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공심계(共心界)인가. 법 중에 마음을 따라 전개하여 마음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를 공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공심계인가. 법 중에 마음을 따라 전개하지 않으며 마음과 함께 생하지 않고 함께 머물지 않으며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불공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업상응계(業相應界)인가. 법계 중 사(思)에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업상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업상응계인가. 법 중에서 사(思)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비업상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업상응비비업상응계(非業相應非非業相應界)인가. 사(思)이니, 이를 비업상응비비업상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공업계(共業界)인가. 법 중에 업을 따라 전개하여 업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를 공업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공업계인가. 법 중에 업을 따라 전개하지 않아 업과 함께 생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함께 멸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 불공업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계(因界)인가. 법 중에 연(緣)인 것과 법 중에 연이 아니며 과보를 지니는 것과 법 중에 연이 아니며 득과(得果)를 제외한 나머지 선한 과보인 것과 사대(四大) 등이니, 이를 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인계인가. 법 중에 연이 아니며 과보를 지니지 않으며 공업이 아닌 득과이니, 이를 비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식계(識界)인가. 모든 법은 식별된 것으로서 의식이 존재 그대로 식별하는 것이니, 이를 식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식계인가. 식계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법으로서 식별되지 않고 의식이 존재 그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비식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여열반인가. 말하자면 한 비구가 아라한으로서 여러 누(漏)가 다하고 해야 할 바를 끝내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신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고 존재의 번뇌를 다하고 바른 지혜로써 온ㆍ계ㆍ입처를 요해(了解)할 수 있어도, 숙업(宿業)의 연(緣)이 머물러 있는 까닭에 마음으로 여러 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며 뜻에 맞고 맞지 않음이 남아 있으니 이를 유여열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여열반계인가. 말하자면 비구가 오온을 소멸하고 미래의 오온이 다시는 상속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무여열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학계(有學界)인가. 법 중에 성스러우며 무학이 아닌 것이니, 이를 유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학계인가. 법 중에 성스러우며 유학이 아닌 것이니, 이를 무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유학비무학계인가. 법 중에 성스럽지 않은 것이니, 이를 비유학비무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계(報界)인가. 법 중에 취하여진 것 또는 법 중에 선한 과보인 것이니, 이를 보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법계(報法界)인가. 법 중에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보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보비보법계인가. 법 중에 무기이며 나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니,이를 비보비보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계(見斷界)인가. 법 중에 선하지 않으며 사유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견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계(思惟斷界)인가. 법 중에 선하지 않으며 견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사유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견단비사유단계인가. 법 중에 선 또는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견단비사유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인계(見斷因界)인가. 법 중에 봄으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 있으니 이를 견단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인계인가. 법 중에 사유단인 것과 법 중에 사유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니, 이를 사유단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견단비사유단인계인가. 법 중에 선한 것과 법 중에 선한 법의 과보인 것과 법 중에 과보인 것, 그리고 과보도 과보를 지니는 법도 아닌 것이니, 이를 비견단비사유단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계(卑界)인가. 법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계(中界)인가. 무기인 법이니, 이를 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승계(勝界)인가. 선한 법이니, 이를 승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계인가. 선하지 않거나 무기인 법이니, 이를 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계인가. 성스럽지 않으나 선한 법이니, 이를 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승계인가. 성스러우며 무루인 법이니, 이를 승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계(微界)인가. 법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계라고 한다. 다시 추계는 법 중에 욕계에 묶인 것이거나 색계에 묶인 것이거나공무변처에 묶인 것이거나 식무변처에 묶인 것이거나 무소유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계라고 한다. 다시 세계는 법 중에 묶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계인가. 법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도계(度界)인가. 정진 중에서 널리 나아가 이미 건넌 것이니, 이를 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근계(勤界)인가. 근면하게 힘쓰는 계[力勤界]이니, 이를 근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계(持界)인가. 총지(總持)의 지계이니, 이를 지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출계(出界)인가. 출리(出離)의 출계이니, 이를 출계라고 한다.
다시 근계는 말하자면 근면과 정진이다. 어떤 것이 정진인가. 몸과 마음의 분발함ㆍ벗어남ㆍ건넘, 그리고 마음을 써 물러나지 않음이 근면과 정진이니, 이를 근계라고 한다. 다시 지계는 말하자면 염(念)이다. 어떤 것이 염인가. 법을 듣고 익힌 대로 그 법을 간직하고 바로 지니고 머물게 하고 잊지 않고 생각하여 기억하고 기억을 지속시키는 것이니, 이를 지계라고 한다. 다시 출계는 모든 누(漏)를 버림ㆍ갈애의 다함ㆍ멸함ㆍ열반 등이니, 이를 출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단계(斷界)인가. 비구가 나무 사이 또는 비고 한가한 곳[空閑處]에서 여실하게 몸의 행위에 있어 악과 악의 과보와 금생의 과보와 내생의 과보를 관찰하여 몸의 악행을 버리고 몸의 선행을 닦는다. 그리고 여실하게 말과 뜻의 행위에 있어 악과 악의 과보와 금생의 과보와 내생의 과보를 관찰하여 말과 뜻의 악행을 버리고 말과 뜻의 선행을 닦는다. 이것을 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欲界)인가. 아비대지옥(阿鼻大地獄)으로부터 위로 타화자재천에 이르기까지의 세계에 존재하는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속하는 것이니, 이를 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계(色界)인가. 범천(梵天)으로부터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의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속하는 것이니, 이를 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색계(無色界)인가.