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7_0214_a_01L
아비달마구사석론서


정교(正敎)의 근본 종지가 되는 문헌이 범어로 쓰인 삼장(三藏)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법상(法相)이 깊고 오묘하며 명실(名實)이 복잡다단한 까닭에 원만한 지혜가 없이는 아무도 이를 깨달을 수 없다. 해는 종달새 지저귀는 산간에 기울고 달은 아수라 천신의 손끝에 가려지니, 세월이 흐름에 지해(知解)조차 어두워졌다. 이에 여러 부파(部派)의 견해가 앞다투어 일어나서 문자로써 이치를 풀이하기도 하였고, 이치로써 문자를 가늠하기도 하였다. 비록 다시 그 득실(得實)은 같지 않으나 모두 삼장을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참으로 길은 달라도 가는 곳이 같아서 백려(百濾)가 일치한다고 하겠다.
소승의 18부파를 개관해 보면, 스승과 제자가 제각기 논서를 저술하여 자파의 관점을 풀이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부파 가운데에도 제반 논서가 허다하게 많다. 이 땅에서는 일찍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서가 번역되기는 했으나 그것도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과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4권에 불과했다. 비바사론의 뜻풀이는 비록 상세하지만 글귀가 완벽하지 못하고, 심론은 그 해설이 적절한 편이지만 단지 자파의 종지만을 서술하는 4권뿐이기에 생략이 지나쳐서 이치를 파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 땅에서 일찍이 번역된 경량부의 논서는 바로 성실론(誠實論) 한 질뿐이었다. 성실론은 경량부의 이치로써 여타 부파의 논사들을 논박한 것이다. 그래서 그 쓰임새란 여타 부파와 견해를 같이하거나 또는 논파(論破)하고 논립(論立)하는 데 처해 있어서 역시 그 오묘함을 다하지 못했다. 게다가 번역 자체도 바르지 못해서 완비된 해설이라고 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지 천백 년 후에 바수반두(婆籔盤豆)라고 하는 출가보살이 계셨다. 그 보살은 도량이 넓고 재능이 출중해서 그 학문이 문자를 궁진하고 그 사상은 연원을 통달하였기에 학덕이 영원토록 우뚝하고 명성은 당세를 뒤덮었다. 대소승의 논서를 지으신 것이 무릇 수십 부에 달하나 모두 널리 유포되어 학문의 근본을 이루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법사의 덕업(德業)은 별역의 바수반두법사전(婆籔盤豆法師傳)에 실려 있는 바와 같이, 먼저 설일체유부로 출가하시어 유부(有部)에서 확립된 삼장을 배우셨다. 나중에 유부의 법에 어긋난 것이 많음을 보시고서, 본 논을 지어 유부의 주장을 모두 서술한 연후에 그 잘못된 곳마다 경량부의 이치로써 논파하였다. 그러므로 본 논이 근본으로 숭상하는 바는 유부이지만 조목마다 취사선택하는 것에는 경량부로써 표준을 삼았다. 뭇 논서를 널리 모으고 여러 논사들을 교묘히 가려서 그 현묘함을 담론하는 바는 극치에 다다르고, 사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간략하면서도 빈 틈이 없었다. 성인의 가르침을 현양하고 이단의 학설을 굴복시키는데 논립해도 엿볼 수가 없었고 논파해도 대론할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의상(義象)을 법수(法數)와 겸하여 논하는 바가 깊고 넓어서 뛰어나다. 어휘가 번쇄하지 않고 의미가 분명하여서 이치가 비록 심오할지라도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서 천축에서는 모두들 총명론(聰明論)이라 불렀고, 대소승의 학문이 모두 이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삼장법사 구라나타(俱羅那陀) 스님은 총명하고 강기(强記)하시며 변재가 무궁하신 데다 불법을 많이 들으신 석학(碩學)이시라 내전과 외전에 두루 해박하셨다. 양(梁)나라 황실이 쇠퇴하면서 정세가 혼란하던 즈음에 법사께서는 흥법을 위해 멀리 이 나라에까지 오셨다. 법사께서 동과 서로 피난하신지 거의 스무해 만에 마침내 천축으로 되돌아가고자 번우(番禹)까지 오시게 되었다. 이때 혜개(慧愷)가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의 경론 번역을 청하였기 때문에 법사께서는 결국 2년이나 걸려서 그 번역과 강해를 마치시고 귀국하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仁)을 숭상하고 도(道)를 귀하게 여겨 오랫동안 법사를 정성스럽게 모신 자사 구양흘(歐陽紇)은 이 땅에 머무실 것을 몇 번이고 권청드리면서 예우를 더욱 극진히 하였고, 혜개와 승인(僧忍)도 역시 법사에게 본론을 번역해주길 권청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진(陳)나라 천가(天嘉) 4년 갑신년 정월 스무닷새부터 제지사(制旨寺)에서 비로소 번역을 개시했으나 혹품(惑品)만이 남았을 즈음에 일을 옮겨 남해군(南海郡)에 거주하면서 계속 다시 강역해 나갔다.
법사께서는 이 땅에 오신 지 이미 오래라 이 땅의 언어에 능통하셔서 번역하는데 통역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범어야 그 의미가 쉽게 풀이되지만 범어를 고쳐 읽자니 갑자기 문리를 회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자니 한 구절을 설명하는 중에도 신중하게 되풀이 해석해서 다시 이리저리 고쳤다. 혜개가 이를 공손히 받아 적고 정정과 개서하길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니 새벽녘에 이르러서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그해 윤 10월 10일에 이르러 번역을 마쳤으니, 구사석론(俱舍釋論) 22권, 구사론본송(俱舍論本頌) 1권, 구사론실의소(俱舍論實義疏) 53권이 그것이다.
이에 자사 구양흘이 법사를 청해서 성 안에서 이를 강설토록 하였다. 이미 익힌 바가 있는 데다 다시 큰 종지를 더욱 분명히 알고서는 무지에 빠지지 않으니, 번역에 의심스러운 곳이 많았다. 그리하여 그 번역이 오류를 면치 못할 것을 염려해서 천가 5년 다음해 유조(柔兆) 2월 초이틀부터 승인 등과 더불어 법사를 다시 청해서 논을 중역하고 그 문의를 다시 해석하였다. 광대(光大) 원년 다음해 강어(强圉) 12월 스무닷새까지 예전의 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감수하였다.
장사(長史) 원경(元敬)은 학식이 깊고 신심이 발랐고, 그의 맏아들 원우(元友)는 글을 애호하며 불법을 중히 여기고 박학다식하였는데, 이들이 예를 갖추어 법사를 모시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주선해 주었다. 실로 남해에서의 번역은 이 귀한 가문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니, 바야흐로 오는 세상에 길이 전하여 후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
불법의 큰 바다는 깊고 넓어서 끝이 없다. 만약 한 갈래 길에만 집착하지 않고 신심을 일으켜 그 학문을 쫓아 구한다면, 어찌 함께 감로를 맛보고 치자 꽃 냄새를 맡게 되지 않겠는가? 설령 한 가지 가르침만을 배워 익히더라도 비교할 바가 없으리라.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 제1권


바수반두(婆藪盤豆)지음
진제(眞諦)한역
이한정 번역


1. 분별계품(分別界品) ①

본송(本頌)의 귀경게(歸敬偈)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모든 명(冥)을 소멸하고
중생을 생사의 진흙탕에서 건져내는
대사의 여리(如理)한 가르침에 정례(頂禮)하오며
내 이제 대법구사(對法俱舍)의 이치를 설명하리라.

【釋】누구든지 논서(論書)를 저술하고자 할 때에는 타인에게 대사(大師)의 뛰어난 공덕을 먼저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갖가지 공덕을 미리 설명하고 나서 대사에게 정례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귀경게는 오직 불세존에게만 귀의하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偈】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모든 명(暝)을 소멸하고
【釋】일체 명의 소멸은 일체종지에서 비롯된다. 일체법에 무명은 진실한 이치를 실답게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기에 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명조차도 도리어 불세존에게는 구경(究竟)을 성취해서 대치(對治)에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종지는 일체법에서 영원히 나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멸(滅)이라고 하는 것이다. 독각과 성문이 일체법에서 비록 무명을 제거하였더라도 유염오무명(有染汚無明)에서 한 변〔偏:極〕만이 생겨나지 않는 까닭에, 이것은 일체종지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여타의 성인들의 공덕이란 것도 여래불공법의 최구원시처(最久遠時處)에 처하거나 여타 경지의 가없는 차별에 무염오무명(無染汚無明)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리행(自利行)의 구경을 밝히시는 부처님을 찬탄하고서 다시 이타행(利他行)이 원만하신 세존을 찬탄하는 것이다.
【偈】중생을 생사의 진흙탕에서 건져내는
【釋】여기서 생사란 세간의 수렁을 말한다. 따라서 그 건너가기가 힘든 것을 진흙탕으로 비유하였다. 중생이 이 가운데 빠져 아무도 구원해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오직 불ㆍ세존만이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건네 주고자 하는 것이다. “정법(正法)의 손길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이치에 따라 인도하여 제도하시니, 그 사람에게 자타(自他)의 이익된 행이 상응하게 된다.
【偈】대사(大師)의 여리(如理)한 가르침에 정례하오며
【釋】얼굴이 발에 맞닿게 절하는 것을 정례(頂禮)라고 이름하고, 가르침을 거짓되지 않게 펴시는 것을 대사라고 호칭하며, 전도(顚倒)되지 않는 것을 여리라고 호칭한다. 선법(善法)을 얻어서 악법(惡法)을 버리게 하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이름하니, 이와 같은 여리한 가르침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타의 방편이다. 여리한 가르침에 의해서만 생사의 진흙탕에서 중생을 끌어올려 제도하는 것이지, 학식ㆍ보시ㆍ권력 따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그렇다면 이와 같이 이치에 맞게 가르치시는 대사님에게 정례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偈】내 이제 대법구사(對法俱舍)의 이치를 설명하리라
【釋】■가 법(法)의 통명(通名)을 멸제교(滅濟敎)라 한다.
【문】별명은 어떻게 부릅니까?
【답】아비달마구사라고 한다.
【문】어떠한 법을 아비달마구사라고 이름합니까?
【偈】청정한 지혜의 조반(助伴)을 가리켜 대법(對法)이라 하는 것이니
【釋】지혜란 택법(擇法)을 가리키고, 청정이란 무구(無垢)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무류지(無流智)의 조반으로 인연(因緣)의 자량(資糧)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무류(無流)의 오음(五陰)을 설명하여 아비달마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실(眞實) 아비달마(阿毘達磨) 또는 가명(假名)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도 한다.
【偈】이와 같은 법(法)의 증득이 가능한 여러 지혜를 논하는 도(道)와
【釋】바로 유류(有流)의 사혜(思慧)ㆍ문혜(聞慧)ㆍ생득혜(生得慧) 및 조반론(助伴論)이니, 무류지(無流智)를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류지의 자량이기 때문에 가명 아비달마라고도 이름한다.
【문】어떤 뜻에서 이 같은 이름을 붙이게 됩니까?
【답】자체적인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에 달마(達磨)라 부르는 것이고, 또 일체법 가운데 진실한 법이 되는 열반을 모양으로 삼기 때문에 달마라 부르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지혜가 제법(諸法)을 대치(對治)하여 법 가운데 현전하기 때문에 아비달마라 부르는 것이다.
【문】본론은 어째서 아비달마구사란 이름으로 부릅니까?
【偈】그 이치의 모양에 연유해서 대법(對法)이 여기에 편입된다.
【釋】그러한 문구 자체를 아비달마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승의(勝義)에 부수해서 본론을 편찬했기 때문에, 본론이 여기서 장(藏)이라는 호칭을 얻는 것이다.
【偈】그 논(論)이 대법(對法)에 의지하는 까닭에 구사(俱舍)라 이름하는 것이니
【釋】여기서 아비달마란 본론의 의지처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법에 부수되어 본론이 인출되는 까닭이니, 그와 같은 법이 본론에서 역시 장(藏)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러한 이치에서 본론을 이름하여 아비달마구사라고 하는 것이다.
【문】이 같은 법의 그 쓰임새는 어떠합니까? 또 누가 이 같은 법을 해설하셨기에 법사께서 이를 그렇게도 정중히 설하십니까?1)
【偈】법의 간택(簡擇)을 여의고는 혹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방편이란 다시 있지 않다. 세간(世間)은 혹(惑)에 말미암아 고해(苦海)를 유전(流轉)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대법을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釋】택법(擇法)의 각분(覺分)을 떠나서 여러 가지 혹을 소멸시키는 별도의 방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혹’이 세간을 생사의 바다에서 윤회시키기 때문에, 정인(正因)에 따라서 제자들이 법을 간택할 수 있도록 세존께서 먼저 아비달마를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법을 떠나는 경우에는 성제자들이 진실한 법을 여리하게 간택할 수 없는 까닭에, 큰 스승이신 불ㆍ세존께서 가시는 곳마다 대법(對法)을 틈틈이 말씀하셨다. 이것은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존자를 위시한 여러 제자들이 이를 편찬하여 안치(安置)한 것이, 마치 달마다라(達磨多羅)존자가 『자설경(自說經)』을 편찬했던 일과 비슷하다. 또 듣자하니 비바사사(毘婆沙師:細釋師)들 간의 전설(傳說)도 이와 같다고 한다.
【문】어째서 제법을 간택하게 됩니까?
【답】제자들로 하여금 법을 간택하기 위해서 불ㆍ세존께서 아비달마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偈】유류(有流)와 무류(無流)의 법이 있으니
【釋】일체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유류와 무류로 나뉘어진다.
문여기서 유류란 무엇입니까?
【偈】도성제(道聖諦)를 제외한 유위(有爲)가 유류에 해당하는 것은
【釋】도성제를 제외한 여타의 유위법(有爲法)을 유류라고 이름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偈】그 유(流) 가운데에서 수면(隨眠)이 따라 증가하는 것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釋】만약 이렇다면, 모든 유는 멸제와 도제를 기연(機緣)해서 대경(對境)이 생기하는 것이고, 이 가운데에서는 면(眠)이 아니고는 부수되어 증가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류법(有流法)을 건립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 바로 반질(反質)의 난(難)이 성립된다. 이와 같은 불면(不眠)의 이치는 나중에 분별혹품(分別惑品)에서 상세히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유류법만을 설명하겠다.
【문】어떤 것이 무류법(無流法)입니까?
【偈】무류법은 도성제 및 3무위(無爲)가 있으니
【釋】3무위란 무엇입니까?
【偈】허공 및 두 가지 멸(滅)이다.
【釋】두 가지 멸이란 무엇입니까?
【답】택멸과 비택멸을 말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허공 따위의 3무위 및 도성제를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이 가운데에서 모든 유(流)가 그 면을 취하지 못하는 까닭에 무위법이라 약설하는 것이다.
【문】3무위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허공에 해당합니까?
【偈】여기서 허공은 무애(無碍)에 해당하는 것이고
【釋】허공은 무장무애(無障無碍)를 성품으로 삼는 까닭에, 색(色)이 이 허공 가운데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偈】택멸(擇滅)은 영리(永離)라고 부르는 것이니
【釋】유류법과는 영원히 서로 여의게 되는 것을 택멸이라 이름한다. 고제(苦諦) 따위의 4성제를 각기 법수(法數)로서 간택하는 것을 택(擇)이라 이름하니, 곧 지승인(智勝因)이다. 이와 같은 소득(所得)이 자신을 이롭게 함을 바로 택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엄밀하게는 택소득멸(擇所得滅)이라 말해야 하나 간략하게 설명하려는 까닭에 단지 택멸이라 호칭하는 것으로, 마치 달구지와 소가 상응하는 것을 이름하여 소달구지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일체의 유류법은 하나의 모양이지만 택멸만은 하나의 모양이 아니다.
【문】어째서 하나의 모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偈】모든 결(結)을 각각 대치(對治)하게 된다.
【釋】그 결의 수량처럼 택멸 또한 같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고를 견증(見證)하는 것에 연유해서 ‘혹’이 절단되어 택멸될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일시에 모두 깨쳐서 일체의 ‘혹’이 택멸되어야 한다. 만약 이렇다면, 나머지 대치의 도를 닦더라도 바로 공허해서 과보도 없을 것이다.
