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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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65권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7. 정온(定蘊)

2) 연납식 ④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無漏)의 초정려(初靜慮)에 들어가면......(이하는 생략).449)

처음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성결정(正性決定)에 들어가는 처음이요, 둘째는 과(果)를 얻는 처음이며, 셋째는 염(染)을 여의는 처음이요, 넷째는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의 처음에 의거하여 논하니, 과를 얻는 처음과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다.
과를 얻는 처음이라고 함은 아라한의 과를 얻는 처음의 진지(盡智)일 때를 말하며,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라고 함은 시해탈(時解脫) 아라한이 근성을 연마하여 부동(不動)으로 되는 최후의 해탈도일 때를 말한다.
【문】 무엇 때문에 네 가지 처음 가운데서 다만 두 가지 처음에만 의거하여 논하는가?

【답】 만일 그때에 온갖 지(地)의 공덕을 닦는 이면 여기서는 그것에 의거하여 논한다. 오직 두 가지 처음의 자리[初位]에서만 그와 같이 닦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논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유심유사(有尋有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혹은 유심유사이기도 하고 혹은 무심유사(無尋唯伺)이기도 하며 혹은 무심무사(無尋無伺)이기도 하다.

유심유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미지정과 초정려를 말하고, 무심유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정려중간(靜慮中間)을 말하며, 무심무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無色)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희근(喜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樂根)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捨根)과 상응하기도 한다.

낙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제3 정려의 것을 말하고, 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초정려와 제2 정려의 것을 말한다. 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미지정과 정려중간과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것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낙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사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공무변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識無邊處)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포섭되기도 한다.

공무변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공무변처의 것을 말하고, 식무변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식무변처의 것을 말하며, 무소유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무소유처의 것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식무변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무소유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문】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서 정려에 대해서는 상응함을 묻고 무색에 대해서는 포섭됨을 묻는가?
【답】 그것은 논을 짓는 이의 의욕(意欲)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뜻에 따라서 논하므로 다만 법상(法相)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곧 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는 “정려와 무색에서는 나란히 다 같이 물어야 하는데도 묻지 않은 것은 여기에는 그 밖의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로 말미암아 뜻을 곧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문ㆍ두 가지 길ㆍ두 가지 계단ㆍ두 가지 횃불ㆍ두 가지 밝음ㆍ두 가지 빛ㆍ두 가지 무늬와 그림자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마치 정려에 대하여 상응함을 말하는 것처럼 무색에서도 그러하며, 마치 무색에 대하여 포섭됨을 말하는 것처럼 정려에서도 그러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는 거칠게 드러나서 보기도 쉽고 알기도 쉽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은 미세하여서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갖가지의 모양이 있어서 서로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갖가지의 수(受)450)과 갖가지의 근이 있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많은 공덕이 있고451) 많은 뛰어난 이익이 있기452)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변연지(遍緣智)가 있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다만 자기[自]와 위(位)를 반연하는 지(智)가 있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여기서 정려에서는 또한 무색을 포섭하는데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가?
【답】 그것은 논을 짓는 이의 의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하는 생략함)
어떤 이는 “정려와 무색에서는 나란히 다 같이 포섭해야 하는데도 포섭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는 그 밖의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로 인하여 뜻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문ㆍ두 가지 길ㆍ두 가지 그림자ㆍ두 가지 빛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하는 생략함)”라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이 정려에 의지하고 속한 것은 먼저 정려를 얻고 그 뒤에 무색을 얻기 때문이니, 정려에서는 역시 무색을 포섭하면서도 정려는 무색에 의지하거나 속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서는 역시 무색을 포섭하지 않지만 무심무사(無尋無伺) 등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무심무사라 함은 오직 뒤의 세 가지 정려만을 말하며,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함은 오직 미지(未至)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만을 말한다. 정려와 무색은 그의 모양이 각각 달라서 비록 서로서로 닦는다 하더라도 서로가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에서도 역시 정려를 포섭하여 ‘혹은 미지정에 포섭되기도 하고 나아가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고 해야 하는 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은 무색은 정려에 들어가는 가행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니, 정려가 앞에 나타나는 데는 반드시 무색만으로 인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의 지(地)에 태어나면 무색을 일으킬 수 있지만 무색의 지에 태어나면 정려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성자(聖者)는 정려에 태어난 뒤에 무색에 태어날 수 있어도 무색에 태어난 뒤에는 정려에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정려에서는 무색을 포섭할 수 있지만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論】 미상응(味相應)의 초정려는......(이하는 생략함)453)

【문】 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비유자(譬喩者)의 설을 중지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연 성품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연(緣)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연의 자성(自性)을 나타내 보이면서 모든 연은 모두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것을 논한다.

【論】 미상응의 초정려는 미상응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454)

【답】 자기 지(地)의 미상응에 인연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이 된다.

인연[因]이라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相應因)과 구유인(俱有因)과 동류인(同類因)이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미상응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는 미상응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증상연이라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는 것과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인연은 종자의 법과 같고, 등무간연은 열어 주며 피하는 법과 같으며, 소연연은 지팡이에 맡기는 법과 같고, 증상연은 욕을 주는 법과 같다.

【論】 자기 지의 정(淨)의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정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마치 애(愛)ㆍ견(見)ㆍ만(慢)ㆍ의(疑)의 상정려자(上靜慮者) 같은 이의 번뇌의 등무간에 정정(淨定)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정(淨)에는 네 가지가 있다. 순퇴분(順退分)ㆍ순주분(順住分)ㆍ순승진분(順勝進分)ㆍ순결택분(順決擇分)이다.
여기에서 어떤 이는 “미상응의 등무간에 오직 순퇴분만이 앞에 나타나 있다”고 하며, 어떤 이는 “역시 순주분도 일으킨다”고 한다.
소연연이라고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가 정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고, 증상연이라고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고 오직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인연이 아닌 것은 염오(染汚)의 법이 선의 법[善法]에 종자의 법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미상응은 자기 지의 정에 만일 총체적으로 설명하면 세 가지 연이 되면서도 만일 따로따로 설명하면 혹은 세 가지 혹은 두 가지이기도 하다. 앞의 두 가지 분(分)에서는 세 가지 연이 되고, 뒤의 두 가지의 분에서는 두 가지 연이 된다.455)

【論】 자기 지의 무루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소연연이라 함은 고(苦)ㆍ집(集)의 유인품(類忍品)ㆍ유지품(類智品)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증상연이라 함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유루의 법은 무루의 법에 종자의 법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번뇌의 등무간에 성도[聖者]가 일어나 앞에 나타나 있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미상응은 자기 지의 무루에 만일 총체적으로 설명하면 두 가지 연이 되며, 만일 따로따로 설명하면 혹은 두 가지 연 혹은 한 가지 연이 된다. 고ㆍ집의 유인품ㆍ유지품에 두 가지 연이 되면서도 멸(滅)ㆍ도(道)의 유인품ㆍ유지품과 온갖 법인품(法忍品)ㆍ법지품(法智品)에 한 가지 연이 된다.

