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정납식 ② 욕계에 태어난 성자에게는 세 가지 일로써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다.290) 첫째는 완전히 염(染)을 여의고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요, 둘째는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며, 셋째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다. 이생은 다만 두 가지 일만으로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다. 첫째는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요, 둘째는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은 없다.
색계에 난 성자에게는 두 가지 일로써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다. 첫째는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요, 둘째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다. 물러나는 것은 없으니 색계와 무색계에는 물러난다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291) 이생에게는 다만 한 가지 일로써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을 뿐이니 완전히 염을 여의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러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무색계에 난 성자와 이생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문】무엇 때문에 성자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일이 있고 이생은 그렇지 않은가?292) 【답】 모든 성자에게는 무루의 선정293)이 있어서 맡아 지녀 상속하는지라 지극히 견고하게 되지만 이생은 다만 세속의 모든 선정만이 있어서 맡아 지녀 상속하므로 지극히 견고하지 않다. 또 성자는 훌륭한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성취하지만 이생은 그렇지 못하다. 또 성자는 무루도의 힘을 성취하여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만 이생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성자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지만 이생에게는 곧 그런 것이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성자는 세 가지 힘을 갖추기 때문이니 첫째는 성도(聖道)의 힘이요, 둘째는 번뇌의 힘이며, 셋째는 정업(定業)의 힘294)이다. 정업의 힘 때문에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고,
번뇌의 힘 때문에 완전히 물러난 뒤에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으며, 성도의 힘 때문에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다. 이생에게는 다만 두 가지 힘이 있을 뿐이니 번뇌의 힘과 정업의 힘이며 성도의 힘은 없다. 정업의 힘 때문에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고, 번뇌의 힘 때문에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으며, 성도의 힘이 없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없다.” 어느 다른 논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성자에게는 세 가지 힘이 있다. 첫째는 도의 힘이요, 둘째 번뇌의 힘이며, 셋째 정업의 힘이다. 도의 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고, 번뇌의 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으며, 정업의 힘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다. 만일 완전히 염을 여읜다 하면 이 지(地)의 생(生)에서 비택멸(非擇滅)을 얻기 때문에 결정코 업을 받는 데 곧 과보를 주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정업(定業)은 방해가 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이가 있는데 마치 가가(家家) 등과 같다. 이생에게는 다만 두 가지 힘이 있을 뿐이니 도의 힘과 번뇌의 힘이며 정업의 힘은 없다. 도의 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고, 번뇌의 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이 있으며, 정업의 힘은 없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은 없다. 설령 완전히 염을 여읜다 해도 도로 이 지(地)에 난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결정코 업을 받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혹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는 지위에서 성자의 보특가라를 따로 세우는 것이 있다. 욕계의 3ㆍ4품의 염을 여읜 이를 따로 가가(家家)라고 세우고, 6품의 염을 여읜 이를 따로 일래(一來)라고 세우며, 7ㆍ8품의 염을 여읜 이를 따로 일간(一間)이라고 세운다. 이 때문에 성자에게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있지만 이생에게는 결정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는 지위에서 성자와 같이 따로 보특가라를 세우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는 뜻이 없다.” 또 어떤 이는 “성자는 선정에 자재한 힘이 있기 때문에 염을 여읠 때에는 적은 부분을 여의면서도 목숨을 마치는 이가 있지만 이생은 선정에 자재한 힘이 없기 때문에 염을 여읠 때에는 적은 부분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이가 없다”라고 말한다. 승가벌소(僧伽筏蘇) 존자는 “이생도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는 지위에서 목숨을 마치는 이가 있으나 목숨을 마친 뒤에 결생(結生)의 마음일 때에 먼저 끊은 결(結)을 반드시 도로 성취한다”라고 말씀하셨다. 【評】 그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는 목숨을 마칠 때 마음의 세력이 하열하기 때문에 먼저 끊은 결을 다시 성취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앞의 설이 이치로 보아 옳다 하겠다. 【문】세속의 도[世俗道]로써 모든 염을 여읠 때 무간도(無間道)와 해탈도(解脫道)에는 몇 가지 행상(行相)이 있는가?295) 【답】 모든 무간도에는 세 가지 행상296)이 있으니 첫째는 추(麤)의 행상이요, 둘째는 고(苦)의 행상이며, 셋째는 장(障)의 행상이다. 모든 해탈도에도 세 가지 행상이 있으니 첫째는 정(靜)의 행상이요, 둘째는 묘(妙)의 행상이며, 셋째는 이(離)의 행상이다.
