범은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4사문과(沙門果)가 있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예류과(豫流果)와 일래과(一來果)와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이니라.”
어떤 것이 예류과인가? 예류과에는 간략히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무위(無爲)이다.
유위의 예류과라고 말함은 그 과(果)에 매달리는 득(得)과 그 득에 다시 매달리는 득과 유학(有學)의 근(根)ㆍ력(力)과 유학의 시라(尸羅)와 유학의 선근(善根)과 8유학법(有學法)과 그에 따르는 종류의 모든 유학의 법이니, 이것을 유위의 예류과라 한다.
024_1107_a_15L沙門果品第四
024_1107_b_02L무위의 예류과라고 말함은 이 가운데서는 3결(結)을 영원히 끊고 그리고 그에 따르는 종류의 결법(結法)을 영원히 끊는 것이니, 곧 그것은 여든여덟[八十八]의 모든 수면(隨眠)을 영원히 끊고 그리고 그에 따르는 종류의 결법을 영원히 끊는 것이다. 이것을 무위의 예류과라 한다.
어떤 것이 일래과인가? 일래과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무위(無爲)이다.
유위의 일래과라고 말함은 그 과(果)에 매달리는 득(得)과 그 득에 다시 매달리는 득[得得]과 유학의 근ㆍ력과 유학의 시라와 유학의 선근과 8유학의 법과 그에 따른 종류인 모든 유학의 법이니, 이것을 유위의 일래과라 한다.
024_1107_a_16L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逝多林給孤獨園爾時世尊告苾芻衆有四沙門果何等爲四謂預流果一來果還果阿羅漢果云何預流果謂預流果略有二種者有爲二者無爲所言有爲預流果謂彼果得及彼得得有學根力學尸羅有學善根八有學法及彼種類諸有學法是名有爲預流果
무위의 일래과라고 말함은 이 가운데서는 3결을 영원히 끊고 그리고 그의 종류인 결법(結法)을 영원히 끊나니, 곧 그것은 여든여덟의 모든 수면을 영원히 끊고 그 종류인 결법을 영원히 끊는 것과 아울러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많은 부분을 영원히 끊으며 그리고 그 종류인 결법의 많은 부분을 영원히 끊게 된다. 이것을 무위의 일래과라 한다.
어떤 것이 불환과인가? 불환과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무위(無爲)이다.
유위의 불환과라고 말함은 그 과(果)에 매달리는 득(得)과 그 득에 다시 매달리는 득[得得]과 유학의 근ㆍ력과 유학의 시라와 유학의 선근과 8유학의 법과 그에 따른 종류인 모든 유학의 법이니, 이것을 유위의 불환과라 한다.
024_1107_b_02L所言無爲預流果者謂於此中三結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卽是八十八諸隨眠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是名無爲預流果云何一來果謂一來果略有二種者有爲二者無爲所言有爲一來果謂彼果得及彼得得有學根力學尸羅有學善根八有學法及彼種類諸有學法是名有爲一來果
024_1107_c_02L무위의 불환과라고 말함은 이 가운데서는 5순하분결(順下分結)을 영원히 끊고 그리고 그 종류인 결법을 영원히 끊는 것이니, 곧 그것은 구십이(九十二)의 모든 수면을 영원히 끊고 그리고 그 종류인 결법을 영원히 끊게 된다. 이것을 무위의 불환과라 한다.
어떤 것이 아라한과인가? 아라한과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유위요, 둘째는 무위이다.
유위의 아라한과라고 말함은 그 과(果)에 매달리는 득(得)과 그 득에 다시 매달리는 득[得得]과 무학(無學)의 근ㆍ력과 무학의 시라와 무학의 선근과 10무학법(無學法)과 그 종류인 모든 무학의 법이니, 이것을 유위의 아라한과라 한다.
024_1107_b_11L所言無爲一來果者謂於此中三結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卽是八十八諸隨眠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幷貪瞋癡多分永斷及彼種類結法多分永斷是名無爲一來果云何不還果謂不還果略有二種一者有爲二者無爲所言有爲不還果者謂彼果得及彼得得有學根力有學尸羅有學善根八有學法及彼種類諸有學法是名有爲不還果
무위의 아라한과라고 말함은 이 가운데서는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온갖 번뇌를 모두 이미 끊었고 온갖 세계[趣]를 초월하였으며 온갖 길[道]을 끊었고 3화(火)가 영원히 고요해졌으며 4폭류(瀑流)를 건넜고 교만과 방일[憍逸]을 영원히 끊었으며 초갈(燋渴)이 영원히 쉬었고 굴택(屈宅)이 영원히 파괴된 최상의 마지막[究竟]이요 최상의 고요함[寂靜]이며 최상의 애욕이 다하고 여의고 사라진 열반(涅槃)이니, 이것을 무위의 아라한과라 한다.
024_1107_b_21L所言無爲不還果者於此中五順下分結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卽是九十二諸隨眠永斷及彼種類結法永斷是名無爲不還果云何阿羅漢果謂阿羅漢果略有二一者有爲二者無爲所言有爲阿羅漢果者謂彼果得及彼得得無學根力無學尸羅無學善根十無學法及彼種類諸無學法是名有爲阿羅漢果

5. 통행품(通行品)
024_1107_c_07L所言無爲阿羅漢果者謂於此中貪瞋癡等一切煩惱皆已永斷超一切趣斷一切道三火永靜渡四瀑流憍逸永離燋渴永息窟宅永破無上究竟無上寂靜無上愛盡離滅涅槃是名無爲阿羅漢果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4통행(通行)이 있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고지통행(苦遲通行)과 고속통행(苦速通行)과 낙지통행(樂遲通行)과 낙속통행(樂速通行)이니라.“
어떤 것을 고지통행(苦遲通行)이라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필추들은 5취온(取蘊)으로 말미암아 능욕을 당하고 훼상을 입는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5취온이 몹시 핍박하고 얽매이는 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걸머진 것 같나니, 이에 목숨을 마치기까지 항상 붙어 따르고 있으므로 곧 이와 같은 5취온에 대하여 몹시 싫어하고 천히 여기고 꾸짖고 헐뜯고 거역하게 된다.
024_1107_c_12L通行品第五
024_1108_a_02L곧 이와 같은 5취온에 대하여 싫어하고 천히 여기고 꾸짖고 헐뜯고 거역하게 되는 것을 고(苦)라 하며 이로 말미암아 곧 어둡고 무디고 연약하고 하열한 신근(信根) 등 5근(根)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5근은 어둡고 무디고 연약하고 하열하기 때문에 최상의 누진(漏盡)을 더디게[遲] 증득하게 된다”고 하신 것과 같다.
이 ‘더디다[遲]’는 말은 급하게도 하지 아니하고 빠르게도 하지 아니하며 달리지도 아니하고 쉽게도 아니하며 빠르지도 않게 진행하여 증득하는 것이다.
‘최상[無上]’이라는 말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법 가운데서 나는 잡염을 여읜 것[離染]을 제일이라고 하나니,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고 최상의 무상(無上)인 것이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무상법에서 얻고 따라 얻으며 접촉하고 함께 접촉하며 증득하고 증득을 짓기 때문에 증득이라고 말한다.
