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공명상정(共明想定)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여러 가지 밝은 모습을 취하니, 말하자면 불의 빛, 해ㆍ달ㆍ별의 빛, 마니 구슬의 빛 등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광명(光明)의 모습을 취한 뒤에 나무 밑 또는 노지에서 광명을 사유하고 광명을 알고 광명을 느낀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광명상(光明想)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나무 밑 또는 노지에서 청정심으로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한 그루의 나무 밑 또는 둘ㆍ셋, 나아가 열 그루의 나무 밑에서 청정심으로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하나의 승원, 둘ㆍ셋, 나아가 열 곳의 승원1)에 대해 청정심으로써 두로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하나의 승원, 둘ㆍ셋, 나아가 열 곳의 승원에 대해 청정심으로써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한 곳의 마을, 둘ㆍ셋, 나아가 열 곳의 마을에 대해 청정심으로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하나의 승원, 둘ㆍ셋, 나아가 열 곳의 승원에 대해 청정심으로써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음의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2)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물과 육지를 두루 돌아 청정심으로 두루 요해하며 수행하여 밝고 뛰어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의 생각 또는 기억의 생각이 있으니, 이를 밝은 생각이라고 하며, 정으로서 이러한 생각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사람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 눈으로써 중생의 태어남과 죽음, 좋은 색과 나쁜 색, 좋은 취(趣)와 나쁜 취, 열등함과 뛰어남 등을 보고, 중생이란 지은 업대로 태어남을 알게 된다. 곧 ‘이 중생은 몸으로 악행을 성취하고 말과 뜻으로 악행을 성취하고 현자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삿된 견해의 업을 지어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지옥 또는 아귀 또는 축생의 세계에 떨어진다. 그리고 이 중생은 몸으로 선행을 성취하고 말과 뜻으로 선행을 성취하고, 현자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정견을 지니고 정견의 업을 지어서 몸이 부서져 죽은 뒤에 천상 또는 인간 사이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사람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 눈으로써 축생의 태어남과 죽음, 좋은 색과 나쁜 색, 좋은 취와 나쁜 취 등을 보고,중생이란 지은 업대로 태어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정을 닦은 뒤에 인간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 눈으로써 중생의 태어남과 죽음, 더 나아가 지은 업대로 태어남을 알게 되니, 이를 공명상정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간정(無間定)이라고 일컫는가. 비구가 무상과 괴로움과 공(空)과 무아와 열반의 고요함을 사유하여 정을 얻고 마음을 머물게 한다. 그리고 정을 얻은 뒤에 초기 성자의 오근(五根)을 얻는다. 그리고 초기 성자의 오근을 얻은 까닭에 윗세계로 바르게 결정되고 범부의 땅을 떠나니, 아직 예류과를 얻지 못한 채 중도에서 죽는 일은 결코 없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무간정을 얻고 일래과를 향하면, 이 정이 사이도 없이 멸한 뒤에 일래과를 얻으니, 이를 무간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무간정을 얻고 불환과를 향하면, 이 정이 사이도 없이 멸한 뒤에 불환과를 얻으니, 이를 무간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무간정을 얻고 아라한과를 향하면, 이 정이 사이도 없이 멸한 뒤에 아라한과를 얻으니, 이를 무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근(定根)인가. 유학인(有學人)이 번뇌를 떠나 성스런 마음으로 성도에 들고, 또한 견신인(堅信人) 또는 견법인(堅法人)인 경우가 있으니,이 때의 정을 정근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근인가.
029_0287_b_23L云何定根?學人離煩惱、聖心入聖道,若堅信堅法,是名定根。云何定根?
