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8_0572_a_01L존바수밀보살소집론 서문
028_0572_a_01L尊婆須蜜菩薩所集論序


바수밀(婆須蜜) 보살대사(菩薩大士)는 다음에 미륵(彌勒)의 뒤를 이어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이름은 사자여래(師子如來)이시다.
석가문(釋迦文)을 따라 내려와 비제국(鞞提國)에 태어나서 대바라문(大婆羅門) 범마유(梵摩渝)의 아들이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울다라(欝多羅)였다.
028_0572_a_02L婆須蜜菩薩大士次繼彌勒作佛師子如來也從釋迦文降生鞞提國爲大婆羅門梵摩渝子厥名鬱多羅
아버지가 명(命)하여 부처님을 뵙도록 하자 찾아가 네 달 동안 모시면서 부처님의 상표(相表)와 위변(威變)과 용지(容止)를 자세히 보고 돌아와서 뵈었던 바를 말하였다.
아버지가 부처님 곁에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자마자 출가하여 배우면서 이름을 바수밀이라고 고쳤다.
028_0572_a_05L父命觀佛尋侍四月具睹相表威變容止還白所見父得不還已出家學改字婆須蜜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하신 뒤에는 주투국(周妬國) 반내원(槃奈園)에 유행(遊行)하면서 교화하였고 뛰어난 재주가 세상을 뒤덮었으며, 분일(奔逸)하면서 번뇌를 끊고 이 경(經)을 찬집(饌集)하였다.
따로 7품(品)을 1건도(揵度)로 삼아, 모두 12건도로 찬집하였으며, 마지막 4품의 1건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게송을 훈석(訓釋)한 것이다. 무릇 11품 14건도이다.
028_0572_a_08L佛般涅槃後遊教周妒國槃奈園高才蓋世奔逸絕塵撰集斯經焉別七品爲一揵度盡十二揵其所集也後四品一揵度訓釋佛偈也凡十一品十四揵度也
갖추어 펼친 것이 깊고도 넓어서 아비담(阿毘曇)과 함께 외국에서도 흥(興)하였으며, 곁들어 대승(大乘)까지도 통하였다. 밝음[明]을 지니고 번뇌[漏]를 다했으며, 열 가지 법[十法]을 널리 섭렵하고 백 가지 행[百行]의 능히 할 일을 마쳤다.
028_0572_a_12L該羅深與阿毘曇竝興外國傍通大乘明盡漏博涉十法百行之能事畢矣
그것을 찾고자 하면 넓고도 먼 것이 마치 창해(滄海)가 끝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어찌 넓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를 사귀려고 똑바로 보면 마치 곤악(崑岳)에 산마루가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높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028_0572_a_14L尋之漭然猶滄海之無崖可不謂之廣乎陟之瞠爾猶崑嶽之無頂可不謂之高乎
보배 섬에서 한껏 보면서도 밤에 비추는 보석을 싫어하고 바위 굴에서 눈썹을 치켜들면서도 천하의 지혜로운 옥을 싫어하게 되니, 아름답고 부유함이 어찌 이 경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외국의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이들도 미처 땅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028_0572_a_17L寶渚極目厭夜光之珍岫擧䀹厭天智之玉懿乎富也何過此經外國昇高座者未墜於地也
028_0572_b_02L바수밀보살께서는 이 경을 찬집한 뒤에 3매정(昧定)에 들어 손가락을 튕기는 잠깐 사이에 정신이 도술천(兜術天)에 올라가니, 미투로(彌妬路)와 미투로도리(彌妬路刀利) 그리고 승가라찰(乘伽羅刹)도 그 천궁(天宮)으로 찾아갔다. 이 두세 군자(君子)들은 모두가 다음의 보처(補處)가 되실 분들이니, 미투로도리는 광염여래(光炎如來)이시고 승가라찰은 유인불(柔仁佛)이시다.
028_0572_a_19L斯經已入三昧定如彈指頃神昇兜彌妒路彌妒路刀利及僧迦羅剎適彼天宮斯二三君子皆次補處人彌妒路刀利者光炎如來也僧迦羅剎者柔仁佛也
여기에 네 분 대사[四大士]들은 한 집[一堂]에 모여 중생을 대할 적마다 권지(權智)를 널리 선양하면서도 현성(賢聖)들은 말없이 묵묵히 계시고 양양(洋洋)하여 가득할 따름이었으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028_0572_b_03L茲四大士集乎一對揚權智賢聖默然洋洋盈耳不亦樂乎
계빈국(罽賓國) 사문 승가발징(僧伽跋澄)이 진(秦)나라 건원(建元) 20년(서기 384)에 이 경 한 부를 가지고 장안(長安)으로 왔다. 무위태수(武衛太守) 조정(趙政)은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선비였으므로 이 경을 구하여 출간하게 된 것이다.
028_0572_b_05L罽賓沙門僧伽跋澄以秦建元二十年持此經一部來詣長安威太守趙政文業者學不厭士也令出之
불념(佛念)은 전(傳)을 번역하였고, 발징(跋澄)과 난타(難陀)와 제바(禘婆) 세 사람은 호문(胡文)을 맡았으며, 혜숭(慧嵩)은 필수(筆受)하였다. 3월 5일에 시작하여 7월 13일이 되어서야 끝마쳤으니, 호본(胡本)은 12천 수로(首盧)였다. 나와 법화(法和)가 서로 교정하면서 수식하였고 무위(武衛)는 다소 윤색(潤色)하였다.
028_0572_b_08L佛念譯傳跋澄難陁禘婆三人執胡文慧嵩筆受以三月五日出七月十三日乃訖胡本十二千首盧余與法和對校修飾武威少多潤
이 경은 3승(乘)을 설하여 9품(品)이 되었고, 잘 지니고 수행하여 정관(正觀)으로 다스렸으니 열여섯 가지를 가장 잘 갖추었다.
그리고 늘 윗 사람의 운치를 찾으면서도 의미를 잊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만 한(恨)스러운 것은 여러 길 되는 문을 엿보다가 너무 늦어 그 종묘(宗廟)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부(富)를 다 알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028_0572_b_12L此經說三乘爲九品持善修行正觀逕十六最悉每尋上人之高韻未嘗不忘意味也恨闚數仞之門晩不悉其宗廟之美百官之富矣

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所集論)
028_0572_b_15L尊婆須蜜菩薩所集論卷第一


존바수밀(尊婆須蜜) 지음
승가발징(僧伽跋澄) 등 한역
변각성 번역
028_0572_b_16L尊婆須蜜造
符秦罽賓三藏僧伽跋澄等譯


1. 취건도(聚揵度) ①
028_0572_b_18L聚揵度首第一秦言地親也自品首盡七品名聚揵度
10력(力)께서 자비로 세상애 나타나
온갖 법을 밝게 깨달아 아셨네.
나는 지금에 그러하신 부처님과
진리와 거룩한 대중에게 예배합니다.
028_0572_b_19L十力哀出世
覺知一切法
我今禮如來
法及諸聖衆
가장 수승한 좋은 법의 구절을
여러 성현들이 잘 들으시고서
구담(瞿曇) 대중들은
여러 중생들을 잘 도와주시네
028_0572_b_21L最勝之善句
諸賢聖聽聞
瞿曇大衆中
有益衆生類
어떤 것을 색상(色相)이라고 하며, 그 색상은 어떤 것인가?
028_0572_b_22L云何爲色相色相云何
【답】온갖 법을 그대로 잘 깨달아 아는 것이다.
028_0572_b_23L答曰如覺知諸法
어떤 것을 온갖 법을 잘 깨달아 안다고 하는가?
云何覺知諸法
【답】유계(有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028_0572_b_24L答曰爲有界
보다 수승한 것이 있게 되는가?
爲有勝耶
【답】그에게는 하나의 생각[一想]이 있다.
答曰彼有一想
028_0572_c_02L【문】그 하나의 생각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028_0572_c_02L一想爲有勝耶
【답】하나의 생각 중에는 애욕의 모든 때[垢]에 집착되어 온갖 경계에 묶인 바가 되었으나 끝내 묶이지 않나니, 때문에 온갖 결박이 곧 약해지게 된다
028_0572_c_03L答曰一想之中著欲諸垢諸界所縛終不縛者是故諸結則衰
【문】그 온갖 결박[結] 중에서도 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028_0572_c_04L如中諸結爲有勝耶
【답】장차 감로(甘露)법에 이르게 되는 그것이 있다.
028_0572_c_05L答曰當有還甘露
【문】그 중에 서로 감로법에 이르게 되는 그것보다 수승한 것이 있는가?
如中當還甘露爲有勝耶
【답】의생신(依生身)과 의생의(依生意)에서는 온갖 괴로움을 받는 그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몸과 뜻[意]과 온갖 괴로움이 이미 지난 과거가 된다.
028_0572_c_06L依生身意受諸苦惱緣亦不起故身意諸苦惱已過去
【문】만일 그 중에 색상이 없다고 하자 설령 색상이 없다면 물질 역시 그 모양이 없는가?
028_0572_c_08L如中無色設無色相色亦無相
【답】만일 색상이 없으면 또한 저 물질도 없으며, 색상에도 또한 그 모양이 없고 또한 색상이 더럽힐 것도 없다.
028_0572_c_09L答曰若無色相亦無彼色色相亦無相亦無淫色相
【문】그대에게 색상에 물질이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나에게도 색상이 없고 또한 그 모양이 없는가? 또한 색상이 있는가?
028_0572_c_11L猶如汝無色相有色如是我無色相亦無相亦有色相耶
어떤 이는 “차츰차츰 색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028_0572_c_12L或作是漸漸興色相
【문】하나의 물질 중에서 혹 일어나기도 하고 혹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72_c_13L一色中或興或不此義云何
어떤 이가 “만일 물질이 어느 때에 차츰 쌓인다면 거기에는 색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차츰차츰 색상을 분별하는 것도 역시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색상을 모조리 통괄했다”고 말했다.
028_0572_c_14L或作是說若色一時漸彼無色相或作是說漸漸分別色此亦如本所說或作是說攝統色
【문】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가장 다르다는 말씀은 없고 곧 무형[無色]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72_c_17L過去未來色最別無教便有無或作是說攝繫色相
어떤 이는 “색상을 껴잡아 매어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또 “온갖 덮임[蓋]과 색상까지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망가지고 없어진 색상이라고 한 그것도 역시 과거와 미래에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이는 “색상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볼 수도 있고 상대도 있는 것[可見有對]과 볼 수 없고 상대만 있는 것[不可見有對]과 볼 수도 없고 상대도 없는 것[不可見無對]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2_c_18L或作是說諸蓋色相或作是說壞敗色相此亦過去未來所說或作是說色相有三可見有對不可見有對不可見無
【문】만일 모든 물질이 볼 수도 없고 상대도 없다면 그것을 가지고 색상이 없도록 한 것인가?
028_0572_c_22L若諸色不可見無對欲使彼無色相耶
어떤 이는 “색상이 가고 오고 하는 그것을 색상이라 한다”고 말했다.
028_0572_c_23L或作是說色相往來是謂色
【문】과거와 미래에 대한 내용이 조금도 다름이 없는가?
過去未來義不有異
028_0573_a_02L어떤 이는 “색상이 물질이 된다”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4대(大)로 말미암아 물질이 되었다”고 말했다. 세존께서도 역시 “4대로 된 것이니, 저 네 요소로 말미암아 색음(色陰)이 생기고 수음(受陰)이 왕성해진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2_c_24L或作是說色相爲色或作是說因四大義爲色世尊亦說四大緣彼四大生色陰受
【문】그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거기에서는 온갖 물질을 상대로 한 저 온갖 것은 네 요소이고,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028_0573_a_04L取要言之彼則不說緣諸所有彼一切是四大四大所造
【답】그것은 요점을 들어 말한 것이 못 된다. 또 말하기를 “인연이 변경됨으로써 온갖 고통스러운 음(陰)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대는 어떠한 색상을 묻는가? 만일 푸른 것이라고 하면 푸른 그것이 색상이 되고, 누런 것이라고 하면 곧 누런 그것이 색상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73_a_05L答曰非取要又作是說緣更生諸痛陰作是說汝問何色相設靑靑爲色相設黃卽彼色相也
【문】나는 온갖 색상을 묻는다. 만일 저것이 색상이라면 그 모양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는가?
028_0573_a_08L我問一切色相設彼是色相相無勝
【답】빛깔에는 동일한 하나의 모양만이 아니니 그 중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설령 모양과 모양이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 내용만은 곧 그러하지 않으니, 마치 땅은 굳은 모양이 되나 지금에 땅이 다르고 굳음도 다른 것과 같다.
028_0573_a_09L答曰色不同一此中有何咎設相相不同此義不猶若地爲堅相如今地異堅異
【문】온갖 물질이 동일한 모양인 것은 마치 무상(無常)한 것과 같다. 제 모양[自相]이 모양 없음을 물을 적에는 땅이 제 모양이 되나니 그러므로 그러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제가 제 모양이 없음’을 물을 적에는 저는 온갖 모양을 묻는다.
028_0573_a_11L一切色同一相猶如無常自相無地爲自相是故不應作是說無自相我問一切諸相
어떤 이가 “상대가 있는 물질[有對色] 모양은 바로 빛깔이니 색상이 되며, 상대가 있는 모양[有對相] 그것은 마치 화살이나 회초리를 잡는 것과 같나니 그것은 빛깔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3_a_14L或作是說對色相是色爲色相有對相者猶如捻箭筈是謂有色
곡식의 종자를 땅에 심어두고 수시로 적당한 수분을 공급하면 거기에는 곧 및깔이 생겨나게 되는 것과 같나니 무엇을 색상이 아니라 말하는가?
028_0573_a_16L如種穀子在地時漑灌彼便有色云何非色相
【답】위에서 말한 내용과 정반대이다. 담마다라(曇摩多羅)존자는 “온갖 물건으로서 상대가 없는 것은 빛깔이 아니니 그것을 색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상대가 없는 물건은 그것 또한 나지 않나니 그를 상대가 없다[無對]고 말한다. 마치 상대 없는 것은 그 상대의 자취인 것과 같아서 그는 곧 상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색상이 아니다. 4대(大)로 만들어진 물질에는 어떠한 다름이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어떤 이는 “다름이 없나니 온갖 네 요소가 바로 만들어진 물질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3_a_17L答曰反上所說義尊曇摩多羅說諸物無對彼非色是謂非色相無對之物彼亦不生是謂無對猶如無對是對彼便是無對如是非色相四大所造色有何等異或作是說無有異也諸四大卽是造色
【문】세존께서 “온갖 빛깔이 있는 저 온갖 것들은 곧 네 요소이니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경에 어김[違]이 있다.
028_0573_a_23L如世尊言諸所有色彼一切是四大四大所造耶此經有違
028_0573_b_02L【답】만들어진 소리가 다시 딴 감관[根]에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를테면 여섯 갱락(更樂)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탐내고 있으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참는 수행이 그에서 생긴다. 그 낙이 생긴 이후로부터 그 중간에 이르기까지 여섯 갱락 밖에 다시 일곱 갱락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만든 자도 없다.
028_0573_b_02L答曰非所造聲更有餘根如說六更樂愚人所貪忍苦樂行從此所興樂以來於其中閒不出六更樂外更有七更樂也亦無造者
【문】만일 소리를 만든 것이 없다면 또한 애욕과 형색을 변경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내 물질인가?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인가?
028_0573_b_05L無造聲者亦不變易欲色是我所色亦是我有耶
어떤 이는 “굳음ㆍ축축함ㆍ따뜻함ㆍ움직임 그것이 곧 네 요소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땅의 빛깔은 빛깔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이 아닌 것과 같다.
028_0573_b_07L或作是說堅濡熱動是四大相猶如非地色從色造色
【문】네 요소가 이리저리 그 우열이 있고 물질은 언제나 만들어지지 않는데 그것들을 만들어짐이 있는 물질이라 보려고 하는가?
