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납식 ② 【論】 모든 근(根)이 무루(無漏)이면서 욕계계(欲界繫)를 반연한 것이라면 이 근은 법지(法智)와 상응하는가? 가령 근이 무루이면서 법지와 상응한 것이라면 이 근은 욕계계를 반연하는가? 【답】 4구(句)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욕계계를 반연하면서도 이 근은 법지와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고법지인(苦法智忍)과 이것과 상응하는 근[相應根]과 고법지(苦法智)와 집법지인(集法智忍)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집법지(集法智)이다.662)
여기에서 고법지인은 무루(無漏)의 혜근(慧根)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면서도 법지와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지(智)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과 상응하는 근이란 고법지인과 상응한 여덟 가지 무루근(無漏根)663)을 말한다. 이 근도 욕계계를 반연하면서도 법지와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고법지도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도 욕계계를 반연하면서도 법지와 상응하는 것이 아님은 자체는 자체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가지의 인연 때문에 자체는 자체와 상응하지 않는 것이니, 첫째는 두 가지의 자성(自性)이 함께 생기는 일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 앞뒤의 찰나(刹那)는 나란히 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온갖 법은 자성을 관(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반연으로 삼기 때문이다. 집법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집법지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법지와는 상응하면서도 이 근은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이 있다.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와 상응한 근이다.
이것은 멸법지ㆍ도법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不繫)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욕계계를 반연하고, 이 근은 또한 법지와도 상응하는 것이 있다. 고법지ㆍ집법지와 상응하는 근이다.
이것은 고법지ㆍ집법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는 것은 욕계의 고(苦)ㆍ집(集)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욕계계를 반연하지도 않고, 이 근은 또한 법지와도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고류지인(苦類智忍)과 고류지(苦類智)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집류지인(集類智忍)과 집류지(集類智)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멸법지인(滅法智忍)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멸법지(滅法智)와, 멸류지인(滅類智忍)과 멸류지(滅類智)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도법지인(道法智忍)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도법지(道法智)와, 도류지인(道類智忍)과 도류지(道類智)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이다.
여기에서 고류지인과 고류지는 다 같이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ㆍ지(智)는 지(智)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이란, 고류지인과 고류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고류지인과 고류지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집류지인과 집류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멸법지인은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不繫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 상응한 것도 아님은 인(忍)과 지(智)와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과 상응한 근이란 멸법지인과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不繫)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멸법지도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자체는 자체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법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도법지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멸류지인과 멸류지는 다 같이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ㆍ지(智)는 지(智)와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이란 멸류지인과 멸류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욕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법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멸류지인과 멸류지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도류지인과 도류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論】 모든 근(根)이 무루(無漏)이면서 색계계(色界繫)ㆍ무색계계(無色界繫)를 반연한 것이면 이 근은 유지(類智)와는 상응하는가? 가령 근이 무루이면서 유지와 상응한 것이면 이 근은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는가? 【답】 4구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색계계ㆍ무색계를 반연하지만 이 근은 유지와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고류지인(苦類智忍)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고류지(苦類智)와, 집류지인(集類智忍)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집류지(集類智)이다.664)
여기에서 고류지인은 무루의 혜근(慧根)이다. 이 근은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면서도 유지와는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은 지(智)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과 상응한 근이라고 함은 고류지인과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또한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면서도 유지와는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고류지도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또한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면서도 유지와는 상응한 것이 아님은 자체는 자체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류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집류지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유지와는 상응하면서도 이 근은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이 있다. 멸류지(滅類智)와 도류지(道類智)와 상응한 근이다.
이것은 멸류지ㆍ도류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不繫)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고, 이 근은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있다. 고류지ㆍ집류지와 상응한 근이다.
이것은 고류지ㆍ집류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한 것은 색계와 무색계의 고(苦)와 집(集)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어떤 근은 무루이면서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지도 않고, 이 근은 또한 유지와도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고법지인과 고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집법지인과 집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멸법지인과 멸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멸류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멸류지와, 도법지인과 도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과, 도류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도류지이다.