유학인이 번뇌를 떠나 성스런 마음으로 성도에 들고, 또는 견신인이나 견법인인 경우, 그리고 다른 취의 사람이 행의 환난을 보고, 열반의 적멸함을 관하고, 진실한 사람이 고ㆍ집ㆍ멸ㆍ도를 여실히 관찰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려 하고,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하여 번뇌를 떠나 수도하는 경우, 그리고 견학인이 예류자 또는 일래자 또는 불환자로서 관지(觀智)를 구족하고, 또는 앎의 땅에 머물고, 또는 해탈심을 관하여 예류과ㆍ일래과ㆍ불환과의 사문과를 증득하는 경우, 그리고 무학인이 아라한을 얻으려 하고, 아직 얻지 못한 성스런 법을 얻으려 하여 수도하고, 관지를 구족하고, 또는 앎의 땅에 머물고, 또는 해탈심을 관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진실된 사람 또는 그러한 취에 든 사람의 마음은 머물되 바로 머물고 오로지 머물고 연에 의해 머물고, 그 마음은 하나로 정해지고 한결같이 즐겁고 분산되지 않고 버려지지 않고, 그 마음은 뜻에 의지할 뿐 마음 홀로 거처한다. 그 마음에 정력(定力)ㆍ정각지(定覺支)ㆍ정정(正定)이 있으니, 이를 정근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력(定力)인가. 정근이니, 이를 정력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각정(定覺定)인가. 정력이니, 이를 정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정(正定)인가. 정 중에 선하고 순응하며 거스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를 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정(邪定)인가. 정 중에 선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거스르는 것이 있으니, 이를 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스런 정[聖定]인가. 정 중에 무루인 것이니, 이를 성스런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스럽지 않은 정[非聖定]인가. 정 중에 유루인 것이니, 이를 성스럽지 않은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루정(有漏定)인가. 정 중에 더러움을 지닌 것이니, 이를 유루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루정인가. 정 중에 더러움이 없는 것이니, 이를 무루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더러움이 있는 정인가. 정 중에 구함이 있는 것이니, 이를 더러움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더러움이 없는 정인가. 정 중에 구함이 없는 것이니, 이를 더러움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구함이 있는 정인가. 정 중에 마땅히 취착할 만한 것이니, 이를 구함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구함이 없는 정인가. 정 중에 취착할 만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구함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착할 만한 정인가. 정 중에 취함을 지닌 것이니, 이를 취착할 만한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착할 만하지 않은 정인가. 정 중에 취함이 없는 것이니, 이를 취착할 만하지 않은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함이 있는 정인가. 정 중에 더 뛰어남이 있는 것이니, 이를 취함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함이 없는 정인가. 정 중에 더 뛰어남이 있는 것이니, 이를 취함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뛰어남이 있는 정인가. 정 중에 취함[取]을 지닌 것이니, 이를 뛰어남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뛰어남이 없는 정인가. 정 중에 취함이 없는 것이니, 이를 뛰어남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 중에 다른 뛰어나고 미묘하고 능가하는 정을 지닌 것이니, 이를 뛰어남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또한 그 정 외에는 다른 뛰어나고 미묘하고 능가하는 정이 없는 것이 있다. 이를 뛰어남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여래가 모든 법을 걸림 없이 알고 보는 것을 얻으니,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존귀하고 뛰어나게 되며 최상의 바른 깨달음이 있게 되며 여래의 열 가지 힘을 성취하게 되며 네 가지 무소외(無所畏)와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있게 되며 법륜을 굴리게 되며 자재함을 성취하게 된다. 이 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 있으니, 이를 뛰어남이 있는 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위에서 제외한 정이 있으니, 이를 뛰어남이 없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하여진 정인가. 정 중에 안의 것이니, 이를 취하여진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취하여지지 않은 정인가. 정 중에 밖의 것이니, 이를 취하여지지 않은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정(內定)인가. 정 중에 취하여진 것이니, 이를 내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정(外定)인가. 정 중에 취하여지지 않은 것이니, 이를 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범부공정(凡夫共定)3)인가. 정 중에 범부가 아닌 자도 들어가고 나오며, 범부도 역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다. 이를 범부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범부불공정(凡夫不共定)인가. 정 중에 범부가 아닌 자는 들어가고 나오나 범부는 들어가고 나올 수 없는 것이 있다4). 이를 범부불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범부공정(非凡夫共定)인가. 정 중에 범부도 들어가고 나오며, 범부가 아닌 자도 역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범부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범부불공정(非凡夫不共定)인가. 정 중에 범부는 들어가고 나오나, 범부가 아닌 자는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니, 이를 비범부불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문공정(聲聞共定)인가. 정 중에 성문이 아닌 자도 들어가고 나오며, 성문도 역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다. 이를 성문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성문불공정(聲聞不共定)인가. 정 중에 성문이 아닌 자는 들어가고 나오나, 성문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성문불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성문공정(非聲聞共定)인가. 정 중에 성문도 들어가고 나오며, 성문이 아닌 자도 역시 들어가고 얻는 것이 있다. 이를 비성문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성문불공정(非聲聞共定)인가. 정 중에 성문은 들어가고 나오나, 성문이 아닌 자는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비성문불공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전정(如電定)인가. 정 중에 적게 적게 머물고 적은 시간을 머물되, 번개가 적게 적게 머물고 적은 시간을 머무는 것과 같으니, 정 중에는 그러한 것이 있다. 