028_0573_b_08L大轉轉優劣色不常作欲使彼有造色耶
【답】비록 저 네 요소가 이리저리 그 우열로 네 요소의 모양이 있게 되었으나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은 네 요소의 모양이 되지 않나니, 그는 거기에서 일어난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온갖 인연은 저 네 요소와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이다”라고 했다.
028_0573_b_10L答曰雖彼四大轉轉優劣得四大相四大所興色非得四大相彼非所興色或作是說諸緣彼四大四大所興色
【문】네 요소가 또한 네 요소를 인연하는데 그것에서 일어난 물질인가?
028_0573_b_13L四大亦因四大欲使是興色耶
【답】그것들이 비록 네 요소를 인연하기는 하나 약간의 인연하는 바가 있고 네 요소가 곧 색상을 일으킨 것이다.
028_0573_b_14L答曰彼雖因四大有若干所因四大是興色相
【문】물질이 색상에 인연하여 그 물질이 더욱 물질을 내는 것인가?
028_0573_b_15L色緣色相色轉生
【답】물질이 더욱 물질을 내고 다시 네 요소를 인연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아는가? 어떤 이는 “유루(有漏)의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은 또한 유루이기도 하고 또한 무루(無漏)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028_0573_b_16L答曰云何得知色轉生色復不緣四大耶或作是說有漏四大所興色亦有漏亦無漏
【문】온갖 유루의 것에서 만들어진 물질은 저 네 요소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온갖 무루의 것에서 일어난 물질은 어떤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인가?
028_0573_b_18L諸有漏所造興色被四大有何差降諸無漏所興色等四大造耶
어떤 이는 “무기(無記)인 네 요소에서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만들어진 물질이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어떤 이는 “저 네 요소에 의하여 일어나게 된 물질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3_b_20L或作是說無記四大所復次所造色者不善無記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依彼四大得興
【문】마음과 마음이 생각하는 법도 역시 네 요소에 의해서 그것들이 물질을 일어나게끔 하는 것인가?
028_0573_b_23L心心念法亦依四大欲使彼是興色耶
【답】네 요소에 의한 것은 모든 감관[根]인데 모든 감관 역시 마음과 마음이 생각하는 법에 의하나니 그러므로 그것들이 네 요소에 의하지 않는다.
028_0573_b_24L答曰依四大諸根諸根亦依心心念法是故彼不依四大
028_0573_c_02L【문】이름과 물질[名色]이란, 이러나 저러나 서로 의지하지 않는가?
028_0573_c_02L名色者展轉不相依
어떤 이는 “증가하는 네 요소이기에 네 요소가 증가하여 물질을 일으킨다”고 했다.
028_0573_c_03L或作是說增上四大四大增上興色
【문】그것은 약해서 줄어듦과 증가함을 말하는가? 그것은 증가하고 나지 않음을 말하는가? 마치 온갖 법이 이리저리 증가하여 서로 생기는 것과 같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그것들은 나지 않는다.
028_0573_c_04L是謂衰耗增上謂增上不生猶如一切法展轉增上相生是故彼不生
승가다라(僧伽多羅)존자가 “네 요소인 큰 사실이 일어나는 인연에서 물질이 생긴다고 말하였다.
028_0573_c_06L尊僧伽多羅說大大事興因緣生色
【문】네 요소가 각각 서로 떠나지 않으며 또한 큰 사실이 일어난 것도 아니니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73_c_07L四大各各不相離亦非大事興此義云何
【답】만일 떠나지 않게 된다면 혹 네 요소는 물질이 아닐 것이니, 바람이 허공에서 떠돌아 다님과 같고 물질에 냄새와 맛이 없는 것과 같다. 네 요소는 물질이 아니면서도 물질에 들어가 만드는 작용을 한다.
028_0573_c_08L答曰得不離或四大非色如風種空流離色種無香味四大非色入色造
바수밀(婆須蜜)존자가 “갱락(更樂)은 역시 네 요소에서 일어난 물질이니, 땅의 빛깔ㆍ땅의 냄새ㆍ땅의 맛과 같다”고 말했다.
존자 담마다라존자는 “마치 미묘한 물질을 네 요소가 해산시킬 수 있고 그 밖의 물질까지도 그러하나니 그것을 물질을 일으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73_c_10L尊婆須蜜說更樂亦是四大所興色也地色地香地味尊曇摩多羅說猶如微妙色四大得解亦及餘色是謂興色也
어떠한 내용에서 신식(身識)이 받아들이매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데 혹 네 요소이기도 하고 네 요소가 아니기도 하는가?
028_0573_c_14L以何等故身識入細滑入或是四大或非四大
어떤 이는 “저것은 인연이 없으니, 빛깔을 분명하게 인식함에 혹은 푸른 것, 혹은 푸른 것이 아닌 것이라고 함과 같나니, 그를 신식이 받아들일 때에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는데 혹 네 요소이기도 하고 혹 네 요소가 아니기도 하다”고 말했다.
028_0573_c_15L或作是說彼無因緣如明識色或靑或非靑是謂身識入細滑入或是四大或非四大
어떤 이는 “사대의 모양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온갖 가늘고 윤활한 것으로만 된 것이 아니니, 네 요소의 모양이 동일하지 않고 축축함과 딴딴한 모양도 또한 같지 않으며, 굵고, 가늘고, 가볍고, 무겁고, 차갑고, 굶주리고, 목마름 따위가 같지 않다. 저 가늘고 윤활한 것이 굵은 땅에서 생긴 것인데, 가벼운 것은 불과 바람으로 만들어졌고, 무거운 것은 땅에서 생긴 것이며, 차가운 것은 물에서 만들어졌고, 굶주림과 목마름은 불과 바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3_c_17L或作是謂四大相彼非一切從細滑得大相不同濡堅相亦不同麤細輕重寒飢渴於彼細滑麤地所生輕者火風所造重者地所生寒者水所造渴火風所造
028_0574_a_02L【문】땅의 견고한 것보다 더한 것은 있지 않나니 가늘고 윤활하고 굵은 것은 바로 땅의 처소이니, 이것을 증가함이 있다고 말한다. 땅의 평탄하고 바른 것과 같기 때문에 가늘고 윤활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며, 땅의 평탄치 못한 것과 같으면 굳고 굵은 것이라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굵음과 가늘고 윤활한 것이 없다. 설령 굵고 가늘고 윤활한 것을 성취한다고 하더라도 온갖 것이 항상하면 될 수 있는 사실이나 푸른 빛깔을 언제나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그가 성립되지 못한다.
028_0573_c_22L無有出地堅者細滑麤是地處所是謂有增如地平正故曰細滑如地不平正故曰堅麤也故無麤細滑設麤細滑當成就者一切常可得如靑色不可得是故不成就
저것에 혹 가벼울 원인이 있다가도 저것이 다시 무거워질 수 있나니, 그러므로 가벼움과 무거움도 성취될 수 없다. 만일 차가워졌다면 어떻게 푸른 연꽃이 생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저 사대에서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니, 그러므로 차가움도 성취될 수 없다.
만일 불이 성하면 굶주리고 바람은 목마름의 근본이 된다. 어떤 이는 “온갖 신식(身識)이 가늘고 윤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히 사대라고 말해야 하나니, 사대를 떠나지 않고 신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대가 더욱 증가함을 제각기 말한다”고 말한다.
028_0574_a_03L彼或有輕因彼復有重是故輕重不得成就若成寒者云何得生靑蓮華不於彼四大得是故寒不成就若火盛則飢風爲渴本或作是說一切身識細滑入當言四大也不離四大有身識也四大轉增各各說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어떤 이는 “무지(無智)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a_09L云何無明或作是說無智是無明也
【문】어찌하여 무지를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는가? 만일 그것이 지혜가 아니라면 저것은 곧 무명이다. 풀과 나무와 장벽(牆壁)은 모두가 지혜롭지 못하니 그것들을 무명이라고 해야 하는가?
028_0574_a_10L云何無智言非智耶設是非智彼是無明木牆壁皆不智欲使彼是無明耶
【답】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은 법과 서로 상응한다.
028_0574_a_12L心念法與心相應
【문】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은 많고 마음 법[心法]의 모양은 무지인데, 어찌하여 미사색(彌沙塞)1)에서는 “아직 무명(無明)을 깨닫지 못하여 무명을 수행하니, 저 밝음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을 무명이라고 이른다. 마치 소금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을 소금이 없다고 말함과 같다”고 했는가?
028_0574_a_13L心所念法衆名心法相無智云何彌沙塞作是說未辯無明修行無明彼不有明時謂無明如不有鹽彼謂之無鹽
【문】만일 저 밝음이 있지 않을 적에 그것이 밝음을 일으키면 곧 무명이 있는 것이 마치 저 그릇에 소금이 없으면 저 그릇에는 소금이 없다고 말함과 같다. 만일 밝음이 있지 않으면 저 무명은 공연히 무명만 있을 뿐이다. 만일 밝은 물건이 곧 무명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행(行)의 인연이 있는가?
028_0574_a_16L彼無有明時彼便起明則有無明如彼器無鹽彼器謂之無鹽若不有彼無明空便有無明若是明物是無明者云何行有緣
어떤 이는 “5개(蓋)가 곧 무명이다”고 말했으며, 세존께서도 역시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에 덮인 바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4_a_20L或作是說五蓋是無明世尊亦說世閒愚人無明所
028_0574_b_02L【문】결(結)은 중요한 자리가 없는가?
어떤 이는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이 곧 무명이다”고 말했다.
세존께서 또한 “비구가 부정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아니한 애욕의 번뇌[欲漏]가 곧 생기게 되고, 이미 생긴 애욕의 번뇌는 갑절이나 더 많아지며,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또 “무명습(無明習)은 곧 유루습(有漏習)이니, 그러므로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은 곧 무명이라 말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4_a_22L結無有要處或作是說思惟不淨是謂無明世尊亦說比丘當思惟不淨未生欲漏便生已生欲漏倍增有漏無明漏亦復如是亦言無明習卽是有漏習是故思惟不淨是謂無明也
【문】부정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곧 무명인가?
그것도 부정을 생각한 것에 관련되므로 역시 무명이다. 또 세존께서 “그와 같이 비구가 부정(不淨)을 생각하므로 그 무명(無明)에 관련되어 그 무명이 애(愛)에 관련되나니, 그러므로 그런 부정을 생각함이 없어도 곧 무명이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4_b_04L非思惟不淨是無明耶緣思惟不淨亦是無明又世尊言如是比丘思惟不淨緣是無明無明緣愛是故無此思惟不淨是無明也
【문】만일 무명이 무명에 관련되면 그 뜻은 어떠한 어긋남이 있는가? 무명이 어리석음에 관련된다고 말함과 같은가?
어떤 이는 “네 가지 전도(顚倒)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b_08L若無明緣無明意有何違如所說無明緣癡或作是說四顚倒是無明
【문】괴롭다고 보는 것으로 전도를 끊나니, 그러므로 그가 무명이다. 괴로움을 보고 소견의 결[見結]과 무명의 결[無明結]을 끊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요한 자리가 있지 않겠는가?
어떤 이는 “온갖 결이 곧 무명이요, 지혜로움은 곧 밝음[明]이다. 온갖 결 때문에 깨달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온갖 결이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b_10L苦見斷顚倒是故無明苦斷見結無明結亦如是無有要處或作是說一切結是無明智者是明一切結不覺知是故一切結是無明
【문】사(使)는 중요한 자리가 있지 않은가?
028_0574_b_13L使無有要處
【답】만일 열 가지 현색(現色)이 있으면 중요한 자리에 드나니, 그와 같이 사(使)는 중요한 자리가 있다.
어떤 이는 “진실로 무명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삿됨이 무명을 낸다”라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무명이라는 명칭은 무지(無智)와 의혹과 삿됨[邪]을 따르는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b_14L答曰若有十現色入要處如是有使要處或作是說實不生也邪生無明或作是說無明名者無智順邪也
어떤 이는 “무명에는 여섯 가지 모양이 있으니 어리석음ㆍ순종ㆍ삿됨ㆍ의혹ㆍ희망ㆍ중요함이 없는 것을 얻고자 함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무명이란, 거룩한 진리[聖諦]에 대하여 행하려 들지 않는 무지(無智)이니, 삿됨을 따르는 그것을 곧 무지라 말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조작으로 중생이 있나니, 그것은 아소(我所)의 무명이요, 내가 조작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74_b_17L或作是說無明有六順邪悕望欲得無要處或作是說無明於聖諦不作無智也順邪是謂無智或作是說自造有衆生我所無明我造非有也
무명의 모양은 어떠한가?
無明相云何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말하자면 이 중생의 어리석음이 무명의 모양이다. 어찌하여 무명의 인연이 있는가?
028_0574_b_21L如上所說復作是說於此衆生愚癡無明相云何無明有緣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시 나라는 물건이 있음과 무명이 있음과 무명의 네 가지 전도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028_0574_b_23L如上所說次有我物有無明無明四顚倒有何差別
028_0574_c_02L어떤 이는 “소견이 곧 전도이니 무상(無常)한 것을 항상함이 있다고 하며, 괴로운 것을 즐거움이 있다고 하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하며, 무아(無我)인 것을 내가 있다고 하여 그와 상응하는 것과 그 밖의 결사(結使)와 상응하는 무지(無智)가 있는 그것이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02L或作是說見是顚倒無常有常苦有樂不淨有淨無我有我有彼相及餘結使相應無智是無明
【문】그것과 상응하는 무지는 무상한 것을 항상함이 있다고 여기며, 괴로움을 즐거움이 있다고 여기며, 나아가서는 무아(無我)인 것을 내가 있다고 하여 한 곳에서 전도된 소견을 갖나니, 그 무지는 곧 전도인지라,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74_c_04L所相應無智無常有常苦有樂乃至無我有我一處顚倒見此無智是顚此義云何
어떤 이는 “진리를 보는[見諦] 데서 끊을 바는 전도이고 진리를 보고 생각하는 데서 끊을 바는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07L或作是說見諦所斷顚見諦思惟所斷無明
【문】만약 무명을 진리 보는 데서 끊는다면 저 전도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별이 없나니 전도가 곧 무명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08L若無明見所斷彼顚倒有何差別或作是說無有差別顚倒者是無明也
【문】만일 그렇다면, 수다원(須陀洹)도 또한 무명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무명이란, 무너지거나 없어짐이 없나니, 무너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곧 전도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10L若當爾者須陁洹亦無有無明也或作是無明無有壞敗壞敗者是顚倒也
【문】상응하는 것은 혹 무너짐도 있고 혹 무너짐이 없기도 한다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74_c_12L相應者或有壞敗或無敗壞此義云何
어떤 이는 “무도(無道)한 것을 무명(無明)이라 이르고, 사도(邪道)인 것을 전도(顚倒)라 이른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요함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이르고, 중요함을 전도라 이른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온갖 결사(結使)가 곧 무명이요, 무명에서도 아주 작은 것을 전도라 이른다”고 말했다.
다시 온갖 결(結)은 곧 전도이고, 전도 중에서 아주 작은 것은 또한 무명이다.
028_0574_c_14L或作是說無道者謂無明邪道者謂之顚倒或作是說無要者謂之無明要者謂之顚倒或作是說一切結使是無明也無明微者謂之顚倒復次一切結是顚倒顚倒微者亦是無明
어떤 것을 내상(內相)이라 하며 어떤 것을 외상(外相)이라 하는가?
云何內相云何外相
【답】모든 법의 제 모양[自相]이 내상이고, 무너지는 것은 외상이다.
028_0574_c_19L答曰諸法自相壞者外相
내상과 외상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內相外相有何差別
어떤 이는 두루하지[普遍] 않는 것은 곧 내상이고, 두루한 것은 곧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20L或作是說不普遍是內相普遍者是外相
【문】만일 두루하다면 허공도 또한 두루하다. 만일 내상이 껴잡아 유지하면 내상이 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내상도 있고 외상도 있는가?
