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4대라 하는가?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이다. 무엇을 만들어진 물질이라 하는가?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과 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과 촉입(觸入)의 일부분[少分]과 무작색(無作色:無表色)이니, 이것을 색법(色法)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심(心)이라 하는가? 의식[意]과 6식(識)을 말한다. 무엇을 여섯 가지라 하는가?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을 심법(心法)이라 한다.
025_0271_a_10L云何心?謂意及六識。云何六?謂眼識、耳鼻舌身意識。是名心法。
어떤 것을 심법(心法:心所)이라 하는가? 어떠한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心相應]으로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억(憶)ㆍ욕(欲)ㆍ해탈(解脫)ㆍ염(念)ㆍ정(定)ㆍ혜(慧)ㆍ신(信)ㆍ정진(精進)ㆍ각(覺)ㆍ관(觀)ㆍ방일(放逸)ㆍ불방일(不放逸)ㆍ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무기근(無記根)과 모든 결(結)ㆍ박(縛)ㆍ사(使)ㆍ번뇌(煩惱)ㆍ상번뇌(上煩惱)ㆍ전(纏)과 지(智)와 견(見)과 무간등(無間等:現觀)이니, 이것과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것을 심법법(心法法)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라 하는가? 어떤 법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것[心不相應]을 말한다. 이를테면 모든 득(得)ㆍ무상정(無相定)ㆍ멸진정(滅盡定)ㆍ무상천(無想天)ㆍ명근(命根)ㆍ종류(種類)ㆍ처득(處得)ㆍ사득(事得)ㆍ입득(入得)ㆍ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미신(味身)을 말하며, 이것과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지 않고 함께 일어나는 것을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라 한다.
025_0271_b_01L어떤 것을 무위(無爲)라 하는가? 3무위(無爲)를 말하니, 곧 허공(虛空)과 수멸(數滅)과 비수멸(非數滅)이다. 이것을 무위법(無爲法)이라 한다.
025_0271_b_01L云何無爲?謂三無爲:虛空、數滅、非數滅。是名無爲法。
어떤 것이 지계(地界)인가? 굳고 단단한 것[堅]을 말한다. 어떤 것이 수계(水界)인가? 축축하고 윤기 있는 것[濕潤]을 말한다.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덥고 따뜻한 것[溫暖]을 말한다.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 나부끼고 움직이는 것[飄動]을 말한다.
025_0271_b_03L云何地界?謂堅。云何水界?謂濕潤。云何火界?謂溫暖。云何風界?謂飄動。
어떤 것이 안근(眼根)인가? 안식이 의지하는[所依] 깨끗한 물질[淨色]이다. 어떤 것이 이근(耳根)인가? 이식이 의지하는 깨끗한 물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비근(鼻根)인가? 비식이 의지하는 깨끗한 물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설근(舌根)인가? 설식이 의지하는 깨끗한 물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신근(身根)인가? 신식이 의지하는 깨끗한 물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무작색(無作色)인가? 법입에 소속된 물질[法入所攝色]을 말한다. 그것은 의식이라는 한 가지 식으로 인식하니, 이것을 무작색이라 한다.
025_0271_b_20L云何無作色?謂法入所攝色,彼一識識,謂意識,是名無作色。
025_0271_c_01L어떤 것이 안식(眼識)인가? 눈[眼根]에 의지하여 빛깔[色]을 분별하는 것[行:了別]을 말한다. 어떤 것이 이식(耳識)인가? 귀[耳根]에 의지하여 소리[聲]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비식(鼻識)인가? 코[鼻根]에 의지하여 냄새[香]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설식(舌識)인가? 혀[舌根]에 의지하여 맛[味]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신식(身識)인가? 몸[身根]에 의지하여 감촉[觸]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의식(意識)인가? 뜻[意根]에 의지하여 법(法)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느낌[受]이라 하는가? 세 가지 느낌[三受]이 있으니 괴로운 느낌[苦受]ㆍ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을 말한다. 무엇을 생각[想]이라 하는가? 세 가지 생각[三想]이 있으니 적은 생각[少想]ㆍ많은 생각[多想]ㆍ한량없는 생각[無量想]을 말한다. 무엇을 조작[思]이라 하는가? 마음에서 조작(造作)하여 세 종류의 업(業)이 생기는 것이니,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을 말한다.