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으로부터 비상비비상처천에 이르기까지의 수ㆍ상ㆍ행ㆍ식에 속하는 것이니, 이를 무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계인가. 법 중에 색인 것이니, 이를 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색계(非色界)인가. 두 가지 멸(滅)을 제외한 나머지 법계로서 색이 아닌 것이니, 이를 비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멸계(滅界)인가. 두 가지 멸함, 곧 지연멸(智緣滅)과 비지연멸이니, 이를 멸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출리계[三出界]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곧 “세 가지 출리계가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출리계인가. 말하자면 애욕을 벗어나 색(色)에 이르는 것, 색을 벗어나 무색(無色)에 이르는 것, 지은 바와 집기한 바가 멸하는 것이니, 이를 출리(出離)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애욕에서 벗어나 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애욕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이 저 색 중에는 없으니, 이것을 애욕에서 벗어나 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색에서 벗어나 무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색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이 저 무색 중에는 없으니, 이것을 색에서 벗어나 무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지은 바와 집기한 바가 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행(行)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이 저 열반에는 없으니, 이것을 지은 바와 집기한 바가 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을 출리라고 말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세 가지 출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계(過去界)인가. 법이 생하여 이미 소멸한 것이니, 이를 과거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계(未來界)인가. 법이 아직 생하지도 않았고 나타나지도 않은 것이니, 이를 미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계(現在界)인가. 법이 생하여 아직 소멸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현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과거비미래비현재계인가. 법 중에 무위인 것이니, 이를 비과거비미래비현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경계계(過去境界界)인가. 과거를 사유하여 생기는 법이니, 이를 과거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경계계[未來境界界]인가. 미래를 사유하여 생기는 법이니, 이를 미래경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경계계[現在境界界]인가. 현재법을 사유하여 생기는 법이니, 이를 현재경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계인가. 비과거ㆍ비미래ㆍ비현재를 사유하여 생기는 법이니, 이를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계계(欲界繫界)인가. 법 중에 욕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욕계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계계계(色界繫界)인가. 법 중에 색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색계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색계계계(無色界繫界)인가. 법 중에 무색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무색계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계계(不繫界)인가. 법계 중에 성스러우며 무루인 것이니, 이를 불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다섯 출리계[五出界]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곧 “다섯 출리계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말하자면 비구가 애욕을 염할 때 마음이 애욕을 향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9) 머물지 않고 지향하지 않으며, 출리(出離)를 염하고 출리에 마음을 두어 마음의 선함ㆍ지고한 선함ㆍ조화로운 선함을 향하고 즐기고 머물고 지향하고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애욕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일어나며 애욕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떠나서 그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출욕계(出欲界)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성냄을 염할 때 마음이 성냄을 향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지향하지 않으며, 성내는 마음이 없기를 염하고 성냄 없음에 마음을 두어 마음의 선함ㆍ지고한 선함ㆍ조화로운 선함을 향하고 즐기고 머물고 지향하고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성냄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일어나며, 성냄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떠나서 그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출진에계(出瞋恚界)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상해(傷害)를 염하고 상해를 염할 때 마음이 상해를 향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지향하지 않으며, 상해 없기를 염하고 상해 없음에 마음을 두어 마음의 선함ㆍ지고한 선함ㆍ조화로운 선함을 향하고 즐기고 머물고 지향하고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상해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일어나며, 상해를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 그것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떠나서 그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출해계(出害界)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색(色)을 염할 때 마음이 색을 향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지향하지 않으며, 무색을 염하고 무색에 마음을 두어 마음의 선함ㆍ지고한 선함ㆍ조화로운 선함을 향하고 즐기고 머물고 지향하고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색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일어나며, 색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떠나서 그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출색계(出色界)라고 한다.
다시 비구가 자신(自身)을 염할 때 마음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지향하지 않으며, 자신의 소멸을 염하고 자신의 소멸에 마음을 두어 마음의 선함ㆍ지고한 선함ㆍ조화로운 선함을 향하고 즐기고 머물고 지향하고 마음을 닦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일어나며 자신을 연하여 생기는 유루의 불길에 대해 출리하고 해탈하고 떠나서 그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출자신계(出自身界)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다섯 출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섯 출리계[六出界]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여섯 출리계와 같다. 