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생문(生聞)이라는 범지(梵志)가 부처님께로 와서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조그마한 질문을 하려 합니다. 교답마(喬答摩) 높으신 이여, 허락하여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그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 보아라. 나는 너를 위하여 대답해 주겠노라.” 범지가 물었다. “근(根)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스물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스물 두 가지인가?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의근(意根)과 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명근(命根)과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과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과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具知根)이니, 이 스물 두 가지는 모든 근(根)을 다 포섭하느니라.” 그때에 범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뛰면서 공경하고 떠나갔다.
어떤 것을 안근(眼根)이라 하는가? 눈[眼]이 빛깔[色]에 대하여 이미 보았고 지금 보며 장차 볼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안식(眼識)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碍]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행(行)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024_1158_c_02L이와 같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있는 모든 눈을 말하여 안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所知]이요 인식하는 것[所識]이며, 통달하는 것[所通達]이요 두루 아는 것[所遍知]이며, 끊는 것[所斷]이요 이해하는 것[所解]이며, 보는 것[所見]이요 얻는 것[所得]이며, 깨닫는 것[所覺]이요 현재 평등하게 깨닫는 것[所現等覺]이며, 분명히 아는 것[所了]이요 평등하게 분명히 아는 것[所等了]이며, 관하는 것[所觀]이요 평등하게 관하는 것[所等觀]이며, 자세히 살피는 것[所審祭]이요 결택하는 것[所決擇]이며, 접촉하는 것[所觸]이요 평등하게 접촉하는 것[所等觸]이며, 증득하는 것[所證]이요 평등하게 증득하는 것[所等證]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淨色]로서 혹은 지옥에게 혹은 방생에게 혹은 아귀에게 혹은 하늘에게 혹은 사람에게 혹은 중유(中有)에게 혹은 닦아서[修]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名號]과 달리 부르는 말[異語]과 비유적인 말[增語]과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시설(施設)과 언설(言說)로 말하여 눈[眼]이라 하고 안처(眼處)라 하며 안계(眼界)라 하고 안근(眼根)이라 하며 본다[見]고 하고 길[道路]이라 하며 가르쳐 이끈다[引導]고 하고 희다[白]고 하며 깨끗하다[淨]고 하고 간직한다[藏]고 하며 문(門)이라 하고 밭[田]이라 하며 일[事]이라 하고 흐른다[流]고 하며 못[池]이라 하고 바다[海]라 하며 상처[瘡]라 하고 상처의 문[瘡門]이라 하며 이 언덕[此岸]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안근은 내처(內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이근(耳根)이라 하는가? 귀[耳]가 소리[聲]에 대하여 이미 들었고 지금 들으며 장차 들을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이식(耳識)이 소리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가 소리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가 소리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귀를 말하여 이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024_1159_a_02L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서 나아가 닦아서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귀라 하고 이처(耳處)라 하며 이계(耳界)라 하고 이근이라 하며 듣는다[聞]고 하고 길[道路]이라 하며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비근(鼻根)이라 하는가? 코[鼻]가 냄새[香]에 대하여 이미 맡았고 지금 맡으며 장차 맡을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비식(鼻識)이 냄새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가 냄새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가 냄새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코를 말하여 비근이라 하고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게, 혹은 중유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非修所成]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코라 하며 비처(鼻處)라 하고 비계(鼻界)라 하며 비근이라 하고 맡는다[嗅]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설근(舌根)이라 하는가? 혀[舌]가 맛[味]에 대하여 이미 맛보았고 지금 맛보며 장차 맛볼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설식(舌識)이 맛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가 맛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가 맛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혀를 말하여 설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024_1159_b_02L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淨色]로서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 중유(中有)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혀라 하며 설처(舌處)라 하고 설계(舌界)라 하며 설근이라 하고 맡본다[嘗]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근은 곧 내처(內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신근(身根)이라 하는가? 몸[身]이 접촉[觸]에 대하여 이미 깨달았고 지금 깨달으며 장차 깨달을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몸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신식(身識)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또 몸이 접촉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또 몸이 접촉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몸을 말하여 신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서는 중유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몸이라 하며 신처(身處)라 하고 신계(身界)라 하며 신근이라 하고 깨닫는다[覺]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근은 곧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여근(女根)이라 하는가? 여인이요 여인의 본체[體]이며, 여인의 성품[性]이요 여인의 세분(勢分)이며 여인의 작용(作用)이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배꼽 아래요 무릎 위에 있는 육신으로 힘줄과 맥이 뻗쳐 흘렀고 만일 이곳으로 남자와 교회(交會)하면 평등한 받아들임[領納]과 즐거운 느낌[樂受]이 발생한다. 이것을 바로 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남근(男根)이라 하는가? 남자요 남자의 본체며, 남자의 성품이요 남자의 세분(勢分)이며 남자의 작용이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배꼽 아래요 무릎 위에 있는 육신으로 힘줄과 맥이 뻗쳐 흘렀고 만일 이곳으로 여인과 교회하게 되면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즐거운 느낌이 발생하나니, 이것을 남근이라 한다.