【論】 정과 무루의 위의 세 가지의 정려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소연연이라 함은 그것은 하지(下地)의 미상응을 반연하기 때문이며,456) 증상연이라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고 오직 방해하지만 않기 때문이다.

인연이 아닌 것은 염은 염이 아닌 것에 대하여 종자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요,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이미 아래의 연을 여의고서야 비로소 위의 근본지(根本地)의 정과 무루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고 함은 미상응의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온갖 무색을 말하며,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다른 계(界)ㆍ지(地)의 법은 인과가 끊어지기 때문이고 다른 종류의 법은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이미 아래의 염을 여의어야 위의 지의 염이 비로소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그리고 서로가 어기기 때문이다.
소연연이 아닌 것은 상지의 번뇌와 근본의 무색은 하지의 유루의 법을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論】 정의 초정려는 정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정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인연이라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과 구유인과 동류인을 말하고, 등무간연이라 함은 정의 초정려의 등무간(等無間)에 정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정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고,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이것은 곧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정(淨)에는 네 가지 분(分)이 있다. 순퇴분(順退分)의 정은 순퇴분의 정에 네 가지 연이 되며, 순주분(順住分)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나머지 두 가지 분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등무간연을 제외한다.
순주분은 순주분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순승진분(順勝進分)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순결택분(順決擇分)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등무간연이 제외된다. 순퇴분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인연이 제외된다. 뛰어난 것은 하열한 것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승진분은 순승진분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순결택분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순퇴분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만 소연연과 증상연이 될 뿐이니, 순승진분의 무간(無間)에 순퇴분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역시 앞에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순퇴분에는 인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그것은 하열하기 때문이다. 순주분에도 그러하다.”
순결택분은 순결택분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순퇴분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순주분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만 소연연과 증상연이 될 뿐이니 순결택분의 무간에 순주분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역시 앞에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인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며, 순승진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論】 자기 지의 무루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정(淨)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무루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만 순결택분으로부터일 뿐이다.
어떤 이는 “역시 순증진분으로부터이다”라고 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무루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증상연이라 함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유루의 법은 무루의 법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論】 자기 지(地)의 미상응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애(愛)ㆍ견(見)ㆍ만(慢)ㆍ의(疑)의 상정려자(上靜慮者) 같은 이가 정정(淨定)의 등무간에 번뇌가 앞에 나타나 있는 때이다. 이것은 순퇴분이나 혹은 순주분으로부터 일어나는 줄 알아야 하는데 자기 지(地)의 염(染)을 이미 여읜 이와 아직 여의지 못한 이는 자기 지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457)

소연연이라 함은 자기 지의 정의 정려에 붙어서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정과 무루의 제2ㆍ제3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고 함은 제2에서는 순차(順次)로 들어가기 때문이요, 제3에서는 순초(順超)로 들어가기 때문이니,458) 순승진분으로부터 위의 정(淨)에 들어가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의 설명에서와 같다.

【論】 정과 무루의 제4 정려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 없는 것은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 함은 미상응의 세 가지 정려459)와 온갖 무색을 말한다.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여기에서 차별된 것은 정과 무루와 무색에 대하여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문】 또한 등무간연의 것도 있다. 초정려의 선(善)의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고 상지(上地)에 태어나는 때이니,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그것에 대하여는 등무간연과 증상연이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 곧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定蘊)에서는 오직 정(定)의 선과 정의 번뇌만을 말하는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받는 것은 다만 생(生)의 선(善)이요 생의 번뇌일 뿐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오직 근본의 선과 번뇌만을 말한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맺는 것은 오직 근분(近分)에만 머무를 뿐이요 근본에는 머무르지 않는 것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論】 무루의 초정려는 무루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무루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인연이라고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ㆍ구유인ㆍ동류인을 말하고, 소연연이라 함은 도인품(道忍品)ㆍ도지품(道智品)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이것은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법지품은 법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유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460)
유지품은 유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법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
고ㆍ집ㆍ멸지품은 고ㆍ집ㆍ멸지품에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고 도지품에 대해서는 네 가지 연이 된다.461)

도지품은 도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고ㆍ집ㆍ멸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
미지당지근품(未知當知根品)은 미지당지근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이지근품(已知根品)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구지근품(具知根品)에 대해서는 등무간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462)
이지근품은 이지근품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구지근품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미지당지근품에 대해서는 인연과 등무간연을 제외한 두 가지 연이 된다. 인연이 제외되는 것은 뒤에 생긴 것은 앞에 생긴 것에 대하여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제외된 것은 수도(修道)의 등무간에는 견도(見道)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지근품은 구지근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미지당지근품과 이지근품에 대해서는 인연과 등무간연을 제외한 두 가지 연이 된다.
무학의 법지품은 학(學)의 유지품에 한 가지 증상연이 되며, 무학의 유지품은 학의 법지품에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463)
이 때문에 총체적으로 “자기 지의 무루에 대하여 네 가지 연이 된다”고 하면서도 만일 차별적으로 “이와 같이 혹은 네 가지ㆍ세 가지ㆍ두 가지ㆍ한 가지이기도 하다”고 한다.464)

【論】 무루의 제2ㆍ제3 정려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무루의 법은 세계[界]에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지에서 인연이 되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자기 지의 정과 정의 제2ㆍ제3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여기에서 자기 지의 정에 대하여 어떤 이는 “순퇴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분[分]에 등무간연이 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오직 뒤의 두 가지 분(分)에 등무간연이 되며 상지(上地)의 정(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점차로 들어갈 때는 순승진분에도 등무간연이 되지만 초월하여 들어갈 때에는 순결택분에만 등무간연이 된다.”
【문】 무엇 때문에 초월하여 들어갈 때는 순결택분만이 무루의 도와 서로가 등무간연이 되면서 그 밖의 다른 때는 그렇지 않는가?
【답】 초월할 때에는 오직 사납고 맹렬하게 성(盛)하면서 견고한 선근만이 끌어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순결택분은 사납고 맹렬하게 성하면서 견고하지만 그 밖의 다른 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論】 정의 제4 정려와 정의 무색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초정려의 유지품은 무색의 대치이기 때문에 정의 무색에도 소연(所緣)이 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무루의 제4 정려와 무루의 무색에 인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무색의 도류지품(道類智品)은 초정려의 유지품도 반연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는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 함은 온갖 미상응의 것을 말한다.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무루는 미(味)와는 지극히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등무간연이 없고, 탐(貪)은 무루의 법을 반연할 수 없기 때문에 소연연이 아니며, 무루는 염(染)에 대하여 종자의 법도 아니기 때문에 인연도 아니다.
【문】 만일 무루가 미(味)와 극히 서로 어긋난다면 어떻게 증상연이 되는가?
【답】 무간(無間)에 일어나는 것이 비록 극히 서로 어긋난다 하더라도 정작 생길 때에 오가는 것은 장애가 없기 때문에 차츰차츰 서로가 증상연이 된다.