여기에서 고법지인과 고법지는 다 같이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욕계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ㆍ지(智)는 지(智)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이라고 함은 고법지인과 고법지와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욕계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법지(法智)와 상응하기 때문이다.665) 집법지인과 집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멸법지인과 멸법지는 다 같이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ㆍ지(智)는 지(智)와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이란 멸법지인ㆍ멸법지와 상응하는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법지(法智)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도법지인과 도법지와 이 두 가지와 상응한 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멸류지인은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은 지(智)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과 상응한 근이란 멸류지인과 상응한 여덟 가지의 무루근을 말한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인(忍)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멸류지도 무루의 혜근이다. 이 근이 색계계와 무색계계를 반연하지 않는 것은 불계의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또한 유지와도 상응한 것이 아님은 자체(自體)는 자체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류지인과 이것과 상응한 근과 도류지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論】 법지(法智)는 법지라고 말해야 하는가?666)……(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다만 법지ㆍ유지(類智)의 두 가지의 지(智)에 의거해서만 논(論)하는가? 【답】 그것은 논을 짓는 이의 의욕(意欲)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의욕에 따라 논을 짓는 것이므로 다만 법성(法性)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곧 책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뜻에 두 가지의 지에 의거하여 논을 지으려고 하여 곧 그렇게 짓는 것이니,
법지와 유지에서이다. 앞의 지온(智蘊)667) 같은 데서는 논자(論者)의 뜻에 따라 두 가지의 지에 의거하여 논을 지은 것이니, 타심지(他心智)와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이다. 뒤의 정온(定蘊)668) 같은 데서는 논자의 뜻에 따라 역시 두 가지의 지에 의거하여 논을 지은 것이니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이다. 이 온의 앞669)과 같아서는 논자의 뜻에 따라 네 가지의 지[四智]에 의거하여 논을 지은 것이니,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이다. 앞의 결온(結蘊)670) 같은 데서는 논자의 뜻에 따라 여덟 가지의 지에 의거하여 논을 지은 것이니, 법지(法智)ㆍ유지(類智)ㆍ타심지(他心智)ㆍ세속지(世俗智)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이다. 소지납식(所知納息)671)과 같은 데서는 논자의 뜻에 따라 열 가지의 지에 의거하여 논을 지은 것이니, 앞의 여덟 가지의 지와 진지ㆍ무생지이다. 비유하면 솜씨 좋은 옹기장이가 축축한 진흙덩이를 바퀴 위에다 놓고 뜻에 따라 찰흙을 이기면서 갖가지의 그릇이 되게 하면서도 공교한 법[工巧法]에 서로 어긋나지는 않는 것처럼, 그와 같아서 논(論)을 잘 짓는 이는 문(聞)ㆍ사(思)ㆍ혜(慧)로써 알 경계를 다니면서 환히 비추어 어리석음[愚癡]을 제거하며 그런 뒤에는 하고 싶어 하는 대로 갖가지로 논을 지으면서 모든 법성(法性)에도 서로가 어긋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오직 법지와 유지에서만은 서로서로가 포섭하지 않으며, 또한 다 같이 서로 포섭하지 않은 경계를 두루 반연하는 것이니, 유루ㆍ무루와 유위ㆍ무위의 법과 4성제(聖諦)의 법이다”고 한다. 어떤 이가 “법지와 유지로써 온갖 무루의 지를 포섭하여 다하는 것이니, 그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법지ㆍ유지의 두 가지의 지는 분제(分齊)를 지어 반연하는 것이니, 법지는 아래를 반연하고, 유지는 위를 반연한다”고 한다. 이런 등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만 이 두 가지의 지에 의거해서 논한다.
【論】 법지는 법지라고 말해야 하는가? 유지(類智)ㆍ타심지(他心智)ㆍ세속지(世俗智)ㆍ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법지이며, 혹은 타심지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라고 말해야 한다.
법지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욕계계의 모든 행(行)과 모든 행의 인(因)과 모든 행의 멸(滅)과 모든 행의 대치도(對治道)672)를 아는 것을 말한다. 혹은 타심지란, 욕계의 모든 행의 대치도로서 다른 이의 심(心)ㆍ심소의 법[心所法]을 아는 것을 말하고, 혹은 고지란 욕계의 모든 행의 비상의 모양[非常相]ㆍ고의 모양[苦相]ㆍ공의 모양[空相]ㆍ비아의 모양[非我相]을 아는 것을 말한다. 혹은 집지란, 욕계의 모든 행인(行因)의 인의 모양[因相]ㆍ집의 모양[集相]ㆍ생의 모양[生相]ㆍ연의 모양[緣相]을 아는 것을 말하고, 혹은 멸지라고 함은 욕계의 모든 행멸(行滅)의 멸의 모양[滅相]ㆍ정의 모양[靜相]ㆍ묘의 모양[妙相]ㆍ이의 모양[離相]을 아는 것을 말하며,
혹은 도지라고 함은 욕계의 모든 행의 대치도의 도의 모양[道相]ㆍ여의 모양[如相]ㆍ행의 모양[行相]ㆍ출의 모양[出相]을 아는 것을 말한다. 자성(自性)을 나타내었으므로 지(地)를 나타내겠다.
【論】 법지는 유심유사(有尋有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유사(無尋唯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무사(無尋無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세 가지라고 말해야 한다.
미지(未至)와 초정려(初靜慮)에 있는 것을 유심유사라고 하고, 정려중간(靜慮中間)에 있는 것을 무심유사라고 하며, 위의 세 가지의 정려에 있는 것을 무심무사라고 한다. 지를 나타내었으므로 상응함을 나타내겠다.
【論】 법지는 낙근(樂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희근(喜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세 가지와 다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제3 정려에 있는 것은 낙근과 상응하고, 초ㆍ제2 정려에 있는 것은 희근과 상응하며, 미지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에 있는 것은 사근과 상응한다. 상응함을 나타내었으므로 행상(行相)을 나타내겠다.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고법지(苦法智)ㆍ집법지(集法智)를 말하며, 불계를 반연한다고 함은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를 말한다.
【論】 유지(類智)는 유지라고 말해야 하는가, 법지ㆍ타심지ㆍ세속지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유지이며, 혹은 타심지와 고지와 집지와 멸지와 도지라고 말해야 한다.