024_1159_c_02L어떤 것을 명근(命根)이라 하는가? 저 여러 유정들이 다른 여러 유정의 무리 안에 있으면서 옮아가지 않고 바뀌지 않으며 파괴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상실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수(壽)의 머무름으로 살아 있으면서 수호하고 따라 수호하며 움직이고 따라 움직이는 목숨[命]이요 목숨 뿌리[命根]를 바로 명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의근(意根)이라 하는가? 뜻[意]이 법(法)에 대하여 이미 알았고 지금 알며 장차 알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의식(意識)이 법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이 법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이 법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뜻을 의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이냐 하면, 심(心)ㆍ의(意)ㆍ식(識)이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 혹은 중유에게 혹은 닦아서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뜻이라 하며 의처(意處)라 하고 의계(意界)라 하며 의근이라 하고 안다[知]고 하며 도로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낙근(樂根)이라 하는가? 순락촉(順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근이라 한다.
024_1160_a_02L또 제3 정려(靜慮)를 닦아서 순락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고근(苦根)이라 하는가? 순고촉(順苦觸)으로 생기는 몸의 괴로움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희근(喜根)이라 하는가? 순희촉(順喜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기쁨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근이라 한다. 또 제2 정려를 수행하여 순희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기쁨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우근(憂根)이라 하는가? 순우촉(順憂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근심[憂]이요 평등하지 않은 느낌[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사근(捨根)이라 하는가? 순사촉(順捨觸)으로 생기는 몸의 평정[捨]이요 마음의 평정이며 평등한 것도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非平等非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근이라 한다. 또 미지정(未至定)과 정려의 중간과 제4 정려와 무색정(無色定)을 수행하여 순불고불락촉(順不苦不樂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평정[捨]과 평등한 것도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신근(信根)이라 하는가? 출가(出家)와 원리(遠離)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믿음[信]과 믿는 성품[信性]과 현전에서 믿는 성품[現前信性]과 따르고[隨順] 인가(印可)하고 애모(愛慕)하고 애모하는 성품[愛慕性]과 마음의 맑고 깨끗함을 신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믿음과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믿음과 온갖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非學非無學]의 믿음을 모두 신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정진근(精進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부지런한 정진(精進)과 씩씩하고 세차고 맹렬하게 하며 격려하는 뜻[勵意]을 멈추지 않는 것을 정진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정진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정진과 온갖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정진을 모두 정진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염근(念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염(念)하고 따라 염하며 오로지 염하고 기억하며 잊지 않고 잃지 앉으며 빠뜨리지 않고 새나가지 않으며 잃지 않는 성품과 마음에 분명하게 기억하는 성품[心明記性]을 염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염(念)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염과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염을 모두 염근이라 한다.
024_1160_b_02L어떤 것을 정근(定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머무름[住]과 평등하게 머무르고 가까이 머무르고 편안히 머무르며, 흩어지지 않고[不散] 어지럽지 않고[不亂] 가다듬어 그치고[攝持] 평등하게 지니고[等持] 마음이 한 경계로 되는 성품[心一境性]을 정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선정[定]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선정과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선정을 모두 정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혜근(慧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법에 대하여 간택(簡擇)하고 지극히 간택하고 가장 지극하게 간택하며, 환히 알고[解了] 평등하게 알고 가까이 알며, 기민한 슬기가 있고 막힘이 없이 통하고 자세히 살피고 뛰어나게 밝으며, 각(覺)과 명(明)과 혜(慧)의 행(行)과 비발사나(毘鉢舍那)를 혜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와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지혜를 모두 혜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라 하는가? 이미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간 이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지혜[慧]와 혜근(慧根)과 수신(隨信)ㆍ수법행(隨法行)의 성자(聖者)로서 4성제(聖諦)에 대하여 아직 현관(現觀)하지 못한 이가 현관하기 위하여 모든 근(根)이 움직이는 것을 미지당지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이지근(已知根)이라 하는가? 이미 진리[諦]를 본 이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와 혜근과 신승해(信勝解)ㆍ견지(見至)ㆍ신증(身證)의 성자로서 4성제에 대하여 이미 현관한 이가 현관으로 번뇌를 끊어 없애기 위하여 모든 근이 움직이는 것을 이지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구지근(具知根)이라 하는가? 아라한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지혜와 혜근과 혜해탈(慧解脫)ㆍ구해탈(俱解脫)의 성자로서 4성제에 대하여 이미 현관한 이가 현관으로 현법락주(現法樂住)를 얻기 위하여 모든 근이 움직이는 것을 구지근이라 한다.
