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납식 ④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無漏)의 초정려(初靜慮)에 들어가면......(이하는 생략).449)
처음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성결정(正性決定)에 들어가는 처음이요, 둘째는 과(果)를 얻는 처음이며, 셋째는 염(染)을 여의는 처음이요, 넷째는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의 처음에 의거하여 논하니, 과를 얻는 처음과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다. 과를 얻는 처음이라고 함은 아라한의 과를 얻는 처음의 진지(盡智)일 때를 말하며, 근성이 바뀌는 처음이라고 함은 시해탈(時解脫) 아라한이 근성을 연마하여 부동(不動)으로 되는 최후의 해탈도일 때를 말한다. 【문】 무엇 때문에 네 가지 처음 가운데서 다만 두 가지 처음에만 의거하여 논하는가?
【답】 만일 그때에 온갖 지(地)의 공덕을 닦는 이면 여기서는 그것에 의거하여 논한다. 오직 두 가지 처음의 자리[初位]에서만 그와 같이 닦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의거하여 논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유심유사(有尋有伺)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혹은 유심유사이기도 하고 혹은 무심유사(無尋唯伺)이기도 하며 혹은 무심무사(無尋無伺)이기도 하다.
유심유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미지정과 초정려를 말하고, 무심유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정려중간(靜慮中間)을 말하며, 무심무사라고 함은 닦아야 할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無色)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희근(喜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樂根)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捨根)과 상응하기도 한다.
낙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제3 정려의 것을 말하고, 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초정려와 제2 정려의 것을 말한다. 사근과 상응한다고 함은 닦아야 할 미지정과 정려중간과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것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낙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사근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낙근과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기도 하며 혹은 사근과 상응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공무변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識無邊處)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포섭되기도 한다.
공무변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공무변처의 것을 말하고, 식무변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식무변처의 것을 말하며, 무소유처에 포섭된다고 함은 닦아야 할 무소유처의 것을 말한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식무변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論】 만일 맨 처음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면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의 그것은 모두 무소유처에 포섭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그것은 혹은 공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고 혹은 식무변처에 포섭되기도 하며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문】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서 정려에 대해서는 상응함을 묻고 무색에 대해서는 포섭됨을 묻는가? 【답】 그것은 논을 짓는 이의 의욕(意欲)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뜻에 따라서 논하므로 다만 법상(法相)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곧 힐책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는 “정려와 무색에서는 나란히 다 같이 물어야 하는데도 묻지 않은 것은 여기에는 그 밖의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로 말미암아 뜻을 곧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문ㆍ두 가지 길ㆍ두 가지 계단ㆍ두 가지 횃불ㆍ두 가지 밝음ㆍ두 가지 빛ㆍ두 가지 무늬와 그림자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마치 정려에 대하여 상응함을 말하는 것처럼 무색에서도 그러하며, 마치 무색에 대하여 포섭됨을 말하는 것처럼 정려에서도 그러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는 거칠게 드러나서 보기도 쉽고 알기도 쉽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은 미세하여서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갖가지의 모양이 있어서 서로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갖가지의 수(受)450)과 갖가지의 근이 있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많은 공덕이 있고451) 많은 뛰어난 이익이 있기452)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는 변연지(遍緣智)가 있기 때문에 상응함을 묻지만 무색에서는 다만 자기[自]와 위(位)를 반연하는 지(智)가 있기 때문에 다만 포섭되는 것만을 묻는다”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여기서 정려에서는 또한 무색을 포섭하는데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가? 【답】 그것은 논을 짓는 이의 의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하는 생략함) 어떤 이는 “정려와 무색에서는 나란히 다 같이 포섭해야 하는데도 포섭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는 그 밖의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갖가지의 글과 갖가지의 설로 인하여 뜻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문ㆍ두 가지 길ㆍ두 가지 그림자ㆍ두 가지 빛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하는 생략함)”라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이 정려에 의지하고 속한 것은 먼저 정려를 얻고 그 뒤에 무색을 얻기 때문이니, 정려에서는 역시 무색을 포섭하면서도 정려는 무색에 의지하거나 속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에서는 역시 무색을 포섭하지 않지만 무심무사(無尋無伺) 등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무심무사라 함은 오직 뒤의 세 가지 정려만을 말하며,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함은 오직 미지(未至)와 정려중간과 제4 정려만을 말한다. 정려와 무색은 그의 모양이 각각 달라서 비록 서로서로 닦는다 하더라도 서로가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에서도 역시 정려를 포섭하여 ‘혹은 미지정에 포섭되기도 하고 나아가 혹은 무소유처에 포섭되기도 한다’고 해야 하는 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은 무색은 정려에 들어가는 가행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니, 정려가 앞에 나타나는 데는 반드시 무색만으로 인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려의 지(地)에 태어나면 무색을 일으킬 수 있지만 무색의 지에 태어나면 정려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성자(聖者)는 정려에 태어난 뒤에 무색에 태어날 수 있어도 무색에 태어난 뒤에는 정려에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정려에서는 무색을 포섭할 수 있지만 무색에서는 정려를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論】 미상응(味相應)의 초정려는......(이하는 생략함)453)
【문】 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비유자(譬喩者)의 설을 중지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연 성품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연(緣)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연의 자성(自性)을 나타내 보이면서 모든 연은 모두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것을 논한다.