【문】어째서 경전에서 택멸무동류(擇滅無同類)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답】바로 택멸무동류인(擇滅無同類因)과 택멸비타동류인(擇滅非他同類因)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경전의 취지는 진리를 비(非)와 무(無)의 동일한 부류로 나눠서 택멸을 설명하는 것뿐이다.
【偈】생(生)을 욕구하는 생을 영구히 끊는 데는 별도로 비택멸이 있다.
【釋】미래의 제법이 생겨나는 것을 영구히 막는 데는 택멸과 다른 별도의 멸법(滅法)이 있는데, 이것을 비택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간택에 연유해서 소득〔得〕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무엇을 소득이라 합니까?
【답】인연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의 의식 및 안근이 하나의 색진(色塵)에 기연되어 생기할 때, 여타의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따위는 모두 즉각 시들어 버리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5식(識)의 화합도 비택멸을 기연해서는 그 경계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5식은 과거의 색진을 연하여 경계를 삼는 공능(功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識) 따위는 비택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인연에 연유해서 구족되지 않는 까닭이다. 두 가지 멸을 의지해서 네 구를 세우게 된다. 어떤 제법은 오로지택멸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거현재정생위법(過去現在定生爲法)이라 호칭하며 모두 유류법(有流法)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떤 제법은 오직 비택멸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생위법무류유위(不生爲法無流有爲)이라 호칭하고, 어떤 제법은 두 가지 멸을 모두 갖추어 유류정불생위법(有流定不生爲法)이라고 호칭하게 된다. 어떤 제법은 두 가지 멸이 없기 때문에, 과거현재정생위법(過去現在定生爲法)이라고 호칭하나 모두 무류법에 해당된다. 여기서 3무위의 설명을 마친다.
【문】앞에서 유위법은 도성제를 제외하기 때문에 유류라 한다고 설명했는데, 유위법이란 무엇입니까?
【偈】다시 모든 유위법이란 소위 색음 따위의 5음인데
【釋】색음(色陰)ㆍ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의5음은 일체의 유위법을 섭수하는 것으로 화합에 미리 다다른 인연(因緣)의 소작(所作)이다. 그러므로 유위법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연(緣)이 없거나 하나의 연으로써 생겨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5음은 인연의 종류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그 공능이 방해받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홀로 서서 돌아가는 팽이와도 같다.
【偈】세로(世路)ㆍ언의(言依)ㆍ유리(有離) 및 유류(有類)라고도 말하고
【釋】가 모든 유위법은 이미 행해졌고 행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행해지는 까닭에 세로라고 이름한다. 또 그 말하는 바가 무상(無常)한 까닭에 언어를 방언(方言)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말에 상응되는 의미를 언의(言依)라고 이름하는데, 그 뜻을 포착하는 것에 의해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경전에서는 “유위법을 ‘언의’라 이름한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곧 『분별도리론(分別道理論)』2)의 논지와 어긋나게 된다. 이 논에서는 언의가 십팔계(十八界)로 포섭된다고 풀이한다. 이와 같이 영원히 벗어나는 것을 이(離)라고 이름하는데 소위 열반이 그것이다. 일체의 유위로부터 열반하여 영원히 벗어나는 까닭이다. 유위법에는 ‘이’가 있고 열반에는 ‘이’가 없으므로 이와 같은 유위법을 유리(有離)라고 이름한다. 또 원인이 있는 까닭에 유류(有類)라고도 이름한다. ‘유(類)’는 인(因)이라는 뜻으로 비바사 논사들이 이렇게 풀이하는 것으로 이것이 유위의 별명이며, 이러한 것이 바로 유위법이기도 하다.
【偈】유류는 취음(取陰)이라고도 이름하고
【釋】여기서는 무엇을 현시(顯示)하는 것입니까?
【답】이 취(取)는 음유(陰有)라고도 이름한다. 그러나 음은 자체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류유위(無流有爲)라고도 한다. 이것은 음 가운데 있는 혹(惑)으로써 그 취하는 바를 삼는 것이다. 음은 이와 같은 ‘취’를 좇아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취음(取陰)이라고 이름하는데, 비유하자면 마치 쥐불과 왕겨불과도 같다. 또 취하는 바에 부수되는 까닭에 비유하자면 마치 왕과 신하들의 관계와도 같다. 또한 모든 ‘취’는 ‘음’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까닭에 취음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꽃나무와 과일나무와도 같은 것으로 이것이 유류의 제법이 된다.
【偈】또는 투쟁(鬪爭)이라고도 하고
【釋】여러 가지 ‘혹(惑)’을 ‘투쟁’이라고도 이름하는 것은 모든 선법을 동요시키고 아울러 나와 남을 손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쟁이란 면(眠)에 부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투쟁이라 말한다. 비유하자면 유류와도 같은 것이다.
【偈】고제(苦諦)ㆍ집제(集諦) 세간,
【釋】성인의 의향(意向)에 어긋나는 까닭에 ‘고’라 이름한다. 고는 여러 가지 견(見)에 부수되어 생겨나는 까닭에 집(集)이라 이름한다. 또 종국에는 파괴되는 까닭에 세간이라 이름하는 것은 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偈】견처(見處) 및 3유(有)라고도 말한다.
【釋】여러 가지 ‘견’의 소의(所依) 가운데 머무르게 되어 그 증장(增長)하는 바에 부수되는 까닭에 견처라 이름한다. 단지 유(有)로써 유를 삼는 까닭에 ‘유’라고 이름하는 것은 바로 유류법을 이렇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와 별도의 명수(名數)는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다. 다시 색음 따위의 5음이 있다.
【偈】색음은 5근ㆍ5진(塵) 및 무교(無敎:無表色)를 말하는 것이니
【釋】5근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 근을 말하고, 5진은 안근 따위의 5근의 경(境)으로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및 무교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헤아려서 ‘색음’이라 이름한다. 여기서는 색진 따위의 5진을 먼저 설명하겠다.
【偈】이처럼 식(識)이 의지하는 정색(淨色)을 안근 따위의 근이라 이름한다.
【釋】색ㆍ성ㆍ향ㆍ미ㆍ촉의 식이 의지하는 것이 5정색의 부류이므로 그 차제에 상응해서 숙지해야 한다. 이 같은 안ㆍ이ㆍ비ㆍ설ㆍ신 근의 다섯 종류의 근을 불ㆍ세존께서 “비구들이여, 눈은 내입(內入)이니 사대(四大)가 합해져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듯이, 정색성(淨色性)의 부류에 해당된다. 앞서 이미 설명한 안근 따위의 다섯 종류의 근을 자세히 말씀하신 것처럼, 이와 같은 식이 정색에 의지하는 것을 ‘안근 따위의 다섯 종류의 근’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안식 따위의 식이 여기에 의지하는 도리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도리를 건립하는 경우, 곧 『분별도리론』의 이치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문】『분별도리론』에서는 어떠한 것을 안근이라 합니까?
【답】안식의 소의가 되는 정색을 말한다. 여기서 다섯 종류의 근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이어서 다섯 종류의 진을 설명 하겠다.
【偈】색은 두 종류에서
【釋】첫 번째가 현색(顯色)이고 두 번째는 형색(形色)이다. 현색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이다. 여타의 색은 이 네 종류의 색과 다르지 않다. 형색에는 장(長) 따위의 여덟 종류가 있으나 이것은 ‘색입(色入)’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偈】다시 스무 종류로 나뉘고
【釋】청색ㆍ적색ㆍ황색ㆍ백색ㆍ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사(邪)ㆍ구름ㆍ연기ㆍ먼지ㆍ안개ㆍ그림자ㆍ빛ㆍ명(明)ㆍ암(暗)을 가리킨다. 여타의 논사들은 “허공도 한 종류의 색이 되는 까닭에 모두 스물한 가지 색이 존재한다”고도 한다. 여기에서 그 형태가 수평인 것이 ‘정’이 되기 때문에 수평이 아닌 것을 ‘사’라고 이름하고, 땅의 기운을 ‘안개’라 이름하고 태양의 빛을 ‘빛’이라 이름한다. 달ㆍ별ㆍ화약ㆍ보배구슬ㆍ번갯불을 ‘명’이라 이름하고, 이 가운데 색이 비춰지는 것을 ‘그림자’라 이름하며, 이것에 반대되는 것을 ‘암’이라 이름한다. 여타의 색은 쉽게 알 수 있는 까닭에 여기서 해설하지 않겠다. 어떤 ‘색입’은 유현무형(有顯無形)이므로바로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그림자ㆍ빛ㆍ명ㆍ암이다. 어떤 ‘색입’은 유형무현(有形無顯)이므로 장단 따위의 치수에 해당하는데, 바로 유교신업(有敎身業)을 모양으로 삼는 것이다. 그 색입이 유현무형한 것이 소위 여타의 모든 색이다. 여타의 논사들은 “색입이 무현무형(無顯無形)한 것이 무교색(無敎色)이다”라고 한다. 또 여타의 논사들은 “오직 밝고 어둠만이 유현무형이다”라고도 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언제나 청색 따위의 여러 가지 색을 볼 때 장(長) 따위의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어째서 하나의 물건에 두 가지 지(知)가 소연(所緣)된다고 말합니까?
【답】이것은 두 가지 색이 하나의 진(塵) 가운데 현전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이치상 옳지 않다. 유교신업(有敎身業:有表身業)에 ‘반질(反質)의 난(難)’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다시 색입을 설명하겠다.
【偈】성진(聲塵)은 여덟 종류가 있으며
【釋】유집의(有執依)와 비집의(非執依:無執愛)는 4대를 원인으로 삼는 것이므로 여기에 각각 중생명(衆生名)과 비중생명(非衆生名)의 소리가 있어서 네 종류의 성(聲)이라 이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소리에는 다시 가애(可愛)와 비가애(非可愛)에 연유하는 차별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덟 종류가 된다. 여기서 유집의를 원인으로 하는 것은 언어나 박수 따위의 소리이고, 비집의를 원인으로 하는 것은 바람ㆍ나무ㆍ파도 따위의 소리이다. 중생명이란 의미가 함축된 말소리를 말하는데, 이것에 반대되는 것이 비중생명이다. 어떤 논사들은 “유집의와 비집의를 겸하면서 4대를 원인삼는 별도의 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손바닥과 북이 마주쳐서 생기는 소리 따위이다”라고 풀이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한 가지 색깔을 현시하는 인허(隣虛:極微塵)는 두 가지 4대에 의지하여 생기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이 소리 또한 마땅히 이와 같다. 소리에 대하여 설함을 마친다.
【偈】미(味)가 여섯 종류이고
【釋】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쓰고 싱겁다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偈】향(香)이 네 종류이며
【釋】향내ㆍ구린내ㆍ평등향(平等香)ㆍ불평등향(不平等香)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아비달마에서 냄새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도 설명하는데, 향내ㆍ구린내ㆍ평등향의 세 가지를 말한다.
【偈】촉진(觸塵)은 열한 종류가 있다.
【釋】촉진에는 열한 종류가 있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바로 4대ㆍ활(滑)ㆍ삽(澁)ㆍ중(重)ㆍ경(輕)ㆍ냉(冷)ㆍ배고픔ㆍ목마름이다. 여기서는 4대를 제외한 나머지 것만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부드러운 것을 연(軟)이라 이름하고, 거칠고 마른 것을 삽이라고 이름한다. 저울에 달 수 있는 것을 중이라 하고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경이다. 뜨거운 것에 애착하는 것을 냉이라 하고, 먹는 것에 애착하는 것을 배고픔이라 하며, 마시는 것에 애착하는 것을 목마름이라 한다. 원인에서 그 결과를 세워서 이름짓기 때문에 이같이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는 기쁨이여.
정법을 연설하시는 기쁨이여.
대중이 화합하는 기쁨이여.
다 함께 모여서 출가하는 기쁨이여.

색계에는 배고프고 목마른 촉(觸)은 없고 여타의 ‘촉’만이 있다. 여기에서 의복이 별도의 촉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역시 4대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촉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다. 그 의복으로 차가운 감촉에 대해 이익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이와 같다. 앞에서 색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여러 종류 가운데에서도 어떤 때에는 한 가지 사물에 비롯해서 안식(眼識)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때에는 한 종류만이 분별된다. 또 어떤 때에는 여러 가지 사물에 비롯해서 안식이 생겨나게 되나, 이와 같은 때에는 분별되는 것이 없다. 비유하자면 마치 군대의 행진에서 한없는 현색과 형색이 현시되는 것과도 같고, 또 많은 보석을 멀리서 쳐다보는 경우와 같다.
이식 따위도 또한 이와 같다. 신식은 그 종류가 극히 많은 것 같아도 단지 다섯 종류의 촉에 연유해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4대의 촉과 여러 가지 촉 가운데에서는 ‘활(滑)’ 따위의 어느 한 가지에 수연(隨緣)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어떤 논사들도 있고, 여타의 논사들은 “열한 종류의 촉이 구족되어야만 신식이 생기하게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는 ‘진’을 총연(總緣)하는 것에 해당하게 된다. 따라서 통경(通境)을 진으로 삼게 되는 경우에 5식은 단지 별경(別境)만을 소연해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5식(五識)이 대입되는 별상(別相)이 경(境)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별상으로 경을 삼는 것만이 허용되고 물질에 대한 별상은 성립하지 못한다.
【문】여기에 어떠한 과실이 있게 됩니까?
【답】이와 같은 이치를 사량해야만 한다. 신근과 설근의 두 가지가 동시에 진(塵)에 도달하면 어느 쪽의 식이 먼저 생기하겠는가? 강한 쪽의 진에 의지하는 식을 먼저 일으키게 된다. 만약 진에 도달하는 것이 평등한 경우에는 설식이 먼저 생기하게 된다. 내입(內入)의 식욕(食欲)이 먼저 인도하는 바를 상속받는 까닭이다. 여기서 5근ㆍ5진 및 그 취진(取塵)의 도달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이제는 무교색(無敎色)을 설명하겠다.
【偈】어찌 난심(亂心)과 무심(無心)뿐이겠는가? 유(流)에 부수해서 정(淨)과 부정(不淨)이 4대에 의지하게 되는데, 과연 무엇을 무교색이라 말하는가?
【釋】이질적인 모양에 소연(所緣)하는 것을 난심이라 이름하고, 무상정(無想定) 및 멸심정(滅心定)에 들어가는 것을 무심(無心)이라 이름한다. 여기서 비란심(非亂心) 및 유심(有心)을 현시하려는 까닭에 ‘어찌 ~뿐이겠는가’3)하고 수식해서 설명하게 된다. 이것의 상속은 동시에 구족하기도 하고, 나중에 성립하기도 하는 것이 비슷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류(隨流)라고 이름한다. 따라서 선(善)을 정(淨)이라 이름하며, 악(惡)을 부정(不淨)이라 이름하게 되니, 그 상속의 수용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다. 이것이 저것과 다르다는 것을 간택하고자 4대에 의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비바사의 논사들은 “인(因)으로 의지하여 이치를 삼는다”고 풀이한다. 4대는 무교색에 해당하니, 생기하는 것 따위의 다섯 가지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이름지은 원인을 현시하려는 까닭에 ‘무엇을~’이라고 수식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은 비록 유색업(有色業)으로써 성품을 삼을지라도 유교색(有敎色)이 타인에게 공통적으로 인지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 무교색(無敎色)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여러 논사들의 설법임을 현시하려는 까닭에 설명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간략하게 설명하는 경우에는 이것을 유교색이라 이름한다. 그리고 삼마제(三摩提:等持)에서 생겨나는 선악성(善惡性)의 색을 ‘무교색’이라 이름한다.
【문】앞에서 4대에 의지한다고 설명했는데 4대란 무엇입니까?
【偈】4대의 지계(地界)와 수(水)ㆍ화(火)ㆍ풍(風) 계를 말하는 것이니
【釋】이와 같은 4대는 자상(自相) 및 그 소조색(所造色)을 능지(能持)하는 까닭에 계라고 이름하게 된다.
【문】어째서 4계를 이름하여 대(大)라고 말합니까?
