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 우파저사(優波底沙)양나라 말로 대광(大光) 지음 양(梁) 부남(夫南)삼장 승가바라(僧伽婆羅) 한역 이태승 번역
028_1009_a_02L 阿羅漢優波底沙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1. 인연품(因緣品)
028_1009_a_04L因緣品第一
세존ㆍ응공ㆍ정변지께 예배 올립니다.
028_1009_a_05L禮世尊、應供、正遍知!
계ㆍ정ㆍ혜와 무상해탈(無上解脫) 이 법을 따라 깨달아 명성을 얻으신 구담(瞿曇).
028_1009_a_06L戒定智慧,無上解脫,隨覺此法,有稱瞿曇。
만약 사람이 갖가지 고난을 벗어나서 모든 집착을 떠나며, 승분심(勝分心)을 성취하고, 생ㆍ노ㆍ사를 두려워하며, 선(善)과 해탈을 즐겨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그 피안을 또한 구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널리 수다라(修多羅:Sutra)ㆍ비담(毘曇:Abhidharma)ㆍ비니(毘尼:Vinaya)를 물어야 한다. 이런 해탈도를 내가 이제 설할 것이니, 잘 들어라.
【답】 “계”란 위의(威畿)의 뜻이다. “정(定:Sāmādhi)”이란 불란(不亂)의 뜻이다. “혜(慧:Pañ̃ñā)”란 지각(知覺)의 뜻이다. “해탈”이란 계박을 벗어나다[離縛]는 뜻이다. “무상(無上)”이란 무루(無漏)의 뜻이다. “따라 깨달음[隨覺]”이란 지득(知得)의 뜻이다. “이 법”이란 4성법(聖法)1)을 뜻한다. “구담[Gotama]”이란 성씨를 뜻한다. “명성이 있다”란 세존(世尊)을 뜻한다. 계ㆍ정ㆍ혜ㆍ해탈의 뛰어난 공덕으로 가장 수승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명성이 한량없게 된다.
피분해탈이란 현재 달분정(達分定)을 닦아 모든 견해로부터 해탈하는 것, 이것을 피분해탈이라 한다.
028_1009_a_21L彼分解脫者,現脩達分定,諸見解脫,此謂彼分解脫。
028_1009_b_02L단해탈이란 출세간도를 닦아 능히 나머지 결박[結]3)을 없애는 것, 이것을 단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2L斷解脫者,脩出世閒道能滅餘結,此謂斷解脫。
의해탈이란 과보를 얻었을 때 마음이 즐겁고 몸이 경쾌한 것[猗]4)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의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3L猗解脫者,如得果時樂心猗,此謂猗解脫。
이해탈이란 바로 무여열반이니, 이것을 이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4L離解脫者是無餘涅槃,此謂離解脫。
이 해탈도는 해탈을 얻기 위한 것이고, 이 구족도는 계ㆍ정ㆍ혜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도라 한다. 해탈도를 나는 지금 마땅히 설할 것이다.
028_1009_b_05L此解脫道爲得解脫,是具足道,以戒定慧謂解脫道。解脫道者我今當說。
【답】 어떠한 필요로 해탈도를 설하는가?
028_1009_b_07L問:何用說解脫道?
【문】 어떤 선량한 사람들[善人]이 기꺼이 해탈을 얻으려 해도 해탈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눈먼 이가 안내하는 사람 없이 홀로 먼 나라로 가는 것과 같아 갖가지 고통을 받을 뿐 해탈을 얻을 수 없으며, 해탈을 얻고 싶어도 그 원인 되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해탈에 있어 이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 “진로(塵勞)5)가 미세한 중생이라 해도 법을 듣지 않는 까닭에 결국은 역시 퇴전하고 만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는 두 가지 인, 두 가지 연이 있어 능히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킨다.
첫째는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해탈을 설한다.
028_1009_b_15L一、從他聞;二、自正念。是故說解脫。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싫어하여 떠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바르지 않은 도[不正道]를 없애고 선해탈도(禪解說道)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마치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
정어ㆍ정업ㆍ정명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혹은 계음이란 갖가지 계의 공덕이 모인 것을 말한다.
028_1009_b_20L正語、正業、正命及種類所攝,或戒陰種種戒功德聚。
무엇이 정음(定陰)인가.
云何定陰?
정정진ㆍ정념ㆍ정정 및 그 종류의 정음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정(定)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028_1009_b_22L正精進、正念、正定及種類定陰所攝,或種種定功德聚。
무엇이 혜음(慧陰)인가.
云何慧陰?
정견ㆍ정사유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지혜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이것이 3음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다.
028_1009_b_24L正見、正思惟及種類所攝,或種種慧功德聚。此三陰成滿。
028_1009_c_02L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에서는 마땅히 3학(學)을 배워야 한다. 즉 증상계학(增上戒學)ㆍ증상심학(增上心學)ㆍ증상혜학(增上慧學)이다. 계가 있고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이 있고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가 있고 증상혜학이 있다. 또 계와 계학이 있고 계학과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과 심학이 있고 정학과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와 혜학이 있고 혜학과 증상혜학이 있다.
