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4_1183_a_01L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024_1183_a_01L阿毘達磨集異門足論卷第一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24_1183_a_02L大唐三藏聖教序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024_1183_a_03L太宗文皇帝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24_1183_a_04L蓋聞二儀有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者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24_1183_a_10L故知像顯可徵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百福而長今妙道凝玄遵之莫知其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24_1183_b_02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024_1183_a_20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24_1183_b_03L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乍沿時而隆替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024_1183_b_08L有玄奘法師者門之領袖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홀로 우뚝하여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24_1183_b_12L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凝心內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扸理廣彼前聞僞續眞開茲後學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지독한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니며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거쳐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024_1183_b_16L是以翹心淨土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途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霜雨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
024_1183_c_02L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24_1183_b_22L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探賾妙門精窮奧業一乘五律之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業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24_1183_c_05L引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聖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同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昇墜之端惟人所託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24_1183_c_09L譬夫桂生高嶺雲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良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淨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猶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窮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제술성기皇帝述聖記7)
024_1183_c_16L皇帝述聖記在春宮日製
재춘궁일제在春宮日製8)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24_1183_c_17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024_1184_a_02L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24_1183_c_23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應身經塵劫而不朽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9)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0)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24_1184_a_06L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맞잡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1)가 중국의 중심12)에 흐르는 팔천(八川)13)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24_1184_a_09L伏惟皇帝陛下上玄資福垂拱而治八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蟲金匱流梵說之偈遂使阿耨達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택의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24_1184_a_14L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舜比其聖德者哉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4)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5)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24_1184_a_20L玄奘法師者夙懷聰令立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世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禪巡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一乘之旨隨機化物
024_1184_b_02L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024_1184_a_24L以中華之無質尋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字頻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載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翻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법상(法相)16)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과 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24_1184_b_07L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同二儀之固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24_1184_b_11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足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024_1184_b_14L阿毘達磨集異門足論卷第一


존자 사리자(舍利子) 설(說)
삼장법사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024_1184_b_15L尊者舍利子說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1. 연기품(緣起品)
024_1184_b_17L緣起品第一

세존께서 어느 때 역사17)들이 사는 곳[力士生處]에 유행하시다가 파파읍(波波邑)에 이르러 절로가숲[折路伽林]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에 그 읍의 모든 역사들은, 그들이 늘 모여 놀던 동쪽 마을과 서쪽 마을 사이에 있는 올발낙가(嗢跋諾迦)라는 곳의 예부터 있던 제다(制多)18)의 처소에 함께 대관(臺觀)을 짓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으나 아직은 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 등이나 모든 역사들을 수용하지 않고 있었다.
024_1184_b_18L世尊一時遊力士生處至波波邑折路迦林時彼邑中諸力士衆於恒聚戲東西村間嗢跋諾迦舊制多所共造臺觀瑩飾初成未有沙門婆羅門等及諸力士曾所受用
024_1184_c_02L때마침 역사들은 불세존(佛世尊)께서 필추승(苾芻僧)19)을 거느리고 가까운 숲 속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서로 경하하면서 모두 함께 의논하였다.
“우리들이 수리한 훌륭한 대관에 우선 부처님과 필추승을 청하여 가장 높은 복전(福田)께서 그 속에서 거주하시도록 해야겠소. 그런 뒤에 우리들은 뛰어나고 착한 업[善業]을 따라 얻게 된 자재(資財)를 그 속에서 수용하도록 하면 이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익과 안락을 얻게 되리니, 어찌 잘한 일이 아니겠소?”
024_1184_b_23L時力士衆聞佛世尊將苾芻僧住近林內互相慶慰咸共議言我等所修勝妙臺觀應先請佛及苾芻僧無上福田於中止住然後我等隨勝善業所獲資財於中受用由斯我等長夜獲得利益安樂豈不善哉
모든 역사들은 이런 의논을 하고 나서 저마다 도반[徒侶]들과 여러 권속들을 모아 함께 파파 마을을 나와 여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는 세존의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번 돌고는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이때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역사들과 그의 권속들을 위문하시고 다시 여러 가지 미묘한 법문을 나타내어 보이시고 가르쳐 인도하시며 찬탄하고 격려하시면서 기쁘게 하셨으며, 이런 일을 모두 말씀하신 뒤에는 잠자코 계셨다.
024_1184_c_06L諸力士衆作是議已各集徒侶幷諸眷屬出波波村往如來所到已頂禮世尊雙足右遶三帀退坐一面時薄伽梵以慈軟音慰問力士幷諸眷屬復以種種微妙法門示現教導讚勵慶喜說是事已默然而住
모든 역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 뛰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공경하며 다 같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이 읍 안의 모든 역사들은, 항상 모여 놀던 동쪽 마을과 서쪽 마을 사이에 있는 올발낙가라는 곳에 예부터 제다의 처소가 있었는데, 그곳에 모두 함께 대관을 짓고 아름답게 꾸며 놓았으나 아직은 사문ㆍ바라문들과 모든 역사들을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모든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곳에 머물러 계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이익되고 안락하게 해 주십시오.”
024_1184_c_12L諸力士輩聞佛所說歡喜踊躍卽從座起合掌恭敬俱白佛言我此邑中諸力士衆於恒聚戲東西村閒嗢跋諾迦舊制多所共造臺觀瑩飾初成未有沙門婆羅門等及諸力士曾所受用唯願世尊哀愍我等將諸弟子於中止住令我長夜利益安樂
그때 여래께서는 그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 머무르셨다. 그리고 또 미묘한 음성으로 모든 역사들을 위하여 갖가지 보시와 그 과보의 차별을 널리 선양하시고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시면서 첫날밤을 넘기셨다. 모든 역사들과 그 권속들은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돌아갔다.
024_1184_c_18L爾時如來哀愍彼故將諸弟子往住其復以妙音爲諸力士宣揚種種施果差別問答往還過初夜分諸力士輩幷其眷屬聞法歡喜禮佛而去
024_1185_a_02L그때 세존께서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등이 좀 아프다. 잠시 동안 누워서 쉬어야겠으니, 너는 나를 대신해서 필추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잘 설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하라.”
그때 사리자는 잠자코 분부를 받들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올달라승(嗢怛羅僧)20)을 네 겹으로 접어 침구로 삼고 큰 옷[大衣]을 베개로 삼고는 몸을 단정히 하여 발을 포갠 뒤에 오른쪽 겨드랑이를 대고 누우셨다. 이치대로 생각하되 광명이 빛나는 생각[光明想]과 장차 일어나리라는 생각[當起想]에 머물러 바른 지혜를 갖추어 생각하시되 마치 큰 보배산[大寶山]이 고요하듯 움직임이 없으셨다.
024_1184_c_22L爾時世尊告舍利子吾今背痛暫當寢息汝可代吾爲苾芻衆宣說法要勿空度也時舍利子默然受教佛便四疊嗢怛羅僧敷爲臥具大衣爲枕端身累足右脅而臥如理作意住光明想及當起想具念正知如大寶山寂然無動
그때 사리자가 필추들에게 말하였다.