곧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해 말하기를, “비구여, 나는 자심해탈(慈心解脫)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진에로 덮혀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자심해탈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다면, 진에가 마음을 덮는다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진에심을 벗어나 자심해탈을 잘 닦고 많이 배워 무량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해 말하기를, “비구여, 나는 비심해탈(悲心解脫)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의도적인 상해(傷害)로 덮여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 “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비심해탈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다면, 상해가 마음을 덮는다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상해심을 벗어나 비심해탈을 잘 닦고 많이 배워 무량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해 말하기를, “비구여, 나는 희심해탈(喜心解脫)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의도적인 불쾌함으로 덮여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 “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희심해탈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다면, 불쾌함이 마음을 덮는다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불쾌한 마음[不樂心]을 벗어나 희심해탈을 잘 닦고 많이 배워 무량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해 말하기를,“비구여, 나는 사심해탈(捨心解脫)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의도적인 사랑과 미움으로 덮여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 “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사심해탈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다면, 사랑과 미움이 마음을 덮는다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사랑과 미움의 마음[愛恚心]을 벗어나 사심해탈을 잘 닦고 많이 배워 무량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해 말하기를, “비구여, 나는 무상정심해탈(無相定心解脫)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의도적인 상(相)에 대한 기억과 식별로 덮여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 “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무상정심해탈에 친근하여 이를 많이 닦고 익숙하게 하고 습관되게 하고 근신하고 식별하고 잘 정진하였다면, 상에 대한 기억과 식별이 마음을 덮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모든 상(相)을 벗어나 무상정심해탈을 잘 닦고 많이 배워 무량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다시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향하여 말하기를, “비구여, 나는 자아[我] 및 자아에 속한 것[我所]을 멸하였지만 의도적인 의혹의 화살이 있어 마음을 덮고 있다”라고 하면, 그 다른 비구는 그 비구에게 “비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비구여,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자아 및 자아에 속한 것을 멸한다면 의도적인 의혹의 화살이 마음을 덮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세존께서는 ‘비구여, 의혹의 화살을 벗어나아만(我慢)을 단절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꾸짖어야 한다. 이것을 여섯 출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계(地界)인가. 두 가지 지계가 있으니, 안의 지계와 밖의 지계이다. 어떤 것이 안의 지계인가. 몸 안에 있는 딱딱하게 취하여진 뼈ㆍ치아ㆍ(손발톱)10)ㆍ머리카락ㆍ털ㆍ속살갗ㆍ겉피부ㆍ살ㆍ힘줄ㆍ혈관ㆍ지라ㆍ콩팥ㆍ간ㆍ허파ㆍ염통ㆍ(창자)ㆍ위(胃)ㆍ큰 창자ㆍ작은 창자ㆍ큰 배ㆍ작은 배ㆍ(대변), 그리고 이 몸 안에 있는 나머지 딱딱하게 취하여진 것 등이 있으니, 이를 안의 지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밖의 지계인가.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딱딱한 구리ㆍ철ㆍ납ㆍ주석ㆍ흰색 주석ㆍ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옥ㆍ조개ㆍ벽옥ㆍ산호ㆍ돈으로 쓰이는 보배로운 조개 껍질ㆍ구슬ㆍ모래ㆍ돌(흙ㆍ소금ㆍ돌ㆍ쓰레기ㆍ재ㆍ토지)ㆍ풀ㆍ나무ㆍ가지ㆍ잎ㆍ줄기ㆍ마디, 그리고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나머지 딱딱한 것 등이 있으니, 이를 밖의 지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안의 지계와 밖의 지계가 있으니, 이를 지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수계(水界)인가. 두 가지 수계가 있으니, 안의 수계와 밖의 수계이다. 어떤 것이 안의 수계인가. 몸 안에서 취하여진 물 및 기름과 같은 떫고 톡 쏘는 즙ㆍ쓸개 즙ㆍ간 즙ㆍ지방ㆍ골수ㆍ뇌ㆍ지질(脂質)ㆍ산(산)ㆍ눈물ㆍ침ㆍ고름ㆍ피ㆍ소변, 그리고 몸 안에서 취하여진 나머지 습윤한 물기 등이 있으니, 이를 안의 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밖의 수계인가.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수계로서 버터 기름ㆍ생소(生酥)ㆍ꿀ㆍ석밀ㆍ검은 석밀ㆍ젖ㆍ타락ㆍ타락으로 만든 간장ㆍ술ㆍ단술ㆍ꿀 술, 그리고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물 및 기름과 같은 것 등이 있으니, 이를 밖의 수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안의 수계와 밖의 수계가 있으니, 이를 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두 가지 화계가 있으니, 안의 화계와 밖의 화계이다. 어떤 것이 안의 화계(火界)인가. 몸 안에서 취하여진 불 및 열기로서 열, 능히 덥게 만드는 몸의 열, 안의 뜨거움, 또는 복용한 음식물과 음료 등을 삭이는 열, 그리고 몸 안에서 별도로 취하여진 나머지 불기운 등이 있으니, 이를 안의 화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밖의 화계인가.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불 및 열기로서 불의 열기ㆍ태양열ㆍ구슬의 열기ㆍ집의 열기ㆍ담장의 열기ㆍ산의 열기ㆍ곡식의 열기ㆍ풀의 열기ㆍ나무의 열기ㆍ소의 분뇨의 열기, 그리고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나머지 불 및 열기 등이 있으니, 이를 밖의 화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안의 화계와 밖의 화계가 있으니, 이를 화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 두 가지 풍계가 있으니, 안의 풍계와 밖의 풍계이다. 어떤 것이 안의 풍계인가. 몸 안으로 취하여진 바람으로서 윗바람ㆍ아랫바람ㆍ마디에 의지하는 바람ㆍ손발에서 나는 바람ㆍ뼈마디를 돌아다니는 바람ㆍ내쉬고 들이쉬는 호흡의 바람, 그리고 안에서 별도로 취하여진 나머지 바람 등이 있으니, 이를 안의 바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밖의 풍계인가.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바람으로서 동풍ㆍ서풍ㆍ남풍ㆍ북풍ㆍ잡스러운 먼지 바람ㆍ잡스럽지 않은 먼지 바람ㆍ냉풍ㆍ열풍ㆍ검은 바람ㆍ회오리 바람ㆍ땅을 움직이는 바람, 그리고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밖에 존재하는 나머지 바람 등이 있으니, 이를 밖의 바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안의 바람과 밖의 바람이 있으니, 이를 풍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공계(空界)인가. 두 가지 공계가 있으니, 안의 공계와 밖의 공계이다. 어떤 것이 안의 공계인가. 이 몸 안에 있는 공간으로서 취하여진 것이며 사대로 가려지지 않은 것이다. 곧 귀와 코의 구멍ㆍ입의 문ㆍ음식이 지나가는 장소ㆍ음식이 머무는 장소ㆍ음식이 나오는 장소, 그리고 그 외 나머지 이 몸 안에 있는 공간으로서 취하여진 것이며 사대로 가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안의 공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밖의 공계인가. 밖의 공간으로서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사대로 가려지지 않은 것이다. 언덕의 우물ㆍ병ㆍ항아리ㆍ구덩이ㆍ골짜기, 그리고 그 외 나머지 밖의 공간으로서 취하여진 것이 아니며 사대로 가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밖의 공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안의 공계와 밖의 공계가 있으니, 이를 공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희계(喜界)인가. 심락수(心樂受) 또는 희근(喜根)이니, 이를 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우계(憂界)인가. 심고수(心苦受) 또는 고근(苦根)이니, 이를 우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계(捨界)인가. 몸과 마음의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곧 안촉의 불고불락수, 이촉ㆍ비촉ㆍ설촉ㆍ신촉11)의 불고불락수, 또는 사근(捨根)이니, 이를 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명계(無明界)인가. 