무엇을 촉(觸)이라 하는가? 세 가지 일[三事:根ㆍ境ㆍ識]이 화합하여 세 종류의 접촉[三觸]이 생기는 것이니, 괴로운 접촉[苦觸]ㆍ즐거운 접촉[樂觸]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접촉[不苦不樂觸]을 말한다. 무엇을 기억[憶]이라 하는가? 마음에서 깨달음을 일으키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배울 것이 있는 사람[學]의 것과 배울 것이 없는 사람[無學]의 것과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사람[非學非無學]의 것을 말한다.
무엇을 욕(欲)이라 하는가? 마음이 작용하고자[欲作]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해탈(解脫)이라 하는가? 마음이 과거 현재 미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말한다. 무엇을 염(念)이라 하는가? 마음에서 잊지 않는 것[不忘]을 말한다. 무엇을 정(定)이라 하는가? 산란하지 않고 전일한 마음[一心]을 말한다. 무엇을 혜(慧)라 하는가? 법에 대하여 결단(決斷)을 말한다.
무엇을 신(信)이라 하는가? 마음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무엇을 정진(精進)이라 하는가? 마음이 능히 감당하면서 용맹스럽게 나아감을 말한다. 무엇을 각(覺)이라 하는가? 마음이 거친 것[麤]을 말한다. 무엇을 관(觀)이라 하는가? 마음이 미세한 것[細]을 말한다. 무엇을 방일(放逸)이라 하는가? 착한 법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가? 착한 법을 닦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선근(善根)이라 하는가? 3선근(善根)이 있으니 탐냄이 없고[無貪]ㆍ성냄이 없고[無瞋]ㆍ어리석음이 없는 것[無癡]을 말한다. 무엇을 불선근(不善根)이라 하는가? 3불선근(不善根)이 있으니 탐내고[貪]ㆍ성내고[瞋]ㆍ어리석은 것[癡]을 말한다.
025_0272_a_01L어떤 것이 애결(愛結)인가? 삼계(三界)의 탐애(貪愛)를 말한다. 어떤 것이 에결(恚結)인가? 서로 뜻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만결(慢結)인가? 7만(慢)이 있으니 만(慢)ㆍ증만(增慢)ㆍ만만(慢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불여만(不如慢)ㆍ사만(邪慢)을 말한다.
무엇이 만(慢)인가? 자기보다 못한 이에게는 더 낫다고 여기고 더 나은 이에게는 비슷하다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만이라 한다. 무엇이 증만(增慢)인가? 능력이 같은 이에게는 더 낫다고 여기고 더 나은 이에게는 같다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증만이라 한다.
무엇이 만만(慢慢)인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하여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만만이라 한다. 무엇이 아만(我慢)인가? 5수음(受陰)을 나[我]요 내 것[我所有]이라 헤아리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아만이라 한다.
무엇이 증상만(增上慢)인가? 아직 얻지도 못한 수승한 법[勝法]을 얻었다고 여기고 아직 이르지도 못한 경지를 이르렀다고 말하며, 아직 접촉하지도 못한 경지를 접촉했다고 말하고 아직 체득[證]하지도 못한 일을 체득했다고 여기면서 남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증상만이라 한다.
무엇이 불여만(不如慢)인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자신보다 조금 못하다고 여기면서 그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불여만이라 한다.
025_0272_a_12L云何不如慢?於彼極勝謂小不如,於彼起輕心、自擧自高,是名不如慢。
무엇이 사만(邪慢)인가? 덕(德)이 없는 사람이 덕이 있다고 말하면서 남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뽐내며 높이는 것이니 이것을 사만이라 한다. 이와 같은 7만을 만결(慢結)이라 한다.
025_0272_a_14L云何邪慢?非德謂德,於彼起輕心、自擧自高,是名邪慢。如是七慢,名慢結。
어떤 것이 무명결(無明結)인가? 삼계(三界)의 무지(無知)를 말한다. 어떤 것이 견결(見結)인가? 3견(見)이 있으니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를 말한다. 어떤 것이 신견(身見)인가? 5수음(受陰:五取蘊)이 곧 나[我]요 내 것[我所有]이라 여기면서 그것에 대하여 욕심[欲]ㆍ참음[忍]ㆍ견해[見]를 일으키는 것을 신견이라 한다.