024_1107_c_13L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逝多林給孤獨園爾時世尊告苾芻衆有四通何等爲四謂苦遲通行苦速通行樂遲通行樂速通行云何名爲苦遲通行如世尊說諸有苾芻由五取薀𣣋辱傷毀彼因如是五種取薀逼切拘執如扼重擔乃至命終恒常隨逐便於如是五取薀中深生厭賤呵毀拒逆
‘누진(漏盡)’이라고 함에서 누(漏)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곧 욕루(欲漏)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이다. 이 3누를 다하고 평등하게 다하며 두루 다하고 영원히 다하며 없어져 다하고 원만히 다하기 때문에 ‘누진’이라 한다.
‘통행(通行)’이라 함은 곧 이 행(行)은 뛰어나고 용맹하며 정진하고 책려(策勵)하며 의욕을 내고 몹시 힘써서 4성제(聖諦)에 대하여 현관하는 행[現觀行]을 닦고 예류과ㆍ일래과ㆍ불환과ㆍ아라한과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作證行]을 닦으며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교(憍)ㆍ구(垢) 등에 대하여 영원히 다하는 행[永盡行]을 닦고 극히 공경하고 편안히 머무르며 은근한 사유(思惟)로써 두루 모든 심소(心所)를 가다듬은 뒤에 인(因)이기 때문에, 문(門)이기 때문에, 이치[理]이기 때문에, 모양[相]이기 때문에 통달하는 행[通達行]을 닦나니, 이 때문에 ‘고지통행’이라 한다.
024_1107_c_22L卽於如是五取薀中所生厭賤呵毀拒逆此中名苦由此便起昧劣信等五根如是五根昧故鈍故羸故劣故能遲證得無上漏盡此言遲者非急非疾非駛非易非速證得言無上者如世尊說於諸有爲無爲法中我說離染最爲第一最尊最勝最上無上於無上法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證故名證得
또 이와 같은 행(行)은 구하는 뜻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접촉하고 평등하게 접촉하며 능히 증(證)하고 증을 짓나니, 이 때문에 말하여 ‘고지통행’이라고 한다.
또 이와 같은 행(行)은 말[語]과 비유적인 말[增語]로 말미암고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시설(施設)과 언설(言說)로 말미암아 고지통행이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말하여 ‘고지통행’이라고 한다.
024_1108_a_08L言漏盡者漏謂三漏無明於此三漏能盡等遍盡永盡滅盡圓盡故名漏盡通行者謂卽此行超越勇猛精進策勵生欲翹勤於四聖諦脩現觀行預流果一來不還阿羅漢果脩作證於貪瞋癡慢憍垢等脩永盡行極恭敬安住殷重思惟遍攝諸心所因故門故理故相故脩通達行故名爲苦遲通行
024_1108_b_02L어떤 것을 고속통행(苦速通行)이라고 하는가?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필추들은 5취온(取蘊)으로 말미암아 능욕을 당하고 훼상을 입는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5취온이 몹시 핍박하고 얽매이는 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걸머진 것 같나니, 이에 목숨을 마치기까지 항상 붙어 따르고 있으므로 곧 이와 같은 5취온에 대하여 몹시 싫어하고 천히 여기고 꾸짖고 헐뜯고 거역하게 된다.
곧 이와 같은 5취온에서 생겨나는 싫어하고 천히 여기고 꾸짖고 헐뜯고 거역하게 되는 것을 고(苦)라 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곧 밝고 날카롭고 강하고 왕성한 신근(信根) 등 5근(根)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은 5근은 밝기 때문에, 날카롭기 때문에, 강하기 때문에, 왕성하기 때문에 빠르게[速] 위없는 누진(漏盡)을 증득하게 된다”고 하신 것과 같다.
024_1108_a_17L又如是行於所求由脩習多脩習能得隨得能觸等能證作證是故名爲苦遲通行如是行由語增語由想等想施設言說爲苦遲通行是故名爲苦遲通行
여기서 ‘빠르게[速]’라고 말함은 급하고 빠르며 달리고 쉬우며 빠르게 증득한다는 말이다.
‘위없다[無上]’고 함은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법에서 잡염을 여읨[雜染]을 맨 첫째라고 하나니,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며 맨 위이고 보다 위없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무상법에서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이해하고 평등하게 이해하며 능히 증(證)하고 증을 짓기[作證] 때문에 ‘증득’이라고 한다.
‘누진(漏盡)’이라는 말은 3루(漏)이어서 이 3루에 대하여 능히 다하고 평등하게 다하며 두루 다하고 영원히 다하며 소멸하여 다하고 원만하게 다하기 때문에 ‘누진’이라고 한다.
024_1108_a_21L云何名爲苦速通行如世尊說諸有苾芻由五取薀𣣋辱傷毀彼因如是五種取薀逼切拘執如扼重擔乃至命終恒常隨逐便於如是五取薀中深生厭賤呵毀拒逆卽於如是五取薀中所生厭賤呵毀拒逆此中名苦由此便起明盛信等五根如是五根明故利故强故盛故能速證得無上漏盡
‘통행(通行)’이라 함은 곧 이 행(行)은 초월하고 용맹하며 정진하고 책려(策勵)하며 의욕을 내고 몹시 힘쓰면서 4성제에 대하여 현관하는 행[現觀行]을 닦고 예류과ㆍ일래과ㆍ불환과ㆍ아라한과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作證行]을 닦으며 탐ㆍ진ㆍ치ㆍ만ㆍ교ㆍ구에 대하여 영원히 다하는 행[永盡行]을 닦고 극히 공경하고 편안히 머무르고 은근한 사유(思惟)로써 모든 심소(心所)를 두루 가다듬은 뒤에 인(因)이기 때문에, 문(門)이기 때문에, 이치[理]이기 때문에, 모양[相]이기 때문에, 통달하는 행[通達行]을 닦는 것이니, 이러므로 ‘고속통행’이라 한다.
024_1108_b_06L此言速者能急能疾能駛能易能速證得言無上者如世尊說於諸有爲無爲法中我說離染最爲第一最尊最勝最上無上於無上法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證故名證得言漏盡者漏謂三漏於此三漏能盡等盡遍盡永盡滅盡圓盡故名漏盡
또 이와 같은 행은 구하는 뜻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접촉하고 평등하게 접촉하며 능히 증(證)하고 증을 짓나니, 이 때문에 ‘고속통행’이라 말한다.
또 이와 같은 행은 말[語]과 비유적인 말[增語]로 말미암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미암아 고속통행이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고속통행’이라 한다.
024_1108_b_13L言通行者謂卽此行超越勇猛精進策勵生欲翹勤於四聖諦脩現觀行於預流果一來不還阿羅漢果脩作證行於貪瞋癡慢憍垢等脩永盡行以極恭敬安住殷重思惟遍攝諸心所已因故門故理故相故脩通達行是故名爲苦速通行
024_1108_c_02L어떤 것을 낙지통행(樂遲通行)이라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필추들은 욕계의 악한 법[欲惡不善法]을 떠나 거친 생각[尋]도 있고 세밀한 생각[伺]도 있으며, 여윔으로 기쁨[善]과 즐거움[樂]이 생기는 초정려(初靜慮)에 구족하게 안주(安住)하며,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그쳐 쉬고 안으로 평등하고 청정하며, 마음이 한 갈래[一趣]로 되며,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고 선정[定]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2 정려에 구족하게 안주하며, 기쁨을 여의고 평정[捨]에 머물러서 바르게 기억[正念]하고 바르게 알며[正知] 즐거움을 느끼되 성인이 말한 버림의 생각[捨念]을 갖추어서 안락하게 머무르는 제3 정려에 구족하게 안주하며, 즐거움도 끊고 괴로움도 끊어 먼저 있던 기쁨과 근심이 없어져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의 생각이 청정해지는 제4 정려에 구족하게 안주한다.