“이 파파 마을의 이계친자(離繫親子)21)는 부끄러움이 없는[無慚] 무리 가운데에 머물면서 자기 자신을 스승이라 불렀다. 그 사람이 죽은 지 아직 만 1개월도 못 되어 그의 여러 제자들은 둘씩둘씩 짝을 지어 시끄럽게 다투고 서로가 업신여기면서 저마다 이렇게 말하였다.
‘법(法)과 율(律)은 우리들만이 알며 다른 이들은 모른다. 우리들이 아는 것이 곧 법이요 율이며, 우리들이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뜻에 합치한다. 너희들은 이에 대하여 모두 다 해당 사항이 없다.’
024_1185_a_06L爾時舍利子告苾芻衆言此波波村離繫親子處無慚衆自號爲師其人命終未逾旬月諸弟子輩兩兩結朋諍訟紛紜互相𣣋蔑各言法律我解非餘如我所知是法是律我之所說應理合儀汝等於斯悉皆絕分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저마다 자기의 고집에 따라 앞뒤를 뒤바꾸거나 줄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떨어져 여러 부중(部衆)을 이루고는 승부(勝負)를 내려고 함께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허물과 힐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서로가 상대를 배척하였다.
비록 말[言]에 대해 논란[論難]이 있었으나 도(道)에 대해 논란이 없어서 입으로 칼과 같은 말을 내뿜어 상대를 잔인하게 해쳤다. 여러 속인들로서 그의 법을 믿는 이는 그 제자들이 어기고 다투는 이런 일을 보고 모두가 성을 내며 혐오하고 비방하면서 버리고 떠나갔다.”
024_1185_a_12L於其師教各隨己執迴換前後或減或增破析支離遂成多部欲知勝負便共激論爲脫過難遞相誹斥雖有論言而無論道口出刀槊以相殘害諸有白衣信彼法者見其弟子乖諍如斯皆共瞋嫌毀而捨去
024_1185_b_02L그때 사리자가 다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이 파파 마을의 이계친자의 모든 법과 율은 악한 언설이라 악하게 받아들였으므로 벗어날 수도 없고 바른 깨달음[正覺]에 나가지도 못하며, 그것은 파괴되는 법이라 나아갈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 우리들의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ㆍ대사(大師)의 법과 율은 선한 언설이라 선하게 받아들이므로 영원히 벗어날 수도 있고 바른 깨달음에 나아가게 되며 파괴할 수 있는 법이 아니므로 나아갈 곳도 있고 의지할 곳도 있다.
우리들은 이제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들은 법과 비나야(毘奈耶)를 한데 합쳐 결집(結集)하였다가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도 세존의 제자들이 어기거나 다투는 일이 없게 해야 하고, 장차 범행(梵行)을 따르는 법률로 하여금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여 한량없는 유정(有情)들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해야 하며, 세간의 모든 하늘들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어 그들로 하여금 훌륭한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해야 한다.”
024_1185_a_18L時舍利子復告衆言此波波村離繫親子所有法律惡說惡受不能出離不趣正覺是可壞法無趣無依我等如來正等覺大師法律善說善受能永出離能趣正覺非可壞法有趣有依我等今應聞佛住世和合結集法毘奈耶勿使如來般涅槃後世尊弟子有所乖諍當令隨順梵行法律久住利樂無量有情哀愍世閒諸天人衆令獲殊勝義利安樂

2. 일법품(一法品)
024_1185_b_05L集異門足論一法品第二

그때 사리자가 다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구수(具壽)22)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1법(法)에 스스로 잘 통달하시고 등각(等覺)을 나타내신 뒤에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널리 펴 말씀하시고 열어 보이셨다. 우리들은 이제 한데 합쳐 결집하였다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도 어기거나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하고, 장차 범행을 따르는 법과 율로 하여금 오래도록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해야 하며, 세간의 모든 하늘들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어 훌륭한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해야 한다.
1법이란 무엇인가? 올타남(嗢柁南)23)으로 말하리라.
024_1185_b_06L時舍利子復告衆言具壽當知佛於一法自善通達現等覺已爲諸弟子宣說開示我等今應和合結集佛滅度後勿有乖諍當令隨順梵行法律久住利樂無量有情哀愍世閒諸天人衆令獲殊勝義利安樂一法云何嗢柁南曰

한 가지 법이란, 이른바 유정은
음식[食]과 행(行)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온갖 착한 법에 있어서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
024_1185_b_13L一法謂有情
依食依行住
於一切善法
不放逸爲尊

온갖 유정들은 모두가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온갖 유정들은 모두가 행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모든 착한 법에 있어서 방일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일이니, 이것을 1법이라 한다.
온갖 유정들은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음식이기에 유정들은 모두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른다고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음식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여러 많은 유정들로 하여금 편히 머무르게 하고 또한 생을 구하는[求生] 이를 도와 이롭게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음식인가? 첫째는 단식(段食)이니 거칠기도 하고 미세하기도 하며, 둘째는 촉식(觸食)이요, 셋째는 의사식(意思食)이며, 넷째는 식식(識食)이다’라고 하셨다. 이 네 가지 음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유정들은 모두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른다’라고 한다.
024_1185_b_15L一切有情皆依食住一切有情皆依行住於諸善法不放逸勝是謂一法一切有情依食住者何等是食而言有情皆依食住如世尊說苾芻當知食有四種能令部多有情安住及能資益諸求生者何謂四食一者段食若麤若細二者觸食三者意思食者識食由此四食說諸有情皆依食
024_1185_c_02L무슨 이유로 모든 유정들이 모두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른다는 것을 아는가? 모든 유정들은 저마다의 몸[聚]에서 이 모든 음식이 아직 다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인(因)이 되어 상(想)ㆍ등상(等想)ㆍ시설(施設)ㆍ언설(言說)이 있고 살아 머무르며 이루어지는 것이 서로 다르게 구르는 것이요, 또 모든 유정들은 저마다의 몸에서 이 모든 음식이 이미 다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인이 되어 상ㆍ등상ㆍ시설ㆍ언설이 있다가 죽어 없어지고 떠나가는 것이 서로 다르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유정들이 모두 음식에 의지하여 머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24_1185_b_24L何緣故知諸有情類皆依食住諸有情於彼彼聚由此諸食未盡爲有想等想施設言說活住存濟差別而轉若諸有情於彼彼聚由此諸食已盡爲因有想等想施設言說歿殞逝差別而轉由此故知諸有情類皆依食住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작용이 있다[有爲]고 말해야 되는가, 작용이 없다[無爲]고 말해야 되는가?
【답】 작용이 있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항상 있다[常]고 말해야 되는가, 무상(無常)하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마땅히 무상하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한결같다[恒]고 말해야 되는가, 한결같지 않다[非恒]고 말해야 되는가?