어떤 것이 변견(邊見)인가? 5수음이 항상 있다[常]고 보기도 하고 아주 없다[斷]고 보기도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욕심ㆍ참음ㆍ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변견이라 한다. 어떤 것이 사견(邪見)인가? 인과(因果)를 비방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욕심ㆍ참음ㆍ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사견이라 한다. 이와 같은 3견을 견결이라 한다.
025_0272_b_01L어떤 것이 타취결(他取結)인가? 2견(見)이 있으니, 견취(見取)와 계취(戒取)이다. 무엇이 견취(見取)인가? 5수음(受陰)이 제일 수승하고 묘하다고 여기면서 그것에 대하여 욕심ㆍ참음ㆍ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견취라 한다. 무엇이 계취(戒取)인가? 5수음을 청정ㆍ해탈케 하는 출요(出要)로 여기면서 그것에 대하여 욕심ㆍ참음ㆍ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계취라 한다. 이와 같은 2견을 이름하여 타취결이라 한다.
무엇을 박(縛)이라 하는가? 번뇌[結]가 곧 박이다. 또 3박(縛)이 있으니 탐욕박(貪欲縛)과 진에박(瞋恚縛)과 우치박(愚痴縛)이다.
025_0272_b_07L云何縛?謂結卽是縛。復有三縛,謂貪欲縛、瞋恚縛、愚癡縛。
무엇을 사(使)라 하는가? 7사(使)가 있으니 탐욕사(貪欲使)과ㆍ진에사(瞋恚使)ㆍ유애사(有愛使)ㆍ만사(慢使)ㆍ무명사(無明使)ㆍ견사(見使)ㆍ의사(疑使)이다. 어떤 것이 탐욕사(貪欲使)인가? 다섯 종류[五種]가 있으니 욕계에 매인[欲界繫] 견고(見苦)에서 끊어야 할 탐욕과 욕계에 매인 견집(見集)ㆍ견멸(見滅)ㆍ견도(見道)ㆍ수도(修道)에서 끊어야 할 탐욕이니, 이와 같은 다섯 종류[五種]를 이름하여 탐욕사라 한다.
어떤 것이 진에사(瞋恚使)인가? 다섯 종류가 있으니 욕계에 매인 견고에서 끊어야 할 진심(瞋心)과 욕계에 매인 견집ㆍ견멸ㆍ견도ㆍ수도에서 끊어야 할 진심을 말한다. 이와 같은 다섯 종류[五種]를 이름하여 탐욕사라 한다. 어떤 것이 유애사(有愛使)인가? 열 가지 종류가 있으니 이를테면 색계에 매인 것[色界繫]에 다섯 종류가 있고 무색계에 매인 것[無色界繫]에 다섯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만사(慢使)인가? 열 다섯 가지 종류가 있으니, 욕계에 매인 다섯 종류와 색계와 매인 다섯 종류와 무색계에 매인 다섯 종류이다.
025_0272_b_21L云何慢使?有十五種,謂欲界繫五種、色界繫五種、無色界繫五種。
025_0272_c_01L무엇이 욕계에 매인 다섯 종류인가? 견고에서 끊어야 할 만(慢)과 욕계에 매인 견집ㆍ견멸ㆍ견도ㆍ수도에서 끊어야 할 만이니 욕계에 매인 다섯 종류와 같이 색계에 매인 것과 무색계에 매인 것도 역시 다섯 종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열 다섯 가지 종류를 만사라 한다.
어떤 것이 견사(見使)인가? 서른 여섯 가지 종류가 있으니, 욕계에 매인 열 두 종류와 색계에 매인 열 두 종류와 무색계에 매인 열 두 종류이다.