말하자면 세간지(世間智)를 혜학이라 하고, 사제상사지(四諦相似智) 및 도지(道智)를 증상혜학이라 한다. 세존이 근기가 둔한 사람[鈍根人]을 위하여 증상계학을 설하고, 근기가 보통인 사람[中根人]을 위하여 증상심학을 설하고, 근기가 예리한 사람[利根人]을 위하여 증상혜학을 설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선의 길을 성취하고 나면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가 세 가지 즐거움을 얻게 되니, 즉 과오가 없는 즐거움[無過樂]ㆍ적멸의 즐거움[寂滅樂]ㆍ정각의 즐거움[正覺樂]이다. 그것은 계로써 과오가 없는 즐거움을 얻고, 정으로써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 혜로써 정각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취하여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이 계의 선(善)으로써 모든 욕망과 집착을 없애 과오가 없는 즐거움에서 유정이 흔연한 즐거움을 일으키고, 정으로써 몸의 분잡함을 없애 적멸의 즐거움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증진시키고, 혜로써 4제를 분별하고 중도를 구족하여 정각의 즐거움에서 깊이 사랑과 즐거움을 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계로써 악취(惡趣)를 없애고, 정으로써 욕계(欲界)를 없애며, 혜로써 모든 유(有)를 없애는 것이다. 계를 많이 닦고 정과 혜를 조금 닦으면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을 이루고, 계와 정을 많이 닦고 혜를 조금 닦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이루며, 세 가지 모두 원만히 닦으면 아라한(阿羅漢)의 무상해탈을 이룬다.
【문】 무엇이 계인가? 무엇을 상(相)으로 삼고, 무엇을 맛[味]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起]으로 삼고, 무엇을 족처(足處)로 삼는가? 어떤 공덕(功德), 어떤 계의(戒義)가 있는가? 계와 행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몇 가지 계가 있는가? 무엇에서 일어난 것인가? 무엇이 계의 초ㆍ중ㆍ후인가? 몇 가지 법이 계도(戒道)를 장애하고, 몇 가지 법이 계의 인이 되는가? 계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가? 무엇이 계를 청정케 하며, 어떠한 인이 있어 이 계를 머물게 하는가?
【답】 무엇이 계인가. 사계(思戒)ㆍ위의계(威儀戒)ㆍ불월계(不越戒)이다. 무엇을 사계라 하는가. “나는 악을 짓지 않고, 짓는다면 스스로 받겠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위의계인가. 범할만한 곳을 피하는 것이다. 무엇이 불월계인가. 계를 지닌 사람이라면 신구(身口)에 과실이 없는 것을 말한다. 또 단(斷)의 뜻이 위의이며, 모든 선법(善法)이 계이다.
불회가 계의 공덕이다. 세존께서 아난에게 “불회가 계의 선(善)이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공덕의 뜻이다.
028_1010_c_21L不悔是戒功德。如世尊告阿難:不悔戒善是功德義。
028_1011_a_02L또한 계라고 이름하는 이것은 과오가 없는 즐거움이고, 이것은 여러 종성의 으뜸이며, 이것은 부귀를 가져다주는 재물이고, 이것은 부처가 되는 땅이며, 이것은 물 없이 목욕하는 것이고, 이것은 향내가 널리 퍼지는 것이며, 이것은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이고, 이것은 일산이 가릴 수 있는 것을 가리는 것이며, 이것은 성스러운 종성이고, 이것은 위없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은 훌륭한 세계로 가는 길이다.
만약 사람이 계를 가지고 있으면 계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무외(無畏)를 성취하고, 친지와 벗들 사이에서 밝게 드러나고, 성인으로부터 연민(憐愍)을 받는다. 이것은 친지와 벗들이 의지할 곳이고, 이것은 훌륭한 장엄이며, 이것은 모든 행을 통솔하는 것이고, 이것은 공덕처이며, 이것은 공양처이며, 이것은 존중해야 할 동학처(同學處)이다. 모든 선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아 일체의 뜻과 원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며, 비록 죽더라도 잊지 않는 것이며, 복해탈을 성취하는 즐거운 방편이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계의 공덕이 있다.
【답】 냉(冷)의 뜻ㆍ증상(增上)의 뜻ㆍ행(行)의 뜻ㆍ자성(自性)의 뜻ㆍ고락의 성질과 상응한다는 뜻이 있다. 또 머리[頭]라는 뜻ㆍ시원함[冷]이라는 뜻ㆍ편안함[安]이라는 뜻이 있다.
028_1011_a_09L答:冷義、增上義、行義、自性義、苦樂性相應義。復次頭義、冷義、安義。
【문】 왜 머리가 계의 뜻인가?
云何頭爲戒義?
【답】 만약 사람이 머리가 없다면 일체의 모든 근(根)이 다시는 6진(塵)을 취하지 못하게 되니, 이때를 죽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계로써 머리를 삼는다. 만약 머리가 떨어지면 모든 선법을 잃게 되는데 여기 불법(佛法)에서는 그것을 죽음이라 한다. 이것이 계가 머리의 뜻이라는 것이다.