어리석은 선하지 않은 근이니, 이를 무명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欲界)인가. 애욕 또는 애욕의 계이니, 이를 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에계(恚界)인가. 성냄 또는 성냄의 계이니, 이를 에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해계(害界)인가. 상해 또는 상해의 계이니, 이를 해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인가. 애욕의 애욕ㆍ애욕의 기름ㆍ애욕의 갈애ㆍ애욕의 기쁨ㆍ애욕의 가지ㆍ애욕의 삼매ㆍ애욕의 즐김ㆍ애욕의 갈증ㆍ애욕의 뜨거움ㆍ애욕의 그물 등이니, 이를 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에계인가. 중생을 속이고 괴롭히며 희망을 침해하고 능멸하였으되 아직 명근(命根)을 단절시키지는 않은 것이니, 이를 에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해계인가. 중생을 속이고 상해를 입히며 희망을 침해하고 능멸하여 명근마저 단절시킨 것이니, 이를 해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인가. 기쁨과 탐착을 일으키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런 모습이고 욕염(欲染)이 상속하는 다섯 가지 욕심의 대상이 있으니, 곧 눈으로 식별할 색으로서 기쁨과 탐착을 일으키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런 모습이고 욕염이 상속하는 것, 그리고 귀ㆍ코ㆍ혀ㆍ몸으로 식별할 촉감으로서 기쁨과 탐착을 일으키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런 모습이고 욕염이 상속하는 것, 그리고 남의 애욕ㆍ남의 봉읍(封邑)ㆍ남의 부녀ㆍ남의 물건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ㆍ탐욕을 지님ㆍ궁극적인 탐욕ㆍ상응하는 욕망ㆍ사랑하는 마음ㆍ욕심과 염착ㆍ증대된 욕심과 염착ㆍ궁극적인 욕심과 염착, 그리고 나머지 탐욕을 일으킬 만한 법에 대한 탐욕ㆍ증대된 탐욕ㆍ궁극적인 탐욕ㆍ욕망ㆍ사랑ㆍ욕심과 염착ㆍ증대된 욕심과 염착ㆍ궁극적인 욕심과 염착 등이 있으니, 이를 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에계인가. 적은 중생 또는 많은 중생이 있으니, 이 중생에게 상해를 입히고결박하고 여러 가지 괴로움을 끼치는 것과 성냄ㆍ증대된 성냄ㆍ궁극적인 성냄ㆍ상응하는 분노ㆍ증오ㆍ괴롭히는 마음ㆍ미워하고 비꼼ㆍ인자하지 않음ㆍ연민하지 않음ㆍ이익을 꾀하지 않음 등이 있으니, 이를 에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광계(光界)인가. 색의 빛과 지혜의 빛이다. 어떤 것이 색의 빛인가. 불의 빛ㆍ태양의 빛ㆍ달의 빛ㆍ구슬의 빛ㆍ별의 빛ㆍ부처님의 빛ㆍ중생의 빛, 그리고 나머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의 밝음과 밝게 비춤이니, 이를 색의 빛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혜의 빛[慧光]인가. 세 가지 지혜, 곧 사혜(思慧)ㆍ문혜(聞慧)ㆍ수혜(修慧)이니, 이를 지혜의 빛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색의 빛과 지혜의 빛이 있으니, 이를 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공무변처의 정인가. 비구가 모든 색의 생각을 떠나고 진에의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도 사유(思惟)하지 않아 가없는 공무변처를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공무변처의 생인가. 이 정에 친근하여 많이 닦고 배운 까닭에 네 종류의 공무변처의 하늘에 존재하는, 나의 범주에 포섭되는 수ㆍ상ㆍ행ㆍ식이 있으니,이를 공무변처의 생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공무변처정과 이와 같은 공무변처생을, 유위의 공무변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위의 공무변처계인가. 지(智)로써 공무변처계를 단절하여 그것이 단절되었다면 이를 무위의 공무변처계라고 한다. 식무변처계ㆍ무소유처계ㆍ비상비비상처계도 역시 그와 같다.
계업(戒業)ㆍ무계업(無戒業)ㆍ비계비무계업, 몸의 계업[身戒業]ㆍ무계업ㆍ비계비무계업, 말의 계업[口戒業]ㆍ무계업ㆍ비계비무계업, 뜻의 계업[意戒業]ㆍ무계업ㆍ비계비무계업, 선업(善業)ㆍ불선업ㆍ무기업(無記業), 유학업(有學業)ㆍ무학업ㆍ비유학비무학업, 보업(報業)ㆍ보법업(報法業)ㆍ비보비보법업이 있다.
일곱 불선법[七不善法], 일곱 선법[七業法], 여덟 성어[八聖語], 여덟 비성어[非八聖語], 탐욕을 인(因)으로 하는 신업[因貪身業]ㆍ구업ㆍ의업, 성냄을 인으로 하는 신업[因恚身業]ㆍ구업ㆍ의업,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ㆍ구업ㆍ의업,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ㆍ구업ㆍ의업,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ㆍ구업ㆍ의업,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ㆍ구업ㆍ의업이 있다.
십불선업도(十不善業道), 십선업도(十善業道), 십법을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짐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십법을 성취하면 천상에 태어남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이십법을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짐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이십법을 성취하면 천상에 태어남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삼십법을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짐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삼십법을 성취하면 천상에 태어남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사십법을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짐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 사십법을 성취하면 천상에 태어남이 빠른 것이 창 끝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수업(受業)인가. 업 중에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수업(非受業)인가. 업 중에 과보를 지니지 않는 것이니, 이를 비수업이라고 한다.
다시 수업은 업 중에 과보를 지니거나 과보를 지니지 않는 사(思)이니, 이를 수업이라고 한다. 다시 비수업은 업 중에 과보를 지니지 않는 신업(身業)과 구(口業)이니, 이를 비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숙업(熟業)인가. 업 중에 과보를 가까이서 받는 것이니, 이를 숙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숙업(非熟業)인가. 업 중에 과보를 가까이서 받는 것이 아니니, 이를 비숙업이라고 한다.
029_0084_c_07L云何熟業?若業近受報,是名熟業。云何非熟業?若業非近受報,是名非熟業。
어떤 것이 색업(色業)인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니, 이를 색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색업(非色業)인가. 의업(意業)이니, 이를 비색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가견업(可見業)인가. 업 중에 색의 입처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를 가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가견업(不可見業)인가. 업 중에 법의 입처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를 불가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취업(有取業)인가. 업 중에 뛰어남을 지닌 것이니, 이를 유취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취업(無取業)인가. 업 중에 뛰어남을 지니지 않은 것이니, 이를 무취업이라고 한다.
029_0085_a_05L云何有取業?若業有勝,是名有取業。云何無取業?若業無勝,是名無取業。
어떤 것이 유승업(有勝業)인가. 업 중에 취함을 지닌 것이니, 이를 유승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승업(無勝業)인가. 업 중에 취함을 지니지 않은 것이니, 이를 무승업이라고 한다. 다시 어떤 것이 유승업인가. 업 중에 다른 업을 더욱 승묘하고 뛰어난 것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니, 이를 유승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승업인가. 업 중에 다른 업을 더욱 승묘하고 뛰어난 것으로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이니, 이를 무승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심소업(心所業)인가. 업 중에 연(緣)인 것이니, 이를 심소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심소업(非心所業)인가. 업 중에 연이 아닌 것이니, 이를 비심소업이라고 한다.
029_0085_a_21L云何心數業?若業緣,是名心數業。云何非心數業?若業非緣,是名非心數業。
어떤 것이 연업(緣業)인가. 업 중에 심소인 것이니, 이를 연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연업(非緣業)인가.업 중에 심소가 아닌 것이니, 이를 비연업이라고 한다.