【답】 마땅히 한결같지 않다고 말해야 된다.
024_1185_c_07L如是四食當言有爲當言無爲應言有爲如是四食當言常當言無常應言無常如是四食當言當言非恒應言非恒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변하고 바뀐다[變易]고 말해야 되는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不變易]고 말해야 되는가?
【답】 변하고 바뀐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인연으로 생긴다[緣已生]고 말해야 되는가,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다[非緣已生]고 말해야 되는가?
【답】 인연으로 생긴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이름[名]24)에 속한다고 말해야 되는가, 물질[色]에 속한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단식(段食)은 물질에 속한다고 말해야 되고 나머지 세 가지 음식은 이름에 속한다고 말해야 된다.
024_1185_c_11L如是四當言變易當言不變易應言變如是四食當言緣已生當言非緣已生應言緣已生如是四食當言名攝當言色攝段食應言色餘三食應言名攝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볼 수 있다[有見]고 말해야 되는가, 볼 수 없다[無見]고 말해야 되는가?
【답】 볼 수 없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대할 수 있다[有對]고 말해야 되는가, 대할 수 없다[無對]고 말해야 되는가?
【답】 단식은 대할 수 있다고 말해야 되고, 나머지 세 가지 음식은 대할 수 없다고 말해야 된다.
024_1185_c_16L如是四食言有見當言無見應言無見是四食當言有對當言無對段食應言有對餘三食應言無對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마음[心]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마음이 아니라[非心]고 말해야 되는가? 그것은 심소(心所)라고 말해야 되는가, 심소가 아니라[非心所]고 말해야 되는가? 또 마음과 상응한다[心相應]고 말해야 되는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다[心不相應]고 말해야 되는가?
【답】 단식은 마음도 아니고 심소도 아니고 마음과 상응하지도 않는다고 말해야 되며, 촉식과 의사식은 심소이면서 마음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되며, 식식은 오직 마음일 뿐이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선(善)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선이 아니라[不善]고 말해야 되는가, 무기(無記)라고 말해야 되는가?
024_1185_c_19L如是四食當言是心當言非心當言是心當言非心所當言心相應當言心不相應段食應言非心非心所不相應意思食應言是心所與心相應識食應言唯是心如是四食當言善當言不善當言無記
024_1186_a_02L【답】 단식은 무기라고 말해야 되고, 나머지 세 가지 음식은 혹은 선이기도 하고, 혹은 선이 아니기도 하며, 혹은 무기이기도 하다.
【문】 어떤 것이 선한 촉식(觸食)인가?
【답】 선한 유루(有漏)의 접촉이 연(緣)이 되어서 모든 감관[根]을 기르고 요소[大種]를 더욱 불리며, 또 윤택하게[滋潤] 하고 따라 윤택하게 되며, 만족하면서 기쁘게[充悅] 하고 따라 만족하면서 기쁘게 되며, 보호하고 따라 보호되며 움직이고 따라 움직이게 되며 유지하고 따라 유지되는 것을 바로 선한 촉식이라 한다.
024_1186_a_02L段食應言無記餘三食應言或善或不善或無記云何善觸食若善有漏觸爲緣能令諸根長養大種增益又能滋潤隨滋潤充悅隨充悅護隨護隨轉持隨持是謂善觸食
【문】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촉식인가?
【답】 선하지 않은 접촉이 연이 되어 모든 감관을 기르고 요소를 더욱 불리며, 또 윤택하게 하고 따라 윤택하게 되며, 나아가 유지하고 따라 유지되는 것을 선하지 않은 촉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무기의 촉식인가?
【답】 무기의 접촉이 연이 되어서 모든 감관을 기르고 요소를 더욱 불리며, 또 윤택하게 하고 따라 윤택하게 되며, 나아가 유지하고 따라 유지하게 되는 것을 바로 무기의 촉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선한 의사식인가?
024_1186_a_07L云何不善觸食若不善觸爲緣能令諸根長養大種增益又能滋潤隨滋潤乃至持隨持是謂不善觸食云何無記觸若無記觸爲緣能令諸根長養大種增益又能滋潤隨滋潤乃至持隨持是謂無記觸食云何善意思食
【답】 선한 유루의 접촉과 상응하는 모든 의사[思]와 평등히 여기는 의사[等思]와 앞에 나타나 평등히 여기는 의사[現前等思], 이미 끝난 의사[已思] 등 의사의 종류와 마음과 뜻으로 업[心意業]을 짓는 것 등을 곧 선한 의사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의사식인가?
【답】 선하지 않은 접촉과 상응하는 모든 의사와 평등히 여기는 의사와 나아가 뜻으로 짓는 업[意業]을 바로 선하지 않은 의사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무기의 의사식인가?
【답】 무기의 접촉과 상응하는 모든 의사와 평등히 여기는 의사와 나아가 뜻으로 짓는 업을 바로 무기의 의사식이라 한다.
024_1186_a_13L若善有漏觸相應諸思等思現前等思已思思類造心意業是謂善意思食云何不善意思食若不善觸相應諸思等思乃至意業是謂不善意思食云何無記意思食若無記觸相應諸思等思乃至意業是謂無記意思食
【문】 어떤 것이 선한 식식(識食)인가?
【답】 선한 유루의 의사와 상응하는 모든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바로 선한 식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선하지 않은 식식인가?
【답】 선하지 않은 의사와 상응하는 모든 마음과 뜻과 의식을 바로 선하지 않은 식식이라 한다.
【문】 어떤 것이 무기의 식식인가?
【답】 무기의 의사와 상응하는 모든 마음과 뜻과 의식을 바로 무기의 식식이라 한다.
024_1186_a_20L云何善識食若善有漏思相應諸心意識是謂善識食云何不善識食若不善思相應諸心意是謂不善識食云何無記識食若無記思相應諸心意識是謂無記識食
024_1186_b_02L【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유루(有漏)라고 말해야 되는가, 무루(無漏)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유루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배울 것이 있다[學]고 말해야 되는가, 배울 것이 없다[無學]고 말해야 되는가?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니라[非學非無學]고 말해야 되는가?
【답】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 음식은 욕계에 매인 것[欲界繫]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색계에 매인 것[色界繫]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무색계에 매인 것[無色界繫]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단식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야 되고, 나머지 세 가지 음식은 혹은 욕계에 매인 것이기도 하고 혹은 색계에 매인 것이기도 하며 혹은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야 된다.
024_1186_b_02L如是四食當言有漏當言無應言有漏如是四食當言學當言無學當言非學非無學應言非學非無學如是四食當言欲界當言色界繫當言無色界繫段食應言欲界繫餘三食應言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繫
【문】 모든 음식은 다 단식인가?
【답】 여러 가지 단식은 모두 음식이지만 음식이면서도 단식이 아닌 것도 있으니, 이른바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世俗)이 그것이다.
【문】 모든 음식은 다 촉식(觸食)인가?