재질이 좋고 차가운 전단(栴檀)을 문지르면 곧 몸의 열이 없어지고 환희를 성취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계는 재질이 뛰어나고 차가운 전단이 되어 능히 계를 범했을 때의 공포와 두려움 등 마음의 열기를 없애고 환희를 성취하게 한다. 이것이 시원함이 계의 뜻이라는 것이다.
선심이 일으키는 바가 선계이며, 불선심이 일으키는 바가 불선계이며, 무기심이 일으키는 바가 무기계이다.
028_1011_b_04L善心所起善戒,不善心所起不善戒,無記心所起無記戒。
무엇이 계의 초ㆍ중ㆍ후인가.
何戒初中後者?
수계(受戒)가 초이며, 불월(不越)이 중이며, 환희가 후이다.
028_1011_b_06L受戒是初,不越是中,歡喜是後。
【문】 계를 장애하는 법은 몇 가지이고, 계의 인(因)이 되는 법은 몇 가지인가?
028_1011_b_07L戒有幾法障碍?幾戒因?
【답】 34법이 장애도(障碍道)이며, 34법이 계의 인이다.
028_1011_b_08L答:三十四法是障碍道,三十四法是戒因。
소위 분(忿)ㆍ뇌(惱)ㆍ복(覆)ㆍ열(熱)ㆍ간(慳)ㆍ질(嫉)ㆍ환(幻)ㆍ첨(諂)ㆍ한(恨)ㆍ경(競)ㆍ만(慢)ㆍ증상만(增上慢)ㆍ오만(傲慢)ㆍ방일(放逸)ㆍ나타(懶惰)ㆍ탐욕(貪欲)ㆍ부지족(不知足)ㆍ부종지(不從智)ㆍ부정념(不正念)ㆍ악구(惡口)ㆍ악우(惡友)ㆍ악지(惡智)ㆍ악견(惡見)ㆍ불인(不忍)ㆍ불신(不信)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몸짓과 말을 꾸미는 것[營身口味]ㆍ속인을 업신여기는 것[狎俗]ㆍ여인을 가까이하는 것[親近女人]ㆍ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것[不敬師]ㆍ배우고도 감관을 단속하지 않는 것[學不攝諸根]ㆍ음식을 절제하지 않는 것[於食不節]ㆍ초야와 후야에 게으름 떨며 좌선과 독송을 실행하지 않는 것[初夜後夜墮不禪誦]이다. 이 34법이 장애도이다.
만약 그 하나하나가 장애하면 계는 원만히 성취되지 못하고, 원만히 성취도지 못하면 반드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만약 이 법과 반대되는 34종이라면 이것을 계의 인이라 한다.
028_1011_b_15L若二障碍,戒不成滿;若不成滿,必還退失。若反是法三十四種,是名戒因。
계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가.
028_1011_b_17L戒有幾種者?
소위 두 종류ㆍ세 종류ㆍ네 종류가 있다.
謂有二種、三種、四種。
무엇이 두 종류인가.
云何二種?
소위 성계(性戒)와 제계(制戒)이다.
028_1011_b_18L謂性戒、制戒。
신(身)ㆍ구(ㅁ)의 소행으로써 부처님께서 “행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단언하신 것을 성계라 하고, 신ㆍ구의 가행(可行)으로써 부처님이 “행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단언하신 것을 제계라 한다. 성계는 신정진(信精進)으로써 능히 구족하게 되고, 제계는 신념지(信念持)로써 능히 구족하게 된다.
불구족계(不具足戒)를 유량이라 하며, 만약 구족계가 부처님께서 끊는 바라고 하면 이것을 무량이라 한다.
028_1011_c_07L不具足戒,是名有量。若具足戒,以佛所斷,是名無量。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변(有邊)과 무변(無邊)이다.
028_1011_c_09L復次戒有二種:有邊、無邊。
무엇이 유변인가.
云何有邊?
만약 사람이 세간의 이익[世利]을 위해, 수승함[勝]을 위해, 친지와 벗을 위해, 몸을 위해, 목숨을 위해, 의지하는 바를 뛰어넘기 위해 그 계를 받아 행한다면 그런 계에는 이익과 공양물[利養]이 한계[邊]가 되고, 칭찬과 명예[稱譽]가 한계가 되며, 몸이 존재하는 것이 한계가 되고,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 한계가 된다.
유(有)와 상응하는 계는 애(愛)에 의지하고, 계도(戒盜)와 상응하는 계는 견(見)에 의지하고, 자기를 높이고 남을 폄하하는 것[自譽毁他]과 상응하는 계는 만(慢)에 의지하니, 이런 것은 유의계이다. 만약 해탈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것이 무의계이다. 만약 유의계라면 지혜로운 사람이 즐기는 바가 아니며, 무의계라면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즐기는 바이다.
028_1012_a_02L무엇이 유심(有心)인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범행[初學梵行]이다. 무엇이 무심(無心)인가. 나머지 가벼운 계들을 말한다. 성문은 범행의 시초에 해당하는 계는 견고히 지키고 받들었지만 이런 가벼운 계에 있어서는 범하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것이 해탈을 장애한다고 설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무엇이 지악불범인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때까지 행해야 할 곳이 아니면 범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지악불범이라 한다. 무엇이 수불범인가. 계를 받고 나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범하지 않는 것을 수불범이라 한다. 무엇이 단불범인가. 성인이 성도(聖道)로써 모든 악의 원인을 끊는 것을 단불범이라 한다.