【論】 미상응의 제2 정려는 미상응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미상응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정(淨)의 제2 정려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제3ㆍ제4 정려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되고, 그 밖의 나머지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나머지라고 함은 미상응의 처음ㆍ제3ㆍ제4 정려와 온갖 무색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의 초정려에 등무간연이 된다 함은 유가사(瑜伽師)는 제2 정려의 정정(淨定)의 무간(無間)에 모든 번뇌를 일으켜 그 마음이 뜨겁고 괴로운 것이 마치 불에 타는 것과 같았으므로 드디어 곧 정의 초정려에 돌아가 투항하는 것을 말한다.
그 때문에 계경에서 “차라리 싫어하는 작의(作意)와 함께 하면서 초정려를 일으킬지언정 하열한 작의와 함께 하는 제2 정려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셨다.
【문】 그는 어떠한 정의 초정려를 일으키는가?
【답】 어떤 이는 “순주분(順住分)을 일으키는 것이니 일으키기가 쉽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순승진분(順勝進分)을 일으키는 것이니 상지(上地)를 막아 지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여기서 말한 것은 미상응의 초정려에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문】 제2 정려의 염의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고 초정려에 태어나면 등무간연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그것에 등무간연과 증상연이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은 여기에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定蘊)에서는 정(定)의 번뇌만을 말하는 것이요, 목숨을 마친다거나 생을 맺는다거나 하는 것은 생의 번뇌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근본지의 번뇌만을 말한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맺는다는 것은 근분지(近分地)의 번뇌에만 머무르는 것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그에 알맞은 것에 따라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정의 제2 정려는 정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정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처음과 제3ㆍ제4 정려와 아울러 자기 지의 미상응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여기서도 앞에서와 같이 그에 알맞게 자세히 설명해야 된다.
【論】 무루의 제2 정려는 무루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온갖 무루의 정려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온갖 정의 정려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정의 무색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무루의 무색에는 인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여기서도 그에 알맞은 것에 따른 자세한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제3 정려로부터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는 다섯 가지에는 세 번의 문답이 있고, 한 가지에는 두 번의 문답이 있는 것이니,465) 자세한 설명은 본론에서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
【문】 세속의 도로써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염을 여의는 때처럼 온갖 무간도는 모두 하지(下地)를 반연하는데 무엇 때문에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에서의 미상응과 정(淨)은 상지(上地)의 정에 소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가?466)

【답】 이것도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근본지만을 말하고 있는데 9무간도467)는 근분지일 뿐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 어떠한 무루의 제3과 제4의 정려가 정과 무루의 무색에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는가?
【답】 오직 유지품일 뿐이다.
【문】 무엇 때문에 법지품은 그렇지 않는가?
【답】 어떤 이는 “법지품은 아래에 의지하여 아래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법지품은 욕계에만 의하여 욕계의 모든 행(行)과 그것의 인(因)과 그것의 멸(滅)과 그것의 대치도(對治道)만을 반연할 뿐이지만 정(淨)과 무루(無漏)의 무색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법지품은 그것의 등무간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법지품은 욕계와 그것의 멸(滅)ㆍ도(道)만을 반연하지만 욕계와 그것의 멸ㆍ도를 반연하는 무간에는 곧 무색지의 경계를 반연할 수 없는 것이니,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법지품은 무색의 등무간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지는 법지품의 소의(所依)도 소연(所緣)도 지(地)도 아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정려는 비록 법지품의 소의와 소연은 아니라 하더라도 법지품의 지이며, 욕계는 비록 법지품의 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법지품의 소의와 소연이다. 모든 무색지에는 이러한 것이 없기 때문에 법지품의 무간(無間)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정(淨)과 무루의 무색은 하지(下地)의 유지품의 도만을 반연하면서 법지품의 도는 반연하지 않는가?
【답】 법지품의 도는 그것의 대치(對治)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 어찌 법지품의 도도 그것을 대치하지 않겠는가?
【답】 비록 그것을 대치한다 하더라도 근본(根本)이 아니고 또한 전부가 아니므로 이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의 수도(修道)에서 끊어야 할 법의 대치라 하더라도 그것의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법의 대치는 아니다.
또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는 그것의 대치(對治)라 하더라도 고법지(苦法智)ㆍ집법지(集法智)는 그렇지가 않다.
어떤 이는 “유지품은 그것의 주(主)의 대치이고, 법지품은 그것의 객(客)의 대치이기 때문에 그의 소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정과 무루의 정려와 무색은 혹은 아래나 위의 무간에서 일어난다.468)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순차ㆍ순초(順超)라고 하고, 위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역차(逆次)ㆍ역초(逆超)라고 하며, 같은 종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순수하다고 하고, 다른 종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뒤섞였다고 한다.
지(地)의 사이가 없는 것을 차지(次地)라고 하고 사이가 있는 것을 초(超)라고 하는 것이니, 사이가 있는 것은 하나의 지만을 초월한다. 이것을 이곳의 약비바사(略毘婆沙)라고 한다.