025_0272_c_09L云何見使?有三十六種,謂欲界繫十二種、色界繫十二種、無色界繫十二種。
무엇이 욕계에 매인 열 두 종류인가? 욕계에 매인 견고에서 끊어야 할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와 욕계에 매인 견집에서 끊어야 할 사견ㆍ견취와 욕계에 매인 견멸에서 끊어야 할 사견ㆍ견취와 욕계에 매인 견도에서 끊어야 할 사견ㆍ견취ㆍ계취이니, 욕계에 매인 열 두 종류와 같이 색계에 매인 것과 무색계에 매인 것도 역시 열 두 종류가 있으니, 이와 같은 서른 여섯 종류를 견사라 한다.
025_0273_a_01L무엇을 번뇌(煩惱:隨眠)ㆍ상번뇌(上煩惱:隨煩惱)라 하는가? 번뇌가 곧 상번뇌이다. 또 상번뇌이면서 번뇌가 아닌 것이 있으니, 번뇌를 제외한 나머지 오염(汚染)된 행음(行陰)이다. 무엇을 전(纏)이라 하는가? 8전이 있으니, 수(睡)ㆍ면(眠)ㆍ도(悼)ㆍ회(悔)ㆍ간(慳)ㆍ질(嫉)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이다[10전 중에서 念ㆍ覆이 없다].
어떤 것이 법지(法智)인가? 욕계에 매인 행(行)의 괴로움[苦]을 아는 무루지(無漏智)요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因]을 아는 무루지이며,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滅]을 아는 무루지요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아는 무루지이다. 또 법지는 법지의 자리[法智地]를 반연하는 무루지이니, 이것을 법지라 한다.
어떤 것이 비지(比智)인가?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行)의 괴로움을 아는 무루지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아는 무루지이며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무루지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아는 무루지이다. 또 비지는 비지의 자리를 반연하는 무루지이니, 이것을 비지라 한다.
어떤 것이 고지(苦智)인가? 무루지(無漏智)로서 5수음(受陰)이 무상(無常)하고ㆍ괴롭고[苦]ㆍ공(空)하고ㆍ나가 아니라[非我]고 사유(思惟)함을 말하니, 이것을 고지라 한다.
025_0273_a_21L云何苦智?謂無漏智,思惟五受陰無常、苦、空、非我,是名苦智。
025_0273_b_01L어떤 것이 집지(集智)인가? 무루지로서 유루의 원인[因]은 고통의 과보를 내는 인(因)이며, 고통의 과보를 발생시켜 나타나게[集] 하며, 상속하여 존재[有]하게 하며, 고통의 과보를 이루게 하는 연(緣)이라고 사유하니, 이것을 집지라 한다.
025_0273_a_23L云何集智?謂無漏智,思惟有漏因因、集、有、緣,是名集智。
어떤 것이 멸지(滅智)인가? 무루지로서 멸제(滅諦)는 물(物)ㆍ심(心)의 속박이 없는 진리[滅]이고, 번뇌의 시끄러움이 그치고[止], 삼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고[妙], 온갖 재액을 여의었다[離]고 사유함이니, 이것을 멸지라 한다.
025_0273_b_02L云何滅智?謂無漏智,思惟滅滅、止、妙、離,是名滅智。
어떤 것이 도지(道智)인가? 무루지로서 도제(道諦)는 진리에 들어가는 길[道]이며, 올바른 이치에 계합하며[如], 열반의 적정한 경지를 밟게[跡] 하며, 생사계를 벗어나게[乘] 한다고 사유하니, 이것을 도지라 한다.
025_0273_b_04L云何道智?謂無漏智,思惟道道、如、迹、乘,是名道智。
어떤 것이 진지(盡智)인가? ‘나는 이미 괴로움[苦]을 알았고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으며,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滅]을 증득하였고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닦았다고’ 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지(智)ㆍ견(見)ㆍ명(明)ㆍ각(覺)ㆍ혜(慧)ㆍ무간등(無間等)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진지라 한다.
어떤 것이 무생지(無生智)인가?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앞으로 알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앞으로 끊을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앞으로 증득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앞으로 닦을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지ㆍ견ㆍ명ㆍ각ㆍ혜ㆍ무간등을 일으키나니, 이것을 무생지라 한다.