024_1160_c_02L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생문(生聞)이라 하는 범지(梵志)가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합장 공경하고 모든 사랑하는 말로써 세존께 위문하였고 부처님도 사랑하는 말씀으로 그를 위문하였으며 이렇게 위문하여 마치자 그는 물러나 한 쪽에 앉아 몸을 굽히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조그마한 질문을 하려 합니다. 교답마(喬答摩) 높으신 이여, 원컨대 허락하시어 간략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그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해 주겠노라.” 범지가 물었다. “온갖 법[一切法]이란 무엇을 온갖[一切]이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란 12처(處)이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안처(眼處)ㆍ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법처(法處)이니, 이것이 12처이다. 만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온갖 것이 아니다. 온갖 것이 다시 따로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다만 말만 있을 뿐이요 진실한 일이 없으므로 도리어 그에게 따져 물으면[詰問] 그는 분명히 알지 못할 것이며 뒤에 자세히 생각해 스스로가 헷갈리어 답답해 하리니, 온갖 법은 그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그때에 저 범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서 뛰다가 공경하며 떠나갔다.
어떤 것을 안처(眼處)라 하는가? 안근(眼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相]을 해설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색처(色處)라 하는가? 빛깔[色]이 눈[眼]에 이미 보였고 지금 보이며 장차 보이게 될 피동분(彼同分)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안식(眼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了別)되었고 지금 요별하고 장차 요별할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을 이미 거리끼게[碍]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해질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024_1161_a_02L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빛깔을 색처라 말하며 또한 아는 것[所知]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所等證]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과 구름[雲]ㆍ연기[烟]ㆍ먼지[塵]ㆍ안개[霧]와 길고[長] 짧고[短] 모나고[方] 둥근[圓] 것과 높고[高] 낮고[下] 바르고[正] 바르지 않은[不正] 것과 그림자[影]ㆍ빛[光]ㆍ밝고[明] 어두운[暗] 것과 공일현색(空一顯色)과 서로 뒤섞인 색[相雜色]과 홍색[紅]ㆍ자색[紫]ㆍ벽록색[碧綠]ㆍ흑색[皂]ㆍ갈색[褐]과 그 밖의 온갖 안근으로 보는 것과 안식으로 아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하는 말[異語]과 비유적인 말[增語]과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시설(施設)과 언설(言說)로 말하여 빛깔이라 하며 색계(色界)라 하고 색처(色處)라 하며 저 언덕[彼岸]이라 한다. 이와 같은 색처는 외처(外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이처(耳處)라 하는가? 이근(耳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모양을 설명해야 한다. 어떤 것을 성처(聲處)라 하는가? 소리[聲]가 귀에 이미 들렸고 지금 들으며 장차 들을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이식(耳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소리를 말하여 성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코끼리 소리ㆍ말의 소리ㆍ수레의 소리ㆍ걷는 소리와 소라 소리ㆍ방울 소리ㆍ크고 작은 북소리와 노랫소리ㆍ읊는 소리ㆍ찬탄하는 소리ㆍ맑은 소리[梵聲]와 4대종(大種)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ㆍ밤에 또는 낮에 나는 언어와 음성이며 그 밖의 모든 이근(耳根)으로 듣는 것과 이식(耳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소리라 하며 성계(聲界)라 하고 성처(聲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성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비처(鼻處)라 하는가? 비근(鼻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설명해야 한다.