【답】 여러 가지 촉식은 모두 음식이지만 음식이면서도 촉식이 아닌 것도 있으니, 이른바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이 그것이다.
【문】 모든 음식은 다 의사식(意思食)인가?
【답】 모든 의사식은 다 음식이지만 음식이면서도 의사식이 아닌 것도 있나니, 이른바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이 그것이다.
【문】 모든 음식은 다 식식(識食)인가?
【답】 모든 식식은 다 음식이지만 그 음식이 식식이 아닌 것도 있나니, 이른바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이다.
024_1186_b_08L諸食皆是段食耶諸段食皆是有是食非段食謂餘三食及世俗諸食皆是觸食耶諸觸食皆是有是食非觸食謂餘三食及世俗諸食皆是意思食耶諸意思食皆是食有是食非意思食謂餘三食及世俗
【문】 모든 형체 있는 것[段]은 모두 다 음식인가?
【답】 마땅히 네 가지로 말하겠다. 첫째는 형체가 있으면서도 음식이 아닌 것이 있나니, 형체 있는 것이 연(緣)이 되어서 모든 감관을 손감(損減)시키고 요소를 변괴(變壞)시키는 것이요, 둘째는 음식이면서도 형체가 아닌 것이 있나니,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이 그것이며, 셋째는 형체도 있고 또한 음식인 것도 있나니, 형체 있는 것이 연이 되어서 모든 감관을 기르고 요소를 더욱 불리며, 또 윤택하게 하고 따라 윤택하게 되며 나아가 유지하고 따라 유지하게 되는 것이요, 넷째는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음식이 아닌 것도 있나니, 이른바 앞에서 말한 모양 이외의 것이다.
024_1186_b_15L諸食皆是識食耶諸識食皆是食有是食非識食謂餘三食及世俗諸段皆是食耶應作四有是段而非食謂段爲緣諸根損減大種變壞有是食而非段謂餘三食及世俗有是段亦是食謂段爲緣諸根長養大種增益又能滋潤隨滋潤乃至持隨持有非段亦非食謂除前相
024_1186_c_02L【문】 모든 접촉[觸]은 다 음식인가?
【답】 마땅히 네 가지로 말하겠다. 첫째는 접촉이면서도 음식이 아닌 것이 있나니, 무루의 접촉과 유루의 접촉이 연이 되어서 모든 감관을 손감시키고 요소를 변괴시키는 것이요, 둘째는 음식이면서도 접촉이 아닌 것이 있나니,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세속이 그것이다. 셋째는 접촉이기도 하고 또한 음식인 것도 있나니, 유루의 접촉이 연이 되어서 모든 감관을 기르고 요소를 더욱 불리며, 또 윤택하게 하고 따라 윤택하게 되며 나아가 유지하고 따라 유지하게 되는 것이요, 넷째는 접촉인 것도 아니고 또한 음식이 아닌 것도 있나니, 이른바 앞에서 말한 모양 이외의 것이다. 촉식에 네 가지가 있는 것과 같이 의사식과 식식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024_1186_b_23L諸觸皆是食耶應作四句有是觸而非食謂無漏觸及有漏觸爲緣諸根損減大種變壞有是食而非觸謂餘三食及世俗有是觸亦是謂有漏觸爲緣諸根長養大種增又能滋潤隨滋潤乃至持隨持非觸亦非食謂除前相如觸食有四意思識食應知亦爾
【문】 혹시 음식이 연(緣)이 되어서 음식을 내거나 음식이 아닌 것을 내거나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낸다.
【문】 어떻게 음식이 연이 되어서 음식을 내는가?
【답】 단식(段食)이 연이 되어서 나머지 세 가지 음식을 낸다.
【문】 어떻게 음식이 연이 되어서 음식이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단식이 연이 되어서 느낌[受]과 생각[想]과 뜻 지음[作意] 등을 낸다.
【문】 어떻게 음식이 연이 되어서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단식이 연이 되어 나머지 세 가지 음식과 느낌ㆍ생각ㆍ뜻 지음 등을 낸다.
024_1186_c_07L頗有食爲緣生食生非食生食非食耶云何食爲緣生食段食爲緣生餘三食云何食爲緣生非食段食爲緣作意等云何食爲緣生食非食段食爲緣生餘三食及受作意
【문】 혹시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서 음식 아닌 것을 내고 음식을 내며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낸다.
【문】 어떻게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이 연이 되어 느낌과 생각과 뜻 지음 등을 내는 것과 같다.
【문】 어떻게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을 내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이 연이 되어 촉식(觸食)과 의사식(意思食)과 식식(識食)을 내는 것과 같다.
024_1186_c_13L頗有非食爲緣生非食生食生食非食耶云何非食爲緣生非食如眼及色爲緣生受作意等何非食爲緣生食如眼及色爲緣生觸意思識食
【문】 어떻게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내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이 연이 되어 촉식ㆍ의사식ㆍ식식과 느낌ㆍ생각ㆍ뜻 지음 등을 내는 것과 같다.
【문】 혹시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내고, 음식이 생기고 음식이 아닌 것이 생기는가?
【답】 생긴다.
【문】 어떻게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이 생기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과 안식(眼識)이 연이 되어 촉식ㆍ의사식ㆍ식식을 내고, 느낌ㆍ생각ㆍ뜻 지음 등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024_1186_c_17L云何非食爲緣生食非食如眼及色爲緣生觸意思及受作意等頗有食非食爲緣生食非食生食生非食耶云何食非食爲緣生食非食如眼及色眼識爲緣生觸意思識食及受意等
024_1187_a_02L【문】 어떻게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이 생기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과 안식이 연이 되어 촉식ㆍ의사식ㆍ식식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문】 어떻게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이 연이 되어 음식 아닌 것이 생기는가?
【답】 마치 눈과 빛깔과 안식이 연이 되어 느낌ㆍ생각ㆍ뜻 지음 등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문】 만일 단식(段食)을 이미 끊었고[己斷] 이미 두루 알았다[己遍知]면 촉식도 또한 그러한가?
024_1186_c_23L云何食非食爲緣生食如眼及色眼識爲緣生觸意思識食云何食非食爲緣生非食如眼及色識爲緣生受作意等若段食已斷已遍知觸食亦爾耶
【답】 만일 촉식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단식도 또한 그러하지만 단식은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 해도 촉식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나니, 이미 욕계의 번뇌[染]를 여의었어도 아직 그 위 세계의 번뇌를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단식이 촉식과 상대되는 것처럼 의사식과 식식도 또한 그러하다.
【문】 만일 촉식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의사식도 또한 그러한가?
【답】 그러하다. 마치 촉식이 의사식과 상대되는 것처럼 식식도 또한 그러하다.
【문】 만일 의사식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식식도 또한 그러한가?
【답】 그러하다.
024_1187_a_04L若觸食已斷已遍知段食亦爾有段食已斷已遍知非觸食謂已離欲染未離上染如以段食對觸食對意思識食亦爾若觸食已斷已遍知意思食亦爾如是如以觸食對意思食對識食亦爾若意思食已斷已遍知食亦爾耶如是
【문】 만일 음식에 대하여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그들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서 이미 번뇌를 여읜 것인가?