029_0085_a_23L云何緣業?若業心數,是名緣業。云何非緣業?若業非心數,是名非緣業。
어떤 것이 공심업(共心業)인가. 업 중에 마음을 따라 전개하여 마음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를 공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공심업(非共心業)인가. 업 중에 마음을 따라 전개하지 않아 마음과 함께 생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함께 멸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 비공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수심전업(隨心轉業)인가. 업 중에 마음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를 수심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수심전업(不隨心轉業)인가. 업 중에 마음과 함께 생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함께 멸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 불수심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공업(共業)인가. 업 중에 업을 따라 전개하여 업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니, 이를 공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공업인가. 업 중에 업을 따라 전개하지 않아 업과 함께 생하지 않고 함께 머물지 않으며 함께 멸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 불공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인업(有因業)인가. 업 중에 단서[緖]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유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서업(有緖業)인가. 업 중에 연을 지니는 것이니, 이를 유서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연업(有緣業)인가. 업 중에 유위인 것이니, 이를 유연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위업(有爲業)인가. 업 중에 연을 지니는 것이니, 이를 유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업(知業)인가. 모든 업은 인지된 것으로서 존재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 이를 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지업인가. 지업이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업으로서 인지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식업(識業)인가. 모든 업은 식별된 것으로서 의식이 존재 그대로 식별하는 것이니, 이를 식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식업인가. 식업이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업으로서 식별되지 않고 의식이 존재 그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식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해업(解業)인가. 모든 업은 이해된 것으로서 존재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 이를 해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해업인가. 해업이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업으로서 이해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해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요지업(了知業)인가. 모든 업은 요지된 것으로서 존재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 이를 요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요지업인가. 요지업이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업으로서 요지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요지업이라고 한다.
029_0085_c_17L云何了業?一切業了如事知見,是名了業。云何非了業?無非了業。
어떤 것이 단지지업(斷智知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단지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단지지업인가. 업 중에 선한 것 또는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단지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단업(斷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단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단업인가. 업 중에 선한 것 또는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단업이라고 한다.
029_0085_c_22L云何斷業?若業不善,是名斷業。云何非斷業?若業善、若無記,是名非斷業。
어떤 것이 수업(修業)인가. 업 중에 선한 것이니, 이를 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수업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 또는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수업이라고 한다.
029_0086_a_01L云何修業?若業善,是名修業。云何不修業?若業不善、無記,是名非修業。
어떤 것이 증업(證業)인가. 모든 법은 증득된 것으로서 존재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 이를 증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증업인가. 증업 아닌 것이 없으나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업으로서 증득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증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계업(戒業)인가. 업 중에 선한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음성ㆍ구절ㆍ언어 등의 말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몸과 말의 계율과 정어ㆍ정업ㆍ정명 및 선한 사(思) 등이니, 이를 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계업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과 선하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음성ㆍ구절ㆍ언어 등의 말의 표시와 무표인 몸과 말의 계율 아닌 것과 불선한 사(思) 등이니, 이를 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몸의 무계업인가. 신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과 선하지 않은 마음으로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인 몸의 계율 아닌 것 등이니, 이를 몸의 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몸의 비계비무계업인가. 신업으로서 무기인 것과 무기심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이니, 이를 몸의 비계비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말의 계업[口戒業]인가. 구업 중에 선한 것과 선한 마음이 일으킨 음성ㆍ구절ㆍ언어 등의 말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말의 계율과 정어ㆍ말의 정명 등이니, 이를 말의 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말의 무계업인가. 구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과 선하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음성ㆍ구절ㆍ언어 등의 말의 표시와 무표인 말의 계율 아닌 것 등이니, 이를 말의 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뜻의 계업[意戒業]인가. 의업 중에 선한 것으로서 선한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니, 이를 뜻의 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뜻의 무계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으로서 선하지 않은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뜻의 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뜻의 비계비무계업인가. 의업 중에 무기인 것으로서 무기심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뜻의 비계비무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선업(善業)인가. 닦아야 할 업이니, 이를 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선업인가. 끊어야 할 업이니, 이를 불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기업(無記業)인가. 업 중에 취하여진 것 또는 업 중에 과보도 과보를 지니는 법도 아닌 것이니, 이를 무기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학업(有學業)인가. 업 중에 성스러우며 무학이 아닌 것이니, 이를 유학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학업인가. 업 중에 성스러우며 유학이 아닌 것이니, 이를 무학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유학비무학업인가. 업 중에 성스럽지 않은 것이니, 이는 비유학비무학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업(報業)인가. 업 중에 취하여진 것 또는 법 중에 선한 과보인 것이니, 이를 보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법업(報法業)인가. 업 중에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보법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보비보법업인가. 업 중에 무기이며 나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비보비보법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업(見斷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사유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견단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업(思惟斷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견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사유단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견단비사유단업인가. 업 중에 선이나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견단비사유단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인업(見斷因業)인가. 업 중에 봄으로 끊어야 할 것과 봄으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니, 이를 견단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인업(思惟斷因業)인가. 업 중에 사유로 끊어야 할 것과 사유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니, 이를 사유단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견단인비사유단인업인가. 업 중에 선한 것 또는 업 중에 선한 법의 과보인 것 또는 업 중에 과보인 것 그리고 과보도 과보를 지니는 법도 아닌 것이니, 이를 비견단인사유단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업(卑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업(中業)인가. 무기인 업이니, 이를 중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승업(勝業)인가.선한 업이니, 이를 승업이라고 한다. 다시 비업은 선하지 않거나 무기인 업이니, 이를 비업이라고 한다. 다시 중업은 성스럽지는 않으나 선한 업이니, 이를 중업이라고 한다. 다시 승업은 성스러우며 무루인 법이니, 이를 승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추업(麁業)인가. 업 중에 욕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업(細業)인가. 업 중에 색계에 묶인 것이거나 묶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업(微業)인가. 업 중에 무색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업이라고 한다. 다시 추업은 업 중에 욕계에 묶인 것이거나 색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업이라고 한다.
다시 세업은 업 중에 공무변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업이라고 한다. 다시 세업은 업 중에 공무변처에 묶인 것이나 식무변처에 묶인 것이거나 무소유처에 묶인 것 또는 묶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세업이라고 한다. 다시 미업은 업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업이라고 한다.