024_1161_b_02L어떤 것을 향처(香處)라 하는가? 냄새가 코[鼻]에 의하여 이미 맡아졌고 지금 맡으며 장차 맡을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비식(鼻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냄새를 말하여 향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뿌리의 냄새ㆍ줄기의 냄새ㆍ가지의 냄새ㆍ잎사귀의 냄새ㆍ꽃의 냄새ㆍ열매의 냄새와 좋은 냄새ㆍ나쁜 냄새ㆍ평등한 냄새이며 그 밖의 모든 비근(鼻根)으로 맡는 것과 비식(鼻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냄새라 하며 향계(香界)라 하고 향처(香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향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설처(舌處)라 하는가? 설근(舌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모양을 설명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미처(味處)라 하는가? 맛[味]을 혀[舌]가 이미 맡보았고 지금 맛보며 장차 맛볼 피동분(彼同分)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설식(舌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맛을 말하여 미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뿌리의 맛ㆍ줄기의 맛ㆍ가지의 맛ㆍ잎사귀의 맛ㆍ꽃의 맛ㆍ열매의 맛과 밥의 맛ㆍ음료수의 맛과 모든 술의 맛ㆍ쓴 맛ㆍ신 맛ㆍ단 맛ㆍ매운 맛ㆍ짠 맛ㆍ싱거운 맛과 뜻에 맞는 맛ㆍ순사처(順捨處)의 맛이며 그 밖의 모든 설근(舌根)으로 맛보는 것과 설식(舌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맛이라 하며 미계(味界)라 하고 미처(味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미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신처(身處)라 하는가? 신근(身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해설하여야 한다.
024_1161_c_02L어떤 것을 촉처(觸處)라 하는가? 감촉[觸]을 몸[身]이 이미 깨달았고 지금 깨달으며 장차 깨달을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신식(身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되는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을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감촉을 촉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매끄러운 성품ㆍ껄끄러운 성품ㆍ가벼운 성품ㆍ무거운 성품과 차고 따뜻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그 밖의 모든 신근(身根)으로 깨닫는 것과 신식(身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감촉이라 하며 촉계(觸界)라 하고 촉처(觸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촉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의처(意處)라 하는가? 의근(意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해설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법처(法處)라 하는가? 법(法)을 뜻[意]이 이미 알았고 지금 알며 장차 알게 되는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이 뜻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의식(意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되는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을 뜻이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이 뜻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을 법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법을 법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024_1162_a_02L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ㆍ욕(欲)ㆍ승해(勝解)와 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와 심(尋)ㆍ사(伺)ㆍ방일(放逸)ㆍ불방일(不放逸)과 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무기근(無記根)과 온갖 결(結)ㆍ박(縛)ㆍ수면(睡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과 모든 지견(智見)ㆍ현관(現觀)과 득(得)ㆍ무상정(無想定)ㆍ멸정(滅定)ㆍ무상사(無想事)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주득(住得)ㆍ사득(事得)ㆍ처득(處得)과 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과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과 허공(虛空)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과 그 밖의 모든 의근(意根)으로 아는 것과 의식(意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의 언설로 말하여 법이라 하며 법계(法界)라 하고 법처(法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법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5온(蘊)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이니, 이것을 5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색온이라 하는가? 모든 물질[色]은 모두가 4대종(大種)이며 또한 4대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색온(色蘊)이라 한다. 어떤 것을 수온이라 하는가? 모든 느낌[受]과 평등한 느낌[等受]과 따로따로의 느낌[別受]과 느낌의 성품과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수온(受蘊)이라 한다.
또 두 가지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몸의 느낌[身受]과 마음의 느낌[心受]이다. 어떤 것을 몸의 느낌이라 하는가? 5식신(識身)과 상응하는 모든 느낌이며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몸의 느낌[身受]이라 한다. 어떤 것을 마음의 느낌이라 하는가?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모든 느낌이며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음의 느낌[心受]이라 한다. 또 두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유미의 느낌[有味受]과 무미의 느낌[無味受]이다. 어떤 것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는가? 유루(有漏)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유미의 느낌[有味受]이라 한다.
024_1162_b_02L어떤 것을 무미의 느낌이라 하는가? 무루(無漏)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무미의 느낌[無味受]이라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욕계(欲界)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고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무미의 느낌이라 한다’고 한다. 지금 이 뜻에서는 유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고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무미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즐거운 느낌이라 하는가? 순락촉(順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즐거운 느낌[樂受]이라 한다. 또 초정려(初靜慮)와 제2ㆍ제3 정려를 닦아서 순락촉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즐거운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운 느낌[苦受]이라 하는가? 순고촉(順苦觸)으로 생기는 몸의 괴로움과 마음의 괴로움과 평등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로운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라 하는가? 순불고불락촉(順不苦不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평정[捨]과 마음의 평정과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는 것도 아닌 느낌[非平等非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한다. 또 미지정(未至定)ㆍ정려 중간(靜慮中間)ㆍ제3 정려 그리고 무색정(無色定)의 순불고불락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평정[捨]이며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한다.