028_0574_c_22L設當普者虛空亦復普設內相攝持非內相還外相是故有內相有外相
어떤 이는 “무너지지 않는 것은 외상이고, 무너지는 것은 내상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4_c_24L或作是說不壞外相壞者內
【문】두루한 것도 역시 무너지며, 그 밖의 무상함과 괴로움도 역시 무상한가?
普者亦壞餘者無常苦亦無常
028_0575_a_02L【답】5음(陰)이 이미 무너지되 하나는 무너지지 않나니, 무상함도 두루하다.
028_0575_a_02L答曰五陰已壞一不壞無常普遍
【문】만일 제 모양이 무너지고, 두루하는 모양[普遍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와 같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제 모양이요, 무너지는 것은 외상(外相)인가?
어떤 이는 “그것이 서로 같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75_a_03L如壞自相不壞普遍相如是不壞自壞者外相或作是說其不相類
【문】푸른 것은 푸른 것과 같고 누런 것은 그와 서로 같지 않은데, 그것을 내상이다, 외상이다 하려는 것인가?
028_0575_a_05L靑象靑黃者不相象欲使彼是內相是外相
【답】푸른 것과 누런 것이 서로 같지 않은데도 푸른 것은 내상이고 외상이 아니라고 하려 드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나타난 것은 곧 내상이요, 알지 못한 지혜는 곧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a_07L答曰靑黃不同欲使靑是內相非外相或作是說現者是內相知智是外相
【문】그가 혹 알지 못한 지혜가 있으면 그것을 내상이다 외상이다 하려 들며 더 나아가서 알지 못한 지혜는 구경(究竟)에는 제 모양이라고까지 하려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의지 그것은 곧 제 모양이고 의지함은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a_09L彼或有未知智欲使彼是內相是外相乃至未知智究竟自相或作是說依是自相依者外相
【문】이름[名]과 물질[色]이 각기 서로 의지하는데 그 역시 내상인가? 외상인가? 만일 외상에 의지한다면 제 모양[自相]과 외상은 외상에 의지하고 무상함이 무상함에 의지함은 없는가?
어떤 이는 “공통되지 않는 것은 제 모양이요, 공통된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한다.
028_0575_a_11L名色各各相依亦是內相外相耶若依外相彼自相外相依外相無無常依無常或作是說不共自相共者外相
【문】외상도 역시 공통되지 않음이요, 무상함과 괴로움이 다른가?
外亦是不共無常苦別
【답】5음(陰) 중에 어찌 무상함과 외상이 공통되지 않음이겠는가?
028_0575_a_15L答曰五陰中云何無常外不共
【문】저 무상함과 같아서 물질이 무상하며, 사실대로 생각해보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인식까지도 무상한가?
028_0575_a_16L如彼無常色無常痛想行識如實思惟乃至識無常
어떤 이는 “자연(自然)과 상응하는 것은 곧 내상이고, 그와 상응하지 않는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a_18L或作是說與自然相應是內不相應是外相
【문】만일 외상이 진실함이 없다면 지금도 역시 없다. 만일 외상이 있다면 거기에는 또한 제 모양이 있겠는가?
어떤 이는 “외상이 있지 않고 모두가 제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a_19L若外無實者亦無也若外相有者彼亦有自相作是說無有外相一切自相
【문】만일 외상이 없다면 모든 법에도 또한 외상이 없겠는가?
어떤 이는 “이미 제 모양은 분별했으니 외상은 분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깨달음은 곧 제 모양이요, 깨닫지 못한 것은 외상이다”라고 말한다.
028_0575_a_21L若無外相者諸法亦無外或作是說已辯自相不辯外相或作是說覺是自相不覺者外相
두루 무너지지 않는 모양 있는데
지혜가 의지한 바를 알지 못하네.
공통됨도 저절로 있음도 아니요
말도 지어냄 아님 있지 않네.
028_0575_a_24L遍有不壞象
未知智所
不共不自有
無有不辯造偈也
028_0575_b_02L이것이 있는 것처럼, 3유(有)는 유위상(有爲相)이요, 그 밖의 것도 역시 유위상이다.
028_0575_b_02L猶如有此三有爲有爲相餘者亦有爲
마하승기(摩訶僧耆)는 “이 무상한 다른 모양을 말할 적에 무위상(無爲相)과 다르며, 지금 또한 유위상(有爲相)에 대하여 그러한 말을 할 적에 한량없이 유위법문(有爲法門)에 미치고 낱낱 모든 모양이 세 상(相)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b_03L訶僧耆說當說此無常的異相異無爲相今亦當有爲相作是說當說無量逮有爲法一一諸相與三相相
【문】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有何等異
【답】이리저리 서로 생기는데 생기는 것은 이미 없어지고, 또한 다시 머무르지도 않는다.
028_0575_b_07L答曰展轉相生生者已滅亦復不住
【문】나에게 두 가지로 일어나는 것 등이 생기고 이리저리 서로 생기는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그 중에 다르지 않는가?
어떤 이는 “말하고 나서 마땅히 다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5_b_08L我有二起等生轉相生是故於中不異或作是說已當復說
【문】유위상과 무위상이 하염이 있는 것인가?
028_0575_b_10L有爲相無爲相當有爲
어떤 이는 “이도 아니고 그도 아니며 유위법(有爲法)일 뿐이니, 또한 마땅히 그 밖에 그를 유위법 모양으로 보지 아니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생기고 멸함과 항상 머무름은 변역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다. 그가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면 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땅히 항상함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5_b_11L或作是說非此非彼逮有爲法當說餘此非相視有爲法此生此滅常住不變易是故不說彼當說有常當說無常或作是說當說有常
【문】항상함이 있는 모양은 유위(有爲)가 되는가?
028_0575_b_14L常相者是爲有爲
어떤 이는 “무상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유위법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이는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고, 항상 함이 없다고 말하며 일어나 항상 머무름과 그것에 대해서도 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5_b_15L或作是說當說無常逮有爲法此亦如上所說或作是當說有常當說無常起常住及彼當言無常
【문】무위상이 있더라도 지금 유위라고 해야 하는가?
有無爲相今當有爲
어떤 이는 “항상함이 있다. 항상함이 없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 무슨 이유인가? 모든 법의 행(行)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가 무상함이고, 저 법의 행(行)이 성립되니, 그러므로 무상한 축에 들지 않으며, 모든 법에 묶이고 집착하니 그러므로 항상함이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75_b_18L作是說不得說有常無常以何等故諸法行成故彼無常彼法行成是故非無常數諸法縛著是故非有常非無常
첫 게품(偈品)을 마친다.
028_0575_b_22L初偈品竟

1. 취건도 ②
028_0575_b_23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二

입과 입의 행위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028_0575_b_24L口行有何等異
028_0575_c_02L어떤 이는 “그 다름이 없으니 입이 곧 입의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02L或作是說無有異口者卽口行也
【문】만일에 입이 곧 입의 행위라고 한다면 몸도 몸의 행위가 아니겠는가? 만일 입과 입의 행위가 다름이 없다면 몸과 몸의 행위도 또한 다름이 없을 것이니, 그 내용이 어떠한가? 조금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은 혹시 몸의 행위인가 싶다.
어떤 이는 “문자(文字)로 설명한 것이거나 문자에 실린 것은 곧 입의 행위[口行]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03L設口是口行者非身行耶若口與口行無異者與身行亦無有異此義云何少不屬或是身行或作是說文字說文字所載是口行
【문】만일 낱낱 글자가 입의 행위가 아니라면 입의 행위와 더불어 서로 상응한 것이 아닌가?
028_0575_c_07L若一一字非口行者非與口行相應耶
【답】낱낱 모든 글자가 입의 행위가 아니면 상응함이 아니니, 낱낱 글자에는 뜻과 음향이 서로 상응하는 것이 있다.
어떤 이는 “말하는 바가 있는 것은 곧 입으로 행동한 것이니, 입의 행위 중에 입으로부터 행동이 된 것은 곧 입의 언어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08L答曰一一諸字非口行非相應如一一字有諸義音響相應或作是說有所言是口所作口行中從口行者是口語言
어떤 이에게 기쁨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거나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그를 입의 행위라고 말해야 하는가?
028_0575_c_11L他有喜有樂有愁憂當言是口行耶
【답】입의 말이 그로 하여금 기쁨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게 한 것이 아니다. 다시 다른 뜻으로 본다면 뜻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곧 기쁜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입으로 말한 바가 있거나, 입에서 생각하는 행위가 입에서부터 나온 것은 모두가 다 입의 행위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12L答曰口語使彼有喜有樂復次但作餘義義有所思惟則生喜相或作是說有所說口思惟行出口者皆是口行
【문】만일 생각함이 곧 몸의 행위라면 생각함이 곧 입의 행위이고 생각함이 곧 뜻의 행위이니, 그러므로 세 행위[三行]는 일정한 자리가 없는가?
028_0575_c_15L若思惟是身行者思惟是口行惟是意行是故三行無有定處
【답】내 몸의 행위가 다르고 마음의 행위가 다르고 입의 행위가 다르고 뜻의 행위가 다르다.
028_0575_c_17L答曰我身行異心行異口行異意行異
【문】작위하는 것의 행위는 일정한 자리가 아니다. 다시 소리는 곧 입의 행위이고 글자 수도 역시 입의 행위인데, 입과 글자 수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028_0575_c_18L所作行不定處者復次聲是口行數亦是口行也字數有何等異
어떤 이는 “입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고 글자 수는 무기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20L作是說口是善不善無記字數者無
【문】입의 무기(無記)인 말은 저 글자 수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이는 “글자 수는 결코 입이요, 글자 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22L若口無記語者彼字數有何等或作是說字數斷是口非是字數
028_0576_a_02L【문】어찌하여 벙어리가 된 사람은 축생과 더불어 어떠한 다름이 있는지 그들에게는 입의 행위가 없다고 보려 하는가?
어떤 이는 “말은 입에 관한 것이고 글자 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75_c_23L云何瘖瘂人與畜生有何等異使彼無口行耶或作是說言是口義非字數
【문】저 글자 수는 또한 뜻이 되는 것과 같이 자연(自然)인 물건과 바람이 불어서 방울이 울리는 것도 입의 행위가 아닌가? 본시 3매(昧)에 들었는가?
어떤 이는 “입으로 온갖 행위를 한 것이요, 글자 수가 또한 행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담마다라존자는 “두 소리가 차별이 있지 않으나 두 사실은 서로 행함이 다르다. 생각으로 선(善)인 글자 수를 아는 것은 단연코 입이요, 깊은 내용을 부연하는 것도 역시 입이요, 또한 입의 행위이며, 두 소리가 함께 다르지 않다”고 말하였다[존 담마다라가 삼매에 들어 그 내용을 알았다].
028_0576_a_03L如彼字數亦是義猶如自然物如風吹鈴鳴非口行耶本入三或作是說口造衆行非字數亦造尊作是說二聲無有差別二事相行別念知善字數斷是口敷演深義亦是口亦是口行二聲俱不異尊曇摩多羅入三昧乃知
무슨 이유에서 입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고, 글자 수는 무기뿐인가?
어떤 이는 “입으로 발동하는 것은 마음으로 말미암으나 글자 수는 그러하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76_a_09L以何等故口善不善無記字數者唯無記或作是說口發由心然非字數也
【문】글자 수가 발동함도 또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되고 마음을 쓰지 않고서 된 것이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미묘함과 미묘함이 없는 그것을 입으로는 지으나 글자 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76_a_11L字數發亦由心非不用心或作是說妙無妙口所造然非字數
【문】글자 수가 미묘함과 미묘함이 아닌 것을 만드는 것은 마치 꿈에서 깨어남과 삼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가?
어떤 이는 “입으로는 지시해 주거나 가르치거나 경계를 하기도 하나 글자 수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028_0576_a_12L字數妙非妙所造猶如夢中覺及從三昧起或作是說口指授教戒非字數也
【문】무기(無記)인 입의 말로는 지시해 주거나 가르치거나 경계를 해 주지 못하고 내가 그런 것을 하나니 그러므로 저것은 선ㆍ불선ㆍ무기이나 글자 수는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입과 몸의 행위는 쌓이나 글자 수는 그러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028_0576_a_15L如無記口言非指授教我爲所造是故彼善不善無記非字數也或作是說口身行集然非字數
【문】글자 수도 역시 몸의 행위를 쌓는다고 하겠다. 존자께서는 “이 두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하나니, 그를 보지 않고 제 모양을 보지 않고 또한 그 공을 드린 보람이나 효과를 보지 아니해야 한다. 입과 뜻이 함께 일어나매 미묘한 지시를 함이 없으나 그 과보를 받는 것은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6_a_18L字數者亦集身行尊作是說當量此二事不見彼不自相亦不見其功口意等起生妙無指授受報兩相須偈也
생각[想]과 인식[識]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별이 있지 않으니 그 둘이 함께 발동하여 나오는 것이 마음을 말미암는다”고 말했다.
028_0576_a_21L想與識有何差別或作是說無有差別此二俱發出由心
【문】만일 발동하여 나오는 것이 마음을 말미암는다면, 반드시 그 일정한 자리가 있겠으며 만일 차별이 없다면 음(陰)도 또한 일정한 자리가 있겠는가?
028_0576_a_22L設發出由心者必有定處若無差別者亦定處
028_0576_b_02L【답】만일 당신에게 세 가지 마음이 있을 적에는 곧 음의 자리가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이 곧 차별이니 생각이 곧 인식이라 이른다”고 말했다.
028_0576_a_24L答曰若如汝有三心意時則有陰處或作是說此是差別是謂想是識
【문】일정한 자리가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제 모양을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생각은 생각함이 되고 인식은 아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76_b_03L名有定處當說自相或作是想爲想識爲識知
【문】그 어떤 내용이 짓는 바가 되는가?
어떤 이는 “생각은 생각이 되고 인식은 인식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76_b_04L此何義爲所或作是說想爲想識爲識
【문】그것 역시 나의 의심되는 바이니, 생각은 스스로 생각을 알고 인식은 스스로 인식을 아는 그것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이는 “마음이 곧 생각이요, 마음이 또한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6_b_05L此亦是我疑想自知想識自知識有何等或作是說心卽是想心亦是識
【문】만일 마음이 그러하다면 곧 생각과 느낌의 다름이 있지 않을 것이니, 마음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생각과 기억이 작위하는 바를 인식이 스스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028_0576_b_07L設心當爾者則無有異想痛心有何差別或作是說想憶所作識能自識
【문】저 생각은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되는가? 만일 그전 것을 기억한다면 그러기에 생각이 스스로 기억하여 생각할 것이요, 만일 그 외의 것을 기억한다면 거기에는 곧 하나의 인연이 있는가?
어떤 이는 “기억이라고 한 것은 곧 생각이요, 그 제 모양은 곧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6_b_09L彼想爲憶何等若憶何者是故想自憶想若憶餘者彼則有一緣或作是說名憶是想自相是識
【문】한 법이 두 명자(名字)와 제 모양[自相]을 갖추었는가? 만일 한 법이 두 명자를 갖추고 있다면 저 명자도 역시 다르고 제 모양도 역시 다를 것이요, 만일 명자가 서로 같지 않다면 생각은 또한 스스로 제 모양이 있고 인식은 명자를 기억할 것인가?
어떤 이는 “밖의 기억이 생각이 되고 제 모먕이 인식이 된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본래 이미 말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분별을 제 생각이라고 말하나니, 제 생각으로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은 그가 지은 것만이 아니다. 뜻[意]을 바깥이라 말한다”고 말하였다.