이를 여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금강정(如金剛定)인가. 정 중에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한 시간을 머물되 금강이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한 시간을 머무는 것과 같으니, 정 중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 이를 여금강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번뇌에 관련된 것을 조금 단절하되, 마치 번개가 구름 속에서 어둠에 관련된 것을 조금 밝히고 속히 소멸하는 것과 같으니, 정 중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 이를 여전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은 뒤에 모든 번뇌를 단절하여 거친 것도 미세한 것도 단절되지 않은 것이 없이 멸하니,5)마치 금강이 구슬이나 돌에 던져지면 부수어지고 깨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정 중에는 그러한 것이 있으니, 이를 여금강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예류과ㆍ일래과ㆍ불환과를 얻는 것이 있으니, 이를 여전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은 뒤에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 있으니, 이를 여금강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예류과로부터 아라한과에 이르기까지와 벽지불도(辟支佛道)를 얻는 것이 있으니, 이를 여전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되 여래가 닦은 정으로는 모든 법을 걸림 없이 알고 보는 것을 얻으니,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존귀하고 뛰어나게 되며 최상의 바른 깨달음이 있게 되며 여래의 열 가지 힘을 성취하게 되며 네 가지 무소외와 대자대비가 있게 되며 법륜을 굴리게 되며 자재함을 성취하게 된다. 이를 여금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부정득정(不定得定)인가. 정 중에 얻되 정해지지 않은 채 얻고 어렵게 얻고 또한 어렵게 유지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부정득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득정(定得定)인가. 정 중에 얻되 결정적으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쉽게 유지하는 것이 있다. 이를 정득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행난지정(有行難持定)인가. 정 중에 얻되 정해지지 않은 채 얻고 어렵게 얻고 어렵게 유지하고, 또한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없고, 욕구하는 바와 같지 않고 욕구하는 바에 따르지 않고 욕구하는 바를 다하지 못하고, 가행(加行)함이 있고 어렵게 들어가고 어렵게 나오니, 배가 물을 거슬러 어렵게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있다. 정 중에 역시 이러한 것이 있으니, 이를 유행난지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행이지정(無行易持定)인가. 정 중에 얻되 결정적으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쉽게 얻고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욕구하는 바와 같고 욕구하는 바에 따르고 욕구하는 바를 다하고, 가행함이 없이 들어가고 나오니, 배가 물을 따라 쉽게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있다. 정 중에 역시 이러한 것이 있으니, 이를 무행이지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일분수정(一分修定)인가. 정을 닦은 뒤에 생각의 광명이 있어도 아직 색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색을 보아도 생각의 광명이 없는 것이 있다. 이를 일분수정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이분수정(二分修定)인가. 정을 닦은 뒤에 생각의 광명도 있고 색을 보기도 하는 것이 있다. 이를 이분수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지혜를 일으켜도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번뇌를 단절하여도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일분수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은 뒤에 지혜를 일으키고 능히 번뇌를 단절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분수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은 뒤에 진지(盡智)는 생하여도 무생지(無生智)는 아닌 경우가 있다. 이를 일분수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은 뒤에 진지도 생하고 무생지도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분수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상정(有想定)인가. 정 중에 경계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유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상정인가. 정 중에 경계를 지니지 않는 것이니, 이를 무상정이라고 한다. 다시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 있으니, 이를 유상정이라고 하며, 또한 무상정과 멸진정이 있으니, 이를 무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여사정(如事定)인가. 법 중에 법대로, 양상 그대로, 자성 그대로, 연기에 수순하는 것 그대로, 그리고 모습 그대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으니, 이를 여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억상정(憶想定)인가. 법 중에 법상(法相) 그대로, 양상 그대로, 자성 그대로, 연기에 수순하는 것 그대로, 또한 법상 그대로, 또는 법상과 다르게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으니, 이를 억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이색상정(離色想定)인가. 정 중에 색상을 떠나고 들어가는 것 또는 색상을 떠나고 입정(入定)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이색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리색상정(不離色想定)인가. 정 중에 색상을 떠나지 않고 들어가는 것, 또는 색상을 떠나지 않고 입정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불리색상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 중에 무색계인 것이니, 이를 이색상정이라고 하며, 또한 정 중에 색계인 것 및 성스런 것이니,이를 불리색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심정(有尋定)인가. 정 중에 심(尋)과 상응하고 심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다. 이를 유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심정(無尋定)인가. 정 중에 심에 상응하지 않고 심과 함께 생하지 않고 함께 머물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 무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사정(有伺定)인가. 정 중에 사(伺)에 상응하고 사와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유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사정인가. 