024_1162_c_02L또 네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욕계의 느낌[欲界受]과 색계의 느낌[色界受]과 무색계의 느낌[無色界受]과 불계의 느낌[不繫受]이다. 어떤 것을 욕계의 느낌[欲界受]이라 하는가? 욕계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욕계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색계의 느낌[色界受]이라고 하는가? 색계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색계의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색계의 느낌[無色界受]이라 하는가? 무색계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무색계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불계의 느낌[不繫受]이라 하는가? 무루(無漏)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불계의 느낌이라고 한다.
또 다섯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온이라 하니, 이른바 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로운 느낌[苦受]ㆍ기쁜 느낌[喜受]ㆍ근심스런 느낌[憂受]ㆍ평정의 느낌[捨受]이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느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근품(根品)에서와 같다. 또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온이라 하니, 이른바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眼觸所生受]이요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다.
어떤 것을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眼觸所生受]이라 하는가? 눈[眼]과 빛깔[色]을 반연하여 안식(眼識)을 내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기 때문에 접촉[觸]을 내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느낌을 낸다. 이 가운데서, 눈은 증상(增上)이 되고 빛깔은 소연(所緣)이 되며 눈의 접촉은 인(因)이 되고 눈의 접촉은 등기(等起)가 되나니, 이것이 곧 눈의 접촉의 종류요 이것이 곧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어서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안식(眼識)이 요별하는 빛깔에 대한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라 한다. 이와 같아서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역시 그러하다. 수온(受蘊)에서와 같아서, 이 상온(想蘊)과 식온(識蘊)에 대하여 그에 맞추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024_1163_a_02L어떤 것을 행온(行蘊)이라 하는가? 행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심상응의 행온[心相應行蘊]이요, 둘째는 심불상응의 행온[心不相應行蘊]이다. 어떤 것을 심상응의 행온이라 하는가? 이른바 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모든 지견(智見)과 현관(現觀)이며 또 그밖에 이와 같은 종류의 법(法)으로서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것을 심상응의 행온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심불상응(心不相應)의 행온이라 하는가? 이른바 득(得)ㆍ무상정(無想定)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문신(文身)이며 또 그밖에 이와 같은 종류의 법(法)으로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나니, 이것을 심불상응의 행온이라 한다. 이와 같은 심상응의 행온과 심불상응의 행온을 통틀어 행온이라 한다.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아난타(阿難陀)는 혼자 고요한 밤에 생각하였다. ‘모든 두려움[怖畏]을 일으키는 것과 재환(災患)과 요뇌(擾惱)의 일을 일으키는 이는 모두가 어리석은 범부요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날 저녁때에 고요한 방으로부터 나와 세존께 가서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서서 생각했던 일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자, 부처님께서 인가(印可)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모든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과 재환과 요뇌(擾惱)의 일을 일으키는 이는 모두가 어리석은 범부들이요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마치 불을 마른 갈대나 풀로 지은 집에다 놓아두면 누당(樓堂)도 대관(臺觀)도 불에 타게 되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도 그러하여 지혜가 없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재환 등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경희(慶喜)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두려움과 재환과 요뇌는 모두 어리석은 범부가 내는 것이요 지혜 있는 모든 이들은 그렇지 않나니, 지혜 있는 모든 이는 그런 것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라. 경희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범부는 두려움이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두려움이 없고 어리석은 범부는 재환이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재환이 없으며, 어리석은 범부는 요뇌가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요뇌가 없나니, 그러므로 경희야, 어리석은 범부의 법과 지혜가 있는 이의 법을 알고 나서는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법을 멀리 여의고 지혜 있는 이의 법을 바르게 받아서 행할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024_1163_b_02L아난타가 말하였다. “무엇을 한정하여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수(數)를 시설(施設)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계(界)ㆍ처(處)ㆍ온(蘊)에 대한 것과 연기(緣起)와 처ㆍ비처의 법[處非處法]에 대하여 선교(善巧)하지 못한 이면 그가 어리석은 범부에 해당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무엇을 한정하여 모든 지혜 있는 이의 수(數)를 시설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계ㆍ처ㆍ온에 대한 것과 연기와 처ㆍ비처의 법에 대하여 선교를 얻은 이면 그가 지혜 있는 이에 해당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계(界)에 대한 선교(善巧)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8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계의 선교[界善巧]이니, 이른바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식계(身識界)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욕계(欲界)ㆍ에계(恚界)ㆍ해계(害界)ㆍ무욕계(無欲界)ㆍ무에계(無恚界)ㆍ무해계(無害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낙계(樂界)ㆍ고계(苦界)ㆍ희계(喜界)ㆍ우계(憂界)ㆍ사계(捨界)ㆍ무명계(無明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4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수계(受界)ㆍ상계(想界)ㆍ행계(行界)ㆍ식계(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선교이니, 