유지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과 모든 행의 인과 모든 행의 멸과 모든 행의 대치도를 아는 것을 말한다. 혹은 타심지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의 무루(無漏)의 대치도로서 다른 이의 심ㆍ심소의 법을 아는 것을 말한다. 혹은 고지라고 함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의 비상(非常) 등의 네 가지의 행상을 아는 것을 말하고, 혹은 집지라고 함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인의 인(因) 등 네 가지 행상을 아는 것을 말하며, 혹은 멸지라고 함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의 멸(滅)의 멸(滅) 등 네 가지 행상을 아는 것을 말하고, 혹은 도지란 색계와 무색계의 모든 행의 대치도(對治道)의 도(道) 등의 네 가지의 행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자성(自性)을 나타내었으므로 지(地)를 나타내겠다.
【論】 유지는 유심유사(有尋有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유사(無尋唯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무사(無尋無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세 가지를 다 말해야 한다.
미지(未知)와 초정려에 있는 것은 유심유사라고 하고, 정려중간에 있는 것은 무심유사라고 하며, 위의 세 가지의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에 있는 것은 무심무사라고 한다. 지(地)를 나타내었으므로 상응(相應)함을 나타내겠다.
【論】 유지는 낙근(樂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희근(喜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세 가지와 다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제3 정려에 있는 것이면 낙근과 상응하고, 초ㆍ제2 정려에 있는 것이면 희근과 상응하며, 미지(未至)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의 무색에 있는 것이면 사근과 상응한다. 상응함을 나타내었으므로 행상을 나타내겠다.
【論】 유지는 공ㆍ무원ㆍ무상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세 가지와 다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두 가지의 행상은 공과 상응하고, 열 가지의 행상은 무원과 상응하며, 네 가지의 행상은 무상과 상응한다. 이미 행상을 나타내었으므로 소연(所緣)을 나타내겠다.
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한다고 함은 고류지(苦類智)와 집류지(集類智)를 말하고, 불계를 반연한다고 함은 멸류지(滅類智)와 도류지(道類智)를 말한다.
【論】 시심해탈(時心解脫)은 학의 근[學根]이 얻었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학의 근이 얻었다고 말해야 하는가?675)……(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계경의 뜻을 해석하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타(阿難陀)에게 말씀하셨다. ‘필추는 시끄러운 데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것을 좋아하면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에 있어서나, 혹은 불시부동심해탈(不時不動心解脫)에 있어서나 간에 몸소 작증(作證)하여 구족하게 머무르게 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만일 어떤 필추가 시끄러움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고요함을 즐기면 시애심해탈에 있거나, 혹은 불시부동심해탈에 있거나 간에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는 일이 반드시 있느니라.’ ”676) 그 경에서는 비록 두 가지의 해탈을 말했다 해도 이 두 가지의 자성(自性)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또한 일찍이 어느 근(根)으로 말미암아 얻었는가를 나타내지 않았다.
앞의 지온(智蘊)677) 중에서는 비록 이미 해탈의 자성을 나타내어 보였다 해도 아직 얻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이제 얻는 것[得]을 나타내려고 이것을 논(論)한다. 어떤 이는 “다른 이가 말한 것을 중지시키려고 한 까닭이다. 혹 어떤 이는 ‘시심해탈678)은 유학(有學)이어서 할 일이 있고 할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부동심해탈은 무학(無學)이어서 할 일이 없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기 때문이다’고 집착한다. 그런 이의 집착을 차단하면서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무학이어서 할 일을 이미 다 마쳤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고 한다. 혹 또 어떤 이는 “시심해탈은 유루(有漏)이지만 부동심해탈은 무루(無漏)이다”고 집착한다. 그런 이의 뜻을 중지시키면서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무루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혹 또 어떤 이는 “시심해탈은 유위(有爲)이지만 부동심해탈은 무위(無爲)이다”고 집착한다. 그런 이의 집착을 중지시키면서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유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등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논한다. 모든 법 가운데서 오직 두 가지의 법만 해탈의 자성이다. 유위의 법 중에서는 오직 승해(勝解)만 있으며, 무위의 법 중에서는 오직 택멸(擇滅)만이 있다.679)
저 승해란 심소(心所)의 대지법(大地法)이어서 항시 마음과 상응하며, 저 택멸이란 이계(離繫)요, 승의(勝義)의 선(善)이어서 항시 열반에 머무른다. 승해(勝解)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염(染)과 불염(不染)이다. 염이란 삿된 승해를 말하는 것이니, 곧 탐(貪) 등의 번뇌와 수번뇌(隨煩惱)와 상응한 것이요, 불염이라고 함은 바른 승해[正勝解]를 말하는 것이니, 곧 신(信) 등의 모든 선의 법과 상응한 것이다. 이 바른 승해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이다. 유루란 부정관(不淨觀)ㆍ지식념(持息念)ㆍ무량(無量)ㆍ승처(勝處)ㆍ변처(遍處) 등과 상응한 것을 말하며, 무루란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학과 무학이다. 학이란 7성(聖)680)의 몸의 무루의 승해를 말하며, 무학이란 아라한의 몸의 무루의 승해를 말한다. 무학의 승해에도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시심해탈(時心解脫)과 불시심해탈(不時心解脫)이다. 시심해탈이란 다섯 가지 아라한681)의 몸의 무루의 승해를 말하고, 불시심해탈이란 부동법(不動法) 아라한의 몸의 무루의 승해를 말한다. 이 두 가지를 또한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이라고 한다. 탐욕[貪]을 여의었기 때문에 심해탈이라고 하고, 무명(無明)을 여의었기 때문에 혜해탈이라고 한다. 【문】만일 이 승해(勝解)가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심해탈이라 하고, 무명을 여의었기 때문에 혜해탈이라 하면,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 등에서 말한 것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서 “어떤 것이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마음이 해탈을 얻었다 하는가? 탐욕 없는 선근이 탐욕을 대치(對治)한 까닭이다. 어떤 것이 무명을 여의었기 때문에 지혜가 해탈을 얻었다 하는가? 우치[癡] 없는 선근이 우치를 대치한 까닭이다”고 말하였다.682)
이런 설명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해탈의 체(體)는 곧 선근(善根)이나 승해는 아니다. 【답】 거기서의 글은 “어떤 것이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마음이 해탈을 얻었다 하는가? 탐욕 없는 선근과 상응한 마음을 승해가 인가(印可)하면, 곧 이것을 시심해탈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명을 여의었기 때문에 지혜가 해탈을 얻었다 하는가? 우치가 없는 선근과 상응한 마음을 승해가 인가하면, 곧 이것을 부동심해탈이라고 한다”고 말해야 한다. 【문】그런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인가? 【답】 이것은 의처(依處)에 나아가서 그로써 승해를 나타낸 것이다. 탐욕이 없는 것에 의거하기 때문에 마음은 탐욕으로부터 해탈하게 되며, 우치가 없는 것에 의거하기 때문에 마음은 우치로부터 해탈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해탈하는 체(體)는 승해이다.