나아가서는 눈으로 느끼는 것과 생각과 마음과 인식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028_0576_b_12L一法俱有二名字及自相設一法俱有二名字者彼名亦異自想亦異設名不與相同者是故想亦自亦有相識者憶名或作是說外憶爲想自相是識如此本已說尊作是說分別名自想自想憶識不惟此所作意名是外至眼更痛及想及心及識有何等差
마땅히 이 일곱 방편으로써 설명해야겠다. 존자께서는 “눈으로 빛깔을 반연하여 눈의 인식과 제 모양으로 느끼는 인식을 내는데, 인식이 이 모든 법에 흘러 달리면서 재차 그러한 차등을 일으킨다. 뜻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인식과 다른 것, 인식과 공통되는 것, 그와 함께 얻는 고락(苦樂) 그것이다. 온갖 생각을 조작하고 본래 짓는 바를 따르는데, 그도 역시 생각과 마음에서 행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76_b_20L當以此七方便說之尊作是說緣色生眼識自相受識識流馳此諸還更以此差降意有三法識別與識共俱彼所得苦樂造諸想追本所亦是想心所行法
028_0576_c_02L이 마음, 이 법을 하나인 모양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마땅히 약간의 모양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한 모양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인식이 푸른 것을 반연할 적에는 뜻도 역시 그러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하나의 인연이 하나의 인연과 상응하는 법이 있는가?
028_0576_b_24L是心此法當言一相當言若干想或作是說當言一若識緣靑意亦當爾若不爾者有一緣一緣相應法
【답】하나의 모양이요, 제 모양이 있지 않다.
028_0576_c_04L答曰一相無有自相
【문】아픔을 참는 인식과 생각과 분별하는 마음이 능히 생각하며 생각 또한 서로 아는가? 온갖 것이 다르며 푸른 것은 실로 그 푸른 것인데, 생각이 또한 서로 알며, 마음이 또한 마음으로 알며, 인식이 또한 인식으로 안다면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76_c_05L忍痛識想分別心能思惟想亦相知一切別靑實其靑想亦相心亦心知識亦識知此義云何
어떤 이는 “이 한량없는 모양은 미묘함과 미묘함 아닌 느낌인데 그를 생각으로 지은 바라고 말하며, 제 인식[自識]이 지은 바며 제 인식의 제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6_c_07L作是說此無量相妙非妙痛名爲想所作自識所作自識自相
【문】하나의 인연도 있지 않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한량없는 모양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의 모양이라면 법이 곧 무너짐이 있을 것이요, 법이 어지러워짐이 있을 것이니, 여기에 일정한 자리가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모든 법에 제 모양 있는 것이 마치 이 유위법(有爲法)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할 수 없고, 무위법을 또한 유위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렇다면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무엇을 하시려고 한 것인가?
028_0576_c_09L無有一尊作是說當言無量相設一相者法則有壞法則有亂此無有定處此諸法而有自相猶如此有爲法不可得作無爲法無爲法亦不可得作有爲法若爾者世尊出世爲何所爲
【답】그런 내용 때문에 부처님 세존께서 나오신 것이 아니다. 혹 유위법을 무위법으로 만들고 무위법을 유위법으로 만든다고 말하더라도 비유컨대 보배를 보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보배 아닌 것을 보배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다만 분별하는 이가 안다.
028_0576_c_14L答曰不以此義佛世尊出言我使有爲作無爲無爲作有爲譬如珍寶不可言非珍寶非珍寶不可言是珍寶但分別者知
비유컨대 도사(導師)가 도 아닌 것을 도(道)라고 말할 수 없으며 도를 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다만 도사만이 잘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비유컨대 등불을 밝히는 이가 낮은 데를 높다고 말할 수 없으며 높은 데를 낮다고 말할 수 없고 다만 그 높고 낮음을 비출 뿐인 것과 같다. 비유컨대 의사가 단 것을 쓰다고 말할 수 없으며 쓴 것을 달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달고 쓴 것이 각기 다르기 때문인 것과 같아서, 위에 말함도 역시 그와 같다.
028_0576_c_18L譬如導方師非道不可言道道不可言非道但導者能知如然燈下不可言高高不可言下但照明其高下譬如醫師藥不可言苦不可言藥藥各異上亦復如是
다시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이 법의 뜻[義]을 말씀하신 것이니 마치 이 유위법이 3세(世)에서 각각 제 모양이 있어서 외상(外相)을 알도록 하게 함과 같다.
028_0576_c_22L復次世尊爲衆生故說此法義猶如此有爲法於三世各有自相得知外
028_0577_a_02L무슨 이유 때문에 혹 일어나기도 하고 혹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어떤 이는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77_a_02L以何等故或起或不起此之謂也或作是說相有若干
【문】저 모양은 본래 머무름이 없나니, 그러므로 저 서로 생김이 있는가?
028_0577_a_03L彼相本無住是故彼有相生
【답】본래 있는 그 모양은 생기지 않았다.
答曰本有此相未生
【문】만일 본래 모양이 있더라도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없는가?
028_0577_a_04L設本有相相無若干
【답】저 심지 않고도 저절로 생기는 모양과 같아서 곧 더러운 모양에 각각 다름이 생겨서 같은 모양[同相]과 더불어 각각 생기지 아니하지 않나니 그를 약간의 모양이라고 말했다.
028_0577_a_05L答曰如彼不種自生相者則穢相各各異生不與同相各未生是謂相若干
【문】만일 저 모양이 이미 생기거나 만일 생기지 못했다면 그러기에 저것이 각각 증감이 있나니, 그러므로 저것이 본래 없으면서 생김이 있는 것이다.
028_0577_a_07L設彼相已生若未生者是故彼各有增減故彼本無有而有生
【답】여래께서 말씀하신 “모양에는 약간의 것이 없다”고 함과 같나니, 거기에는 곧 더러운 모양이 생기어 다름이 있고 혹 생기지 않더라도 이 생기는 것 때문에 다름이 있다. 비유컨대, 푸른 것이 다르고 무상함과 괴로움이 달라 각각 동일함이 없는 것과 같아서 이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이는 “사실에 약간의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도 역시 본래 말한 바와 같다. 어떤 이는 “인연이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028_0577_a_09L答曰如如來言相無若干彼則穢相生有異或不生以此生有異譬如靑異無常苦異無勝如此亦如是或作是說事有若此亦如本所說或作是說因緣或生或不生也
【문】혹 인연이 있지 않기도 하는가?
或無有緣
【답】별로 인연이 있지 않으니 그 둘은 같지 않으면서 같이 생긴다.
028_0577_a_14L答曰別無有緣此二不等等生
【문】처음에는 같다는 말이 없었다.
初無等語耶
【답】그런 말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삼세의 곳에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를 말한 것이다. 미래의 곳은 미래를 말한 것이요, 과거의 세상은 그 과거를 말한 것이요, 현재의 세상은 그 현재를 말한 것이다.
028_0577_a_15L答曰非不有語或作是說三世處或生或不生此之謂也未來處是謂未過去世是謂過去現在世是謂現
【문】세(世)가 행(行)과 다름이 있는가? 만일 세가 다르고 행이 다르다면 세가 항상 머무를 것이요, 만일 세가 곧 행이라면 저 행은 혹 모이기도 하고 혹 옮기기도 할 것이다.
028_0577_a_19L世與行有異耶設當世別行別世常住若世卽是行者是故彼行或聚或移
【답】어떤 이는 “낱낱의 사실이 동일하지 아니하여 혹 생기기도 하고 혹 생기지 않기도 한다. 과거의 행(行)은 과거의 행을 알며, 미래의 행은 미래의 행을 알며, 현재의 행은 현재의 행을 아나니, 그를 현재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77_a_21L或作是說一一事不同生或不生過去行者知過去行未來行知未來行是謂未來現在行知現在行是謂現在
028_0577_b_02L【문】저 미래가 현재가 아니라면 현재는 항상 머물지 않는다. 만일 현재라면 그러기에 저 미래는 현재가 있을 것을 알아 곧 현재가 있다. 만일 저 미래가 현재를 안다면 곧 현재가 없을 것이지만 현재란 곧 현재임을 알아 현재가 있음을 안다.
028_0577_a_24L如彼未來非現在設非現在常住也若現在是故彼未來知有現在則有現在若彼未來知現在者則無現在現在者便知現在知有現在
만일 저 현재가 옮기면 곧 과거가 있을 것이며, 만일 과거가 없으면 곧 항상 있는 과거가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당신이 현재에 과거를 아나니, 곧 과거가 있다. 만일 현재에 과거를 알고 과거 있지 않음을 아는 것과 같이, 당신이 과거에 과거가 있다고 아는 것이 없으면 곧 과거가 없을 것이다.
028_0577_b_05L如彼現在移者則有過去設無過去者則有常有過去是故汝現在知過去則有過去設當如現在知過去無有過去也汝過去知有過去則無則無過去
어떤 이가 “그 어찌하여 그러한 말을 하며 그 무슨 짓을 하여 제 모양과 상응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028_0577_b_09L或作是說此爲何作是說此爲何作自相相應
【답】그것은 머무름이 항상하여 이미 제 모양이 된 것을 말함이니, 만일 항상함이 제 모양과 상응하지 않는다면 곧 세(世)를 내는 일이 없을 것이다.
028_0577_b_10L答曰謂住常已作自相若常不與自相相應者則無有世自相生世
【문】만일 제 모양이 세를 낸다면 곧 저 모양이 과거를 낼 것이니, 그러므로 세는 항상한 자리가 없는가?
028_0577_b_12L若自相生世者卽彼相生過去是故世無有常處
【답】나[我]라는 모양이 아직 생기지 아니해서는 미래 세상도 생기지 아니하여 현재 세상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생김과 생김 없는 것으로써 다르다고 하지 말 것이니, 그러므로 세(世)는 항상한 자리가 있다.
028_0577_b_14L答曰我相未生未來世未生壞現在世不以生無生爲異是故世有常處也
【문】만일 저 모양이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생기더라도 지금 있는 것이 아니잖겠는가?
028_0577_b_16L若彼相不生亦生非今
【답】만일 지금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생기지 않고 함이 없는 것이다. 다시 항상함인 제 모양이 상응하는 그것은 또한 당연히 없고, 혹 생기기도 하며 혹 생기지 않기도 하나니, 그를 “만일 무상하다면 저것 또한 생기지 않고 지금에 또한 상응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028_0577_b_17L答曰若今不生亦不生無爲復次常自相相應此亦當無或生或不生是謂若無常者彼亦不生今亦無相應
서로 만들어짐이 약간의 종류인데
인연과 세(世)도 그와 같네.
낱낱이 함께 서로 생기는데
본래 모양이 그 소작이 되네.
028_0577_b_19L相作若干種
因緣世如是
一一共相生
本相爲所作
마치 이 유위법(有爲法)이 없지 않음이 아니고 있지 않음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무위법(無爲法)도 없지 않음이 아니고 있지 않음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 유위법을 항상함이 없다고 말하며, 무위법을 항상함이 있다고 말하는가?
028_0577_b_21L猶如此有爲法非不無非爲不有爲法非不無非爲不有以何等故爲法謂之無常無爲謂之有常
028_0577_c_02L어떤 이는 “유위법의 모양은 약간의 것이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약간의 종류를 만들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인연이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세(世)의 처소가 있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유위법은 가지가지로 다르지만 무위법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유위법의 짓는 모양은 인연이나, 곧 인연이 서로 생긴다”고 말했다.
028_0577_b_24L或作是說有爲法相有若干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作若干種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有因緣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有世處所不有無爲法或作是說有爲法種種別異不有無爲法尊作是說有爲法所作相因緣則因緣相生
인(因)과 연(緣)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028_0577_c_08L因與緣有何差別
어떤 이는 “차별이 있지 아니하고 합함과 모임에서 있는 바다. 합함과 모임이 없으면 곧 없나니, 곧 그 인과 연이다. 말한 인이 곧 연이라고 한 그것은 낳음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7_c_09L或作是說無有差別合會所無合會則無卽是因與緣如所說因卽是緣者是謂生老病死
【문】만일 합함과 모임에서 있다면 그는 곧 연(緣)이니 눈으로 인하여 눈의 인식[眼識]이 있는 것이다. 그를 “인이고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 하는가?
028_0577_c_11L設合會有者彼卽是緣因眼有眼識欲使彼是因非緣耶
【답】눈의 합함과 모임에서 눈의 인식이 생기는 것 아니고 상대가 있으면 곧 눈의 인식이 있나니, 그러므로 합함과 모임이 또한 인이고 또한 연이다. 어떤 이는 “합함과 모임은 인이고, 짓는 바는 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7_c_13L答曰非眼合會生眼有對則有眼識是故合會亦是因亦是緣或作是說合會是因所作是
【문】만일 합함과 모임이 합함과 모임을 짓는다면 인도의 연이 아닌가?
若合會作合會者因非緣乎
【답】낱낱 짓는 바는 연(緣)이고 합함과 모임에는 인이 있다.
028_0577_c_16L一一所作緣合會有因
【문】만일 낱낱 짓는 바가 인이 아니면 합함과 모임에도 또한 인이 아닌가?
028_0577_c_17L若一一所作非因者合會亦非因耶
【답】낱낱 짓는 바가 인이 아니고 합함과 모임으로 있나니 낱낱 짓는 바가 합함과 모임이 아닌 것과 같아서 합함과 모임에 합함과 모임이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이는 “자연(自然)은 인(因)이고 자연 아닌 것은 연(緣)이다”라고 말한다.
028_0577_c_18L答曰一所作非因合會有如一一所作非合會合會有合會亦復如是或作是自然是因非自然是緣
【문】보리에서 생긴 싹이 그 보리와 서로 같은가? 만일 그 싹이 보리와 같다면 4대(大)로 하여금 인(因)의 업(業)과 같다고 하겠는가?
028_0577_c_21L麥所生牙與麥相類耶設與麥相類者使四大同因業耶
어떤 이는 “차례[次第]는 인이고, 먼 데에 있는 것은 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7_c_23L或作是說次第是在遠者是緣
028_0578_a_02L【문】인연(因緣)과 차제연(次第緣)이 있는데, 그 인연과 차제연은 차별이 있지 않은가? 만일 선(善)인 차제연이 불선(不善)인 마음을 일으켰다면 그는 인이고 연이 아닌가?
028_0577_c_24L因緣及次第緣緣及次第緣無有差別若善次第起不善心是因非緣耶
어떤 이는 “공통되지 않음[不共]은 인이고 공통됨[共]은 연이다”라고 말한다.
028_0578_a_03L或作是說不共是因共是緣
【문】눈이 함께하지 않고 눈의 인식을 내는데, 그것을 “인이요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는가? 보리가 뿌리와 싹과 더불어 함께 줄기를 내는데, 그것이 연이고 인이 아닌가?
028_0578_a_04L眼不共生眼識欲使此是因非緣麥與根牙共生莖此是緣非因
어떤 이는 “생기는 것은 인이고 다시 생기는 것은 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8_a_06L或作是說生者是因更生是
【문】지금 생기는 것은 연이 없고 보리가 다시 생기는 것은 인이 없는가?
今生無緣麥更生無因
어떤 이는 “제가 자라는 것은 인이고 딴 것을 자라게 함은 연이다”라고 말한다.
028_0578_a_07L或作是自長養是因養他是緣
【문】만일 “제 마음에서 착한 일을 내는 것이 곧 자신을 기르는 것이라면, 그것이 인이고 연이 아니다”라고 하려는가?
028_0578_a_08L若自心生善卽爲自養欲使此是因非緣耶
존자께서는 “회전(廻轉)에 대하여 회전은 인이고, 회전 아닌 것은 연이다”라고 말하였다.
028_0578_a_09L尊作是說迴轉是說迴轉是因不迴轉是緣
합함과 모임에 있지 아니하고
자연(自然)과 차제(次第)에 있다.
온갖 공동으로 생기는 바이며
자신이 회전하는 그것들이네.
028_0578_a_11L無有合會
自然次第
諸共所生
自身迴轉
어떤 것이 차제연인가?
028_0578_a_13L云何次第緣耶
어떤 이는 “과거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법이 차제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8_a_14L或作是說過去心所念法次第緣也
【문】미래의 마음과 마음 법 그 중간에 차제연이 생기는가?
028_0578_a_15L未來心心法中閒生次第緣
어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 법이 차제연이라”고 말했다.