정 중에 사와 상응하지 않고 사와 함께 하지 않고 사와 함께 머물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 무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희정(有喜定)인가. 정 중에 희(喜)에 상응하고 희와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다. 이를 유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희정(無喜定)인가. 정 중에 희에 상응하지 않고 희와 함께 생하지 않고 희와 함께 머물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 무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상응정(忍相應定)인가. 정 중에 인(忍)과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다. 이를 인상응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인상응정(非忍相應定)인가. 정 중에 인과 함께 생하지 않고 함께 머물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 비인상응정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지상응정(智相應定)인가. 정 중에 지(智)와 함께 생하고 함께 머물고 함께 멸하는 것이 있다. 이를 지상응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지상응정(非智相應定)인가. 정 중에 지와 함께 생하지 않고 함께 머물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를 비지상응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인시정(忍始定)인가. 정 중에 성스럽고 무루인 것으로서 견신인(堅信人)과 견법인(堅法人)이 닦는 것이 있다. 이를 인시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시정(智始定)인가. 정 중에 성스럽고 무루인 것으로서 견도인(見道人)이 닦는 것이 있다. 이를 지시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종정(欲終定)인가. 정 중에 최후의 식(識)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욕종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시생정(始生定)인가. 정 중에 최초의 식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시생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선한 정인가. 정 중에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 선한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선한 정인가. 정 중에 끊어야 할 것이니, 이를 불선한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기의 정인가. 정 중에 취하여진 것 또는 과보도 과보의 법도 아닌 것이 있다. 이를 무기의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학(有學)의 정인가. 정 중에 성스럽지만 무학이 아닌 것이 있다. 이를 유학의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학의 정인가. 정 중에 성스럽지만 유학이 아닌 것이 있다. 이를 무학의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학도 무학도 아닌 정인가. 정 중에 성스럽지 않은 것이니, 이를 유학도 무학도 아닌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정(報定)인가. 정 중에 취하여진 것이며, 또한 정 중에 선한 과보인 것이 있다. 이를 보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보법정(報法定)인가. 정 중에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보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보비보법정(非報非報法定)인가. 법 중에 무기로서 나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보비보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정(見斷定)인가. 정 중에 불선하며 사유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견단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정(思惟斷定)인가. 정 중에 불선하며 견단이 아닌 것이니, 이를 사유단정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비견단비사유단정(非見斷非思惟斷定)인가. 정 중에 선하거나 무기인 것이니, 이를 비견단비사유단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견단인정(見斷因定)인가. 정 중에 견단인 것 또는 봄으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 있으니, 이를 견단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유단인정(思惟斷因定)인가. 정 중에 사유단인 것 또는 사유로 끊어야 할 법의 과보인 것이 있으니, 이를 사유단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견단인비사유단인정(非見斷因非思惟斷因定)인가. 정 중에 선한 것 또는 선한 법의 과보인 것 또는 과보도 아니고 과보를 지니는 법도 아닌 것이 있다. 이를 비견단인비사유단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하정(下定)인가. 정 중에 불선한 것이니, 이를 하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中定)인가. 정 중에 무기인 것이니, 이를 중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상정(上定)인가. 정 중에 선한 것이니, 이를 상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 중에 불선하거나 무기인 것이니, 이를 하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성스럽지 않으나 선한 것이니, 이를 중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성스럽고 무루인 것이니, 이를 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추정(麁定)인가. 정 중에 욕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정(細定)인가. 정 중에 색계에 묶인 것 또는 묶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정(微定)인가. 정 중에 무색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미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 중에 욕계에 묶인 것 또는 색계에 묶인 것이니, 이를 추정이라고 한다. 또한 공무변처에 묶인 것, 식무변처에 묶인 것, 무소유처에 묶인 것, 또는 묶이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를 세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 있으니, 이를 미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 중에 욕계에 묶인 것, 색계에 묶인 것, 공무변처에 묶인 것, 식무변처에 묶인 것, 무소유처에 묶인 것이 있으니, 이를 추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묶이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를 세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비상비비상처에 묶인 것이 있으니, 이를 미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삼원득정(三願得定)인가. 원과득정(願果得定) 또는 원득정(願得定) 또는 적정원득정(寂靜願得定)이다. 비구가 한두 정을 얻고 또는 공정ㆍ무상정ㆍ무작정을 얻는다. 