【답】여타의 일체 색이 의지하기 때문이고, 그 곳에서 추대(麁大)를 이루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지극히 편만하게 생기하여 지ㆍ수ㆍ화ㆍ풍의 집합〔集聚〕 가운데에서 그 형량(形量)이 장대해지기 때문이다. 또 일체 유색의 물건이 생기하는 것을 증장시킬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 대사업(大事業)을 영위하는 까닭에 대라 이름하는 것이다.
【문】다시 이 같은 지(地) 따위의 계는 어떠한 업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며, 무엇으로 자성(自性)을 삼게 됩니까?
【偈】지(持) 따위의 업에서
【釋】승지(勝持)ㆍ화섭(和攝)ㆍ성숙(成熟)ㆍ인장(引長)의 네 가지 업 가운데 그 차제로 지ㆍ수ㆍ화ㆍ풍의 계를 성취시킨다. 그 계가 서로 이전되어 왕성해지는 까닭에, 인장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을 4대 업의 자성자(自性者)의 차제라고 이름한다.
【偈】견고하고 축축하고 따뜻하고 움직이는 성품이 획득된다.
【釋】지계는 견고함을 성품으로 삼는다. 수계는 축축함으로 성품을 삼는다. 화계는 따뜻함으로 성품을 삼는다. 풍계는 움직임으로 성품을 삼는다. 4대를 인도하여 상속시켜서 그 처소를 다르게 생기시키는 까닭에 마치 등잔불을 불어 끄는 것 따위를 움직임이라 이름한다.
【문】『분별도리론』에서는 무엇을 풍계라 말합니까?
【답】경촉(輕觸)이라고 말한다. 경전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경촉이 바로 소조색(所造色)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법은 움직임 자체를 정해진 성품으로 삼는 까닭에, 움직이는 자체가 바로 풍계라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그 업을 이루는 것으로 바람의 자성을 현시하는 것이다.
【문】다시 지(地) 등과 지계(地界) 등은 어떻게 다릅니까?
【偈】지대(地大)를 현색(顯色)과 형색(形色)으로 나누는 것은 세간에 연유해서 그러한 명상(名想)을 건립한 것이다. 수대(水大)ㆍ화대(火大)도 이러하고
【釋】만약 세간 사람이 저 지대를 시현(示現)하고자 할 때에는 단지 현색(顯色)과 형색(形色)만을 현시(顯示)하고서 지대를 시현한 것처럼 여긴다. 수대ㆍ화대의 시현도 역시 그러하다. 단지 현색과 형색만을 현시하는 까닭에 ‘세간의 상(想)’이라는 가명(假名)에 의지하게 된다. 색입이 지(地) 등 3대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偈】또한 풍계가
【釋】같은 풍계를 세간에서 바람이라고 말한다.
【偈】역시 이러하다.
【釋】세인이 현색과 형색이 지대를 이룬다고 가설하는 것처럼, 바람에 대한 설명도 이와 같아서 혹은 폭풍이라고도 말하고 혹은 돌개바람이라고도 말한다.
【문】어째서 무교(無敎)가 나중에는 이와 같은 음의 명색(名色)이 된다고 하십니까?
【답】현전하여 변괴(變壞)하는 까닭이다. 불ㆍ세존께서 “비구들이여, 이 법에 연유해서 변괴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변괴하는 까닭에 색이 음을 취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문】어떠한 법이 변괴에 해당합니까?
【답】손바닥 따위에 접촉함에 의해서 변하여 없어지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그와 같은 애(碍)를 의대(依對)하는 까닭에 변괴할 수 있다”고 자세히 말씀하신다. 다시금 의부(義部)의 경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애욕의 티끌을 구하는 이는
그 애욕에 물들어버린다.
만약에 구하는 바에 따르지 못하면
저 즐겁던 것이 화살 맞은 것 같으리라.

또 다른 논사들은 “이와 같은 색은 계가 변괴하는 데서 생기하는 것이고, 애(碍)를 상대하는 까닭에 ‘색’이라 이름한다”고 풀이한다. 만약 이와 같은 경우에 인허색(隣虛色)이 색으로 성립하지 못하는 것은 변하여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리는 옳지 못하다. 인허색은 독립해서 주(住)하는 것이 아니며 화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화합하여 주하는 것이라면, 바로 변하여 없어질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과거ㆍ미래의 색도 ‘색’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이것도 이미 변화된 것이고 또 앞으로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는 성품의 종류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장작이 불태워지는 경우와 같다. 만약 이와 같이 무교(無敎)가 색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역시 유교색(有敎色)에 연유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변괴되는 것은 동일해서 마치 나무가 흔들리면 그 그림자도 흔들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도리는 옳지 않다. 실제로 무교색은 변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의 도리에 따르게 되면, 유교색이 시들어 없어질 때는 무교색도 시들어 없어질 것이다. 마치 나무가 없어지면 그 그림자도 없어지는 것과 같다. 다시 어떤 논사들은 “변괴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교색도 역시 변괴한다”고 풀이하나 이러한 질난(質難)도 옳지 않다. 만약에 그렇다면 안식 따위도 변괴에 의지하는 까닭에 마땅히 색으로 성립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대의 주장은 이치적으로 옳지 않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무교색이 4대에 의지해서 생기하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나무에 의지해서 생기고 광채가 보석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식 등이 이러하지 않음은 안근 등에 의지하여 생기하기 때문이다. 모든 근은 한결같이 오직 안(眼) 등의 식을 위한 그 생인(生因)을 만드는 것이라는 이러한 주장은 『비바사론』의 도리가 아니다. 이른바 나무에 의지해서 그림자가 생긴다든지 보석에 의지해서 광채가 생긴다는 것은 다른 논사의 해석이다. 왜냐 하면 그림자 따위의 현색인허(顯色隣虛)는 각각 4대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이와 같다면, 그림자와 광채는 나무와 보석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무교색은 이러한 것에 공통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것이 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무교가 의지하는 4대는 이미 시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논사들은 무교색이 괴멸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주장은 구의(救義)를 이루지 못한다. 다시 여타의 논사들은 따로 구의(救義)의 언변(言辯)을 세워서 “안 등이 제식(諸識)에 의지함에는 각각 차별이 있다. 그 변괴에 의지하는 것이 마치 안 등과 같다. 그 변괴하지 않는 것에 의지하는 것은 의식 따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교색의 의지는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풀이하나, 이러한 질난도 공평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도리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변괴가 가능한 것에 연유하는 까닭에 색음이라 이름한다. 이 같은 법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색음으로 성품을 삼는 것이다.
【偈】이와 같은 근과 진을 다시 말하자면 10입(入)과 10계(界)일지니
【釋】만약 그 입(入)의 문(門)을 세운다면 10입에 귀속된다. 이른바 안입(眼入)ㆍ색입(色入)에서부터 신입(身入)ㆍ촉입(觸入)까지이다. 만약 그 계(界)의 문(門)을 세우는 경우에는 10계(界)로 귀속되는 것인 까닭에 소위 안계(眼界)ㆍ색계(色界)에서 나아가 신계(身界)ㆍ촉계(觸界)이다. 색음과 함께 입과 계를 안립하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다음에는 수음(受陰) 따위의 여러 가지 음을 설명하겠다.
【偈】수음은 촉을 따라서 접수되고
【釋】세 가지 수촉(隨觸)의 접수가 있는데 이것을 수음이라 이름한다.
【문】어떠한 것이 그 세 가지입니까?
【답】낙(樂)ㆍ고(苦)ㆍ불락불고(不樂不苦)를 접수하는 ‘촉’인데 이와 같은 세 가지를 3수(受)라고 이름한다. 다시금 이와 같은 ‘수’를 분별하면, 곧 6수취(受聚)가 해당하는 것이니, 안촉(眼觸)에서 생기하는 수(受)에서 의촉(意觸)에서 생기하는 ‘수’까지를 가리킨다.
【偈】상음(想陰)은 별도의 모양을 집의(執依)하는 것이니
【釋】파랑ㆍ노랑ㆍ길고ㆍ짧음ㆍ남자ㆍ여자ㆍ친함ㆍ원망함ㆍ즐거움ㆍ고통 따위의 모양을 차별적으로 집의하는 것을 ‘상음’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 상음을 분별하면 6여수(如受)가 있다.
【偈】이 네 가지와 다른 것은 모두 행음(行陰)이라 이름한다
【釋】색ㆍ수ㆍ상ㆍ식의 네 가지 음을 제외한 나머지 유위법을 행음이라 이름한다. 경전에서는 불ㆍ세존께서 “6고의취(故意聚)를 행취음(行取陰)이라 이름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그 수승함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며 ‘고의취(故意聚)’가 업의 성품이 되는 까닭이다. 또 조작하는 중에 가장 수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불ㆍ세존께서는 “그 공용하는 바를 만들어 능히 유위법을 생기시키는 이러한 것이 유류유위(有流有爲)의 행취음(行聚陰)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 나머지 심법(心法)과 불상응법(不相應法)은 음에 섭수되지 못하므로 고제와 집제의 건립조차도 불가능하게 된다. 또 그것에서 응지(應知)하고 응리(應離)하는 것의 안립도 역시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ㆍ세존께서 “나는 미견(未見)하고 미통(未通)하는 1법(法)이 결코 고제(苦諦) 이후의 지경(地境)에까지 다다른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또 미제(未除)하고 미멸(未滅)하는 법(法)도 역시 이러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모든 유위법은 ‘행음’에 섭수되므로 이러한 도리를 마땅히 믿어야 한다.
【偈】이러한 수(受) 따위의 세 가지 음(陰)은
【釋】수ㆍ상ㆍ행의 세 가지 ‘음’을 가리킨다. 만약에 입(入)과 계(界)를 건립하는 경우,
【偈】혹은 법입(法入)과 법계(法界)라고 이름하기도 하니 무교(無敎)와 무위(無爲)이기도 하다.
【釋】이와 같은 7법을 법입(法入)과 법계(法界)라고 이름한다.
【偈】식음(識陰)은 쌍대(雙對)해서야 보게 되는 것으로
【釋】여러 가지 진을 마주 대하는 의(意)ㆍ식(識)ㆍ심(心)을 ‘식음’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와 같은 식이 분별되어 바로 6식취(識聚)를 이루는 것이 소위 안식에서부터 의식까지이다. 이렇게 식음을 설명했다. 다시 그 입(入)을 안립하는 경우와
【偈】의입(意入)이라고도 말하고
【釋】만약 그 계를 안립하는 경우
【偈】일곱 종류의 계라고도 말하니
【釋】무엇이 ‘일곱 종류’입니까?
【偈】바로 6식(六識)과 의근(意根)을 가리킨다.
【釋】안식계(眼識界)에서부터 의식계(意識界) 및 의계(意界)이다. 이 가운데 5음에서 12입 및 18계가 이뤄진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대로이다. 따라서 무교색(無敎色)을 제외한 이와 같은 색음에서 10입과 10계를 안립하게 된다.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무교(無敎)와 무위(無爲)에서 법입(法入)과 법계(法界)를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식음(識陰)이 바로 의입(意入)에 해당하는 것이며 6식계에 해당하는 것이며 의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어째서 이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것입니까?
【답】앞에서 6식만이 식음이 된다고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다.
【문】만약 이와 같은 경우에 이러한 것은 6식과는 다른 것인데, 여기서 어떠한 법을 의계라 이름하게 됩니까?
【답】6식과 이질적인 별도의 의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여러 식 가운데에 있는 것이라도
【偈】6식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시드는 것을 식(識)이라고도 말하고 의근(意根)이라고도 이름하는 것이니,
【釋】6식 가운데 처한 1법(法)은 연(緣)에 따라 끊임없이 소멸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식을 의계(意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먼저 자식이 되고 난 후에야 아비가 되는 것과 같고, 또 먼저 열매가 된 후에야 씨가 생기는 것과 같다. 식도 역시 이와 같아서 먼저 6식을 이룬 후에야 의계를 이룬다. 만약 이렇다면 실제로 색계는 오직 열일곱 종류의 계이거나 열두 종류의 계일 뿐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6식계 및 의계는 서로 섭수되는 까닭이다.
【문】이와 같은 경우에 어째서 18계를 안립하게 됩니까?
【偈】6식에의 의지를 성립시키려는 까닭에 계를 열여덟 종류로 나눈다.
【釋】이와 같은 다섯 가지 식계는 안계 따위의 5계로서 의지를 삼는 까닭은 제6 의식계에는 별도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지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의계(意界)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의(所依)와 능의(能依) 경계(境界)의 안립에 연유해서 이와 같은 세 가지에 6을 곱하기 때문에 계는 열여덟 종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아라한의 최후심(最後心)이 의계에 해당하지 않는 까닭은 후에 생겨나는 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무간멸(無間滅)의 성립에서 의계가 이뤄진다는 이와 같은 도리는 옳지 않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이것은 의식의 성품 가운데 이미 머무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인연이 구족되지 않기 때문에, 그 후속되는 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음에 연유하여 일체의 유위를 섭수하게 되고, 또 취음(取陰)에 연유해서 일체의 유류를 섭수하게 된다. 입(入)에 연유하고 계(界)에 연유해서 일체법을 섭수하게 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제법에 다시 간략하게 섭수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偈】일체법을 간략히 섭수하는 것은 하나의 음(陰)ㆍ입(入)ㆍ계(界)에 연유해서이니ㆍ
【釋】음 가운데서는 색음으로써, 입(入) 가운데 처해서는 의입으로써, 계 가운데 처해서는 법계로써 일체법을 섭수하게 되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여래께서 가시는 곳마다 섭수를 말씀하신 것도, 그 도리가 이러한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偈】동일한 성품의 종류이기 때문에
【釋】이와 같은 섭수가 ‘동일한 성품의 부류’에 연유하여 상응하는 까닭은 ‘이질(異質)적인 성품의 부류’에 연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ㆍ
【偈】여타 법성의 종류와는 다르다.ㆍ
【釋】제법은 여타의 성품과 서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의 성품과 저것의 법이 상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것의 성품에 연유해서 여타의 성품을 섭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안근과도 같은 것이다. 색음에 연유하거나, 안입(眼入)ㆍ안계(眼界)ㆍ고제(苦諦)ㆍ집제(集諦) 따위에 연유하는 섭수도 모두 동일한 성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타의 음 따위에 연유받지 못하는 것도 그 성품 자체가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처럼 그 처소를 빗대어 설명하는 경우에는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을 섭수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4섭류(攝類)에 연유해서 일체의 중생을 섭수하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은 섭수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명(假名)에 해당하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문】어찌하여 스물한 종류의 계를 이루지 않습니까?
【답】어째서인가 하면 눈ㆍ귀ㆍ코가 각각 두 개씩 있기 때문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偈】유(類)ㆍ경(境)ㆍ식(識)이 동일한 까닭에 비록 그 처하는 바가 두 개이지만 하나의 계(界)를 이루게 된다.
【釋】여기에서 동일한 류란 두 가지 모두 눈이라는 동일한 성품의 부류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경계란 두 가지 모두 동일하게 색을 반연하는 것이고, 동일한 식이란 두 가지 모두 하나의 안식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근은 비록 두 개이지만 하나의 계(界)를 함께 이루게 된다. 귀와 코도 이러한 이치임을 숙지해야 한다.
【偈】그렇다면 두 개씩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장엄하게 하려는 때문에 두 개씩 생긴다고 말한다.
【釋】만약 실제로 이러하다면, 안계 따위의 한 계에 어떻게 일일이 두 개씩 생겨나게 됩니까?
【답】그 소의를 장엄하기 위한 때문이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하나의 눈과 귀가 하나의 의지처에서 생기고, 코 하나에 콧구멍 하나가 생기게 될 것인데 이러한 신근은 아주 보기 흉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리는 옳지 않다.
【문】그렇다면 고양이ㆍ승냥이ㆍ소쩍새 따위도 눈ㆍ코ㆍ귀가 두 개인데 이것조차 장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 만약에 그렇다면 어째서 반드시 두 개가 생겨야 합니까?
【답】그것은 식의 성립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사람이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만을 뜨거나 한쪽 눈을 뜨고 한쪽 눈을 반쯤 감게 되면, 사물을 보는 것이 모두 명확하지 않은 것과 같다. 따라서 식을 장엄하게 성취시키기 위해서 이와 같은 세 가지 근은 각기 두 개의 처소가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음(陰)ㆍ입(入)ㆍ계(界)의 설명을 마치고, 지금은 그 도리에 대해 설명하겠다.