028_0578_a_16L或作是說過去現在心心法次第緣
【문】미래의 마음과 마음 법이 만일 오랜 뒤에 생기면 그 중간에 저 차제연이 생기는가?
028_0578_a_17L未來心心法若久生閒彼次第緣生
어떤 이는 “온갖 마음과 마음 법을 차제연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78_a_18L或作是說一切心心法謂之次第緣
【문】지금 아라한(阿羅漢)의 최후 마음에 차례로 다시 딴 마음이 생기는가?
028_0578_a_19L如今阿羅漢後心次第更生餘心
어떤 이는 “아라한의 최후 마음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마음과 마음 법은 차제연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78_a_20L或作是說除阿羅漢後心餘心心法謂之次第緣
【문】멸진삼매(滅盡三昧)의 최후 마음에서도 다시 딴 마음이 생기는가?
028_0578_a_21L滅盡三昧後心復生餘心
【답】마음을 일으키는 중간이 차제연이다. 존자께서는 “만일 마음이 차례로 마음을 낸다면 곧 차제연이니, 왜냐 하면 물질이 아닌 마음과 마음 법에 차제연이 있기 때문이다.
028_0578_a_22L答曰起心中閒次第緣也尊作是說若心次第生心卽次第緣也何以故非色心法有次第緣也
028_0578_b_02L어떤 법으로부터 나오는가? 그 차례가 적은 것은 많은 것을 내고, 많은 것은 적은 것을 낸다”고 말했다.
028_0578_b_02L從何法出何以故次第少者生多多者生少
차제연의 모양은 어떠한가?
次第緣相云何
어떤 이는 “보시 행하기를 기피하는 바가 곧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그 마음을 비추는 것이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차례로 심성(心性)이 회전하는 것이 차제연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차제인 심성이 대개 차제연의 모양이니, 차제연은 당연히 일정한 것이라 말하고, 당연히 일정함 아닌 것이라 말하며,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8_b_03L或作是說行施所避是次第緣相作是說照其心是次第緣相或作是次第心性迴轉是次第緣相或作是說次第心性益次第緣相次第緣當言定當言非定當言常定或作是當言常定
【문】아라한이 지금 최후 마음에서 차례로 다시 딴 마음을 내는가?
028_0578_b_09L如阿羅漢於今後心次第更生餘心
【답】아라한은 최후 마음과 차제연이 있지 않다. 어떤 이는 “당연히 항상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8_b_10L答曰阿羅漢非有後心次第緣或作是說當言非常定
【문】곧 차제연이 없는가?
028_0578_b_11L則無次第緣
【답】마치 인연이 항상 일정함이 있지 않음과 같아서 반드시 인연이 있음도 역시 그와 같다. 존자께서는 “현재의 차제연을 관찰함으로 인하여 그는 마땅히 항상 일정하다고 말할 것이며, 현재 모양에 차제연이 스스로 항상함이 있는 것을 관찰해서는 당연히 이과(已果)라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78_b_12L答曰猶如因緣無有常必有因緣亦復如是尊作是說觀現在次第緣彼當言常定觀現在相次第緣自有常當言已果
그러한 가르침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날 적부터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물질이 있으나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다”고 말했다.
028_0578_b_15L云何得有無教或作是說從所生知亦作是說有色不可見無對
【문】이렇게 “이 현재가 아니다”라고 날 적부터 알았다고 하는가? 만일 물질을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는 것이라면 물질이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고 상대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당신의 몸은 물질이 없고 차별이 있지 않다.
028_0578_b_17L云何審從所生知此非現在若色不可見無對無色亦不可見無對是故汝色無色無有差別
어떤 이는 “상주(常住) 밖에서 교계(敎戒)가 있고 없는 것을 보게 되고 저 지을 공양을 성취했다. 나는 그 교계가 있고 없는 것을 관찰하여 저 하는 짓의 모양을 관찰했다”고 말했다.
028_0578_b_20L或作是說常住餘得知見有無教戒成就彼所作供養我觀有無教戒觀彼所作相
【문】그는 하는 짓이 가르침 없는 것을 관찰함이 아니요, 그는 하는 짓이 슬기로운 가르침인 것을 관찰한 것이다. 만일 가르침이 ‘있다’, ‘없다’고 한다면 온갖 가르침이 있고 없는 것에 그가 모두 하는 짓을 관찰할 것이니, 저 가르침 있는 것이 가장 미묘한 행인가?
028_0578_b_22L彼非觀所作無教彼觀所作智教若作有無教者諸所有無教彼一切當觀所作彼所有教最是妙行
028_0578_c_02L어떤 이는 “일일이 모양을 다 관찰하여 비추고 계율과 계율 아닌 것이 모두 사라져서 계율에는 계율이 사라짐을 보지 않음이 있고, 견해에는 계율과 계율아닌 것 사라짐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78_c_02L或作是說事事相觀戒律不戒律滅盡戒有不見戒律見有戒律不戒律滅盡
【문】계율 아닌 것이 사라져 없어진 도리도 또한 계율이 사라져 없어진 것은 아닌 것인가?
028_0578_c_04L非戒律滅盡道亦非戒律滅盡
어떤 이는 “타죄(墮罪)로 말미암아 금계(禁戒)를 설명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타락과 타락 아닌 것이 한량없는 죄에 범함이 있는 것을 알아 저가 이 가르침 없는 곳에 범죄자가 있음을 관찰한다”고 말했다.
028_0578_c_05L或作是說墮罪知說禁戒時知有墮不墮者犯無量罪觀彼有此無教諸犯罪者
【문】그가 가르침이 없지 않아 본래 범한 바를 기억한다. 만일 교화가 없다면 나아가서는 가르침과 저 온갖 범죄가 없겠는가?
028_0578_c_07L彼非無教憶本所犯設無教犯相者乃至無教彼一切犯罪
어떤 이는 “수승함과 수승하지 못함이 있는 것을 아는 이가 교(敎)를 관찰하지 아니하면 곧 가르침 없음이 있게 되고, 만일 유위(有爲)를 관찰하면 곧 무위(無爲)가 있게 된다. 비록 그의 가르침이 있더라도 나는 그를 가르침이 없는 것으로 관찰한다”고 말했다.
028_0578_c_09L或作是說有勝不勝者不觀教則有無教如觀有爲則有無爲雖有此教我觀彼無
【문】그는 수승함이 있음과 수승함이 없음을 다하지 못한다. 만일 전부가 수승함이 없다고 관찰한다면 그로 하여금 수승함이 있게 하겠는가? 설령 있더라도 곧 수승함이 있지 않을 것이요, 만일 전부가 미묘하게 수승함이 있더라도 그는 곧 없을 것이다.
028_0578_c_12L彼不盡有勝無勝若觀一切無勝者欲使彼有勝耶設有者則無有若一切妙有勝者彼則無也
어떤 이는 “천상에 태어난 후에야 능히 알아 익히고 행하며 범하지 아니한 후에야 천상에 태어난다”고 말했다.
028_0578_c_14L或作是說生天上然後能知習行不犯然後生天上
【문】어떻게 익히고 행하여 범하지 아니하며 자주자주 범하지 아니하며 능히 마음을 알아 범하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마음을 수행하여 그런 후에 천상에 태어나는가?
028_0578_c_16L云何習行不犯爲數數不犯能知心不犯從彼修行心然後得生天上
어떤 이는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는 슬기로운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에 교의(敎義)가 있나니 그에 머물러 함께 상응해야 하거늘, 하물며 교의가 없는 것이겠는가? 저 경에 의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저 슬기로운 법과 같다”고 말했다.
가르침 없는 몸과 몸의 느낌이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몸의 묶임이요, 몸의 느낌은 마음의 묶임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8_c_18L或作是說不知何以故非智章彼有教義住與共相應況無教者彼依經生天如彼智章無教身痛有何差別或作是說無教身縛身痛心縛
【문】그는 신근(身根)에 묶인 바가 되는가?
彼爲身根所縛
어떤 이는 “교계(敎戒)가 없는 것은 색음(色陰)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또 몸의 느낌은 곧 의법(意法)이니 느낌 쌓임[痛陰受陰]에 해당한다. 어떤 이는 “둘 다 함께 상대가 없으니 그 증감을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028_0578_c_22L或作是無教戒數色陰所攝又身痛者是意法痛陰所攝或作是說二俱無對增減難說
028_0579_a_02L가르침 없는 마음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은 어떤 종류의 다름이 있는가?
028_0579_a_02L無教心心不相應行有何種別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곧 물질이요, 심불상응행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가르침 없음은 지혜로 관찰함 아닌 물질이 각각 이루어진 것이요, 심불상응행은 자연법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바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9_a_03L或作是說無教是色心不相應行非色或作是說無教者是物心不相應行非物或作是說無教非智觀物各各成心不相應行不自然法所造
제2 게품을 마친다.
028_0579_a_06L第二偈品竟胡本題在此理應題於偈後也
입과 인식에 세 가지 있으며
마치 세 유위(有爲)와 같다.
인연에 네 가지가 있으며
가르침 없음에 3업(業)이 있다.
028_0579_a_07L口識有三種
猶如三有爲
因緣有四種
無教有三業

1. 취건도 ③
028_0579_a_09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三

괴로움의 원인은 뜻에서 얻어지고
무지(無智)도 또한 다섯이 있네.
색근(色根)이 모두 갖추어져서
각각 일곱 가지 고(苦)가 있다.
028_0579_a_10L苦由因意得
無智亦有五
色根悉具足
各各有七苦
마음과 마음 법의 인연이 생각하지 않는 인연[不思惟緣]이 될 수가 있는가? 마음과 마음 법의 인연 제 모양[自相]이 인연을 만드는가?
028_0579_a_12L心心法因緣不思惟緣心心法緣自相欲使作緣
어떤 이는 “없다. 왜냐 하면 인연은 마음과 마음 법에 소속된 바이기 때문이니 청국(靑國)외국의 견문을 모두 국(國)이라고 말한다으로 하여금 인연을 알게끔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9_a_14L或作是說無也何以因緣心心法之所攝持不可使靑國覺緣也外國見聞皆曰國
【문】만일 알게 한다면 청국이 인연이 있을 것이요, 만일 그가 청국을 알면 곧 앎이 있을 것이며, 만일 청(靑)에 국(國)의 인연될 만한 것이 있다면 인연과 제 모양에 곧 두 앎이 있을 것이다. 만일 앎과 그 밖의 알음이 청국에 인연하게 된다면 그 밖의 청국을 포섭할 것이요 만일 앎이 청국을 인연하게 된다면 그 또한 감히 청국이 앎을 포섭하여 인연이 되게 하지를 못할 것인가?
028_0579_a_16L設當覺者靑國有緣如彼覺靑國則有覺若靑有國作緣因緣自相則有二覺若覺若餘緣靑國攝餘靑國若覺緣靑國亦不敢靑國攝覺作緣
어떤 이는 “그 말한 바와 같거니와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모른다. 누가 그를 공포스러운 마음이 나게 했는가?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 것이나 인연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028_0579_a_20L或作是說如所說如恐怖人不知爲誰所恐自相作緣緣亦不自知
【문】저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닌가? 만일 인연을 만든 것이면 스스로 인연이 있음을 알 것이며, 제 모양 성질도 스스로 그러할 것이다.
028_0579_a_22L彼非自相作緣耶設作緣者自知有緣自相性自爾
어떤 이는 “이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79_a_24L或作是說得如所說有是想是心
028_0579_b_02L【답】이 누구의 생각이며 이 누구의 마음인가? 만일 그러한 말을 한다면 그가 곧 이 인연이요, 만일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생각이 되고, 이는 마음이 될 것이니, 그와 같은 마음은 합당하지 않고 상응하지 않는다.
028_0579_b_02L答曰是誰想是誰心若作是說彼卽是緣若不作是說是爲想是爲如是心不合不相應
어떤 이는 “만일 미래의 마음과 마음의 법이 인연을 만드는 인연이라면, 그것은 곧 인연이니 마땅히 잘 생각해 보라. 그 마음과 마음 법의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들더라도 그는 인연이 있는 줄을 모른다. 왜냐 하면 미래의 인연이 인연 있는 것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79_b_04L或作是說若未來心心法作緣緣彼卽是緣熟思惟彼心心法自相作緣彼不知有緣何以故不以未來緣造有緣
【답】그는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들지 않는다. 만일 제 모양이 인연을 만든다면 인연에 또한 슬기가 있어서 제 모양과 제 인식을 낼 것이다.
어떤 이는 “머리와 배와 가슴에 통증이 있으면 그 통증은 스스로 인연하는 모양으로 인연을 만드나 인연은 스스로 모른다”고 말했다.
028_0579_b_07L彼不自相作緣若作自相緣者亦有智生自相自識或作是說得如頭腹脅有痛痛自緣相而造緣緣不自知
【문】그는 통증의 제 모양이고 인연을 만드는 것이 그 인연을 만든 것이 아니다. 통증은 아무런 처소도 없는데 통증의 제 모양이 생겨서 그 실지의 머리와 배에 통증이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인가?
028_0579_b_11L彼痛自相而造緣不作緣無處所痛自相生現其實頭腹有痛
어떤 이는 “얻음이 만일 얻지 못함에 해당한다고 하면 곧 둘이 있는 셈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며 마음과 마음이 각각 인연을 짓고서 마음이 스스로 인연을 짓나니, 그러므로 자연히 그것이 미묘함 아님을 모르나니 그러기에 이미 얻어진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얻음이 만일 얻지 못함에 해당한다고 하면 마음이 마음에 반연함이 끝날 수 없고 곧 인연이 있나니, 그는 미묘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얻어진다”고 말했다.
028_0579_b_12L或作是說得設當不得者則有二他人心心心各各作緣已心自作緣是故自然不知此非是妙是故已得或作是說得設當不得者心緣心無有究竟則有因緣此非是妙是故已
존자께서는 ‘아픈 모양을 얻는 것과 그 마음의 무슨 차별이 있으랴. 이는 의식(意識)의 경지이고 그 가운데로부터 인식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만일 인식으로 느끼는 제 모양을 얻지 못하면 그를 구경(究竟)이라 말했다. 그 중에 딴 의식이 들어감이 있으면 그는 곧 무너짐이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79_b_18L尊作是說得痛相心有何差別意識境界不從中得得識若不得識受自相此謂究竟於中有餘意識入則有壞敗
못 미쳐 마음에 공포를 내는데
미래의 생각도 역시 그러하네.
통증과 그리고 타인의 마음이며
마음이 아픈 이것 저것에 반연하네.
028_0579_b_21L不還心恐怖
未來想亦爾
痛及他人心
心緣痛此彼
마음과 마음 법에 돌아서는 것과 마음과 마음 인연을 마련하는 그 둘은 함께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여 스스로 모양을 짓는다.
어떤 이는 “청국(靑國)을 아는 것과 같게 되어 일시에 인연을 짓는다”고 말했다.
028_0579_b_23L還心心法設心心緣此二俱前後而自作相或作是說得如覺靑國一時作
028_0579_c_02L【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만일 인연을 짓게 된다고 하면 곧 둘의 스스로 앎이 있게 되는가?
028_0579_c_03L此非譬喩設當作緣者則有二自覺
어떤 이는 “될 수 없나니 만일 인연을 짓는다면 청(靑)이 앎[覺]과 더불어 평등하여 다름이 없을 것이며 앎도 역시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되지 않고 그것이 같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될 수가 없나니, 왜냐 하면 이것이 전환함으로써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전환함이 아니고 두 번 전환함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028_0579_c_04L或作是說不可得也設作緣者靑與覺等無有異也覺亦復無異故是等是耶是故不得此非如或作是說不可得何以故非以此轉而受諸法非一轉非再轉故曰爲一是故可得
무슨 이유로 눈의 인식[眼識]이 눈 감관[眼根]을 알지 못하는가?
以何等故眼識不知眼根
어떤 이는 “볼 수 있는 인연은 눈의 인식이고 볼 수 없는 인연은 눈 감관이다”고 말했다.