024_1108_b_19L又如是行於所求義由脩習多脩習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證是故名爲苦速通行又如是行由語增語由想等想施設言說爲苦速通行是故名爲苦速通行
그는 그러할 때에 자신을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하고 다른 이를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하며 나와 남을 다 같이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한다.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며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즐겁게 하려는 것이니, 모든 해침이 없는[無害] 것 등을 여기서 낙(樂)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곧 어둡고 무디고 연약하고 하열한 신근(信根) 등 5근(根)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5근은 어둡기 때문에, 무디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하열하기 때문에, 더디게[遲] 위없는 누진(漏盡)을 증득하게 된다”고 하신 것과 같다.
024_1108_b_24L云何名爲樂遲通行如世尊說諸有苾芻離欲惡不善法有尋有伺離生喜樂於初靜慮具足安住尋伺止息內等淨心一趣無尋無伺定生喜樂於第二靜慮具足安住離喜住捨念正知身受樂聖所說具捨念安樂於第三靜慮具足安住斷樂斷苦先喜憂沒不苦不樂捨念淸淨於第四靜慮具足安住
여기서 ‘더디다[遲]’는 말은 급한 것이 아니요 빠른 것이 아니며, 달리는 것이 아니요 쉬운 것이 아니며, 빠르게 증득하는 것이 아니다.
‘위없다[無上]’고 함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유위와 무위의 법 가운데서 나는 잡염(雜染)을 여의는 것을 맨 첫째라 하나니,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며 맨 위이고 보다 위없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무상법을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이해하고 평등하게 이해하며 능히 증(證)하고 증을 짓기 때문에 ‘증득’이라 한다.
‘누진(漏盡)’이라 함은 누(漏)란 3루(漏)를 말하는 것이어서 이 3루에 대하여 능히 다하고 평등하게 다하며 두루 다하고 영원히 다하며 소멸하여 다하고 원만하게 다하기 때문에 ‘누진’이라고 한다.
024_1108_c_10L彼於爾時非思自非思害他非思俱害能思自利思利他能利多生能樂多生能愍世能義利樂諸天人衆諸無害等中名樂由此便起昧鈍羸劣信等五如是五根昧故鈍故羸故劣故遲證得無上漏盡
024_1109_a_02L‘통행(通行)’이라 함은 곧 이 행(行)은 초월하고 용맹하며 정진하고 책려하며 의욕을 내고 몹시 힘써서 4성제에 대하여 현관하는 행[現觀行]을 닦으며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作證行]을 닦고 그리고 신경지작증통(神境智作證通)과 천이지작증통(天耳智作證通)과 심차별지작증통(心差別智作證通)과 숙주수념지작증통(宿住隨念智作證通)과 사생지작증통(死生智作證通)과 누진지작증통(漏盡智作證通)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을 닦으며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교(憍)ㆍ구(垢) 등에 대하여 영원히 다하는 행[永盡行]을 닦고 극히 공경하고 편안히 머무르고 은근한 사유(思惟)로써 모든 심소를 두루 가다듬은 뒤에 인(因)이기 때문에, 문(門)이기 때문에, 이치[理]이기 때문에, 모양[相]이기 때문에, 통달하는 행[通達行]을 닦는 것이니, 이러므로 ‘낙지통행’이라 한다.
024_1108_c_16L此言遲者非急非非駃非易非速證得言無上者世尊說於諸有爲無爲法中我說離染最爲第一最尊最勝最上無上無上法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故名證得言漏盡者漏謂三漏此三漏能盡等盡遍盡永盡滅盡圓故名漏盡言通行者謂卽此行超越勇猛精進策勵生欲翹勤於四聖諦脩現觀行於不還果阿羅漢果脩作證行於神境智作證通及天耳智作證通心差別智作證通宿住隨念智作證通死生智作證通漏盡智作證通脩作證行於貪瞋癡慢憍垢等脩永盡行以極恭敬安住殷重思惟遍攝諸心所已因故門故理故相故修通達行是故名爲樂遲通行
또 이와 같은 행은 구하는 뜻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접촉하고 평등하게 접촉하며 능히 증하고 증을 짓는 것이니, 이 때문에 ‘낙지통행’이라고 한다.
또 이와 같은 행은 말과 비유적인 말을 말미암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미암아 낙지통행이 되는 것이니, 이러므로 ‘낙지통행’이라 한다.
어떤 것을 낙속통행(樂速通行)이라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필추들은 욕계의 악한 법을 여의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제4 정려에 구족하게 안주한다.
024_1109_a_09L又如是行於所求義由脩習多脩習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證是故名爲樂遲通行又如是行由語增語由想等想施設言說爲樂遲通行是故名爲樂遲通行云何名爲樂速通行如世尊說諸有苾芻離欲惡不善法廣說乃至於第四靜慮具足安住
그들은 그럴 때에 자신을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요 다른 이를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고 나와 남을 다 같이 해치려는 생각도 아니며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며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즐겁게 하려는 것이니, 모든 해침이 없는[無害] 것 등을 여기서 낙(樂)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곧 밝고 날카롭고 강하고 왕성한 신근(信根) 등의 5근(根)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5근은 밝기 때문에, 날카롭기 때문에, 강하기 때문에, 왕성하기 때문에 빠르게[速] 위없는 누진(漏盡)을 증득하게 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024_1109_a_17L彼於爾時非思自非思害他非思俱害能思自利思利他能利多生能樂多生能愍世能義利樂諸天人衆諸無害等中名樂由此便起明利强盛信等五如是五根明故利故强故盛故速證得無上漏盡
024_1109_b_02L여기서 ‘빠르다[速]’라고 함은 급하고 빠르며 달리고 쉬우며 빠르게 증득한다는 것이다.
‘위없다[無上]’는 말은 마치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유위와 무위의 법 가운데서 나는 잡염(雜染)을 여의는 것을 맨 첫째라 하나니,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면 맨 위이고 보다 위없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무상법에서 얻고 따라 얻으며 접촉하고 평등하게 접촉하며 증득하고 증득을 지으므로 증득이라고 말한다.
‘누진(漏盡)’이라 함은 누(漏)란 3루(漏)이니 3루에 대하여 능히 다하고 평등하게 다하며 두루 다하고 영원히 다하며 소멸하여 다하고 원만하게 다하는 것이다.
024_1109_a_23L此言速者能急能能駛能易能速證得言無上者世尊說於諸有爲無爲法中我說離染最爲第一最尊最勝最上無上無上法能得隨得能觸等觸能證作故名證得言漏盡者漏謂三漏此三漏能盡等盡遍盡永盡滅盡圓
‘통행(通行)’이라 함은 곧 이 행(行)은 초월하고 용맹하며 정진하고 책려하며 의욕을 내고 몹시 힘써서 4성제에 대하여 현관하는 행[現觀行]을 닦으며 불환과와 아라한과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作證行]을 닦고 신경지작증통과 천이지작증통과 심차별지작증통과 숙주수념지작증통과 사생지작증통과 누진지작증통에 대하여 증을 짓는 행을 닦으며 탐ㆍ진ㆍ치ㆍ만ㆍ교ㆍ구 등에 대하여 영원히 다하는 행[永盡行]을 닦고 극히 공경하고 편안히 머무르고 은근한 사유(思惟)로써 모든 심소(心所)를 두루 가다듬은 뒤에 인(因)이기 때문에, 문(門)이기 때문에, 이치[理]이기 때문에, 모양[相]이기 때문에 통달하는 행[通達行]을 닦는 것이니, 이 때문에 ‘낙송통행’이라 한다.