【論】 미상응의 초정려는 미상응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454)
【답】 자기 지(地)의 미상응에 인연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이 된다.
인연[因]이라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相應因)과 구유인(俱有因)과 동류인(同類因)이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미상응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는 미상응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증상연이라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는 것과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인연은 종자의 법과 같고, 등무간연은 열어 주며 피하는 법과 같으며, 소연연은 지팡이에 맡기는 법과 같고, 증상연은 욕을 주는 법과 같다.
【論】 자기 지의 정(淨)의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정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마치 애(愛)ㆍ견(見)ㆍ만(慢)ㆍ의(疑)의 상정려자(上靜慮者) 같은 이의 번뇌의 등무간에 정정(淨定)이 앞에 나타나 있을 때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정(淨)에는 네 가지가 있다. 순퇴분(順退分)ㆍ순주분(順住分)ㆍ순승진분(順勝進分)ㆍ순결택분(順決擇分)이다. 여기에서 어떤 이는 “미상응의 등무간에 오직 순퇴분만이 앞에 나타나 있다”고 하며, 어떤 이는 “역시 순주분도 일으킨다”고 한다. 소연연이라고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가 정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고, 증상연이라고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고 오직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인연이 아닌 것은 염오(染汚)의 법이 선의 법[善法]에 종자의 법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미상응은 자기 지의 정에 만일 총체적으로 설명하면 세 가지 연이 되면서도 만일 따로따로 설명하면 혹은 세 가지 혹은 두 가지이기도 하다. 앞의 두 가지 분(分)에서는 세 가지 연이 되고, 뒤의 두 가지의 분에서는 두 가지 연이 된다.455)
【論】 자기 지의 무루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소연연이라 함은 고(苦)ㆍ집(集)의 유인품(類忍品)ㆍ유지품(類智品)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증상연이라 함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유루의 법은 무루의 법에 종자의 법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번뇌의 등무간에 성도[聖者]가 일어나 앞에 나타나 있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미상응은 자기 지의 무루에 만일 총체적으로 설명하면 두 가지 연이 되며, 만일 따로따로 설명하면 혹은 두 가지 연 혹은 한 가지 연이 된다. 고ㆍ집의 유인품ㆍ유지품에 두 가지 연이 되면서도 멸(滅)ㆍ도(道)의 유인품ㆍ유지품과 온갖 법인품(法忍品)ㆍ법지품(法智品)에 한 가지 연이 된다.
【論】 정과 무루의 위의 세 가지의 정려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소연연이라 함은 그것은 하지(下地)의 미상응을 반연하기 때문이며,456) 증상연이라 함은 생겨나는 것을 장애하지 않고 오직 방해하지만 않기 때문이다.
인연이 아닌 것은 염은 염이 아닌 것에 대하여 종자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요,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이미 아래의 연을 여의고서야 비로소 위의 근본지(根本地)의 정과 무루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고 함은 미상응의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온갖 무색을 말하며,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다른 계(界)ㆍ지(地)의 법은 인과가 끊어지기 때문이고 다른 종류의 법은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이미 아래의 염을 여의어야 위의 지의 염이 비로소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그리고 서로가 어기기 때문이다. 소연연이 아닌 것은 상지의 번뇌와 근본의 무색은 하지의 유루의 법을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論】 정의 초정려는 정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정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인연이라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과 구유인과 동류인을 말하고, 등무간연이라 함은 정의 초정려의 등무간(等無間)에 정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정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고,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이것은 곧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정(淨)에는 네 가지 분(分)이 있다. 순퇴분(順退分)의 정은 순퇴분의 정에 네 가지 연이 되며, 순주분(順住分)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나머지 두 가지 분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등무간연을 제외한다. 순주분은 순주분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순승진분(順勝進分)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순결택분(順決擇分)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등무간연이 제외된다. 순퇴분에는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인연이 제외된다. 뛰어난 것은 하열한 것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승진분은 순승진분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순결택분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순퇴분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만 소연연과 증상연이 될 뿐이니, 순승진분의 무간(無間)에 순퇴분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역시 앞에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순퇴분에는 인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는 것이니, 그것은 하열하기 때문이다. 순주분에도 그러하다.” 순결택분은 순결택분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순퇴분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순주분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만 소연연과 증상연이 될 뿐이니 순결택분의 무간에 순주분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역시 앞에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인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며, 순승진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論】 자기 지의 무루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정(淨)의 초정려의 등무간에 무루의 초정려가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만 순결택분으로부터일 뿐이다. 어떤 이는 “역시 순증진분으로부터이다”라고 한다. 소연연이라 함은 무루의 초정려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증상연이라 함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인연이 아닌 것은 유루의 법은 무루의 법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論】 자기 지(地)의 미상응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 함은 애(愛)ㆍ견(見)ㆍ만(慢)ㆍ의(疑)의 상정려자(上靜慮者) 같은 이가 정정(淨定)의 등무간에 번뇌가 앞에 나타나 있는 때이다. 이것은 순퇴분이나 혹은 순주분으로부터 일어나는 줄 알아야 하는데 자기 지(地)의 염(染)을 이미 여읜 이와 아직 여의지 못한 이는 자기 지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457)
소연연이라 함은 자기 지의 정의 정려에 붙어서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정과 무루의 제2ㆍ제3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라고 함은 제2에서는 순차(順次)로 들어가기 때문이요, 제3에서는 순초(順超)로 들어가기 때문이니,458) 순승진분으로부터 위의 정(淨)에 들어가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의 설명에서와 같다.