【문】 말한 바의 초정(超定)의 가행은 어떤 것인가?
【답】 초정을 닦을 때에 그 정을 닦는 이는 먼저 욕계의 선의 마음을 일으키고서 이로부터 무간에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로 비상비비상처에까지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고 차례대로 이에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이르기까지 들어간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이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 들어가고서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로 들어오며 차례대로 이에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온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과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무루의 공무변처로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한다.
이와 같이 되면 초정(超定)의 가행(加行)이 이룩되어 원만하게 된다.
이로부터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로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와 같은 것을 초정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정을 닦을 때에 먼저 욕계의 선의 마음을 일으켜 이로부터 무간에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또는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이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갔다가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로 들어오고 차례대로 또는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공무변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하여 또는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공무변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하여 또는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도로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닦아 익힌다.
이것을 초정의 가행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이로부터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이로부터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와 같은 것을 초정(超定)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앞에서부터 말한 바는 모두가 가행이다. 이 자리로부터 이후에 자유자재하게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모든 정(定)에 건너뛰어 들어가되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제4 정려에는 건너뛰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제4 정려는 건너뛰어 들어갈 수 없는가?
【답】 긍가(殑伽)의 모래 수보다 더한 모든 부처님 세존과 성인 제자도 모든 정(定)에 건너뛰어 들어가는 법은 모두가 그와 같기 때문이니, 더 묻지 말 것이다.
어떤 이는 “모든 초정을 닦는 이는 본래 점차로 일으켜야 한다. 만일 그로부터 건너뛴다고 하면 법이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니, 세력이 더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다리를 오를 때와 같아서 역시 점차로 올라가야 하며 그 건너뛰어 오른 이가 있다 해도 둘을 건너뛸 수 없는 것이니, 세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뒤로 지름길을 일으키는 데는 법이 모두가 앞의 것과 같기 때문에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다. 관행을 닦는 이가 처음에 정(定)을 건너뛸 때에는 다섯으로부터 다섯에 들어가고 넷으로부터 넷에 들어간다.469) 갈래의 수가 같기 때문에 건너뛰어 들어가기가 쉬우며 뒤의 것도 그와 같기 때문에 둘을 건너뛰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소연연과 같기 때문에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다. 관행을 닦는 이는 작의를 염하지 않으면 소연연에 대하여 하나만을 건너뛸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문】 어떻게 관행을 닦는 이는 소연에 대하여 건너뛰는가?
【답】 그는 작의를 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초정려로써 9지(地)의 경계에 대하여 하나하나 따로따로 반연하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 지(地)만을 반연하면서 건너뛸 수 있을 뿐이다. 욕계를 반연하는 무간에 위로는 초정려나 혹은 제2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고, 초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욕계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2 정려나 혹은 제3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제2 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욕계나 혹은 초정려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3 정려나 혹은 제4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제3 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초정려나 혹은 제2 정려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4 정려나 혹은 공무변처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식무변처나 혹은 무소유처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초정(超定)에 의하는 곳처럼 그와 같이 다른 정에 의하는 데서도 그에 알맞은 바에 따라 소연연에 대하여 모두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마치 두 가지의 지를 건너뛸 수 없는 것처럼 초정에서도 그러한 것이니, 때문에 제4 정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문】 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정해탈의 다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일으켜 정해탈의 마음은 욕계를 반연하고470) 제4 정려의 변행수면(遍行隨眠)은 자기와 위의 유정(有頂)까지를 반연할 수 있다고 하는가? 어찌 두 가지의 지의 소연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답】 염오하지 않은 마음은 두 가지를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요, 그 마음은 염오이기 때문에 서로가 어긋나지 않는다.

【문】 고법지 같은 것은 욕계를 반연하는 무간에 고류인(苦類忍)을 일으키고 나아가 유정(有頂)을 반연하는데 어떻게 염오하지 않는 마음은 둘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인가?
【답】 거기서는 다만 통틀어 반연하는 것이므로 건너뛴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또한 다 같이 그 밖의 다른 지(地)도 반연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논란거리가 아니다.
【문】 어느 곳에서 정(定)을 건너뛸 수 있는가?
【답】 욕계에 있어서이며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건너뛰지 못하고, 인취(人趣)에 있어서요 그 밖의 다른 취에서는 건너뛰지 못하며, 두 가지 주(洲)에 있어서요 북주(北洲)에서는 건너뛰지 못하고, 남자와 여인은 다 같이 정(定)을 건너뛸 수 있다.
승가벌소(僧伽筏蘇) 존자는 “섬부주의 남자만이 정을 건너뛸 수 있을 뿐이요 그 밖의 다른 주(洲)와 여인은 소의(所依)가 하열하기 때문에 건너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그 밖의 다른 주(洲)와 여인도 정(定)을 건너뛸 수 있다. 그것은 삼마지에 대하여 역시 마음의 자재(自在)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보특가라가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471)
【답】 성자(聖者)는 건너뛸 수 있으나 이생은 건너뛰지 못하고, 무학(無學)은 건너뛸 수 있지만 학(學)은 건너뛰지 못하며, 무학 중에서도 불시해탈(不時解脫)은 건너뛸 수 있으나 시해탈(時解脫)은 건너뛰지 못하고, 불시해탈 중에서도 반드시 원지(願智)와 변제정(邊際定) 등의 뛰어난 공덕을 얻은 연후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다.
【문】 무엇 때문에 무학의 불시해탈만이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
【답】 반드시 상속 중에서 모든 번뇌가 없고 정(定)에 대하여 자재한 이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다. 학(學)의 상속 중에서는 오히려 번뇌가 있으며, 시해탈은 정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 같이 정을 건너뛰지 못한다.