024_1109_b_07L言通行者謂卽此行超越勇猛精進策勵生欲翹勤於四聖諦脩現觀於不還果阿羅漢果脩作證行神境智作證通及天耳智作證通差別智作證通宿住隨念智作證通死生智作證通漏盡智作證通脩作證行於貪瞋癡慢憍垢等脩永盡行以極恭敬安住殷重思惟遍攝諸心所已因故門故理故相故脩通達是故名爲樂速通行
또 이와 같은 행은 구하는 뜻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능히 얻고 따라 얻으며 능히 접촉하고 평등하게 접촉하며 능히 증(證)하고 증을 짓는 것이니, 이러므로 ‘낙송통행’이라 한다.
또 이와 같은 행은 말과 비유적인 말[增語]로 말미암고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미암아 낙속통행이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낙속행’이라 한다.
024_1109_b_16L又如是行所求義由脩習多脩習能得隨得觸等觸能證作證是故名爲樂速通又如是行由語增語由想等想施設言說爲樂速通行是故名爲樂速通行
024_1109_c_02L이 가운데서 만일 고지통행(苦遲通行)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고속통행(苦速通行)으로 하여금 빨리 원만할 수 있게 하고, 만일 낙지통행(樂遲通行)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낙속통행(樂速通行)으로 하여금 빨리 원만할 수 있게 한다.
또 저 고지통행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낙지통행으로 하여금 원만할 수 있게 하고, 만일 고속통행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낙속통행으로 하여금 빨리 원만해지게 할 수 있다.
024_1109_b_21L此中若於苦遲通行脩習多脩習令苦速通行速得圓滿若於樂遲通行脩習多脩習能令樂速通行速得圓滿又若於彼苦遲通行脩習多脩能令樂遲通行速得圓滿若於苦速通行脩習多脩習能令樂速通行速得圓滿

6. 성종품(聖種品)
024_1109_c_05L聖種品第六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4성종(聖種)이 있나니, 이것은 가장 뛰어나고 이것은 종성(種姓)이며 이것은 즐길 만하면서 현재에도 잡된 더러움[離穢]이 없고 전에도 잡된 더러움이 없었고 미래에도 잡된 더러움이 없을 것이며 온갖 사문이나 혹은 바라문이나 하늘ㆍ악마ㆍ범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세간(世間)에서는 능히 그 법을 헐뜯거나 비방할 이가 없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나의 견문이 많은[多聞] 성현 제자는 의복(衣服)을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善足] 여기며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을 찬탄하고 의복을 구하는 인연 때문에 모든 세간으로 하여금 비난이 일게 하지 않는다.
024_1109_c_06L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逝多林給孤獨園爾時世尊告苾芻衆有四聖是最勝是種姓是可樂現無雜穢曾無雜穢當無雜穢一切沙門或婆羅門或天魔梵或餘世閒無能以法而譏毀者何等爲四謂我多聞賢聖弟子隨得衣服便生喜足讚歎喜足不爲求覓衣服因緣令諸世閒而生譏論
설령 구하다가 얻지 못해도 끝내 원통히 여겨 한탄하거나[懊歎] 목을 빼고 바라거나[引頸希望] 가슴을 치며 답답해[拊胸迷悶] 하지 않으며, 또 구하여서 얻은 뒤에도 법답게 받아쓰면서 염착(染著)하거나 즐겨 빠지거나 헷갈리거나 감추어 두거나 저장하지 않으며, 받아 쓸 때에도 그 허물[過患]을 보아서 벗어날 것[出離]을 바르게 안다.
그는 의복을 얻는 대로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끝내 자기 자신을 뽐내거나 해서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그러면서 다잡아 힘쓰고[策勤], 바르게 알며[正知], 생각을 잡아매나니[繫念], 이것을 안주고석성종(安住古昔聖種)이라 하느니라.
024_1109_c_15L若求不得終不懊歎引頸悕望拊胸迷悶若求得已如法受用不生染著耽嗜迷悶藏護貯積於受用時能見過患正知出離彼由隨得衣服喜足終不自擧𣣋蔑於他而能策勤正知繫念是名安住古昔聖種
이와 같은 제자는 음식(飮食)을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나니,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니라.
이와 같은 제자는 침구[臥具]를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나니,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니라.
이와 같은 제자는 끊는 것[斷]을 사랑하고 끊는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워서 끊는 것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며, 닦는 것[修]을 사랑하고 닦는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우면서 닦는 것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한다.
024_1109_c_20L如是弟子隨得飮食便生喜足廣說如前如是弟子隨得臥具便生喜足廣說如前如是弟子愛斷樂斷精勤隨學於斷愛樂愛脩樂脩精勤隨學於脩愛樂
024_1110_a_02L그는 이와 같이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끝내 스스로 뽐내거나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그러면서 다잡아 힘쓰고, 바르게 알며, 생각을 잡아매나니, 이것을 안주고석성종이라 하느니라.
나의 견문이 많은 성현 제자로서 이와 같은 4성종을 성취한 이는 동쪽ㆍ서쪽과 남쪽ㆍ북쪽에 의지하여 살면서도 그는 그곳에 사는 것을 즐기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그는 즐거이 살고 있나니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다같이 참고 견디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앞의 뜻을 정리하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24_1110_a_02L彼由如是斷脩愛樂終不自擧𣣋蔑於他而能策勤正知繫念是名安住古昔聖種謂我多聞賢聖弟子成就如是四聖種者若依東西南北方住不樂居彼而彼樂居於樂不樂俱能含忍爾時世尊爲攝前義而說頌曰

용감한 이는 그곳에 살기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는 즐거이 용감하게 사나니
즐겁거나 즐겁지 않은 가운데서
용감한 이는 다 같이 참고 견딘다.
024_1110_a_08L勇不樂居彼
而彼樂勇居
於樂不樂中
勇者俱含忍

이미 모든 욕심을 버리고
물건에 구애(拘礙)가 없는 이거늘
섬부주(贍部洲)의 진금(眞金)을 가져다준들
누가 다시 그런 이를 비방하겠는가.