【論】 정과 무루의 제4 정려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등무간연이 없는 것은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 함은 미상응의 세 가지 정려459)와 온갖 무색을 말한다.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여기에서 차별된 것은 정과 무루와 무색에 대하여 등무간연이 아닌 것은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문】 또한 등무간연의 것도 있다. 초정려의 선(善)의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고 상지(上地)에 태어나는 때이니,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그것에 대하여는 등무간연과 증상연이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 곧 다른 뜻도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定蘊)에서는 오직 정(定)의 선과 정의 번뇌만을 말하는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받는 것은 다만 생(生)의 선(善)이요 생의 번뇌일 뿐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오직 근본의 선과 번뇌만을 말한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맺는 것은 오직 근분(近分)에만 머무를 뿐이요 근본에는 머무르지 않는 것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論】 무루의 초정려는 무루의 초정려 등에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무루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인연이라고 함은 세 가지 인이니 곧 상응인ㆍ구유인ㆍ동류인을 말하고, 소연연이라 함은 도인품(道忍品)ㆍ도지품(道智品)에 소연이 되는 것을 말하며,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이것은 총체적인 설명이다. 만일 따로따로 설명한다면 법지품은 법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유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460) 유지품은 유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법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 고ㆍ집ㆍ멸지품은 고ㆍ집ㆍ멸지품에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되고 도지품에 대해서는 네 가지 연이 된다.461)
도지품은 도지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고ㆍ집ㆍ멸지품에 대해서는 소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 미지당지근품(未知當知根品)은 미지당지근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이지근품(已知根品)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구지근품(具知根品)에 대해서는 등무간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이 된다.462) 이지근품은 이지근품에 네 가지의 연이 되고 구지근품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미지당지근품에 대해서는 인연과 등무간연을 제외한 두 가지 연이 된다. 인연이 제외되는 것은 뒤에 생긴 것은 앞에 생긴 것에 대하여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며, 등무간연이 제외된 것은 수도(修道)의 등무간에는 견도(見道)가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지근품은 구지근품에 네 가지 연이 되고 미지당지근품과 이지근품에 대해서는 인연과 등무간연을 제외한 두 가지 연이 된다. 무학의 법지품은 학(學)의 유지품에 한 가지 증상연이 되며, 무학의 유지품은 학의 법지품에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463) 이 때문에 총체적으로 “자기 지의 무루에 대하여 네 가지 연이 된다”고 하면서도 만일 차별적으로 “이와 같이 혹은 네 가지ㆍ세 가지ㆍ두 가지ㆍ한 가지이기도 하다”고 한다.464)
【論】 무루의 제2ㆍ제3 정려에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무루의 법은 세계[界]에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지에서 인연이 되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자기 지의 정과 정의 제2ㆍ제3 정려에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여기에서 자기 지의 정에 대하여 어떤 이는 “순퇴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분[分]에 등무간연이 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오직 뒤의 두 가지 분(分)에 등무간연이 되며 상지(上地)의 정(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점차로 들어갈 때는 순승진분에도 등무간연이 되지만 초월하여 들어갈 때에는 순결택분에만 등무간연이 된다.” 【문】 무엇 때문에 초월하여 들어갈 때는 순결택분만이 무루의 도와 서로가 등무간연이 되면서 그 밖의 다른 때는 그렇지 않는가? 【답】 초월할 때에는 오직 사납고 맹렬하게 성(盛)하면서 견고한 선근만이 끌어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순결택분은 사납고 맹렬하게 성하면서 견고하지만 그 밖의 다른 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論】 정의 제4 정려와 정의 무색에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초정려의 유지품은 무색의 대치이기 때문에 정의 무색에도 소연(所緣)이 된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무루의 제4 정려와 무루의 무색에 인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된다. 무색의 도류지품(道類智品)은 초정려의 유지품도 반연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그 밖의 다른 것에는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다른 것이라 함은 온갖 미상응의 것을 말한다. 증상연의 뜻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무루는 미(味)와는 지극히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등무간연이 없고, 탐(貪)은 무루의 법을 반연할 수 없기 때문에 소연연이 아니며, 무루는 염(染)에 대하여 종자의 법도 아니기 때문에 인연도 아니다. 【문】 만일 무루가 미(味)와 극히 서로 어긋난다면 어떻게 증상연이 되는가? 【답】 무간(無間)에 일어나는 것이 비록 극히 서로 어긋난다 하더라도 정작 생길 때에 오가는 것은 장애가 없기 때문에 차츰차츰 서로가 증상연이 된다.