【문】무간도에서 어느 행상이 뒤에 해탈도의 어느 행상을 일으키는가? 【답】 어떤 이는 “추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정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되고, 고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묘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되며, 장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이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된다”라고 말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추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묘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되고, 고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정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되며, 장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이의 행상을 일으켜 해탈도가 된다. 추(麤)와 묘(妙), 고(苦)와 정(靜), 장(障)과 이(離)는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評】 이 일은 일정하지 않다. 추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을 일으켜서 해탈도가 될 수 있고, 고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묘 등의 세 가지 행상을 일으켜서 해탈도가 될 수 있으며, 장의 행상의 무간도로부터 그 뒤에 이 등의 세 가지 행상을 일으켜서 해탈도가 될 수 있다. 이 여섯 가지 유루(有漏)의 행상은 염을 여의는 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문】세속의 도로써 모든 염을 여읠 때 무간도와 해탈도는 각각 어느 지(地)를 반연하는가?297) 【답】 욕염(欲染)을 여읠 때의 9무간도는 오직 욕계만을 반연할 뿐이며 9해탈도는 초정려를 반연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근온(根蘊)에서 말한 것과는 잘 통한다. 거기에서 “혹시 색계의 법을 사유(思惟)하면서도 욕계를 두루 알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있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그 뜻은 단변지(斷遍知)를 말한다.
어떻게 2도(道)의 소연(所緣)과 행상(行相)이 뒤섞여 어지럽지[雜亂] 않는가? 만일 이 2도의 소연과 행상이 뒤섞여 어지럽다면 염을 여의는 일에 어떻게 장애와 방해가 되지 않는가? 【답】 이와 같은 2도의 소연과 행상이 비록 뒤섞이고 어지럽다 하더라도 염을 여의는 일에 있어서는 장애나 방해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염을 여의는 모든 지름길을 이미 잘 닦아 익혀서 가행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마치 견도(見道)298)에서 욕계를 반연하는 인지(忍智) 뒤에 유정(有頂)을 반연하는 인지가 앞에 나타나 있고, 유정을 반연하는 인지 뒤에 욕계를 반연하는 인지가 앞에 나타나 있어서 비록 소연과 행상이 뒤섞여 어지럽다 하더라도 현관(現觀)의 일에 있어서는 장애나 방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는 현관의 모든 지름길을 이미 잘 닦아 익혀서 가행을 이루었기 때문이니 이것도 그와 같아서 허물이 없다. 어떤 이는 “욕염을 여읠 때에 9무간도와 8해탈도는 모두가 욕계를 반연하고 맨 뒤의 해탈도만이 초정려를 반연한다. 마치 멸도지(滅道智)로써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읠 때에 9무간도와 8해탈도는 모두 멸ㆍ도를 반연하고 최후의 해탈도는 비상비비상처의 유루의 4온(蘊)을 반연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라고 말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이렇게 말한다. “욕염을 여읠 때에 혹은 그쳐 쉬는[止息] 것이 없기도 하고 혹은 그쳐 쉬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쳐 쉬는 것이 없다 함은 9무간도와 8해탈도는 모두 욕계를 반연하고 최후의 해탈도는 초정려를 반연하는 것을 말하며, 그쳐 쉬는 것이 있다고 함은 혹은 1품을 여의면서 곧 그쳐 쉬기도 하고, 혹은 2품을 여의면서 곧 그쳐 쉬기도 하며, 이렇게 하여 혹 8품을 여의면서 바야흐로 곧 그쳐 쉬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만일 1품을 여의면서 곧 그쳐 쉬게 되면 그 무간도는 욕계를 반연하고 해탈도는 초정려를 반연하며, 만일 2품을 여의면서 곧 그쳐 쉬면 그 2무간도와 1해탈도는 욕계를 반연하고 제2해탈도는 초정려를 반연한다. 이렇게 하여 이에 8품을 여의면서 바야흐로 그쳐 쉬기에 이르면 그 8무간도와 7해탈도는 모두 욕계를 반연하고 제8해탈도는 초정려를 반연한다.” 혹 어떤 이는 “욕염을 여읠 때의 9무간도와 9해탈도는 모두 욕계를 반연하는 것이니, 마치 고집지(苦集智)로써 욕염을 여읠 때의 9무간도와 9해탈도는 모두 욕계를 반연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라고 말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비록 무간도와 해탈도의 소연(所緣)과 행상(行相)에는 뒤섞이거나 어지러운 허물은 없다 하더라도 근온(根蘊)에서 말한 것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에서 “혹시 색계의 법을 사유(思惟)하면서 욕계를 두루 알 수[遍知] 있는 것이 있는가? 있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그 뜻은 단변지를 말한다. 【답】 근온에서는 가까운[近] 가행(加行)에 의거하여 말한다. 수행하는 이가 장차 욕염을 여의려고 하면서 먼저 ‘욕계는 괴롭고[苦] 거칠고[麤] 장애[障]이며, 초정려는 고요하고[靜] 미묘하고[妙] 여읨[離]이다’라고 분별하면서 사유하게 된다. 【문】만일 그렇다면 근온에서 뒤에 논한 설[後說]은 다시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에서 “혹시 무색계의 법을 사유하면서 욕계를 두루 알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그 뜻도 단변지를 말한다. 그런데 어찌 수행하는 이가 장차 욕염을 여의려고 하면서 먼저 ‘욕계는 괴롭고 거칠고 장애이며, 무색계는 고요하고 미묘하고 여읨이다’라는 이런 분별을 일으키면서 사유하지 않겠는가? 【답】 비록 이런 분별을 일으키면서 사유한다 하더라도 먼[遠] 것이지 가까운 것이 아니므로 무색계를 사유한 뒤에 곧 욕염을 여의는 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색계를 사유하는 것은 가까운 가행이므로 곧 욕염을 여의는 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두 설(說)이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이는 “욕염을 여읠 때의 9무간도와 9해탈도는 모두 초정려를 반연한다”라고 말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근온에서 말한 것은 잘 회통한다. 