무엇이 의세계인가. 만약 사람이 공포(恐怖)를 품고 장차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보호하고자 모든 악법을 없앤다면 이를 의세라 한다. 무엇이 의신계인가. 만약 사람이 공구(恐懼)를 품고 장차 몸과 목숨을 보호하고자 모든 악법을 없앤다면 이를 의신이라 한다. 무엇이 의법계인가. 만약 사람이 경외(驚畏)를 품고 장차 정법을 보호하고자 모든 불선을 없앤다면 이것을 의법이라 한다.
028_1012_b_02L또 계에 세 종류가 있으니, 소원부등(所願不等)ㆍ소원등(所願等)ㆍ무소원(無所願)이다.
028_1012_b_02L復次戒有三種,謂所願不等、所願等、無所願。
무엇이 소원부등인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계를 수지하는 이런 것을 소원부등이라. 무엇이 소원등계인가 하면, 계를 받는데 현재의 유락(有樂)과 미래의 해탈락(解脫樂)을 위해 받는 것으로 이것을 소원등이라 한다. 무엇이 무소원계인가 하면, 계를 받아 후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요익케 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을 무소원이라 한다.
또 계에 세 종류가 있다. 청정계(淸淨戒)ㆍ불청정계(不淸淨戒)ㆍ유의계(有疑戒)이다. 무엇이 청정계인가 하면, 두 가지 인연으로 계가 청정을 이룬다. 첫째는 범하지 않은 것[不犯]이고, 둘째는 범하더라도 능히 후회하는 것[犯已能悔]이다. 이것을 청정계라 한다. 무엇이 불청정계인가 하면, 두 가지 인연으로 불청정을 이룬다. 첫째는 스스로 범하는 것[自故犯]이고, 둘째는 범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犯不悔]이다. 이것을 불청정이라 한다. 무엇이 유의계인가 하면, 세 가지 원인에 의하는 까닭에 유의를 성취한다. 첫째는 장소[處]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범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셋째는 부정행(不正行)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의계라 한다.
028_1012_c_02L 무엇이 외계인가. 사람이 죄를 두려워하여[畏] 감히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을 외계라 한다. 무엇이 우계인가. 만약 사람이 친지나 벗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곧 근심의 고통이 생기는 까닭에 이 근심의 고통으로 인해 모든 악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우계라 한다. 무엇이 치계인가. 사람이 소의 습관[牛戒]이나 개의 습관[狗戒]을 따라하는 것을 치계라 한다. 만약 치계를 완성하면 곧 소나 개가 되고, 만약 또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곧 지옥에 떨어진다.
무엇이 하인가. 상번뇌(上煩惱)ㆍ상상(上上)번뇌ㆍ대(大)번뇌에 시달리는 것으로 부지족(不知足)에 물드는 것을 하계라 한다. 무엇이 중인가. 세번뇌(細煩惱)에 시달리는 것으로 지족에 물드는 것을 중계라 한다. 무엇이 상인가. 시달리는 바가 없이 지족에 물드는 것을 상계라 한다. 하계가 원만하게 갖추어지면 사람으로 하여금 구족케 하고, 중계가 원만히 갖추어지면 하늘로 하여금 구족케 하고, 상계가 원만히 갖추어지면 해탈을 얻게 한다.
무엇이 퇴분인가. 도의 장애를 없애지 않고 정진을 떠난 사람이 알면서 고의로 범하고는 범하고 나서 감추는 것, 이것을 퇴분이라 한다. 무엇이 주분인가. 계를 성취하여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寂見)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주분을 성취하는 것이다. 계ㆍ정을 원만히 이루어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승분을 성취하는 것이다. 계ㆍ정을 원만히 성취하여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을 일으킴으로써 달분을 성취한다.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성계(性戒)ㆍ행계(行戒)ㆍ법지계(法志戒)ㆍ초인계(初因戒)이다.
028_1012_c_22L復次戒有四種,謂性戒、行戒、法志戒、初因戒。
028_1013_a_02L무엇이 성계인가. 울단월계16)를 성계라 한다. 무엇이 행계인가. 성족(姓族)ㆍ국토ㆍ외도 등의 법과 같은 것을 행계라 한다. 무엇이 법지계인가. 보살이 입태(入胎)하는 계, 이것이 법지계이다. 무엇이 초인계인가. 보살 및 마하가섭의 계 이것을 초인계라 한다.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계(戒)ㆍ계집(戒集)ㆍ계멸(戒滅)ㆍ계멸도구족(戒滅道具足)이다.
028_1013_a_04L復次戒有四種,戒戒、集戒、滅戒、滅道具足。
무엇이 계인가. 계에 두 종류가 있으니, 선계(善戒)와 불선계(不善戒)이다. 무엇이 계집인가. 선심은 선계를 모으고 불선심은 불선계를 모으는 것이다. 무엇이 멸계인가. 선계를 얻어 불선계를 없애고, 아라한을 얻어 선계를 없애는 것이다. 무엇이 멸도구족계인가. 4정근17)이니, 이것을 멸도구족계라 한다. 이와 같이 4법을 분별ㆍ요해하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진지계(眞持戒)가 아닌 것을 정근이라 한다.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바라제목차위의계(波羅提木叉威儀戒)ㆍ명청정계(命淸淨戒)ㆍ근위의계(根威儀戒)ㆍ연수계(緣修戒)이다.