024_1110_a_10L旣棄捨諸欲
無物能拘礙
如贍部眞金
誰復應譏毀

‘4성종(聖種)이 있나니, 그것은 가장 뛰어나다[最勝]’고 함은 4성종은 곧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이 다 함께 시설(施設)하여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성(種姓)이다’라고 함은 4성종이니, 이것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옛적부터 집안 종성[家種姓]은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즐길 만하다[可樂]’고 함은 4성종이니, 이것은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이 아득히 먼 오랜 옛날부터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즐길 만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024_1110_a_11L有四聖種是最勝者謂四聖種是一切佛及諸弟子共所施設爲最勝故是種姓者謂四聖種是一切佛及諸弟子古昔不共家種姓故是可樂者謂四聖種是一切佛及諸弟子久遠已來晝夜等時可樂法故
‘현재에도 잡된 더러움이 없다’고 함은 4성종은 현재의 악한 법[惡不善法] 때문에 친근하거나 물이 들지 않으며 그 성품됨이 그것과 뒤섞이지 않아서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도 잡된 더러움이 없었다’고 함은 이 4성종은 과거에도 악한 법에 친근히 하거나 물이 들지 않았으며 그 성품 됨이 그것과 뒤섞이지 않아서 멀리 여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잡된 더러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함은 이 4성종은 미래에도 악한 법에 친근히 하거나 물이 들지 않을 것이며 그 성품 됨이 그것과 뒤섞이지 않아서 멀리 여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024_1110_a_17L現無雜穢謂四聖種不爲現在惡不善法親近塗染性不雜彼能遠離故曾無雜穢者謂四聖種不爲過去惡不善法親近塗染性不雜彼能遠離故當無雜穢者謂四聖種不爲未來惡不善法親近塗染性不雜彼能遠離故
024_1110_b_02L‘모든 사문 등도 그 법을 헐뜯거나 비방할 이가 없다’고 함은 이 4성종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나 혹은 어질고 귀한 모든 이거나 혹은 모든 훌륭한 사람[善士]들이 ‘이 성종은 바로 착하지 않은 법이요 하천[下賤]한 이의 것이다.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면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되고 다른 이를 해치게 되고 자기와 남을 다 같이 해치게 되며 지혜를 소멸하게 하고 그러한 종류를 장애하게 하며 열반을 장애하게 된다. 이 법을 받아 지니면 통혜(通慧)가 생기지 않고 보리(菩提)를 이끌지 못하며 열반을 증득하지 못한다’라고 비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은 성종은 그분들이 비방할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024_1110_a_23L沙門等無能以法而譏毀者謂四聖非一切佛及諸弟子或諸賢貴諸善士而能譏毀謂此聖種是不善是下賤者信解受持能爲自害爲他害能爲俱害能滅智慧能礙彼能障涅槃受持此法不生通慧引菩提不證涅槃聖種非彼譏毀法
‘의복은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긴다’고 함은 누더기[糞掃衣]를 얻거나 혹은 시주(施主)의 의복을 얻거나 좋건 나쁘건 간에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며 취득하여 몸을 가리는 것이니, 그것은 추위 등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喜足]을 찬탄한다’고 함은 의복은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을 자주자주 찬탄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은 오랜 세월 동안 욕심을 적게 하는 것[少欲]과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喜足]과 만족하기 쉽게 하는 것[易滿]과 기르기 쉽게 하는 것[易養]을 잘 이끌며, 모든 악을 줄이고 모든 선을 더욱 자라게 하며 두다(杜多)의 공덕을 속히 원만하게 하고, 모든 살림[資具]에 대하여 그 분수를 잘 알게 하며 자기 자신과 다른 이의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엄숙하고 청정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024_1110_b_09L隨得衣服便生喜足者謂隨所得糞掃衣服或隨所得施主衣服若好若惡便生喜足取得蔽身障寒等故讚歎喜足者謂數讚歎於隨所得衣服喜足謂此喜足能引長夜少欲喜易滿易養損減諸惡增長諸善速圓滿杜多功德於諸資具能善知能令自他身心嚴淨
자주 찬탄한다고 함은 자주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요, 다만 이러한 소견을 지니고 있어서 인연 따라 말을 해주어 다른 이로 하여금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喜足]을 공경하고 중히 여기게 할 뿐이다.
‘의복을 구한 인연 때문에 모든 세간으로 하여금 비난이 일게 하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의 제자는 한 종류의 의복을 구하기 위하여 시주의 집에 가서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모양을 닦고 꾸미고는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하면서 모든 세간으로 하여금 많은 비난을 일게 하는 그런 일들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것과는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다른 이로 하여금 모든 비난을 일게 하지 않는다.
024_1110_b_16L數讚歎者數發言但有此見隨緣而說令他欽重此喜足故非爲求覓衣服因緣令諸世閒生譏論者謂佛弟子非如一爲求衣服往施主家詐現威儀設言論現相硏磨以利求利令諸世閒多生譏論諸佛弟子與彼相違故不令他生諸譏論
024_1110_c_02L‘설령 구하다가 얻지 못해도 끝내 원통히 여기어 한탄하는[懊歎] 등의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의 제자는 의복을 구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도 끝내 원통하게 여겨 한탄하거나 목을 빼고 바라고 있거나 가슴을 쓰다듬으며 답답해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오(懊)’라 함은 마음에 열(熱)이 나고 평등하게 열이 나고 두루 열이 나며 속에서 분이 끓어오르고 불에 타듯 당황해 하며 근심하고 걱정하며 뉘우치고 원망하는 화살과 같은 것이 염통으로 들어가 어쩔 줄 모르게 되고 번거로우면서 원한이 극심한 것을 통틀어서 ‘오’라고 하는 것이요, ‘탄(歎)’이라 함은 이와 같이 마음이 타고 괴로운 뒤에 생각하기를 ‘나에게는 의복이 없는데 어떠한 방법을 써야 저절로 얻게 될까’고 하는 것이니, 이로 인하여 생각하고 있는 일을 여러 가지 말로써 늘어놓는 것을 통틀어서 ‘탄’이라 한다.
024_1110_b_23L若求不得終不懊歎等者謂佛弟子求覓衣食不遂意終不懊歎引頸悕望拊胸迷悶謂心熱等熱遍熱內憤燋惶愁憂悔如箭入心不能自處煩冤懇切名爲懊歎謂如是心熱惱已作是思我無衣服當設何等方略自濟斯發起種種語言述所思惟摠名爲
‘목을 빼고 바라고 있다[引頸希望]’고 함은 원통하게 여겨 한탄하고 나서는 다시 시주의 뜻을 돌리려고 희망하는 것이다.
‘가슴을 치며 답답해한다[捬胸迷悶]’고 함은 오래 기다려도 얻지 못하면 절망해서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 이러한 일들이 없다.
‘만일 구해서 얻은 뒤에는 법답게 받아쓰면서 염착(染著) 등을 내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 제자는 의복을 구하여 얻으면 법답게 수용해서 마음에 염착하거나 즐겨 빠지거나 헷갈리거나 감추어 두거나 저축하지 않는다.
염착 등에 관한 말은 모두 탐애(貪愛)의 앞뒤와 경중과 분위(分位)와 차별을 나타낸다.
024_1110_c_07L引頸悕望者謂懊歎已復引頸悕望施主迴意拊胸迷悶者謂久待不絕所悕望拊胸迷悶諸佛弟子皆無是事若求得已如法受用不生染著等者謂佛弟子求得衣服如法受心無染著耽嗜迷悶藏護貯積著等言皆顯貪愛前後輕重分位差
‘수용할 때에는 그 허물[過患]을 보면서 벗어날[出離] 것을 바르게 안다’고 함은 부처님의 제자가 얻게 된 의복을 받아 쓸 적에는 그의 허물을 보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 의복은 무상하여 바뀌고 움직인다. 구할 때에는 피로하게 되고 수용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면 오래가는 질병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곧 잃고 파괴되는 법이요 이것은 증가하고 손감되는 법이다. 잠깐 동안 얻었다가 도로 잃게 되는 것으로 날쌔고 빨라서 멈추지 않으며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 생긴 것이요 생긴 뒤에는 도로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보존하거나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024_1110_c_14L於受用時能見過患正知出離者謂佛弟子受用所得諸衣服時能見過患謂此衣服無常轉動求時勞倦受用非理生長疾病是失壞法是增減法蹔得還失迅速不停本無今有有已還無不可保信
또 수용할 때에는 벗어날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니, 벗어날 데로 향해 나아가는 지혜를 성취한 까닭이다. 그리고 다만 열반에 나아가기 위하여 의복을 수용할 뿐이다.