【문】 어떠한 선근의 무간에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472)
【답】 무량ㆍ해탈ㆍ승처ㆍ변처와 모든 신통 등의 선근의 무간에는 모두 정을 건너뛰지 못하며 오직 무상(無常) 등의 행상(行相)의 선근의 무간에서만 건너뛸 수 있다. 왜냐하면 반드시 사납고 예리하면서 뛰어난 선근이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기 때문이다.
026_1225_a_01L阿毘達磨大毘婆沙論卷第一百六十五 性五百大阿羅漢等造三藏法師玄奘奉 詔譯定蘊第七中緣納息第二之四若最初入無漏初靜慮乃至廣說有四種一入正性決定初二得果初三離染初四轉根初此中依二初作謂得果及轉根得果初者謂得阿羅漢果初盡智時轉根初者謂時解脫阿羅漢練根作不動最後解脫道何故於四初中但依二初作論若爾時修一切地功德者此中依之作論唯二初位能如是修故依作若最初入無漏初靜慮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有尋有伺耶彼或有尋有伺無尋唯伺或無尋無伺有尋有伺者謂所修未至定及初靜慮無尋唯伺謂所修靜慮中閒無尋無伺者所修上三靜慮下三無色若最初入無漏第二靜慮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喜根相應耶答彼或樂根相應或喜根相應或捨根相應樂根相應者謂所修第三靜慮喜根相應者謂所修初及第二靜慮捨根相應者謂所修未至定靜慮中閒第四靜慮下三無色若最初入無漏第三靜慮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樂根相應耶彼或樂根相應或喜根相應或捨根相應義如前釋若最初入無漏第四靜慮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捨根相應耶彼或樂根相應或喜根相或捨根相應義如前釋若最初入無漏空無邊處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空無邊處攝耶彼或空無邊處攝或識無邊處攝或無所有處攝空無邊處攝謂所修空無邊處識無邊處攝者謂所修識無邊處無所有處攝者所修無所有處若最初入無漏識無邊處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識無邊處攝耶彼或空無邊處攝或識無邊處攝無所有處攝義如前釋若最初入無漏無所有處爾時所得諸餘未來無漏心心所法彼一切當言無所有處攝耶彼或空無邊處攝或識無邊處攝或無所有處攝義如前釋故此中於靜慮問相應於無色問攝彼作論者意欲爾故隨彼意而作但不違法相便不應責有說於靜慮無色竝應俱問而不問者當知此義有餘有說爲現種種文種種說由種種文種種說故義則易解有說現二門二略二階二炬二明二光種文影如於靜慮說相應於無色爾如於無色說攝於靜慮亦爾有說靜慮麤顯易見易知故問相應無色微細難了難覺故但問攝有說靜慮有種種相互不相似故問相應無色不爾故但問攝有說靜慮有種種受種種根故問相應無色不爾有說慮有多功德多勝利故問相應無色不爾有說靜慮有遍緣智故問相應無色但有緣自上智故但問攝故此中於靜慮亦攝無色於無色攝靜慮耶彼作論者意欲爾故至廣說有說於靜慮無色竝應俱攝而不說攝者當知此義有餘有說現種種文種種說由種種文種種說義則易解有說爲現二門二略影二光乃至廣說有說無色依屬靜以先得靜慮後得無色故於靜慮亦攝無色靜慮不依屬無色故於無色不攝靜慮有說於靜慮亦不攝無以無尋無伺等言有別意故謂無尋無伺者唯說後三靜慮捨根相應者唯說未至靜慮中閒及第四靜慮以靜慮無色其相各異雖互相修不相攝有說於無色亦應攝靜慮作是說或未至定攝乃至或無所有處攝而不說者欲顯無色非入靜慮加行以靜慮現前不必因無色故生靜慮地能起無色生無色地能起靜慮有說聖者生靜慮後容生無色生無色後無容生靜慮是故於靜慮攝無色於無色不攝靜慮味相應初靜慮乃至廣說何故作此論欲止譬喩者意以彼於緣性不明了故說緣非實有今欲顯示諸緣自性令知諸緣皆是實有故斯論味相應初靜慮與味相應初靜慮等爲幾緣與自地味相應爲因等無閒所緣增上因者三因卽相應俱有同類因等無閒者謂味相應初靜慮等無閒味相應初靜慮現在前所緣者謂味相應初靜慮與味相應初靜慮爲所緣增上者謂不㝵生及唯無障此中因緣如種子法等無閒緣如開避法所緣緣如任杖法增上緣如與欲法與自地淨爲等無閒增上等無閒者謂味相應初靜慮等無閒淨初靜慮現在前如愛見慢疑上靜慮者煩惱等無閒淨定現在此則摠說若別說者淨有四種順退分順住分順勝進分順決擇分此中有說味相應等無閒唯順退分現在前有說亦起順住分所緣者味相應初靜慮與淨初靜慮爲所緣增上者謂不㝵生及唯無障非因者以染污法與善法非如種子法故此義故味相應與自地淨若摠說三緣若別說或三或二謂與前二分爲三緣與後二分爲二緣與自地無爲所緣增上所緣者謂與苦集類忍類智品爲所緣增上者如前說因者有漏法與無漏法非如種子法非等無閒者煩惱等無閒不起聖道現在前故由此義故味相應與自地無漏若摠說爲二緣若別說或二或一謂與苦集類忍智品爲二緣滅道類忍類智品及一切法忍法智爲一緣與淨無漏上三靜慮爲所增上所緣者彼緣下地味相應故增上者謂不㝵生及唯無障故非因緣者染於不染非種子法故非等無閒緣者已離下染方能起上根本地淨無漏故與餘爲一增上餘謂味相應上三靜慮及一切無色增上義如前說非因緣者異界地法因果斷故及異類法非種子故非等無閒緣者已離下染上地染方現前故及相違非所緣者上地煩惱及根本無色不緣下地有漏法故淨初靜慮與淨初靜慮等爲幾緣與自地淨爲因等無閒所緣增上因者三因卽相應俱有同類因等無閒者謂淨初靜慮等無閒淨初靜慮現在前所緣者謂與淨初靜慮爲所緣增上義如前說此卽摠說若別說者淨有四分順退分與順退分爲四緣與順住分亦爾與餘二分爲三緣除等無閒順住分與順住分爲四緣與順勝進分亦爾與順決擇分爲三緣除等無閒與順退分爲三緣除因緣勝非劣因故勝進分與順勝進分爲四緣與順決擇分亦爾與順退分有說但爲所緣增上順勝進分無閒順退分不現前如是說者亦現在前是故與順退爲三緣除因緣以彼劣故與順住分亦爾順決擇分與順決擇分爲四與順退分爲所緣增上與順住分有說但爲所緣增上以順決擇分無順住分不現在前故如是說者現在前是故與彼爲三緣除因緣順勝進分亦爾與自地無漏爲等無所緣增上等無閒者謂淨初靜慮等無閒無漏初靜慮現在前此但從順決擇分有說亦從順勝進分所緣謂與無漏初靜慮爲所緣增上者如前說非因緣者有漏法非無漏因與自地味相應爲等無閒所緣等無閒者如愛上靜慮者淨定等無閒煩惱現在前當知此從順退分或順住分起由已離未離自地染者起自地煩惱有差別故所緣味著自地淨靜慮故餘如前說無漏第二第三靜慮爲等無閒增上等無閒者於第二順次入故於第三順起入故當知從順勝進分入上淨非餘餘如前說與淨無漏第四靜慮爲所緣增上無等無閒者極遠故餘如前說與餘爲一增上謂味相應三靜慮及一切無色增上如前說是中差別者謂與淨無漏無色非等無閒者以極遠故餘如前亦有等無閒緣謂初靜慮善心命終生上地時此中何故不說與彼爲等無閒增上而不說者知義則有餘有說此定蘊中唯說定善及定煩惱命終結生但是生善生煩惱是故不說有說此定蘊中說根本善及煩惱命終結生唯住近不住根本是以不說無漏初靜慮與無漏初靜慮等爲幾緣與自地無漏爲因等無閒所緣增上因者三卽相應俱有同類因所緣者謂與道忍道智品爲所緣餘說如前此卽摠說若別說者法智品與法智品四緣與類智品爲三緣除所緣類智品與類智品爲四緣與法智品爲三除所緣苦集滅智品與苦集滅智爲三緣除所緣與道智品爲四緣道智品與道智品爲四緣與苦集滅智品爲三緣除所緣未知當知根品與未知當知根品爲四緣與已知根品亦爾與具知根品爲三緣除等無已知根品與已知根品爲四緣具知根品亦爾與未知當知根品二緣除因等無閒除因者後生於前生非因故除等無閒者修道等無閒見道不現在前故具知根品與具知根品爲四緣與未知當知根品及已知根品爲二緣除因等無閒無學法智品與學類智品爲一增上無學類智品與學法智品爲一增上是故以摠說故與自地無漏爲四緣若差別說則有如是或四與無漏第二第三靜慮爲因等無閒所緣以無漏法不墮界故異地爲因緣如前說與自地淨及淨第二第三靜爲等無閒所緣增上此中於自地有說除順退分與餘三分爲等無有說唯與後二分爲等無閒於上地淨亦爾如是說者漸次入時亦與勝進分爲等無閒超越入時唯與順決擇分爲等無閒何故超越入時唯順決擇分與無漏道互爲等無閒餘時不爾於超越時唯有猛盛堅固善根能相引發順決擇分猛盛堅固餘分不爾與淨第四靜慮及淨無色爲所緣增上以初靜慮類智品是無色對治故與淨無色亦爲所緣餘如前說與無漏第四靜慮及無漏無色爲因所緣增上以無色