이른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멸계(滅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과거계(過去界)ㆍ미래계(未來界)ㆍ현재계(現在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024_1163_c_02L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열계(劣界)ㆍ중계(中界)ㆍ묘계(妙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선계(善界)ㆍ불선계(不善界)ㆍ무기계(無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학계(學界)ㆍ무학계(無學界)ㆍ비학비무학계(非學非無學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2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유루계(有漏界)와 무루계(無漏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2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유위계(有爲界)와 무위계(無爲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계(界)에 대한 선교(善巧)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처(處)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2처(處)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소의 선교[處善巧]이니, 이른바 안처(眼處)ㆍ색처(色處)와 이처(耳處)ㆍ성처(聲處)와 비처(鼻處)ㆍ향처(香處)와 설처(舌處)ㆍ미처(味處)와 신처(身處)ㆍ촉처(觸處)와 의처(意處)ㆍ법처(法處)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지혜 있는 이의 처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온(蘊)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5온(蘊)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온의 선교[蘊善巧]이니, 이른바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온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연기(緣起)에 대한 선교입니까?”
024_1164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2연기(緣起)의 순(順)ㆍ역(逆)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연기의 선교[緣起善巧]이니, 이른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긴 까닭에 저것이 있다 함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이를테면 무명(無明)을 반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반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반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반연하여 6처(處)가 있으며, 6처를 반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반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반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반연하여 취(取)가 있으며, 취를 반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반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반연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수(愁)ㆍ탄(歎)ㆍ고(苦)ㆍ우(憂)ㆍ요뇌(擾惱)가 발생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곧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純大苦蘊]이 쌓인다는 것을 사실대로 알고 보느니라.
그리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는 까닭에 저것도 소멸한다 함을 사실대로 알고 보느니라. 이를테면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며,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6처가 소멸하며, 6처가 소멸하기 때문에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수가 소멸하며, 수가 소멸하기 때문에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가 소멸하며, 취가 소멸하기 때문에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기 때문에 생이 소멸하며, 생이 소멸하기 때문에 노ㆍ사ㆍ수ㆍ탄ㆍ고ㆍ우ㆍ요뇌가 소멸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곧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이 소멸한다는 것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연기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처(處)ㆍ비처(非處)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가 처ㆍ비처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處非處善巧]이니라. 이를테면, 도리에도 맞지 않고[無處] 그리 될 수도 없는[無容]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의 악행(惡行)을 하는데도 사랑할 만하고 즐거울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이숙(異熟)을 받게 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有處] 그리 될 수 있는 것[有容]은 바로 몸과 말과 뜻의 악행을 하면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의 묘행(妙行)을 하는데도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하면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악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모든 착한 세계[善趣]에 태어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몸과 말과 뜻으로 악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모든 악한 세계[惡趣]에 떨어진다는 것이니라.
024_1164_b_02L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모든 악한 세계에 떨어진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모든 착한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處非處善巧]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꺼번에 두 분의 전륜왕(轉輪王)이 하나의 세계에 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 때에 한 분의 전륜왕이 하나의 세계에 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꺼번에 두 분의 여래(如來)께서 하나의 세계에 나신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 때에 한 분의 여래께서 하나의 세계에 나신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여인이 전륜왕ㆍ제석(帝釋)ㆍ마왕(魔王)ㆍ범왕(梵王)이 되고 그리고 독각(獨覺)의 보리(菩提)를 증득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남자가 전륜왕ㆍ제석ㆍ마왕ㆍ범왕이 되고 그리고 독각의 보리를 증득하거나 혹은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거룩한 소견[聖見]을 갖춘 이가 고의(故意)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며 아라한을 해치고 화합승(和合僧)을 파괴하며 그리고 악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 몸에 피를 낸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모든 이생(異生)인 자면 5무간업(無間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고의로 중생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모든 이생(異生)인 자면 고의로 중생의 목숨을 끊게 된다는 것이니라.