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와 함께 생기는 근(根)을 말하고,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와 함께 생기는 근을 말한다. 또 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향의 도[向道]와 함께 생기는 근을 말하고,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함은 과의 도[果道]683)와 함께 생기는 근을 말한다.
또 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금강유정(金剛喩定)과 함께 생기는 품(品)의 근(根)을 말하고,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진지(盡智)와 함께 생기는 품의 근을 말한다. 또 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이지근(已知根)을 말하고,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구지근(具知根)을 말한다. 또 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수도(修道)와 함께 생기는 근을 말하고,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무학도(無學道)와 함께 생기는 근을 말한다. 수지(修地)와 무학지(無學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論】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은 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만일 본래부터 부동(不動)을 얻은 이면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며, 만일 시해탈 아라한으로서 부동을 얻은 이면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한다.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의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으며,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하는 것은 저 무간도와 해탈도는 다 같이 무학에 속하기 때문이다.
【論】 온갖 결이 다한 것은 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한다.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문】이 글에서는 무엇 때문에 부동심해탈에서의 설명과 같지 않은가?684)
【답】 이 글에서도 “만일 처음에 온갖 결이 다함을 증득[證]한 이면 학ㆍ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하며, 만일 시해탈 아라한이 부동을 얻고서 온갖 결이 다함을 증득한 이면 무학의 근이 얻는다”고 말해야 한다. 【문】그런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데는 무슨 뜻이 있어서인가? 【답】 해탈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이다. 두 가지 심해탈은 유위이지만 온갖 결이 다한 것은 무위이다. 유위의 해탈에는 하ㆍ중ㆍ상이 있으므로 처음에 얻은 것이 다르고 뒤에 얻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되게 말하지만, 무위의 해탈에는 하ㆍ중ㆍ상이 없고, 뒤에 얻은 것은 처음의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따로 말하는 것이 없다.
인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도류지인(道類智忍)과 함께하기 때문이요, 유심유사란 오직 미지지(未至地)에만 의거하기 때문이며,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미지지에는 오직 사수(捨受)만이 있기 때문이요, 무원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도무원(道無願)과 함께하기 때문이며, 불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유지품(類智品)을 소연(所緣)으로 삼기 때문이다.
【論】 무간도로써 일래과(一來果)를 증득할 때686)에 이 도(道)는 법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지ㆍ타심지ㆍ세속지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무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낙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희근ㆍ사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공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원ㆍ무상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색계계ㆍ무색계계ㆍ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만일 갑절로 욕염을 여의고 정생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간 이면 예류과를 증득한 이의 설명에서와 같다. 만일 예류과로부터 세속의 도[世俗道]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면 이 도(道)는 세속지와 상응하며, 유심유사이면서 사근과 상응하고,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한다.
세속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추(麤) 등 세 가지의 행상687) 어느 한 가지가 구르기 때문이요, 공(空) 등과 상응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오직 무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욕계의 5온(蘊)을 소연(所緣)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만일 예류과로부터 무루의 도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면, 이 도(道)는 법지와 상응하고, 혹은 고지, 혹은 집지, 혹은 멸지, 혹은 도지와 상응하며, 유심유사이면서 사근과 상응하고, 혹은 공, 혹은 무원, 혹은 무상과 상응하며, 혹은 욕계계, 혹은 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한다.