이 비구는 ‘나는 응당 이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울 것이다. 그것은 사문의 사과(四果)를 얻고자 하는 원(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사유한다. 이처럼 이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우는 것은 사문의 사과를 얻고자 하는 원이 있기 때문이니, 이 비구는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우며 사문의 사과를 얻는 것을 원한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원과득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은근히 정진하며 나아가되 혹은 의욕이 있고 혹은 의욕이 없고, 혹은 정진하고 혹은 정진함이 없다. 이 비구는 ‘나는 응당 이 의욕 및 정진을 닦고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워야겠다’라고 사유한다. 이처럼 이 비구는 의욕 및 정진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우니, 응당 은근히 정진하되 마음이 정에 든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원득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한두 정을 얻거나 얻지 못하니, 얻어도 어렵게 얻고, 어렵게 유지한다. 이 비구는 ‘나는 응당 이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워 그것이 나로 하여금 원인의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을 얻도록 해야겠다’라고 사유한다. 이처럼 이 비구는 원인의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을 그로 하여금 얻게 해 주는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적정원득정6)이라고 한다. 이들을 삼원득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삼원득정(非三願得定)인가. 불원과득정(不願果得定)7)ㆍ불원득정(不願得定)ㆍ부적정원득정(不寂靜願得定)이다. 비구가 한두 정을 얻고 또는 공정ㆍ무상정ㆍ무작정을 얻는다. 이 비구는 ‘나는 이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워야겠다.그것은 사문의 사과를 얻고자 하는 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사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비구가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우는 것은 사문의 사과를 얻고자 하는 원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이 비구는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 뒤에 사문의 결과를 얻는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불원과득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은근히 정진하여 나아가되 혹은 의욕이 있고 혹은 의욕이 없고, 혹은 정진하고 혹은 정진함이 없다. 이 비구는 ‘나는 응당 의욕 및 정진을 닦고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워야겠다’라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비구는 의욕 및 정진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우니, 응당 은근히 정진하되 마음이 정에 든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불원득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구가 한두 정을 얻거나 얻지 못하니, 얻어도 어렵게 얻고 어렵게 유지한다. 이 비구는 ‘나는 응당 이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워 그것이 나로 하여금 원인의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을 얻도록 해야겠다’라고 사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비구는 원인의 힘과 존귀함과 자재함을 그로 하여금 얻게 해 주는 정을 가까이하고 많이 닦고 배운다. 이와 같이 하여 정을 얻으니, 이를 부적정원득정이라고 한다. 이들을 비삼원득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신관내신정(內身觀內身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안의 색신(色身)에 포섭되는 모든 법 또는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안의 법 중 일부에 대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空)하고 무아(無我)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신관내신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신관외신정(外身觀外身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밖의 색신에 포섭되는 모든 법 또는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밖의 법 중 일부에 대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외신관외신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외신관내외신정(內外身觀內外身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안과 밖의 색신에 포섭되는 모든 법 또는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안과 밖의 법 중 일부에 대하여그것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외신관내외신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수관내수정(內受觀內受定)인가. 비구가 모든 안의 느낌 또는 안의 느낌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수관내수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수관외수정(外受觀外受定)인가. 비구가 모든 밖의 느낌 또는 밖의 느낌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외수관외수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심관내심정(內心觀內心定)인가. 비구가 모든 안의 마음 또는 안의 마음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심관내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심관외심정(外心觀外心定)인가. 비구가 모든 밖의 마음 또는 밖의 마음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외심관외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법관내법정(內法觀內法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법 및 느낌과 마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모든 안의 법 또는 안의 법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법관내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법관외법정(外法觀外法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법 및 느낌과 마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모든 밖의 법 또는 밖의 법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외법관외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외법관내외법정(內外法觀內外法定)인가. 