또 ‘내가 이미 욕루(欲漏)를 다하였다’ 함을 이름하여 진지라 하고 ‘다시는 마땅히 생길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이름하여 무생지라 하며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가 이미 다하였다’ 하는 것을 이름하여 진지라 하고 ‘다시는 마땅히 생길 것이 없다’ 하는 것을 무생지라 한다.
025_0273_c_01L지(智)와 견(見)은 곧 무간등(無間等:現觀)이다. 무엇을 득(得)이라 하는가? 법을 얻는 것[得法]을 말한다. 무엇을 무상정(無想定)이라 하는가? 변정천(遍淨天)에서의 욕심은 여의었지만 그 이상의 경지[上地]에 대해서는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했으므로 벗어나려는 생각[出要想]하면서, 먼저 방편을 사유(思惟)할 적에 심(心)과 심법(心法)이 소멸하는 것을 무상정이라 한다.
무엇을 종류(種類:衆同分)라 하는가? 중생들이 똑같이 비슷한 과보를 얻게 되는 인(因)을 말한다. 무엇을 처득(處得)이라 하는가? 방처(方處)를 얻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사득(事得)이라 하는가? 음(陰:蘊)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입득(入得)이라 하는가? 근[內]과 경[外]의 입(入:處)을 얻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생(生)이라 하는가? 음(陰)이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노(老)라 하는가? 음이 성숙해짐을 말한다. 무엇을 주(住)라 하는가? 행(行)이 일어나서 아직 파괴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무엇을 무상(無常)이라 하는가? 행이 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명신(名身)이라 하는가? 증어(增語)를 말한다.
무엇을 구신(句身)이라 하는가? 글자들이 원만한 것[字滿]을 말한다. 무엇을 미신(味身)이라 하는가? 글자들[字身]을 미신이라 한다. 무엇을 허공(虛空)이라 하는가? 가득 참이 없어서 모든 물질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오고 가는데 장애됨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수멸(數滅:擇滅)이라 하는가? 수(數:智慧의 數法)로 인하여 소멸[滅:煩惱를 끊어 없앤다]하는 것이니, 이 적멸[滅]이 곧 해탈이다. 무엇을 비수멸(非數滅:非擇滅)이라 하는가? 지혜의 간택력으로 인하여 소멸[滅]하지 아니하는 모든 법의 멸(滅)이므로 이것은 해탈이 아니다.
025_0274_a_01L어떤 것이 지타심지(知他心智)의 연인가? 지타심지는 욕계와 색계에 매인 현재 다른 사람의 심ㆍ심법(心心法)의 연이며 그리고 무루의 연이다. 어떤 것이 등지(等智)의 연인가? 등지는 모든 법[一切法]의 연이다. 어떤 것이 고지(苦智)의 연인가? 고지는 5수음(受陰)의 연이다.
어떤 것이 집지(集智)의 연인가? 집지는 유루의 인[有漏因]의 연이다. 어떤 것이 멸지(滅智)의 연인가? 멸지는 수멸(數滅)의 연이다. 어떤 것이 도지(道智)의 연인가? 도지는 학법(學法)과 무학법(無學法)의 연이다. 어떤 것이 진지(盡智)의 연인가? 진지는 모든 유위법(有爲法)의 연이며 그리고 수멸의 연이다. 어떤 것이 무생지(無生智)의 연인가? 무생지는 모든 유위법의 연이며 그리고 수멸의 연이다.
【문】무엇 때문에 지타심지는 욕계와 색계에 매인 현재 다른 사람의 심ㆍ심법의 연이며 그리고 무루의 연인가? 【답】지타심지는 욕계와 색계에 현재 다른 사람의 심ㆍ심법과 무루의 연을 알기 때문에 지타심지는 욕계와 색계에 매인 현재 다른 사람의 심ㆍ심법의 연이며 그리고 무루의 연이다.
【문】 무엇 때문에 진지는 일체 유위법과 수멸의 연인가? 【답】 진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苦]을 알았고 이미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으며, 이미 괴로움의 소멸[滅]을 증득[證]하였고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닦았다’ 함을 알기 때문에 진지는 온갖 유위법과 수멸의 연이다.
【문】 무엇 때문에 무생지는 온갖 유위법과 수멸의 연인가? 【답】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고 이미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을 것이 없으며,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할 것이 없고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 함을 알기 때문에 무생지는 모든 유위법과 수멸의 연이다.