다시 추업은 업 중에 욕계에 묶인 것이거나 색계에 묶인 것이거나 공무변처에 묶인 것이거나 식무변처에 묶인 것이거나 무소유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업이라고 한다. 다시 세업은 업 중에 묶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세업이라고 한다. 다시 미업은 업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수낙업(受樂業)21)인가. 업 중에 낙수(樂受)와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수낙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수고업(受苦業)인가. 업 중에 고수(苦受)와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수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수사업(受捨業)인가. 업 중에 불고불락수와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수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낙수업(樂受業)인가. 업 중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를 낙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고수업(苦受業)인가. 업 중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를 고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수업(捨受業)인가. 업 중에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과보를 받는 것이니,이를 사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낙수업인가. 고수업과 불고불락수의 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으로서 선하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낙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고수업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고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고불락수업인가. 낙수업과 고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이니, 이를 불고불락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희처업(喜處業)인가. 업이 드러난 뒤에야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희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우처업(憂處業)인가. 업이 드러난 뒤에야 근심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우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처업(捨處業)인가. 업이 드러난 뒤에야 평정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를 사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희처업이란 사처업을 제외한 나머지 처업(處業)으로서 선하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희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우처업이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우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사처업이란 희처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으로서 선하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사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희처업이란 업 중에 선하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희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우처업이란 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우처업이라고 한다. 다시 비희처비우처업(非喜處非憂處業)이란 희처업과 우처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이니, 이를 비희처비우처의 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생수업(生受業)인가. 업 중에 나에게서 생한 것으로서 어른 또는 아이로서 지은 바가 있어 그 업을 성취하매 다음 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를 생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후수업(後受業)인가. 업 중에 나에게서 생한 것으로 어른 또는 아이로서 지은 바가 있어 그 업을 성취하매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생에서 그 과보를 받거나 혹은 그 뒤의 여러 생이 지나서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를 후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락업(與樂業)인가. 업 중에 즐거운 결과를 주는 것이니, 이를 여락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고업(與苦業)인가. 업 중에 괴로운 결과를 주는 것이니, 이를 여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여락비여고업(非與樂非與苦業)인가. 즐거운 결과와 괴로운 결과를 주는 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이니, 이를 비여락비여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낙과업(樂果業)인가. 업 중에 선하여 즐거운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낙과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고과업(苦果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고과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락과비고과업(非樂果非苦果業)인가. 낙과업과 고과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이니, 이를 비락과비고과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낙보업(樂報業)인가. 즐거운 결과로서의 업이니, 이를 낙보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고보업(苦報業)인가. 괴로운 결과로서의 업이니, 이를 고보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락비고보업(非樂非苦報業)인가. 낙보업과 고보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이니, 이를 비락비고보의업(非樂非苦報業)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업인가. 업이 생하여 이미 소멸한 것이니, 이를 과거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업인가. 업이 아직 생하지도 않았고 나타나지도 않은 것이니, 이를 미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업인가. 업이 생하여 아직 소멸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현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경계업(過去境界業)인가. 과거법을 사유하여 생기는 업이니, 이를 과거경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경계업인가. 미래법을 사유하여 생기는 업이니, 이를 미래경계의 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경계업인가. 현재법을 사유하여 생기는 업이니, 이를 현재 경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업인가. 비과거ㆍ비미래ㆍ비현재의 법을 사유하여 생기는 업이니, 이를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계업(欲界繫業)인가. 업 중에 욕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욕계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계계업인가. 업 중에 색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색계계업(色界繫業)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색계계업인가. 업 중에 무색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무색계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계업(不繫業)인가. 업 중에 성스러우며 무루인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불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업[四業]인가. 검은 업과 검은 과보, 흰 업과 흰 과보, 흑백 업과 흑백 과보,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이다. 어떤 것이 검은 업과 검은 과보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검은 업과 검은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흰 업과 흰 과보인가. 업 중에 선하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흰 업과 흰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흑백 업과 흑백 과보인가. 하나의 업이 검고 동시에 희면서 검고 동시에 흰 과보를 지니는 그런 것은 결코 없다. 그가 검은 과보를 지니는 검은 업을 짓기도 하고 흰 업을 지니는 흰 과보를 짓기도 하니, 이를 흑백 업과 흑백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인가. 성스러우며 과보를 지니는 것으로서 번뇌를 단절한 것이니, 이를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흑백 업과 흑백 과보인가. 하나의 업이 검고 동시에 희면서 검고 동시에 흰 과보를 지니는 그런 업은 결코 없다. 그의 검은 업과 검은 과보에서의 업과 과보 그리고 흰 업과 흰 과보에서 업과 과보가 있으니, 이를 흑백 업과 흑백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의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인가. 법 중에 성스러우며 과보를 지니는 것으로서 번뇌를 단절한 것이니, 이를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검은 업과 검은 과보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22) 곧 “나는 스스로 바른 지혜로 네 가지 업을 말하니, 넷이란 어떤 것들인가. 검은 업과 검은 과보, 흰 업과 흰 과보, 흑백 업과 흑백 과보, 그리고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과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로서 능히 업을 다하는 업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검은 업과 검은 과보인가. 어떤 사람이 몸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말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뜻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여 청정하지 못한 업을 성취한다. 그는 몸과 말과 뜻으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한 뒤에 청정하지 못한 업을 성취하여 청정하지 못한 곳에 태어난다.
청정하지 못한 곳에 태어나서 청정하지 못한 촉(觸)에 부딪치고, 청정하지 못한 촉에 부딪친 뒤에 청정하지 못한 느낌을 감수한다. 그 느낌은 온통 괴로움으로 끊어지며 온통 괴로움의 뜨거움을 느끼는 것이며 온통 선하지 않으며, 온통 사랑스럽지도 기뻐할 만하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이며, 온통 증오할 만한 것이어서 천신과 인간은 결코 희망하지 않는 것이니, 지옥의 중생과 같다. 이 중생은 다시 태어나서라도 지었던 업에 따라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는 그러한 촉에 부딪치게 되니, 나는 그 중생의 업이 주는 괴로움에 입각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를 검은 업과 검은 과보라고 한다.