【답】 만일 단식에 대하여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욕계에서는 이미 번뇌를 여의었거니와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만일 그 나머지 세 가지 음식에 대하여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그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서 모두 이미 번뇌를 여읜 것이므로, 그때에는 온갖 것과 온갖 일과 온갖 종류와 온갖 지위와 온갖 처소와 온갖 결박에서 이미 모든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024_1187_a_11L若於食已斷已遍知彼於欲無色界已離染耶若於段食已斷已遍知彼於欲界已離染非於色無色界若於餘三食已斷已遍知彼於欲無色界皆已離爾時於一切一切事一切種一切一切處一切結皆已離染故
“온갖 유정은 행(行)에 의지하여 머무른다”에서, 어떤 것이 행이기에 “유정은 모두가 행에 의지하여 머무른다’라고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苾芻)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유정들의 여러 몸 덩어리가 죽지도 않고 숨이 떨어지지도 않으며 파괴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잃어버리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는 것은 모두가 수(壽)로 말미암아 머무르면서 목숨[命根]이 서로 이어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 수와 목숨을 행(行)이라 한다.
이 행으로 말미암아 온갖 유정들은 몸이 있으면서 머무르고 살아가는 것이니, 이 행은 그를 보호해 주고 따라 보호하게 되며 움직이게 하고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 때문에 온갖 유정은 모두가 행에 의지하여 머무른다고 말한다.
024_1187_a_17L一切有情依行住者何等是行而言有情皆依行住如世尊說苾芻當知若諸有情於彼彼聚不死不殞不破不沒不失不退皆由壽住命根相續此壽命根說名爲行由此行故一切有情存濟住活此行於彼能護隨護能轉隨轉由此故說一切有情皆依行住
024_1187_b_02L어떤 이유로 모든 유정들은 모두가 행에 의지하여 머물러 있는 줄 아는가?
모든 유정들은 그들의 몸 덩어리에서 이 수명의 행[壽行]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인(因)이 되어 상(想)ㆍ등상(等想)ㆍ시설(施設)ㆍ언설(言說)이 있고 살아서 머무르며 몸이 있으면서 서로 다르게 옮겨가는 것이다. 또한 모든 유정들은 그들의 몸 덩어리에서 이 수명의 행이 이미 다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이 되어 상ㆍ등상ㆍ시설ㆍ언설이 있다가 죽어서 없어지고 숨이 떨어지면서 서로 다르게 옮겨가게 된다. 이 때문에 모든 유정들은 다 행에 의지하여 머무르게 되는 줄 알 수 있다.
024_1187_b_02L何緣故知諸有情類皆依行住謂諸有情於彼彼聚由此壽行未盡爲因有想等想施設言說活住存濟差別而轉若諸有情於彼彼聚由此壽行已盡爲因有想等想施設言說死沒殞逝差別而轉由此故知諸有情類皆依行住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유위(有爲)라고 말해야 되는가, 무위(無爲)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유위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항상하다고 말해야 되는가, 무상하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무상하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한결같다고 말해야 되는가, 한결같지 않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한결같지 않다고 말해야 된다.
024_1187_b_08L如是壽行當言有爲當言無爲應言有爲如是壽行當言常當言無常應言無常如是壽行當言當言非恒應言非恒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변하고 바뀐다고 말해야 되는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변하고 바뀐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해야 되는가,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이름에 속한다고 말해야 되는가, 물질에 속한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이름에 속한다고 말해야 된다.
024_1187_b_12L如是壽當言變易當言不變易應言變如是壽行當言緣已生當言非緣已生應言緣已生如是壽行當言名攝當言色攝應言名攝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볼 수 있다고 말해야 되는가, 볼 수 없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볼 수 없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대할 수 있다고 말해야 되는가, 대할 수 없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대할 수 없다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마음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마음이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가? 심소(心所)라고 말해야 되는가, 심소가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가? 마음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되는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마음도 아니고 심소도 아니며, 마음과 상응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된다.
024_1187_b_16L如是壽行當言有見當言無見言無見如是壽行當言有對當言無對應言無對如是壽行當言是心當言非心當言是心所當言非心所當言心相應當言心不相應應言非心非心所心不相應
024_1187_c_02L【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선(善)하다고 말해야 되는가, 선하지 않다고 말해야 되는가, 무기(無記)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무기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유루(有漏)라고 말해야 되는가, 무루(無漏)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유루라고 말해야 된다.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해야 되는가,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해야 되는가,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가?
【답】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된다.
024_1187_b_22L如是壽行當言善當言不善當言無記應言無記如是壽行當言有漏言無漏應言有漏如是壽行言學當言無學當言非學非無學應言非學非無學
【문】 이와 같은 수명의 행은 욕계(欲界)에 매였다고 말해야 되는가, 색계(色界)에 매였다고 말해야 되는가, 무색계(無色界)에 매였다고 말해야 되는가?
【답】 혹은 욕계에 매이기도 하고 혹은 색계에 매이기도 하며 혹은 무색계에 매였다고 말해야 된다.
【문】 어떤 것이 욕계에 매인 것인가?
【답】 욕계의 수명이다.
【문】 어떤 것이 색계에 매인 것인가?
【답】 색계의 수명이다.
【문】 어떤 것이 무색계에 매인 것인가?
【답】 무색계의 수명이다.
024_1187_c_04L如是壽行當言欲界繫當言色界繫當言無色界繫應言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繫云何欲界繫欲界壽云何色界繫色界壽云何無色界繫色界壽
【문】 만일 욕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다면 색계의 수명도 역시 그렇게 되는가?
【답】 만일 색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욕계도 그렇게 되지만 욕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 해도 색계의 수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나니, 이미 욕계의 번뇌[染]는 여의었으나 아직 색계의 번뇌를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 만일 욕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다면 무색계의 수명도 그렇게 되는가?
【답】 만일 무색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욕계의 수명도 그렇게 되지만 욕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 해도 무색계의 수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나니, 이미 욕계의 번뇌는 여의었으나 아직 무색계의 번뇌는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024_1187_c_09L若欲界壽已斷已遍知色界壽亦爾耶若色界壽已斷已遍知欲界壽亦爾有欲界壽已斷已遍知非色界壽謂已離欲染未離色染若欲界壽已斷已遍知無色界壽亦爾耶若無色界壽已斷已遍知欲界壽亦爾有欲界壽已斷已遍知非無色界壽謂已離欲染未離無色染
【문】 만일 색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다면 무색계의 수명도 그렇게 되는가?
【답】 무색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색계의 수명도 그렇게 되지만 색계의 수명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 해도 무색계의 수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나니, 이미 색계의 번뇌는 여의었으나 아직 무색계의 번뇌는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 만일 수명의 행에 대하여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그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서 이미 번뇌를 여읜 것인가?