【論】 미상응의 제2 정려는 미상응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미상응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정(淨)의 제2 정려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제3ㆍ제4 정려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되고, 그 밖의 나머지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그 밖의 나머지라고 함은 미상응의 처음ㆍ제3ㆍ제4 정려와 온갖 무색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의 초정려에 등무간연이 된다 함은 유가사(瑜伽師)는 제2 정려의 정정(淨定)의 무간(無間)에 모든 번뇌를 일으켜 그 마음이 뜨겁고 괴로운 것이 마치 불에 타는 것과 같았으므로 드디어 곧 정의 초정려에 돌아가 투항하는 것을 말한다. 그 때문에 계경에서 “차라리 싫어하는 작의(作意)와 함께 하면서 초정려를 일으킬지언정 하열한 작의와 함께 하는 제2 정려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셨다. 【문】 그는 어떠한 정의 초정려를 일으키는가? 【답】 어떤 이는 “순주분(順住分)을 일으키는 것이니 일으키기가 쉽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순승진분(順勝進分)을 일으키는 것이니 상지(上地)를 막아 지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여기서 말한 것은 미상응의 초정려에 한 가지의 증상연이 된다. 【문】 제2 정려의 염의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고 초정려에 태어나면 등무간연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그것에 등무간연과 증상연이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은 여기에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定蘊)에서는 정(定)의 번뇌만을 말하는 것이요, 목숨을 마친다거나 생을 맺는다거나 하는 것은 생의 번뇌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근본지의 번뇌만을 말한 것이요, 목숨을 마치는 것과 생을 맺는다는 것은 근분지(近分地)의 번뇌에만 머무르는 것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그에 알맞은 것에 따라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論】 정의 제2 정려는 정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자기 지의 정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처음과 제3ㆍ제4 정려와 아울러 자기 지의 미상응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여기서도 앞에서와 같이 그에 알맞게 자세히 설명해야 된다. 【論】 무루의 제2 정려는 무루의 제2 정려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 【답】 온갖 무루의 정려에는 인연ㆍ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고, 온갖 정의 정려에는 등무간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정의 무색에는 소연연과 증상연이 된다. 무루의 무색에는 인연ㆍ소연연ㆍ증상연이 되며,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한 가지 증상연이 된다.
여기서도 그에 알맞은 것에 따른 자세한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제3 정려로부터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는 다섯 가지에는 세 번의 문답이 있고, 한 가지에는 두 번의 문답이 있는 것이니,465) 자세한 설명은 본론에서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 【문】 세속의 도로써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염을 여의는 때처럼 온갖 무간도는 모두 하지(下地)를 반연하는데 무엇 때문에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에서의 미상응과 정(淨)은 상지(上地)의 정에 소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가?466)
【답】 이것도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온에서는 근본지만을 말하고 있는데 9무간도467)는 근분지일 뿐이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 어떠한 무루의 제3과 제4의 정려가 정과 무루의 무색에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는가? 【답】 오직 유지품일 뿐이다. 【문】 무엇 때문에 법지품은 그렇지 않는가? 【답】 어떤 이는 “법지품은 아래에 의지하여 아래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법지품은 욕계에만 의하여 욕계의 모든 행(行)과 그것의 인(因)과 그것의 멸(滅)과 그것의 대치도(對治道)만을 반연할 뿐이지만 정(淨)과 무루(無漏)의 무색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법지품은 그것의 등무간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법지품은 욕계와 그것의 멸(滅)ㆍ도(道)만을 반연하지만 욕계와 그것의 멸ㆍ도를 반연하는 무간에는 곧 무색지의 경계를 반연할 수 없는 것이니, 지극히 멀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법지품은 무색의 등무간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무색지는 법지품의 소의(所依)도 소연(所緣)도 지(地)도 아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정려는 비록 법지품의 소의와 소연은 아니라 하더라도 법지품의 지이며, 욕계는 비록 법지품의 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법지품의 소의와 소연이다. 모든 무색지에는 이러한 것이 없기 때문에 법지품의 무간(無間)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정(淨)과 무루의 무색은 하지(下地)의 유지품의 도만을 반연하면서 법지품의 도는 반연하지 않는가? 【답】 법지품의 도는 그것의 대치(對治)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 어찌 법지품의 도도 그것을 대치하지 않겠는가? 【답】 비록 그것을 대치한다 하더라도 근본(根本)이 아니고 또한 전부가 아니므로 이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의 수도(修道)에서 끊어야 할 법의 대치라 하더라도 그것의 견도(見道)에서 끊어야 할 법의 대치는 아니다. 