법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 법지(法智)의 어느 하나와 상응한 것을 말한다. 혹은 고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곧 고법지(苦法智)와 상응하고, 나아가 혹은 도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곧 도법지와 상응한 것을 말한다. 혹은 공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행상과 상응한 것을 말하고, 혹은 무원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열 가지 행상과 상응한 것을 말하며, 혹은 무상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의 행상[四行相]과 상응한 것을 말한다. 혹은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고법지ㆍ집법지(集法智)를 말하고, 혹은 불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를 반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무간도로써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할 때에 이 도(道)는 법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지ㆍ타심지ㆍ세속지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무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낙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희근ㆍ사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공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원ㆍ무상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색계계ㆍ무색계계ㆍ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만일 이미 욕염을 여의고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면, 이 도(道)는 인(忍)과 상응하며, 혹은 유심유사, 혹은 무심유사, 혹은 무심무사이면서 혹은 낙근과 상응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고, 혹은 사근과도 상응하며, 무원과 상응하고 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한다.
혹은 유심유사라고 하는 것은 미지(未至)와 초정려에 의거하는 것을 말하고, 혹은 무심유사라고 하는 것은 정려중간에 의거하는 것을 말하며, 혹은 무심무사라고 하는 것은 위의 세 가지 정려에 의거하는 것을 말한다. 혹은 낙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제3 정려에 의거하는 것을 말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초ㆍ제2 정려에 의거하는 것을 말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미지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에 의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만일 일래과로부터 세속의 도로써 불환과를 증득한 이면, 세속의 도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의 설명에서와 같다. 만일 일래과로부터 무루의 도로써 불환과를 증득한 이면, 무루의 도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의 설명에서와 같다. 무간도(無間道)로써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에 이 도(道)는 법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지ㆍ타심지ㆍ세속지ㆍ고지ㆍ집지ㆍ멸지ㆍ도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유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유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심무사라고 말해야 하는가? 낙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희근ㆍ사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공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무원ㆍ무상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욕계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색계계ㆍ무색계계ㆍ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이 도(道)는 법지와 상응하고, 혹은 유지, 혹은 고지, 혹은 집지, 혹은 멸지, 혹은 도지와도 상응하며, 혹은 유심유사, 혹은 무심유사, 혹은 무심무사이면서 혹은 낙근과, 혹은 희근과, 혹은 사근과도 상응하고, 혹은 공, 혹은 무원, 혹은 무상과도 상응하며, 혹은 무색계계를 반연하고, 혹은 불계를 반연한다고 말해야 한다.
혹은 법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688)의 어느 하나와 상응한 것을 말하고, 혹은 유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 유지의 어느 하나와 상응한 것을 말한다. 혹은 고지ㆍ집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곧 고ㆍ집의 유지와 상응한 것이며, 혹은 멸지ㆍ도지와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곧 멸ㆍ도의 법지ㆍ유지와 상응한 것이다. 혹은 유심유사라고 하는 것은 미지(未至)와 초정려에 의거함을 말하고, 혹은 무심유사라고 하는 것은 정려중간(靜慮中間)에 의거함을 말하며, 혹은 무심무사라고 하는 것은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에 의거함을 말한다.
혹은 낙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제3 정려에 의거함을 말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초(初)ㆍ제2 정려에 의거함을 말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미지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에 의거함을 말한다. 혹은 공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행상과 상응한 것을 말하고, 혹은 무원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열 가지의 행상과 상응한 것을 말하며, 혹은 무상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은 네 가지의 행상과 상응한 것을 말한다. 혹은 무색계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고ㆍ집의 유지(類智)를 말하는 것이니, 유정(有頂)의 고ㆍ집을 반연하기 때문이며689), 혹은 불계를 반연한다고 하는 것은 멸ㆍ도의 법지ㆍ유지를 말하는 것이니, 삼계의 멸(滅)과 능대치(能對治)의 도(道)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論】 몇 가지의 근(根)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고 생기면서 예류과를 얻는가? 【답】 근으로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없고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고,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으며,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으면서 예류과를 얻는다.690)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며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일곱 가지란 의근(意根)과 사근(捨根)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이 일곱 가지의 무간도(無間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이 일곱 가지의 해탈도(解脫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소멸한다는 것은 향도(向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과도(果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소멸한다는 것은 도류지인품(道類智忍品)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도류지품(道類智品)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소멸한다는 것은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과 함께 생긴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이지근(已知根)과 함께 생긴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소멸한다는 것은 견도(見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수도(修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견지(見地)와 수지(修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미지당지근을 말하며,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지근을 말한다.
【論】 몇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고 생기면서 일래과(一來果)를 얻는가? 【답】 만일 갑절로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간 이면 예류과를 증득[證]한 이의 설명에서와 같다. 만일 예류과로부터 세속의 도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면 근으로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없고,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면서 일래과를 얻는다.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일곱 가지라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고, 소멸한다는 것은 이 일곱 가지의 무간도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이 일곱 가지의 해탈도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소멸한다는 것은 향도(向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생긴다는 것은 과도(果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論】 만일 예류과로부터 무루의 도로써 일래과를 증득한 이면 근으로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없고, 여덟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면서 일래과를 얻는다.
여덟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여덟 가지란 앞의 일곱 가지에 이지근(已知根)이 보태진 것을 말하고, 소멸하여 생긴다는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몇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고 생기면서 불환과를 얻는가? 【답】 만일 이미 욕염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들어간 이면 근으로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없고,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며,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고,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으면서 불환과를 얻는다.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일곱 가지란 의근(意根) 낙근(樂根)ㆍ희근(喜根)ㆍ사근(捨根)의 어느 하나와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예류과를 얻는 것 안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691)
【論】 만일 일래과로부터 세속의 도로써 불환과를 증득하면서 정려(靜慮)에 들지 않은 이면 네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면서 불환의 과를 얻는다.