어찌하여 법지(法智)는 곧 법지의 전부인가? 법지는 욕계에 매인 행[諸行]의 괴로움을 알고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알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법지는 곧 법지의 전부이다.
어찌하여 법지는 지타심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다른 이의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의 무루의 심ㆍ심법을 알기 때문에 법지는 지타심지의 적은 부분이다.
025_0274_c_21L云何法智知他心智?謂法智知他斷欲界繫行道無漏心心法,是故法智知他心智。
025_0275_a_01L어찌하여 법지는 고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다른 이의 욕계에 매인 5수음이 무상하고ㆍ괴롭고ㆍ공하고 나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법지는 고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a_01L云何法智苦智?謂法智知欲界繫五受陰無常、苦、空、非我,是故法智苦智。
어찌하여 법지는 집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욕계에 매인 행이 고통의 과보를 내는 원인[因]이고 고통의 과보를 발생시켜 나타나게[集] 하며, 그 과보가 상속하여 존재하게[有] 하고 과보를 이루게 하는 연(緣)임을 알기 때문에 법지는 집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a_03L云何法智集智?謂法智知欲界繫行因因、集、有、緣,是故法智集智。
어찌하여 법지는 멸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이 물ㆍ심의 속박이 없는 진리[滅]이고 번뇌의 시끄러움이 그쳐 쉬며[止], 삼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고[妙] 온갖 재액을 여의었다[離] 함을 알기 때문에 법지는 멸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a_05L云何法智滅智?謂法智知欲界繫行滅滅、止、妙、離,是故法智滅智。
어찌하여 법지는 도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진리에 들어가는 길[道]이고 올바른 이치에 계합하며[如], 열반의 적정한 경지를 밟게[跡] 하고 생사계를 벗어나게[乘] 함을 알기 때문에 법지는 도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a_07L云何法智道智?謂法智知斷欲界繫行道道、如、迹、乘,是故法智道智。
어찌하여 법지는 진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임을 끊었음을 알았으며,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음을 알았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닦았음을 알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법지는 진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법지는 무생지의 일부분인가? 법지는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끊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며,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증득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닦아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비지(比智)는 비지의 전부인가? 비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고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알기 때문에 비지는 곧 비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비지는 집지의 일부분인가? 비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은 고통의 과보를 내는 원인[因]이고 고통의 과보를 발생시켜 나타나게[集] 하며, 그 과보가 상속하여 존재하게[有] 하고 과보를 이루게 하는 연(緣)임을 알기 때문에 비지는 집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b_05L云何比智集智?謂比智知色無色界繫行因因、集、有、緣,是故比智集智。
어찌하여 비지는 멸지의 일부분인가? 비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이 물ㆍ심의 속박이 없는 진리[滅]이고 번뇌의 시끄러움이 그쳐 쉬며[止], 삼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고[妙] 온갖 재액을 여의었다[離] 함을 알기 때문에 비지는 멸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b_07L云何比智滅智?謂比智知色無色界繫行滅滅、止、妙、離,是故比智滅智。
어찌하여 비지는 도지의 일부분인가? 비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진리에 들어가는 길[道]이고 올바른 이치에 계합하며[如], 열반의 적정한 경지를 밟게[跡] 하고 생사계를 벗어나게[乘] 한다 함을 알기 때문에 비지는 도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5_b_09L云何比智道智?謂比智知斷色無色界繫行道道、如、迹、乘,是故比智道智。
어찌하여 비지는 진지의 일부분인가? 비지는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었음을 알았으며,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음을 알았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비지는 진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비지는 무생지의 일부분인가? 비지는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끊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알았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닦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비지는 무생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진지는 곧 진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다,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다.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다,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함을 알기 때문에 진지는 법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6_c_01L어찌하여 진지는 비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며,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는 비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진지는 고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는 고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6_c_04L云何盡智苦智?謂盡智知‘我已知苦’,是故盡智苦智。
어찌하여 진지는 집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는 집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6_c_06L云何盡智集智?謂盡智知‘我已斷集’,是故盡智集智。
어찌하여 진지는 멸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는 멸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6_c_08L云何盡智滅智?謂盡智知‘我已證滅’,是故盡智滅智。
어찌하여 진지는 도지의 일부분인가? 진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지는 도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6_c_10L云何盡智道智?謂盡智知‘我已修道’,是故盡智道智。
어찌하여 무생지(無生智)는 곧 무생지의 전부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마땅히 더 끊을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할 것이 없다,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곧 무생지의 전부이다.