청정한 곳에 태어나서 청정한 촉(觸)에 부딪치고, 청정한 촉에 부딪친 뒤에 청정한 느낌을 감수한다. 그 느낌은 온통 즐거움이며 사랑스러움이며 기뻐할 만하며 뜻에 맞는 것이며, 결코 증오할 수 없는 것이어서 천신과 인간이 희망하는 것이니, 변정천(遍淨天)의 중생과 같다. 이 중생은 다시 태어나더라도 지었던 업에 따라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는 그러한 촉에 부딪치게 되니, 나는 그 중생의 업이 주는 즐거움에 입각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를 흰 업과 흰 과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흑백 업과 흑백 과보인가. 어떤 사람이 몸으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말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뜻으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하고 정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업을 성취한다. 그는 몸과 말과 뜻으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행위를 한 뒤에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업을 성취하여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곳에 태어난다.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업에 태어난 뒤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촉(觸)에 부딪치고,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촉에 부딪친 뒤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느낌을 감수한다. 그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섞어 감수하는 것이니, 사람과 같고 천신과 같다. 이 중생은 다시 태어나도 그 업에 따라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는 그러한 촉에 부딪친다. 나는 그 중생의 업이 주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에 입각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를 흑백 업과 흑백 과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며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로서 업을 능히 다하는 업인가. 검은 업과 검은 과보를 단절하는 사(思), 또는 흰 업과 흰 과보를 단절하는 사, 또는 흑백 업과 흑백 과보를 단절하는 사가 있으니, 이를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며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로서 업을 능히 다하는 업이라고 한다. 이들을 이름하여 네 가지 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수업[四受業]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23) 곧 “네 가지 수업(受業)이 있다. 넷이란 어떤 것들인가. 어떤 업은 현재에도 괴로우며 나중에도 괴로운 과보를 지닌다. 어떤 업은 현재에는 즐겁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과보를 지닌다. 어떤 업은 현재에는 괴롭지만 나중에는 즐거운 과보를 지닌다. 어떤 업은 현재에도 즐거우며나중에도 즐거운 과보를 지닌다.
그러면 어떤 업이 현재에도 괴로우며 나중에도 괴로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근심과 괴로움을 참아가며 살생을 한 연고[緣]로 또한 살생을 한 까닭[故]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근심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리고 근심과 괴로움을 참아가며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험담ㆍ욕ㆍ쓸데없는 말ㆍ탐욕ㆍ성냄ㆍ삿된 견해를 일으킨 연고로 또한 사견을 일으킨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근심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리고 몸이 부서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악취(惡趣)와 지옥에 떨어진다. 이 업이 현재에도 괴로우며 나중에도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업이 현재에는 즐겁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인가.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생한 연고로 또한 살생한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험담ㆍ욕ㆍ쓸데없는 말ㆍ탐욕ㆍ성냄 삿된 견해를 일으킨 연고로 또한 사견을 일으킨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몸이 부서져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악취와 지옥에 떨어진다. 이 업이 현재에는 즐겁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업이 현재에는 괴롭지만 나중에는 즐거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근심과 괴로움을 참아가며 죽이지 않은 연고로 또는 죽이지 않은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조심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리고 근심과 괴로움을 참아가며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고, 성냄을 일으키지 않고, 바른 견해를 일으킨 연고로 또는 바른 견해를 일으킨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근심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리고 몸이 부서져 목숨을 마친 뒤에는 선취(善趣)와 천상에 태어난다. 이 업이 현재에는 괴롭지만 나중에는 즐거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업이 현재에도 즐거우며 나중에도 즐거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생하지 않은 연고를 또한 살생하지 않는 까닭에 마음으로 이리저리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고, 성냄을 일으키지 않고, 바른 견해를 일으킨 연고로 또한 바른 견해를 일으킨 까닭에마음으로 이리저리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그리고 몸이 부서져 목숨을 마친 뒤에 선취와 천상에 태어난다. 이 업이 현재에도 즐거우며 나중에도 즐거운 과보를 지니며 받는 것이라고 한다. 이들을 이름하여 네 가지 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공포[五怖]인가. 살생한 연고로 또한 살생한 까닭에 현재의 몸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미래의 몸에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음주로 방일하는 경우에 빠진 연고로 또한 음주로 방일하는 경우에 빠진 까닭에 현재의 몸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미래의 몸에 두려움이 일어나니, 이를 다섯 가지 공포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원한[五怨]인가. 살생한 연고로 또한 살생한 까닭에 현재의 몸에 원한이 일어나고 미래의 몸에 원한이 일어난다. 그리고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음주로 방일하는 경우에 빠진 연고로 또한 음주로 방일하는 경우에 빠진 까닭에 현재의 몸에 원한이 일어나고 미래의 몸에 원한이 일어난다. 이를 다섯 가지 원한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어머니를 해치는 무간업인가.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고의로 목숨을 단절시키는 것이니, 이를 어머니를 해치는 무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아버지를 해치는 무간업인가.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고의로 목숨을 단절시키는 것이니, 이를 아버지를 해치는 무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아라한을 해치는 무간업인가. 고의로 아라한인 성문(聲聞)의 목숨을 단절시키는 것이니, 이를 아라한을 해치는 무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승단을 파괴하는 무간업인가. 한 쪽에 네 명의 비구 또는 그 이상을 초청하고 다시 다른 쪽에 네 명의 비구 또는 그 이상을 초청하여 행주(行籌)24)ㆍ합송(合頌) 등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니, 이를 승단을 파괴하는 무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래의 몸에 대해 악심을 가지고 피를 내게 하는 무간업이라고 하는가. 고의로 여래의 몸에 대해 악심을 품고 피를 나게 하는 업을 성취하거나 나아가 머리털 끝 같은 것을 상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몸에 대해 악심을 가지고 피를 내게 하는 무간업이라고 한다.이들을 오무간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오계(五戒)인가.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음주로 방일한 경우에 빠지지 않는 것이니, 이를 오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오계를 넘어서는 것[五戒越]인가. 죽이는 것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음주로 방일한 경우에 빠지는 것이니, 이를 오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탐업(因貪業)인가. 업 중에 탐욕을 인(因)으로 하며, 탐욕을 단서[緖]로 하며, 탐욕에서 집기(集起)한 것이며, 탐욕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인탐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에업(因恚業)인가. 업 중에 성냄을 인으로 하며, 성냄을 단서로 하며, 성냄에서 집기한 것이며, 성냄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인에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치업(因癡業)인가. 업 중에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음을 단서로 하며, 어리석음에서 집기한 것이며, 어리석음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인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탐인업(不貪因業)인가. 탐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탐내지 않음을 단서로 하며, 탐내지 않음에서 집기한 것이며, 탐내지 않음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불탐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에인업(不恚因業)인가. 화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화내지 않음을 단서로 하며, 화내지 않음에서 집기한 것이며, 화내지 않음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불에인업이라 한다. 어떤 것이 불치인업(不癡因業)인가.