네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고근(苦根)ㆍ우근(憂根)692)을 말한다.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일곱 가지란 의근과 사근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하고, 소멸하여 생긴다는 뜻은 예류로부터 일래를 얻는 이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만일 정려에 들어간 이면 네 가지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여섯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며,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고, 한 가지가 생겨 소멸하지 않으면서 불환과를 얻는다.
네 가지 근이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여섯 가지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여섯 가지란 의근(意根)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하고, 소멸하여 생긴다는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사근(捨根)을 말하며, 한 가지가 생겨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희근(喜根)을 말한다.
【論】 만일 일래과로부터 무루의 도로써 불환과를 증득하면서 정려에 들지 않은 이면 네 가지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여덟 가지 근이 소멸하여 생기면서 불환과를 얻는다.
여덟 가지 근이란, 의근과 사근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과 이지근을 말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論】 만일 정려에 들어간 이면 네 가지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일곱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며,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고,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으면서 불환과를 얻는다.
일곱 가지의 근이란, 앞에서 말한 의근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과 이지근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세속의 도로써 불환과를 증득한 이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욕계의 염(染)을 여의는 제9 해탈도(解脫道)일 때에 누구는 곧 정려에 들어가고, 누구는 들지 않는 것인가? 【답】 소의(所依)의 힘이 강한 이는 들어가고, 소의의 힘이 하열한 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어떤 이는 “소의의 힘이 하열한 이가 들어가니 소의를 장양(長養)하기 때문이며, 소의의 힘이 강한 이는 들어가지 않으니 소의를 장양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기뻐함이 많은 이는 들어가고, 싫어함이 많은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기쁨과 즐거움이 많은 이는 들어가고, 근심과 괴로움이 많은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멸지(滅智)ㆍ도지(道智)로써 욕염(欲染)을 여읜 이는 들어가고, 고지(苦智)ㆍ집지(集智)로써 욕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상(無相)과 도무원(道無願)으로써 욕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고, 공(空)과 고(苦)ㆍ집무원(集無願)으로써 욕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693) 어떤 이는 “욕계의 법을 싫어하여 욕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고, 삼계의 법을 싫어하여 욕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靜慮)를 구하기 위하여 염(染)을 여읜 이는 들어가고, 해탈(解脫)을 구하기 위하여 염을 여읜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근성이 예리한 이는 들어가고, 근성이 둔한 이는 들어가지 않는다. 근성이 예리한 것과 근성이 둔한 것처럼 인의 힘과 연의 힘, 내분의 힘[內分力]과 외분의 힘[外分力], 안으로 바르게 사유하는 힘[內正思惟力]과 밖으로 바른 법을 듣는 힘[外聞正法力]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論】 몇 가지의 근(根)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고 생기면서 아라한과를 얻는가? 【답】 만일 미지(未至)에 의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한 이면 한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일곱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여 생기며,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고,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으면서 아라한과를 얻는다.
한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명근(命根)을 말한다. 일곱 가지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일곱 가지란 의근(意根)과 사근(捨根)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하고,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유루(有漏)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고 하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세속(世俗)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향도(向道)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는 것은 과도(果道)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학도 무학도 아닌 것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학(學)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는 것은 무학(無學)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유정(有頂)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금강유정(金剛喩定)과 함께 생긴 품(品)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는 것은 진지(盡智)와 함께 생긴 품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수도에서 끊을 것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이지근(已知根)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는 것은 구지근(具知根)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무색계계에 속한 것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을 말하고, 소멸한다는 것은 수도지(修道地)에 속한 것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며, 생긴다는 것은 무학도지(無學道地)에 속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지근을 말하고,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지근을 말한다.
【論】 미지(未至)에 의거하는 것처럼 정려중간(靜慮中間)과 제4 정려와 세 가지의 무색에 의거하는 것도 그러하다. 만일 초정려에 의거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한 이면 두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여섯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여 생기며, 한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기고,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으며,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하지 않으면서 아라한과를 얻는다.
두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진다는 것은 명근과 사근을 말한다. 여섯 가지의 근이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며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여섯 가지란 의근(意根)과 신(信) 등의 다섯 가지 근을 말하고,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며 생긴다는 것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한 가지의 근이 소멸하여 생긴다고 하는 것에서 한 가지란 희근(喜根)을 말하고, 소멸하여 생긴다는 것의 뜻도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한 가지가 소멸하여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지근을 말하며, 한 가지가 생기어 소멸한다는 것은 구지근을 말한다.
【論】 초정려(初靜慮)에 의거하는 것처럼 제2ㆍ제3 정려에 의거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차별이 있는 것은 제3 정려에 의거할 적에는 낙근(樂根)이 생기어 소멸한다고 말해야 한다.
662)본 절은 무루근(無漏根)이면서 3계계(界繫)와 불계(不繫)를 반연한 것과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와의 상응(相應)ㆍ불상응(不相應)의 관계를 밝히는 문단이다. 『발지론』 송문(頌文)의 ‘법류지연상응(法類智緣相應)’에 해당한다. 여기는 욕계계(欲界繫)를 반연하는 무루근과 법지와의 상응 관계를 논하며 4구로 분별한다.