【답】 만일 욕계 수명의 행을 이미 여의었고 두루 알았다면 그것은 욕계에서는 이미 번뇌를 여읜 것이지만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024_1187_c_17L色界壽已斷已遍知無色界壽亦爾若無色界壽已斷已遍知色界壽亦爾有色界壽已斷已遍知非無色界壽謂已離色染未離無色染若於壽行已斷已遍知彼於欲色界已離染耶若於欲界壽行已斷已遍知彼於欲界已離染非於色無色界
024_1188_a_02L만일 색계 수명의 행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그것은 욕계와 색계에서는 이미 번뇌를 여의었지만 무색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만일 무색계의 수명의 행을 이미 끊었고 두루 알았다면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서 모두가 이미 번뇌를 여읜 것이므로, 그때에는 온갖 것과 온갖 일과 온갖 종류와 온갖 지위와 온갖 처소와 온갖 결박에서 이미 모든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024_1188_a_02L若於色界壽行已斷已遍知彼於欲色界已離染非無色界若於無色界壽行已斷已遍知彼於欲無色界皆已離染爾時於一切一切一切種一切位一切處一切結已離染故
【문】 온갖 착한 법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이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는 것인가?
【답】 선하지 않은 법은 끊으려 하고 선한 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닦으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닦으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방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024_1188_a_07L於一切善法不放逸勝者云何不放若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3. 이법품(二法品) ①
024_1188_a_11L集異門足論二法品第三之一

그때 사리자가 또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구수들이여,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2법(法)에 대하여 스스로 잘 통달하시고 등각을 나타내신 뒤에는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널리 펴 말씀하시고 열어 보이셨다.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한데 합쳐 결집하였다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도 어기거나 다툼이 없어야 하고, 장차 범행(梵行)을 따르는 법과 율로 하여금 오래도록 머무르며 한량없는 유정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해야 하며, 세간의 모든 하늘들과 사람들로 하여금 훌륭한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해야 한다.
2법이란 어떤 것인가? 올타남으로 말하리라.
024_1188_a_12L時舍利子復告衆言具壽當知佛於二法自善通達現等覺已爲諸弟子宣說開示我等今應和合結集佛滅度後勿有乖諍當令隨順梵行法律久住利樂無量有情哀愍世間諸天人衆令獲殊勝義利安樂二法云何嗢柁南曰

두 가지 법은 이름[名]과 물질[色]과
나아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니
통틀어 스물일곱 가지의 문이 있으므로
차례대로 따로따로 해석하겠다.
024_1188_a_19L二法謂名色
乃至盡無生
摠二十七門
應隨次別釋
024_1188_b_02L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름과 물질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무명(無明)과 유애(有愛)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有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無慚]과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無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스스로 부끄러운 것[慚]과 남에게 부끄러운 것[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악한 말[惡言]과 나쁜 벗[惡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착한 말[善言]과 착한 벗[善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죄에 들어가는 선교[入罪善巧]와 죄에서 벗어나는 선교[出罪善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선정에 드는 선교[入定善巧]와 선정에서 나오는 선교[出定善巧]이다.
024_1188_a_21L有二法謂名復有二法謂無明復有二法謂有見無有見復有二謂無慚無愧復有二法謂慚有二法謂惡言惡友復有二法謂善善友復有二法謂入罪善巧出罪善巧復有二法謂入定善巧出定善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경계의 선교[界善巧]와 작의의 선교[作意善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질박하고 정직한 것[質直]과 부드럽고 온화한 것[柔和]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견디고 참는 것[堪忍]과 즐거워하는 것[可樂]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온화하게 순종하는 것[和順]과 공양하는 것[供養]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염을 갖추는 것[具念]과 바르게 아는 것[正知]이다.
024_1188_b_05L復有二法謂界善巧作意善巧有二法謂質直柔和復有二法謂堪可樂復有二法謂和順供養復有二法具念正知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생각하여 선택하는 힘[思擇力]과 닦아 익히는 힘[修習力]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감관[根門]을 수호하지 않는 것과 음식에 대해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감관을 보호하는 것과 음식에 대해 헤아릴 줄 아는 것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계율이 부족한 것[匱戒]과 견해에 모자라는 것[匱見]이다.
024_1188_b_09L復有二法謂思擇力修習復有二法謂不護根門食不知量復有二法謂能護根門於食知量有二法謂匱戒匱見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계율을 깨뜨리는 것[破戒]과 견해를 깨뜨리는 것[破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계율을 온전히 갖추는 것[具戒]과 견해가 온전한 것[具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계율이 청정한 것[淨戒]과 견해가 청정한 것[淨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견해[見]와 이치에 맞게 뛰어난 것[如理勝]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싫증[厭]과 이치에 맞게 뛰어난 것[如理勝]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선(善)에 대하여 기뻐하거나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 것과 끊을 것[斷]을 막거나 그치지 않는 것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明)과 해탈(解脫)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
024_1188_b_12L復有二法謂破破見復有二法謂具戒具見復有二法謂淨戒淨見復有二法謂見理勝復有二法謂厭如理勝復有二謂於善不喜足於斷不遮止復有二法謂奢摩他毘鉢舍那復有二法謂明解脫復有二法謂盡智無生智
【문】 이 가운데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이름[名]과 물질[色]이다”라고 했는데, 이름이란 어떤 것인가?
【답】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薀)과 허공(虛空)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이니, 이것을 곧 이름이라 한다.
【문】 물질이란 어떤 것인가?
【답】 4대종(大種)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니, 이것을 곧 물질이라 한다.
024_1188_b_18L此中有二法謂名色者名云何想蘊行蘊識蘊及虛空擇滅擇滅是謂名色云何四大種及所造色是謂色
024_1188_c_02L【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무명(無明)과 유애(有愛)이다’라고 했는데, 무명이란 어떤 것인가?
【답】 『법온족론(法蘊足論)』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유애란 어떤 것인가?
【답】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탐(貪)ㆍ등탐(等貪)ㆍ집장(執藏)ㆍ방호(防護)ㆍ탐착(耽著)ㆍ애염(愛染)이니, 이것을 유애라 한다.
024_1188_b_22L復有二法謂無明有愛者無明云何如法蘊論說有愛云何色無色界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謂有愛
【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有見]이다”라고 했는데, 있다는 견해란 어떤 것인가?
【답】 나[我]와 세간(世間)은 항상 있다[常]고 여기면서 이로 말미암아 참고 즐기면서 본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있다는 견해라 한다.
【문】 없다는 견해란 어떤 것인가?
【답】 나[我]와 세간은 아주 없다[斷]고 여기면서 이로 말미암아 참고 즐기면서 본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곧 없다는 견해라 한다.