028_0579_c_09L或作是說可見緣眼識不可見緣眼根
【문】귀 인식[耳識]은 지금의 귀 감관[耳根]을 아나니,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을 인연한 것인가?
028_0579_c_10L耳識今知耳根彼緣不可見
어떤 이는 “대상[境界]을 껴잡는 것은 눈이고, 가까운 것은 눈 감관이니, 그러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028_0579_c_11L或作是攝境界是眼近者是眼根是故不
【문】코 인식[鼻識]은 지금의 코 감관[鼻根]을 아는데 그는 대상에 돌아가는가?
어떤 이는 “4대(大)는 눈이고 네 요소의 대상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른다”고 말했다.
028_0579_c_13L鼻識今知鼻根彼還境界或作是說四大是眼非四大境界是故不
【문】몸 인식[身識]은 지금의 몸 감관[身根]을 아는데 그는 네 요소의 대상인가?
身識今知身根彼是四大境界
어떤 이는 “눈과 눈의 인식에 의할 것이요, 마음과 마음 법이 스스로 의지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른다”고 말했다.
028_0579_c_15L或作是說依眼根識非心心法自依是故不知
【문】의식(意識)은 지금의 의근(意根)을 모르나니, 그는 곧 의지[依]인가?
물음에 알 수가 없나니 온갖 법의 대상이 없다.
028_0579_c_17L意識今不知意根彼卽是依不可知無有一切諸法境界
어떤 이는 “만일 눈이 없어지면 눈의 인식뿐이다. 눈은 눈을 가리우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028_0579_c_18L或作是說若眼壞敗是眼識眼不掩是故彼不知
【문】그것 또한 나의 의심되는 일이다. 어찌하여 눈은 눈을 가리우지 못하는가?
028_0579_c_20L此亦是我疑何故眼不掩眼
【답】이 중에 물질이 없으면 자연인데 자연이 무너진 것이다. 어떤 이는 “알 수 없다. 설령 알게 된다면 온갖 받아들임[入]이 곧 무너지게 된다. 6식(識)이 무너지지 않을 때를 어떤 이는 ”그것은 이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79_c_21L答曰此中無物自然自然所壞或作是說不可知設當知者入則有壞敗六識未壞時或作是說彼非此境界
【문】그것 또한 나의 의심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028_0579_c_24L此亦是我疑何以故彼非境界
028_0580_a_02L어떤 이는 “물질의 제 모양이 모든 눈의 인식을 받아들인 것이요, 물질인 자연이 아니며 눈의 감관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028_0580_a_02L或作是說色自相攝受諸眼識非色自然非眼根是故彼不知
볼 수 있음은 가까이 앉은 때문이니
나는 저 네 요소에 의지했다.
눈을 가리면 무너짐 있나니
대상은 모두가 물질의 모습[色相]이라네.
028_0580_a_03L可見以近坐
我依彼四大
掩眼而有壞
境界是色相
귀의 감관을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그와 같고, 코의 감관을 볼 수 있음은 가까이 앉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혀의 감관과 몸의 감관은 볼 수가 있다. 그것이 네 요소인데 내가 만든 것이다. 마땅히 “그와 같은 5근(根)의 물질인 온갖 것을 네 요소가 만든 것이다”라는 이러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028_0580_a_05L耳根可見亦復如是鼻根可見當言非近坐舌根身根可見彼是四大我所造當作是說如此五根色一切四大所造
무슨 이유로 약간의 모양[相]에 약간의 모습[貌]이 있는가?
以何等故若干相有若干貌
어떤 이는 “모양이나 모습이 없음이 마치 눈의 인식과 같다. 그리고 온갖 물질은 모든 네 요소로 만들어진 것인데 약간의 모양과 약간의 모습이 있다.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또한 다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처소가 수승함이 있기 때문이며, 그 밖의 처소인 눈의 감관과 더 나아가 몸의 감관[身髮]까지도 그렇다 그러므로 가지가지 감관의 처소가 가지가지 모양으로 나타났으며 그러기에 가지가지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80_a_09L或作是說無有相貌猶如眼識諸所有色一切四大之所造有若干相有若干貌無所有故亦復如是或作是處有勝故及餘處眼根乃至身髮是故種種根所以種種相故是故種種貌
【문】딴 곳에는 하나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 혹은 다시 둘이 있기도 하는데 저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약간의 모양이 있고 약간의 모습이 있게 하며, 모든 처소는 다 몸 감관[身根]인데 몸 감관으로 하여금 약간의 모양과 약간의 모습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로 만든 물질인 환희하는 감관[歡喜根]과 그 밖의 네 요소가 환희하는 눈 감관과 그 밖의 몸 감관까지가 그 중에 갖가지 모양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80_a_15L餘處有一貌或復有二欲使彼眼根有若干相有若干貌一切處盡是身根欲使身根作若干相若干或作是說四大所造色歡喜根餘四大歡喜眼根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
【문】그 밖의 네 요소에는 환희하는 하나의 눈, 혹은 그 밖의 두 눈이 있기도 하는데, 눈이 보는 처소로 하여금 갖가지 모양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내가 네 요소인 눈과 그 밖의 네 요소인 눈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그 밖의 몸의 감관까지를 그 중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028_0580_a_20L餘四大歡喜一眼或有餘二眼欲使眼所視處有種種相耶作是說我作四大眼根及餘四大眼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廣說如上
028_0580_b_02L【문】그 밖의 네 요소인 하나의 눈에 혹 그 외 둘이 있기도 하는데,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가지가지 모습이 있게 하는가?
어떤 이는 “지어감[行]의 때[垢]로 만든 감관이며, 인연이 지어감의 때로 눈의 감관을 얻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몸의 감관까지도 그러하여 그 중에는 가지가지 모양과 가지가지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것은 위에서와 같다.
028_0580_a_23L餘四大一眼或餘有二欲使眼根有種種貌或作是說行垢所造根緣行垢得眼根餘乃至身根於中種種相種種貌廣說如上
【답】그 밖에 지어감의 때로 인하여 한 눈의 감관을 이루고 혹은 다시 두 눈의 감관을 이루는데, 눈의 감관으로 하여금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려 하는가?
어떤 이는 “4대(大) 안에 상응행(相應行)으로서 가지가지 모양이 있게 된 것은 그가 가지가지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0_b_04L答曰餘因行垢而成一眼根或復成二根欲使眼根作種種相耶或作是說四大之中相應行所以有種種相者以其作種種貌
【문】혹은 하나의 4대이기도 하고 혹은 둘, 혹은 넷이기도 하는가?
或一四大或二或四
【답】모든 것에 조금은 4대가 두루 있는데, 적음과 많음이 함께 합해졌다. 어떤 이는 “4대의 경계에는 증감이 있다. 그러므로 미묘한 요소로 만들어진 물질은 역시 미묘하다”고 말했다.
028_0580_b_08L答曰切少通有四大少多共合或作是說四大境界有增減是故妙四大所造色亦妙
【문】혹시 땅에 굳은 모양이 있기도 하고 굳은 모양이 없기도 하는가?
頗或時地有堅相無堅相
【답】모든 굳은 모양에는 다만 굳은 모양뿐이나 다만 굳은 모양에 증감이 있다. 비유컨대 쇠와 납과 백철이 아래로 금의 위에 이르는 것과 같다.
028_0580_b_11L答曰一切堅相但堅相但堅相有增譬如鐵鈆錫下至金首
존자께서는 “처음 여러 물건이 생길 적에 가지가지 모양이 있나니 그 가지가지 모양이 있게 된 까닭은 그 가지가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0_b_13L尊作是說始生百物有種種相所以種種相者以其有種種貌
색처의 모든 수승한 것은
환희와 나에게서 만들어지며
빠른 행(行)과 상응(相應)한 것은
병듦ㆍ태어남ㆍ늙음이 일어남이네.
028_0580_b_15L色處諸勝者
歡喜及我造
速疾行相應
自興病生老
눈 감관 모양이 그 따위를 만든 것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눈으로 빛깔을 보는데, 이미 보고 장차 볼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0_b_17L眼根相作此等者有何差別或作是以眼見色見已見當見是謂眼見
【문】그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어찌 눈으로써 빛깔을 보는데 이미 보고 장차 보되 마침내 법안(法眼)을 일으키지 않는가? 빛깔을 보지 않으며 이미 보지 않고 장차 보지 않으면 그것을 눈이라고 하겠는가?
028_0580_b_19L此亦是我疑云何以眼見色見已見當見終不起法眼不見色不已見不當見欲使彼是眼耶
【답】내가 이미 그에 대한 것을 설명했으니, 만일 그와 같은 현상이라면 역시 자연이다.
028_0580_b_22L答曰我已說設如此像亦是自然
【문】어찌하여 보지 않는 것이 자연을 보는 것이라 하는가?
028_0580_b_23L云何不見是見自然耶
【답】눈은 그 모습[貌]이니 어떤 이는 “검은 동자는 눈이 비추는 것이며, 작용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028_0580_b_24L答曰眼是其貌或作是黑瞳子是眼所照者作者
028_0580_c_02L【문】어떻게 검은 동자가 곧 눈이라고 아는가?
028_0580_c_02L云何得知黑瞳子是眼
【답】검은 동자가 그 근본이다.
028_0580_c_03L答曰黑瞳子是本
【문】검은 동자는 그 근본이 아닌가?
黑瞳子非其本
【답】그 외의 사실에는 해당되는 바가 없으므로 그것을 눈이라고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그렇지 않고, 저것 또한 다르나니, 그러므로 저 사실에는 해당되는 바가 없다.
저것을 눈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로 만들어진 물질인 눈 감관은 환희이니, 그로 인하여 눈의 인식 대상이 있다. 그것을 지도와 교계(敎戒)라고 이르나니, 그것을 저것이 만들었다 말한다”고 했다.
028_0580_c_04L答曰及餘事無所攝欲使彼是眼是故此事不然彼亦當異是故彼事無所攝欲使彼非眼耶或作是說四大所造色眼根歡喜因有眼識境界是謂指授教戒是謂彼作
【문】모든 5근(根)으로 만든 물질이 환희이니, 그러므로 저것은 눈 감관의 제 모양이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눈의 인식에 의하여 눈 감관이 있고 눈 감관이 눈의 인식에 의하나니, 그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028_0580_c_09L一切五根所造色歡喜是故彼非眼根自相或作是說依眼根有眼根依眼識是謂其事
【문】모든 일어나지 않는 법은 이 눈의 인식과 다르고 평등하지 않게 저 눈의 인식에 의하나니 저것을 눈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네 요소에는 눈 감관과 눈의 인식이 서로 의지하나니, 그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028_0580_c_11L不起法是眼識異不等依彼眼識使彼非眼耶或作是說四大是眼根眼識相依是謂其事
【문】네 요소의 모양이 스스로 무너지매 그를 네 요소의 모양이 스스로 무너짐이라고 이르며, 눈 감관 모양이 무너지지 않고 하나의 모양이 눈의 인식에 의하여 온갖 일을 만든다. 묻노니, 만일 네 요소의 제 모양이 한 모양인 눈 감관을 무너뜨리더라도 그와 같은 아상(我相)과 눈 감관은 무너지지 않고 한 모양인 눈의 인식이 서로 의지하여 이루는가?
어떤 이는 “빛깔ㆍ냄새ㆍ맛ㆍ섬세하고 매끄러움[細滑:觸] 그것에 관련되어 눈 감관과 눈 인식이 증가하게 되면서 온갖 사실을 만든다”고 말했다.
028_0580_c_14L四大相自壞是謂四大相自壞眼根相不壞一相依眼識造衆事如四大自相壞相眼根如是我相眼根不壞一相眼識相依而成或作是說色香味細滑所眼根眼識增益作衆事
【문】지금에 5식신(識身)이 각각 눈 감관을 아는가?
어떤 이는 “이는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028_0580_c_19L今五識身各知眼根或作是說此非境界
【문】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왜 그러한가?
어떤 이는 “저것은 대상이 아니니 눈 감관은 제 모양이 없고 그 수효도 없다. 그런 후에 눈 감관을 이룬다”고 말했다.
028_0580_c_20L此亦是我疑何以故或作是說彼非境界眼根無自相無有數然後成眼
【문】만일 눈 감관이 제 모양이 없다면 눈은 감각이 없겠다.
若眼根無自相者眼無有覺
028_0581_a_02L【답】눈으로 헤아릴 줄 아는 물질 이것을 느껴 아는 것이라고 하나니, 눈이 몸을 헤아리는 물질인 것과 같아서 만족함이라고 말했다. 몸의 만족함이란, 네 요소인 몸에 하나의 제 모양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만들어진 물질은 자연인데, 눈의 인식이 증가함에 따라 증감이 있는 것을 나타내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고 이른다. 저것을 계산할 적에 차츰차츰 그 성질이 자연임을 알게 된다. 그 중에 모든 받아들임[入]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했다.
028_0580_c_23L知眼數之物是謂覺知眼如身數之物謂之厭足身厭足者非四大身有一自相或作是說所造色自然識增上現有增減是謂其事算數彼時漸漸知性自然爾於中諸入亦復當爾
눈의 검은 동자를 관찰함과
환희와 각각 서로 의지함이다.
네 요소가 모두 모였는데
만듦도 없고 의심할 것도 없네.
028_0581_a_06L觀眼黑瞳子
歡喜各相依
四大皆集聚
無造無狐疑
5근(根)도 역시 그와 같고 의근(意根)도 역시 그와 같고 의근의 제 모양이 의지함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028_0581_a_08L五根亦復如是意根自相依有何差
어떤 이는 “뜻[意]으로 모든 법을 아는데 이미 알고 장차 알 것을 안다. 눈 감관도 역시 그와 같고 의식(意識)이 만들어 증가하는 그것을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의식이 서로 의지하는 모양은 의근이 의식에 의지함이니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혹 나오기도 하고 혹 들어가기도 하여 다섯 식신(識身)과 의근(意根)이 식(識)에 의지하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028_0581_a_10L或作是說意知諸法知已知當知眼根亦復如是意識造增上是謂其或作是說意識相依相意根依意是謂其事或作是說或出或沒識身意根依識是謂其事
【문】무색계(無色界)에는 의식이 생기지 않나니 거기에는 다섯 식신이 없는가?
028_0581_a_14L無色界不生意識於彼無五識身
【답】어떤 이는 “여섯 식신과 의식신(意識身)이 증가하나니, 그 증가함으로부터 생기는 식(識)이기에 이를 그 사실이라 말한다”고 했다.
028_0581_a_15L或作是說六識身意識身增上從增上諸所生是謂其事
【문】이름과 물질이 이리저리 서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다시 저 식의 제 모양과 의근(意根)이 증가하는 작용을 하나니, 이를 그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것을 계산해 볼 적에 나아가 마지막인 저 성질은 자연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중의 의식만은 무너짐이 있다. 어떤 것이 뜻[意]이 되고, 어떤 것이 의식이 되는가? 앞에서 네 가지 사실을 말했듯이 6식신(識身)과 상응하는 것은 뜻이고 증가하는 식(識)에서 생긴 슬기와 마음이 그를 반연하는 것은 의식(意識)이다.
028_0581_a_17L名色展轉不相依彼識自相意根作增上是謂其事算數彼時乃至究竟彼性自然於中意識則有壞云何爲意云何爲意識前說四事六識身相應意增上識所生智心緣彼是意識也
제3 게품을 마친다.
028_0581_a_22L第三偈品竟

1. 취건도 ④
028_0581_a_23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四
028_0581_b_02L
현재의 통증을 자신이 대신하지 못하나 과거와 미래의 통증은 또한 즐겁지 않고 또한 괴롭지 않다. 어떻게 내가 괴롭고 내가 즐거움을 알게 되는가? 거룩한 마하승기는 “저 통증은 자연히 자신이 대신하고 자연히 안다”고 말했다.