또 멸법지(滅法智)ㆍ도법지(道法智)는 그것의 대치(對治)라 하더라도 고법지(苦法智)ㆍ집법지(集法智)는 그렇지가 않다. 어떤 이는 “유지품은 그것의 주(主)의 대치이고, 법지품은 그것의 객(客)의 대치이기 때문에 그의 소연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정과 무루의 정려와 무색은 혹은 아래나 위의 무간에서 일어난다.468)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순차ㆍ순초(順超)라고 하고, 위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역차(逆次)ㆍ역초(逆超)라고 하며, 같은 종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순수하다고 하고, 다른 종류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뒤섞였다고 한다. 지(地)의 사이가 없는 것을 차지(次地)라고 하고 사이가 있는 것을 초(超)라고 하는 것이니, 사이가 있는 것은 하나의 지만을 초월한다. 이것을 이곳의 약비바사(略毘婆沙)라고 한다.
【문】 말한 바의 초정(超定)의 가행은 어떤 것인가? 【답】 초정을 닦을 때에 그 정을 닦는 이는 먼저 욕계의 선의 마음을 일으키고서 이로부터 무간에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로 비상비비상처에까지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고 차례대로 이에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이르기까지 들어간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이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이르기까지 들어가고서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로 들어오며 차례대로 이에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온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과 같게 하고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무루의 공무변처로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닦아 익히되 아주 잘 익숙해지는 것이 마치 왕의 길 같게 한다. 이와 같이 되면 초정(超定)의 가행(加行)이 이룩되어 원만하게 된다. 이로부터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로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와 같은 것을 초정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정을 닦을 때에 먼저 욕계의 선의 마음을 일으켜 이로부터 무간에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또는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차례대로 이에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갔다가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로 들어오고 차례대로 또는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공무변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유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식무변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하여 또는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2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제3 정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제4 정려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공무변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유루의 식무변처에 들어가며 그 다음에는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다시 무루의 무소유처에 들어오고 차례대로 하여 또는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地)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익히고 나서야 그만둔다.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도로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는 것이니, 이 모든 지에 대하여 익숙하게 잘 닦아 익힌다. 이것을 초정의 가행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이로부터 다시 유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유루의 초정려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무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유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유루의 공무변처로부터 무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무루의 제3 정려로부터 유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이로부터 다시 무루의 초정려에 들어가고 무루의 초정려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가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가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무소유처에 건너뛰어 들어간다. 유루의 무소유처로부터 다시 무루의 공무변처에 건너뛰어 들어오고 무루의 공무변처로부터 유루의 제3 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오며 유루의 제3 정려로부터 무루의 초정려에 건너뛰어 들어온다. 이와 같은 것을 초정(超定)이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앞에서부터 말한 바는 모두가 가행이다. 이 자리로부터 이후에 자유자재하게 쉬지 않고 자꾸 돌면서 모든 정(定)에 건너뛰어 들어가되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이룩되어 원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제4 정려에는 건너뛰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제4 정려는 건너뛰어 들어갈 수 없는가? 【답】 긍가(殑伽)의 모래 수보다 더한 모든 부처님 세존과 성인 제자도 모든 정(定)에 건너뛰어 들어가는 법은 모두가 그와 같기 때문이니, 더 묻지 말 것이다. 어떤 이는 “모든 초정을 닦는 이는 본래 점차로 일으켜야 한다. 