道類智亦緣初靜慮類智品故餘如前說與餘爲增上餘謂與一切味相應上義如前說由無漏與味極相違故無等無閒貪不能緣無漏法故非所無漏與染非種子法故非因無漏與味極相違者云何作增上於無閒起雖極相違而正生時去來無障故得展轉互爲增上味相應第二靜慮與味相應第二靜慮等爲幾緣與自地味相應爲因等無閒所緣增上與淨初二靜慮爲等無閒所緣增上與一切無漏靜慮及淨第三第四靜慮爲所緣增上爲一增上餘謂味相應初第三四靜慮及一切無色此中與淨初靜爲等無閒者謂瑜伽師第二靜慮淨定無閒起諸煩惱其心熱惱如爲火燒遂卽歸投淨初靜慮故契經說寧起厭作意俱初靜慮不起劣作意俱第二靜慮彼起何等淨初靜慮有說起順住分以易起故有說起順勝進分防護上地故又此所說與味相應初靜慮爲一增上第二靜慮染心命終生初靜慮則有等無閒何故不說應說與彼爲等無閒增上而不說者當知此義有餘有說此定蘊中唯說定煩惱命終結生生煩惱是故不說有說此定蘊中說根本地煩惱命終結生唯住近分地煩惱是故不說餘隨所應如前說淨第二靜慮與淨第二靜慮等爲幾與自地淨爲因等無閒所緣與一切無漏靜慮及淨初第三四靜慮幷自地味相應爲等無閒緣增上與餘爲一增上此亦如前隨應廣說無漏第二靜慮與無漏第二靜慮等爲幾緣與一切無漏靜慮爲因等無閒所緣增上與一切淨靜爲等無閒所緣增上與淨無色所緣增上與無漏無色爲因所緣與餘爲一增上此亦隨應廣如前從第三靜慮乃至非想非非想處有五三一二問答廣說如本論應知如以世俗道離第四靜慮及下三無色染時一切無閒道皆緣下地故不說第四靜慮下三無色味相應淨與上地淨爲所緣耶此亦應說而不說者當知有餘有說此定蘊中唯說根本地九無閒道但是近分地是故不說何等無漏第三第四靜慮與淨無漏無色爲等無閒耶類智品何故非法智品有說法智品依下緣下故謂法智品但依欲界但緣欲界諸行及彼因彼滅彼對治無漏無色不爾故法智品非彼等無閒緣有說法智品但緣欲界彼滅道緣欲界及彼滅道無閒不得卽緣無色地境以極遠故由此法智品非無色等無閒緣有說無色地非法智品所依所緣及地故謂四靜慮雖非法智品所依所緣而是法智品地欲界雖非法智品地而是法智品所依所緣諸無色地無如是事故法智品無閒所起何故淨無漏無色但緣下地類智品道非法智品道法智品道非彼地對治故不法智品道亦對治彼耶雖對治而非根本亦非全是故不說謂雖是彼修所斷法對治而非彼見所斷法對治又雖滅道法智是彼對治非苦集法智有說類智品是彼主對法智品是彼客對治故非彼所緣然淨無漏靜慮無色或下或上無閒而起從下起者名順次順超從上起名逆次逆超同類起者名純異類起者名雜地無閒者名次地有閒者名超有閒唯能越於一地是謂此處略毘婆沙所說超定加行云何修超定時彼修定者先起欲界善心從此無閒入有漏初靜慮次入有漏第二靜慮次第乃至入非想非非想處從彼還入有漏無所有處次第乃至復還入有漏初靜慮於此諸地循環修習善淳熟如王路已復入無漏初靜慮次入無漏第二靜慮次第乃至入無漏無所有處從彼還入無漏識無邊次第乃至復還入無漏初靜慮此諸地循環修習令善淳熟如王路復入有漏初靜慮從有漏初靜慮超入有漏第三靜慮從有漏第三靜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有漏無所有處從有漏無所有處還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有漏第三靜慮有漏第三靜慮超入有漏初靜慮此諸地循環修習令善淳熟如王路復入無漏初靜慮從無漏初靜慮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超入無漏空無邊處從無漏空無邊處超入無漏無所有處從無漏無所有處還超入無漏空無邊處從無漏空無邊處超入無漏第三靜慮無漏第三靜慮超入無漏初靜慮此諸地循環修習令善淳熟猶如王齊此超定加行成滿從此復入有漏初靜慮從有漏初靜慮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慮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無漏無所有處從無漏無所有處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慮超入有漏初靜慮如是名爲超定成滿有餘師說修超定時先起欲界善心從此無閒入有漏初靜慮入有漏第二靜慮次第乃至入非想非非想處從彼還入有漏無所有處次第乃至復還入有漏初靜慮於此諸地善串習已復入無漏初靜慮入無漏第二靜慮次第乃至入無漏無所有處從彼還入無漏識無邊處次第乃至復還入無漏初靜慮於此諸地善串習已復入有漏初靜慮入無漏第二靜慮次入有漏第三靜次入無漏第四靜慮次入有漏空無邊處次入無漏識無邊處次入有漏無所有處從彼還入無漏識無邊次第乃至復還入有漏初靜慮此諸地善串習已復入無漏初靜慮次入有漏第二靜慮次入無漏第三靜慮次入有漏第四靜慮次入無漏空無邊處次入有漏識無邊處次入無漏無所有處次入非想非非想處從彼還入無漏無所有處次第乃至復還入無漏初靜慮於此諸地善串習已復入有漏初靜慮從有漏初靜超入有漏第三靜慮從有漏第三靜慮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有漏無所有處從有漏無所有處還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有漏第三靜慮有漏第三靜慮超入有漏初靜慮此諸地善串習已復入無漏初靜慮從無漏初靜慮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慮超入無漏空無邊從無漏空無邊處超入無漏無所有處從無漏無所有處還入無漏空無邊處從無漏空無邊處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慮超入無漏初靜慮於此諸地善串修習是名超定加行成滿從此復入有漏初靜從有漏初靜慮超入無漏第三靜從無漏第三靜慮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無漏無所有處從無漏無所有處還超入有漏空無邊處從有漏空無邊處超入無漏第三靜慮從無漏第三靜慮入有漏初靜慮從此復入無漏初靜從無漏初靜慮超入有漏第三靜從有漏第三靜慮超入無漏空無邊處從無漏空無邊處超入有漏無所有處從有漏無所有處還超入無漏空無邊處從無漏空無邊處超入有漏第三靜慮從有漏第三靜慮入無漏初靜慮如是名爲超定成滿復有說者前來所說皆是加行從此位後自在循環超入諸定無所罣㝵乃名成滿然必不能超入第四故不能超入第四過殑伽沙數諸佛世尊及聖弟子超入諸定法皆如是故不應問有說諸超定者本應漸若從彼超法唯超一勢不過故登梯時亦應漸上其有越者莫能越二勢不及故有說後起徑路法皆如前故但超一謂觀行者初超定時五入五從四入四支數等故易可超後亦如是故不超二有說如所緣緣故唯超一謂觀行者不念作意所緣緣唯能超一云何觀行者於所緣超彼由不念作意以初靜慮於九地境一一別緣於中唯能超緣一地謂緣欲界無閒能上緣初靜慮或第二靜慮非餘緣初靜慮無閒能下緣欲界上緣第二靜慮或第三靜非餘緣第二靜慮無閒能下緣欲界或初靜慮上緣第三靜慮或第四靜慮非餘緣第三靜慮無閒能下緣初靜慮或第二靜慮上緣第四靜慮或空無邊處非餘如是乃至緣非想非非想處無閒能下緣識無邊處或無所有處非餘如依初定如是依餘隨其所應於所緣緣皆應廣說不能越二地所緣超定亦爾故不入第四若爾何故說淨解脫次起五淨解脫心緣於欲界第四靜慮遍行隨眠能緣自上乃至有頂豈非能越二地所緣說不染心不能超二彼心是染故不相違如苦法智緣欲界無閒起苦類忍乃至緣有頂云何說不染污心不能超二彼但是摠緣不名爲超亦俱緣餘地故是故非難何處能超定在欲界非色無色在人趣非餘趣在三洲非北洲男子女人俱能超定尊者僧伽筏蘇說曰唯贍部洲唯男子能超定餘洲及女人所依劣故不能如是說者餘洲及女人亦能超定彼於三摩地亦得心自在故何等補特伽羅能超定是聖者非異生是無學非學無學中是不時解脫非時解脫於不時解脫要得願智邊際定等殊勝功德後能超何故唯無學不時解脫超定耶要相續中無諸煩惱於定自在乃能超定學相續中猶有煩惱時解脫於定不得自在故竝不能超何等善根無閒能超定耶量解脫勝處遍處諸通等善根無閒皆不能超定唯無常等行相善根無能超所以者何要猛利增上善根能超定故說一切有部發智大毘婆沙論卷第一百六十五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449)본절은 『발지론』 송문의 ‘초입(初入)’에 상당한다. 곧 맨 처음에 무루의 초정려와 나아가 무소유처에 들어가는 이가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을 갖가지로 분별하는 문단이다. 이러한 분별하는 표준을 크게 요약하여 3단(段)으로 나누고 있다. 곧 초정려의 경우에는 얻게 되는 미래의 무루의 온갖 심ㆍ심소법에 대하여 유심유사 등을 분별하고, 다음의 제2ㆍ제3ㆍ제4 정려의 경우에는 낙(樂)ㆍ희(喜)ㆍ사(捨) 등의 근의 상응을 분별하며, 최후의 4무색의 경우에는 저마다 네 가지 무색이 포섭한 바를 분별한다.