【문】음ㆍ입ㆍ계의 도리란 무엇입니까?
【偈】취(聚)ㆍ내문(來門)ㆍ성품은 그 이치의 모양에 음ㆍ입ㆍ계의 세 가지 이름이 있다.
【釋】모든 색을 수반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ㆍ현재ㆍ미래이거나, 안에 있고 바깥에 있거나 거칠고 미세하거나 못생기고 예쁘거나 가깝고 멀거나 간에, 이러한 일체의 색이 하나의 처소에 섭수되어 화합하는 것을 색음이라 이름한다. 경전의 말씀에 따르면 음은 화합〔集聚〕이란 뜻인데, 이러한 의미에서 음의 도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과거의 색은 무상(無常)에 연유해서 이미 소멸하였고, 미래는 아직 생기지 않았으며, 현재는 이미 생겨났으나 아직 멸하지 않은 것이다. 자체적인 상속을 내(內)라 하고 이것과 다른 경우를 외(外)라 하나, 간혹 입(入)에 연유해서 그 내외(內外)를 판단하기도 한다. 애(碍)가 있으면 거칠다 하고, 애가 없으면 미세(微細)하다 하는데, 간혹 상대적으로 거칠고 미세한 것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대의 주장처럼 상대적으로 거칠고 미세함을 판단할 수 없다는 이러한 도리가 이치상 옳지 않은 까닭은 그 상대적으로 비롯하는 바가 이것과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같은 경우에 저것을 상대하여 거을 성립시킨다면, 저것을 상대하여 미세함을 성립시킬 방편이 없다. 비유하자면 아비와 자식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더러운 것을 못생겼다고 하고 더럽지 않은 것을 예쁘다고 하며, 과거와 미래를 멀다고 하고 현재를 가깝다고 하는 것처럼 식음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 이치가 이와 같다. 또 차별에 수반해서 판정하기도 하는데, 5근(五根)에 의지하는 것은 거이 되고 마음에 의지하는 것은 미세함이 된다. 그러나 비바사의 논사들은 지대(地大)에 의지해서 거칠고 미세함을 판단한다. 법구(法救)존자는 “5근에 반연하는 것을 거칠다고 하고 이것과 다른 것을 미세하다고 이름한다. 애착할 만하지 않은 것을 못 생겼다고 이름하고 애착할 만한 것을 예쁘다고 이름한다. 보이지 않는 곳을 멀다고 하고 보이는 곳을 가깝다고 한다”고 풀이한다. 과거 따위는 그 이름에서 현색(顯色)되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해석이 필요없다. 수 따위도 역시 이러한 것임을 숙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 의지에 따라 멀고 가까운 것이 존재하게 된다. 거칠고 미세함도 앞서의 설명과 같다.
입(入)이란 심ㆍ심법이 내문(來門)한다는 의미와 함께, 늘어난다는 의미도 있어서 마음과 심법을 증장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계는 차별(差別)이란 뜻인데, 마치 하나의 산 속에 여러 가지 철ㆍ동ㆍ금ㆍ은 따위의 차별이 있는 것과 같기에 계(界)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하나로써 의지하는 가운데, 혹은 그 상속하는 가운데에서 열여덟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18계(十八界)라 이름하게 된다. 여기서 차별로써 근본 취지를 삼는 이러한 가운데에서의 근본이란 바로 동류인(同類因)을 말한다. 이러한 열여덟 종류의 법은 동류상속(同類相續)하는 동류인에 해당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이라 이름한다. 따라서 만약 이와 같은 견해에서, 무위법은 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도리도 이치상 옳지 않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마음과 심법(心法)은 동류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여타의 논사들은 “계는 종류라는 뜻이다. 제법의 종류란 바로 열여덟 가지 자성(自性)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계라고 이름한다. 만약 음이 화합〔集聚〕의 뜻에 해당하는 경우, 음은 마땅히 가명(假名)이어야 한다. 많은 물건이 모여 화합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의 무리와 같은 것이다”라고 풀이하나, 이와 같은 도리도 이치상 옳지 않다. 하나의 물건인 인허도 음이라는 이름을 얻기 때문인데, 만약 이 같은 경우에는 화합한다는 뜻으로써 음을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하나의 물건에는 화합한다는 뜻이 없는 까닭이다. 또 어떤 논사들은 “사물의 과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음의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다시 어떤 논사는 “분분(分分)5)은 음의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설명에 따르면 나라는 것은 세 가지 음의 물체에 유전(流轉)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리는 경전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경전에서는 “단지 화합이 음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경전에서 “여러 가지 색에 수반되는 것은 과거ㆍ미래ㆍ현재 따위에서 동일하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이것이 경전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과거 따위의 한 가지 색의 수반을 음(陰)의 뜻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반드시 경전에 따라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일체의 과거 따위의 색 하나하나가 모두 색음이라고 이름하게 된다는 주장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일체의 색이 하나의 처소에서 화합하는 것을 음이라 이름한다는 설명에 연유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음은 가명유(假名有)의 화합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경우에는 색을 가진 모든 입(入)이 그대에게는 당연히 가명유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안근 따위의 인허가 단순히 모여서 화합하기 때문이라는 이와 같은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모여서 화합〔集聚〕하는 가운데에 하나하나는 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진과 함께 만들어지는 까닭에 근 역시도 12입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바사론』에서 “대법사(對法師)가 만약 가명(假名)의 관찰에 기인해서 음을 설명하는 경우에 그 설명은 이러하다. 인허는 1계ㆍ1입ㆍ1음ㆍ1분이게 된다. 또 불관찰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그 설명은 또 이러하다. 인허는 1계ㆍ1입ㆍ1음이게 된다. 여기서는 1분에 처해서 구분(具分)이란 가명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옷 한 벌이 불에 타는 경우에도, 옷가지가 불에 탄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풀이한다.
【문】또 어떻게 설명하게 됩니까?
【답】세존께서 ‘음’ 따위의 문(門)에 대하여 이 세 가지를 구분하시고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偈】치(癡)ㆍ근(根)ㆍ낙(樂)이 세 가지이기 때문에 이에 여래께서 음ㆍ입ㆍ계를 말씀하셨다.
【釋】이에 대해 대법사의 설명은 이렇다. “중생의 ‘치’에는 세 종류가 있다. 어떤 중생들은 심법에 밝지 못한데, 이는 모여진 것을 집착하여 자아(自我)를 삼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들은 물질에 밝지 못하고, 또 어떤 중생들은 물질과 마음에 밝지 못하다. 근 역시 세 종류가 있다. 소위 이근(利根)ㆍ중근(中根)ㆍ둔근(鈍根)이다. 낙(樂)에도 역시 세 종류가 있다. 그 락은 약문(略文)ㆍ중문(中文)ㆍ광문(廣文)이다. 세 종류의 사람을 위해 세 가지를 그 차제에 따라 설명한 것이 소위 음ㆍ입ㆍ계이다.“
【문】또 어떠한 ‘인’이 있습니까?
【답】바로 일체 여타의 심법이다. 불ㆍ세존께서 이것을 행음의 1문 속으로 안치(安置)하셨다. 따라서 수와 상을 두 가지 법으로 나누고 이를 별립(別立)하여 음으로 한다.
【偈】쟁근(爭根)과 생사(生死)의 인(因), 그리고 차제인(次第因)을 세우는 까닭에 심법 가운데의 수(受)와 상(想)을 분립하여 별도의 음(陰)으로 삼았으나,
【釋】쟁근인(爭根因)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욕진(欲塵)에 탐착하는 것이고, 둘째가 여러 가지 견(見)에 탐착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와 상의 두 가지 법의 차제는 이 두 가지를 위한 쟁승인(爭勝因)이 된다. 중생이 수의 맛에 탐착하는 것에 연유해서 욕진(欲塵)을 집착하게 되고, 전도(顚倒)된 상의 생기에 수반해서 여러 가지 견을 집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와 상의 두 가지 법은 생사의 승인(勝因)이 되는 것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중생은 수에 대한 탐착에서 전도상(顚倒想)을 일으켜 생사를 윤회하기 때문이다. 다시 차제를 세우기 위한 인이 있으나 나중에 설명하겠다. 여기에서 차제인(次第因)에 연유하여 수와 상을 두 가지 법으로 나누고 음을 별립하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이와 같은 차제인은 차제와 안립 가운데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문】다시 어째서 계와 입 가운데에서 무위(無爲)를 설명하고, 음(陰) 가운데 처해서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까?
【偈】5음 가운데 처해서 무위가 제외되는 것이니, 음의 도리와 상응(相應)하지 않는 까닭이다.
【釋】만약에 5음 가운데 3무위를 설명하는 경우에는 음과 서로 부합되게 정립시킬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 뜻이 불상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불상응은 어떻게 설명됩니까? 또 이와 같은 무위법이 어떻게 색 가운데 처하게 됩니까?
【답】색도 아니고 나아가 식도 아니기 때문에, 여섯 번째의 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음의 도리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이 화합〔集聚〕의 이치인 것은 앞서 이미 설명했다. 무위에는 과거ㆍ현재ㆍ미래 따위가 없기 때문에 색 따위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와 다른 것이 된다. 한 곳에서 섭수되어 화합하는 경우에는 무위의 음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염오(染汚)에 의지하는 것임을 현시하기 위해서 취음(聚陰)이라 설명하는 것이고, 그 염오와 청정에 의지하는 것임을 현시하기 위해서 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은 무위법 가운데 연유하지 않는 것은 서로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 가운데서 무위법을 안립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유리병이 깨지고 나면 병이 아닌 것과 같다. 이처럼 음이 괴멸하고 나면 다시 음을 성립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여타의 논사들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만약에 이렇게만 주장하는 경우는 계와 입 가운데서 도리어 반질(反質)의 난(難)이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음에 대한 별도의 도리를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偈】다시금 추(麤)ㆍ염(染)ㆍ기(器) 따위의 이치의 모양과 계의 차제를 세우는 것이다.
【釋】여기서 색이란 유애(有碍)이므로 일체법 가운데서 가장 추대(麤大)한 것이다. 색이 아닌 것 가운데에서는 수의 행상(行相)이 가장 추대하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내 손이 아프다, 내 다리가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이 두 번째로 추대한 까닭은 남자ㆍ여자 따위의 차별은 쉽게 분간되기 때문이다. 또 식(識)에 비해 행이 더 추대한 것이 되는 까닭은 욕심과 노여움 따위의 행상은 쉽게 분간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식이 가장 미세한 까닭은 그 자성에 연유해서 이를 분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추대한 것을 먼저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금 무시생사(無始生死) 이래로 남녀가 그 색에 대해서 서로 애착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그 수의 맛을 탐착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이와 같은 탐(貪)은 상(想)의 전도(顚倒)에서 유래하고, 이 전도는 번뇌에서 유래한다. 이와 같은 번뇌는 염오의 마음을 좇아 생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그 염오에 이르는 차제(次第)를 세우고 다시금 그릇 따위의 도리에 연유해서 차제를 세우는 것이다. 마치 식기ㆍ밥ㆍ반찬ㆍ요리사ㆍ식사처럼 색 따위의 5음도 역시 이렇다. 또 계에 연유해서 차제를 세운다. 욕계의 욕진(欲塵)에서는 색음(色陰)이 현시되며, 색계의 선정에서는 수음(受陰)이 현시되며, 무색계의 공(空)ㆍ식(識)ㆍ무소유(無所有)의 3처(處)에서는 상음(想陰)이 현시되고, 유정천(有頂天)에서는 오직 행음(行陰)만이 현시된다. 이 네 가지는 곧 식이 머무르는 이러한 것이 바로 음의 차제다. 비유하자면 씨앗 뿌리는 것에 연유해서 그 차제의 이치를 현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지도 적지도 않게 오직 5음만을 안립해서 이로부터 차제의 인(因)을 세우는 것이다. 행음 가운데에 수와 상을 나누어 따로 음을 삼기도 한다. 이 가운데에서 수음과 상음이 가장 추대한 까닭은 바로 염오의 차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수음과 상음은 밥과 반찬의 경우와 비슷하다. 두 개의 계(界)를 능히 현시하기 때문에 이를 별립하여 음을 삼게 된다. 입과 계 가운데 안근 등 6근의 차제를 설명하겠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이와 같은 진(塵)과 식(識)의 차제에 부수해서 이와 같은 안근 등의 6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偈】앞서의 다섯 종류는 현진(現塵)이니
【釋】안근 따위의 다섯 종류의 근은 현재의 진을 반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도 의근(意根)의 경계는 결정되는 바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의근만이 현재의 진을 반연할 뿐만 아니라, 삼세(三世) 및 비삼세(非三世)의 진도 반연하는 것이다.
【偈】사대(四大)의 소조진(所造塵)이기 때문이다.
【釋】앞에서 유(流)가 이 5근 중에 도달한다고 설명했고, 4대도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소조색(所造色)이 ‘진’이 되기 때문에, 신진(身塵)에는 정해진 바가 없다. 따라서 신근(身根)은 4대를 반연하기도 하며, 혹은 그 소조색을 반연하기도 하며, 혹은 다시 이 모두를 반연하기도 한다.
【偈】나머지는 원(遠)ㆍ급(急)ㆍ명(明)ㆍ사(事)이니
【釋】‘나머지’란 앞의 네 가지 근(根)을 일컫는다. 이것의 차제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원(遠)ㆍ급(急)ㆍ명(明)ㆍ사(事)에 연유하기 때문에 눈과 귀가 원경(遠境)을 반연하게 된다. 나중의 ‘두 개’는 앞서 말했다. 앞의 두 개에 있어서 안근의 쓰임새가 가장 먼 까닭은 멀리 강이나 하천을 내다 보나 소리는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근이 앞서고 그 후에 급(急)이 있어 그 쓰임새를 기연하는 것이다. 마치 먼저 사람이 북을 치는 것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이것은 코와 혀는 원(遠)의 쓰임새가 없는데, 비근(鼻根)의 쓰임새가 급하기 때문임을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마치 음식이 혀에 닿기도 전에 이미 코가 그 향기를 인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코의 쓰임새는 명료(明了)를 위한 것이다. 능히 미세한 향기까지도 반연하기 때문이나 혀는 이렇지 못하다.
【偈】다시금 처소(處所)에 부수되는 차제(次第)가 있게 된다.
【釋】다시 신근(身根) 중에서 안근(眼根)은 위쪽에 의지하고 이근(耳根)은 그 후방에 있다. 비근(鼻根)은 또 이근의 아래쪽에 있고 설근(舌根)은 코 밑에 있다. 신근의 대부분은 설근의 아래쪽에 있다. 의근(意根)은 신근 속에 의지하고 있으나 특정한 처소는 없다. 그러므로 그 처소에 부수해서 차제를 세우게 된다.
【문】다시 무슨 인연으로 10입이 모두 색음(色陰)에 섭수됩니까?
【답】여기에서 오직 한 가지의 입(入)을 색입(色入)이라 이름한다. 일체의 ‘입’은 모두 법으로써 자성을 삼으나, 이 중에서 오직 하나의 ‘입’을 법입(法入)이라 이름한다.
【偈】수승함을 쉽게 구별해서, 많은 법(法)과 최승법(最勝法)을 섭수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입(入)을 색입이라 이름하고, 다시 하나의 입(入)을 법입이라 이름한다.
【釋】무엇을 알게끔 하려고 간별하는 것입니까?