거기에서 “혹시 색계의 법을 사유하면서 욕계를 두루 알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단변지를 말한다. 또 두 가지 도[二道]의 소연과 행상에 뒤섞여 어지러운 허물이 없는데 어찌 다른 지[他地]를 반연하면서 그 밖의 지(地)의 염을 여읠 수 있는가? 【답】 여기에도 허물은 없다. 마치 멸도지(滅道智)의 모든 염을 여읠 때에 비록 멸ㆍ도를 반연한다 하더라도 고ㆍ집(苦集)을 끊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 【評】 이 같은 모든 설(說)은 비록 저마다 제자들의 각혜(覺慧)는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맨 처음의 설이 이치로 보아 옳다 하겠다. 9무간도는 모두 욕계를 반연하고 9해탈도는 모두 초정려를 반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속의 도(道)로써 욕염을 여읠 때에는 아래는 싫어하고 위는 좋아해야 비로소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염을 여의는 것과 같이 위의 7지(地)의 염을 여의는 것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문】세속의 무간도와 해탈도의 하나하나에서는 몇 가지의 행상(行相)을 닦게 되는가? 【답】 모든 이생(異生)인 이가 욕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는 세 가지 행상을 닦으니 고(苦)ㆍ추(麤)ㆍ장(障)이요, 8해탈도에서는 여섯 가지 행상을 닦으니 고ㆍ추ㆍ장과 정(靜)ㆍ묘(妙)ㆍ이(離)이다. 최후의 해탈도에서는 곧 이 여섯 가지 행상도 닦고 또한 미래의 초정려 지(地)의 끝없는[無邊] 행상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서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만일 모든 성자가 욕염을 여읠 때에 9무간도에서는 열아홉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麤) 등의 세 가지와 유루ㆍ무루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이요, 8해탈도에서는 스물두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 등의 세 가지와 정(靜) 등의 세 가지와 유루ㆍ무루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이며, 맨 뒤의 해탈도에서는 곧 이 스물두 가지 행상도 닦고 또 미래의 초정려 지의 끝없는 행상도 닦는다. 곧 모든 성자가 초정려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는 열아홉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 등의 세 가지와 오직 무루만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이요, 8해탈에서는 스물두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 등의 세 가지와 정 등의 세 가지와 오직 무루만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이며, 맨 뒤의 해탈도에서는 곧 이 스물두 가지 행상도 닦고 또 미래의 제2 정려 지의 끝없는 행상도 닦는다. 이와 같이 하여 이에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기에 이르기까지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문】무엇 때문에 초정려의 근분(近分)에서는 유루ㆍ무루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을 모두 다 닦으면서 상지(上地)의 근분에서는 오직 무루의 것만을 닦는가? 【답】 초정려의 근분에서는 성스러운 행상이 있기 때문에 유루ㆍ무루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을 모두 다 닦지만 상지의 근분에는 성스러운 행상이 없기 때문에 오직 무루의 행상만을 닦을 뿐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생인 이가 욕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는 아홉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麤) 등의 세 가지와 자ㆍ비ㆍ희ㆍ사와 부정관(不淨觀)과 지식념(止息念)이요, 8해탈도에서는 열두 가지 행상을 닦으니 앞의 아홉 가지와 정(靜) 등의 세 가지이며, 맨 뒤의 해탈도에서는 곧 이 열두 가지의 행상도 닦고 또 미래의 초정려 지(地)의 끝없는 행상도 닦는다. 만일 모든 성자가 욕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는 스물다섯 가지 행상을 닦으니 추 등의 세 가지와 자ㆍ비ㆍ희ㆍ사와 부정관ㆍ지식념과 유루ㆍ무루의 열여섯 가지 성스러운 행상이요, 8해탈도에서는 스물여덟 가지 행상을 닦으니 곧 앞의 스물다섯 가지와 정(靜) 등의 세 가지이며, 맨 뒤의 해탈도 에서는 곧 이 스물여덟 가지 행상도 닦고 또 미래의 초정려 지의 끝없는 행상도 닦는다. 상지(上地)의 근분에서 닦는 것의 뜻도 앞에서와 같다.” 【문】무엇 때문에 초정려 근분에서는 이 같은 갖가지 행상을 닦으면서 상지의 근분에서는 닦을 수 없는가? 【답】 초정려의 근분에는 갖가지 선근(善根)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갖가지 행상을 닦을 수 있지만 상지의 근분에는 선근이 적기 때문에 갖가지 행상을 닦을 수 없다. 또 욕계의 번뇌에는 갖가지 모양이 있으므로 도리어 갖가지 선근을 닦으면서 대치하지만 상지의 번뇌에는 갖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에 갖가지 대치를 닦지 못한다. 【문】현재 함께 행하고 있는 무겁게 지고[負重] 작용 있는[有用] 세속의 무간도와 해탈도의 행상과 소연은 이미 앞의 설명과 같지만 미래에 닦는 것은[未來修] 무엇을 소연으로 삼는가?299) 【답】 욕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麤)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욕계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욕계와 초정려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초정려만을 반연하며, 맨 뒤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고 정(靜)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초정려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초정려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초정려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초ㆍ2정려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2 정려만을 반연하며, 맨 뒤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2 