비구가 사대로 이루어진 색신에 포섭되는 법 및 느낌과 마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모든 안과 밖의 법 또는 안과 밖의 법 중 일부에 대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아임을 관하여 정을 얻고, 마음이 머물되 바로 머문다. 이를 내외법관내외법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경계정(內境界定)인가. 안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내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외경계정(外境界定)인가. 밖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외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내외경계정(內外境界定)인가. 안과 밖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내외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생경계정(衆生境界定)인가. 중생경계정이란 없다. 그러나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 중생을 사유하여 그것에서 정이 생하니, 이를 중생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경계정(色境界定)인가. 색의 법[色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색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색경계정(無色境界定)인가. 무색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무색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생경계정인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이 법경계정인가. 법(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법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경계정(無境界定)인가. 무경계정이란 없다. 그러나 과거ㆍ미래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하니, 이를 무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생경계정인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8)
. 어떤 것이 소정(少定)인가. 아주 잠깐 머물고 잠시 동안 머무는 것이니, 이를 소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中定)인가. 아주 적당히 머물고 적당히 머무는 것이니, 이를 중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無量定)인가. 무량하고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한 동안을 머무는 것이니, 이를 무량정이라고 한다. 다시 소정은 잠시 머물고 조금 무디고 적은 경계의 것이니, 이를 소정이라고 한다. 다시 중정은 적당히 머물고 적당히 무디고 적당히 경계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중정이라고 한다. 다시 무량정은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하게 뛰어나고 무량한 경계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무량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경계정(少境界定)인가. 정 중에 한 중생 또는 한 법 또는 한 가지 행위를 연하는 까닭에 생하는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소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경계정(中境界定)인가. 정 중에 다수의 중생 또는 다수의 법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중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경계정(無量境界定)인가. 정 중에 무량한 중생 또는 무량한 법 또는 여래와 열반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이니, 이를 무량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소경계인가. 정 중에 잠시 머무르고 조금 무딘 것이며, 또한 한 중생 또는 한 법 또는 한 가지 행위를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소정소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중경계인가. 정 중에 잠시 머무르고 조금 무딘 것이며, 또한 다수의 중생 또는 다수의 법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으로서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소정중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무량경계인가. 정 중에 잠시 머무르고 조금 무딘 것이며, 또한 무량한 중생 또는 무량한 법 또는 여래와 열반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이니, 이를 소정무량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소경계인가. 정 중에 적당히 머무르고 적당히 무디며, 또한 한 중생 또는 한 법 또는 한 가지 행위를 연하는 까닭에 생하는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중정소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중경계인가. 정 중에 적당히 머무르고 적당히 무디며, 또한 다수의 중생 또는 다수의 법을 연하는 까닭에 생하는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중정중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무량경계인가. 정 중에 적당히 머무르고 적당히 무디며, 또한 무량한 중생 또는 무량한 법 또는 여래와 열반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이니, 이를 중정무량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소경계인가. 정 중에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하게 뛰어난 것이며, 또한 한 중생 또는 한 법 또는 한 가지 행위를 연하는 까닭에 생하는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무량정소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중경계인가. 정 중에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하게 뛰어난 것이며, 또한 다수의 중생 또는 다수의 법을 연하는 까닭에 생하는 것으로서 여래와 열반은 제외한 것이니, 이를 무량정중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무량경계인가. 정 중에 무량하게 머물고 무량하게 뛰어난 것이며, 무량한 중생 또는 무량한 법 또는 여래와 열반을 연하는 까닭에 생한 것이니, 이를 무량정무량경계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주정(少住定)인가. 정 중에 잠시 동안 머무르니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 또는 길어도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가 못 되거나 또는 약간 긴 것이 있다. 이를 소주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주정(中住定)인가. 정 중에 적당한 기간을 머무르니,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 또는 길어도 7일이 못 되거나 또는 약간 긴 것이 있다. 이를 중주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주정(無量住定)인가. 정 중에 무량한 기간을 머무르니, 7일 혹은 그 이상 긴 것이 있다. 이를 무량주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소주(少定少住)인가. 