【답】이와 같은 열 종류의 법(法)은 각기 ‘입’이라고 명칭할 수 있는데, 근(根)과 진(塵)을 성립시키기 때문에 화합〔集聚〕할 필요없이 다시금 안근 따위에 연유해서 차별된다. 따라서 이러한 색이 안입(眼入) 따위의 명칭을 갖지 않지만 역시 색의 성품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것이 색입임을 숙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별명을 짓지 않는다. 다시 색입은 이 가운데에서도 수승하기 때문이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그 애(碍)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만약 손 따위의 물체와 접촉되면 즉각 변화하여 없어져 버린다. 다시 물체의 형상이 이곳저곳6)에서 현현하는 까닭은 지적하기 쉽고 그림자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세간에서 이와 같은 ‘입’이 색으로 규정된 까닭은 공통적으로 인지할 수는 있으나, 여타의 입은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별하여 하나의 입(入)을 법입(法入)이라 이름하는 것이고 여타의 입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법입 가운데 ‘수’ 따위의 다법(多法)을 섭입하는 것도 다법을 설명하기 위해서 통명(通名)을 짓게 되는 것이다. 또 열반은 최승법(最勝法)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로 포함시키고, 여타의 입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편수법(偏受法)이라 이름하게 된다. 또 여타의 논사들은 “색입에 20여 종류의 품류(品類)가 있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불필요한 색인데다 육근〔肉眼〕ㆍ천근〔天眼〕ㆍ혜근〔慧眼〕의 경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색이란 명칭을 독립적으로 세우게 됐다. 다시 여타의 법이 있으나, 모두 음ㆍ입ㆍ계와 동일하게 이름한다. 이것은 여타의 경전에 이미 현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 가지 문(門)에 연유해서 섭수하게 된다. 여기서 모두 섭진(攝盡)하되 섭진하지 못한 것은 다시 여기서 남김없이 섭진하게 된다.
【偈】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法陰)은 그 숫자가 8만이나, 여기서는 단지 색음(色陰)과 행음(行陰)에 추려지는 명수(名數)만을 언급하게 된다.
【釋】어떤 논사들은 “부처님의 정교(正敎)는 언어(言語)를 성품으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 논사들은 법음을 색음에 포함시킨다. 또 어떤 논사들은 “문구(文句)가 성품이 된다”고 주장하나, 그 논사들은 행음(行陰)으로 포함시킨다.
【문】이와 같은 법음(法陰)의 수량(數量)은 얼마나 됩니까?
【偈】법음의 수량은
【釋】어떤 논사들은 “1분의 아비달마를 법음이라 이름한다. 그 수량은 6천 게송인데, 8만 가지 가운데의 하나하나가 법음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수량이 모두 이와 같다”고 풀이한다. 다시금 어떤 논사들은
【偈】음 따위의 세세한 가르침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釋】“음ㆍ입(入)ㆍ계(界)ㆍ연생(緣生)ㆍ제(諦)ㆍ식(食)ㆍ정(定)ㆍ무량(無量)ㆍ무색(無色)ㆍ해탈(解脫)ㆍ제입(制入)ㆍ변입(遍入)ㆍ각조(覺助)ㆍ통해(通解)ㆍ원지(願智)ㆍ무쟁(無爭) 따위가 정교(正敎)에 일일이 따르고 좇는 것을 모두 법음(法陰)이라 이름한다”고 풀이한다.
【偈】여실(如實)하게 판단하여 행(行)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그 논석(論釋)에 따르면 법음은 이러하고,
【釋】여러 논사들도 이와 같이 여실하게 판단한다. 중생에게는 8만 가지 번뇌행(煩惱行)의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소위 욕심ㆍ노여움ㆍ어리석음ㆍ교만 따위의 차별이다. 이러한 행을 대치하기 위해 세존께서 8만 가지 법음을 말씀하셨는데, 이 8만 가지에 이르는 법음도 5음 중의 색음과 행음에 섭입되는 것이 포함된다.
【偈】이와 같이 여타의 법음(法陰)도 그 이치에 상응하는 것이다. 음ㆍ입ㆍ계 따위는 예전에 말씀하신 가운데에 섭수되는 것이니, 그 성품의 류(類)를 깊이 사유하거라.
【釋】여타의 음ㆍ입ㆍ계 따위는 여타의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음ㆍ입ㆍ계 가운데, 그 성품의 부류를 따르는 것임은 본론에서 이미 설명된 것이므로 마땅히 잘 간택하여 그 가운데로 섭입시켜야 한다. 이 가운데에도 별도의 5음이 있는데 그것은 소위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의 음(陰)이다. 여기서 계음(戒陰)은 색음(色陰)에 포함되고, 나머지 네 가지는 행음(行陰)에 포함된다. 또 열 종류의 변입(遍入)이 있는데 앞서의 여덟 종류의 변입은 무탐(無貪)을 자성으로 삼는 까닭에 법입에 포함된다. 함께 동반하는 부류〔共伴類〕일 경우 5음을 성품으로 삼는 까닭에 의입(意入)과 법입(法入)의 두 가지에 포함되며, 제입(制入)도 이와 같다. 공변입(空遍入)ㆍ식변입(識遍入)ㆍ공(空) 따위의 네 종류의 무변입(無邊入)은 네 가지 음을 성품으로 삼는 까닭에 의입ㆍ법입의 두 가지에 포함된다. 다시 네 종류의 해탈의 ‘입’이 있는데, 지혜를 성품으로 삼는 까닭에 법입에 포함된다. 함께 동반하는 부류일 경우에는 성입(聲入)ㆍ의입(意入)ㆍ법입(法入)의 세 가지에 포함된다. 또 2종류의 ‘입’이 있는데 소위 무상입(無想入)과 비상비비상입(非想非非想入)이다. 첫 번째 ‘입’은 곧 무상천(無想天)으로 10입(入)에 포함되는 것은 향입(香入)과 미입(味入)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입은 의입(意入)ㆍ법입(法入)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다계경(多界經)에서 “부처님께서는 62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러한 계(界)가 18계 가운데로 포함되는 과정을 여리하게 숙지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여섯 종류의 계를 설명하는데, 바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허공(虛空)ㆍ식(識)의 계이다.
【문】여섯 종류 가운데에서 두 가지 계는 아직 그 모양을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무위공(無爲空)이 바로 허공계(虛空界)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일체의 식(識)이 곧 식계(識界)라는 것도 어찌 알겠습니까? 이치상 옳지 않다고 설명했는데, 어째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다시 창문ㆍ구멍ㆍ콧구멍ㆍ입 안 따위는 어떠한 것입니까?
【偈】틈새를 허공계라 이름하니
【釋】만약 틈새를 허공계라고 설명한다면, 이것은 어떠한 법인지를 숙지해야 한다.
【偈】그것을 소위 빛과 어둠이라 한다.
【釋】무슨 까닭입니까?
【답】빛과 어둠을 여의고는 보여지는 틈새란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허공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빛과 어둠으로 성품을 삼고 낮과 밤으로 위상(位相)을 삼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허공계를 인애색(隣碍色)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소위 애색(碍色)이란 것은 화합한 색이 가장 쉽게 변괴(變壞)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빛과 어둠은 애색과 더불어 이웃하기 때문에 인애색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다시금 다른 논사들의 풀이가 있으나 이 역시도 다른 것을 장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에서는 그 장애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여타의 색과 서로 이웃하게 되는 것이다.
【偈】식계(識界), 즉 이와 같은 식(識)이야말로 유류(有流)일지니
【釋】어찌하여 무류(無流)를 설명하지 않습니까?
【답】부처님께서 6계만을 인정하신 까닭이다.
【偈】생(生)의 소의(所依)가 된다.
【釋】가 제6계(第六界)는 생을 처음 의탁(依託)하는 마음이 생기하는 것에서 죽음에 떨어지는 마음이 생기하기까지 그 의지가 된다. 만약 무류법(無流法)인 경우에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제6계 중에서 앞의 네 가지는 촉계(觸界)에 포함되고, 다섯 번째는 색계에 포함되며, 여섯 번째는 7식계에 포함된다. 이렇게 그 포함하는 도리의 설명을 마친다. 이것이 앞에서 설명한 18계이다.
【문】여기에서 현색(顯色)은 몇 가지이고, 무현색(無顯色)은 몇 가지입니까?
【偈】여기에서 그 하나하나에 유현(有顯)하는 것을 색(色)이라 부른다.
【釋】이와 같은 색은 그 현색이 용이한 것이다. 마치 ‘이런 색깔, 저런 색깔’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말을 구실삼아 여타의 무현색에 이르게 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유애가 몇 가지이고 무애가 몇 가지인지 그 도리를 잘 숙지해야 한다.
【偈】10계는 유애(有碍)면서 유색(有色)에 해당하는 것이고
【釋】이와 같은 10계의 색음이 섭수하는 바가 유애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애는 무슨 법입니까?
【답】서로 막아서기 때문에 애라고 이름한다. 이 애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가 장애(障碍)이고, 둘째가 진애(塵碍)이고, 셋째가 연연애(緣緣碍)이다. 이 중에서 장애는 자기의 처소에서 다른 것이 생기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 마치 손이 손을 스스로 가로막는 것과 같고 돌이 돌에 대한 경우도 이와 같다. 진애라는 것은 안근 따위의 여러 가지 근이 색 따위의 진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마치 『가명론(假名論)』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어떤 눈은 물 속에서 애가 있는 것이 육지에서와 같지 않다. 마치 물고기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육지에서 애가 있는 것이 물 속에서와 같지 않다. 대부분 사람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여기의 두 곳에서 그 애가 있다. 두 곳이란 물과 육지를 말하는 것으로, 마치 거북ㆍ자라ㆍ새우ㆍ귀신ㆍ인어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두 곳에서 애가 없는데, 이는 앞의 세 구절이 제외된다. 어떤 눈은 밤에 애가 있어서 낮과 같지 않다. 마치 박쥐ㆍ올빼미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대낮에 애가 있어 밤중과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낮과 밤에도 애가 있다. 마치 개ㆍ야생마ㆍ표범ㆍ고양이ㆍ이리 따위의 눈과 같다. 어떤 눈은 낮밤에 애가 없는데 앞의 세 구절이 제외된다. 진애의 모양도 이와 같다. 연연애란 것은 마음과 심법(心法)이 스스로의 연연경(緣緣境)에 장애가 있는 것이다.
【문】진애와 연연애의 이상(異相)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답】이와 같은 법은 그 거리끼는 처소에서 공능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처소가 이와 같은 법진(法塵)이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것을 진애라고 이름한다. 마음과 심법(心法)이 취득하는 진을 연연애라 이름한다.
【문】어째서 이와 같은 근이 자체적인 경계를 상속하여 생기한다고 합니까? 아울러 식(識)이 연연(緣緣)에서 생기하는 것은 어째서 장애라 이름합니까?
【답】이것을 초과하면 저것도 생기하지 않는 까닭이다. 또 ‘이 가운데의 애’란 도달한다는 뜻으로서 그 자체적인 경계에서 생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에서 그 장애로 말미암아 10계에 장애가 있는 것임을 숙지해야 하는 까닭은 서로간에 가로막는 까닭이다.
【문】만약에 법이 진애로 말미암아 그 장애가 있는 것이라면, 역시 장애로 말미암아 장애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답】네 구(句)가 있는데, 첫 번째 구절은 소위 일곱 종류의 심계(心界) 및 법계(法界)의 1분(分)이 상응하는 심법(心法)이다. 두 번째 구절은 소위 5진(塵)이다. 세 번째 구절은 소위 5근(根)이다. 네 번째 구절은 소위 법계의 1분으로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이다. 만약 법이 진애로 말미암아 그에 해당하는 ‘애’가 있게 된다면, 역시 연연애에 말미암아서도 그에 해당하는 장애가 있지 않겠는가? 나중의 두 구절을 생략하면 마치 법이 그 연연애로 말미암아 장애가 있는 것 같으나 반드시 진애로 말미암아서 그 장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은 진애로 말미암아 그에 해당하는 장애가 있는 것인지, 연연애에 연유해서 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마치 5근과도 같다. 이에 대해 구마라다(鳩摩羅多) 대덕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처소에서 마음을 내고자 하면
여타의 애(碍)가 일어날 수 없다.
이 애가 있음이 이 애가 아님과
다르다는 것을 숙지하거라.

여기서 애의 설명을 마친다.
【문】18계 가운데 몇 가지가 선(善)이고, 몇 가지가 악(惡)이며, 몇 가지가 무기(無記)입니까?
【偈】여덟 종류의 계는 무기에 해당하는 것이나
【釋】‘여덟 종류의 계’란 무엇입니까?
【답】앞에서 설명한 열 종류의 애 가운데에 해당하는 것이다.
【偈】다만 색(色)과 소리가 제외된다.
【釋】5근과 향계(香界)ㆍ미계(味界)ㆍ촉계(觸界)의 여덟 종류는 그 선악의 차별에 연유해서 기명(記名)할 수가 없는 까닭에 무기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논사들은 “과보가 생략되기에 기명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무기’라 이름한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만약 이와 같은 경우에 무류에 대해서 곧 도리어 ‘반질(反質)의 난(難)’을 성립시키게 된다.
【偈】여타의 것은 세 가지 성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釋】나머지 열 종류의 계는 선ㆍ악ㆍ무기의 성품을 구비한다. 이중에서 7식계(識界)는 무탐(無貪) 따위와 상응하는 선성(善性)이다. 만약 탐(貪) 따위와 상응하면 곧 악성(惡性)이 되고, 그 나머지는 무기성(無記性)이 된다. 법계가 무탐 등의 선과 상응하고 아울러 이것을 발기시켜 택멸(擇滅)하는 것은 모두 선성에 해당하게 된다. 만약 탐 따위의 악과 상응하고 아울러 이것을 발기시키는 것은 악성에 해당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무기성에 해당한다. 색계ㆍ성계는 선ㆍ악심을 발기시키므로 선ㆍ악성에 해당하는 것은 신ㆍ구의 업에 섭수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것과 다른 경우에는 무기성에 해당된다. 여기서 모든 ‘계’의 선 등의 성품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문】18계 가운데 욕계에 상응하는 것이 몇 가지이고, 색계와 무색계에 상응하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偈】욕계에는 일체가 갖춰져 있고
【釋】상응이란 ‘그 곳에 있다’는 뜻이고, 상리(相離)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욕계 가운데에서는 18계가 구족된다.
【偈】유색계(有色界)에는 열네 종류의 계가 있으나
【釋】색계 가운데에는 구족되지 않는다. 단지 열네 종류가 있을 뿐이다.
【문】‘열네 종류’란 무엇입니까?
【偈】향(香)ㆍ미(味)ㆍ비(鼻)ㆍ설(舌)의 식(識)은 제외된다.
【釋】색계 가운데에 향과 미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이 두 가지가 단식(段食)의 부류이기 때문이다. 단식(段食)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그곳의 생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塵)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연유해서는 비식(鼻識)과 설식(舌識)의 두 가지 식도 역시 생겨날 수 없는데, 그에 해당하는 연연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하다면 그곳에서는 촉계(觸界)조차 마땅히 안립되지 못하는데 ‘촉’ 또한 단식의 부류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하다. 만약에 단식의 부류가 아닌 것을 접촉하는 경우라면 그곳에서도 촉계가 있을 수 있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향식(香識)과 미식(味識)의 경우도 당연히 이렇게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문】무슨 까닭입니까?
【답】음식을 벗어나서는 촉식의 경우처럼 향식과 미식은 별도로 쓰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촉식에 별도의 쓰임새가 있는 것은 소위 근을 능히 이루고, 능히 의지하는 것을 이루고, 또 의복 따위를 이루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색계의 중생은 단식의 욕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향식과 미식이 소용없으나 촉식은 이와 다르다. 어떤 논사들은 “선정(禪定) 및 등지(等至)에 의지하면서도 색을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편안한 것과 상응하는 것이다. 촉식에는 수승한 종류가 있어 그 몸을 능히 이익되게 하는 것이므로, 이 세 가지는 정생처(定生處)에서 모양을 얻어 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향식과 미식은 이와 다르다. 만약에 이러하다면 그곳에는 비근과 설근의 두 가지 근이 없어야 한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왜냐 하면 이 두 가지는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신근에서 분리된다면 곧 모양이 추악해지고 이와 같은 두 가지 근이 없어지기 때문에 언어조차도 성립하지 않게 된다. 만약 그 쓰임새가 이와 같으려면, 반드시 코와 혀에 의지하여야만 신근이 장엄해지고 그 언어도 성취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근’과 ‘설근’의 두 가지 근이 필요없다는 이러한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근이 아니면서 단지 의지한다는 것은 없다. 마치 남근(男根)이 그것에 의지함과 같다. 이렇게 생기지 않아도 가능한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와 혀에 의지함은 그것의 유용함에서이다. 이리하여 만약 근을 떠나서 그곳에서 이러한 것이 생기는 경우는 바로 이치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 근이 쓰임새 없이도 생기하는 경우, 마치 태(胎)속에 처해서 죽음이 결정된 중생처럼, 그 쓰임새가 없이 생겨나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인이 없이 생겨나지는 못한다.