【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것[無慚]과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無愧]이다”라고 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024_1188_c_03L復有二法謂有見無有見者有見云若謂我世閒常由此發起忍樂觀見是謂有見云何無有見若謂我世閒斷由此發起忍樂觀見是謂無有見復有二法謂無慚無愧者無慚云何
【답】 불세존(佛世尊)께서 말씀하시되,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는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법에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내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법이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모든 법의 잡염(雜染)에 따르고 후유(後有)에 따르며 불이 훨훨 타듯 하는 괴로움의 이숙(異熟)이 있어서 장차 오는 세상에 나고 늙고 죽음을 따르는 것이다.
024_1188_c_09L如世尊說有無慚者於可慚法而不生慚可慚法者謂諸惡不善法雜染順後有有熾然苦異熟順當來生老死
그는 이와 같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겼을 때에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고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따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수치스러워함이 없고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고 따로 수치스러워하지도 않으며, 공경함도 없고 공경할 것도 없으며 따르거나 속함[隨屬]도 없고 따르거나 속할 것도 없으며 자재한 이[自在者]에 대하여 두려워함이 없이 움직이나니, 이것을 곧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라 한다.
024_1188_c_13L彼於如是惡不善法生時無所慚無別慚無羞無所羞無別無崇敬無所崇敬無隨屬無所隨於自在者無怖畏轉是謂無慚
【문】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는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법에 있어서 남에게 부끄러움을 내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법이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모든 법과 나아가 오는 세상에 나고 늙고 죽음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겼을 때에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따로 남에게 부끄러워함도 없으며, 수치스러워함도 없고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고 따로 수치스러워하는 일이 없으며, 모든 죄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아서 두렵다고 보지도 않나니, 이것을 곧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다고 한다.
024_1188_c_16L愧云何如世尊說有無愧者於可愧法而不生愧可愧法者謂諸惡不善法乃至順當來生老死彼於如是惡不善法生時無愧無所愧無別愧無恥無所恥無別恥於諸罪中不怖不畏不見怖畏是謂無愧
024_1189_a_02L【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스스로가 부끄러워하는 것[慚]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愧]이다”라고 했는데,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법에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낸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법이란, 모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나아가 오는 세상에 나고 늙고 죽음을 따르는 것이다.
024_1188_c_22L復有二法謂慚愧者慚云何如世尊說諸有慚者於可慚法而生於慚可慚法者謂諸惡不善法乃至順當來生老死
그는 이와 같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겼을 때에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있고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도 있고 따로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수치스러움이 있고 수치스러워할 것도 있고 따로 수치스러워하며, 공경함이 있고 공경할 것이 있으며 따르거나 속함도 있고 따르거나 속할 것도 있으며 자재하는 이에 대하여 두려워함이 있어서 변천하나니, 이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라 한다.
024_1189_a_03L彼於如是惡不善法生時有慚有所慚有別慚有羞有所羞別羞有崇敬有所崇敬有隨屬有所隨屬於自在者有怖畏轉是謂慚
【문】 남에게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남에게 부끄러움이 있는 것은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법에 있어서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낸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법이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모든 법과 나아가 오는 세상에 나고 늙고 죽음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겼을 때에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있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도 있고 따로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수치심이 있고 수치심을 낼 것도 있어서 따로 수치심을 내며, 모든 죄에 대하여 두려워함이 있고 겁냄이 있어서 두렵다고 보게 되나니, 이것을 곧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라 한다.
024_1189_a_06L云何如世尊說諸有愧者於可愧法而生於愧可愧法者謂諸惡不善乃至順當來生老死彼於如是惡不善法生時有愧有所愧有別愧有所恥有別恥於諸罪中有怖有能見怖畏是謂愧
【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악한 말[惡言]과 나쁜 벗[惡友]이다”라고 했는데, 악한 말이란 어떤 것인가?
【답】 『법온족론(法蘊足論)』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나쁜 벗이란 어떤 것인가?
【답】 역시 『법온족론』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착한 말[善言]과 선한 벗[善友]이다”라고 했는데, 착한 말이란 어떤 것인가?
024_1189_a_12L復有二法謂惡言惡友者惡言云何如法蘊論說惡友云何答亦如法蘊論說復有二法謂善言善友者善言云何
【답】 하나의 비슷한 예[類例]를 들어 보겠다. 친교사(親敎師)나 친교사에 준하는 이나 또는 궤범사(軌範師)나 궤범사에 준하는 이나 또는 그 밖의 존중할 만하면서 믿고 서로 오갈 만한 어떤 한 벗이 법답게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지금으로부터 신업(身業)을 파괴하지 말라, 어업(語業)을 파괴하지 말라, 의업(意業)을 파괴하지 말라, 행해서는 안 될 것을 행하지 말라, 나쁜 벗을 친근히 하지 말라, 3악취(惡趣)의 업을 짓지 말라”라고 한다 하자.
024_1189_a_16L如有一類若親教若同親教若軌若同軌範若餘隨一尊重可信往還朋友如法告言汝從今去勿壞身勿壞語業勿壞意業勿行不應行勿親近惡友勿作三惡趣業
024_1189_b_02L이와 같은 가르침이 법에 합치되고 때에 알맞으며 닦아야 할 도(道)에 따르고 빛나게 하고 더욱더 자라게 하고 엄숙히 장식하며 언제나 도와 주는 벗이요 양식[資粮]을 쌓게 하기에 마땅한 것이면, 이 가르침에 대하여 기뻐하고 좋아하고 믿어 받고 따르면서 잘못 취하지 않고 옳게 취하며 거역하지 않고 헐뜯지 않고 부정하지 않나니, 이것을 곧 착한 말이라 한다.
【문】 착한 벗이란 어떤 것인가?
【답】 『법온족론』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24_1189_a_21L如是教誨稱法應時於所修道隨順磨瑩增長嚴飾宜便常委助伴資糧於此教誨欣喜愛樂信受隨順不左取而右取不拒逆不毀訾不非撥是謂善善友云何如法蘊論說
【문】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죄에 들어가는 선교[入罪善巧]와 죄에서 벗어나는 선교[出罪善巧]이다”라고 했는데, 죄에 들어가는 선교란 어떤 것인가?
【답】 죄란, 이른바 5부(部) 5온(蘊)의 죄이다. 어떤 것이 5부 5온의 죄인가? 첫째는 타승(他勝)25)이요, 둘째는 중여(衆餘)26)이며, 셋째는 타자(墮煮)27)요, 넷째는 대수(對首)28)이며, 다섯째는 악작(惡作)29)이다.