정려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제2 정려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2 정려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2ㆍ제3 정려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3 정려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3 정려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제3 정려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3 정려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3ㆍ제4 정려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4 정려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4 정려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제4 정려의 염을 여의는 때의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제4 정려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제4 정려와 공무변처(空無邊處)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공무변처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과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공무변처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문】만일 제4 정려의 염을 여의는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이 제4 정려와 공무변처를 반연한다고 하면 『식신론(識身論)』의 설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에서 “혹 무색계의 선심(善心)이 색계와 무색계의 법을 요별(了別)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답】 거기에서는 찰나(刹那)는 차단하면서도 상속(相續)은 차단하지 않는다. 한 찰나 동안에 무색계의 선심이 색계와 무색계의 법을 요별한다는 것은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만일 그 염을 여읜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이 혹 색계의 제4 정려를 반연하거나 혹 무색계의 공무변처를 반연한다고 하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찰나는 차단하면서도 상속을 차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와 저기의 설이 모두 다 잘 회통하게 된다. 공무변처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공무변처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식무변처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과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식무변처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식무변처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식무변처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무소유처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과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한다.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는 때에 9무간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무소유처만을 반연하며, 8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하고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비상비비상처만을 반연하며,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추 등의 세 가지 행상과 정 등의 세 가지 행상은 오직 비상비비상처만을 반연한다. 【문】무엇 때문에 맨 나중의 해탈도에서 닦아야 하는 미래의 정려(靜慮)에 속하는 추 등의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면서 무색(無色)에 속하는 추 등의 행상은 오직 무색계만을 반연하는가? 【답】 정려 지(地)에는 변연지(遍緣智)가 있으므로 자지(自地)ㆍ하지(下地)ㆍ상지(上地)를 반연할 수 있지만 무색지에는 변연지가 없으므로 오직 자지와 상지만을 반연하고 하지는 반연하지 않는다. 또 정려지의 공덕은 거칠게 드러나므로 알기도 쉽고 요별하기도 쉽지만 무색지는 그렇지 않다. 또 정려지에는 모든 공덕이 많고 모든 뛰어난 이익이 많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다. 또 정려지에는 갖가지 다른 모양[異相]과 다른 성품[異性]이 잘 있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다. 또 정려지에는 다른 모양의 근(根)과 다른 모양의 수(受)와 다른 모양의 심ㆍ심소법(心心所法)이 있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때 닦아야 하는 미래의 정려에 속하는 추 등의 행상은 삼계를 모두 반연하게 되지만 무색에 속하는 추 등의 행상은 오직 무색계만을 반연할 뿐이다.
【論】 욕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結)이 다하면 어느 과(果)에 속하는가?300)……(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 【답】 먼저는 삼계(三界) 2부(部)의 모든 결을 단번[頓]에 또는 점차[漸]로 얻고[得] 버리는[捨] 것을 말했으면서도 그 끊어짐이 어느 과에 속하는 것인가는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預流果)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고, 일래과(一來果)를 증득할 때에는 곧 일래과에 속하며,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할 때에는 곧 불환과에 속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이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302)은 모든 이생(異生)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가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든 이로서 견도(見道)의 15심(心)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한 것이 아니며, 차제자(次第者)303)로서 도현관(道現觀)의 2심(心)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한 것이 아니다.