  2. 450)정려에 갖가지의 수가 있다고 함은 낙수(樂受)ㆍ희수(喜受)ㆍ사수(捨受) 등의 갖가지 느낌[受]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3. 451)정려에 많은 공덕이 있다고 함은 4무량(無量)과 4해탈과 8승처(勝處)와 8변처(遍處)와 4무애해(無礙解)와 무쟁(無諍)과 원지(願智)와 변제정(邊際定) 등의 많은 공덕이 있어서 무색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4. 452)정려에 뛰어난 이익이 있다고 함은 네 가지의 정려에는 네 가지 뛰어난 이익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제80권을 참조할 것.
  5. 453)본절은 『발지론』 본문에서의 ‘연(緣)’에 대한 논의로서, 즉 미상응(味相應)과 정(淨)과 무루와의 정려와 나아가 무색정(無色定) 등이 저마다 자기 지(地)의 미상응 등에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 그리고 다른 지의 미상응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를 축차적(逐次的)으로 논구하는 문단이다.
  6. 454)이하에서는 미상응의 초정려가 자기 지(地)의 미상응과 정(淨)과 무루에 대하여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와 나아가 정과 무루와의 제2ㆍ제3ㆍ제4 정려를 위하여 몇 가지 연이 되는가를 물으며, 다시 그 밖의 위의 세 가지의 정려의 미상응과 네 가지 무색을 위하여 몇 가지의 연이 되는가를 차례차례로 밝힌다.
  7. 455)“앞의 두 가지 분에서는 세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는 네 가지의 정 가운데서 순퇴분(順退分)과 순주분(順住分)의 두 가지 분(分)의 정의 초정려에 대하여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 연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뒤의 두 가지 분에서는 두 가지의 연이 된다”고 함은 뒤의 순승진분(順勝進分)과 순결택분(順決擇分)에 대해서는 등무간연으로는 되지 않고 소연연과 증상연의 두 가지 연만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8. 456)정(淨)과 무루(無漏)의 위의 세 가지 정려에는 변연지(遍緣智)가 있기 때문이다.
  9. 457)자기 지의 염을 이미 여읜 이가 자기 지의 번뇌를 일으켜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는 상지(上地)의 정(淨)의 순퇴분에 의하여 아직 자기 지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인지라, 곧 자기 지의 순주분으로부터 번뇌를 일으키는 것도 있을 수 있어서다.
  10. 458)순차로 들어간다고 함은 하지(下地)로부터 점차로 상지(上地)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순초로 들어간다고 함은 하나의 지(地)를 건너뛰어 상지에 들어가는 것이니, 예를 들면 초정려로부터 제3 정려에 들어가고 제3 정려로부터 공무변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11. 459)미상응의 세 가지 정려라 함은 위의 세 가지 정려의 미상응을 말한다.
  12. 460)법지(法智)는 아래를 반연하고 유지(類智)는 위를 반연하는 것이므로 유지의 품(品)이 법지의 품을 반연한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13. 461)고지(苦智)가 고지ㆍ집지ㆍ멸지의 소연연(所緣緣)이 되지 않는 것은 고지와 집지의 소연(所緣)은 오직 유루(有漏)의 것일 뿐인데 고지는 무루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연하지 않으며, 멸지는 무위(無爲)의 것을 반연하는 것인데 고지는 유위의 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연하지 않는다. 집지와 멸지의 경우도 이것에 준하여 미루어 알아야 한다.
  14. 462)미지당지근 등의 세 가지 무루근(無漏根)에 관한 상연론(相緣論)의 상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제146권을 참조할 것.
  15. 463)무학의 법지품이 학의 유지품의 인연이 아닌 것은 위의 것은 아래인 도품(道品)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닌 것은 무학이 물러나서 학이 될 때에는 번뇌를 일으켜 물러나는 것이므로 그 번뇌의 무간(無間)에는 무루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며, 더구나 무학의 법지(法智)를 일으켜 학에서 물러날 턱도 없기 때문에 무학의 법지는 학의 유지(類智)의 등무간연이 아니다. 또한 소연연(所緣緣)이 아닌 것은 법지와 유지는 서로가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증상연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16. 464)무루의 초정려가 자기 지의 무루에 네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초정려 지(地)의 법지품이 법지품에 대하여, 더 나아가 구지근(具知根)이 구지근에 대하여 네 가지 연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고, 세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법지품이 유지품에 대하여 세 가지 연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며, 두 가지의 연이 된다고 함은 이지근이 미지당지근에 대하여 두 가지 연[所緣과 增上緣]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고, 한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무학의 법지품이 학의 법지품에 대하여 하나의 증상연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7. 