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지 않음을 단서로 하며, 어리석지 않음에서 집기한 것이며, 어리석지 않음을 연고로 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을 불치인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지옥업(趣地獄業)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이것이 증대되어 능히 지옥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취지옥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축생업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는 것이 중간 정도이어서 능히 축생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취축생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아귀업인가. 업 중에 선하지 않은 것이 옅지만 능히 아귀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취아귀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인업인가. 업 중에 선이 증대되지 않았지만 능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취인업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취천업(趣天業)인가. 업 중에 선이 증대되어 능히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 취천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열반업(趣涅槃業)인가. 업 중에 성스러우며 과보를 지니는 것으로서 능히 번뇌를 단절하는 것이니, 이를 취열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일곱 불선법[七不善法]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험담ㆍ욕ㆍ쓸데없는 말 등이니, 이를 일곱 불선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일곱 선법[七善法]인가. 살생하지 않음ㆍ훔치지 않음ㆍ사음하지 않음ㆍ거짓말하지 않음ㆍ험담하지 않음ㆍ욕하지 않음ㆍ쓸데없는 말 하지 않음 등이니, 이를 일곱 선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스럽지 않은 여덟 가지 말[八非聖語]인가. 보지 않고서도 보았다고 말하는 것, 보고서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듣지 않고서도 들었다고 말하는 것, 듣고서도 듣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지각(知覺)하지 않고서도 지각했다고 말하는 것, 지각하고서도 지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식별하지 않고서도 식별했다고 말하는 것, 식별하고서도 식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등이니, 이를 성스럽지 않은 여덟 가지 말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여덟 가지 말[八聖語]인가. 보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 듣지 않은 것을 듣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들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 지각하지 않은 것을 지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지각한 것을 지각했다고 말하는 것, 식별하지 않은 것을 식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식별한 것을 식별했다고 말하는 것 등이니, 이를 성스러운 여덟 가지 말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탐욕을 인(因)으로 하는 신업[因貪身業]인가. 신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탐욕을 인으로 하며 탐욕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탐욕에 덮인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인 몸의 계율 아닌 것이니, 이를 탐욕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탐욕을 인으로 하는 의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탐욕을 인으로 하며 탐욕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탐욕에 덮인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탐욕을 인으로 하는 의업이라고 한다.
029_0090_a_21L云何因貪意業?若意業不善因貪不離貪貪覆心相應思,是名因貪意業。
어떤 것이 성냄을 인으로 하는 신업[因恚身業]인가. 신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성냄을 인으로 하며 성냄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성냄에 덮인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인 몸의 계율 아닌 것이니, 이를 성냄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냄을 인으로 하는 의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성냄을 인으로 하며 성냄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성냄에 덮인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성냄을 인으로 하는 의업이라고 한다.
029_0090_b_06L云何因恚意業?若意業不善因恚不離恚恚覆心相應思,是名因恚意業。
어떤 것이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因癡身業]인가. 신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어리석음에 덮인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인 몸의 계율 아닌 것이니, 이를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지 않으며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한 것이며, 어리석음에 덮인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이라고 한다.
029_0090_b_14L云何因癡意業?若意業不善因癡不離癡癡覆心相應思,是名因癡意業。
어떤 것이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인가. 신업 중에 선하며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탐욕을 떠났으며, 탐욕에 덮이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몸의 계율 등이니, 이를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며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탐욕을 떠났으며, 탐욕에 덮이지 않은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탐하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이라고 한다.
029_0090_b_22L云何因不貪意業?若意業善因不貪離貪非貪覆心相應思,是名因不貪意業。
어떤 것이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인가. 신업 중에 선하며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성냄을 떠났으며, 성냄에 덮이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몸의 계율 등이니, 이를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인가. 의업 중에 선하며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성냄을 떠났으며, 성냄에 덮이지 않은 마음에 상응하는 사(思)이니, 이를 성내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의업이라고 한다.
029_0090_c_08L云何因不恚意業?若意業善因不恚離恚非恚覆心相應思,是名因不恚意業。
어떤 것이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인가. 신업 중에 선하며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음을 떠났으며, 어리석음에 덮이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가고 오고 굽히고 펴고 회전하는 등의 몸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몸의 계율과 정업 및 몸의 정명[身正命]등이니, 이를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신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는 구업인가. 구업 중에 선하며 어리석지 않음을 인으로 하며 어리석음을 떠났으며, 어리석음에 덮이지 않은 마음이 일으킨 음성ㆍ구절ㆍ언어 등의 말의 표시와 무표이며 유루인 말의 계율과 정어 및 말의 정명[口正命]등이니, 이를 어리석음을 인으로 하는 구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십법인가. 살생과 나아가 삿된 견해이니, 이를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 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십법인가. 살생하지 않음과 나아가 정견이니, 이를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 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이십법인가. 스스로 살생하며 남에게 살생을 하도록 하며 나아가 스스로 삿된 견해를 지니며 남에게 삿된 견해를 지니게 하는 것이니, 이를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이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 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이십법인가. 스스로 살생하지 않으며 남에게 살생하지 않게 하여 나아가 스스로 정견을 지니며 남에게 정견을 지니도록 하는 것이니, 이를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이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삼십법인가. 스스로 살생하며 남에게 살생을 하도록 하며 살생을 찬탄하며, 나아가 스스로 삿된 견해를 지니며 남에게 삿된 견해를 지니도록 하며 삿된 견해를 찬탄하는 것이니, 이를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삼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사십법인가. 스스로 살생하며 남에게 살생을 하도록 하며 살생을 찬탄하며 살생을 원하고 즐기며,나아가 스스로 삿된 견해를 지니며 남에게 삿된 견해를 지니도록 하며 삿된 견해를 찬탄하며 삿된 견해를 원하고 즐기는 것이니, 이를 성취하면 지옥에 떨어지되 창 끝과 같이 빨리 떨어지게 되는 사십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 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사십법인가. 스스로 살생하지 않으며 남에게 살생하지 않게 하며 살생을 찬탄하지 않으며 살생을 원하지도 즐기지도 않으며, 나아가 스스로 정견을 지니며 남에게 정견을 지니도록 하며 정견을 찬탄하며 정견의 행위를 원하고 즐기는 것이니, 이를 성취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되 창끝과 같이 빨리 태어나게 되는 사십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