【論】 욕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불환과와 아라한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불환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불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불환과에 속하는 것이고,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이다. 처소가 없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가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한 것이 아니요, 이미 욕염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든 이로서 견도의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한 것이 아니다. 차체자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욕염을 여의어 제9무간도가 소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는 것이며 제9해탈도가 생길 때에는 불환과를 증득하게 되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불환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색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는 것이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이다. 처소가 없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色染)을 여읜 이가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한 것이 아니요, 이미 색염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로서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한 것이 아니다. 차제자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道類智忍)이 소멸하는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 다하는 것이요, 도류지(道類智)가 생길 때에는 알맞은 바를 따라 앞의 세 가지 과(果)를 증득하므로304)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이다. 처소가 없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을 여읜 이가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색염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든 이로서 견도 15심 동안과 도류지 등의 모든 유학위(有學位)에서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305)로서 제4 정려의 염을 여의는 제9해탈도로부터 이에 금강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이르기까지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論】 무색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이 소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 다하는 것이요, 도류지가 생길 때에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앞의 세 가지 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무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이다.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금강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끊어 다하며 처음 진지(盡智)가 생길 때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아라한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 【답】 앞에서 비록 삼계 2부의 결이 다할 때의 모든 과에 속한다는 것을 말했다 하더라도 아직 5부의 결이 다할 때의 모든 과에 속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論】 견고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이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고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고현관(苦現觀)의 1심(心) 동안306)과 집(集)ㆍ멸현관(滅現觀)의 각 4심 동안과 도현관(道現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論】 견집(見集)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집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집현관(集現觀)의 1심 동안307)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하는 것은 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論】 견멸(見滅)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멸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멸현관의 1심 동안308)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하는 것은 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論】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이다.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이 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 다하며 도류지가 생길 때에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앞의 세 가지 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이다.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금강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 다하며 처음 진지(盡智)가 생길 때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아라한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앞에서 비록 5부의 결이 다할 때의 모든 과에 속한다는 것을 말했다 하더라도 아직 9부의 결이 다할 때의 모든 과에 속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것을 논한다. 곧 앞의 5부의 모든 결은 대치(對治)의 차별에 의거하여 9부라고 말하는 것이니 법지(法智)ㆍ유지품(類智品)의 저마다 따로따로 대치할 결을 나누어서 8부로 삼고 여러 가지[雜] 대치할 것309)을 통틀어 1부로 삼기 때문에 9부가 있다.
【論】 고법지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無處]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의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고현관의 3심 동안과310) 집ㆍ멸현관의 각각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論】 고류지(苦類智)와 나아가 도법지(道法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만일 고류지(苦類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고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고현관의 1심 동안311)과 집ㆍ멸현관의 각각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집법지(集法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도 집현관의 3심 동안312)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집류지(集類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이생에게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집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집현관의 1심 동안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멸법지(滅法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도 멸ㆍ도현관의 각각 3심 동안313)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멸류지(滅類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이생에게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멸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멸현관의 1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도법지(道法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도 도현관의 2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소가 없다고 말한다.
【論】 도류지(道類智)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道類智忍)이 소멸할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도류지가 생길 때에는 그 알맞은 바를 따라 앞의 세 가지 과[前三果]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한다. 이생에게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금강유정(金剛喩定)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처음 진지(盡智)가 생길 때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아라한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무간도(無間道)가 모든 결을 끊는 것인가, 해탈도(解脫道)가 모든 결을 끊는 것인가? 가령 그렇다면 어떤 허물이 있는가 하면 두 가지에 모두 허물이 있다. 왜냐하면 만일 무간도가 모든 결을 끊는다면 이 글[比文]에서 말한 것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할 때 이 글에서는 “고법지에서 끊어지는 결이며 나아가 도류지에서 끊어지는 결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해탈도가 모든 결을 끊는다면 지온(智蘊)에서 말한 것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하면, 거기에서는 “모든 결로서 견고(見苦)에서 끊어지는 그 결은 고지(苦智)로 끊는 것이 아니라 고인(苦忍)으로 끊는 것이며 나아가 모든 결로서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그 결은 도지(道智)로 끊는 것이 아니라 도인(道忍)으로 끊는 것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답】 “오직 무간도에서만 모든 결을 끊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지온에서 말한 것은 잘 회통하지만 이 글에서 말한 것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답】 이 글에서는 “9부(部)의 결이 있으니 고법지인(苦法智忍)에서 끊어지는 것과 나아가 도류지인(道類智忍)에서 끊어지는 것이다”라고 해야 하는데도 이렇게 말하지 않은 것은 별도의 뜻[意趣]이 있어서이다. 인(忍)은 지(智)에 속하며 지를 돕는 벗[助伴]이므로 모든 인에서 끊는 것을 지에서 끊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신하가 한 일을 왕이 한 일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무간도가 정작 결을 끊는 것이요 해탈도는 유지하면서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니, 비록 무간도가 정작 결을 끊는다 하더라도 만일 해탈도에서 유지하며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면 그 결이 도로 일어나면서 곧 과환(過患)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곧 해탈도는 끊은 것에 대하여 작용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법ㆍ유지(法類智)에서 끊는다고 말한다. 또 무간도와 해탈도는 짓는 일이 동일하여 결을 끊는 일에 대해 다 같이 세력이 있는 것은 마치 두 역사(力士)가 원수 한 사람을 같이 해칠 때에 한 사람은 땅에 쓰러뜨려 놓고 한 사람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로 일어나서 과환을 끼치게 될 것이다. 또 마치 두 사람이 한 도둑을 쫓을 때에 한 사람은 몰아서 나가게 하고 한 사람은 굳게 문을 닫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로 들어와서 과환을 끼치게 될 것이다. 또 마치 두 사람이 독사 한 마리를 붙잡아서 한 사람은 병 속에 넣고 한 사람은 단단히 아가리를 막아두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로 나와서 과환을 끼치게 될 것이다. 무간도와 해탈도가 결을 끊는 것도 그러하여 해탈도는 이와 같이 끊은 것에 대하여 작용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법ㆍ유지로 끊는다고 말한다. 또 해탈도는 무간도에서 끊어지는 결안에서 많은 작용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 많은 작용이 마치 근온(根蘊)에서의 설명314)과 같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법ㆍ유지로 끊는다고 말한다. 또 모든 무간도가 정작 결을 끊을 때에 모든 해탈도는 그 모든 결이 끊어진 득(得)과 함께 생기게 되며 이미 끊어지게 되면 끊어지는 그 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법ㆍ유지로 끊는다고 말한다. 또 끊어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따로따로[別]요, 둘째는 다 통함[通]이다. 따로따로는 오직 무간도이고 다 통함은 해탈도이다. 여기에서는 통함에 의거하여 말하기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또 여기의 모든 인(忍)을 지(智)로써 이름한 것은 지를 이끌기 때문에 원인에 결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니 마치 기갈(飢渴)이라는 이름이 그 원인이 되는 감촉에 인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결을 끊는 것은 오직 무간도일 뿐이다.