【문】이러한 여러 가지 근은 무슨 인에서 생겨납니까?
【답】근에 애착이 있으면 수승한 업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애욕을 여읜다면, 진과 근에서 반드시 애욕을 여의게 된다. 그 사람이 만약에 향과 미의 두 가지 진에 대한 욕망을 이미 여의었다면, 비근과 설근의 두 가지 근이 그 사람에게는 마땅히 생기지 않는다.
【문】만약 비근과 설근의 두 가지 근이 생긴다면, 어떻게 남근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답】추악한 모양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문】만약에 남근이 저 법왕(法王)의 마음상(馬陰相)처럼 감춰진다면 어찌 추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그 유용함에 말미암기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면, 어째서 그 생기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답】반드시 그 인에 연유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비록 다시금 추악해질지라도 만약에 그 인이 있다면 반드시 생기하고, 인이 아직 없다면 이것은 생기하지 않는다.
【문】그것이 어떻게 생긴다고 합니까?
【답】이러한 도리가 이치상 옳지 않은 까닭은 경전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색계의 사람들은 근이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이러한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문】모든 근에 수반해서 그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데, 무슨 어긋남이 있습니까?
【답】만약 이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곳에도 마땅히 남근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설명은 이러하다. 색계에도 비근과 설근이 있으나 다만 향내와 맛이 없는 것은 내의문(內依門)에 연유된 까닭이다. 6근에 처해서 탐애가 생기하는 것은 외진문(外塵門)에서 연유되는 바가 아니다. 남근에서 애욕이 생겨나는 것은 반드시 음촉문(婬觸門)에 말미암아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도리가 성취된다. 그러므로 색계에는 열네 가지 계가 있게 된다.
【偈】무색계(無色界)에는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가 상응하는 것이니
【釋】이미 욕계와 색계를 떠나서 저기에서 생을 받는 것이므로 10계의 색을 성품으로 삼게 된다. 또 5식계는 그곳에서 쓰임받아 의경(依境)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색계에는 유가 있을 수 없다.
【문】유류에 해당하는 계는 몇 가지이고, 무류에 해당하는 계는 몇 가지 입니까?
【답】의(意)ㆍ법(法)ㆍ식(識) 세 종류의 계는 앞에서 설명했다.
【偈】모두 유류(有流)이면서 무류(無流)인 것이나
【釋】이와 같이 3계 가운데에서 도제(道諦)의 무위법(無爲法)에 포함되는 것이 무류계이고 이와 다른 것이 유류계이다.
【偈】여타의 계는 유류(有流)에 해당한다.
【釋】그 나머지 열다섯 종류의 계는 한결같이 유류로 결정되는 것이다.
【문】유각유관(有覺有觀)에 해당하는 계는 몇 가지이고, 무각유관(無覺有觀)에 해당하는 계는 몇 가지이며, 무각무관(無覺無觀)에 해당하는계는몇가지입니까?
【偈】유각유관(有覺有觀)은 결정코 5식계이니
【釋】이와 같은 5식계는 항상 각(覺)ㆍ관(觀)과 상응하기 때문에 ‘결정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여타의 계를 간략하게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偈】마지막 세 종류의 계에는 세 가지 이치의 모양이 있으나
【釋】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를 가리킨다. 이것은 18계 가운데에 마지막에 해당하는 까닭에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3품(品)이 구비되어 있으나 의계ㆍ의식계 및 마음과 상응하는 법계이기에 각과 관이 제외된다. 욕계와 초선천에서는 유각유관(有覺有觀)이 있지만, 중간정(中間定)에는 각이 없고 오직 관만이 있다. 제이정천(第二定天) 이상부터 유정천까지는 각도 없고 관도 없다. 일체의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계 및 중간정은 관뿐이다. 여기에 각은 항상하는 것이기에 그 ‘각’하는 바가 다시 없으면서 오직 ‘관’만이 있는 까닭은 제2의 각이 없기 때문이며 오직 관과 상응하는 까닭이다. 욕계와 초정천의 관을 그 3품 가운데 넣지 않는다.
【문】그 명자(名字)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답】여기에는 ‘관’이 없고 오직 ‘각’만이 있다. 제2의 관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오직 각에 대해서만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각관지(覺觀地)에는 4품법(品法)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가 유각유관(有覺有觀)으로 각ㆍ관을 제외한 여타의 심상응법을 말한다. 둘째가 무각유관(無覺有觀)으로 오직 이 ‘관’만이 있는 것을 말한다. 셋째가 무각유관으로 소위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이다. 넷째가 무관유각으로 오직 이 관만이 있는 것을 말한다.
【偈】여타의 계는 이 두 가지를 여의는 것이다.
【釋】열 종류의 유색계를 ‘여타의 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 종류의 계가 항시 각ㆍ관이 없는 까닭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만약 5식의 화합에 각ㆍ관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무분별이라고 합니까?
【偈】현시(顯示) 및 억념(憶念)의 두 가지는 무분별(無分別)에 연유하는 것으로
【釋】그 분별의 설명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자성분별(自性分別)이고, 두 번째가 현시분별(顯示分別)이며, 세 번째가 억념분별(憶念分別)이다. 5식계는 오직 ‘자성분별’만이 있고 나머지 두 개의 분별은 없기에, ‘무분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다리가 하나 없는 말을 다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성분별이 바로 각ㆍ관에 해당한다. 이것은 나중에 심법을 설명하는 데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문】나중의 두 가지 분별은 그 모양을 어떻게 순서짓게 됩니까?
【偈】이 두 가지는 이와 같은 산심지(散心智)이므로 모든 염(念)의 심지(心地)일 뿐이다.
【釋】이와 같은 산심지는 의식과 상응하기 때문에 ‘심지’라고 이름하고, 적정(寂靜)하지 않는 까닭에 산(散)이라 이름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산심지(散心地)가 곧 ‘현시분별’에 해당한다. 일체의 억념과 의식이 상응하여 적정하기도 하고 산만한 것을 ‘억념분별’이라 이름한다.
【문】몇 가지 계가 연연에 해당하고, 몇 가지 계가 무연연에 해당합니까?
【偈】7식은 유연연(有緣緣)7)인데,
【釋】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근ㆍ의식을 가리킨다. 이 7식계는 ‘유연연’이니, ‘진’을 능히 취하기 때문이다.
【偈】법계 가운데의 절반이 이에 해당한다.
【釋】이것 역시 유연연이니, 심법으로 체(體)를 삼기 때문이다. 나머지 열 종류의 유색계 및 법계의 1분은 심불상응법과 ‘연연’에 해당하지 않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문】유집의(有執依)는 몇 가지이고, 무집의(無執依)는 몇 가지입니까?
【偈】아홉 종류의 계는 소집의(所執依)가 아니나
【釋】‘아홉 종류의 계’란 무엇입니까?
【답】7식계까지는 ‘연연’에 해당하는 계(界)이므로, 여덟 종류의 계 가운데 절반까지 이것에 해당한다.
【偈】여덟 종류의 계는 유성(有聲)에 해당하고
【釋】이와 같은 아홉 종류의 계는 소집의가 아니라 소위 7식계ㆍ법계ㆍ성계이다.
【偈】나머지에 두 가지가 있다.
【釋】혹은 유집의이기도 하고, 혹은 무집의이기도 한 것이다. 이 가운데 안ㆍ이ㆍ비ㆍ설ㆍ신이 만약 현시되면 곧 유집의에 해당된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현시하되 만약 근과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 역시 유집의이고, 그 나머지가 바로 무집의가 된다. 마치 근에서 제거된 머리카락ㆍ수염ㆍ손톱ㆍ치아ㆍ대소변ㆍ눈물ㆍ침ㆍ혈액 따위 내지는 흙과 물 따위와 같다.
【문】유집의와 무집의는 어떠한 것입니까?
【답】마음과 심법이 이것을 섭수하여 스스로 의지를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연유해서 이익과 손해가 서로 부수되는 까닭에 이것을 세간에서는 ‘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을 ‘유집의’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집의’는 ‘각’으로써 그 뜻을 삼고, 여타의 것은 ‘무집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문】몇 가지 계가 4대로써 성품을 삼는 것이고, 몇 가지 계가 4대의 소조색(所造色)으로 성품을 삼는 것입니까?
【偈】촉계(觸界)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釋】촉에는 4대 및 4대의 소조색이 있다. ‘견고함’ 따위의 네 종류의 촉은 4대이고, 부드러움ㆍ매끄러움 따위 일곱 종류의 촉은 4대의 소조색이다. 4대에 의지하여 생기기 때문에 ‘소조색’이라고 이름한다.
【偈】유색(有色)의 아홉 종류의 계는 소조색(所造色)과
【釋】다섯 종류의 근계(根界)와 네 종류의 진계(塵界)를 말한다. 이와 같은 아홉 종류의 계는 단지 소조된 것이다.
【偈】법계의 1분이고
【釋】법계 내에는 무교색(無敎色)이 있는데 이것 역시 소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머지 7식계와 법계 내에는 무교색을 제외한 두 종류가 없다. 불타제바(佛陀提婆)존자는 “10입은 오직 4대뿐이다”라고 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치상 옳지 않다. 경전에서 4대 및 견고함 따위의 네 가지 모양을 이미 결정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4대는 오직 ‘촉’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고함 따위의 네 가지 모양은 안근 따위에서 소견되는 것이 아니고, 색 따위의 네 종류의 ‘진’도 신근에서 지각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은 경전에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불ㆍ세존께서 “비구들이여, 안근이란 바로 내입이니 4대에 의지하는 것이니라. 4대가 소조하는 정색(淨色)은 유색(有色)이면서 무현무애(無顯無碍)이니라. 또한 신근에 이르기까지 역시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이여, 색이란 바로 외입이니 4대에 의지하는 것이니라. 이는 4대의 소조일지니, 유색이면서 무현무애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소리란 외입이니 4대에 의지하느니라. 이는 4대의 소조일지니 유색이면서 무현유애(無顯無碍)한 것이니라. 또한 미(味)까지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이여, ‘촉’이란 바로 외입이니 4대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는 4대에 의지하는 것이기도 하니라. 이러한 것은 4대의 소조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유색이면서 무현유애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경전에 따르면 촉의 1분에 연유해서 4대가 모두 섭진되기에, 여타의 것은 4대가 아닌 것이므로 이와 같은 뜻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다시 경전에서는 “눈은 살덩어리이다. 이 가운데에 ‘견고함’과 ‘견고함의 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는 단지 살덩어리와 안근이 상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안근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입태경(入胎經)에서는 “비구들이여, 입(入)이란 오직 6계를 말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설법은 단지 중생을 이루는 그 근본을 현시하기 위한 것이니, 부처님께서 다시 입태경에서 여섯 가지의 촉입(觸入)을 말씀하신 까닭이다. 만약에 이렇지 않다면, 그대 자신에 있어서도 ‘수’ 따위의 심법이 없어져야만 하리라. 만약에 그대가 심법이 곧 마음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러한 도리는 이치상 옳지 않다. 상(想)과 수(受)는 심법(心法)이 마음에 의지하여 생기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에 따르면 “마음이 근본이 된다”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은 차라리 마음이 애욕과 상응한다고 말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리하여 앞서 설명한 대로 모든 계는 4대 및 4대의 소조에 배당해야만 도리에 맞게 되는 것이다.
【문】몇 가지 계가 ‘극미색의 취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몇 가지 계가 ‘극미색이 아닌 것의 취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偈】유색(有色)의 열 종류의 계는 극미(極微)의 취합에 해당한다.