028_1013_a_12L復次戒有四種:波羅提木叉威儀戒、命淸淨戒、根威儀戒、緣修戒。
무엇이 바라제목차위의계인가.
云何波羅提木叉威儀戒?
여기에서 비구는 바라제목차 위의의 보호 아래 머물면서 행(行)과 행처(行處)를 구족하고, 미세한 죄[細罪]까지 두려워하며, 배워야 할 계를 올바로 수학한다.
028_1013_a_14L於此比丘波羅提木叉威儀所覆住行,行處具足,畏於細罪,正受學可學戒。
“여기”란 이 스승의 법에 있어서이다. “비구”는 범부의 선(善)을 가진 자, 또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부동법(不動法)을 가진 자이다. “바라제목차”란 계(戒)요, 이것은 기(起)요, 이것은 초(初)요, 이것은 행(行)이요, 이것은 호(護)요, 이것은 위의(威儀)요, 이것은 탈(脫)이요, 이것은 무박(無縛)이다. 이것은 모든 법에 걸친 것으로 선법을 올바로 받는 것을 바라제목차의 뜻이라 한다.
028_1013_b_02L만약 어떤 비구가 어떤 다른 사람에게 지팡이를 보시하거나 꽃과 과일을 보시하거나 양지(楊枝)와 조욕(澡浴)을 보시하거나 아름답고 추한 것으로 유혹하거나 희롱하고 아첨하며 잘난 체하거나 함부로 사람을 내쫓거나 널리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면, 이와 같은 행위들은 부처님께서 제제하신 것이니 이른바 사명(邪命)ㆍ자활(自活)이다. 이것은 비행이 된다.
만약 어떤 비구가 깔보는 교만한 마음으로 승가에 나아가 대덕을 공격해 함부로 말하면서 자신을 앞세우거나, 혹은 기대거나 걸어가 먼저 높은 자리에 앉고 대덕은 아래로 밀어내거나, 혹은 앉으면서 큰 소리를 내어 조화를 깨거나 어깨를 흔들며 농담을 하거나, 상좌가 맨발로 다니는데 자신은 가죽신을 신거나 연로한 대덕들도 낮은 길로 다니는데 자신은 높은 길로 다니거나, 갖가지 다른 인연으로 서로를 업신여기고 괴롭히거나, 혹은 자신의 잘난 점을 상대의 부족한 점과 비교하거나 열등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추대하거나, 혹은 욕실에서 땔감을 모조리 때면서 문을 닫고 누구에게도 자문을 구하지 않거나, 혹은 물가에 가자마자 스스로 먼저 뛰어들어 몸단장을 하고 물장구를 치는 등 온갖 비루한 상(相)을 보인다면, 만약 남의 집에 들어갔을 때 앞뒤를 벗어나 가고 앉음에 차례가 없거나, 은밀한 곳에서 여인이나 모든 동녀를 희롱하고 그 머리를 만진다면, 이와 같은 과실을 몸의 비행이라 한다.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음에 경외하는 것이 없어 존숙과 명망 있는 이들에게 묻지도 않고 문득 스스로 법을 설하거나 바라제목차를 설하거나 어깨를 흔들며 말하거나, 혹은 남의 집에 들어가 여인을 응시하며 “성이 무엇이냐?”고 묻고 “먹을 것이 있는가. 있다면 나에게 내어라. 나는 음식을 얻고자 한다”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말은 입의 비행이 된다. 계를 범한 일체 행위를 비행이라 한다.
028_1013_c_02L무엇이 행인가. 비행의 반대이다. 또한 비구가 공경과 참회를 갖추고, 위의를 성취하여 조금의 부족함도 없고, 모든 근을 거두고 보호해 음식을 조절할 수 있고, 초야와 후야에는 잠든 적이 없고, 지혜를 성취해 욕심을 줄여 만족할 줄 알고, 세속의 의무를 벗어나 용맹심을 일으키고, 동학(同學)에게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깊이 일으키는 것, 이것을 행이라 한다.
만약 어떤 비구가 음녀의 방사[婬含]ㆍ과부의 방사[寡婦舍]ㆍ처녀의 방사[處女舍]ㆍ불남18)의 방사[不男舍]ㆍ비구니의 방사[比丘尼舍] 및 모든 술집에 들어가거나, 국왕ㆍ대신ㆍ외도의 사문ㆍ법답지 못한 벗을 가까이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들은 믿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 늘 4중에게 요익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꺼려해야 마땅하다. 이것을 비행처라 한다. 부처님께서 “비구가 비범행처로 갔다고 하자. 비범행처로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색을 매매하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에 견주어 행처를 알 수 있다. 또 세 종류의 행처가 있으니, 의행처(依行處)ㆍ수호행처(守護行處)ㆍ계박행처(繫縛行處)이다.