024_1164_c_02L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고의로 모든 학처(學處)를 어긴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이생인 자면 고의로 모든 학처를 어기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뛰어난 학처를 버리고 하열한 학처에 나아가며 혹은 외도(外道)를 구하여 스승으로 삼거나 혹은 외도를 구하여 복전(福田)으로 삼거나 혹은 외도의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의 얼굴을 우러러 쳐다보거나 혹은 갖가지 모든 길상(吉祥)에 대하여 점을 치는 일에 집착하면서 청정하다고 여기거나 혹은 제팔유[第八有:都無事]를 받들거나 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이생인 자면 이러한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蓋)에 마음이 더럽혀진지라 지혜의 힘[慧力]을 파괴하게 하고 도품(道品)을 장애하며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4념주(念住)에 편안히 머무른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마음을 더럽혀서 지혜의 힘을 파괴하게 하고 도품을 장애하며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마음으로 4념주 안에 편안히 잘 머무른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아직 4념주에도 머무르지 못하면서 7등각지(等覺支)를 닦아 익힐 수 있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내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4념주 안에 이미 잘 머무르고 그리고 7등각지를 잘 닦아 익힌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蓋)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내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아직 4념주 안에 잘 머무르지 못하고 아직 7등각지도 닦아 익힐 수 없으면서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이나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菩提]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마음으로 4념주 안에 이미 잘 머무른 뒤에 7등각지를 능히 닦아 익히고서야 비로소 성문이나 독각이나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와 같이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지혜 있는 이의 처ㆍ비처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지금 이 법문은 그 이름이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법문의 이름은 사전(四轉)이라 하고 또한 대법경(大法鏡)이라 하며 또한 감로고(甘露鼓)라 하고 또한 다계(多界)라고 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지녀야 하느니라.” 그때에 아난타는 기뻐하며 공경히 받았다. 어떤 것을 안계(眼界)라 하는가? 이른바 안근(眼根)과 같다. 어떤 것을 색계(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색처(色處)와 같다.
024_1165_a_02L어떤 것을 안식계(眼識界)라 하는가? 눈과 빛깔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것이 안식(眼識)이며 이 가운데서 눈은 증상(增上)이 되고 빛깔은 소연(所緣)이 되어 눈으로 아는 빛깔에 대하여 모든 빛깔을 요별(了別)하고 다르게 요별하며 저마다 따로따로 요별하는 것을 바로 안식계라고 한다. 그 밖의 다른 15계(界)에 대해서도 응함에 따라 자세한 설명은 역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지계(地界)라 하는가? 지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지계라 하는가?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단단한 성품[堅性]이요 단단한 종류[堅類]로서 집수(執受)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머리카락ㆍ터럭ㆍ손발톱ㆍ이 나아가 대변까지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나니, 이것을 바로 안의 지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지계라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無執無受]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대지(大地)ㆍ산ㆍ모든 돌ㆍ기와ㆍ조약돌과 민물조개ㆍ달팽이ㆍ구리ㆍ쇠ㆍ주석ㆍ납ㆍ말니(末尼)ㆍ진주ㆍ유리ㆍ나패ㆍ산호ㆍ벽옥이며, 금ㆍ은ㆍ석장(石藏)ㆍ저장(杵藏)ㆍ파지가(頗胝迦)ㆍ적주(赤珠)ㆍ석선(石旋)ㆍ모래ㆍ흙ㆍ풀ㆍ나무ㆍ가지ㆍ잎사귀ㆍ꽃ㆍ열매 등이다. 혹은 또 땅이 수륜(水輪)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있다.
또 그밖에도 이 몸 이외에 있는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지계라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지계라 한다. 어떤 것을 수계(水界)라 하는가? 수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수계라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축축한 성품[濕性]과 축축한 종류[濕類]로서 집수가 있는[有執有受]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모든 눈물ㆍ땀 나아가 소변까지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 저마다 따로따로의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수계라 한다.
024_1165_b_02L어떤 것을 밖[外]의 수계라 하는가? 이 몸 이외에 있고 모든 바깥에 소속된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이른바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등의 즙(汁)과 이슬ㆍ술ㆍ우유ㆍ타락ㆍ소(酥)ㆍ기름ㆍ꿀ㆍ사탕ㆍ못ㆍ호수ㆍ긍가하(殑伽河)ㆍ염모나하(鹽母那河)ㆍ살랄유하(薩剌渝河)ㆍ알씨라벌지하(頞氏羅筏底河)ㆍ막혜하(莫呬河)와 동해ㆍ서해ㆍ남해ㆍ북해의 큰 바닷물이며, 혹은 또 물이 풍륜(風輪)에 의지하며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있다. 또 이것 외에 있는 나머지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수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이 밖의 것을 통틀어 수계라 한다.