【釋】이것은 5근계 및 5진계를 말하는 것이다. 미취(微聚)의 소조색(所造色)은 인허(隣虛)의 무리들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027_0214_a_01L阿毘達磨俱舍釋論序正教本宗文唯三藏梵音所闡諒無異說法相深微名實繁曠若非圓明獨朗孰能通達自日隱頞多之山月翳羅睺之手移解昧部執競興或以文釋義或以義判文雖復得失參差皆以三藏爲本可謂殊塗同歸一致百慮者也尋十八部師及弟子竝各造論解其所執於一部中多有諸論此土先譯薩婆多部止有毘婆沙及雜心四卷毘婆沙明義雖廣而文句來不具足雜心說乃處中止述自部宗致四卷過存省略旨趣難可尋求此土先譯經部正有成實一論成實乃以經部駮斥餘師其閒所用或同餘部又於破立之中亦未皆盡其妙且傳譯參差難可具述佛滅度後千一百餘年有出家菩薩名婆藪盤豆器度宏曠神才壯逸學窮文字思徹淵源德隆終古名蓋當世造大小乘凡數十部竝盛宣行靡不宗學師德業具如別傳先於薩婆多部出仍學彼部所立三藏後見彼法多有乖違故造此論具述彼執隨其謬以經部破之故此論本宗是薩婆多部其中取捨以經部爲正博綜群妙拔衆師談玄微窮於奧極述事象略而周遍顯成聖旨備摧異說不可闚破無能擬義兼數論而深廣愈之詞不繁而義顯義雖深而易入故天竺咸稱爲聰明論於大小乘學悉依此爲本有三藏法師俱羅那他聰敏强記才辯無竭碩學多聞該通內外爲弘法故遠遊此國値梁室將事紛梗法師避地東西垂二十欲還天竺來至番禺慧愷因請翻講攝大乘等論經涉二年文義方畢師爾後猶欲旋歸刺史歐陽紇尚仁貴道久申敬事重復請留彌加殊禮慧愷與僧忍等更請翻講此論以陳天嘉四年歲次閼逢龍集涒灘正月二十五日於制旨寺始就開闡惑品未畢仍事徙居於南海郡內續更敷法師遊方旣久精解此土音義所翻譯不須度語但梵音所目於義易彰今旣改變梵音詞理難卒符會故於一句之中循環辯釋翻覆鄭重乃得相應慧愷謹卽領受隨定隨書日夜相係無懈晷刻至其年閏十月十日文義究竟論文二十二卷論偈一卷義疏五十三卷刺史仍請於城內講說旣得溫故頗識大宗非唯闇多有疑滯又恐所翻不免謬失天嘉五年歲次柔兆二月二日與僧忍等更請法師重譯論文再解義意至光大元年歲次强圉十二月二十五日治定前本始末究竟長史袁敬識鑑沈深信解明正長史長子元友愛文重法博學多藝竝禮事法師盡經始經南中翻譯悉賴此貴門希永傳來世以爲後生摸式佛法大深廣無際若不局一塗能信順求豈不同飡甘露共嗅詹匐者哉或專執非所喩也阿毘達磨俱舍釋論卷第一 心婆藪盤豆造陳天竺三藏眞諦 譯釋論中分別界品第一一切種智滅諸冥 拔出衆生生死泥頂禮大師如理教 對法俱舍我當說釋曰若人欲正造論當令他知大師不共功德故說衆德爲先後頂禮大此偈但依佛世尊說偈曰一切種智滅諸暝釋曰滅一切暝由一切種於一切法無明者能障見眞實義故稱爲暝此無明於佛世尊由得究通對治故一切種於一切法永不生爲法故故稱爲滅獨覺及聲聞於一切法雖除無明由有染污無明極不生故不由一切種何以故諸餘聖人於如來不共法及於餘境最久遠處無邊差別有無染污無明顯自利行究竟讚歎佛已次以利他行圓滿讚歎世尊偈曰拔出衆生生死泥釋曰生死是世閒沈著處故難可度故以譬泥衆生於中沈著無救接唯佛世尊欲憐愍度脫授說正法手應理拔濟是人與自他利益行相偈曰頂禮大師如理教釋曰頭面接足名頂禮立教不虛稱大師無倒稱如理得善離惡言稱教說此如理教爲利他方便由如理教從生死泥拔濟衆生不由通慧施恩威德等頂禮如理教師已欲何所作偈曰對法俱舍我當說釋曰此法通名滅濟教名云何阿毘達磨俱舍何法名阿毘達磨偈曰淨智助伴名對法釋曰謂擇法淨謂無垢卽無流智助伴因緣資糧若爾則說無流五陰名阿毘達磨此卽眞實阿毘達磨若說假名阿毘達磨偈曰能得此法諸智論釋曰卽是有流思慧聞慧生得慧及助伴論謂能傳生無流智是無流智資糧故亦名阿毘達磨因何義立此能持自體相故稱達磨或一切法眞實法涅槃爲相故稱達磨此智對諸法於法現前故稱阿毘達磨論云何名阿毘達磨俱舍偈曰由義對法入此攝釋曰彼文句名阿毘達由隨勝義入此論攝是故此論於彼得稱爲藏復次偈曰論依對法俱舍釋曰阿毘達磨是此論依止以故從彼法中引生此論故彼於此亦受藏名以是義故此論名爲阿毘達磨俱舍復次此法其用云何人先說此法而法師恭敬欲解說之偈曰離簡擇法更不有爲寂靜惑別方便世閒由惑轉有海爲此傳佛說對法釋曰若離擇法覺分無別方便能除滅諸惑諸惑能輪轉世閒於生死海由此正因欲令弟子得簡擇法故大師佛世尊先說阿毘達磨若離此正諸說弟子不能如理簡擇眞法故佛世尊處處散說此法大德迦旃延子等諸弟子撰集安置猶如大德達磨多羅多撰集優陁那伽他部類毘婆沙師傳說如此何者諸法是所簡擇爲令他簡擇彼法佛世尊說阿毘達磨偈曰有流無流法釋曰略說一切法謂有流無流此中何者有流偈曰有爲除聖道有流釋曰除道聖所餘有爲法說名有流何以故於中流由隨增眠故釋曰若有如此義諸流緣滅道二諦爲境起於中不眠無隨增故是故於中不可立有流爲反質難是不眠義後分別惑品當廣說說有流法已何者無流法偈曰無流法聖道及三種無爲釋曰何者三無爲偈曰虛空及二滅釋曰何者二滅擇滅非擇滅如此空等三無爲及聖道說爲無流法何以故諸流不能眠故略說三無爲中者爲空偈曰此中空無㝵釋曰空以無障無㝵爲性故色於中行偈曰滅謂永離釋曰與有流法永相離名擇滅各數簡擇苦等聖諦名擇智勝因此所得己利名爲擇滅具足應言擇所得滅以略說故但稱擇滅如車與牛相應名爲牛車一切有流爲一擇滅爲不一不一云何偈曰各對諸結釋曰如結數量擇滅亦爾若不爾由證見苦所斷惑擇滅則應一時俱證一切惑擇滅若爾修餘對治道則空無果佛經言擇滅無同類此言何義擇滅無同類因亦非他同類因此是經義非無與其同類說滅已偈曰恒遮欲生生別有非擇滅釋曰能永遮未來諸法生異於擇滅有別滅說名非擇滅不由簡擇得故云何得因緣不具故譬如有人意識及眼根緣一色塵起是時餘色觸等悉有卽謝五識聚不能緣彼爲境界更生何以故五識旡有功能緣過去塵爲境是故識等有非擇滅因緣不具故得依二滅立四句有諸法唯有擇滅謂過去現在定生爲法皆是有流有諸法唯有非擇滅謂不生爲法旡流有爲有諸法具有二滅謂有流定不生爲法有諸法旡有二謂過去現在定生爲法皆是無流說三無爲已前說有爲法除聖道有流何者是有爲偈曰又諸有爲法謂色等五陰釋曰色陰受陰想陰識陰此五陰攝一切有爲已至聚因緣所作故名有爲何以故無有法無緣及一緣所生故是彼種類故於未來無妨譬如獨陁偈曰說世路言依有離及有類釋曰是諸有爲法有已正當行故名世路復次無常所食故言謂方言是言所應義名言依由執有義言故佛經說有爲法名言若不爾則違分別道理二論彼論言依入十八界攝永出名離所謂涅槃一切有爲涅槃永出離故有爲法有離涅槃無離故有爲法名有離有因故名有類類以因義毘婆沙師作此說如是等是有爲別名復次有爲法偈曰有流名取陰釋曰此何所顯是有取可說名陰有但陰非取謂無流有爲此中以惑爲取陰從取生名取陰譬如草木糠火復次隨逐取故譬如王人復次諸取從彼生故取陰譬如花樹果樹是有流諸法或說有鬪爭釋曰諸惑名鬪爭動諸善法及損害自他故鬪爭所隨眠故故說有鬪爭譬如有流復次苦集諦世閒釋曰違聖人意故名苦苦從諸見生故名集破壞故名世閒有對治故偈曰見處及三有釋曰見依中住由隨順增長故故是見處但有令有故名有如此說有流法義別名已前已說色等五陰此中偈色陰謂五根五塵及無教釋曰根謂眼耳五塵是眼等五根謂色觸及無教如此量名色陰此中是前說色等五塵偈曰識依淨色說名眼等根釋曰觸識所依止五種淨色類次第應是眼身根如佛世尊言丘眼是內入合四大成是淨色性類如此廣說復次前已說眼等五根識依淨色說名眼等根眼根等識依其義如此若立此義則順分別道理論彼論云何者爲眼根謂眼識依止淸淨色說五根已次應說五塵中偈曰色二釋曰一顯色二形色色有四種謂靑餘色是此四色未異形色有八種謂長等耶後是重說色入偈曰或二十釋曰謂靑有餘師說空爲一色故二十一色此中形平等爲正不平等名邪地氣名霧日焰名光焰名明於中若色顯現名影翻此名闇餘色易解故今不釋有色入有顯無形謂靑色入有形無顯謂有長等一分卽有教身業爲相有色入有顯有形謂所餘諸色有餘師說有色入無形無顯謂無教色有餘師說唯光及明有顯無形何以故恒見靑等諸色有長等差別云何一物二知所緣此二色於一塵中現故是義不然於有教身業則成反質難故說色入已偈曰聲塵有八種釋曰有執依非執依四大爲有衆生名非衆生名是名四聲聲由可愛非可愛差別故成八種中有執依爲因者謂言手等聲非執依爲因者謂風樹浪等聲有衆生名謂有義言聲異此爲非衆生名餘師說有別聲有執依非執依四大爲謂手鼓合生譬如一顯色鄰虛不依二四大生此聲亦應爾說聲已偈曰味六釋曰謂甜淡差別故偈曰香有四釋曰謂香臭平等不平等差別故阿毘達磨中說香有三種謂香臭平等偈曰觸塵十一種釋曰觸有十一種應知謂四大滑此中四大後當說柔軟名滑麤燥爲澀可稱名重翻此爲輕熱愛爲冷食愛爲飢飮愛爲渴於因立果名故說如此如佛伽陁中說諸佛生現樂 說正法亦樂 大衆和合樂聚集出家樂於色界中無飢渴觸有所餘諸觸於中彼衣若不可各稱四大聚集所造故亦可得稱於彼無能損冷觸有能益冷觸他說如此前已說色有多種中有時由一物眼識得生若是時中分別一類有時由多物眼識得生是時中無所分別譬如軍衆有無量顯形色及遠見衆寶應知耳等識亦身識若極多由五觸生謂四大觸諸觸中滑等隨一有師作如此執有餘師說具足十一觸生身識若爾則摠緣塵通境爲塵五識應成不但緣別境五識對入別相爲境故許彼以別相爲境非對物別相斯有何失應思此義身舌二根一時塵至何識先生隨强塵先發識若平等塵至識先生食欲所引相續故如此說五根五塵及如取塵已今當說無教色亂心無心耶隨流淨不淨依止於四大何無教色說釋曰異緣名亂心入無想定及滅心定名無心顯非亂心及有心故言耶是似相續或俱或後故名隨流善名淨惡名不淨至得相續亦爾爲簡此異彼故說依止於四大毘婆沙師說依止以因爲義大爲無教生等五因故欲顯立名因故言何此法雖以有色業爲性不如有教色可令他知故名無教顯是餘師說故言說若略說有教色三摩提所生善惡性色名無教前說依止四何者四大偈曰諸大謂地界及水風界釋曰如此四大能持自相所造色故名界云何四界名大一切餘色依止故於彼成麤故故名爲大極遍滿起風聚中形量大復次能增廣一切有色物生及於世閒能作大事故名大復次此地等於何業中成何爲自性偈曰於持等業成釋曰勝持和攝成熟引長四業中次第成就風界轉移增益故名引長是名四大業自性者次第偈曰堅濕熱動性釋曰地界以堅爲性水界以濕爲性火界以熱爲風界以動爲性引諸大相續令生異處如吹燈光名動分別道理論云何者風界所謂輕觸經說亦爾或說輕觸爲所造色此法以動爲定性故說動爲風界卽以業顯風自性復次地等及地界等異義云何偈曰說地顯形色由世立名想水火亦復然若世人示現他地大但示顯形色如示現地大示現水大亦爾但示顯形色故依世假名想說色入爲地等三大偈曰唯風界釋曰是風界世人說爲風偈曰亦爾釋曰如世人假說顯形色爲地說風亦爾或說黑風或說團風云何說無教爲後此陰名顯現變壞故佛世尊說比丘由此法變壞變壞故說色取陰何法能變由手等觸故變壞廣說如經有對㝵故可變壞復次義部經中說求得欲塵人 愛渴所染著 若所求不遂喜彼如被刺復次餘師說此色欲界變壞生對㝵故名色若爾鄰虛色應不成色不可變壞故此言非難鄰虛色無獨住和合故若和合住則可變壞若爾過未來色不應成色此亦已變壞變壞變壞性類故如所燒薪若爾無教不應成色此亦由有教變壞故同變壞如樹動影動是義不然無教無變壞故若爾有教謝滅無教亦應謝滅如樹滅影滅復有餘師說依止變壞故無教亦變壞是義不然若爾眼識等由依止變壞亦應成色是故汝執不平雖然有異何以故無教依四大生如影依樹生光依寶生眼等識不爾依眼等根生諸根一向唯爲眼等識作生因此執非毘婆沙義依樹影生依寶光生彼師說影等顯色鄰虛各各依止自四大故若實如影光依樹寶生無教不應同此依何以故無教所依止四大已謝師不許無教隨滅是故此執不成救復有餘師別立救義言眼等諸識依止各有差別有依止變壞如眼等有依止不變壞如意識等無教依止旣不爾此難則不平是故此義應然由可變壞故名色陰是法前已說陰爲性偈曰此根塵復說十入及十釋曰若安立入門屬十八謂眼入色入乃至身入觸入若安立界門屬十界謂眼界色界乃至身界觸界色陰及安立入界已次當說受等諸此中偈曰受陰領隨觸釋曰有三種領隨觸說名受陰何者爲三謂能領隨樂苦不樂不苦觸是名三受若分別此受則成六受聚謂眼觸所生受乃至意觸所生受偈曰想陰別執相釋曰靑黃長短男女親怨樂苦等相差別執是名想陰復次若分別此想有六如受偈曰異四名行陰釋曰除色受想識四陰餘有爲法行陰經中佛世尊說六故意聚名行取陰此說由勝故此故意聚是業性於造作中最勝故佛世尊說能作功用起有爲法故說此爲有行取陰若不爾所餘心法及不相應法非陰則不可立爲苦諦集諦於彼亦不可立爲應知應離佛世尊說我不說未見未通一法決定至苦後際未除未滅亦爾是故諸有爲法入行陰攝應信此義偈曰是受等三陰釋曰玄且受想行三陰若安立爲入及界偈曰或名法入界幷無教無爲釋曰此七法說名法入及法界偈曰識陰對釋曰對對諸塵意識心是名識陰復次若分別此識則成六識聚謂眼識乃至意識是所說識陰若安立入偈或說爲意入釋曰若安立界偈曰或說爲七界釋曰何者爲七偈曰謂六識意根釋曰眼識界乃至意識界及意界此中五陰已說爲十二入及十無教色是色陰立爲十入十受想行陰無教無爲立爲法入法界是識陰卽是意入及六識界幷意界爲不如此耶前說唯六識爲識陰若爾異此六識何法名意界無別意界異六識雖然是諸識中偈曰六中無閒謝識名意根釋曰六識中隨一無閒滅此識說名意界譬如一人先爲子後爲父又如先爲果後成種子識亦如是先爲六識後成意界若爾實物唯十七界或十二界何以故六識界及意界互相攝故若爾云何安立十八界雖然偈曰爲成第六依故界玄且成十八釋曰是五種識界以眼等五界爲依第六意識界無有別依爲此依故說意界由如此安立依能依境界三六故界成十八若爾阿漢最後心應非意界無識在後生爲無閒滅故成意界是義不然何故此已住意性中故因緣不具故後識不生此中由陰攝一切有爲由取攝一切有流由入由界攝一切盡應知一切諸法復有略攝偈曰略攝一切法由一陰入界釋曰陰中以色陰入中以意入界中以法界應知攝一切法盡如來處處說攝其義應知如此偈曰同自性類故釋曰此攝同性類相應故不由異性故何以故偈曰離餘法性類釋曰諸法與他性相離則此性與彼不相應是故不此性得他譬如眼根由色陰由眼入眼界苦集二諦等攝以同性故不由餘陰等彼性不相應故若爾有處說由他攝他譬如由四攝類攝一切衆生此攝不恒應知名何故不成二十一界何以故眼耳鼻各有二故不應爾何以故偈曰類境識同雖二成一界釋曰此中同類者二同眼性類故同境者此二同緣色故同識者此二共爲一眼識依止故是故眼根雖二共成一界於耳鼻應知亦爾偈曰若爾云何二爲莊嚴生釋曰若實如此眼等一界云何生爲莊嚴依止故若不爾一眼耳一依處生一鼻一孔生此身則大醜陋是義不然若本來如此及猫狸鴝鵒生二眼耳鼻有何莊嚴若爾生二何爲爲助成識故如人閉一眼開一或開一眼半閉一眼見色皆不明爲莊嚴識令成就故三根各須二說陰入界已應說此義陰入界其義云何偈曰聚來門性義陰入界三釋曰隨所有色若過去未來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鄙若美若遠若近此一切色攝聚一處說名色陰由此經言陰以聚義此義得成此中過去色者由無常已滅未來未生在已生未滅於自相續爲內異此名或由入判內外有㝵爲麤無㝵爲或由相待判麤細若汝言或由相則麤細不成是義不然由待異故若此待彼成麤無方便待彼成細如父子有染污爲鄙無染污爲美未來爲遠現在爲近乃至識陰亦復有差別五根依止爲麤心依止爲細毘婆沙師依地判麤細有大德五根所緣爲麤異此名細非可愛名鄙可愛名美不可見處爲遠可見處爲近過去等自名所顯不須別釋應知受等亦爾由隨依止故有遠近麤細義如前入者心及心法來門義或說來增義能增長心及心法來者別義如一山處多有鐵銀等差別故說名界如此於一依止中或相續中有十八種差別說名十八界中別以本義本謂同類因此十八