또 수용할 때에는 먼저 탐욕을 조복하고 다음에는 탐욕을 끊으며 나중에는 탐욕에서 벗어난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의복에 대하여 염착을 여의고 해탈한다.
‘그는 의복을 얻는 대로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끝내 스스로 뽐내거나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함은 부처님의 제자는 비록 얻게 된 의복에 대하여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더라도 스스로 뽐내면서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024_1110_c_19L又受用時正知出離成就趣向出離慧故爲趣涅槃受用衣服又受用時先調貪欲次斷貪欲後出貪欲由此因緣心於衣服離染解脫彼由隨得衣服喜足終不自擧𣣋蔑他者謂佛弟子雖於所得衣服喜足而不自擧𣣋蔑於他
024_1111_a_02L어느 한 무리가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뽐내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와 같이 욕심이 적고[少欲], 기뻐하고 만족하게[喜足] 여기며, 맡아보는 일이 적고, 하는 일들이 적으며, 잊지 못하거나 그리는 일이 적고, 쉬이 만족하게 여기며, 기르기가 용이하다. 그리고 모든 악을 줄이고 모든 선을 더욱 자라게 하며 빨리 두다(杜多)의 공덕을 원만하게 하고 모든 생활하는 도구에 그 분량을 잘 알며 다른 이를 위하여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일을 잘 찬탄한다’고 하는 그런 이들과는 같지 않다.
024_1111_a_02L非如一類由此喜足而自憍擧作是念言我有如是少欲喜足少事少務少所作少顧戀易滿易養損減諸惡增長諸善能速圓滿杜多功德於諸資具能善知量能善爲他讚歎喜足
또 어느 한 무리가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를 업신여기면서 말하기를 ‘그 밖의 다른 필추들은 모두가 이와 같이 욕심이 적거나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거나 맡아보는 일이 적거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다른 이를 위하여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을 잘 찬탄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그런 이들과는 같지 않나니,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 이런 일이 없다.
‘잘 다잡아 힘쓰고[策勤], 바르게 알며[正知], 생각을 잡아맨다[繫念]’고 함은 부처님의 제자는 의복을 얻는 대로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며 법답게 수용해서 염착하지 않을 뿐더러 그의 허물을 보고 벗어날 것을 바르게 알아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시 다잡아 힘쓰고, 바르게 알며, 생각을 잡아매는 것이다.
024_1111_a_07L非如一類由此喜足𣣋篾於他作是念言餘苾芻等皆無如是少欲喜足少事少務廣說乃至能善爲他讚歎喜足諸佛弟子皆無是事而能策勤正知繫念者謂佛弟子於隨所得衣服喜如法受用不生染著能見過患正知出離不自憍擧不𣣋蔑他復能策勤正知繫念
다잡아 힘쓴다[策勤]는 말은 바른 정진[正精道]을 나타내는 것이요 바르게 안다[正知]는 말은 바른 소견[正見]을 나타내는 것이며 생각을 잡아맨다[繫念]고 함은 바른 염[正念]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은 요약하여 세 가지 도의 갈래[道支]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이것을 안주고석성종(安住古昔聖種)이라 한다’고 함에서 처음의 ‘이것을’이라는 말은 부처님의 제자가 앞에서 설명한 고르고 착한 의요(意樂)를 성취한 것을 나타낸 것이며, 나중의 ‘고석성종이라 한다’는 말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온갖 성현이 모두 이와 같은 성종에 대하여 닦아 익히고 그리고 많이 닦아 익히고서야 비로소 구경(究竟)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024_1111_a_15L言策勤者顯正精進知者顯正見繫念者顯正念此略顯示三種道支是名安住古昔聖種者初是名言顯佛弟子成就前說調善意樂後古昔聖種言顯去來今一切賢聖皆於如是聖種脩習及多脩習方至究竟
024_1111_b_02L그 가운데 ‘안주(安住)’라는 말은 부처님의 제자가 의복을 얻는 대로 기뻐하면서 만족하게 여길 때에 증상(增上)으로 생기는 착한[善] 유루의 도[有漏道]와 무루의 도[無漏道]에 대하여 편안히 머무르고 평등하게 머무르며 두루 머무르고 가까이 머무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제자는 음식(飮食)을 얻는 대로 곧 기뻐하면서 만족하게 여긴다’고 함은 부처님의 견문이 많은[多聞] 성현 제자는 구걸하여 얻게 된 음식이거나 혹은 청(請)하여 얻게 된 음식이 좋거나 나쁘거나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이니, 취득하여 몸을 지탱하고 굶주림을 제거하여 주기 때문이다.
024_1111_a_21L中安住言顯佛弟子於隨所得衣服喜足增上所生善有漏道及無漏道安住等住遍住近住如是弟子隨得飮食便生喜足者謂佛多聞賢聖弟子於隨乞丐所得飮食隨迎請所得飮食若好若惡便生喜取得支身除飢渴故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고 함은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을 찬탄하는 등의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 ‘의복은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긴다’는 데서의 설명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자는 침구[臥具]를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긴다’고 함은 부처님의 견문이 많은 성현 제자는 나무 아래서 수용하는 침구나 혹은 방 또는 집에서 수용하는 침구가 좋거나 나쁘거나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긴다는 것이니, 취득하여 몸을 돕고 피로를 제거하여 주기 때문이다.
024_1111_b_04L廣說如前者讚歎喜足等廣說如前於隨所得衣服喜足如是弟子隨得臥具便生喜足者謂佛多聞賢聖弟子於隨所得樹下臥具或隨所得房閣臥具若好若惡便生喜足取得資身除勞倦故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고 함은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기는 것을 찬탄하는 등의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 ‘의복은 얻는 대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게 여긴다’는 데의 설명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자는 끊는 것[斷]을 사랑한다’는 등은 견문이 많은 성현 부처님의 제자는 끊는 것을 사랑하고[愛] 닦는 것[修]을 사랑하며 끊는 것을 좋아하고[樂] 닦는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워서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024_1111_b_09L廣說如前者讚歎喜足等廣說如前於隨所得衣服喜足如是弟子愛斷等者謂佛多聞賢聖弟子愛斷愛脩樂斷樂脩精勤隨學斷脩愛樂
어떤 것이 ‘끊는 것을 사랑하고 닦는 것을 사랑하는 것’인가? 만일 아직 악한 법[惡不善法]을 끊지 못했고 아직 착한 법[善法]을 닦지 않았으면 그는 끊는 것과 닦는 것에 있어서 사랑[愛]도 없고 훌륭한[勝] 사랑도 없으며 목을 빼고 바라기만[引頸希望] 하고 있겠지만, 만일 이미 악한 법을 끊었고 이미 착한 법을 닦은 것이 있다면 그는 끊는 것과 닦는 것에 대하여 사랑도 있고 훌륭한 사랑도 있으며 목을 빼고 바라는 일이 없을 것이다.