【論】 15부(部)의 결(結)이 있다. 삼계에 각각 다섯이 있으니 곧 견고(見苦)에서 끊어지는 결과 나아가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앞서 비록 9부의 결이 다할 때의 모든 과에 속하는 것을 말했다 하더라도 아직 15부의 결이 다할 때에 모든 과에 속하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니, 계(界)와 부(部)의 두 문(門)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결의 차별을 분별하면 열다섯 가지가 있는 것이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이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만일 욕계의 견고(見苦)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見道) 15심(心)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次第者)로서 고(苦)현관의 3심 동안과 집(集)ㆍ멸(滅) 현관의 각각 4심 동안과 도(道)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욕계의 견집(見集)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집현관의 3심 동안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욕계의 견멸(見滅)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멸ㆍ도 현관의 각각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욕계의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도현관의 2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論】 욕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불환과와 아라한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불환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불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불환과에 속하는 것을 말하며,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욕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다. 차제자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욕염을 여의고서 제9간도가 소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제9해탈도가 생길 때에는 불환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곧 불환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만일 색계의 견고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色染)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색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고현관의 1심 동안과 집ㆍ멸현관의 각각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색계의 견집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색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집현관의 1심 동안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색계의 견멸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색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멸현관의 1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색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색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차제자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道類智忍)이 소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도류지(道類智)가 생길 때에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앞의 세 가지 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색계의 수도(修道)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하거나 처소가 없기도 하다.
아라한과에 속한다는 것은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과에 속하는 것이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모든 이생으로서 이미 색염을 여읜 이의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색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든 이의 견도 15심 동안과 도류지 등의 모든 유학위(有學位)의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차제자로서 제4 정려의 염(染)을 여읜 제9해탈도로부터 이에 금강유정이 앞에 나타나 있는 때에 이르기까지 그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
4사문과에 속한다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처소가 없기도 하다는 것은 만일 무색계의 견고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생으로서 비상비비상처의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여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나 차제자는 고현관의 1심 동안과 집ㆍ멸 현관의 각각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무색계의 견집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는 것이니 그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고 차제자는 집현관의 1심 동안과 멸현관의 4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무색계의 견멸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생은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그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고 차제자는 멸현관의 1심 동안과 도현관의 3심 동안에 그 결이 다한 것은 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論】 만일 무색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4사문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예류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예류과에 속하며 나아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의 과에 속한다. 이생에게는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는 것이니 그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도류지인이 소멸할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도류지가 생길 때에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앞의 세 가지 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앞의 세 가지 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무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면 어느 과에 속하는가? 【답】 아라한과에 속한다.
그 결이 다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는 곧 아라한의 과에 속한다. 이생은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으니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차제자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 없다. 왜냐하면 금강유정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끊어서 다하며 처음 진지(盡智)가 생길 때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그 결이 다하면 곧 아라한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290)목숨을 마치는 세 가지 일에서 ① 완전히 염(染)을 여의고서 목숨을 마친다고 함은 욕계의 성자라면 불환과(不還果)를 얻고서 목숨을 마치는 것을 말하고 이생이라면 욕계의 견ㆍ수(見修) 2부(部)의 9품의 결(結)을 완전히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것을 말하며, ② 완전히 물러나면서 목숨을 마친다고 함은 욕계의 성자라면 상상품(上上品)의 수혹전(修惑纏)을 일으키어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의 전체를 얻으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을 말하고 이생이라면 견ㆍ수 2혹(惑)의 상상품의 결을 얻으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을 말하며, ③ 부분적으로 염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친다고 함은 성자의 경우일 뿐이어서 욕계의 성자라면 수혹의 전3품(品)의 결을 끊고 목숨을 마치는 가가(家家), 전6품을 끊고 목숨을 마치는 일래(一來), 전8품을 끊고 목숨을 마치는 일간(一間)과 같은 이를 말한다. 앞에서부터 이생(異生)과 성자(聖者)의 염을 여의는[離染] 것과 물러나는 때[退時]에 대한 모든 문제를 논하여 왔다. 여기에서는 그것에 이어서 이생이나 성자가 삼계에서 목숨을 마치는 것을 역시 이 염을 여의는 것과 물러나는 것에 관계시켜서 밝히려고 하는 문단(文段)이다. 이제 그 대강을 밝히면 ① 성자가 삼계에서 목숨을 마치는 것과 ② 이생이 삼계에서 목숨을 마치는 것과 ③ 성자만이 일부의 염을 여의고 목숨을 마치는 까닭을 논한다.