어떤 것을 화계(火界)라 하는가? 화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화계라고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따뜻한 성품[暖性]과 따뜻한 종류[暖類]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 몸속에 있는 모든 덥고[熱], 평등하게 덥고, 두루 더운 것이어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먹은 것과 마신 것이 곧바로 쉽게 소화되며 만일 이것이 너무 성하면 몸으로 하여금 불에 타듯 더워지게 한다. 또 그밖에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따뜻한 성품과 따뜻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곧 안의 화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화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따뜻한 성품과 따뜻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無執無受]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땅의 따뜻함과 불ㆍ해ㆍ약ㆍ말니(末尼)ㆍ궁전(宮殿)ㆍ별ㆍ불무더기ㆍ등불ㆍ불꽃과 마을을 태우고 성(城)을 태우고 산천을 태우고 들을 태우는 불과 십ㆍ이십ㆍ삼십ㆍ사십ㆍ오십ㆍ백ㆍ천ㆍ혹은 한량없이 많은 땔나무를 태우는 등 불이 왕성하고 밝고 환한 것이며 혹은 산ㆍ진펄ㆍ하천ㆍ못ㆍ바위ㆍ굴ㆍ방ㆍ전당ㆍ누각ㆍ풀ㆍ나무ㆍ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사귀ㆍ꽃ㆍ열매 등에 있는 따뜻한 기운이다. 또 그밖에 열(熱)이 있는 성품과 열이 있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화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이 밖의 것을 통틀어 화계라고 한다.
024_1165_c_02L어떤 것을 풍계(風界)라 하는가? 풍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풍계라 하는가? 이른바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움직이는 성품[動性]과 움직이는 종류[動類]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 몸 속의 혹은 위로 나오는 바람[上行風]이거나 혹은 아래로 나오는 바람[下行風]이거나 혹은 곁으로 나오는 바람[傍行風]이거나 겨드랑 바람[脇風]ㆍ등 바람[背風]ㆍ가슴 바람[胸風]ㆍ뱃속 바람[肚風]ㆍ염통 바람[心風]ㆍ배꼽 바람[臍風]과 올발라풍(嗢鉢羅風)ㆍ필발라풍(蓽鉢羅風)ㆍ도풍(刀風)ㆍ검풍(劒風)ㆍ침풍(針風)ㆍ결풍(結風)ㆍ전풍(纏風)ㆍ철풍(掣風)ㆍ노풍(努風)ㆍ강풍(强風)과 팔다리의 마디뼈를 따라 부는 바람[隨支節風]과 들숨ㆍ날숨의 바람[入出息風]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풍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풍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동풍(東風)ㆍ서풍(西風)ㆍ남풍(南風)ㆍ북풍(北風)과 먼지가 있는 바람[有塵風]ㆍ먼지가 없는 바람[無塵風]ㆍ회오리바람[旋風]ㆍ사나운 바람[暴風]과 폐람바 바람[吠嵐婆風]ㆍ작은 바람[小風]ㆍ큰 바람[大風]ㆍ한량없는 바람[無量風]ㆍ풍륜의 바람[風輪風]과 허공에 의지하여 부는 바람[依空行風]이다. 또 그 밖의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풍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풍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공계(空界)라고 하는가? 공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공계라고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모든 저마다 따로따로의 속이 빈 성품[空性]과 속 빈 종류[空類]로서 집수(執受)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이 몸속에 있는 가죽ㆍ살ㆍ피ㆍ뼈ㆍ골수 등에 따라 속이 비어 있는 데와 눈구멍ㆍ귓구멍ㆍ콧구멍ㆍ입ㆍ목구멍ㆍ심장ㆍ장(腸)ㆍ뱃속 등에 있는 구멍이며 이로 말미암아 마신 것ㆍ먹은 것을 통하게 하고 저장하고 그리고 아래로 내보내는 것이다. 또 그 밖의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 속이 빈 성품과 속이 빈 종류가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공계라고 한다.
024_1166_a_02L어떤 것을 밖[外]의 공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속이 빈 성품과 속이 빈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밖에 속이 텅 비고 휑한 것[空]과 인아가색(隣阿伽色)이니, 이것을 바로 밖[外]의 공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공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식계(識界)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과 유루(有漏)의 의식(意識)을 식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