663)여덟 가지 무루근(無漏根)이란, 무루의 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의 4근(根)과 의근(意根)과 낙(樂)ㆍ희(喜)ㆍ사(捨)의 3근을 말한다. 혜근(慧根)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인(忍)의 체(體)는 혜근이기 때문에 자성(自性)은 자성과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664)색계계ㆍ무색계계를 반연하는 무루근(無漏根)과 유지(類智)와의 상응(相應) 관계를 논하며, 여기에는 4구(句)의 분별이 있다.
665)인(忍)과 법지(法智)와의 상응(相應) 관계를 논하며, 여기에는 4구의 분별이 있다.
666)법지와 유지(類智)와의 자성(自性)ㆍ지(地)ㆍ수근상응(受根相應)ㆍ행상(行相)ㆍ소연(所緣)의 5문(門)을 분별한다. 여기는 『발지론』 송문(頌文)에서 보면 ‘법류지(法類智) 5문(門)’에 해당한다.
667)앞의 지온(智蘊)이란, 지온 제3 중 타심지납식, 『발지론』, 『바사론(婆沙論)』 98권의 ‘운하타심지(云何他心智)’의 문구를 가리킨다.
668)뒤의 정온(定蘊)이라고 함은, 정온 제7 중 일행납식(一行納息) 제5, 19권과 『바사론』 제185권의 ‘진지당언어신순신관념주야(盡智當言於身循身觀念住耶)’의 문구를 가리킨다.
669)이 온(蘊)의 앞이란‘ 근온(根蘊) 제6 중 유납식(有納息) 제2, 『발지론(發智論)』 15권, 『바사론』 147권의 “제고지시어고무루지야(諸苦智是於苦無漏智耶)”의 문구를 가리킨다.
670)앞의 결온(結蘊)이란 결온 제2 중 불선납식(不善納息) 제1, 『발지론』 제3권과 『바사론』 54권의 “어구십팔수면 미리욕엄법지 미이생위(於九十八隨眠未離欲染法智未已生位)”의 문구를 가리킨다.
671)소지납식(所知納息)이란, 이러한 명칭의 납식(納息)은 『발지론』에나 『바사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10지(智)의 소지(所智)를 논한 데에는 지온(智蘊) 제3 중 수지납식(修智納息) 제4, 『발지론』 9권, 『바사론』 제108권의 “안근내지(眼根乃至) 무색계수소단무명수면(無色界修所斷無明隨眠) 어십지중(於十智中) 기지지야(幾智知耶)”의 문구가 있다.
672)여기서 모든 행이란 고제(苦諦)를 말하고, 모든 행의 인(因)이란 집제(集諦)를 말하며, 모든 행의 멸(滅)이란 멸제(滅諦)를 말하고, 모든 행의 대치도(對治道)란 도제(道諦)를 말한다.
673)여기서는 법지(法智)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3삼마지(三摩地)와의 상응 관계를 밝힌다.
674)두 가지의 행상(行相)이란, 공(空)과 비아(非我)의 두 가지 행상을 말하고, 열 가지의 행이란 고(苦)ㆍ비상(非常)ㆍ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ㆍ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의 열 가지 행상을 말하며, 네 가지의 행상이란 멸(滅)ㆍ정(靜)ㆍ묘(妙)ㆍ리(離)의 네 가지의 행상을 말한다.
675)먼저의 지온(智蘊) 타심납식(他心納息)에서 이미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과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의 자성을 설명했으므로 본 절에서는 그 두 가지의 해탈을 얻음에는 학의 근[學根]인가, 무학의 근[無學根]인가를 분별한다. 이것을 『발지론』의 송문(頌文)에서 보면 ‘학무학근득(學無學根得)’에 해당하는 문단이다. 그리고 최후에 온갖 결이 다함에 대한 논구가 있다.
676)『중아함』 제49권 「대공경(大空經)」을 참조할 것.
677)앞의 지온(智蘊)이란, 지온 제3 중 타심지납식(他心智納息) 제3, 『발지론』 제8권과 『바사론』 제101권을 가리킨다.
678)시심해탈(時心解脫)이란, 6아라한 중 앞의 다섯 번째를 말한다. 이는 이미 얻은 공덕에서 물러나거나 상실하지 않도록 항시 애호하며, 그리고 마음이 번뇌의 계박(繫縛)에서 해탈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게 된다. 또 때[時]를 기다려 해탈하고, 또는 입정(入定)하기 때문에 시해탈(時解脫)이라고도 한다.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이란, 6아라한 중의 최후의 부동아라한(不動阿羅漢)을 말한다. 이는 근성이 예리하여 번뇌에 물러나거나 동요하지 않고, 마음 또한 번뇌에서 해탈한 까닭에 이런 이름을 얻게 된다. 또 때를 기다리지도 않고 해탈하며 입정하기 때문에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고도 한다. 『바사론』 제101권ㆍ제102권을 참조할 것.
679)해탈(解脫)의 자성(自性)에 승해(勝解)와 택멸(擇滅)이 있는 가운데서 지금 여기서는 승해를 취한다. 승해에는 사승해(邪勝解)와 정승해(正勝解)가 있는데 정승해를 취하고, 정승해 중에서도 유루(有漏)와 무루(無漏)가 있는데 무루를 취한다. 무루의 승해에는 학(學)의 몸 안에 있는 것과 무학(無學)의 몸 안에 있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무학의 몸 안에 있는 것을 취한다.