죄에 들어가는 선교란, 이른바 “이러한 필추가 타승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가 중여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가 타자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가 대수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가 악작죄를 범하였다”라고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024_1189_b_03L復有二法謂入罪善巧出罪善巧者入罪善巧云何罪謂五部五蘊罪何等爲五一者他勝二者衆餘三者墮煮四者對首五者惡作入罪善巧謂如實知見如是苾芻犯他勝罪是苾芻犯衆餘罪如是苾芻犯墮煮如是苾芻犯對首罪如是苾芻犯惡作罪
또 “이러한 필추는 타승죄에 나아가는[趣] 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는 중여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는 타자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는 대수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러한 필추는 악작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라고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또 “이 필추는 이와 같은 타승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은 중여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은 타자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은 대수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은 악작죄를 범하였다”라고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024_1189_b_11L復次如實知見如是苾芻犯趣他勝罪如是苾芻犯趣衆餘罪是苾芻犯趣墮煮罪如是苾芻犯趣對首罪如是苾芻犯趣惡作罪復次如實知見此苾芻犯如是他勝罪苾芻犯如是衆餘罪此苾芻犯如是墮煮罪此苾芻犯如是對首罪此苾芻犯如是惡作罪
또 “이 필추는 이와 같이 타승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이 중여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이 타자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이 대수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 이 필추는 이와 같이 악작죄에 나아가는 죄를 범하였다”라고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024_1189_b_18L復次如實知見苾芻犯趣如是他勝罪此苾芻犯趣如是衆餘罪此苾芻犯趣如是墮煮此苾芻犯趣如是對首罪此苾芻犯趣如是惡作罪
024_1189_c_02L또 “모든 필추들이 범한 죄는 중하다, 또는 가볍다, 또는 깊다, 또는 얕다, 또는 여지가 있다[有餘], 또는 여지가 없다, 또는 덮고 숨겼다, 또는 숨기지 않았다, 또는 환히 드러냈다, 또는 환히 드러내지 않았다, 또는 들추어내었다, 또는 아직 들추어내지 않았다, 또는 이미 소멸되었다, 또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 또는 설명할 수 있다, 또는 설명할 수 없다, 또는 지을 수 있다, 또는 지을 수 없다”라고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죄 안에 들어가는 일에 대하여 환히 알고 평등하게 알며 가까이 알고 두루하게 알며 기민한 슬기로 통달하고 자세히 살피며 총명과 예지로 깨닫고 밝은 지혜로 비발사나(毘鉢舍那)를 행하는 것을 곧 죄에 들어가는 선교라 한다.
024_1189_b_22L復次如實知見苾芻所犯罪若重若輕若深若淺有餘若無餘若隱覆若不隱覆若顯了若不顯了若已發露若未發露已除滅若未除滅若可說若不可說若可作若不可作於如是入種種罪解了等了近了遍了機黠通達審察聰睿覺明慧行毘鉢舍那是謂入罪善巧
【문】 죄에서 벗어나는 선교란 어떤 것인가?
【답】 죄란, 이른바 5부 5온 죄이니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죄에서 벗어나는 선교란, 이른바 중여죄ㆍ타자죄ㆍ대수죄ㆍ악작죄의 네 가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사실과 똑같이 알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일이란 어떤 것인가?
마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이와 같이 설명하고 이와 같이 드러내었지만 이러한 죄에 있어서는 설명이 되지 못하고 드러낸 것이 되지 못한다.
024_1189_c_07L出罪善巧云何罪謂五部五蘊罪如前說出罪善巧謂如實知見衆餘墮煮對首惡作四罪可出其事云何如有說言我如是說如是顯於如是罪非說非顯
내가 이와 같이 설명하고 이와 같이 드러내면 이러한 죄에 있어서는 설명이 될 수 있고 드러내는 것이 된다.
내가 이와 같이 분명하게 드러내고 이와 같이 들추어내었지만 이러한 작법(作法)으로 이와 같은 죄에 있어서는 들추어낸 것도 아니요 소멸되지도 못한다.
내가 이와 같이 분명하게 드러내고 이와 같이 들추어내면 이러한 작법으로 이러한 죄에 있어서는 그것은 들추어낸 것이 되고 그것은 소멸하게 된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죄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하여 환히 알고 나아가 비발사나를 행하는 것을 곧 죄에서 벗어나는 선교라 한다.
024_1189_c_11L我如此說如此於如是罪是說是顯我如是顯了如是發露如是作法於如是罪非發露非除滅我如此顯了如此發露此作法於如是罪是發露是除滅如是出種種罪中解了乃至毘鉢舍是謂出罪善巧
說一切有部集異門足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ㆍ법공(法空)ㆍ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ㆍ무상해탈(無相解脫)ㆍ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8. 8)고종이 황태자일 때 이 기문을 지었다는 뜻이다. 춘궁(春宮)은 황태자를 가리킨다.
  9. 9)『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0. 10)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1. 11)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2. 12)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13)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4. 14)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5. 15)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6. 16)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17. 17)말라(末羅, Malla)족을 말한다.
  18. 18)지제(支提)라고도 음역되고, 영묘(靈廟)ㆍ영사(靈祠)라는 뜻이다.
  19. 19)필추(苾芻, bhikṣu)는 비구(比丘)의 신역(新譯)이다.
  20. 20) 울다라승(鬱多羅僧, uttara-āsaṅgs)이라고도 음역되며, 상의(上衣) 또는 상착의(上着衣)라는 뜻이다.
  21. 21)니건타야제자(尼健陀若提子, Nirgrantha Jñātaputra)라고 음역되며, 자이나교의 개조인 마하비라를 말한다.
  22. 22)구수(具壽, āyuṣmat)는 수명을 갖추고 있는 자라는 뜻으로, 장로(長老)와 같은 뜻이다.
  23. 23)우타나(憂陀那, udāna)라고 음역되기도 하고, 물어보지 않았는데 스스로 말한다는 뜻의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고 한역되기도 한다.
  24. 24)일반적으로 개체(個體)를 명(名, Nāma)과 색(色, Rūpa) 두 부분으로 나눌 때 명(名)은 정신적인 측면을 총괄하여 말하고, 색(色)은 외형적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인 측면을 총괄하여 말한다.
  25. 25)바라이(波羅夷, pārājika)의 한역으로 악법을 타(他)라 하고 선법을 자(自)라 간주하여 악법이 선법을 이긴다[他勝]는 뜻이다.
  26. 26)승잔(僧殘)이라고 한역하기도 하고, 승가바시바(僧伽婆尸沙, saṃghāvaśeṣa)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바라이 다음 가는 무거운 죄이나 아직 고려할 여지가 남아 있기에 승가에 남겨 둔다[僧殘]는 뜻을 가진다.
  27. 27)수수령타(數數令墮) 또는 작타(作墮)라고 한역하고, 파일제(波逸提, Pāyattika)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계율 가운데 가벼운 것으로, 이를 범한 이는 범계(犯戒)에 관련된 재물을 내놓거나 혹 다른 이에게 참회함으로써 죄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규정에 따라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죄업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타(墮)라 한다.
  28. 28)향피회(向彼悔)ㆍ각대응설(各對應說)ㆍ대타설(對他說)이라고 한역하고,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 pratideśanīya)라고 음역하고, 줄여서 제사니(提舍尼)라고도 한다. 다른 수행승에게 참회하면 없어진다고 하는 죄이다.
  29. 29)소과(小過)ㆍ작죄(作罪)라고 한역하기도 하고, 돌길라(突吉羅, duṣkṛta)라고 음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