465)다섯 가지에는 세 번의 문답이 있다고 함은 제3 정려와 제4 정려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의 이 다섯 가지에는 저마다 미상응과 정(淨)과 무루에 대한 세 가지 연론(緣論)의 문답이 있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에는 두 번의 문답이 있다고 함은 최후의 비상비비상처에는 오직 미상응과 정의 두 가지만의 연론의 문답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18. 466)앞에서 이미 논술한 본론 중에서 제4 정려의 미상응은 자지(自地)의 미상응과 정(淨)의 제3ㆍ제4 정려와 무루의 4정려(靜慮)와 정의 초정려와 제2 정려에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4무색(無色)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 제4 정려의 정에서는 자지의 정과 무루의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정의 제2ㆍ제3 정려와 자지의 미상응과 정과 무루와의 초정려에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4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 미상응의 공무변처(空無邊處)는 자지의 미(味)와 자지의 정의 제4 정려와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아래의 세 가지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 정(淨)의 공무변처는 자지의 정과 자지의 무루와 정과 무루와의 제3ㆍ제4 정려와 아울러 자지의 미상응과 정과 무루와의 초(初)ㆍ제2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의 위의 세 가지 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미상응의 식무변처(識無邊處)는 자지의 미상응과 정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과 무루의 4정려와 무루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한다. 정의 식무변처는 자지의 정과 자지의 무루와 정ㆍ무루와의 제4 정려와 공무변처와 자지의 미상응과 정ㆍ무루와의 아래의 세 가지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두 가지 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상응의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자지의 미(味)와 자지의 정(淨)과 정의 식무변처와 온갖 지(地)의 무루와 정의 4정려와 공무변처에만 소연연이 된다. 정의 무소유처는 자지의 정과 무루의 세 가지 무색과 정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과 자지의 미상응과 정ㆍ무루의 4정려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비상비비상처 지의 정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상에서와 같이 곧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미상응과 정은 다 같이 상지의 정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속의 도, 즉 유루(有漏)의 6행상관(行相觀)은 하지를 반연하여 추(麤)ㆍ고(苦)ㆍ장(障)으로 삼는 것이므로 상지의 정도 하지의 미상응 등을 반연해야 하기 때문에 따라서 제4 정려 등의 미상응 등은 상지의 소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여 이하의 질문을 하게 된다.
  19. 467)여기서의 9무간도는 유루의 세 가지 행상(行相)의 9무간도를 가리킨다.
  20. 468)앞의 절에서 정(定)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는 것을 설명할 때에 초정(超定)으로서 등무간연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었다. 예를 들면 정(淨)과 무루와의 제3 정려가 정과 무루와의 공무변처를 위하여 등무간연이 된다고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로 인하여 본절은 먼저 정(定)에서 정(定)을 일으키는 데에 순차(順次)와 순초(順超)와 역차(逆次)와 역초(逆超)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초월하여 정에 들어갈 수 있는가의 가행론(加行論)과 그의 성만론(成滿論)을 논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며, 그 다음에는 제4 정려에는 초월하여 들어가는 것이 없는 까닭을 논하고, 맨 뒤에는 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는 처소와 취(趣)와 남녀와 보특가라(補特伽羅)와 선근(善根)의 종류 등을 논술한다. 따라서 본절은 『발지론』의 본문에서 보면 이른바 부론(附論)이다.
  21. 469)다섯으로부터 다섯에 들어가고 넷으로부터 넷에 들어간다고 함은 정려의 지가 초정려와 제3 정려에는 다 같이 5지(支)가 있고 제2 정려와 제4 정려에는 다 같이 4지(支)가 있으므로 초정려에서 제3 정려로 들어가는 것을 다섯에서 다섯에 들어간다고 하며, 제2 정려에서 제4 정려로 들어가는 것을 넷에서 넷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제80권을 참조할 것.
  22. 470)정해탈의 다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낸다고 함은 제4 정려 지(地)에 있는 정해탈, 즉 제3해탈의 등무간(等無間)에 색계(色界)의 5부(部)의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대비바사론』 제89권 참조). 정해탈의 마음은 욕계를 반연한다고 함은 앞의 두 가지 해탈과 같이 정해탈도 욕계의 색처(色處)를 반연하는 것을 말한다(『대비바사론』 제84권 참조).
  23. 471)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는 보특가라는 불시해탈(不時解脫)의 아라한뿐이다.
  24. 472)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 등의 16행상(行相)의 무간에 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