정 중에 적은 경계를 지니고 조금 무딘 것이며, 잠시 동안 머물러 손가락 한 번 튀기는 사이 또는 길어도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가 못 되거나 또는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소정소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중주인가. 정 중에 적은 경계를 지니고 조금 무딘 것이며, 적당히 머물러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정도 또는 그보다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소정중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정무량주인가. 정 중에 적은 경계를 지니고 조금 무딘 것이며, 무량하게 머물러 7일 혹은 그보다 더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소정무량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소주(中定少住)인가. 정 중에 적당한 경계를 지니고 적당히 무딘 것이며, 잠시 동안을 머물러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 혹은 길어도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가 못 되거나 또는 그보다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중정소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중주(中定中住)인가. 정 중에 적당한 경계를 지니고 적당히 무딘 것이며, 적당한 기간을 머물러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 혹은 길어도 7일은 못 되거나 혹은 그보다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중정중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중정무량주(中定無量住)인가. 정 중에 적당한 경계를 지니고 적당히 무딘 것이며, 무량한 기간을 머물러 7일 혹은 그보다 긴 것이 있으니, 이를 중정무량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소주(無量定少住)인가. 정 중에 무량한 경계를 지니고 무량하게 뛰어난 것이며, 잠시 동안을 머물러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 또는 길어도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가 못 되거나 또는 그보다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무량정소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중주(無量定中住)인가. 정 중에 무량한 경계를 지니고 무량하게 수승한 것이며, 적당한 기간을 머물러 소가 한 번 끌고 가는 사이 또는 길어도 7일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그보다 약간 긴 것이 있으니, 이를 무량정중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량정무량주(無量定無量住)인가. 정 중에 무량한 경계를 지니고 무량하게 뛰어난 것이며,무량한 기간을 머물러 7일 동안 또는 그보다 긴 것이 있으니, 이를 무량정무량주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정인가. 정 중에 발생하여 이미 소멸한 것이니, 이를 과거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정인가. 정 중에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니, 이를 미래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정인가. 정 중에 발생하여 아직 소멸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현재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과거경계정인가. 과거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한 것이니, 이를 과거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래경계정인가. 미래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한 것이니, 이를 미래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현재경계정인가. 현재의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한 것이니, 이를 현재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정인가.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법을 사유하여 정이 생한 것이니, 이를 비과거비미래비현재경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욕계계정(欲界繫定)인가. 정 중에 욕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욕계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색계계정인가. 정 중에 색루(色漏)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색계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색계계정인가. 정 중에 무색루를 지니어 유루인 것이니, 이를 무색계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불계정(不繫定)인가. 정 중에 성스러우며 무루인 것이니, 이를 불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작정비리(作定非離)인가. 정 중에 성스럽지 않으며 과보를 지니는 것이니, 이를 작정비리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이정비작(離定非作)인가. 정 중에 성스러우며 과보를 지니며 능히 번뇌를 단절하는 것이니, 이를 이정비작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작리정(作離定)인가. 실천함[作]과 떠남[離]이 동시인, 그러한 정은 결코 없으니, 작정이면 이정(離定)이지 않고, 이정이면 작정이지 않다. 이것을 작리정이라고 한다.어떤 것이 비작비리정(非作非離定)인가. 작리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작비리정이라고 한다.
다시 작정비리는 욕계에서 과보를 지니는 정이니, 이를 작정비리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성스러우며 과보를 지니며 능히 번뇌를 단절하는 것이니, 이를 이정비작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아 욕계의 번뇌를 단절하고 색계 또는 무색계의 존재를 받으니, 이를 작리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과보가 없는 것 또는 정 중에 성스럽고 과보를 지닌 것이어도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비작비리정이라고 한다.
취정비출(取定非出)ㆍ출정비취(出定非取)ㆍ출취정(出取定)ㆍ비취비출정(非取非出定), 그리고 유염정비리염(有染定非離染)ㆍ이염정비유염(離染定非有染)ㆍ유염리염정(有染離染定)ㆍ비유염비리염정(非有染非離染定), 그리고 유액정비리액(有扼定非離扼)ㆍ이액정비유액(離扼定非有扼)ㆍ유액리액정(有扼離扼定)ㆍ비유액비리액정(非有扼非離扼定)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것이 지과정비단과(智果定非斷果)인가. 정을 닦아서 지혜를 일으켜도 능히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지과정비단과라고 한다. 어떤 것이 단과정비지과(斷果定非智果)인가. 정을 닦아서 번뇌를 단절하여도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단과정비지과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지과단과정(智果斷果定)인가. 하나의 정이 지과이며 동시에 단과인 것은 없다. 지과정이면 단과정이 아니고, 단과정이면 지과정이 아닌 것이다. 이를 지과단과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지과비단과정(非智果非斷果定)인가. 지과단과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지과비단과정이라고 한다.