291)성자(聖者)에게 물러남[退]이 있다는 것은 오직 욕계에서일 뿐이며 색계와 무색계에는 물러나게 하는 거리도 없고 공덕이 견고하기 때문에 물러나는 일이 없다.(『비바사론』 제62권 첫머리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292)부분적으로 염(染)을 여의면서 목숨을 마치는 이는 성자(聖者)에 한정되며 그 까닭을 설명하는 데에 다섯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지금은 그 중의 제1설인데 최후에 평자(評者)는 이 설을 선설(善說)로 판정한다.
293)무루의 선정이란 출세정(出世定)이라고도 한다. 무루는 성도(聖道)를 표시하는 것이므로 성도에 의한 정(定)이라는 뜻이다. 곧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간 이만이 닦는 정이다.(『비바사론』 제162권, 『구사론』 「正品」 제1 참조)
294)여기서 정업의 힘이라 함은 이숙과(異熟果)를 받는 업으로서의 순현수(順現受)ㆍ순차수(順次受)ㆍ순후차수(順後次受)의 세 가지 정업(定業)을 말한다.
295)세속의 도[世俗道]에 의해서도 결(結)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 유부(有部)의 주장인데 앞에서부터의 이염론(離染論)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본 절(節)은 세속의 도의 무간도(無間道)와 해탈도(解脫道)의 두 행상(行相)에 관하여 특히 갖가지 문제를 밝히려는 문단(文段)이다. 그 내용의 세목(細目)을 분류해 보면 첫째는 세속의 무간도와 해탈도 각각의 3행상(行相), 즉 유루(有漏)의 6행상을 밝히고, 둘째는 두 도(道)의 행상간의 관계를 밝히며, 셋째는 두 도가 반연하는 지(地)에 대해 설명하고, 넷째는 두 도에서 닦는 행상의 수(數)를 밝히며, 다섯째는 근분지(近分地)에서는 유루ㆍ무루의 행상을 닦지만 상지(上地)에서는 오직 무루도(無漏道)만을 닦는 까닭을 말하면서 유루 행상의 한계를 말하고, 여섯째는 특히 두 도의 미래수(未來修)의 소연(所緣)을 논하며, 일곱째는 그것에 대한 다른 글[異文] 등을 회통하며 마친다.
296)세속 무간도(無間道)의 3행상(行相)인 추(麤)ㆍ고(苦)ㆍ장(障)에서 추의 행상은 적정하지 않기 때문이요, 고는 미묘(美妙)하지 않기 때문이며, 장은 출리(出離)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세속 해탈도(解脫道)의 3행상인 정(靜)ㆍ묘(妙)ㆍ이(離)에서 정은 적정하기 때문이요, 묘는 미묘하기 때문이며, 이는 출리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구사론』 「賢聖品」 제3 참조)
297)이하에서는 이 무간도와 해탈도의 소연(所緣)이 되는 지(地)에 대하여 네 가지 이설(異說)을 드는데, 평가(評家)는 마지막에 이 중에서 초설(初說)인 “9무간도는 오직 욕계만을 반연하며 9해탈도는 초정려(初靜慮)를 반연한다”를 취한다.
298)견도(見道)는 초ㆍ제2 찰나에 고인(苦忍)ㆍ고지(苦智)가 욕계를 반연하고, 제3 찰나에는 고류인(苦類忍)이 색계ㆍ무색계(이 중에는 有頂도 포함함)를 반연하며, 제4 찰나에는 고류지(苦類智)가 색계ㆍ무색계를 반연하고, 곧장 뒤의 제5 찰나에는 집인(集忍)이 욕계를 반연한 것같이 소연(所緣)과 행상(行相)이 서로 교착하면서도 수행에는 장애가 없다.
299)세속의 무간도와 해탈도의 현재수(現在修)를 모두 말하였으므로 다음에서는 미래에 닦는[未來修] 행상의 소연(所緣)에 대하여 논한다.