028_1013_c_11L行處可知。復次三種行處:依行處、守護行處、繫縛行處。
무엇이 의행처인가.
云何依行處?
10처의 공덕을 성취한 선우(善友)를 말한다. 이 공덕에 의지하여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고, 만약 이미 들은 것이라면 듣고 나서 그것이 증장하여 의혹을 끊어 없애고 정견으로 청백하여 능히 법에 따라서 배우고 신심 용맹케 되는 계문시혜(戒聞施慧)로써 생각마다 증장케 된다. 이것을 의행처라 한다.
만약 어떤 비구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거나 마을을 지나야만 한다면 땅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심인(尋仞)을 넘지 않고, 위용이 정숙하여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코끼리ㆍ말ㆍ마차 및 남녀의 나들이 모임을 쳐다보지 않고, 궁제(官第)ㆍ항맥(巷陌)을 쳐다보지 않고, 올려다보거나 4방을 둘러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을 수호행처라 한다.
028_1014_a_02L“미세한 죄[細罪]까지 두려워한다”라는 것은 “나는 배운 바를 완수했기 때문에 감히 짓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를 미세한 죄까지 두려워하는 것이라 한다. 또 설이 있다. 만약 불선심을 일으키면 이것을 미과(微過)라 한다. 이 미과에서 멀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과환(過患)을 보고 두려워하며 출리를 보는 이것을 미과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라 한다.
이득이 있는 자를 의지해 법을 설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넓어질 수가 없다. 이것을 상을 보이는 것이라 한다.
028_1014_a_22L依有利者而爲說法,要利爲己心不能普,此謂示相。
028_1014_b_02L 진매로써 상을 보이는 것이란 남을 꾸짖어 두렵게 하거나, 있지도 않은 모습을 상정해 헐뜯거나, 때려 사람을 무섭게 하여 이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매로써 상을 보이는 것이라 한다.
028_1014_a_24L嗔罵示相者,或罵他令畏、或空相毀薄、或加打觸怖人要利,此謂嗔罵示相。
무엇이 보시[施]로써 보시를 바라는 것인가. 좋아서 가볍게 보시를 한 뒤 곧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시로써 보시를 바라는 것이라 한다. 이런 모든 악을 사명(邪命)이라 한다.
028_1014_b_03L云何以施望施者?好爲輕施輒要厚答,此謂以施望施。以是諸惡,謂爲邪命。
또 사명이 있다. 지팡이를 보시하거나, 꽃과 과일을 보시하거나, 양지(楊枝)와 조욕(澡浴)을 보시하거나, 점을 보고 해몽을 하거나, 점성술을 하거나, 새나 짐승의 소리 등의 업을 잘 풀이하거나, 길흉사에 쫓아다니거나, 추악한 말로 대중을 해산시키거나, 꽃을 태우며 불을 섬기거나, 상단을 꾸려 여행하면서 물건을 판매하거나, 군대를 거느리고 무기를 모으는 이와 같은 갖가지 일들을 사명이라 한다. 만약 이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청정계라 한다.
【답】 견(見)ㆍ문(聞)ㆍ각(覺)ㆍ지(知)ㆍ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에 번뇌가 서로 달라 불더라도 곧 수지하여 범하지 않는 것을 수호근위의계라 한다.
028_1014_b_11L答:於見聞覺知色聲香味觸法煩惱相著,及受持不犯,此謂守護根威儀戒。
이 수호근계는 9행(行)으로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이니, 악으로 상(相)을 삼아 모든 근을 끊기 때문이며, 그것을 대치하여 작의하지 않기 때문이며,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일처럼 끝내 잠시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난타(難陀)를 보는 것처럼 위의로써 하기 때문이며, 악심을 조복하기 때문이며, 정상심(定相心)에서 자재하기 때문이며, 근을 수호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멀리 떠나기 때문이며, 근을 수호하면 사람들이 화합하기 때문이다.
8행이란 첫째 험악한 행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거만한 행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둘째 과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장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셋째 이 몸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하는 것, 넷째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 다섯째 범행을 섭수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 여섯째 “음식은 예전의 병을 없애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고 늘 생각하는 것, 일곱째 마땅히 적은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 여덟째 과실이나 탐욕 없이 생활하는 것이다.
028_1014_c_02L【답】 “나는 음식을 탐해 용맹하고 건강해 져서 험악하게 행동하고 겁주는 시늉을 하고 서로 싸우고 앞 다퉈 달려가리라”고 하는 것을 험악한 행동이라 한다. (거만한 행동이란) 성난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듯이 교만하게 자신을 높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과장과 장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을 살찌우고 얼굴을 기름지게 하여 사람들이 사랑하고 좋아해 애정이 끝없게 하려고 한다면 이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다.