028_0581_a_24L如現在痛自身不更過去未來痛亦不樂亦不苦云何得知我苦我樂摩訶僧耆作是說彼痛自然自身更自然識知
【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어떤 물건이 자연으로 회전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어떤 끊어지는 물건이 능히 제가 저절로 끊어지지 않으며, 창이 스스로 찌르지 못하며, 손가락과 머리가 스스로 부딪치지 못함과 같이 이도 역시 그와 같은가?
담마굴(曇摩崛)존자는 “마음과 상응하는 지혜로 알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028_0581_b_05L此非譬喩不見有物自然所迴轉如有斷絕之物能不自相斷戟不自割指頭自不相觸此亦如是尊曇摩崛作是說心相應智慧而得
【문】만일 그렇다면 자연으로 자연을 아는 한 인연인 상응법(相應法)이겠는가?
미사색(彌沙塞)존자는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지혜로 안다”고 말하였다.
028_0581_b_09L設當爾者自然知自然一緣相應法尊彌沙塞作是說以心不相應智知之
【문】만일 그렇다면 곧 두 가지 지혜가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一部僧名]은 “사람이 물어볼 줄 알고 또한 지혜를 쓸 줄 안다. 설령 지혜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가 그 다음에야 아는 수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제일의(第一義)에는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있지 않다. 중생을 안다고 말한 것은 역시 사만(邪慢)으로서 괴로움이 있다, 즐거움이 있다 말한다”고 했다.
028_0581_b_11L若當爾者則有二智言有人者一部僧名作是說人知問人亦用智設不用智知者初不知盡當有所或作是說第一義無有知若苦若言知衆生者亦是邪慢言有苦有
【문】아라한으로서 혹은 알지 못하는 그것도 사만이 있는 것인가?
어떤 이는 “느낌은 뜻이 전환하는 중간이 되나니, 그 중간에 내가 스스로 인식을 내어 그 대상 중에서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1_b_16L阿羅漢如今不知者彼有邪慢或作是說痛爲意轉中閒中閒我自生識彼境界於中得知
【문】만일 의식(意識)의 성질이라면 그것은 뜻의 대상이 아니며, 의식 그것과 의식으로 인식하는 대상 그것은 느낌 성질이 아닐 것이니, 어떻게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즐거움을 보거나 괴로움을 본 연후에야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1_b_18L如意識彼非意境界意識者及意識識境彼非痛性云何得知或作是說樂見苦然後得知
【문】어리석은 사람도 지금에 또한 아는데, 다시 그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몸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의한 연후에야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1_b_21L愚人今亦知不有是是苦是樂或作是說依身苦樂然後得知
028_0581_c_02L【문】만일 저 느낌에 의한 것이 이미 사라지면 어떻게 이는 낙에 의한 느낌이고 이는 괴로움에 의한 느낌이라 말하는 것을 알게 되는가? 마치 저 통증을 몸이 스스로 대신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어떻게 뜻[意]을 껴잡는가?
어떤 이는 “마음이 이미 생길 적에는 현재의 느낌만 반연한다”고 말했다.
028_0581_b_23L如彼依痛已滅云何得知是謂依樂痛是謂依苦痛猶如彼痛身不自更云何攝意或作是說心已生時緣現在痛
【문】마음이 생기려고 할 적에 미래는 그것이 반연하지 아니한 미래이니, 그러므로 곧 그 대상인가?
어떤 이는 “현재의 마음이 차례로 사라져서 그 느낌에 반연한다”고 말했다.
028_0581_c_03L心欲生時來彼非緣未來是故彼是境界或作是說現在心次第以沒緣彼痛
【문】차제연(次第緣)이 사라지고 또한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또한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게 되겠는가?
어떤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의지하고 다시 그 밖의 괴로움이 있거나 즐거움이 있지 않다. 그는 뜻을 내는 중간 대상에서 의식의 대상을 내는데, 그가 인식 자리인 제 성품[自性]에 편승하여 인식 모양을 만들어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거든, 하물며 다시 중생들이 느낌에 따라 뜻이 어지러워짐이겠는가?”라고 말했다.
028_0581_c_05L第痛沒亦不知苦亦不知樂云何得或作是說苦樂相憑無復有餘有苦有樂彼生意中閒境界生意識境彼乘識處自性作識相有苦有樂況復衆生隨痛志亂
자연인 지혜를 가진 그 사람을
가장 제일의(第一義)라고 말하리.
뜻으로 만든 느낌 그 자체가
고락행(苦樂行)을 벌써 내나니.
028_0581_c_10L自然智慧者
人最第一義 志所造痛身
已生苦樂行
마치 이 마음과 마음 법이 안에 의지하고 밖으로는 모든 받아들임[入]을 내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으로 안에 의지하여 생기고 밖에 의지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안에 의지하여 생긴다”고 말했다.
028_0581_c_12L猶如此心心法內依外生諸入以何等故依內生不依外或作是說依內
【문】평등하게 걸림 없는 그 중에 그에 의하여 안에서 생기고 밖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028_0581_c_15L等無㝵中依彼生內然不依外此義云何
【답】마치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데, 이를 안이라 말하고, 이를 바깥이라 말한 것과 같다.
028_0581_c_16L答曰猶如等無㝵是謂內是謂外
【문】어찌 이것이 뒤바뀐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데 이를 안이라 말하고 이를 바깥이라 말한다면, 그와 같은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 것은 이미 안에서 생기는 것이고 바깥은 아닌 것인가?
어떤 이는 “안에는 미묘한 사실이 있고 밖에는 없다.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안의 제 성품이 성취된 것이요, 바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1_c_17L云何此非顚倒耶如等無㝵是謂內是謂外如是等無㝵已生內非外或作是說內有妙事外無也此亦是我疑或作是說內自性成就然非外
【문】바깥 성품도 역시 스스로 성취하나니 자신의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이 친근하고 바깥은 친근하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81_c_21L外性亦自成就如自身色香味或作是說內親近非外也
028_0582_a_02L【문】처소가 없으면 가까움과 먼 것이 없고 이미 돌아간 대상도 둘 다 함께 서로 가깝고 둘 다 함께 서로 의지하여 생기는가?
어떤 이는 “안에서 생기고 바깥에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1_c_22L處所則無近遠已還境界二俱相近二俱相依生或作是說內生然非外外亦復生如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內造苦樂
【문】바깥도 역시 생기는 것이 제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든다”고 말했다.
028_0582_a_03L外亦造苦樂如自身中色香味細滑或作是說內有上中下上中下者從心心法生
【문】바깥도 역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 제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ㆍ닿임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나니, 상ㆍ중ㆍ하란 마음과 마음 법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했다.
028_0582_a_05L外亦有上中下上中下者從心心法生有異蠅聲興起耳識復有異大力鼓聲或作是說內不牢固
【문】바깥에도 또한 상ㆍ중ㆍ하가 있나니, 상ㆍ중ㆍ하란 마음과 마음 법으로부터 생긴다. 다시 파리 소리가 일으키는 귀의 인식[耳識]과 다시 힘껏 치는 북소리와 다른 것이 있는가?
어떤 이는 “안이 견고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028_0582_a_08L次第因緣亦不牢固欲使彼相依生或作是說是增上
【문】차제인연(次第因緣)도 또한 견고하지 못한데 그로 하여금 서로 의지하여 생기게 하는가?
어떤 이는 “안이 곧 증가한다”고 말했다.
【문】바깥도 역시 증가함이니, 평등하게 걸림이 없는 중에는 안이 증가하고 바깥이 증가함이 아니다. 이 내용은 어떠한가? 온갖 모든 유위법(有爲法)이 각각 증가함이 있는가?
어떤 이는 “안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조작하고 바깥이 아니니 눈썹을 그리고 눈을 점안하여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햇다.
028_0582_a_10L外亦是增上等無㝵中內增上非是外增上此義云何一切諸有爲法各各有增上或作是說以內故造苦然非外如畫眉點眼而見色
【문】말한 바대로 갑절이나 그리어 확대하여 보도록 하고 높은 소리로 나에게 말하되, “잘 들어라”고 하라.
어떤 이는 “안에 의지한 모든 받아들임이니 이 스님의 뜻은 ‘짓는 바가 마음과 더불어 함께 있고 식(識)은 네 요소에 의지하여 저것이 각각 수승한 모든 감관으로 충족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2_a_13L如所說倍畫使大而視之高聲語我當諦聽或作是說依內諸入此師所造與心俱有識依四大彼各各有勝諸根充足
제 성품의 의지가 미묘함이며
멀고 가까움, 취함과 버림이요,
아래에는 견고한 증가함이 없고
스님 뜻에는 식이 뒤에 있다.
028_0582_a_17L自性依微妙
遠近及取捨
下無牢增上
師意識在後
마치 이 마음과 마음 법이 안의 의지[依]와 바깥 연(緣)으로 인연에 들어 생기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으로 안에는 무너짐이 있고 밖에는 그러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이는 현재의 사실이니 마치 저 해 그림자를 보매 눈이 곧 무너짐이 있어도 해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82_a_19L猶如此心心法內依外緣入因緣生以何等故內有壞敗然非外或作是此現在事猶如觀彼日影眼則有然日無咎
【문】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무슨 이유로 눈이 무너짐이 있어도 해의 허물이 아니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안의 모든 감관이 속박된 것이요, 바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2_a_23L此亦是我疑以何等眼有敗壞非日之咎或作是說諸根縛然非外也
028_0582_b_02L【문】바깥도 역시 모든 감관이 속박되는 것이 자기 몸 안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82_b_02L外亦諸根縛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內有吾我
【문】바깥에도 역시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있다. 아라한은 나라고 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하려 하는가?
어떤 이는 “안에 의하여 모든 받아들임[入]이 생기고 바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는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가? 어떤 이는 “안에 친근함이 있게 되고 바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82_b_04L外亦有吾我想阿羅漢無有吾我想欲使彼不壞敗耶或作是說內生諸入然非外也如上所說或作是說內得親近然非外
【문】여기에 받아들임의 처소가 없어서 받아들이는 곳이 있지 않는데, 어찌 가까움과 먼 것이 있는가? 이미 돌아간 대상은 둘 다 함께 친근하는데 그 둘에 의하여 생기게끔 하려는가?
어떤 이는 “안에서 이미 생기고 바깥은 그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028_0582_b_07L此無入處不有入處安有近遠已還境界二俱親近欲使依二生耶或作是說內已然非外
【문】바깥도 또한 다시 생기는 것이 자기 몸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어떤 이는 “제 성품이 머무는 것이요, 바깥은 그러하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82_b_10L外亦復生如自身中色香味或作是說自性住者然非外也
【문】바깥도 역시 제 성품의 머무는 것이 자기 몸에 빛깔ㆍ냄새ㆍ맛과 같은가?
존자께서는 “만일 스스로 의지한 물건이 마음과 마음 법을 전환시켜 거기에 있어서 머무른다면, 바깥과 안의 모든 받아들임인 저 모든 법이 이리저리 모든 감관의 무너짐을 내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2_b_11L外亦自性住如自身中色香味作是說若自依物轉心心法居彼住者外內諸入彼諸法展轉生諸根壞敗也
현재에 모든 감관이 속박되고
조작에 의해 나라고 여김이 있다.
친근과 온갖 조작되는 바와
제 성품이 나로부터 있었네.
028_0582_b_15L現在縛諸根
依造有吾我
親近諸所造
自性是我有
사리불(舍利弗)존자는 “저 여러분의 좋은 눈이 안으로 받아들여도 무너짐이 없다. 그 빛깔이나 광명을 보더라도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또한 눈의 인식이 없나니, 깊이 생각하는 이여, 어느 것이 옳은가?”라고 말하였다.
어떤 이는 “차제연(次第緣)이 그 생각함이다”라고 말하였다.
028_0582_b_17L如尊者舍利弗說彼諸賢眼內入無有壞敗見其色光不諦思惟亦無眼識深思惟者何者是或作是說次第緣是其思惟
【문】치우쳐 차제연이 없기도 하는가?
頗次第緣無耶
【답】있지 않을 때가 없다. 일체 식신(識身)이 현재에 있나니 만일 현재에 있으면 저것이 곧 생긴다. 어떤 이는 “자연인(自然因) 저것은 곧 생각함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2_b_21L答曰無有不有時一切識身有現在也設有在彼則生或作是說自然因彼是思
【문】치우치게 자연인이 없을 때도 있는가?
問曰頗有時無自然因耶
【답】없지 않을 때가 없고 항상 평등함이 있지 않다.
028_0582_b_24L答曰不無時不常有等
【문】치우치게 평등하지 않음이 있는가?
問曰頗有不等耶
028_0582_c_02L【답】평등함이 있지 않을 때가 없다. 이는 “대의(大義)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028_0582_c_02L答曰非不有等或作是說大義思惟
【문】만일 대의가 없으면 어찌 식(識)이 나지 않겠는가?
028_0582_c_03L設無大義者云何不生識耶
【답】나지 않는다.
028_0582_c_04L答曰不生
【문】만일 채찍이나 막대로 구타하여도 그가 식을 일으키지 않는가?
若鞭杖捶打彼不起識耶
【답】대상의 힘 때문에 저 식이 곧 일어난다. 혹 일어나지 않을 적이 있나니, 무상삼매(無想三昧)나 멸진삼매(滅盡三昧)나 그 밖의 선정에 든 따위는 이 역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이는 “마음을 일으킨 자를 앞서 이미 말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음에 기억한 바를 식(識)이 곧 그를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말과 생각이 그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2_c_05L以境界力彼識則起或有不起入無想三昧滅盡三昧及餘定心者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發起心者先已說竟或作是說心所憶識則其思惟此亦是我疑或作是說語思惟是其相
【문】뜻과 생각함이 차별이 없는가?
어떤 이는 “마음과 마음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 생각함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2_c_11L志思惟無有差別或作是心心法與心相應是其思惟
【문】모든 상응하는 법이 그 생각함이어서 모든 식(識)을 내나 식은 생각함이 아니니, 이 내용은 어떠한가?
어떤 이는 “생각함에서 중생의 인연이 생기고 식의 성질이 모든 속박을 일으킨다 함이 그것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2_c_12L相應法是其思惟生諸識然識非思此義云何或作是說思惟衆生緣生識性起諸縛此之謂也
차제에서 저 인연이 있게 되고
대의(大義)로 인해 비춰 밝힌다.
희망이 중생을 만들기도 했으며
상응함과 모든 슬기를 만들었네.
028_0582_c_15L次第有彼緣
因大義照明
悕望作衆生
相應及諸智
그것을 내어 사유(思惟)함 있는 것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차제연으로 저 사유가 생기는 것이 내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82_c_17L生彼有思惟有何差別或作是說第緣是彼思惟生者爲生
【문】그는 사유를 내지 않는다. 만일 낸다면 차별이 있지 않을 것이요, 만일 내지 않는다면 말한 바가 그 사유가 아니다. 저 눈의 인식이 생기게 됨이 아니니, 이는 곧 상위(相違)이다. 5사(事)도 또한 다시 그와 같은가?
어떤 이는 “저 사유에서 마음 법과 심상응행(心相應行)이 생기는데, 저 사유가 생기는 것은 심상응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저 마음을 내어 마음이 일어나는 법이 저 사유다”라고 말했다.
028_0582_c_19L彼不生思惟設當生者無有差別若不生者所說非是思惟非彼眼識得生此則相違五事亦復如是或作是說彼思惟心法心相應行生彼思惟生非心相應行尊作是說彼生心心轉法思惟
028_0583_a_02L다시 다음으로 생기는 것이란 자연으로 만들어진 법이니, 마치 불꽃과 광명이 앞뒤가 서로 인해 생기는 것과 같다. 어떻게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불꽃이 있으면 곧 광명이 있게 되고, 광명이 없으면 불꽃이 없나니, 그 중에서 불꽃이 광명으로 인해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3_a_02L復次生者自然造法譬如炎光前後相因生云何得知炎因光或作是說有炎便有光無光則無炎於中得知炎因有光
【문】만일 둘이 함께 일어난다면 어떻게 불꽃에서 광명이 있고 광명이 없으면 불꽃이 없음을 알게 되는가?