만일 그로부터 건너뛴다고 하면 법이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니, 세력이 더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다리를 오를 때와 같아서 역시 점차로 올라가야 하며 그 건너뛰어 오른 이가 있다 해도 둘을 건너뛸 수 없는 것이니, 세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뒤로 지름길을 일으키는 데는 법이 모두가 앞의 것과 같기 때문에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다. 관행을 닦는 이가 처음에 정(定)을 건너뛸 때에는 다섯으로부터 다섯에 들어가고 넷으로부터 넷에 들어간다.469) 갈래의 수가 같기 때문에 건너뛰어 들어가기가 쉬우며 뒤의 것도 그와 같기 때문에 둘을 건너뛰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소연연과 같기 때문에 하나만을 건너뛸 뿐이다. 관행을 닦는 이는 작의를 염하지 않으면 소연연에 대하여 하나만을 건너뛸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문】 어떻게 관행을 닦는 이는 소연에 대하여 건너뛰는가? 【답】 그는 작의를 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초정려로써 9지(地)의 경계에 대하여 하나하나 따로따로 반연하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 지(地)만을 반연하면서 건너뛸 수 있을 뿐이다. 욕계를 반연하는 무간에 위로는 초정려나 혹은 제2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고, 초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욕계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2 정려나 혹은 제3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제2 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욕계나 혹은 초정려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3 정려나 혹은 제4 정려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제3 정려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초정려나 혹은 제2 정려를 반연하고 위로는 제4 정려나 혹은 공무변처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반연하는 무간에 아래로는 식무변처나 혹은 무소유처를 반연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것은 반연하지 않는다. 초정(超定)에 의하는 곳처럼 그와 같이 다른 정에 의하는 데서도 그에 알맞은 바에 따라 소연연에 대하여 모두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마치 두 가지의 지를 건너뛸 수 없는 것처럼 초정에서도 그러한 것이니, 때문에 제4 정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문】 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정해탈의 다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일으켜 정해탈의 마음은 욕계를 반연하고470) 제4 정려의 변행수면(遍行隨眠)은 자기와 위의 유정(有頂)까지를 반연할 수 있다고 하는가? 어찌 두 가지의 지의 소연을 건너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답】 염오하지 않은 마음은 두 가지를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요, 그 마음은 염오이기 때문에 서로가 어긋나지 않는다.
【문】 고법지 같은 것은 욕계를 반연하는 무간에 고류인(苦類忍)을 일으키고 나아가 유정(有頂)을 반연하는데 어떻게 염오하지 않는 마음은 둘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인가? 【답】 거기서는 다만 통틀어 반연하는 것이므로 건너뛴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또한 다 같이 그 밖의 다른 지(地)도 반연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논란거리가 아니다. 【문】 어느 곳에서 정(定)을 건너뛸 수 있는가? 【답】 욕계에 있어서이며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건너뛰지 못하고, 인취(人趣)에 있어서요 그 밖의 다른 취에서는 건너뛰지 못하며, 두 가지 주(洲)에 있어서요 북주(北洲)에서는 건너뛰지 못하고, 남자와 여인은 다 같이 정(定)을 건너뛸 수 있다. 승가벌소(僧伽筏蘇) 존자는 “섬부주의 남자만이 정을 건너뛸 수 있을 뿐이요 그 밖의 다른 주(洲)와 여인은 소의(所依)가 하열하기 때문에 건너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그 밖의 다른 주(洲)와 여인도 정(定)을 건너뛸 수 있다. 그것은 삼마지에 대하여 역시 마음의 자재(自在)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 어떠한 보특가라가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471) 【답】 성자(聖者)는 건너뛸 수 있으나 이생은 건너뛰지 못하고, 무학(無學)은 건너뛸 수 있지만 학(學)은 건너뛰지 못하며, 무학 중에서도 불시해탈(不時解脫)은 건너뛸 수 있으나 시해탈(時解脫)은 건너뛰지 못하고, 불시해탈 중에서도 반드시 원지(願智)와 변제정(邊際定) 등의 뛰어난 공덕을 얻은 연후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다. 【문】 무엇 때문에 무학의 불시해탈만이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 【답】 반드시 상속 중에서 모든 번뇌가 없고 정(定)에 대하여 자재한 이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다. 학(學)의 상속 중에서는 오히려 번뇌가 있으며, 시해탈은 정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 같이 정을 건너뛰지 못한다.
【문】 어떠한 선근의 무간에 정을 건너뛸 수 있는가?472) 【답】 무량ㆍ해탈ㆍ승처ㆍ변처와 모든 신통 등의 선근의 무간에는 모두 정을 건너뛰지 못하며 오직 무상(無常) 등의 행상(行相)의 선근의 무간에서만 건너뛸 수 있다. 왜냐하면 반드시 사납고 예리하면서 뛰어난 선근이라야 정을 건너뛸 수 있기 때문이다.
449)본절은 『발지론』 송문의 ‘초입(初入)’에 상당한다. 곧 맨 처음에 무루의 초정려와 나아가 무소유처에 들어가는 이가 그때에 얻게 되는 모든 그 밖의 미래의 무루의 심ㆍ심소법을 갖가지로 분별하는 문단이다. 이러한 분별하는 표준을 크게 요약하여 3단(段)으로 나누고 있다. 곧 초정려의 경우에는 얻게 되는 미래의 무루의 온갖 심ㆍ심소법에 대하여 유심유사 등을 분별하고, 다음의 제2ㆍ제3ㆍ제4 정려의 경우에는 낙(樂)ㆍ희(喜)ㆍ사(捨) 등의 근의 상응을 분별하며, 최후의 4무색의 경우에는 저마다 네 가지 무색이 포섭한 바를 분별한다.