300)아래에서는 일곱 가지 결(結)이 모두 멸한 것을 들면서 그 중의 어느 것이 4사문과(沙門果)의 어디에 속하는가를 말하였다. 그러나 본 절(節)에서는 이상의 일곱 가지에서 앞의 네 가지, 곧 첫째는 삼계 2부의 결류(結類), 둘째는 견고(見苦)ㆍ견집(見集)ㆍ견멸(見滅)ㆍ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것과 수도(修道)에서 끊어지는 5부의 결류(結類), 셋째는 고법지(苦法智)와 나아가 도류지(道類智)의 8지(智)에서 끊어지는 것과 수도(修道)에서 끊어지는 9부의 결류(結類), 넷째는 삼계 5부에서의 15부의 결류(結類)의 그 하나하나가 모두 다 멸하는 것에 대하여 그 낱낱의 것은 어느 과(果)에 속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는가를 설명한다.
301)본 절(節)은 네 가지 결(結)에서 첫 번째이다. 이 첫 번째 결이 다할 때의 4사문과(沙門果)에 속하는 것을 욕계 2부(部)와 색계 2부와 무색계 2부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평론(評論)하는 문단이다.
302)여기서 처소가 없다[無處]는 것이란 어떤 결(結)이 다한 것은 4사문과(沙門果)에는 속하지 않기 때문에 처소, 즉 속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303)차제자(次第者)란 유부종(有部宗)에서는 수행하는 이가 미혹[惑]을 끊는 과정을 마치 계단[階]과 사다리[梯]와 같다고 여기므로 그 수행의 낱낱 계제(階梯)에 위치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경우를 여기서 차제자라고 한다. 지금은 욕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結)이 다한 것에 대하여 그 차제자의 경우를 구하는 것인데, 견도(見道) 15심(心)에서 욕계의 도제관(道諦觀) 중의 도법인(道法忍) 도법지(道法智)의 2심(心) 동안에 비로소 욕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게 되므로 곧 여기에서는 도현관(道現觀) 2심 동안의 그 결이 다한 것을 든다. 그러나 아직 도류인지(道類忍智)를 얻지 못하면 과를 얻지[得果] 못하는 것이므로 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의 차제자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된다.
304)견도(見道)의 수행자, 즉 수신행자(隨信行者)와 수법행자(隨法行者)에게는 ① 예류향(預類向)이라 불리는 이와 ② 혹은 일래향(一來向)이라 불리는 이와 ③ 혹은 불환향(不還向)이라 불리는 이의 세 가지가 있다.(『바사론』 제54권 첫머리 참조)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도류지(道類智)를 얻으면 첫 번째 사람은 예류과(預流果)를 얻고, 두 번째 사람은 일래과(一來果)를 얻으며, 세 번째 사람은 불환과(不還果)를 얻는 것이므로 여기서 “그 알맞은 바에 따라 앞의 세 가지 과를 증득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305)차제자는 색계 수도(修道)의 염(染)을 여읜 이도 과(果)를 얻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 색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한 것도 과에 속하지 않는다.
306)여기서 말한 고현관(苦現觀) 1심(心) 동안이라 함은 견도(見道) 15심의 고류지(苦類智)가 이미 생긴 한 순간을 말한다. 이미 삼계의 견고(見苦)에서 끊어지는 결이 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次第者의 현관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것에 준하여 생각하면 분명해질 것이다.)
307)여기의 집현관(集現觀)의 1심(心) 동안이라 함은 집류지(集類智)가 이미 생긴 한 찰나이다.
308)멸류지(滅類智)가 이미 생긴 한 찰나이다.
309)여러 가지[雜] 대치할 것[所對治]이라 함은 법지품(法智品)과 유지품(類智品)에서 다스리게 되는 번뇌, 즉 수도에서 끊어지는 번뇌를 말한다.
310)고제(苦諦) 아래의 고법지(苦法智)와 고류인(苦類忍)과 고류지(苦類智)의 3심(心)이다.
311)고류지(苦類智)가 이미 생긴 한 찰나이다.
312)집법지(集法智)와 집류인(集類忍)과 집류지(集類智)의 한 찰나이다.
313)멸현관(滅現觀)의 3심(心) 동안이란 멸법지(滅法智)와 멸류인(滅類忍)과 멸류지(滅類智)를 말하며, 도현관(道現觀)의 3심 동안이란 도법지(道法智)와 도류인(道類忍)과 도류지(道類智)를 말한다.
314)이 문단은 『발지론』 제15권에서 의근(意根)과 사근(捨根)과 신근(信根) 등의 5근과 3무루근(無漏根) 등의 멸하거나 생함[滅起]에 의하여 4과(果)를 증득하는 것을 설명한 대목이다. 『바사론』의 해석에 의하면 멸하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에 속하고 생기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에 속한다고 한다.
315)이하에서는 15부(部)의 결(結)에서 욕계 5부의 결이 다한 것에 대하여 과(果)에 속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316)이하에서는 15부의 결에서 색계 5부의 결이 다한 것에 대하여 과(果)에 속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317)이하에서는 15부의 결에서 무색계 5부의 결이 다한 것에 대하여 과(果)에 속하는 것을 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