이 몸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보호할 목적이란, 바퀴통에는 반드시 기름칠을 해야 하듯이 몸의 안주를 탐하는 것이다. 갈증과 굶주림을 없앤다는 것은 항상 조금씩만 먹는 것이니, 이와 같은 수행은 종기에 약을 바르는 것과 같다. 범행을 섭수한다는 것은 적은 음식의 힘에 의지하여 즐거이 성도(聖道)를 얻는 것이니, 이와 같은 수행은 자식을 먹는 생각[食子想]을 하는 것과 같다. 예전의 병을 없애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습하는 것은 탕약(湯藥)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적은 것으로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은 적은 공덕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안정시키는 것이니,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처럼 항상 익히고 행하여야 한다. 과실이 없다는 것은 적은 것으로 스스로 안주하며 이와 같이 수행하여 몸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찬탄하는 바이다. 따라서 과실 없이 머문다고 하였다. 만약 음식 조절이 적당하다면 절대로 해태하지 않으며, 초야ㆍ중야ㆍ후야에도 잠들지 않고 안온을 성취한다. 이와 같이 이 8행으로써 관찰하고, 수행하고, 걸식하면서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이 4관을 줄이면 세 가지가 되니, 즉 단(斷)ㆍ이변득중(二邊得中)ㆍ구족(具足)이다. 단관(斷觀)으로써 욕(欲)ㆍ락(樂)ㆍ착(著)을 끊으니, 소위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고 예전의 병을 끊고 새로운 병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 이 관으로써 몸의 고단함에 대한 집착을 끊는다. 나머지 중관과 구족관도 마땅히 수행해야 한다.
또 두 종류의 수용이 있으니, 소위 예오수용(穢汚受用)과 청백수용(淸白受用)이다. 무엇이 예오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관찰하지는 못하는 것을 예오라 한다. 무엇이 청백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관찰하고 알아 스스로 조절하고 염오상(厭惡想)을 갖춘 것을 청백이라 한다. 청백인 까닭에 항상 4사(事)를 수습해야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수행사사계(修行四事戒)라 한다.
028_1015_b_02L여기에서 율의계(律儀戒)는 깊은 신심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고, 명청정계(命淸淨戒)는 깊은 정진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며, 근위의계(根威儀戒)는 깊은 신심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고, 수행사사계(修行四事戒)는 깊은 지혜로 마땅히 채워야 한다. 여기에서 명청정계는 율의를 따른다. 왜냐하면, 수명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일을 끊어 안온한 자는 행하는 바에서 신업ㆍ구업의 위의를 얻기 때문이다.
이 두 종류의 계는 근위의를 따른다. 왜냐하면 선에서 마음을 수호함으로써 신업ㆍ구업을 잘 수호하기 때문이다. 수행사사가 바로 근위의이다. 왜냐하면, 이미 집상의처(集相依處)를 알고 거슬리고 싫어하여 정념(正念)하고 정정(正定)하기 때문이니, “만약 어떤 비구가 능히 췌식(揣食:段食)을 알고 나아가 5욕을 안다면 ……”이라 하신 이런 세존의 말씀과 같다. 이 율의 및 명청정을 구족하는 것은 계음(戒陰)에 포섭되는 것이고, 근율의계는 정음(定陰)에 포섭되는 것이며, 수행사사계는 혜음(慧陰)에 포섭되는 것이다.
만약 비구가 처음으로 선법(禪法)을 받아 7취 가운데서 자신을 관하여 만약 바라이를 범한 바가 있다면 비구법을 끊고 불구족계에 머문다. 만약 구족계에 머문다면 마땅히 승법(勝法)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선사(先師)가 설한 바로서, 만약 승가바시사22)를 범한 것을 보면 중사(衆事)로써 참회하여야 한다. 만약 다른 죄를 범한 것을 보면 그 범한 것에 대해 한 사람에게 참회하여야 한다.
만약 사명(邪命)을 범한 것을 보면 그 범한 것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참회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참회하고 나서는 “나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보고 이와 같이 수지한다. 근위의 및 수행사사를 범했을 경우에도 “나는 다시는 짓지 않는다”고 하고 만약 수지한다면 마땅히 미래에 훌륭하고 뛰어난 위의를 얻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와 같이 청정계를 따라 자신의 신업과 구업에 있어서 지어야 할 것을 현재에 짓고, 이런 저런 것을 관하여 선을 짓고 악을 없애야 하며,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관하여 청정계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자라면 계를 청정히 할 것이다.
028_1015_c_02L상응과 모든 번뇌의 불기(不起)ㆍ퇴회(退悔)가 이루어지며 정(定)이 원만히 이루어진 것을 청정상이라 한다.
028_1015_c_02L成相應,及諸煩惱不起退悔,得定成滿,謂淸淨相戒。
계는 어느 정도의 행에 머무는 것인가.
幾行住者?
두 가지에 계는 머문다. 첫째는 계를 범하는 과환(過患)을 칭량(稱量)하는 것이고, 둘째는 계의 공덕을 칭량하는 것이다.
028_1015_c_04L以二戒住:一稱量犯戒過患、二稱量戒功德。
무엇이 과환을 칭량하는 것인가.
028_1015_c_05L何等稱量過患?