450)정려에 갖가지의 수가 있다고 함은 낙수(樂受)ㆍ희수(喜受)ㆍ사수(捨受) 등의 갖가지 느낌[受]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451)정려에 많은 공덕이 있다고 함은 4무량(無量)과 4해탈과 8승처(勝處)와 8변처(遍處)와 4무애해(無礙解)와 무쟁(無諍)과 원지(願智)와 변제정(邊際定) 등의 많은 공덕이 있어서 무색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452)정려에 뛰어난 이익이 있다고 함은 네 가지의 정려에는 네 가지 뛰어난 이익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제80권을 참조할 것.
453)본절은 『발지론』 본문에서의 ‘연(緣)’에 대한 논의로서, 즉 미상응(味相應)과 정(淨)과 무루와의 정려와 나아가 무색정(無色定) 등이 저마다 자기 지(地)의 미상응 등에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 그리고 다른 지의 미상응 등에 몇 가지 연이 되는가를 축차적(逐次的)으로 논구하는 문단이다.
454)이하에서는 미상응의 초정려가 자기 지(地)의 미상응과 정(淨)과 무루에 대하여 몇 가지 연(緣)이 되는가와 나아가 정과 무루와의 제2ㆍ제3ㆍ제4 정려를 위하여 몇 가지 연이 되는가를 물으며, 다시 그 밖의 위의 세 가지의 정려의 미상응과 네 가지 무색을 위하여 몇 가지의 연이 되는가를 차례차례로 밝힌다.
455)“앞의 두 가지 분에서는 세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미상응의 초정려는 네 가지의 정 가운데서 순퇴분(順退分)과 순주분(順住分)의 두 가지 분(分)의 정의 초정려에 대하여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 연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뒤의 두 가지 분에서는 두 가지의 연이 된다”고 함은 뒤의 순승진분(順勝進分)과 순결택분(順決擇分)에 대해서는 등무간연으로는 되지 않고 소연연과 증상연의 두 가지 연만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456)정(淨)과 무루(無漏)의 위의 세 가지 정려에는 변연지(遍緣智)가 있기 때문이다.
457)자기 지의 염을 이미 여읜 이가 자기 지의 번뇌를 일으켜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는 상지(上地)의 정(淨)의 순퇴분에 의하여 아직 자기 지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인지라, 곧 자기 지의 순주분으로부터 번뇌를 일으키는 것도 있을 수 있어서다.
458)순차로 들어간다고 함은 하지(下地)로부터 점차로 상지(上地)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순초로 들어간다고 함은 하나의 지(地)를 건너뛰어 상지에 들어가는 것이니, 예를 들면 초정려로부터 제3 정려에 들어가고 제3 정려로부터 공무변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459)미상응의 세 가지 정려라 함은 위의 세 가지 정려의 미상응을 말한다.
460)법지(法智)는 아래를 반연하고 유지(類智)는 위를 반연하는 것이므로 유지의 품(品)이 법지의 품을 반연한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461)고지(苦智)가 고지ㆍ집지ㆍ멸지의 소연연(所緣緣)이 되지 않는 것은 고지와 집지의 소연(所緣)은 오직 유루(有漏)의 것일 뿐인데 고지는 무루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연하지 않으며, 멸지는 무위(無爲)의 것을 반연하는 것인데 고지는 유위의 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연하지 않는다. 집지와 멸지의 경우도 이것에 준하여 미루어 알아야 한다.
462)미지당지근 등의 세 가지 무루근(無漏根)에 관한 상연론(相緣論)의 상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제146권을 참조할 것.