680)7성(聖)이란, 4향(向)ㆍ3과(果)의 성자(聖者)를 말한다.
681)다섯 가지 아라한이란, ① 퇴법(退法), ② 사법(思法), ③ 호법(護法), ④ 안주법(安住法), ⑤ 감달법(堪達法)의 다섯 가지 종성(種姓)의 아라한을 말한다.
682)현존(現存)의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에서는 이런 문구가 보이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문구는 있다. “심해탈(心解脫)이란, 무탐선근(無貪善根)과 상응한 마음의 이승해(已勝解)ㆍ당승해(當勝解)ㆍ금승해(今勝解)이니, 이것을 심해탈이라 한다. 혜해탈(慧解脫)이란, 무치선근(無癡善根)과 상응한 마음의 이승해ㆍ당승해ㆍ금승해이니, 이것을 혜해탈이라고 한다.” 『집이문족론』 제3권에 나온다.
683)여기서 향도(向道)란. 아라한향(阿羅漢向)의 도(道)를 말하며, 과도(果道)라고 함은 아라한과(阿羅漢果)의 도를 가리킨다.
684)온갖 결이 다한다는 것은, 온갖 번뇌가 소멸하여 다한 것이니, 곧 택멸무위의 법[擇滅無爲法]을 말하며,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及時心解脫)이라 함은 온갖 결이 다함을 증득[證]한 사람이니, 곧 유위의 법[有爲法]을 말한다.
685)본 절은 4사문과(沙門果)의 각각을 증득[證]할 때에 무간도(無間道)의 ① 인지상응(忍智相應), ② 지(地), ③ 수상응(受相應), ④ 행상(行相), ⑤ 소연(所緣)의 5문(門)을 분별하는 문단이다. 『발지론』의 송문(頌文)에서 보면 무간(無間)에 해당한다.
686)일래과(一來果)를 증할 때의 무간도(無間道)의 5문(門) 분별이다. ① 배리욕염자(倍離欲染者)의 경우에는 도류지인(道類智忍)과 상응한 것을 무간도로 삼는다. ② 예류과(預流果)에서 세속도(世俗道)에 의거한 경우는 세속지(世俗智)와 상응한 것을 무간도로 삼는다. ③ 예류과에서 무루도(無漏道)에 의거한 경우는 4법지(法智)와 상응한 것을 무간도로 삼는다.
687)추(麤) 등의 3행상(行相)의 어느 하나가 구른다고 하는 것은, 세속지(世俗智)와 상응한 것이 무간도(無間道)라 할 적에는 반드시 아래를 반연하여 추(麤)ㆍ고(苦)ㆍ장(障)의 세 가지 행상의 어느 한 행상을 지어서 구르기 때문이다.
688)수도(修道)에 포섭된 멸(滅)ㆍ도(道)의 법지(法智)는 겸하여 상계(上界)의 수도에서 끊을 것도 대치(對治)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지와 상응한 것으로도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의 무간도(無間道)로 삼을 수가 있다.
689)무간도(無間道)는 자지(自地) 혹은 하지(下地)를 반연하게 되는데‘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의 무간도는 유정(有頂)의 혹(惑)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고(苦)ㆍ집(集)의 유지(類智)가 유정의 고ㆍ집을 반연한다고 말한다.
690)본 절은 4사문과(沙門果)의 각각을 증득[證]할 때에 영원히 끊어지는 근과 영원히 끊어지고 소멸하며 생기는 근과 소멸하여 생기는 근과 소멸하여 생기지 않는 근과 생겨서 소멸하지 않는 근이 얼마가 있는가를 밝히는 문단이다. 여기는 『발지론』 송문(頌文)의 ‘증사근기근단멸기(證四根幾根斷滅起)’에 해당한다.
691)제3 정려에 의하여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하는 이는 낙근(樂根)이 소멸하였다가 생기고, 초(初)ㆍ제2 정려에 의거한 이는 희근(喜根)이 소멸하였다가 생기며, 미지(未至)ㆍ중간(中間)ㆍ제4 정려에 의거한 이면 사근(捨根)이 소멸하였다가 생긴다.
692)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고근(苦根)ㆍ우근(憂根)의 네 가지 근은 욕계계에만 있고, 상계(上界)에는 없기 때문에 욕염(欲染)을 여읜 불환자(不還者)는 이것이 영원히 끊어진다.
693)무상(無相)이란 멸제(滅諦)를 반연하는 네 종류의 행상(行相)과 상응한 삼마지를 말하고, 도무원(道無願)이란 도제(道諦)를 반연하는 네 종류의 행상과 상응한 삼마지를 말하며, 공(空)이란 고제(苦諦)를 반연하는 네 종류의 행상 중의 공(空)ㆍ비아(非我) 등 두 종류의 행상과 상응한 삼마지를 말한다. 고ㆍ집무원이란 고제를 반연하는 네 종류의 행상 중의 고(苦)ㆍ비상(非常)의 두 종류의 행상과 집제를 반연하는 네 종류의 행상과 상응한 삼마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