024_1111_b_13L云何愛斷愛脩謂若未斷惡不善法未脩善法彼於斷脩無愛無勝愛有引頸悕望若有已斷惡不善法已脩善法彼於斷脩有愛有勝愛無引頸悕望
어떤 것이 ‘끊는 것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인가? 끊는 것과 닦는 것에 대하여 좋아함[樂]도 있고 뛰어나게 좋아함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부지런히 힘쓰고[精勤] 따라 배워서[隨學]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는가? 끊는 것과 닦는 것에 대하여 더욱더 향상시키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우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끝내 스스로 뽐내거나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고 함은 부처님의 제자는 비록 끊는 것과 닦는 것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해서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운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뽐내면서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
024_1111_b_17L云何樂斷樂脩謂於斷脩有樂有勝云何精勤隨學斷脩愛樂謂於斷脩愛樂爲增上故精勤隨學彼由如是斷脩愛樂終不自擧𣣋蔑他者佛弟子雖於斷脩愛樂精勤隨學不自擧𣣋蔑於他
024_1111_c_02L어느 한 무리가 사랑하고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뽐내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와 같이 욕심이 적고, 기뻐하여 만족하게 여기며, 맡아보는 일이 적고, 하는 일들이 적으며, 잊지 못하거나 또한 일이 적고, 쉬이 만족하게 여기며, 기르기가 용이하다. 그리고 모든 악을 줄이고 모든 선을 더욱 자라게 하며 끊는 것을 사랑하고 닦는 것을 사랑하며 끊는 것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워서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는 그런 이들과는 같지 않다.
024_1111_b_23L非如一類由此愛樂而自憍擧作是念言我有如是少欲喜足少事少務少所作少顧戀滿易養損減諸惡增長諸善愛斷愛脩樂斷樂脩精勤隨學斷脩愛樂
또 어느 한 무리가 이것을 사랑하고,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남을 업신여기면서 말하기를 “그 밖의 다른 필추들은 모두 이와 같이 욕심이 적거나 기뻐해서 만족하게 여기거나 맡아보는 일이 적거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끊는 것을 사랑하고 닦는 것을 사랑하며 끊는 것을 좋아하고 닦는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따라 배워서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없다”고 하는 그런 이들과는 같지 않나니, 모든 부처님의 제자는 모두 이러한 일이 없다.
‘잘 다잡아 힘쓰고[策勤], 바르게 알며[正知], 생각을 잡아맨다[繫念]’고 하는 것과 ‘이것을 바로 안주고석성종(安住古昔聖種)이라 한다’는 것 등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앞에서와 같다. 차별이 있는 것은 그 안의 안주(安住)라는 말은 부처님의 제자가 끊는 것과 닦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할 때에 증상(增上)으로 생기는 착한[善] 유루의 도[有漏道]와 무루의 도[無漏道]에 대하여 편안히 머무르고 평등하게 머무르며 두루 머무르고 가까이 머무른다는 것을 나타낸다.
024_1111_c_04L如一類由此愛樂𣣋蔑於他作是念餘苾芻等皆無如是少欲喜足少事少務廣說乃至愛斷愛脩樂斷樂精勤隨學斷脩愛樂諸佛弟子皆無是事而能策勤正知繫念是名安住古昔聖種廣釋如前有差別者安住言顯佛弟子於斷脩愛樂增上所生善有漏道及無漏道安住等住遍住近住

7. 정승품(正勝品) ①
024_1111_c_13L正勝品第七之一

어느 때 박가범은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4정승(正勝)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악한 법[惡不善法]을 끊기 위하여 욕(欲)을 일으키고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마음을 다잡고[策心] 마음을 지니는[持心] 것을 바로 첫째라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한 법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욕을 일으키고 근을 내어 정진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니는 것을 둘째라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善法]을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을 일으키고 근을 내어 정진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니는 것을 셋째라 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을 굳게 머무르고 잊지 않으며, 닦고 원만하며, 갑절 더하고 광대해져서 지혜로 증득을 짓게[作證] 하기 위하여 욕을 일으키고 근을 내어 정진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니는 것을 넷째라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앞의 뜻을 정리하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24_1111_c_14L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逝多林給孤獨園爾時世尊告苾芻衆有四正何等爲四謂有苾芻爲令已生惡不善法斷故起欲發勤精進策心持是名第一爲令未生惡不善法不生故起欲發勤精進策心持心是名第二爲令未生善法生故起欲發勤精進策心持心是名第三爲令已生善法堅住不忘脩滿倍增廣大智作證故起欲發勤精進策心持心是名第四爾時世尊爲攝前義而說頌曰
024_1112_a_02L
처음 정승(正勝)을 닦을 때에
벌써 나고 죽는 유(有)를 이기고
만일 닦아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면
악마의 군사들을 꺾고 부수게 되며,
024_1112_a_02L初脩正勝時
已勝生死有
若脩至彼岸
能摧滅魔軍

티끌[塵]과 때[垢]의 모든 악을 여의고
그른 것[非]과 나쁜 인연[惡緣] 물리치게 되나니
저 언덕의 열반에 이르러
남음 없는[無餘] 극락(極樂)을 증득하느니라.
024_1112_a_04L離塵垢諸德
非惡緣所退
到彼岸涅槃
證無餘極樂

‘이미 생긴 악한 법[惡不善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욕(欲)을 일으키고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고 함에서 어떤 것이 ‘이미 생긴 악한 법’인가? 과거ㆍ현재의 5개(蓋)이니, 첫째는 탐욕개(貪欲蓋)요, 둘째는 진에개(瞋恚蓋)며, 셋째는 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요, 넷째는 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며, 다섯째는 의개(疑蓋)이다.
024_1112_a_05L爲令已生惡不善法斷故起欲發勤精進策心持心者云何已生惡不善謂過去現在五蓋貪欲蓋恚蓋惛沈睡眠蓋掉擧惡作蓋疑蓋
어떤 것이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한 정승(正勝)’인가?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탐욕개(貪欲蓋)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 탐욕개에 있는 모든 허물[過患]이 많은 것을 이치대로 사유(思惟)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것은 착하지 않은 법이요 이것은 하천(下賤)한 것이다. 믿고 이해하거나[信解] 받아 지니는[受持] 것을 부처님과 그 제자나 어질고 귀한 이나 훌륭한 사람[善士]이 다 같이 꾸짖고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되고 다른 이를 해치게 되고 남을 다 같이 해치게 되며 지혜를 소멸시키고 그런 종류를 장애하게 되며 열반을 장애한다. 그 법을 받아 지니면 통혜(通慧)를 내지 못하고 보리(菩提)를 이끌지 못하며 열반을 증득하지 못한다’라고 한다.
024_1112_a_10L云何爲令已生惡不善法斷故正勝謂有苾芻爲斷已生貪欲蓋如理思惟彼貪欲蓋多諸過患是不善法是下賤者信解受持佛及弟子賢貴善士共所訶厭能爲自害能爲他害能爲俱害能滅智慧能礙彼類能障涅槃受持彼法不生通慧不引菩提不證涅槃
이와 같이 사유하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되 세차고 날래고 왕성하게 하여 제어하기 어려운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 도(道)를 말하여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正勝)이다’라고 한다. 그는 이 도를 생겨나게 한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곧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킨다’고 함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곧 바라고 원함[欲樂]과 기뻐함[欣喜]과 구하여 나아감[求趣]과 희망(希望)을 일으키고 평등하게 일으키며 그리고 내고 평등하게 내며 쌓아 모으고 출현하게 하는 것이니, 그는 이 모든 욕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곧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024_1112_a_17L如是思惟發勤精進勇健勢猛熾盛難制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諸貪欲蓋永斷正勝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已生諸貪欲蓋起欲者謂爲斷已生貪欲蓋故便起等起及生等生聚集出現欲樂欣憙求趣悕望彼由生起此諸欲故便斷已生諸貪欲蓋
024_1112_b_02L‘근(勤)을 일으켜 정진한다’고 함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근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는 것이니, 그는 이로 말미암아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는다.