028_0583_a_05L若二俱起者云何得知炎因有光無光則無炎
【답】불꽃에서 생긴 모습은 타는 것이고, 광명이 아니다.
028_0583_a_06L答曰所生貌然非光
【문】어떻게 불꽃이 광명을 내고 타는 것은 광명이 아님을 알게 됩니까?
028_0583_a_07L云何得知炎生光然非光
【답】불꽃이 얽힌 바가 되었기 때문이다.
答曰炎所纏縛
【문】불꽃에 얽힌 바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만일 불꽃이 있을 적에는 광명이 때를 따라 상응하나니, 이것 역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불꽃이 없어지면 광명도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3_a_08L炎所纏縛或作是語若有炎時光隨時應此亦如上所說或作是說炎壞則光壞故得知炎因光
【문】둘 다 함께 없어진다고 할 때, 불꽃이 없어지면 광명은 없어지거나 광명은 없어져도 불꽃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028_0583_a_11L二俱壞者云何得炎壞則光壞光壞炎不壞
어떤 이는 “불꽃이 치성하면 광명이 있다는 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합해 모여 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불꽃이 크면 광명도 크고 불꽃이 짧으면 광명도 짧다”고 말했는데 이것 역시 앞에서 이미 말했다.
어떤 이는 “불꽃이 깨끗하지 못할 적에는 광명도 곧 깨끗하지 못하고 불꽃이 깨끗하면 광명이 또한 깨끗하다고 하는 그것 역시 나의 의심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광명을 보는 것은 불꽃이 그 근본이 되나니, 그로 말미암아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3_a_12L或作是炎熾盛則有光此亦是我疑或作是說合會而有此亦是我疑或作是炎大光大炎短光短炎此亦前已或作是說炎不淨時光則不淨則光淨此亦是我疑或作是說以見炎是其本由是得知炎因光
【문】광명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된다면 기름 심지가 광명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는가?
028_0583_a_18L光義故求索油炷欲使油炷因光耶
【답】광명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광명 때문에 불꽃을 찾게 되는 것이요, 불꽃 때문에 기름 심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불꽃 때문에 그 광명이 있는것이 아니고 상응하여 광명이 있는 것이니, 불꽃과 광명이 가장 미묘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3_a_19L答曰不以光故求索油炷但以光故求索炎也以炎故求索油炷或作是炎故有其光也相應有光炎與光最是妙事
【문】만일 둘이 함께 생기면 미묘하다 말하니, 미묘하지 않다 말하는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본래 불꽃이 일어나서 광명이 생긴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불꽃이 광명으로 인한 것임을 안다”고 말했다.
028_0583_a_23L設二俱生是謂妙謂非妙此義云何或作是說本興炎生光由是知之炎因光也
028_0583_b_02L【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불꽃에 광명이 없는 것을 보지 못했다.
028_0583_b_02L此非譬不見炎無光者
【답】그것 역시 비유가 되지 않나니, 저 불꽃이라고 느끼어 번갈아 서로 반연할 때에는 광명이 없다. 그 광명은 그 불꽃이 회전한 것이 아닌 것처럼, 희망하는 감각이 또한 서로 생기지 않을 때에는 곧 교만한 뜻이 있다.
028_0583_b_03L答曰此亦非譬喩如覺彼炎更相緣時時無有光如其光非其炎迴轉悕望覺亦不相生則有慢意
제각기 무너지는 모양이며
희망과 상응하는 행(行)이다.
청정한 이치를 통달한 그것과
합해 모임은 앞에서 말함과 같다.
028_0583_b_05L各各壞敗相
悕望相應行
達淸淨義者
合會如前說
마치 6식신(識身)이 반드시 과거의 자연인(自然因)에 의지함과 같다. 뜻이 어긋나지 않고 달리 반연하지 않으매 또한 그릇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한사람이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니지만 6식신은 둘이 함께 일어난다.
어떤 이는 “하나의 차제연(次第緣)에 하나의 식(識)이 머무른다”고 말했다.
028_0583_b_07L猶如六識身必依過去自然因志不錯異緣亦不誤以何等故一人非前非後六識身二俱起或作是說一次第緣一識住
【문】하나의 식과 상응함에 낱낱이 식이 서로 의지함인가?
어떤 이는 “하나는 저 생각함이니, 하나의 식이 곧 상응하여 머무른다”고 말했다.
028_0583_b_11L一者識相應一一識相依或作是說一者彼思惟一識則相應住
【문】만일 하나의 식이 상응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의 식인가?
어떤 이는 “하나의 감관이 하나의 식에 의해 상응하여 머무른다는 것은 하나의 식이 상응하매 낱낱 식이 머무름이다”라고 말했다.
일체 중생들이 반드시 받을 과보를 제가 지어서 받게 되는 것처럼, 거기에는 미래와 현재에 지은 바가 있다.
028_0583_b_13L設一識相應此是一識作是說一相依一識相應住者一識相應一一識住如一切衆生必有所趣受報自作當彼有未來現在所造
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이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아 다섯 갈래[五有]는 전환되지 않는가?
어떤 이는 “한 갈래[趣]의 결사(結使)가 치성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한 갈래에서 온갖 과보를 받는다”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식(識)과 함께 상응한 연후에 낱낱 식을 일으키나니, 일으켜서 지은 과보 행위가 모두 식 종자에 응한다. 이러하므로 그것을 아나니, 만일 중생이 없으면 일찍이 있지 않은데 생겨 있는 것이 곧 열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3_b_17L以何等故人不前不後五有不轉或作是說趣結使熾盛或作是說一趣受諸報尊作是說識共相應然後轉一一識諸轉所造報行皆應識種以是知之無有衆生未曾有而生有便般泥洹
무슨 까닭으로 중생이 줄어짐이 없는가?
028_0583_b_22L以何等故衆生無有減
028_0583_c_02L어떤 이는 “그대가 그 수효를 계산하겠는가? 그러한 중생에 대해서 줄어듦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계산할 수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 줄어듦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생이 무궁하다. 그러므로 그 줄어듦을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큰 바닷물이 한량없으므로 천 개의 병을 가지고 가서 퍼내더라도 또한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028_0583_b_23L或作是說莫計爾所數耶有爾所衆生不知減若不能計者何以故不知減或作是衆生無有窮是故不知減譬如大海水無限量千甁往取亦無減此亦如是
【문】큰 바다에는 강물과 그 밖의 샘물이 모두 거기에 가 모이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본래 없는데 지금은 있는가?
028_0583_c_06L大海江河及餘泉源皆往趣欲使衆生本無今有耶
【답】딴 세계의 중생들이 이쪽에 온 것이다. 존자께서는 “저 세계에 중생은 줄어듦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3_c_07L答曰於異方剎土衆生來到此閒尊作是說於彼剎衆生無有減
그 내용이 어떠한가?
중생이 딴 세계에 노닐면서 성현의 도를 가지고 세계를 벗어나서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028_0583_c_09L此義云何有衆生遊異方界執賢聖道出界到界
그 뜻이나 성품은 어떠하며 어떠한 희망이 있는가?
마땅히 이렇게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니 이 3취(聚) 중생은 줄어듦만 있고 더함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028_0583_c_10L志性云有何等悕望當作是觀猶如此三聚衆生有損無益以何等故三聚衆生不知有減
어떤 이는 “그대가 그러한 수효를 계산하겠는가? 그러한 중생은 줄어듦이 없다. 만일 세지 못한다면 누가 그 줄어듦을 아는가?”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한량없이 지은 바 중생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같다. 존자께서는 “어디에나 줄어듦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3_c_13L或作是說汝爲計算爾所數耶爾所衆生無有減若不數者誰知有減或作是說無量所造衆生此亦如上所說尊作是說在處在處無有滅
그 사실이 어떠한가?
아비담(阿毘曇)에서 말한 “반드시 세(世)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 사취(邪聚)가 있는 것은 사라진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만일 그렇다면 그 내용은 옳지 못하니 지금에 있고 여기는 없어짐과 같다.
이와 같은 3세(世)에서 1세 안에 미래는 줄어듦만 있고 더함이 없으며, 1세 안에 과거는 더함만 있고 줄어듦이 없다.
028_0583_c_17L此事云何如阿毘曇說必有世不疑有邪聚當言滅盡設爾者義不然如今有此盡如此三世一世中未來有損無益世中過去有增無損
무슨 까닭으로 미래 세상은 줄어듦이 없고 과거는 가득 참이 있는가?
028_0583_c_21L以何等故未來世無減過去有滿
028_0584_a_02L어떤 이는 “그대가 그러한 수효를 계산하는가? 과거와 미래에 그러한 수효가 있는가? 줄어듦이 있는 것을 알고 만일 계산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 줄어듦이 있는 것을 아는가?”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는 이미 없어지고 미래는 생기지 아니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는 처소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는 한량이 없다”고 말했다.
028_0583_c_22L或作是說汝計爾所數耶過去未來有爾所數耶知有若不算計者誰知有減或作是說過去已壞未來未生或作是說過去未來無有處所或作是說過去未來無有限量
세존께서는 “두 법을 비추어 밝혀야 한다. 왜냐 하면 세(世)는 처소가 없고 사실과 상응하는 인연으로 생기나니, 이미 생김과 곧 무너짐이 그 사실이다중생이 늘아나고 줄어드는 것에 대해 성인은 그대로 두고 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느 누구도 계산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래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고 만약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다면 또한 허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억제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범지(梵志)를 억제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성인의 가르침은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인데 중생들은 형상을 버리지 못하고 사물을 숭상한다. 만일 적정삼매(寂靜三昧)에 들면 한량없고 가없는 복이 되나 그는 다 깨끗함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4_a_04L世尊作是說若二法照明何以故世無處所事相應緣生已生當壞是其事衆生增減乃是聖人存而不論者也故曰誰計豆而不說本無今有若有斯言則亦有咎故皆抑之耳佛止梵志亦其事也聖人之教進覺號也衆生無棄形而上事也如入寂靜三昧無量無邊福彼非盡淨
저 삼매는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한량없고 가없는 복이 그 반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a_09L彼三昧爲緣何等或作是無量邊福是其緣
【문】지금에 다 깨끗하지 않은가?
今不盡淨
【답】그것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028_0584_a_10L彼不自知
【문】만일 스스로 안다면 그것은 무엇을 반연하는가? 만일 깨끗함이 한량없으면 그것은 삿된 슬기가 아닌가?
어떤 이는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여김은 마음을 그 내용이라 풀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a_11L設自知者彼緣何等若淨無量彼非邪智耶或作是說淨謂之淨訓心是義
【문】만일 깨끗한 것을 깨끗하다 말한다면, 마음을 “항상함이 아니요 항상함이 없다”고 풀이함이니, 마음을 그 내용이라 풀이함을 해설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일체 고요함이란 그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니, 저것도 역시 그와 같다.
028_0584_a_13L若淨言淨者訓心不常無常解說訓心是義或作是說一切寂靜此之謂也彼亦如是
【문】지금에 제2선(禪)에 들면 그 때에는 눈으로 누런 것을 다 볼 것이니, 그러면 한동안 제 모양[自相]이 무너지는가?
어떤 이는 “깨끗함이 저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a_15L如今入第二禪是時眼盡見黃故一時自相壞敗或作是說淨是彼
【문】누가 그런 삼매가 없는가?
誰無此三昧
【답】생각함에 빈틈이 없을 때에 그러한 삼매가 있다.
028_0584_a_18L答曰思惟無空缺處有是三昧
【문】일체 삼매도 또한 빈틈이 없는데, 일체 삼매를 적정삼매로 보려고 하는가?
028_0584_a_19L一切三昧亦無空缺處處欲使一切三昧作寂靜三昧耶
【답】일체 제 모양으로 서로 느낌이 아니요, 일체 한량없는 모양을 만듦도 아니다.만일 제 모양으로 한량없는 모양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행인의 삼매[行人三昧]라고 한다.
028_0584_a_20L答曰非一切自相相受非一切造無量相若自相受無量相者彼是行人三昧
028_0584_b_02L존자께서는 “깨끗함이 그 인연이니 그가 이것과 상응하는 것이 불타는 섶으로 인연하여 연기가 일어남과 같다. 모든 인연은 각기 서로 의지하여 깨끗함이 생기나니, 그와 같이 모든 상응함과 모든 인연이 일어나게 된다. 마땅히 이러한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저 삼매를 불순하다 말해야 하고 순하다 말해야 하는데 위의 5사(事)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존자께서는 “마땅히 불순함이 아니고 차츰차츰 순함이 가까워진다”고 말씀하셨다. 먹는 것을 사람이라고 관찰해야 한다지만 그러나 먹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028_0584_a_23L尊作是說淨是其緣彼以此相如緣然薪起煙及諸因緣各相依而生淨如是起諸相應及諸因緣作是觀彼三昧當言不順當言順上五事無異尊作是說當言非不順漸漸近順食謂觀人然食非人
저 어리석게 관찰하는 이는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먹는 것이 그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b_06L彼愚觀者爲緣何等或作是說食是其緣
【문】저것은 어리석은 관찰이 아니고 생각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 밖의 생각으로 먹는다면 다시 딴 인연이 있을 것이니, 고요한 것으로 고요한 인연이 없다고 하겠는가?
어떤 이는 “사람이 그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b_07L彼非愚非思惟食設餘思惟食者復有餘欲使寂靜無寂靜緣耶或作是說人是其緣
【문】먹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가?
食非是人
【답】그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028_0584_b_10L答曰如彼不自知
【문】만일 스스로 안다면 나라는 것이 그 인연인가? 다시 저 어리석게 관찰하는 이는 이곳에서 먹고 그를 바라고 찾아 구하나니, 저 어리석게 관찰함을 마땅히 “순함이다”라고 말해야 되는지, 마땅히 불순하다고 말해야 되는지, 위에서 두 사실[二事]을 설명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맛에 순응하여 애착하는 것이 그 상대다’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골쇄(骨鎖)에 의하여 약간의 생각을 일으켰다면 내 몸도 골쇄로 된 것이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4_b_11L設自知者吾我是緣耶復次彼愚觀者食此處所悕望求索彼愚觀當言順當言不順如上二事說作是說當言順味愛是對若依骨瑣起若干想自知我身骨瑣亦復如是
저 생각은 무엇을 반연하는가?
어떤 이는 “골쇄가 곧 그 반연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b_15L彼想爲緣何等或作是說骨瑣卽是其緣
【문】몸은 골쇄가 아니다.
身非骨瑣
【답】그것 역시 골쇄로서 피부와 살이 얽힌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그 반연이니 그는 골쇄로서 피부와 살이 얽힌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4_b_17L答曰此亦骨瑣肉所纏或作是說自身是緣此骨瑣皮肉所纏
【문】저 생각은 몸이 아니다. 만일 골쇄라는 생각으로 관찰한다면 자신에 반연함이거늘, 푸른 것으로 하여금 누런 빛깔에 반연하게 하겠는가? 다시 그 내용인 생각은 저 자신에 반연했는가? 분별과 희망인 저 모양을 마땅히 순함이라 말하고 마땅히 불순함이라고 말함은 위에서 두 사실[二事]을 설명한 것과 같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순함이라고 말함은 그 상대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4_b_19L彼想非身若觀骨瑣想則緣自身欲使靑緣黃色耶復次義想緣彼自身分別悕望彼相當言順當言不順如上二事說尊作是說言順欲使有對
제4 게품을 마친다.
028_0584_b_23L第四偈品竟
028_0584_c_02L느낌과 두 마음과
불꽃ㆍ그림자ㆍ광명ㆍ줄어듦이며
일찍이 없었던 취(聚)들과
푸름ㆍ먹음ㆍ골쇄 따위이다.
028_0584_b_24L痛及二心
炎影光減
未曾有聚
靑食骨瑣
尊婆須蜜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소승 12부의 하나인 미사색부(彌沙塞部)를 가리킴. 상좌부(上座部)의 말파(末派)로서 화지부(化地部)와 정지부(正地部)라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