法同類相續爲同類因故說名別若爾無爲則非界是義不然此是心及心法同類因故復有餘師說界以種類諸法種類有十八謂自性故說名若陰以聚義陰應是假名有多物聚集故譬如聚及人是義不然一物松甫虛得陰名故若爾不應說陰以聚何以故一物無聚義故復有餘師說能荷負事是陰義復有師說分分是陰義何以故如有諸說我應轉三陰物此執與經不相應何以故經但說聚是陰義如經言隨所有色若過去未來現在等廣說如經若汝言隨一過去等色陰義於經中應知是故一切過去等色一一皆名色陰不應作此執是一切色攝聚一處說名爲陰由此說故是故諸陰假名有如若爾有色諸入於汝應成假名有何故多眼等鄰虛成來門故是義不然聚集中一一成因故復次與塵共作故根亦非十二入故毘婆沙中說毘達磨師若觀假名陰說則說如此鄰虛者一界一入一陰一分若說則說如此鄰虛者一界一入一陰此中於一分假說具分譬如衣一分被燒說衣被燒復次云何世尊陰等門作三種正說弟子衆偈曰癡根樂三故故說陰入界釋曰阿毘達磨師說如此衆生癡有三種有諸衆松甫生於心法不明執聚爲我故有諸衆生於色不明有諸衆生於色心不明根亦有三謂利中鈍樂亦有三謂樂略中廣文爲此三人次第說三謂陰入界復有何因一切所餘心法佛世尊安置一行陰中分受想二法別立爲陰偈曰根生死因立次第因故心法中受想分立爲別陰釋曰有二一貪著欲塵二貪著諸見受想二法次第爲此二爭勝因由衆生著受味是故著欲塵由隨顚倒想執著諸見受想二法是生死勝因何以故衆生貪著受起倒想輪轉生死復有因爲立次第後文當說此中此次第因分受想二法別立爲陰如此此因立次第中當說復次云何於界入中說無爲陰中不說偈曰陰中除無爲義不相應故釋曰若於五陰中說三無爲不可安立令與陰符何以故義不相應故云何不相應此無爲安色中非色乃至非識不可說爲第六陰何以故不應陰義故陰是聚義前已說無爲無過去未來現在等異如色等由此異一切攝聚一處可立名無爲陰爲顯染污依止說取陰爲顯染污淸淨依止故說陰此二義於無爲中無由義不相應故於陰中不立無爲如甁破壞非甁此陰滅壞不可立爲陰餘師說如此若作此執於界入中成反質難說諸陰別義已偈曰復次第如麤染器等義界釋曰色者有㝵一切中最麤色中行相麤故世閒有說我手痛我腳痛想麤於二男女等差別易分別故於識行麤欲瞋等相易分別故於中識最細由自性難分別故是故最麤於前說復次無始生死男女色互相愛樂由貪著愛味此貪由想顚倒此顚倒由煩惱此煩惱從染污心生如此如染立次第復次由器等義立次第 如器食餚廚人噉者色等五陰亦爾復次或由界立次第欲界欲塵色所顯諸定受所顯三無色界想所顯有頂唯行所顯此四卽是識於四中識能依住此陰次第爲顯田種子次第義是故唯立五陰不多不少由此立次第因於行中分受及別立爲陰由此受想最麤染污次第因想似食餚能顯二界故別立爲入界中眼等六應說次第何以故由隨此塵及識次第易知故此眼等偈曰前五現塵故釋曰眼等五根緣現在塵是故先說意根境界不定有意根緣現在塵有緣三世及非三世塵偈曰四所造塵故釋曰前言流至此五中四在前說所造色爲塵故身塵不定或身緣四大或緣所造復俱緣偈曰餘遠急明事釋曰餘者謂前四根此次第前說由遠急明事耳緣遠境於後二前說於前二眼事最遠遠見江河不聞聲故眼在前後有急緩事如先見人擊鼓後方聞聲鼻舌無遠事鼻事急故如飮食未到舌鼻已知香故又鼻事明了能緣味細香故舌則不爾偈曰復隨處次第釋曰復次於身中眼根依止在上耳根次下鼻又下耳舌又下鼻身多下舌意根依止其中無有的處故如處所立彼次第復次何因十入皆色陰所攝於中唯一入名色入一切入皆法爲自性於中唯一入名法入偈曰爲簡別勝故攝多勝法唯一入名色及一入名法釋曰何爲簡別欲令知如此十法各得入由成立爲根塵故不須聚集更由眼等差別是色不得眼等名亦是色性應知是色入故不立此別名復次色入於中勝故何以故有㝵强故手等物觸卽便變壞復次體相顯現於此彼處易指示故有似影故復次世閒同知說此入爲色非知餘入爲簡別故說一入名法入不說餘入於法入中攝受等多法爲說多法立通名又涅槃是最勝法入此中非於餘入故偏受法名復有餘師二十種品類多餘色故肉天聖慧三眼境故復有餘法陰入界同名餘經中已顯由此三門攝彼皆盡爲不盡由此攝盡無餘此中偈曰如來說法陰其數八十千此但言及名行陰所攝釋曰有諸師執佛正教言音爲性於彼師入色陰攝復有諸師文句爲性於彼師入行陰攝此法陰數量云何偈曰說如法陰量釋曰有諸師說有一分阿毘達磨名法陰其量有六千偈八十千中一一法陰其量皆爾復有諸師說偈曰陰等一一教釋曰陰入界緣生諦食定無量無色解脫制入遍入覺助通解願智無爭等正教隨一一皆名法陰偈曰實判行對治隨釋法陰爾釋曰諸師實判如此衆生有八萬煩惱行類欲瞋癡慢等差別故爲對治此行尊正說八萬法陰如八萬法陰於五陰中入色行二陰攝偈曰如此餘應陰入及界等於前說中攝熟思彼性類釋曰若有餘陰入界等於餘經中說是彼如前所說陰入界中隨彼性類此論中所說應善簡擇攝入其此中有別五陰謂戒陰定慧解脫解脫知見陰界陰入色陰攝餘四入行陰攝復有十遍入前八遍入無貪爲自性故法入所攝若共伴類五陰爲性故意法二入所攝制入亦爾遍入識遍入及空等四無邊入四陰爲性故意法二入所攝復有五解脫入智慧爲性故法入所攝若共伴類聲意法三入所攝復有二入謂無想非想非非想入第一入卽無想天十入所攝除香味入故第二入意法二入所攝如此於多界經中佛說有六十二界此等諸界如理應知入十八界中攝彼中所說六界謂地界水空識界六中二界未說其相無爲空爲應知卽是空界耶一切識爲應知卽是識界耶彼說非云何非門風口內等偈曰竅穴名空界釋曰若說竅穴應知是何法偈曰言謂光闇釋曰何以故無有竅穴光闇可見故是故彼言空界唯光闇爲性晝夜爲位此空界說名鄰㝵色彼說㝵色者謂聚集中色最易變壞光闇與㝵色相鄰故名鄰㝵色有餘師釋此亦是㝵他於此無㝵故與餘色相鄰偈曰識界卽是識有流釋曰云何不說無流由佛許六界生所依釋曰此六界從初託生心乃至死墮心生所依止若無流法不得如此如此六界中前四觸界攝五色界攝第六七識界攝說攝義已前所說十八界於中幾有顯幾無顯於中一有顯謂色釋曰此色易可顯如言此色彼色由此言故應知義所餘非顯幾是有㝵幾是無㝵十有㝵有色釋曰此十界色陰所攝是有㝵㝵是何法相障故名㝵㝵有三種一障㝵二塵㝵三緣緣㝵此中障㝵者於自處對障他生如手於手自相對障石於石亦爾塵㝵者眼等諸根於色等塵如假名論說眼於水有㝵非於陸地如魚等眼眼於陸地有㝵非於水中從多如人等眼有眼二處有㝵謂於水陸如龜人等眼有眼二處無㝵除前三句有眼於夜有㝵非於晝時如蝙蝠鴝鵒等眼有眼於晝有㝵於夜時從多如人等眼有眼於晝夜有㝵如狗野干馬豹猫狸等眼有眼於二時無㝵除前三句塵㝵相如此緣緣㝵者心及心法於自緣緣境有塵㝵與緣緣㝵異相云何此法於㝵處有功能說是處爲此法塵名爲塵㝵心及心法所取之塵名緣緣㝵云何此根於自境相續生及識於緣緣生說名有㝵過此於彼不生故此中㝵者以到義謂於自境生中由障㝵應知十界有㝵互相障故若法由塵㝵有㝵亦由障㝵有㝵不有四句第一句謂七心界及法界分相應心法第二句謂五塵第三句謂五根第四句謂法界一分心不相應法若法由塵㝵有㝵亦由緣緣㝵有㝵不除後二句若法由緣緣㝵有㝵必由塵㝵有㝵有法由塵㝵有㝵由緣緣㝵有㝵如五根大德鳩摩羅羅多說是處心欲生 他㝵令不起 應知是有㝵異此非有㝵說有㝵已十八界中幾善幾惡幾無偈曰八無記釋曰何者爲八前所說十種有㝵中偈曰是諸除色聲五根香觸界是八由善惡差別不可記故故說無記有餘師說約果報不可記故名無記若爾於無流則成反質難偈曰餘三性釋曰餘十種界具善無記性此中七識界與無貪等相應是善性若與貪等相應是惡性所餘是無記性法界與無貪等善相應及發起擇滅皆是善性與貪等惡相應及發起是惡性所餘是無記性色界聲界善惡心發起是善惡性身業所攝故若異此是無記性說諸界善等性已十八界中幾於欲界相應幾於色界無色界相應偈曰欲界一切有釋曰相應是有義不相離義於欲界中具足十八偈曰色界十四釋曰於色界中不具但有十四何者十四偈曰除香味及鼻舌識故釋曰於色界中無香味此二是段食類故由離欲段食於彼受生故由無此塵舌二識亦不得生無緣緣故若爾於彼不應立有觸界觸亦是段食類故實爾若觸非段食類於彼可若爾香味亦應然是義不然何以離食無別用香味如觸觸有別用謂能成根能爲依持及成衣服等故彼處衆生離欲段食是故香味無用觸則不爾有餘師說依止定及三摩跋提或見色聞聲與輕安相應有觸勝類能益彼身是故此三於定生處得相隨生香味不爾若爾於彼不應有鼻舌二根是義不然何以故此二有用若離此二身則醜陋無二根故又言說不成若用如此但須鼻舌依爲莊嚴身及以言說不須鼻舌二是義不然無但依止非根如男根依止於彼此不生可然以無用故舌依止於彼有用是故若離根於彼此生則應理若有諸根無用亦生於胎中定死衆生無用可生非無因可生此諸根從何因生於根有愛有勝業若人離欲於塵於根決定離彼人若已離欲香味二塵舌二根於彼不應得生若生鼻舌二根根云何不生由生醜陋故若根藏如象王陰云何醜陋不必由有用故生云何生必由因故生雖復醜陋若有因必應生因旣無此不生彼云何生是義不然與經相違故經言彼人具足根無闕少是義不然隨彼所有根說無闕少有何相違若不爾於彼亦應有男根彼說如此於彼有鼻舌二根但無香彼由內依門於六根生貪愛不由外塵門於男根生愛必由婬觸門起是故此義得成故於色界有十四界偈曰無色界相應意法意識釋曰已離欲色界於彼受生十界色爲性及五識界用彼爲依境是故於無色界不得有幾界有流幾界無意法識三界前所說偈曰諸有流無流是三釋曰若是三界中道諦無所攝是無流異此是有流偈曰有流釋曰所餘十五界一向定有流幾界有覺有觀幾界無覺有觀幾界無覺無觀偈曰有覺亦有觀定是五識界釋曰是五識界恒與覺觀相應言定爲簡異餘界故偈曰後三有三義釋曰意界法界意識界是十八中最後故言後此具三品意界意識界與心相應法界除覺觀於欲界及初定有覺有觀於中閒定無覺唯有從第二定以上乃至有頂無覺一切心不相應法界及中閒定觀是覺恒無覺唯有觀無第二覺故與觀相應故於欲界及初定觀不入三品中說其名應云何無觀唯有覺第二觀故與覺相應故故說如此覺觀地有四品法一有覺有觀謂除覺觀所餘心相應法二無覺有觀唯是覺三無覺無觀謂心不相應法四無觀有覺謂唯是觀偈曰餘界二所釋曰十有色界名餘此十界恒無覺觀與心不相應故若五識聚有覺云何說無分別偈曰顯示及憶念由二無分別釋曰彼說分別有三自性分別二顯示分別三憶念分別五識唯有自性分別無餘二分別說無分別如馬一足說言無足此中自性分別卽是覺觀此後明心法中當說後二分別其相云何次第偈曰二是散心智諸念唯心地釋曰此智與意識相應故名心智非寂定故此智卽是顯示分別一切憶念與意識相應若定若散名憶念分別界有緣緣幾界無緣緣偈曰七識有緣緣釋曰謂眼身識意根此七識界有緣緣能取塵故偈曰法界中有半釋曰此亦有緣緣以心法爲體故餘十有色界及法界一分與心不相應法應知無緣緣幾有執幾無執偈曰九界非所執釋曰何者爲九七有緣緣界幷第八中半偈曰八聲釋曰此九是非所執謂七識界法界聲界偈曰餘有二釋曰餘有二謂或有執或無執此中眼若現在則有執觸現在若與根不相離亦有執所餘則無執如除根髮尿血等中及於地水等中有執無執此言何義心及心法攝彼爲自依止由彼損益互相隨故是世閒說有覺此名有執故以覺義所餘名無執幾界四大爲性幾界四大所造爲性偈曰觸界有二釋曰觸有四大及四大所造堅等四觸是四大軟滑等七觸是四大所依四大生故名所造偈曰九有色所造釋曰五根界四塵界此九但是所造偈曰及法界一分釋曰法界中無教色彼說亦是所造所餘七識界法界中除無教非二種佛陁提婆說十入唯四大此執不然於經中由決了說四大及堅等四相故此四大是觸故此堅等四相非眼等所見色等四塵非身根所覺是故此執不如經中佛世尊說比丘眼根者是內入依四大是四大所造淨色有色無顯有㝵乃至身根亦爾比丘色者是依四大是四大所造有色有顯有㝵比丘聲者是外入依四大是四造有色無顯有㝵乃至味亦爾丘觸者是外入是四大或依四大是四大所造有色無顯有㝵如此經中由觸一分攝四大皆盡所餘非四大義明了可知復次經中說眼謂肉丸於中是堅是堅類如此等經但說肉丸與眼根不相離不說眼根於入胎經中說比丘入者謂唯六界此說爲顯成就衆生根本復於此經由佛說六種觸入故若不爾於汝亦應無受等法若汝言心法卽是心是義不然想受是心法依心生由此經言及說心爲本故故此執不如由說心與欲相應是故如前說諸界有四大及四大所造是義得成幾界微聚成幾界非微聚成偈曰十有色微聚是五根界及五塵界微聚所成虛衆所成故阿毘達磨俱舍釋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본 단락에서 질문하는 것은 귀경게(歸敬偈)에 관한 것이다. 본 대목의 해설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대승(大乘)에서 세친 논주(世親論主)를 보살로 간주하는 경우, 둘째는 소승(小乘)에서 세친 논주를 승주(僧主)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해석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의미를 한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법사(法師) 그대로 해석했다. 참고로 본문 답은 오입존자(悟入尊者)의 질난(質難)에 대해 세친 존자가 자신이 경량부의 설을 취한 것이 아니라 성전설(聖傳說)을 그대로 채용했다고 반박하는 대목이다.
  2. 2)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분별도리이론(分別道理二論)』으로 되어 있으나 범어 원문은 prakaraṇa-grantha이다. 진제(眞諦)는 『분별도리론(分別道理論)』, 현장은 prakaṇa-pada-sutra로 보아 품류족론(品類足論)이라 번역했다. 여기서 족(足)은 척도의 의미이다. 여기의 분별도리이론은 분별을 현종(顯宗), 도리를 정리(正理)로 보아 분별론과 『도리론』의 두 가지 논서란 뜻이나 이것은 잘못이다.
  3. 3)‘어찌 …뿐이겠는가?’ 원문에서는 야(耶)로 되어 있다. 현장은 이것을 등(等)으로 번역했다. 광기(光記)에서는 난심(亂心)은 불란심(不亂心)을 짝하는 산위(散位)의 심지(心地)로, 무심(無心)은 유심(有心)을 짝하는 정위(定位)의 심지(心地)로 풀이하고 있다. 범문에는 vikṣipta acitta kasya api yah anubandaḥ śubha aśubhaḥ(亂心이나 無心에 처해서, 善ㆍ不善을 추종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어, 범어 api가 야(耶)에 해당된다.
  4. 4)남전 수타니파타의 의품 aṭaka-vagga을 가리킨다.
  5. 5)분분(分分)은 분단신(分段身), 분단생사(分段生死)의 경우처럼, 생사(生死)의 분위(分位), 즉 삼세(三世)를 가리킨다.
  6. 6)범어 antarāt의 역어이다. 이것은 범어 관용어로서 이곳 저곳이 아닌 ‘…이 상대하는 그 중간에서’란 뜻이다. 그 중간은 바로 식입(識入)이 대입(對入)되기에 뒷 문장에서 ‘입(入)’이라고 말하게 된다.
  7. 7)유연연(有緣緣)을 구태여 해석하자면 ‘인연이 되는 것’이다. 연연(緣緣)의 유무(有無)에 대비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