‘마음을 다잡는다[策心]’고 함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서 기쁨을 함께 하는 마음[喜俱行心]과 기꺼움[欣]을 함께 하는 마음과 다잡아 격려함[策勵]을 함께 하는 마음과 하열하지 않음[不下劣]을 함께 하는 마음과 어둡지 않음[不闇昩]을 함께 하는 마음과 평정[捨]을 함께 하는 마음과 선정[定]을 함께 하는 마음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 그는 이와 같은 마음을 닦아 익히기 때문에 곧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024_1112_a_24L發勤精進者謂爲斷已生貪欲蓋故發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彼由此故便斷已生諸貪欲蓋策心者爲斷已生貪欲蓋故精勤脩習喜俱行心欣俱行心策勵俱行心不下劣俱行心不闇昧俱行心捨俱行心俱行心彼由脩習如是心故便斷已生諸貪欲蓋
‘마음을 지니다[持心]’고 함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마음을 지녀서 8지성도(支聖道), 이른바 정견(正見) 나아가 정정(正定)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 그는 이 도(道)에 대하여 마음을 지녀서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출가(出家)의 공덕을 이치대로 사유하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바로 참되고 착한 법[眞善法]이요 곧 높고 뛰어난 것[尊勝者]이다.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는 것을 부처님과 그 제자나 어질고 귀한 이나 훌륭한 사람이 다 같이 기뻐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으며 나와 남을 다 같이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고 그런 종류를 장애하지 않으며 열반을 장애하지 않으면서 통혜를 내고 보리를 이끌며 열반을 증득하게 한다’고 한다.
024_1112_b_09L持心者謂爲斷已生貪欲蓋故持心脩習八支聖道所謂正見乃至正定彼於此道持心脩習多脩習故便斷已生諸貪欲蓋復有苾爲斷已生貪欲蓋故如理思惟出家功德如是出家是眞善法是尊勝者信解受持佛及弟子賢貴善士共所欣讚不爲自害不爲他害不爲俱增長智慧不礙彼類不障涅槃能生通慧能引菩提能證涅槃
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런 도(道)를 말하여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正勝)’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키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모두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24_1112_b_18L如是思惟發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諸貪欲蓋永斷正勝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已生諸貪欲蓋起欲乃至策心持心如前說
024_1112_c_02L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치대로 사유하기를 ‘저 탐욕개는 마치 병(病)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화살ㆍ고뇌ㆍ상해와 같다. 그리고 무상(無常)하고ㆍ괴롭고[苦]ㆍ공(空)하고ㆍ나가 아니며[非我] 바뀌어 움직이고 피로하며 몹시 파리한 것이다. 이것은 잃게 되고 무너지는 법이요 신속하고 멈추지 않으며 썩는 것이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보존하거나 믿을 수도 없고 이것은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런 도를 말하여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正勝)’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024_1112_b_23L復有苾芻爲斷已生貪欲蓋如理思惟彼貪欲蓋如病如癰箭惱害無常苦空非我轉動勞倦羸是失壞法迅速不停衰朽非恒可保信是變壞法如是思惟發勤精廣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諸貪欲蓋永斷正勝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已生諸貪欲蓋
‘욕(欲)을 일으키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으며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모두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치대로 ‘사라짐[滅]은 적정(寂靜)이 되고 도(道)는 벗어나게[出離]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각하고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런 도를 말하여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이라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이미 생긴 모든 탐욕개를 끊게 된다.
024_1112_c_08L起欲乃至策心持心皆如前復有苾芻爲斷已生諸貪欲蓋理思惟滅爲寂靜道能出離如是思發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道名爲能令已生諸貪欲蓋永斷正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已生諸貪欲蓋
‘욕(欲)을 일으키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모두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탐욕개(貪欲蓋)에서와 같이 나머지 네 가지도 또한 그러하다. 차별이 있다면 마땅히 제 이름[自名]을 설명해야 된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나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 악한 법에 있는 모든 허물[過患]이 많은 것을 이치대로 사유(思惟)하나니, 이를테면 ‘이것은 착하지 않은 법이요 이것은 하천한 것이다.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는 것이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024_1112_c_14L起欲乃至策心持皆如前說如貪欲蓋餘四亦爾差別者應說自名復有苾芻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如理思惟惡不善法多諸過患謂是不善法下賤者信解受持廣說乃至不證涅
024_1113_a_02L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 도(道)를 말하여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으로 하여금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킨다’고 함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곧 나아가 구하여 나아감과 희망을 일으키고 평등하게 일으킨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그는 이 모든 욕을 일으키는 까닭에 곧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024_1112_c_20L如是思惟發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永斷正勝彼於此道生脩習多脩習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起欲者謂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便起等起廣說乃至求趣悕望彼由生起此諸欲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
‘근(勤)을 발하여 정진한다’고 함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근을 발하여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는 것이니,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곧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나쁜 법을 끊게 된다.
‘마음을 다잡는다[策心]’고 함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정진해서 기쁨을 함께 하는 마음[喜俱行心]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선정을 함께 하는 마음[定俱行心]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 그는 이와 같은 마음을 닦아 익히기 때문에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024_1113_a_04L發勤精進者謂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發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由此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策心者謂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精勤脩習喜俱行心廣說乃至定俱行心彼由脩習如是心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
‘마음을 지닌다[持心]’고 함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마음을 지니어 8지성도(支聖道)를 닦아 익히는 것이니, 그는 이런 도를 마음을 지니어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출가(出家)의 공덕을 이치대로 사유하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바로 참되고 착한 법이며 이것은 높고 뛰어난 것이다.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는 것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게 한다’고 한다.
024_1113_a_11L持心者謂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心脩習八支聖道彼於此道持心脩習多脩習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復有苾芻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如理思惟出家功德是出家是眞善法是尊勝者信解受廣說乃至能證涅槃
024_1113_b_02L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 도(道)를 이름하여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으로 하여금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正勝)’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곧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키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모두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치대로 사유하기를 ‘저 악한 법은 마치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이것은 곧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라고 한다.
024_1113_a_18L如是思惟勤精進廣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永斷正勝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起欲乃至策心持心皆如前說復有苾芻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如理思惟彼惡不善法如病如癰廣說乃至是變壞法
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 도를 이름하여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이라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곧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키고 나아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어떤 필추가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악한 법을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치대로 사유하기를 ‘사라짐[滅]은 적정(寂靜)이 되고 도(道)는 벗어나게[出離] 한다’고 한다.
024_1113_b_03L如是思惟發勤精進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永斷正勝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起欲乃至策心持心皆如前說復有苾芻爲斷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如理思惟滅爲寂靜道能出離
이와 같이 사유해서 근(勤)을 내어 정진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격려하는 뜻으로 쉬지 않으면 이 도(道)를 이름하여 ‘이미 생긴 어느 한 종류의 나쁜 법으로 하여금 영원히 끊어지게 하는 정승(正勝)’이라 한다. 그는 이런 도를 낸 뒤에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기 때문에 곧 어느 한 종류의 이미 생긴 악한 법을 끊게 된다.
‘욕(欲)을 일으키며 나아가 마음을 다잡고 마음을 지닌다’는 등은 모두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24_1113_b_10L如是思惟發勤精廣說乃至勵意不息此道名爲能令已生隨一種類惡不善法永斷正彼於此道生已脩習多脩習故便斷隨一種類已生惡不善法起欲乃至策心持心皆如前說
說一切有部法薀足論卷第三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