어찌하여 무생지는 법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 것이 없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을 것이 없으며,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할 것이 없고 나는 이미 욕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법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7_a_01L어찌하여 무생지는 비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 것이 없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을 것이 없으며,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할 것이 없고, 나는 이미 색계와 무색계에 매인 행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비지의 일부분이다.
어찌하여 무생지는 고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알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고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7_a_04L云何無生智苦智?謂無生智知‘我已知苦不復當知’,是故無生智苦智。
어찌하여 무생지는 집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원인을 끊었으므로 다시는 더 끊을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집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7_a_06L云何無生智集智?謂無生智知‘我已斷集不復當斷’,是故無生智集智。
어찌하여 무생지는 멸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했으므로 다시는 더 증득할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멸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7_a_08L云何無生智滅智?謂無生智知‘我已證滅不復當證’,是故無生智滅智。
어찌하여 무생지는 도지의 일부분인가? 무생지는 ‘나는 이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았으므로 다시는 더 닦을 것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무생지는 도지의 일부분이다.
025_0277_a_10L云何無生智道智?謂無生智知‘我已修道不復當修’,是故無生智道智。
문 이 10지(智)는 몇 가지가 유루(有漏)이고 몇 가지가 무루(無漏)인가?
답 한 가지는 유루이고 여덟 가지는 무루이며 한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지타심지는 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유루인가? 지타심지는 다른 이의 유루의 심ㆍ심법을 알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루인가? 지타심지는 다른 사람의 무루의 심ㆍ심법을 알기 때문이다.
【문】 이 10지는 몇 가지가 유루의 연[有漏緣]이고 몇 가지가 무루의 연[無漏緣]인가? 【답】 고지와 집지 두 가지는 유루의 연이고, 멸지와 도지 두 가지는 무루의 연이며, 여섯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법지는 혹은 유루의 연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의 연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유루의 연인가? 법지는 괴로움의 연[苦緣]이요 괴로움의 원인의 연[集緣]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루의 연인가? 법지는 괴로움의 소멸의 연[滅緣]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연[道緣]이기 때문이다. 법지에서처럼 비지ㆍ진지ㆍ무생지도 역시 이와 같다.
등지는 혹은 유루의 연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의 연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유루의 연인가? 등지는 괴로움의 연이요 괴로움의 원인의 연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루인가? 등지는 괴로움의 소멸의 연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연이며, 그리고 허공(虛空)과 비수멸(非數滅)의 연이기 때문이다.
【문】 이 10지는 몇 가지가 유위(有爲)이고 몇 가지가 무위(無爲)인가? 【답】 10지는 모두가 유위이고 무위는 없다.
025_0277_b_06L問:此十智,幾有爲、幾無爲?答:謂十智一切是有爲,無無爲。
【문】 이 10지는 몇 가지가 유위의 연[有爲緣]이고 몇 가지가 무위의 연[無爲緣]인가? 【답】 타심지ㆍ고지ㆍ집지ㆍ도지의 네 가지는 유위의 연이고, 멸지 한 가지는무위의 연이며, 다섯 가지는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법지는 혹은 유위의 연이기도 하고 혹은 무위의 연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유위의 연인가? 법지는 괴로움의 연[苦緣]이요 괴로움의 원인의 연[集緣]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연[道緣]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위의 연인가? 법지는 괴로움의 소멸의 연[滅緣]이기 때문이다.
법지에서처럼 비지ㆍ진지ㆍ무생지도 역시 이와 같다. 등지는 혹은 유위의 연이기도 하고 혹은 무위의 연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유위의 연인가? 등지는 괴로움의 연이요 괴로움의 원인의 연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연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위의 연인가? 등지는 두 가지 멸[二滅]의 연이며, 그리고 허공의 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