463)무학의 법지품이 학의 유지품의 인연이 아닌 것은 위의 것은 아래인 도품(道品)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무간연(等無間緣)이 아닌 것은 무학이 물러나서 학이 될 때에는 번뇌를 일으켜 물러나는 것이므로 그 번뇌의 무간(無間)에는 무루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며, 더구나 무학의 법지(法智)를 일으켜 학에서 물러날 턱도 없기 때문에 무학의 법지는 학의 유지(類智)의 등무간연이 아니다. 또한 소연연(所緣緣)이 아닌 것은 법지와 유지는 서로가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증상연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464)무루의 초정려가 자기 지의 무루에 네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초정려 지(地)의 법지품이 법지품에 대하여, 더 나아가 구지근(具知根)이 구지근에 대하여 네 가지 연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고, 세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법지품이 유지품에 대하여 세 가지 연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며, 두 가지의 연이 된다고 함은 이지근이 미지당지근에 대하여 두 가지 연[所緣과 增上緣]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고, 한 가지 연이 된다고 함은 무학의 법지품이 학의 법지품에 대하여 하나의 증상연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465)다섯 가지에는 세 번의 문답이 있다고 함은 제3 정려와 제4 정려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의 이 다섯 가지에는 저마다 미상응과 정(淨)과 무루에 대한 세 가지 연론(緣論)의 문답이 있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에는 두 번의 문답이 있다고 함은 최후의 비상비비상처에는 오직 미상응과 정의 두 가지만의 연론의 문답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466)앞에서 이미 논술한 본론 중에서 제4 정려의 미상응은 자지(自地)의 미상응과 정(淨)의 제3ㆍ제4 정려와 무루의 4정려(靜慮)와 정의 초정려와 제2 정려에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4무색(無色)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 제4 정려의 정에서는 자지의 정과 무루의 위의 세 가지 정려와 정의 제2ㆍ제3 정려와 자지의 미상응과 정과 무루와의 초정려에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4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 미상응의 공무변처(空無邊處)는 자지의 미(味)와 자지의 정의 제4 정려와 온갖 무루의 정려와 정의 아래의 세 가지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 정(淨)의 공무변처는 자지의 정과 자지의 무루와 정과 무루와의 제3ㆍ제4 정려와 아울러 자지의 미상응과 정과 무루와의 초(初)ㆍ제2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의 위의 세 가지 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미상응의 식무변처(識無邊處)는 자지의 미상응과 정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과 무루의 4정려와 무루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한다. 정의 식무변처는 자지의 정과 자지의 무루와 정ㆍ무루와의 제4 정려와 공무변처와 자지의 미상응과 정ㆍ무루와의 아래의 세 가지 정려에만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지의 정의 두 가지 무색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상응의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자지의 미(味)와 자지의 정(淨)과 정의 식무변처와 온갖 지(地)의 무루와 정의 4정려와 공무변처에만 소연연이 된다. 정의 무소유처는 자지의 정과 무루의 세 가지 무색과 정의 아래의 두 가지 무색과 자지의 미상응과 정ㆍ무루의 4정려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비상비비상처 지의 정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상에서와 같이 곧 제4 정려와 아래의 세 가지 무색의 미상응과 정은 다 같이 상지의 정에는 소연연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속의 도, 즉 유루(有漏)의 6행상관(行相觀)은 하지를 반연하여 추(麤)ㆍ고(苦)ㆍ장(障)으로 삼는 것이므로 상지의 정도 하지의 미상응 등을 반연해야 하기 때문에 따라서 제4 정려 등의 미상응 등은 상지의 소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하여 이하의 질문을 하게 된다.
467)여기서의 9무간도는 유루의 세 가지 행상(行相)의 9무간도를 가리킨다.
468)앞의 절에서 정(定)의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는 것을 설명할 때에 초정(超定)으로서 등무간연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었다. 예를 들면 정(淨)과 무루와의 제3 정려가 정과 무루와의 공무변처를 위하여 등무간연이 된다고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로 인하여 본절은 먼저 정(定)에서 정(定)을 일으키는 데에 순차(順次)와 순초(順超)와 역차(逆次)와 역초(逆超)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초월하여 정에 들어갈 수 있는가의 가행론(加行論)과 그의 성만론(成滿論)을 논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며, 그 다음에는 제4 정려에는 초월하여 들어가는 것이 없는 까닭을 논하고, 맨 뒤에는 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는 처소와 취(趣)와 남녀와 보특가라(補特伽羅)와 선근(善根)의 종류 등을 논술한다. 따라서 본절은 『발지론』의 본문에서 보면 이른바 부론(附論)이다.
469)다섯으로부터 다섯에 들어가고 넷으로부터 넷에 들어간다고 함은 정려의 지가 초정려와 제3 정려에는 다 같이 5지(支)가 있고 제2 정려와 제4 정려에는 다 같이 4지(支)가 있으므로 초정려에서 제3 정려로 들어가는 것을 다섯에서 다섯에 들어간다고 하며, 제2 정려에서 제4 정려로 들어가는 것을 넷에서 넷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제80권을 참조할 것.
470)정해탈의 다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낸다고 함은 제4 정려 지(地)에 있는 정해탈, 즉 제3해탈의 등무간(等無間)에 색계(色界)의 5부(部)의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대비바사론』 제89권 참조). 정해탈의 마음은 욕계를 반연한다고 함은 앞의 두 가지 해탈과 같이 정해탈도 욕계의 색처(色處)를 반연하는 것을 말한다(『대비바사론』 제84권 참조).
471)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는 보특가라는 불시해탈(不時解脫)의 아라한뿐이다.
472)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 등의 16행상(行相)의 무간에 초정(超定)을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