만약 사람이 계를 범하면 비공덕을 이루고 모든 악처를 이루고 4중(衆)을 두려워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심하고 계를 지키는 자를 기파하게 되어 가히 선(禪)을 가르칠 수 없고, 천인이 천하고 더럽게 여기며, 대중으로부터 미움과 천시를 받는다. 범한 계를 생각하여 사람이 지계(持戒)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보아도 마음으로 깔보고 믿지 않으며, 4중 가운데에서 매일 분쟁(忿諍)을 일으키고, 자신의 친지와 벗들에게 많은 혐오와 원망을 일으키며, 계를 지키는 사람들을 등지고 나쁜 붕당을 이룬다. 다시는 수승한 정법(定法)을 얻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만약 이미 죄를 지었다면 부끄러움이 뒤따라 생겨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도둑이 감옥에 갇힌 것과 같고, 마음으로 성스러운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전다라(旃陀羅)23)가 왕위에 욕심이 없는 것과 같으며, 그에게 문혜(聞慧)와 요설(樂說)의 공덕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는 것이 똥으로 피운 불과 같고, 여의치 못한 곳에서 살다가 죽을 때 헛소리를 하고 정신을 잃으면 신(神)이 악도로 이끈다.
028_1016_a_02L이와 같은 과실을 가히 칭량하여야 한다. 만약 이 악을 변화시켜 계의 공덕을 이루면 또한 가히 칭량할 수 있다. 이와 갈이 칭량하면 그 계를 범한 자는 마음의 거친 뜻이 꺾이고 욕정이 모조리 물러나 흩어지게 되며, 그 계를 지키는 자는 오로지 더욱 정진하고 믿음과 공경을 배로 일으켜 정진하는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공경하는 사람이 된다. 일심으로 계를 보호하기를 개미가 알을 지키듯이 하고, 검정소가 그 꼬리를 사랑하듯이 하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하고, 하나 남은 눈을 지키듯이 하고, 무당이 몸을 지키듯이 하고, 가난한 자가 보물을 지키듯이 하고, 선장이 배를 지키듯이 하라. 내가 닦는 계를 이런 어떤 보호보다도 더 공경하고 보호해야만 한다.
2)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심성을 가려 선법(善法)이 발생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개(蓋)라 한다.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회개(掉悔蓋)ㆍ의법개(疑法蓋)를 5개라 한다.
3)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결(結)이라 한다. 여기에 3결ㆍ5결ㆍ9결, 오하분결(五下分結)ㆍ오상분결(五上分結) 등의 구별이 있다.
4)의(猗)는 심소(心所)의 하나로 경안(輕安)이라고도 한다.
5)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6진의 경계를 따라 일어나 마음을 고달프게 하므로 번뇌를 진로라 한다.
6)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번뇌는 포승줄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얽어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므로 전이라 한다. 3전ㆍ8전ㆍ10전 등의 구별이 있다.
7)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마음을 제멋대로 부려 악업을 짓게 하므로 사라 한다. 결사(結使)라고도 한다.
8)춤추듯 뛴다는 뜻이다.
9)마음을 덮는 다섯 가지 번뇌 혹은 장애로, 탐냄ㆍ분함ㆍ수면상태 같은 무지몽매함ㆍ조급하고 답답한 상태ㆍ의심을 말한다. 한역어로 탐욕개(貪慾蓋)ㆍ진에개(瞋恣蓋)ㆍ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ㆍ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ㆍ의개(疑蓋)라 한다.
10)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Akāsânan͂caâyatan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1)식무변처정(識無變處定, Vin͂n͂anan͂câyat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2)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Akin͂can͂n͂âytan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3)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ṣa)란 비구ㆍ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율ㆍ규정을 조목조목 설명한 것이다.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에 각각 차이가 있다.
14)일곱 부류의 불제자, 즉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말한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15)식차마니(式叉摩尼)는 Sikṡamānā(범)의 음역으로 식차마나니(式叉摩那尼)ㆍ식차마나(式叉摩那)라고도 하며, 학법녀(學法女)ㆍ정학녀(正學女)ㆍ학계녀(學戒女)로 의역하기도 한다. 사미니의 과정을 거친 후 정식으로 비구니계를 받기 전에 2년 동안 4근본(根本)ㆍ6법(法) 등의 행법(行法)을 수련시키고, 구족계를 받을 만한가를 시험하며, 또 임신 여부를 판단하는 시기이다.
16)울단월(鬱單越)은 Uttarāvati의 음역이다. Kuru인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uttarakuru주(洲)에 천연의 낙원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연히 허물을 범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의 계, 즉 성계(性戒)는 이 주에 있는 계(실은 계 없는 계)라고 전해진다.
17)4정근(正勤, Sammāpadhāna)은 4正斷이라고도 한다. 이미 생긴 악은 제거하기에 힘쓰고, 아직 생하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힘쓰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힘쓰고, 이미 생긴 선은 증장시키도록 힘쓰는 네 가지를 말한다.
18)불남(不男)은 비남(非男)이라고도 한다. 성기능을 상실한 남자를 말한다.
19)불제자를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일곱 부류로 분류한 것이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이고,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20)4사(事)는 생활필수품인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ㆍ탕약(湯藥)을 말한다. 또한 이런 물품들을 보시 받아 사용하는 것을 4사(事)라 하기도 한다.
21)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징표들, 즉 성인(聖人)의 표상을 말한다.
22)Saṃghȃvaṣesa의 음역이며, 승잔僧殘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이 죄를 범할 경우 일정기간 승가와 따로 머물며 근신한 뒤 승가로 복귀할 것을 허락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