다시 지과정비단과는 정을 닦아서 성스럽지 않은 다섯 가지 신통 중 하나 또는 둘을 얻는 것이니, 이를 지과정비단과라고 한다. 또한 단과정비지과는 정을 닦아서 일래과를 얻는 것이니, 이를 단과정비지과라고 한다. 또한 지과단과정은 정을 닦아서 예류과ㆍ불환과ㆍ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니,이를 지과단과정이라고 한다. 또한 비지과비단과정은 정 중에 과보를 지니지 않는 것이거나 또한 정 중에 과보를 지니어도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고 능히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비지과비단과정이라고 한다. 지과정비득과정(智果定非得果定)ㆍ득과정비지과(得果定非智果)ㆍ지과득과정ㆍ비지과비득과정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것이 진정비각(盡定非覺)인가. 정을 닦아서 번뇌를 단절하나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니, 이를 진정비각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각정비진(覺定非盡)인가. 정을 닦아서 지혜를 일으키나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니, 이를 각정비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진각정(盡覺定)인가. 하나의 정이 진정이며 동시에 각정인 것은 없다. 진정이면 각정이 아니고, 각정이면 진정이 아니다. 이를 진각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진비각정(非盡非覺定)인가. 진각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진비각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아서 일래과를 얻으니, 이를 진정비각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아서 성스럽지 않은 다섯 가지 신통 중 하나 또는 둘을 얻으니, 이를 각정비진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아서 예류과ㆍ불환과ㆍ아라한과를 얻으니, 이를 진각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 중에 과보가 아닌 것 또는 정 중에 과보를 지니어도 능히 번뇌를 단절하지 못하고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비진비각정이라고 한다. 사정비해(射定非解)ㆍ해정비사(解定非射)ㆍ사해정(射解定)ㆍ비사비해정(非射非解定)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것이 퇴분정(退分定)인가. 정 중에 불선한 것이니, 이를 퇴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주분정(住分定)인가. 정 중에 무기인 것이니, 이를 주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증장분정(增長分定)인가. 정 중에 성스럽지 않고 선한 것이니, 이를 증장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분정(射分定)인가. 정 중에 성스럽고 과보를 지니며 능히 번뇌를 단절하는 것이니,이를 사분정이라고 한다.
다시 정을 닦아서 물러나니 성스럽지 않으며, 선한 법에서 머무르지도 못하고 증장하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퇴분정이라고 한다. 또한 정을 닦아서 성스럽지 않으며, 선한 법에서 머물러 물러서지 않으나 증장하지는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주분정이라고 한다. 또한 사(射)와 함께 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사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퇴분주분정인가. 퇴분정이면서 동시에 주분정인 정은 결코 없다. 만약 퇴분정이라면 주분정이 아니며, 주분정이라면 퇴분정이 아닌 것이다. 이를 퇴분주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퇴비주분정인가. 퇴분주분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퇴비주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퇴분정비증장분인가. 정 중에 물러남이 있어서 증장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를 퇴분정비증장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증장분정비퇴분인가. 정 중에 증장하여 물러서지 않는 것이니, 이를 증장분정비퇴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퇴분증장분정인가. 퇴분정이면서 동시에 증장분정인 정은 결코 없다. 만약 퇴분정이라면 증장분정이 아니며, 증장분정이라면 퇴분정이 아니다. 이를 퇴분증장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퇴분비증장분정인가. 퇴분증장분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퇴분비증장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주분증장분정인가. 주분정이면서 동시에 증장분정인 정은 결코 없다. 만일 주분정이면 증장분정이 아니고, 증장분정이면 주분정이 아니다. 이를 주분증장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주분비증장분정인가. 주분증장분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주분비증장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주분사분정인가. 주분정이면서 사분정인 것은 결코 없다. 만일 주분정이면 사분정이 아니고, 사분정이면 주분정이 아니다. 이를 주분사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주분비사분정인가. 주분사분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 있으니, 이를 비주분비사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증장분정비사분(增長分定非射分)인가. 정 중에 증장함이 있으나 사(射)는 아닌 것이니, 이를 증장분정비사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사분정비증장분인가. 정 중에 사(射)는 있으나증장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사분정비증장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증장분사분정인가. 증장분정이면서 동시에 사분정인 정은 없다. 만일 증장분정이면 사분정이 아니고, 사분정이면 증장분정이 아니다. 이를 증장분사분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비증장분비사분정인가. 증장분사분정을 제외한 나머지 정이니, 이를 비증장분비사분정이라고 한다.
사념처ㆍ사정단(四正斷)ㆍ사신족(四神足)ㆍ사선(四禪)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사향(四向)ㆍ사과(四果)ㆍ사수정(四修定)ㆍ사단(四斷)ㆍ오근ㆍ오력ㆍ오해탈처ㆍ오출리계(五出離界)ㆍ오관정(五觀定)ㆍ오생해탈법(五生解脫法)ㆍ육념(六念)ㆍ육공(六空)ㆍ육출리계(六出離界)ㆍ육명분법(六明分法)ㆍ육열근법(六悅根法)ㆍ육무희정각(六無喜正覺)ㆍ칠각지ㆍ칠상(七想)ㆍ칠정소수(七定所須)ㆍ팔성도(八聖道)ㆍ팔해탈(八解脫)ㆍ팔승처ㆍ구멸(九滅)ㆍ구차제멸정(九次第滅定)ㆍ구상(九想)ㆍ십상(十想)ㆍ십정법(十正法)ㆍ십일체처(十一切處)ㆍ십일해탈처(十一解脫處)는 앞서의 도품(道品)에서 널리 말한 것과 같다.